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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엄마의 미국이민이야기] (5)LA의 파란 하늘
-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이민 가방을 챙겼다. 큰딸이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필자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었나 보다. 아이는 엄마가 하루라도 빨리 동생과 아빠 곁인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고, 카이스트가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필자의 허락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 드디어 왔다 갔다 이산가족 생활 3년 만에 한국의 모든 생활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물론 큰딸은 여전히 한국에 돌아와 남은 학기를 마쳐야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13시간의 지루한 비행시간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방학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 오히려 마음은 편안했다. 비행기 조그만 창문 아래로 두둥실 떠 있는 구름들이 어디론가 희망의 솜사탕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았다. 필자의 부푼 마음도 그 구름을 타고 조금씩 설레 이기 시작했다. 이제 또 새롭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막연한 환상이었다. 나름대로 각오는 했지만 그저 무덤덤하게 몸에 와 닿지는 않았다. 작은 아이와 남편은 미리 나와서 흥분된 모습으로 진한 포옹을 해주었다. 불과 6개월 만의 만남이었지만 작은 아이의 얼굴에는 엄마와 다시는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환희의 미소가 안정감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일 먼저 식구가 늘었으니 살 집부터 구했다. 같은 동네 씨미벨리에 거금 1250달러 월세인 투 베드 룸을 얻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풍의 카펫이 깔린 아담한 아파트에 미국적 정서가 배어있는 화이어 플레이스(벽난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필자는 시차 적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 분위기 넘치고 아늑한 집으로 꾸며나갔다. 베란다 밖으로는 평화롭고 예쁜 동네가 나무도 제법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마치 영화 속의 전원도시 같았다. 새 식구가 된 큰딸과 필자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흥분과 함께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네 여기저기에서 자동으로 돌아가는 스프링클러가 신선한 삶의 충격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때에 맞춰 조용히 잔디밭 위로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먹은 파란 잔디가 고개를 살포시 들어 생동하는 생명의 꽃향기로 필자를 환영해 주는듯했다. 오후쯤 되어 큰딸과 함께 남편이 있는 곳으로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언제나 남편은 아이보다 먼저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작은 아이를 기다렸었다. 그 이유는 빈집에 아이 혼자 들어오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우선 챙겨온 국제 운전면허증으로 제법 용감하게 남편을 픽업하기 위해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캘리포니아의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이 행복을 마구 실어다 주는 듯했다. 그때는 방문객도 임시 운전면허증으로 운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 기쁜 감동도 지나치면 탈이라고 이게 웬일인가 일이 터졌다. 갑자기 머리 뒤로 삐웅삐웅 대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경찰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뒤쫓아 오고 있었다. 아뿔싸! 정신이 몽롱해지고 앞이 캄캄해졌다.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스쳐가며 하얗게 몸이 오그라졌다. 미국은 한번 걸렸다 하면 몇 백 달러는 기본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기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길가로 차를 정지 시켰다. 키가 커다랗고 번쩍번쩍 장식을 단 우람하고 건장한 백인 경찰 한 명이 옆으로 다가왔다. 당황한 필자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 순간 큰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 겁에 질려 꼼짝없이 운전석 차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앉아 두들기는 유리 창문을 밑으로 내렸다. 경관은 운전면허증을 요구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손이 어찌나 벌벌 떨리는지 큰딸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다음으로 보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꼼짝 말라는 것 외에는 한국과 똑같았다. 경관은 어디를 가는 중이냐고 했고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필자가 스톱 사인에 무조건 정차하지 않아 위법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특히 동네 길가뿐만 아니라 길바닥에 스톱 사인이 군데군데 있어서 속도를 높이 낼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무어라 답변을 해야했기에.더듬거리는 영어로 답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WHAT? WHAT?”하더니 무슨 말인지 영 알아듣지를 못하고 티켓을 끊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딸아이가 울기를 시작했다. 갑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더 큰소리로 엉엉 울어대는 것이었다. 필자도 깜짝 놀랐다. 아이는 지금 배가 몹시 아프다고 배를 움켜잡았고, 미국에 처음 와서 지리도 잘 모르고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경관이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가며 특유의 제스처를 쓰면서 당황하는 눈빛이었다. 그때다 싶어 필자도 합세를 해서 도와 달라고 온몸으로 사정을 했다. 여행객이라 돈도 없다며 불쌍한 척 애원을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경관은 여전히 갸우뚱거리더니 갑자기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아주 부드럽게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왜 그러느냐면서 그만 진정하라고 다독거렸다. 경관은 단순히 필자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애써서 친절을 베풀어 이것저것 설명과 함께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는 유유히 사라져갔다. 가난한 첫 이민 살림에 몇 백 달러가 순간에 눈앞에서 날아갈 뻔했다. 그뿐이랴 보험료 할증과 더불어 교통위반 교육까지 미국은 장난이 아니었다. 필자와 큰딸은 잠시 큰 숨을 고른 후에 박장 대소를 하며 손뼉을 쳐댔다. 어찌나 큰딸이 연기를 잘했던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지만 일단은 대단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시동을 걸고 두리번 거려 스톱 사인을 주시하면서 조심조심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열려 있는 차창 문을 타고 맑고 깨끗한 5월의 타국 땅 바람이 머리를 신나게 날려주었다. 무시무시한 미국 경찰관과 대면한 한판 승부였고, 어쩌면 비겁한 수단이었지만 무섭고 떨려왔던 한 건을 요행하게도 잘 해결했다. 그것은 남의 나라, 낯 선 땅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세찬 소나기였다.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10번 프리웨이(고속도로)에는 'LA의 파란 하늘'이 새롭게 시작하는 삶위로 푸른 희망을 쏟아붓고 있었다.
- 2016-06-2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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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년기자 칼럼]나도 올챙이 적 있었는데..
- 그날도 광화문 시내로 가기 위해 성북동 뒷길을 통해 삼청터널을 향하고 있었다. 이 길은 솔직히 초보운전자나 초행길인 사람에게는 좀 힘들 수 있는 코스이다. 경사가 급한 언덕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오르내리는 길도 많으며 급커브 길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그렇지만 이 길을 수십 년째 다니고 있는 나에겐 참으로 편리하고 쾌적하게 달릴 수 있는 친숙한 길이다. 이 길의 장점은 신호등이 없어 논스톱으로 운전할 수 있고 매우 익숙해서 빠른 속도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속도를 낼 수 없어서 보니 앞쪽의 차 두 대가 길이 훤하게 뚫렸는데도 완전히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앞에 앞의 차에는 초보 운전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눈앞에 훤히 보이는 길인데 좀 심하게 조심스러운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내 입에서 “어휴, 저런 초보운전”이란 말이 나왔다. 추월하면 되겠지만 좁은 골목길이고 구불거리는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돼 맘대로 되지 않았다. 차도 흐름을 타야 하는데 너무 느리니 속이 부글부글 끌었다. 그 꼴로 성북동 뒷길에서부터 삼청터널 지나 경복궁까지 내려왔다. 그런데 그 순간 필자 머리를 때리는 생각 하나. 제 속도 오든, 느림보 속도로 오든 내려오는 시간은 5분도 차이가 나지 않는 거 아닌가? 별 차이도 안 나는 걸 초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고 화냈던 걸 생각하니 참으로 필자 자신이 부끄러웠다. 필자도 초보 시절이 분명 있었고 운전하면서 실수했던 일도 여러 번 있었다. 필자는 운전면허를 차도 없던 1978년에 따 놓았다. 장롱면허로 잠자던 면허증은 결혼 후 남편의 중후한 까만색 승용차를 만나면서 빛을 발했다. 운전 연습을 시켜주면서 부부싸움이 가장 많이 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맘씨 좋은 남편도 연수시켜주며 화를 냈다. 너무나 운전하고 싶었던 필자는 그런 걸 감수했으나 결국 남편 아닌 전문가에게 개인레슨을 받았다. 한번은 동네 골목에서 큰길로 통하는 도로로 나가는데 차들이 많아 잔뜩 긴장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조심조심 느리게 가고 있었는데 조수석의 남편이 “앞으로 빼!”라고 소리쳤다. 웬일인가 싶어 보니 오른쪽 유리창 너머로 어떤 아저씨가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남편이 앞으로 빼라니 그 말대로 앞쪽으로 전진했다. 그런데 이번엔 멈추라고 소리친다. 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간 남편이 한 아저씨를 부축하고 있었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가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한쪽 발을 쭉 내밀고 서 있었다고 한다. 내가 그 아저씨의 발등을 지그시 밟고 있었던 것이다. 거북이 운전으로 천천히 가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큰 일 날 뻔 했다. 아니 근데 그 아저씨는 왜 발을 그렇게 뻗고 있다가 남의 차바퀴에 깔렸을까? 나도 내려 보니 아저씨 슬리퍼 발등 위로 바퀴 자국이 찍혔다. 차바퀴에 깔렸으니 뼈라도 부서졌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는데 맘씨 좋게 생긴 아저씨는 무슨 운전을 그따위로 하냐는 말씀만 하고는 웃으시며 괜찮다고 하셨다. 병원에 가보자고 해도 괜찮다고 해서 약국에서 파스와 연고를 사드리고 연락처를 드렸다. 추후에 이상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당부하고 돌아오는 내내 어찌나 남편의 눈치를 보았던지 지금 생각하니 우습기만 하다. 그런저런 사고가 몇 번 생기자 필자는 안전운전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초보 시절에 그런 사고도 겪었으면서 그날 앞을 좀 가로막았다고 투덜댔으니 정말 올챙이 적 생각 못 했다. 항상 과거를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갖자고 다짐했다.
- 2016-05-1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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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휴의 Smart Aging] 소유에서 공유로, 자유로운 움직임을 위한 세컨드카 '카셰어링'
- 2011년 4월 미국의 시사 주간지 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10가지 방법’ 중 하나로 ‘공유경제(Sharing economy)’를 선정했다. 무엇인가 사고 싶은데 자주 사용하지 않을 때 누가 빌려주면 좋겠지만 비싼 물건은 친한 사이라도 잘 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물건을 빌려주는 대여 산업들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대여를 넘어 함께 나눠 쓰는 ‘공유경제’라는 개념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갖고 있지 않지만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이때는 카셰어링을 이용해보자! ◇드라이브 가고 싶은데…남편이 차를 먼저 가져갔다면 차가 한 대밖에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 하나, 드라이브를 포기한다. 방법 둘, 렌트 회사에서 자동차를 빌린다. 방법 셋, 차 공유서비스(카셰어링)를 이용한다. 첫 번째 방법은 현실적이지만 슬프다. 두 번째 방법은 렌트하는 곳까지 찾아가거나 반납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잠깐만 사용하려고 하는데 24시간을 빌려야 한다. 당연히 비용이 올라간다. 세 번째 방법은 잠깐 드라이브만 하기에 가장 적당한다. 세 번째 방법이 바로 차량 공유서비스인 카셰어링이다. 검색해보면 집 근처에 주차된 차가 있고 최소 30분도 빌릴 수 있다. 가격도 사용한 시간만큼만 내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하다. 중요한 것은 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내가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되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줄어든다. 카셰어링은 자주 차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요긴하다. 갖고 있으면 부담스러운 것 중 하나가 아마 자동차가 아닐까 싶다. 출퇴근용이 아니라면 한 달에 몇 번 운행하지 않는데도 보험료나 주차료가 꼬박꼬박 나간다. 가끔은 보물단지처럼 주차된 차를 보면 차가 주인인지, 내가 주인인지 헷갈린다. 자칫하면 짐이 되기도 하는 자동차를 카셰어링을 이용하면 소유하지 않아도 되고, 집에 차가 있어도 다른 지역에 열차를 타고 여행 갔을 때 그 지역에 있는 차를 공유해서 이용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내 집 근처 혹은 열차역에 세워진 차를 이용한다 차량공유서비스를 하는 국내 업체는 ‘그린카’, ‘쏘카’ 크게 두 곳이 있다. 서비스와 가격은 비슷하며 일단은 차가 주차된 곳이 가까워야 하기에 내 집 주변에 주차된 차가 많은 업체를 이용하는 게 좋다. ‘차를 빌려 쓴다’라고 하면 궁금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차는 어디 있지?’, ‘예약은 어떻게 하지?’, ‘열쇠는 어디서 받지?’ 등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카셰어링은 우리가 갖고 있는 스마트폰 하나로 위치 확인부터 예약까지 한 번에 가능하다. 스마트폰으로 내 주변에 차가 있는지 검색을 하면 빌릴 수 있는 차량 숫자와 주차된 위치가 나온다. 사용할 수 있는 차량을 예약할 수 있으며 예약된 차는 내 스마트폰의 스마트 키를 이용해 열고 잠근다. 요금과 주유비는 미리 입력한 카드로 자동 결제된다. 무작정 열차를 타고 여행을 가서 열차역에서 카셰어링 앱을 확인해보자. 근처에 바로 쓸 수 있는 차가 세워져 있을 것이다. 이젠 내가 필요할 때 바로 쓸 수 있어야 한다. ▽ 카셰어링으로 드라이브 가기 Ⅰ. 카셰어링 앱을 스마트폰에 다운로드 받는다. 앱을 다운받는 플레이스토어나 앱스토어에서 ‘쏘카’나 '그린카' 또는 '카셰어링'을 검색하고 설치한다. Ⅱ.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회원가입을 한다. 1. 회원가입을 눌러 이름과 기본 정보를 작성한다. 2. 운전에 필요한 운전면허증 정보를 작성한다. 3. 차량 비용과 주유비를 결제할 신용카드 정보를 작성한다. Ⅲ. 사용할 차를 예약한다. 1. 대여일과 시간, 반납일과 시간을 정한다. 2. 차를 빌리고 싶은 지역과 차량을 선택한다. (‘내 주변 쏘카 찾기’를 누르면 내가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차를 찾을 수 있다.) 3. ‘예약하기’를 누르면 차가 예약된다. Ⅳ. 이용한다. 1. 스마트폰으로 차가 주차된 곳을 확인하고 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2. ‘쏘카’ 앱에 있는 스마트키에서 ‘열림’ 버튼을 누르면 차문이 열린다. 3. 이제부터는 차를 이용할 수 있다.(차 열쇠는 핸들 옆에 고리로 연결돼 있다.) 4. 이동 중 기름이 모자랄 경우 차에 비치된 주유전용 신용카드로 기름을 넣는다. Ⅴ. 반납한다. 1. 처음 차가 있었던 곳에 그대로 차를 갖다놓는다. 2. 스마트폰에 있는 스마트키로 문을 잠그면 반납 완료. 3. 내 카드에서 이용료와 주유비가 자동으로 결제된다.
- 2015-06-0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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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사망 급증…경찰 "교육 강화"
- 경찰, 차량에 '실버마크' 부착 추진 서울 시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사망이 최근 빈발하면서 경찰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23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령운전자는 2011년 31명에서 2012년 43명, 2013년 51명으로 늘었다. 올들어 1∼2월에만 16명이 숨졌다. 이는 서울 시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가 2011년 430명, 2012년 419명, 2013년 371명 등으로 줄어드는 현상과는 대조된다. 경찰은 65세 이상 운전자가 2011년 32만2천여명에서 2012년 36만5천여명, 2013년 40만8천여명으로 증가한데 따라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사망도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경찰은 고령운전자 사고가 대부분 평일 오전 6시~오후 6시 시간대 일어나고 있으며 비사업용 승용차 사고보다 택시나 화물차 같은 사업용 차량의 발생 비율이 높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에 따라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 등을 찾아 교통안전 교육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아울러 고령 운전자임을 나타내는 '실버마크'를 자체 제작해 차량에 붙이도록 하고 사업용 차량 운전자의 법규 위반에 대해 예외 없는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경찰은 또 국토부, 서울시 등 관련 기관과 협의를 거쳐 일정 연령이 되면 운전 자격 여부를 심사하고 버스·택시 운전 교육 때 고령 운전자에 대한 특별 교육을 마련하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일본은 70세 이상의 운전자는 면허증 갱신 시 강의를 듣거나 인지 지능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 차량에 고령운전자임을 나타내는 표지를 붙여야 한다. 뉴질랜드는 80세가 되면 운전면허가 자동으로 말소되며 갱신하려면 2년마다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경찰은 "고령운전자 스스로 안전운전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고령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양보문화 조성에 시민들이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 2014-03-2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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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인생]남자 피부관리사·스마트봉운동…내 인생 2막은 도전의 연속
- 주상숙(66) 씨는 자체 개발한 스마트봉운동으로 예순이 넘은 나이에 새롭게 인생 후반전을 시작했다. 더 캐고 들어가면 그의 이력은 좀 별난 구석이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스마트봉운동을 개발한 데 이어 피부미용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어서다. 남자 피부미용사라고? 보통 ‘피부미용사’ 하면 금남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전직은 전혀 이쪽 분야와는 상관없을 것 같은 공무원이라니… 흥미진진할 것 같은 이 남자의 인생 스토리에 어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금남의 영역’이던 피부관리사에 도전 “퇴직할 무렵 몸이 안 좋았어요. 고혈압, 목 디스크, 퇴행성관절염에 소화불량, 이명, 비만도 있었고요. 그래서 은퇴 후 건강관리를 위해 헬스클럽을 다니면서 발 관리, 경락 마사지, 스포츠 마사지, 쑥뜸, 척추 교정, 다이어트 식이요법 등 여러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피부미용사 국가 공인 자격증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 이거구나’ 싶었죠.” 주 씨의 전직은 경북도청 공무원. 7급 주사보로 시작해 꼬박 30년을 채우고 6년 전, 정년퇴직을 했다. 나이 육십에 아무 준비 없이 나오고 보니 막막할 뿐이었는데 우연히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이전까지 자유업에 속하던 피부 관리 분야가 2008년 국가 자격증이 신설되면서 전문직종이 된 거예요. 새로운 일을 하고 싶던 참에 바로 도전에 나섰죠. 그 길로 문제집을 사서 피부학, 화장품학, 피부관리기기학, 공중보건학 등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필기시험을 쳤습니다.” 생소한 과목이긴 했으나 워낙 암기에 자신 있던 그는 한 번에 통과했다. 문제는 실기시험이었다. 혼자 공부하기엔 한계가 있어 피부미용학원에 등록했지만 젊은 여성 교육생들이 남자, 그것도 나이 많은 사람과 같이 실습하려 하지 않았다. 여성 마사지 모델을 구하기가 꽤 힘들었단다. “2시간에 2만원, 돈을 주면서까지 아르바이트 모델을 썼어요. 모델이 없을 때는 시중에서 구한 마네킹을 가지고 연습했습니다.” 기술을 익히는 것 외에도 어려운 점은 또 있었다. “얼굴뿐 아니라 목, 팔, 다리 마사지도 해야 하거든요. 거의 반라의 여성 모델을 처음엔 눈이 부셔 쳐다보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눈을 어디다 둘지 난감했죠, 솔직히….” 20대 젊은 여성 지원자들 사이에서 주 씨는 실기시험에 당당히 한 번에 합격했고 2009년 5월 피부미용사 면허증을 취득했다. 그동안 이 모든 일은 아내 모르게 저질렀다. 자격증을 내보이며 피부관리숍을 차리겠다고 하자, 아내가 펄쩍 뛰었단다. 남자로서 할 일이 못 된다는 거였다. 그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해 7월,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을 투자해 20평짜리 피부관리숍을 창업했다. ◆‘100세 건강 스마트봉운동’ 직접 개발 그의 가게는 꽤 성업했다. “고객의 90%가 여성이라서 숍 운영이 쉽진 않죠. 창업 초창기엔 파리만 날렸어요. 주 고객층이 여성인데 나이 많은 남자 피부관리사에게 얼굴과 몸의 마사지를 맡긴다는 게 어째 선뜻 내키진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마사지가 고객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하며 호응을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피부 관리뿐 아니라 경락마사지, 자세 교정, 식이요법 등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 해박한 지식으로 고객의 건강 문제를 해결해 줬더니 1년쯤 지나자 입소문을 탄 가게에 단골손님이 끊이지 않았다고. 주 씨의 인생 이모작은 피부미용에서 끝나지 않는다. “피부관리숍을 운영하며 건강 관련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나름대로 건강 이치를 터득하게 됐어요. 나이가 들면 몸이 굳어지고 골격과 자세가 틀어져 몸이 아프며 여러 가지 질병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죠. 내 스스로 뭉친 근육을 풀고 골격을 바로잡는 운동 방법은 없을까 연구하게 됐습니다.” 그가 개발한 일명 ‘100세 건강 스마트봉운동’. 도구와 자기 체중을 이용해 주로 누워서 하는운동이다. PVC 파이프에 보온재를 덧대고 인조가죽을 감싸 만든 지름 9cm·길이 50cm의 작은 스마트봉에 그의 원대한 꿈이 걸려 있다. “스마트봉 운동을 통해 굳은 근육은 풀리고 틀어진 목, 어깨, 등, 허리 골반 등의 골격이 바로 잡히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운동법으로 저부터 효과를 톡톡히 봤거든요. 우선 고혈압 약을 끊었고요. 고관절을 바로잡고 목 디스크도 해결했어요.” 가족, 친구들, 피부관리숍 고객에게도 권유해 봤더니 스마트봉운동 효과가 입증됐더란다. 자신감이 붙은 그는 특허 출원과 상표등록 출원을 신청했다. 또 운동법을 알리기 위해 문화센터 50곳에 강좌 개설을 제안했다. 그러나 처음 들어보는 이 운동법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러던 중 운 좋게 한 문화센터에 요가선생 ‘대타’ 자리가 났고 회를 거듭할수록 운동 효과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전해지면서 그의 강좌 수강생은 점점 더 늘어났다. 이를 계기로 주 씨에게 여러 문화센터에서 스마트봉운동 강좌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주 씨의 향후 목표는 ‘강사 양성’이다. 스마트봉운동 강사를 배출해 더 많은 사람이 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보급하고 대중화를 이루겠다는 심산이다. 최종 목표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인근 농촌에 ‘자연건강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 2014-02-05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