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엄마의 미국이민이야기] (5)LA의 파란 하늘

기사입력 2016-06-29 10:35 기사수정 2016-06-29 10:35

▲LA의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양복희 동년기자)
▲LA의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양복희 동년기자)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이민 가방을 챙겼다. 큰딸이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필자를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었나 보다. 아이는 엄마가 하루라도 빨리 동생과 아빠 곁인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고, 카이스트가 어떻게 들어간 학교인데 필자의 허락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 드디어 왔다 갔다 이산가족 생활 3년 만에 한국의 모든 생활들을 말끔히 정리했다. 물론 큰딸은 여전히 한국에 돌아와 남은 학기를 마쳐야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13시간의 지루한 비행시간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방학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 오히려 마음은 편안했다. 비행기 조그만 창문 아래로 두둥실 떠 있는 구름들이 어디론가 희망의 솜사탕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았다. 필자의 부푼 마음도 그 구름을 타고 조금씩 설레 이기 시작했다. 이제 또 새롭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막연한 환상이었다. 나름대로 각오는 했지만 그저 무덤덤하게 몸에 와 닿지는 않았다. 작은 아이와 남편은 미리 나와서 흥분된 모습으로 진한 포옹을 해주었다. 불과 6개월 만의 만남이었지만 작은 아이의 얼굴에는 엄마와 다시는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환희의 미소가 안정감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일 먼저 식구가 늘었으니 살 집부터 구했다. 같은 동네 씨미벨리에 거금 1250달러 월세인 투 베드 룸을 얻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풍의 카펫이 깔린 아담한 아파트에 미국적 정서가 배어있는 화이어 플레이스(벽난로)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꾸미기를 좋아하는 필자는 시차 적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 분위기 넘치고 아늑한 집으로 꾸며나갔다. 베란다 밖으로는 평화롭고 예쁜 동네가 나무도 제법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마치 영화 속의 전원도시 같았다.

새 식구가 된 큰딸과 필자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흥분과 함께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네 여기저기에서 자동으로 돌아가는 스프링클러가 신선한 삶의 충격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때에 맞춰 조용히 잔디밭 위로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물먹은 파란 잔디가 고개를 살포시 들어 생동하는 생명의 꽃향기로 필자를 환영해 주는듯했다.

오후쯤 되어 큰딸과 함께 남편이 있는 곳으로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언제나 남편은 아이보다 먼저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작은 아이를 기다렸었다. 그 이유는 빈집에 아이 혼자 들어오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우선 챙겨온 국제 운전면허증으로 제법 용감하게 남편을 픽업하기 위해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캘리포니아의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이 행복을 마구 실어다 주는 듯했다. 그때는 방문객도 임시 운전면허증으로 운전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 기쁜 감동도 지나치면 탈이라고 이게 웬일인가 일이 터졌다. 갑자기 머리 뒤로 삐웅삐웅 대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경찰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뒤쫓아 오고 있었다.

아뿔싸! 정신이 몽롱해지고 앞이 캄캄해졌다. 큰일 났구나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스쳐가며 하얗게 몸이 오그라졌다. 미국은 한번 걸렸다 하면 몇 백 달러는 기본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기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길가로 차를 정지 시켰다. 키가 커다랗고 번쩍번쩍 장식을 단 우람하고 건장한 백인 경찰 한 명이 옆으로 다가왔다. 당황한 필자가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 순간 큰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있으라고 했다. 겁에 질려 꼼짝없이 운전석 차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앉아 두들기는 유리 창문을 밑으로 내렸다.

경관은 운전면허증을 요구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손이 어찌나 벌벌 떨리는지 큰딸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다음으로 보험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꼼짝 말라는 것 외에는 한국과 똑같았다. 경관은 어디를 가는 중이냐고 했고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필자가 스톱 사인에 무조건 정차하지 않아 위법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특히 동네 길가뿐만 아니라 길바닥에 스톱 사인이 군데군데 있어서 속도를 높이 낼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무어라 답변을 해야했기에.더듬거리는 영어로 답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WHAT? WHAT?”하더니 무슨 말인지 영 알아듣지를 못하고 티켓을 끊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딸아이가 울기를 시작했다. 갑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더 큰소리로 엉엉 울어대는 것이었다. 필자도 깜짝 놀랐다. 아이는 지금 배가 몹시 아프다고 배를 움켜잡았고, 미국에 처음 와서 지리도 잘 모르고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경관이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가며 특유의 제스처를 쓰면서 당황하는 눈빛이었다. 그때다 싶어 필자도 합세를 해서 도와 달라고 온몸으로 사정을 했다. 여행객이라 돈도 없다며 불쌍한 척 애원을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경관은 여전히 갸우뚱거리더니 갑자기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아주 부드럽게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왜 그러느냐면서 그만 진정하라고 다독거렸다. 경관은 단순히 필자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애써서 친절을 베풀어 이것저것 설명과 함께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는 유유히 사라져갔다. 가난한 첫 이민 살림에 몇 백 달러가 순간에 눈앞에서 날아갈 뻔했다.

그뿐이랴 보험료 할증과 더불어 교통위반 교육까지 미국은 장난이 아니었다. 필자와 큰딸은 잠시 큰 숨을 고른 후에 박장 대소를 하며 손뼉을 쳐댔다. 어찌나 큰딸이 연기를 잘했던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지만 일단은 대단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시동을 걸고 두리번 거려 스톱 사인을 주시하면서 조심조심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열려 있는 차창 문을 타고 맑고 깨끗한 5월의 타국 땅 바람이 머리를 신나게 날려주었다. 무시무시한 미국 경찰관과 대면한 한판 승부였고, 어쩌면 비겁한 수단이었지만 무섭고 떨려왔던 한 건을 요행하게도 잘 해결했다. 그것은 남의 나라, 낯 선 땅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세찬 소나기였다.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10번 프리웨이(고속도로)에는 'LA의 파란 하늘'이 새롭게 시작하는 삶위로 푸른 희망을 쏟아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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