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송유재의 미술품 수집 이야기] 초개(草芥) 그리고 말[馬]
- 이재준 안네 소피 무터(Anne Sophie Mutter, 1963~ )의 바이올린 독주회 맨 앞자리에 김영태 시인과 나란히 앉아,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k.304를 들었다. 41개 바이올린 소나타 중 유일한 단조의 선율은, 봄밤을 깊은 심연의 사색에 잠기게 하였다. 연주가 끝나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휘적휘적 걸으며 잠시 하늘을 보았다. 아련한 산사나무 꽃향기 사이로 멜로디의 여운이 눈물 되어 흘렀다. 긴 계단을 내려와 차도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부군을 사별한 안네의 망부곡 같았어요. 검은 의상은 상복일 테지요.” 스스로를 ‘풀먼지 같은 존재, 어눌한 말주변’에 빗대어 초개눌인(草芥訥人)이라 자호(自號)한 분이 김영태(1936~2007) 시인이다. 비교적 작은 키에 작은 손으로 평생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홍익대 회화과에서 김환기 화백(1913~1974)의 훈도를 받았고, 재학 중 박남수 시인(1918~1994)의 추천을 거쳐 ‘사상계’잡지에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17권의 시집을 비롯하여 소묘집, 시론집, 산문집, 무용평론집 등 70여 권의 저작물은 가히 초인적인 문화 활동이란 말 이외에 더 무슨 수사가 필요할까. 일찍이 독일문화원에서의 첫 전시를 비롯해 7~8회 회화전도 열었으나 그림 수집의 인연은 아주 늦게 찾아왔다. 그의 화풍은 독특해서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프랑스산 판화지에 철필과 몽당붓을 짙은 먹이나 검은빛 잉크에 찍어 윤곽의 선을 구획하고, 유화용 까칠한 붓으로 면을 마감하는데, 서예의 갈필(渴筆)같이 선묘(線描)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림의 기초 단계인 스케치 실력이 상당하지 않고서는 강철 같은 선(線)을 뽑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07년 이른 봄 초개 선생 댁에서 ‘토슈즈 끈을 매고 있는 헤르미아’를 만났다. 셰익스피어 원작을 멘델스존이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으로 작곡했고, 이를 무용으로 공연한 발레리나의 포즈를 형상화한 빼어난 작품이다. 물 흐르듯 먹의 농담이 한 송이 꽃으로 살아 있다. 드로잉(drawing)을 선인들은 화골(畵骨)이라 일컬었다. 그리기의 단단한 뼈대가 곧 선긋기에 있음을 강조함이다. 유화나 짙은 수채화 등은 물감을 덧칠하여 잘못 그린 선들을 감출 수 있으나, 연필, 목탄, 먹, 파스텔은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는 게 매력이다. 초개 선생의 그림 속에는 일절 꾸밈이 없다. 색칠의 남용도 없다. 탄탄한 구성과 간결한 선들의 얽힘이 화면 가득 흐른다.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2)의 피아노곡을 즐겨 듣고, 모차르트 음반을 많이 소장하였다. 2007년 7월 운명하기 전까지 화랑가를 산책하고 음악회, 무용 공연장을 찾았다. 생전에 그가 즐겨 앉았던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가열 123번 좌석은 그를 추모하는 예인들에 의해 ‘초개눌인 석’으로 명명 헌정되었다. 문학과지성사는 1978년부터 문학과지성 시인선(詩人選) 시리즈로 시집을 475권째 발간해 오고 있는데, 표지에는 시인의 얼굴을 컷으로 표현하는 게 특징이 다. 이 컷은 2007년 김영태 선생이 작고하기 전까지는 김영태, 이제하 두 분이 그렸으나 이후는 이제하 선생이 혼자 그리고 있다. 컷을 그리기 전에 시집의 원고를 읽고, 시인들이 제공한 얼굴 사진을 보고 컷을 그리는데, 선이 잘 풀려 나올 때는 불과 몇 분 만에, 안 풀릴 때는 수주일이 걸린다는 말을 두 분에게서 들었다. 이제하(1937~ )는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평론가의 그 어느 장르에서도 건필을 견지하고 있는 분이다. 자작곡의 노래에 기타반주로 음반도 취입한 바 있다. 홍익대 조소과에서 미술공부를 하였으나 중도에 독창적인 창작의 길로 전환하였다. 경남 마산에서 고교시절인 1956년 ‘새벗’잡지에 동화가 당선되어 문학도의 선망이 되었고, 1959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고교 시절에는 김상옥(1920~2004), 김춘수(1922~2004), 김남조(1927~ ) 같은 시인들에게 국어수업을 받았음을 자부하기도 했다.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광화사’등의 소설로 이상문학상등을 수상하였다. 1955년 제작된 영화 ‘나의 청춘 마리안느’에서 따온 마리안느 카페를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평창동에서 시작된 카페가, 대학로로 옮겨와 시인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음악과 커피 와인 향 속에서 예술을 토론하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성악가, 대중가수, 국악인들은 주저 없이 절창을 부르고 있다. 그의 문체는 회화적이고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평가 받는다. 그의 그림 속에는 시혼(詩魂)의 알레고리가 녹아 있다. 마리안느를 드나들며 몇 점의 그림을 수집하던 중, 2008년 인사동 전시회에서 ‘말과 소년’ 드로잉을 구입하였다. 파스텔로 단숨에 그린 원숙한 드로잉이다. 늠름한 말이 실내 어느 공간에 들어와 있고, 소년이 말을 다독이고 있다. 한 여인이 옆에 앉아 있다. 이제하는 ‘도시에서 태어나야 하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 혹은 그 긴장하는 접점으로 말[馬]을 실내로 끌어들인 야생의 한 이미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제하 그림 속의 말은 자연과 야성의 모티브가 된다. 자연을 거스를 수 없으나 쉽게 동화되지도 못하는 인간들의 고뇌와 갈등을 오묘한 색상으로 표출하고 있다. 1998년에는 김영태, 이제하 2인 드로잉전이 열려 한자리에서 개성 강한 두 예술인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었다. 송나라 문장가 소동파는 당나라 대시인 왕유의 시를 보고 시중유화(詩中有畵)요, 화중유시(畵中有詩)라 하였다. 김영태, 이제하 두 예술인의 문장 속에는 격조 높은 그림이 보이고, 그림 속에서는 시와 음악이 흐른다. 이들의 고양(高揚)된 예술세계는 우리의 혼탁한 일상을 정화시킨다.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 리뷰어.
- 2016-01-12 11:09
-
- [혼자 산다는 것 PART5] 그 정도라면, 혼자 살아도 좋아
- 시중에 나도는 ‘혼자 사는 법’에 관한 어느 자기계발서는 무려 마흔여섯 가지의 과제를 제안한다. 목차가 온통 ‘~하기’로 빽빽하다. 하긴, 목록대로 하겠다고 마음먹는 것만으로 혼자 살기는 이미 성공적일지 모른다. 마흔여섯 개를 외우느라 지루할 틈이 없을 테니까. 나는 그 방대한 과제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다. 광야를 내달리는 초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히, 책의 저자도 그랬으리라 짐작한다. 만약 다 해냈다면 책 따위 쓰는 대신 가부좌를 틀고 하늘로 훨훨 올라갔을 것이다. 숙제를 내팽개친 패배감으로 뒤돌아서서 툴툴거리는 게 아니다. 마흔여섯 가지를 빠짐없이 해내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나 빡빡하다. 평생 독신을 고수하면서 ‘혼자 살기’에 나름대로 노하우를 간직한 나는 딱 세 가지를 추천한다. 그 정도라면 삶이 제법 풍성해질 테고, 그 정도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글 김유준 프리랜서 dongbackproject@gmail.com 첫 번째 : 말 걸기 “거기 어떻게 올라갔니?” 영국 런던에 갔을 때다. 처음 그곳을 찾은 사람답게 버킹엄궁전으로 갔다. 왜 있잖은가. 파리에 갔다면 루브르박물관을 봐야 하고, 베이징에 갔다면 자금성에 들러야 한다는 식의 이른바 ‘촌놈 관광 리스트’. 버킹엄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은 리스트 중에서도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필수 코스. 그곳을 놓칠 수는 없었다. 나 같은 촌놈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날따라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덩치 큰 서양인들 틈바구니에서 교대식을 구경하겠답시고 까치발을 들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린 결과, 좋은 곳을 발견했다. 2m 조금 넘는 장벽이었다. 그 위라면 멀리까지 훤히 보일 터였다. 가벼운 몸으로 두 손을 짚고 풀쩍 뛰어 벽 위에 걸터앉았다. 또래의 금발 여성이 말을 건 것은 그때였다. 어떻게 올라갔느냐고. 내 자리가 탐났던 모양이다.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두 가지다. 첫째, 영어를 아주 잘하지는 못한다. 회화 쪽은 특히 시원찮아서 대답하기가 수월치 않았다. 가녀린 여성에게 “점프!”라고 말할 수도 없고…. 둘째,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다. 머리카락만 금발이지 메릴린 먼로나 니콜 키드먼 같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긴 말 할 것 없이 손을 내밀었다. “원한다면 내 손을 잡아” 하면서. 금발 여성은 한 손으로 햇살을 가리며 잠깐 생각하더니 곧 손을 잡았다. 손에 힘을 줘 끌었고, 금발의 그녀가 금방 딸려 올라왔다. 곁에 앉고는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했다. 촌놈 리스트 ‘대화’ 편의 1번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어디서 왔니?” 금발은 스웨덴에서 왔다고 했다. 어릴 때 죽어라 외운 그곳, 수도 스톡홀름에서. 다시 말하건대 매릴린 먼로는 아니었다. 다만, 처음 본 남자 손을 잡은 게 쑥스러웠는지 얼굴을 살짝 붉히는 게 꽤 귀여웠다(이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털어놓으면 북유럽 여성답게 몸매가…). 남한에서 왔고 이름은 무엇이고 하며 주절거렸더니 금발은 ‘잉그리드’라고 이름을 밝혔다. 찬스를 놓칠쏘냐. 촌놈답게 물었다. “버그만? 잉그리드 버그만?” 잉그리드가 많이 웃었다. 그러면서 성은 요한손이라고, 영어식으로 조핸슨이라 불러도 좋다고 했다. ‘그 인연으로 금발의 잉그리드와 동서양을 넘나들며 불꽃같은 사랑을 나누다가 사랑하였으므로 헤어졌네라…’고 하면 거짓말일 게 뻔하고, 이실직고하면 꽤 오랫동안 이메일을 나눴다. 아무리 못해도 1주일에 한 번은 쓰거나 읽은 것 같다. 손꼽아 보니 5년을 그랬다. 편지가 끊긴 것은 순전히 내 탓이었다. 검은 머리 여성에 사로잡혀 금발을 잠시 잊었고, 그 틈에 왕래가 뚝 끊겨 버렸다. 돌이켜보면, 좋은 추억은 잉그리드의 한마디 말에서 비롯됐다. 어떻게 올라갔는지 물어주지 않았다면 나의 5년은 훨씬 초라하고 삭막했을 것이다. 잉그리드 또한 “어디서 왔느냐”는 나의 물음을 반겼으리라 믿는다. 장문의 영어 편지를 꼬박꼬박 보내온 것을 보면. 아, 참 좋았다. 편지를 읽을 때, 편지를 쓸 때. 읽을 때마다 반가웠고 쓸 때마다 흥분됐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 그토록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것이다. 지금 혼자 산다면, 그래서 삶이 건조하다면 산책 도중에, 여행 도중에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를 권한다. 가볍게 툭 던진 한마디가 삶을 한결 싱그럽게 만들지도 모른다. 비밀을 밝히면, 낯선 사람과 시답잖은 대화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 우리네 삶은 이미 풍성해져 있다. 물론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먼저 소재가 있어야 한다. 생뚱맞은 말을 마구잡이로 던질 수는 없는 노릇. 상황과 형편에 맞지 않는 뚱딴지급 의문문은 상대의 눈을 동그랗게 뜨게 할 뿐 미소 짓게 만들지는 못한다. 구체적 방법까지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모자란데, 어쨌든 제법 신중하고 현명해야 한다. 혹시 “뭐라는 거야?” 하면서 별 싱거운 사람 다 봤다는 식으로 무시할지도 모른다. 경험에 비춰보면 열에 한 번은 그럴 것이다. 겁낼 것은 없다. 별 쌀쌀맞은 사람 다 봤다는 식으로 역시 무시하면 된다. 언제 또 볼 거라고…. 두 번째 : 취미 살리기 주위에 변변한 취미 하나 없는 이가 뜻밖에 많은 데 종종 놀란다.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술 마시기”라고 답하는 사람도 놀랍기는 마찬가지. 술 마시기는 취미가 아니다. 숨어 있는 명주를 찾아 방방곡곡 훑는 수준이 아니라면,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은 생활일 뿐이다. “사람이 좋아 마신다”는 정도로는 취미라고 이름 붙이기가 민망하다는 뜻이다. 취미에는 나름대로 철학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뭔가를 좋아한다면 왜 좋은지 A4 용지 댓 장 안팎으로 늘어놓을 정도는 돼야 한다. 그쯤은 돼야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내 친구는 야구를 좋아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관중석에서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응원해서 방송 카메라에 잡혔을 정도다. 친구는 말한다. 야구는 팬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고. 그러므로 승패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꿈과 희망은커녕 몹쓸 인생관을 강요할 뿐이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야구는 최선을 다할 뿐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야구라고. 현실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으니 그래서 야구를 사랑한다고. 나는 친구의 야구관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듣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도 알고 있다. 그 전까지는 클래식에 일자무식이었다고 한다.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인지 ‘지고이네르바이젠의 사라사테’인지도 몰랐다니 더 할 말 필요가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봄의 제전’을 들은 뒤로, 꼼꼼히 관련 서적까지 쓸 정도가 됐다. 몇 권 팔리지는 않았지만 어디 그게 중요한가. 공교롭게도 그 남자는 나와 동년배에다가 홀로 지내는 삶의 방식까지 같은데, 그 모습이 결코 측은하지 않다. 함께 술을 마시고 그네 집에서 하룻밤 머물렀다가 아침에 들려오는 모차르트 음악 소리에 눈을 뜨면서 그만 탄성을 낮게 내지르고 말았다. 멋지네! 친구가 따라 주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좋은 게 없는데 뭐 어쩌라고? 그럴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인생관을 먼저 둘러볼 일이다. 자신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면밀히 돌아보다 보면 어울리는 뭔가가 손에 잡힐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게 취미가 되고, 그게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 세 번째 : 동아리 만들기 취미가 생겼다면 동아리 만들기도 생각해봄직하다. 나는 앞서 말한 야구 좋아하는 친구의 동아리에 몸담고 있다. 열심히 참석하는 회원은 모두 여덟. 응원하는 팀이 똑같다. 모두 잠실야구장 3루 관중석에서 만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살아가는 형태는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의사고, 어떤 이는 월급쟁이다. 방송 외주 제작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는 후배도 있다. 이 친구가 아주 걸물이다. 덕분에 프로야구 선수들과 술자리를 함께 한 적도 있다. 지금도 내게는 그 추억이 작지 않은 자랑거리다. 동아리 들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인터넷 뒤지기. 내키지 않는 분들도 많을 줄로 안다. 생면부지 사람들 앞에 나서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 나부터 그랬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거니와 겁도 많아서 함부로 마우스를 놀리지 못했다. 어린애들 노는 판에 괜히 끼어드는 것 아닌가 싶고, 혹시나 못된 사람들 만나면 어쩌나 싶고…. 우리 동아리 만드는 데 결정적인 몫을 했던 프로듀서 후배의 충고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직접 나서면 됩니다. 동아리 만드는 게 어렵다면 어렵지만, 쉽다면 또 쉽거든요. 가장 힘든 것은 사람 모으기겠지요. 취미도 맞아야 하고 시간대도 맞아야 하고 생각도 맞아야 하고…. 우선, 두세 명쯤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수월하지 않을까요? 큰 욕심 내지 말라는 거지요. 그렇게 만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모양새가 갖춰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동지들이 뭉치게 돼 있습니다.” 동아리가 생기면 뭐가 좋을까? 하나마나한 대답이겠지만 정답은 ‘여러 가지로 좋다’이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같은 것에 대해서 갑론을박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 흔하겠는가. 건전한 취미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어느 책에서 읽은 ‘친구 사귀는 데 필요한 자세’를 덧붙이면 이렇다. 일일이 따지지 말라. 이 말 저 말 옮기지 말라. 사생결단 내지 말라. 예스, 하고 받아 들여라. 육체 접촉을 자주 하라. 팔팔하게 움직여라. 구구한 변명 늘어놓지 마라. 10%는 베풀면서 살아라…. 참고가 됐으려나 모르겠다. 어찌 보면 성인군자가 되라는 말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동네 바보처럼 굴어라 싶기도 해서….
- 2015-07-15 11:12
-
- [건강한뇌, 섹시한뇌-PART2] 뇌 사용량이 높다고 천재가 될까?
- 뇌 사용량이 많으면 천재가 된다는 말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내리자면 인간은 뇌 전 영역을 골고루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용량과 천재의 상관관계는 없다는 것이 21세기 학계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참고 뇌과학여행자(김종성 저),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김병환 저), 천재들의 뇌(로베르 클라르크 저)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왔다. 아인슈타인쯤 되는 사람이 뇌의 10% 정도를 사용했고, 보통 사람은 10% 미만의 뇌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천재는 뇌를 쓰는 영역이 뭔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것은 속설에 불과하다고 한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뇌를 구성하는 신경 세포는 늘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나 그렇다고 쉬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정 부위가 특별히 활성화되는데 그 신경 세포의 비율이 5% 정도다. 다음 순간에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부위가 활성화되며 이는 순간마다 바뀌므로 뇌는 전체적으로 늘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유튜브에 에이셉사이언스(ASAPScience)를 연재 중인 미첼 모피트(Mitchell Moffit) 역시 “대부분의 영화와 SF소설은 인간이 뇌 기능의 단 10% 정도만 사용한다고 우리를 믿게 만들죠. 완전히 거짓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뇌 10% 사용설은 근거가 부족했던 과거의 이야기 정도로만 파악하면 될 듯싶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뇌를 잘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시 아인슈타인으로 돌아가 보자. 어린 시절 아인슈타인은 발육이 더디고 말도 늦었다. 그의 부모는 지진아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아인슈타인증후군’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지능이 일찍 발달한 아이들의 말하는 능력이 늦게 발달하는 것.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한 신경과학자들은 그가 말하는 것이 늦었던 것은 뇌의 비정상적인 발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해부 결과 밝혀냈다. 분석적 사고 기능이 집중된 아인슈타인의 뇌 부위가 정상적인 영역을 크게 벗어나 있었는데, 이 같은 침범을 받은 영역 가운데 하나가 일반적으로 언어기능을 통제하는 부위였다. 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아인슈타인의 뇌 속에서 평범한 사람의 머리 안에는 없는 특별한 조직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더러 천재나 보통 사람 모두 문제를 해결할 때 동일한 과정을 밟는다는 것이다. 결핍과 질환으로 파생된 천재들 탁월한 창작활동 덕택에 후세에도 여전히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들에게는 유독 정신 질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일련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천재와 정신병 환자의 뇌는 비슷하다고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천재는 수많은 정보를 자유롭게 엮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지만, 정신병 환자는 그 정보를 소화하지 못하고 혼돈 속에 산다는 점이다. 서울아산병원 김종성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결핍과 질환으로 탄생된 천재의 이야기. 글쓰기에 미친 측두엽 간질환자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는 글쓰기에 집착하는 형태를 보이는 측두엽 간질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작품을 통해 본인의 간질과 비슷한 증상을 써내려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 ‘악령’ 속에서 간질을 앓고 있는 인물을 묘사했고, 셰익스피어는 ‘오셀로’, ‘맥베드’ 등의 작품 속에서 간질을 표현하고 있다. 측두엽 간질을 앓는 사람들은 몇 가지 성격적인 특징이 있다.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관심이 높고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갖지만 간혹 안절부절못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며, 지나치게 글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많이 쓰는 현상을 ‘하이퍼그라피아’라고 하는데 측두엽 간질환자가 왜 글쓰기에 집착하는지는 명확한 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기억력이 저하돼 이를 보충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본다. 전두엽이 덜 떨어진 낙제생 ‘피카소’ 피카소는 아주 어릴 적부터 타고난 그림의 천재였다. 말도 배우기 전에 먼저 그림을 그렸다. 이미 숙달된 어른 솜씨로 말이다. 그가 맨 처음 한 말은 ‘피’였는데 연필을 뜻하는 ‘라피즈(lapiz)’를 그렇게 발음한 것이다. 그런데 피카소는 미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과목이 낙제 수준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자랑스레 말하고 다닌 그는 미술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 학생으로 기록된다. 왜 그랬을까? 전두엽의 기능이 다소 떨어져 공부는 못했지만, 오히려 후두엽의 시각중추가 발달돼 탁월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피카소는 사실화로부터 추상화로 그림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는 시각 중추는 물론 뇌의 광범위한 영역을 사용해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열등감과 청력손실 그러나 들끓는 열정 ‘베토벤’ 베토벤의 청력손실 문제도 의학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다. 두개골의 두께가 평균 0.5인치로 기록됐다는 부검 소견에 따라 파젯병의 가능성, 대뇌매독 등의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도 결핵과 장티푸스, 피부병, 간경화, 위장병 등 수많은 질환을 가지고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또 베토벤은 가난했다. 게다가 외모조차 별로였다. 심한 곱슬머리에 얼굴은 천연두를 앓아 곰보였다. 당시 음악가들은 귀족들의 경제적 후원으로 살아가야 했기에 그들의 취향을 포기한 채 궁정음악을 작곡해야만 했다. 그의 들끓는 열정은 자신의 개인적인 목소리를 내기를 원했다. 베토벤은 수많은 병과 열등감을 토대로 천재 음악가로 성장하게 됐다. 후천적 천재, 노력의 산물을 쏟아낸다 프랑스 과학저술가 로베르 클라르크(Robert Clarke)의 ‘천재들의 뇌’에 따르면 차이코프스키는 25세에 첫 작품을 내놨고, 고흐는 27세에 처음 그림을 배웠다. 고갱은 39세에 화가로 입문했으며, 프로이트는 40세가 돼서야 심리학을 접했다.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이들은 굉장히 늦은 나이에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말년에 본인의 대표작을 완성한 인물들도 주목해볼만하다. 하이든은 66세에 ‘천지창조’를 작곡했고, 소포클레스는 75세에 ‘오이디푸스 왕’을 집필했다. 괴테는 81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으며, 앵그르는 82세가 돼서야 ‘터키탕’을 그렸다. 미국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Anders Ericksen)이 펴낸 ‘케임브리지 편람’을 보면,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천재가 만들어지는 비법은 ‘70%의 땀과 29%의 좋은 환경과 가르침, 그리고 나머지 1%는 영감’이라고 말한다. 과학이나 예술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인물들의 지능지수는 보통 사람보다 약간 높은 115~130 정도라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14%에 해당하지만 실제 천재들은 이 수치에 비해 훨씬 적다. 대략 열 명중에 한두 명은 지능지수로 봤을 때 천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실상은 못 미친다는 것이다. 천재들의 특성은 지능지수와 무관하게 누구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결론이다. 천재는 반드시 남보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 태어나야 하는 게 아니라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될 수 있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없다. 이 말에 의문이 생긴다면 마지막으로 음악신동으로 불리는 모차르트를 생각해보자. 모차르트가 과연 태어날 때부터 영재였을까?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지독히 매달렸던 노력파였다. 35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600여 편이라는 걸작을 썼다. 천재라서 단숨에 성공적으로 작곡을 했을 거라는 소문과는 달리 그 역시 초작에는 고친 흔적이 많이 있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의 시간을 쏟아 부어 천재로 재탄생한 인물이었던 것. “일은 나의 주된 즐거움이다”라는 그의 고백에는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2015-04-06 13:02
-
- [독자사연] 92세 이기섭의 오스트리아 기행-③잘츠부르크
-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 잘츠부르크 7시간의 시차 탓인지 한국에서의 감기기운이 남은 탓인지 약간 피로를 느끼는 가운데 잘츠부르크 관광을 했다. 게다가 비가 계속 부슬부슬 내렸다. 좀 추웠다. 감기가 재발될까 걱정도 되었는데, 딸이 사위 잠바를 가져와 입혀줘 그런대로 따뜻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한가롭게 전기버스가 오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고향이다. 거리의 악사도 눈에 띄었고, 음악제를 소개하는 게시물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모차르트 음악도 여기저기에서 들렸던 것 같다. 먼저 들린 곳이 모차르트 박물관인데, 그가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공개하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삶과 시대적 배경, 가족 족보와 그 상세한 설명, 주고받았던 편지, 모차르트가 사용하던 방과 침대, 어린 시절 사용했던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 등의 악기와 자필 악보 등 각종 자료가 전시되고 있었다. 음악가 모차르트의 위대성을 생각한다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모차르트 가족들이 남긴 자료는 좀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이 있었는데, 가이드 설명을 들어보니, 귀족들과 서민들의 생활상을 비교 해설하고 있었다. 예컨대 모차르트가 연주했던 왕족과 귀족들의 집은 높은 천정인데 반해, 모차르트의 집은 낮은 천정이라는 것. 단지 집 자체를 통해서도 그가 부유하고 행복한 삶은 누렸던 게 아니고,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차르트 박물관 앞의 거리는 잘츠부르크의 번화가로 기념품 상점과 카페, 식당 등이 많이 있었다. 간판들이 참 예뻤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는지, 비가 오는데도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 거리의 중국 음식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중국인 관광객도 눈에 많이 띄었다. 우리나라 사람도 시끄럽다고는 하지만, 단체관광객인 중국인들도 정말 시끄러웠다. 잘츠부르크는 중세의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었는데,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았다는 대성당은 1000년의 역사를 넘어선다고 한다. 중세의 풍치 속을 걷다보니 내가 마치 중세를 살아가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잘츠부르크는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그 영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미라벨 정원, 묘지 공원, 주인공 트랩 일가족의 집과 집 앞 호수가 지금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아직도 인기가 있는지,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 버스도 눈에 띄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미라벨 정원에 갔을 때도 오전처럼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렸다. 신발은 이미 속까지 물에 다 젖어 좀 처량한 기분이었지만, 여러 가지 꽃들로 아름답게 장식된 미라벨 정원과 분수를 보며 감탄과 함께 즐거워했던 것 같다. 또 눈에 띄었던 것이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강에 놓여있는 다리에 걸려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열쇠들이었다. 왜 저렇게 엄청나게 많은 열쇠가 걸려있을까? 연인들이 소원을 비는 사랑의 열쇠라고 한다. 아마도 잘츠부르크를 방문했던 여행객들이 그들 나름대로 약속을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해보고 싶은 마음가짐이지 않았을까?
- 2014-06-24 15:12
-
- [독자사연] 92세 이기섭의 오스트리아 기행-②비엔나
-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 비엔나에 살고 있는 딸부부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은 영어로 비엔나(Viena)라고 한다. 유엔기구의 외교관인 사위와 딸이 사는 집은 비엔나 도심지역에 있었다. 움직이는데 지극히 편리했다. 지하철 3개 노선과 귀엽게 생긴 전차를 바로 집 앞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백년 되었다는 6층 건물의 상층부 2개 층에 살고 있었다. 건물의 겉은 역사 유적 같은 고풍스러운 모습이지만, 내부는 냉난방이 가동되는 최신식 인테리어였다. 6층은 널찍한 거주 공간, 옥상공간을 포함한 7층은 파티 등 여러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모임장소였다. 사위와 딸은 지극히 세심하고 정성스런 스케줄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사위가 준비한 스케줄은 처음엔 강행군, 뒤에 편안한 쉼이 있는 계획표였다. 많은 손님을 접하며 경험해 얻은 노하우 같았다. 첫 3일 동안 오스트리아 서부의 잘츠부르크와 호반지역, 스키산장 그 다음 이틀은 체코 프라하 방문, 그 다음에 딸집에서 편안히 머물며 비엔나 일원을 관광하는 스케줄이었다. 짧은 기간에 비해 기억에 남는 추억이 너무도 많지만, 특히 딸집에서의 편안함과 모차르트 고향 잘츠부르크 그리고 2박 머물렀던 스키산장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 비엔나 일원 최근 국제기관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 1위로 비엔나가 뽑혔다고 한다. 경제ㆍ환경ㆍ교육ㆍ인프라ㆍ안전 등의 모든 요소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2위는 스위스 취리히, 3위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라고 들었다. 정말로 청정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세먼지 없고 맑고 푸른 하루를 마음껏 구경 할 수 있었다. 밤하늘에는 별자리들이 두루 다 보일 정도였다. 수돗물을 거부감 없이 그대로 다 먹고 있었다. 상수원이 오스트리아 남부의 청정 수역이라고 한다. 다뉴브강 연안에 위치해 있는 음악의 도시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왕궁, 박물관, 오페라극장, 대학 등의 웅장한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관광지가 시내중심에 모여 있어 거의 도보나 지하철, 전철로 명소를 둘러볼 수 있었다.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느긋하고 우호적이고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궁전, 도심(성당 등)과 유명한 음악가 동상이 몰려있는 음악공원(마침 모차르트, 슈트라우스 음악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등을 구경했다. 그리고 오페라「카르멘」관람, 다뉴브강변의 분위기 있는 저녁식사, 경치가 아름다운 드넓은 골프장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도 했다. 지하철도 여러 번 타 보았는데, 편도1회에 2유로 10센트였고 우리나라와 같은 환승서비스는 없었다. 검표과정이 없이 그냥 타는데, 가끔 행해지는 조사에서 무임승차가 적발되면 벌금이 100유로라고 한다. 또 한국에선 많이 들었던 ‘비엔나 커피’, ‘비엔나 소세지’란 용어가 정작 비엔나에는 없다고 한다. 전통적인 비엔나 스타일로는 커피에 우유를 섞어 혼합한 ‘멜랑쉐 커피’가 있다고 한다. ◇ 쉔부른 궁전 도심의 슈테판 대성당과 함께 비엔나 관광의 양대 핵심이다. 이 궁전은 옛날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그 유명한 마리 앙투와네트가 결혼 전 15세까지 자란 곳으로도 유명하다. 총 1400실이 넘는 방 중에서 39실만 공개하고 있었다. 특히 6세 때 모차르트가 연주했다는 방이 기억에 남는다. 공개된 방의 설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한 바퀴 돌고나서 궁전 건물을 나서니 푸르디 푸른 널따란 왕궁 정원이 나왔다. 반듯반듯하게 정리 정돈된 정원과 분수, 조각상들이 한데 어우러진 멋진 전경이었다. ◇ 성 슈테판 대성당 비엔나의 상징이자 영혼인 슈테판 성당은 비엔나의 수많은 랜드마크 중 단연 첫째다.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로 하늘을 찌를 듯한 137m 높이의 웅장한 첨탑이 그 자태를 자랑한다. 343개의 계단을 오르면 발코니에서 비엔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데, 가까이 사는 딸집도 보였다. 성당 안 곳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관광객을 볼 수 있었다. 사원 앞 광장에서는 관광마차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한데, 성당 안에 있는 지하무덤은 성직자들이 아닌 역대 왕과 왕비들이 석관에 넣어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 우리나라 서울의 명동거리에 해당하는 케른트너 거리 비엔나 도심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이 케른트너 거리인데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슈테판 성당에 이르는 약 600m의 대로이다. 비엔나 최대의 번화가이자 보행자 전용도로이다. 노천 카페와 쇼핑센터, 레스토랑들이 즐비해 쇼핑과 휴식이 함께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보행자 천국의 거리로 거리 악사, 행위예술가 등의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회 티켓을 광고하는 사람들도 많아 음악의 도시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도 있었다. 관광안내소가 있어 비엔나의 커다란 지도를 얻어 여기저기를 확인하며 돌아다닐 수 있어 도심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 오페라「카르멘」관람 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집시여인 카르멘을 둘러싼 3각 애정관계를 묘사하면서, 마지막에는 카르멘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몇몇 곡은 귀에 익은 곡도 있었다. 만석인데, 입석도 많이 보였다. 음악도시답게 유학온 음악도들이 싼값에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도록 입석을 배려한다고 한다. ◇ 골프장의 환상적인 경관 딸과 며느리가 쇼핑하는 사이에, 사위의 벤츠차를 타고 간곳이 비엔나 남쪽의 골프장이었다. 캐디도 없이 혼자 또는 몇몇이 골프 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골프장의 환상적인 경관에 취했는지 기분이 편안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 2014-06-19 17:25
-
- [독자사연] 92세 이기섭의 오스트리아 기행-①
-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기행- 이기섭 오스트리아에 다녀왔다. 내 인생에 있어서 먼 해외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90세가 넘으면서 모든 것이 약간씩 귀찮아지는 경향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나 열심히 다녔던 등산도 잘 안 가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두 아들이 오스트리아 여행에 아버지를 모시고 싶다고 했다. 오스트리아에는 딸이 살고 있다. 사위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 본부가 있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에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내년에 귀국예정이다. 사위는 전부터 계속 나를 초청했었으나, 나이 탓인지 좀 귀찮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계속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 2명이 사위와 같이 여행경비를 부담하면서 정성껏 모시겠다고 하니 용기를 내어 다녀오게 되었다. 2014년 5월 1일 출국해, 5월 10일 귀국했다. 나의 건강을 염려해 기간을 좀 짧게 잡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비행기 실컷 타 보았다. 갈 때는 인천공항 출발, 이스탄불 경유, 비엔나까지 약 14시간, 돌아 올 때도 같은 노선인데 약 13시간 걸린 것 같다. 갈 때 비행기에서 제공된 비빔밥이 참 맛있었다. 성수기라 그런지 갈 때 올 때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었는데, 나처럼 백발노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역시 여행은 젊어서 다니는 거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옆자리에 앉은 아들은 비행 내내 영화나 음악 감상으로 바쁜 모습인데, 난 기기 조작도 귀찮고 해서 그냥 무료하게 앉아 있었다. 비엔나 도착 후엔 딸집에 편안히 머물면서 이곳저곳 다녀보았다. 이번 오스트리아 여행은 한마디로 음악과 함께 낭만을 마음속에 가득 품었던 여행이었다. 5월은 역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아닌가 싶다. 아주 딱 맞는 온난한 기후라 쾌적하게 지내다 왔다. ◇ 오스트리아 개관 오스트리아하면 수많은 음악가와 클래식 음악의 선율이 떠오른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브람스와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해 낸 국가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약 8백 만명 정도로, 절대 다수가 카톨릭 교도라고 한다. 모든 면에서 넉넉하고 느긋하다는 인상과 함께 검소한 느낌을 주었다. 위 말에 의하면, 오스트리아의 법은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버스가 2시간 이상 운행하는 경우는 운전자가 2명 탑승, 교대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고 한다. 안전 운전을 위한 조치라 하겠다. 오랜 세월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사는 우리와 달리 ‘안전 안전 문화’가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 동쪽 비엔나에서 서쪽 찰츠부르크행 고속도로로 사위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오스트리아의 자연경관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알프스산맥의 눈덮힌 산악지대도 많이 보였다. 동북쪽으로 평지와 완만한 경사 지대인데, 농지의 잘 정리 정돈된 모습과 곳곳에 펼쳐지는 노란 유채꽃 단지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대부분의 인구는 동쪽에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서쪽 지역은 골짜기가 깊고 높은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기저기 스키장도 많이 보였다. 서쪽으로 가면서 머물렀던 스키산장에서의 추억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2014-06-16 20:19
-
- 현악사중주 ‘노부스 콰르텟’, 인천서 연주회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차세대 솔리스트 현악 연주자들로 구성된 노부스콰르텟이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작품을 그들만의 음악적 해석으로 들려준다. 22일 오후 7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리는 연주회 ‘더 레이트 콰르텟(The Late Quartets)’에서다. 새롭고 신선하다는 뜻의 라틴어 ‘노부스’를 이름으로 삼은 현악사중주팀 노부스 콰르텟은 바이올린 김재영, 김영욱, 비올라 이승원, 첼로 문웅휘 등 4명의 솔리스트로 구성돼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을 졸업한 이들은 2011년부터 독일 뮌헨 국립음대에서 크리스토프 포펜과 하리올프 슐리히티히의 지도로 실내악 최고연주자 과정을 함께 수학하고 있다. 2007년 창단 이후 2008년 일본 오사카 콩쿠르, 2009년 리옹 콩쿠르에서 각각 3위를 차지하며 그 실력과 가능성을 입증한데 이어 2012년에는 독일 ARD 국제 콩쿠르 준우승,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 현악사중주 부문 3위와 청중상을 수상, 세계무대에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이들은 특히 지난 2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제11회 국제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현악사중주 부문 1위를 달성한 계기로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 짐멘아우어(Impresariat Simmenauer)의 전속 연주자로 활동, 유럽에서 더욱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며 지명도를 높여갈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2년만에 열리는 이번 연주회에서는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와 슈베르트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작품을 통해 무게감 있고 깊이 있는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영화 ‘A late Quartet(마지막 현악사중주)’를 연상시키는 이번 주제는 말 그대로 현악사중주의 정수라 불리울 만한 두 거장의 후기 작품을 다룬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일컬어지는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 중 12번, 그리고 극악한 난이도로 국내에서 거의 연주된 기록이 없는 슈베르트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15번을 한 무대에서 수준 높은 앙상블로 연주한다. 현악사중주의 정수를 맛보게 하는 동시에 우리 실내악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의미심장한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석 2만원. 문의 (032)420-2000 경기일보 박성훈기자 pshoon@kyeonggi.com
- 2014-03-19 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