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사용량이 많으면 천재가 된다는 말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내리자면 인간은 뇌 전 영역을 골고루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사용량과 천재의 상관관계는 없다는 것이 21세기 학계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참고 뇌과학여행자(김종성 저),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김병환 저), 천재들의 뇌(로베르 클라르크 저)
이것은 속설에 불과하다고 한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는 “뇌를 구성하는 신경 세포는 늘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나 그렇다고 쉬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일정 부위가 특별히 활성화되는데 그 신경 세포의 비율이 5% 정도다. 다음 순간에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부위가 활성화되며 이는 순간마다 바뀌므로 뇌는 전체적으로 늘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유튜브에 에이셉사이언스(ASAPScience)를 연재 중인 미첼 모피트(Mitchell Moffit) 역시 “대부분의 영화와 SF소설은 인간이 뇌 기능의 단 10% 정도만 사용한다고 우리를 믿게 만들죠. 완전히 거짓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뇌 10% 사용설은 근거가 부족했던 과거의 이야기 정도로만 파악하면 될 듯싶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뇌를 잘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시 아인슈타인으로 돌아가 보자.
어린 시절 아인슈타인은 발육이 더디고 말도 늦었다. 그의 부모는 지진아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아인슈타인증후군’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지능이 일찍 발달한 아이들의 말하는 능력이 늦게 발달하는 것.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한 신경과학자들은 그가 말하는 것이 늦었던 것은 뇌의 비정상적인 발달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해부 결과 밝혀냈다. 분석적 사고 기능이 집중된 아인슈타인의 뇌 부위가 정상적인 영역을 크게 벗어나 있었는데, 이 같은 침범을 받은 영역 가운데 하나가 일반적으로 언어기능을 통제하는 부위였다. 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아인슈타인의 뇌 속에서 평범한 사람의 머리 안에는 없는 특별한 조직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더러 천재나 보통 사람 모두 문제를 해결할 때 동일한 과정을 밟는다는 것이다.
결핍과 질환으로 파생된 천재들
탁월한 창작활동 덕택에 후세에도 여전히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들에게는 유독 정신 질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일련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천재와 정신병 환자의 뇌는 비슷하다고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천재는 수많은 정보를 자유롭게 엮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지만, 정신병 환자는 그 정보를 소화하지 못하고 혼돈 속에 산다는 점이다. 서울아산병원 김종성 교수와 함께 알아보는 결핍과 질환으로 탄생된 천재의 이야기.
도스토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는 글쓰기에 집착하는 형태를 보이는 측두엽 간질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작품을 통해 본인의 간질과 비슷한 증상을 써내려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 ‘악령’ 속에서 간질을 앓고 있는 인물을 묘사했고, 셰익스피어는 ‘오셀로’, ‘맥베드’ 등의 작품 속에서 간질을 표현하고 있다.
측두엽 간질을 앓는 사람들은 몇 가지 성격적인 특징이 있다.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관심이 높고 사람들과 끈끈한 관계를 갖지만 간혹 안절부절못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며, 지나치게 글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많이 쓰는 현상을 ‘하이퍼그라피아’라고 하는데 측두엽 간질환자가 왜 글쓰기에 집착하는지는 명확한 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기억력이 저하돼 이를 보충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본다.
피카소는 아주 어릴 적부터 타고난 그림의 천재였다. 말도 배우기 전에 먼저 그림을 그렸다. 이미 숙달된 어른 솜씨로 말이다. 그가 맨 처음 한 말은 ‘피’였는데 연필을 뜻하는 ‘라피즈(lapiz)’를 그렇게 발음한 것이다. 그런데 피카소는 미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과목이 낙제 수준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자랑스레 말하고 다닌 그는 미술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던 학생으로 기록된다. 왜 그랬을까? 전두엽의 기능이 다소 떨어져 공부는 못했지만, 오히려 후두엽의 시각중추가 발달돼 탁월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피카소는 사실화로부터 추상화로 그림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는 시각 중추는 물론 뇌의 광범위한 영역을 사용해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이라고 한다.
베토벤의 청력손실 문제도 의학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다. 두개골의 두께가 평균 0.5인치로 기록됐다는 부검 소견에 따라 파젯병의 가능성, 대뇌매독 등의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도 결핵과 장티푸스, 피부병, 간경화, 위장병 등 수많은 질환을 가지고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또 베토벤은 가난했다. 게다가 외모조차 별로였다. 심한 곱슬머리에 얼굴은 천연두를 앓아 곰보였다. 당시 음악가들은 귀족들의 경제적 후원으로 살아가야 했기에 그들의 취향을 포기한 채 궁정음악을 작곡해야만 했다. 그의 들끓는 열정은 자신의 개인적인 목소리를 내기를 원했다. 베토벤은 수많은 병과 열등감을 토대로 천재 음악가로 성장하게 됐다.
후천적 천재, 노력의 산물을 쏟아낸다
프랑스 과학저술가 로베르 클라르크(Robert Clarke)의 ‘천재들의 뇌’에 따르면 차이코프스키는 25세에 첫 작품을 내놨고, 고흐는 27세에 처음 그림을 배웠다. 고갱은 39세에 화가로 입문했으며, 프로이트는 40세가 돼서야 심리학을 접했다. 평균수명을 기준으로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이들은 굉장히 늦은 나이에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말년에 본인의 대표작을 완성한 인물들도 주목해볼만하다. 하이든은 66세에 ‘천지창조’를 작곡했고, 소포클레스는 75세에 ‘오이디푸스 왕’을 집필했다. 괴테는 81세에 ‘파우스트’를 탈고했으며, 앵그르는 82세가 돼서야 ‘터키탕’을 그렸다.
미국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Anders Ericksen)이 펴낸 ‘케임브리지 편람’을 보면,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천재가 만들어지는 비법은 ‘70%의 땀과 29%의 좋은 환경과 가르침, 그리고 나머지 1%는 영감’이라고 말한다.
천재들의 특성은 지능지수와 무관하게 누구나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결론이다. 천재는 반드시 남보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 태어나야 하는 게 아니라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될 수 있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는 없다.
이 말에 의문이 생긴다면 마지막으로 음악신동으로 불리는 모차르트를 생각해보자. 모차르트가 과연 태어날 때부터 영재였을까?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지독히 매달렸던 노력파였다. 35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600여 편이라는 걸작을 썼다. 천재라서 단숨에 성공적으로 작곡을 했을 거라는 소문과는 달리 그 역시 초작에는 고친 흔적이 많이 있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의 시간을 쏟아 부어 천재로 재탄생한 인물이었던 것. “일은 나의 주된 즐거움이다”라는 그의 고백에는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