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년 전, 50대 중반의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모였다. 그들은 앞으로 계속 퇴직하는 이들이 늘어날 텐데, 함께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40명이 뜻을 같이하기로 했고, 이름을 ‘엔슬(ENSL)’이라고 지었다. ‘Executive Network for Second Life’의 약자다. 그리고 법적 실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협동조합으로 등록했다. 엔슬협동조합의 탄생이었다. 공덕동 서울 허브센터에 있는 엔슬협동조합의 배영효 이사장, 송덕호 이사를 만나 고수들의 고민과 이념과 가치, 미래 비전을 들어봤다.
“엔슬의 활동은 인생을 향유하고, 사회에 봉사하고, 배움을 추구하는 겁니다.”
지난 4년 동안 엔슬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배영효 이사장은 엔슬은 하나의 실험이라고 밝혔다. 수십 년 동안 한 분야에 몸담고 있다가 퇴직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유익하게 시간을 보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는 우리 시대의 커다란 과제임이 분명하다. 엔슬은 엔슬의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엔슬이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선례가 되고 우리 사회에 큰 공헌을 하는 것이 되겠지요. 또한 우리의 시행착오와 경험도 앞으로 같은 길을 걸어갈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행, 지식 나눔, 재취업, 스타트업 투자까지 경험
인생을 즐기고, 봉사하고, 배운다는 차원에서 지난 4년 동안 엔슬은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했다. 여행과 답사, 지식 나눔, 재취업, 창업 멘토링과 스타트업 투자까지, 엔슬협동조합 회원들은 퇴직자들의 도전과 실수와 보람 등을 모두 겪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엔슬협동조합의 유의미한 데이터로 쌓여 있다. 예를 들어 serving, 즉 봉사활동을 봐도 그렇다. 그들의 봉사활동은 이웃돕기 같은 차원의 활동이 아니다.
“기업 경력이 30년 넘는 임원이 많다 보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활동을 벌여왔지요. 최근 창업이 붐이잖아요. 대부분의 창업자가 젊은 친구들이고요. 아이디어와 패기를 가진 창업자라 해도 네트워크나 사업 전개 방식 등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있죠. 그래서 우리 멤버들과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겁니다. 엔슬은 숙련된 전문가들이 멘토링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직 규모는 작아 실험적 단계입니다만, 회원들이 일정 금액을 모아 스타트업 투자도 하고 있고요. 창업 멤버들 중 일부는 투자 전문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그루라고 해도 끝까지 성장하고 싶어 한다
내부적으로는 투자 기업 형태의 실험도 진행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엔슬은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엔슬 조직은 위계도 없고, 멤버들이 보상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조직이 유지되느냐?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들이 있을 수 있다.
“조직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해야만 하고, 그 일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기업이라면 계층 구조 아래 급여를 주면서 일을 시키지만, 엔슬은 그런 조직하고는 다릅니다. 멤버들끼리 품앗이를 하면서 일을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의 기대도 다르고, 상대에게 강요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40명의 멤버가 4년간 활동해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엔슬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을 하자’이다. 송덕호 이사는 ‘사람과 함께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이 오는 곳’이 엔슬이라고 했다.
“퇴임 후 시간 보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죠. 집에서 쉬고 싶고, 돈이 많으니 골프나 치면서 살겠다는 사람은 엔슬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공부라든지, 성장하길 원하는 사람이 오면 됩니다. 공부와 성장은 혼자만으론 힘듭니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하니까요. 그 니즈를 아는 사람이면 되는 것입니다.”
엔슬은 녹슬지 않는다
2019년의 엔슬은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는 사람끼리 활동을 해왔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계획을 갖고 있다.
“2019년의 가장 큰 변화는 신입회원 모집입니다. 지난 4년간은 초창기 멤버들만 활동을 해왔는데 엔슬도 하나의 조직으로서 신진대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신입회원을 모집하기로 했습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상호 작용으로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품앗이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새해부터는 모든 회원이 하나 이상의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무임승차(free riding)를 줄이는 것이 이런 성격의 조직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엔슬의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 의미는 엔슬의 가치가 학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성장과 배움을 이루려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든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든지 해야죠.”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과거의 관계들로 이뤄져 있다. 과거에 어디서 태어났느냐, 학교가 어디냐, 어떤 직장을 다녔냐 등등. 특히 시니어 세대를 이루는 50~60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 모임, 직장 선후배 모임, 종교 모임, 기타 취미활동 동호회 등이 인간관계의 주된 축이다.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과거지향적 관계들인 것이다.
“내가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야 발전할 수 있죠. 예를 들어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인문학, 물리학, 블록체인 등의 내용을 처음 접하면서 사유를 넓혀가듯 말이죠.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계급장을 떼고 진짜 새로운 사람과 일을 해보자.’ 엔슬은 그렇게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물론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무조건 장밋빛 미래를 가져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좋은 일도 있겠지만 리스크도 있을 것이다. 기업에서 수십 년간 일하며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났던 베테랑 엔슬 멤버들이 그런 문제들을 인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적 관계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얻는 게 더 많으리라는 답을 내린 것이다.
당장의 욕구는 인생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
배영효 이사장에게 엔슬의 회원이 될 수도 있는 이들, 바로 곧 퇴임할 베테랑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묻자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답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무얼 어찌하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시간을 잘 쓰자’ 정도의 말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시간을 잘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Happiness is not a destination. It is a way of life(행복은 목적지가 아니고 삶의 한 방법이다)’ 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 문제없는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마다의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지향점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보통 정년이 되어 퇴직할 때가 되면 온갖 욕망들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배 이사장은 그런 욕망이 지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보통은 옷을 벗고 나올 때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욕구가 목적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욕구이지요. 억압이 풀리면 그 욕구 역시 의미가 사라져요.”
구루가 되기 위한 출발선에 선 사람들
엔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가 있다. 바로 구루(guru)다. 자신들을 구루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직장에서 오래 생활했다는 것만으로 구루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엔슬은 구루 모임이 아니라 구루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오는 자리라는 것이다. 즉, 엔슬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그 반대로, 구루로서의 첫걸음을 지향한다.
“구루가 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지식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혜가 중요하죠. 지혜로운 사람은 향후의 변화를 읽을 수 있고 그걸 품을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아는 게 아니라 변화를 마음에 품고 사물을 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 이사장이 인생의 고수야말로 진정한 구루라고 말하자, 송 이사가 받아서 좀 더 구체적으로설명했다.
“구루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봐요. 첫째는 살면서 성장하겠다는 욕구죠. 모든 사람이 성장하려 하지는 않거든요. 둘째는 분야를 정해야 합니다. 분야가 너무 많으니까요. 셋째는 과거와 무관치 않다는 것. 과거를 무시하고 구루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걸 경험해보겠다면 즐길 수는 있지만 구루가 되기란 어렵죠. 넷째는 십 년은 더 활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4년을 걸어온 엔슬의 새로운 도전은 2019년부터 전개된다. 신입회원은 최근 1~2년 내에 퇴임한 대기업 임원들을 중심으로, 2019년 1~2월에 걸쳐 모집 선발하고, 3월에는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그들이 바라는 구루의 길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찾는 고수들에게 어떤 모델로 제시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작년 7월 손웅익 동년기자와 함께 동행 취재를 했다. 공장지대에서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한 성수동 거리를 걸어 다니며 공간을 소개하는 지면이었다. 그날은 손웅익 동년기자가 서울오션아쿠아리움 부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딱 일주일 되는 날이기도 했다. 마침표를 찍지 않았더라면 회사에 앉아 있어야 할 시간.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지금까지 살아온 얘기와 살아갈 얘기를 나눴다. 40년 건축 전문가로, 전문 경영인으로 살다 은퇴한 지 1년째.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 또다시 데이트 신청을 했다.
“경희궁이요?”
손웅익 동년기자는 그곳을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들어준 공간이라고 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경성중·고등학교였으며, 해방 후 1980년까지 서울고등학교의 옛 교정이 있던 자리다. 무시험고교입학제, 소위 ‘뺑뺑이 세대’로 불리며 명문 서울고에 입학한 58년 개띠 손웅익 동년기자가 고교 시절을 보낸 장소. 본래 모습을 되찾아가면서 교정은 사라졌지만,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의 서울역사박물관 자리가 대운동장이 있던 곳입니다. 경희궁 뒤에도 작은 운동장이 더 있었어요. 나무들도 그때 그대로입니다.”
인생 방향을 설정해준 운명의 장소로 꼽은 옛 서울고등학교이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속상한 일도 많았다. 입학시험 관문 없이 명문고 대열에 무임승차한 자격미달 74년 고교 입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시험 쳐서 들어왔는데 저희는 아니잖아요. 선배들과 선생님들의 벽이 너무 높았어요.”
총동창회에 안 나오겠다는 졸업생도 많았다. 선배들 사이에서는 아예 74년 입학생을 후배로 인정하지 말자는 소리도 흘러나왔다.
“큰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제가 졸업하고 한 10년 정도 됐을 때 총동문회에서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있었어요. ”
동문들 앞에 선 손웅익 동년기자는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데도 58년 개띠생을 후배 취급할 생각이 아니라면 다른 이름을 만들어 1회 졸업생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곳에 계신 선배님들 자식 중에 뺑뺑이로 서울고등학교에 들어오면 우리한테 대하듯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장내가 잠잠해지더라고요.”
손웅익 동년기자는 이날 동문들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정리해 동문회지에 글로 실었다. 이를 계기로 선후배 간 관계가 재정립됐고 지금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이 자리에서 제가 공부했을 때가 제 인생 줄기의 큰 시작점인 것 같아서 이곳에서 뵙자고 했습니다.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제 경우는 많은 걸 깨달았어요. 학교 다닐 때 어린 마음에 반발심도 있었어요. 감성도 풍부할 때라 고목 주위에서 그림도 많이 그렸고요. 나중에 보니까 학교의 전통이나 정신이 알게 모르게 배어 있었습니다. 이곳의 추억이 벌써 40년 전인데 지금까지 맥락을 꿰뚫고 있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때 그 자리로 오고 싶었습니다.”
마침 대학 졸업 후 첫 직장도 옛 서울고가 내려다보이는 피어선 빌딩에 있었다. 은퇴하고 나서도 학교 주위는 친숙하기에 자주 찾는다. 시청역에서 덕수궁을 지나 정동길을 걸어 커피 한 잔, 차 한 잔 하며 여유를 즐긴다. 경희궁 한 바퀴 돌고. 서울역사박물관도 구경하고 말이다.
척박한 서울살이를 이기다
경주에서 태어난 손웅익 동년기자는 부모님을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서울로 올라왔다. 성수동 카페거리 동행 취재 때 중랑천변 판자촌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비가 오면 집이 떠내려가기 일쑤였고,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횃불 들고 밤새 집을 지어야 했다. 그런 생활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1 때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통장을 의무적으로 만들어서 적금을 붓도록 했어요. 그런데 돈이 없어서 못 냈다가 교우들 앞에서 선생님한테 맞은 적도 있어요. 그렇게 힘들었는데 나는 지금도 부모님이 내 대학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해주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친구들한테 자주 민폐를 끼치면서 살았어요. 그야말로 빈대생활이었죠.(웃음)”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손웅익 동년기자는 미술대학 대신 한양대학교 건축과를 택했다.
“미술 대신 선택한 건축이 저랑 잘 맞았어요. 건축은 조형물이고 예술품이지요. 미술을 선택하지 못했던 한을 건축에서 충분히 풀 수 있었으니까 제가 40년 가까이 건축을 했겠죠.”
건축과 졸업 후 돈을 잘 벌 수 있는 건설회사 대신 건축설계 사무실에 들어갔다. 건설회사의 3분의 1 수준인 월급을 받고 설계 사무실에 앉아 도면을 그렸다. 현장에서 공사하는 것보다 도면 그리는 것이 적성에 맞아서였다.
“그때 건설회사로 간 친구들이 월급을 삼십만 원쯤 받을 때였어요. 설계 사무실은 십만 원이었고요. 그래도 나는 어쨌든 간에 도면이 좋았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요. 나중에 건축사가 돼 설계 사무실을 차려 돈을 벌면 된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건축사 자격증을 따고 설계 사무실을 연 이후 일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건설 열기 덕분에 설계사 또한 바빠졌다.
“결혼하고 1년 뒤에 건축사 자격증을 따고 서른한 살에 설계 사무실을 차렸어요. 정말 그때는 일도 많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죠. 미국에도 가고 이탈리아, 스위스 종주여행도 하고요. 당시 유럽 왕복 티켓 가격이 비쌌거든요. 1990년대 초반에는 분당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건설 열기가 또 어마어마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어요. 사무실 규모도 커지고 집도 사고 정말 내 세상이었어요. 말도 못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는데 30대 초반에 경제적으로 인생 역전했던 거죠.”
신나게 이야기가 흐를 때쯤 속도가 딱 끊기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이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말문이 막히는 순간, IMF 금융위기 얘기가 이어진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았어요. 내보내봐야 직원들이 갈 데도 없잖아요. 집 담보 잡히고 그냥 모든 걸 다 쏟아 붓고요. 이곳저곳에서 돈 빌려서 회사 사무실에 다 쓸어 넣었어요. 그 빚 갚는 데만 10년 걸렸어요. 경제적으로 제로인 상태에서 퇴직을 했습니다.”
10년을 준비한 은퇴, 퇴직 1년 차
작년 5월, 서울오션아쿠아리움 부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손웅익 동년기자. 부사장이라기에 넉넉해서 그만두는구나 생각했는데 이전 상황에 대해 듣고 나니 왜 그만뒀는지가 궁금했다. 회사에서 제안도 있었고 좀 더 은퇴를 늦출 수도 있었지만 흔들림 없이 계획대로 은퇴 날짜를 잡았다.
“제가 은퇴 준비만 10년 했습니다. 자격증도 따고, 책도 내고, ‘이 정도면 부딪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강의하고 글 쓰고, 건축 일을 평생 했으니까 또 건축과 관련해서 자문도 몇 개월 했고요.”
은퇴를 위해 미술심리상담사, 노인심리상담사, 자살예방지도사 등 자격증도 땄다. 중앙일보에 건축과 관련한 글을 1년 여 게재했고, 동년기자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최근 우송정보대학교 리모델링 건축과 겸임교수로 임용돼 강의도 하고 있다.
“강의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반응도 좋고요. 참 체질적으로 나랑 잘 어울리는구나 생각합니다.(웃음) 작년 5월에 수필작가로 등단했어요. 이외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그림. 정말 그림을 다시 한 번 하고 싶어서 삽화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그리고 사진도 찍고 그게 글하고 또 연결되잖아요.”
은퇴하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시간의 속박에서 해방된 것이라고 했다. 은퇴하는 순간까지 출근시간은 늘 아침 7시에 맞춰져 있었다. 고교 시절에도, 설계 사무실을 운영할 때도, 큰 조직에서 중역을 맡아 일할 때도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일찍 출근해서 데이터 정리하고 글도 쓰고 사진도 정리하고요. 퇴근도 항상 늦었어요. 문제는 내가 정말 쉬고 싶어도 강제로 출근해야 되잖아.”
건축설계 사무실을 운영하는 후배가 자리를 내주어 출퇴근할 장소가 있기는 하지만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다. 출근하다가 멈춰 설 수도 있고 어디론가 다른 길로 빠져서 내빼도 괜찮다. 사진 찍고, 산책하고, 집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도 많이 본다고 했다.
“좋잖아요. 생각도 하고. 하여튼 뭐 여러 가지로. 과거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봐요. 글이나 그림 소재도 생각하고요. 그리고 길가다 사진도 찍어야죠. 바삐 가야 하는 사람들과 걸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니 혼자 걷습니다.”
베이비부머가 주거문화를 바꿔야 한다
그렇다고 손웅익 동년기자가 1년 동안 유유자적 한가롭게만 지낸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사업과 시니어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의견을 나누고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 중이다. 문 닫은 식당과 빈 공간들이 눈에 많이 띄어서 걱정이라고도 했다.
“베이비부머는 위로는 늙은 부모가 살아 계시고 아래로는 부양해야 할 자식들이 있습니다. 정말 조금이라도 자식들에게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국민연금에 기대기도 어렵고 퇴직연금을 들어놓은 사람도 흔치 않고요. 재산을 분배하네 마네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각도 줄이고 씀씀이도 줄여야 하고 실제로 우리가 사는 공간, 그러니까 집의 크기를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 주거 공간의 평수를 줄이고 입주자가 함께 쓰는 공간을 늘려 조금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주거로 전환하자는 운동을 현재 손웅익 동년기자가 펴나가고 있다. 자식들 출가시키고 나면 덩그러니 부부만 남아 있으니 적당한 규모의 집에서 살고 남는 돈은 현금화해서 노후자금으로 돌리자는 의미다.
“내 공간은 최소화하고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어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 수익사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시니어 카페라든지,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요리를 하고. 이런 공동 주택이 마을화가 되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러 혹은 빵을 맛보기 위해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또한 10년 넘게 연구했습니다.”
최근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로 혼란과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생각을 골똘히 해보면 나쁘지 않은 구조이기도 하다. 투자와 돈을 만드는 도구로 변질된 집의 개념을 본래의 기능으로 되돌릴 수 있는 혁신 운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액티브한 시너지를 기대한다
회사에 있으면서 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갈증이 심한지 그가 매진하는 일들이 많기도 하다. 삽화뿐만 아니라 캘리그라피에도 관심이 많아 시간이 나면 꼼꼼하게 글씨를 쓰기도 한다.
“그림을 하다 보니까. 어떤 곳에서 책을 내는데 삽화를 그려 달라는 제의도 있었어요. 내가 그린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면 SNS 활동도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합니다.”
끝에 뭐가 있는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시간을 마음껏 누려보겠다는 마음밖에 없다.
“아무 준비도 없이 불확실한 미래를 그냥 기대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이가 없다잖아요. 맞는 얘기죠. 그런데 제가 오랫동안 건축설계 사무실을 운영하고 크고 작은 기업에서 일도 해보고 했는데 그때마다 제것도 아니고요. 그냥 열심히 살다 보니까 여기에 제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핵심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관계요.”
시니어 세대로 접어들면서 좋은 점은 관계 정리에 의연해졌다는 것이다. 정리도 할 수 있고 새로운 관계도 만들 수 있다. 오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모이니 친해지기도 쉽고 다양한 경험들이 서로를 자극하고 발전시킨다는 생각도 든다.
“굉장히 희망적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어요. 동년기자단도 멋진 시니어가 모인 모임이잖아요. 앞으로 동년기자 활동도 잘해야 할 텐데요.(웃음)”
경희궁 처마 아래서 손을 내밀어 비와 마주하던 손웅익 동년기자 모습이 기억난다. 혼란스러웠던 시절. 힘들었던 세상과 맞서던 추억 속 고교생 시절 자신과 만나 듯 손 위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브라보 3기 동년기자 릴레이 인터뷰를 본지 에디터가 진행합니다.
서울시는 전철·버스·택시 대중교통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전철무임이 퍼주기 복지라며 여느 때처럼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어르신은 전철무임은커녕 오히려 요금폭탄을 맞고 있다. 국가는 2배로 전철무임을 보상해 국민혈세를 낭비하고, 어르신은 버스요금을 일반인보다 2배로 부담한다. 문제는 전철·버스요금 환승할인제를 도입하면서 어르신의 교통요금에 환승할인을 적용하지 않는 교통당국의 ‘정책오판’에서 비롯됐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대중교통은 전철·버스요금 환승할인을 시행하면서 국민복지의 꽃을 피웠다. 서울시민이 전철과 버스를 1구간 1회 환승할 경우를 보자. 전철에서 버스로 환승하면 전철 1250원, 버스 ‘0’이 찍히고, 버스에서 전철로 바꿔 타면 버스 1200원, 전철 50원이었다. 전철요금 638원, 버스요금 612원 식으로 환승할인한 1250원이 교통요금 총액이었다. 행복했던 어르신의 어제다.
65세가 되면 전철무임 ‘어르신교통카드’를 발급받는다. 교통요금이 절반 수준으로 당연히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전철요금은 ‘0’으로 버스요금은 1200원으로 찍혔다. 교통요금청구서를 받아서 자세히 살폈다. 교통요금 총액이 예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버스요금이 과거보다 2배 수준이었다. 전철요금만큼 버스요금으로 자리만 바꿨다. ‘전철무임 하나마나’다. 어르신들의 서글픈 오늘이다.
청구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612원이었던 버스요금이 일반인 승차 때보다 588원 더 많은 1200원 청구됐다. 전철무임보상액 1250원을 합하면 2450원이다. 교통요금이 일반인 2배다. 전철무임은커녕 요금폭탄이다. 어르신 교통요금을 절반 수준으로 감액한다고 했던 계획은 흔적도 없다. 밤잠을 설쳤다. ‘이게 국민복지냐?’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전철요금이 궁금해 교통당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2011년부터 7년간 일반인의 전철요금 638원보다 2배 많은 1250원을 국가예산으로 철도사업자에게 6510여 억 원 보상했다. 전철요금을 일반인처럼 638원꼴로 계산했다면 절반 수준인 3200여 억 원의 혈세를 절감할 수 있었다. 나라가 노인복지예산을 엉뚱한 곳에 ‘퍼주기’ 하는 현장이다. 이런 속도 모르고 시민은 ‘노인 전철무임 폐지하자’고 한다. ‘우리 전철 공짜 아냐’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슬픔을 참을 수 없다.
노인복지법은 어르신의 전철 전액무임을 규정했다. 하지만 현실은 근거도 없는 1200원을 버스요금이라며 먼저 징수한다. 달랑 50원 4%가 실질적 무임이다. 교통당국의 주장대로 전철·버스요금을 각각 1250원, 1200원으로 인정해보자. 현행 교통요금 1250원에서 전철 요금을 먼저 공제해야 100% 전철무임이 된다. 버스요금을 한 푼이라도 징수하면 노인복지법 위반이다. 자가당착이다. 어르신의 버스요금을 1200원이라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국가가 10년이 넘도록 어르신들을 차별하고 있다. 현행 불법 어르신 교통요금제를 폐지하고, 일반인과 동일한 전철·버스 환승할인을 적용하면 모든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된다.
교통요금 인상하기 전에 이 문제를 한시바삐 개선해야 한다.
지난 1월 17일 서울시 교통정책과 담당주무관과 함께 전철과 버스를 동행탑승하고 어르신의 전철무임 실태를 확인하였다. 세계 최고수준의 대중교통은 어르신 등에게 전철무임을 도입하여 국민복지의 꽃을 피웠다. 하지만 ‘전철·버스요금 환승할인’이 시행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어르신교통카드’에는 무임인 전철과 유료인 버스 사이에 ‘전철·버스요금 거리비례계산’ 연계기능이 없다. 이 때문에 어르신은 전철무임커녕 오히려 일반인보다 교통요금을 더 많이 부담하고 있다. 어르신 교통요금 환승할인을 일반인과 같게 해야 할 이유다.
동행확인은 버스,전철,버스 순으로 하였다. 버스승차요금 1200원, 전철 승하차 무임이었다. 다음 버스 환승 때는 버스끼리 환승할인이 되어 추가부담이 없었다. 일반인이 총요금 1250으로 이용하는 거리이다. 하지만 어르신의 교통요금은 카드에 표시된 1200원이 아니다. 어르신교통카드는 전철·버스요금 거리비례계산이 되지 않아 전철과 버스요금 각각 계산하여 전철무임 1250원을 국가에서 전철사업자에게 ‘무임보상’을 하기 때문이다. 버스요금을 합산하면 총요금은 2450원이 된다.
아르신이 일반인보다 96.0%가 많은 1200원을 더 부담하는 상황이다. 어르신교통카드에 찍히는 ‘0’의 착시로 그 속에는 국가에서 지급하는 전철무임보상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어르신도 교통정책 당국자도 이를 인식하는 경우는 드물다. 같은 조건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어르신이 일반인보다 교통요금을 더 부담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어르신이 일반인보다 초과부담하는 요금은 오롯이 교통사업자의 수입만 늘릴 뿐이다.
전철 기본요금 1250원과 버스 기본요금 1200원은 환승할인제 이전에는 교통이용 때와 결제 시의 요금이 같은 꼭 부담하여야할 ‘최저요금’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기본요금 범위 내에서 ‘정산’하여 받을 수 있는 변동하는 ‘최고요금’이다. 일반인은 총요금 2450원을 거리비례계산 후 51.0%인 1250원만 부담한다. 같은 비율로 교통요금을 비례계산하면 어르신의 전철요금은 638원, 버스요금은 612원이어야 한다. 현실은 어르신 버스기본요금 1200원을 먼저 부과한다. 결과적으로 달랑 50원만 ‘전철무임’이 된다.
환승할인제 시행 후에는 대중교통 기본요금은 이용할 때의 고정요금이 아니고, 기본요금 범위 안에서 정산하는 ‘변동’제라는 인식을 하여야 풀리는 문제다. 버스 기본요금 1200원을 고정요금으로 꼭 먼저 징수하여야 한다면, 대국민약속인 ‘전철무임’은 기본요금 1250원이 되어야 한다. 총요금에서 먼저 공제하여야 한다. 시민이 바라는 전철무임이다. 하지만 현실은 버스요금 1200원을 먼저 징수한다. 달랑 50원이 실질적 무임이다. 어느 누가 ‘전철무임’ 시대에 산다고 하겠는가. 일반 시민들은 속도 모르고 ‘퍼주기 복지’라고 한다. 언제까지 시민의 눈총을 받고 살아야겠는가.
어르신교통카드는 전철과 전철, 버스와 버스끼리는 환승할인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임전철과 유료버스 사이에는 ‘교통요금 거리비례계산’ 기능이 없다. 교통요금 환승할인제 도입 때부터 개선하였어야 할 사안이다. 어르신은 일반인보다 더 좋은 전철무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반인과 차별 없는 ‘동일한 교통요금 제도’를 원한다. 어르신에게 ‘교통요금 거리비례계산’ 기능이 부여된 카드를 사용하도록 하면 모든 문제점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다. 진정한 국민복지를 실현하는 길이다.
브라보 앙코르 라이프
우리는 잘 늙고 잘 죽기 위해 잘 살려고 한다. 그래서 인생 후반기 여러 필수교양 지침 가운데서도 비우기, 내려놓기, 나누기를 배우고 훈련하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시니어 세대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고들 이야기한다. 돈을 벌어야 하고 모아야 하고 자녀들에게 해주어야 하는 강박 속에서 성실하게 노력하고 희생하며 살았다고 하는 그 공로를 돌이켜보면 사실 나와 가족을 위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다른 사람 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재능이나 금전을 기부하고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기부’문화에 익숙지 않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다. 미국의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같은 사람들은 미국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치고, 삼성 같은 대기업도 사회공헌 차원에서 기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개인이 기부를 하는 일은 아주 드믄 일이다. 기부 DNA가 아예 없는 사람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보통의 사람들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기부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쉽다.
퇴직을 하고 일정한 가처분소득 없이 사는 마당에 기부하고 싶어도 형편이 그렇다. 대부분 이런 생각일 것이다. 퇴직 후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든지, 연금이나 일정 자산소득이 있든지 간에 어느 정도의 기간이 될지 불투명한 자신의 노후를 생각하면 불안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향후 30~40년을 위한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보통의 시니어라면 말이다. 얼마가 있어야 안심이 될까?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소유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행복하지 않다. 단언컨대.
인생 후반기 시니어의 차이 나는 경영 노하우는 빼기와 나누기다. 인생 후반기야말로 기부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다. ‘소득의 일정 부분을 기부한다’는 말 대신 소비하는 금액의 일정 부분을 줄이고 빼서 기부금 명목으로 지출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얼마큼씩 빼기를 할 것인가. 물질적으로 나를 비워가는 과정 또한 나를 내려놓는 일 이상으로 중요하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매달 생활비에서 10퍼센트 혹은 13퍼센트는 떼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나 공익을 위해 애쓰는 단체에 기꺼이 기부하고 나누어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기는 순간 삶의 가치는 고양된다.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긍심은 물론, 줌으로써 누리는 행복감은 나만을 위한 소비가 주는 행복감보다 훨씬 큰 의미를 준다. 신기하게도 기부는 투자의 효과로 내게 어떤 형태로든 돌아온다는 것이다.
기부하는 일에 어린이, 어른, 노인을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에게 기부문화가 그리 친숙하지 않다는 점에서 각 세대에 맞는 기부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공감할 만한 동기부여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몇 달 전에 지인들 몇몇과 다음과 같은 궁리를 해봤다.
당신이 누구이든 기부할 돈도 재능도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시라. 우리나라 국민은 만 65세가 되면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다. 필자도 2년 내에 소위 지공족에 편입된다. 웃음도 나고 머쓱한 기분도 드는 게 사실이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지하철 무임승차로 한 달에 적어도 4만여 원의 지하철 교통비가 절약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외출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2만원 정도는 절약될 것으로 짐작된다. 이거야말로 공돈인데 이럴 때 과감하게 월 2만원을 기부해보라. 이름하여 지공펀딩 캠페인을 벌여보자고 5명의 예비 지공족이 모여 논의했다. 지하철이 공짜라는 희화적 의미의 ‘지공’을 ‘지공(至公)’이라 표기하고 공익을 위해 기금조성을 하기로 한 것이다. 열 명, 스무 명, 백 명, 천 명, 그 이상으로 지공족이 참여한다면 그야말로 지공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고 시니어 문화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시금석이 될 만하다.
성실하게 일하고 절약하며 살아온 세월은 어디로 가고 무임승차족, 사회비용부담 세대로 비하되고 있는 지금의 시니어에게 비타민 같은 기회로서 기꺼이 동참하고 싶은 제안으로 받아들여지길 기대하고 있다. 공개하기도 전에 벌써 동참의 뜻을 보내온 사람이 30여 명이다. ‘기부한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지만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이도 없는데 누구한테 기부하라는 거냐’ 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감할 만한 명분이 있고 믿을 만한 단체라면 나도 기꺼이 지공 멤버가 되어 기부자가 되겠다는 의미다. 본격적으로 이런 운동을 전개하면 ‘나도 기부를 한다’는 자부심과 즐거움에 행복해하는 시니어가 많아지리라 본다. 이 운동의 목적이나 목표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기에는 적합한 지면이 아니어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단, 기부의 마음만 있으면 기부할 돈과 재능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설사 기부를 하고자 해도 누굴 믿고 기부를 하겠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작금의 사회 분위기가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도 사실이다. 어금니아빠 사건, 새희망의 씨앗 전화사기 사건, 미르재단에 이르기까지 최근 1년 사이에 부패한 재단, 기부금 횡령사건이 줄을 이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래서 진정 목적에 잘 쓰이고 있는지 믿을 수 없어 더 이상 기부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정적 대응이 해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세먼지가 가득하고 탄소 배출이 증가해도 우리는 숨을 쉰다. 숨쉬기에 필요한 산소는 여전히 공기 중에 존재한다. 기부는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부문화가 성숙해가면서 스스로 사회의 자정 장치까지도 만들어낼 것으로 믿는다.
후반기, 다시 시작하되 자장격지(自將擊之)의 자세로 한다. 과식하지 않을 줄도 알고 내 몸의 상태에 맞춰 행동을 조심할 줄도 안다. 그러지 않으면 탈이 나니까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과히 나쁘지 않다. ‘스스로 가지려고만 하지 않고 주려고 한다. 더하기, 곱하기보다 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 이런 현상은 연륜의 지혜가 주는 자정기능이고 자기균형 효과라 생각한다. 나이에 걸맞게 노쇠해가는 것이 노익장을 과시하고 노욕을 부리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보기에 자연스럽다. 몸도 마음도 물질도 스스로 비워야 하고 빼야 하는 줄 알게 되니 기쁘다. 나와 내 자녀에게만 주는 것보다 이 사회의 더 많은 사람, 더 필요로 하는 곳에 주면 내가 실제로 준 것보다 더 큰 몫으로 가치가 증대된다. 기부는 소비가 아니라 투자이고 생산이다. 기부하는 사람은 투자자이고 보람과 기쁨이라는 배당을 받는다. 우리 사회의 명예로운 주주가 되는 것이다.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일에 시니어가 동참하는 것이다.
평범한 당신이 죽기 전에 기부의 즐거움을 누리고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에 있을까.
버스나 기차를 탈 때 운임을 내지 않고 타면 무임승차가 된다. 그러나 법적으로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유공자이거나 지하철의 경우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해당된다. 특히 지하철의 적자 운운하면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무임승차를 문제 삼으며 신분당선의 경우 독자적으로 경로무임승차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단순히 노인들이 젊은이 등에 빨대를 꼽고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우리나라를 이만큼 잘 살게 한 이면에는 지금의 노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있다. 그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대가를 다 받지 못하고 나라에 기여한 지분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지금의 노인들은 집 주인이라 볼 수 있고 지금의 젊은 세대는 노인들이 이루어 놓은 집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무임승차제도 폐지는 집주인과 세든 사람이 똑같이 집의 사용료를 부담하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집주인은 세금은 낼지언정 월세는 내지 않고 오히려 세든 사람으로 부터 월세를 받고 있다. 지하철 운임은 지하철의 이용료를 부담하는 월세와 같다.
이미 운행하고 있는 지하철에 노인 몇 사람이 더 탔다고 운행비용이 더 들지는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지하철에 몇 사람이 더 타면 열차의 하중이 증가하여 소비 전력이 늘어날 수도 있고 전산처리에 인원이 많아 다소의 비용증가도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태평양에 누가 침 한번 뱉었다고 태평양 오염 운운하는 것과 같다.
노인의 무임승차를 논하기 전에 지하철 부정승차를 먼저 막아야 한다. 부정승차란 법적으로 요금을 정당히 내어야할 사람이 내지 않고 승차하는 것을 말하고 범죄 행위다. 통계에 의하면 지하철 부정승차가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부정승차 단속 건수는 2014년 3만2108건에서 2015년 4만2289건, 지난해 4만2814건으로 급증했다. 올 들어서는 7월까지만 2만8917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숫자는 적발된 건수일 뿐이고 실제 적발되지 않고 부정 승차하는 사람은 더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부정 승차하는 사람을 종종 목격한다. 실제 목격해도 어디로 신고할지도 모른다. 결과로 시민이 적발하여 신고하는 경우는 아직은 없다고 본다.
2015년부터 게이트 할인 표시등이 어린이, 청소년, 어르신, 장애인·유공자 등 네 종류로 표시되도록 해 부정승차 하는 사람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설비를 했다고 서울교통공사가 말했다. 적발의지가 있고 인력만 있으면 간단히 적발할 수 있다. 부정승차로 적발되면 부정승차 구간의 1회권 운임과 그 운임의 30배를 부가금으로 내야 한다. 1회 기본 운임이 1250원이기 때문에 부가금은 최소 3만8750원이다. 부정승차자로 적발되고도 부가금 납부를 거부하면 형사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업무는 역무원이 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단속할 역무원이 항시 보이지 않는다. 한강에 사람이 빠져 죽었다고 한강을 다 덮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정승차를 찾아내기 위해 역마다 노선마다 정규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지하철공사의 고민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해결책은 경제적으로 빈곤하여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비교적 신체 건강한 노인들을 감시용 인원으로 활용하는 방인이 검토되어야 한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것이 옳다. 일을 하면 신체가 건강하여 의료비가 절감된다. 부정승차자의 감소를 통해 지하철 재정을 튼튼히 하고 부수적으로 의료비 절감을 가져온다면 이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대중교통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전철무임과 환승할인제를 시행하여 복지사회의 꽃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전철무임 교통카드’에 전철과 버스의 환승할인 기능이 없다. 유료인 버스에서 무료인 전철로 갈아타거나, 전철에서 버스로 바꿔 타면 전철구간에서 ‘블랙 홀’이 생겨서다. 환승할인 안 된 전철무임 교통카드를 폐지해야 한다.
서울의 경우 일반인 교통카드는 첫 승차 때 전철은 1250원, 버스는 1200원 기본요금이 찍히고, 하차 시 차액요금을 정산한다. 버스로 환승하면 0으로 표시하고 하차 때 차액을 정산한다. 버스에서 전철로 환승하면 추가요금 50원이 표시되고 내릴 때 정산한다. 환승할 때마다 똑 같이 적용한다. 하지만 어르신교통카드는 전혀 다르다. 전철은 승ㆍ하차 시 모두 0으로 표시된다. 버스로 갈아타면 기본요금 1200원이 찍히고 내릴 때 추가요금을 정산한다. 버스에서 전철을 바꿔 타면 버스요금만 정산하고 전철은 0원이다.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1ㆍ2회 환승의 경우를 살피자. 버스에서 전철로 환승하거나 반대로 갈아타는 1회 환승의 경우, 전철요금 1250원을 어르신은 ‘전철무임’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버스요금 내면 실제 무임은 겨우 50원이다. 교통요금이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르신들은 경험하고 있다. ‘전철무임 하나마나’다.
버스 타고 전철로 환승하였다가 다시 버스로 갈아타는 2회 환승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일반인은 전철 550원, 버스 1000원 비례계산 되어 총액 1,550원 정도로 이용하는 거리이다. 하지만 어르신은 일반인보다 140.0%, 1400원 많은 버스요금 2400원을 부담한다. 많은 어르신은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일반인 교통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한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어서 ‘고령사회’가 되었다. 이른바 어르신이 되었다. 전철무임을 ‘퍼주기 복지’라고 일부에서 주장하면서 이의 폐지를 부르짖기도 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르다. 전철무임커녕 오히려 요금폭탄을 맞고 있다. 어르신들은 ‘이게 어르신복지냐’고 한탄한다.
위에서 살핀 1회 환승의 경우를 보자. 일반인은 전철 650원 버스 600원 총요금 1250원 정도다. 하지만 어르신의 전철요금 1250원은 국가가 운송사업자에게 예산으로 보상한다. 일반인보다 48.0% 600원 많다. 2회 환승 때는 일반인은 전철 550원, 버스 1,000원 총액 1550여원 정도로 이용하는 거리이다. 하지만 어르신은 일반인보다 56.0% 700원 많은 전철요금 1250원은 국가가 운송사업자에게 예산으로 보상한다. 운송사업자의 부당 운송수입이다.
국토교통부는 한국철도공사에 전철무임 보상액으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 동안 5038억3천2백만 원을 지급하였다고 2016년 12월 24일, 2017년 9월 25일 필자에게 정보공개 하였다. 매년평균 19.02%, 153억2천9백만 원씩 증가하였다. 이런 추세라면 2021년에는 그 금액이 1조1849억9천4백만 원에 이른다. 전국을 생각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된다.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
어르신에게 과다 계산된 전철요금 1회 환승 시 600원과 2회 환승 때 700원은 전철사업자에게, 버스요금 1회 환승 때 600원과 2회 환승 시 1400원은 오롯이 버스사업자의 운송수입만 늘릴 뿐이다. 일반인과 같은 조건으로 교통시설을 이용하는 어르신이 일반인보다 교통요금을 더 부담하고 전철무임보상을 과다하게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환승할인이 되지 않는 전철무임 교통카드를 하루 빨리 폐지하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발표한 노인 관련 공약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피부로 느끼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선 지난 4월 발표된 ‘어르신을 위한 문재인의 9가지 약속’이라는 공약을 보면 기초연금 매월 30만원으로 인상, 치매 환자 국가 관리, 틀니 임플란트 본인 부담금 절반으로 절감, 찾아가는 건강 서비스, 보청기 비용 보험 확대, 경로당을 생활복지관으로 리모델링, 농산어촌에 100원 택시 도입, 어르신 일자리 확대 및 수당 인상, 독거노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제공 등 9가지다.
일단 개인적으로는 해당사항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기초연금은 하위 소득 70%여야 하는데 거기에 못 낀다. 치매는 아직 염려할 나이가 아니다. 틀니보다는 임플란트가 더 효과적이니 틀니는 아예 해당 없고 임플란트는 아직 대상 치아가 없다. 찾아가는 건강 서비스는 스스로 정기검진을 받고 있고 온다고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집을 비울 때가 대부분이라 역시 해당 사항이 없다. 보청기도 아직 해당이 안 된다. 경로당에 갈 나이도 아니다. 농산어촌 100원 택시는 도시민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어르신 일자리 확대 및 수당 인상은 해당이 되지만 아직 변화가 없고 두고 볼 일이다. 독거노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제공도 아직은 이르다. 그러므로 필자에게는 대부분 해당이 안 되는 정책들이다.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실제 적용하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다 돈이 들어가야 해결되는 문제인데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도 숙제다. 이렇게 노인복지를 확대하자는 데 한편으로는 지하철 노선이 적자라고 애꿎게 노인 무임승차가 그 원인이라며 경로우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선,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은 호스피스 재택 방문 서비스, 독거노인 피부양자 제도 등의 개선이다. 빠르게 진전되는 것 같다. 노인일자리는 현재 지킴이, 도우미, 돌봄이 범주에서 벗어나 직무 중심의 민간 일자리 확보가 바람직하다. 방향도 복지와 함께 직무 중심의 시장형 노인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국회 예산정책처 발표로 작년 노인 일자리 사업의 67.7%가 공익활동인데 보수가 12년째 월 20만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민간 분야 일거리 비중은 10%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 포털 사이트 회사에서 노인들을 고용해서 운영하는 하는 인터넷 회사는 매출이 급증했다는 등의 좋은 사례를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급격히 인상된 최저 임금제의 역습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아파트 경비원 감원 등도 문제로 보인다.
새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로 ‘인생 3모작’을 들고 나온 것은 귀 기울일 만하다. 인생 2모작은 이미 광범위하게 퇴직 후의 인생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인생 3모작은 새로 나온 용어로 65세 이상의 노인도 생산 가능 인구의 범주로 보고 지원하겠다는 정책이다. 50~60대를 ‘신중년’으로 보고 취업성공 패키지의 사각지대에 있던 중위소득 초과 ‘신중년’을 대상으로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중년 인생 3모작 패키지’를 내년부터 신설한다고 한다. 노인도 실업수당의 대상이 되며 노인을 고용할 경우 장려금도 지급한다고 한다.
사회공헌에서 재능기부도 자원봉사의 영역으로 포함하는 등 관련법을 개정하고, 정부로부터 받는 소액의 활동수당도 사회공헌형 일자리와 공익형 노인일자리를 확대하기로 했다. 공익형 노인일자리 수당은 올해 22만원에서 2020년 최대 40만원까지 높인다고 한다.
주민센터에 갔다.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카드’를 받기 위해서였다. 다른 동네에서는 한 달 전에 일부러 연락을 해줬다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시간을 내어 찾아갔다. 물론 생일이 되려면 아직 일주일이 남은 상황이었다. 이 카드는 65세 생일 때부터 사용할 수 있다. 담당 여직원이 간단한 설명을 해줬다. 집에 와서 읽어보니 ‘수도권’이라고 되어 있어 수도권 어디를 말하는지 알아보니 서울에서 출발하는 모든 전철을 의미했다. 서울-춘천, 서울-온양, 서울-인천이 모두 가능한 것이다.
어르신 교통카드의 의미는 크다. ‘공인된 노인’임을 입증해주는 카드다. 시니어들이 고궁이나 박물관 등에 입장할 때 어르신 카드가 있으면 무료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어르신 카드가 없을 때는 전철을 탔을 때 경로석에 앉기가 어색했다.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모로만 보면 노인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보이는 시니어들이 있다. 자격이 있는데도 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르신 카드가 있으니 경로 대우를 받아도 떳떳하다.
무임승차하는 인원이 많아 전철 운영이 적자라는 얘기가 있다. 현재 약 20% 정도 적자라는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급격하게 늘면 2030년에는 30%, 2050년에는 50% 정도가 무임승차 비율이 된다고 한다. 이미 온양온천역은 50%가 고령자 무임승차란다. 서울에서는 제기동의 무임승차가 50%가 넘고 가좌, 동묘 앞 등은 40%나 된다. 물론 무임승차는 노인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어린이나 장애인 등도 포함된다. 그래서 노인 연령을 70세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당장 무임승차를 없애면 연간 3000억원 이상을 수입으로 잡을 수 있다는데 이는 단순 계산이다. 전철은 어차피 그 시간에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출발한다. 또 무임승차를 할 수 있기에 온양온천이나 춘천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거기까지 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일단 노인들이 움직이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 또 노인들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필자의 경우는 정기권을 이용했으므로 한 달 전철 비용이 5만5000원 가량 들었다. 물론 버스도 타고 서울을 벗어날 때는 정기권 통용이 안 되므로 별도로 티머니 카드를 썼다. 정기권은 한 달 60회를 초과한 경우도 있어 새로 30일을 찍어야 하니 한 달의 개념이 앞당겨지기도 했다. 이 비용도 무시하지 못한다. 앞으로 어르신 카드를 이용하면 1년에 66만원이 절약되는 것이다. 영화관에서도 어르신 카드로 할인이 되니 앞으로 영화관에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정상 가격은 9000원, 경로우대 가격은 6000원이다.
주민센터에 간 김에 기초연금 대상자 여부도 알아봤다. 1인 기준 한 달 소득이 119만원 이하여야 하는데 국민연금은 그 이하이지만, 부동산 전세금을 수입으로 잡아 계산하니 훌쩍 넘어 버렸다. 저축액도 법정 이자율 수입으로 계산하는 모양이다. 물론 해당이 안 되는지는 알고 있었다.
고령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많이 낸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몸이 굼뜨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반응속도가 느려 사고대처에 신속하지 못하다는 점도 인정한다. 차량은 물 흐르듯 흐름을 타야하는데 노인 특유의 망설임으로 자신이 직접 사고를 내지는 않지만 우물쭈물하며 갈까 말까 주춤주춤 하다가 뒤 따라오는 차량의 사고를 유발시킨다는 보도도 있다. 사고 통계를 봐도 고령자가 확실히 교통사고를 많이 낸다. 더구나 수명100세 시대니 고령자가 증가하는 것이 당연하고 행정당국에서도 제도적 방지장치를 강구하는 것이 옳다.
고령자들이 스스로 운전을 하지 않으면 좋다. 일본은 나이 들어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대중 교통비를 지원하면서 스스로 운전을 그만두게 하는 간접적 유인책을 쓴다. 우리나라는 고령자의 면허갱신기간을 짧게 하고 시력이나 사지 운동능력을 검사하여 부적합한 경우 운전면허를 갱신해 주지 않는 강제적 방법을 택한다. 너무 쉬운 행정편의 주의적 발상이다. 이런 방법은 전기가 부족하면 전기요금을 올려서 간단히 해결하려는 방법과 같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부자는 끄떡도 하지 않지만 가난한 서민은 에어컨이 있어도 켜지 못하고 부채를 들도록 강요하는 방법이다. 미국에서는 스스로 알아서 전기를 꺼주는 사람에게 오히려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택한다.
사고의 위험을 알면서도 고령자가 운전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심시숙고 할 필요가 있다. 방송에서 98세에 운전면허를 취득한 102세의 할아버지가 소개 되었다. 사회자가 그 나이에 왜 운전면허를 취득할 생각을 했느냐고 물어보니 고령의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하고 아내 대신 장터에 가서 생활필수품도 구입하고 은행 업무도 보려면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해체되고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하는 셀프부양의 시대다. 자식이나 이웃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세상인 점을 이해하면 고령자가 자동차를 운전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는 이제 더 이상 기계장비가 아니고 전자장비다. 차선이탈 경고시스템도 있고 전방충돌 경고시스템도 개발되어있다. 사가지대 경고는 물론 주차보조시스템도 있다. 사람은 실수를 해도 기계는 실수란 없다. 돈을 더 주면 각종안전장치를 자동차에 추가 할 수 있다. 멀지 않아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도 도로에 등장 할 것으로 이미 예고되어있다.
고령자의 자동차는 필요 안전장치를 달도록 의무화해야한다. 추가 비용의 일부를 국가든 자동차 회사든 어느 쪽에서 부담해 주면 간단히 해결된다. 후진국처럼 강제로 못하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원하면 하도록 해주고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선진국이다.
미국의 빈번한 총기사고를 보고 우리나라처럼 총기소지를 불법화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을 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총기소지를 불법화 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인들이 총기를 갖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고 이들의 자유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총기를 갖고 있지만 스스로가 총기사용을 엄격하게 제어하기 때문에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 의한 총기사고는 거의 없다.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의 힘이다.
지금의 고령화세대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를 이만큼 잘 사는 나라로 발전시킨 공이 있는 세대다. 그들이 젊은 시절에 국가에 낸 세금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건물에 세를 산다고 볼 수도 있다. 노년이 행복하여야 인생이 행복하다. 고령자에게 지하철 무임승차를 가능하게 하여 움직이도록 유도하여 고령자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국민의료보험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임플란트 시술에 의료보험을 적용해 주거나 무료 예방접종 등 지원정책이 무수히 많다. 고령 운전자에 대해 지원을 못해 줄 명분은 희박하다. 소요비용 또한 별 것 아니다. 의지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긍정적인 검토를 희망한다.
*동년기자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