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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적 어려움 딛고, 미술관 문턱 낮출 것"
- 산속등대 복합문화공간은 미술 작품 감상과 재생건축 공간의 멋스러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재생 공간의 태와 결을 음미하기에 충분하다. 보잘것없는 폐공장을 볼 것 많은 문화 공간으로 변신시켰다는 점에서는 진취적 생각이 집적된 곳이다. 설립자이자 운영 대표인 원태연(42) 씨는 기업인이다. 그는 다년간 마땅한 터를 찾다가 이곳을 점찍었다. 그가 주도해 마무리한 재생 작업은 호평을 받았다. 개관한 해인 2019년에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은 것. 하지만 개관 이후 2년여의 시간은 시련의 연속이었단다. “개관 넉 달 뒤 코로나19가 들이닥치면서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난 셈이다. 휴관이 잦았고, 문을 열더라도 찾아오는 이가 드물어 힘겨웠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결 단단한 정신으로 기초를 다질 수 있었던 거다.” 사람들은 흔히 미술관 문턱이 높을 것으로 예단한다. 미술 감상을 지루한 일로 여기기도. 사실 신바람 날 수도 있는 게 미술관인데. “그간의 경험을 통해 미술관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사업인지 충분히 실감했다. 관람객이 오지 않으면 무엇보다 비용 문제가 발생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국내 복합문화공간이나 사립미술관들이 흔히 난항을 겪더라. “나름의 사전 리서치를 했는데 다들 말렸다. 애초 타깃은 미술 작품 향유 욕구를 가진 사람들, 즉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들이자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미술관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라는 얘기였다.” 어떻게 운영비 문제를 해소하고 있나? “미술관만 믿어서는 안 되기에 처음부터 전략을 달리했다. 사람들이 쉽게 찾아들어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아이들 대상의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적극 가동해 운용의 묘를 살리는 걸 기본 방안으로 삼은 것이다. 즉 미술관, 카페, 문화 체험 프로그램, 이 세 가지에 동등한 무게를 두고 지속성을 도모해왔다. 이는 상당히 유효한 대안이라 판단한다.” 미술관을 선두에 두고 레이스를 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더라는 얘기다. 미술관을 주력으로 삼고자 했던 의도에 스스로 제동을 건 것 같다. 미술관 운영이 어렵다지만 똑똑한 콘셉트를 가동할 경우엔 다르다. 미술관을 찾아주지 않는다고 탓할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전시 작품이 재미있고 품질이 뛰어나면 달려오지 않을까? “악조건 속에서도 지난 2년간 다수의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질적으로 좋은 전시회도 썰렁하더라. 작품의 퀄리티 여부를 중시하는 관람객은 전체의 10% 미만에 불과한 것 같았다. 좋은 기획전에 즉각 호응이 나타나는 추세를 감지했다면 목숨 걸고 좋은 전시회 기획에 나섰을 것이다. 미술관 운영상의 역량 강화, 내부 정비의 필요성도 물론 외면할 수 없는 숙제이긴 하다. 지금은 숨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상상력을 돋우는 재생 공간의 미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은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국내 미술관 문화의 열악성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를 깰 책임은 미술관 운영자들에게도 있을 테지만.
- 2022-01-2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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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허를 딛고 일어선 산속등대 복합문화공간
- 버려진 공장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흉물로 나동그라진 과거의 제지공장을 볼 것 많은 문화 공간으로 되살려냈으니까. 전북 완주군 소양면 야산 아래에 있는 산속등대 복합문화공간(이하 ‘산속등대’)이다. 낡고 닳은 폐허를 딛고 일어선 공간이다. 일컬어 ‘재생건축 공간’이다. 재생건축은 요즘 건축계의 화두다. 여기저기서 유행하고 있다.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 속에 마침내 쓸모를 잃고 덧없는 폐허로 붕괴한 공간에 문화를, 예술을, 그리고 꿈과 상상을 부여하는 일. 이는 오롯이 값지다. 이미 스러진 꽃을 되살려내는 것처럼 심지어 몽환적이다. ‘산속등대’의 부지는 8000여 평에 달한다. 이 너른 부지 안에 폐허를 자양으로 부활한 물상과 디자인 요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즐비하다. 중심축은 미술관이다. 관점과 시야를 확장할 경우 공간 전체가 미술이거나 미술관이다. 폐허의 뒤숭숭함과 허무를 오브제로 삼아 예술을 입혔으니까. 과거의 웅장하고 단단했던 것들이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지면서 남긴 잔해와 잔재들을 자못 날랜 솜씨로 반죽해 내향적 울림이 있는 공간을 구현했다. 신축 건물은 도저히 얻어 걸칠 수 없는 시간의 족적과 결이 아른거리는 게 아닌가. 지나간 것들, 흘러간 것들, 너절한 것들, 시든 것들에서도 이렇게 잘만 끄집어내면 자본만으로 빚어낼 수 없는 내면성이 우러나온다. 재생 공간만이 발할 수 있는 언어와 표정이 고여 있으니 재생이란 말 그대로 창의의 산물이자 생성의 동의어다. 재생한 건축과 공간에 들어선 미술관은 이제 낯설지 않다. 국내 곳곳에 등장했으니까. 해외에서는 더욱 활성화됐다. 1986년에 개관한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은 수명을 다한 철도역을 재생해 입주했다. 금세기 가장 성공한 미술관으로 꼽히는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은 별 볼일 없던 폐 화력발전소를 뜯어고쳐 들어앉았다. 이 미술관들은 세계적 명소로 떠오르면서 재생건축과 미술관의 결합으로 절묘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산속등대’가 출항한 건 2019년 5월이다. 만 2년이 지났을 뿐이니 이제야 걸음마 단계를 벗어났다. 불운하기론 코로나19의 창궐에 따른 고난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배를 띄우자마자 으르렁거리는 폭풍 속에 던져진 것이다. 신생의 기쁨과 기세로 활보하기 이전에 가혹한 담금질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널따란 터에 꾸린 갖가지 볼거리, 그리고 중의적 미학이 가미된 공간들이 이색적이지만 어찌할 수 없는 고즈넉함이 서려 있다. 그러나 여느 미술관들에 비하면 그나마 방문객이 많은 편이라니 다행스럽다. ‘산속등대’의 랜드마크, 등대 이곳에 들어서면 맨 먼저 ‘기억의 파사드’가 눈에 들어온다. 빨간 벽돌로 쌓은 삼각형 모양의 구조물 세 개를 병치한 파사드다. 고색창연한 사물들이 넘치는 가운데 그 새뜻한 형상으로 도드라지는 이 벽은 아마도 ‘기억에로의 초대장’이다. “이 문을 들어섬으로써 이제 당신의 기억은 과거를 유영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의 파사드’가 하는 말이 이렇다. 폐공장의 잔해에서 과거 산업공장의 무상한 흥망성쇠 드라마를 유추하라고, 삶의 허무와 다르지 않은 공장의 쓸쓸한 잔해를 더듬어보라고 한다. 풀을 끌어안고 으스러진 공장의 주춧돌에서 끝내 거머쥘 수 있는 시간과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느껴보라고, 인생 역시 몇 점의 기억만 남기고 매순간 허공으로 흩어진다는 걸 알아보라고 한다. 파사드가 전하는 얘기가 그렇다. 저기 저 뒤편엔 돌올하게 치솟은 게 하나 있다. 제지공장 시절의 굴뚝으로 높이가 33m다. 설립자는 이 굴뚝을 놓고 생각이 많았다더라. 저 높고 우람한 덩어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는 숙고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굴뚝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돌아온 답은 하나같이 등대가 연상된다는 거였으며, 설립자는 이를 채택했다. 공장의 기계들이 기운차게 잘 돌아갔던 과거엔 허연 연기를 뭉게구름처럼 뿜어낸 굴뚝의 이미지를 변용, 문화와 예술의 불을 밝히는 등대로 상징화하기로 한 것. 온갖 잡동사니와 아귀다툼이 난무하는 속세에 한 송이 문화의 꽃을 피우겠다는 게 이 문화 공간의 지향점이다. 그 옹골찬 포부를 등대라는 거대한 물상으로 함축해 표출한 것이다. 빨간 칠을 입어 한결 돋보이는 등대는 이곳의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미술관 건물을 볼까. ‘산속등대’의 구조물 대다수가 그렇듯 이 역시 재생건축이다. 구슬픈 소리를 내는 법 없이 그저 외로이 무너져가는 폐건축물들 중 그나마 상태가 가장 나은 건물에 구조 보강을 해 미술관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털어낼 건 털어내고 놔둘 건 놔두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혼성 교합이다. 과거와 현재의 합작으로 미래를 도모하는 건물이다. 전시실에선 장안순의 개인전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가 펼쳐지고 있다. 미술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우선은 매력적인 건축물로 사람들의 구미를 동하게 해야 한다. 건축 자체를 작품으로 흐뭇하게 즐길 만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역시 전시의 품질이다. 전시 기획의 개성과 지향을 딱 부러지게 노정한 콘텐츠를 보유한 미술관이어야 미술계는 물론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살 수 있다. 이는 돌을 부술 강펀치를 구사하는 복서만이 살아남는 링 위의 생리와 비슷하다. 이게 어지간한 실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점에서 이곳의 설립자는 고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일단 부지런히 전시회를 전개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매년 전시회를 빈번히 열었다. 기후 문제나 등대를 주제로 한 기획전은 미술관의 아이덴티티를 모색하는 차원의 전람회들이었다. ‘산속등대’는 미술관을 가슴에 품은 복합문화공간이다. 미술 작품 감상으로 지겨운 삶의 우수와 권태를 다독이라고, 그러고도 미진한 게 있다면 재생 공간 곳곳의 세련된 설치와 디자인과 오락적 요소들을 즐겨 기분을 돋우라고 만들었다. 창밖의 경관을 즐기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슨슨카페, 대형 고래 조형물을 설치한 고래 놀이터, 기존 폐수처리장을 재생해 콜로세움을 형상화한 야외 공연장, 아이들의 문화예술 체험 공간인 어뮤즈월드, 별빛 광장과 별빛 동산 등 별별 이색과 이채가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나 뭔가 아쉽다. 터의 일부를 빼곡히 채운 컨테이너 박스들의 건조한 품새가 재생 공간의 고적하면서도 유려한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해서인가? 그렇더라도 진귀한 문화 공간이다. 버림받은 흉물에 빛을, 낡고 낡은 사물들에 생명을 주입했으니까. 갈 길이 멀 테지만, 폐허를 딛고 일어선 탄성을 보루로 튀어오를 수 있겠다.
- 2022-01-2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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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대형마트·백화점 방역패스 해제
-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방역 현장의 목소리와 현재 방역상황을 고려해 국민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오늘부터 방역패스 적용시설 범위를 조정·시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이로 인해 중장년 층의 대형마트나 백화점을 이용한 장보기가 한층 수월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방역패스를 확대했던 지난 12월에 비해 유행규모가 감소하고, 의료여력이 커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시설의 방역패스를 완화하기로 했다. 또한, 최근 법원의 백화점·대형마트 방역패스 집행정지에 대한 결정에 따라 발생이 예상되는 지역 간 혼선을 막기 위해 완화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이라고 중대본 측은 설명했다. 이번 조정 대상은 총 6종으로 독서실·스터디카페, 도서관, 박물관·미술관·과학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규모점포, 영화관·공연장이 그 대상이다. 해당 대상에선 상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취식은 제한된다. 다만, 화점·대형마트 등 대규모점포의 경우시설 내 식당·카페 등 방역패스 적용시설은 별도로 관리하고, 시식·시음 등 취식, 호객행위를 제한해 위험도를 관리 할 방침이다. 50명 이상의 비정규 공연장에서의 공연은 함성·구호 등의 위험성이 있고, 방역관리가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종전과 같이 방역패스가 계속 적용된다. 이번에 해제된 시설을 제외하고 유흥시설, 실내체육시설, 노래연습장, 목욕장업, 식당·카페, PC방, 파티룸 등 위험도가 높은 시설들은 방역패스가 계속 유지된다. 중대본 측은 방역패스 조정은 항구적 조치가 아니라, 방역·유행 상황에 따라 조정된 한시적인 조치이며, 방역상황 악화 시 다시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방역패스와 관련, 시설이나 운영자의 방역패스 확인 부담 완화 등을 위해 고의적 위반 시에만 과태료 등 처분을 부과하는 등의 방역패스 관련 지침·법령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2022-01-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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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R코드 답답하면… "스티커나 증명서 활용하세요"
- 1월 3일부터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가 적용됐다.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자는 마지막 접종 후 14일이 지난 날부터 6개월이 지났다면 방역패스 효력이 만료된다. 유효기간은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얀센 접종자는 1차 접종) 후 14일이 지난날부터 6개월(180일)까지다. 따라서 2021년 7월 6일 전에 기본 접종을 마친 후 추가 접종을 하지 않았다면 공중시설 입장이 어렵다. 현재 방역패스 적용 시설은 ▲유흥시설 등(유흥주점, 단란주점, 클럽(나이트), 헌팅포차, 감성주점, 콜라텍·무도장) ▲노래(코인)연습장 ▲실내체육시설 ▲목욕장업 ▲경륜·경정·경마/카지노(내국인) ▲식당·카페 ▲학원 등 ▲영화관·공연장 ▲독서실·스터디카페 ▲멀티방 ▲PC방 ▲스포츠경기(관람)장(실내) ▲박물관·미술관·과학관 ▲파티룸 ▲도서관 ▲마사지업소·안마소 ▲상점·마트·백화점(3,000㎡ 이상) 등이다. 3차 접종을 받지 않았는데 방역패스 적용 시설에 입장하고 싶다면 48시간 내 발급받은 PCR 음성 확인서나 예외 확인서, 격리해제 확인서(격리해제일로부터 180일 이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식당과 카페를 혼자 이용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증명서나 확인서 없이 출입이 가능하다. 대규모 점포는 확인서가 없다면 혼자라도 이용할 수 없다. 이용자가 방역패스 적용시설 이용 시 QR코드로 방역패스를 스캔하면 유효기간이 남았을 경우 “접종 완료자입니다”라는 음성 안내가 나온다. 반면 유효기간이 만료된 접종 증명의 경우 ‘딩동’하고 알림음만 울린다. 이 경우 시설 관리자는 이용자의 예방접종증명서나 PCR 음성 확인서, 격리해제확인서, 예외확인서를 확인해야 하며 없으면 이용 불가를 안내해야 한다. 남은 유효기간 확인, QR코드 혹은 종이 증명서 백신 유효기간을 확인하고 싶다면 예방접종 인증 전자증명서인 ‘쿠브(COOV)’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면 된다. 2차 접종 후 14일이 지나면 ‘14일 경과’ 표시가, 180일이 지나면 ‘유효기간 만료’ 표시가 뜬다. QR코드 주위에 파란색 테두리나 접종 후 경과일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자출입명부 앱을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접종 정보를 갱신하지 않은 3차 접종자는 QR코드를 스캔할 때 미접종자로 안내돼 시설 이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 카카오, 네이버, 토스, PASS 등 민간 전자출입명부 앱도 업데이트하면 해당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전자 증명서 사용이 어려운 사람은 종이로 된 접종증명서나 예방접종스티커를 사용하면 된다. 종이 증명서나 예방접종스티커는 주민센터에 신청해 발급받을 수 있다. 의학적 사유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접종예외자는 진단서와 소견서를 지참하고 보건소에 가면 방역패스 예외 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 대신 종이에는 유효기간이 표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코로나19 예방접종 누리집’에서 확인해야 한다. 한편, 방역패스 유효기간 위반으로 인한 과태료나 행정처분은 10일부터 부과된다. 과태료는 관리·운영자의 경우 300만 원 이하(1차 150만 원, 2차 이상 300만 원), 위반한 개인은 10만 원 이하다.
- 2022-01-0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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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로 시대 그늘 읽어" 양정무 한예종 교수
- ‘미술 대중화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양정무(55) 교수는 서양미술사 연구자인 동시에 친절한 미술 안내자로서 출판과 강연, 방송 등을 통해 대중과 미술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신간 ‘벌거벗은 미술관’을 통해서 서양미술사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를 만나 미술의 가치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신간이 나올 때까지 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이 책은 비평가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책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이하 난처한) 시리즈와 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잠시 보류하다가 이제야 출간했다. 긴 레이스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의미도 있지만, 비평가로서의 근육을 굳지 않게 하려고 썼다. ‘난처한’ 시리즈가 서양미술사의 길잡이라면, 이 책은 서양미술사의 민낯을 다룬다. 미술사로 본 미술의 가치, 박물관과 미술관의 역할, 초상화 속 무표정의 의미 등 늘 고민했던 질문에 대해 스스로 찾은 답을 책으로 풀어냈다. ‘난처한’ 시리즈에서 못 했던 얘기를 쿠키 영상처럼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 미술사를 다룰 때 사상, 시대, 공간 등으로 분류하여 설명하는 책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고전 미술, 표정, 박물관과 미술관, 팬데믹 같은 키워드를 통해 미술사를 조명한다. “이 책이 미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됐으면 좋겠다. 결정적인 조각을 맞출수록 퍼즐이 완성에 가까워지듯, 이 책이 미술에 다가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미술사를 조명하되, 미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예를 들어 근엄한 표정의 초상화는 당시 지배 세력의 엄중한 권위를 세우기 위한 수단이었고, 박물관은 해외에서 약탈한 보물을 보관한 수장고였다. 결국 미술은 화가의 고유한 개성으로 읽을 수 있지만, 더 넓은 시야로 보면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미술을 본다는 것은 시대를 읽는 동시에 줄기처럼 뻗어가는 역사를 읽는 일이다.” 일상을 깨는 상상력의 세계 그는 스스로 성덕(성공한 덕후)이라 불렀다. 그가 미술의 세계에 빠진 것은 어린 시절 우연히 본 백과사전의 삽화 때문이었다. “우리 맘속엔 누구나 하나의 예술가가 살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 자신이 가진 날것의 느낌을 낙서로 보여준다. 나 역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백과사전의 삽화에 우연히 마음을 빼앗긴 이래 미술 덕후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한마디로 하면 성덕이다. 미술과 역사를 좋아해서 미술사학자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있지만, 미술은 일상을 깨는 새로운 세계였다. 달나라를 동경하는 우주비행사의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까지 내게 미술이란 우주는 새로운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서양미술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위해 갔지만, 그에게 그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영국에서 유학할 때 학교 근처의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매일 등교 전에 한 번, 하교 후에 한 번은 무조건 들렀다. 집 가는 길에 있던 내셔널갤러리(The National Gallery)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들르는 필수 코스였다. 당시 주재원, 교수, 기자,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했다. 같이 수업 겸 토론도 하고 박물관이나 소규모 미술관을 다니면서 다각도의 해설을 들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인기가 나름 좋아서 한국에 못 돌아올 뻔했다.(웃음) 그 경험이 수업이나 강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미술이듯,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감염병’이란 키워드다. 팬데믹 이후 미술은 어떻게 변할까?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대규모 인원이 죽자, 다양한 계층에서 미술을 통한 추모를 기획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미술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도 비슷하다. 코로나19 이후 미술에 대한 갈증이 더 커지면서, 미술관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 미술을 통한 심리적 위안과 치유의 힘이 다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예술을 하는 사람의 태도를 더욱 진지하게 만들고, VR을 활용한 비대면 관람이 주된 체험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미술은 비주얼의 언어 또한 비주얼 리터러시(Visual Literacy)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술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그리는 장르다. 워낙 직관적인 영역이라, 그것을 언어로 풀면 어렵게 느껴진다. 가령 외국어는 알파벳, 맞춤법, 띄어쓰기 등 여러 가지를 익혀야 비로소 통달할 수 있다. 하나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하나의 세계에 더 다가가는 일이다. 미술도 그 과정은 어렵지만 보는 훈련을 잘한다면 이전과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잘 체득하면 시각적인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결국 비주얼 리터러시를 통해 우리는 이미지를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눈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끝으로 그는 미술 입문자를 위한 조언과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전통과 역사에 관심 있는 시니어들이 미술사에도 관심이 많은데, 입문자가 미술을 즐기려면 한 발짝 떨어져 볼 줄 아는 여유도 필요하다. 특히 미술관의 이미지를 무겁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미술관만큼 카페나 문화시설이 잘 갖춰진 곳도 드물다. 미술을 감상하지 않아도 좋으니 미술관을 친숙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론 이제껏 배우고 익힌 바를 토대로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난처한’ 시리즈 번역본을 통해 이제껏 구축해온 관점을 서양인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미술사학자로서 “미술을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간다”라고 했다. 그는 명작의 위대함보다 미술에 담긴 고뇌와 고민, 좌절을 읽으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 배웠다. 결국 미술은 시대의 그늘을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좌절은 원동력이 되고, 어두운 그늘은 때론 위안의 공간이 된다. 미술 안내자인 그가 구축하는 미술의 그늘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이 쉴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마친다.
- 2021-11-18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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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 강릉선 타고 가을 여행, 가 볼 만한 곳은?
- 가을이라 해도 날씨는 여전히 온화하다. 강릉으로 떠나며 날씨를 검색해보았더니 기온이 뚝 떨어질 거라는 예보다. 환절기의 쌀쌀함을 즐길 때는 아닌 것 같아 머플러랑 니트를 주섬주섬 더 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릉은 언제나 따스했다. 이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그곳은 언제나 따스하게 날 맞는다. 아마 앞으로도 또 그럴 것 같은 강릉. 명주동 거리, 강릉의 ‘핫플레이스’이라고 했다. 명주(溟州)는 신라 시대에 강릉을 이르던 지명으로 ‘바다와 가까운 아늑한 땅’이란 뜻이다. 1500년 전의 고도 명주는 예부터 문화·행정의 중심지이던 곳인데 강릉 시청이 옮겨가면서 한물간 구도시가 되어버린 듯했다. 그런데 이젠 달라졌다. 구도심 귀퉁이 마을인 명주동 일대가 요즘의 레트로 바람을 타고 찾아가고 싶은 원도심으로 변신했다. 가을볕 아래 명주동 문화마을 천천히 걷기 강릉 대도호부 관아 건너편에서 시작해 그 주변 동네와 골목 한 바퀴를 느릿느릿 걸으며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어릴 적 추억도 소환하고, 숨겨진 예쁜 가게를 발견하는 재미가 걷는 내내 이어지는 풍경. 드라마 시대극을 연상케 하는 오래된 주택과 상점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나미 명주. 시나미는 ‘천천히’ 또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을 뜻하는 강원도 말이다. 산책하듯 천천히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공존하는 뉴트로 강릉의 모습이 보인다. 시공을 넘나드는 이 골목에서는 저절로 천천히 걷게 된다.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벽돌담 모퉁이를 돌면 유년의 뜰에서 늘 보았던 백일홍이 옹기종기 모여서 피어 있다. 반쯤 열린 나무 대문 앞으로 한 무더기씩 뿌리내린 채 꽃을 피워 올린 소박한 식물들이 예쁘다.골목 여행을 하는 이들을 위한 주민들의 자발적 배려다. 저절로 따스함을 얻는다. 낡은 담벼락에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바른 글씨체로 세 줄 적혀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세월이 느껴지는 담장에 켜켜이 스며 있는 옛이야기를 느끼며 그 길을 걸어간다. 쭉 걷다 보면 빈티지하면서도 멋스러운 건물들이 간간이 눈길을 끈다. 담쟁이덩굴이 뒤덮은 ‘봉봉 방앗간’ 건물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장면으로 더 유명해진 집이다. 근처의 작은 공연장, 박물관, 예술마당, 프리마켓 등의 문화공간에 슬슬 가을 분위기가 덧입혀지는 중이다. 골목길을 걷다 잠깐 앉았다 갈 수 있도록 가게 앞에 의자를 놓은 인심이 더 멋진 풍경을 만든다. 그 의자에 한 번씩 앉아 사진을 담는 여행자들 덕분에 아예 포토존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찾아가 보고 싶은 ‘인싸들의 강릉 여행지’가 되었고, 곳곳에 젊음의 생기발랄한 에너지도 풍겨난다. 오래된 건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 단장한 소박한 점포들, 골목상권의 소상공인을 여행자와 연결해주고 쇠락한 골목길에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신구(新舊)가 공존하는 원도심 거리답게 옛집을 개조한 카페 ‘오월’의 격자무늬 창문 너머로 동네 할머니가 뒷짐 지고 걸어가시던 골목길 풍경 또한 가을볕에 아련하다. 정겨운 가을날이다. 강릉의 구도심을 온몸으로 느끼며 마실 가듯 천천히 느릿느릿 타박타박 걸었던 명주동 골목 나들이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 명주거리를 벗어나기 전에 건너편 강릉 대도호부 관아(사적 제388호)에 들어가 보는 것도 의미 있다.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곳이다. 강릉 임영관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객사문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안으로 들어가면 전대청이 있는데 '임영관'이라고 쓴 현판 글씨는 공민왕이 낙산사 가는 길에 들러서 쓴 친필이다. 현재 객사문은 이 터의 남측에 국보 제51호로 지정 보존되어 있고, 서측은 임진왜란 이후 경주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셔다 봉안했던 집경전(集慶殿) 터다. 해설사님의 해박하고 구수한 해설로 역사적 사실이 더욱 흥미롭다. 누구나 원하면 미리 신청해서 해설사님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관아 곳곳에 우뚝 선 고목이 되어버린 은행나무는 가을이 한창이었다. 바다 언덕 위에 펼쳐진 예술 세계 이제는 시원한 바다를 보며 예술과 자연, 인간이 공존하는 전시 공간에서 감성을 충전할 때다. 묵은 스트레스도 날려버릴 시간이다. 강릉의 괘방산 자락을 배경으로 등명마을에 자리 잡은 ‘하슬라 아트월드’. 산과 바다와 하늘과 바람과 햇살이 함께하는 아트월드다. 조각가 부부가 힘을 모아 만들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움을 선보이고 있는 하슬라 아트월드. 하슬라는 고구려 때 부르던 강릉의 옛 지명이다. 현대 미술관, 아비지 갤러리, 터널 설치미술, 체험학습실, 피노키오 박물관, 마리오네트관 등 볼거리가 한가득이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가 터널을 통과하고 고래 뱃속 터널을 지나 지하 계단, 그리고 피노키오 전시관과 마리오네트 전시관까지 감상하는 내내 눈이 즐겁고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곳. 발길 닿는 곳마다 포토존이다. 해안 절벽 위에 위치한 야외 조각공원은 예술 정원으로 3만3000평의 드넓은 자연 속에 있다. 어딜 돌아보아도 산과 바다. 이처럼 바다가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 또 어딜지. 이어지는 스카이워크를 통해 다시 한번 자연을 만끽한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건강하게 로스팅한 산야초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다. 문화예술 공간에서 하루나 이틀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해 아트월드 안에 호텔도 있다. 설화 속의 월화거리 즐기기 강릉을 떠나기 전 전통시장인 강릉중앙시장에도 잠깐 들러봐야 하지 않을까. 강릉역으로 가는 길에 들른 시장통엔 매스컴을 통해 이미 유명해진 아이스크림호떡과 치즈호떡을 맛보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맛집들이 즐비하다. 마늘빵과 닭강정 역시 인기여서 사람들이 찾아드는 모습이다. 군것질을 하며 시장 구경을 즐기다 보면 여행은 더욱 흐뭇하다. 중앙시장을 지나 KTX를 타러 가는 길목에 월화거리로 가는 화살표가 있다. 강릉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교동의 ‘월화거리’는 강릉 도심을 지나던 폐철도 부지에 조성된 공원 시설이다. KTX 강릉선 개통으로 강릉 도심 철도가 지하화되면서 옛 지상 철길은 유휴지로 남게 됐다. 강릉시는 기차가 달리지 않게 된 이 공간을 공원화한 것이다. 컨테이너로 이루어진 월화 풍물시장은 기존에 있던 시장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어졌다. 메밀전병이나 감자떡 등 강원도 토속음식은 물론이고 다양한 간식거리로 옛 분위기를 느끼며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월화거리는 강릉 월화정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시대 화랑 무월과 강릉 지방 토호의 딸 연화는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경주로 돌아간 무월에게서 연락이 없고 연화는 다른 사람과 결혼할 상황에 처한다. 이에 연화는 산책하던 연못의 잉어에게 편지를 전달함으로써 두 사람이 다시 만나 혼인하게 된다는 것이 월화 설화의 주요 내용이다. 사랑의 메신저가 잉어라니. 무월과 연화의 이름에서 따온 월화정이 있는 이곳을 월화거리로 만들어낸 것이다. 걷는 내내 눈길을 끄는 갖가지 구조물이나 꽃 조형물들이 시민들과 여행자들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강릉역에서 부흥마을까지 걸을 수 있는 길이지만 노선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시장과 월화거리를 지나며 강릉역이 저편으로 보인다. 2017년 12월에 서울 강릉 간 KTX가 개통되면서 114분 만에 강릉에 도착할 수 있어 강릉 당일 여행이 쉬워졌다. 강릉선은 서울역에서 출발하면 청량리-상봉-양평-만종-횡성-둔내-평창-진부-강릉 도착이다. 일상을 벗어나 바다도 보고 하루쯤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을 때 강릉이 있다.
- 2021-11-1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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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조름한 갯내음, 시흥 갯골생태공원
- 아침부터 비가 뿌렸다. 그저 창밖으로 비를 바라보며 가라앉은 마음으로 있기에는 내 안에서 스멀스멀 삐져나오는 것이 있다. 그래, 흩뿌리는 가랑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 이럴 땐 뛰쳐나가 보는 것도 방법이다. 갯골생태공원의 소금창고 소금기 까슬하고 끈적하게 깊은 골이 파인 갯골이었다. 지금은 빗물이 가득 고여 흘러가고 있다. 시흥 갯골생태공원에는 옛 염전의 풍광을 그대로 보여주는 둑길을 따라 푸르거나 붉은빛으로 자라고 있는 염생식물들이 비를 맞고 있었다. 생태공원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바닷물을 먹고 자라는 염생식물과 각종 어류와 양서류가 서식하고 있어서 국가습지보호구역이기도 하다. 붉거나 푸른 풀들이 얼핏 화려하기까지 하다. 바닥에서 자라는 아무 잎이나 뜯어서 맛을 보면 짭조름하다. 소금이 귀하던 그 옛날 가난한 이들은 염생식물로 소금을 대체하기도 했다 하니, 우리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금과 염전의 위력을 되짚어보게 된다. 이곳 갯골생태공원에 전시된 붉은색의 ‘가시렁차’는 일제강점기에 소금을 실어 나르던 협궤열차였다. 가솔린을 연료로 가릉가릉 하는 소리를 내며 달렸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염전 구석구석에 깔린 궤도는 가까운 수인선 기차역까지 소금을 운반하기 위한 특수 목적의 철도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던 소금은 일본의 수탈이고 약탈이었다. 서해 간석지가 발달해서 농경지나 염전으로 이용했던 곳. 이 일대의 갯벌이나 토질, 그리고 해수의 염도와 일조량 등의 중요한 조건이 잘 맞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해방 이후에도 이 소금밭으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한때 소금값이 만만찮던 시절에는 40개 정도였던 소금창고가 보물창고였다 한다. 현재 갯골생태공원에 남아 있는 2동의 소금창고 원형은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늠내길 시흥 갯골생태공원은 시흥 늠내길 4개 코스 중 2코스 갯골길에 해당된다. ‘늠내’는 고구려 시대의 ‘뻗어나가는 땅’이라는 의미로 시흥의 옛 지명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으로 탁 트여서 정말 그 말이 어울리는 느낌이다. 비까지 내려주어 풍경도 마음도 촉촉하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안개가 끼면 안개 속의 풍경대로, 날씨의 변수에 따른 정직한 풍경이 눈앞에 있다. 내 안의 뻣뻣함도 스르르 풀어진다. 갯골을 끼고 펼쳐진 풍광에 흠뻑 스며들어가는 순간이다. 비 내리는 갯골의 뿌연 모습은 서서히 빠져들기 딱 좋은 풍경이다. 처음엔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안개비였다. 하지만 갯골생태공원에 들어설 때는 우산을 써야 했다. 우산을 들고 천천히 걷기에 적당한 분위기다. 안개처럼 내리던 비가 제법 뿌려서 카메라가 젖을까봐 급기야 가슴팍에 숨기듯 끌어안았다. 전망대에 올랐다. 흔들림이 감지된다. 구조적으로 풍하중에 대한 흔들림이 허용치 내로 시공되었다는 안내문을 읽었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느낌이 지금 눈앞의 풍경과 어울린다. 22m의 6층 목조 전망대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갯골의 전경이 안개처럼 뿌옇게 한 겹 가려져서 신비롭다. 아스라함이 수증기처럼 피어오르는 풍경이다. 생태공원을 둘러싼 너른 평야, 수로 밑으로 물이 가득 고여 흐르는 갯골, 비를 받아들이고 있는 생태공원의 해수 풀장, 빗속을 걷는 사람들… 흔들 전망대 공중에 높이 붕 떠서 빗속의 풍경에 마음껏 압도되었다. 시흥 늠내길은 4코스가 있다. 이 중에서 이날 2코스를 걸어보려고 마음먹었던 터다. 안개비로 시작한 비가 갈수록 제법 내려서 핑곗김에 갯골생태공원 산책으로 마쳤다. 빗속에서 갯골생태공원을 걸으며 상쾌함과 신선함을 흠뻑 맛보니 다소 가라앉았던 기분이 어느새 날아갔다. 연꽃테마파크 관곡지(官谷池) 드넓은 연밭에 홍련과 백련이 고고하게 자태를 뽐내는 시절. 여름이 시작되고 장마까지 겹치는 즈음 연밭에 들어서면 늘 후끈하던 기억이 있다. 폭염의 강렬한 태양 아래서도 연(蓮)은 우아한 멋을 지닌 채 물 위에서 기품을 보여준다. 연꽃 개화 시기가 되면 얼른 떠올려지는 곳, 관곡지(官谷池), 갯골생태공원에서 멀지 않다. 수도권에서도 찾아가기 쉬워서 일출 무렵의 새벽이나 비가 내리면 비를 받아들이는 연꽃을 보러 나서는 이들이 많은 곳이다. 또한 한밤중에 고고한 자태로 대관식을 하고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장렬하게 사라지는 빅토리아 연(蓮)의 마지막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들기도 한다. 여전히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역시 비를 맞는 연못의 풍경이 제맛이다. 개망초꽃이 새하얗게 피어난 둑길을 지나면 양옆으로 연밭이 펼쳐진다. 진흙을 딛고 맑은 얼굴로 여기저기 피어나 존재감을 보여준다. 수면 위로 삐죽이 모습을 내민 봉오리와 화사하게 만개한 연꽃들이 연밭을 채우고 있다. 몇 군데 물이 고인 웅덩이에는 갖가지 수생식물들과 수련이 청초하다. 가끔씩 저어새가 넓은 날개를 펼치고 푸드덕 날아올라서 깜짝 놀라기도 한다. 우리나라 서해안에서만 번식하는 멸종위기종인 저어새가 이곳 연밭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걸 간간이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205호 멸종위기 1급 보호조류다.) 관곡지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된 조선 세조 때의 연못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농학자 강희맹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연꽃씨를 이곳에 심은 것이 시초였다. 관곡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잇고자 시흥시에서는 연꽃테마파크를 조성했고, 그 덕에 해마다 잘 자라고 잘 피워내는 연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연밭 한편에 강희맹 선생의 묘역이 있으며, 연지 사적비와 은휴정이라는 정자와 문중 가옥이 있다. 후손들이 관리하는 개인 사유지니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명심할 것. 잔디마당에는 설치 조형물 등의 볼거리가 있는데 요즘 출입이 가능한지는 확인해볼 일이다. 숲속 소래산길 소전미술관 연꽃을 둘러보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햇볕이 뜨거울 때는 주변에 미술관이 있음을 떠올릴 것. 관곡지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도자 테마 박물관인 ‘소전미술관’이 소래산 자락에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숲속에 둘러싸인 미술관 앞의 넓은 정원이 비에 젖어 푸릇푸릇하다. 1층과 2층에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조선시대 백자가 전시되어 있어서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다. 선이 아름다운 도자기의 단아함과 다양한 용도의 작품들을 둘러보는 특별한 시간이다. 2층에서는 특히 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야외 정원의 푸르름이 가슴을 촉촉하게 한다. 야외 정원의 조각품들과 미술관 풍경의 운치는 가랑비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하다. 매주 토요일이면 오전 11시~오후 5시에 아트 마켓이 열린다고 한다. 주변에 요즘 핫한 카페가 있으니 연꽃테마파크와 미술관을 함께 볼 겸 겸사겸사 들러볼 만하다.
- 2021-09-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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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초 만에 미술품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 구하우스는 CI(Corporate Identity) 디자인 회사 ‘디자인 포커스’ 구정순 대표(70)가 설립한 미술관이다. ‘CI 디자인’이란 특정 기업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르. 그는 단연코 이 분야의 실력자다. 미술의 인근에 있는 직업을 가졌으니 미술품 수집을 하고, 마침내 컬렉션을 기반으로 미술관을 개관한 내력이 자연스럽다. 특별하기론 ‘집 같은 미술관’을 창안했다는 것.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다. 집처럼 편한 분위기에서 미술품을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나아가 집 안을 디스플레이하는 요령을 얻어갈 수 있기를, 미술품 수집 안목을 키울 수 있기를 바라는 의도도 컸다.” 반응은 어떤가?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분위기인데. “영리를 목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관람객 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대체로 처음 예상한 수준의 호응은 있는 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미술관의 문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술관보다 인근 카페들에 주로 사람들이 몰리더라.” 미술품을 수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똘똘한 컬렉트 방법을 조언한다면? “미술품도 잘 사면 돈이 된다는 생각에 과도하게 쏠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품의 투자 가치와 작품 가격에 치중하는 건 좀 엉뚱하다. 순수하게 미술을 향유하는 방법으로서의 수집이 옳다고 보는 거다.” 언제부터 컬렉션을 시작했나? “23세 때. 첫 직장에서 받은 상당 액수의 보너스를 털어 박수근의 작품을 구입한 게 출발점이었다. 당시 권옥연 화백의 작품에도 호감이 있었는데, 한 달간이나 뜸 들여 숙고해 박수근의 작품을 선택했다. 요즘은 그런 초심이 없다. 5초 만에 구입 여부를 결정하거든.(웃음)” 거의 전광석화처럼? 그래도 뭔가 기준이 있겠지? “취향이 뚜렷해진 셈이다. 내 생각에 작가는 두 부류가 있다. 자기 스타일을 고수하는 작가와 창의성을 갖고 늘 새로운 작품을 하는 작가로 나누어 본다. 내 취향엔 후자가 좋다. 그게 미술관의 목적에도 부합하고.” 그는 반백 년 경력의 컬렉터다. 이미 고수다. 거품을 걷어내고 작품성을 가늠하는 눈매가 날렵할 수밖에. 미술관의 스케일과 디테일의 조화로운 배합에서도 구 관장의 내공이 읽힌다. 미술관에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이건 어떤 경로로 구입했나? “런던의 크리스티 옥션에서 샀다. 초현실주의 작가인 에른스트는 외국에서도 전문가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화가다. 삶도 작품도 워낙 재미있는 사람이라서.” 제임스 터렐의 ‘빛 아트’도 매우 인상적이다. 작년에 구입, 설치했다지? “구하우스를 다녀간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힐링’이라는 단어가 빈번하더군. 명상이랄까, 관람객에게 힐링의 기회를 부여하고 싶어 설치했다.” 구하우스의 미술품 감상은 사실 쉽지 않다. 개념주의 미술 작품이 주류여서다. 구 관장은 작품에 붙인 설명문을 읽길 권한다. 흔히 묘하게도 작품보다 난해한 게 설명문이지만, 이곳의 설명문은 간명하고 구체적이다.
- 2021-08-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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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길 가다 만난 나무처럼, 맑은 고을 청주(淸州)
- 숨 고르기가 필요할 때다. 막연하게 이 시절이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기에는 투명한 햇빛이 너무 눈부시다. 팍팍한 일상에 느낌이 있는 시간이 언제였나. 마음을 채우고 자신을 살펴주는 일을 잠깐 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지도 중심부에 자리 잡은 교육의 도시 청주,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 어디서든 교통과 지리적 접근성이 좋아 하루쯤 후딱 달려가 볼 수 있는 예쁘고 단아한 도시, 무심한 듯 알찬 쉼과 여유로움이 가능하다. 도시지만 시끌벅적하지 않아서 좋다. 한가한 한낮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귀하게 시간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과천, 덕수궁, 청주 이렇게 네 곳에 있다. 한때 연초제조창이었던 넓은 부지를 2018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으로 오픈했다. 예전의 담배공장이 그 모습을 뒤로하고 이렇게나 멋진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다니 놀라울 수밖에. 국내 최초의 수장형 미술관이다. 총 5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관을 보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주말엔 현장에서 수시 입장도 가능하지만 인원 제한이 있다. 그렇지만 여기선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움이다. 모던한 미술관 앞의 넓은 잔디광장을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바람과 햇살의 평온함을 누리는 것도 이곳에서는 특별하다.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미술관은 재미있는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 옆으로 이어진 건물에 핫한 초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있어서 잔디광장을 내다보며 느긋하게 맛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소통하는 수장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미술관은 5층 기획전시실, 4층 특별 수장고(미술은행 소장품), 3층 개방 수장고 및 라키비움, 보존처리실, 2층 보이는 수장고 및 관람객 쉼터, 1층 로비 및 수장고, 프로젝트 영상, 아트존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미술관의 소장품을 보관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인 수장고, 그곳에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공개하여 ‘개방’과 ‘소통’을 위한 ‘열린’ 미술관을 지향한다. 덕분에 백남준, 이중섭, 배병우, 김세중, 니키 드 생팔 등 뛰어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엄청난 예술 작품들의 위용에 압도되어 처음에는 마구 흥분된다. 미술관을 충분히 둘러보고 나면 상상력을 자극받고 알 수 없는 위로와 풍성함으로 뿌듯해진다. 평일 한낮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도심에 이렇듯 품격 있는 미술관을 품고 있는 청주 시민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입장료가 무려 무료다.) 미술관 바로 옆으로 나가면 1960~70년대 한국 산업화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옛 청주 연초제조창의 담뱃잎 보관 창고였던 7개 동이 시민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동부창고다. 그 시절 청주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청주의 대표적 산업체였다. 이제는 보존 가치가 높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문화 공간이다. 그 뒤편의 미로처럼 경사진 골목으로 올라가면 드라마 촬영지로 SNS에서 유명세를 치렀던 청주의 마지막 달동네 벽화마을 수암골이다. 그들과 함께한 역사, 무심천과 상당산성 청주를 감싸고 있는 상당산성으로 가는 길에 도심을 동서로 구분하는 예쁜 물길 무심천에서 문득 브레이크를 밟는다. ‘마음을 비운다’는 뜻의 무심천은 봄이면 벚꽃이 눈부시고,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휴식처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곳 출신인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속에서 청주 무심천을 건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청주를 품고 있는 상당산성 앞에 서면 길게 이어지는 성벽과 함께 계절의 푸르름에 가슴이 뻥 뚫린다. 백제 시대 방어 시설로 처음 축성되어 조선 시대에 개축된 상당산성은 면적 12.6ha, 둘레 4,400m, 높이 4.7m, 사적 제212호다. 산성마다 나름의 역사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이 길은 과거 영호남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역시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자연스러웠던 풍경이다. 그 견고한 성벽길을 걸어보자. 완만한 4km 순환형 둘레길이어서 아이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도 좋고,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도 더할 나위 없다. 이 길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이 청주를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분명 도심 속의 산길인데도 확실히 도심을 벗어났다는 기분이 든다. 걷기에 따라 1~2시간 정도 길이다. 지난 4월엔 이달의 추천길로 선정되었다. 자연 속으로, 운보의 집 이제 나들이하듯 가까운 근교로 잠깐 나가본다. 청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운보의 집’이 있다. 동양화가 운보 김기창 화백은 어릴 적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했지만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화가로서의 역량을 나타냈다. 특히 아내 박래현 화가와의 러브스토리는 전설적이다. 운보의 집이 위치한 청원구 내수읍은 김기창 화백 어머님의 고향이다. 마음의 고향 같은 이곳에 정착하여 노후를 보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 활동에 전념했던 곳이다. 전통 한옥으로 안채와 행랑채, 비단잉어가 노니는 연못에 정자와 돌담이 운치 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미국 대사관 건물이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내 우향 박래현 화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 산 아래 운보미술관은 규모가 제법 크다. 미술관을 둘러싼 야외 정원의 조각 작품이나 수석은 자연 속에서 품격을 더한다. 멋스러운 문화예술 공간이다. 부부인 듯 점잖은 커플이 뒷짐 지고 작품에 몰두하는 모습을 본다. 두 분의 뒷모습이 여유롭고 아름답다. 그들을 앞지르기 조심스러워 그림 앞에서 한참씩 걸음을 멈추곤 했다. 비로소 주변을 바라보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작품에서 따뜻한 위로를 선물받는 기분이다. 100년 전의 옛 청주역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청주에 청주역이 있었다. 청주시청 부근의 옛 청주역이 ‘옛 청주역사공원’으로 복원된 것이다. 도심 속의 일반적인 공원이 아닌 철도공원이다. 기차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설렘이 생긴다. 교육도시 청주답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기차역으로 달려오는 풍경이 와락 연상된다. 아담한 역사(驛舍)가 자그마한 옛날 국민학교를 연상케 한다. 민트 색감의 창틀이 옛 느낌을 더한다. 주변 풍경마저 옛 건물들로 즐비하다. 문이 닫힌 시간에 들렀기에 청주의 역사와 과거의 모습이 전시된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옛 청주역의 바깥 풍경만으로도 시간여행을 한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역 광장에 서니 추억의 흑백 필름이 휙휙 지나간다. 어쩐지 가슴 뭉클하는 순간이다. 고품격의 전시, 청주고인쇄박물관 문화도시 청주다. 예향(藝鄕)이라 할 만큼 문화자원이 풍부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많다. 또한 20년 넘도록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고인쇄박물관을 빠뜨릴 수 없다. 1377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간행한 고장이다.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78년이나 앞섰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기억해야 할 긍지다. 청주고인쇄박물관, 흥덕사지, 금속활자 전수교육관을 순서대로 돌아보면 된다. 본관의 1, 2, 3관과 쉼터, 홍보영상실. 귀중한 소장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위대한 역사의 순간을 느껴볼 수 있다. 금속활자부터 목활자까지 변천사와 ‘직지심체요절’이 지니는 깊은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고려 공민왕 시절에 세워진 직지의 요람인 흥덕사, 인쇄 문화의 이해를 높이는 금속활자 전수교육관이 함께 있어서 차례대로 둘러보며 직지의 위상을 비로소 깨닫는 시간은 소중하다.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아직도 둘러볼 곳이 많은 청주다. 미호천변의 성곽 정북동 토성은 요즘 일몰 때 멋진 실루엣을 찍기 위해 사진가들이 찾아든다. 템플스테이와 석가모니 진신사리로 유명한 사찰 용화사, 역대 대통령들의 여름 휴가지이자 대청호반의 산책로 청남대, 로하스 해피로드 대청호 오백리길,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마무리와 안질 치료를 위해 머물렀다는 초정행궁(椒井行宮), 청주 역사의 산증인 성안길, 청주만의 맛집 삼겹살거리, 사람 냄새 물씬한 전통시장 육거리시장, 점점 핫해지는 감성 가득한 운리단길… 곳곳이 감성 넘치는 핫 스폿이다. 잠깐 두리번거리면 보물찾기처럼 다가갈 곳이 나타났다. 시종일관 흥미롭고 은근히 끌렸다. 마음도 말랑해지고 행복지수도 높아진다. 기댈 곳 없어 혼자 우두커니 서성일 때 어쩌다 하루쯤 떠났다가 결핍을 채우고 흐뭇하게 돌아올 수 있다. 이곳 청주 출신 도종환 시인이 그의 시 ‘동행’에서 말했듯 ‘먼 길 가다 만난 나무처럼 / 지친 몸 기대게 해줄 푸른 그늘 있다면’ 그럴 때 떠올려보는 곳, 맑은 고을 청주.
- 2021-07-1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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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기(山氣)와 햇살과 바람, 그리고 볼 만한 그림들
- 산 좋고 물 좋으니 그냥 놔둘 리 없다. 용인시 고기동 산간에 있는 뮤지엄 그라운드로 접어드는 들머리의 풍경이 가히 난리 블루스다. 산자락 물가에 마음 내려놓고 쉬기 좋았던 이곳에 요즘 개발 바람이 한창이다. 보이느니 빈틈없이 들어선 카페와 식당, 부동산 업소들이다. 뮤지엄 그라운드는 용케도 이 난장의 끝자락, 비로소 시퍼런 산과 하늘이 후련하게 펼쳐지는 고샅에 있다. 폐부로 스며드는 산기운이 맑아 기분을 돋워준다. 뮤지엄 그라운드는 화가 전광영(79)이 설립한 사립미술관이다. 그는 이름을 좀 날린 정도에 그치는 화가가 아니다. 해외 화단에서도 알아주는 눈이 많다. 미국 뉴욕의 5대 미술관에 속하는 브루클린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초로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미술관을 개설한 이유가 있다. ‘후배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 이게 무슨 얘기? 열정과 재능을 다해 성장을 도모하는 신진 작가들에게 사심 없는 멍석을 깔아주겠다는 뜻이다. 인생 문제의 대부분이 노력 여부, 또는 운수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전광영은 화가들에겐 노력과 운보다 공정한 전시 기회를 부여받는 일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이건 그의 생생한 체험에서 유래한 진단이자 처방이다. 뮤지엄 그라운드 개관식 때 가진 간담회에서 그는 죽을힘을 다해 작업을 했지만 찬밥처럼 괄시받았던 젊은 날엔 ‘너무도 외롭고 힘들었다’며 개관의 변을 이렇게 토로했다. “대한민국은 화가가 작업하기 어려운 곳이다. 학연과 지연, 인맥을 통하지 않고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 않은가?” 이런 발설은 드문 게 아니다. 미술동네에도 너절한 승자독식의 풍조와 무리 짓기의 쇼가 일각에서 판을 친다는 걸 모르는 이가 몇이나 되겠나. 전광영은 이 코믹한 고질을 소리 소문 없이 조금치나마 깨트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렇다 할 전시 공간을 부여받지 못해 남몰래 애태우는 젊은 후배들에게 뮤지엄 그라운드를 ‘선물’로 제공, 거침없이 날아오르라 등을 밀어주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해서 미술관을 개관한 게 2018년. 그의 아들 전용운이 관장 직분을 맡았다. 뮤지엄 그라운드는 2500여 평 부지 안에 지은 지상 3층, 지하 2층 건물, 그리고 야외 잔디광장으로 구성됐다. 건축 설계를 맡은 사람은 전광영의 막내아들 전용천으로, 그는 ‘미술관 건물 자체를 작품’으로 생각하고 설계했다고 한다.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틀을 깨고 개성 넘치는 미술관 건물을 짓고 싶었다는 얘기다. 말은 그러했으나 묘한 발상과 기발한 파격 따위를 동원하는 일은 자제해서인가, 건물의 안팎 모습은 대체로 평범하고 수굿해 밋밋하지만 안정감을 준다. 개성을 추구하되 자칫 요란한 치레로 흐를 경우 오히려 건물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미감을 돋우되 기능성과 실용성을 중심에 둔 설계에 방점을 찍었던가 보다. 재미있는 건 미술관 건물 입구로 연결되는 통로다. 건물 외벽과 병행하는 가벽 형태의 구조물을 덧대어 조성한 좁고 어둑한 뜻밖의 통로. 관람객은 잠시 골목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이 통로를 통해 마치 물살에 쓸려 흐르듯 미술관 현관문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위트와 센스가 도드라지는 대목이다. 이왕 미술관에 왔으니 딴 생각 말고 미술과 만날 즐거움 하나로 설레어보라는 뜻으로 만든 통로라 보면 되겠다. 개관 이후 뮤지엄 그라운드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2019년 7월,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사진 작품 130여 점과 영상을 전시한 특별기획전을 통해서였다.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마그리트는 기상천외한 그림으로 명성을 날렸다. 상식 파괴를 본령으로 삼고 마치 가상현실과도 같은 그림을 그려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마그리트의 사진 작품과 영상을 국내 최초로 애호가들에게 선보인 뮤지엄 그라운드의 특별기획전은 성황을 이루었다. 이후 알아서 찾아오는 관람객 수가 확 늘었다는 게 아닌가. 기획전의 품질이 미술관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주요 변수임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옥상에서 커피 한잔을 이제 그림 구경을 해볼까. 전시실은 지하 2층에 있으며 모두 세 개다. 현재 세 가지 전시회가 펼쳐지는데 전부 2021년 10월 3일까지 계속된다. 제1전시실에선 설치미술가 정찬부의 ‘곰돌이 J의 2050년으로부터 온 초대장’전을 볼 수 있다. 정찬부는 다량의 플라스틱 빨대를 꼼꼼히 잇고 붙이고 색칠해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현시대를 플라스틱 문명기, 또는 플라스틱 천국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게다. 플라스틱만큼 현대를 사는 인간의 편리와 복리에 기여한 물건이 다시 있겠는가. 그러나 해양의 물고기들 뱃속에서조차 미세플라스틱이 나온다. 인간은 그 위험한 물고기를 먹는다. 사용엔 편리하나 사후 쓰레기 처리엔 난감해 골머리를 앓게 하는 게 플라스틱이다. 정찬부의 작품은 이 미워할 수 없으나 끌어안고 살 수만도 없는 플라스틱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환경 메시지를 담은, 이를테면 ‘플라스틱 프리’ 운동 차원의 작품이 아니다. 정찬부는 플라스틱 빨대를 촘촘히 엮어 동물이나 식물의 형상을 만들어 흥미롭고 어여쁘게 재생시켰다. 보잘것없는 쓰레기로 전락할 운명을 지닌 빨대에 생명감을 불어넣었다. 폐기될 사물마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머리와 영혼을 쥐어짜는 심각한 창작 행위만이 예술인 것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주변에 흔하디흔한 재료마저 흥미진진한 미술 작품의 원천이 된다는 걸 무언중에 귀띔하면서 삶의 모든 현상과 물상을 예술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달아준다.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슴을 탕! 치고 들어오는 뭔가 짜릿한 맛은 없어 아쉽다. 제2전시실에선 설립자 전광용의 작품전이 펼쳐지고 있다. ‘전광영 Chapter3: 집합 화법의 완성기 1996~2003’이라는 타이틀로. 그는 우리의 전통 한지를 오브제로 평면과 입체 작품을 해온 작가다. 어렸을 때 본 한약방의 약봉다리에서 영감을 얻은 그만의 한지 작업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자성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번 ‘집합’ 시리즈에 나온 유별한 작품들을 보면 그가 상상력의 대가임을 직감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스티로폼들을 고서 한지로 일일이 싸맨 무수히 많은 조각들을 프레임에 깨알처럼 촘촘히 붙여 대지의 원초를 느끼게 하거나, 한국적 전통 정서의 끌텅을 생각해보게 한다. 이건 다분히 실험적인 형태의 조형물이다. 전시실 하나를 통째로 장악하고 허공에 매달린 구체(球體) 작품은 시공의 벽을 뚫고 외계에서 날아와 멈춘 별똥별 같은 걸 연상시킨다. 전체적으로 모든 작품이 아름답다기보다 신비로우며, 추상적이지만 거침없는 직정(直情)의 산물이라서 감정이입이 수월하다. 그림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걸 포기할 각오가 돼 있는 게 화가다.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그림 하나에만 들입다 몰입하는 게 진짜 그림쟁이다. 전광영은 그림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극단적인 시도까지 두 차례나 했던 인물이다. 목을 걸고 그림에 매달렸으니 독종이다. 매너리즘을 극구 경계하며 작풍의 변신을 무수히 시도하기도 했다. 작품 세계의 확장과 성장에 대한 본능이 그토록 강렬하다. 그는 미술관 뒤편에 있는 대형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한다. ‘하루에 다만 1cm라도 변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새로운 조형의 지평으로 나아가는 거다. 애석하게도 이 치열한 사람과의 인터뷰가 예정됐었으나 불발에 그쳤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하니 어쩔 수 없다. 미술관 건물 옥상 테라스는 ‘카페 그라운드’다. 그림을 감상한 뒤 향긋한 커피 한잔 즐기기에 적격인 공간이다. 저만치 사위에서 술렁이는 산야와 흰 구름, 그리고 햇살과 바람…. 근사한 세상을 여기에서 다 보고 느낄 수 있다.
- 2021-06-04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