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보문산(寶文山) 사정(沙亭)공원에는 시비(詩碑)들이 있어, 언제 가도 느리고 깊은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1879~1944)의 이란 시가 발길을 붙잡는다. ‘출세의 해탈도 꿈입니다.’ 가슴에 꽂히는 구절을 새기며 추수 김관식(秋水 金冠植·1934~1980)의 를 읽는다. ‘저는 항상 꽃잎처럼 겹겹이 에워싸인 마음의 푸른 창문을 열어 놓고,’ 하늘을 바라본다.
다시는 못 올 눈물의 서정시인 박용래(朴龍來·1925~1980)의 ,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시비를 어루만지며 시혼(詩魂)에 젖어든다. 멧새의 울음 따라 후드득 아침이슬이 떨어진다. 화강석이나 오석(烏石)을 잘 다듬고 깎아 예인(藝人)들의 글씨로 새긴 전아(典雅)한 시비는 눈을 트이게 하고 마음까지 맑게 한다.
“박용래 시인의 시비 위에는 선생님의 브론즈 소녀상이 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워낙 순진무구한 시인인지라, 항상 하늘을 바라보는 순수한 소녀상을 빗돌에 더하고 싶었어요.” 대전시립미술관 찻집에서 최종태(崔鍾泰·1932~ )조각가와 나눈 대화였다. 전에도 전시장에서 여러 번 뵙고 인사는 드렸으나 그날은 선생 부부와 우리 부부가 전화로 약속을 하고 만난 뜻 깊은 자리였다. 마침 그해(2005년) 7월 20일부터 9월 7일까지 그곳에서 전작전(全作展) 형식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초기작부터 나무 돌 브론즈의 조각들은 물론 파스텔화, 드로잉, 매직화(magic pen으로 그린 그림), 조각의 구상 단계의 연필 스케치까지 미술관 전체에서 한 예술가의 모든 숨결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선생의 조각 작품은 수집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현대나 가나화랑에 부탁해도 일이년 기다리기가 다반사였다. 작품이 완성도에 이르기까지 오래 걸리고 과작(寡作)일 뿐더러 미술품 경매시장에도 작품이 나오지 않아 몇 년에 한 번 열리는 전시회만 기다려야 비로소 선생의 작품을 소장할 수가 있다. 선생의 작품을 수집하려 돈을 모으다가 다른 미술품을 수집하곤 하였다.
그래서 전략을 바꾸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판화, 드로잉, 매직그림들부터 사 모았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뜻을 세우고 기다린 끝에 지금은 몇 점의 조각 작품도 수집하게 되었다. 이 파스텔화는 인사동 노화랑에서 을 열 때 오백만원을 주고 바로 구입한 작품이다. 이 그림이 큰 사진으로 일간지에 소개되는 바람에 예서제서 구입하고자 해서 오픈 날 바로 떼어왔다. 선생은 수상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가 아주 깜깜한 지경에, 파스텔로 그림그리기를 하므로 그 어려움을 견디어냈다.”고 술회한 바 있다. 1984년에는 파스텔화만으로 전시회를 열어 국내외의 큰 호평을 받았다.
“나는 남자 그림은 네 명만 그렸다. 예수, 아기예수, 요셉, 그리고 내 손자뿐이다.”고 한 걸 보면 이 그림은 아기예수와 성모일 테지만, 성화(聖畵)가 아닌 여느 엄마가 아들을 기꺼워하는 모습으로도 읽힌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애수와 명상에 잠긴 눈망울에서 깊은 고요와 환희를 감지하게 된다.
조치원 인근 야산 기슭, 허름한 작업장에서 유영교(劉永敎·1946~2006) 조각가를 만났다. 잔설 위로 햇빛이 부서지고 바람이 제법 맵게 불었다. 40kg짜리 LP가스 빈 통으로 만든 난로에서는 장작불이 이글거리고 여기저기 색을 달리하는 대리석덩이가 흩어져 있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대리석 산지 카라라(Carara)에서 수입했다고 했다. 오전 작업을 끝내고 티 타임이라며 녹차를 따라 주었다. 흙에 뒹구는 저 돌덩이를 보며 얼마나 많은 사색과 명상으로 형상을 끌어낼 수 있단 말인가. 고뇌의 흔적으로 가득 찬 밑그림들이 벽에 빼곡하게 붙어 문풍지처럼 나부꼈다.
유영교 조각가는 1976년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8년 이탈리아로 유학하여 2년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조각가 에밀리오 그레코(Emillio Greco·1913~1995)와 페리클레 파치니(Pericle Fazzini ·1913~1983)를 사사했으며 그 후는 대리석 산지인 카라라 지역으로 옮겨 6,7년간 조각 작업을 하며 돌의 성격을 파악하고 국제적 미술 감각을 익혔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의 명작들도 카라라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유서 깊은 그곳에서의 작품 활동이 우리나라 많은 후학들의 카라라 진출의 교두보가 되었다.
1986년 귀국하고 대학에도 출강하면서 열정적으로 빼어난 대리석 작품을 탄생시켰다. 1996년 개인전에서는 초기의 소박한 여인상, 모자상 가족상에서 합(合)형태의 반추상과 구도자(求道者) 선승(禪僧) 등 심오한 인간 내면의 정신을 표출하고자 노력하였다.
“나의 작품들의 모티브는 자연에서 찾는다. 자연을 볼 때 바쁜 우리 눈으로 보지 말고 매우 느리게 돌아가는 자연의 시간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의 얼굴이 나타나는데, 그 고운 형상은 침잠의 미소를 짓게 한다.”고 작가노트에 쓰고 있다. 50세 이후로는 조각을 환경의 매체라 인식, 건축공간과 하나 되는 움직이는 조각을 시도하여 등의 역작을 남겼다.
이 천재 조각가의 서거 소식을 듣고는 먹먹한 가슴으로 하늘만 바라보았다. 아 아 무심한 하늘이시여!
이 은 대리석 작업이 무르익던 1992년 작으로, ‘이 애가 내 아들이에요!’ 엄마의 대견해하는 표정만으로 더없는 기쁨을 준다. 엄마의 풍만한 미소가 잔뜩 찌푸린 아들의 얼굴과 대조되어 웃음을 자아낸다.
여름의 한가운데, 배롱꽃을 바라볼 수 있음은 크나큰 축복이다. 긴 꽃타래에 꽃망울이 다투어 터지며 백 일간 피고 지고 한다 하여 나무 백일홍이라고도 부르는 담홍색, 보라, 흰색의 꽃은 그 기품 또한 맑고 깊다. 고창의 선운사나 안동 병산서원에 가시거든 수백 년 한자리에서 꿋꿋이 풍상을 견디어 온 배롱나무 꽃그늘에 서서, 굽은 둥지에 살며시 귀를 대고 영겁의 소리를 들어보시라.
“얘야, 나는 저 나무 백일홍이 활짝 필 때, 저승 가는 등불로 삼았으면 좋겠구나.” 하시던 어머니가 엄동의 눈꽃 속에 저승으로 가셨기에 더욱 안타까운 꽃, 긴긴 여름을 애틋하게 한다.
어머니에게 과연 나는 기껍고 대견한 아들인 적이 있었을까.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 리뷰어.
늦여름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處暑)를 지나 9월에 들어서니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다. 그러나 아직 한낮의 기온은 30℃를 넘나들며 막바지 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드는 9월에는 1년 중에도 큰 일교차가 사람을 괴롭힌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10℃ 이상 나므로 감기와 같은 질병도 기승을 부린다. 4계절 변화가 뚜렷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식물도 이런 환경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사람과 매한가지이다. 온대식물은 가을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고 해가 짧아지면 곧 겨울이 다가옴을 알아차린다. 스스로 체내의 생리적 리듬을 조절하여 겨울을 대비한다. 이 때 낮과 밤의 심한 일교차가 식물체의 휴면을 더욱 부채질한다. 그러므로 온대식물의 가을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왕성히 생장하는 계절이라기보다 열매를 키우고 노화에 들어가는 시기이다.
가을의 문턱인 9월은 꽃을 보기가 참 애매한 시기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꽃이 피어있는 식물은 거의 보이지 않고 풋내 나는 열매가 더 많이 보일뿐이다. 아직 본격적인 가을꽃이 피기에는 이른 계절이고 때늦은 여름꽃이 지금까지 남아있지도 않다. 생기 넘치던 봄은 물론 그렇게 뜨겁던 한여름에도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수많은 꽃들은 모두 지고 말았다.
그러나 여름부터 가을까지 길고 긴 날을 횃불 모양의 붉은 꽃이 오래도록 피고 지는 식물이 있다. 무려 “백일(百日)에 걸쳐 꽃이 피는 나무”라는 의미의 ‘배롱나무’이다.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 또는 ‘목백일홍’이라 하기도 한다. 장마가 끝날 때 즈음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여름철 더위와 땡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가을에 이르도록 지속적으로 꽃이 핀다. 붉은 배롱나무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 비로소 서리가 오고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녕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는 식물이다. 배롱나무 꽃은 장미나 백합처럼 화려하거나 향기롭지 않지만 단순하고 수수한 모양과 색깔이 더욱 정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발표된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가식없는 사랑과 굳건한 의지를 상징하는 식물로 등장한다.
조선시대 강희안이 지은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배롱나무 꽃의 품격을 높이 평가하여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 가운데 6등급으로 기록하였다. 배롱나무는 화단이나 길가에 많이 심는 국화과의 한해살이 풀인 백일홍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배롱나무와 구분하기 위해 초본인 백일홍은 ‘초(草)백일홍’ 또는 ‘백일초’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배롱나무는 충절과 청렴을 상징하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다. 신라 시대 설총이 방탕한 신문왕을 깨우치기 위해 들려주었다는 화왕계(花王戒)에 배롱나무는 충성심 깊은 신하로 묘사되었다. 또한 사찰을 비롯하여 서원이나 서당의 정원에 심어 신성함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긴 개화기간은 영원한 생명을 염원하는 의미로 무덤가에 많이 식재하는 식물이기도 하다.
부산에 있는 동래 정(鄭)씨 시조 묘의 양옆에 식재된 수령 800년에 이르는 천연기념물 168호 배롱나무가 대표적이다. 배롱나무의 꽃말은 ‘떠나는 벗을 그리워하다’로 알려져 있다. 그리운 임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을 배롱나무로 나타내었는지 모른다.
오늘날의 현대사회는 속도와 변화를 생명으로 하는 디지털 문화로 그려지고 있다. 현대 디지털 사회의 패러다임은 숨 가쁘게 빠른 급진적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현대인의 의식구조는 상호간의 이해를 통한 인간 본연의 소통과 느림에 의한 깊은 사고가 무시되고 있다. 그만큼 사회 곳곳에서 불신과 오해가 팽배해 공동체의 유대감이 무너지고 있다.
예전에 비해 우리의 삶은 더욱 편리해지고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었지만 현대인의 인간성 상실과 도덕적 가치의 혼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올해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정원 한구석에서 배롱나무는 어김없이 꽃을 피우고 있다. 수많은 종류의 꽃 가운데 유독 배롱나무는 화려함, 빠름 등과는 거리가 먼 꽃으로 인식되고 있다. 묵묵히 날씨가 더워지기를 기다렸다가 긴 기간 동안 느긋하고 지속적으로 꽃을 피운다. 소박하게 핀 배롱나무 꽃을 바라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림과 인내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배롱나무는 백일홍(百日紅)나무 또는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꽃이 적은 여름철에 백일 동안이나 피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의 꽃이 그렇게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송이의 꽃이 연속적으로 피고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멕시코가 원산인 초본 백일홍과 구별하기 위해 나무백일홍 혹은 목백일홍이라고 부르며, 배롱나무라는 이름도 백일홍나무에서 배기롱나무를 거쳐서 배롱나무가 된 것이다. 예로부터 ‘열흘 붉은 꽃이 없다(花無十日紅)’ 하여 꽃은 수명이 짧은 것으로 여겼는데, 배롱나무가 이처럼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것이 신기해서 이름 붙인 모양이다. 꽃색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천일홍(千日紅)이나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화단을 지키는 만수국(萬壽菊)의 작명동기 또한 이와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꽃이 오랫동안 피는 것을 보고 이름을 붙였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비단결 같이 부드러운 수피를 보고 이름을 붙였다. 일본에서는 나무타기의 명수인 원숭이도 이 나무를 타다가 수피가 매끄러워서 떨어진다 하여 사루스베리(猿滑)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파양수(?痒樹)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는 ‘매끄러운 줄기를 긁어주면 모든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간지럼을 타므로 파양수라 한다’라는 중국 명대의 꽃 백과사전 의 기록에서 연유한 것이다. 충청도의 향명에 ‘간지럼나무’, 제주도의 향명에 ‘저금 타는 낭’ 즉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배롱나무의 매끈한 수피가 여인의 나신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조선시대 사대부집 안채에는 금기시되었던 나무라고 한다. 절에 가면 흔하게 배롱나무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이 나무가 나무껍질을 다 벗어 버리듯 스님들 또한 세속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수행에 용맹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종소명 인디카(indica)는 인도가 원산지임을 나타내지만 실제로는 중국남부가 원산지이며, 자주색의 꽃이 핀다 하여 중국이름은 자미화(紫薇花)이다. 중국 사람들은 자미꽃을 매우 좋아하였다. 특히 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당 현종은 삼성(三省) 중 자신이 업무를 보던 중서성에 배롱나무를 심고, 황제에 즉위한 해에 중서성의 이름을 자미성으로 고쳤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과 대만 여러 도시의 시화(市花)로 지정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한여름에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소쇄원, 식영정, 명옥헌 등 남부지방의 전통조경공간에서 정원의 화목으로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명옥헌 원림의 연못 주위에는 스물여덟 그루의 붉디붉은 배롱나무가 7월부터 백일 동안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재현한다. 배롱나무의 또 다른 이름인 자미목(紫薇木)은 도교의 선계 중 하나인 자미탄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배롱꽃 만발한 명옥헌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있어서 선계이자 이상향인 셈이다.
무더운 여름날 속세를 떠나 배롱꽃 만발한 별천지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봄은 산수유로부터 느낀다. 산수유의 노란색이 눈에 밟히고, 베란다 밖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개나리가 한껏 부풀어 오르면 봄이 왔다는 설렘이 느껴진다. 올해는 유난히 기후 변덕이 심해 개나리꽃이 핀 다음 잎이 나기도 전에 벚꽃이 피고, 벚꽃이 만개하기도 전에 꽃샘추위가 오고, 다시 외투 안에 반팔을 입어야 할 만큼 덥고, 참 유별난 봄인 것 같다.
이 좋은 시기에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애들과 오랜만에 시내구경에 나섰다. 큰애는 외출보다는 엄마 아빠랑 같이 있는 것이 좋은지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그렇게 앞장서서 걷다 신호등 앞에서 대기하면서 주변 화단을 보며 한 마디를 한다.
“아빠, 저 나무는 키가 작아서 높은 곳에 있는 거예요?”
사진 속 화단은 나무의 생육심도를 확보하기 위해 마운딩한 것으로 보인다. 조경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마운딩을 하는데, 첫 번째는 수목의 생육환경을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마운딩 자체의 기능을 위해서다. 수목의 생육환경을 위한 마운딩은 지반이 생육하기 힘든 경우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아파트같이 지하에 주차장 등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는 인공지반의 경우 충분한 토양 깊이를 확보해줘야 식물들이 잘 살 수 있다. 식물별로 최소 살 수 있는 토양의 깊이(생육심도)는 잔디같은 초화류는 30cm, 철쭉같이 키 작은 나무는 45~60cm, 배롱나무같이 뿌리가 옆으로 자라는 천근성 수목은 90cm, 소나무같이 뿌리가 깊이 자라는 심근성 수목은 150cm 이상의 토양 깊이를 확보해 줘야 한다.
그래서 아파트단지에서 대형 교목을 식재하는 경우 대부분 마운딩을 한다. 이 밖에 지반이 바다를 매립해 만든 곳인 임해매립지이거나 쓰레기 매립지, 혹은 기존 지반이 파쇄암이나 자갈이 많이 섞인 경우 꼭 마운딩을 해서 식물이 생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특히 임해매립지의 경우 염분이 지하수위의 상승에 따라 올라올 수 있으므로 염분차단용 자갈층을 두거나 염해차단제를 둬 사전에 방지를 해야 한다. 마운딩 기능으로는 경관, 차폐, 방음 등이 있다. 경관용 마운딩은 흔히 공원에서 볼 수 있는데, 지형적으로 입체감을 줄 수 있어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차폐용 마운딩은 쓰레기매립지나 하수처리시설 같은 혐오시설에 많이 사용한다. 방음용 마운딩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조성하는 경우다. 조성 방법으로는 소음이 발생하는 쪽으로 가까이 높게 쌓으며, 마운딩 상부와 주변에는 식재할 수 있도록 평평하게 한다. 식재 시 하층목, 중층목, 상층목을 지엽이 치밀한 수목으로 조밀하게 식재해 방음 기능성을 높이고, 소음으로 피해를 받는 곳(주거단지 등)이 가까운 경우 효과를 높이기 위해 방음벽을 따로 설치한다. 이렇게 방음용 마운딩과 식재, 방음벽 등이 설치된 경우는 최근에 조성된 주거단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나무가 잘 살도록 하기 위해 주변 흙을 저렇게 북돋워 준 것이란다. 나무에 뿌리가 있는 것은 민재도 잘 알지? 뿌리가 잘 자라야 나무도 잘 자랄 수 있는데, 주변에 흙이 부족하면 뿌리가 못 자라니까 흙을 높이 쌓아준 것이란다.” 큰애가 대뜸 나무 곁으로 가서 서더니 엄마 흉내를 내면서 나무를 쓰다듬는다. “너도 엄마 말 잘들어야 키 큰다. 근데, 엄마는 어디 계시니?”
내장산국립공원사무소는 내장산을 4계절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대규모 야생화공원을 조성다고 22일 밝혔다.
42억원을 들여 내장산탐방지원센터에서 내장사까지 2.5km 주변의 땅 3만5천㎡에야생화공원을 만든다.
오는 4월 착공해 늦어도 내년까지는 완공할 계획이다.
공원에는 내장산에 자생하는 야생화와 꽃나무를 주로 심을 방침다.
일단 봄에 꽃을 피우는 철쭉, 조팝나무와 여름철 꽃인 꽃무릇, 백양꽃, 배롱나무 등을 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누구나 찾을 수 있도록 평지에 공원을 만들고 점자블록이나 음성안내시스템 같은 편의시설도 갖춘다.
공원 조성에 국립공원을 사랑하는 국민 참여도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개인이나 단체가 야생화를 기증해 심고 직접 일정한 면적을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내장산국립공원사무소는 공원을 만들면 더 다양한 볼거리가 생겨 봄과 여름에도많은 탐방객을 불러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장산은 전국적인 단풍 명소로 탐방객 80%가 가을에 몰리는 한계를 안고 있다.
서윤석 소장은 “내장산국립공원은 5천300여종의 동·식물이 있는 자연생태계 보고”라며 “이런 가치를 살려 4계절 관광 명소로 만들고 탐방객을 더욱 늘려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