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강수연과 시인 김지하가 세상을 떠났다. 잇단 문화계의 비보에 대중은 큰 슬픔에 빠졌다.
강수연은 지난 7일 향년 55세로 별세했다. 지난 5일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지만, 끝내 의식을 찾지 못했다.
강수연의 영결식은 오는 11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다.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임권택·배창호·임상수·정지영 감독, 안성기·김지미·박정자·손숙·박중훈 배우 등이 장례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4세 때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강수연은 영화 ‘고래 사냥 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등에 출연하며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1987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스타 타이틀을 최초로 거머쥐었다. 삭발을 하며 연기혼을 보여준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도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에는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 숱한 화제작을 내놓았다.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2001년에는 SBS 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 정난정 역할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했다.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35.4%를 기록하며 공전의 인기를 누렸고, 그해 강수연은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고인은 ‘써클’(2003), ‘한반도’(2006), ‘주리’(2013) 등 영화에 간간이 출연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작품 활동이 거의 없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 영화 ‘정이’(가제)에 주연으로 캐스팅돼 단편 ‘주리’(2013) 이후 9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정이’는 고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의 작품을 남긴 김지하 시인은 지난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토지문화재단에 따르면 시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한 끝에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빈소는 연세대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 씨(작가)와 차남 세희 씨(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겸 토지문학관 관장)가 있다.
1941년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시 ‘황톳길’로 등단한 후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꼽혔다. 이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1973년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했으며,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 로터스상과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시집을 발표하며 저항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외에도 고인의 대표 저서로 ‘생명’, ‘애린’, ‘황토’, ‘대설(大設)’ 등이 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9일 페이스북을 통해 “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은 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우리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시인을 추모했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이동권 확보를 위한 엘리베이터 등 이동편의시설은 노인, 유모차 이용자 등 교통약자를 위한 필수 시설이며, 노동자의 안전과도 직결됩니다.”
지난 4일 장애인, 노인, 양육자, 노동자 단체가 한 자리에 모였다. 한 목소리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이동권 지하철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우리 모두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빚졌다”고 발언했다.
실제로도 그럴까.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20년 발표한 교통약자 이동편의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교통약자는 총 인구 5138만 명 중 약 30%에 달하는 1540만 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845만 명으로, 절반이 넘는 55.2%에 달한다. 그 다음으로 어린이가 324만 명, 장애인이 263만 명 순이다.
공동회견에 참여한 허영구 노년알바노조(준) 대표는 “노인들도 이동하지 않으면 인권이나 보람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며 “이번 전장연의 지하철 투쟁을 통해 노인들이 타는 엘리베이터가 장애인들의 희생과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전장연 동지들의 투장에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정치인들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관련, 소수자를 혐오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갈등을 키운다는 비판이 일고 있으나, 지자체에서는 이동권 보장을 위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2024년까지 지하철 모든 역사에 ‘1역사 1동선’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지난 3일 밝혔다. 1역사 1동선이란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교통 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로 이동 가능한 동선을 뜻한다.
현재 공사에서 운영 중인 서울지하철 1~8호선 275개 역 중에는 254개 역에 1역사 1동선이 확보돼있다. 엘리베이터가 전혀 설치되지 않은 용답역과 남구로역은 각각 올해 5월과 2024년까지 설치를 완료할 예정이다.
대통력직 인수위원들 역시 전장연 측을 만나 입장을 들었다. 지난달 29일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인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과 김도식 인수위원 등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등과 30분간 면담을 진행했다. 인수위 측에 전달한 ‘장애인 권리 민생 4법 재개정 요구’에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장애인 콜택시 같은 특별 교통수단 지원 등이 담겼다. 김도식 인수위원은 “더 기다리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20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부분들은 단기·중기·장기적인 면에서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그럼에도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권 보장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버스의 경우 교통약자들이 지역 간 이동할 때에 이용하는 교통수단 중 가장 높은 이용률(55.1%)을 보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각 도시 별 시내버스 중 저상버스 비율은 서울시 57.8%, 부산시 27.3%, 대구 34.9%, 인천 22.7% 등 여전히 저조하다. 저상버스는 차체가 낮고 출입구에 경사판이 설치돼 접근성이 비교적 좋은 버스다.
그나마 저상버스는 형편이 나은 축에 속한다.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 예산의 90%가 저상버스 도입에 편중됐기 때문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5일 공개한 ‘교통약자 이동권 예산 현황 분석 및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배정한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등) 도입보조사업 예산은 93억6100만 원으로, 비율로는 8.6%에 불과했다.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 지원사업 예산은 2019년 이후 매년 감소해 올해는 5억 원이 책정됐다.
보고서는 “고령 인구 비율이 17.3%에 달하는 등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나라 현황을 고려할 때, 교통약자 지원사업의 확대는 타당성이 충분하다”며 “국가는 생활 편의에 필수인 기반 시설과 최소한의 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많은 노인을 비롯한 많은 비장애인들,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과 도시 서비스 접근성을 함께 끌어올린다.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조한진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이 약한 몸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훨씬 안정적이고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기력이 없어지고 건강을 잃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순리다. 지하철을 메운 외침을 출근길 가로막는 걸림돌로만 치부하면 안 되는 이유다.
산수미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곳이 강원도 영월군이다. 서린 역사와 보유한 유적은 또 어떻고? 그저 심심풀이로 여행을 갔다가도 오감 만족으로 기억에 새겨지는 곳이다. 박물관, 문화 공간, 전시장의 합이 자그마치 20여 개이니 말 다 했다. 2019년에 개관한 미술관 ‘젊은달 와이파크’는 개중 등등한 기세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주말이면 수백 명의 관람객으로 북적인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 벌어진 이변이다. 영월 변방 주천면 언덕배기에 있다.
‘젊은달 와이파크’에서 맨 먼저 만나는 건 입구를 이룬 설치작품 ‘붉은 대나무’다. 빨간 페인트를 입힌 수백 개의 기다란 강철 파이프로 작은 대나무 숲을 연출했다. 말이 대나무 숲이지 저만치서 보면 길길이 치솟는 불길을 연상시킨다. 빨강은 열정과 절정의 상징색이다. 욕망과 유혹과 혁명의 표식이기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엄습해 교감신경을 일깨우며 심리적 침체를 털어내게 한다. 그렇다면 ‘붉은 대나무’ 입구를 들어서며 가슴을 빨강으로 물들여 기분을 기차게 돋우라는 권유? 미술관에 차려진 성찬을 포식하기 전에 입맛을 다시라는 애피타이저? 담긴 뜻이 한둘이 아닐 테다.
‘붉은 대나무’를 만든 이는 대지미술을 추구하는 조각가 최옥영이다. 강릉 정동진에 대형 미술관 ‘하슬라아트월드’를 세워 명소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는 내친김에 ‘젊은달 와이파크’를 2차로 설립해 다시 한번 실력을 입증했다. 빨간색은 최옥영의 시그니처 컬러다. ‘붉은 대나무’만이 아니라 미술관의 거대한 파빌리온(가설 건축물)에도 통째 빨강 물감을 쏟아부었다. 파란 하늘, 초록 산야, 그리고 빨강의 선명한 색채 대비가 주는 감흥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라는 뜻에서다.
미술관 본관으로 향하는 야외 동선을 따라 걷는다. 미지근한 일상에서 벗어난 쾌감이 오롯하다. 불면증과 우울증이 서식하는 도시의 권태를 잠시나마 멀리에 뒀으니 이게 어딘가? 미술관 외벽을 이룬 산과 하늘의 표정은 잡티 없이 해맑아 순수하다. 완벽한 회화가 아닐 수 없다. 자연이 그리는 미술을 사람의 예술과 아울러 감상할 수 있다는 건 이 미술관이 지닌 미덕이다. 외부의 자연과 수시로 조우할 수 있도록 건축과 공간을 개방적으로 구성했다.
본관 로비로 들어서자 커피 향이 그윽하다. 매표소를 겸한 카페 공간이다. 미술관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길모퉁이 작은 찻집에서처럼 농밀한 운치를 즐긴다. 시스템 전환이랄까? 요즘 미술관들은 필수 부속처럼 카페를 운영한다. 미술과 커피의 조합이 거두는 효율이 커서다. 미술관은 커피를 팔고 관람객은 한 줌의 낭만을 산다. 커피 한잔과 내 인생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커피를 혀로 굴리며 예술을 생각해보는 잠깐의 휴식은 비루한 삶을 잊게 한다. 일러 ‘소확행’이다.
상상력을 돋우는 ‘목성’
카페에서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거대한 돔 안으로 들어선다. 철골빔 뼈대에 일정한 크기로 빠갠 소나무들을 굴비 두름처럼 촘촘히 엮어 쌓은 돔이다. 이 미술관의 설치작품 대부분은 최옥영의 생산물. 대형 나무 돔 역시 그렇다. 타이틀은 ‘목성’(木星)이다. 작가는 우주에 사는 목성이 별똥별처럼 떨어져 내린 이벤트를 상정했나? 그는 나무 무더기를 무수히 쌓아 동굴을 닮은 설치를 하고서 목성을 보라 한다. 광폭의 감성 사이즈로 우주를 느끼라 한다. 그렇다면 ‘목성’은 우주의 축약이며, 신과 우주를 향한 외경을 표출한 고대 로마의 판테온처럼 신성하다. 최옥영의 창작 변을 간추리면 이렇다.
‘무한의 영역인 우주를, 상상의 우주를 조각적 형태로 만들었다. 이는 생명의 분화구를 상징한다. 원초적인 힘과 사랑, 그리고 우주적 활력을 돔 안에 쏟아냈다.’
‘목성’은 대작이다. 높이 15m, 지름 12m에 달하는 원형 구조물이다. 꼭대기엔 휑하게 구멍을 내 하늘을 보게 했다. 늘 거기에 있는 일상의 하늘과 돔의 구멍을 통해 올려다보는 하늘은 달라 상상력을 돋운다. 내가 하늘 아래 존재하는, 또는 하늘과 공존하는 썩 의미 있는 생명체임을 자각하게 한다. 구멍으로 쏟아지는 빛과 나뭇더미 틈새로 들이치는 빛살 역시 일상의 빛을 바라볼 때와 달라 유심히 반추하게 한다. 작가의 의도를 따라 읽자면, 저 빛들의 산란은 우주적 쇼다. 우리가 늘 눈에 달고 사는 빛의 출처가 무한 우주라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우는. 급기야 나 역시 우주에 동참한 하나의 소우주임을 느끼게 한다.
‘목성’을 뒤로하고 이제 오만 가지 조화(造花)를 오브제로 삼은 설치작품 ‘시간의 거울-신사임당이 걷던 길’과 만난다. 박신정(그레이스 박)의 작품이다. 여성을 사회적 타자로 방기한 시대를 살았던 신사임당의 삶과 내면을 칡넝쿨과 꽃, 그리고 거울을 설치해 조형했다. 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은 꽃들의 퍼포먼스에 기뻐 팔짝팔짝 뛰며 인증샷을 찍는다.
박신정은 최옥영의 부인으로 ‘젊은달 와이파크’의 관장이다. 화가 부부의 협연으로 미술관을 구축, 공간 곳곳에 선율과 리듬을 부여한 셈이다. 이곳엔 원래 ‘술샘박물관’이 있었다. 주천면의 유별한 술 문화와 양조 역사를 홍보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운영이 신통치 않아 먼지를 뒤집어쓰고 버려지다시피 한 걸 박신정 부부가 미술관으로 살려냈다. 술 박물관이 시들고 미술관이 꽃 핀 것. 미술관이 생동하면서 숨이 넘어가던 술 박물관도 회생했다. 다시 말해 미술관이 술 박물관을 옆구리에 끼고 동행한다.
‘젊은달 와이파크’의 주조음을 탄주하는 건 어디까지나 최옥영의 작품들이다. 재생타이어 수백 개로 만든 ‘블랙 드래건’, 쓸모를 잃은 널빤지들을 조형해 별의 원초적 에너지를 은유한 ‘우주정원’, 금속 재료로 회오리치는 바람기둥을 만들어 승천하는 용을 상징한 ‘실버 드래건’ 등 다수의 설치작품이 스케일과 볼륨을 과시한다. 그렇다고 난해하지 않다. 뭐가 뭔지 모를 관념의 카오스로 애먼 관람객의 기를 죽이는 현대미술의 경향과 달라 감정이입이 쉽다. 최옥영이 구현하는 대지미술이 자연주의의 계보라는 걸 고려하면 작품 이해가 더 쉽다.
재미있는 미술관이란? 어디서 도무지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는 미술관? 그렇다면 이 미술관이다. 공간 구성의 핵을 이룬 작품 ‘레드 파빌리온’을 보라. 철제빔과 철판, 쇠 파이프만으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온통 빨강을 칠해 야릇한 미감을 구현했다. 미술관의 랜드마크다. 이 흥미로운 구조물은 전시장이자 통로다. 공중에 걸쳐진 통로 바닥은 숭숭 구멍 뚫린 철판이라 마치 허공을 걷는 듯 묘한 느낌을 준다. 붉은 창살 밖으로는 푸른 자연이 환히 보여 작가의 의도가 비친다. 그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하늘, 산, 들판, 마을, 허공에 부유하는 미세먼지, 그리고 사람까지 모두 우주를 이루는 미립자라는 걸.
적막한 산촌이다. 길섶은 잔설로 하얗다. 해발 500m 고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토박이들은 이곳을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친다. 좀 전에 빠져나온 문경의 도심이 현세의 바깥처럼 멀어진다. 세사의 아귀다툼도, 부질없는 불화도 틈입할 수 없는 오지이니 소란과 소동을 싫어하는 이에겐 낙원? 이창순(67, 흙집펜션 산모롱이 대표)에겐 그랬다. 조여진 마음의 현(絃)을 탁 풀어놓고 느린 선율처럼 여생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적지라 봤다.
“귀촌지를 물색하다가 이 마을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야, 여기다! 더 볼 것도 없다! 내심 환호성을 질렀지.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셈이다.(웃음)”
건설회사 토목 담당 직원이었던 남편 이경구(69)를 따라 도시를 전전하며 살았던 이창순에게 귀촌은 오래 묵은 숙원이었단다. 나, 언젠가 시골에서 살리라. 새들이 지저귀는 뒷산을 산책하고,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음악을 즐기고, 밤엔 별처럼 떠오르는 상념을 건져 올려 새끼줄을 꼬듯 긴 글을 쓰며, 나 마침내 산골 자연의 일원으로 돌아가리라. 그런 염원이 샘물처럼 퐁퐁 솟았던 모양이다. 진심으로 간절하면 뛰어들게 마련이다. 그는 상주시에 있었던 모든 살림을 정리하고, 과녁을 향해 직진하는 화살과도 같은 쾌속질주로 귀촌을 결행했다.
이창순이 이 산촌에 옴짝달싹 못 하게 꽂힌 건 수려한 산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착한 가격으로 나온 너와 지붕 황토집이 그를 행운처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준공검사도 마치지 않은 신축 흙집의 평화롭고 참신한 자태에 억누르기 어려운 감흥을 받았던 것. 결함이나 난관이 없는 귀촌이었던 셈이다. 매사 꼼꼼하면서 과묵한 성정의 소유자라는 남편 역시 아내의 주동에 선선히 따랐단다. 결국 이창순은 이상적인 귀촌 생활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며, 이제 낭만과 만족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때로 따분하면 변덕을 부리는 법. 인간의 반응이 어떠한지 조사하기 위해 심술쟁이가 된다. 뜻하지 않게 남편이 너무 이른 실직을 했다는 게 아닌가.
어휴, 이제 뭘 먹고 살지?
“우리가 귀촌한 게 15년 전이다. 당시 남편은 겨우 50대 초반이었다. 한창 일할 때라 상주시에서 직장 생활을 계속하며 주말부부로 살기로 하고 귀촌을 했던 거다. 그런데 귀촌 1년 만에 남편이 실직했다. 좋았던 시절이 단 1년 만에 끝날 줄을 어떻게 알았겠나? 어휴, 이제 뭘 먹고 살지? 생계가 순식간에 막막해지더라고.(웃음)”
미리 모아둔 생활자금이 없었나?
“가진 재산 전부를 긁어모아 540평 대지에 지은 황토집을 샀다. 남편의 수입으로 살면서 은퇴 이후를 대비할 경제활동을 천천히 모색하면 된다고 구상했었는데, 돌연한 실직으로 비상 상황을 맞이했다. 그렇다고 기죽어 지낼 일도 아니지. 뭔가 돈벌이를 찾아내면 된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외떨어진 적막강산 시골에서 호구책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결혼 이후 난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식 농사가 최고려니 하고 집 안에서만 살았으니까. 이런 내가 시골에서 가능한 돈벌이가 무엇일까? 궁리 끝에 답을 찾았다. 전에 곶감 명산지인 상주시에 살며 감 깎기 알바를 했던 경험을 살려 곶감을 만들어 팔면 되겠다는 착상이었지.”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결론이었나?
“아니다.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된 김에 역할 바꾸기를 하기로 했다. 남편에게 기대나 원망을 가질 거 없다, 이제부터 돈은 내가 벌겠다! 이런 결심을 한 뒤 내가 찾아낸 아이디어였다.”
수고한 당신, 이제는 쉬라? 그 진취적인 발상에 부군의 반응은 어땠나?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 부러워할 제안인데.(웃음)
“별 뚜렷한 반응이 없었다.(웃음) 우리 세대 남성들이 흔히 그렇듯, 남편 역시 지독한 가부장적 위신을 중심에 놓고 살았다. 그게 하루아침에 변하겠나? 그러나 시골에서 15년을 살면서 긍정적으로 변하더라. 이건 귀촌으로 얻은 소중한 선물의 하나다.”
과거에 견줄 바 없이 원만한 부부 관계를 누린다는 얘기다. 도시에서와 달리 부부가 하루 24시간을 거의 함께 지낼 수밖에 없는 게 시골 생활이다. 이는 금슬을 북돋울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정반대로 상대의 단점을 새삼 적나라하게 감상하고 괴로워 악몽을 꾼 사람처럼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 이창순은 후자의 늪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거다. 스스로 먼저 변함으로써 남편의 변화까지 유도하고자 했다. 이 웅장한 의도가 귀촌의 한 가지 목표였는데 결국 성과를 거두었다는 얘기다.
‘발효곶감’을 개발해
곶감 사업은 어땠을까? 우아한 전원생활을 밑그림으로 삼은 그의 귀촌은 곶감 생산에 뛰어들면서 돌연 귀농으로 선회했다. 감나무 과수원에서 붉게 영근 감을 사들여 곶감으로 가공 판매해 수익을 거두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농사치고 만만한 게 있던가. 시행착오가 많았다. 강인한 체질과 바지런한 기질로 안팎을 이룬 그였지만 힘에 부쳐 고꾸라질 지경에 빠지기도 했다. “허! 그거 집어치우라니까!” 듣느니 매양 남편의 퉁바리였다. 그러나 그는 귀를 틀어막고 탕탕 행진했다. 남편의 핀잔을 차라리 응원의 함성으로 받아넘겼다.
“나에겐 장점이 하나 있다. 뭐 하나에 몰입하면 옆에서 누가 죽어 나가도 모른다. 일단 곶감 농사에 뛰어들었으면 10년은 맞붙어봐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했다. 덕분에 이젠 알아주는 이가 많은 곶감 생산 농가로 도약했다. 그러기까지 시련이 숱했지만.”
어떤 시련이었나?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첫해엔 초보자로서는 과도한 물량인 감 4만 개를 사다가 곶감을 만들었다. 근데 별로 판 게 없었다. 초기 한동안의 연매출이 불과 기백만 원에 불과했다. 판로를 찾기 어려워서였다. 이상 기온으로 5만 개의 곶감이 상해 모조리 폐기한 해도 있었다.”
그럼에도 마침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SNS 마케팅을 적극 구사했다. 그보다 유력한 건 재래식 발효곶감을 개발한 데에 있다. 곶감 농가들이 다들 유황 훈증을 해 상품을 만든다. 유황을 써 주황빛을 내고 곰팡이도 잡는 것인데, 자칫 과도하면 건강에 해로울 수밖에. 유황 훈증이 위험하다 판단한 나는 자연 건조 방식을 활용했다. 유해균 제거를 위해 오미자액과 식초를 감 표면에 도포했고. 이렇게 해서 시장에 내놓은 게 ‘이창순 발효곶감’이다. 이건 차별화된 고품질 곶감이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 소비자들의 호감을 사게 됐다.”
곶감을 전공으로 삼아 오랫동안 허우적거렸지만 결국 좋은 학점을 받았다. 이창순의 종목은 곶감에 그치지 않는다. 투 트랙 전략으로 귀농 열차를 가동해 달린다. 민박을 병행하고 있으니까. 민박 영업의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손님이 넘쳐 방이 부족했던 이웃의 민박집에서 이창순의 방 하나를 빌려 쓴 게 동기였다. 옳다구나, 이제 민박이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황토집은 물론 주변의 순수한 자연환경이 민박의 최적 조건에 해당한다는 걸 비로소 깨닫고 민박 사업에 시동을 걸었던 거다.
“남편을 설득해 집을 증축했다. 토목 전문가인 남편이 직접 황토방 세 칸을 지었다. 이름을 지어 붙이고 블로그에 스토리를 올리는 것으로 민박을 시작했지.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즐거움에 힘든 줄 모르고 땀을 쏟았다. 당장의 성과가 어떻게 나오든 10년은 밀고 가야겠다는 각오로.”
펜션이나 민박집의 경쟁이 치열하다. 업체들의 운영 실정은 어떻다고 보나?
“내가 한때 문경시 민박협회 대표를 맡았는데, 다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잘되는 곳은 대략 10%에 불과할 정도지. 우리 집처럼 잘되는 곳은 드물고.”
인터뷰 중에도 예약 전화가 걸려오고, 투숙객들이 들이닥친다. 겨울철 비수기임에도 씽씽하게 돌아가는 것. 이 민박집은 어떤 매력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일까?
“‘조용하게 제대로 쉬어가는 민박집’이라는 테마를 정해 퀄리티를 높였다. 가령 방에 TV를 들여놓지 않았는데, 고요한 산골에서 가족들이 충분한 대화의 시간을 즐기길 바라서다. 원하는 이들에겐 산나물 일색의 자연 밥상을 조식으로 제공한다. 이러한 요소들에 만족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자리가 잡혔다.”
성장 과정은 순조로웠나?
“곶감 사업과 마찬가지로 초기엔 어려웠다. 집어치우라는 남편의 볼멘소리를 번번이 들었거든.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블로그 마케팅이다. 블로그 관리에 잠시만 소홀해도 손님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고서 운영에 충실을 기했다. 그게 성장의 토대였다.”
성공한 귀농 사례로 이름났더라. 소득은 얼마나 올리지?
“곶감과 민박을 합친 작년 매출이 1억 1000만 원이다. 강소농 대열에 오른 셈이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연매출 목표치 3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달려가야 한다. 요즘 내가 생각한다. 아하, 나도 부자가 될 수 있겠구나!(웃음) 얼마든지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사는 거다. 귀농으로 나를 재발견한 셈이지. 사업만이 아니라 삶 자체를 새롭게 변모시킬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는 자신에게 찬사를 바친다. 어라, 내 안에 사업 기질이 있었네? 긴 잠에서 퍼뜩 깨어난 사람처럼 놀란 눈으로 자신이 거둔 성과를 돌아보며 남모를 도도한 성취감을 느낀다. 밝은 미래에 관한 비전으로 설렌다. 한없이 수동적으로 소심하게 살았던 과거의 이창순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한없이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장부 이창순이 등장한 것이다. 과거의 삶은 상처의 전시장에 가까웠던가? 그는 여성이자 아내로서 괴롭게 감내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일상의 구속과 아픔을 이 산촌에서 글로 써 청산한 걸 귀농이 준 최상의 선물로 여긴다. 그가 쓴 글 더미들은 책으로 출간됐다.
이창순 씨가 주는 귀농 Tip
•반드시 부부가 함께 귀농하자. 부부 협업이 아니고선 난관을 헤쳐나가기 어렵다.
•귀농엔 강인한 체력도 필수다. 나만의 건강법을 고안해 일상적으로 실천하자.
•정책자금에 의존하는 귀농은 위험하다. 자칫 빚더미에 올라앉을 수 있어서다.
•민박을 할 경우 무엇보다 입지 여건부터 따져야 한다. 맑은 계곡을 낀 곳이라면 최적지다. 청결한 침구, 따뜻한 사교, 고객 불편 사항의 신속한 처리 등도 관건이다.
•SNS 마케팅을 구사하라. 판로 확보에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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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되기 싫다가 연결되고 싶다가
알아주기 싫다가 알아주고 싶다가
전화하기 싫다가 전화하고 싶다가
이해하기 싫다가 이해하고 싶다가
안아주기 싫다가 안아주고 싶다가
글 올리기 싫다가 글 올리고 싶다가
몇 해 전 제가 SNS에 올렸던 글로, 마음 미장공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까? 확실합니까?
암요, 당연하죠.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관심받기 위해 사는 사람입니까?
예, 맞습니다.
외로움과 관종 사이 : 시선의 감옥
“세상에는 큰 관종과 작은 관종, 그리고 자신은 아니라고 우기는 관종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종 중의 관종입니다.”
스스로를 ‘관종’이라 고백한 제게 어떤 분은 자신을 ‘관종인 듯, 관종 아닌, 관종 같은 관종’이라고 유행가 가사에 빗대어 말하기도 합니다. ‘관심종자’(關心種字)라는 말을 줄여서 흔히 ‘관종’이라고 말합니다.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어 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병적인 상태에 이른 사람을 부르는 이 말이 처음에는 비하나 조롱을 의도했다면, 요즘에는 누구나 내면에 갖고 있는 당연하고 정상적인 욕구나 욕망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서로 관종이라고 놀리거나 흔쾌히 관종임을 인정하며 웃음바다를 만드는 장면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머리를 자르거나, 평소에 안 입던 치마를 입거나, 염색을 하거나, 또는 인터넷에 글을 새로 올리거나, 프로필 사진을 바꾸거나 할 때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 마음일까요?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 나보다 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친구 수도 훨씬 많고, 좋아요 같은 공감 숫자가 몇 배, 몇 십 배 많을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부러움을 넘어 질투심이 샘솟고, 자신을 탓하고 자학하면서 지독한 외로움에 빠집니다.
외로워서, 연결되고 싶어서, 관계를 맺으려고 시작한 그런 행위가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위축시킵니다. 관심을 받고, 공감을 얻고, 위로와 인정을 받으려고 시도한 일에서 정작 우리 자신을 소외시키고, 살아 있는 유령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타인이라는 ‘시선(視線)의 감옥’에서 우리는 언제쯤 탈출할 수 있을까요? 누구를 위해서 뭔가를 바꾸고, 새로 꾸미고, 주저리주저리 자기 담벼락이든, 남의 공간이든, 심지어 뉴스 기사 댓글로라도 답을 달면서 도대체 왜 이러고 살까요?
외로움은 디폴트다!
바로 외로움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미치도록 외로운 탓입니다.
사랑과 관심에 목마른 우리는 외로움을 디폴트(Default)로 살아갑니다. ‘채무 불이행’을 뜻하는 경제용어가 아니라, 여기서는 컴퓨터 사용할 때 시스템이 자동으로 적용하는 미리 정해진 값이나 조건을 말합니다. 인간인 이상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기에 외로움은 디폴트요, 미리 정해진 운명 같은 상수(常數)라 하겠습니다.
몇 해 전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유명 연기자가 세상을 등졌는데, 그가 생전에 남긴 인터뷰에서 연예인으로 살아온 지난 20여 년 동안 단 하루도 외롭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외로움의 끝은 세상과 영원히 이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기와 명예, 사랑을 받았던 사람도 이 넓은 세상에 내 편이 한 사람도 없다고 느낄 때 외로움에 질식되고 맙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모임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다고 느낄 때 실제로 우리 뇌에서 통증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내 영혼과 육신을 갉아먹는 외로움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외로움을 대하는 법
수선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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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라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중에서
시인 정호승이 노래한 수선화의 외로움은 뭘까 생각해봅니다. 그 수선화가 우리 인간일 테니까요.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자기 모습에 반해 사랑에 빠져버린 나르시스가 결국 물속에 몸을 던지고 그 뒤 피어난 꽃이 수선화입니다. 외로움을 잘 견디는 방법은 외로움을 뛰어넘어 극복하는 것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외로움에 골몰하다가 접한 이 시에서 저는 퍼뜩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현대 인류는 나르시스로 상징되는 자기애(自己愛, Narcissism)가 결핍되었기에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것은 아닐까요. 정신분석학 용어인 자기애는 크게 병적인 인격 장애와 건강한 나르시시즘으로 구분됩니다. 외로움 처방전으로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히 건강한 자기애를 말합니다. 이것은 ‘고독’이란 말과 긴밀한 관계를 갖습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른가요?
우리는 어렸을 때 특히 사춘기에 인생에 대해 심오한 뭔가를 깨달은 양, 멋을 부리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너 뭐하고 있어?” 이렇게 동무가 물을라치면 한껏 어깨에 힘을 주고 “짜식, 나 고독을 씹고 있지” 이렇게 대답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독일 철학자이자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혼자 있음을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혼자 있는 고통이 외로움(Loneliness)이라면, 스스로 택한 혼자됨의 즐거움이 고독(Solitude)이라고 합니다. 외로움은 상실에서 비롯되기에 필연적으로 빈 가슴이 됩니다. 친구나 연인, 팬, 지지자 등 잃어버린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고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내가 타인을 필요로 하는데도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한 소외가 외로움이라면, 고독은 타인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홀로 두는 주체적이고 긍정적인 감정입니다. 내가 원해서 확보한 시간을 내 의지로 채우는 즐거움이 고독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상태인지, 즉 ‘자발적’인지 아닌지가 외로움과 고독을 결정적으로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결국 (외로움을) 피할 수 없으면 (고독으로) 즐겨야겠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내가 행복하기 위해 말입니다.
법정 스님이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역설한 것도 외로움보다는 고독에 주목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태어날 때, 세상을 뜰 때 본질적으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사람이지만, 그러면서도 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게 바로 우리지만 홀로 있을 때 진리에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며, 자기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고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시, 그림, 음악 같은 예술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처절한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꾼 데서 비롯되지 않을까요. 괴테가 말한 것처럼요. “영감을 받는 것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외로움과 고독을 사전적으로 정의하자면 사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철학적·심리학적·실존적으로 구분될 뿐입니다. 앞의 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안고 살아야 하는 외로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이 떠오를 거라 믿습니다.
자발적 고독은 나에 대한 사랑
바야흐로 혼술, 혼밥, 혼영(혼자 영화 보기) 등 뭐든 혼자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우리 인류는 더욱더 혼자 먹고, 혼자 마시고, 혼자 놀고, 혼자 여행하는 ‘호모 얼로니우스’(Homo Aloneus, 외로운 인간)가 되어갑니다. 이제 외로움을 넘어 스스로 존재가 환하게 빛나는 ‘홀로움’, 참다운 고독을 맞이할 때입니다. 타인에게 휘둘리는 ‘시선의 감옥’에 갇혀 있는 외로운 나를 구원해야 합니다. 허공에 부딪혀 흩어지는 자조 섞인 독백 대신 ‘내면의 나’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방치하고 무심했던 ‘진짜 나’에게 말을 걸어보십시오. 많이 기다렸다고, 어서 오라고, 그때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너를 지켜보며 사랑할 거라고 얘기해줄 것입니다. 내 삶의 노예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주인으로 당당히 우뚝 서기 위해서 말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연습, 같이 하실까요?
외로움에 발 벗고 나선 영국과 일본
2018년 영국 정부는 한발 앞서 외로움에 대처하기 위해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 엄밀히는 외로움부)를 만들고, 다양한 캠페인과 가이드라인을 두어 민관이 협력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은 2021년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국가적 과제로 삼아 대응한다고 합니다. 외로움과 소외, 고립은 우울이나 무기력 같은 감정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해치는 극단적 상황으로 나아가기 쉽습니다. 특히 전 세계가 코로나 상황에서 자살률이 상승하고, 이로 인한 손실과 상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막대한 신체적 손상을 가져올 뿐 아니라 정서적 유대와 인간관계가 훼손되고, 외로움과 고립감이 만성화되면 결근이나 생산성 저하 등 경제 전반에도 막중한 피해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고독, 외로움은 연령과 성별을 뛰어넘는 인간 고유의 심리 상태라지만 경제적·신체적 환경이 곤란할수록, 특히 갑작스런 퇴직이나 은퇴를 맞은 중장년 세대일수록, 사별이나 이혼 등 가족 관계가 단절되거나 상실될수록 그 영향은 심각할 수 있습니다. 소외와 단절과 고립으로 인한 소통 부재는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촉매가 되기 쉽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수불가결한 상황이 되면서 외로움에 대처하는 일은 단지 개인이 해결해야 할 수준에서 사회와 국가가 긴급하게 대응해야 할 과제로 부상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나이 든 사람의 사랑이 젊은이들의 사랑보다 편한 게 있다면 뭘까?”
“음… 내 생각엔 서로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
“뭐라고? 밀당을 하지 않는다고? 밀당은 사랑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건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해. 밀당이 빠진 사랑은 김빠진 맥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맥주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거든.”
“너 말 잘했다. 그거야말로 맥주의 거품 같은 거라고 생각해. 밀당은 거품이라고. 사랑의 본질과는 아무 관계없는.”
카페 옆자리의 중년 여자 둘이서 아침나절부터 사랑 타령이다. 이달 원고를 마감하고 브런치로 모처럼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여자들의 대화가 호기심을 동하게 한다. ‘밀당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밀당할 에너지가 딸리는 거겠지.’ 속엣말로 슬그머니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밀당이 뭔가? 새삼스레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연인이나 부부, 또는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 싸움을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네이버 사전이 알려준다.
밀당이 사랑 잡네
‘미묘한 심리 싸움’, 이게 얼마나 에너지를 축나게 하는 일인가. 그러니 중년의 나이에 사랑을 하려거든 밀당을 포기할 수밖에. 문제는 연인 둘 다, 양쪽 모두 안 하면 별 상관이 없는데 한쪽이 기어코 밀당을 하려고 든다면 다른 한쪽이 말려들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사랑의 주도권을 잃고 을로 떨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즉 밀당으로 인해 예상치 않은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까짓것 을이 되면 어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갑이 되고 나는 영원히 을이 된다면 차라리 그게 더 좋겠어”라고 맘 넓은 척 굴다간 밀당의 희생자가 되기 쉽다. 밀당의 속성이 원래 그런 거니까. 무슨 소리냐고? 정말 몰라서 물어? 차이게 된다는 거지.
대저 연애 심리, 남녀 사랑의 공식은 나이 불문하고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누구나 한두 번은 경험해보지 않았나. 거기에는 이른바 서툰 밀당이 이별의 원인으로 작용한 경우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밀당에서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사람을 덜 좋아하면 된다. 상대가 나를 더 좋아하고 내가 상대를 덜 좋아하면 저절로 되는 게 밀당이다. 아니면 좋아하는 마음을 자제할 줄 알거나. 그런데 말이야 쉽지. 그게 된다면 ‘밀당의 기술’이란 말이 왜 있을까. 기술이란 배워서 연마해야 할 기량이며, 성공할 때도 있지만 실패할 여지가 항상 깔려 있는 난이도 높은 그 무엇이 아닌가. 단적으로 말해 밀당에 성공하는 사람은 연애의 고수이자 동시에 사랑의 쟁취자이니, 밀당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계륵 같은 게 아니라 성공적인 연애의 핵심이다. 이러니 밀당에는 나이가 없을 수밖에.
밀당의 요령
그렇다고 밀당을 난공불락 요새처럼 두려워하거나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현실에서 적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가령 카톡을 받았을 때 바로 답하지 않기, 상대가 보낸 메시지 분량보다 짧게 회신하기, 전화도 한 번쯤은 안 받기, 그러다 상대에게서 다시 전화가 오면 바빠서 나중에 하려다가 그만 잊어버렸다며 별로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시큰둥하게 답하기. 세 번 요청에 한 번꼴로 데이트에 응하기, 데이트할 때는 평소에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별 이유 없이 빨리 헤어져서 상대를 이따금 실망시키기, 스킨십 때도 안으려고 하거나 손을 잡으려고 할 때 슬쩍 몸을 뺀다거나 딴청 하기, 잠자리 횟수 조절하기 등등, 그때그때 상황 따라 상대를 안달나게 하면 된다. 좋게 말해 상대의 욕망을 내 쪽에서 조절하고 절제시켜주는 거라 할까. 역시 쉽지 않다고?
“과연 그럴까? 사랑을 왜 하는데? 사랑을 하면 젊어지는 느낌이 드는 게 왜 그런데? 나이 든 사람일수록 사랑을 할 때 여자는 더 여자로 대접받고 싶고, 남자는 더 남자다워지려고 하잖아. 사랑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뜻이지. 나이 든 사람일수록 연애할 땐 더 유치해지는 법이야. 젊은 애들이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은 욕망인 거지. 그런 기분, 그런 감정을 즐기고 싶어서 연애하고 사랑하는 거 아냐? 그런데도 밀당이 필요없다고?”
다시 들리는 옆자리의 대화. 약간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나. 밀당은 상대에게 불안을 주어 자신 옆에 붙들어두려는 전략이다. 두려우면 더 매달리는 사람 심리를 이용한. 하지만 잘못 사용했다간 진정한 사랑을 잃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위험하다 못해 치명적인.
밀당하다 망한 여자들
밀당 하면 떠오르는 문학 작품이 있다. 스탕달이 1830년에 쓴 ‘적과 흑’에서 줄리앙을 대하는 마틸드의 태도는 밀당의 전형이자 원조다. 결론부터 말하면 밀당 좋아하다 망한 여자가 마틸드다. 밀당에 중독된 이런 부류들은 남자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멀리 달아나버린다. 아니 달아나는 정도가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이 싹 없어져버린다는 게 문제다. 제 꾀에 제가 빠진다고 할까. 목적은 상대가 자신을 더 좋아하게 하고 더 끌리게 하려는 것인데 결론은 그 사랑을 잃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런 마틸드를 줄리앙이 사랑스럽게 느낀 순간이 있는데, 마틸드가 솔직하고 꾸밈없는 마음을 언뜻 비쳐 보였을 때다. 결국 그 사랑은 누가 차지하는가. 레날 부인이 아닌가. 자신보다 열두 살이나 더 많은 유부녀였지만 순수한 사랑에는 밀당 따위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내 주변에 이런 경우가 있었다. 튕기고 안달나게 하는 애인에게 지쳐 다른 연인을 만든 것까진 있을 수 있는 일인데, 그의 새 연인이 옛 연인의 절친이라면? 밀당하는 애인 때문에 속이 타들어간 나머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비위를 맞출 수 있는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물어보고 의논하다 그만 둘이 정이 들어버렸으니.
결론적으로 말하면 밀당은 사랑의 촉매제, 조미료는 될 수 있지만 사랑의 몸통, 원재료는 될 수 없다. 요리에 자신 없는 사람일수록 조미료로 맛을 내려고 하는 것처럼 밀당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 없는 사람이 집착하는 치사하고 졸렬한 전략이다. 재료의 품질이 높고 신선하다면 조미료 따위에 의지해 맛을 낼 필요가 없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깊고 그윽한 풍미를 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요리의 달인이 아닌가. 조야한 음식은 한두 번만 먹어도 물리는 법.
중년의 사랑, 사람이 먼저다
그럼 중년에는 어떤 사랑을 해야 할까. 밀당하지 않고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은 정녕 없을까. 내가 아는 올해 69세 된 어떤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
“남자는 나이가 들어 성적 능력이 거의 사라져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성욕과 성 능력이 왕성할 땐 여자가 성적 대상으로만 보이고, 게다가 한 여자에게 만족할 수 없어서 끊임없이 또 다른 성적 대상에게 눈을 돌리게 되더라고요.”
모든 남자를 대변한 말은 아니겠지만 솔직하고 정직한 고백으로 들린다. 성적 욕망 충족이 곧 사랑은 아니라는 ‘철든 생각’처럼도 들리고. 그토록 오랜 세월, 남녀는 사랑을 놓고 동상이몽에 있었다는 뜻이니 허탈하기도 하다. 물론 여자라고 해서 성과 사랑을 전혀 별개의 자리에 놓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할까. 사랑을 쌓고 키워가는 토대의 문제라고 할까.
사랑을 통해서, 내 앞의 그와 그녀를 통해서 홍안의 소년 소녀가 되고 싶은 거지, 실제로 소년 소녀는 아니다. 밀당을 하고 싶어도 할 에너지가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밀당은 일종의 치밀한 기술이자 계략적 전술 전략이다. 사랑을 얻고 그 사랑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그렇다면 전략 없이, 계략 없이도 사랑이 지속될 수 있으면 될 터이니, 그것은 곧 인간애가 아닐까. 여자가, 남자가 더 이상 여자가, 남자가 아닐 때 참사랑을 시작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할까. 말하자면 ‘사람이 먼저’라는 뜻이다.
너무 재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에
중년의 사랑, ‘뭣이 중헌디?’라고 물으신다면 먼저 사람 되는 것이 중하다, 사람 냄새가 먼저라고 답하리라.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사랑하지 말고 실제 그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일평생 사랑이라는 이미지에 속은 것으로도 모자라, 여전히 속고 있다. 이제는 그런 사랑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밀당은 그런 사랑의 망상이 빚는 헛그물질이다. 거기에 걸려드는 물고기 역시 인조 물고기일 것이다.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이 아니지만 너무 재는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과만 해야 한다. 그 사이에 잔꾀나 사랑의 이미지를 삽입하지 마시라.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당당해야 한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 그러고는 사랑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야 한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랑을 한다. 좋은 사람은 밀당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상대를 속이는 것은 나쁜 것이기에. 밀당은 상대를 중독에 빠지게 한다. 사랑중독자가 되게 만든다. 중독은 나쁜 것 아닌가. 더구나 사랑중독자라니. 사랑 중 밀당은 유죄다. 특히 중년의 사랑에서 밀당은 중죄다. 사랑을 제대로 해볼 시간도 기회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랑하기도 아까운데 밀당할 시간이 어디 있나.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버려진 공장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흉물로 나동그라진 과거의 제지공장을 볼 것 많은 문화 공간으로 되살려냈으니까. 전북 완주군 소양면 야산 아래에 있는 산속등대 복합문화공간(이하 ‘산속등대’)이다. 낡고 닳은 폐허를 딛고 일어선 공간이다. 일컬어 ‘재생건축 공간’이다. 재생건축은 요즘 건축계의 화두다. 여기저기서 유행하고 있다.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 속에 마침내 쓸모를 잃고 덧없는 폐허로 붕괴한 공간에 문화를, 예술을, 그리고 꿈과 상상을 부여하는 일. 이는 오롯이 값지다. 이미 스러진 꽃을 되살려내는 것처럼 심지어 몽환적이다.
‘산속등대’의 부지는 8000여 평에 달한다. 이 너른 부지 안에 폐허를 자양으로 부활한 물상과 디자인 요소들이 우후죽순처럼 즐비하다. 중심축은 미술관이다. 관점과 시야를 확장할 경우 공간 전체가 미술이거나 미술관이다. 폐허의 뒤숭숭함과 허무를 오브제로 삼아 예술을 입혔으니까. 과거의 웅장하고 단단했던 것들이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지면서 남긴 잔해와 잔재들을 자못 날랜 솜씨로 반죽해 내향적 울림이 있는 공간을 구현했다. 신축 건물은 도저히 얻어 걸칠 수 없는 시간의 족적과 결이 아른거리는 게 아닌가. 지나간 것들, 흘러간 것들, 너절한 것들, 시든 것들에서도 이렇게 잘만 끄집어내면 자본만으로 빚어낼 수 없는 내면성이 우러나온다. 재생 공간만이 발할 수 있는 언어와 표정이 고여 있으니 재생이란 말 그대로 창의의 산물이자 생성의 동의어다.
재생한 건축과 공간에 들어선 미술관은 이제 낯설지 않다. 국내 곳곳에 등장했으니까. 해외에서는 더욱 활성화됐다. 1986년에 개관한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은 수명을 다한 철도역을 재생해 입주했다. 금세기 가장 성공한 미술관으로 꼽히는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은 별 볼일 없던 폐 화력발전소를 뜯어고쳐 들어앉았다. 이 미술관들은 세계적 명소로 떠오르면서 재생건축과 미술관의 결합으로 절묘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산속등대’가 출항한 건 2019년 5월이다. 만 2년이 지났을 뿐이니 이제야 걸음마 단계를 벗어났다. 불운하기론 코로나19의 창궐에 따른 고난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배를 띄우자마자 으르렁거리는 폭풍 속에 던져진 것이다. 신생의 기쁨과 기세로 활보하기 이전에 가혹한 담금질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널따란 터에 꾸린 갖가지 볼거리, 그리고 중의적 미학이 가미된 공간들이 이색적이지만 어찌할 수 없는 고즈넉함이 서려 있다. 그러나 여느 미술관들에 비하면 그나마 방문객이 많은 편이라니 다행스럽다.
‘산속등대’의 랜드마크, 등대
이곳에 들어서면 맨 먼저 ‘기억의 파사드’가 눈에 들어온다. 빨간 벽돌로 쌓은 삼각형 모양의 구조물 세 개를 병치한 파사드다. 고색창연한 사물들이 넘치는 가운데 그 새뜻한 형상으로 도드라지는 이 벽은 아마도 ‘기억에로의 초대장’이다. “이 문을 들어섬으로써 이제 당신의 기억은 과거를 유영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의 파사드’가 하는 말이 이렇다. 폐공장의 잔해에서 과거 산업공장의 무상한 흥망성쇠 드라마를 유추하라고, 삶의 허무와 다르지 않은 공장의 쓸쓸한 잔해를 더듬어보라고 한다. 풀을 끌어안고 으스러진 공장의 주춧돌에서 끝내 거머쥘 수 있는 시간과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느껴보라고, 인생 역시 몇 점의 기억만 남기고 매순간 허공으로 흩어진다는 걸 알아보라고 한다. 파사드가 전하는 얘기가 그렇다.
저기 저 뒤편엔 돌올하게 치솟은 게 하나 있다. 제지공장 시절의 굴뚝으로 높이가 33m다. 설립자는 이 굴뚝을 놓고 생각이 많았다더라. 저 높고 우람한 덩어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그는 숙고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굴뚝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돌아온 답은 하나같이 등대가 연상된다는 거였으며, 설립자는 이를 채택했다. 공장의 기계들이 기운차게 잘 돌아갔던 과거엔 허연 연기를 뭉게구름처럼 뿜어낸 굴뚝의 이미지를 변용, 문화와 예술의 불을 밝히는 등대로 상징화하기로 한 것. 온갖 잡동사니와 아귀다툼이 난무하는 속세에 한 송이 문화의 꽃을 피우겠다는 게 이 문화 공간의 지향점이다. 그 옹골찬 포부를 등대라는 거대한 물상으로 함축해 표출한 것이다. 빨간 칠을 입어 한결 돋보이는 등대는 이곳의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미술관 건물을 볼까. ‘산속등대’의 구조물 대다수가 그렇듯 이 역시 재생건축이다. 구슬픈 소리를 내는 법 없이 그저 외로이 무너져가는 폐건축물들 중 그나마 상태가 가장 나은 건물에 구조 보강을 해 미술관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털어낼 건 털어내고 놔둘 건 놔두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혼성 교합이다. 과거와 현재의 합작으로 미래를 도모하는 건물이다. 전시실에선 장안순의 개인전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가 펼쳐지고 있다.
미술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우선은 매력적인 건축물로 사람들의 구미를 동하게 해야 한다. 건축 자체를 작품으로 흐뭇하게 즐길 만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역시 전시의 품질이다. 전시 기획의 개성과 지향을 딱 부러지게 노정한 콘텐츠를 보유한 미술관이어야 미술계는 물론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살 수 있다. 이는 돌을 부술 강펀치를 구사하는 복서만이 살아남는 링 위의 생리와 비슷하다. 이게 어지간한 실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점에서 이곳의 설립자는 고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일단 부지런히 전시회를 전개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매년 전시회를 빈번히 열었다. 기후 문제나 등대를 주제로 한 기획전은 미술관의 아이덴티티를 모색하는 차원의 전람회들이었다.
‘산속등대’는 미술관을 가슴에 품은 복합문화공간이다. 미술 작품 감상으로 지겨운 삶의 우수와 권태를 다독이라고, 그러고도 미진한 게 있다면 재생 공간 곳곳의 세련된 설치와 디자인과 오락적 요소들을 즐겨 기분을 돋우라고 만들었다. 창밖의 경관을 즐기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슨슨카페, 대형 고래 조형물을 설치한 고래 놀이터, 기존 폐수처리장을 재생해 콜로세움을 형상화한 야외 공연장, 아이들의 문화예술 체험 공간인 어뮤즈월드, 별빛 광장과 별빛 동산 등 별별 이색과 이채가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나 뭔가 아쉽다. 터의 일부를 빼곡히 채운 컨테이너 박스들의 건조한 품새가 재생 공간의 고적하면서도 유려한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해서인가? 그렇더라도 진귀한 문화 공간이다. 버림받은 흉물에 빛을, 낡고 낡은 사물들에 생명을 주입했으니까. 갈 길이 멀 테지만, 폐허를 딛고 일어선 탄성을 보루로 튀어오를 수 있겠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2021년 12월,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1월 폐암 진단을 받고 꼬박 1년을 투병한 후 그렇게 떠났다. 그와 내가 사귄 지 10년째 되던 해이기도 했다. 나의 지난 한 해는 벽두부터 그의 병간호로 시작됐고, 소생과 회복에 대한 간절한 소망에도 아랑곳없이 그가 떠나며 한 해가 저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새해가 희망 없이 밝았다.
장례를 치른 후, 간호를 하느라 1년 동안 함께 지냈던 그의 대전 집을 나와 다시 서울 내 집으로 돌아왔다. 환자를 돌보는 도중 간간이 들러 옷가지 등 필요한 것들을 챙겨가곤 했지만 그가 떠나고 나니 내 집 풍경조차 다르게 느껴졌다. 칫솔이나 면도기 등 내 집에 두었던 그의 소소한 물건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이제는 영원히 주인 잃은 것들, 그의 부재를 상기시키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두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더 아프니까….
그와 나는 20년 전 어느 기업인 모임에서 만났다. 나도 그도 나름 단단한 사업체를 꾸리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이혼한 상태였지만 10년을 서로 바라만 보는 중이었다. 10년 동안 썸을 탔냐고? 그건 아니고 좋은 사람이니까, 좋아 보이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사귀는 사람이 있겠거니 서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 12월 중순의 첫눈 내리던 날, 첫눈치고는 늦었고 첫눈치고는 제법 눈송이가 실했다. 모임이 끝난 후 지하 주차장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우연히도 그와 나의 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와 그렇게 가까이 마주한 것도 10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았다.
천년의 사랑이 시작되고
다소 어색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후 각자의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아 고개를 기울여 그가 먼저 나가도록 손짓을 해 보였다. 그는 또 그대로 내게 먼저 차를 빼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서로 그렇게 배려의 몸짓을 하다가 내가 먼저 차를 움직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의 시선까지 느껴져 더 당황스러웠다. 난감한 상황에 처한 내게, 무슨 일인지 잠시 지켜보던 그가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하지만 그 사람이라고 별수 있나. 고장의 원인을 찾지 못한 데다 이미 밤늦은 시각이니 내 차는 주차장에 그대로 두고 그가 나를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깜깜한 밤하늘에 흰 눈이 별처럼 쏟아졌다. 우리 만남의 서곡이자 팡파르처럼. 나란히 함께 차를 타고 오던 시간이 의외로 편안했고,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다.
천생연분이란 촌스럽고 진부한 표현을 내가 할 줄은 몰랐다. 이혼 후 10년 만에 본격적으로 만난 그 사람, 이제야말로 하늘이 점지해준 짝을 찾았다고 믿었다. 그와는 모든 것이 잘 통했고 모든 것이 좋았으니까. 가치관, 취미, 식성, 관심사, 대화는 물론,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몸까지 잘 맞았다고 솔직히 고백하리라. 국내는 물론이고 코로나 이전에는 자유로이 해외여행을 다녔고 맛집이란 맛집은 죄다 섭렵했다. 전시, 공연, 독서 등 문화생활도 알뜰히 했다. 우리는 성인이 된 자녀들이 각자 둘씩 있었지만 모두 독립해서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 문제로 신경 쓸 일도 없이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관계였다. 느긋하게 나이 들어갔고 다가올 노후를 함께 설계하며 행복한 노년을 꿈꿨다.
사랑의 보험이 깨지고
그러던 그와의 화려했던 세상이 불과 10년 만에 흑백의 암전을 맞았고 그는 영원히 무대에서 사라졌다. 사랑은 떠나도 삶은 지속되는 거라지만, 환갑도 한참 지난 내가 그걸 모를 리 없지만 그가 없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우두망찰 길을 잃었다. 그가 없는 하늘 아래 나는 어떤 생을 살아야 할까. 혼자 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그와 나는 결혼한 사이는 아니지만 성혼 선언문의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견고한 우리 사랑 한가운데 죽음이 끼어들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젊지 않은 나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미 노년의 문턱에 들어섰다. 그가 없는 나의 노년, 그 막막한 길을 홀로 걸어갈 수 있을까. 나는 요즘 부쩍 늙어버린 기분이다. 지난 1년간 그의 병간호로 쇠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사랑을 잃은 슬픔과 삶의 막막함 때문이리라. 홀로 늙어감,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나이 든 여자의 사랑은 사랑을 하는 중에도 버겁다. 더구나 우리는 동갑이 아니었나. 여자로서, 그것도 젊지 않은 여자로서 같은 나이의 남자에게 위축되지 않는다면 약간은 거짓이리라. 내 경우 역시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관하게 문득문득 내 나이를 의식하곤 했다. 아니다, 그런 적이 있었다고 해도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내가 젊은 여자가 아니라고 해서 그와 나의 사랑에 무슨 문제가 있었단 말인가. 그와 만나는 동안엔 오히려 내 나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가 가고 나니 내 나이가 갑자기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 나는 혼자 남겨진 ‘나이 든 여자’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사랑은 보험이라는 말이 있다. 홀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랑할 상대를 찾는다는 뜻이란다. 더는 다른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성실한 보험 납세자처럼 꼬박꼬박 애정을 쏟고, 서로를 챙기다 보면 보험의 만기가 도래하듯 안온한 노후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들린다. 노년의 원만한 부부가 전형적인 그 모습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정성스레 부어가던 보험이 중간에 깨져버린 것 아닌가. 새로 들 가능성, 새로 들고 싶은 마음도 이제는 없다. 탈 수 있는 보험금 없이 홀로 노후를 맞는 대열에 내가 동참한 것이다.
만날 사람을 다 만났다면
어느 종교계 방송에서 환갑이 지나면 인생에서 만날 사람은 다 만난 거라는 말을 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라 할 때 소위 반환점을 도는 나이가 되면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은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배우자가 되었든, 연인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미 맺어져 있는 인연을 일부러 끊어낼 필요는 없겠지만 혹여 기존 관계에서 자리가 비어 새 인연을 들인다 한들, 관계 맺기를 통한 성장판은 이미 닫혔다는 의미다. 마치 빠진 치아 자리에 임플란트나 틀니를 해 박는다 해도 치아 본연의 성질과는 무관하듯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성장하고 누리고 진화할 수 없다면 더는 살아도 산 게 아니란 의미일까. 물론 그건 아닐 테지. 이제 저 너머의 존재, 신을 만나야 한다는 뜻이겠지.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는 알지 못했던, 알아도 제약적이며 한계가 있었던 관계의 장막을 거둬내고 영성에 눈을 떠야 한다는 의미겠지. 그래야만 성장을 지속할 수 있고, 실상은 그러한 성장이 참 성장이라는 의미일 테지. 세속적 희로애락 속에서 울고 웃던 나를 관찰자, 주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교정하고 회복되도록 하는 과정일 테지.
내 경우라면 그의 빈자리를 하나님 혹은 부처님으로 채워야 한다는 뜻일 테니 교회나 성당, 절에 나가 위로를 구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그 얼마나 진부하고 맥 빠지는 소린가. 나는 지금 그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인데, 간절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외로움에 애간장이 녹아내릴 지경인데, 눈에 그 존재가 보이지도 않고 귀에 그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 신을 통해 위로를 구하라는 말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공기를 뻐끔거리며 배를 채우라는 소리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위로받기는 고사하고 왜 그를 내게서 빼앗아갔냐고, 이제 겨우 64세, 아직 죽음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나이의 그를, 자기 분야에서 드물게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를, 무엇보다 나와의 변함없는 애정으로 행복의 절정기를 누리던 그를 무슨 이유로 데려가야 했냐고 따지고 대들고 싶은 심정이다. 신도 질투를 하냐고, 그렇다면 신도 아니지 않냐고.
차라리 그와 혼인을 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가 그의 아내였다면 세상 떠난 그를 대신해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가족 내의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며 감당할 역할들로 사별의 아픔을 추스를 여지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껏’ 그의 연인이 아닌가.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그 상실감과 무력감만이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전부다.
다시 빛을 찾아서
슬픔에 겨워 탈진하는 하루하루 중에도 간간이 빛을 느낄 때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평안과 내적 안온함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실은 나는 그가 떠난 이후 성당에 다닌다. 매주 수요일마다 교리 공부도 한다. 신앙심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그저 그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생전에 그는 신앙이 없었지만 왠지 성당에 가면 영혼이나마 그가 내 옆에 앉아 함께 미사를 드리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지곤 한다.
올해로 나는 65세가 되었다. 10년 전 55세에 만난 그가 떠나고, 2022년의 출발선에 혼자 오도카니 섰다. 혼자라고 하지만 어쩌면 내 옆에는 신이 서 계실지도 모른다. 신은 무언의 침묵을 통해 나와 동행할 채비를 하고 계시는 걸까. 왜 신은 굳이 내 옆자리에 서려고 하시는지. 나는 그 사람 하나로 행복했건만. 하긴 연일 눈물로 어룽져 시야가 흐려진 내 눈엔 생의 완주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이제 신의 손길에 의지해서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누군가의 인도가 절실하다. 그러나 앞서 방송 내용처럼 나 또한 이제 더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동반자를 구하고 싶지 않다. ‘사람 대신 신’이란 결단에서가 아니라 또다시 그 존재를 잃고 슬픔의 늪에 빠져 허둥대거나 흐느적거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생 한 번으로 족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과 그리움, 그것은 너무나 혹독하기에.
지난해 우리나라 중·장년층(만 40세~64세)의 일하는 인구와 평균 소득이 늘었다. 이 가운데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이 효력을 발휘한 사실이 확인됐다.
통계청은 지난 21일 '2020년 중·장년층 행정 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통계 작성 기준은 매년 11월 1일 국내에 상주하는 만 40~64세인 내국인이다.(1955.11.1.~ 1980. 10. 31. 출생자)
이에 따르면 중·장년층 인구는 2008만 6천 명으로, 총 인구 대비 40.1%를 차지한다. 전년 대비 10만 7천 명(0.5%)이 증가했다. 성별로는 각각 남자 50.2%, 여자 49.8%를 차지했다. 연령 별 비중은 50대 초반(21.1%)이 가장 높았고, 그 뒤를 40대 후반(20.9%), 50대 후반(20.4%)이 이었다.
이 가운데 중·장년 등록취업자 수는 1304만 1천 명으로, 중·장년층 인구의 64.9%로 집계됐다. 등록취업자 비중은 2016년 60.6%, 2017년 61.5%, 2018년 62.9%, 2019년 63.9%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등록취업자는 4대 사회보험 등에 가입한 취업자로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취업자와는 기준이 다르다.
성별로 보면 남자의 74.4%인 749만 9천 명이, 여자의 55.4%인 554만 1천 명은 현재 취업 중이다. 연령 별로는 40대 초반이 70.8%로 가장 높았고, 60대 초반이 51.1%로 가장 낮았다. 연령 구간이 높아질수록 등록취업자 비중이 점차 낮아졌다.
또한 등록취업자 중 임금근로자가 77.7%, 비임금근로자가 18.4%, 임금근로와 비임금근로 병행하는 경우가 4.0%의 비중을 차지했다. 임금근로자 비중은 남자가 77.3%로, 78.1%인 여자보다 낮았다. 또한 연령 구간이 높아질수록 임금근로자의 비중은 낮아졌다.
이 가운데 정부의 60대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 일자리 사업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연관성이 큰 공공 행정과 국방·사회 보장 행정은 2019년 65만 8000명에서 2020년 77만 8천 명으로 늘어나면서, 18.3% 급증했다.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의 취업자 수도 2019년 104만 1000명에서 110만 5000명으로 6.1% 늘었다.
그런가 하면, 중·장년층의 평균 소득은 3692만원으로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성별로는 남자 평균 소득이 4783만원으로 여자(2343만원)보다 2배 많았다. 연령대 별로는 40대 후반이 평균 소득 4044만원으로 소득이 가장 많았고, 나이가 들수록 감소해 60대 초반(2553만원)이 가장 적었다.
그러나 소득 증가 대비 빚은 두 배로 늘었다. 중·장년층의 56.5%는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0.2%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이들의 대출 잔액 중앙값은 5200만원으로 전년보다 7.1%나 증가했다.
주택 소유 비중은 43.1%로 전년 대비 0.6%포인트 상승했다. 60대 초반의 주택 소유 비중이 45.5%로 가장 높고, 연령 구간이 높을 수록 주택 소유 비중이 높았다. 40대 초반은 39.3%에 그쳤지만 50대 후반은 44.6%에 달했다.
중·장년층의 공적 연금 및 퇴직 연금 가입 중 비중은 75.3%로 513만 3000명이었다. 2016년 73.0%였던 가입 비중이 75%를 넘긴 것이다. 연령 별로 50대 후반 가입 비중이 80.3%로 가장 높고, 60대 초반이 58.3%로 가장 낮았다.
가구 기준으로 중장년 가구는 1323만 6000가구로 전체 일반 가구의 63.2%를 차지했다. 평균 가구원 수는 2.7명으로 조사됐다. 가구원 수는 2인 가구가 366만 5000가구(27.7%)로 가장 많고, 3인가구 25.8%, 4인가구 21.0% 순이었다.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이고 캐롤 음악이 들려오더니 결국 성탄절이 돌아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떠들썩한 크리스마스를 만끽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집에서 맛있는 음식과 함께 가족들과 보내는 오붓한 성탄절도 충분히 따뜻하고 즐겁다. 이번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집콕’ 크리스마스를 풍성하게 채워줄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2003)
크리스마스에 로맨스를 빼기는 아쉽다. 매해 크리스마스부터 연말연시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정통 크리스마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통한다. 2003년 처음으로 개봉한 후 2013년과 2015년, 2017년, 2019년, 2020년에 이어 올해도 12월 23일에 재개봉했다. ‘러브 액츄얼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다룬다. 부부간의 사랑부터 남매간의 사랑, 영국수상과 직원의 사랑, 소설가와 가정부의 사랑,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등 저마다의 사랑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따뜻하게 그려낸다.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콜린 퍼스, 키이라 나이틀리 등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들이 전하는 여덟 커플의 사랑이야기는 다양한 사연을 담은 만큼 모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로 꼽힌다.
영화에 삽입된 OST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Christmas is all around’를 시작으로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 노라 존스의 ‘Turn me on’,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사랑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 (Christmas In August, 1998)
1998년 개봉한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한국 멜로영화 중 손꼽히는 걸작이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 ‘정원’은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던 여름의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 ‘다림’을 만나게 되고, 잔잔했던 그의 일상에 햇살처럼 불쑥 찾아온 그녀는 정원의 마지막 여름을 함께한다. 뜨거운 태양의 한여름에서부터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을 지나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시한부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려낸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화를 제작한 허진호 감독이 가수 김광석의 활짝 웃고 있는 영정사진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허 감독은 “생활에서 나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일상생활을 더 빛나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밝혔다. 영화가 그려내는 90년대의 아담하고 소박한 아날로그적인 배경은 중장년층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빽 투 더 퓨쳐 (Back To The Future, 1985)
크리스마스에 로맨스 영화가 지겹다면, SF 장르의 ‘빽 투 더 퓨쳐’를 추천한다. 시간여행과 그에 따른 타임 패러독스를 다룬 이 영화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다. 1985년부터 1990년에 걸쳐 총 3편의 시리즈로 제작됐는데, 개봉 당시 전 세계 무려 9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흥행작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별 볼 일 없는 가족사를 가진 소년이 기상천외한 시간 여행을 하면서 개인의 역사를 바꾸고 뒤틀린 미래를 바로잡으려는 모험극으로, ‘시간 여행’이라는 모든 세대가 흥미로워 할 주제 안에 역사, 연애, 가족 등의 요소를 유려한 상상력으로 버무렸다. 중장년층에게는 지금은 없어진 유년의 놀이동산에 지금의 자녀와 노니는 기분을 선사한다. 당시 상상하던 미래의 패션과 지금의 패션을 비교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