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할 때마다 유난히 신경이 쓰이는 소식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침몰이다. 세렝게티 초원의 누 떼처럼 자영업 전선에 마구 뛰어들었다가 부나비처럼 산화하는 모습이 그렇다. 대박은 언감생심이고, 악어에게 물려 쪽박을 찰 수도 있다는 사실을 베이비부머는 뻔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신줏단지나 다름없는 은퇴자금을 탁류에 올인하고 있다. 독배라도 마셔야 할 만큼 상황이 절박한 것이다.
부도 현황에서도 확인된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만기도래한 어음을 막지 못해 당좌거래가 정지된 자영업자의 절반 가량(47.6%)이 50대였다. 부도 자영업자 가운데 5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44.0%, 2012년 47.0%로 높아지며 베이비부머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해 전체 자영업자 수는 줄었지만 50세 이상 자영업자는 월평균 3만명씩 늘었다. 새로운 직장을 찾기가 힘들어져 그동안 벌어둔 자본으로 소규모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덕분에 50대 취업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실상은 망해나가는 곳보다 신장개업한 곳이 더 많은 잔혹한 현실의 신기루일 뿐이다. 1년을 넘긴다 해도 47%는 창업 3년 안에 휴폐업하고 있다. 수입 역시 입에 풀칠하기 힘들 정도의 호구지책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에서 산아제한정책이 도입되기 직전인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경험한 이들은 농업세대와 정보통신세대를 잇는 가교세대이기도 하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1946~65년)나 일본의 단카이 세대(1947~49년)처럼 유난히 인구가 많다.
그러나 알고 보면 불쌍한 ‘알불 세대’다. 나이로 보면 딱 50대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인생의 정점을 찍고 있어야 할 시기이지만 정작 속은 시커멓다. 현재 평균 퇴직 연령은 53세 안팎이다. 대다수 베이비부머는 이미 제2의 인생을 시작했거나 조만간 직장에서 짐을 싸야 한다는 뜻이다. 2016년 실행되는 60세 정년의 혜택을 1958년생 개띠부터 누릴 수 있지만 신분이 보장된 공공기관 등을 제외하면 실제 누릴 수 있는 베이비부머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똘똘한 퇴직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면 국민연금이 나오는 만 60세까지 7년간 수입이 없이 생계를 꾸려야 하는 ‘소득절벽’ 에 시달려야 한다.
또 베이비부머는 100세 시대를 살게 될 첫 세대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30~40년의 기나긴 여생을 대비하기는커녕 사교육비, 자녀 취직 준비, 자식 분가 등 자녀 뒷바라지에 미래를 저당 잡히고 있다. 쓸 돈은 많은데 재취업은 어렵고 거의 전재산을 담아놓은 부동산은 얼어붙었고, 이자는 워낙 낮아 그나마 벌어놓은 돈을 까먹고 지내야 할 판이다 보니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창업에 나서게 된다. 잔혹한 무전장수(無錢長壽)의 악순환 고리에 걸려드는 것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에서 베이비부머 인구가 대략 715만명 정도 되는데 이 중 100만명쯤 되는 고소득층과 200만명쯤 되는 중간 소득층을 제외한, 저소득층으로 분류되는 400만명 이상이 불안한 노후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비부머의 잇따른 파산은 그들이 몰고 올 은퇴쇼크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50대는 봉양할 부모와 부양할 자녀, 심지어 돌봐줘야 할 손주까지도 있다. 가계의 기둥인 것이다. 베이비부머의 침몰은 곧 중산층 가계의 붕괴로 이어지며 나라경제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다. 1000조원의 경고등이 켜진 가계부채는 물론 소비, 투자, 부동산 등 전방위적인 후폭풍이 우려된다.
베이비부머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실버푸어 문제가 고질화할 가능성이 높다. 베이비부머는 6년 후인 2020년부터 65세 고령층에 진입하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13% 정도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45%가 빈곤층에 속한다. 노인 1인 가구의 경우 무려 77%가 빈곤층이다. 노인복지 예산도 GDP의 1.7%로 멕시코 등과 함께 바닥권이다. 6년이란 훌륭한 대비기간이 있는 셈이다.
베이비부머의 연착륙은 청년실업처럼 발등에 떨어진 불이나 다름없다. 대책 없이 고령층에 진입하기 전에 연금 활성화 등 노후소득보장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또한 인생 이모작 지원과 사회안전망 강화는 물론 이들의 경험을 살리는 정책적 노력도 경주해야 한다.
대형 카드사 3곳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으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그것도 수준 높은 보안 시스템을 뚫고 들어온 실력 있는 해커의 소행도 아닌 용역업체의 한 직원이 8천 500만건의 개인정보를 간단히 손에 넣은 어이없는 사건이다. 사실 개인정보 유출은 하루 이틀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수 없이 쏟아지는 스팸문자들을 보며 자신의 정보가 어딘가에 떠돌아 다니고 있을 것이란 건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이토록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된 건 실제 일부 쇼핑몰에서 비밀번호 없이도 결제가 가능한 카드번호와 유효기간까지 유출됐기 때문이다. 이미 이번 사건으로 인한 카드해지 및 재발급, 탈회 건수가 700만건 가까이 되고, 카드사 창구와 콜센터는 연일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집단소송의 움직임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온 국민이 이번 사건으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금융회사의 개인정보 관리와 관련한 안전불감증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못지 않은 안전불감증이 하나 있다. 바로 ‘노후 준비 안전불감증’이다. 사람은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하기 마련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여나 본인의 카드로 결제라도 될까 발빠르게 카드를 재발급받고 정신적인 피해를 보상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큰 금융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자신의 노후 대비에 대해선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나라 은퇴연령층 가구의 빈곤율은 50%가 넘는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빈곤율은 OECD 회원국 통틀어 최고 수준이다. 통계청에서 가구주가 은퇴하지 않은 가구의 노후준비 상황을 조사해 보니 ‘잘 되지 않은 가구’가 34.3%, ‘전혀 준비 안 된 가구’가 20.8%인 반면, ‘잘 된 가구’는 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준비는 일생의 재무 이벤트 중 가장 나중에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급급해 뒷전으로 미뤄지기 일쑤다. 이러한 노후 준비 안전불감증은 개인정보 유출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이야 벌어들이는 소득으로 당장 필요한 지출을 감당하고 있을지 몰라도 그 소득이 뚝 끊기게 될 경우 어디서 생활비를 마련할 것인가. 쪽방촌의 폐지 줍는 노인이나 고독사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신할 순 없을 것이다. 아래 항목 중 해당되는 사항이 몇 가지인가?
1. 은퇴 이후 필요한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은퇴 전까지 얼마를 준비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2.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수령 시점과 금액을 알고 있다. 3. 노후를 위한 자금을 따로 준비하고 있다. 4. 노후에 발생할 수 있는 의료비 지출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다. 5. 은퇴 이후의 일 또는 여가생활에 대한 계획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만약 본인에게 해당되는 항목이 2가지 이하라면 노후 준비 안전불감증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금융사고뿐 아니라 그동안 발생된 인재(人災)들 대부분은 미리 예상해서 대비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자신의 노후가 재앙이 되지 않게 하려면 미리 생각하여 꾸준히 대비하면 된다. 지금부터 노후 준비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보자. 매년 체크리스트 항목 달성여부만 꾸준히 점검한다면 노후 준비에 대한 금융 사고는 미리 막을 수 있다.
노후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유리하다고 말한다. 투자상품을 적절히 이용하면 투자위험은 낮추고 복리효과는 높여 목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사람은 주택구입, 대출상환, 자녀교육비 마련 등을 이유로 노후자금 마련을 자꾸자꾸 뒤로 미룬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사실 행동과학 측면에서 보면 노후자금마련이 후순위로 밀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들은 먼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 ‘지금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 쯤으로 치부하고 뇌의 깊은 곳 어딘가에 넣어 두고 눈앞에 닥치지 않는 이상 꺼내보지 않는다. 흔히 저축액을 늘리지 못하고 충동적 소비를 늘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눈앞에 놓인 마시멜로를 먹어 치우면 미래에 더 많은 마시멜로를 받을 기회를 잃어버리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당장 달콤함을 맛보길 원한다. 하물며 노후자금마련은 여러 형태의 저축 행위 중 가장 장기적인 프로젝트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당장 카드값을 메워야 하는 사람들, 전세금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 자녀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노후자금 마련은 마치 사치와 같을 것이다.
노후준비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면 프로테우스(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바다의 신) 효과를 활용해 보자. 스탠포드 연구진들은 실험 참여자와 닮은 아바타를 이용해 가상의 공간에서 현실을 경험하도록 했다. 그 결과 실험자들은 아바타를 통해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에 변화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프로테우스의 효과는 노후준비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구진들은 가상의 아바타를 만들어 실험참여자가 미래에 힘겨운 노후생활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실험 후 노후자금을 늘리고자 하는 참가자들의 의지가 높아졌다. 이들이 체험한 가상현실처럼 준비하지 않는 이의 노후는 힘겨울 수밖에 없다. 사실 IMF이전에는 별다른 노후준비 없이 퇴직금을 은행에 넣어두기만 해도 이자 생활이 가능했다. 금상첨화로 가지고 있던 부동산 가격도 올라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도 마련했다. 하지만 지금의 은퇴세대인 베이비붐 세대는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고용불안, 저금리, 자산가치 하락으로 굴릴 퇴직금도, 불릴 이자도, 빼먹을 자산도 없다. 연금만 믿기에는 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젊은층의 사정은 더 심각해 보인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65세이상 고령층의 빈곤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신이 꿈꾸는 노후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은퇴생활이 시작됐다고 상상하고 가상의 노후생활을 체험해 보자. 수입은 끊기고, 부채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30~40년 가량의 기나긴 은퇴생활이 시작된다면 후반인생의 낭만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공포스런 처방이지만 100세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노후준비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1월도 어느새 끝이 보이는 터라, 새해를 맞으며 느꼈던 새로움과 설렘의 감흥이 점차 무뎌지고 있다. 새해 시작과 함께 계획하고 소원했던 것들에 대한 굳은 다짐도 왠지 느슨해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다짐의 수준을 넘어서 몸을 움직여 실행에 나서야 할 때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다짐하는 것들 중에는 돈과 관련된 것들도 많다. “저축을 좀 더 하겠다”, “씀씀이를 줄이겠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왕이면 두리뭉실한 계획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무래도 연말에 달성여부를 따져볼 때 미소 지을 가능성이 크다. “적립식 펀드를 하나 만들어 지난해보다 저축을 10% 더하겠다”, “현금을 더 쓰더라도 신용카드 사용을 반으로 줄이겠다”, 혹은 “연말소득공제를 대비해 이왕 쓰는 돈 마트보다는 전통시장을 이용하겠다”와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돈과 관련된 계획은 연단위 계획과 함께 좀 더 장기적인 계획을 함께 세우면 좋다. 올해만 먹고 살 것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행하는 모든 행위가 결국 돈과 관련된 경제활동임을 고려할 때 장기계획은 필수다. 그 중 노후준비와 관련한 계획은 특히나 그렇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확실한 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 살을 더 먹으면서 우리 모두가 조금 더 늙었다는 점이다. 20·30대는 물론이고 40대의 많은 사람들까지도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구체적 계획없이 노후준비를 마냥 미뤄서는 안된다. 한 시간이 때로는 더 없이 길고 가끔은 하루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할 때도 있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세월은 매우 짧다. 작년 혹은 재작년에 봤던 것 같은 월드컵이 올 해 다시 열리고,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기억이 엊그제인데 다음달에 또 다시 금메달에 도전을 한다. 시간은 그렇게 뭉텅뭉텅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을 구분짓고 계획하지 않으면 말이다. 시간을 가르고 칸을 나누고, 그 가른 칸에 무언가를 채워 넣지 않으면 별로 남는 것이 없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 뒤에 따르는 것은 세월의 쏜살같음에 새삼 느끼는 놀라움과 어느새 머리를 덮은 흰머리 밖에 없다.
노후준비다 해서 거창한 것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 일단 필요성과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행동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니 말이다. 굳이 세계 그 어느 나라도 경험해 보지 못한 LTE급의 급속한 고령화 속도와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 그럼에도 세계 평균도 따라가지 못하는 복지비용 등을 일일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은퇴와 노후는 우리 모두가 필연적으로 경험할 일이다. 따라서 당장 혹은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노후준비다. 노후생활에 비우호적인 우리나라의 환경을 감안할 경우 이왕이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 노후준비다.
연말정산 목적으로 겸사겸사 연금저축펀드 하나 장만해서 10만원·20만원 넣는 것이 시작이고 계기일 수 있다. 혹은 정말 아직은 피부에 닿지 않는 노후라 미뤄 놓더라도, 그냥 미루는 것이 아니라 몇 살부터는 노후준비를 시작하겠다와 같은 최소한의 계획은 세워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