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뒤 길어진 후반생을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고자 시니어 인턴에 도전하며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이 시대 시니어들. 시니어 인턴으로 시작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능력을 발휘하며 삶의 가치를 나누고 있는 ‘상상우리’ 수석 컨설턴트 박생규(66) 씨를 만났다. 그가 말해준 시니어 인턴 성공 노하우? 일단 꼰대만 아니라면 반은 성공이다.
서울시 중구 일대의 작고 큰 건물 사이. 사회적 기업 상상우리의 아지트인 상상캔버스에서 박생규 씨를 만났다. 그가 하는 일은 ‘취업을 하고 싶은 시니어에게는 일자리를, 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 업체에는 일손을 주선해주는 것’이라고 하면 쉬운 설명일 게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일궈낸 젊은이들의 회사에, 경력으로 다져진 시니어가 사업에 필요한 보편적 구조를 담당한다는 취지다. 사업체를 꾸리는 데 있어 신·구 세대의 소통이 원활하면 사회공헌활동에도 기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젝트. 일자리뿐만 아니라 봉사를 바탕으로 한 기업의 재능기부 현장에서도 박생규 씨는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처음 만났던 날도 악수를 나누기가 무섭게 업무와 관련한 전화를 받느라 바빠 보였다. 쉬는 날은 외부 강의를 하고 시니어 인턴도 찾아가 상담해야 하니 개인 시간 내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고 했다. 지치지 않고 오래 일하기 위해 급여를 낮추고 여유롭게 일할 수 있게 업무시간을 조율해서 쓰고 있다.
“제가 취업시켜드린 분과 전화하는 거예요. 올해 벌써 시니어 5명이 취업했네요. 취업 초기에는 자주 전화합니다.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서서히 연락을 줄이면서 관리합니다.”
2015년 사회적 기업 상상우리에서 인턴기간 3개월을 마치고 정직원이 된 박생규 씨. 4년이 지난 지금은 자신의 능력을 발판 삼아 일터를 취사선택하며 거듭 성장하고 있다.
“2016년까지 상상우리에서 일했고, 이후 2년 여 정도는 시니어 세대와 이들의 전문성·역량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기업을 연결해주는 ‘사단법인 신나는조합’에 다녔습니다. 업무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두 곳 모두 개인 커리어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이었죠. 최근에 상상우리에서 다시 할 일이 생겨 돌아왔습니다. 2월부터 정식 출근입니다. 대표님과 제 업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적당한 선에서 방향을 잡게 될 것입니다.”
상상우리의 신철호 대표는 박생규 씨가 컨설팅 팀에서 수석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면 한다. 현재 박생규 씨는 2017년 성동구 성수동에 생긴 서울시 성장지원센터 ‘소셜 캠퍼스 온’에 관심이 많다. 그곳에 입주한 스타트업 회사에 적합한 시니어 인재를 찾아줄 계획이다. 이곳의 운영과 관리를 상상우리가 맡고 있기에 박생규 씨가 귀환을 결심했다.
“지금까지는 시니어 개인에 맞춰 취업을 소개해왔는데, 이제부터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을 찾아 적합한 자리에 배치시키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그런 그림을 그리는 곳이 ‘소셜 캠퍼스 온’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상상우리’에서 시니어 인턴 첫발
지난 2년 동안 박생규 씨가 일했다는 ‘신나는조합’은 상상우리와 인연을 맺게 해준 곳이다. 2015년 ‘신나는조합’에서 진행한 ‘시니어 혁신 사회적 기업가 발굴 육성 사업’에 참여한 박생규 씨는 7주간의 교육 과정을 마친 뒤 시니어 인턴 자격으로 상상우리에 첫발을 내디뎠다.
“인턴생활 시작하고 가장 힘들었던 건 할 일이 없는 거였어요. 누구도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할 일을 찾는 것이 제일 급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청소를 했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바쁘게 일하는 직원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세심한 관찰도 이어갔다.
“가만히 보니까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일하더군요. 어느 날 내가 도울 일이 없는지 물어보니 ‘마침 잘됐다’ 하면서 엑셀 작업 일을 넘겨주더라고요. 숫자만 기입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숫자를 집어넣다가 수식 몇 개 바꿔서 프로그램을 더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그게 훨씬 간편하고 편했나봅니다. 그다음부터 엑셀 작업은 제가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인턴 기간은 다 끝나가는데 제가 그만두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더라고요. 가령 대표가 3개월 인턴 기간 끝났으니 나가라고 할 작정인데, 직원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을 수도 있죠. 나 대표님한테 물어봐야 되겠네요. 진짜!(웃음)”
그래서 사회적 기업 ‘상상우리’ 신철호 대표에게 직접 물어봤다! 박생규 씨가 상상우리를 떠나 있다 다시 들어오면서도 늘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를 멘토와 멘티로 생각할 만큼 돈독하다지만 인턴 기간이 끝났을 때 정말 고민이 없었는지 궁금했다.
Q. 인턴기간이 끝난 후 정직원으로 뽑을 때 망설임은 없었습니까?
“박생규 님 같은 경우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셨기 때문에 저희한테 필요한 분이었습니다. 저와 직원 입장에서도 ‘시니어이기 때문에’라는 생각 별로 안 했고요. 회사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채용한다’였습니다. 인품도 뛰어나신 분이시고요.
Q. 지나친 방송 멘트 아니신가요?
아뇨. 진심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계속 관계를 유지해왔고 또 제 롤 모델이십니다. 교육생들도, 저랑은 상담을 안 해도 박생규 님과는 해요.
Q. ‘상상우리’에 시니어 인턴십이 존재하나요?
저희 회사의 미션이 ‘경험과 지혜가 계속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하자’이기 때문에 지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 내 다른 부서에서도 일곱 분 정도를 중장년층에서 채용했습니다. 저희는 인턴 채용 방식으로 시니어를 만나지 않습니다. 상상우리의 교육과정에 참여시키거나 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충분히 모니터링한 뒤 채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니어를 채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어떤 분인지 충분히 봐야 돼서 적게는 3개월, 더 길게도 만납니다.
지난 세월 잊고 미래를 설계하라
박생규 씨의 얘기를 듣고 보니 한층 파격적이고 수준이 다른 시니어 일꾼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취업을 해야만 하는 ‘가장의 무게’ 말고 이 나이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자신감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다.
공군 중령으로 예편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생규 씨. 30년 군생활을 마치고 나니 그의 나이 49세였다. 평균 수명 백세 시대에 아직 창창한 나이였지만 재취업하기에는 쉽지 않은 나이였다.
“저는 그때 생각을 좀 달리했습니다. 이력서를 쓰되 제안서에 가깝게 썼습니다. 이력은 간단하게 쓰고 내가 당신 회사에 가면 어떤 일을 하겠다고 썼습니다. 퇴직할 때 대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 대기업 하면 생각나는 회사에 이력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내용증명으로요. 이게 채용 담당자에게로 다 전달됐습니다.”
공군에서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로 활동했던 이력을 활용해 현대정보기술을 거쳐 SK 등에서 활약했다. 박생규 씨를 만나기 전 타 매체에 소개된, ‘공군 예편하고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했다’는 이력을 큰 의미 없이 읽었는데 모두 본인의 노력과 의지로 발굴해낸 자리였음에 새삼 놀랐다. 게다가 한창 일하던 시기에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고 12번의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생각했던 것이 봉사였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새 삶을 주신다면 남을 위해서 한 손을 쓰겠다고요. 기도를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병원에 있으면서 어떻게 남을 도와줄 것인가 고민했죠. 2012년도부터 항암치료를 하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자원봉사문화 소속으로 NPO 단체 혹은 일반 기업에서 인사와 노무 관련 문제를 해결해드렸습니다. 시니어 인턴도 하게 되고 제에게 딱 맞는 기업을 만나 일하고, 연계하고요. 무엇보다 시니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잖아요. 저는 제 평생 직업을 봉사에서 찾았다고 말합니다.”
시니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오랜 시간에서 나오는 노련함이다. 한계를 모르고 도전하는 자세로 세대와 소통하고 공감해온 것이 지금의 박생규 씨를 만든 게 아닐까.
“내가 나의 경쟁력을 만들지 않으면 힘들어요. 제가 일자리를 찾아드리는 분이 별 고생 안 하고도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01 꼰대는 안 된다(꼰대 체크리스트 참조).
02 취업이 아니고 봉사라고 생각하라.
03 업무시간은 때우는 시간이 아니다. 채우는 시간이다.
04 사회 초년생, 신입의 자세로 임하라.
05 나는 회사의 주인이 될 거다’라고 생각하라.
-돈 버는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일 욕심도 내지 마라.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라.
-50대 이후 제2직업으로 사는 사람은 ‘회사’가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01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02 대체로 명령조로 말하는 습관이 있다.
03 후배의 업적에 대해 칭찬보다 약점을 언급한다.
04 “내가 너만 했을 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05 유명인이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과의 인연을 자주 자랑한다.
06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유난히 민감해한다.
07 칭찬을 들어도 그 칭찬의 양과 질에 불만이 많다.
08 자유롭게 이야기하라고 해놓고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주로 말한다.
09 연애사나 자녀 계획 같은 사적인 고민에 조언해주려고 자주 안달한다.
10 자신의 의견에 반대한 후배에게 토라진다.
시니어에게도 아직 ‘시니어 인턴십’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잘 알고 활용한다면 기업에도, 재취업을 원하는 구직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시니어 인턴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의 사례를 알아봤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인턴’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학생 인턴의 이야기가 아닌 70세 시니어가 은퇴 후 인턴으로 재취업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70세가 재취업이라니,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시니어에게 다양한 직종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제활동 기회를 주기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한 신규 사업 ‘시니어 인턴십’을 운영 중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춰 대기업도 나섰다. 사회공헌활동 일환으로 시니어를 인턴으로 채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니어 인턴십’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GS리테일’과 ‘본아이에프’가 있다.
시니어 인턴 채용 5년 차, GS리테일
GS리테일은 2014년부터 보건복지부,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손잡고 시니어 인턴 제도를 시행해 2018년까지 총 86명의 시니어를 인턴으로 채용했다. 시니어 인턴은 GS25 직영점에서 포스(계산기)를 비롯한 점포 진열 및 정비, 재고관리, 판매 등의 교육을 받은 후 실제 근무를 시작하게 되며 다른 스토어매니저(근무직원)와 동일한 매장관리 업무를 수행한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주로 현역에서 은퇴하신 분이 많은데, 평균 연령 만 60세의 어르신들에게 인생 2막을 열어드린다는 점에서 담당자로서 보람을 느낀다”며 시니어 인턴 제도의 장점을 꼽았다. 반면 제도를 처음 도입하는 과정에선 우려되는 부분도 많았다고 말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업무 숙련도가 떨어지진 않을까, 젊은이가 많은 조직에서 잘 적응하실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컸습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다르게 20~30대 못지않은 열정으로 교육에 열심히 참여해주시고 친근하게 고객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시니어의 열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근 GS25 역삼쌍마점은 약 1년 6개월 동안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던 김재수 씨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다. 2014년부터 시니어 인턴 제도를 운영해온 GS25에서 정직원 채용 사례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 GS리테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 은퇴한 시니어에게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GS25 경영주와 근무자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불어 2019년 시니어 인턴 채용 계획에 대해선 “현재 모집 중”이라고 답했다.
“시니어 인턴 제도가 정부 사업이다 보니 책정된 예산이 조기에 소진되고 나면 지원이 종료되어 채용률이 낮아지는 해도 있습니다. 앞으로 정부 예산이 보다 많이 편성되고 사회적 관심도도 높아져 더 많은 시니어 인턴과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본아이에프, 올해부터 시니어 인턴십 진행
본죽, 본죽&비빔밥 카페, 본도시락 등의 외식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기업 본아이에프도 2018년 5월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시니어 인턴 채용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본아이에프 김명환 대표는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노인 일자리 부족 등 고령 인구 증가와 관련한 다양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면서 “이에 본아이에프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양질의 시니어 일자리를 창출해나가는 등 국내 실버 복지 향상에 힘써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본아이에프는 협약을 통해 대구, 경상북도, 충청도의 가맹점을 중심으로 한식 조리, 매장 관리, 고객서비스 등의 시니어 적합 직종에 만 60세 이상의 시니어 인턴을 채용하기로 협의했다. 이에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시니어 인턴을 채용하는 가맹점에 한 명당 최대 300만 원의 인건비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니어 인턴 제도가 기업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이 시니어 인턴을 채용할 경우 짧으면 한 달, 길면 6개월간 정부로부터 임금을 지원받는다. 뿐만 아니라 시니어가 인턴 기간을 마치고 정규직으로 채용될 경우에도 일정 기간 지원을 받는다. 이로써 기업은 임금에 대한 부담을 덜고 시니어 인턴을 채용할 수 있다. 본아이에프 관계자는 “3개월간의 인턴 업무가 끝난 뒤에도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원을 원하기 때문에 끈기 있는 시니어 구직자를 선호한다”며 “주방 업무가 주를 이루다 보니 체력을 중시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가는 현재 우리는 ‘나는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퇴직하면 무엇을 해야 하지?’ 등의 주제로 남은 인생에 대한 희망 또는 고민을 하게 된다.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중장년층의 퇴직 평균 나이는 49.1세라 한다. 이때부터 다시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미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층이나 곧 퇴직을 앞둔 퇴직 예정자들은 노후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일자리위원회·관계부처 합동)’을 보면, 신중년 대상 장기근속을 위한 개선방안, 전직 지원 및 신규 일자리 확대 등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고용창출장려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고용안정장려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등 장년층 이상의 고용 및 일자리 안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책들은 대부분 만 45~60세 이상의 연령을 대상으로 신규 고용과 정년 연장 또는 임금 보전 형태의 지원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보다는 일자리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청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55~64세인 중장년층은 평균 49.1세에 실직을 하게 되지만 이들 중 64.1%가 생활비에 보탬(59.0%), 일하는 즐거움(33.3%) 등의 이유로 평균 72세까지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용 유지를 위한 정책 대상의 나이와 일하기를 희망하는 나이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혹자는 60세 이상의 중장년층에도 정책 지원이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정년이 60세인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59세 김OO 씨. 정부의 고용안정 관련 지원금을 받아 정년을 62세까지 보장을 받았다. 김OO 씨는 일하고 싶어도 62세에 퇴직을 하면 실업자가 된다. 이 경우 김OO 씨는 62세 이후 정부지원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자리가 고용유지 기간이 짧거나, 계약직 등으로 불안하다면 김OO 씨는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김OO 씨의 사례처럼 중장년, 특히 60세 이상의 시니어(여기서는 60세 이상을 시니어로 칭하겠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많은 시니어가 소득 단절과 노년기 여가 및 사회활동 부족 등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2016년부터 정년 연령을 넘기 시작해, 2024년에는 정년을 초과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가 현실화되면서 더 커질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55세 이상의 인구는 1389만 명, 2024년도에는 1843만 명으로 급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니어 인턴 제도, 희망인가?
대안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사업이 진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만 45~60세 내외의 고용유지 중심 정책을 지원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60세 이상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은 2004년 도입 당시 공익참여형과 공익강사형, 인력파견형과 시장참여형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활동 유형이 세분화되고 신규 사업 유형이 개발되어 2011년 시니어 인턴십, 고령자 친화 기업 등과 같은 시장자립형 노인일자리사업, 2014년 재능나눔활동, 2017년 기업연계형 사업 등으로 나눠진 일자리 지원 사업이 작동 중이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시니어 인턴십 사업은 만 60세 이상인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 직업 능력 강화 및 재취업 기회를 촉진함과 동시에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확산을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인턴십 사업은 60세 이상 근로자를 채용한 기업에게 인턴기간(3개월) 중 월 급여의 50%의 급여를 지원(전략직종형 최대 월 40만 원·일반형 최대 월 30만 원)한다. 인턴기간 종료 후 계속근로계약(6개월 이상) 체결 시 최대 3개월간 급여의 50%를 추가 지원(전략직종형 최대 월 40만 원·일반형 최대 월 30만 원)한다.
시니어 인턴십은 인턴형과 연수형으로 나뉜다. 인턴형은 단기 근로자 신분으로 고용되어 3개월간의 정부 지원 종료 후 기업이 계속고용 여부를 결정한다. 연수형은 기업이 직접 근로자와 계약을 맺고 해당 직무 연수생으로 3개월간 교육을 시킨 후 신규 채용하는 방식이다.
인턴 채용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나 시니어 인턴십 운영기관에서 신청한 뒤 해당 운영기관에서 진행하는 사전 교육을 이수하고 기업 상담을 거쳐 결정된다. 현재 전국 100곳의 사업장에서 운영 중이다.
[표1]의 노인일자리사업은 시니어 계층이 ‘일하는 즐거움’을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표2]와 [표3]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용 유지와 일자리 창출이 강화된 지원 사업 분야는 지속적으로 증가(단, 2017년은 기업연계형이 새롭게 진입해 실적이 하락)하고 있으며, 취업유지율과 계속고용율, 1인당 월평균 소득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시니어 계층에게 긍정적인 일자리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17년 노인일자리사업 통계에 따르면, 시니어 인턴십의 경우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 도매 및 소매업 등 단순 기능직 중심의 일자리 연계가 55.1%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시니어 인턴 일자리가 대부분 경비 아니면 운전밖에 없는 것이다. 일자리 지원 사업이 기존 일자리를 기반으로 저숙련, 진입장벽이 낮은 직무로 연계되는 현실은 대체 가능한 인력이 많은 시니어에게 여전히 고용불안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니어만이 할 수 있는 직무 중심의 일자리 창출
그렇다면 시니어 인턴 제도를 디딤돌로 새로운 일자리에서 시니어의 다양한 경력과 역량을 이어갈 수 있을까? 2017년까지 고용노동부에서 수행해왔던 중장년 인턴제는 근로조건, 직무불일치(43.7%), 고령자 고용을 꺼리는 편견(34.8%), 건강상태(20.8%) 등의 문제가 지속되어 ‘신중년 적합 직무 고용장려금 사업’으로 대체했다. 이는 청년창업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신중년의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을 선발해 우선지원대상기업 월 80만 원, 중견기업 월 40만 원 등의 수준으로 고용지원을 하는 제도다. 이 사업은 신중년의 적합직무 유형을 경력활용, 역량강화, 신직업 도전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지원된다. 서울시도 이와 유사한 50플러스 보람일자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만 50~67세까지 월 57시간 이내(월 52만5020원) 근무하는 인턴을 위한 공헌형·혼합형 중심의 일자리 지원 체제다.
[표4]에서 보듯이 시니어 계층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선택을 통해 직무와 직업을 연계할 수 있도록 지원 분야를 보다 전문화, 세분화해 취업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니어 세대가 바라는 취업처를 모두 포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전문적이어서 다른 세대와의 일자리 경쟁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 근력 등의 저하가 발생해 높은 노동 강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능직 분야도 제한적일 수 있다.
시니어는 주니어가 경험하지 못한 직무 경험과 노하우를 가졌다. 그리고 퇴직 후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직무 경험과 노하우를 유지한 채 타 직무로의 전직을 해야 하는 노동생산성의 손실을 보고 있다.
이제는 일자리 지원 정책이 직업 또는 고용유지 정책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역량을 일자리 관련 정책과 연계해야 할 시점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각 정부 및 지자체는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부족한 인력이 각 분야에서 활동 경험과 역량이 출중한 산업 현장 전문가들일 것이다. 시니어는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는 직업 중심의 일자리 지원보다 시니어가 보유한 직무 능력을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 대안이 직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직업 발굴과 지원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품질, 마케팅, 경영, 인재선발, 해외진출, 생산관리 등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직업훈련을 받거나 예비 창업자들은 경험이 풍부한 각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현재 중장년 또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 사업’은 청년창업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시니어 계층의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니어의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 유지 기능만으로는 안 된다. 일하고 싶어 하는 순간까지 일할 수 있는 지원 정책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으로 시니어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청년창업자와 중소기업의 경영난 해결을 위한 문제해결 및 대안제공 전문가, 자문 및 경영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산업별, 직무별 전문가 직업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시니어 인턴십 사업과 고용노동부의 장년 인턴제 등을 포함한 시니어 인턴 제도가 복지수혜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도 정착되어야 한다. 시니어 일자리 정책은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부처를 통합한 컨트롤타워를 통해 좀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겠다.
고령화 미래 직업을 고민해야 할 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인재가 창의융합형 인재라 한다. 그리고 프리랜서의 역할이 더 증대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현재 시니어 대상 일자리 지원 방향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오늘날에 앞으로 사라질 직업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일정 교육 과정을 거치고 실무현장에서 은빛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시니어 인턴들에게 재취업 혹은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시니어 개인으로서는 앞으로 다가올 직업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시니어의 축적된 노하우와 기업의 융합은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니어 인턴 제도의 일자리 정책은 시니어가 보유한 노하우나 자원을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직무 기반 직업 마련을 위해 펼쳐나가야 한다.
글 김대중 본부장(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새해가 시작되었다. 늘 그래왔듯 연초가 되면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등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지원 기관들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연말에 퇴직한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받거나 취업을 위해 구직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공공근로가 끝났거나,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거나, 기업에서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이다. 특히 중장년층에게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재취업을 해야 할지, 창업 또는 귀농·귀촌·귀어를 해야 할지, 봉사활동을 하며 살 것인지, 취미생활이나 하며 쉴 것인지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취업을 할 것이냐, 창업을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2019년은 창업보다는 적극적으로 재취업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한 경제 전망에 있다. 창업은 ‘운7 기3’이라고 말하곤 한다. 즉 창업의 성공은 기술이나 능력, 아이템보다 운이 더 크게 좌우한다는 의미다. 창업을 시작하며 실패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도 대박의 꿈을 안고 시작한 사업을 1년도 채 안 되어 접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 준비도 오래했고 도와주겠다는 지인도 많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국내외의 경기 불황 때문이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외식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출을 줄인다. 소비나 구매에 대한 사고도 ‘있으면 좋겠네, 하면 좋겠네’에서 ‘없어도 되겠네, 안 해도 되겠네’로 180도 바뀐다. 개인들이 하는 사업 중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니어가 취업을 선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직 건강한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그동안의 경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더 나이가 들면 육체적 문제나 고령자 일자리 한계 등의 이유로 취업이 매우 어려워진다. 필요하다면 창업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많은 중장년 퇴직자가 재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면서 무모한 창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물론 이 세대의 재취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준비하고 도전해야 성공한다.
최근 통계상으로 봐도 구직단념자가 증가하고 있다. 경기가 어렵다고, 개인 상황이 안 좋다고 취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나라 시니어 계층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경제적으로 온갖 역경과 고난이 닥쳐도 이를 극복해내고야 마는 불굴의 의지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가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쳤고, IMF 외환위기도 지혜롭게 헤쳐 나갔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도 겪었다. 그야말로 만고풍상을 다 겪은 세대다. 이러한 경험과 연륜이 있기에 적극적인 자세로 준비하고 도전한다면 재취업은 충분히 가능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청년실업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청년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런 모순의 해결을 위해 청년들에게 무조건 중소기업으로의 취업을 유도한다고 해서 욜로(YOLO)족을 꿈꾸는 세대에게 통할 리 없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적합한 일자리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이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일자리는 부모 세대인 중장년들에게 소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시니어의 재취업은 어떻게 해야 성공할까. 가장 빠른 방법은 정부의 지원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퇴직자가 지역아동센터나 사회적 기업 등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사회공헌형 일자리도 있고, 민간 취업이나 창업이 어려운 고령자와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공익형 일자리도 있다. 이외 민간 지원 내실화를 통한 시니어 인턴십 사업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올해는 신중년 경력 활용 지역 서비스 일자리 사업이 신설되는 등 다양한 취업 지원 제도들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거나 참여 방법이 궁금하면 정부가 운영하는 각 지역 고용복지플러스센터나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최근에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일자리위원회에서도 중장년 일자리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다양한 대책들을 적극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72세까지 일한다는 통계가 있다. 정년퇴직 후 무려 20여 년을 더 노동하는 셈이다. 앞으로 이 기간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이제 나이에 대한 기존의 인식 틀을 깨야 한다. 정년퇴직 연령과 기대수명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50대는 30대, 60대는 40대, 70대는 50대로 봐야 한다. 신체나이와 사회적 나이를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년퇴직이나 일반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학교를 졸업하는 시기로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졸업과 함께 첫 번째 취업 준비를 하고 노력했듯이, 이제는 퇴직 후의 두 번째, 세 번째 재취업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의미의 말이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버려야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공공형 일자리, 시장형 일자리, 시간제, 인턴제 가릴 것 없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 전문기관의 도움을 통해 현재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재취업을 준비한다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시니어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대중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본부장
고려대 및 동대학원 졸업(경영학석사), 중앙대 HRD정책학 박사(수료). 노사공동 전직지원센터 본부장,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 본부장, 노사발전재단 국제노동센터장, NCS 및 일자리위원회 전문가 활동 중. 저서로는 춘추전직시대(春秋轉職時代), 전직으로 당신의 인생을 환승하라가 있다.
자생의료재단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금 1900만 원을 전달했다.
자생의료재단은 지난 9일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자생한방병원에서 제5회 ‘자생 희망드림 장학금’ 전달식을 개최했다고 10일 밝혔다. ‘자생 희망드림 장학금’ 사업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키워가는 청소년들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는 자생의료재단의 사회공헌활동이다.
이날 자생의료재단 박병모 이사장은 각 지역 구청과 학교 등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중∙고등학생 19명에게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장학생들에게 전달된 장학금은 총 1900만 원이다. 이 장학금은 자생의료재단과 강남∙잠실∙목동∙부천∙대전∙일산∙안산 등 7개 자생한방병원 봉사단의 출연금, 자생 희망드림 자선 바자회의 수익금으로 마련됐다. 자생의료재단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총 8550만 원의 장학금을 청소년들에게 전달했다.
자생의료재단 박병모 이사장은 “청소년들이 걱정 없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며, 희망드림 장학금으로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라며 “자생의료재단은 공익의료재단으로서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50대 중반의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모였다. 그들은 앞으로 계속 퇴직하는 이들이 늘어날 텐데, 함께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40명이 뜻을 같이하기로 했고, 이름을 ‘엔슬(ENSL)’이라고 지었다. ‘Executive Network for Second Life’의 약자다. 그리고 법적 실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협동조합으로 등록했다. 엔슬협동조합의 탄생이었다. 공덕동 서울 허브센터에 있는 엔슬협동조합의 배영효 이사장, 송덕호 이사를 만나 고수들의 고민과 이념과 가치, 미래 비전을 들어봤다.
“엔슬의 활동은 인생을 향유하고, 사회에 봉사하고, 배움을 추구하는 겁니다.”
지난 4년 동안 엔슬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배영효 이사장은 엔슬은 하나의 실험이라고 밝혔다. 수십 년 동안 한 분야에 몸담고 있다가 퇴직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유익하게 시간을 보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는 우리 시대의 커다란 과제임이 분명하다. 엔슬은 엔슬의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엔슬이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선례가 되고 우리 사회에 큰 공헌을 하는 것이 되겠지요. 또한 우리의 시행착오와 경험도 앞으로 같은 길을 걸어갈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행, 지식 나눔, 재취업, 스타트업 투자까지 경험
인생을 즐기고, 봉사하고, 배운다는 차원에서 지난 4년 동안 엔슬은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했다. 여행과 답사, 지식 나눔, 재취업, 창업 멘토링과 스타트업 투자까지, 엔슬협동조합 회원들은 퇴직자들의 도전과 실수와 보람 등을 모두 겪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엔슬협동조합의 유의미한 데이터로 쌓여 있다. 예를 들어 serving, 즉 봉사활동을 봐도 그렇다. 그들의 봉사활동은 이웃돕기 같은 차원의 활동이 아니다.
“기업 경력이 30년 넘는 임원이 많다 보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활동을 벌여왔지요. 최근 창업이 붐이잖아요. 대부분의 창업자가 젊은 친구들이고요. 아이디어와 패기를 가진 창업자라 해도 네트워크나 사업 전개 방식 등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있죠. 그래서 우리 멤버들과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겁니다. 엔슬은 숙련된 전문가들이 멘토링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직 규모는 작아 실험적 단계입니다만, 회원들이 일정 금액을 모아 스타트업 투자도 하고 있고요. 창업 멤버들 중 일부는 투자 전문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그루라고 해도 끝까지 성장하고 싶어 한다
내부적으로는 투자 기업 형태의 실험도 진행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엔슬은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엔슬 조직은 위계도 없고, 멤버들이 보상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조직이 유지되느냐?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들이 있을 수 있다.
“조직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해야만 하고, 그 일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기업이라면 계층 구조 아래 급여를 주면서 일을 시키지만, 엔슬은 그런 조직하고는 다릅니다. 멤버들끼리 품앗이를 하면서 일을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의 기대도 다르고, 상대에게 강요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40명의 멤버가 4년간 활동해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엔슬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을 하자’이다. 송덕호 이사는 ‘사람과 함께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이 오는 곳’이 엔슬이라고 했다.
“퇴임 후 시간 보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죠. 집에서 쉬고 싶고, 돈이 많으니 골프나 치면서 살겠다는 사람은 엔슬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공부라든지, 성장하길 원하는 사람이 오면 됩니다. 공부와 성장은 혼자만으론 힘듭니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하니까요. 그 니즈를 아는 사람이면 되는 것입니다.”
엔슬은 녹슬지 않는다
2019년의 엔슬은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는 사람끼리 활동을 해왔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계획을 갖고 있다.
“2019년의 가장 큰 변화는 신입회원 모집입니다. 지난 4년간은 초창기 멤버들만 활동을 해왔는데 엔슬도 하나의 조직으로서 신진대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신입회원을 모집하기로 했습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상호 작용으로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품앗이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새해부터는 모든 회원이 하나 이상의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무임승차(free riding)를 줄이는 것이 이런 성격의 조직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엔슬의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 의미는 엔슬의 가치가 학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성장과 배움을 이루려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든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든지 해야죠.”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과거의 관계들로 이뤄져 있다. 과거에 어디서 태어났느냐, 학교가 어디냐, 어떤 직장을 다녔냐 등등. 특히 시니어 세대를 이루는 50~60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 모임, 직장 선후배 모임, 종교 모임, 기타 취미활동 동호회 등이 인간관계의 주된 축이다.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과거지향적 관계들인 것이다.
“내가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야 발전할 수 있죠. 예를 들어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인문학, 물리학, 블록체인 등의 내용을 처음 접하면서 사유를 넓혀가듯 말이죠.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계급장을 떼고 진짜 새로운 사람과 일을 해보자.’ 엔슬은 그렇게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물론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무조건 장밋빛 미래를 가져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좋은 일도 있겠지만 리스크도 있을 것이다. 기업에서 수십 년간 일하며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났던 베테랑 엔슬 멤버들이 그런 문제들을 인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적 관계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얻는 게 더 많으리라는 답을 내린 것이다.
당장의 욕구는 인생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
배영효 이사장에게 엔슬의 회원이 될 수도 있는 이들, 바로 곧 퇴임할 베테랑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묻자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답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무얼 어찌하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시간을 잘 쓰자’ 정도의 말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시간을 잘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Happiness is not a destination. It is a way of life(행복은 목적지가 아니고 삶의 한 방법이다)’ 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 문제없는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마다의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지향점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보통 정년이 되어 퇴직할 때가 되면 온갖 욕망들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배 이사장은 그런 욕망이 지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보통은 옷을 벗고 나올 때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욕구가 목적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욕구이지요. 억압이 풀리면 그 욕구 역시 의미가 사라져요.”
구루가 되기 위한 출발선에 선 사람들
엔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가 있다. 바로 구루(guru)다. 자신들을 구루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직장에서 오래 생활했다는 것만으로 구루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엔슬은 구루 모임이 아니라 구루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오는 자리라는 것이다. 즉, 엔슬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그 반대로, 구루로서의 첫걸음을 지향한다.
“구루가 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지식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혜가 중요하죠. 지혜로운 사람은 향후의 변화를 읽을 수 있고 그걸 품을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아는 게 아니라 변화를 마음에 품고 사물을 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 이사장이 인생의 고수야말로 진정한 구루라고 말하자, 송 이사가 받아서 좀 더 구체적으로설명했다.
“구루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봐요. 첫째는 살면서 성장하겠다는 욕구죠. 모든 사람이 성장하려 하지는 않거든요. 둘째는 분야를 정해야 합니다. 분야가 너무 많으니까요. 셋째는 과거와 무관치 않다는 것. 과거를 무시하고 구루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걸 경험해보겠다면 즐길 수는 있지만 구루가 되기란 어렵죠. 넷째는 십 년은 더 활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4년을 걸어온 엔슬의 새로운 도전은 2019년부터 전개된다. 신입회원은 최근 1~2년 내에 퇴임한 대기업 임원들을 중심으로, 2019년 1~2월에 걸쳐 모집 선발하고, 3월에는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그들이 바라는 구루의 길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찾는 고수들에게 어떤 모델로 제시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00세 시대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이제 50대는 청년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은 그 이름대로 서울 시민 50세부터 64세까지인 50플러스 세대의 삶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2016년에 설립된 이후 재취업, 일자리, 교육, 정책 개발 등의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50플러스재단은 지난해 10월 김영대 전 국회의원을 대표이사로 임명해 향후 3년 동안의 사업 전개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최대 화두가 된 시대, 김영대 대표이사를 만나 50플러스 세대의 일과 삶에 대한 대안을 들어봤다.
새해 이슈는 일자리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그 조짐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로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등 단순 서비스직 업계에서는 사람을 쓰지 않는 대신 자동화 설비, 로봇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니어가 은퇴 후 직업으로 많이 선택하는 택시 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카풀 논란 또한 자율주행차가 도입될 미래의 택시 산업과 연결되는 사전적 갈등이다. 이처럼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일자리가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들면서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50플러스 세대는 노인 세대도 청년 세대도 아니어서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모든 50플러스 세대가 생산적이고 준비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각 방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입니다. 사실 생계형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곳은 이미 많습니다.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 등에서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죠. 그래서 재단은 인생 후반 새로운 일의 유형으로 ‘사회공헌일자리’를 발굴하고 확산하고자 합니다. 보통 ‘앙코르커리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지속적인 수입뿐만 아니라 개인적 보람, 사회적 가치 모두를 만족하는 활동, 일거리, 일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50플러스 세대를 위한 일자리 해법
시니어에게 일자리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수명이 늘어나고 부양 의무가 계속되면서 현역으로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자리 마련을 위한 노력은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정무적 책임을 갖고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도 50플러스재단을 발족해 시대적 화두에 동참했고, 최근 김영대 대표이사가 임명되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민주노총 부위원장 출신으로 시민사회단체, 국회의원, 중소기업 CEO 등의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남북경제협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임명에서부터 50플러스재단의 방향성에 대한 큰 그림이 느껴졌다.
“재취업, 일자리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십니다. 이제는 많은 분이 칠십까지 노동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되는데, 그중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 부분에 우리가 좀 더 노력해서 저소득, 취약 계층의 50플러스 세대를 케어하는 노력을 보강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50플러스재단이 시니어 취약 계층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우리나라의 고령자 빈곤율은 OECD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2.7%, 7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60.2%에 달한다. 고령화 속도도 가장 빨라서, 높은 노인 빈곤율과 고령화의 쌍끌이 현상은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더 가중시키는 상황을 불러오고 있다. 시니어의 일자리 확보가 본인 스스로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로운 틈새시장 공략해나갈 것
일자리를 찾아내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장년 일자리와 시니어를 매치시키는 것도 만만찮다. 현장에 가면 정책과 현장의 차이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50대 이후의 직업 훈련, 생계를 위한 일자리 알선 등은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노동의 가치를 살려 저소득 취약 소외 계층, 그리고 일하고 싶은 분들을 잘 안내해야겠죠. 또한 서비스직, 문화관광, 기타 영업 마케팅 쪽으로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도록, 구력과 경험 많은 분을 매칭하고 관련 프로그램과 직업들을 만들고자 합니다.”
김 대표는 최근의 일자리 대책이 세대 융합 일자리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모범적인 사례를 찾아내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만큼 그런 사례를 만들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창업과 관련해서는 당사자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창업하는 분들 중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순식간에 돈을 까먹습니다. 조사해보니 창업자 10명 중 6~7명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수를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창업을 철저히 준비하게 해야 하고, 창업자 수도 줄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진입장벽을 높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하겠다고 하면 사전에 꼼꼼히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실행 전에 미리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재단에서 올해 개발해볼 생각이에요.”
시니어가 대거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면 엄청난 손실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잃어서 순식간에 나이 들어버린다는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려온다. 청년 때는 아래로 떨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지만 나이 들면 어렵다. 따라서 선경험을 해보고 안 맞으면 빨리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 설명을 들으며 김 대표가 말하는 “조사, 증명과 함께 새로운 길을 제안하는 방향”이라는 게 어떤 모양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외국인 관광객 수를 보면 일본의 성장세를 우리나라가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건 관광 서비스하고도 맞물려 있어요. 관광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 중에 50플러스 세대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길들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관광 가이드, 문화관광 해설사, 외국인들을 안내할 수 있는 문화재 해설사 역할 등이 있겠죠.”
은퇴자를 위한 귀촌 일자리 창출
김 대표가 생각하는 대안 중에는 귀농·귀촌도 있다. 귀농·귀촌이라고 하면 무조건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농촌에 가서 생활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걸로 하고 귀촌을 하면 생기는 일자리가 있다. 수확기에는 일당 받는 일자리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통, 택배를 도와주는 일도 있다. 그리고 지방에 가면 축제가 많은데 축제에 활용될 인력으로 50플러스 세대가 가장 적합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살려고 하면 힘들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농한다고 부부가 함께 갔다가 몇 달 후 아내 혼자만 올라오는 일도 있고요. 차라리 가벼운 마음으로 일정 시간 귀촌해서 살아보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일주일 중 월화수목은 도시에, 금토일은 귀촌을 하는 거죠. 경험을 쌓고 그 속에서 익숙해지면 정착하는 걸로 계획을 세우게 해 너무 부담을 갖고 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 분들을 모아 집단으로 공유주택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귀농·귀촌과 일자리 문제 해결이 함께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북경제협력, 돌파구 될 수 있어
김 대표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이 남북경제협력 부분이다. 현재 남과 북 사이에는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분야가 경제협력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경제협력 전문가인 김 대표가 50플러스재단 대표로 임명된 것은 남북 간의 경제, 일자리 문제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은 아닐까.
“사실 정년에 걸려 배출되는 50플러스 세대가 많잖아요. 서울만 해도 교통공단, 시설관리공단, 교사, 금융인 등등 꽤 많은데 이분들이 제2인생을 설계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50플러스 세대가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습니다.”
김 대표는 남북 간 교류가 진행되면 당장 철도에 대한 시설관리 점검에 들어가야 하는데 개선, 보수 부분에서 나름대로 시장이 꽤 크게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50플러스 세대의 인력들은 기능직이 많다. 북측의 도로 보수, 여러 가지 인프라 조성 등의 기간산업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는 50플러스 세대 기능직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50플러스재단이 중추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강하다면 계속 일할 것
“저 역시 50플러스 세대로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대한민국 50플러스 세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은 실제 경험해본 사람이 시민들의 피부에 느껴지도록 설계해야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0플러스재단에서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기획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50플러스보람일자리’다. 은퇴한 50플러스 세대가 학교, 마을, 복지시설 등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경험과 전문성을 살린 사회공헌활동을 하며 인생 2막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2015년 6개 사업 총 442명의 규모로 시작해 지난해는 총 31개 사업에 2236명이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신중년 커리어 프로젝트 ‘굿잡5060’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고용노동부, ㈜상상우리가 재단과 함께 풀어가는 사업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5060세대 1000명에게 전문 교육을 제공한 후 사회적기업 취업률 50%를 목표로 하는 장기 계획이다.
“저도 칠십 세까지는 일할 계획이 있고 그 이후에는 건강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건강할 때까지는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일하던 사람이 집에서 쉬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엄청난 여유가 있어서 여행만 다니며 살 조건도 못 돼요. 그래서 칠십까지는 일하고 이후에는 사회봉사형 일자리, 공헌형 일자리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담백한 목소리로 불필요한 부분 없이 실제를 말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읽고, 통찰력과 정책으로 다듬어진 김 대표 자신이 무엇보다도 50플러스 세대인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2018년이 저물어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전방위적인 국방 개혁이다. 북한과의 관계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현재, 군대의 활용 또한 과거와는 다른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 속에서 국가보훈산업 또한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국가보훈과 사회발전을 위한 남다른 사명감으로 1994년 ㈜상훈유통을 창업한 후 24년 동안 지속성장을 실현하며 선진유통 전문기업으로 발전시킨 이현옥 회장이 올해 팔순을 맞았다. 지난 20여 년에 걸친 보훈산업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를 만나 기업의 성공 스토리와 경영 철학에 대한 소신을 들어봤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창업’일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러시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고, 일자리 부족으로 인한 청년층의 취업 실패가 누적되면서 모든 세대가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창업 후 3년 이상 존속하는 기업의 수는 매우 적다. 또한 현상 유지 수준을 넘어 지속성장을 이루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1994년 상훈유통을 창업해 고용 창출과 국가 세수 증대에 기여하며 24년 동안 꾸준한 성장을 실현한 이현옥 회장은 자신의 업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태어나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보내고 인생 말년에 이르러 거대한 전환기의 기업 오너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는 창업을 생각하는 많은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무모한 도전, 과감한 결단
“창업하기 전까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에서 20여 년간 재직하며 국가 유공자들에 대한 지원 사업을 추진했는데, 정부의 보훈복지 예산과 사회적 관심 부족 등으로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특히 다수의 국가 유공자가 정부 복지지원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위해 개인적으로라도 무언가 도움을 드릴 만한 일을 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중 마침 기회가 주어져 KT&G 연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이 회장은 사업 초기에는 자본이 부족해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처분했다고 한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모두가 말렸다. 그러나 이 회장은 보훈공단에서 관련 사업을 추진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 신뢰기반 등을 감안할 때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실패할지라도 국가와 사회를 위한 뜻 있는 결단이었던 만큼 큰 후회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것이 현재의 강소기업 상훈유통이라는 보답으로 드러난 셈이다.
20여 년간 보훈단체에서 공직생활을 한 이 회장은 상훈유통을 세울 때 국가보훈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일을 진행했다. 상훈유통은 SOFA (Status of Forces Agreement) 면세품 양도 양수 사업, 한국인삼공사 정관장 홍삼 제품 및 홍삼 음료 판매 사업 등을 갖고 있으며 상훈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는 기업이다.
전문가를 넘어 멀티 플레이어가 되라
이 회장은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에게 ‘멀티 플레이어’가 되라고 조언한다. 전문가 역량만으로는 기업을 이끌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업이란 본질적으로 수익 창출을 위한 조직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마도 수익을 창출하는 일, 즉 돈을 버는 일일 것입니다. 경영자는 이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일반 직장인이라면 자신이 맡은 일 한 가지만 잘해도 조직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지만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다른 비즈니스 감각과 리더십, 통찰력, 판단력을 지녀야 함은 물론 생산, 영업, 관리, 고객업무 등 기업 활동의 전 분야를 폭넓게 알고 이끌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성공을 거두기 어렵습니다.”
그는 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비결이란 “결국 고객이 필요로 하는 좋은 제품을 편리한 시스템을 통해 적정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신뢰’라는 가치덕목 또한 강조했다. 기업이 고객들에게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를 지속적,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이라는 신뢰감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기본 중의 기본에 대한 이야기들이지만 이 기본을 지키는 게 어려운 세상이다. 특히 보훈산업이라는 보수적인 분야에서 이러한 기본 가치들은 다른 산업보다 더 강조되고 지켜져야 한다.
돌발적인 외부 위기를 이겨내는 맷집
물론 상훈유통을 경영하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관리 가능한 내부 요인보다는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치명적인 외부 요인이 기업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든다. 현재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무역전쟁의 장기화로 그야말로 시계 제로의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돌발 상황을 견뎌낼 수 있는 맷집이야말로 기업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닐까. 이 회장이 그 어려운 길을 돌파한 것 또한 군인 정신을 연상하게 하는 맷집이었다. 베트남전에서 하사로 참전했던 그의 경력도 무관치 않아 보였다.
“창업 후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관련 정책과 제도 등의 변화로 몇 차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외부 환경 변화로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어떠한 노력과 방법을 통해 타개, 극복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입니다. 제 경우에는 그때마다 고객과 직원들, 평소 성원해주신 주변 분들을 생각하며 이들에게만큼은 절대 실망을 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이분들의 기대와 성원에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각오로 어려움을 참고 이겨냈습니다.”
군 관련 사업을 하는 만큼 정치적 부침에 따른 위기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몇 해 전에는 비즈니스와 관련해 모 기관에서 불거진 사건 때문에 자택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조사관들 때문에 가족들이 놀랐음은 당연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조사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집안 살림이 너무 검소했고 조사를 거듭해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서 조사관들이 오히려 당황했던 것이다.
기업은 내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
온갖 어려움들을 견뎌내며 아직 현역으로 상훈유통을 진두지휘하는 이 회장은 무조건 기업 규모를 크게 키우는 일은 지양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래 상훈유통의 청사진이기도 하다.
“대기업이기보다는 오히려 강소기업, 또는 내실 있는 중견기업이 더 좋은 점이 많습니다. 특히 저는 상훈유통이 일본이나 유럽 기업들처럼 후세에까지 기업의 전통과 문화가 길이 이어지는 장인기업, 장수기업이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무리한 욕심을 경계, 절제하면서 내실경영, 안정경영 위주의 경영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이 바라는 상훈유통의 미래는 내실과 안정 기반을 갖춘 수성(守成)의 역사다. 사업 프로세스의 지속적 혁신, 전문 인재의 양성, 시장 및 고객다각화 등 가진 것을 전제로 차분하게 길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그의 생각은 사회를 향한 기여로도 이어지고 있다.
나눔을 통해 더불어 느끼는 행복
상훈유통의 시작이 국가 유공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세워진 만큼, 이 회장은 그동안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12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사회에 내놓은 이 회장은 자신의 막대한 기부활동에 대해 분명한 논리를 밝혔다.
“혹자는 기업의 사회적 기여 역할에 대해 ‘결과적 기여’, 즉 기업이 지속적인 사업으로 고용과 세수 증대 등에 기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에 더해 ‘의도적 기여’ 역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 기여만으로는 그 파급 효과가 느리고 수혜 범위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회장은 사회 각계에 대한 자신의 꾸준한 기부는 특별히 좋은 일을 한다기보다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라 생각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기업은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기업이 추구해 달성하는 수익은 결국 사회로부터 창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눔과 상생의 철학으로 사업 수익의 일정 부분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이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분야에 환원할 것인가는 기업인들 각자가 판단할 몫입니다. 제 경우에는 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국가 유공자분들께 도움을 드리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이 분야의 지원활동을 꾸준히 실천해왔습니다.”
인재 놓치지 말 것
그는 팔순의 나이이지만 회사의 미래를 위한 성장동력을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이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사내 인재 양성이다. 이를 위해 상훈유통은 ‘공익 가치를 창출하는 선진유통 전문기업’이라는 비전을 정립했다.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인재는 이 비전에 기준해 선정되고 육성될 예정이다. 또한 미래 인재의 육성과 함께 회사 초창기에 입사해 아직까지 근무하는 장기근속 직원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평소 충효사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회장은 가족애와 효의 모범을 보인직원들에게 특별휴가와 가족여행 전액을 지원하는 등 효 사상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또 신의를 중시해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과는 끝까지 교류를 이어간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알맞은 직장을 소개해주고, 결혼을 못한 사람에게 중매를 서고, 고충이 많은 사람 이야기에 귀를 내어주는 등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선뜻 나서서 기어이 해줘야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천성적으로 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주변에서는 이 회장이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을 도와주고 한결같은 자세로 보훈정신을 되새기고 받들어온 CEO라고 입을 모은다.
팔순의 나이에도 검은 머리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이 회장은 칠순에 골프를 시작할 정도로 그야말로 만년 청춘이다.
“바빠봐, 바쁘다 보면 늙을 시간도 없어요. 가는데 순서없고 빈손으로 다 가는거지. 일을 계속해야 늙지 않아요.”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올곧은 마인드가 우리 독자들에도 훈훈한 미담이 되길 바라면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 회장께 올해가 가기 전에 뜨끈한 생태찌개 한 그릇 대접하고 싶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내 재산을 후대에 잘 이양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봤다. 이번에는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놓은 세계 부호들이 준비하는 인생 마무리에 대해 풀어볼까 한다. 세상 돈 많기로 소문난 부자들 미담 대부분 역시 돈. 똑똑하게 굴려놓은 재산을 내 자손뿐만 아니라 사회 모두가 쓸 수 있도록 물려주는 부자 이야기를 한 번 들여다보자.
죽기 얼마 전 유언장 다시 쓴 리처드 커즌스 회장
작년 12월 31일. 호주 시드니 근교에서 관광용 수상 비행기가 추락해 조종사 포함 6명이 전원 사망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이들은 세계 최대 식음료 출장 서비스 업체 영국 컴퍼스 그룹의 리처드 커즌스(58) 회장 일가족이었다. 두 아들은 물론 커즌스의 약혼녀, 약혼녀의 딸까지 한날한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기업 회생 전문가였던 커즌스. 그는 생전 기울어가는 회사들을 살리고 고용 안정을 이끌어내던 탁월한 전문 경영인으로 평가받아왔다. 사고 후 잊히는가 싶었던 커즌스 회장의 이야기가 8월 말 해외토픽을 타고 날아들었다. 그가 남긴 유산 4100만 파운드(약 600억 원)가 영국에 근거지를 둔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에 기부됐다는 소식이었다. 당초 커즌스는 두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죽기 1년 전 혹시 두 아들과 자신이 모두 죽게 될 경우 재산 대부분을 옥스팜에 기부하겠다는 ‘공동비극조항’을 유언장에 삽입했던 것. 사고만 없었더라면 훗날 두 아들이 받을 유산이었다. 그렇다면 왜 커즌스는 옥스팜을 굳이 지목했을까? 한국에도 지부가 있는 옥스팜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국제구호기구다. 그러나 2011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구호 현장에서 벌어진 옥스팜 활동가의 성 매수 파문으로 도덕적 치명타는 물론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이로써 7000여 명의 정기후원자가 집단 탈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뜻하지 않았던 고인의 유언 덕에 기적적으로 구호 중단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유언에 따른 커즌스 회장의 기부 소식과 함께 옥스팜 이름이 거론되면서 스캔들 때문에 잠시 잊었던 구호의 중요성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린 것은 아니었을까.
내 재산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작년 7월 미국 CNBC의 에미 마틴 기자가 CNBC 인터넷 판에 쓴 ‘자식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기로 한 7명의 억만장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흥미로운 통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자녀의 68%가 상속을 기대하고 있는 반면 부모는 40%만이 자식에게 유산 상속 용의가 있다고 했던 것.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투자 왕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로 선언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 우려섞인 말을 했다. 게이츠는 “부모가 남긴 돈을 자식들이 온전하게 지킬 수 없을 뿐더러 그들의 인생을 제대로 걸을 수 없게 한다”고 했다. 버핏 또한 1986년 경제전문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자식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충분한 돈을 남기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의 유산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게이츠 부부는 2011년 영국 ‘데일리메일’을 통해 “재산 810억 달러 중 자녀 3명에게 각각 소량의 돈을 상속할 것”이라고 했다. 버핏 또한 3명의 자녀에게 각각 20억 달러만 남겨줄 계획이라고. ‘포브스’에 따르면 버핏의 개인 재산은 올해 기준 840억 달러다. 게이츠 부부는 2000년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을 설립해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질병과 가난, 굶주림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이후 버핏도 막대한 재산을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과 죽은 부인의 이름을 딴 ‘수잔톰슨버핏재단’ 등 5개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올해 기부액만도 34억 달러다.
유산을 자식에게 남기지 않겠다는 또 다른 이가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크다. 2015년 첫딸 맥스가 태어났을 때, 그와 아내 프리실라 저커버그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딸이 살아갈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이기를 원하기에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말이다. 딸만을 위한 세상이 아닌 모든 미래세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싶다는 것이 이 젊은 부호 부부의 생각이었다.
영국의 인기 셰프 고든 램지 또한 순순히 남매들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4남매는 각자 일을 해서 교통비와 전화사용료를 낸다고. 단, 남매들이 각자 자립할 때 아파트 보증금의 25%는 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자녀들이 밥 먹는 일도 흔하지 않은 일이고 여행할 때 일등석에 태우는 일도 결코 없다고 영국 신문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린 바 있다. 이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캐츠’의 유명 작곡가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 또한 2008년 영국 일간지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그가 벌어들인 돈을 극장에 투자하고 음악가를 돕는 데 쓰고 싶다고 했다. 영화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 영국 가수 스팅 또한 상속 대신 기부를 선택한 인물로 꼽힌다.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 회장의 은퇴 계획
중국 IT업계 거물이자 세계적인 유통 사이트 ‘알리바바’ 창업주인 마윈(馬雲·54) 회장이 내년 9월 10일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윈의 쉰다섯 살 생일이자 친구 17명과 함께 중국 항저우의 작은 아파트에서 알리바바를 창업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연매출 41조 원, 지난해만 3300명이 훨씬 넘는 일자리를 창출해낸 마윈은 종종 은퇴에 관한 얘기를 해왔다. 구체적인 날짜와 시기를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퇴와 맞물려 그가 꺼낸 카드는 교육을 기반으로 한 자선사업이다. 최근 알리바바가 공식 웨이보에 공개한 마윈의 새 명함에는 ‘회장’이라는 직함 대신 그 자리에 ‘교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 사나이’라는 문구와 함께 ‘알리바바 탈빈곤펀드 주석’, ‘마윈 공익펀드 창업자’, ‘농촌교사대변인’ 등 자선사업 관련 약력이 눈에 띈다. 마윈은 이미 2014년도부터 마윈재단을 설립해 농촌의 교육 환경 개선과 자선사업에 불을 지피고 있다. 평소 롤모델을 빌 게이츠라고 말해왔던 마윈이기에 자선사업과 관련한 은퇴 계획에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2017년 기준 ‘포브스’가 집계한 마윈의 재산은 43조 원에 달한다.
한국 부자들은 어떻습니까?
상속이 기부로 이어지는 사례 혹은 은퇴 후 재단을 설립해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사례는 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18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상속과 승계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사회 환원에 대한 고민이 전년에 비해 높아졌다고 한다. 상속과 관련해 ‘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견은 지난해 1.5%에서 8.7%로 7.2%포인트 증가했다. 금융자산 50억 원 이상 보유자는 사회 환원 의향이 17.4%에 달했다. 자식이 아닌 사회를 위한 기부에 자산가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부금액은 OECD 회원국 36개국 가운데 23위다. 자산가들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한국에서도 기부왕이 나왔으면 한다.
지금 전라북도에 닥친 경제적 위기는 위중하고 국가적인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 등의 무거운 사건들은 전라북도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의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제조업의 위기 외에도 농업 기반 지역이라는 특성상 농업의 사이즈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다른 측면에서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김장근 NH농협은행 전북 본부장이 처한 상황은 이처럼 녹록지 않다. 그가 바라보는 농촌에서의 은행의 역할, 그리고 농업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NH농협은행은 기본적으로는 농협은행 주식회사이지만 정체성 면에서 다른 은행들과 완전히 차별화되는 면이 있다.
“큰 틀에는 농협법의 정신이 있어요. 그 정체성을 지키며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하는 방식이나 지향점에서 다른 은행들과 차이가 있기 마련이죠.”
김장근 NH농협은행 전북 본부장은 ‘농협이 왜 돈장사를 하냐’는 말에 “재일동포도 와서 돈장사하고 외국 사람도 와서 돈장사하는데 농민이 만든 곳이 돈장사하는 게 왜 문제냐”며 우스갯소리로 되받아친다고 한다. ‘농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농협’, ‘도민과 고객의 사랑을 받는 농협’을 목표로 은행 영업에서 일등을 목표로 하는 그는 “우리가 돈을 많이 벌어야 농민들이 기뻐한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의 기반에는 지역과 연결되어 우리가 모르는 공익적 사업들을 병행하는 농협의 특수성이 자리하고 있다.
농협은행의 특별한 사명
최근 은행들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업의 극심한 변화에 따른 수요의 변화상이 있다. 상당한 양의 거래가 온라인에서 점점 간편하게 이뤄지는 현재, 당장 은행 점포를 유지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화두다.
“여전히 은행 창구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을 보면 노약자분들이 제법 많아요. 그래서 지역사회 관점에서 보면 점포가 있는 게 괜찮아요. 그러나 주식회사인 은행 입장에서는 점포에서 적자가 나면 문제가 되는 거죠.”
김 본부장에 따르면, 전라북도의 한 지역에는 은행 점포가 농협은행 두 군데뿐이라고 한다. 유지비용을 생각한 다른 은행들이 다 빠져나간 결과다.
“지역을 지켜야 합니다. 이익이 덜 나더라도. 은행의 공공성을 생각하면 점포를 무조건 빼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물론 우리도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딜레마는 있죠. 그러나 포용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을 지키며 마을공동체로 거듭나는 은행
그러나 은행 창구에 오는 고객들 수가 줄어드는 큰 흐름이 뒤집힐 가능성은 없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점포가 존재의 정당성을 가지려면 기존 은행 점포 이상의 가치를 갖는 수밖에 없다. 김 본부장은 그 방법론으로서 마을 공동체 역할을 강조했다.
최근 기록적인 무더위 속에서, 금융위원회에서는 은행 점포들을 무더위 쉼터로 운영한다고 공고했다. 그런데 농협에서는 발표 열흘 전에 이미 플래카드를 걸고 점포를 무더위 쉼터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동사무소 등과 협력하는 등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김 본부장은 그런 모습을 설명하며 ‘점포의 재발견’이라며 흡족해했다.
“어떤 은행은 ‘점포를 다 빼도 수요가 늘었더라, 직원들 안 자르고도 할 수 있더라’ 하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그런 흐름이 분명히 있다는 게 이해는 갑니다. 앞으로 은행이 과거만큼 중요한 시대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죠. 그런 상황에서 농협은행이 어떻게 운용되어야 할까를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함께 움직이는 농협
얼마 전 기획재정부에서는 폭염으로 물가가 올라가니 농협의 비축물량을 풀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고 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기재부에서는 왜 농협과 연결해 정책을 운영하는 걸까? 이런 장면이야말로 농협의 특수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할 수 있다.
“선진국은 양질의 의식주가 적절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합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는 게 농협의 목표입니다. 정부에서 못하는, 농협에서 추진하는 협력 사업들이 많아요.”
누가 뭐라 해도 농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국가 간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식량 안보의 이슈가 커져 더욱 민감해진 분야다. 따라서 농업은 공립적 기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도 국가 자금을 들여 농업을 부양하는 이유다.
“농협의 역할은 농업을 보호하고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농민 숫자는 300만 명쯤 됩니다. 국민 전체에 비교하면 5퍼센트 이내예요. 말하자면 소수의 농민이 대다수 국민을 식량으로 부양하는 셈이죠. 이를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농협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농업가치를 생산하는 주체인 농민을 위한 농협의 중요 역할은 ‘농가소득증대’와 ‘안전한 농축산물 공급’이다. 때문에 2020년까지 농가소득 5000만 원을 달성하자는 농협의 목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보인다.
시니어의 로망, 귀농·귀촌의 현실
도시인이 귀농해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례들이 꾸준히 발굴되고 있다. 예를 들어 딸기는 단위 면적당 수익률이 가장 높은 농작물 중 하나로 조사됐다. 또 요즘의 논농사는 98%가 자동화해 노동투입 일수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쌀농사 생산성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다.
이렇게 변화되는 현실은 농업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해주는 증거들이다. 또한 최근 취재를 하다 보면 시니어의 로망이 바로 귀농·귀촌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랜 세월 분리되어 있던 문화가 합쳐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김 본부장도 사람들을 만나며 느끼는 부분이라 했다.
“귀농·귀촌은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죠. 금방 되지는 않을 거예요. 도시에서 살다 온 분들은 아무래도 고학력자에, 직책이 높은 사람들이었잖아요? 반면 시골에서 살아온 분들은 평생을 농촌에서 살았던 분들이라 이런 부분에 대해 거부감이 있어요. 얼마 전 이장님이 마을에 일이 있어서 사람들을 모았는데 귀농·귀촌한 분들은 한 명도 안 왔더라고요. 이런 상황에 대해 원래 농촌에 살았던 분들은 ‘그 사람들은 자기 식대로 살면 되고 우리는 그들 없이도 지금까지 잘 살았으니 지금처럼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외지인이라고만 생각하는 간극을 좁히는 방법이 필요해요.”
현장에서 함께 사는 은행을 꿈꾸다
김 본부장에게 영업 전략을 묻자 ‘현장을 많이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업은 매일 한두 군데 꼭 들른다고.
“돌아다니고 얘기도 들어야 알죠. 폭염이 이렇게 계속되면 소비가 줄어서 기업들이 어려워져요. 직접 애로사항도 듣고 욕도 듣고 그래야죠. 앉아서 영업이 될 리는 없잖아요?”
영업과 함께 병행하는 게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다. 그는 얼마 전 ‘희망나눔집 고쳐주기’ 봉사를 다녀왔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은행을 만들기 위해 그가 기획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장애인 가구의 낡은 벽지와 장판을 교체해주고 있다.
“장판하고 벽지 갈아준다는 말은 쉬워요. 그분들이 생활 정리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짐을 꺼내다 보면 쓰레기도 많이 나와요. 닦고 정리하고 정리가 끝나 다시 짐들을 들여 넣어주다 보니 손이 많이 가더라고요. 어제 간 집은 쓰레기가 1t이나 나왔어요. 그런 사람들이 아직 많은 게 현실이죠.”
우리나라 농가 평균소득은 호당 3800만 원 정도에 머무른다고 한다. 도시 근로자 소득에 비하면 60% 내외 수준이므로 매우 낮은 편이다. 가치 있는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사는 농업인을 위한 도움, 그것은 그가 말하는 따뜻한 금융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