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과 습지와 호수를 함께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이다. 고인돌박물관을 출발점으로 해 고인돌유적지와 매산재를 거쳐 분곡습지에 닿기까지의 거리는 약 4km. 역으로 분곡습지까지 차로 간 뒤 매산재를 넘어 고인돌박물관에 도착해도 된다. 분곡습지 산기슭엔 동양 최대의 고인돌이 있다.
호수를 따라 굽이굽이 휘고 꺾이는 길. 그지없이 수려한 시골길이다. 차로 휘익 지나기엔 아깝다 느끼며 한껏 서행을 한다. 숲에 사는 귀 달린 생명들은 자동차 소음이 성가실 게다. 내 길을 쉬 가자고 덤불 속에 깃든 고라니를 놀래니 이게 민폐다. 옛 스님들은 지팡이를 앞세워 땅을 노크하며 길을 걸었다. 행여 무심한 발길에 죄지은 바 없는 개미며 지렁이 밟힐까 저리 가라 통고하기 위해서였다.
야산 모롱이를 돌 때마다 풍경이 바뀐다. 혹은 솔숲 사이로, 혹은 대숲 사이로, 혹은 자작나무 군락 옆댕이로 길이 나서. 기우는 하오의 햇살을 받은 호수에, 혹은 하얀 물무늬 아롱지고, 혹은 초록 물빛 너울처럼 일렁거려서.
호숫가 나무들은 내내 호수에 시선을 던지고 산다. 물 위에 비친 제 그림자를 바라보며 한 생애를 살아가는 저 나르키소스들. 나무들의 그 붙박이 시선에도 생의 희로애락이 어릴까. 뒤죽박죽 꼬이고 풀리다 다시 꼬이는 생의 아이러니를 바라볼까. 외투 깃을 세우고 망연히 길에 멈춰 서 전율하는 겨울 나그네처럼 쓸쓸한, 저 물가 나무들의 정경.
운곡습지 구역에 이르러 차에서 내려 길을 걷는다. 이곳엔 오래된 마을이 있었다. 운곡(雲谷)이라는 지명이 붙었으니 ‘구름골’이다. ‘오베이골’이라고도 한다. 매산재, 행정재, 호암재, 백운재, 굴치재 등 다섯 고개가 이 골짜기에서 갈리거나 모여 ‘오방곡(五方谷)’으로 통했다. 오베이골은 오방곡의 이 지역 사투리다. 오베이란 이름, 오 맛깔스럽구나. 사투리란 우리가 고이 간수할 만한 언어의 순수 오지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산야의 젖을 물고 살았던 오베이골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1983년 영광원자력발전소의 냉각수 조달을 위한 저수지가 이곳에 조성되면서 모든 주민이 물러났다. 농토의 경작도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냉각수의 오염을 우려해서였다. 이후 이곳은 인적 끊긴 적막강산일 따름이었다지. 그렇게 30여 년이 흐르자, 어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생태계가 완연히 살아난 것. 삵과 수달과 담비, 황조롱이와 황새와 팔색조 등 멸종 위기종 생물들이 대거 나타난 것. 폐농경지가 습지로 변하며 생물들의 서식 조건이 좋아진 덕이었다. 비무장지대(DMZ)에 버금갈 생태 경관을 보유하게 된 이 분곡습지는 2011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다. 자연과 사람은 길항한다. 사람이 극성을 부리면 자연이 망가진다. 사람이 발을 빼면 자연이 살아난다.
겨울 가뭄 탓일 테지. 물을 담지 못한 습지 일원의 경관은 아쉽게도 무덤덤하다. 봄비 내리고 봄꽃들 자지러지게 필 때면 습지에 수생식물들이 번성하리라. 이채로운 물 위의 야생 화원이 펼쳐지리라. 봄은 벌써 발길을 내딛을 채비를 하는가? 운곡서원 앞 매화나무엔 꽃망울이 소담스레 맺혀 있다. 소녀의 볼우물처럼 앳되고 곱살한 매화꽃이 머잖아 설레며 피어나겠지. 겨울과 봄의 어간에서 들썩이긴 사람도 마찬가지다. 천국과 지옥 사이를 오가는 게 인생이지만, 삶도 사랑도 죄짓는 일의 연속방송극일 수 있지만, 매화 망울에서 봄을 예감하는 자의 마음은 소망으로 슬며시 부푼다.
운곡습지를 뒤로 하고 매산재 고갯길로 접어들자 참 걷기 좋은 숲길이 가지런히 펼쳐진다. 우리네 삶의 골목골목엔 축축한 상처가 고여 있기 십상이지만 이 숲길에선 가슴 밑바닥부터 말끔한 생기가 돋는다. 이를 신비하다 말하지 못할 것도 없겠다. 고개 넘어 길 끝엔 고창고인돌 유적과 고인돌박물관이 있다. 유적지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477기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고인돌.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단단하며 가장 비밀스런 무덤이다. 빗돌이 있을 리 만무하니 파묻혀 흙으로 돌아간 주인공의 정체를 알 수 없다. 그저 사람의 덧없는 소멸에 관한 적시다. 바위처럼 닳지 않는 영원을 향한 갈망의 표식이고 말이다. 영원이라니. 하루살이에 불과한 게 사람이라지만 영원은커녕 단 하루라도 제대로 사는 일조차 벅찬 게 삶이거늘. 그러나 죽어서라도 영원을 꿈꾸는 게 사람이다. 영원한 고요와 침묵은 거저 얻어지겠지만.
가봐야지 마음만 먹다가 하루는 인터넷을 열고 무조건 예약을 했다. 길동생태공원은 사전예약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하루 입장할 수 있는 총 정원이 400명 이내다. 자연 생태계 보호를 위한 공원 규칙이다.
같은 서울이지만 길동생태공원은 내가 사는 곳에서 아주 멀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거의 두 시간 만에 도착하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주변의 푸근함에 기분이 마구 좋아진다. 나지막하고 아늑한 울타리 너머엔 숲이 보인다. 탐방객 안내소에서 예약 확인을 마치고 들어서니 행복감이 차오른다.
끝을 알 수 없는 긴 나무 바닥이 초록으로 우거진 숲을 가르며 펼쳐진다. 나무의 부드러운 삐걱거림이 좋다. 흙을 밟으면서 보는 오솔길의 찔레꽃과 개망초가 예쁘다. 청량한 새소리를 이렇게 생생하게 듣다니 혼자서 흐뭇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반갑다.
걷다 보면 거미줄이 내 안경 앞에 걸려서 걷어내기도 하고 뭔지 모를 것이 나무에서 떨어져 옷에 붙기도 한다.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이 기쁨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아끼듯 걷는다. 가끔 멧돼지가 출몰하니 주의하라는 안내문도 있다. 밀림의 한 귀퉁이처럼 작은 숲길을 지나 원시림의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숲의 고요가 짜릿한 위안을 준다.
웅덩이와 습지를 지나면서 인위적 손길이 덜 타게 하느라 애쓴 흔적을 곳곳에서 느낀다. 습지 지구에서 자라는 곤충이나 식물들이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곳, 우리의 농촌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텃밭 채소와 움집 등의 풍경이 어색하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땅의 환경조건에 맞는 꽃이나 토양생물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자연 상태로 그대로 둔 것을 볼 수도 있다. 언제까지나 내버려 둔 듯 수더분하게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각종 새와 저수지의 물고기와 생태계의 고리를 위한 연결도 배려했다. 또한, 동식물들을 보호하면서 시민들이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생물들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우리에게도 그 중요성을 알게 하는 조화로움을 가꾸는 숲이다. 잘 보존된 자연이 수수하면서도 마음을 풍부하게 해준다. 신선한 공기 속에서 숲의 신비로움을 마음껏 누려본다. 시민들에게 건강한 생태공간을 제공하고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곳이다.
나 혼자만 알고 싶은 곳, 심신의 위로가 필요하고 내게 고요한 시간이 절실할 때 조용히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숲을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길동생태공원은 싱그럽게 짙어가는 녹음으로 여름을 맞고 있었다.
북촌 8경길, 여의도생태순환길, 서리풀공원길 등 서울 시내에 산책 삼아, 운동 삼아 걷기 좋은 길들이 많아졌다. 그중 어디를 걸어도 좋지만, 원하는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코스라면 더욱 환영이다. 서울 곳곳 50가지 걷기 코스의 지도, 소요 시간, 여행 정보 등을 비롯해 길의 역사와 문화 정보까지 알차게 담은 ‘서울 산책길 50’을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서울 산책길 50’ 최미선·신석교 저, 넥서스BOOKS
5가지 테마로 떠나는 걷기 여행
야트막한 산자락 숲길, 도시와 숲을 잇는 공원&숲길, 물길 따라 걷는 한강&천변길, 재미있는 골목길, 걸으며 배우는 역사문화길 등 5가지 테마로 나눠 50가지 길을 소개한다. 굳이 첫 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고, 목차를 펼쳐 익숙한 길이나 궁금했던 길부터 찾아봐도 괜찮다. 또는 책을 후루룩 훑어보며 마음에 드는 곳부터 읽어도 좋다. 가방에 넣어 다니기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125×205mm)로 평상시 이곳저곳 걸으며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책 표지 양 날개를 펼치면 앞장에는 서울시 지도가, 뒷장에는 지하철 노선도가 나와 서울 주요 걷기 코스의 위치와 교통편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걷기 코스 정보와 약도를 한눈에
책에서 각각의 걷기 코스를 소개하는 첫 장에는 코스의 이름과 길에 대한 역사와 문화 정보, 대표 사진이 실려 있다. 바로 옆 장에는 걷는 데 꼭 필요한 이정표를 중심으로 전체 코스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시한 약도가 나온다. 그 아래 걷는 거리(km)와 소요 시간, 출발점을 상세하게 적어 걷기 전 미리 시간과 거리 파악이 가능하다. 더불어 길 주변 맛집과 그밖에 정보, 참고 사항 등을 친절하게 담았다. 이 두 페이지에 담긴 정보만으로도 코스의 풍경과 진행 방향, 난이도, 특징 등을 가늠할 수 있다.
구간마다 거리와 사진을 알차게
출발 지점부터 목표 지점까지 코스를 세분화해 각각 이정표로 구분하고, 순서대로 번호를 달았다. 이정표와 이정표 사이 거리를 미터(m) 단위로 표시해 길을 걸으며 쉬는 구간이나 중간 목표 지점을 계획성 있게 짤 수 있다. 이정표마다 정보 글과 함께 그곳에서 보이는 주변 풍경 사진을 넣어 코스를 헤매지 않도록 돕는다. 그밖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적에 대한 설명과 이용 방법, 요금 등을 담아 도보여행을 하는 데 더욱 유익하고 편리하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 1
책 속의 맛집 ‘남산공원 둘레길’은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출발해 명동역까지 총 8.2km, 약 3시간이 소요된다. N서울타워를 중심으로 남산 자락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둘레길을 빠져나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부터 명동역까지 이어진 만화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향하기 약 400m 전 산채비빔밥과 전통차를 즐길 수 있는 ‘목멱산방’이 나온다. 코스 거리와 시간을 조절해 식사 때에 맞춰 방문해보면 좋겠다.
#plus 2
책 속의 영화 ‘홍제동 개미마을’은 6·25전쟁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인왕산 자락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1980년대,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이곳은 골목마다 그려진 알록달록한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 등장한 벽화를 찾아보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plus 3
책 속의 미술관 석촌호수 산책로는 봄이면 화사한 벚꽃과 철쭉이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석촌호수 꽃길을 걷다가 곰말다리를 지나 몽촌토성길을 향하다 보면 올림픽공원 내 자리 잡은 소마미술관을 발견할 수 있다. 43만 평에 이르는 드넓은 녹지와 어우러진 소마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와 다듬어지지 않은 목재를 이용해 자연친화적인 외관을 자랑한다. 전시 외에도 다양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봄꽃이 만발하는 4월에는 ‘작가 재조명 展-황창배, 유쾌한 창작의 장막’을 관람할 수 있다(5월 20일까지, 회화·드로잉·영상 등 200여 점 전시).
얼마 전 자연생태가 잘 보전된 습지를 돌아보고 왔다. 다녀온 후 내내 우리 인간들이 움직이기만 해도 자연환경에 피해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무분별하게 파헤치는 것을 하루빨리 멈추고 녹지를 살려야만 야생 동식물들이 살아갈 수 있음을 확인하고 온 날이었다.
전북 고창엘 가면 운곡습지가 있다. 이곳은 농민들이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시골마을이었는데 1980년대에 영광원자력 발전소가 생기면서 냉각용수 공급을 위해 9개 마을 주민을 이주시켰다. 그리고 운곡저수지를 건설했고 그 후 40년 가까이 사람들의 접근 없이 방치되었다. 이때 생태계가 스스로 복원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하여 2011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이 되었고 2013년에는 고창군 행정구역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 되었다.
운곡습지에 들기 전에 고인돌 분포지역을 만난다. 산아래 벌판에 군집을 이룬 각종 형식의 고인돌이 1600여 개다. 그중에 422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계속 연결되는 오베이골 탐방로를 따라 운곡습지를 향해 출발한다. 외부의 생태교란 외래종 식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발 털이개에 발을 털고 들어가면서 문득 마음이 경건해 지기까지 한다. 이제부터 자연 그대로 비포장도로다. 그리고 숲에 들면서 수변을 관찰할 수 있는 데크가 길게 나타나는데 환경을 덜 훼손하려고 좁게 조성되었다고 한다.
습지관리센터까지 4.6Km의 데크를 걸어가면서 운곡 습지에서 서식하는 동식물들을 만나기도 한다. 남한의 DMZ라 불릴 정도로 멸종위기의 수달이나 삵, 구렁이, 담비와 같은 864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가을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숲소리가 운치 있다. 철따라 가시연꽃이나 구절초와 노랗고 자줏빛의 꽃들과 새소리 물소리를 만날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숲길에서 길을 잃을까 두려움조차 들 정도로 밀림을 방불케 한다. 밀림 영화 속 한 장면이 튀어나올듯한 풍경이다. 65만 평에 달하는 산지형 습지에 도무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뒤엉킨 나무와 풀들이 제멋대로 자연스럽다. 저 앞에 좀머 씨처럼 끝없이 혼자서 걸어가는 누군가의 뒷모습도 있다. 길 옆으로 시원스러운 저수지 위로 새들의 군무를 볼 수도 있다. 탐조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자연 그대로의 산세 덕분인지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걷는데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다.
요즘 걷기 코스로 흔히 올레길이나 둘레길을 찾아간다. 이렇게 태고의 숲처럼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길을 걸어본다면 감동이 달라질 것이다. 밀림 속에 파묻혀 힐링을 체험하는 순간이 된다. 마음을 나눌 사람과 두런두런 걸어도 좋고 좀머 씨처럼 혼자서 걷고 또 걸어도 좋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나는 굽이굽이 숲 속 사이에 자리 잡은 공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붉은 화로가 이어진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짙푸른 나무 숲, 맑은 물, 흐르는 산골 출신이라 생각할 테지만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도시로 이사한 이후에도 이모가 살고 계신 그곳으로 방학 때가 되면 찾아갔다. 내 고향 공장 근처 저수지에서 죽어 있는 물고기들을 발견했고 다시는 그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푸른색 자연이 전부가 아니었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자연을 목격하다
태생적으로 자연에 관한 궁금증이 많았던 나는 20대 초반 환경단체의 일원이 됐고 잠시나마 단체의 간사로 활동했다. 쓰레기를 줄이는 것 말고도 환경을 위해 할 일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고, 보지 않으면 모를 사회문제를 하나씩 알게 되면서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다. 중·고등생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새만금간척사업의 당위성은 정당하지 않았다. 뉴스도 믿을 게 못 됐다. 누군가 사실을 왜곡하고 포장해서 하면 안 되는 일을 자연에게 해 왔다. 자연이 사라진 첨단 미래 도시가 멋질 것이라 상상하고 꿈꿨던 어린 시절이 부끄러웠다.
환경단체 회원과 간사로 마주했던 과거의 환경 관련 사업을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하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순간인 2003년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과 지율스님의 기나긴 단식으로 기억되는 천성산 도롱뇽 소송, ‘녹조라떼’ 논란 4대강 사업 반대운동 등이 있었다.
‘환경을 보호하자’, ‘자연을 살려내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들 사업을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새만금에 살던 백합조개는 물길이 막혀 죽었고, 철새들은 내려서 쉬고 먹을 공간을 잃었다. 도롱뇽이 살던 곳에는 큰길이 뚫렸고, 4대강 사업은 새 정부가 전면 재조사 방침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자연은 이미 훼손됐다. 자연은 끝 모르는 발전 욕구,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는 조급함이 각인된 이들에게 아주 쉽게 숨통을 조일 수 있는 상대였다.
순간적으로 몇몇 소수는 이득을 봤다. 국민들은 개발 주체들이 내놓은 청사진에 환호하다 사업이 미진하다 싶으면 이에 화내기는커녕 잊기 바빴다. 현재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혹여 어떤 이는 내 일이 아니니 괜찮다고 할 것이다. 과연 남의 일일까? 국책사업에 들어간 돈은 우리 모두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매일 중요 뉴스로 보도되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관련한 갑론을박, 끝난 줄 알았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재점화, 밀양 송전탑 문제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이 나라 주인 우리의 일이다.
옥자, 미자 그리고 나
영화 는 마치 고향 산천과 공장,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인간의 허황된 탐욕 덩어리인 슈퍼 돼지 ‘옥자’를 스리슬쩍 무공해 자연에 옮겨놓은 모습이 산속 연기를 뿜던 공장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지금까지도 자연은 도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인공 자궁 역할을 강요당하고 있고 결국 남은 것은 폐허뿐이다. 정복하고 착취하는 것은 쉬울지 모르겠지만 후회해도 다시 예전으로 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서 숨 쉬는 모든 자연은 존엄하다. 사람 또한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눈 딱 감고 뺏고, 쉼 없이 사용하고, 버렸다. 자연은 점점 사라졌고 자취를 감출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멀어지고 사라져 버리는 자연을 제자리에 놔두고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이 모여 생겨난 것이 바로 환경단체다. 영화에서 옥자를 구하는 ‘ALF(동물해방전선)’처럼 적극적인 행동으로 환경 문제에 파고드는 것뿐만이 아니다. 환경과 관련해 시민 참여를 일깨우고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행동들을 보급하고 알리는 역할도 환경단체의 중요한 임무다. 각 단체의 크고 작은 실천 운동은 정책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 도시 텃밭과 장터, 빈 그릇 운동, 환경 관련 실태 등을 조사하며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생명을 지켜가는 녹색연합
녹색연합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의 중심에 서 있는 박그림 공동대표와 함께 백두대간과 서울 주요 등산로 실태조사를 실시해왔다. 걷기 열풍으로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수용 한계에 다다른 전국의 등산로는 깊게 패여 몸살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녹색연합이 조사해 알렸다.
산양보호운동 또한 녹색연합 활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 통해 경북 울진 지역 주민과 소통을 해오다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을 정착시켰다. 예약탐방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방문 전 인터넷을 통해 예약해야 숲길을 이용할 수 있다(uljintrail.or.kr). 지역주민 해설사와 반드시 동반 탐방하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환경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주는 좋은 사례다. 녹색연합의 홍보모금 담당 부서의 상상공작소 박효경 팀장은 ‘불편해도 괜찮은 여행법’이라는 가이드를 만들어 자연을 대하는 기본 예의를 정리해 주었다.
‘불편해도 괜찮은 여행법’
1. 여행의 기본은 텀블러와 에코백.
2. 환경에 무해한 세제 사용. 비누, 치약, 자외선차단제 중 하나라도 친환경용품 준비.
3.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박시설과 음식 선택. 여행지의 문화를 깊게 체험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것.
4.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해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만나자. 렌터카 이용 시 소형차나 하이브리드차를 고르자.
5. 외출 시, 전등과 냉난방 꼭 끄기.
6. 희귀 동식물로 만든 기념품은 사지 않고, 보신 음식은 먹지 않는다. 야생동물이 있는 숲에서는 조용히 걷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잠시 머물다 온다.
여자라면 꼭! 알자!-여성환경연대
여성환경연대는 여성생태학적(에코페미니즘) 관점에서 모든 생명과 환경을 바라보는 곳이다. 지금 이곳에서 펼치고 있는 운동 중 여성 생활과 가장 밀접하고 친밀한 것이 월경문화캠페인 ‘나는달’과 ‘화장품 다이어트’다.
과거에 당연하게 여겨지던 생리대인 면 생리대가 ‘대안 생리대’로 불리면서 다시 세상에 돌아온 이유는 시중에 판매되는 일회용 생리대 속 성분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일회용 생리대에 포함된 성분을 표기하는 ‘전성분표시제’가 현재까지도 실시되지 않고 있다. 플라스틱 소재를 쓰고 있는 일회용 생리대는 통풍이 되지 않아 피부가 짓무르거나 체온으로 인해 세균 번식이 쉽다. 13세에서 50세까지 약 37년 동안 여자는 약 1만1100개의 생리대를 사용한다. 이는 매년 여의도만 한 숲을 파괴해야 가능하단다. 여성환경연대는 최대한 면 생리대를 삶아 쓰는 것을 권하고 있으나 그게 어렵다면 적어로 향이 없는 제품을 고르기를 권한다. 향이 있는 제품은 휘발성 유기화합물 수치가 높다.
화장품 다이어트의 기본은 천연 제품을 사용하고 불필요한 기초화장 단계를 줄이고 적게 씻는 것이다. 기초화장은 천연비누로 세안 -> 토너 -> 로션/에센스/크림 (중 하나만) -> 자외선 차단제 4단계로 충분하다. 폼 클렌저, 클렌징 오일 등 클렌징 제품으로 화장을 지운 다음 이중 세안은 진한 색조화장이 아니라면 할 필요가 없다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화해’를 통해 화장품 전 성분 표시를 확인하고 화장품을 사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되도록 무향, 무색소 제품과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을 이용할 것과 영·유아에게 탈크가 함유된 파우더 사용하지 않기 등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안내하고 있다.
화장품 다이어트의 각질 제거 TIP!
베이킹소다 혹은 곡물가루 이용한다. 일주일에 1~2차례 소다(탄산수소나트륨 혹은 베이킹소다)나 쌀겨를 물에 적셔 얼굴에 바르고 부드럽게 마사지 한 후 미지근한 물로 헹군다.
당신 손 안의 스마트폰 오래오래 소중하게 다루세요.-그린피스
그린피스에서는 이제 실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스마트폰 등 IT 관련 분야에 관해 접근하고 있다. 애플사에서 2007년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내놓았을 당시 손 안의 혁신을 가져다 준 창조적 결과물에 감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사람은 쓰고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안 쓰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2G 핸드폰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했고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의 신모델이 출시돼도 프로그램이 안정적이지 않다며 초기 모델을 선호하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왔다. 이상한 것은 과거에는 가능했던 스마트폰의 기능이 현재는 사라지고 있다. 메모리 카드로 저장 공간을 확장을 못하고 배터리도 본체와 일체형이라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교체할 수 없다. 기계의 결함과 고장, 침수 등 고장이 났을 때도 수리를 맡기지 않고 새 상품을 갈아타버린다.
매년 출시되는 신모델에 발맞추다 보면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되는 스마트폰을 대세에 떠밀리듯 바꿔버린다. 제품 수명이 줄어들면 결국 이익을 보는 것은 제조업체사다.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기계를 자주 바꾸면 제품을 만들 때 사용된 자원, 에너지, 인력 등의 낭비가 가속된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 배터리에 들어가는 코발트를 채굴하기 위해 콩고의 가난한 광부들은 지도나 안전장비 하나 없이 깊은 땅속에서 질식과 매몰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스마트폰 교체 주기는 2년 2개월이며 18세에서 35세 사이 연령층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이미 90%를 넘어섰다. 우선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품과 부속을 재사용하고 폐기된 기기에서 가능한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많이 재활용해야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그린피스는 재생가능에너지로 제조하는 것 또한 자연을 위하고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충청도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데다 바다와 산 계곡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다. 그중에서 금강자연휴양림은 금강 젖줄에 자리 잡아 탁 트인 풍경과 아기자기한 골짜기가 어우러져 다양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 귀여운 손자손녀들과 금강자연휴양림에서 싱그러운 숲체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에서 출발해 경부고속도로에서 천안-논산고속도로 빠져 다시 당진-대전고속도로 상주 방면으로 길을 틀었다.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공주시 반포면. 충남의 긴 젖줄인 금강이 흐르고 군데군데 울창한 자연습지도 눈에 띈다. 예전에는 황새나 왜가리, 가마우지, 검은머리물떼새 등 다양한 새들이 날아와 사시사철 이들의 날갯짓을 볼 수 있었지만 4대강 공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쉽게도 이들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금강에 가로놓인 빨간 아치 모양의 불티교를 건너면 충남산림환경연구소 간판을 단 금강자연휴양림이 나온다. 정문에 들어서면 넓은 주차장부터 눈에 들어온다. 충청도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해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서는 이곳을 생소하게 여기거나 아예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금강자연휴양림은 원목 펜션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체계적으로 구성된 산림박물관, 동물원을 비롯해 수백 가지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고 있는 열대 온실, 여름이면 피서객들로부터 인기를 모으는 계곡 수영장과 야영 캠프장 등 자연을 테마로 즐길 수 있는 시설은 모두 갖추고 있다.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당일치기 여행보다 주말을 이용해 숙박하는 것이 금강자연휴양림을 구경하기에 여러모로 좋다.
◇ 100명이 먹어도 남는다는 잭후르츠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62ha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의 수목원이 나온다. 휴양림과 별도로 주소를 가지고 있을 만큼 광활한 넓이의 수목원은 17개의 전시수목원과 7개의 전문수목원으로 꾸며져 있다. 활엽수, 침엽수, 약용수, 야생화 등과 함께 가을에 찾으면 붉은색으로 갈아입은 울창한 단풍나무 숲이 관람객들을 맞는다니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10월 중순께 이곳을 다시 찾아도 좋을 듯하다.
수목원 한가운데에는 충남산림환경연구소가 자랑하는 첫 번째 보물인 열대온실이 나온다. 마치 유리로 만든 궁전인 듯 둥근 돔의 모양을 띠고 있는 열대 온실에는 전 세계에서 자생하는 50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부처님이 득도하셨다는 인도 보리수나무와 성경에 등장하는 올리브나무, 인류 최초로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인 이집트의 파피루스 등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꾸며진 문화식물원은 인류사에 깊은 의미가 담긴 스토리텔링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기에 제격이다.
바로 옆 열대화원에는 하와이언 훌라댄서처럼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을 지닌 적도지방의 식물을 볼 수 있다. 전통의상의 재료이자 하와이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선사하는 꽃다발인 플루메리아 등 열대지방 특유의 컬러풀함이 무척이나 이색적이다. 열대과수원에도 관람객들을 놀라게 하는 특이한 나무가 있다. 과일 한 개의 무게가 자그마치 50kg에 달하는 잭프루트는 100여 명이 둘러앉아야만 열매 하나를 간신히 해치울 수 있다. 열대지역에서 식량 대용으로 쓰이는 빵나무는 고구마 맛이 나며, 체리모야, 파인애플, 망고, 파파야 등 열대 과수들의 달콤한 향기가 아이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열대온실 바로 위에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산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통적인 백제 양식을 따라 지붕의 귀솟음과 기둥의 배흘림을 반영한 산림박물관은 6개의 테마별 전시실을 비롯해 시청각실로 이루어져 있다. 산림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올 때쯤이면 당신도 이미 나무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자연체험을 할 수 있는 엘리트 체험코스를 갖추고 있으니 산림박물관에 들어올 때는 필기도구를 꼭 준비하자.
◇ 숲길 걸으며 듣는 생생한 자연학습프로그램
금강자연휴양림이 유명해진 이유는 비단 큰 규모만이 아니다. 숲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양질의 숲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이용객들로부터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다고 한다. 숲체험은 동절기를 뺀 3~11월 내내 휴무 없이 계속된다. 단 추석연휴에는 숲체험을 하지 않으니 잊지 말고 체크할 것.
숲체험은 자연학습프로그램과 숲해설로 구분된다. 자연학습프로그램은 8세 미만의 어린이들을 위한 유아숲체험교실, 초중고생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자연휴양림 숲교실, 장애인 및 다문화가정 등 취약계층을 위한 나눔의 숲교실, 일반인과 숲속의집 이용객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명상의 숲교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와는 별도로 개별 탐방객을 대상으로 숲해설 프로그램이 1일 3회씩 무료로 진행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여름이 가기 전에 숲이 선사하는 싱그러움을 만끽해보자.
◇ 숲을 연주하는 동물들의 교향곡
금강자연휴양림에는 식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마을은 동물의 관람 및 생태 관찰, 특히 어린이들의 생태학습과 다양한 볼거리 제공을 위해 수류와 조류로 구분하고 있다.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는 거대한 발톱과 부리만 봐도 두려움이 생긴다. 연못을 자유롭게 노니는 오리 떼는 원앙과 백조와 함께 관람객들을 반갑게 맞는다.
두 발로 걷다가도 먹이를 한 손에 들고 그루터기에 앉아 맛있게 점심을 먹는 일본원숭이는 꾀도 많고 호기심도 많다. 사람들이 나타나면 이내 달려와 함께 눈을 맞추며 대화라도 하자는 듯 팔을 내밀기도 한다. 울타리가 쳐진 넓은 들판에서 사는 꽃사슴은 자태가 우아하고 수줍음이 많다. 관람객들이 주는 먹이에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이내 먼 곳으로 뛰어가더니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사슴에 비해 키는 작아도 씩씩한 염소와 양떼가 관람객들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려고 울타리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땅 속에 굴을 파고 사는 귀염둥이 토끼는 소리가 나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을 발견하곤 굴 안으로 숨기에 바쁘다.
수목원, 박물관, 동물원 등 다양한 시설을 체험하다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만다. 이제 숙소를 향해 발길을 돌릴 차례다. 숙박시설은 잣나무, 벚나무, 잎갈나무 등 다양한 목재로 지어져 있다. 나무를 비롯해 자연친화적인 황토, 자갈 등으로 만들어져 아늑한 분위기 속에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크기는 작게는 6명부터 30명이 머물 수 있도록 다양하게 꾸며져 여행의 용도에 맞도록 선택할 수 있다. 펜션 내부에는 기본적인 취사 및 취침 시설이 구비돼 있으니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금강자연휴양림은 모두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니 사전 문의 후 여행일정을 잡아보자. 주말에 이용하려면 가급적 2~3주 전 예약하는 것이 좋으며 9~10월 간절기를 대비해 두툼한 옷을 꼭 챙겨가도록 하자.
◇ 금강자연유양림(충남산림환경연구소)
홈페이지 www.keumkang.go.kr
문의 041-635-7400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산림박물관 길 110
숲해설 시간 1일 3회(10:30~11:30, 13:30~14:30, 15:00~16:00)
※추석 연휴엔 휴관하며, 숲속의 집 펜션과 야영장 숙박, 자연학습 및 숲해설 프로그램은 인터넷을 통해서만 예약 가능
◇ 금강자연휴양림 주변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
- 석장리박물관
금강을 따라 발달한 선사시대 주거촌의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구석기와 신석기시대 위주로 선사문화의 이해를 돕도록 체계적인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홈페이지 www.sjnmuseum.go.kr 위치 충남 공주시 금벽로 990(석장리동)
관람시간 09:00~18:00 문의 041-840-8924
- 국립공주박물관
화려하고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진수를 알아볼 수 있는 공주박물관에는 무령왕릉실, 충남 고대문화실, 야외 정원 등 다양한 시설이 구비돼 있다. 2004년 개관, 효과적인 체험을 위한 첨단시설을 갖추고 있다.
홈페이지 gongju.museum.go.kr
위치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웅진동 360) 문의 041-850-6300
- 무령왕릉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한반도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무령왕릉은 한국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봐야 할 필수 체험 코스. 위치 충남 공주시 송산리 일대
>>>글 임도현 프리랜서 veritas11@empas.com 사진 김남헌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마음에도 무게가 있을까. 대개 이상, 사회공헌, 자아실현, 사랑, 성공 등 몇몇 단어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뒤도 안 보고 달린다. 돌아보면 이리 저리 치였고, 주름은 하나둘 늘었다. 지난 세월의 무게만큼 늘어진 몸, 마음에도 무게가 있을까. 측량해 볼 수도 없지만 마음속엔 늘 돌덩이 하나 앉아 있다, 중년이다. 잠깐, 돌덩이 내려놓을 휴식이 필요하다. 오전과 오후 일상을 이어주는 낮잠처럼 쉼표 하나 찍는 것으로 ‘충전’이 가능하다. 잠 깨면 다시 일상이지만 그와는 다른 힘을 주는 낮잠이 있다. ‘템플스테이’다. 전국에는 훌쩍 찾아가도 낮잠을 내주는 사찰이 많다. 사찰에서의 하룻밤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한다. 나를 되돌아보는 성찰이다. 천혜의 자연은 덤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래서 떠난다.
글 최호승 법보신문 기자 0910time@naver.com
사진 한국불교문화산업단 제공
거북도 쉬어 가는 성주 심원사
거북도 쉬어 간다는 경북 성주 심원사는 지친 몸과 마음을 뉘일 수 있는 곳이다. 소백산맥 자락 가야산에 둥지를 틀고 있는 산사다. 일찍이 에 ‘가야산의 지세나 풍경이 천하에 뛰어나며 그 덕은 해동에 견줄 곳이 없으니 참으로 수도하기 좋은 곳’이라고 했으니, 심원사는 일상 속 쉼표를 찍기에 제격이다.
심원사는 등산객으로 비좁은 가야산 안에 있지만 관광객을 만나기 어렵다. 그만큼 다른 세상이라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여기만 한 곳이 없다. 가야산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어 거북이처럼 쉬어 갈 수 있다.
특히 심원사는 ‘푹 쉬다 가이소’라는 휴식 템플스테이가 주말과 평일에 운영된다. 기본적인 사찰예절과 108배 등을 빼면 간섭을 받지 않는다. 사찰에 도착하면 단아한 수련복을 제공받고 기본적인 일과 설명이 끝나면 자유다.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참가비가 아쉽다면 차담을 권한다. 스님과 차담이 자유로워 말 못할 고민들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유필상 상상출판 대표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도움으로 이곳을 찾아 스님을 만난 뒤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촌음을 다투며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과거와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했던 아픔을 잠시 내려놓고 비로소 자신 안의 ‘나’와 마주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는 “잘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스님이 답했다. “‘걸리버 여행기’에는 반짝이는 돌을 갖기 위해 싸우고 숨기는 이야기가 나오네. 자네가 가지려는 그 무엇이 반짝이는 돌과 무슨 차이가 있겠나. 잃어버리면 낙심하고 세상 다 끝난 것 같고 죄진 것도 아닌데 피하고 숨어 지내는 것 아니겠나. 돈이든, 자리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밤엔 가야산 산줄기 따라 쏟아지는 별빛에 몸과 마음을 샤워하는 환상적인 시간이 참가자를 기다린다. www.simwonsa.kr 054)931-6887
내게 걸어 들어가는 길, 반야사
충북 영동 반야사도 혼자 가야 정취를 제대로 느낀다. 자신을 위한 여행의 로망을 풀어놓기에 영동 첩첩산중에 자리한 반야사가 안성맞춤이다. 반야사는 큰 물줄기를 끼고 있다. 소백산맥 줄기에 솟은 백화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만든 연꽃 모양 중심에 반야사가 있다.
반야사의 길은 특별하다. 숲에 난 오솔길을 한참 걸려야 산문에 다다르는데, 이 길의 고요함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넓지 않은 도량에 문수전과 관음전이 적당히 떨어져 있어 오가는 길이 곧 산책로이자 사색의 길이다. 문수전을 돌아 푸른 대나무 숲을 지나 관음전으로 향하는 짧은 산책로는 맨발로 걸으며 흙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다. 또 산마루에 있는 문수전까지 이르는 길은 사계절 내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정묵당 뒤로 개천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계단이 나오는데, 물길 따라 걷는 이 길은 압권이다. 그리고 관음전 연못가는 자신을 반추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상시 운영 템플스테이 ‘난 나를 사랑해’와 특별 프로그램 ‘또 하나의 시작’에서 누구나 길을 만날 수 있다.
별빛 아래 산책은 반야사 템플스테이의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한낮의 산행과 다른 맛과 멋을 선사한다. 반야호수 주변에는 가로등 몇 개만 가물거린다. 달과 별을 위한 배려다. 한적한 이 호숫가를 거닐면서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반야호숫가, 관음전 오솔길, 편백나무숲, 수령 500년 된 배롱나무, 문수전 등 반야사 도량이 건네는 쉼표이기도 하다. 심원사에 이어 반야사도 찾았던 유필상 상상출판 대표는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웠던 자연의 소리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는 순간,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했다”고 회고했다. www.banyasa.com, 043)742-7722
지리산 천왕할미 품 속 산청 대원사
아픈 배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약손처럼 위로가 필요할 땐 지리산 산청 대원사로 발길을 돌려보자. 대원사는 주차장에서 3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천왕봉에 이르는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새재마을 아래에 일주문이 있다. 대원교에 올라서면 남한 제일이라는 시원한 계곡 경치가 맞이한다. 천왕봉에서부터 중봉, 하봉을 거쳐 쑥밭재와 새재, 왕등재 등을 지나온 실개울들이다.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나면 사찰예절과 합장, 절에 대한 의미를 배운다. 이어 지리산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저녁 공양시간이다. 마고할미가 산다는 지리산에 자리한 대원사는 비구니 스님이 거주하는 사찰이다. 여성 수행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해서 공양에는 어머니 손맛이 그득하다. 지리산에서 나는 갖가지 산나물이 지천이고, 비빔밥은 나물마다 독특한 향이 날것 그대로 몸과 마음을 적신다.
골짜기 주변으로 맹수들이 많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 맹세이골 숲 탐방을 나서면 지리산 생태를 관찰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친 나무들이 새로운 이름과 이야기로 다가온다.
대원사에는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이 한 번도 바닥에 눕지 않고 42일 동안 수행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좌선대가 있다. 흉내 낼 요량으로 앉으면 지리산 치마폭에 안긴 대원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야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김혜윰씨는 “어떤 모습이어도 있는 그대로 받아 줄 것만 같은 절집으로의 여행은 고향 할머니를 찾는 마음처럼 부담이 없다”며 “힘들다고 한바탕 한탄하고 어리광 부리면 ‘그래,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안아주고 고봉밥을 내주던 할머니 같다”고 했다.
대원사는 ‘몸생생’, ‘마음생생’ 2가지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계곡 포행(布行: 천천히 걸으며 선을 행함)이나 약초찜지라, 맹세이골 생태체험 등 휴식 템플스테이 ‘몸생생’은 매일 진행된다. 명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싶다면 주말에 ‘마음생생’을 찾길 권한다. www.daewonsa.net, 055)974-1112
사람 향기 풍기는 땅끝마을 해남 미황사
땅끝마을, 그곳에도 절이 있다. 달마산 아래 해남 미황사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주차장에서 미황사로 오르는 돌계단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섬에 있는 곳을 제외하곤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천년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대웅보전에는 거북이나 게 등 바다생물 문양이 새겨져 있다.
미황사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석양이 물드는 시간,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일몰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달마산에 해 지고 달이 찾아오면, 처마 끝으로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는 밤풍경에 취하는 것이다. 김혜윰씨는 “달마산 정상의 백색 화강암 바위 봉우리가 낙조의 붉은 빛을 받아 더욱 금빛으로 반짝인다”며 “대웅보전 주춧돌에 조각돼 있는 게와 거북이 마치 연꽃 위로 기어 올라가고 있는 듯 보인다”고 상상의 나래를 폈다.
미황사 경내를 돌아보는 시간을 추천한다. 미황사가 품은 단 하나의 암자인 부도암은 왕복 20분 거리다. 여러 부도탑에는 게와 물고기, 거북 조각이 새겨져 있고, 조각의 소박함에서는 따스함이 묻어난다. 측백나무 숲길이 주는 싱그러움이 그립다면 돌 더미가 흘러내리는 너덜지대를 지나 ‘다르마 로드’에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미황사는 ‘참 나’를 찾는 템플스테이가 인기다. ‘나를 챙기다’는 간단한 수행 프로그램이 있다. 특별 프로그램 중 ‘길 없는 길’을 택한다면 참선부터 다도, 묵언, 오후불식, 수행문답 등을 체험하면서 일상에 길들여진 ‘거짓 나’에서 ‘참 나’를 찾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www.mihwangsa.com, 061)533-3521
돈은 중요하지 않다. 일자리가 나를 움직인다. 대기업 임원에서 숲 해설가가 된 김용환씨를 만났다. 많은 돈을 받지 않지만, 퇴근하면 다시 출근할 생각에 설렌단다.
두 번째 직장에서 퇴직한 후 약 4년이 흘렀다. CJ 제일제당 상무, 스파클 CEO. 화려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명함들은 집안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 있다. 이 명함의 주인공 김용환씨는 이제 화려한 직함이 새겨진 명함 대신 ‘국립수목원 숲 해설가’라고 써진 명함을 내민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더 큰 세상이 보이더라고요. 그것 중 하나가 숲입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궁무진한데 그것을 모르고 살았지요. 저는 그것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보람된 일도 하니 그야말로 일이 힐링이지요.”
김씨의 얼굴에는 이제 여유가 넘친다. 어깨를 무겁게 했던 직장생활의 고달픔과 긴장감은 이제 얼굴에 남아 있지 않다. 부드러운 말투와 편안한 미소가 김씨의 현재를 알려줄 뿐이다. 대기업 임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진 월급봉투는 새로운 일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 보람이 있고, 나이가 더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오직 그것만이 김씨를 광릉 숲으로 인도했다.
◇ 재취업 준비 늦을수록 적극적으로
김씨의 퇴직 준비는 오래전부터 이뤄진 게 아니었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몸담아 온 CJ 제일제당에서 퇴직했을 때 새로운 일을 하며 은퇴준비를 하려고 했다. 그가 그렸던 청사진은 전원생활이었다. 산에서 약초도 캐 팔기도 하고, 펜션 사업을 하면서 유유자적하며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당시 그의 나이 49세. 아내와 대학생인 두 아들을 부양하기에 전원생활은 위험부담이 컸다. 때마침 들어온 후배들의 간곡한 청도 거절할 수 없었다. 생수 제조업체 스파클의 경영을 맡아달라는 것.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싶었지만, 첫 직장 퇴직 후 반년도 안돼 스파클의 CEO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49세였던 당시 회사에서 퇴직해서 은퇴준비를 하려고 했어요. 상황이 안 도와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은퇴 준비는 자연스럽게 소홀하게 됐죠.” 그 후 8년이 흘렀다. 그가 스파클의 경영을 맡은 사이에 연 매출도 8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물론 더 그 자리에 머무를 수도 있었다. 마흔 끝자락이 었던 나이도 어느새 이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꿈꿔 온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 57세. 그가 생각한 은퇴 준비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는 두 번째 퇴직 후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한 때가 이때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미리 해뒀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전원생활과 같은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다. 더 이상 공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진 자리는 있고 싶지 않았다.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까?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아내와 찾은 국립수목원. 그때 김씨는 ‘아!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숲 해설가와의 첫만남을 이렇게 회상 한다.
“아내와 휴식도 할 겸 국립수목원에 간 적 있어요. 그게 약 4년 전쯤이에요. 70세는 돼 보이는 숲 해설가가 관람객들에게 숲에 대해 설명하는데 무척 감동이었어요. ‘저 나이에도 저렇게 해박한 지식을 전달할 수 있구나’ 하고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숲 해설가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찾아보게 됐죠.”
의외로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는 숲 해설가가 되는 방법과 절차, 교육 기관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산림청 인증 숲 연구소, 숲 해설가 협회, 국민대 숲 해설가 양성 교육과정이 있다는 정보를 접한 김씨는 한달음에 달려가 산림청 인증 숲 해설가 양성 교육에 등록한다. 입문 1개월, 전문가 과정 8개월의 장기간 교육이지만,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숲 해설가라는 목표가 9개월간의 교육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가 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일주일 2회의 교육에 수강료 총 160만원. 그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였기 때문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숲 해설가가 되는 길은 의외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야를 공부해야 하는 것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조금 힘에 부쳤죠. 원래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좋아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수목, 생태, 교육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를 소화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 숲 해설가
숲 해설가 양성과정 9개월. 국립수목원에서의 실습 30시간. 숲 해설가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 꼬박 10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모두가 수목원에서 숲 해설가로 활약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립수목원에서 일하기 위해 몇 가지 관문을 더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도 김씨의 철저한 준비가 빛을 발했다.
“숲 해설가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도 국립수목원에서 면접과 해설 시험에 합격해야 비로소 숲 해설가로 활약할 수 있었어요. 원고를 쓰고 시연하는 것까지 있었죠.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준비를 철저히 했어요. 밤새 원고를 쓰고 연습해 결국 합격하게 됐죠.”
김씨는 어느새 4년차 베테랑 숲 해설가가 됐다. 그 사이 관람객에게 해설할 때 자신의 노하우도 생겼다. 그러나 첫 걸음은 그리 쉽지 않았다. 숲 해설가 교육과정에서 배운 이론과 실전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배운 것과 실전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때는 꽤 애를 먹었는데 경험이 늘어나니까 노하우도 생기고 저만의 해설 방식도 생기더라고요.”
그는 이제 숲 해설에 감성을 담으려 한다. 관람객에게 숲과 나무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서 오는 감성이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도 숲 해설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김씨가 수목원의 숲길을 걸으며 차근차근 숲과 나무에 대한 자신의 감회를 설명한다. 나무에 대한 알짜배기 정보도 담겨 있지만, 그것에 자신의 생각과 철학도 녹아 있다. 설명을 듣지 않았으면 쉽게 지나쳤을 수도 있는 자연의 신비로움. 4년차 숲 해설가답게 그는 그것을 끄집어낸다.
“저기 전나무 숲 보이시죠? 전나무는 더 높게 자라기 위해서 나무 상단의 가지가 자라나면 그 밑에 있는 가지들은 자체적으로 모두 쳐내요. 울창한 숲에서 살아가기 위한 자기만의 생존 방식이죠. 사람도 그런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간다고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포기할 줄도 알아야 더 큰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 겁니다.”
◇ 일이 곧 삶의 엔진이어라
이제는 김씨에게 일 그 자체가 삶의 활력소다. 출근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숲 속을 거닐고, 숲의 향기를 느끼며 감상에 잠기는 것. 그것이 일이고 일상이자 삶의 낙이 됐다. 일이 곧 삶의 엔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김씨답게 새로운 일에 대한 준비도 수월하게 진행 중이다. 지난 여름 산림 치유 지도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한 것. 알코올 중독, 주의력 결핍 장애(ADHD), 게임 중독자, 주부 우울증 대상자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숲 해설가만 4년 했어요. 앞으로 일의 성격을 달리해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요. 물론 그 일의 중심에는 산림이 있죠. 자연 자체가 제 일이고 삶의 낙인데,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것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산림 치유 지도사는 제 삶의 새로운 엔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산과 들에는 300여종의 특산식물을 포함해 5000여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풀이든 나무든 거의 모두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니, 일 년 365일 매일같이 평균 10종 이상의 색다른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휴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과 들, 계곡에 들어 무위자연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고개 숙여 매일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야생화를 마주할 때 위험하면서도 황홀한 색다른 세계로 빠져 들게 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 입고 병 든 마음과 영혼이 위안 받고 치유되는, 특별한 힐링(healing)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풀밭에 엎드려서 담은 한 장의 꽃 사진은 두고두고 ‘나만의 멋진 화첩’으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 땅에 자라는 풀과 나무는 이미 유구한 세월 동안 질병을 치유해왔으며, 미래에도 무궁무진한 개발가능성을 가진 약초이자 천연의 먹거리이기도 합니다. 꽃이기도 하고, 약초이기도 하고 먹거리이기도 한 우리의 자생식물과의 만남을 시작합니다.
야생화 포토 기행-①석곡
학명 Dendrobium moniliforme (L.) Sw.
높은 산 깊은 골짜기 깎아지른 절벽에서 모셔온 석곡(石斛)입니다. 모두 77종에 불과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9종)과 2급(68종) 식물의 하나인데서 알 수 있듯 귀하기 이를 데 없는 야생난초입니다. 손이 닿는 곳에선 단 한 포기도 만날 수 없으니, 그 옛날 안개 속에 길을 잃은 뱃사람들이 그윽한 향기를 쫓아 섬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석곡의 진한 향을 단 한모금도 음미할 수 없는 아쉬움이 컸지만, 오히려 어떻게든 멀리 멀리서 살아남으라는 마음이 더 간절했습니다. 가까이 할 수 없는 석곡이 야속하기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석곡의 처지가 너무도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척박한 바위 절벽이나 고목 등에 달라붙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착생종 난초라 해서 석란(石蘭)이라
고도 부릅니다. 난초과의 늘푸른 여러해살이 식물로 줄기가 마디마디 구별되는 대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죽란(竹蘭)이라고도 합니다.
꽃은 2년 된 원줄기 끝에 1-2개씩 달리며 5~6월 사이에 흰색이나 연분홍색 등으로 피는데 향이 매우 진하고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중앙부의 꽃받침 잎은 길이 2cm 안팎, 너비 5mm 정도로 피침형 예두이고 측열편은 옆으로 퍼집니다. 꽃잎은 중앙부의 꽃받침과 길이가 엇비슷합니다. 순판은 약간 짧고, 뒤쪽에 짧은 거(距·꿀주머니)가 있습니다. 줄기는 뿌리줄기로부터 여러 대가 나와 20cm 정도까지 곧게 자라며 줄기 마디마다에 잎이 돌아가며 납니다. 피침형의 잎은 길이 5cm 안팎, 폭 1cm 안팎으로 진한 녹색을 띠며 2~3년이 지나면 떨어지고 줄기는 녹갈색으로 변합니다.
예로부터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가 해열 진통에 효과가 있고 건위강장제로도 유용한 귀한 약재로서 대접을 받아온 데다 최근 꽃도 예쁘고 향기도 좋은 관상용 난초로도 인기를 끌면서 갈수록 야생 상태의 석곡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차로 마시면 오래 산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장생란(長生蘭)이라고 불립니다.
우리나라 외에는 일본, 대만, 중국 등지에 분포합니다.
Where is it?
제주도와 서남 해안 및 섬 지역에 자생한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사찰 선운사를 품은 전북
고창 선운산 정상 부근 암벽이 석곡이 자생하는 북방한계선으로 추정된다. 일주문을 지나 약 3km 정도 숲길을 오르면 도솔암에 이르는데 거기서부터 머리 위 깎아지른 바위절벽 곳곳을 살피면 된다. 제주도의 용암과 나무, 덩굴식물이 뒤섞인 원시림(곶자왈)에서는 팽나무 등 고목에 착생한 석곡을 만날 수 있다. 경남 남해 금산 곳곳 바위절벽에도 자생한다.
김인철 전문위원/야생화 칼럼니스트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서울신문사에 들어가 환경부 출입기자, 한국환경기자클럽 회장, 행정뉴스부장, 논설위원, 제작국장 등을 지내는 등 기자로 만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http://ickim.blog.seoul.co.kr)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야생화의 생태 및 사진 촬영을 공부하고 있다.
꽃피는 봄. 가슴이 설렌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봄꽃 소식에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따스한 봄바람 따라 꽃길을 거닐고, 자전거도 타며 봄꽃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두 발로 만나는 봄날의 향기는 두 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경기관광공사가 추천한 봄꽃 트레킹 코스를 따라 화려한 꽃 잔치가 열리는 경기도에서 싱그러운 봄을 만끽해보자.
■꽃향기 넘실거리는 ‘남양주여행’
‘걷기 길’ 열풍이 식을 줄을 모른다. 남양주시에도 한강나루길, 새소리명당길 등 총 13개의 길이 조성돼 있다. 그 중 가족, 연인들의 봄꽃 트레킹으로는 다산길 2코스가 제격이다. 능내삼거리에서 마재마을 연꽃단지를 거쳐 다산유적지까지 이어지는 2코스는 강물을 따라 조용한 숲길과 야트막한 산길, 마을길이 어우러져 있어 봄날의 정취를 즐기며 걷기에 좋다.
옛 나루터에 고즈넉이 떠있는 나룻배는 운치를 더해주고, 물결 위로 반짝이는 물비늘은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강바람에 실린 꽃향기는 봄을 실감케 한다. 마을을 돌아 내려가면 다산지구공원에 닿는다. 강변을 따라 꽤 넓게 조성된 공원은 잔디광장과 실개울, 조망대, 산책로, 생태습지, 수생식물원 등의 시설이 있어 생태경관을 탐방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업적과 자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다산유적지와 실학이야기 가득한 실학박물관도 꼭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다산길 2코스는 풍경이 뛰어나고 볼거리가 풍성해 도시락을 싸들고 여유롭게 걸어보는 것도 좋다. 남양주 여행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옛 추억을 고이 간직한 ‘능내역’을 추천한다. 능내역은 2008년 이후로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이다. 하지만, 기차가 멈추고 오히려 더 이름난 역이 되었다.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대합실은 ‘고향사진관’이란 이름의 전시실로 꾸며져 추억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빛바랜 사진과 나무 의자들은 잔잔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옛 철길을 따라 다산길(1코스)과 자전거도로가 놓이면서 열차카페와 간이식당, 자전거 대여소가 들어섰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꽃향기를 맡으며 실컷 달려보는 것도 좋다.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걷는 ‘수원여행’
해마다 4월 중순이면 수원의 경기도청에서 ‘경기도민 한마음 벚꽃축제’가 열린다. 40년생 아름드리 벚나무 200여 그루가 피워낸 하얀 벚꽃은 하늘을 덮고 산들산들 봄바람이 지날 때면 반짝이는 꽃비를 내린다. 도청 정문 주위와 우회도로를 따라 도청 후문에 이르는 팔달산로에서 화사한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오른편 팔달산공원을 거쳐 화성행궁 방향으로 내려온 후 화서공원에 이르는 팔달산길은 벚꽃은 물론 진달래와 개나리가 한데 어우러진 봄나들이 최적의 꽃길이다.
경기도는 행사기간 동안 도청을 개방해 주요 도정을 홍보하며 주요행사의 홍보 부스를 선보인다. 우수농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벚꽃길 나눔장터’는 벚꽃축제를 찾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수원여행에서 ‘화성행궁’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벚꽃축제의 낭만을 가까운 화성행궁에서 이어가는 것도 좋다. 행궁은 왕의 지방행차 시 머물던 임시처소다. 화성행궁은 개혁군주 정조가 세우고 12년간 13차례에 걸쳐 정기적으로 원행했으며 경복궁의 부궁이라 불릴 만큼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대장금’, ‘이산’ 등 사극 드라마의 세트장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정문인 신풍루에서는 4월5일 상설 한마당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무예24기 공연과 장용영 수위의식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DMZ 자전거 투어’
출발 신호와 함께 임진각 아래 통문이 열리고 300여대의 자전거가 일제히 임진강변 군 순찰로로 접어든다. 이어지는 철책과 초소 사이에서 다소 긴장된 얼굴이 통일대교에 접어들면서 상쾌한 봄바람에 부드러워진다.
DMZ 자전거 투어는 임진각을 출발해 민통선을 넘어 통일대교, 통일촌 입구, 초평도에서 임진각으로 돌아오는 17.2㎞구간에서 진행된다. 올해부터는 군부대의 협조로 약 2㎞ 코스가 더해져 초평도 인근의 중간 휴식 장소에서는 간식을 즐기며 수려한 임진강의 풍경을 감상하고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느낌을 가족에게 엽서로 전하는 이벤트가 준비된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11월까지 매월 넷째 주 일요일에 DMZ 자전거 투어를 개최하며 4월에만 13일과 27일 2회에 걸쳐 진행한다. 경기관광공사의 임진각 평화누리 홈페이지를 통해 반드시 사전 예약해야 한다.
자전거 투어를 마쳤다면 냉전의 유산 ‘오두산 통일 전망대’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남북분단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서부전선의 최북단으로 남과 북이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2㎞ 거리에 대치해 있다. 전망실에서는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모습도 볼 수 있다. 1층의 개성공단 홍보관에는 남과 북이 힘을 합해 생산한 양말, 시계, 신발, 화장품이 전시돼 있고 기획전시실에는 통일·안보와 관련된 테마 사진전이나 특별전이 열린다.
탄현면 헤이리마을길에 위치한 ‘못난이유원지’는 헤이리 예술마을의 다양한 테마공간 중 특이하게도 못난이 삼형제를 중심으로 옛 소품들을 전시한다. 못난이 상회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울보 못난이 인형과 불량식품을 팔고 못난이 식당에서는 추억의 도시락을 맛보는 등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 좋은 곳이다. 유원지 내의 옛날물건 박물관에는 마당에 있던 수도펌프, 오래된 잡지 등 소소한 소품들을 전시한다.
경기일보 박준상기자 parkjs@kyeonggi.com
사진ㆍ자료 제공=경기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