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관리는 비재무적 관리와 재무적 관리로 구분된다. 비재무적인 건 건강관리를 의미한다. 우선 건강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만, 이외에도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재무적 측면의 자산관리다. 생활비를 잘 갖춰놓은 시니어라면 여유자금으로 즐거운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후 생활비 마련과 이후 투자전략은 어떻게 세우는 게 현명할까.
퇴직을 했거나 준비해야 할 나이라면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걸 해야겠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다. 특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노후 준비가 가장 큰 걱정이다. 물론 제일 먼저 챙겨야 할 것은 건강이다. 나아가 풍족한 노후를 맞이하려면 자산관리에도 집중해야 한다. 두 번째 전성기를 준비하는 시니어들을 위해 최재산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수석팀장을 만나 노후 자산관리 전략을 들어봤다.
◇국민연금에서 챙겨야 할 부분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경우 언제부터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국민연금 수령 5년 전에 ‘조기연금수령’이나 ‘연기연금제도’를 활용해 미리 받을 것인지, 나중에 받을 것인지 고민해서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연금을 앞당겨 받으면 수령액이 줄지만 수령 시기를 늦추면 더 많이 받습니다. 이를테면 만 63세에 100%를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5년 전후로 58세에는 70%, 68세에는 136%의 연금을 수령하게 됩니다.”
◇퇴직금은 연금으로 받아야 하나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를 대비하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퇴직연금을 적극 활용해야 하는데, 이 역시 일시에 받을지, 연금으로 나눠서 받을지 선택해야 합니다. 퇴직금을 무조건 연금으로 받는 게 정답은 아닙니다. 일시불로 받아 부채를 갚거나, 확실한 투자에 활용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연금으로 수령하는 게 유리합니다. 퇴직금은 퇴직소득세를 빼고 받는데,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받을 경우 최대 30%까지 감액되는 절세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연금을 받는 기간은 어떻게
“또 다른 사적연금인 개인연금도 체크해야 합니다. 55세 이후부터 수령할 수 있는 개인연금을 언제부터 몇 년 동안 받을 건지 결정해서 노후 생활비의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사적연금은 연 1200만 원 이상 수령하면 종합합산과세 대상자가 되기 때문에 월 100만 원 이하로 설정해 기간을 조정해야 유리합니다. 또한 세액공제, 소득공제 등의 혜택이 있는 ‘세제적격연금’과 연금 수령 시 비과세 혜택이 있는 ‘세제비적격연금’의 장단점도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3층 연금 자산관리 외에는 없나
“즉시연금도 고려할 만합니다. 즉시연금은 일정 금액을 보험사에 맡기고 약정기간 동안 이자나 원리금을 나눠 받는 보험상품입니다. 통상 두 가지 상품으로 구분되는데, 이자를 받다가 만기에 원금을 돌려받는 ‘원금보장형’과 매월 원리금을 수령하는 ‘확정기간형’으로 나뉩니다. 예컨대 1억 원 가입 시 원금보장형은 15만~16만 원의 이자를, 확정기간형은 35만 원 정도의 원리금을 받습니다. 보험사마다 1% 정도의 최저금리를 보장하므로 이용할 만합니다.”
◇투자를 통해 연금 받는 방법은
“더 풍요로운 노후를 준비하려면 투자를 고려해야 합니다. 투자처로는 금융상품과 부동산상품 분야가 있습니다. 금융상품인 정기예금도 좋지만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금리가 오히려 마이너스인 시대라 매달 수익이 발생하는 월지급식 주가연계증권(ELS)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다만 이 상품은 만기평가일에 기초자산의 종가 중 하나라도 최초기준가격의 일정 수준에 못 미칠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으로 매달 수익을 내려면
“금융상품보다는 수익형 부동산 투자를 권합니다.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확보해 월세 수익을 거두는 것인데, 3~4년 된 소형 아파트를 추천합니다. 요즘 집값이 많이 올랐지만 아직 수도권에 2억~3억 원 정도의 자금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상가에 대한 은퇴자들의 관심도 높지만, 낮은 가격의 상가는 변동성이 심한 리스크가 있어 일반 투자자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분야를 잘 알고 있는 분들에게는 추천합니다.”
◇주식 투자해도 좋을까
“주식 투자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은퇴 이후 주식 투자를 할 수 있다면 오후 폐장 시간까지 할 일이 있으니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익까지 거둘 수 있다면 즐겁게 운용할 수 있어 좋습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개인투자자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됐습니다. 그래도 혼자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개개인의 자금이 기관처럼 움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주식컨설팅업체나 주식동호회 등을 활용하면서 투자하길 권합니다.”
최재산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수석팀장
신한PWM 서교센터 JPB·신한PWM 반포센터 PB·자산관리솔루션부 SP 근무, 현재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수석팀장 및 은퇴설계 강사, 고령친화산업 정책 포럼 전문 패널 활동.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가 20여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2020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올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5.54로 전년 동월 대비 1.0% 상승했다. 지난 1월 1.5% 상승에 이어 3개월째 1%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채소류가 16.5% 오르면서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 석유류는 6.6%, 축산물과 수산물은 각각 6.7%, 7.3% 오르며 물가 상승에 한몫했다.
석유류는 지난해 같은 기간 9.6% 하락에 따른 기저효과로 상승했다. 하지만 국제유가 하락으로 전월 대비로는 4.1% 떨어졌다. 농축수산물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2% 상승했다. 공업제품은 1.3% 올랐다. 전기·수도·가스는 1.6% 올랐고, 서비스물가는 0.5% 뛰었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0.4% 상승에 그쳤다. 이는 1999년 12월 0.1% 상승 이후 20년 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소비가 줄면서 근원물가가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식물가는 0.9% 오르며 올 1월 이후 3개월 연속 0%대 상승에 그쳤다. 통상 연초 외식물가가 오르는 것을 감안하면 상승폭이 제약된 것으로 풀이된다. 생활물가지수는 1.8%, 신선식품지수는 3.8% 상승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은퇴 후의 여유 있는 삶을 꿈꾸지만 막상 은퇴하고 나면 재정 문제 등 현실적인 벽 앞에 놓이게 된다. 소중한 은퇴자금 어떻게 지키고 불려야 할까. 은퇴 후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시니어의 큰 고민 중 하나다.
평생 아끼고 절약해서 모은 은퇴자금이기에 더 조심스럽고 최대한 원금을 잃지 않으면서 현명한 금융자산 관리를 하고 싶어 한다. 슈퍼리치의 자산관리를 하며 종종 은퇴하신 분들의 상담도 하게 된다. 자산관리 결과가 좋았던, 은퇴자산 불리는 3가지 투자법을 소개한다.
투자금 배분으로 리스크를 줄이자
첫 번째는 은퇴자금을 3분의 1씩 분산해 투자하는 방법이다. 금융 지식이 부족한 은퇴자의 경우 지인의 부탁으로 보험상품에 은퇴자산 대부분을 투자하곤 한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저축성 보험상품은 최근 공시이율이 2% 이하로 낮아져서 장기투자를 해도 원하는 만큼의 기대수익을 얻기 힘들다. 더욱이 중간에 일이 생겨 해약할 경우 수수료 때문에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펀드나 주식은 직접 투자하기에는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은퇴자금 중 10% 정도는 보수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좋다. 정기예금 역시 금리가 낮다. 물가상승률과 이자소득세를 감안할 경우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은퇴자들이 투자하는 주가연계증권인 ELS 상품은 국내외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며 미국, 일본, 유럽의 지수형 상품 비중이 높다. 개별주식에 비해 지수형 상품은 변동성이 낮은 장점이 있다. 3년 만기에 6개월 조기상환 기회를 주는 스텝다운형 상품에 투자할 때 유의할 사항은 3년 투자기간과 조기상환조건, 원금손실위험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녹인(Knock-in) 50% 투자상품은 가입기간 중 3대 기초자산 지수 중 어느 하나라도 50% 미만으로 하락할 경우 만기상환조건이 변하면서 원금손실을 볼 수도 있다. 가입 시 투자자가 원금보장수준과 목표수익률, 투자기간 등을 결정할 수 있는데 수익률은 스텝다운형 상품의 기간별 조기상환조건을 충족해야 지급되므로 손실위험을 꼼꼼하게 따져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정기예금 등 원금보장 상품과 6개월~1년 만기의 단기 채권 등에 3분의 1의 자산을 배분하는 것도 좋다. 갑자기 유동자금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하려면 1개월, 3개월 가입기간의 정기예금 상품을 활용하면 된다. 채권 상품은 정기예금 대비 플러스알파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 3분의 1 자산은 해외 채권이나 달러자산에 투자하면 좋다.
금에 투자하는 것처럼 달러자산 투자는 경제위기가 오면 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고 환율 상승으로 발생한 환차익에는 비과세 혜택도 주어진다. 다만 달러 환율을 꾸준하게 관찰해야 한다. 예를 들어 1달러당 1150원대 기준을 세워두고 1100원에 근접하면 매수하고, 1200원에 근접하면 매도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환율 투자 기준을 정해 발품과 손품을 파는 게 중요하다. 슈퍼리치들이 매일매일 환율을 체크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외 우량기업이 발행한 해외 채권을 매입하거나 브라질 국채 등을 매수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 국채는 환율 변동 위험을 낮추고자 하는 투자자가 선호하는 상품이고, 브라질 국채 매입은 환율 변동 위험은 있지만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익을 별도로 얻을 수 있다. 5년 이상 장기투자가 가능하다면 최근 헤알화 환율이 270원대로 낮아진 점을 감안해 은퇴자금의 20% 이하로 투자를 고민해보는 것도 괜찮다.
초우량기업 눈여겨봐야
은퇴자산을 나누어서 정기예금, 정기예금 플러스알파 수익 기대 투자상품, 달러자산 투자상품에 분산하는 것이 쏠림 투자를 방지하면서 저금리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면, 두 번째 방법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해외 우량주식에 자산배분을 늘려가는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AI와 아마존 등 플랫폼 초우량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가 더 가속화할 것이다. 국내 경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글로벌 초우량기업에 은퇴자산의 일부분을 배분해 투자수익과 자산증식을 통한 상속 증여 재원을 늘려가야 할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단기 비상자금은 3개월 생활자금으로만 확보하고 금융기관의 특판 상품을 활용하는 게 유익하다. 최근 부동산 담보나 지급보증이 되어 있는 부동산 펀드, 다양한 부동산 상품에 투자하는 리츠가 인기다. 안정적인 배당수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은퇴자에게 인기가 높은데 우량상품일수록 발행 한도가 많지 않기 때문에 평소 금융기관에 자주 방문해 신규 특판상품 투자정보를 입수해야 한다.
신동일 KB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
VVIP 자산관리팀장을 역임했다. 20년 이상 국민은행에서 퇴직연금과 PB를 담당했다. 자수성가한 100억 원대 부자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한국의 슈퍼리치’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프로메테우스에 관해서는 네 가지 전설이 있다. 첫 번째 전설에 따르면, 인간들에게 신의 비밀을 누설했기 때문에 코카서스 산에 쇠사슬로 단단히 묶였고 신들이 독수리를 보내 자꾸 자라는 그의 간을 쪼아 먹게 했다고 한다.
두 번째 전설에 의하면, 프로메테우스는 쪼아대는 부리 때문에 고통스러워 점점 깊이 자신의 몸을 바위 속 깊이 밀어 넣어 마침내 바위와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에 따르면, 수천 년이 지나는 사이 그의 배반은 잊혀 신들도 잊었고, 독수리도, 그 자신도 잊어버렸다고 한다.
네 번째에 의하면, 사람들은 이유가 없어져버린 것에 대해 지쳤다고 한다. 신들도 지쳤고, 독수리도 지쳤고, 그 상처도 지쳐서 저절로 아물었다고 한다. 남은 것은 수수께끼 같은 이상한 바위산이었다.
-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프로메테우스’ 중에서
제우스의 미움을 받을 줄 알면서도 인간의 창조성을 위해 주신(主神) 제우스에게 반항한 프로메테우스가 좋았다. 그가 묶여서 끝내 바위가 되어버린 이상한 바위산이 보고 싶었다. 좀 더 알아보니 노아의 방주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아라라트 산도 그 지역에 있었다.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코카서스 산맥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곳. 고대 신화와 전설의 이야기가 흐르고,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초원의 산맥 지대. 그곳으로 떠났다.
문명과 종교의 충돌 지역
코카서스 지역은 인류 문명의 충돌과 종교 간 대립으로 점철되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팽창하려는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과 저항과 지배에 늘 시달려왔다. 이런 아픈 역사와 상처 때문에 코카서스 산맥 하늘에는 안식하지 못하고 떠도는 학의 무리가 아직도 날아다니고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OST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 대중가수 ‘이오시프 코브존’이 노래한 ‘백학’의 배경도 이 지역이다.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최고봉 엘브루스 산(5642m)과 아라라트 산(5137m) 사이의 평원에 자리한 이곳에서 유럽계 백인들의 조상인 코카서스 인종과 수많은 민족이 지금까지 살아왔다. 다양한 민족이 다국가,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형성하면서 생존을 위한 이합집산과 투쟁을 벌여온 것이다. 코카서스 산맥은 크게 ‘볼쇼이캅카스(大코카서스, 북코카서스) 산맥’과 ‘말리캅카스(小코카서스, 남코카서스) 산맥으로 구분한다(코카서스는 영어식 표현, 캅카스는 러시아어식 표현).
‘북코카서스 산맥’은 유럽의 동쪽, 아시아의 서북쪽 경계다. 전통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일부였으나 지금은 전체 산맥이 아시아에 속하는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러시아, 조지아, 아제르바이잔에 접해 있다.
‘남코카서스 산맥’의 길이는 600km. ‘북코카서스 산맥’과 나란히 뻗어 있으며 남쪽으로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란과 접해 있다.
북코카서스 산맥과 남코카서스 산맥을 연결해주는 길은 ‘조지아 군사도로(Georgian Military Highway)’다. 러시아 남진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해 1799년 완공되었다. 도로는 해발 3000m 이상의 가파른 낭떠러지로 이어지며 쉽게 접할 수 없는 자연 풍경을 선사한다. 조지아의 수도 티빌리시(Tibilisi)에서 러시아의 블라디카프카츠(Vladikavkaz)로 이어지는 214km의 거리다.
이 길을 통해 러시아는 흑해로 진출했고, 코카서스 지역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반대로 오스만튀르크의 힘이 강해지면 이 도로는 러시아 영토로 쳐들어가는 통로가 됐다.
1990년 구 소련이 붕괴된 후 이 지역에 있는 3개 공화국(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은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한다. 북코카서스 산맥 지역을 중심으로 있던 10여 개 소수민족들도 분리 혹은 독립을 했거나 요구하고 있다(체첸공화국, 다게스탄, 북오세티야, 남오세티야, 잉구셰티야, 압하지야 등으로 전쟁 위험이 있고 치안이 불안하므로 여행을 가지 않는 게 좋다).
코카서스 3국의 역사
요즘 우리나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자주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코카서스 3국은 남코카서스 산맥에 둘러싸인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다. 남북으로 이란, 터키, 러시아 등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지정학적 위치에서 알 수 있듯 고대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던 아제르바이잔에는 동서양 문명 교류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이들 세 나라는 각각 고유의 문자와 역사, 문화를 가지고 있다. 종교도 다르다.
노아의 후예들이 사는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301년)해 ‘신이 선택한 나라’로 불리며 ‘아르메니아 사도회’를 믿는다.
조지아는 과거 러시아명으로 ‘그루지야’로 불렸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후에는 국명을 ‘조지아’로 바꿨다. 국민의 대다수(85%)가 ‘조지아 정교회’ 신자다.
‘불’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아자르’와 나라의 의미를 지닌 아랍어 ‘바이잔’을 합쳐 국가 이름을 지은 ‘아제르바이잔’은 터키와 같은 종족으로 국민의 93%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술을 마시는 것’이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세속주의 이슬람 국가로 수니파와 시아파가 공존한다. 서로 접해 있는 이들 사이에 분쟁은 계속 있어왔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는 적대국이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무력 충돌이 일어나곤 한다. 또한 신냉전 질서와 석유 자원을 둘러싸고 강대국들의 개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신이 욕심을 낼 만큼 아름다운 자연의 나라
하지만 대립과 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코카서스 3국은 원초적인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박한 사람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땅이다.
웅장한 코카서스 산맥은 만년설과 때묻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해발 2000m 이상의 고지대는 야생화를 비롯해 6400여 종의 식물이 살아 있는 생태의 보고다. 또 빙하 지역 트레킹과 야생화 천국의 고산지대 트레킹, 하이킹 등을 할 수 있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로망의 땅이다.
산악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척박한 땅 목초지 언덕에 서서 두 팔을 벌리면 BC 4000년경부터 시작된 역사 속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이 바람에 실려와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골목길 바닥에 깔린 돌들은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간 세월에 둥그렇게 마모되어 반짝반짝 윤이 난다. 그 위로 하루에 다섯 번, 절대자를 향한 인간들의 애절한 구애의 선율이 울려 퍼진다.
신이 살려고 마지막까지 남겨뒀던 땅을 인간에게 준 곳이라는 이야기가 허투루 전해오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신의 마지막 땅을 받게 된 카르트벨리(Kartveli). 그들이 조지아인들이고, 그 땅이 사카르트벨로(Sakartvelo)라고 불렸던 지금의 조지아 땅이다.
이곳 사람들은 비행기의 무사 착륙에 손뼉을 치며 신에게 감사할 줄 안다. 8000여 년의 와인 역사를 가진, 인류 최초로 와인을 만든 나라답게 방문자에게 최대의 배려를 하고 와인을 함께 나눈다. 그것이 하나의 생활이다. 9월이 되면 포도송이들을 신에게 바치는 하비스트 축제가 곳곳에서 열린다. 중앙선이 없는 도로, 그 길을 점령한 소와 양떼들 앞에서 절대 서두르지 않는 풍경이 그곳에 있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 그리고 문화가 있는 땅
생소한 곳을 여행할 때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음식을 불평 없이 먹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지역 음식은 한국 음식과 묘하게 통하는 친밀감이 있다.
야채와 고기류를 쇠꼬챙이에 끼워 포도나무 장작에 구운 샤슬릭(Shashlyk) 므츠바디(Mtsvadi), 요구르트의 일종인 마초니(Matsoni), 다진 고기와 야채와 밥을 포도 잎에 싸서 찐 돌마(Dolma), 한국의 왕만두랑 비슷한 힝칼리(Khinkali), 치즈 피자 맛의 하차푸리(Khachapuri) 등 코카서스 3국 여행은 맛있는 음식을 함께할 수 있어서 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은 ‘조지아의 음식 하나하나는 마치 시와 같다’고 극찬을 한 걸까.
이뿐만이 아니다. 코카서스에는 사랑과 강인함, 낭만적 기질의 예술문화도 있다.
어디에서든 두 사람 이상 모이면 자연스럽게 화음을 맞춰 다성 창법으로 노래를 부른다. 조지아 사람들의 폴리포니(Polyphony)를 듣고 있으면 성(聖)스러움이 느껴진다. 전쟁에서 죽은 연인의 무덤을 찾는 이야기의 조지아 민요 ‘술리코(Suliko)’에서는 연민의 정이 우러나온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등장했던 아르메니아 관악기 ‘두둑(Duduk)’의 구슬픈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오면 눈이 저절로 감긴다. 코사크족 이야기인 ‘대장 부리바’에서 배우 율 브리너가 췄던 춤처럼 격렬하고 박진감 넘치는 동작에 혼을 뺐기기도 했다.
안전한 치안, 가성비 높은 매력적인 여행지
이토록 경이로움과 울림이 있는 아름다운 자연, 신과 순박한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들, 오랜 세월 지탱해온 종교와 문화, 맛있는 음식이 있는 코카서스 3국은 치안도 안전한데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쩌면 잘 몰라야 더 감동적일 수 있다. 가성비 높은 물가도 놀랍다. 달고 향기로운 복숭아가 10개에 800원 수준이다. 이들도 이제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자본주의의 때가 덜 묻어 있다.
유럽의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여행의 맛이 분명히 다르다. 화려한 감동은 아니지만 풍미가 더 깊게 느껴지는 곳이다. 누군가는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한 사진에서 포토샵으로 인공적인 요소들만 지우면 코카서스가 된다고 말했다.
여행의 기쁨 중 하나는 여정이 끝난 뒤에도 그곳을 생각하면 설레는 마음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코카서스라는 네 글자가 눈에 들어오면 가슴이 떨린다. 많은 이야기와 감동들이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설레는 그 기억들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1%대 정기예금 수익률은 제로금리 시대로 접어들었다. 직장 다니며 어렵게 모은 노후자금을 안전한 정기예금에 넣어도 매월 손에 쥐어지는 예금이자로는 안정적인 노후생활이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며 주식과 펀드 투자를 고민해보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자칫하면 평생 땀 흘려 어렵게 모은 자금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낮은 정기예금 수익률 때문에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내 채권 투자 수익률은 정기예금 대비 약간 높은 편이지만 2%대 수익률밖에 안 돼 노후생활자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세금까지 제하고 나면 채권이자는 더 줄어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외 채권 투자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핫이슈로 떠오른 상품이 있다. 바로 브라질 해외 채권 이다.
해외 채권 투자 시 장단점과 리스크를 점검하면 좀 더 현명하게 은퇴자금을 굴릴 수 있다. 장점은 정기예금+α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미국 국채 투자는 안정적이고, 브라질 국채 등 이머징 국가 채권 투자는 선진국 국채 대비 수익률이 높은 편이다.
브라질 국채의 정기예금 환산수익률은 2019년 11월 기준 5%대다. 발생한 투자 이익에 대해 전액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헤알화 환율 변동에 따라 투자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투자 성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투자해야 한다. 20년간의 헤알화 환율 변동을 관찰해보면 10년 주기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고 있다. 2010년 헤알화 환율은 700원대, 2019년 11월 기준 시점은 280원대 전후로 많이 하락한 상황이다.
브라질 국채에 투자하려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 다시 브라질 헤알화로 매입해야 한다. 그래서 투자 시점에 헤알화 환율이 약세일수록 유리하다. 즉 헤알화 환율 300원대보다 280원대에 가입하는 것이 더 낫다. 달러 환율도 예를 들면 1200원대보다 1150원대로 떨어졌을 때가 더 좋다. 다만 향후 브라질의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되므로 더 내려가기 전에 투자하는 게 이롭다.
브라질 국채에 투자할 때는 채권 만기가 1~2년 짧게 남아 있는 상품보다는 5년 이상 긴 채권에 투자해야 시장의 위험성을 대비할 수 있다. 만약 브라질 국채에 투자한 후 헤알화 환율도 내려가고 달러 환율도 내려가면 손해를 볼 수 있는데, 채권 만기가 길면 매년 지급되는 이자로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매년 1월과 7월 브라질 국채 투자 이자가 지급되므로 가입 시 채권수익률이 5%일 경우 10년간 이자수익은 50%가 된다. 장기투자 시 손실이 나도 이자수익으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해외 채권 투자자 중 자녀 증여용으로 브라질 국채 투자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자녀가 2명인 투자자의 경우 브라질 국채에 2억 원을 투자해 5년간은 이자수익을 받아 쓰다가 이후에는 자녀에게 각각 1억 원씩 증여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만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중간에 매도해 투자이익을 실현해도 된다.
브라질 국채는 헤알화 환율 하락, 달러 환율 하락 시 손실을 볼 수 있지만 장단점을 잘 살펴 대응하면 저금리 시대에 괜찮은 투자 상품이 될 수 있다. 안전성을 중시하는 성향의 투자자는 미국 등 선진국 국채에 투자하거나 해외 채권 ETF를 활용하는 게 좋다. 노후자금이 적으면 소액투자와 분산투자도 가능하다.
브라질 국채 등 이머징 국가 채권에 투자할 때는 전체 금융자산에서 어느 정도 비중으로 투자할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쏠림 투자를 방지할 수 있다. 투자 시점 역시 헤알화 환율과 달러 환율 기준을 세워 판단해야 한다. 시장 상황은 계속 변한다. 노후자금을 잘 관리하고 투자 시 위험성을 줄이려면 믿을 만한 금융전문가와의 정기적인 상담이 매우 중요하다.
신동일 KB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부센터장
VVIP 자산관리팀장을 역임했다. 20년 이상 국민은행에서 퇴직연금과 PB를 담당했다. 자수성가한 100억대 부자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한국의 슈퍼리치’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저서로 ‘슈퍼리치의 메모’, ‘부자의 선택’, ‘마흔의 역전’, ‘한국의 슈퍼리치’, ‘슈퍼리치의 습관’, ‘한국의 장사꾼들’이 있다. 현재 ‘신동일꿈발전소’를 운영하며 ‘행복한 부자 되기’ 꿈을 실현해나가고 있다.
산에 미쳐도 단단히 미쳐 살았다. 그러니 일이 터질 수밖에. 주목할 만한 기록이 나왔고 사람들은 갈채를 보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미치지 않고서 도달할 길이 없다. 선무당처럼 대충 미쳐서는 히말라야 고봉을 오를 수 없다. 지구상의 극한적 험지인 세 극지(히말라야, 남극, 북극)를 찾아 누빈 탐험가 허영호(65). 그의 격렬한 모험이 거둔 성과가 경이롭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을 향한 온전한 몰입으로 삶을 만족스럽게 끌어온 성취는 더욱 놀랍다. ‘온전한 몰입’이 있는 인생이라는 게 어디 시중에 흔하던가.
일찍이 소년기 때 동네 산꼭대기에 오르는 쾌감을 맛본 게 등산에 빠진 계기였다지. 군대를 다녀온 뒤엔 인생을 몽땅 산에 걸기 시작했단다. 서막은 그저 그렇게 자연스러웠으나, 이후 산악 역사에 두고두고 마르지 않을 이름을 등기했으니 허영호의 행장은 사실상 비범한 것이었다.
허영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83년, 히말라야 마나슬루를 산소통 없이 단독 등정하면서였다. 마나슬루는 1972년, 돌연한 산사태를 일으켜 한국 산악인 16명의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악명 높은 고봉이다. 1987년 12월, 허영호는 다시 기세를 돋웠다. 세계 등반사상 세 번째로 에베레스트 동계 등정에 성공했던 것. 이것으로 마침내 세계적 산악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94년엔 남극점을, 1995년엔 북극점에 도달했다. 진기한 드라마를 연속 상영한 셈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허영호를 ‘7대륙 최고봉과 남극점, 북극점 도보 탐험에 성공한 인류 최초의 탐험가’로 기록하고 있다. 이쯤이면 역사적 인물이다. 역사에 남는다는 것. 허영호는 그게 매우 기쁘다.
“나는 실로 꾸준히 세계적인 것에 도전해왔다. 매번 엄청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모험에 나섰다. 가치 있는 도전이라는 것, 역사를 가치 있게 만든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세계적인 역사를 만들지 못하는 가치 없는 도전이란 말짱 꽝이지 않은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강렬한 집념. 그게 모험에 나서게 했다는 얘기인가?
“극지에 도전하는 모험은 무섭고 고통스러운 과정의 연속이다. 목숨을 걸고 하는 행위다. 그러나 역사에 이름이 남는다는 건 고귀한 일이지 않은가.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등반을 죽기 전에 완료하겠다는 게 나의 지향이었으며, 그게 모험에 나서게 하는 힘이었지.”
세상의 위업들은 맹렬한 명예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신에게서도 강한 명예욕이 느껴진다.
“명예, 명망에 대한 기대는 자연스럽게 찾아오더군. 그러나 명예라는 건 결과적으로 오는 것이지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백지상태인 미답의 땅을 섭렵한다는 성취감, 극지의 신기한 자연 풍경에 대한 감동, 이런 요소 역시 나를 모험에 빠지게 했다.”
히말라야에 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오는 산악인들도 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흔히 탄식한다. 공연히 위험한 등산을 자청, 하나뿐인 아까운 목숨을 허무하게 버리는 게 안타까워서.
“프로 산악인들의 등반은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등산과 다르다. 특유의 어떤 정신세계를 가지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게 아니겠는가.”
아예 죽음을 각오하고 출발하나?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약해진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재앙이 벌어지는 게 인생이지만 여하튼 어디서건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난 산이 좋아 산에서 죽을래! 이런 생각은 그야말로 바보에게나 어울린다. 나는 항상 죽는 일 따위는 내게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등반에 나섰다.”
죽을 뻔했던 무산소 등정
에베레스트는 이 산의 측량 전문가였던 영국인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초모랑마’라는 티베트 이름으로 불린 산이었다. ‘세계의 어머니 신(神)’이라는 뜻으로 티베트인들은 예로부터 이 산을 숭배해왔다. 산악인들도 정신의 산, 신비의 영산으로 숭상하며 거룩한 사유를 펼치곤 한다. 생사 여부마저 산령(山靈)의 뜻에 달렸다는 식의 감상을 털어놓기도 한다. 허영호에게 이는 어림없는 생각이다. 내 목숨은 오직 내가 간수할 수 있을 뿐 그 무엇도 간섭할 수 없는 거라는 실사구시에 충실할 따름이다. 완벽한 사전 준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는 정신력, 팀을 통제하는 엄격한 규율. 그것들만이 사고를 피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라 믿는다.
특히 원정 대원들의 관리에 추상같다. 인상에 쓰여 있듯이 평상시엔 온유하지만 등반할 때는 돌변한단다. 엄격하고 날카로운 독수리로 변하는 모양이다. 눈빛부터 사납게 바뀐다는 게 아닌가. 예측할 수 없는 대자연이 성깔을 부리면 한순간에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해서, 군기반장처럼 엄한 규율로 대원들을 다그친다. 덕분에 단 한 사람의 대원도 다치지 않았으며, 이는 다른 원정대에선 찾아보기 드문 성과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 상황은 빈발했다. 벼랑에서 추락했고,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눈사태에 휩쓸려 파묻혔다가 셰르파에 의해 구조되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죽음과 직면하기를 거듭했다.
“1993년 4월, 무산소 등정으로 에베레스트를 횡단하며 비박할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산소 등반과 무산소 등반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다는 걸 절감했다고. 가슴이 터져나갈 듯 고통스러웠는데 심장이 당장 멈출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지. 하늘을 쳐다보며 절규를 했다고. 천신만고 끝에 38시간 만에 캠프에 도착, 비로소 물을 마실 수 있었지. 오열을 하면서.”
지독한 사경을 겪고도 또다시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배짱이라니.(웃음)
“나 이젠 다시는 산에 안 가! 그런 외침이 속에서 터지긴 한다. 아주 잠깐, 현장에서만.(웃음)”
기어이 정상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며 자연에 도전하는 게 서구적 알피니즘의 전통이지만, 우리 선인들은 산을 그저 욕심 없이 편하게 노닐었다. 이게 더 수준 높은 산행 방식 아니었을까?
“과학의 발달로 일찌감치 산과 바다로 당차게 진출한 서양과 달리 우리는 다분히 정적인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봤다. 어릴 적에 부모님들은 흔히 자식에게 타일렀다. 산에 가지 말라고, 물가에 가지 말라고.”
우리 민족은 누가 말린다고 산수 간에 머물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DNA에 이미 산야의 기질이 상속된 게 아닐까.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양과 사뭇 다른 건 사실이지만, 우리에게도 일찍부터 등산이라 일컬을 만한 장르가 존재했다. 혹자는 승려들의 입산을 등산의 효시로 보며, 혹자는 신라 화랑도의 유산(遊山)을 원조로 간주한다. 조선시대 중엽의 민화 중엔 밧줄을 타고 암벽을 오르는 모습이 있기도 한다. 이 희귀한 사례를 통해 도전적 차원의 등산마저 행해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산을 몹시 애호해 산행을 즐겼다. 일테면 남명 조식 선생은 지리산을 16회나 오르내렸다. 사대부들은 등산이라는 개념보다 관산(觀山), 요산(樂山), 유산(遊山)이라는 코드로 산을 누렸던 것 같다. 오늘날 한국의 등산객들이 산을 즐기는 방식도 이와 꽤 유사한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한국의 산은 스케일은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정답다. 위험요소가 드물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수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쌓인 불만과 스트레스를 산에서 해소하고 있어 사회가 그나마 덜 시끄럽다고 봐야 하겠지.”
히말라야의 광막한 설산을 묵묵히 오르는 산악인들의 모습은 고행하는 수도승을 연상시킨다.
“고행을 통해 목표를 성취하고자 한다는 점에선 수도승과 다를 게 없겠지. 그러나 산악인은 자연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수도승과 다르다. 도전이란 정복을 겨냥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정복하나? 잠깐 정상을 딛고 내려올 뿐인데.”
에베레스트 고지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던가?
“아름답고 경이롭다. 그러나 너무 춥고 숨이 가빠 사실상 풍경을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텐트 밖으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게 잠시잠깐의 감상일 뿐이거든.”
등반 중에는 무슨 생각을 하나?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극한 상황에서도 산과 대화를 했던 것 같다. 거짓말하지 않는 자연에서 겸손을 배우고, 인내심을 기르고, 분노를 자제하는 능력을 얻었다. 이건 극지 등반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어디서건 자연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심성이 더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속세의 거친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아 자살까지 하는 경우가 있지만, 산을 좋아하게 되면 달라지지. 어떻게든 사람을 자연으로 끌어내는 게 옳다는 거. 특히나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산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탐험과 운명적 사랑에 빠진 종(種)
허영호는 지난 2010년, 대학생이었던 아들 재석과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또 한 번 매스컴의 관심을 샀다. 좌우간 산에서 배우는 게 인생을 잘 사는 비결이라는 생각. 등반에 인간과 인생의 모든 게 담겨 있다는 확신. 그는 그걸 널리 홍보하고 싶어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아니랴. 인생에도 크레바스가 있고, 추락이 있으며, 눈사태가 있게 마련이지 않던가. 이 모든 요상한 난리블루스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힘과 안목을 산에서 얻을 수 있다는 얘기는 언제 들어도 신선한 뉴스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허영호도 어느덧 늘그막에 접어들었다. 난다 긴다 하는 모험 고수이지만 이젠 체력을 고려해 자제하며 산다. 그러나 탐험을 멈출 방법이 없다. 좀 부풀려 말하자면, 그는 탐험과 운명적 사랑에 빠진 종(種)이니 말이다. 요즘은 경비행기에 빠져 산다지. 경비행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해 또다시 역사적 기록을 남기겠다는 웅장한 포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랫동안 경비행기를 타고 독도를 비롯해 국내 곳곳을 비행 훈련하며 세계로 비상할 날을 대비해왔다. 문제는 자금이란다. 스폰서를 잡아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는 것.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자력으로 탐험하는 방식은 실로 불가능한가? 매우 내성적인 성격으로 보이는 당신은 어디 가서 쉽사리 손을 내밀지도 못할 것 같다.
“원정대를 꾸려 착수하는 극지 탐험에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가는 것을 무슨 수로 개인이 감당하겠나? 원정대 지원이 일방적 수혜도 아니다. 주로 등산 장비업체가 스폰서로 붙는데, 그들은 나의 원정 활동상을 비즈니스 마케팅에 활용하거든.”
직업이 탐험가인 당신에게 누가 월급을 주지? 가족을 어떻게 건사하나?
“가족은 나에게 탐험보다 소중하다. 가족 생계를 등한시하는 산악인은 산악인의 자격조차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난 꽤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강연 초대를 자주 받았으며, 그게 무난한 생활 대책이 돼주었다. 사람들이 내게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이 뭔지 아나? 등반으로 돈이 생기느냐, 반사이익이 있느냐, 라는 것이다. 그러나 등반 자체는 무상(無償)의 행위일 뿐이다. 대신 강연료가 들어와 살 수 있었지.”
우리 사회가 나름 똑똑해지는 모양이다. 허영호를 강연장으로 끌어들여 경청을 하는 걸 보면.
“글쎄다. 난 나를 비롯해 프로 산악인들을 더 활용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가령 유능한 산악인들을 모아 특공구조대 같은 걸 만들면 자연재난이나 산악조난 구조에 크게 쓰일 수 있지 않겠는가. 119소방대만 고생시킬 게 아니라는 얘기다. 언젠가 국무총리 공관에서의 오찬에서 그런 취지의 제안을 했으나 소용없더라고.”
어디서나 일관하는 인생관이 있겠지?
“노력하며 살자! 그거. 탐험하며 살다 보니 ‘자기 노력’이 인생 성공의 99%를 차지한다는 걸 깨닫겠더라. 행복이라는 것도 노력의 산물이지 않겠는가.”
평생 노력만 하면 무슨 재미? 잘 노는 데에서도 행복의 샘물이 퐁퐁 솟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긴긴 세월 극지와 맞붙었던 사람에겐 실없는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나무를 좋아해 나무와 더불어 한평생을 살았다. 늘 나무를 심었다. 애지중지 가꾸고 돌보고 어루만졌다. 몸뿐인가. 마음까지 나무에게 바쳤다. 그 결과 들판 가운데에 있던 황무지가 장엄한 숲으로 변했다. 거대한 정원이 태어났다. 들어보셨는가. 나주시 금천면에 있는 죽설헌(竹雪軒)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한국화가 박태후(64).
사건? 그렇다, 가히 ‘사건’이라 할 만하다. 개성적인, 너무도 개성적인 초대형 개인정원을 만든 게 아닌가. 정원 면적은 자그마치 14만㎡(약 1만2000평). 대략 축구장 6개를 합친 크기의 정원이다. ‘이 사람은 금수저를 물고 나와 팔자 좋게도 평생토록 정원을 즐기나보다.’ 그렇게 지레짐작을 하는 이도 있을 테지. 돈이면 무엇이건 다 해낼 수 있다는 미신이 만연한 세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박태후는 가난한 농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간신히 밥 먹고 자랐다. 줄곧 손에 거머쥔 것 없이 살았다. 맨땅에 헤딩하듯, 무모하게도 거대한 정원 조성에 인생을 던졌다.
‘개성적인, 너무도 개성적인!’ 죽설헌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 무엇으로 개성적인가? 일단 줏대 넘치는 정원이다. 전국 곳곳엔 개인이 조성한 화려한 정원이나 수목원이 많다. 대체로 서양식 아니면 일본식 정원, 또는 이도저도 아닌 짬뽕이다. 박태후의 정원은 다르다. 한국 정원의 전통과 양식을 추구해왔다는 게 아닌가. 외제와 외풍과 외래종을 얕잡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다. 본때 있는 토종 정원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한국적인 정원의 정신과 고유성을 탐구해 나름대로 구현하는 실험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스스로 과제를 부여한 셈이며,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스스로 배웠고, 배운 대로 밀어붙였다. 줏대 아니면 푹 쓰러질 인물이다.
“한국적인 정원의 특징엔 어떤 게 있죠?”
“자연을 존중하는 정신이 여실히 드러난 게 한국식 정원입니다. 서양식 정원은 달라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서구의 사고 전통이지요. 정원의 구조에도 정복의 정신이 고스란히 서려 있어요. 성(城)을 건축하듯이 과감한 기하학적 기법으로 정원을 만들어요. 일본 정원은 자연의 최대 축소치를 추구합니다. 자연을 넘어 우주까지를 축소시켜 집 안에 끌어들이고자 해요. 그 축소 노력을 통해 발달한 게 전지(剪枝) 기술이죠. 고도의 인위를 구사하는 겁니다. 반면 전래의 한국 정원은 나무를 가급적 있는 그대로 놔뒀어요. 자연스럽게 자라 어우러지도록 존중, 인위적 변형이나 관리를 자제하는 거죠.”
“지친 마음을 나무 그늘 아래에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정원이지 않을까? 굳이 한국적 정원을 한사코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지 않겠어요? 조경이건 미술이건 뭐건, 세계 속에서 최고를 구가하려면 전통의 독창성과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일테면, 대통령 부부가 외국 순방을 할 때 한복을 입지 않는 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마찬가지로 고유의 한국적 정원이 아닌 일본풍과 서양풍 일색으로 변한 조경 관습에 개탄을 금할 길이 없어요. 오늘날의 정원 99%가 남의 나라 방식을 따르고 있다니, 이게 정상일까?”
“말하자면 죽설헌이 한국적 정원의 본보기라는?”
“아, 그렇진 않아요. 큰 틀에서 보자면 한국식 정원이지만, 온전히 규범적인 한국식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지향한다, 한국적 자연 정원을 지향한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만약 죽설헌을 전형적인 한국 정원이라고 내세운다면 학계로부터 쏟아지는 신랄한 비난을 면하기 어렵겠지요. 조경 학자들의 이론(異論)이 난무할걸요. 아마도 게거품을 물고 덤비지 않을까.(웃음)”
정원 조경의 실제 경험에 관한 한 박태후를 능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재야 조경가다. 고독한 고수다. 일쑤 삐딱한 눈총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는 언젠가 때가 오면 ‘대한민국을 통째 디자인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사는 인물이다. 그런 박태후가 제도권 전문가들을 바라보는 태세에도 날카로운 게 들어 있다.
“이론들끼리 기탄없이 다투어야 답이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원탁회의라도 열어 토론을 해봅시다! 제가 자주 그런 얘길 합니다. 그러나 아직 반향이 없다는 거. 오늘 저는 또다시 토론을 제안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요점이 뭐냐면, 대다수의 학자나 이론가들은 비원 같은 궁중정원이나 사대부들의 별서정원(자연에 귀의, 유유자적하기 위해 지은 별장에 딸린 정원)을 한국 정원의 원류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저는 서민들이 누린 토속적 정원에서 원형을 봐요. 장독대와 텃밭까지를 포괄한 자연 정원에 더 흥미와 애정을 느껴요. 정원을 일부 상층부의 전유물쯤으로 국한하는 견해에 동감할 수 없는 겁니다.”
모네의 정원 답사하고 감명받아
남도에 태풍이 스쳐지나가는 날이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죽설헌 숲이 출렁인다. 둥근 야산 하나가 통째로 몸을 떠는 것 같다. 개인 정원이 어이 이토록 동산처럼 방대한가? 한국적인 걸 지향하는 데에 규모화가 기본일 리는 없을 것이다. 방대할 뿐 아니라 어느 한구석 허술한 게 없으니 놀랍다. 나무에 최대한 손을 대지 않은 걸 원칙으로 삼았다지만, 정원다운 운치와 구성과 미학이 생동하니 손길과 숨결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번듯한 정원을 만들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게 좋아 그냥 심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심으면 자라고, 가꾸면 꽃피어나는 식물들의 질서정연한 생리와 생태에 점점 빠져들었어요. 본격적으로 한국적 자연 정원이라는 것에 착안하고 올인하기 시작한 건 중년에 접어들어서였지요.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정원을 답사하고 깊은 감명을 받고서였어요. 같은 화가로서 강렬한 매혹을 느꼈어요. 비록 일본식 정원이었지만.”
“처음 나무를 심기 시작한 건 언제였죠?”
“제가 가정형편상 원예고등학교에 진학해 과수, 채소, 화훼 재배기술을 배웠어요. 재학 중에 이미 나무를 심는 재미를 알았지요. 저희 집 소유의 황무지에 틈만 나면 달려가 나무를 심었으니까. 그게 죽설헌의 시발입니다. 졸업 뒤엔 관공서 정원사를 거쳐 농촌지도소에서 근무했지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나무를 가꿨고요. 40대 초반엔 사표를 던졌습니다. 이후론 정원 가꾸기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죠. 낮에는 정원 일을, 밤에는 그림을. 이건 지금까지 사오십 년째 반복되어온 일상이에요.”
박태후는 제대 뒤 의재 허백련의 조카 허의득 선생에게 사군자를 배우면서 한국화에 입문했다. 늦깎이로 미술 관련 석사학위도 받았다. 끔찍한 노력파다. 조경과 그림, 그 둘에 쏟은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자기 자신에게 입증해 보인 열혈한이다.
정원을 산책해볼까. 폭염이 살갗을 굽는 여름 한낮이지만 정원의 공기는 서늘하다. 저녁 으스름처럼 어둑한 건 나무들이 허공을 가려서다. 박태후의 몸은 대나무처럼 늘씬해 나무숲에 어울린다. 잔인한 세월이 내려앉은 머리칼은 허옇지만, 자신의 평생 동행인 나무들을 바라보는 표정엔 온정이 가득하다.
백련이 벙그러지는 연못가. 못을 빙 에두른 노랑꽃창포 군락이 싱그럽다. 또 다른 연못가엔 왕버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수면에 어린 제 그림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둘 다 박태후가 각별히 아끼는 초목이다.
“5월이면 한 달 내내 노랑꽃창포들이 꽃피어 연못물마저 노랗게 물들입니다. 장관이죠. 저는 이 꽃을 ‘습지의 여왕’이라 불러요. 왕버들과 마찬가지로 물가에서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아주 강합니다. 뿌리의 수질정화 능력도 탁월해요. 생태조경에 적격이죠. 이 좋은 노랑꽃창포가 예전엔 너무도 흔해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어요. 그 바람에 요즘은 흔히 보기조차 힘들어졌어요.”
“정원을 만들려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수종을 권한다면?”
“최상의 정원수는 유실수예요. 감나무, 사과나무, 앵두나무, 살구 등등 꽃도 즐기고 과실까지 얻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열매를 쪼아 먹으려고 새들이 날아듭니다. 새들의 노래마저 즐길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해야겠네.”
‘시행착오’가 가장 유능한 교사
죽설헌의 풍치엔 허전한 게 없다. 있을 게 다 있으니까. 200여 가지의 수종들, 수백 종류의 야생초들, 여섯 개의 인공 연못, 고와(古瓦)로 야트막이 쌓은 울, 숲의 사방으로 뻗어나간 산책로…. 가지를 잘라내거나 솎아주기를 극도로 삼갔으니 나무들은 자유롭게 자랐다. 저마다 길길이 가지를 뻗어 허공을 움켜쥔다. 나무 아래에선 꽃들이 병아리처럼 종종대며 형형색색의 물감을 짜낸다. 백련과 홍련이 맑고 고운 얼굴을 수줍게 드러내는 연못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련된 인공 정원이다. 그러나 인위가 세월에 발효되어 자연과 동화해서일까. 일부러 애써 꾸민 티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야생의 숲이라 해두자. 간섭받지 않고 성장한 나무들이 내쉬는 거친 숨소리, 자잘한 꽃들과 키 작은 음지식물들이 도란거리는 속삭임까지 귓가에 고이는 기분이다. 이토록 천연스런 숲 정원을 만든 건 여기가 피안이라는 뜻인가.
“나무를 가꾼 지 반세기가 지났군요. 어떤 일이든 하나에 평생을 바쳐 열정을 쏟아 붓는다는 건 영혼이 움직이고서야 가능하겠죠. 죽설헌을 만든 당신의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이라 보나요?”
“시행착오. 바로 그거예요. 저는 전문적인 조경 교육을 받은 게 없이 일체를 혼자 해결해왔어요. 당연하게도 갖가지 오류가 빈발했죠. 쉬운 예로, 초기엔 외래종 화초와 토종 화초의 구분조차 하질 못했어요. 그걸 깨닫고 공부하며 초목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수시로 그런 식의 과정을 거쳤지요. 인생에서 시행착오보다 더 유능한 교사는 없다고 봅니다.”
“이 너른 정원을 조성하기까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됐겠죠? 자금 조달엔 문제가 없었을까?”
“가장 난감했던 게 바로 그 대목이었어요. 수입이라곤 얼마 안 되는 연금뿐, 부부가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왔습니다. 감자나 참깨를 농사지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어요. 그러나 빚을 얻어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나무를 계속 심자면 주변 땅을 사들여야만 했으니까.”
어렵사리 터를 매입해 나무들을 심는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었단다. 나무들의 키가 커지고 둥치가 불어나면 적절히 이식을 해줘야만 했다. 그러자면 다시 땅을 확보해야 했으니 주기적으로 자금난에 봉착했던 것 같다. 간벌(間伐)로 쉽게 처리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박태후는 나무를 베어내거나 파내는 행위를 금기로 삼고 있다. 나무와 혈맹조약을 맺은 것처럼.
“저것들도 엄연한 생명인데, 저것들도 한번 살아보겠다고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베어낼 수 있단 말인가. 결국은 옮겨 심을 터 마련에 나서게 되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당신, 욕심을 너무 부리는 거 아니야? 라는 투로 바라보지만 터무니없는 오해예요. 나무와 함께 살다 보면 나무에게 많은 이치를 배우게 됩니다. 세상을 진정 잘 사는 길을 숲의 자연 생태에서 깨닫게 되는 거죠. 이게 자연 정원을 가꾸는 최상의 목적이자 낙이에요.”
자연에의 외경을 지닐 경우, 교만과 허영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삶의 과욕과 과속은 마음속에 자연을 들여놓지 못해 생기는 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처럼 살기는 사실 어렵다. 사람이 나무처럼 살 수 있겠나. 가을마다 잎을 모조리 털어내는 나무의 허심을 흉내낼 수 있겠는가.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채 혹한을 묵묵히 견뎌내는 겨울나무를 시늉할 수 있겠는가. 박태후는 나무들의 생태에 인간사의 고통과 한계를 대입하고 그 치유책을 찾아 나선 사람이진 않을까.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며 과욕이란 헛된 거라는 걸 자주 느껴요. 제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저승까지 가져갈 길이 있던가요? 결국엔 모든 걸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명백한 진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사는 게 아닌가요?”
최근 일본 서점가에서 책 ‘탈출노인(脱出老人)’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일본의 고령자들이 처해있는 상황 등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이 책은 다양한 목적을 갖고 필리핀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일본의 노인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 미즈타니 다케히데(水谷竹秀)는 논픽션 작가로 태국과 필리핀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의 삶을 주로 다뤄왔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돼 후지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제일교포 영화인으로 잘 알려진 최영일 감독이 참여했다.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은 충격적인 발표를 내놓았다. “60세에서 65세 사이의 직장이 없는 평범한 은퇴자 부부가 약 30년의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금 이외의 약 2000만 엔(한화 약 2억2000만 원)의 자산이 필요하다”라고 발표한 것. 연금에만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고령자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해외로 이주한 일본의 노인들을 다룬 책 ‘탈출노인’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높은 생활비로 악명높은 일본의 고령자들이 낮은 연금만으로 살아가기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탈출구로 해외 생활을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고령자의 해외이주 "만만치 않아"
이 책의 저자 미즈타니 다케히데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필리핀으로 이주한 고령자의 삶을 통해 바라본 행복론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제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필리핀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유행한 필리핀 술집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사람들이죠. 그들이 이주를 선택했던 것은 따뜻한 기후와 낮은 물가로 대변되는 살기 좋은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대부분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만족해하고 있었죠. 그리고 일본의 북쪽 지방에서 추위를 피해 오거나 치매 부모를 모시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죠.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을 걱정해 이주한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필리핀 여성과 결혼한 일본 남성이 많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의 거품경제가 급격히 꺼지면서 일본인의 해외여행 역시 함께 감소했고, 동시에 해외여행을 대체하는, 필리핀 여성을 고용한 ‘필리핀 술집(フィリピンパブ)’이 전국적으로 성행하게 된다. 이 유행이 가장 왕성했던 2004년에는 공연 등의 목적으로 입국을 허가하는 흥행(興行) 비자로 일본에 입국한 필리핀 여성이 8만 명에 달했다. 이런 술집은 젊은 여성이 부족한 지방에서도 성행했고, 자연스레 수많은 국제결혼으로 이어졌다.
연금에 의존한 생활, 희망 줄어
그렇다면 필리핀은 일본인에게 이상적인 노후 주거지였을까? 그는 “꼭 그렇지는 않다”라고 말한다.
“일부는 저렴한 가격으로 매일 골프를 즐기고, 친구들과 느긋하게 술을 마시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언어에 대한 장벽과 문화적인 격차, 생활시설의 부족 등을 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죠. 아내와 아내의 가족들로 인한 문제, 생활비 부족 등도 그들이 힘들어하는 주요 문제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본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필리핀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확률은 50대 5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미즈타니 다케히데는 “해외이주만이 노후 생활의 정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책을 쓴 목적도 해외의 삶을 권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고령화 사회입니다. 일부는 연금만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죠. 특히 일본 정부의 ‘2000만 엔 노후 자금 필요’ 발표 이후에 이들은 희망을 잃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것은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해외이주 역시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노후에 중요한 것은 '가족'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노후를 위한 이상적인 삶의 터전은 무엇일까? 그는 중요한 요소로 ‘가족’을 꼽았다.
“대부분 노후 준비의 요소로 돈을 꼽을 텐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죠. 가족 간의 유대가 긴밀하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겠죠. 고령화된 일본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가족의 유대감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고령자들의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만약 가족과 함께였다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노인을 위한 생활시설이나 요양시설의 문제점 중 하나도 그들이 느끼는 쓸쓸함을 어쩌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결국, 노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입니다.”
노후에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낮아지는 소득 수준과 부담해야 할 집세, 건강으로 좁아지는 생활반경 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연금삭감 논의와 함께 노후자금 부족에 대한 경고등까지 켜지면서 불안감도 생기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소득층을 위한 실버타운이나 고령자를 위한 여행 방법에 대한 개선도 논의되고 있다.
서점가에선 ‘탈출노인’ 인기
최근 일본 서점가에서는 신간 ‘탈출노인(脱出老人)’이 인기를 얻고 있다. 논픽션 작가 미즈타니 다케히데(水谷竹秀)가 쓴 이 책은 집세도 내기 어려운 부족한 연금생활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필리핀에 정착한 일본 중장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대기업 샐러리맨 출신이지만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방사능 걱정이 없는 필리핀으로 이주한 부부에서부터, 90세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떠난 여교사, 필리핀에서 만난 24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전직 경찰관 등을 소개한다.
이 책은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이 “평균적인 무직 60~65세 노인 부부가 약 30년의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금 외에 약 2000만 엔(한화 약 2억2000만 원)의 자산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내용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더욱 조명받았다. 이 논란은 소비세 인상과 맞물려 일본 국민의 시위까지 불러일으켰다.
필리핀은 물가가 낮고 체류가 쉬워 일본인들에게 노후를 보내는 곳으로 인기를 얻고 있고, 의료 인력도 풍부해 일본인 대상의 실버타운도 조성됐다. 일본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필리핀 체류 일본인 수는 1만6570명에 달한다.
‘탈출노인’은 인기에 힘입어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후지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토쿄 한복판 실버타운 입주비용은?
일본의 고급 실버타운은 어떤 모습일까? 8월 1일 도쿄 시부야 한복판에 새 실버타운이 문을 열었다.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실버타운 사업을 펼치고 있는 참·케어(cham·care) 코퍼레이션의 ‘참 프리미어 그랑 쇼토(松濤)’다.
이 회사가 최초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표방하며 건립한 이 실버타운은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갖췄다. 지상 3층 지하 1층에는 36개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고, 입주자를 위해 직원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입주자와 직원 비율은 1.5대 1로 직원이 바빠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없는 셈이다. 의대 협조를 통해 치매 개선 프로젝트도 실시하고, 재활전문 의료법인과의 제휴로 다양한 재활 서비스도 이뤄진다. 식사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일식과 양식 이외에도 먹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매일 직원들이 입주자의 산책을 돕고, 각종 취미활동이나 야외 활동도 지원한다.
문제는 입주비용. 월 30만2400엔에서 95만2400엔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약 330만 원에서 105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교통 약자 위한 ‘여행개조사’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국내 여행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꾀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말 그대로 교통 약자가 쉽게 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각종 인프라를 개선하는 사업.
지난 6월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일본간호여행서포터즈협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여행사, 대학, 의료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고령자나 장애인의 편안한 여행을 위한 방안 마련 논의를 했다. 이들은 노인과 장애인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개선뿐만 아니라 ‘간호 여행’을 실현할 수 있도록 관련 인력이 양성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단체는 노인과 장애인의 여행을 돕는 도우미인 여행개조사(旅行介助士) 제도를 민간자격증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여행자의 보행 상태나 건강 등을 파악한 후 여행 기획부터 응급상황을 대비한 조사활동을 펼치고 몸이 불편한 고객의 여행 동행자 역할도 한다.
아들딸과 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 국민연금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나는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국민연금에 가입한 것이라 했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강제로 가입해야 했다. 재직 시에는 회사가 절반의 금액을 내줬으므로 큰 부담이 안 되었다. 그러나 퇴직 후에도 연금보험료는 계속 내야 했다. 나도 힘들었지만 계속 부었다. 그렇게 냈던 보험료가 이제 매달 연금으로 나오니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연금 때문에 자녀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다. 월 100여 만 원이 물가상승률에 맞춰 꼬박꼬박 죽을 때까지 나오는 것이다. 국민연금 평균수령액은 50만 원 수준이다. 나는 월 100여 만 원을 수령한다. 공무원 연금 월 200만 원에 비하면 절반의 액수이지만, 국민연금 수령자로서 상위급이다. 아들은 그런 내가 부러운 모양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국민연금이 고갈될 가능성이 많아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료를 낸다고 한다. 고갈되지 않는다 해도 연금 수령까지는 너무 많은 세월이 남아 있어 연금을 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월 100만 원이나 받으시면 저축도 가능하겠네요?” 아들이 물었다. 나는 가계부를 작성하지 않아 한 달에 얼마를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른다. 내 답변에 따라 아들에게 보태줘야 할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비 30만 원, 보험료 30만 원, 식대 30만 원….” 대충 따져본 금액만 보면 100만 원이 안 되었다. 서울시에서 제시하는 생활임금은 월 200만 원 수준이다. 내 한 달 지출액도 비슷해 보인다. 지출액 중 술값이 가장 큰 금액을 차지한다. 카드결제액이 월 100만 원 정도 되고 한 달에 서너 번 30만~40만 원씩 인출해서 쓰는 금액이 100만 원쯤 되니 대략 그렇다. 물론 해외여행 갈 때 드는 돈은 별도다. 그렇다고 그런 얘기 다 하면 일도 안 하고 수입도 없는데 너무 흥청망청 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죽자사자 일해도 월급을 얼마 못 받는 아들 입장에서 보면 당연했다. 사실은 점심과 저녁도 다 사 먹어 하루 1만5000원 정도를 쓴다. 식대로만 한 달에 45만 원이나 지출이 되는 것이다. 아들은 하루 두 끼를 매식하는 내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찾아낸 답변이 경조사비다. 아들이 장가갈 때 와준 사람을 300명으로 잡으면 그 사람들 부모, 장인 장모, 아들딸 결혼식 때 갚아야 한다. 부모나 장인장모가 돌아가신 분도 많지만 그래도 이론적으로는 와준 사람 곱하기 6을 해야 한다. 단순 계산을 해도 가야 할 경조사가 1800건이나 되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다 가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내가 받은 축의금은 물가상승률에 따라 최하 10만 원으로 되갚아야 할지도 모른다. 경조사는 평균 한 달에 세 건 정도 되지만 많을 때는 대여섯 건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기는 하지만, 일단 신세를 졌으니 갚아야 한다.
아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