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되기 전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학교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 선생님과의 관계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영감과 동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덕양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폐교 위기 학교를 혁신학교의 대명사로 변화시킨 이준원(65) 교장을 만나 참스승으로서의 삶과 교육에 대한 철학을 들어봤다.
지난해 방영된 EBS 다큐멘터리 ‘무엇이 학교를 바꾸는가’는 공교육 혁신 모델 사례로 덕양중학교의 일대기를 다뤘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덕양중학교는 교육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폐교 요청을 받았던 학교다. 폐교 위기의 학교가 8년 만에 어떻게 공교육 혁신 모델로 우뚝 선 것일까? 그 변화의 열쇠는 이준원 교장이 쥐고 있었다. 그가 2020년 정년으로 퇴임하기 전까지 8년의 세월 동안 덕양중학교에는 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처음 그가 부임했을 때 덕양중학교는 어떤 상태였을까?
“제가 교장으로 왔을 때 덕양중학교는 매년 교육청으로부터 폐교 압박을 받을 만큼 다 쓰러져가는 학교였습니다. 교육장님이 오셔서 학생 수를 늘려야 한다고 당부하고 가셨죠. 제가 부임하던 해 인근 초등학교 6학년이 12명이었는데, 이마저도 확실치 않았어요. 4명은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기에 실질적인 중학교 입학 인원이 8명이었죠. 당장 중3 아이들이 졸업하면 전교생이 100명 이하로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했어요. 그래서 학생을 유치하려고 학군 외에 있는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를 만나 저의 비전을 설명하면서 설득했죠. 발품을 판 덕분에 그해 40명 정도 입학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왜 덕양중학교였을까? 교장 공모제란 절차로 부임했는데, 굳이 폐교 위기인 학교의 교장이 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초임 시절부터 교직을 마칠 때까지 어려운 학교만 골라 다녔어요. 겉으로만 봐서는 잘 모르지만, 사실 우리 모두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요. 학생들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아픈 친구들이 많았죠. 가정 형편이 어렵다거나 부모님이 이혼했다거나 여러 가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교사로서 지도하고 보듬고 싶었어요. 좋은 학군에서 자라 학원에서 미리 선행학습을 한 덕분에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 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학교에는 가고 싶지 않았어요. 스스로 ‘그런 친구들에게 교사로서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물었을 때, 그에 대한 대답을 쉽사리 하지 못했거든요.”
실패한 교사의 고백
오랜 세월 교직에 있었던 그가 생각하는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학교는 학원이 아니죠. 지식의 전달도 중요하지만 학교는 함께 어울려 살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식의 양을 측정하는 곳이 아니라, 인간답게 존중받고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손을 잡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어둡고 깜깜한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들 앞을 밝게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그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평교사 시절의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40대 이전에는 실패한 교사였다”고 고백했다.
“사실 마흔 살이 되기 전에는 가면을 쓰고 살았죠. 동료한테 인정받는 선생님, 잘 가르치는 선생님, 친절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얼굴 표정과 내면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죠. 마음의 병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분노나 스트레스를 억누르기만 했어요. 어디 가서 내색도 잘 안 하고 그렇게 다녔는데, 일 년에 한 번씩 축적된 화가 폭발했어요. 그 화는 고스란히 학생과 아내에게 돌아갔어요. 이렇게 제가 불안정하다 보니 아내와 이혼 위기까지 갔고, 어머니와 아내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졌어요.”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마흔 살을 앞두고 큰 결심을 한다. 치유 상담을 받아보기로 한 것.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한 선택은 그의 앞길을 바꾸는 교두보가 됐다.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치유상담연구원으로 달려갔어요. 내면 치유를 통해 저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죠. 내면 치유란 것이 특별한 게 아니에요. 그냥 다 같이 모여 각자의 상처를 꺼내놓으면서 서로를 보듬는 일이에요. 저 역시 이제껏 남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아픔과 분노, 슬픔을 모두 솔직하게 인정하고 털어내는 일을 그때 했어요. 그 이후론 제 삶이 변했어요. 아내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학생들과의 관계도 개선되고, 어머니와 아내 사이의 갈등도 눈 녹듯이 사라졌죠. 그때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면 누구나 상처가 있다는 거예요. 이후 삶의 방향이 이때 결정되었을지도 몰라요. 제가 덕양중학교를 택하고, 그 학교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경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환대
그가 고백했듯이 한때 가면을 쓴 채 가식적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그는 내면 치유 이후 놀랍게 변했다. 그의 변화는 앞서 소개한 EBS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졸업식 날 졸업장을 받으러 단상 위에 올라오는 학생들은 이준원 교장 앞에서 어김없이 눈물을 보였다. 정년 퇴임식에서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모두 울면서 그를 떠나보냈다. 그 울음의 원인은 모두 한 사람이었다. 그를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모두의 속눈썹을 촉촉하게 했다. 그들은 왜 그리도 아쉬워했을까? 그들에게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재임 시절 누군가를 만날 때 교장이란 지위를 앞세우지 않았어요. 학교 내의 직원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를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어요. 당연히 차별하지 않았고요. 모두 그 마음을 알아주셨던 것 같아요. 8년 동안 덕양중학교에 있었는데, 사실 4년쯤 하고 나서 다른 곳으로 가야 했죠. 가기로 해놓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데, 교장실에 학부모님들이 찾아오시더군요. 가끔 그렇게 스스럼없이 찾아오시곤 해서, 그날도 어김없이 재밌게 대화를 나눴죠. 그런데 끝에 다들 ‘다른 데 안 가시죠?’라고 말씀하시더군요.(웃음) 부족한 저를 붙잡아주시는 게 정말 감사했어요. 그때 운 좋게 중임이 가능해지면서 한 번 더 열심히 하게 됐죠.”
실제로 그는 학교 내 구성원에게 세심하게 다가갔다. 얼마나 세심한지 교무실에서 일하는 행정실무사의 생일도 챙길 정도였다. 특히 그는 매일 등교 시간에 교문으로 나가서 아이들을 맞았다. 등교하는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아침을 열었다. 8년 내내.
“아이들이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가는 그 순간까지 모두 교육의 연장선이에요. 아이들은 환경과 사람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받죠. 제가 모두를 따뜻하게 대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에요. 제가 만약 배식하는 아주머니를 함부로 대하면, 아주머니도 배식하면서 아이들을 함부로 대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모두를 정성스럽고 따뜻하게 대했어요. 매일 아침 교문에서 아이들과 하이파이브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였죠.”
하지만 하이파이브만으로는 아이들이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았을 터. 그만의 소통법이 궁금했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지속적인 관심과 환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죠. 그들의 얘기를 지속적으로 경청했어요. 그 과정에서 그들의 아픔을 헤아리려고 노력했고요. 예를 들어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것이 그 친구에게 가장 큰 상처였더군요. 그 이후 어긋나기 시작했고, 소위 말하는 주먹 좀 쓰고 다니던 친구였어요. 할머니와 살았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웠죠. 영하 10℃ 날씨에도 롱 패딩을 못 사서 매일 얇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녔어요. 자존심은 세서 롱 패딩 입고 다니는 애들 보고 이불을 덮고 다닌다며 깔보더군요. 어느 추운 겨울날 교문 앞에서 그를 만나 ‘춥지?’ 하면서 핫팩을 주머니에 넣어줬어요. 날카로웠던 평소의 눈빛이 봄눈처럼 사라지고, 오히려 ‘교장 선생님은요?’ 하고 따뜻하게 묻더군요. 관심이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켜요. 그동안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어요.”
진심으로 다가가기
그의 환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 교사와 학부모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교사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매주 목요일 ‘이슬비 사랑 학부모 교실’을 통해 학부모와 소통했다.
“혁신학교가 될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는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 덕분이었어요. 일종의 집단지성이 만들어졌죠. 교사들의 단점 대신 장점을 발굴하려고 노력했어요. 단점을 찍어서 고치려고 하면 잠깐 바뀌는 척만 할 뿐이에요. 진심으로 변화시키려면 그 사람의 장점을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게 모두의 장점이 뭉쳐서 하나의 집단지성을 만들어내는 일을 교장을 하면서 많이 경험했어요. 학부모 모임에서는 가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아픔에 대해 경청하려고 노력했어요. 가정은 또 다른 학교나 다름없어요.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아이의 표정이 아침부터 밝지 않거든요. 놀라운 건 모임을 통해 학부모의 상처나 아픔에 대해 서로 듣고 공감하는 시간만 가졌을 뿐인데, 이후 그 모임에 참가한 학부모의 아이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어요.”
그의 말처럼 아이들에게 가정은 또 다른 학교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면 사춘기 손주를 둔 시니어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 손주와 같이 사는 그에게 한번 물어봤다.
“잔소리 대신 전폭적으로 사랑하고 지지하되 깜짝 놀라게 반응하는 게 좋아요. 잘했을 때는 ‘진짜 잘했어!’라는 말과 함께 기쁜 표정으로 맞이해주면 좋아해요. 그들이 가진 본연의 감정을 직시하고 공감해주면 돼요. 아이들은 스스로 존중받을 때 말문을 열어요. 그래서 다짜고짜 다그치고 비난하는 것보다는 언어, 표정, 눈빛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해요.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게 해줄수록 아이들은 달라져요.”
끝으로 그가 생각하는 참스승의 모습과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따뜻한 환대를 맛본 사람은 그것을 잊지 못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진심으로 따뜻한 환대를 받아본 아이들은 커서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줄 아는 어른이 되는 법이죠. 이는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내면으로부터 큰 변화가 있어야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늘 아이들의 상처에 귀 기울이며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그것이 참스승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요. Turn your scars into stars.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속담이에요. 상처를 희망의 별로 바꾸는 일.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어서, 그것을 큰 밑거름으로 만들어주는 일. 참스승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앞으론 제가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순회강연을 할 예정이에요. 제 얘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의 별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폐교 위기의 학교를 정상화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8년의 교장 생활은 보람도 있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고충도 있었다. 용인에서 고양까지의 긴 출근 거리로 인해 8년 내내 주말부부를 감수해야 했다. 교육 현장에서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를 믿고 따라왔던 학생·학부모·교사들이 있었기에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가 학교에 있었던 8년 사이 학생 수는 늘어났고, 학습 부진아를 찾아볼 수 없는 학교로 성장했다. 그가 연단에 서면 떠드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아이들은 그를 존경하고 존중했다.
졸업식에서 이준원 교장을 보고 눈물 흘리던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 처음에는 그 광경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를 만나고 나서 다큐멘터리의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됐다.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은 진심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진심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늘도 별처럼 빛나는 진심을 품고 미래 세대를 위한 강연을 하고 있을 그를 응원하며 마친다.
어릴 때만 해도 곧잘 다가와 얘기도 하고 재롱도 피우던 손주가 장성하면서 달라졌다. 말수도 적어지고, 전보다 불편한 기색이 뚜렷하다.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일도 부지기수. 손주와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시니어를 위해 손주 세대의 특성과 더불어 그들과 소통하는 법을 소개한다.
세대 갈등이 갈수록 심해진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모든 연령대에서 전반적으로 세대 갈등이 심하다는 인식이 높았다. 4점 척도(1점: 전혀 심하지 않다~4점: 매우 심하다)에서 약간 심하다(3점)는 비율이 연령과 관계없이 모두 50%에 육박한다.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장은 “세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과 대화법이 중요하다. 가볍게 ‘그때는 그랬지’ 하고 얘기를 들려줘야 한다. ‘나 때는 이랬으니 너희도 이래야 해!’ 하는 화법으로 아랫세대를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결국 세대 갈등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훈육이 아니라 지지
세월의 차이가 크게 나는 시니어와 손주 세대는 소통법이 가장 필요하다. 특히 사춘기 청소년인 손주는 대체로 시큰둥하다.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이 시절에는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다. 불러도 대답도 잘 안 하고, 그저 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SNS를 하기 바쁘다. 공부에는 관심도 없고 성적은 갈수록 떨어진다. 이를 보는 부모는 속이 답답하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조부모도 마음이 편치 않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조금 다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청소년들도 고민은 깊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3~18세 청소년의 가장 큰 고민은 ‘공부’다. 성적과 자기 적성을 포함한 공부 고민이 전체 고민의 47.3%를 차지한다. 잔소리하지 않아도 그들은 본인 스스로가 이 문제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욕심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청소년 소통 전문가는 “사춘기 청소년을 늘 앞서가며 무작정 끌어당겨야 하는 존재로 여기는 건 좋지 않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속으로 좌절과 절망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춘기 청소년에게는 조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국 브리검영대학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춘기 자녀 교육에서 부모의 노력으로는 부족한 영역을 조부모가 채워줄 수 있다고 한다. 만 10세에서 15세청소년 중 조부모와 친밀하게 느낄수록 친사회적 행동 성향이 높았다. 예를 들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봉사나 기부를 자주 했다.
조부모가 손주에게 실용적 기술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학교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줄 때 친밀함을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사춘기 청소년에게 조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임영주 소장은 “부모는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주는 훈육의 역할을 맡지만, 조부모는 손주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춘기는 소중한 시절이다. 그들의 사춘기가 악몽이 될지, 성장하는 시기가 될지는 주변인에게 달렸다. 그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올바른 접근과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
배우는 자세로 소통
최근 몇 년 사이 밀레니얼과 관련된 보고서와 책이 무수히 쏟아졌다. 밀레니얼을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한 점진적인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밀레니얼과 시니어, 실제로 이 두 세대는 어디서나 마주칠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 조부모와 손주로 만나고 직장 내에서는 리더와 신입사원 등으로 마주할 일이 많다. 이처럼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로를 잘 이해하고 원활한 소통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조부모와의 관계 및 소통은 밀레니얼에게도 상당히 중요하다. 조부모와 손주의 깊은 애정 관계는 손주의 전 인생 주기에 걸쳐 심리적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동시에 조부모는 손주에게 인생을 통한 경험과 지혜를 제공함으로써 보람을 느낀다. 임 소장은 “윗세대의 얘기를 아랫세대에게 들려주는 것은 세대 전수와 문화 공감 차원에서 권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달은 간접 경험의 폭을 넓히고, 더불어 이해의 폭을 넓게 한다. 다만 이를 활용하여 손주에게 강요나 지적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밀레니얼 세대를 알 필요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유’를 추구한다. 그들은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얻을 수 있고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스트리밍 라이프(Streaming Life)를 추구한다. 스트리밍이란 인터넷에서 음악이나 영상을 파일로 다운받지 않고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방식을 일컫는다.
또한 ‘제주도 한 달 살기’처럼 내가 살고 싶은 곳에 단기간으로 정착하는 방식의 라이프를 즐기기도 한다. 월세와 전세 같은 방식의 주거 라이프를 굳이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 일하는 방식인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를 추구한다. 밀레니얼 소통 전문가는 “1990년대생은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다. 스트리밍을 통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경험하길 원하고, 자신의 삶이 늘 자유의 연장 속에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을 손주로 둔 시니어는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이 좋을까? 사실 이 두 세대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서로 살아온 환경과 시대가 달랐기에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세대 간 쓰는 언어와 문법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임 소장은 “디지털이 익숙한 밀레니얼의 생활환경은 조부모 세대와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배우는 자세로 손주와 소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부모는 손주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역할을 맡는다.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그랬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조부모의 역할과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조부모의 모습을 통해 좋은 조부모로서 갖춰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당신은 어머니의 형상을 한 천사였어요. 내가 넘어질 때면, 당신이 와 날 잡아주겠죠. 날개를 펼친 모습으로 멀어질 테죠. 그리고 신이 당신을 데리고 돌아갈 때,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집에 돌아왔구나.’ 영국 출신의 1991년생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이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Supermarket Flowers’의 가사다.
그는 뛰어난 작곡 실력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2010년대 전 세계 음악 시장을 휩쓸었다. 인지도와 수익 등을 고려했을 때 세계적으로 뛰어난 아티스트로 손꼽힌다. 그는 “좋든 나쁘든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저의 첫 반응은 기타를 잡는 것입니다”라고 할 만큼 일상 속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앞서 소개한 곡은 외할머니 사후에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어머니의 관점에서 쓴 가사다.
가수로서의 명성도 대단하지만 효손으로도 유명하다. 한창 앨범을 만드는 데 박차를 가하는 와중에도 당시 아프셨던 외할머니의 병동에 매일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에는 ‘Nancy Mulligan’이란 곡이 있다. 곡 제목은 외할머니의 이름에서 따왔고, 이 노래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사랑 얘기를 그리고 있다. 그가 이렇게까지 외할머니를 아꼈던 것은 그의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학창 시절 그는 빨간 머리 때문에 생강 소년으로 불렸고, 어릴 때 잘못된 수술로 인해 말을 더듬는 증세가 있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학교 내에서 왕따를 당했다. 무명 시절에는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SNS를 통해 그의 실력이 입소문 나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가수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노랫말처럼 외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격대교육과 학조부모
조부모는 사랑을 전해주는 ‘천사’의 역할과 더불어 지혜의 ‘길잡이’ 역할도 한다. 조선 시대에는 ‘격대교육’이 있었다. 격대교육이란 조부모가 부모를 대신해 손주를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에 따르면 포손불포자(抱孫不抱子)라 하여, 군자라면 손주는 안아도 아들은 안지 않는다고 했다. 격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굳이 왜 이렇게 한 것일까? 그 이유는 ‘맹자’에 나온다. ‘맹자’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아버지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면 기대가 지나치기 때문에 오히려 갈등이 생긴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한 세대를 건너뛰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퇴계 이황 선생은 맏손주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격대교육을 했다고 전해진다. 시대가 달라도 말하는 주제는 비슷했다. 특히 맏손주가 과거 공부를 게을리한다는 소식을 듣고 꾸중하는 편지를 보내서 손주를 타일렀다. 퇴계 선생은 과거 공부를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한 가정의 가장이자 사회인으로서 생업에 종사하는 것을 장려했기에 과거 공부를 게을리하는 손주를 혼낸 것이다.
또한 원칙과 도리를 지키고, 마음가짐을 바르게 할 것을 늘 당부했다. 예를 들어 손주가 조정 대신을 많이 안다고 동네방네 자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손주의 태도를 나무라기도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실천하고 있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퇴계 선생은 평소에 출처가 불분명한 물건은 받지 않았고,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손주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퇴계의 마지막 30일을 담은 문집을 쓴 이가 바로 맏손주다.
그렇다면 현재 조부모의 모습은 어떨까? 세월이 지나도 손주에 대한 교육열과 관심은 높다. 이른바 ‘학조부모’란 신조어도 탄생했다. 학부모와 조부모의 합성어로, 육아뿐만 아니라 취학 후에도 조부모가 손주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할머니 치맛바람이 거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동 및 청소년 교육 전문가는 “공개수업이나 상담에 참여하는 학부모님 가운데 조부모님이 많다. 조손 가정이 아니더라도 맞벌이 가정의 경우 조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손주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의는 좋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손주를 너무 다그치면 안 된다. 잘되라는 뜻으로 하는 얘기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반복되거나 듣기 싫은 말이 되면 잔소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손주에게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대성 부산시교육청 학부모교육 강사는 “전달할 내용을 무조건 단호하게 말하기보다는, 따뜻한 태도로 공감하는 표현을 먼저 하고 난 뒤에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지혜의 길잡이로서 지혜 전수도 좋지만, 손주에 대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좋은 조부모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할 3계명
❶ 마음 상태를 고려 ▶ ‘걱정’이라는 명분 아래 하는 말이지만 손주가 듣기 불편해한다면 그 말은 안 하는 것이 좋다. 잔소리와 조언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말하기 전에 손주의 마음 상태를 고려하자.
❷ 말은 따뜻하게 ▶ ‘개인’을 중요시하는 손주 세대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들의 마음 상태를 공감하고 따뜻한 표현을 써보자. 사실에 기반하는 것보다는 그 사실로 인한 아이의 마음 상태를 생각하자.
❸ 칭찬으로 자신감 UP ▶ 아이들은 칭찬을 받을수록 자신감이 올라간다. 사소한 부분일지라도 반복적으로 칭찬을 해주는 것이 좋다. 칭찬을 많이 받을수록 손주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2030세대는 모든 게 빠르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어 있고, 며칠 전 신나게 쓰던 신조어는 한물간 취급을 한다.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세대 차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20대 자녀, 혹은 회사의 막내 직원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시니어를 위해 알다가도 모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최신 문화를 파헤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이 특별 구성, 오늘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구매를 서두르세요!” TV 홈쇼핑에서 한 번쯤 들어본 듯한 익숙한 멘트다. 하지만 TV가 아니다. 웬걸,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다.
지금은 ‘라방’ 전성시대
최근 라이브 커머스 열풍이 거세다. 라이브 커머스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스트리밍 방송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덮치기 전까지만 해도 라이브 커머스 경쟁은 지금처럼 치열하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불어닥친 비대면 트렌드는 오프라인 소비를 위축시켰고, 유통업계는 너나 할 것 없이 ‘라방’(라이브 방송)에 뛰어들었다. 현재 티몬·쿠팡·11번가 등 이커머스 업계 대부분이 자체 라이브 채널을 운영 중이며, 롯데·CJ·현대·신세계 등 전통 유통 강자들도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3조 원가량으로 추정되던 라이브 커머스 시장이 2023년 8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퍼스널 쇼퍼처럼 친근하게
기사를 위해 며칠간 인기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을 들락거리며 아이쇼핑을 즐겼다. 네이버쇼핑라이브를 접속하자 동시 시청자 수가 1000여 명부터 많게는 20만 명에 달하는 채널이 즐비했다. 다양한 채널 중 관심 있는 의류 방송을 누르자 모바일에 최적화된 세로 화면이 나타나며 진행자의 낭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궁금한 점 댓글로 마구 남겨주세요!”
라이브 커머스의 두드러진 특징은 쌍방향 소통이다. 홈쇼핑을 보다 보면 상품이 마음에 들어도 몇 가지 의문점 때문에 구매가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다. 반면 라이브 커머스는 화면 하단에 위치한 채팅창으로 궁금한 점을 즉시 해소할 수 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요청 사항도 들어준다. 실제로 의류 방송을 시청하는 도중 판매하는 블라우스가 청바지와 어울릴까 싶어 댓글을 남겼더니 불과 몇 초 안에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청바지와 매치한 모습이 궁금하시다고요? 제가 한번 입고 와보겠습니다.”
이처럼 라이브 방송은 대부분 자연스럽고 격 없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그러나 친근함과는 별개로 상품을 구석구석 뜯어보고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허술하지 않다. 또 채팅창 아래 제품의 구매 링크가 띄워져 있어 방송을 시청하며 결제까지 가능하다. 진행자가 이 모든 과정을 안내해주니 마치 퍼스널 쇼퍼와 원격으로 쇼핑하는 듯한 기분도 든다.
쌍방향 소통의 특성상 각종 ‘애드리브’가 난무할 때도 있지만, MZ세대는 이 또한 유쾌한 콘텐츠로 여긴다. 이에 단순 정보성을 넘어 예능 포맷을 접목한 오락형 방송도 늘어나는 추세다.
시니어 ‘큰손’ 가능성 ↑
라이브 커머스가 젊은 세대의 이색 놀이 문화로 부상하면서 대부분의 플랫폼이 MZ세대를 겨냥하고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시니어가 라이브 커머스 시장의 큰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롯데홈쇼핑이 지난해 라이브 방송 시청자의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 40~60대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주로 대형 가전이나 명품 의류 등 비교적 고가의 상품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안정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SNS를 활발히 이용하는 중장년층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을 위한 상품과 콘텐츠를 선보여 고객층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시니어 전용 라이브 채널이 형성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 겸 동덕여대 교수는 “모바일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판매자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시니어에게 라이브 커머스는 효과적인 플랫폼이 될 수 있다”며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가 제품을 홍보하는 등 시니어의 니즈에 맞는 콘텐츠가 제작된다면 새로운 소비 시장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브 커머스의 세계로 빠져볼까?
네이버쇼핑라이브 검색이라는 막강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시장의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입점된 업체라면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어 품목이 다양하고 빈도가 잦다. 접속 방법 네이버 모바일 앱 →‘네이버쇼핑’ 탭 →‘쇼핑LIVE’ 탭
카카오쇼핑라이브 네이버가 골라 먹는 뷔페라면 카카오는 코스 요리 같다. 하루 1~2회 정해진 시간에만 방송하지만, 명품 또는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시청자를 효과적으로 끌어모은다. 접속 방법 카카오톡 앱 → ‘쇼핑하기’ 탭 →‘라이브’ 탭
라이브11 11번가는 쇼핑과 예능을 결합한 콘텐츠로 승부수를 던졌다. 오프라인 매장 습격 방송 ‘털업’, 신상 리뷰 방송 ‘찐텐 리뷰’, 제철 특산물 먹방 ‘생쑈’ 등 재미를 더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접속 방법 11번가 앱 → ‘라이브방송’ 탭
배민쇼핑라이브 국내 1위 배달 앱 배달의민족도 최근 라방에 뛰어들었다. 각 지역 배달 맛집 소개, 레시피 전수, 먹방 등 다양한 푸드 콘텐츠로 이용자와의 접점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접속 방법 배달의민족 앱 → ‘생생하게 맛있는 쇼핑라이브’ 탭
언더그라운드 가수, ‘천둥 호랑이’가 되어 돌아온 권인하. 올해 나이 예순두 살. 그러나 나이가 무색하게 29만4000여 명의 유튜브 독자를 보유한 그는 여전한 현역으로서 젊은 세대의 열광을 받으며 인생 2막을 일구고 있다.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그가 40여 년이 지나 어떻게 다시 전성기를 열게 되었을까? 천둥 호랑이가 말하는 음악, 소통, 그리고 도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금 가수 권인하가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동안 잊힌 가수였던 그의 봄날은 유튜브 덕분에 찾아왔다. 그가 놀라운 것은 1980년대에 주로 활약한 과거 세대의 가수면서도 유튜브라는 새로운 포맷에 최적화된 가수로 다시금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 성공의 계기는 젊은 세대와의 적극적인 소통 덕분이었다.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다
권인하는 본인이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목적으로 유튜브를 전략적으로 운용하지 않았다. 유튜브의 성공 사례 중 상당수가 그렇듯, 그는 우연과 기회가 겹쳤을 때 본인이 갖고 있던 본연의 실력을 적중시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 시작은 2015년 ‘복면가왕’에 출연했을 때부터다. ‘이 나이에 해도 되는 건가?’라며 긴가민가했던 출연 제의를 매니저가 적극적으로 권유해 나가게 되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원래 ‘천둥 호랑이’ 채널은 내가 부른 노래들을 모아놓는 데이터베이스로 쓸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복면가왕’에 출연한 후 이슈가 되어 EBS ‘공감’에도 초대되었죠. 거기서 태연의 ‘만약에’를 불렀는데 본방에는 못 나갔지만 EBS에서 그걸 유튜브 채널에 따로 올렸어요. 그랬더니 화제가 되었고 순식간에 100만 뷰를 넘더군요. 그걸 본 아들이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통해 노래를 부르라고 권유했습니다.”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그는 태연, 엠씨더맥스, 노라조, 에일리, 아이유 등 후배 가수들의 노래를 적극적으로 리메이크하여 자기 식으로 해석했다. 1980년대 실력파 언더그라운드 가수였던 그가 까마득한 후배들의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도 신선했지만, 더 신선했던 것은 이미 장년의 나이가 된 그가 구사하는 생생한 창법이었다. 다양한 음역대를 오가지만 특히 고음을 원키로 힘 있게 확 질러버리는 그의 ‘천둥 호랑이 창법’에 ‘진짜 가수’를 찾던 젊은 세대는 열광했다.
권인하의 법칙은 연습과 소통
권인하가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전성기 시절과 다름없는 압도적 성량과 테크닉을 유지하는 비법은 연습이다. 그는 요즘 매일 기본 3시간, 때로는 10시간씩 노래 연습을 한다. 새로운 세대와 호흡하게 되니 가수로서의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젊어서는 연습 안 하고 대충 불러도 ‘이 정도면 됐지’ 하며 교만했죠. 하지만 유튜브를 하면서 진심으로 열심히 만들어 부른 노래에 대중이 열광하는 걸 보고 절대로 대충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는 밴드 후배들과 소주 한잔하면서 서운한 게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말하라고 했다. 후배가 자신이 느낀 점을 얘기하면,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다음 고친다. 당연히 처음에는 힘든 일이다. 하지만 후배로서나 그 자신으로서나 이러한 소통을 통해 더욱 개선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는 자신의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끊임없는 피드백을 통해 듣는 이들이 원하는 포인트를 계속 반영하며 진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또한 유튜브를 활용하면서 이제는 하나하나 다 기록으로 남기에 허투루 할 수가 없게 됐어요. 권인하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계속 최고의 정신과 자기관리로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댓글로 만들어진 놀이 공간에서 노닐다
권인하가 자신을 찾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방법도 적극 그 자체다. 다양한 SNS 활용. 유튜브, 팬카페,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하면서 댓글이나 쪽지에 일일이 답장은 못 하지만 최대한 확인하려고 노력하고 피드백을 최대한 수용하려고 한다. 그것을 위해 그가 중시하는 것은 댓글이다.
“비결은 구독자들이 달아주는 재미있는 댓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는 좋은 콘텐츠가 있으면 그에 대해 댓글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면서 놀이터처럼 소비하죠. 그런 재미있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콘텐츠 자체에 새로운 활력이 생깁니다. 단순히 노래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놀이 공간으로 변모하게 되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구독자들이 달아준 재미있는 댓글 덕분에 콘텐츠가 계속 생명력을 얻고 재확산될 수 있다고 봅니다.”
2021년 3월 중순 현재 권인하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29만4000명, 곧 30만 명을 돌파할 기세다. 그 구독자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20~30대라고 한다. 옛날이라면 환갑잔치를 열었을 가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팬층의 구성이다. 그걸 가능케 한 것이 바로 권인하의 소통 능력 아닐까.
현재 권인하의 모습은 최신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멀티테이너적 인상을 준다. 또 그것이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 새로운 물결에 올라타는 그의 모습은 그의 삶을 이해하면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하다.
권인하가 요즘 보여주는 천생 가수로서의 모습만 기억하는 이라면 낯설 수도 있겠지만, 그는 과거에 한때 키보디스트이자 작사·작곡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했다. 군대를 갔다 온 그는 1980년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이영훈과 고등학교 동창 한 명과 함께 셋이서 팀을 준비했고, 그때 이영훈의 곡을 보고 자극을 받아 작곡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처음 만든 곡을 이광조가 불렀을 정도로 그의 작곡가로서의 능력은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권인하는 또한 사업가 경험도 갖고 있다. 신촌뮤직을 운영하며 박효신을 발굴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록 가수로서는 드물게 공중파 방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음악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송 활동을 했다. 심지어 배우로서의 경험도 있다. 1992년에 방영된 MBC 미니 시리즈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에서는 주연, 2001년 MBC드라마 ‘가을에 만난 남자’에서는 조연으로 나왔다.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역할을 바꿔가며 다양한 일을 한 그지만, 뼈아픈 실패 또한 그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음반 시장이 음원 위주로 재편되면서 기존 중견가수들에게는 혹독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권인하 또한 이에 대처하기 위해 미사리 카페를 운영하고 골프 사업도 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내가 “당신은 가만히 있는 게 돈”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업은 실패를 거듭했다.
내가 도움이 되는 선배였다니 다행
성공과 사회적 인정, 그리고 실패들. 이쯤 되면 권인하가 가진 경험의 자산치가 보통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인플루언서로 변화할 수 있었던 비결도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된 본능적 감각이 일조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치지 않는 발전의 동력은 ‘어른’의 정의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도 어른이 됐나 싶을 때가 있지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고 롤모델이 되는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어른됨이겠죠.”
그는 요즘 자신의 가장 큰 기쁨으로 ‘내 노래를 기다리는 호랭이들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기존 팬뿐 아니라 젊은 층에서 호응해주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꼽는다. 얼마 전 화제 속에 끝난 프로그램 ‘싱어게인’이 발굴한 스타 정홍일은 권인하의 ‘나의 꿈을 찾아서’를 인생곡으로 꼽았다. 1992년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이기도 한 이 노래의 가사는 지금은 힘들더라도 언젠가 찾아올 희망을 위해 꿈을 찾아 나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가사가 정홍일이 보여준 삶의 궤적과도 일치하기에, 더욱 살갑게 다가왔을 것이다.
“‘다행이다. 내가 저런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였다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미 너무 잘하는 친구이기 때문에 잘됐으면 좋겠어요. 함께 재미있는 그림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고요.”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노래가 필요한 시대
권인하는 ‘싱어게인’ 같은 오디션 프로의 매력은 참가자들의 순수한 열망과 간절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간절함’은 못 이긴다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래 한 곡을 부를 때 진짜 진심을 담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요즘 후배들은 보컬로서의 기술적인 측면은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됐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내는 방식이 다 비슷하기 때문에 음색이나 아티스트의 개성 자체가 차별화되지는 않는다고 보여요. 기술적으로는 다들 너무 잘하기 때문에 좀 더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을 음악에 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청자들이 가수의 진심에 반응해야 감동은 오는 법. 노래에 대한 진심과 개성에 대한 권인하의 충고가 과거 송창식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던 내용과도 일치하는 걸 보면, 어떤 경지에 도달한 거장급 가수들이 후배 가수에 대해 갖는 생각에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항상 즐거운 인생이지만 아직 못 다 이룬 꿈이 있기에 정진 중입니다. 이미 케이팝이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기 시작했잖아요? 우리 노래가 세계적 퀄리티라는 반증이죠. 10년 이내에 우리 세대의 음악도 훌륭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트렌디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권인하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서 시대에 맞게 진화한 아티스트로 기억되길 원한다. 요즘 시대에 예순두 살은 무언가를 하기에 시간이 넉넉한 나이임을 생각하면, 아직 그가 해야 할 일은 많이 남은 셈이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나이의 일반 개원한 의사들은 절대 쉬지 않아요. 여전히 현장 진료를 하고 신기술을 배우죠. 그걸 안 하면 환자들과 교류가 안 되니까요. 그래서 의사 친구들과 한잔할 때면 ‘그런 거 할 수 있는 게 어디냐, 못 하면 도태되는 거다’라고 말해주죠.”
멋있게 늙는 첫 번째 자질은 도전
권인하는 뒷전으로 빠지는 사람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지를 갖고 접목시킬 게 무엇이 있을까 끝없이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멋있게 늙어갈 수 있는 첫 번째 자질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또한 멈추지 않기 위해 요즘도 1년에 싱글을 두 곡씩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시도해야 결과가 나옵니다. 따라서 뭐든 하는 게 필요해요. 그 자체가 우리 나이에는 큰 용기를 주고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 아닐까요. ‘아, 할 수 있구나, 되네’ 하는 경험을 가지면 미래에 도전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는 자신이 한 말의 증인이기도 하다. ‘할 수 있구나, 되네’를 실현시켜 미래를 꿈꾸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가 만들어갈 인생 2막의 열정적 행보와 소통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2030세대는 모든 게 빠르다. 자고 일어나면 유행이 바뀌어 있고, 며칠 전 신나게 쓰던 신조어는 한물간 취급을 한다.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세대 차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20대 자녀, 혹은 회사의 막내 직원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시니어를 위해 알다가도 모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최신 문화를 파헤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소개한다.
한때 연예인 박명수가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남긴 어록이 유행을 끈 적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피곤하다’, ‘티끌 모아 티끌’ 등 노력하면 결실을 맺는다는 뜻의 속담을 거꾸로 패러디한 것이다. 성과 중심적인 한국 사회에서 끝없는 도전에 지친 청춘들은 그의 어록에 공감했고, 무한 경쟁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회적 인정보다는 개인의 만족과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여겼다. ‘힐링’과 ‘소확행’이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키워드였다.
그런데 최근 MZ세대가 달라졌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욜로(YOLO)’를 외치던 이들이 다시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격증·영어 성적 등 정량적인 스펙을 높이기 위한 과거의 자기계발 트렌드와도 다른 모양새다. 그저 사소한 계획 몇 가지를 세우고 실행하는 것이 전부다. 계획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 밤 12시 이후 휴대폰 보지 않기 등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하루 30분 책 읽기, 요가 1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저서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1’에서 이 같은 현상을 ‘일상력 챌린저’라고 명명했다. 엄격한 목표 대신 ‘자기 관리’ 혹은 ‘자기 돌봄’ 차원에서 일상 속 작은 도전을 이뤄나간다는 의미다.
◇ 젊은 세대는 ‘미라클모닝’ 열풍
여러 습관 챌린지 가운데 소셜미디어(SNS)에서 인기 있는 것은 ‘미라클모닝 챌린지’다. 미라클모닝 챌린지는 2016년 ‘미라클모닝’이라는 자기계발 서적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새벽에 일어나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유튜버 ‘김유진 미국변호사’가 2019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비결을 담은 영상을 올린 후 관심이 급증했다. 이 챌린지의 유행으로 지난 1월 책 ‘미라클모닝’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00% 상승하기도 했다.
2021년 2월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미라클모닝’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27만3000건이 넘는 게시물을 볼 수 있다. 챌린지에 참여하는 이들은 기상 인증샷을 찍고 SNS에 진행 상황을 공유한다. ‘챌린저스’, ‘루티너리’ 등 목표 달성 앱의 도움을 받는 이들도 많다. 개인이 만들고 싶은 습관을 정한 뒤 일정 기간 이를 실천하고 인증하는 것이 이들 앱의 공통점이다. 특히 챌린저스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용자들의 인증샷도 볼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최혁준 챌린저스 대표는 “‘느슨한 연대’라는 말이 있듯이 코로나19로 인해 무기력함을 느끼는 젊은 세대가 생산적인 목표를 함께 달성함으로써 동질감을 얻고 서로를 독려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시니어도 루틴 형성 중요해
미라클모닝 챌린지는 MZ세대 사이 신선한 문화처럼 떠올랐지만,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하워드 슐츠 전 스타벅스 회장,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등 세계를 주름잡은 시니어 리더들은 이미 새벽 기상과 규칙적인 생활의 힘을 극찬한 바 있다. 74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시니어 유튜버 ‘밀라논나’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매일 오전 7시에 일어나 체중을 재고 스트레칭을 하는 등 자신만의 모닝 루틴을 공개하며 건강 비결을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전문가들 또한 나이가 들수록 루틴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시니어는 ‘젊었을 때 다 해봤던 것’이라는 생각에 하루를 흘려보내는 경향이 있는데, 작은 루틴을 만들면 삶에 활력과 성취를 얻을 수 있다”며 “특히 요즘같이 코로나19로 쉽게 무기력해지는 시기에는 더욱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목표가 거창하면 패배감만 커질 수 있으니 ‘동네 한 바퀴 돌기’, ‘화초 기르기’ 등 사소한 일과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 미라클모닝,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꾸준한 도전과 실천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수천 명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는 미라클모닝 챌린저 K씨와 L씨에게 그들만의 비결과 변화를 물었다.
K씨(36세·마케터·미라클모닝 8개월 차)
모닝 루틴 알람 없이 5~6시경 기상→샤워 후 커피 마시기→운동(요가 30~40분, 플랭크 200초, 스쿼트 200회)→동네 산책(1만 보 채우기)→인스타그램 인증 게시물 업로드
준비물 시간 기록 앱 ‘타임스탬프’, 영상 편집 앱 ‘키네마스터’, 만보계 앱 ‘페이서’
“루틴을 정해놓고 바로 이어서 하는 게 꾸준함의 비결이에요. 말 그대로 ‘그냥’ 하는 거죠. SNS 덕도 커요. 얼굴도 모르는 동지들과 나누는 ‘좋아요’와 ‘댓글’이 매일 눈을 뜨게 만들어줬거든요. 가끔은 SNS에 인증하기 위해 일어날 정도예요. 무엇보다 자신과의 약속이란 사실을 잊지 않고 하다 보니 작은 성취 경험이 쌓였고, 목표하던 7kg 체중 감량도 성공했어요. 이제는 아까워서 포기 못 해요.(웃음)”
L씨(43세·주부·미라클모닝 9개월 차)
모닝 루틴 눈 뜨자마자 시간 사진 촬영→간단한 스트레칭 후 명상→인스타그램 인증 게시물 및 긍정의 한마디 업로드→모닝 페이지(매일 아침 떠오르는 생각을 3페이지씩 쓰는 것) 작성→독서
준비물 탁상시계, 명상 앱 ‘캄’, 긍정의 한마디가 담긴 책, 공책, 읽고 싶은 책
“4년 전에도 미라클모닝을 시도해본 적 있는데, 그때는 도전과 포기의 반복이었어요. 그러다 코로나19로 일을 그만두고 제대로 해보자 다짐했죠. 이번엔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기부여가 팍팍 되더라고요. 그렇게 매일 새벽 오롯이 저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면서 제 자신을 더 잘 알게 됐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마음을 정돈하고 시작하는 하루는 확실히 달라요.”
일본의 에세이스트 이노우에 가즈코는 자신의 저서에서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50대부터 덧셈과 뺄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 쓰는 물건이나 지나간 관계에 대한 집착은 빼고, 비운 공간을 필요한 것들로 채워나갈 때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 빼고, 잘 더할 수 있을까?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브라보 독자를 위해 인생에 필요한 여러 정리법을 3회에 걸쳐 안내한다. 이번 호에서는 노년기 인간관계 재정비 노하우를 알아본다.
어긋나는 관계가 우울증을 부른다
은퇴 후 노년기는 활동 반경이 직장에서 가정으로 전환되어 인간관계가 줄어들고, 사회 참여도가 낮아지는 시기다. 또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고 자녀가 결혼해 출가하는 등 가족관계의 지형이 급변하는 때이기도 하다. 미국의 상담심리학자 세라 요게브는 저서 ‘행복한 은퇴’에서 이런 노년기 관계의 변화를 준비 없이 맞이할 경우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웩슬러 역시 저서 ‘관계의 심리학‘에서 중년 이후 최악의 인간관계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보고서 ‘중·고령층 근로활동이 인지기능 및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에 따르면, 은퇴자는 일하는 중·고령층에 비해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제한된 사회활동과 대인관계의 축소가 우울함의 주된 원인 중 하나라고 봤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일이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큰 역할을 하는데, 은퇴 후에는 이 연결망이 단절되어 자아정체감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공적 관계망의 축소뿐 아니라 은퇴 후 사적 관계망 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도 은퇴 후 삶의 질을 낮추고 외로움을 증폭시킨다. 특히 살아온 세월 속 쌓인 갈등이 폭발하면서 관계가 망가질 때가 많다. 배우자 및 자녀와의 갈등이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의 불협화음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2016년 발표한 ‘4대 관계망을 통해 본 은퇴 후 인간관계의 특징’에 따르면, 배우자와 함께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대답한 은퇴자가 ‘늘리고 싶다’고 한 은퇴자보다 6배나 많았다.
이 같은 문제들을 비추어볼 때, 은퇴 후에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면 삐걱대는 관계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또는 가까운 지인 간 어긋난 부분을 개선하고, 줄어든 인맥을 새롭게 채워나가야 사람 냄새 풍기는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다.
배우자의 시간과 취향을 존중하라
시니어가 은퇴 후 인간관계 속에서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은 배우자와의 불화다. 부부 갈등은 시기별로 언제나 존재하지만, 은퇴 후에는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잦은 다툼이 일어난다. 또 부부관계를 지탱해주던 자녀가 결혼이나 취업 등의 이유로 독립할 경우 별것 아닌 일로도 큰 싸움을 하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었던 올해처럼 외출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생기면 부부간 마찰을 빚을 확률이 높다.
평화로운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따로 또 같이’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함께 보내는 시간과 혼자만의 시간을 균형 있게 배분하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부 여행을 갈 때 자신의 여행 스타일을 고집하는 대신 반나절 정도만 함께하고, 나머지 시간을 각자 원하는 곳에서 보낸다면 다투지 않고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부부간의 대화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의견 차가 생기더라도 생활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상의하고 조율해야 한다. 대화를 나누는 중 언쟁이 벌어질 때는 ‘싸움 규칙’을 세우는 것이 좋다. ‘집 나가지 말기’, ‘문제가 되는 것만 얘기하기’, ‘이혼 들먹거리지 말기’ 등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행동을 금지하고, ‘먼저 사과하기’, ‘화가 풀리지 않았더라도 손 잡아주기’ 등을 규칙으로 정하면 잦은 싸움을 줄일 수 있다.
스포츠부터 종교, 봉사, 명상, 요리, 예술 등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는 것도 서먹한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 중 하나다. 취미활동을 같이 하다 보면 자연스레 화젯거리는 늘고,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때 자신의 취미를 배우자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배우자의 취향에 관심을 보이면서 함께 배워보려는 포용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배우자를 향한 비현실적인 기대는 줄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는 자식 간의 관계에도 마찬가지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은 “가족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라며 “배우자가 자신을 위해 희생해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은 비우고, 서로의 노고에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력적인 벗이 되어라
가족을 제외하면, 은퇴한 시니어의 인간관계는 학창 시절 동창 등 친밀한 관계 위주로 재편된다.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고 모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를 쓴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는 “핸드폰 속 전화번호부에 수백 명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지만, 정작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없는 은퇴자를 많이 만나봤다”며 “인맥의 많고 적음보다는 마음 맞는 관계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세 명만 있어도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봐도 양보다는 질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특히 말끝마다 불평불만을 쏟아낸다거나 걸핏하면 화를 내는 등 만났을 때 기분 좋은 에너지보다 불편함을 주는 사람은 알고 지낸 세월에 관계없이 자연스레 꺼려지게 마련이다. ‘앵그리 올드’(Angry old, 성난 노인)가 판치는 세상에 ‘앵그리 프렌드’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자주 만나고 싶은지, 또는 만나고 싶지 않은지 생각해보면서 자신 역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관계를 형성해나가야 한다.
매력적인 친구가 되려면,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하고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태도 도 중요하다. 가령 독서모임에 가입하자고 제안하는 친구에게 “이 나이에 눈도 피곤한데 무슨 책을 읽느냐”며 재를 뿌리는 대신, “용기가 부럽다”고 힘을 북돋워주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면전에 대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적을 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결국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은 바로잡아주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좋은 벗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만남으로 삶을 물들여라
하지만 같이 있으면 편하다는 이유로 친구관계에 ‘올인’해서도 안 된다. 가장 최근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은퇴 직전까지 함께한 공적 관계망의 사람들이다. 이들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친구와는 또 다른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뜻밖의 만남에서도 소중한 인연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관계맺음에 도전해보는 것도 유의미하다. 예컨대 영화나 악기, 특정 스포츠 등 관심사나 흥미를 공유하는 모임에 가입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이나 조건에 따라 관계를 구분 짓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시각과 공감 능력을 갖추고, 나이 차이가 나도 절친이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젊은 세대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신선한 자극도 받고, 배울 건 받아들이다 보면 삶은 더욱 풍성해진다.
과거에는 평균수명이 60~70세였다. 이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100세 시대인 오늘날은 자녀와의 관계만큼이나 부부, 친구, 사회적 관계가 중요해졌다. 노후에는 특히 열정을 나눌 관계에 투자하고,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은퇴 후에도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며 인생을 풍부하게 채워나갈 수 있다.
도움말 강학중 가족경영연구소 소장,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
40년간 ‘종이학’, ‘날개 잃은 천사’, ‘아모르파티’ 등 1200여 곡의 주옥같은 노래를 탄생시켜온 이건우(60) 작사가. 여러 히트곡을 만든 그는 정작 “내가 쓴 가사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그저 자신이 만나온 수많은 인연이 들려준 이야기를 녹이고 정리했을 뿐이라고. 개인이 아닌 대중의 언어를 담은 가사가 빛을 발했다는 의미일 테다. 그래서일까? 이건우의 가사는 평범한 일상 언어들의 부딪힘 속에서 공감과 위로의 노랫말로 경이롭게 배열된다. 그렇게 지난날 영감을 줬던 사람들과 가사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아 그는 첫 작품집 ‘아모르파티’를 펴냈다.
‘아모르파티’(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이건우가 작사하고 김연자가 불러 세대를 넘나들며 대박을 터뜨린 곡이다. 특히 “인생은 지금이야”,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등의 가사는 중장년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자신의 작사가 인생 40주년을 기념하는 도서에도 동명의 제목을 달았다.
“인생의 콘셉트랄까? 그게 바로 ‘아모르파티’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그 제목을 썼다면 모호했겠지만, 제 책이다 보니 상징적으로 바로 와 닿는 게 있는 것 같아요. 60이라는 나이나, 40주년을 기념하는 제목으로도 잘 어울리고요.”
작사가 역시 글을 짓는 사람일진대, 40년을 활동하며 이제야 첫 책을 냈다니 좀 의외였다. 그러나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권, 그리고 지금이 딱 좋다고 말했다.
“자기 분야에 몰입해도 모자랄 사람이 책을 내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게 별로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전부터 내 인생의 책은 단 한 권으로 끝내야겠다고 결심했죠. 왜 특별히 40주년에 출간했느냐 묻는다면, 30주년은 좀 덜 익은 것 같고, 50주년은 솔직히 그때까지 가사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느덧 40주년이 됐고, 이제는 제 노래를 한 번 정리해도 괜찮겠다 싶었죠.”
“나는 천재 작사가가 아니다”
이건우는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유산슬(유재석)의 ‘합정역 5번 출구’를 작사하며 젊은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작신’(작사의 신)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을 정도로 그를 각인시킨 것이다. 식을 줄 모르는 인기 속에서 과거 그가 작사한 곡들이 자연스럽게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옛 노래의 가사를 보면 스스로도 ‘내가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지?’ 하며 감탄할 때가 있단다.
“제가 쓴 가사가 좋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이 살아왔어요. 남의 떡이 더 커 보였죠. 그러다 요즘 제삼자의 눈으로 보니 남다르더라고요. 막 훌륭하다기보다는 ‘아, 40년 동안 나도 참 열심히 했구나’ 싶었죠.”
40년을 히트곡 메이커로 달려올 수 있었던 데에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우는 최근에서야 그것이 노력의 산물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예술가를 만드는 건 99%가 천재성이라 생각해왔어요. 언젠가 한 학생이 노래 부르는 걸 보고, 가수는 안 되겠다 판단한 적 있죠. 그러고 얼마 전 그 애를 다시 봤는데, 실력이 확 좋아진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아, 노력이 타고난 것을 이길 수 있구나. 돌아보니, 나 역시 타고난 사람이 아닌데 은연중에 천재성이 있다고 착각했던 거죠. 현재 작사가로 활동하는 데 내가 가진 천재성과 노력의 비율이 3대 7 정도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아마 나이가 들수록 노력의 비율이 점점 10에 가까워지겠죠. 아무리 천재라도 노력 없이 평생 창작할 순 없을 테니까요.”
그런 그가 가장 노력하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는 평소 주변 사람과의 평범한 대화 속에서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아무리 타인의 이야기를 쓴다고 하지만, 작사가의 인생철학도 가사에 꽤 투영되지 않았을까? 그는 결과적으로 쉽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가령 패티김 40주년을 기념해 쓴 ‘인연’처럼, 대부분의 곡은 가수가 정해지면 작업을 시작해요. 그러면 그 가수에게 어울리는 얘기가 주로 담기죠. 또, 시나 그림 같은 창작물과 다르게, 대중가요는 작곡가, 프로듀서, 편곡가 등 여러 명의 합작품이잖아요. 자기만족만으로 완성할 수 없죠. 물론 일부분 제 인생을 녹이기도 하지만, 오롯이 그것이 드러나긴 어렵습니다.”
중년의 플로리스트를 꿈꾸며
노래가 주는 힘은 ‘위로’와 ‘공감’일 것이다. 이건우 역시 이에 주안점을 두고 가사를 쓴다. 아울러 그는 여기에 한 가지가 요소가 더해져야 진정 ‘좋은 노래’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노래를 왜 들을까요? 저는 세 가지라고 생각해요. 먼저 나를 위로해 달라, 그리고 내게 감동을 달라, 마지막으로 나를 생각하게 해 달라. 그중 앞의 두 가지를 노래에 담는 게 쉽지 않아요. 세 가지를 다 만족시키긴 아주 어렵다는 거죠. 그러나 생각거리까지 줘야 정말 좋은 노래고, 좋은 가사라고 봐요. 메시지가 중요하단 얘긴데, 그렇다고 노랫말이 무겁고 거창하면 안 되거든요. 가수가 부르기 편하게, 대중이 듣기 쉽게, 최대한 가사의 힘은 빼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렇게 잘 만들어진 노래는 대중에게 감동을 주지만, 이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작사가가 먼저 감동을 해야 한단다. 그래서인지 임진모 음악평론가가 이건우를 가리켜 ‘먼저 (자신이) 감동하는 인간’이라 표현한 데에 대해 그는 당연한 얘기라며 수긍했다.
“‘신이시여, 정말 제가 쓴 가사가 맞습니까? 정말 나 미친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쓴 가사를 보고 감동의 클라이맥스까지 가봐야 비로소 작품을 발표하는 거예요. 그 정도는 돼야 대중이 알아줄까 말까 하겠죠. 그런데 나조차도 흔들어놓지 못하는 가사를 내놓으면 과연 누가 그 노래를 듣고 감동을 할까요?”
이건우는 처음 비행기를 탔던 감격의 순간을 담아 ‘황홀한 고백’을 작사했다. 이후론 아무리 비행기를 타도 더 이상 그만한 가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경험이 선사하는 감동이 대단하다는 걸 알기에 늘 도전을 마다치 않는다.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라고 쓴 ‘아모르파티’의 가사처럼, 그는 가슴을 뛰게 할 새로운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꽃꽂이와 수화를 배울 거예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죠. 취미 정도가 아니라 준전문가가 될 정도로 해보려고요. 갑자기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유독 정신없는 한 해를 보냈어요. 알다시피 인기는 한때잖아요. 내년쯤 잘 정리하고, 계획했던 일들을 해나갈 거예요. 예쁜 꽃을 잘 꽂아서 선물도 하고,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수화로 노래를 전달하고 싶어요. 요즘은 그런 의미 있는 일로 누군가가 즐거워할 모습을 상상할 때 가장 설레고 가슴이 뜁니다.”
올림픽공원 정문을 들어서면 88올림픽 때 점화되었던 성화가 아직도 타오른다. 88올림픽 참가국의 국기도 바람에 펄럭인다. 드넓은 공원은 가을의 정취로 가득하다. 이곳 88호수 옆 조각공원에는 소마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관과 휴관을 거듭하다 다시 문을 열었다. 11월 10일부터 현대 구상조각의 선구자이자 4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천재 조각가 류인(1956~1999)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파란에서 부활로’라는 제목으로 전시되는 이번 기획전은 구상조각의 독보적인 작가로 활동했던 류인 작가의 15년간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예술의전당, 호암미술관 등 여러 곳이 소장하고 있는 류인 작가의 작품을 한곳에 모아 전시를 한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 포스터에 담긴 작품 ‘부활-조용한 새벽’은 휘날리는 거대한 망토와 단단한 근육질 인물에서 부활을 꿈꾸는 영웅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
소마미술관(SOMA, Seoul Olympic Museum of Art)은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목재를 마감재로 사용한 지상 2층, 지하 2층의 건물로 야외조각공원과 어우러지는 소통의 미술관이다.
제1전시실의 주제는 ‘흙으로부터’. 류인 작가는 작업할 때 먼저 흙으로 소조를 빚는 전통 방식을 고수했다고 한다. 그에게 흙은 작업의 시작이자 끝을 의미했으며 조각은 곧 삶의 의미와도 같았다. 작가가 말했듯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조각에서 그 표현 방식들의 긴 여행은, 흙으로 시작해서 다시 흙으로 돌아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제1전시실은 자소상과 목우회 공모전 특상을 받은 여인입상, 심저, 입허Ⅱ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제자 원승덕이 스승을 위해 조각한 류인 초상과 작가의 연대기가 그의 생애를 엿보게 한다.
제2전시실에서는 하산과 입산이라는 주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기하학적 입방체와 사실적 인체를 결합한 작품들은 1980년대 류인 작가의 작품 특성이다. 당시 개인전에 출품한 ‘파란Ⅰ’과 ‘입산Ⅱ’ 등은 신체가 완전체가 아닌 상태로 입방체 속에 갇혀 있으면서 새로운 세상으로의 도약을 알리듯 튀어나오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신체적 고통을 뛰어넘는 강렬한 생(生)의 의지와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제3전시실은 삶의 무대다. 이 무대에서는 한때 쓰레기더미로 산을 이루었던 난지도에 인체 조각을 던져놓거나 벽과 천장에 걸어놓는 등 다양한 실험적 모색을 하며 작품 영역을 확장한다. 작품 ‘난지도’에서 버려진 인체 조각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속성’이라는 작품은, 통관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이 아니라 근육이 불끈 솟아 있는 다리, 들어올린 팔로 표현해, 암울함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강인한 저항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제4전시실의 주제는 동시대인의 초상. 류인 작가의 조각은 그 시대 우리들의 초상이다. 그의 작품은 현실에 대한 깨우침이며 살아 있음의 확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가 느낀 현실과 감정의 크기는 같은 시대를 겪었던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작품 ‘급행열차’는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머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제5전시실의 주제는 ‘조각가의 혼’이다. 작가의 생애를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 조그만 소품부터 드로잉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다 보면 마치 20년 전의 그가 살아 있는 듯 느껴진다. 그동안 각종 책에 소개되었던 이야기와 류인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기까지의 사진이 짧게 살다 간 천재 작가의 발자취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실내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면 ‘부활-그의 정서적 자질’이라는 작품이 정원에 놓여 있다. 근육질의 몸매, 길게 뻗은 팔, 비장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갈망하는 듯 보이는 인체 상은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뛰어넘어 부활의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소마미술관을 찾으면 류인 작가 전뿐만 아니라 한국이 낳은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건축물 중앙에 설치된 ‘미니 쿠베르탱’은 감상만으로도 미소를 짓게 한다. 상설전시관으로 들어서면 백남준 작품의 진수를 볼 수 있는데 사진 촬영이 불가해 아쉬웠다.
이외 소마미술관 주변으로 조성된 조각공원에서는 약 222점의 조각 작품을 돌아볼 수 있다. 대부분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들어진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작품이다. 현재 생존 작가로 한국을 대표하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소마미술관 앞쪽 잔디밭에서 만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관계항-예감 속에서’라는 작품은 자연의 돌과 인위적인 철판을 자연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신과 돌과 철판의 미묘한 어긋남의 어울림으로 미지의 세계를 나타낸다.
코로나19로 우여곡절 끝에 재개관한 소마미술관을 찾아 코로나 블루를 털어버리는 것도 힐링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1956년생인 류인 작가의 작품은 1980년의 암울했던 정치 현실을 보여줘 동시대인 세대에게 작가의 고뇌를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 소마미술관 류인 展
○ 기간: 11월 10일~12월 6일
○ 위치: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424(방이동, 올림픽공원)
○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분노사회’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세상이다. 특히 한국 중장년의 경우 ‘한이 많은 세대’라 불릴 만큼, 노여움과 울분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이가 대다수다. 누군가는 화를 참지 못해, 또 누군가는 화를 내뱉지 못해 마음의 병을 앓는 것이다. 이러한 화가 자칫 ‘분노증후군’이나 ‘분노조절장애’로 이어진다면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 분노도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말 김동철 심리학 박사(김동철심리케어 원장)
흔히 ‘화병’(火病) 또는 ‘울화병’(鬱火病)으로 잘 알려진 ‘분노증후군’은 오랜 시간 축적된 화를 표출하지 못해 생기는 증상이다. 이와 반대로 ‘분노조절장애’는 느닷없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하는 등 화를 분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분노조절장애의 경우 지하철에서 학생에게 시비를 거는 노인이나 묻지마폭행을 가하는 중년남성 등이 표면적 이슈가 되어 이러한 증상을 가진 시니어가 많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억압받으며 생계와 가정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고 살아온 한국 중장년의 특성상 분노증후군을 겪는 이가 훨씬 많다(분노조절장애는 해외에서, 또 청소년이나 청년 세대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나타남). 다만, 가족도 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드러나는 증상이 거의 없어 그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조증상이 덜한 암일수록 늦게 발견돼 치료가 어렵고 위험하듯, 분노증후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나도 꿈이 있었는데… 엄마의 울화
# 70대 여성 A 씨는 젊은 시절의 사회 분위기와 가정 사정 등으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한을 자녀 교육을 통해 풀고자 했고, 온갖 정성으로 아이들은 고학력에 좋은 직장까지 얻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자녀들은 번번이 어머니의 무지(無知)함을 들먹이며 무시를 일삼았다. 이에 A 씨는 소외감과 우울함으로 지난 세월을 한탄했고, 급기야 극단적 시도까지 생각하게 됐다.
한국의 중장년 여성들은 자기 뜻과 다르게 학력 단절을 겪거나 사회 참여 기회를 박탈당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전업주부로서 소임을 다했고, 못다 이룬 꿈을 대신 펼쳐줄 자녀들에게 헌신하며 살았다. 그러나 장성한 자녀들은 그런 어머니의 공(功)을 인정하기는커녕 자신의 지식수준과 비교하면서 종종 무시하거나 소외시킨다. 물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본의 아니게 내뱉은 말 등으로도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중장년이 박탈감을 갖게 되고 비참한 심정이 되어 분노하게 된다고 한다(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다). 여기에 배우자와의 사별이나 번아웃증후군(소진증후군)까지 겹치면 심한 우울 증세가 나타나고, 상태가 악화하면 극단적인 시도까지 감행한다.
이렇듯 위험한 병이지만, 안타깝게도 자가 확인이 쉽지 않아 예방이 어렵다. 몇 가지의 체크리스트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단순한 심리·정신질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사례와 같은 상황에서 최선의 예방책은 자녀들 손에 달렸다. 보통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과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고 불편해한다. 그러나 이럴 때 자녀가 따뜻하게 공감해주고 인정하고 칭찬해주면 부모의 울화는 조금씩 누그러진다. 시니어 입장에서는 자녀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쉽지 않겠지만 묻어둔 고충을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게 좋다.
내가 왜 화를 냈지? 분노 컨트롤이 어려워
#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60대 남성 B 씨는 최근 들어 자괴감이 많이 든다. 자신도 모르게 욱하는 심정이 들어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자주 역정을 내곤 한다. 심할 땐 욕설에 소리까지 지르면서 폭력적으로 변한다. 그러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희한할 만큼 기분이 가라앉는데, B 씨는 분노조절이 안 될 때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가 몰려와 괴롭기만 하다.
분노조절장애는 뇌신경이나 호르몬 등의 문제로 스스로 감정 조절이 어려워 뜻하지 않게 폭발적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마치 조울증처럼, 심하게 화를 냈다가 이내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곤 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자주 반복되면 본인은 물론 주변인까지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 마음을 다스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므로 증상이 의심되면 반드시 정신과 진료와 약물치료 등을 받아야 한다.
특히 과거에 조현병, 우울증, 공황장애를 앓았거나 파킨슨, 치매 등 뇌 질환 환자인 경우는 분노조절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더 크다. 또,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뇌수술 후유증으로,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망가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때때로 분노조절장애가 지속되다가 우울증이 오거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한 주변과의 소통 단절을 겪어 분노증후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중장년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에 증상이 더 심해지므로 환절기나 추운 계절엔 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화를 낸다면(주변에서 점검해주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분노조절장애를 의심해보고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