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회사가 늘어나면서 소비자는 혼란스럽다. 비슷한 서비스와 가격에 회사명도 엇비슷하다. 소비자의 이런 고민을 반영하듯 최근 상조회사 사이에선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수많은 상조상품 중 특별해 보이는 아이디어 상품은 없는지 들여다보자.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상조 서비스 중가장 빨리 일반화한 것 중 하나로 ‘부고 알림’을 꼽는다. SNS를 통한 청첩 전달이 일반화되면서 SNS를 이용한 부고도 자연스러운 문화가 됐다. 과거에는 고령층을 염두에 둔 문자메시지 활용이 일반적이었지만,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한 서비스도 제공한다. 부고에 관한 메시지와 함께 장례식장의 위치 정보도 알려준다.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문상·조문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 상조회사를 통하지 않고도 주변에 쉽게 알릴 수 있다. 이런 애플리케이션은 메시지 전송뿐만 아니라 장례식장 방문이 어려운 조문객을 위한 온라인 조문이나 조의금 보내기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조문도 스마트폰으로 쉽고 편하게
온라인 조문과 유사한 형태 중 하나로 많은 상조회사와 추모공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이버 추모관이 있다. 사이버 추모관에서는 고인의 생전 모습이나 장례 과정 등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유족이 고인을 보고 싶을 때 언제 어디서든 이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부 유족들은 고인에게 전할 수 없는 메시지를 작성해 사이버 추모관을 편지함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장례식 도중 경황이 없는 유족을 위한 사진, 영상 앨범 서비스도 최근 선호하는 항목 중 하나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촬영해 DVD 형태로 제공하는 곳도 있고, 아예 앨범 형태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일반적인 영정사진이 아닌 LED 영정액자도 점차 일반화하는 추세다. LED 모니터를 활용한 영정액자는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효과도 있지만, 여러 장의 사진을 게재할 수 있다.
상조회사에서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사용 가능한 상품권을 제공한다든가, 상조회사와 연계된 추모공원이나 추모관 분양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증가 추세에 있는 서비스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형식보다는 편리함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려는 노력이 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고가의 가전제품 제공 등 서비스로 포장된 상품 판매는 소비자 입장에서 오히려 손해일 수 있어 상조 서비스에 가입할 때 잘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에선 세분화한 서비스 늘어
우리보다 고령화 사회를 먼저 맞이해 각종 장례 서비스 개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이웃 나라 일본은 보다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변화 중 하나는 자유장(自由葬)의 등장이다. 과거 일본의 장례는 회사나 단체의 주관으로 치르는 단체장이나 가족 중심의 가족장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에 장례를 간소화하려는 이들이 화장식만 치르는 직장(直葬) 정도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고인을 추모하는 형식의 자유장을 선보이고 있다. 꽃으로 만든 재단을 없애고 영정사진만 놓는 경우도 있고, 마치 파티처럼 음식을 놓고 문상객들끼리 고인에 관한 추억을 나누는 형태로도 진행된다. 흥겨운 음악을 틀어놓는 장례도 있다 하는데 음악장이라 불린다. 상조회사에 따라 오리지널장(葬)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영정사진도 독특하다. 차려입고 촬영한 영정사진을 선호하는 국내와 달리 고인의 직업이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사진들을 모니터를 통해 순차적으로 상영하는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장례 이후의 서비스도 국내와는 차별화한 부분이 있다. 추모공원이나 수목장 외에 바다에 유골을 뿌리길 원하는 가족을 위해 선박을 준비해 해상에서 일종의 영결식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유품정리회사와의 연계를 통한 고인의 유품정리 서비스와 상속에 대한 법률자문 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최근 국내에서도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유족의 슬픔 관리 ‘애도’를 위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유족의 치유와 건강 유지를 위해 전문 상담가들이 배치된 상조회사들도 적지 않다. 이밖에 반려동물을 위한 보험이나 장례 상품에 대한 서비스도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2월 26일 일본에서는 재미있는 행사가 하나 열렸다. ‘제1회 로즈마리산 연구회’가 그것. 오카야마대학교, 오사카대학교 등 일본의 여러 대학 학자들이 모인 이 행사의 목적은 단 하나, 로즈마린산의 효과를 알리자는 것이었다. 이들이 로즈마린산에 집중하는 이유는 이 물질의 치매 예방효과 때문이다. 그만큼 치매는 일본의 사회적 문제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단카이 세대가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가 되는 2025년에는 ‘치매 사회’에 돌입하게 되며, 이때 치매 환자는 최대 730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로즈마린산이 과학적으로 알려진 것은 1958년. 이탈리아 과학자가 이 성분을 허브 식물인 로즈마리에서 발견해 로즈마린산(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즈마린산은 발견 이후에 건강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기능들이 밝혀지면서 많은 연구자의 주목을 받았다.
로즈마린산은 폴리페놀의 일종. 폴리페놀은 식물에서 발견되는 페놀 화합물로 노화 방지나 혈관 건강에 도움을 주는 대표적 항산화물질로 손꼽힌다. 로즈마린산 역시 대표적인 항산화물질 중 하나로, 로즈마리뿐만 아니라 스피어민트, 레몬 밤, 페퍼민트, 타임, 바질 등과 같은 허브 식물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로즈마린산의 효과는 다양하다. 뇌의 신경전달물질 생성에 영향을 줘 우울감이나 불안을 완화해주고, 알레르기 질환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 또 항균작용도 있어 식품의 부패를 방지할 때 활용되기도 한다. 인슐린 감수성에 변화를 줘 당뇨 환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과거 유럽인들이 페스트 전염을 막거나 액운을 쫓기 위해 로즈마리를 부적이나 울타리 재료로 사용한 것이 괜한 수고는 아니었던 것이다.
치매 치료제와 유사한 효능
실제로 국내에 발표된 다양한 학술자료를 봐도 급성전골수성백혈병부터 중금속에 고사한 청각세포를 살리는 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가 시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상지대 연구팀은 로즈마린산이 대장염 치료에 효능이 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중 일본에서 로즈마린산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치매 예방효과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치매 중 가장 대표적인 질환으로 꼽히는 알츠하이머병과 루이소체 치매는 뇌의 아세틸콜린을 생성하는 세포의 저하로 인해 발생한다. 때문에 현대의학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효소 에스테라제의 작용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33년 최초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등록된 타크린부터 1996년에 허가를 받은 아리셉트 역시 아세틸콜린 분해 억제제의 한 종류다. 문제는 이러한 치료제들의 심각한 부작용에 있다. 최초 치료제 타크린은 간에 대한 부작용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고 있고, 다른 약제 역시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에서 흔한 깻잎에 ‘가득’
부작용 부담이 적은 자연 성분인 로즈마린산 역시 아세틸콜린의 분해를 억제하는 기능을 갖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일본 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실제로 일본인들이 애용하는 온라인 쇼핑몰인 라쿠텐이나 아마존에서 로즈마린산을 검색하면 다양한 건강식품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차조기(소엽)에도 로즈마린산 성분이 많은 것이 발견되면서 차조기 관련 식품도 많고, 항산화 작용에 초점을 맞춘 로즈마린산 성분의 화장품도 다양한 종류가 출시되어 있다.
국내에선 최근 여성 연예인과 다이어트 클리닉을 중심으로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레몬밤 속 로즈마린산 성분의 지방분해 기능이 주목의 이유였다. 하지만 건강에 좋다며 향도 익숙하지 않은 외래 품종의 허브를 무작정 먹기엔 무리가 있다. 로즈마린산을 쉽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익숙한 식물이 있다. 바로 들깻잎이다.
농업진흥청이 발표한 결과를 보면, 들깨의 마른 잎에는 1g당 76mg의 로즈마린산이 들어 있다. 이는 로즈마리(11mg/g)보다 약 7배나 많은 수치다. 농업진흥청은 이러한 들깻잎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들샘’ 같은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채우기보다 비우기가 더 어렵다. 채우는 쪽으로 발육한 욕망의 관성 때문이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허기지는 게 욕심이지 않던가. 지긋이 나이 들어서도 사람은 때로 갈피없이 흔들린다. ‘비우기’에 능하지 않아서다.
귀촌은 흔히 이 ‘비우기’를 구현할 찬스로 쓰인다. 욕망의 경기장인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가급적 빈 마음으로 생활을 운영해 한결 만족스런 여생을 누리겠다는 의도, 귀촌한 시니어의 내심엔 대체로 그런 게 들어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게 인생. 시간의 골목골목을 통과하는 사이에 그려지는 굴곡의 궤적들. 남들 눈엔 평범해 보이는 인생에도 고유의 행적이라는 게 있으며, 기복과 부침의 과거사가 서려 있게 마련이다. 예순의 나이에 접어든 임미숙 씨의 행장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그녀는 엉뚱하게도 건설업에 뛰어들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업은 순풍을 만나 쾌속 질주! 이 야무진 여자는 진로를 바꿔 쇼핑몰 사업에 자금을 투자했다. 이 역시 순항. 50명의 직원을 거느릴 정도로 규모를 키웠더란다. 그러다가 빙벽을 만나 한순간에 추락했다. IMF의 파랑에 침몰했던 것.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부채만 산더미처럼 남았다지. 간신히 부채를 정리한 그녀는 오랜 거점이었던 대구를 떠나 서울로 이주, 친구와 함께 커피숍을 차렸다. 그러나 그마저 신통치 않았다. 어이 하나? 고심이 첩첩 겹쳤을 테지.
“사업을 키워나갈 땐 남들의 칭찬도 많이 들었어요. 체구도 조그마한 게 통도 크고 간도 크다고. 자부심도 넘쳤죠. 하지만 추락하고 보니 심하게 주눅이 들더라고요. 지나온 세월을 찬찬히 돌아보게 됐어요. 사업상의 성취가 있을 때 누렸던 만족감, 행복감, 이런 것들이 사실은 근거가 부실한 자부심에 불과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남들의 찬사도, 행복감도 단순히 돈의 힘에서 나온 거라는 걸 깨닫고 우울했어요. 본질적인 가치를 생각하기 시작했던 거죠. 물질적 조건에 매이지 않고 제대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 결론이 귀촌이었죠.”
물적 토대를 잃은 뒤, 임미숙 씨는 삶이라는 숙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조리를 따져 맹점을 찾아냈던 것 같다. 그동안 나를 기쁘게 했던 건 나 자신이 아니라 돈이었구나,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준 게 아니라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해줬구나, 미련한 나여! 보라! 모래 위에 지은 가건물처럼, 이토록 빈약한 행복은 종단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니겠느냐? 그런 인식이 머릿속을 환하게 흘렀던 모양이다. 그게 터닝 포인트였다. 그녀가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후미진 산골로 내려온 건 2011년의 일. 당시 나이 53세.
“시골의 그 무엇에 끌렸죠?”
“조용한 시골 풍경, 울퉁불퉁한 돌담장, 담장 아래 피어나는 봉숭아며 채송화, 그런 게 좋았어요. 한적한 시골에 근사한 집을 짓고 살아보고 싶었어요. 노래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음, 그런 꿈이었죠. 절실하게 꿈꾸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죠? 이 산골에 들어오며 드디어 원했던 삶이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즐거웠어요.”
“경제활동에 한계가 있는 게 시골이죠. 생계 대책도 미리 세워둔 귀촌이었겠죠?”
“미리? 그건 아니었고 내려가서 부닥쳐보자, 까짓것 도시에서 이미 실패했는데, 더 이상 잃을 게 뭐람! 그쯤의 생각뿐이었죠.”
“비에 젖은 사람은 더 이상 비가 두렵지 않은 법이죠.”
“결심은 굳었어요. 귀촌을 계기로 싹 비우고 살자는 것. 좋다, 이젠 가늘게 먹고 가늘게 살자! 그 생각 외 별 고민도 궁리도 하질 않았어요.”
외양간을 개조한 사랑채 안 풍경
거참, 두둑한 배짱이렷다. 가녀린 식물을 닮은 외양이지만 내부엔 깡이 서려 있는 모양이다. 천성의 산물이거나 세파를 거치며 단련된 근성이겠지. 물론 그녀가 철부지처럼 엄벙덤벙 무작정 산골에 덤벼든 건 아니었다. 믿을 만한 근거 하나가 있었으니 말이다. 선친이 남겨둔 1500평 규모의 땅과 집이 그것. 생시에 젖소 목장을 하려고 사두었던 부지로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였다. 그녀는 부친이 작고하기 전까지의 25년 세월을 심청이처럼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며 알뜰히 봉양했단다. 갸륵한 행장에 응분의 선물이 주어진 셈이다.
산등성이 외딴 곳에 있는 임미숙 씨의 거처는 수려하다. 갖가지 초목이 들어찬 터전은 널찍하다. 집의 외벽엔 흰 칠을 해 흐린 날에도 태깔이 밝다. 돌덩이와 흙, 목재, 통유리를 적재적소에 옹골차게 도입한 센스도 예사롭지 않다. 집 내부에도 미학과 리듬이 생동한다. 외양간을 개조한 사랑채 안 풍경은 특히나 멋스럽게 튄다. 골방의 절반을 침대처럼 높이 띄워 구들을 놓은 정경은 이색이며, 1인용 간이식 사우나탕은 성냥갑처럼 비좁지만 기발하다.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할한 하얀 벽들은 이국정서를 야기한다.
햐, 한마디로 매력적인 집이다. 재활용 자재나 자연에서 무상으로 얻어온 재료를 적극 끌어들였다는 점에서는 참신하며 창의적이다. 별반 큰돈을 들이지 않은 대신 공은 잔뜩 들였다지. 이 집은 원래 금방이라도 와르르 허물어질 듯 퇴락한 고가였다. 어떻게든 손을 봐야 거주가 가능할 상황이었다. 개축을 할까, 자그마하게 신축을 할까, 그녀는 양자를 놓고 고민하다 귀농 관련 인터넷 카페 회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허름하게 기울어진 시골집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려 조언을 구했어요. 용케 목수 한 분과 연결이 됐죠. 시골집을 철거하는 건 너무도 아깝다, 리모델링이 좋지 않겠는가? 그분의 얘기가 그랬어요. 바로 의기투합해 공사에 착수했죠. 제가 원래 인복이 많은데요, 저랑 코드가 맞는 유능한 목수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죠. 비용은 3000만 원이 채 들지 않았지만 저의 취향이 충실하게 반영된 집, 예쁘고 실용적인 집이 한 달 만에 완성됐던 거예요.”
“시골집을 개축하느니 신축이 낫다는 경험담들도 많아요. 비용이나 편의성, 완성도를 따질 때 그렇다는 거죠.”
“귀촌 희망자들에게 집짓기에 관한 조언을 한다면?”
“동네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크고 화려한 집을 짓는 경우가 흔하지만, 반드시 후회해요. 유지와 관리에 진절머리를 내게 돼 있어요. 시골에서의 집이란 주로 잠자는 공간으로 쓰여요. 마당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많으니까. 가급적 작게 짓는 게 요령이죠.”
귀촌으로 얻은 값진 선물들
예쁜 집에 사는 된장녀. 주변 사람들은 임 씨를 흔히 그렇게 일컫는다. 그녀의 전공이 된장 사업이기 때문이다. 귀촌 이듬해부터 된장을 담갔으니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된장을 만드는 기술도 판로도 평판도 이젠 탄탄한 수준에 올라섰다.
된장은 일용할 양식이다.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으면 뚱뚱해져 식인종에게 잡혀 먹힐 수 있다. 된장은 탈날 게 없다. 누구나 좋아하며 누구나 먹는다. 비교적 수월하게 제조 기술을 익힐 수도 있다. 해서, 귀촌·귀농을 한 이들이 쉬 된장 사업에 뛰어든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하다. 흑자를 보는 된장 농가가 드물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임 씨는 기세를 돋우고 있다. 지난해엔 번듯한 된장 공장도 지었다. 현재의 연 매출은 5000만 원 정도. 김천 관내에 널리 알려진 강소농이다. 알찬 행진이다. 이건 단박에 쌓아진 탑이 아니다.
“어디에 갖다놔도 살아갈 여자,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웃음) 비록 돈 없이 귀촌했지만 이 시골에서 무엇을 해서건 밥은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저에게 없었던 건 돈만은 아니었어요. 농사 경험 없지, 시골 물정 모르지, 아는 사람 없지,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귀촌이었죠. 그렇다면 부지런하게 배우는 게 지름길. 귀촌·귀농 교육장을 찾아다니거나 밤새워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 익혔어요. 주경야독식으로 부지런히 공부했어요.”
“된장 사업은 교육장에서 권장한 종목?”
“아뇨. 이미 포화상태라며 뜯어말리던데요.(웃음) 그러나 저는 된장이 적격이라 판단했죠. 처음 한동안은 남들이 비웃을까봐 몰래 혼자 된장을 만들어 지인들과 나눠 먹었어요. 그런 수련기가 길었어요. 덕분에 실력이 늘면서 작년부터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있어요. 초기의 막막했던 기분은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출발을 해야죠.”
“어디를 향한 출발?”
“흠. 일단은 된장 사업을 안정적 궤도에 올려놔야죠. 그렇다고 얄팍한 장사치가 되긴 싫어요. 된장을 통한 공감과 소통이 전 참 즐거워요. 저의 시골생활과 된장 이야기를 올리는 블로그로 맺어진 인연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지역 귀농교육기관에서 가끔 강의도 하고, 견학차 찾아오는 방문자들도 많아요. ‘마음씨 예쁜 여자들’이 모인 ‘마녀 7인방’, 이 모임의 아줌마들과는 친자매 같은 정을 나누고 삽니다. 모두 귀촌한 분들이죠. 아차! 어디를 향한 출발이냐 물으셨죠? 궁극적인 목적은 여행입니다. 맘껏 여행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다는 것, 그럴 수 있는 기반을 빨리 다지자는 것, 이게 현재의 목표예요.”
귀촌을 통해 맺어진 믿음직한 인연들에 그녀는 기쁘다. 그건 귀촌으로 얻게 된 가장 값진 선물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외기러기처럼 일쑤 외롭지 않을까? 그녀는 독신이다.
“어서 빨리 똘똘한 마당쇠를 구하라는 성화가 빗발쳐요. 은근히 다가오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나 필이 통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를 어쩌나. 일에 묻혀 사는 바람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는 것도 사실이고요. 게다가 저에겐 병이 하나 있어요. 외로움이 없다는 것, 이건 지병일까? 외로워야 사랑의 갈증도 생길 텐데, 이거 참 문제죠?(웃음)”
“세상에 유일한 진실은 이성을 잃은 사랑에 있다. 뮈세의 말에요. 명심하시라.(웃음) 그런데 말이죠, 독신 여성의 귀촌, 이거 권장할 만한 거예요?”
“저를 보세요. 끄떡없이 잘 살고 있잖아요. 물론 표적이 될 수도 있어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저는 CCTV를 설치했지만, 처신을 똑떨어지게 잘하면 그만이에요. 사고가 나려면 명동 한복판에서도 나는 거 아니겠어요? 접시 물에 빠져 죽는 수도 있고 말이죠. 정 힘들면 짐 싸서 나가면 되지 뭐, 난 어디서건 잘 살 수 있어! 제게 그런 깡은 있어요.(웃음)”
시골생활의 새로운 문법과 맥락을 익히는 일. 이건 오솔길을 거니는 일과 달리 손쉬운 여정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듯, 시련도 불안도 나그네처럼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길은 늘 그렇게 열린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 화사한 봄 메이크업 제품부터 미세먼지를 걸러줄 공기청정기, 나들이 추억을 담아올 미러리스 카메라까지 두루두루 소개한다.
촉촉하고 생기 넘치는 봄철 립 메이크업, 설화수 ‘에센셜 립세럼 스틱’
봄철 메이크업을 더욱 빛나게 해줄 설화수 ‘에센셜 립세럼 스틱’의 컬러 4종이 새로 나왔다. 이전에 출시된 애프리콧 세럼(1호), 블라썸 세럼(2호), 플라워 핑크(3호)를 비롯한 8가지 컬러에 글로우 오렌지(9호), 비비드 핑크(10호), 래디언트 레드(11호), 소프트 오렌지(12호)가 더해지며 총 12가지 색상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컬러감으로 생기 넘치는 립 메이크업을 연출하는 동시에 세럼 베이스가 유수분 이중 보습막을 형성해 건강한 입술로 가꿔준다. 가격 4만 원대.
골치 아픈 혈당·식사 관리를 보다 쉽게, 당뇨 환자 위한 '당당 플래너'
당뇨병은 생활습관 개선과 함께 꾸준한 건강관리가 중요한 만성질환 중 하나.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힘든 것이 많은 당뇨 환자가 겪는 어려움이다. 사단법인 한국당뇨협회는 당뇨 환자의 적극적인 혈당관리를 돕기 위해 당뇨인 전용 ‘365 DANGDANG 플래너’를 출시했다. 총 40여 개의 당뇨관리 지침, 혈당·식사·운동 기록표 등 당뇨관리에 필요한 내용을 기록해 당뇨 환자 스스로 체계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건강 플래너다. ‘365 DANGDANG 플래너’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각 분야의 당뇨병 전문가들이 기획부터 내용까지 감수해 만들었다. 구매는 한국당뇨협회 쇼핑몰에서 하면 된다. 가격 3만 원.
한국인에게 어울리는 커피 캡슐 7가지, ‘마이 바리스타 키트 리미티드 에디션’
네스카페 돌체구스토는 홈카페를 즐기는 소비자들을 위해 ‘마이 바리스타 키트 리미티드 에디션(My Barista Kit Limited Edition)’을 출시했다. 이 키트에는 네스카페 돌체구스토의 커피 크리에이터이자 세계적인 바리스타 올라 퍼슨(Ola Persson)이 한국인에게 추천하는 커피 캡슐 7종과 함께 슬림한 캡슐 커피머신 미니미, 커피를 취향대로 즐길 수 있는 레시피북을 하나의 키트에 담았다. 가격 8만9000원.
촉촉한 남자 피부를 위한 스킨케어 '헤라 옴므 매니시모 인텐시브 스킨&에멀전'
리코리스 우드의 부드럽고 감각적인 향이 어우러진 남성 전용 스킨케어 제품이다. 자작나무와 편백 유래 성분이 함유돼 건조한 피부에 보습과 활력을 부여해 촉촉하게 해주며 식물성 추출물이 외부 유해 환경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준다. 리코리스 우드를 연상하게 하는 블루-그린 컬러와 도시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 디자인이 고급스러운 중후함을 더해 선물용으로도 좋다. 가격 15만 원대.
낮에는 거실에서 함께, 밤에는 방마다 따로, 모듈형 공기청정기 ‘삼성 큐브’
삼성전자가 하이브리드 집진 필터기능으로 강화된 청정기능과 함께 분리·결합이 가능한 ‘모듈형 큐브 디자인’의 신개념 공기청정기 ‘삼성 큐브’를 공개했다. 별도의 도구 없이 손쉽게 배치할 수 있어 낮에는 넓은 거실에서 2대를 결합해 대용량으로, 밤에는 각각 분리해 안방과 자녀방 등으로 나눠 사용 가능하다. 신개념 디자인뿐만 아니라 0.3㎛ 크기의 초미세먼지를 99.999%까지 제거할 수 있는 초순도 청정 시스템을 자랑한다. ‘무풍 청정’ 기능이 추가됐고, IoT 시스템으로 외출 시 스마트하게 집안 공기를 관리할 수 있다. 가격 80만~200만 원대.
12.4mm 안에 담긴 최첨단 GPS 기술, 세이코 ‘아스트론 GPS 솔라’ 새 모델
37년 전통의 글로벌 시계 명가 세이코(SEIKO)의 GPS 워치 브랜드 ‘아스트론 GPS 솔라’의 신모델 ‘SSE159J’가 출시됐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통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총 40개의 타임존을 자동으로 인식, 세계 어디에서든 원터치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새롭게 출시된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GPS 모듈의 소형화 및 수신율 개선작업을 통해 현재까지 선보인 모델 가운데 가장 얇은 12.4mm의 슬림한 디자인이다. 오직 빛 에너지만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배터리 교체 없이 오래 쓸 수 있다. 가격 254만 원.
가볍고 흔들림에 강해 시니어에게 딱인, 올림푸스 미러리스 카메라 ‘PEN E-PL9’
올림푸스한국은 SNS 공유가 간편한 프리미엄 셀피(Selfie) 미러리스 카메라 ‘PEN E-PL9’을 공개했다. 올림푸스의 미러리스 제품군은 가볍고 손떨림 보정기능으로 흔들림에 강해 중장년층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번에 나온 E-PL9은 PEN Lite 시리즈의 최신 모델로, 아래로 180도 젖혀지는 고해상도의 대형 터치 LCD 모니터가 편리한 셀피 촬영을 지원한다. 누구나 한 장쯤은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흑백사진이나 빛바랜 즉석카메라 사진으로 추억에 잠겨보고 싶다면 이 카메라를 주목해야 한다. 총 16종의 아트 필터에 새롭게 추가된 ‘인스턴트 필름(Instant Film)’ 필터는 빛바랜 즉석카메라 사진의 느낌을 강조해 추가적인 보정 없이도 감성적인 연출이 가능하다. Wi-Fi와 블루투스 기능을 통해 편리한 스마트폰 연결을 지원한다. 특히, 후면 LCD 모니터에 새로 추가된 ‘공유 명령(Share Order)’ 버튼을 누르면, 카메라가 꺼졌을 때 앞서 선택된 파일들이 스마트폰으로 한 번에 전송돼 언제든지 추억에 잠길 수 있다. 더불어 1610만 화소 Live MOS 센서로 향상된 화질과 해상도를 지원한다. 올림푸스의 최신 화상 처리 엔진인 트루픽 VIII은 어두운 곳에서도 노이즈 적은 깨끗한 화질을 제공한다. 강력한 바디 내장형 손떨림 보정 시스템은 셔터 스피드 3.5단계의 손떨림 효과를 발휘한다. 무게 332g, 가격 미정.
공식 당구 시합이 벌어지는 장소는 각양각색이다. 쇼핑몰에서 하는 경우도 있고 체육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쇼핑몰은 쇼핑객들에게 구경거리를 선사하고 쇼핑몰 광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각종 잡음이 있어 별로 좋지 않다. 체육관에서 하는 경우는 객석이 너무 멀리 있어 관심 있는 선수의 경기를 보기 어렵다. 당구대가 여러 개 있어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들려 집중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국제 경기는 독립된 건물에서 하기도 한다. 큰 건물이 있는 휴양지에서도 국제 경기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경기는 기존 당구장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당구장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당구 치는 사람들의 잡담 소리만 들린다. 조용히 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을 칠 때마다 한마디씩 하게 되므로 다른 당구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 소위 방해 작전으로 하는 말도 있다. 당구 치는 사람의 평정심을 흐트러뜨리려는 의도로 일부러 말을 걸기도 하는 것이다. 재미는 있을지 모르나 좋은 매너는 아니다.
어느 당구장은 TV 스포츠 경기를 하루 종일 틀어놓는다. 프로야구 경기를 틀어놓기도 하고 UFC 경기를 틀어놓기도 한다. 그것만으로도 시끄럽다. 당구장을 투기 오락장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야구 경기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안타라도 치면 괴성을 지르니 문제다. 아무 소리가 없으면 불안한 모양이다.
어느 당구장은 들어가자마자 개 두 마리가 짖으며 달려 나와 놀란 적이 있다. 계속 짖어대는 바람에 그만 치고 나갈 생각까지 했다. 주인은 개를 사랑한다지만 개를 싫어하는 손님들도 있다. 영업장에 개를 풀어놓을 일은 아니다.
경기도 한 당구장은 대회 때 감미로운 바이올린,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배경 음악을 깔아 호평을 받았다. 선수들이 평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면 대한체육회장 배 당구대회에서는 수시로 공지 멘트를 마이크로 하는 통에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선수별 당구대 배정 멘트인데 댄스대회처럼 한쪽 벽에 붙여놓으면 될 일을 왜 소음에 버금가는 소리로 전달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독일의 국제 당구대회장에서는 축구장에서나 사용할 법한 나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해설자 얘기로는 독일만 그렇다는데 정신이 좀 나간 사람이 한 사람 있는 모양이다. 당구는 귀족 오락이다. 궁정에서 하던 스포츠였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요즘은 고급 라운지처럼 차려놓은 당구장도 종종 보인다. 물론 게임비가 일반 당구장보다 비싸다.
당구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멘탈 게임이다. 심리적 요소가 경기에 많이 작용한다. 고급 당구장들은 클래식 음악을 낮게 틀어놓는다. 좋은 일이다. 당구를 치면서도 스스로 격이 올라가는 기분이다.
2018년 개띠의 해가 열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구는 돌고 역사는 기록될 것이고 개개인의 삶은 흘러갈 것이다. 올 새해맞이는 따뜻한 휴양지 코타키나발루에서 ‘지치지 않는’ 여행을 하면서 쉬는 것. 낮에는 바닷가에 나가 물놀이를 하고 배가 고프면 슬렁슬렁 시장통에 나가 애플망고를 실컷 먹고 저녁에는 밤하늘을 보면서 수영을 즐기는 일. 한 해의 초문을 여는 방법으로 이보다 행복한 여정은 없다.
툰구 압둘 라만 해양공원에서 놀고 액티비티 투어도 하고
코타키나발루는 사바 주의 주도(州都)다. 사바 주는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한 보르네오 섬의 북쪽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여행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 낮에는 툰구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 해양공원의 5개 섬을 골라 다니면서 놀면 된다. 가야(Gaya), 마누칸(Manukan), 사피(Sapi), 술룩(Sulug), 마무틱(Mamutik) 섬이다. 툰구 압둘 라만 해양공원의 이름은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인 툰쿠 압둘 라만(1903~1990)의 이름에서 따왔다. 물빛이 아주 맑은 수트라 항구(Sutera Harbour)에서 배를 타고 빠르게 달려 5분도 안 돼 마무틱 섬에 이른다. 5개 섬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고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어 일명 ‘산호섬’으로 불린다. 섬에서 노는 게 지겨운 날에는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키나발루 국립공원(Kinabalu National Park)으로 가서 트레킹을 하면 된다. 골프를 하고 싶다면 탄중아루(Tanjung Aru) 리조트 내의 골프 코스를 찾으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제셀턴 포인트(Jesselton Point)에서 배를 타고 반딧불 투어, 밀림 투어 등을 해도 좋다. 제셀턴 포인트는 주변 섬으로 갈 수 있는 페리 탑승장이다. 이 도시와 인근 섬들을 연결하는 여객선이 드나든다. 수많은 현지 여행사가 있어 각종 투어와 액티비티 투어 등을 예약할 수 있다. 참고로 제셀턴은 과거 영국의 식민통치 시대에 말레이시아의 물자를 실어 나르던 항구로 1945년 오스트레일리아 군인이 내려 거주하던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끝 무렵 일본군으로부터 코타키나발루(당시 이름 제셀턴)를 탈환하기 위해 진입한 오스트레일리아 군이 야영했던 곳이라서 붙여진 지명. 기념 동판 하나만이 남아 그날을 일러준다.
필리핀 마켓 야시장에서 애플망고 실컷 사 먹기
코타키나발루 여행의 백미는 야시장 구경이다. 이 도시로 이주한 필리피노들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하나둘씩 내다 팔면서 자연스레 형성된 시장. 오후 4시경 문을 여는 노천 야시장엔 활력이 넘친다. 상인들 거의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도 어렵지 않다.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에 ‘히잡’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시장에는 망고가 지천이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사 먹을 엄두를 낼 수 없는 애플망고를 보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새우튀김도 사고 닭 날개(사테, Satay)도 사 먹는다. 한국인이 많이 오는지, 구운 닭 날개 소스에 대해 능숙하게 말한다. ‘매운 맛’이나 ‘맛있어요’라는 말은 아주 잘한다. 바나나튀김도 맛있고 작은 팬케이크는 보는 재미가 있다. 또 첸돌(Chendol)도 재미있다. 간 얼음 위에 꼬물꼬물한 연두색 첸돌과 코코넛밀크, 흑설탕을 넣어 만든 빙수다. 이와 비슷한 아이스카장(Ice Kajang)도 있다. 잘게 간 얼음 위에 야탑 열매와 옥수수, 팥, 젤리 등과 여러 가지 시럽을 넣은 빙수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질 시간. 시장통을 비껴 워터 프런트 쪽으로 걸어가면 바다 너머로 해가 진다. 지는 해의 열기는 생각보다 뜨겁다. 숙소로 피신하는 게 답. 달빛과 별을 보며 수영하면서 맛있는 애플망고와 새우튀김을 안주 삼아 지역 맥주 한잔 곁들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행자가 된다.
전통 부족민 볼 수 있는 ‘카다잔-두슨 원주민 민속촌’
사바 지역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어 전통가옥을 재현해놓은 사바 카다잔-두슨 문화협회(Kadazans-Dusuns Cultural Association Sabah)를 찾는다. 사바 주의 용맹한 ‘카다잔’ 원주민 전사와 몬소피아드 사냥꾼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민속촌이다. 카다잔족, 두슨족, 룬구스족, 바자우족, 무루트족(Murut) 등은 이 나라 대표적인 전통 부족들. 카다잔족과 두슨족은 사바 주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으로 전체 인구의 30%나 된다. ‘키나발루’라는 이름도 카다잔족의 언어로 ‘죽은 자들의 안식처’를 뜻하는 ‘이키나발루’에서 유래되었다.
두 부족은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했다. 다른 점이라면 카다잔족은 분지에서 쌀농사를 짓고 두슨족은 구릉성 산지에서 산다는 것. 카다잔-두슨 민속촌에 이들이 살던 집과 풍습 등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 마련되어 있다. 또 매년 5월 30~31일에는 추수 축제가 열린다. 벼를 수확한 후 한 달 정도 풍성한 축제가 벌어질 때 훨씬 볼 만하다.
도시 전망은 시그널 힐에서, 낙조 감상은 탄중아루에서
시그널 힐(Signal Hill) 전망대도 오른다. 걸어서 가기에는 가파른 길이다. 낙조를 감상하기 제일 좋은 곳이지만 낮에는 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의 역할을 한다. 전망대에서는 코타키나발루 시내 전경과 페낭 해변을 둘러볼 수 있다. 근처 시계탑은 랜드마크로 원래 등대 역할을 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의 융단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은 건축물이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근처의 선데이 마켓으로 간다. 잘란 가야(Jalan Gaya)에서 열리는 선데이 마켓은 300개 이상의 노점이 생활용품, 식재료, 약초, 의류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한다. 원래는 현지인들을 위한 작은 로컬 마켓이었지만,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판매 품목도 다양해졌다. 필리핀 마켓과 달리 수제품이나 공산품이 많다. 보기 드문 제비집도 있다. 마켓은 생각보다 일찍 파장한다. 다시 가장 번화한 원보르네오(One Borneo)와 와리산 스퀘어(Warisan Square)로 이동해 마사지를 받고 천천히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낙조를 볼 수 있는 탄중아루로 간다. 탄중아루는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 이 도시의 낙조는 그리스 산토리니, 남태평양 피지와 함께 세계 3대 해넘이로 꼽힌다. 아쉽게도 바닷가에는 비가 내린다. 낙조를 보지 못하면 어떠리. 맘껏 휴식했으니 이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Travel Data
항공편 인천에서 코타키나발루까지 직항편은 대한항공이 주 2회, 아시아나와 이스타항공이 주 4회 운항하고 있다. 말레이시아항공 직항편도 있다. 매주 금요일 출발.
기후 1년 내내 덥고 습한 기후다. 평균 기온은 영상 30℃. 계절에 따른 기후변화가 없어서 여행 성수기와 비성수기가 나뉘지 않는다. 날씨는 대체로 맑은 편이지만 하루 한 번 열대지방의 소나기인 스콜이 내린다. 코타키나발루의 1월은 우리나라의 한여름 날씨와 비슷하다. 통풍이 잘되는 얇은 옷 위주로 챙기고, 한 달 평균 일주일 이상 비가 내리기 때문에 우산은 필수다. 고산인 키나발루 산과 쿤다상(Kundasang) 지역은 기온이 서늘한 편이다.
언어 공식 언어는 말레이어다. 하지만 호텔 및 관광지에서는 영어가 널리 사용된다.
통화 정보 자국 통화인 말레이시아 링깃(Ringgit)이 통용된다. 1링깃은 260원대다. 인천 공항에서 환전해서 가면 된다.
사용 전압 200~240V, 50Hz다. 우리나라와 콘센트 모양이 다르니 꼭 어댑터를 준비하자.
음식 정보 해산물이 풍부하다. 그 외 볶음밥인 나시고렝(Nasigoreng)이나 국수 등 메뉴가 다양하다. 한국인이 일부러 찾는 집으로는 ‘웰컴씨푸드’가 있다. 주문하면 수족관에 있는 해산물로 즉석요리를 해준다.
숙박 정보 휴양도시라서 고급 호텔, 리조트, 콘도, 레지던스, 아파트 등 묵을 곳이 많다. 골프를 원한다면 리조트를 선택하는 게 좋다. 한 달 정도 머물 예정이면 아파트를 추천한다. 거실 하나에 방 두 개다. 아파트 객실은 에어컨, 평면 TV를 갖추고 있으며, 일부 객실에는 냉장고 등이 완비된 간이 주방도 마련되어 있다. 1일 7만~10만 원 선이다. 수트라 항구 근처의 이마고(Imago) 쇼핑몰·콘도는 장기투숙자가 많이 이용한다. 또 KK 베케이션 아파트먼트 @ 마리나 코트 리조트 콘도미니엄을 비롯해 여럿 있다.
기타 볼거리 북보르네오 증기기차 투어나 새로 지은 시청사, 석호(潟湖, lagoon) 위에 세워진 시티 모스크, 사바 주 모스크(Sabah State Mosque)가 있다. 건물 돔은 온통 황금으로 뒤덮여 있다.
코타키나발루 여행정보 www.mtpb.co.kr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코타키나발루는 관광지를 찾아다니느라 애쓸 필요 없는 곳이다. 많은 곳을 다니기 싫어하는 시니어에게 좋은 여행지다. 대부분의 숙소에는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마사지 숍 등이 갖춰져 있다.
와인은 역사상 인류가 가장 오래 즐긴 술로 꼽힌다. 최근에는 미국의 사우스플로리다 대학 연구팀이 학술지를 통해 시칠리아 동굴에서 6000년 된 와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가설보다 3000년이나 앞선 것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우리 조상들도 일찍부터 와인과 접해왔다. 사료에는 중국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사위로 삼은 고려 충렬왕에게 포도주를 하사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본격적으로 국내에 와인이 소개된 것은 조선 후기 선교사들을 통해서다. 그런데 오랜 인연에 반해 실생활 속에서 왜 우리 와인은 찾아보기 어려울까. 충북 영동의 한 와이너리를 찾아 우리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국산 와인은 충북 영동과 경북 영천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곳 이외에 전북 무주와 경기 포천에도 많은 와이너리가 운영되고 있다. 현재 국내 와이너리는 150여 곳 이상 될 것이라고 업계에선 추산하고 있다.
충북 영동의 대표적 와이너리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컨츄리와인은 3대째 와인을 만들어오고 있는 와이너리다. 컨츄리와인의 시작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컨츄리와인의 대표 김덕현(金德賢·34)씨의 할아버지인 김문환(金文煥)씨는 일제강점기 미크로네시아로 강제 징용을 떠나게 된다. 한때 스페인의 영토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 그곳에서 김문환씨는 스페인 병사와 친분을 쌓게 되고 포도와 와인의 매력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해방 이후 고향인 영동으로 돌아와 포도농사와 포도로 가양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1965년이다.
그리고 그 뜻을 2대 김마정(金摩廷·63)씨가 이어받아 2010년 개인농가로는 최초로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해 본격적인 와인 생산에 나서게 된다. 현재는 3대인 김덕현씨가 생산과 판매 모두를 책임지고 있다.
한국의 와이너리가 살아가는 법
2대 김마정씨가 혼자 공부해 와인 제조에 뛰어든 독학파라면 3대 김덕현 대표는 정통 학구파라 할 수 있다. 미대를 졸업하고 업계에서 활약하던 디자이너였던 김 대표는 2009년 직장을 그만두고 와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국내 와인스쿨을 통해 기초를 닦은 후 대학 와인발효·식음료서비스학과에서 다시 공부했다. 소믈리에 자격증도 받았다. 이후 프랑스 보르도부터 LA 나파 밸리, 호주 바로사 밸리 등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그 국가들 중 컨츄리와인은 어디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까. 의외의 답이 나온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 와인시장의 80% 정도는 자국산 와인이에요. 그만큼 와인의 품질도 높고, 소비자들도 일본 와인을 인정해주죠. 자국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또 스시와 같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일본 음식의 파트너로 세계시장에 많이 소개되어서 국제적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그에 반해 우리는 와인시장의 95% 이상이 수입 와인이에요. 국산 와인에 대한 평가도 아직은 낮은 편이고요.”
국산 와인이 외산과 경쟁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높은 주세(酒稅)에 있다. 수입 와인은 FTA로 인해 관세가 사라져 저가로 유통이 가능하지만, 국산 와인의 경우 ‘전통주’에 속해 높은 주세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반면에 전통주의 범주에 속한 만큼 갖게 되는 장점이 있다. 바로 온라인 판매의 허용이다. 그동안 전통주는 우체국 등 제한된 곳에서만 온라인 판매가 가능했다. 하지만 국세청 고시 및 주세사무처리규정 개정안이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온라인 판매가 허용됐다. 실제로 컨츄리와인 역시 포털 쇼핑몰을 통해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면서 우리 와인의 주 고객층이 많이 낮아졌어요. 그간 와서 사가시거나 주문해주시는 분들의 연령은 40~50대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온라인 판매가 시작되면서 20~30대 고객이 늘었어요. 입소문을 타서인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홍대나 강남에서 저희 와인이 식당을 통해 소개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국산 와인 깔끔한 과일 향이 특징
김 대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특징을 깔끔한 과일 향으로 정의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표적 포도 품종으로는 캠벨 얼리(Cambel Early)가 있어요. 가장 재배가 많이 되는 품종인데, 과일 향이 무척 강해요. 가볍지만 깔끔한 맛이라서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어요. 가벼운 디저트와 잘 어울린다고 평가받죠.”
국내 대표 품종인 캠벨 얼리는 수입 와인과 국산 와인 맛의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요소로 지목된다. 수입 와인에서 많이 쓰이는 품종은 카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 피노 누아(Pinot Noir), 시라(Syrah), 메를로(Merlot) 등이 있는데 캠벨보다 타닌 성분이 많아 무겁고 떫은 느낌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오히려 이런 맛의 와인 재료로는 국내에서는 포도(캠벨)보다는 산머루가 꼽힌다.
“캠벨과 산머루 와인 모두 또 하나의 특징을 갖는데 바로 단기숙성에 적합하다는 것이에요. 수입 와인에 비교하자면 갓 만들어진 와인을 즐기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에 가깝죠. 우리 와인으로 장기숙성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여러 소믈리에분들이나 와인 애호가분들과 평가를 한 결과 장기숙성엔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컨츄리와인이 1년산과 2년산만 판매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김 대표는 수입 와인에 비해 갖고 있는 경쟁력으로 안전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꼽았다. 와인 역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인 만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와이너리의 경우 첨가물에 대단히 관대한 편이에요. 특히 저가 와인일수록 그렇습니다. 와인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화방지제나 보존제를 많이 쓰죠. 우리 와인의 경우 이런 첨가물을 넣지 않으려고 멸균 작업을 별도로 진행합니다. 파스퇴르 살균법이라고도 불리는 저온 살균법으로 변질을 막고 있어요. 또 포도를 선별하는 과정에서도 철저히 선별하고요. 최종적으로 병입될 때까지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다 보니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양에도 한계가 있어요. 대량생산 방식과는 거리가 있죠. 그래도 우리의 고집을 알아주시는 애호가들이 꾸준히 찾아주셔서 자긍심을 갖고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국산 와인의 역사는?▲▲
우리가 직접 와인을 만든 기록은 찾기가 쉽지 않다. 포도를 으깨어 설탕과 소주를 부어 가양주(家釀酒)로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 공식적인 최초 와인의 재료는 아이러니하게도 포도가 아니라 사과였다. 1967년에 파라다이스 주식회사가 출시한 ‘애플와인 파라다이스’가 그것. 사과의 고장 대구에 공장을 차려놓고 12도의 사과주를 생산한 것이 시작이다.
포도주로는 1968년 주식회사 한국 산토리가 생산한 선리프트 와인·로제 와인·팸포트 와인이 꼽힌다. 이후 한국 산토리는 해태주조로 매각됐다. 1977년에는 토종 기술과 포도로 만든 ‘마주앙’(구 동양맥주·현 롯데주류)이 나오면서 한국 와인 역사에 새 장이 열린다. 1970년대에 정부가 식량 부족을 이유로 곡주보다는 과일주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쳐 한때 와인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수입 와인이 소개되면서 국내 와인의 위세는 갈수록 떨어졌다.
지독하게 더웠던 2016년 여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올해도 그 끔찍한 시간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무더위를 피해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더위의 고통에서 벗어나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은 의외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것도 책과 함께 지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들이, 알고 보면 근처 한 시간 거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북캉스’로 하루 보낼 곳을 기웃거려볼까.
*북캉스: 책을 뜻하는 영어 단어 ‘북’에 ‘바캉스’를 결합시켜 만든 신조어
책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TV, 영화 등 화려한 영상 문화와 게임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조류에 밀려 문화의 중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책이었다. 우리들에게 지금 책은 영상과 말의 과잉으로 넘쳐나는 일상을 힐링하는 촉매로서 그 역할을 되찾고 있다.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의 도서관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 속에서 일상을 힐링하는 책의 공공기능적 역할을 간파한 기업들은 너도나도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 공간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이제 젊은 시절처럼 산으로 바다로 가지 않아도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났다. 여름휴가를 떠나는 대신 도서관이나 동주민센터, 백화점 북카페, 서점 등에서 책을 읽으며 더위를 식히는 이른바 ‘북캉스’ 문화가 시니어들에게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 위치한 책 향기 그윽한 서점과 강연과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합공간의 도서관은 무더위를 식히는 도심 속 정자마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순화동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한길사 ‘순화동천’
책 좀 읽었다는 시니어들에게 인문학 중심 도서들을 주로 펴낸 한길사라는 출판사가 만들어내는 무게감은 각별하다. 그 한길사가 오랜 준비 끝에 지난 4월 말에 인문예술공간 ‘순화동천’의 문을 열었다. 한길사가 창업 초기 자리했던 서울 중구 순화동에 만들어진 순화동천은 3만여 권의 책이 즐비한 550평 규모의 공간이며 책 박물관, 갤러리, 강의실, 회의실, 서점으로 구성됐다.
한길사는 오래전부터 독자가 중심이 된 ‘책 놀이터’를 마련하고자 했으며 순화동의 ‘순화’와 노장사상에 나오는 이상향인 ‘동천’을 더해 ‘순화동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문·예술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의 ‘평화를 순례하는 유토피아’가 되겠다는 의미다.
책 박물관은 근·현대출판문화사에 빛나는 아름다운 고서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또한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어 음악과 미술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강의실과 회의실로 사용할 수 있는 4개의 공간은 각각 ‘퍼스트아트’, ‘한나 아렌트 방’, ‘윌리엄 모리스 방’, ‘플라톤 방’으로 불린다. 전시회나 출판기념회, 8~15명이 참석하는 소규모 회의, 50~70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강연을 진행할 수 있으며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는다.
아트갤러리와 한길책방은 60m에 이르는 긴 복도로 이뤄져 있다. 복도의 한쪽 벽은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이 걸린 아트갤러리로, 다른 쪽 벽은 한길사가 지난 40년 동안 펴낸 고품격 인문·예술도서가 들어찬 한길책방이다. 복도 중간에는 ‘카페뮤지엄’이 있어 커피와 함께 잠시 쉬며 책과 미술 작품을 즐길 수 있다.
◇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는 시원한 자유, 신세계 ‘별마당 도서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코엑스 안에 초대형 도서관이 있다? 사실이다. 신세계가 지난 5월 말에 문을 연 ‘별마당 도서관’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도서관’이다. 회원카드도 따로 없다. 오래 머물러도 된다. 음료를 가지고 와도 괜찮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책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자유다.
별마당 도서관은 총면적 2800㎡에 2개 층으로 구성돼 있다. 도서관 내부에는 13m 높이의 대형 서가 3개를 중심으로 소파형·계단형 등 총 200석의 의자와 책상을 배치했다. 또 은은한 간접조명을 설치해 개인 서재 분위기를 냈고, 곳곳에 콘센트와 USB 단자를 구비해 노트북과 휴대전화 충전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5만여 권의 장서와 600여 권의 잡지가 준비되어 있는데, 잡지 코너만 보면 국내 최대 규모다. 고객들의 도서 기증도 받고 있기에 집에 보관해둔 책을 기증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별마당 도서관은 대출은 불가능하며 열람만 가능하다. 또한 도난방지 장치가 없다. 도서관과 쇼핑몰 사이에 출입구가 따로 없이 사방으로 열려 있는 구조이지만, 도난경보기 등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믿는 구조다.
별마당 도서관은 문화와 휴식을 갖춘 열린 도서관을 찾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어 도서관이 지역 상권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시설이라고 판단해 만들어졌다. 별마당 도서관의 모델은 인구 5만 명의 소도시인 일본 다케오 시의 ‘다케오 시립 도서관’이다. 다케오 시립 도서관은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열린 도서관 콘셉트로 2013년에 리뉴얼한 이후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 키덜트 겨냥한 예스24 ‘홍대던전’
인터넷 서점들의 오프라인 서점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인터넷 서점들이 오프라인 거점을 주로 중고서점 중심으로 만든 것과는 달리, 예스24는 콘셉트 서점을 기획해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 서브컬처(하위문화) 복합문화공간인 ‘홍대던전’을 열었다.
홍대던전은 청소년에서 키덜트까지를 주 고객으로 하는 라이트노벨(가벼운 느낌의 장르소설)·애니메이션·게임 등 ‘서브컬처’ 맞춤문화공간을 지향한다. 5월에 문을 연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과 아래위층으로 연결돼 있다. ‘홍대던전’에는 누구나 무료로 라이트노벨을 읽을 수 있는 열람공간, 피규어와 퍼즐 등 캐릭터 상품과 코스프레 전문용품을 모아둔 판매공간, 애니메이션과 게임 속 메뉴를 모티브로 한 음식을 판매하는 매점 등이 마련되어 있다.
◇ 지적 세계로의 여행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현대카드는 ‘혁신’을 기업 이미지로 삼으면서 아날로그와의 적극적인 결합을 꾸준히 지향했다. 서울 도심의 네 곳에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세워진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는 아날로그의 대표적 콘텐츠인 책에 주목한 현대카드의 또 다른 실험이다. 공연과 문화공간 등을 통해 컬처 브랜딩의 선두주자로 각인된 현대카드에서 책을 통해 지적 브랜딩의 출발점을 잡은 것이다.
가회동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는 디자인 서적들이, 이태원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음악 관련 서적들이 있다.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책과 함께 1950년대 이후에 나온 1만여 장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LP들이 구비되어 있어서 LP를 통한 음악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 계속 업데이트하는 중이다. 신사동 ‘쿠킹 라이브러리’는 음식 관련 서적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되어 있다. 재료 카드를 사면 현장에서 요리도 가능하다고 한다. 청담동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독서를 여행과 동일하다고 여기고 1만5000여 권에 달하는 여행 관련 서적들뿐만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는 여행을 ‘일상의 경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모든 형태의 지적 활동’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 사회취약 계층과 함께하는 ‘네이버 라이브러리’
분당구 정자동의 네이버 사옥 로비에 자리한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도서관, 서점, 북카페를 결합시켜 책이 있는 공간의 장점들을 모두 경험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뒀다. 디자인과 IT에 특화된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디자인 장서 1만7000여 권, IT 장서 7000여 권, 전 세계의 전문 백과사전 1300여 권, 국내외 잡지 250여 종이 준비되어 있다. IT 기업이 운영하는 도서관이라는 특색을 살리면서 개인이 구매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비싼 디자인과 IT 분야의 책들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책을 고르기 쉽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반적인 도서관들과는 달리 ‘절대 정숙’ 문화가 아닌 대화하고 토론하는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네이버 라이브러리는 네이버의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성격을 살리기 위해 사회취약 계층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사서는 시니어들이 맡고 있으며 안에 위치한 카페는 발달장애인의 일터를 만드는 회사 베어베터와 함께 운영되며 지적장애나 자폐를 가진 청년들이 커피를 만든다.
◇ 도심 속 한옥 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청운문학도서관은 종로구에서 16번째로 만들어진 도서관이자 최초로 한옥으로 만들어진 공공 도서관이다. 지붕은 전통 방식의 수제 기와를 사용했고 담 위에 얹은 기와는 돈의문 뉴타운 지역에서 철거된 한옥의 기와 3000여 장을 가져와 사용했다. 그야말로 전통 한옥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건물이다.
청운문학도서관 1층은 한옥이며 지하는 반지하식 양옥 건물이다. 1층에서는 시, 문학 창작교실, 문화예술교육, 인문학 콘서트 등이 열린다. 지하층은 시, 소설, 수필 위주의 문학 도서를 만날 수 있는 자료실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이 있다. 또한 온돌식 독서공간도 마련되어 한옥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를 충실하게 살리고 있다. 물론 여름에는 에어컨을 통해시원하게 유지된다고 하니 냉방은 합리적인 현대기술을 이용했겠다.
도서관 같은 서점 인터파크 ‘북파크’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2, 3층 총 2000㎡ 공간에 자리 잡은 ‘북파크’는 북카페나 도서관처럼 이용할 수 있는 서점이다. 50여 개의 테이블과 200여 개의 의자, 앉아서 책 읽기가 가능한 계단 등이 마련돼 있다. 독서공간의 분위기도 다락방 스타일, 테라스 스타일, 응접실 스타일 등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또 계단 밑이나 서가 뒤 숨은 공간에서 아늑한 분위기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어린이책 코너 부근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뒹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일곱 곳이나 있다. ‘보신 책은 북박스에 넣어주시면 직원이 정리한다’는 안내문구까지 있으니, 책의 구매 여부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서점이다.
북파크는 인터파크의 과학재단인 카오스재단이 2016년 12월에 문을 열었다. 카오스재단의 설립 목적인 ‘과학의 대중화와 과학지식의 공유’ 취지에 맞춰 총 10만여 권의 보유 서적 중 절반 정도가 과학 관련 책이다. 서점 안에는 35석 규모의 다윈룸과 8석 규모의 뉴턴룸 등 모임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북파크는 이태원이나 경리단길 유명 맛집과 가깝고 공연장이 같은 건물에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 여름방학이 되면 손주 손을 잡고 다녀와도 좋겠다.
이밖에도 CJ CGV와 쉐라톤워커힐 호텔도 도서관을 만들었다. 금융계에서도 KEB 하나은행 본점인 을지로 사옥에도 도서관이 들어설 예정이고 대신증권도 명동 사옥에 도서관을 열었다. 기업들이 앞다퉈 사회공헌 차원에서 도서관을 개장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과거에는 한 노인의 죽음을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에 비유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식의 총량이 매일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막대하게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인생 경륜을 어설프게 드러내는 것은 자칫 뭘 모르면서 꼰대 노릇하는 걸로 비치기 십상인 세상이 됐다.
나이 듦에 따라 정신과 지식의 세계도 변모하기에 품위 있게 늙는 일은 중요하다. 문화지성인으로서의 비움과 채움이 필요한 시니어에게 도서관은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이자 여행지다. 다시 찾아온 무더운 여름, 어디를 갈까 고민 말고 가까운 도서관에 놀러 가보자.
동네에 먹자골목이 있다. 길 좌우로 200m 정도 각종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잘되는 집은 손님들이 줄을 서지만, 안 되는 집은 파리만 날리다가 몇 달 못 가 없어지고 다시 다른 업종이 들어오는 일이 반복된다. 한 달에도 몇몇 점포들이 문을 닫고 새로운 음식점이 문을 연다. 개업 화환들이 화려하게 입구를 장식한 개업 음식점들을 보면 희망이 가득해 보이지만, 상례로 보아 몇 달 못 가 또 문 닫을 거라는 예상이 되면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새로 문을 연 호프집 옆에 얼마 안 가 새 호프집이 생긴다거나, 치킨집이 있는데 또 치킨집이 생기면 둘 중 한 집은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지금의 자영업 시장은 인테리어 업자만 돈을 버는 구조다.
강남의 잘 꾸며놓은 고깃집에 갔었다. 손님보다 종업원 수가 더 많아 보였다. 2층이 경관이 좋아 2층으로 가려고 했더니 2층은 서빙이 안 된다며 그냥 1층에 앉으라고 했다. 넓은 1층에도 손님이 앉아 있는 곳은 몇 테이블 안 되었다. 월세는 꼬박 내야 하는데 이렇게 장사가 안 되니 주인은 속이 바짝바짝 탈 것이다.
손님이 많기로 소문난 강남 대형 쇼핑몰은 젊은이들이나 몰려가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시니어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요리하는 음식점들도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주 가는 쇼핑몰인데도 이런 음식점들이 있다는 걸 몰랐으니 장사가 잘될 리 없다. 시설은 깨끗하게 잘해놓았으나 한창 저녁을 먹을 시간인데도 손님이 얼마 안 되었다.
잠실의 한 삼계탕 집은 한때 손님이 벅적였는데 최근 문을 닫았다. 삼계탕 한 그릇에 1만5000원을 받아 돈을 좀 버는가 했더니 적자라며 문을 닫은 것이다. 겉으로는 손님이 많아 남는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큰 시설을 유지하자니 관리비에 인건비에 카드 수수료까지 떼이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계탕 집을 정리하고 아파트 단지 안에 김밥 등을 파는 분식집을 차렸는데 현금 장사에 손님이 많아 오히려 낫더란다. 음식 값이 싸서 손님들이 부담 없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은 권리금을 내고 점포를 확보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봐야 성공 확률은 10% 정도다. 20~30%는 문도 못 닫고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고, 나머지는 적자란다. 외식 산업 성공률은 매우 낮다. 잘되는 업소라 해도 끝까지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줄을 서다가도 손님들의 취향이 바뀌어 어느 순간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여기에 건물주가 집세를 올리거나 자기가 운영한다며 내보내는 일도 발생한다.
건물주들은 가만히 있어도 해마다 건물 값이 오른다. 현재 금리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집세도 내려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장사가 잘되면 집세를 올리는 건물주도 많다. 자영업자들은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를 쉬지 않고 일한다. 그래야 겨우 살아남기 때문이다. 반면 건물주들은 골프나 치러 다니면서 앉아서 거저 돈을 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세상살이가 쉽다. 하루 종일 일해도 남는 게 없는 자영업자들에 비하면 뭔가 불공평해 보이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이런 정도의 현상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모순은 모순이다. 공평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 보인다. 새 정부가 이런 문제들을 직시하고 합리적인 조정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필자의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신다. 그런 엄마 덕에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엄마는 참 바빴다. 네 명의 아이들에게 예쁜 옷 찾아 입히고 머리 빗기면서 3단 찬합 가득 김밥을 싸야 했고 그 와중에 화장도 해야 했으니 출발도 하기 전에 엄마 목소리가 커지기 일쑤였다. 4형제 중 누구 하나가 엄마 주먹맛을 본 후에야 우리는 집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엄마는 현관 앞에서 뒷짐 진 채 서 있던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아버지는 가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힘든데 왜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녔냐고 물으니 자식들이 넓은 세상 많이 보길 원했다고 하셨다.
“수덕사에선 너 때문에 살아났어.”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내셨다. 필자가 일곱 살 무렵이었는데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 머리가 아프다고 우는 바람에 가족들이 연탄가스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열 번도 더 들었다. 여행 중에 일어난 가장 큰 사고여서 여행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나왔다. 자연농원에서 찍은 사진을 앞에 놓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도망치듯이 한국을 떠난 이야기가 펼쳐졌다. 주차장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을 보니 그 당시 우울한 집안 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는 누가 더 못생기게 나왔는지를 보며 깔깔댔다. 식탁에 앉아 여행에 관한 이야기보따리가 한 번 풀리면 수다가 멈출 줄 몰랐다.
엄마와 단둘이 일본 여행
오랜만에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몇 달 전에 봤을 때보다 등이 굽고, 키가 한 뼘이나 작아져 있었다. 80세가 넘은 티가 확 났다. 관광버스를 타고 남해에 다녀오셨단다. 엄마는 오랜만에 버스 타는 일이 얼마나 좋았던지 도착해서도 버스에서 내리기 싫었다고 했다. 버스 타는 게 그렇게 좋냐고 퉁명스럽게 내뱉곤 미안한 마음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랑 둘이 여행 갈래?”
“좋~지.”
엄마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혼자 인천공항까지 올 수 있냐고 물으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냐며 나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일본은 몇 번 다녀와 별로라는 엄마는 미야자키를 맘에 들어 했다. 태평양 푸른 바다가 인상적인 우도신궁에서 소원을 빌고, 시원한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노천 온천도 즐겼다. 회전초밥집에 가서 싱싱한 초밥을 먹은 뒤에는 동물원 구경을 했다. 아주 가까이서 기린과 눈이 마주친 엄마는 깜짝 놀라 뒷걸음치더니 쪼그리고 앉아서 비둘기 모이를 주는 재미에 푹 빠졌다.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저녁이 되자 가방에서 주섬주섬 초록색 표지의 낡은 수첩을 꺼냈다. 엄마가 메모를 열심히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행 수첩이 따로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뭐라고 쓸 건데?”
엄마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별거 없어. 며칠에 뭘 했고 뭘 먹었나 정도 쓰는 거야. 쓸 때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 읽어보면 정말 재밌어.”
엄마는 수첩에 ‘산본 광장동 공항버스 정류장 오전 6시, 일본 공항 11시 30분 도착’, ‘쇼핑몰 구경하고 7시 회전초밥 저녁식사’와 같은 사소한 일정들을 적어 내려갔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여행의 기억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기록한다는 엄마의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중국 여행, 싱가포르 여행, 캐나다 여행, 제주 여행, 울릉도 여행. 수첩엔 여행의 기록이 끝이 없었다. 대부분 아버지와 둘이서 한 여행이었다. 지금은 걷는 게 편치 않아 엄마와 함께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건강이 안타까웠다. 그 많은 여행 중에 필자가 동행한 여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결혼해서 내 자식, 내 식구 돌보느라 엄마, 아버지를 잊고 살았던 모양이다.
“엄마, 언제부터 이런 걸 쓰고 있었던 거야? 너무 멋진걸.”
필자의 칭찬에 엄마는 신이 났다. 수첩에 기록해놓은 여행지를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밴쿠버에 사는 큰딸 집에서 보낸 두 달 동안의 기록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 집에서 먹은 삼시 세끼, 교회 가서 헌금하라고 사위가 쥐어준 빳빳한 달러, 주변 지인들의 식사 초대, 블루베리 따러 갔던 일 등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엄마는 딸이 생각날 때마다 그 수첩을 펼쳐보았다고 말했다.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 코끝이 시큰해졌다.
필자는 부모님과 자주 만나 식사를 하고 간단한 드라이브를 즐기긴 했지만, 잠깐 만나고 헤어졌기 때문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행 와서 엄마와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를 참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느라 관광은 뒷전이 되어버렸지만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엄마와의 여행은, 여행이 목적이기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이 곧 여행이란 걸 깨닫게 해주었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행복의 최고 활동은 여행이라 하였다. 사람은 뭔가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데, 여행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 옷을 산 얘기는 몇 년째 할 수 없지만, 몇 년 전 다녀온 여행에 대해서는 지금 이야기해도 즐겁다. 새로운 곳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같이 간 사람들과 말하고 노는 것도 즐겁지만, 여행은 다녀와서도 말할 거리가 있기 때문에 행복감이 높아진다.
행복하지 않은 인생은 재미없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을 텐데 여행을 통해 행복감을 높일 수 있다면 당장 가방을 싸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가족이라도 각자 자신의 삶을 사느라 서로를 돌아볼 새가 없다. 한집에 살아도 한상에 둘러 밥 먹는 일이 뜸해지니 별 할 말도 없다. 이럴 때 가족여행을 다녀온다면,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즐기는 재미는 물론이려니와 다녀와서도 식탁 위 대화가 풍성해질 것이다. 엄마가 쾌활하고 건강하게 사는 건 여행을 즐기기 때문인 것 같다.
필자는 엄마가 건강한 심장과 다리로 여행하고 살면서 행복한 감정을 늘 간직할 수 있기를 빈다.
여기저기 꽃이 만발한 봄날이다. 가고 싶은 데 있으면 얘기해보라는 필자의 말에 엄마는 미리 준비라도 해둔 듯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참 멋지던데”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