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가 떠오르는 계절 여름! 그러나 막상 바닷가로 피서를 떠나면 시원함이 아닌 태양 아래 모래사장의 뜨거움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변에서 에어컨을 켤 수도 없는 노릇. ‘시원하게 바다 구경을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스친다면, 코엑스 아쿠아리움(서울시 강남구 영동대로 513)으로 나들이를 떠나보자. 대형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바라보면 바닷속으로 들어온 듯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린 손주와 함께라면 더욱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매표소에 도착하면 바닥에서 천장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게이트 수조 속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이곳부터 시작해 총 16개의 코스로 꾸며진 테마 존을 둘러보는 데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순서에 따라 걷다 보면 각양각색의 해양생물뿐만 아니라 육지 동물 등 4만여 마리의 생물을 만나게 된다.
코스 초반에는 피라미, 송사리, 어름치 등 정겨운 우리 물고기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네 번째 코스인 ‘한국의 정원’에서는 경복궁 내 향정원을 축소해 옮겨놓은 비단연못이 눈에 띈다. 한국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코스들을 지나면 현대식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상상 물고기 나라’가 나온다. 전화박스, 냉장고, 정수기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곳곳에 물고기들이 담겨 친근하면서도 흥미롭다. 닥터피쉬(가라루파)가 사는 욕조 모양 수족관에 손을 넣어 물고기와 접촉해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그다음 코스 ‘아마조니아 월드’ 입구로 들어서면 다소 습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마존 강 일대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이 살고 있어 열대우림과 비슷한 생태 환경을 유지한다. 세계에서 제일 큰 민물고기(3~5m)인 피라루쿠를 비롯해 식인 물고기 피라냐, 이집트 과일박쥐, 수달, 비버, 악어, 거북 등을 볼 수 있는 다채로운 구간이다.
보고 만지며 교감하는 오감만족 나들이
아이들과 함께라면 ‘마린터치 연구소’에 꼭 들러보자. 조개, 불가사리, 멍게, 해삼 등 직접 수중생물을 관찰하고 만져볼 수 있는 쌍방향 체험이 가능하다. 아울러 아쿠아리움의 전반적인 생물 배양 및 양육 기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공간이다.
포토타임을 즐기기 좋은 코스로는 ‘산호 미술관’을 꼽을 수 있다. 액자 형태의 수족관에 화려한 색상의 산호와 열대어들이 어우러져 멋진 그림이 완성된다. 그다음 코스인 ‘바다왕국’ 역시 많은 관람객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곳이다. 상어, 바다거북, 가오리 등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대형 어류들이 유유히 위엄을 과시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해저터널’, ‘펭귄들의 꿈동산’ 등 남녀노소에게 인기 있는 테마 코스가 이어진다.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프로그램 일정이다. 정어리 공연, 펭귄 먹이주기, 상어극장 영화상영 등 다양한 전시 및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코엑스 아쿠아리움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자세한 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모든 코스를 둘러보고 나면 선물상점이 나온다. 손주가 나들이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귀여운 물고기 인형 하나 선물해보는 것도 좋겠다.
통상 어딜 가나 꼭 들러봐야 할 곳이란 게 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그런 곳이 마음에 든 적이 별로 없고 내 마음대로의 코스를 다니곤 했다.오키나와 여행 중 츄라우미 수족관((沖縄美ら海水族館)은 꼭 들러보는 코스라고들 하는데 이곳 역시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아이들이나 즐거운 곳 같았다. 그러나 청정한 오키나와 바다를 보여주는 아시아 최대의 수족관이라 하며 꼭 들러야 한다 해서 할 수 없이라도 가보기로 했다.
도착했을 때는 간간히 뿌리는 비와 함께 습한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족관은 총 4층으로 되어있는데 그 방대함이란 가히 어마어마하다. 아주 오래전 홍콩에서도 이런 수족관엘 갔던 적이 있는데 내부가 거의 흡사했다. 외국인 여행객은 물론이고 일본인 여행객들도 꽤 많이 보러 온다는 명소라고 한다. 오키나와현이 일본에서는 우리의 제주도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8m의 고래상어나 쥐가오리, 산호초나 심해의 생물들의 풍부한 어종과 신비한 풍경들을 생생하다. 물론 야외에서는 다이내믹한 돌고래쇼가 있는데 환호를 지르고 박수를 치며 관람하는 여행객들이 몰려있다. 시원한 실내에서 바닷속 풍경에 더위를 식혔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흐리고 후두둑 빗방울을 뿌린다. 수족관 건물 아래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가면 에메랄드 비치가 있었다. 수질이 AA등급으로 코발트블루의 바다 빛깔로 유명하다고 한다. 구름이 덮이며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고 해변 쪽으로 오는 여행자들도 별로 없다. 인적 드문 해변을 조용히 한 번 둘러본다.
어차피 기왕 왔으니 샅샅이 둘러보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건너편 쪽에 있는 해양박물관과, 그 아래쪽에 민속촌처럼 생긴 아주 오래된 옛 마을이 있었다. 여행자들이 거의 와 보지 않아서 관리하는 직원들이 한가로이 있다가 반가이 맞이한다. 어릴 적 읽었던 일본소설이 떠오르던 풍경들이다. 높은 기온과 습도에도 추억어린 듯한 마을을 둘러보니 지친 마음을 상쇄해 주는 듯 하다.
모두 돌아보고 나오니 츄라우미의 바다와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이렇게도 후텁지근하고 짜증유발의 날씨는 지금도 기억난다. 고온다습으로 미칠 것 같았던 날씨였다. 어떤 계절이나 날씨에도 불구하고 상관없이 여행했었는데 이젠 인내심이 부족해진 건지 요즘의 여행조건에 계절과 날씨를 빠뜨릴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다녀오고 나니 좀 더 잘 참고 찬찬히 살피며 다녀보고 사진도 잘 좀 담을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여행이란 가끔씩 이렇게 일상에서 떠올리며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기억으로 또 하루가 쌓여가는 것이 아닐지.
‘코이의 법칙’이 있다. 주변 환경이나 생각하는 크기에 따라 그 결과치가 크게 달라진다는 내용이다. ‘코이’는 물고기의 이름이다. 이 물고기는 자라는 환경에 따라 몸체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데서 법칙을 만들었다. 코이는 자라는 환경에 따라 성장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잉어, 금붕어 등도 주어진 여건에 따라 몸체의 크기가 다소 달라지기는 하여도 코이는 변화의 정도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예의 물고기, 코이를 작은 어항에 넣어 기르면 어항 크기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길이 정도인 5~8cm로 자라 더 크지 않는다. 작은 어항에 넣고 관상어로 키울 수 있는 이유다. 대형 수족관이나 강물에 방류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길이가 90~120cm까지 엄청 크게 자란다. 주변 환경에 맞게 자기 자신을 변신한다.
이런 생태변화에서 ‘코이의 법칙’이 만들어졌다. 우리의 삶은 생각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나타낸다. 필자는 이러한 환경에 맞게 대응하는 자세를 ‘용도변경’이라 이르고 있다. 환경에 맞게 자기의 역할을 바꾸는 일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코이가 작은 어항에서는 그 어항에 어울리는 적정한 크기로 자라고 더 이상 성장을 멈추듯이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은 코이처럼 몸체의 길이를 변신할 수는 없어도 행동이나 생각은 바꿀 수 있다. ‘큰 꿈을 가지라!’나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馬)은 제주로 보내라’도 같은 맥락이다. 큰물에서 놀아야 큰 사람이 된다고 했다. ‘개천에서 용 났다’도 ‘코이의 법칙’을 인정한 말이다. 더욱 큰 뜻을 품을 때 미래는 달라진다.
후반생을 준비하거나 은퇴생활을 하는 시니어가 활기찬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는 근간으로 코이의 법칙을 적용해보면 좋지 싶다. 과거에 매달려 미래를 설계하지 못한다면 성장이 멈춘 산송장이나 진배없기에 바뀐 환경에 맞게 변신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인생이막의 삶은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간다면 삶의 무게 역시 가벼워지고 큰 꿈을 꾸고 도전한다면 보람 있는 후반생을 보내게 된다. 월트 디즈니는 “당신이 그것을 꿈꿀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할 수 있다”라 설파했다. 과연 우리는 꿈을 가지고 있을까? 삼성의료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성인 남녀 86%가 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대충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삶에서 생업이나 가족을 위해서 전력 질주함으로써 자기의 인생을 챙기는 데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인생일막에서 우리 삶의 기준은 오로지 가족이었고 돈, 일, 출세 등 사회적 성공에 초점을 맞췄다. 자기의 인생은 늘 뒷전이었다. 하고 싶은 일도 우선 순위가 뒤로 밀렸다. 근래에 들어서 평균수명과 기대수명 그리고 건강나이도 크게 늘어나 하는 일이 없이 살아간다는 자체가 고통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정년퇴직하고도 살아가야 할 시간이 30~50년으로 너무 길어서다. 장수시대에 가장 큰 고통은 돈이 없이 오래 살거나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보다 하릴없이 오래 사는 것이라 한다. 즉 무료(無聊)한 삶은 고통이고 불행이라는 점이다. 이 고통에 직면하지 않기 위하여 새로운 꿈을 가져야 한다. 생업으로 뒷전에 미뤄두었던 하고 싶은 꿈을 끄집어 내야 한다. 이제는 자기인생을 살아야 할 차례다. 자아실현을 이뤄야 한다. ‘욜로(YOLO)’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You only live once!”의 각 단어 머리 글자를 딴 말이다. “한 번뿐인 인생 즐기자!” 자기 인생을 위하여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자는 뜻이고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생각의 크기에 따라, 무엇을 꿈꾸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코이의 법칙” 적용이다. 액티브 시니어로 거듭나기 위하여 놓여진 환경에 맞게 변하는 코이가 주는 교훈을 되새길 필요성이 주목받는 시대를 산다. 꿈이 없다면 이제 새로운 꿈을 꿀 차례다. 인생이막 무대를 빛나게 하는 자아실현이라는 인생 최상위 욕구를 성취하기 위하여 새로운 꿈을 꾸자. 꿈의 성취는 꿈꾸는 자의 몫이다. 코이의 법칙, 액티브 시니어로 가는 근간이다.
전국에 걸쳐 수많은 관람시설이 있다.
주로 실내 시설인 전시관, 박물관, 생태관, 환경관, 수족관 등이 있고 야외시설로는 식물원, 수목원, 생태원, 동물원 등이 있다. 이런 관람시설은 사립, 공립, 국립시설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 공립시설이 가장 많다. 요즘에는 특별한 주제를 특화한 사립시설도 많이 생긴다. 국립시설은 공립이나 사립시설에 비해 현저히 시설개소가 적다. 시설은 몇 개 안되지만 대부분의 국립시설은 공립이나 사립시설에 비해 그 규모가 매우 크다. 규모만큼이나 사업비가 많이 들어간다. 국립시설은 말 그대로 국가에서 사업비를 부담할뿐더러 대부분 입장료가 무료이거나 아주 저렴해서 관리 운영비도 국가에서 부담한다. 국가에서 부담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국민세금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립시설은 사립과 달리 영업이익을 추구하는 시설이 아니다. 공익성 관점에서 봤을 때 그 가치가 충분하다면 세금을 써서 건립할 당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교육적이라든가, 보존이라는가, 혹은 미래를 위한 국가적 투자의 당위성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건립이유가 된다.
서천에 국립생태원이 있다. 당초 갯벌을 매립해서 산업단지를 조성하려고 하다가 갯벌매립을 포기하고 대안사업으로 국립생태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서천까지 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이라는 시설의 위상을 잘 아는 관람객들이 큰 기대를 하고 이곳을 찾아간다. 서울에서 최소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일단 주차장에 도착하면 매표를 하고 코끼리 열차를 타야할지 그냥 걸어가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코끼리 열차를 타도 매표소에서 그리 멀지않은 방문자센터까지만 갈 수 있고 그 다음부터 주 전시시설인 에코리움 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봄가을 날씨가 좋은 때는 매표소에서 에코리움까지 산책하듯이 걷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습지를 채운 억새와 갈대를 보는 멋이 있다. 그러나 한여름에 매표소에서 에코리움 입구까지 걷는 것은 힘들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도 없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리면 피할 곳도 없다. 겨울에는 더 심각하다. 허허벌판에 몰아치는 바람을 마주하고 걸어야한다. 몸이 좀 불편한 사람은 이곳을 방문하기 곤란하다.
그런데 에코리움 내부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5대 기후관을 주제로 다섯개 동으로 이루어진 전시시설은 각 기후대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식물과 동물, 어류등을 전시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열대관에서부터 과연 이곳이 국립시설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열대관을 들어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하나는 계단으로 내려가서 멋진 식물 사이로 걸으며 열대 밀림을 느끼는 것이다. 폭포도 있고 어류도 볼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계단을 오르면 구름다리를 건너며 밀림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문제는 보행이 불편한 사람은 이곳 열대림을 재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람객은 짧은 우회길로 다음 코스로 바로 이동하게 되어있다. 국립시설에서 장애인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립생태원은 현상공모로 설계 업체를 선정했고 국내에서 내놓으라하는 건축사사무소에서 당선되어 설계를 진행했다. 설계도 문제지만 선정에 참여한 심사위원들도 이런 중대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니 어이가 없다.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세금을 할인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세금을 사용한 시설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비단 국립시설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각 분야에서 우리는 약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하다. 그러나 언젠가 약자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시간문제가 아닌가. 고령자가 된다는 것은 곧 약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 박원식 소설가
항구에 닻을 내린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그러자고 배를 만든 게 아니다. 항해에 나선 배라야 배답다. 거친 파랑을 헤치고, 멀거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배는 인생을 닮았다. 모험이나 도발이 없는 삶이란 수족관처럼 진부하지 않던가. 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살았던 이기순(52)씨가 남편 이병철(57)씨의 손을 잡아끌어 시골로 들어간 건 모험적 항진이었다. 하지만 애석하다. 이기순씨의 시골살이는 암초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대해를 표류 중이다. 취재 섭외를 위해 통화를 할 때, 이기순씨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겸사(謙辭)였다.
“남들은 그럴싸하게 바라보지만, 사실 속사정은 그게 아니에요. 아마도 저희 부부의 현실은 실패 사례로 더 어울릴 거예요. 그냥 차나 한 잔 드시고 간다는 기분으로 오세요.”
이기순씨는 오랫동안 암벽 등반을 즐겼다. 휴일이면 쪼르르 산으로 달려가 잔나비처럼 바위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추락사고를 당해 온몸에 부상을 입었다. 이후 그녀는 지금까지 진통제를 달고 산다. 이 불행한 사고는 용케도 시골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기 좋은 시골에 살며 건강을 돋우자는 착상을 했던 거다. 그즈음 중소기업 상무이사였던 남편 이기철씨는 명퇴의 강박감에 시달리며 전전긍긍 활로를 모색하던 중이었다. 이 역시 도시 탈출의 배경이 되었다. 말하자면 부부가 의기투합했던 것. 까짓것, 우리 시골로 가서 새로 시작합시다! 이기순씨가 앞장서 선창을 했다. 그래그래, 그러세! 남편이 후렴을 읊으며 선선히 뒤를 받쳤다. 그게 4년 전의 일이었다지.
시골 살림을 결단하며 꿈꾸고 그린 게 많았을 게다. 우선은 볕이 잘 드는 남향 터를 잡아야 할 테고, 폼 나게 수려한 전원주택을 지어야 하고, 철따라 꽃이 피어 요요하게 속삭일 정원을 꾸며야 하며, 달빛과 별빛이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밤에 부부 둘이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일 만한 정자를 짓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생활이라는 게 흔히 돈이라는 요물의 농간에 휘둘리게 마련인데, 이들 부부도 자금이 넉넉하질 않아 두통을 앓았다. 그래서 소득을 흐벅지게 올릴 수 있는 방책을 찾았다. 그 결과로 시작한 게 오이농사였다. 이들이 사는 천안시 병천면은 오이의 최대 주산지. 재배 기술도, 유통 루트도 탄탄한 지역이다. 부부는 2000평에 달하는 농지에 오이를 재배하는 것으로 시골생활의 시동을 걸었다. 농토는 임대를 했다. 그 위에 설치된 시설 하우스는 매입을 했다. 거창한 시발이었다. ‘가브리엘 농장’이라는 팻말도 새겨 걸었다. 하지만 업무에 바쁜 행운의 여신은 그들에게 사소한 윙크조차 보내주질 않았다. 첫해는 물론 둘째 해, 셋째 해까지 내리 실패를 보고 말았다. 이기순씨의 얘기를 들어볼까.
“농사라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어요. 안간힘을 다해 노력해도 매년 결과는 참담했어요. 기술력 부족으로 생산량이 저조해 낭패를 보기도 했고, 풍작일 경우에도 가격폭락으로 적자가 크게 났어요. 칼자루를 쥔 중도매인들의 횡포에 당하기도 했고요. 갖고 있던 돈을 모두 까먹었고, 빚이 늘어 파산지경에 몰렸어요. 그래도 쌀독에 쌀은 떨어지진 않았어요(웃음). 예산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친정엄마가 쌀을 보내주셔서….”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게 원예농업이죠. 미리 사전 교육을 받진 않았나요? 남의 농장에서 일단 실력을 길렀다거나….”
“별다른 준비 없이 무작정 뛰어들다시피 했어요. 일단 일을 저지르자, 뭐 잘되겠지, 하는 기분으로.”
“저런! 환상적인 귀농이었던 거예요?”
“다분히 그런 면이 있었죠. 귀촌이나 귀농을 하려는 분들에게 요즘 제가 강조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낭만적인 생각으로 시골에 들어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산이 좋다고 무작정 산골로 가고, 바다가 좋다고 해변으로 귀촌하는 식의 출발은 극히 위험해서죠. 사실 저희 부부가 단순한 환상으로 귀농을 할 만큼의 바보들은 아니에요. 충분치는 않았을망정 나름대로 사전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런데도 그게 농촌 현실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변수와 악재들이 들이닥치더라고요.”
“차라리 초기에 발을 빼는 게 현명했을까?”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었기에 포기 같은 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어요. 내년엔 좋아지겠지, 차차 타산을 맞출 수 있겠지, 그런 희망으로 더욱 공을 들이고 땀을 쏟았어요. 농사에 어느 정도 물정이 트이면서 우환 중에도 희망이 솟구치곤 했죠. 내 손길을 통해 건강하게 잘 커가는 작물들을 바라보는 경이로움도 견딜 수 있는 힘이었어요. 폭염에 시들시들 말라가는 오이를 볼 때는, 마치 어린 자식이 병상에서 가쁜 숨을 내쉬는 것 같아 너무도 괴로웠지만, 그런 경험조차 농사에 애착을 갖게 하는 긍정적 체험이었어요. 정작 후회는 다른 문제에서 왔어요. 마을 원주민들과 어울리는 일이 참 힘들었거든요. 이른바 텃세라는 것 말예요. 이곳은 남편의 고향이지만 한동안 이방인 취급을 받았어요.”
마을 원주민들의 텃세를 견뎌내는 일이 농사보다 더 어려워
전통적으로 유목사회와 달리 농경사회 구성원들은 내 땅, 내 영토에 대한 질긴 집착을 가지고 살아왔다. 공동체 의식도 발달했다. 외지인들이 끼어드는 게 달가울 리 없다. 여기에서 ‘텃세’ 문제가 야기되지만, 토박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전원생활자들의 무신경하고 비사교적인 위세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무례를 범하지만 않으면 텃세에 걸려들 일이 없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이기순씨 내외가 겪은 텃세는 워낙 자심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시골 인심이 예전과 다르다는 항간의 논평을 몸으로 직접 체험해 확인한 모양이다. 삶이라는 생존의 들판치고 어딘들 전장(戰場) 아닌 곳이 있을까. 코피 터지는 경쟁의 난리 블루스, 그게 세태이지 않던가. 이기순씨는 시골의 텃세라는 걸, 허공에 미만한 공기처럼, 세상살이에 당연히 붙어 다닐 수밖에 없는 기본 조건으로 치부하기로 한 것 같다.
“차라리 마을을 떠날까, 그런 궁리를 할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텃세에 부대꼈지만 그냥 감수하기로 했어요. 어차피 원주민들과 저희의 정서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서로 살갑게 어울려 지내는 게 힘들다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러자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흙이나 작물들은 텃세를 부리는 법이 없죠?”
“저나 남편이나 농사라는 건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흙이 지닌 생명력과 식물들의 정직한 성장에 곧바로 매료됐어요. 아아, 흙 냄새, 작물들의 숨결은 또 얼마나 좋은지…. 해마다 농사에 연패를 해 실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땅을 상대로 한 농사라는 게 신성한 직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이상해요. 당신은 지난해 천안시가 선정한 우수농민이지만 사실은 곤경에 처했다는 거!”
“농촌의 현실을 보면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흔해요. 수억대 소득을 올리는 농가들이 매스컴에 등장하지만, 매출과 실소득은 크게 다르죠. 저희도 연간 매출이 1억쯤 되지만 갖가지 투자비용을 제하면 오히려 적자가 나더라고요. 적자가 해마다 거듭되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고, 이런 식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예요.”
“어이하나?”
“혹독한 공부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좌절도 많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어느덧 단련이 되고 나름의 내공도 생긴 거 같아요. 이젠 비로소 길이 보여요. 저비용 고효율 농업으로 가야 하는데, 대안이 보이고 있어요. 일단은 작물을 다양화할 예정이에요.”
기죽을 게 뭐람, 괜찮아, 괜찮다구!
이기순씨 내외는 오이 하우스 안에서 산다. 7평짜리 컨테이너에서 살림을 한다. 이 옹색한 정경을 목도한 친정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친구들이 쯧쯧 혀를 차지만, 그녀는 이마저도 오히려 복되지 아니한가, 하는 투로 담담하다. 애당초 근사한 집을 짓기 위해 대지 150평을 장만해두었으나 빚잔치 통에 순간에 날아갔다. 그 바람에 컨테이너에서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이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을 냉큼 받아들이기를 이미 오래전에 했다. 싱긋 웃는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시라.
“‘난 말이야, 2000평 정원에 7평짜리 원룸에 살아. 이 정도면 나쁜 건 아니지 않니?’ 제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그래요. 남들에겐 철딱서니 없는 허세처럼 들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컨테이너에 산다고 해서 기죽을 게 뭐람. 괜찮아, 괜찮다구! 그렇게 제가 저에게 들려주며 용기를 잃지 않으려 노력해요. 지금의 형편에서 방바닥에 등 붙이고 부부가 함께 따뜻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만도 큰 다행 아니겠어요?”
“왜 아니겠어요? 참새는 옷 한 벌 입은 게 없이 나뭇가지 한 줌을 움켜쥐고 엄동의 밤을 무사히 지내죠. 최소한의 의식주만으로도 기꺼이 견딘다는 건 일종의 절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에 살 땐 제가 돈을 펑펑 썼어요. 해외여행이며 쇼핑이며,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해봤어요. 그래서 지금의 어려운 형편에 정신까지 약해지진 않아요. 남편 역시 강인하고 똑똑한 사람이라 끄떡없어요. 돈 때문에 허둥지둥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안쓰럽지만, 우리 부지런히 뛰어 멋지게 농장을 살려내자고 등 두들겨 격려하죠. 남편은 원래 영어와 일본어를 잘하는데요, 요즘도 잠들기 전에 꼭 외국어 공부를 해요. 나중에 외국인들이 우리 농장에 견학 올 것을 대비해서죠.”
“산에서 당한 사고로 온몸을 다쳤다 했죠? 지금은 매우 건강해보여요. 그건 귀농 덕분일까요?”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땐 걸음새조차 나사 풀린 바퀴처럼 휘청거렸어요. 그러다가 농사일에 매달리는 사이 건강이 크게 좋아졌죠. 농사를 노동이 아니라 운동으로 여긴 덕분이겠죠. 정신은 더욱 건강하게 깨어난 것 같아요. 경제 면에서는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감성이나 정서는 더 밝고 풍부하게 성숙하는 기분? 그런 걸 느껴요. 하우스 안의 작물들, 바깥으로 펼쳐지는 자연 풍경이 자주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켜요. 저의 어릴 적 꿈은 문학이었답니다. 요즘도 좋은 글을 찾아 읽거나, 뭔가 느낌이 떠오르면 즉시 메모장을 꺼내 글을 써요. 주로 시골생활에 관한 단상이지만, 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죠. 이 역시 귀농이 준 행복이라 여겨요. 이쯤이면 괜찮게 사는 거 아녜요(웃음)?”
“사람이 농사를 통해 작물을 기르지만, 동시에 농사가 사람을 키우기도 하는 거예요?”
“당연하지 않겠어요? 흔히들 돈에 사로잡혀 살지만, 남에게 돈 빌리지 않을 정도만 되면 잘사는 것일 테고, 더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선택한 일에 만족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을 텐데, 저는 농사에 만족해요. 흙에 뜨거운 애정을 느껴요. 비록 아직은 고전하고 있지만,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크는 나무가 있겠어요?”
가시밭길을 거치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꽃길이 있나? 파도를 타넘지 않고서 바다를 건널 수 있던가? 이기순이라는 이름의 선박은 암초를 만나 표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잠정적인 조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이날도 역시 쾌청하고 한낮은 31도의 무더운 날씨였다. 미리 알아봤던 여행 내내 흐리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틀려서 너무나 고마웠다. 아침식사는 일본 가정식을 택했다. 김치 없이 하는 식사가 심심했지만 그래도 깔끔한 아침상을 받았다. 실이 죽죽 늘어나는 낫또를 보고 손녀가 거미줄 같다며 웃었다.
스케줄은 아기들을 위해 ‘해양 박 공원’에서 ‘오키짱 쇼(돌고래 쇼)’를 관람하고 ‘추라우미’ 수족관에서 커다란 고래상어를 보기로 했다. 사실 필자는 돌고래 쇼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에서 살아야 할 돌고래를 훈련시켜 사람들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게 마음 아프다. 돌고래는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이런 쇼는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아기들이 좋아한다니 어쩔 수 없이 관람하기로 했다.
‘해양 박 공원’에 가는 동안 점심시간이 되어 북부에 있는 100년 전통을 가진 음식점 ‘우후아(대가)’에 들렀다. 길 옆 숲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이 음식점은 규모가 매우 컸으며 마당이나 안쪽 어디에든 크고 작은 모습의 다양한 ‘시사’가 이곳을 지키겠다는 듯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구(흑돼지)구이 정식, 아구 우동, 돈가스 정식 등의 메뉴가 있는 정통 일본식 집이었다. 검은색 목조건물인 이 음식점은 마룻바닥이 넓은 대청으로 되어 있었고 2층으로 오르내리는 좁은 나무 계단이 아기자기했다.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다다미방도 흥미로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폭포가 흘러내리며 자연의 운치를 물씬 풍기는 일본식 구조의 집이었다. 이제까지 깔끔한 휴양지만 보았다면 이곳은 일본의 체취가 느껴지는 정감 넘치는 곳이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우후아’에서 점심을 마치고 ‘추라우미’ 수족관이 있는 ‘해양박 공원’으로 갔는데 규모가 엄청났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 속에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걷느라 땀깨나 흘렸다. 평일인데도 우리나라 제주도 같은 관광지여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도 많았다. 돌고래가 안쓰럽긴 해도 손녀 손자를 안고 손뼉을 치며 쇼를 관람했다.
돌고래 쇼가 끝난 후 추라우미 수족관에 가니 지인 한 분이 생각났다. 코엑스 아쿠아리움 부사장이신 지인은 코엑스 수족관을 직접 설계하셨는데 아쿠아리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신 분이다. 규모는 비슷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이 수만 마리 정어리 떼의 군무가 멋지다면 이곳 ‘추라우미’는 거대한 고래상어가 놀라웠다.
날씨가 너무 더워 좀 지쳤을 때 저녁식사로 ‘플리퍼’라는 유명 음식점에서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해서 기운이 번쩍 났다. 역시 여행은 식도락이 빠질 수 없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우리 나이가 되면 가장 맛있는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여행 동안 손 하나 까딱 않고 맛있는 음식을 매일 먹으니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숙소에 돌아와 아기들을 재운 후 아들과 며느리가 근처 ‘이자카야’에서 술 한잔 하고 오겠다면서 나갔다. 다정하게 나가는 모습에 나까지 덩달아 즐겁고 흐뭇했다.
서초역에서부터 교대-강남-역삼-선릉-삼성- 봉은사역까지 테헤란로를 따라 걸으며 건축 조형물들을 유심히 보며 걸었다. 우리나라 건축법 상 대형건축물이 연 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이면 총 건축비의 1%를 미술품이나 조형물을 설치하게 되어 있다. 실제로 작가 손에 얼마의 돈이 들어가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덕분에 그 방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제법 돈벌이가 되는 셈이다.
서초역에서 법조단지 안쪽 고등검찰청 쪽으로 들어 가 봤으나 건물도 서울역 앞 대우빌딩만하고 정원도 넓은데 조형물은 하나 안 보였다. 정부 건물도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면 그럴싸한 조형물이 있어야 한다.
교대역부터 고만고만한 조형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기하학적인 조형물이라 제목을 보고나서야 작가가 의도하는 것을 그나마 약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였다. 제목도 대부분 ‘희망’, ‘행복’, ‘탄생’, ‘관계’, ‘환희’ 등 밝은 주제였는데 조형물마다 이미지가 겹치는 것이 많았다. 건물의 특징과 연결지을만한 것도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무제’도 많았다.
역삼역 근처의 국기원은 우리나라 태권도의 본산이라고 할 정도로 의미 있는 곳이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포함되었다는 기념비 외에는 태권도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없었다.
그나마 포스코 건물은 유명한 아마벨 조형물이 그나마 철을 만드는 회사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졌다. 포스코는 그래도 건물 앞뒤로 조형물들을 많이 설치한 편이다. 돌로 만든 조형물도 있고 뭔지 뜻도 모르지만 쇠로 만든 조형물도 정원에 심어 놓았다. 성의껏 돈을 들인 느낌이다.
삼성역부터 코엑스 쪽으로는 그나마 조형물들도 많고 카메라에 담을만한 가치가 있는 조형물들도 많은 편이었다. 여기 와보면 포스코 건물 주변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았다.
외국에 가보면, 유럽 중에도 특히 독일에 가보면 작은 동네라도 조형물들이 많다. 종교적인 영향을 받아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많지만, 역사적인 인물들도 많다. 문화계 사람들 동상도 많다. 모양도 우리나라 동상처럼 우뚝 선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자세를 하고 있다. 실제 있었던 사람이 아닌 재미있는 형상의 조각품들도 많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동네의 명물이 되고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대형 건물 앞에 있는 조형물을 지칭하며 그 앞에서 보자고 할 조형물이 과연 몇이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포스코 앞의 아마벨 조형물 앞에서 보자고 했다면 말이 된다. 그런데 그 정도로 기억에 남을만한, 많은 사람들이 바로 알아 들을 수 있는 조형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나 이해할 만한 기이한 모양의 조형물들은 이제 그만 세웠으면 좋겠다. 공간만 차지하고 볼품도 없다. 제목이나 작가 명을 표시한 표지판도 떨어져 나간 데가 많다. 그만큼 준공 허가 후에는 관심을 못 끄는 것이다. 그 정도면 낭비이다.
걸으면서 봤으므로 건물 내에 어떤 미술품이 있는지 못 봤을 수도 있다. 미술품은 밖에 내 놓을 수 없는 작품들도 있을 것이다. 조형물들은 대부분 건물 밖에 설치하지만 안에 설치한 경우도 더러 있다. 포스코 1층에 설치한 원통형 수족관은 미술품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좋은 느낌을 받았다. 아름다운 산호와 각양각색의 살아 있는 물고기가 유영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선한 느낌을 준다.
조형물 들은 대중을 의식하고 만들어야 한다. 작가만 아는 기이한 형태의 기하학적 작품은 용도에 맞지 않는다. 취향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 옆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조형물이 좋다. 잠실 롯데백화점 옆의 ‘너구리 상’이 사람들이 잘 아는 랜드 마크가 되어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거리는 일반 대중들이 지나다니며 보는 것이므로 미술대전에나 맞는 예술성 위주로 하면 안 된다. 바로 알아 볼 수 있는 수준의 사람 실물 형태의 조형물들이 더 친숙하게 와 닿는다. ‘무제’라는 제목은 작가도 무슨 의도로 만들었는지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거나 보는 사람들에 따라 알아서 해석하라는 뜻의 무성의한 조형물로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채식주의자들이 늘어난다. 절친인 J도 혈관에 스탠트 시술을 받은 이후로는 먹는 데 제약을 받는다. 만나면 항상 술을 마시게 되는데 그 때문에 메뉴 고르기가 어렵다. 필자가 좋아하는 술안주는 족발, 보쌈, 삼겹살 등 동물성이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를 겸하기 때문에 술안주는 푸짐해야 한다. 쇠고기, 돼지고기는 물론 닭고기, 생선까지 못 먹는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막걸리 안주로 적격인 전 종류도 기름으로 요리하기 때문에 안 좋다는 것이다. 결국 두부김치를 시켜 그는 두부만 먹고 필자는 두부와 함께 가운데 놓인 김치 볶음을 먹는 절충안을 찾기는 했다.
날씬함을 자랑하는 동료 여자 댄스스포츠 선수가 있다. 성격도 쾌활하고 돈도 잘 써서 인기가 좋은데 유독 식사 때만 되면 예민하다. 철저한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고기 종류는 일체 안 먹고 채식만 고집한다. 심지어 멸치 국수나 순두부찌개 같은 음식도 육수가 들어갔다며 까탈스럽게 군다. 그 때문에 지방에 내려 갈 때마다 그가 낙점하는 메뉴가 나타날 때까지 낯선 동네를 헤매야 한다.
필자도 사실은 생선은 가려 먹는 편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 지방에서 태어나 생선 종류는 지금도 안 좋아한다. 생선 비린내에 친숙하지 못하다. 횟집에서 싱싱하다는 징표로 생선회접시에 온몸을 다 잘린 채 머리가 함께 나와서 눈만 껌벅거리는 접시를 내놓는데 잔인해서 정말 싫다. 수족관에 멀쩡히 잘 노는 생선을 찍어 요리해달라는 식습관도 그래서 싫다.
보신탕이라며 먹는 개고기도 필자가 개를 길러봐서 일부러 찾아가서 먹지는 않는다. 계란이라도 얻어먹어 볼까 해서 몇 달간 길렀던 병아리가 컸을 때 수탉이라고 하여 더 기를 이유가 없었다. 일하는 아줌마가 그 닭을 그 날로 잡아 식탁에 올렸는데 기르던 정이 있어서인지 차마 입을 댈 수 없었다.
나이 들면 나물 종류를 찾게 된다고 한다. 어릴 때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할머니의 주름살 가득한 시커먼 손으로 마구 주물러 나물을 만드는 것을 보고 구역질이 났었다. 그때부터 나물 종류는 안 좋아 한다. 가장 좋아하던 반찬이 여름철 가재, 가을철 메뚜기볶음이었다. 개울에 사는 올갱이도 고기 종류라고 열심히 잡아 먹었다. 고추장 바른 가죽나무 튀김도 좋아했다. 산나물처럼 조물락거리며 무치는 것이 아니라 기름으로 튀긴 것이라 좋아했다. 가끔 시골에 가더라도 나물 반찬을 안 먹기 위해 라면을 사들고 간다. 물론 모처럼 온 손님이므로 필자가 사들고 간 라면을 그대로 끓여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필자는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어릴 때 다 같이 못 살았으므로 밥상 반찬이 대부분 풀밭이었다. 어쩌다 고기가 나오더라도 식구가 많으니 국물 듬뿍한 찌개 형태로 나왔다. 그래서 밥상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고 얼굴 두꺼운 형제가 먼저 고기 건더기를 건져 갔다. 서열이 한참 밑인 필자는 국물로 위안 삼았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나물이 냉이 무침이다. 향긋한 냄새가 일품이다. 그러나 뿌리의 흙을 털어내는게 어려운 모양이다. 흙이 씹히면 그때부터 더 못 먹는다. 그나마 초봄의 냉이 무침에 한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냉이는 향기가 없다.
‘이밥에 쇠고기 국’이라고 부자네 식단 메뉴였다. 나중에 돈 벌면 고기라도 실컷 먹겠다는 꿈은 누구나 가졌을 것이다. 다 같이 배고팠을 무렵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친구네 집에 가면 친구어머님은 끼니때마다 고기 반찬이 그득하다. 거기에 또 고기를 굽는다. 한국이 아직도 고기는 비싸서 사먹기 어려운 나라로 기억하신다.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요즘 채식주의자로 바뀌었다며 사양했다.
오랜만에 댄스 동호인들끼리 춤을 추고 나서 뒤풀이를 했다. 근처에 있는 빈대떡집이다. 최근 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은 한 사람이 앞으로는 술도 끊고 채식을 하되 기름에 튀긴 것은 안 된다며 채식주의자 대열에 섰다. 결국 만만한 두부 김치를 주문해서 그 친구는 두부만 먹고 가운데 김치와 볶은 돼지고기는 혼자 먹으니 남아 돌아갔다.
박원식 소설가
인문학 열풍이 거세다. 인문학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강좌와 콘서트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얼마 전 나는 찻집에서 지인을 기다리다가 옆 자리에 앉은 50대 꽃중년들이 열띤 토론을 하는 걸 보았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을 두고 벌이는 갑론을박이었다. 은 여순반란사건부터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격동과 굴곡을 파헤친 소설로 분단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다.
봄날의 햇살이 화사하게 들이치는 찻집 창가에 둘러앉은 꽃중년들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 모두 흐뭇하게 합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한 아줌마가 조정래 소설의 문체가 지닌 몰개성(沒個性)을 문제 삼으면서 갑자기 논쟁의 장으로 변했던 것이다.
꽃중년 특유의 드높은 목청이 실내 가득 번지어 자못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나의 귀는 은근히 즐거웠다. 흔히 찻집에 모여 앉은 아줌마들의 화제라는 게 돈 얘기나 건강 타령, 또는 자식 자랑 따위의 수다이기 십상이지 않던가. 범속한 일상의 권태와 스트레스를 그저 범속하게 푸는 일을 타성적으로 반복하는 게 우리네 삶이지 않던가. 그러나 이 아줌마들은 ‘역사’와 ‘문학’을 얘기하며 봄꽃처럼 생동하는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신선하고도 수려한 정경이었다. 알고 보니 이들은 해방전후사를 주제로 삼은 어느 인문학 강좌의 수강생들이었다.
‘문사철(文史哲)’에 주목하는 이유
인문학이란 한마디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삶에 관한 통찰을 돋울 수 있는 공부이다. 머리에 지식을 우겨넣는 지식 축적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파랑(波浪)을 유쾌하게 건널 수 있는 구체적 항해술을 배울 수 있는 지혜의 전당이다. 자비로운 신에게 의탁하고서도 어쩔 수 없이 엄습하는 불안과 고독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얻어올 수 있는 노하우의 숲이다.
나이를 먹는 일, 늙어가는 일은 쾌거일 수 있다. 내부에서 날뛰는 욕망이라는 망둥이를 잘 제어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살아온 경륜의 힘으로 눈 없이 헤매는 욕망에 눈을 달아줄 수만 있다면 노경(老境)이란 실로 삶의 절정일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이라는 놈이 어디 만만하던가. 인간의 모든 문제는 결국 욕망이라는 난적을 어떻게 해치우느냐에 달려 있다. 인문학이라는 인간학에 조예를 키울 경우 이 난처한 욕망의 농간을 제어할 병법을 체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른바 ‘문사철(文史哲)’, 즉 문학, 역사,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은 결국 인간의 욕망이 움직이는 방향과 동향을 성찰하고 통찰하게 하는 학문이 아니던가.
시니어의 삶에 문사철이 붙어 있을 경우 더 즐겁고 더 행복할 수 있다.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노년의 정신에 촉과 가락이 서려 새삼 감각적일 수 있으며 한결 치열할 수 있다. 세상은 그럴싸한 욕망들이 날뛰는 난장이지만 대체로 재미가 없다. 삶이 재미없는 건 빤한 수족관처럼 너무도 범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과 긴밀한 교제를 할 경우, 범속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인간이라는 고등동물이 한낱 진부한 습성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이 밤하늘에 빛나는 초록별 하나처럼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현실의 억압과 틀에 얽매일 수만은 없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이 마땅하다는 것을 인문학은 일깨워준다.
인문학에 취하다
내가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아울러 여자로 몸 바꾸어 조선을 만날 수 있다면, 꼭 한번 만나 수작을 걸어보고 싶은 사내 하나가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다. 예술에, 학문에, 처신에 추사는 인생의 모든 종목에 탁발(卓拔)했다. 타고난 준재였는가 하면, 고통 속에서 피어난 꽃과도 같은 존재였다. 추사를 생각하면,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하던 그가 다 쓰러져가는 움막에서 홀로 엄동설한을 견디던 모습이 떠오른다. 병든 몸으로 사시나무처럼 삭풍에 떨면서도, 지팡이를 짚고 허리를 곧추세운 자세로 방바닥에 앉아 밤을 지새웠다는 게 아닌가. 후세 사람들 그 누구도 추사의 정신세계를 따를 수 없다는 게 이미 중론이지만, 추사가 지녔던 시적 상상력, 다시 말해 문기(文氣)라는 건 가히 독보적이자 독창적인 것이었다. 추사는 이 장려한 자기 세계를 무엇으로 구축했는가. 모태에서 받은 천품(天稟)이라는 게 있었겠지만, 그 무엇보다 문사철의 힘이 그를 추동했다. 문사철의 방대한 섭렵과 그에 따른 도저한 서권기(書卷氣)! 추사는 그 자체로 인문학의 바다이자 대륙붕이었다.
공부가 많았으니 혜안이 열렸으렷다. 삶이란 실로 가소로운 곡예일 수 있으나 추사에 이르러선 얘기가 달라진다. 추사는 이마에 매단 등불처럼 환한 혜안으로 걸릴 게 없는 활보를 거듭했으며, 예술과 학문의 산정에 도달했다. 풍류에도 소홀한 바가 없었으니 그가 후끈하게 열을 냈던 로맨스가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이 매력적인 조선의 인걸이 지구 위에 살아가는 남정네들에게 널리 권장한 풍류의 필수 종목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독서요, 둘째는 여색이고, 셋째는 음주다. 고명한 사대부가 웬 여색과 음주를 권했을까, 그렇게 의아해 할 수 있지만, 셋 중 독서를 으뜸으로 내세운 데에서 추사의 깊고 깐깐한 속뜻을 읽을 수 있다. 세상을 견디자면 때로 주색잡기도 썩 괜찮은 묘약일 수 있지만, 그러나 야야, 놀 때는 흐벅지게 놀더라도 미리 공부부터 해두렴! 이런 훈계였을 게다. 나날이 일삼은 독서로 세상 물정과 인간에 대한 개안이 있고 난 뒤여야 풍류도 비로소 떳떳하다는 경책일 게다. 삶을 읽는 꿈과 지향을 가지지 못한 자는 여색과 음주를 즐길 자격조차 없다는 힐난으로도 들린다.
추사뿐이랴. 아름다운 생을 살다 떠난 사람들의 족적엔 인문학적 수련과 체험의 양광(量光)이 아롱진다. 인문학의 저수지에 풍덩 몸을 담가 얻은 에너지로, 삶의 시원한 지평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는 얘기는 신빙성 있는 오래된 뉴스다.
시니어들은 대체로 건강과 시간, 그리고 돈을 행복의 척도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들에 관한 과욕은 오히려 타락을 부추긴다. 인문학이 유혹하는 대로 부응하여 지혜를 거둬들일 경우 행복의 척도부터가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인문학은, 물신(物神)이라는 주님에게 길들여진 욕망기제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혀 다른 삶의 대안과 상상력을 열어주기도 한다. 인문학이라는 성찰의 숲에 뛰어드는 일은, 그래서 기쁜 제전이다.
>>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