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걸음마를 뗀 회사가 있다. 구성원이 6명인 작은 회사. 다른 회사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사무실을 조금만 둘러보면 독특한 분위기를 바로 알아차리게 된다. 이 회사 구성원은 60대 이상으로 모두 정년을 마친 사람들. 이들은 한목소리로 “정년 걱정이 없어 고용불안이 존재하지 않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동료들과 함께 보람 있는 제2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삼성기술안전의 최동기(崔東基·64) 씨를 만났다.
“정년퇴직 후의 꿈은 건물 관리소장이었죠. 서울교통공사에 다닐 때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들에게 수당을 주는 제도가 있어 산업안전기사와 산업안전산업기사 자격증을 따놓았거든요. 여기에 몇 가지만 더 공부하면 될 것 같아 빌딩경영관리사와 사용시설가스안전관리자,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 등을 정년 직전에 땄어요.”
취업박람회 문턱 닳도록 다녀
그가 자격증에 매달린 것은 정년퇴직 후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체력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은 데다, 퇴직자를 받아줄 회사 또한 찾기 힘들다고 판단해서다.
“공부는 어렵지 않았어요. 원래 시험을 보면 잘 붙는 편이었고, 기출 문제 위주로 공부하는 요령도 생겼죠. 열심히 하는 모습을 칭찬하는 아내 응원에 더 힘이 났어요. 퇴직해도 놀 사람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웃음)”
2015년 2월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에 차 있었다. 지하철 역장 출신으로 조직관리와 기술 분야와 관련한 오랜 경험이 있었고, 자격증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퇴직 후 곧바로 제안받은 일자리도 거절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퇴직 후 몇 달간 숨 고르기를 한 뒤에 다시 일을 시작하자고 생각했지만, 그에게 손을 내미는 일터는 많지 않았다.
“취업박람회를 수없이 다녔죠. 이력서도 계속 넣고.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취업활동 요령도 알게 됐죠. 하지만 늘 나이가 문제였어요. 퇴짜 맞기 일쑤였죠. 거절이 반복되자 아침에 가방 들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초조함이 극에 달했을 때 취업 제안을 받았어요. 안전관리자 대행업체였어요. 50인 이상 사업장은 사내에 안전관리자를 선임하거나 외부 전문기관에 대행을 의뢰하게 되어 있는데, 이 일을 하는 회사에서 안전관리자로 활동하게 된 것이죠.”
3년간의 회사생활은 그에게 산업안전관리 분야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줬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이 있었다. 바로 ‘파리목숨’ 같은 계약직 신분이었다.
“‘당신 계약직이잖아, 내년은 장담 못해’ 등의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죠. 명절 떡값에서부터 계약직에 대한 차별은 곳곳에 있었어요. 사장이나 젊은 상사들의 말이 곧 법이었으니까. 그렇게 불안에 떨다가 어느 순간 결정했어요. 더 이상 안 되겠다, 회사를 차리자! 하고 말이죠.”
“정년 없애자” 6인의 의기투합
1959년생이 막내인 젊은(?) 회사는 그렇게 태어났다. 지난해 10월, 6명의 안전관리 전문가가 함께 투자하고 의기투합해 설립한 회사는 ‘삼성기술안전’. 역할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 따라 나눴다. 이곳에서 최 씨의 직함은 이사다.
“우리 회사 구성원들의 자격증 개수를 합치면 50개가 넘어요. 나이는 많지만, 실력과 경력은 모두 출중하죠. 수익보다는 보람 있는 인생에 더 가치를 두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설움을 느껴봤으니 정년 없는 회사를 만들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신바람 나게 일을 해보자고 말이죠. 처음 6개월은 집에 가져가는 돈이 없을 거란 각오로 일했죠. 그래도 나이 먹었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들 초로의 길목에 서 있는 만큼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서로의 건강이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은퇴 시기까지 건강하게 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최 씨는 75세까지는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함께 모였을 때 외치는 구호도 안전과 함께 건강을 빼놓지 않는다.
사실 안전관리자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직종 중 하나다. 각종 산업시설을 방문해 안전상 위험요소를 찾아내 해결하거나 조치가 되도록 조언하는 역할이다 보니 사업장 구석구석을 살펴야 한다. 특히 고층 건물은 지하층부터 꼭대기까지 빠짐없이 다니며 점검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지면 일을 할 수 없다. 또 시간이 남을 땐 신규 사업장 확보를 위해 영업도 다녀야 한다. 최 씨는 “구성원이 6명밖에 안 되지만 회사에서 다 함께 얼굴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다들 바쁘다”고 말했다.
35년 직장생활, 지하철에 바쳐
최 씨는 1979년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해 35년을 지하철과 함께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그가 입사했을 때 서울교통공사는 아직 서울시 산하의 지하철운영사업소로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지하철 운임은 30원. 9개 역 운수 수입은 하루 553만 원에 불과했던 시절이었다.
“매표소에서 승차권을 판매하는 역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에드몬슨식 승차권을 사용했어요. 탑승객들의 표를 역무원이 일일이 구멍을 뚫으며 검표를 했죠.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지하철에 익숙지 않아 지금은 상상도 못할 촌극이 많이 벌어졌어요. 특히 서울역은 시골에서 오시는 분이 많아 더욱 심했죠.”
2009년 신촌역 역장으로 부임했다가 대림역 역장으로 정년퇴직했다. 평생을 쉬지 않고 달리는 지하철 옆에 서서 대한민국의 산업화, 민주화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공기업에서 정년을 마쳐 생활비 조달이 급급한 상황은 아닐 텐데, 투자까지 해가며 회사 설립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사람 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에만 있으면 안 돼요. 소속된 곳이 있어야 힘이 솟고, 활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주변 동년배 중 건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물론 지금의 회사는 예전에 다녔던 직장과는 구조도 문화도 다르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되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는 서로 상의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어요. 함께 꿈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죠. 그래서 더 열중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또래의 퇴직자, 퇴직 예정자들에게 “나이가 많다는 이유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세상엔 말도 안 되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 기적 같은 일을 해낸 사람이 수없이 많잖아요. ‘왜 나만 힘들지?’ 하는 생각 속에 사는, 나이 든 사람을 종종 만나요. 하지만 꿈을 향해 뛰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고민이 느껴지지 않아요. 꿈과 목표를 분명히 세우면 노후의 삶도 바쁘게, 치열하게, 보람 있게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인간의 생명활동이 정지되는 상황, 즉 사망을 판정하는 기준은 기본적으로 호흡과 심장박동의 유무에 달려 있다. 심장이 우리 생명과 가장 직결되는 장기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심장에 발생하는 질환을 흔히 ‘심장병’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종류가 다양해 하나의 병이라고 말하기 모호할 정도다. 심장병 중 중장년이 조심해야 할 대표적 질환을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순환기내과 장성원(張誠元·49) 교수와 함께 알아보자.
“노화의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심장질환은 심방세동과 협심증을 꼽습니다. 둘 다 중장년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하죠.”
장성원 교수는 심장과 혈관 노화가 이 같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고, 특히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만성질환 환자라면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심방세동, 뇌졸중의 원인
심방세동은 부정맥의 일종으로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일어나는 질환이다. 특별히 심한 운동도 하지 않은 평온한 상태에서도 느닷없이 심장이 쿵쾅거린다면 심방세동을 의심해봐야 한다. 장 교수는 “마치 100m 달리기를 한 후의 두근거림과 비교될 정도”라고 설명한다.
심방세동을 증상만으로 진단하기란 쉽지 않다. 부정맥의 증상은 비슷한 경우가 많다. 특히 발작성으로 일어나는 심방세동은 검사 과정에서 증상이 재현되지 않으면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 그러나 증상이 나타나면 심전도 검사만으로도 확진할 수 있다.
“가장 쉬운 자가진단법으로는 맥을 짚듯 손목의 요골동맥에 손가락을 얹어 심장박동을 확인하는 거예요. 맥박이 불규칙하면 심방세동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워치의 심박측정 앱을 활용해도 됩니다. 증상이 나타날 때 측정해서 의사에게 보여주면 진단에 도움이 됩니다.”
심방세동은 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5년 자료를 보면 국내 20대의 유병률은 0.03%에 불과하지만 80세 이상은 4.16%로 조사됐다.
심장에도 술은 웬수
장 교수는 그다음 주요한 원인으로 술을 꼽았다.
“음주를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환자 중 상당수는 술 마신 다음 날 부정맥을 경험하죠. 치료 중에 술을 마시면 조절도 안 될 뿐더러 재발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래서 치료 전에 반드시 금주를 약속받지요. 이밖에 고혈압이나 당뇨병, 관상동맥질환 등도 영향을 줍니다.”
문제는 심방세동이 오래되면 두근거림과 같은 증상이 없다는 것. 뇌졸중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생긴 후에야 심방세동이 원인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면 흔히 피떡이라고 부르는 혈전이 생겨요. 이 혈전이 심장 안에 고여 있다가 떨어져 나가면서 여러 장기의 혈관을 막습니다. 뇌혈관을 막으면 뇌경색이 발생합니다. 뇌경색은 골든타임이 짧고 쉽게 회복되지 않는 장애를 남기기 때문에 치명적입니다.”
치료는 뇌졸중의 예방이 우선이다. 피를 묽게 하는 항응고제가 쓰이는데, 몇 년 전 효과와 안전성이 높아진 신약 NOAC(New Oral Anti-Coagulant)이 출시돼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한, 부정맥 증상을 조절하거나 정상 박동을 회복하기 위해서 항부정맥제를 사용한다. 효과가 없으면 고주파로 부정맥 발생 부위 심장조직을 괴사시키는 전극도자절제술을 시행한다.
혈관이 막혀 생기는 협심증
협심증은 심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병이다.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생기는 동맥경화입니다. 통로가 좁아져 심장에 피를 제대로 공급해주지 못해 생기는 질환이죠. 특히 나이가 들면 혈관의 신축성이 떨어져 더욱 문제가 됩니다. 평소에는 혈관이 좁아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급격한 운동을 할 때는 혈액 공급이 부족해 통증이 나타나죠. 이런 흉통은 운동을 멈추면 사라지는데, 이를 안정성 협심증이라고 해요.”
이때 나타나는 통증은 꽤 심하다. 가슴뼈 왼쪽 부분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발생하는데 숨 쉬기도 어려울 정도다. 장 교수는 “당뇨 환자는 통증에 둔감해 체한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운동할 때 흉통이 생기면 검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장과 연결되어 있는 관상동맥이 막히면 통증으로 끝나지 않는다.
“심근경색은 피떡이 혈관을 완전히 막아 심장 근육에 괴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가만히 있을 때 가슴통증이 시작되거나, 휴식을 취해도 가라앉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는 분초를 다투는 응급상황이므로 빨리 병원에 가야 해요.”
DASH 다이어트 심혈관에 좋아
협심증 진단방법은 심전도와 심근스캔이 대표적이다. 평안한 상태에서 촬영하고, 약물이나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준 뒤에 촬영해서 비교하는 방식이다. 관동맥 CT 촬영도 최근 들어 널리 쓰이는 방법. 이상이 발견되면 관상동맥조영술로 정확히 진단한다.
치료는 약물투여가 기본이고, 혈관이 심하게 좁아졌을 때에는 스텐트를 삽입한다. 원통형의 철망을 좁아진 부위에 삽입해 혈관을 넓히는 방식. 심장에 다른 혈관을 연결하는 관상동맥우회술도 있지만, 기술이 발전해 스텐트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치료 이후의 관리다.
“우리 신체가 스텐트를 일종의 이물질이라고 판단해 피가 엉겨붙을 수 있어요. 때문에 항혈소판제를 계속 복용해야 합니다. 고지혈증 약도 마찬가지이고요. 해외 사례를 보면 고지혈증 약 복용이 스텐트 시술을 줄여주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의사에게 복용을 추천받았다면 미루지 않는 게 좋아요.”
장 교수는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DASH 다이어트 식단을 권했다. 현미와 채소, 과일, 견과류 섭취를 늘리고 소금과 설탕, 지방, 술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핵심.
장 교수는 의사와의 상의가 없는 의학적 판단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약의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현혹하는 콘텐츠가 많은데 약 복용을 중단하면 훨씬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고지혈증 약이 대표적이에요. 또한 관상동맥질환 진단을 받은 환자라면 2차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과 같은 항혈전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관상동맥질환이 없는 경우 1차 예방 목적으로는 아스피린을 권하지 않습니다. 혈관질환을 예방하는 목적보다 출혈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 개봉돼 흥행가도를 달렸던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증권회사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분)은 직감한 나라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던진다. 여기서 궁금한 것 한 가지. 느닷없이 회사를 떠나는 윤정학을 바라보던 나머지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 평범했던 그 금융권 회사원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물론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의와는 달리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와야 했다. 제주에서 만난, 현재 제주햇살담음에서 행정 및 연구실장으로 지내는 최종보(崔鍾甫·61) 씨도 그랬다.
“아내가 그 영화를 보고 그러더군요. 고구마를 스무 박스 먹은 기분이라고요. 저 역시 먹먹했습니다.”
IMF는 국내 금융시장에 거대한 생채기를 남겼다. ‘5대 은행’으로 손꼽히던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중 원래의 사명(社名)을 유지한 곳은 SC제일은행이 유일할 정도다. 대부분 둘이 하나가 되거나 소멸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외에 많은 은행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소용돌이 속에 최 씨도 있었다.
“저 역시 당시 번듯한 은행에 다니고 있었죠. 1983년에 입사해 지점에서 8년 현장 경력을 쌓은 후 본사 인사부에서 일했어요. 당시 제 관심사는 해외 점포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것이었어요. 주재원 자격도 얻어 관례상 발령이 눈앞에 있었고, 이를 위해 입사 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했죠. 저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미국 점포 근무를 꿈꾸면서요. 하지만 34개나 되던 해외 점포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더군요. 회사의 존립마저도 걱정해야 하는 위기가 불어 닥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둘 중 한 명 나가라 강요하던 ‘지옥’
이후 회사에서 벌어진 장면들은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1만 명 가까이 되던 직원 중 절반은 명예퇴직 대상이 됐다. 인사부 담당자 5명이 5000명에게 대상자임을 전화로 알렸다. 저승사자 역할을 한 사람 중에는 최 씨도 있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눈물 젖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선배이자 동기이자 후배였다. 형편없는 음질의 구식 전화였지만 감정은 여과 없이 전달됐다.
“못할 짓이었죠. 딱 5일째 되던 날 저도 사표를 썼어요. 통보를 받은 어느 누구도 저에게 심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제가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더라고요. 직전까지 실적이 좋았던 우수사원들도 거래처가 줄도산한 탓에 저평가자가 되면서 가차 없이 잘려나갔어요. 해외 점포들도 모두 폐쇄되면서 제 꿈도 함께 날아갔죠.”
불과 며칠 전까지 9시 뉴스는 우리 경제의 건실함을 알렸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외환위기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최 씨는 “삶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증언한다.
“번듯한 명함을 들고 참석하던 동창회 참석 인원은 10분의 1로 줄었죠. 친구 부인들은 마트 계산원 같은,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자리를 찾아 나섰어요. 자영업 전선에 뛰어들어 망한 친구도 많았고요. 은행에서 정직원으로 근무하던 청원 경찰은 300만 원 가까이 되던 월급이 3분의 1로 줄었고, 신분도 계약직으로 전환됐죠.”
퇴사 이후의 삶은 ‘실패 사례집’
당시 41세였던 최 씨. 이후 이 가장의 인생 여정은 ‘외환위기의 세대’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실패 사례를 보여주는 듯했다. 은행에서 나와 입사한 외국계 보험회사에선 입사 초반 억대 연봉의 ‘꽃길’을 걷는 듯했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결국 회사를 나와야 했다. 해외 발령을 위해 준비했던 영어 실력으로 차린 입시학원도 초창기엔 잘됐지만 건물주와의 분쟁으로 보증금을 손해보고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새집증후군 제거 회사를 차렸지만, 후발 업체의 덤핑 경쟁으로 쓴맛을 봤고, 청소 프랜차이즈에 가입했다 본사의 부도로 가맹비만 날렸다.
비슷한 과정을 겪은 많은 가장처럼 그 역시 많은 것을 잃었다. 우울증을 겪었고, 술에 의존하는 시간도 늘었다. 대출을 주선했던 은행 선배를 다시 볼 면목도 없어졌고, 피해의식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정말 나락으로 떨어졌을 땐 친구가 며칠에 한 번 보내주는 막걸리 값에 의존해 살았을 정도였어요. 아내가 융통한 생활비로 겨우 살아갔죠. 집과 차는 이미 제 것이 아니었고요. 나에 대한 원망이 계속됐죠. 그래도 그 과정에서 날 버티게 해준 것은 공부였어요. 책과 강연을 읽고 들으며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았어요. 결국 외환위기가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고 자책을 멈췄어요. 있는 그대로의 날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았죠.”
새로운 직장에서의 성공적 출발
그리고 2015년, 그는 제주행을 선택한다. 서울에서 갑들에게 매몰되는 직장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 들면 서울을 벗어나 살고 싶은 소망도 있었고, 당시 제주엔 중년도 할 만한 일거리가 있을 거라는 추천도 있었다. 그는 그렇게 59년간의 서울생활을 정리했다.
“안 해본 것이 없어요. 렌터카 회사와 주유소에서도 일했고, 호텔에선 프런트부터 시설관리, 청소까지 했어요. 하지만 한 번도 나를 낮게 보거나 일을 얕잡아본 적은 없습니다. 세간이 주는 가치관에 연연하지 않고,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죠. ‘러브 유어셀프’를 들으며 방탄소년단의 팬이 된 것도 이 즈음이죠.(웃음)”
그러다 우연히 제주도청에서 노사발전재단의 지원 책자를 본 것이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됐다. 제주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의 소개로 2018년 4월 19일, 그의 전공과 다양한 사회 경험을 인정받아 화장품 회사인 제주햇살담음의 행정 및 연구실장으로 입사한다. 실로 오랜만에, 사무실 책상 앞자리로 복귀한 것이다.
제주햇살담음은 제주에서 자란 건강한 재료를 바탕으로 유기농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다. 온라인 쇼핑몰과 소셜커머스를 통해 전국에 제품을 판매 중인데 입소문을 타고 늘어난 충성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보다 두 배 늘어난 매출 달성도 눈앞에 두고 있다.
“직원 7명이 일하는 작은 회사이다 보니 연구개발에서 제품 영문번역, 세무·회계 관련 업무까지 맡고 있어요. 회사에서 번번이 실패했던 각종 지원제도에 도전해 중장년·청년 지원제도 등의 지원금도 확보했죠. 회사 자금이나 매출에 기여할 수 있어서 보람이 커요.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젊은 직원을 선호하는데 마케팅이나 경영, 금융, 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자들은 중장년임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그는 비슷한 아픔을 겪어온 또래의 동료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내려놓는 것이 필요해요. 눈높이를 조금 낮추고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일자리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일자리에 대한 기준이 낮아져도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나 자신감은 잃지 말기를 당부드려요.”
서울시 양천구에 사는 신모 씨는 최근 손주를 보는 재미가 줄어 걱정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녀딸이 말문이 터진 후 함께 도란도란 대화를 하는 것이 삶의 낙 중 하나였는데, 요즘 부쩍 손주 목소리를 알아듣기 힘들어졌다. 난청 증상이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조용한 장소에서 무턱대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일도 많아졌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이비인후과 이현진(李鉉振·35) 교수는 “노인성 난청은 방치하면 악화되기 쉽다”고 경고한다. 이 교수를 통해 노화로 인한 난청과 이명에 대해 알아봤다.
“난청의 원인은 많지만 대표적으로 청신경세포가 손상되는 감각신경 난청과 염증 등의 질환으로 발생하는 전음성 난청이 있습니다. 이 중 노화로 인해 생기는 노인성 난청은 감각신경성 난청입니다. 소리를 듣고 귀에 전달하는 청신경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는 것이죠.”
이 교수는 노인성 난청의 특징 중 하나는 특정 음역의 소리가 유독 들리지 않는 경우라고 설명했다.
여성과 어린아이 목소리 더 안 들려
이 교수는 “주로 고음역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남성이나 성인에 비해 여성,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특징이 있어요. 대화가 어려워지니 화가 나고 짜증도 자주 내게 됩니다. 현장에서 대면하는 환자를 보면 자녀 손에 이끌려 오시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본인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가족도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쉽게 인지하는 것이죠.”
안타깝게도 노인성 난청은 한쪽만 발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양쪽 귀에 이상이 생긴다. 의학적으로는 30대부터 난청이 시작된다고 보지만 대부분은 발병이 돼도 40대까지는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50~60대가 되면 슬슬 자각이 되기 시작한다. 젊을 때 공항이나 군대같이 오랜 기간 큰 소음에 노출됐던 사람에게서 더 많이 발병되기 때문에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퇴직이나 은퇴 후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액티브 시니어’에게 난청이 발생하면 일상에서 많은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말소리보다는 전화소리가 더 안 들리고 교회나 식당 같은 소음이 많은 장소에서 난청 증상이 더 심해지니까요. 모임이나 통화가 잦으면 불편함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무선이어폰 흥행에 거부감 줄어
노인성 난청이 발생했을 때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치료제는 아직까지 없다. 나빠진 청신경세포를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때 환자가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보청기와 인공와우다. 선택은 환자의 난청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난청 증상이 가볍다면 보청기로 충분히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조금 심각하다면 인공와우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 보청기로 만족스러운 치료가 안 되는 경우 인공중이 이식술도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수술이 필요한 치료이기 때문에 의사와의 상담이 필요하다.
“보청기를 사용해도 효과가 없으면 인공와우 수술을 고려해야 합니다. 고도 난청 환자에게 인공 와우는 청각 재활에 큰 도움을 줍니다.”
보청기는 대표적으로 외이도 안쪽으로 삽입되는 귓속형과 귀 뒤편으로 걸어서 쓰는 귀걸이형이 있다. 저렴한 제품은 개당 100만 원가량 하지만 성능과 기능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눈에 띄는 부착물이 환자에게 거부감을 갖게 하지는 않을까? 이 교수는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무선이어폰이 대중화하면서 다들 귀에 다는 장치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보청기가 청력을 더 떨어뜨린다는 속설도 있는데 가짜 뉴스입니다. 보청기로 청신경세포에 소리 자극을 줘야 퇴화를 늦출 수 있습니다.”
비싼 기기 비용과 지원 절차 ‘문턱’
인공와우는 수술을 통해 장착이 가능한 보조장치다. 외부 소리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는 외부장치와 달팽이관에 이식되는 내부장치로 구성되는데, 수술은 어렵거나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만성중이염 수술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수술 후 말해주는 단어를 알아듣는 명료도 테스트를 해보면 수술 전 50% 이하였던 청각 기능이 수술 후에는 70~80%까지 올라갑니다. 외부장치는 머리에 감춰져 오히려 보청기보다 거부감이 적어요. 충격이나 수영, MRI 촬영 같은 것에만 신경 쓰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문제는 가격이다. 인공와우의 가격은 한쪽당 2000만 원 정도로 고가다. 난청 정도를 알아보는, 문장을 이용한 언어 평가가 50% 이하며, 순음청력 검사 결과 양측 70dB 이상인 경우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19세 이상은 한쪽만 보장이 된다. 기계 값의 본인 부담 10%에 수술비와 입원비 등을 더하면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500만 원 전후다.
보험 혜택이 까다롭기는 보청기도 마찬가지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일반 가입자는 111만9000원까지 보청기 구입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데, 청각장애로 등록된 난청 환자만 가능하다. 난청환자등록은 의료기관에서 청력검사를 실시한 후 주민센터에 접수를 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 승인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쪽 귀의 보청기 구매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다시 장비 구입 혜택을 받으려면 5년이 지나야 지원 신청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난청이 시니어를 괴롭히는 귀 질환 중 하나인 이명과도 관계가 있을까? 이 교수는 “이명이 난청 발생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명이 난청 발생의 전조는 아냐
“많은 환자가 비슷한 걱정을 합니다. 이명이 생겼는데 이러다 못 듣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이명은 심한 피로나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평소에는 뇌가 걸러내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에요. 이 소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뇌가 학습해 계속 듣게 됩니다. 심리적인 영향이 커서 상담이 치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이명이 생겼다고 해서 난청이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로 노인성 난청이 이명을 일으키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는 청각신경의 기능이 점차 퇴화하면서 일부 난청 환자들이 느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난청 발생을 방지하려면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 관리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질환들이 미세혈관에 영향을 줘 청신경세포 기능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분노로 인해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자주 보도되고 있다. 홧김에 자신과 아무 관계도 없는 곳에 방화를 하고 울컥하는 마음에 폭력을 쓰거나 살인까지도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일으키는 감정을 분노조절장애 또는 충동조절장애라 진단한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거나 가슴속에 화가 쌓이면 이 감정이 잠재되어 있다가 자극을 받는 상황이 오면 폭발하게 된다. 과거에는 분노 억압으로 인한 울화병이 많았지만, 요즘은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분노를 발산할 때는 잘 조절해서 서로가 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먼저 어떤 식으로든 분노를 몸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분노에 의한 폭언과 폭력을 많이 목격했다. 60대 후반의 연령대라면 분노와 관련해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경험이 있으리라고 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분노의 감정을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다. 학교 친구들, 직장 동료들 그리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만난 지인들 중 어느 누구도 내가 분노를 표출한 걸 본 적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분노조절에 있어서만큼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고수라 자처하고 싶다.
내 비법은, 일단 분노가 몸 안에 쌓이면 조절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분노를 낮추는 또 하나의 방법은 분노의 원인이 나의 내부 또는 바깥 모두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인이 잘못을 해 나를 화나게 하는 상황이 됐을 때, 그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지인을 사귄 내 잘못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화가 나는 상황을 바라보면 분노가 내 몸에서 자리 잡지 못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났다고 해보자. 이때 상대가 잘못했다며 언성을 높여 싸울 필요가 없다. 결국에는 보험 회사들이 판단해서 다 처리해준다. 목소리를 높여봤자 감정만 상한다. 감정을 빨리 추스르는 게 훨씬 이롭다.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는데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라며 액땜한 셈 치면 된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자료를 잘 준비해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되지 분노를 터트려 폭력을 행사하거나 해서 일을 더 꼬이게 만들 필요는 없다.
나는 전라북도 군산에서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님이 49세, 어머님이 42세에 나를 낳으셨다. 늦둥이로 태어나 부모님이 무척 귀여워해주셨지만, 아버님은 매사에 엄하시고 성질이 불같으셔서 어머님이 항상 아버님의 비위를 맞추셨다. 내가 어머님을 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내면 그걸 수습만 했지 화를 내본 경험이 없다. 더구나 집안에서의 서열이 제일 막내이다 보니 화는커녕 형과 누나들 눈치 보기 바빴다. 형제들이 일을 시켜도 윗사람 말은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만이 쌓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선천적으로는 어머님을 닮았고, 후천적으로는 가정에서의 서열 때문에 감정조절 능력이 자연스럽게 습득된 것 같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체득한 노하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분노란 주로 대인관계에서 발생한다. 관계를 만들기는 어려워도 허물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며, 허물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고수는 이런 상황에 처할 걱정이 없다. 고수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매일의 삶이 그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불화나 갈등의 상황이 와도 분노를 제어할 수 있다. 또 목표를 가지고 생활하는 게 중요하다. 어떠한 목표라도 좋다. 주간, 월간, 연간 계획을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다 보면 사소한 일에 분노할 겨를이 없다.
물론 내가 제시하는 분노 관리 방법이 편협한 것일 수도 있다. 각자에 맞는 보다 나은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조언한 방법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폭언과 폭력이 없는, 보다 평화로운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주님 위의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시니어의 로망을 넘어서(?) 이제는 모든 세대가 인생의 마지막 꿈처럼 여기는 듯한 건물주라고 하면, 흔히 일반 상가 소유자나 빌라, 빌딩 주인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 좀 독특한 건물주가 있다. 김현우 씨, 주한 외교관들에게는 ‘피터 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주한 외교사절들을 대상으로 주거공간 렌트 사업을 하고 있는 흔치 않은 건물주다. 사업을 한 지 어언 30여 년이니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난 생활 또한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 그를 만나서 쉬이 볼 수 없는 삶을 들여다봤다.
동빙고동에 위치한 모로코 대사관 Owls Avenue에서 만난 김현우 씨의 나이는 거의 40대로 보였다. 아무래도 주한 외교사절들과 접촉해야 하는 업의 특성이 그를 젊게 만든 것일까? 외교관들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 연예인들, 셀럽들 또한 그의 집을 빌리기도 했었다. 특별한 이들을 손님으로 모시는 건물주로서 살아야 했던 그의 감각 또한 계속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30여 년 전에 시작된 거죠. 남대문에 대한화재 건물이 있었는데, 독일대사관이 그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독일대사관 사람들에게 저희 집을 내주면서 일을 시작했죠. 그 후로 계속 대사관과 주재원들에게 집을 빌려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글로벌 회사가 인정한 인테리어 감각
그는 손님의 니즈에 맞게끔 인테리어를 짠다고 말한다. 최근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인 추세는 컨템포러리, 미니멀리즘이란다.
“주거문화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롱패딩이 유행하면 모두가 롱패딩을 입지만, 서양 사람들은 개인의 개성이 다 달라요. 특히 독일 사람들을 25년간 겪었는데 굉장히 합리적이에요. 헤어질 때도 나이스하고. 독일 사람들이 인간으로 치면 명품이라고 봐요.”
요즘 그에게 가장 재밌고 즐거운 일 또한 인테리어다. 그는 자신의 감식안에 대한 모종의 자부심도 있다.
“덴마크에서 온 레고 코리아 대표님이 저희 집에서 사실 때가 있었어요. 그분이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제가 코디한 가구와 그림을 그대로 다 계약서에 넣어 달라고 요청하시더군요. 유러피언 미니멀리즘적인 인테리어로 한 거였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정말 희열을 느꼈죠.”
젊게 살려면 가구 공간부터
그렇다면 이제 그에게 인테리어에 대해 물어볼 차례였다. 과연 젊게 보이는 인테리어는 어떻게 해야 만들 수 있을까? 그가 볼 때 한국 주거문화의 문제점은 ‘너무 많이 갖다 놓는다’는 것이었다. 가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컨템포러리하고 미니멀하게 해야 해요. 나이 드신 분들은 제발 오래된 가구 버리고 요즘 디자인의 가구를 들이는 게 젊게 사는 비결이에요. 앤티크하거나 바로크적인 디자인의 가구는 나이 들어 보이거든요. 좀 더 모던하게 꾸밀 필요가 있어요.”
그가 중시하는 또 하나의 인테리어 조건은 컬러를 많이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주로 화이트와 그레이, 우드색을 활용한다. 한 집에 컬러를 서너 개 이상 쓰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것은 패션 쪽에서 말하는 ‘세 가지 색 이상을 입지 말라’는 말과도 통용된다.
“집은 자기가 평생 살 수 없어요. 반드시 이사를 가게 되어 있죠. 그래서 보편성에 맞춰야 해요. 맞춤에 있어 가장 좋은 것은 화이트예요. 화이트에는 그림을 걸어도 되니까 일종의 캔버스라고 생각하면 되죠. 그래서 저는 화이트를 많이 써요. 자기만의 컬러를 그 안에 넣어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독일의 포용력에서 많은 것을 배우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사업가로서의 그의 첫 인연이 독일이었고 지금도 그 연을 이어가는 만큼, 그는 독일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지금까지 중국을 육십 번을 갔어요. 아이 공부 때문에도 그렇고 가구 수입 등의 일이 있어서. 그런데 그때가 20년 전이었는데, 모든 대도시의 택시가 폭스바겐이더군요. 다른 회사택시는 하나도 없었어요. 차만 팔았을까요? 차가 팔리면 부속적인 파트들이 얼마나 많이 팔리겠어요.”
그가 본 독일 사람들은 계약이 끝나면서 안 좋을 수 있는 관계라도 끝까지 매너 있게, 상대를 배려하며 합리적으로 마무리 짓는 사람들이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이 주재원이라는 엘리트여서 그런 것인지는 모를 일이나, 그는 그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가 직원들에게 절대 싸우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떠한 일이든 절대 싸우면 안 된다고 가르쳐요. 분쟁이 생긴 후부터는 여러 가지 쌓이는 문제점들이 나오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게 되거든요. 분쟁은 최종적으로는 소송으로 가죠. 그러면 변호사 고용해야지, 서류 검토해야지, 증거 서류 준비해야지…. 내가 다 해줘야, 변호사는 그걸 보고 일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양보해라, 보듬어라’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의 사무실에는 ‘Sue Zero(소송 제로)’라는 말이 붙어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그가 소송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미국의 유능한 엘리트들은 소송을 피하는 기술을 알아요. 그게 필요해요. 정신적으로나 건강 면에서 너무 좋은 것이니까. 포용은 무섭고 강한 힘이 있지요.”
좋은 공기가 행복이다
그는 차에서든 집에서든 에어컨과 히터를 쓰지 않는다. 건조한 공기가 피부를 망가뜨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제주로 보냈다. 서귀포와 서울의 미세먼지 차이가 어마하게 나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다.
용인 세컨드 하우스에서 사는 것도 공기 때문이다. 용인의 산속에 자리한 그 집은 큰 도로에서 1000m 더 들어간 곳에 있는 숲으로 둘러싸인 트리 하우스다. 봄부터 가을까지, 금·토·일의 주말 동안은 그곳에서 난방을 하지 않은 채 지낸다. 봄과 가을은 춥지 않냐는 말에 그는 구스다운 이불과 두꺼운 잠옷 그리고 러시아 친구가 준 솔잎가루 베개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런 생활을 10년째 하고 있다.
“공기의 소중함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와 닿습니다. 차가 미세먼지의 주범이에요. 특히 디젤차. 최근에 판매된 승용차 대부분은 디젤차죠. 디젤차가 인센티브가 있고 연비가 좋으니 사람들이 많이 샀잖아요.”
그래서 그는 은퇴한 사람들이 도시에서만 살려고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디젤차로 가득한 서울 도심은 그에게 있어선 미세먼지 공장 같아 보일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하니까 이해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울에 너무 중심을 두죠. 은퇴 후 여유가 되면 근교로 옮기는 게 정말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흙냄새가 올라오는 집, 별과 하늘이 가까워 일상에서 마음의 치유도 가능한 곳입니다.”
월·화·수·목은 서울에서 금·토·일은 자신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용인 세컨드 하우스에서 힐링을 하는 그는 워라밸과 함께 휴양, 문화, 여가를 향유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말, 중용
그는 건물 관리를 하며 여유로운 인생 후반기를 지내는 중이다. 어찌 보면 누구나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시니어의 일상을 유유자적 보내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그도 30, 40대에는 일에 미쳐 있었다.
“일을 하면 미친 듯이 하던 시절이었죠. 이른 아침 논현동 건축자재상인들이 안 나왔다해도 일찌감치 가 있기도 하고 점심은 차에서 사과나 바나나만 먹으면서 지내고…. 그러다 독일 사람들의 삶을 보며, 저의 멘토들을 보면서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그가 선호하는 단순하고 절제된 감각은 그의 삶의 법칙과도 연결되고 있었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그가 ‘젊어 보이기 위해서는 절제하는 생활 습관이 중요하다’고 대답한 것도 사진의 취향이나 감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공자가 한 중용이란 말을 중요시합니다. 사람 관계도, 먹는 것도 밸런스가 중요해요.”
김현우 씨는 일과 취향, 삶까지 일치시킨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일치는 그에게 ‘지지부진하지 않고 군더더기가 없다’는 느낌을 부여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세운 법칙에 따라 자신을 오롯이 정렬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만족과 행복 덕분 아닐까. 그 쉽지 않은 길에 도착한 그의 모습이 부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를 만나기 전엔 그냥 몸이 좋은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본 순간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3세 보디빌더, 서영갑(徐永甲) 씨를 만났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민소매를 입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뿐이었을까. 민소매 밖으로 마중을 나온 근육을 보니 가히 83세의 몸매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서 씨의 자택으로 들어가자 또 한 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가 보디빌딩 대회에서 수상한 수십여 개의 트로피와 상장이 벽면을 빽빽하게 채운 걸로도 모자라 바닥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하 1층은 그를 위한 헬스 공간이다. 비록 삐까뻔쩍(?)한 최신식 운동기구는 없지만, 수년간 서 씨가 사용한 덤벨이며 벤치 등으로 꾸며진 이곳은 그의 보물 창고이기도 하다. 그와 보디빌딩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운동으로 되찾은 건강
1999년 교직에서 은퇴한 서 씨는 그해에 바로 헬스장에 등록했다. 운동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두 달 후에 열리는 ‘대구 미스터 대회’가 눈앞에서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늦은 나이에 보디빌딩을 시작하려니 아내는 “그런 곳은 젊은이나 나가는 곳이지 60대가 나가는 곳이 아니다”라며 “누구 욕 보일라 하는교, 하마 때려치우소!” 하면서 면박 아닌 면박을 줬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아내의 잔소리도 그의 도전을 막을 순 없었다. 그의 전략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
“삼시 세끼 밥 차려달라면서 집에 있는 것보단 나가서 운동하고 오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젊은 사람들과 겨뤄본다면 응원을 해주진 못할망정 반대를 하면 되겠느냐, 이런 식으로 설득을 했죠.”
첫 번째 고비를 잘 넘겼다고 생각했을 때 두 번째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바로 나이를 먹고 볼록하게 나온 배가 문제였다.
“트레이너가 몸 여기저기를 콕콕 찔러보다가 배를 보더니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보디빌딩은 근육미로 승부를 보기 때문에 배가 나오면 탈락이라는 거죠. 그래도 해보겠다고 하니 ‘그럼 한 번 빠짝 쫄라봅시더’ 하더라고요.(웃음)”
노년부가 따로 없던 시절, 중년부와 겨뤄 그가 거둔 성적은 다름 아닌 금상.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몸매를 관리하며 국내 최고령 보디빌더로 활약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보디빌딩 지도자 자격증과 심판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사실 그가 이토록 근육 단련하기에 열심인 이유가 있다. 약 40년 전, 영어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때의 일이다.
“새벽방송수업, 보충수업, 정규수업, 또다시 보충수업 그리고 야간수업까지, 고3들을 담당하다 보니 쉴 틈이 없었어요.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고장 나기 시작했죠. 처음엔 무릎이 아프더니 나중엔 허리까지, 어떤 방법을 써도 나아지지 않다가 근력운동을 한 뒤로 점점 좋아지더라고요. 그때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즐기는 자가 고수가 된다
그가 운동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 이때 운동은 수단이 되어야 하지 목표가 되면 불행해진다고 서 씨는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보디빌더는 다 한다는 식단조절도 그에겐 예외다.
“운동에만 집착해서 과욕을 부리면 어느 순간 취미가 아닌 과제가 되어버려요. 열심히 운동했는데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래서 저는 삼시 세끼 잘 챙기고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주저 없이 행복하게 먹습니다.(웃음)”
그가 운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꾸준함. 매일매일 실천할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는 항상 외출할 때 4kg 모래주머니를 양발에 차고 나가요. 운동은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꼭 헬스장이 아니더라도 운동할 수 있는 방법은 많죠.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즐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운동법을 찾아보세요. 즐기는 순간 고수로 향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지금처럼만”이라고 대답했다. 한 가지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다른 시니어에게도 운동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현재 그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근력 운동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운동을 하면 삶의 질이 바뀝니다. 나이 들었다고 포기할 게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꼭 도전해보세요. ‘브라보’한 라이프가 찾아옵니다.”
시니어 세대공감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주최한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가 11월 8일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인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는 의학과 문화가 만나는 신개념 콘서트로 주목받으며 올가을 세 번째를 맞았다. 비 내리는 날씨에도 300명에 가까운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알찬 건강 정보와 함께 우리 세대들이 공감하는 문화콘서트로 깊어진 가을 정취에 젖는 시간이었다.
이윤철 MBC 前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시작된 제3회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는 99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100세로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 강연으로 콘서트의 포문을 열었다. 꼿꼿하게 마이크를 들고 무대 앞에 선 김형석 교수. 강연에서 김 교수는 60세 이후에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서 독서를 권장했다. 강연이 끝나고 난 뒤에는 포토월 앞에서 팬들과 사진을 함께 찍는 여유로운 모습도 보여줬다.
이어서 겨울철 시니어의 건강관리에 집중한 명의들의 강연이 진행됐다. 자생한방병원 한창 원장이 겨울철 관절 관리에 관해 알기 쉬운 설명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한 원장은 건강을 위해 꼭 해야 하지만 이행하지 않는 6가지에 대해 금연, 금주, 골고루 잘 먹기, 적당한 운동, 체중 조절, 충분한 수면이라고 했다. 특히 무리하지 않는 꾸준한 근력 운동과 행복하게 웃는 삶을 지켜나갈 것을 강조했다. 리포터 출신 방송인 장영란의 훈남 남편으로도 친근한 한 원장은 톡톡 튀고 재미있는 강연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다음으로 예풍한의원 백태선 원장이 시니어의 겨울철 혈압관리에 관해 통쾌한 입담을 이어갔다. 백 원장은 추운 겨울철에는 굳이 밖에 나가 운동할 필요 없다면서 따뜻한 곳에서 체온을 유지하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좋다고 알려진 음식 챙겨 먹을 것 없이 고혈압 약처럼 꾸준하게 복용해야 하는 약을 잘 챙겨 먹는 것이라고 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삼겹살이든 뭐든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된다는 말에 객석에서 환호가 터졌다.
1부에서 명사와 명의의 알찬 강의를 마치고 2부는 건강 강연에 집중했던 머리를 식히는 순서로 진행됐다. 평균 나이 75세 시니어 치어리터팀 ‘낭랑18세’가 무대에 올랐다. ‘나비야’와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에 맞춰 분홍빛 율동을 선보였다. 뒤이어 ‘가을사랑’, ‘소중한 사람’을 부른 가수 신계행이 무대에 올라 가을 노래 선물을 했다.
신계행은 “오랜만에 카메라 세례를 받는 것 같다”며 열성으로 콘서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관중들을 향해 감탄 섞인 멘트를 보내 성원에 화답했다. 우리나라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대명사인 가수 김목경도 자리를 빛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곡을 쓸 당시 20대였다며 지금 보니 60대가 절대 노인이 아니라고 말해 강연장 안이 웃음바다가 됐다. ‘부르지 마’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부른 후 앵콜이 터져 나와 준비돼 있지 않았던 곡 ‘처음 그리고 그 다음에’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평소 중요하고 큰 무대에서만 모습을 보이던 가수 김목경. 시니어 관중을 대하는 블루스 대부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경품 코너에서는 행운의 주인공 32명이 나왔다. 1등 당첨권인 호텔 숙박권 당첨자는 노래를 불러달라는 이윤철 아나운서의 짓궂은 요구에 ‘빗속의 여인’을 율동과 함께 불러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콘서트를 마무리했다.
특히 이번 제3회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에서는 동년기자단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변용도 동년기자는 ‘브라보 잼잼TV’ 유튜브 채널에 실시간 중계를 맡았고 김미나, 김영선, 박혜경, 정용자 동년기자는 헬스콘서트 영상 제작에 참여해 종이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함께했다. ‘브라보! 2018 헬스콘서트’는 이투데이, NH농협은행, NH투자증권, 위지트, 파워넷, 종근당, 쉐라톤 서울 팔레스 강남 호텔, 보령제약, 동국제약, 한국고령화산업포럼, 미러톡톡, 로이스튜디오, 매일유업, 제아치과, 한얼리치화장품이 후원했다.
1년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맘때가 되면 무언가에 홀린 듯 찾아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토정비결이다. 그러나 운세를 살펴보면 여름엔 물조심을 하라는 등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뻔한 조언은 쓸모없는 것일까? 때론 그렇지 않다. 시니어의 겨울철 건강관리도 그렇다. 새로운 내용처럼 들리는 조언은 많지 않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당연한 ‘기본’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서민석 교수(徐敏碩·37)를 만나 날이 추워지면 건강을 위해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아봤다.
겨울철 시니어 건강관리는 왜 평소와 달라야 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해 서 교수는 ‘온도와 습도’를 이유로 지목했다.
“기온이 떨어지면 체온도 함께 떨어집니다. 체온이 내려가면 면역력이 약해져 감기와 같은 호흡기 질환이 잘 생깁니다. 또 추워지면 혈관이 수축돼 혈관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건조한 공기는 눈, 코, 입 등 인체 곳곳의 점막을 마르게 해요. 점막이 마르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투가 쉬워집니다. 결국 이것들이 병이 일으키는 이유가 되기도 하죠. 실제로 겨울철에는 중장년 환자들이 병원에 많이 오십니다. 평소보다 더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겨울 아침 운동은 毒, 피해야
서 교수는 특히 낮은 온도와 관련해 조심해야 할 것으로 ‘운동’을 꼽았다. 겨울철 이른 아침에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치명적인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는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이라는 것이 있어요. 아침에 수면에서 깨어나면 교감신경이 각성되면서 심장박동을 빠르게 해줍니다. 가만히 있어도 빨라진 심장 박동 때문에 혈압이 높아지는데, 이 상태에 운동까지 하면 혈압이 위험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게다가 낮은 기온은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이 오르게 하는 또 한 가지 원인을 제공합니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지면 뇌혈관이나 심장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되는 상황까지 초래될 수 있어요. 겨울 이른 아침엔 운동보다는 집 안에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집 안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서 교수는 겨울철에도 몸을 움직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만 오후 2시 전후로,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높을 때 움직이거나 수영, 아쿠아로빅과 같은 따뜻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집 안에서 땀을 흘릴 정도로 운동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적어도 스트레칭 정도는 꾸준하게 하셔야 합니다. 추운 날씨에는 몸이 움츠러들기 때문에 관절과 근육을 이완시켜 풀어주는 것이 좋아요.”
서 교수는 온도는 면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체온이 낮아지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나 폐렴 등에 쉽게 걸릴 수 있다는 것. 결국 영양제를 몇 알 챙겨먹는 것보다 방안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체온과 면역력의 관계가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된 것은 아닙니다. 이유는 아직 정확히 모르지만 체온이 낮아지면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것 정도만 밝혀진 상태죠. 흔히 으슬으슬 추위를 느끼면 기운이 없다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실제로 이런 환자들은 정확히 병명을 진단할 수 없는 애매한 증상을 호소하곤 해요. 외부 기온에 대해 체온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열이 나지는 않는데, 으슬으슬 춥다고 느끼고 피곤하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있어요. 의사들은 체온 조절을 위해 에너지를 더 쓰다 보니 기운이 없다고 느끼는 것 아닌가 추측하죠. 감기를 앓을 때 열이 나는 것도 면역세포가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체온이 낮아지면 바이러스를 막기가 더 어려워지겠죠. 그래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추리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니어는 체온조절 능력이 젊은이보다 부족하고 민감해요. 그래서 체온유지에 더욱 유의해야 합니다.”
서 교수는 떨어진 면역력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예방접종을 추천했다. 가장 적극적인 대응 중 하나라는 것. 65세 이상은 폐렴구균과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이 모두 무료다. 폐렴구균 백신은 보건소에서 연중 무료접종이 가능하며, 올해 무료 접종이 시작된 인플루엔자 백신은 11월 16일부터 백신 소진시까지 보건소에서 맞을 수 있다.
때수건 함부로 쓰지 마세요
서 교수는 겨울철 공기가 건조한데, 난방으로 인해 습도가 더 낮아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간의 몸은 외부 자극에 노출될 때 방어기전을 작동시켜요. 눈물이나 콧물, 기침 등이 그런 것이죠. 외부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줍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건조하면 눈, 코, 입의 점막도 건조해져 방어기전이 약해집니다. 겨울에 호흡기 질환이 잘 일어나는 또 하나의 이유죠. 따라서 방안에 빨래나 젖은 수건을 널어놓는 등 노력이 필요합니다.”
건조함이 불러오는 또 다른 건강 이상증상은 바로 피부다. 나이가 들면 피부가 건조해지는데 공기까지 건조하면 더욱 심한 건조 증상이 나타난다. 서 교수는 이때 필요한 것은 세정이 아니라 보습이라고 강조했다.
“피부에 하얗게 일어나거나 각질이 발생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심할 경우 가려움증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때 무리하게 씻거나 제거하려 하면 피부만 더 상해요. 하얗게 일어난 피부를 때라고 생각해 때수건으로 빡빡 밀기도 하는데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자주 씻는 것도 피부를 건조하게 만들어요. 씻을 때는 반드시 보습제를 발라 피부를 보호해주셔야 합니다.”
겨울엔 “잘 먹고 잘 자자”
그렇다면 이번 겨울도 건강하게 보내려면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 서 교수가 내놓은 대답은 간단했다. 바로 ‘잘 먹고 잘 자는 것’.
“수면 부족은 스트레스가 쌓이게 만들어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래서 잘 자는 것이 중요한데,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는 어르신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생활 패턴을 살펴보면 낮잠이 원인인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겨울철엔 활동반경이 좁아지고 운동량이 줄어 더더욱 수면장애가 발생할 수 있어요. 밤에 푹 잘 수 있도록 낮에 많이 활동하고, 낮잠은 피해야 합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골고루 잘 먹는 것이 중요한데 적지 않은 중장년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겨울철엔 과일이나 야채가 흔하지 않아 김치나 젓갈 같은 밑반찬으로만 식사를 하시는 분이 많은데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어요. 건강보조식품 맹신보다는 평소 식사를 풍성하게 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특히 단백질 섭취가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 고기도 챙겨 드시고요. 골고루 잘 먹으라는 걸 잔소리라고 말씀들 하시지만 실제로는 잘 지키지 않아요.”
또 겨울철 체온이 낮아졌을 때 몸을 덥히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위험할 수 있다고 서 교수는 경고한다.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혈관을 확장시켜 온몸에 따뜻한 피가 잘 도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체온을 빨리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추위를 견디기 위해 술을 마시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서 교수는 마지막으로 지역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자주 개최하는 ‘건강 강좌’에 참여하는 것도 건강한 삶을 지키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꽤 많다”면서 “그럴 때는 건강강좌에서 알려주는 자세한 방법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어디로 귀촌할까, 오랜 궁리 없이 지리산을 대번에 꾹 점찍었다.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단다. 젊은 시절에 수시로 오르내렸던 산이다. 귀촌 행보는 수학처럼 치밀하고 탑을 쌓듯 공들여 더뎠으나, 마음은 설레어 일찌감치 지리산으로 흘러갔던가보다. 지금, 정부흥(67) 씨의 산중 살림은 순조로워 잡티나 잡념이 없다. 인생의 절정에 도달했다는 게 아닌가.
처음엔 미친 짓이라는 소리를 흔히 들었다지. 정부흥 씨는 임야 1만8000평을 사들여 일을 개시했다. 이 거창한 행세에 쓴소리들이 난무했던 모양이다. 외지고 으슥하고 가파른 산 덩어리여서다. 긴 고행이 빤히 보여서다. 그러나 기꺼이 자청한 고행은 고행이 아니라 순행(順行)이다. 절박한 눈으로 뒤를 돌아본 정 씨는 도시에서의 지난 생이 오히려 고행에 가까웠음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어라? 나를 목줄 채워 끌고 다닌 도시를 벗어나겠다는 데 왜들 난리람! 아마도 그쯤의 생각과 각오가 머릿속을 굴렀을 게다.
정 씨는 전남대학교 자원공학과를 나온 공학 박사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다 2012년에 퇴직했다. 임야는 은퇴 이전에 이미 사뒀다. 수시로 터를 드나들며 정을 붙였다. 귀촌 마스터플랜을 근사하게 준비하고서 임야에 길을 닦고, 기반공사를 하고, 임시 거처를 지었다. 퇴직 후에는 완전한 이주를 하고 본집을 거하게 지었다. 크고 너른, 반듯하고 웅장한 그의 거처는 이제 숲속 대궐에 가깝다. 부부 단둘이 살기엔 너무 방대한 규모로 보이지만 정 씨의 꿈과 이상이 실린 공간이다. 그의 수완과 통과 너름새가 비치는 구색이다.
터에 들어선 품목들이 크고 많으니 해온 일, 헤쳐나온 시련이 산더미였을 것이다. 신역도 신산(辛酸)도 자심했을 테지. 그러나 그는 일에 신명을 냈더란다. 오지게 터진 일복에 심취할 절호의 찬스를 만났다는 투로. 그렇다면 그는 근력 짱짱한 장한(壯漢)? 실은 정반대다. 지병을 달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50대 후반쯤 당뇨병 여파로 들이친 풍을 맞아 반신마비에 빠졌고, 강철 같은 의지로 마비에서 탈출했으나 여전한 당뇨는 신중히 관리하며 지내왔다. 지리산으로 가자, 그게 살길이다! 그는 그렇게 부르짖으며 산중으로 귀촌했다. 몸이 망가졌으니 흐느껴 나온 생각들이 많았을 게다. 마음의 비장한 물결에 젖어 한탄을 거두고 속으로 다진 것도 많았을 테지. 그럴 즈음 지리산이 그를 호명했고, 그는 득달같이 응했던 모양이다. 이 불운하고도 야무진 사람의 눈은 단춧구멍처럼 간신히 째졌을 뿐이지만, 얼굴엔 자주 홍소(哄笑)가 출렁거린다.
“직장생활이라는 게 스트레스 많은 정신노동의 연속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두주불사가 잦았어요. 결국 몸을 망쳐 당뇨와 뇌졸중이 겹치는 지경까지 갔던 겁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극심한 시련이었죠. 5년여에 걸친 재활치료로 다행히 반신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대로 계속 도시에서 살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귀촌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어요.”
“귀촌이, 산골생활이 건강을 호전시킨 셈인가요? 귀촌을 통해 중병을 고쳤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두 가지 요인에 힘입어 건강을 도모할 수 있었어요. 하나는 아내의 헌신적인 조력입니다. 까다로운 식이요법을 아내 덕분에 철저하게 행해왔으니까. 생명의 은인이랄까, 그런 아내에게 제가 꼼짝을 못합니다.(웃음) 또 하나의 요인은 귀촌을 해서 만난 좋은 자연환경이에요. 숲길을 날마다 걸었어요. 배수진을 치고, 즉 목숨을 걸고, 운동 아니면 죽음이다, 라는 각오로 줄기차게 걸었죠. 요즘도 마찬가지예요. 아직 당뇨병이 있지만 내 몸 안에 들어온 평생 친구라 생각하며 관리하는 중이에요.”
“이 너른 터전과 다수의 건조물, 숲과 텃밭, 이런 것들을 어떻게 능히 짓고 가꾸고 관리해왔죠? 온전치 않은 건강으로 말이죠.”
“젊음과 자금력, 이 둘의 추진력이었어요.”
“인생의 하오에 젊음이라니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이 산골에 들어온 초기엔 엄청 젊었던 것 같아요. 하늘을 잡고 도리뱅뱅이질을 쳤죠. 무모하긴 했어요. 그거 아세요? 저희 같은 연구원들의 특질이 뭐냐면, 항상 도전한다는 거.”
끊이지 않았던 사건 사고
그가 도전한 종목은 여럿이다. 귀촌의 성공 모델을 본때 있게 실현하겠다는 것, 몸을 아끼기보다 닳도록 써 건강을 살리겠다는 것, 자연과 호형호제하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겠다는 것, 오누이처럼 부부가 다정하게 잘 늙어 여생을 동행하겠다는 것. 가련하고 허무한 게 인생사이지만 선한 지향이 뚜렷한 사람의 발길엔 정채(精彩)가 서린다. 안간힘을 다하면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그는 열렬한 활보로 귀촌의 나날들에 생기를 부여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정 씨는 거의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해왔다. 울울한 숲을 파헤치는 토목공사를 주도했다. 귀촌을 위해 미리 배워둔 목공기술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목공실을 만들어 수많은 목재를 손수 자르고 깎고 다듬었다. 3차원 건축설계 소프트웨어를 활용, 60평과 40평짜리 두 채의 집 설계도 직접 해치웠다. 건축 공사도 업자에게 도급을 주지 않고 직영했다. 이 많은 일들을 해내는 중에 사고도 많았다지. 요상하게 줄줄이 이어진 사건기록을 들어보시라.
“귀촌 초기, 사건 사고들이 끊이질 않았어요. 한번은 석축을 쌓다가 바윗돌에 깔렸는데, 발목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집디다. 덕분에 반년 동안 깁스를 했고, 1년 반 정도 재활치료를 받았죠. 포클레인 작업 중 전복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기도 했어요. 예초기로 풀을 베다 벌집을 건드려 벌떼의 집중 공격을 당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응급실에 실려가 누울 수밖에 없었고요. 하하핫! 아내에게도 역시 사고가 많았어요. 집사람이 소형 덤프트럭을 몰아요. 어느 날 언덕에서 트럭이 뒤집혀 굴렀어요. 해충과 독충에게 시달리는 건 소소한 일상이었죠. 아내는 독사에게도 물렸어요. 응급실에 달려가 해독주사를 맞고 위험을 면했죠.”
“아이쿠, 괜히 산골에 왔어, 돌아가야겠어, 그런 회의는 없었나요?”
“모든 사고들이 알고 보면 다 인재(人災)였어요. 숙달 과정으로, 필수적인 시행착오로 여겼어요. 요령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요. 회의나 후회는 조금치도 없었고요. 산골살이는 오래 묵은 꿈이었으니까.”
“대부분의 아내들은 귀촌에 흥미를 못 느껴요. 고생길이 훤히 보여서죠. 잘난 당신이나 혼자 내려가소서! 그런 소리 나오기 십상이죠.”
“산골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정서가 기본적으로 필요하겠죠. 조용한 자연 속에서 과연 즐겁게 살아갈 소양이 있는가를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는 거. 저나 아내는 그런 면에서 시골과 적성이 맞았어요. 그러나 아내가 귀촌을 선뜻 동의하진 않았어요. 지역 선정에 반영할 네 가지 조건을 겁디다.”
“어떤?”
“대학병원 수준의 병원이 15분 안짝 거리에 있는 곳, 평소 늘 해왔던 요가를 계속할 수 있는 요가원이 있는 곳, 수필가로서 독서를 좋아하는 아내가 쉽게 찾아갈 도서관이 있는 곳, 항상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 이렇게 네 가지였어요. 이곳 구례군은 갖가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아내의 요구조건을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지역이죠.
저절로 생긴 수입
마당에 서서 바라보는 경관이 후련하고 수려하다. 노고단을 중심으로 어깨를 겯고 일렁이는 능선 마루로 파란 하늘 자락이 겹쳐진다. 빼어난 뷰! 동향으로 앉은 집이니 새벽이면 침실 창으로 햇살이 두근대며 들이칠 게다. 집 뒤 숲엔 편백나무 수림이 조성돼 있고, 숲 사이로는 구불구불 휘어지는 산책로와 정자를 꾸며뒀다. 뭐 하나 빈틈도 결함도 없어 보이는 입지이자 장원(莊園)이자 저택이다. 이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정 씨는 서울에 있었던 아파트 두 채를 처분했다.
이제는 수고롭게 돈 버는 일은 작별이야. 부부는 그렇게 합의하고 내려왔다. 그러나 돈이 저절로 들어오는 일이 생겼다. 뜻밖의 수익이란다.
“저희 임야 안에 고로쇠나무들이 다수 있어요. 봄철이면 수액을 받는데, 이걸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 약간의 노동이 필요한 채취 작업을 해 연간 1000만 원쯤 수익을 올립니다. 비워두었던 아래채 2층집에서도 수입이 발생할 걸 미처 몰랐어요. 1층은 월세를 주고, 2층은 민박 손님을 받았더니 해마다 1000만 원 정도의 돈이 들어오더라고요. 가끔 귀촌인 상대의 목공 강의를 통해서도 약간의 강사료가 들어옵니다. 이렇게 모아지는 자금은 해외여행 경비로 씁니다.”
이래저래 이젠 순풍에 미끄러지는 돛배처럼 순항이다. 지루하진 않을까? 그렇잖아도 함께 오래 살아온 부부가 새삼 24시간을 늘 같이 지내야만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귀차니즘’이 풍선처럼 부푸는 건 아닐까?
“제가 집사람에게 독불장군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요. 간간이 마찰이 없을 리 없죠. 대판 다투고 난 뒤 아내가 잠시 가출을 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런 일을 겪으면서 나름의 독립적인 생활방식을 찾게 됐어요. 오전엔 같이 텃밭이나 마당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함께 산책을 하지만 저녁식사 후엔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 각자의 일을 합니다. 아내는 1층에서, 저는 2층에서.”
“귀촌인들은 흔히 조언해요. 가급적 집을 작게 지어라! 작은 집이라야 유지 관리가 쉽다는 얘기죠. 선생께서 집을 크게 지은 이유는 뭐죠?”
“내 손으로 한 번은 집다운 집을 제대로 짓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어요. 자손들이 찾아오면 맘껏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도 싶었고. 하지만 바람직한 집은 아니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곤 해요. 우리 둘 가운데 하나만 남을 날이 머잖아 찾아올 텐데, 그땐 혼자서 이 너른 집과 터를 어떻게 간수할꼬, 그런 염려도 생기고.”
“산골살이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죠?”
“계절마다 달마다 날마다 다변하는 자연을 느끼며 배우며 사는 즐거움이 으뜸입니다. 몸이 녹아나는 혹독한 노동의 날들도 즐거웠어요. 건강을 유지할 에너지를 얻었으니까. 뭔가 떳떳하다는, 죄짓지 않고 산다는 기분 역시 노동을 통해 실감했어요. 노동에 휴식을 가미한 생활방식을 취하면서는 만족감이 더 커지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인생의 정점에 올라섰다는 행복감이 커요. 그러나 모자란 사람일 뿐이죠. 자연은 저토록 온전한데 나는 틀려먹었구나!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불가(佛家)에서 가르치는 ‘공(空)’을 마음속으로 늘 되뇌이고…. 한 마리 배추벌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걸 또한 기억하려 하고….”
세상의 탐욕과 광기가 침범 못할 이 고요한 산중. 몸 낮춰 마음을 평온으로 채운다면 고요마저 열락(悅樂)이겠지.
정부흥 씨가 주는 귀촌 Tip
•사전에 시골생활을 체험하자. 한두 달로는 부족하다. 최소한 1년 정도는 월세 집이라도 얻어 살며 물정을 파악하는 게 좋다.
•집을 지을 경우 사전에 집짓기 교육을 받아두는 게 좋다. 건축은 업자에게 맡기지 말고 직영을 하자. 건축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대신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귀촌생활에 텃밭은 필수다. 그래야 적당한 노동의 즐거움을 누리고, 깨끗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