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수(55) 씨는 남편을 도와 석재 일을 한다. 석재 일은 건설과 관련된 일로 여성이 일하기 힘들다는 시선이 존재한다. 그런 시선 속에서도 김 씨는 늘 꿋꿋하고 씩씩하다. 활력 넘치는 김옥수 씨는 “워낙 활동적이고 운동도 좋아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김옥수 씨는 본격적으로 남편과 같이 일할 생각이다. 부부는 건설업 면허를 내려고 하는데, 대표자가 두 사람이기 때문에 두 개의 자격증이 필요했다. 남편은 석재와 관련된 자격증이 있으니, 김옥수 씨는 방수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옥수 씨는 2년 전에 처음으로 방수기능사 자격증 취득에 도전했다. 남양주시에 거주 중인 김 씨는 “당시에는 인근에 건설학원이 없어서 서울까지 갔다. 그러나 시험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자격증 취득에 재도전했다. 마침 남양주시에 한국건설직업학원이 생긴 터였다.
약 한 달 한국건설직업학원에 다닌 김옥수 씨는 실기시험 연습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더운 여름에 시험을 봤어요. 잘 알려져 있듯이 허리도 아프고 시험 시간이 2시간을 넘기 때문에 많이 힘들더라고요. 땀 뻘뻘 흘리면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오기를 갖고 시험을 봤습니다.”
결국 두 번째 도전에 성공, 7월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김옥수 씨는 방수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 도움을 받는 부분이 많고 뿌듯함을 느낀다.
“이번에 옥상 시공을 할 때 보니까 방수에서 배운 것과 방법이 비슷하더라고요. 옥상 방수를 할 때 두툼한 시트가 아닌 창호지처럼 얇은 것을 깔고 그 위에 방수액을 뿌리거든요. 이렇게 접목해가는 것이구나, 아는 만큼 보이는구나를 느꼈어요.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즘 김옥수 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방수기능사 전파자’로 활약 중이다. 방수기능사는 정년이 없기 때문에 은퇴하는 동년배 세대에게 추천하고 싶은 직업이다. 실제로 70대에도 현직에 계시는 분들을 종종 본다고.
“지금 제 주위를 보면 퇴직하는 사람이 많아요. 아직 젊은 나이인데 15년, 20년은 더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한테 방수기능사를 권유하는 이유는 전문 기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1년이고 2년이고 쫓아다니면서 일을 배우고 경험을 쌓으면 전문가가 되고,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거죠.”
김옥수 씨는 남편 덕분에 건설 일을 하게 됐지만, 자신의 흥미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김 씨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한옥에 관심이 많아서 다음에는 목재나 목공 관련 자격증을 따보려고 한다”고 힘차게 말했다.
“친구들은 방수기능사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 아니냐고 물어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하죠. 전에는 먹고살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고 말이죠. 사람이 쉰다고 가만히 있으면 돈도 못 벌고 더 병드는 법입니다. 그래서 움직이면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자고 많이 얘기합니다!”
일본 중장년의 과반수가 수입보다 보람을 중시한 일을 선호하며, 이러한 경향은 연령에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총무성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일본 취업자 수는 2004년 이후 18년 연속 증가, 지난해 고령자 취업률은 25.1%(약 909만 명)에 이르렀다. 연령대별로 보더라도, 65~69세 취업률은 10년 연속, 70세 이상의 취업률은 5년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구인 검색 엔진 인디드 재팬(Indeed Japan)에서도 ‘70대’ 키워드 검색이 증가하며, 노인 직업을 찾는 이가 늘어나는 경향이다. 이에 따라 인디드는 10월 ‘고연령자 취업 지원 월간’을 맞아, 50~79세 남녀 1800명을 대상으로 ‘시니어 세대의 취업’에 관한 의식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대의 경우 4명 중 3명꼴로 ‘일하고 싶다’, ‘일할 필요가 있다’라는 욕구를 드러냈으며, 전체적으로도 시니어의 58.3%가 같은 반응을 보였다. 특히 현재 취업 상태인 중장년의 경우에는 약 90%가 ‘계속 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시니어가 일자리를 선택할 때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일까? 응답자의 58%는 ‘수입보다는 보람이나 사회공헌 등을 더 중시한다’고 말했다. 앞서 일에 대한 욕구가 있는 이들 중에서는 60.2%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보람을 중시하는 경향은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50대의 경우 보람형 일자리에 대한 선호도가 49.5%에 그쳤지만, 60대는 56.8%, 70대는 67.7%로 그 비율이 상승했다.
한편 일에 대한 의욕과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나이 들어 일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상당했다. 응답자의 92.7%가 ‘일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문제를 겪고 있다’는 심정을 밝혔다. 가장 큰 이유로는 ‘건강 상태에 대한 염려’(59.6%)를 꼽았다.
아울러 응답자의 과반수(55.9%)가 중장년기 커리어에 대해 구체적으로 검토 및 준비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 시점에 대해 묻자 3명 중 1명은 ‘60대 이후’(33%)라 답했고, 그 다음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한 연령대는 50대 후반이었다(31%). 구체적인 방법을 시도해보지 않은 경우도 23.9%로 적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후지무라 히로유키 호세이대학 교수는 “중장년기 커리어를 고려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며 “조사에서 3명 중 1명은 60세 이후로 이러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시점을 50세 정도로 앞당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히로유키 교수는 “이번 조사에서 일에서의 수입보다 보람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연금 등으로 일정 자금이 마련된다면 일하는 주 목적을 사회와의 연결에 두고자 할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때 자긍심을 느끼며, 이는 노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나의 능력을 거래하는 ‘재능마켓’은 은퇴 후 구직난 속 시니어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능력과 기량을 뽐낼 기회의 장이 되는 것. 또 나이가 들면서 풀타임(Full time) 근무가 체력적으로 버거운 시니어에게도 좋은 대안이 된다. 취미 여가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 중장년 인재 매칭 플랫폼 ‘탤런트뱅크’,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 전문가 서비스 매칭 플랫폼 ‘숨고’ 등이 대표적인 재능마켓이다.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시니어들에게 재능마켓은 도전 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왠지 2030을 위한 장일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일단 하나씩 시작해본다면 시니어에게도 재능마켓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좋은 기회가 된다. 재능마켓에 도전해보고 싶은 시니어를 위해, 먼저 그 시장에 뛰어든 시니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60대 후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었다. 2007년 12월 제주 올레길이 처음 시작되면서 서울에서 제주를 자주 오고 갔다. 그러면서도 도시를 벗어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 안에서 느닷없이 서귀포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알레올레 차방’을 운영하는 배정자(81세) 씨는 제주로의 귀촌이 “운명적이었다”고 말했다.
‘알레올레 할머니의 차방’은 배 씨가 프립을 통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2만 원을 내면 그녀의 집 거실에서 그녀가 가꾼 차밭을 감상하며 그녀가 키운 꽃을 말린 꽃차를 내리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 차와 함께 곁들이는 색색의 구절판 다식은 눈도 마음도 즐겁게 해준다. 이곳에 다녀간 이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Q 2009년 2월 서귀포로 귀촌하고 에어비앤비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 서귀포로 내려오면서 무엇을 할지 정하고 온 건 아니었어요. 당시에는 제주 올레길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숙소가 많이 없었거든요. 지인이 올레길을 가려 하는데 재워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죠. 그래서 에어비앤비를 하게 됐어요. 잠자리뿐만 아니라 아침도 만들어 제공했어요.
Q ‘알레올레 할머니의 차방’은 언제부터 하시게 되었나요?
제가 뜰을 가꾸는데, 꽃이 많아요. 2013년인지 2014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그때 우연히 꽃차 교육이 있는 걸 알게 되어서 배웠거든요. 그러면서 꽃차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어요. 이후에 꽃차 체험을 하러 온 관광객들을 위한 프로그램 강사로 조금씩 활동을 하게 됐지요. 또 뜰에 있는 꽃으로 차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나누기도 했고요. 그러다 지난해 12월부터 프립에서 꽃차 호스트로 활동하게 되었죠.
Q ‘알레올레’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알레는 불어에요. 영어로 말하자면 'go!'의 의미죠. 어딜 가라는 뜻은 아니고요. 유럽의 축구 경기를 보면 응원할 때 ‘알레! 알레!’ 하고 외치는 걸 볼 수 있어요. “자자, 열심히 해! 뛰어! 힘내!”라는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는 말이에요.
올레는 제주 올레길의 올레입니다. 이전에 에어비앤비할 때 알레올레라는 이름을 썼는데요. 이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서 알레올레 차방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Q 차방을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지난해에 80세가 됐어요. 나이가 드니 제일 걱정되는 게 “내가 치매에 걸리면 어쩌나” 싶더라고요.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가 나를 알고 제대로 살다 가야 할 텐데 싶더라고요. 아마 내 나이쯤 되면 다들 치매를 두려워할 거예요.
그래서 운동도 하고 노력도 했지만, 사실 나이 들어가며 가장 부족해지는 게 사람들과의 소통이에요. 만나는 사람들도 제한적이죠. 온종일 서너 마디 할 때도 있어요. 이렇게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정말 치매 문제가 생길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무의미한 일상을 좀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요. 내가 좋아하는 찻자리를 열어 젊은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시작했죠.
Q 온라인 플랫폼으로 차방을 시작하신 건데,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우리는 아날로그 세대잖아요. 제가 인스타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또래와 비교하면 많이 하는 편이지만, 디지털 시스템이 노인이 하기에 그렇게 편하지가 않아요. 그래도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조금씩 해나가고 있어요. 적극적인 마음으로 배우려고 하면 누구든지 하실 수 있을 거예요. 플랫폼을 사용하면 무작위로 사람들이 오는 게 아니라 시간을 약속하고 예약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Q 많은 분들이 수익을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모든 시간에 모든 사람을 꽉 채워 운영하고 있지는 않아요.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어서 그래요. 하루에 평균 두 팀 정도 하는데 가장 적을 때는 두 사람이 왔다 가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충분히 넉넉한 용돈 정도를 얻고 있습니다. 아, ‘노인’에게 넉넉한 용돈이에요.(웃음)
Q 어떤 분들이 많이 오시나요?
20대 중후반부터 70대까지가 저희 차방을 찾는 고객들인데요. 자제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지고 찾아오니 매일이 다르잖아요.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Q 운영은 어떻게 하시나요?
전체 손님 중에 한 40% 정도가 혼자 오세요. 제 프로그램은 원래 한 타임당 4명 정도를 받게 설계했는데, 모르는 사람들끼리 함께 하는 예약은 거의 안 받아요. 만약 혼자 오신다면 한 분만 받아요. 이곳에 와서 이야기하면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매우 많으시거든요. 요즘 젊은 분들이 고민도 많고 아픔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과 섞이면 진솔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잖아요.
저는 차방을 비즈니스로 생각해서 수입을 내려는 목적이 아니었어요. 찾아온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인생을 먼저 살아온 선배로서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거든요. 할머니가 손주 이야기를 듣고 “이러면 더 좋지 않을까~? 할머니 생각은 이래.” 정도의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제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볼 때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Q 여러 사람과 소통하고 싶었던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맙게도 어떤 세대와 이야기를 해도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고, 찾아온 손님들도 만족해하시고요. 어느 연령대가 오더라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스스로에게도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소기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 오는 손님들에게 방명록을 받아요. 우리는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을까 싶은 건 방명록에 안 쓰는데요.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아니면 아니라고 한다면서요?(웃음) 고맙게도 차방을 운영하는 10개월 동안 많은 분들이 방명록에도, 프립에도 좋은 리뷰를 많이 적어주셨어요.
차방을 찾아주는 분들을 굉장히 고맙게 생각해요. 알레올레 차방에 오시는 모든 분들은 저에게 ‘귀한 선물’이에요.
지난해 말 미국은퇴자협회(AARP)와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제2의 인생 연구’에서 미국 고령자를 대상으로 ‘노화’의 개념을 재정립했다. 연구에 참여한 시니어들은 건강, 재무, 관계, 죽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의 관념과는 다른 생각을 내놓았다. 그 결과부터 요약하자면, 이전보다 노화를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연재를 통해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그 두 번째 순서로 ‘돈과 일’에 대해 알아봤다.
‘제2의 인생 연구’에 따르면 70세 이상 미국인의 절반 이상은 자신의 재정 상태를 우수하게 평가했다. 이는 근래 미국 중장년이 은퇴 후 저축된 노후 자금에 한계를 느낀다는 여타 보고서들과는 상반된 반응이었다. AARP는 “요즘 시니어들은 저축한 자산이 부족할지라도, 그 안에서 절약하며 생활하는 노하우를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사례자 중 56세 재키 씨는 “예산에 맞추기 위해 늘 절약한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올라 걱정은 되지만, 그만큼 더 엄격하게 생활비를 관리할 계획이다. 절대 내가 가난한 노인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이러한 노인들의 재정적 현실은 젊은 층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타났다. 젊은 응답자의 약 37%는 은퇴 후 사회보장연금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실제 고령 응답자의 94%가 사회보장제도에 의존한다고 밝혔다. AARP는 “오늘날 삶의 패턴을 보면, 성인이 되어 약 40년 일하고 은퇴 후 20년가량 노후를 보낸다. 따라서 20여 년의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저축이 필수”라고 당부했다.
한편 한국 시니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박지혜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연구원은 “우리나라 가구 지출 통계에 따르면 고령일수록 평균 가구 지출이 낮아진다”며 “소비 자산에 맞춰 절약한다고 볼 수 있다. 70대에는 외식 등 재량소비 비중이 50대의 절반으로 줄고, 식료품, 주거·관리비, 보건 등 필수재 위주로 소비하며 노후를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45%가 국민연금을 받고 있고,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기초연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사회보장제도에 의존하여 생활하기엔 충분하지 않아 다른 노후 소득원과 생활비를 고려해 은퇴 자금 활용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4%의 법칙이 깨지고 있다
널리 알려진 은퇴 자금 관리법 중 ‘4%의 법칙’이 있다. 은퇴 첫해에 저축한 자산의 4%를 꺼내 쓰고, 이듬해부터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금액만큼만 늘려 쓰면 최소 30년간 자금 고갈 없이 지낸다는 것. 이에 AARP는 최근 유례없이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개인에 따라 4%보다 적게 써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가능한 한 저축 기간을 늘리고, 사회보장연금 수령 기간을 연기할 것을 조언했다.
이에 박 연구원은 “노후 자산을 인출할 때 물가상승 위험에 대한 대처와 은퇴 자산의 유지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며 “4%의 법칙을 따르면 은퇴 기간 구매력을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단 과도한 물가상승 시 은퇴 자산 소진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으니 초기 인출액을 적절히 낮은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한국의 경우 국민연금 노령연금 수급 개시 나이는 62세에서 65세까지 단계적으로 조정되고 있다. 희망한다면 정상 수급 시점보다 최대 5년까지 연금을 앞당기거나 늦춰 받을 수 있는데, 그만큼 연금액은 재조정된다. 연금저축 및 퇴직연금은 55세부터 수령 가능하므로 퇴직 후 공적연금 수급 전까지 소득 공백기 대비책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은퇴 택하는 美 시니어, 한국은?
한편 많은 미국인이 자신의 예상보다 빨리 은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퇴직자의 57%는 65세 이후 은퇴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82%가 64세 이전에 은퇴를 맞았다. 대다수 응답자는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서는 계속 일해야 한다. 개인의 보람, 가치 추구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AARP는 고령 근로자가 더 오래 일하기 위한 과도기적 선택을 했다고 유추한다. 즉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처럼, 제2직업을 위해 제1직업 전선에서 물러나 준비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한국 시니어들은 어떨까? 박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평균 49.3세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후 소득활동을 이어가다가 72.3세에 이르러 실질적 은퇴를 한다”며 “특징은 한국이 OECD 국가 중 실질 은퇴 연령이 가장 늦고, 공적연금 수급 개시 후에도 소득활동 지속 기간이 10.3년으로 가장 길다는 것이다. 완전한 은퇴가 늦어지는 것은 경제적 노후 준비가 부족한 상황이 지속된다는 의미다.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서는 소득의 일부를 꾸준히 적립해 연금 자산을 최대한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장례지도사이자 장례지도사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호 씨(67). 과거의 그는 죽음의 최전선에서 일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건축 분양 사업을 했던 김종호 원장은 1997년 IMF 직격타를 맞아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그 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영업직밖에 없었다. 김 원장은 여러 회사를 전전하면서 영업 일을 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간 곳이 상조회사였다. “장례라는 부분이 제게 참 생소했다. 장례를 치러본 적도 없었다. 영업을 하려면 장례 용어나 진행 순서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많이 힘들었다”고 그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때 지인이 대학교에 장례학과가 있다고 추천해줬다. 이에 김 원장은 서라벌대학교 장례학과에 진학했다. 수업은 주말에 서울에서 진행됐고, 그는 2년간 공부에 매진했다.
2000년부터 장례지도사로 일하고 있는 김종호 원장.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며 젊은 장례지도사도 많아지고,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도 죽음에 대해 막연히 무섭게 생각했는데 일을 하면서 깨우친 바가 많다.
“예전에 친구 아버님 병문안을 간 적이 있어요. 그 병실에 어르신분들만 계셨는데 저를 기피하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장례지도사라고 하니까 저승사자 같아 보이셨나 봐요. 웃기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죠. 그런 일도 있었는데, 점점 인식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김종호 원장은 장례지도사로 현장에 있다 보면 금세 고객과 친해진다고 했다. 3일 동안 유족과 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공감하고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3일간 고생해도 마지막에 헤어질 때 유족분들이 손을 잡아주면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실 때 큰 보람을 느껴요. 특히 젊은 미망인이나 자식을 잃은 분들의 슬픔이 큰데, 제 덕분에 다시 살아갈 희망을 품게 됐다고 말씀해주시면 울컥하죠. 저도 마음이 많이 쓰이는 분들에게는 문자를 한 번씩 보내드리곤 합니다.”
“수많은 죽음을 봤고, 수많은 고객을 만났다”는 김종호 원장. 그의 기억에 가장 남아 있는 장례 현장은 언제일까. 그는 단번에 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했다. 6.25 참전용사였던 아버지는 수유리 국립묘지에 잠들어 계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황이었다. 생전에 어머니는 수유리에 묻힐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자식들에게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자식들은 어머니를 아버지 옆에 묻어주고 싶어 하는 상황이었다.
“자녀분들이 유골을 반으로 나눠서 반은 묘지에, 반은 바다에 뿌리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그게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수유리에 가서 상의한 끝에 방법을 찾았습니다. 묘지 옆에 구덩이를 파고 거기다 어머니의 유골을 모셨고, 비석에는 두 분의 이름을 같이 적었습니다. 가족분들이 정말 고마워하셨고, 지금도 종종 연락을 하십니다.”
김종호 원장은 고령화 사회에 장례지도사의 전망은 밝다고 짚었다. 특히 “이 일을 시작하면 그만두지 않고 오랫동안 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정년이 보장된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저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일하고 싶다”면서 각오를 다졌다.
“태어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듯이 세상을 떠날 때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인생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장례지도사는 최후의 봉사자라고 생각하고, 그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어요. 장례지도사들이 이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장례지도사를 마주하실 때 ‘고생한다’고 말씀해주시면 그분이 크게 감동하실 겁니다.”
고령화 사회와 1인 가구의 증가로 인해 ‘웰다잉’(Well-Dying)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웰다잉은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뜻한다. 넓게는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준비하는 동시에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과정 전반을 말한다. 이번 ‘시니어 잡’에서는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슬픈 유족을 가장 가까이에서 도와주는 직업, 장례지도사를 추천한다.
장례지도사는 장례 의식, 즉 죽은 자를 보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편안하게 보내드리기 위한 의식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장례 상담, 시신 관리, 의례 지도, 빈소 설치, 각종 장례 행정 업무 등 장례 관련 업무를 절차에 따라 수행한다.
시신이 장례식장으로 운반되면, 장례지도사는 고인의 사망진단서를 확인한 후 절차에 따라 시신의 옷을 벗기고 알코올이나 소독약품을 사용해 몸을 깨끗이 닦는다. 그 다음 준비된 수의를 입히고 시신의 몸과 다리 등을 묶어 관에 모신다. 상주의 종교에 따라 제사 의식을 거행하며, 제사 의식이 끝나면 관을 장지나 화장터까지 운반하고 관을 묻거나 화장을 한다.
현재 고령화 사회인 만큼 매년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장례지도사의 역할과 수요 역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례지도사는 과거에는 중장년층이 주로 하는 전문직으로 취급됐지만, 현재는 20·30대 젊은 장례지도사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20대 여성 장례지도사가 급증하고 있는데, 직업 인식이 좋아진 동시에 여성의 시신은 가급적 여성이 맡아주기를 바라는 유족의 요구가 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장례지도사 자격증 취득 방법
장례지도사 자격증은 2012년부터 국가자격제도로 시행되고 있다. 이는 장례지도사가 전문 직업인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줬고,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자격증 취득은 무시험 과정 이수형으로 진행된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①대학교 장례지도학과 졸업, ②평생교육원 졸업, ③직업훈련소 교육과정 수료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장례지도학과가 있는 대학교는 을지대학교,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서라벌대학교, 창원문성대학교, 대전보건대학교까지 총 5군데다.
장례지도사 교육기관에서는 300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그중 250시간은 교육기관에서 이론과 실기 교육을 진행하고, 나머지 50시간은 장례식장에 파견되어 실습한다. 장례 상담, 장사 시설 관리, 위생 관리, 염습 및 장법 실습, 공중보건, 장례학 개론, 장사 법규, 장사 행정 등에 대해 배운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대부분 병원 장례식장이나 상조회사에 취업한다. 장례 관련 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 서울시설공단 등 공기업에서 장례지도사를 별도로 채용하는 경우가 있고, 서울·대전 현충원 등 국가 봉안 시설에서 채용이 진행되기도 한다. 자신이 직접 장의업체를 운영할 수도 있다.
중장년 취업의 허와 실
자격증을 취득한 후 경력을 쌓으면 연봉을 높일 수 있다. 장례지도사 연봉의 하위 25%는 약 3000만 원이고, 중위는 3200만 원, 상위 25%는 3500만 원이다. 월급은 보통 250만~300만 원으로 일반 직장에 다니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월급이 안정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는 일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 아니다. 장례지도사는 근무시간이 길고 불규칙하다. 또한 누군가의 장례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만큼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가 큰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말이 나오는 장례지도사. 실제로 요구되는 조건이 많다. 먼저 장례지도사는 장례 절차, 장례 및 묘지에 대한 각종 행정 절차, 수시·염습을 비롯한 시신 위생처리 등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죽은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일을 하므로 담력과 침착함이 요구된다. 매일 누군가의 시체와 죽음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또한 불행한 일을 당한 유족에 대한 서비스 정신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장의 업무를 수행해낼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인내력도 요구된다.
현재 장례지도사의 고용 시장은 포화 상태다. 앞서 말한 대로 20·30대 젊은 장례지도사가 늘어나고 있는데,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전망이 뚜렷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년이 없는 평생 직업이라 40~60대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높다.
이처럼 전 연령이 장례지도사가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중장년층은 상대적으로 장례지도사로 취업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한다. 중장년층은 자격증 취득 후 대부분 장례지도사가 아닌 상조회사 영업직으로 취업이 이루어진다. 상조회사나 대형병원에서는 장례지도사로 젊은 층을 선호하다 보니 중장년층은 현실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서울 서초장례지도사교육원의 김종호 원장은 “20·30대가 워낙 많아져서 중장년층이 일을 시작하는 게 쉽지 않다. 수도권은 워낙 경쟁이 치열하니 어르신들은 지방에서 근무를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경력을 쌓은 후 수도권으로 옮겨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기도 여주에 사셨던 분이 50대에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6개월만 일하라고 태백으로 근무를 보내드렸다. 그런데 아예 태백으로 이사하셔서 5년째 잘 지내고 계신다. 공기도 좋고, 낚시도 하고, 자전거도 타면서 시간을 보내신다더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김종호 원장은 또한 중장년층은 ‘반려동물 장례지도사’가 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추천했다. 반려동물 장례지도사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반려인을 대신해 장례 절차, 상담, 납골, 펫로스 상담 등 장례 전반에 대해 설계하고 도와주는 전문가를 말한다. 연령과 경력에 제한이 없고,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전망이 밝은 직업이다.
하루하루를 계획하며 살지 않는다. 거대 담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그 과정을 즐긴다. 그의 과학 이야기에 약 9만 명의 사람들이 열광하지만, 그는 “내 삶은 우연과 우연의 중첩일 뿐”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과학을 전하는 원종우 작가 이야기다.
‘파토’(Pato)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원종우 작가의 이력을 쭉 듣다 보면 맥락을 잡기가 쉽지 않다. 철학도, 록 뮤지션, 대중음악 운동가, 칼럼니스트, 정치사회 논객, 음모론 전문가, 다큐멘터리 작가, 과학 커뮤니케이터. 그를 수식하는 말이다.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중퇴하고 런던 칼리지 오브 뮤직&미디어에서 기타를 전공했다. 이후 SBS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코난의 시대’ 작가, ‘딴지일보’ 편집장 및 논설위원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과학과 사람들’ 대표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데, 그의 답은 한결같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어요.”
거대 담론을 농담처럼 던지는 과학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거대 담론이라 불릴 만한 과학 이야기를 농담을 섞어 쉽게 전달하는 팟캐스트다. 2019년 말 기준 누적 1억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의 구독자 수는 약 9만 명, 유튜브 구독자 수는 약 8만 명에 달한다. 사람들에게 과학을 더 쉽게 알리고 싶었던 원종우 작가가 2013년 ‘과학과 사람들’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시작한 채널이다.
철학을 공부하고 록 음악을 하던 그는 어떻게 과학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걸까? 그의 과학 사랑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한 살 무렵, 당시로서는 거금인 4000원을 주고 과학 교양서의 고전이라 불리는 어마무시한 두께의 책 ‘코스모스’를 샀다.
“당시에는 대중교양 과학 서적이 거의 없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이 아무리 똑똑하대도 그 책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어요? 대신 예쁜 컬러의 우주 그림이 많았고, 1부는 스토리가 재밌었죠. ‘코스모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책들을 찾아 읽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생기더라고요. 세상을 더 흥미롭게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가 팟캐스트를 시작할 즈음에는 대중 과학이 태동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예능 프로그램 ‘스펀지’에서 다루는 것 같은 ‘바닷속에서 상어를 만났을 때 건전지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이야기나, 맥가이버처럼 ‘무엇이든 고치는 과학’ 같은 접근이었다. 과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던 셈인데, 원 작가는 반대로 바라봤다. 특히 인문학 대중화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문학이 대중화될 때 두 가지 소비 방식이 있었어요. 수박 겉핥기처럼 가볍게 다루거나, 청중이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방식. 둘 다 좋은 소비는 아니죠. 쉬운 과학은 오히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거대 담론을 편하게 던져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과학은 스토리지만 어떤 건 수학이고 어떤 건 실험이잖아요. 대중이 이걸 100%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그 안에서 딱 한 가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꼭 가져갔으면 했어요. 과학으로 인문학 이야기를 한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팟캐스트에서 제가 지향했던 부분이에요. ‘자, 지금부터 내가 거대 담론을 말할 거긴 한데, 듣는 사람은 과학하고 앉아있네 같은 시선으로 들었으면 해’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가 팟캐스트에서 다룬 상대성 이론 이야기만 모두 합해도 8시간 분량이다. 양자역학은 더 많은 분량의 오디오가 있다. 내용도 어려울 수밖에. 하지만 그는 그 안에 핵심이 있다고 강조한다. “핵심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면서 눈이 열려요. ‘유레카’를 외치는 것처럼요. 제가 과학을 통해 느꼈던 경외감, 놀라움, 충격, 그리고 세상을 일상적인 경험 이상으로 이해하게 된 지점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는 전문가의 입을 통해 거대 담론을 설명하면서 청중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중간에서 통역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교수가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다면 ‘나는 바보인가’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제가 중간에서 ‘사실 몰라도 돼요’라고 농담을 던짐으로써 청중은 긴장을 풀게 되죠. 그러다 보면 정말 이해하는 사람도 생겨요.”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시대
미디어 채널이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시대다. 팟캐스트가 흥행한 이후 유튜브와 같이 개인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다. 대중을 상대하는 개인이 늘었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더 이상 통역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어려운 과학 이론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그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시원섭섭한 마음이었다.
“제가 연구자는 아니다 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스스로 한계를 느꼈어요. 이제는 대중 앞에 나서는 연구자도 늘었고요. 과거에는 연구자가 대중을 상대하면 ‘연구할 시간도 없으면서 한가하네’ 같은 안 좋은 시선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내 역할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그는 과학만큼이나 좋아하지만 한참이나 미뤄두었던 ‘픽션 쓰기’에 도전한다. 그렇게 나온 책이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다. 과학적 근거 위에 쌓아 올린 8개의 픽션이 실린 책이다. 각 픽션의 앞뒤에는 ‘앞설과 뒷설’을 달아 과학적 이해를 도왔다. 그는 픽션을 통해 생각해볼 지점을 남겼다. 영원히 죽지 않는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죽음이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한다거나, 자의식이 없는 AI만이 지구에 남아 살고 있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묘사했다. 과학기술의 장점을 알지만, ‘인간에게 영생이란 어떤 의미인가’, ‘인공지능이 정말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책에서 다룬 주제들로 한참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다가, 원 작가는 앞으로 120세까지 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0년을 산다는 게 결코 우리가 상상하는 120세의 모습으로 죽는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천천히 늙는다는 뜻이죠. 안티에이징의 연구 속도가 어마어마해요. 쥐 실험에서는 실제로 노화를 역전시키기까지 했어요. 쥐를 젊게 만든 거죠. 만약 사람에게 적용된다면 우린 정말 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인류는 그런 기술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길게, 더 젊게 살 거예요. 좋게 말하면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고요. 문제는 그 시간의 지루함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죠. 그러니 그동안 어떻게 살 것인지 물을 수밖에요.”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인간은 언젠가 죽지 않을까.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웰다잉’(Well-dying) 개념이 나오는 이유다. 그에게 웰다잉에 대해 묻자 특유의 유머가 나왔다. “웰다잉의 반대는 배드 리빙 앤드 다이(Bad Living & Die)일 텐데요. 안 좋게 오래 살다가 안 좋게 죽는 거죠.(웃음) 모두가 느끼는 공포일 텐데요. 웰다잉에 대해서는 시야를 조금 더 넓고 멀리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지금 50대니까 7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고 남은 생을 생각할 때는, 현재가 아니라 20~30년 뒤의 세상을 생각해야 해요. 그때는 또 얼마나 기술이 발전해 있겠어요? 연금, 기본소득 같은 개념도 오늘의 관점이 아니라 문제가 닥칠 미래 시점에 어떤 기술, 과학 등이 주변에 있을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야 해요. 사회는 거기에 맞춰 재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또한 AI나 로봇의 발전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노화를 눈치 보지 않는 노년기를 보낼 수 있을 거라 상상했다. 원 작가의 아버지는 올해 94세다. 지난해만 해도 정정했던 분인데, 올해 들어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자식들이 돌봄을 자처했지만 아버지는 오로지 어머니의 돌봄만을 허락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나이도 87세. 노노(老老) 케어다. 결국 요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버지가 ‘남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한다.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수용자’가 되는 거잖아요. 이럴 때 AI, 로봇, 기계가 충실히 역할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로봇 앤 프랭크’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상황이 아주 잘 나타납니다.” ‘로봇 앤 프랭크’는 따분한 전원생활을 하는 프랭크에게 아들 헌터가 ‘VGC-60L’이라는 로봇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인간을 돕는 가정용 로봇이 보편화된 미래를 그렸다.
“상상을 해볼까요. 노인들은 아침잠이 없어 3, 4시면 일어나죠. 아무리 가족이 나를 잘 챙겨도 새벽 3시에 밥을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로봇은 항상 곁에 있고 부르면 원하는 걸 해결해줘요. 그렇다고 뒷말을 할 걱정도 없고요. 내가 돌봄을 받는데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게 굉장히 큰 부분이에요. 심지어 그냥 만사가 귀찮아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꺼버리면 돼요. 로봇의 내면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적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생긴다는 거죠.”
과학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이런 과학기술을 누구나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영생을 주는 기술이 나왔을 때 10억 원이 넘는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는 거예요. 소위 빈익빈부익부라는 양극화 개념이 단순히 건강이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까지 이어지는 거죠. 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는 거니까요. 그런데 저는 사회를 낙관적으로 봐요. 유동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물론 서브프라임 사태라든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중간중간 에러가 생기지만, 인류는 모두가 죽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게끔 조직된 생명체입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초연결 시대에 인류는 하나의 유기체가 되었죠. 인류는 공도동망(共倒同亡)하진 않을 거예요. 그러려면 결국 기술은 가장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될 겁니다.”
스스로 일궈놓은 나만의 세계
노화를 늦출 수 있다면, 정말 120세까지 살게 된다면, 50세에 은퇴해도 70년이라는 세월을 더 보내야 한다. 살아온 시간 이상을 보내야 할 이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원 작가는 ‘나만의 세계를 꼭 일구시라’ 당부했다.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나이가 120세여도 신체는 50세일 수 있죠. 그러면 그 사람은 50세의 능력치로 일하면 돼요. 노인이 많아진다고 무조건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겠죠. 과학기술이 이런 성과를 낸다면 사회는 그에 맞춰 움직일 거예요. 노화로 인해 일하지 못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겁니다. 다만 그 기술이 적용될 때까지 우리는 늙어가잖아요. 이 시기를 살아갈 시니어들은 내가 경제적으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그 시간을 살아갈 내가 일궈놓은 세계가 있어야 해요.”
뭐라도 좋다.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는 악기 연주를 적극 추천했다. 오랜 시간 기타를 연주한 그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내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을 해보세요. 남이 알아주고 몰라주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악기는 손가락이 고장 나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면 계속 늘어요. 어제보다 낫고, 내일 되면 오늘보다 낫습니다. 마흔이 넘은 친구가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를 칩니다. 그러니 좀 더디게 늘겠죠. ‘이걸 계속할까?’ 묻더라고요. 무조건 하라고 했어요. 20년 뒤에는 동네에서 피아노를 가장 잘 치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거라고요. 피아니스트 될 거 아니잖아요.(웃음) 무엇보다 스스로 연주할 수 있는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게 중요한 거죠.”
그 역시 음악을 다시 해 앨범도 내고 연주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안 되어도 그만이다. 그저 그 과정이 좋다고. 하루를 계획하며 살지 않는다곤 했지만 꿈이 궁금했다. 그의 꿈은 ‘세계 평화’다. 무언가를 꿈꿔야 한다면 ‘무엇이 되겠다’가 아니라 ‘흑인과 백인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가치’를 꿈꿨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오늘도 그는 농담처럼 거대 담론을 던진다.
마네의 인상주의나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을 처음 본 당대 사람들은 ‘예술이 아니다’, ‘낙서에 불과하다’라고 혹평했다. 시간이 흐른 뒤 대중은 그들을 ‘창시자’라 일컬었고, 작품들을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듯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이들은 저마다 산통을 겪는다. 그리고 여기, 모바일 아트로 미술계에 한 획을 긋겠다는 남자가 있다. 국내 최초 모바일 아티스트 정병길(69) 씨다.
어떠한 창조적 본능이나 이끌림 같았다. 정병길 씨가 그림을 그린 까닭 말이다. 학창 시절 다른 숙제는 거들떠보지 않다가도 그림이나 공작(工作) 과제는 눈을 반짝이며 해냈다. 슥슥 휙휙 그렸다 하면 사생대회 1등은 떼놓은 당상. 뛰어난 실력에 담임선생님이 미대를 권유한 적도 있었다. 물론 뜻이 없진 않았지만, 당시엔 다른 꿈이 더 앞섰다. 우장춘 박사처럼 훌륭한 육종학자가 되어 농촌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꿈으로 끝나버렸다. 아버지의 지병으로 가세가 기운 탓이었다. 원하는 전공보다는 장학금을 주는 농협대학을 택했고, 곧장 밥벌이를 시작했다. 30여 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화실까지 마련해가며 붓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이란 목표로 하는 꿈보다는 오래 지니고픈 로망이었기에 쉬이 접지 못했을 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도 여느 직장인처럼 인생 1막을 정리할 때가 다가왔다.
“농협 지점장까지 하다가 2010년에 은퇴했어요. 당시 금융업계에서는 그만두고도 2~3년 더 일할 자리를 마련해줬거든요. 앞으로 30~40년은 더 살 텐데, 당장 몇 년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겠더라고요. 눈 한번 질끈 감고 일자리를 사양했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그림을 그리고 글도 써볼 요량이었죠.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이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저성장 양극화 시대에, 그것도 무명인이 문예활동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여긴 게 큰 착오였죠.”
박수 받은 창직, 현실은 맨땅에 헤딩
정병길 씨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재주도 남달랐다. 당초 그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글을 투고해 원고료로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다. 은퇴 후 1년 동안 칩거하며 쓴 글을 ‘내 아이 이웃과 함께 더 큰 세상으로’라는 책으로 내놓았다. 2년 뒤엔 두 번째 책 ‘이젠 아빠를 부탁해’를 펴냈다. 주변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나마 다행히 그림으로는 ‘상하이아트페어’, ‘대한민국미술대전’, ‘행주미술대전’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개인전도 열며 초석을 다져나갔다. 하지만 그 역시 취미를 넘어 직업으로 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유명 작가가 아니니 결국 홍보 문제다 싶더군요. 신문 광고도 몇 번 냈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죠. SNS를 배워 직접 홍보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관련 강의를 듣다 만난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이 모바일 미술 앱을 소개해줬습니다. 태블릿 PC에 떠듬떠듬 그려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당시 강사에게 매주 새로운 그림을 그려 보여줬더니, 모바일 미술을 업(業)으로 삼아보면 어떻겠냐 하더라고요. 그게 창직의 신호탄이 된 셈이죠.”
‘모바일 미술’(아트)이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의 모바일 기기에 내장된 그림 앱을 이용해 창작한 미술이나 예술을 말한다. 물감, 붓, 캔버스나 이젤 등이 필요 없고, 그 덕분에 별도로 화실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이나 SNS상에 작품을 게시하거나, 출판물에 사용하기도 하고, 캔버스나 종이 등에 출력해 유화나 수채화처럼 전시할 수도 있다. 그런 모바일 미술이 정병길 씨에겐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친김에 정보를 찾아보니 해외에서는 입소문을 탄 장르였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전무했다. “옳거니!” 창조적 본능이 되살아났고, 그렇게 개척자의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당시 모바일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도, 선생님도 없었어요. 거의 독학으로 기법을 습득하고 펜업(삼성전자 그림 공유 서비스) 도움을 받았죠. 작품을 만들어 뭔가 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이 분야를 알리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어요. 시장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의 반응을 보려고 SNS에 강좌 정보를 올렸더니 수요가 꽤 있더군요. ‘그러면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결론이 섰죠.”
그렇게 ‘모바일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탄생시켜 이를 개념화하고, 강좌와 전시를 통해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시대가 발전하며 모바일 미술용 앱과 플랫폼이 더욱 다양해졌고, 관련 툴(Tool)이나 출력 기술이 정교해지며 이 분야는 상승세를 탔다. 혹자는 찰나의 아이디어가 운때 맞았다 여길지라도, 이는 나름의 안목을 갖고 꾸준히 노력했기에 얻은 선물과 같다. 그 성과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 ‘시니어 IT 일자리 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이라는 결실도 얻었다. 최근까지도 적지 않은 관심과 응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개척자의 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에요. 미술계는 기득권의 장벽이 높고 굳건하니까요. 그런데 과거 예술 분야 개척자들을 보면, 대부분 목숨 걸어가며 단초를 마련하잖아요. 저는 아직 모바일 미술 때문에 목숨까지 건 적은 없지만, 돈은 참 많이 까먹었습니다.(웃음) 노후에 도움 되려고 한 일인데 오히려 리스크가 될까봐 걱정할 때도 있었죠. 그런데 그 말이 와닿더라고요. ‘안전한 길은 위험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안전하긴 해도 뭔가 즐거움이 없잖아요. 그거야말로 노후 리스크죠. 그래서 기왕 시작한 거 최대한 부딪혀보려 합니다.”
‘NFT, 줌’ 신기술과 만나는 모바일 아트
현재로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보단 투자하며 판로를 개척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다. 장차 모바일 아티스트가 촉망받는 직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 과제인 셈이다. 현재 작품을 판매하거나 저작권료로 얻는 소득은 높지 않다. 그보다는 학생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새로운 기술과 직업을 알리는 강의를 통한 수입이 주가 된다. 여타 예술처럼 경매에서 작품의 우수성을 평가받아 높은 금액이 책정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구조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은 생소한 분야인 데다, 작품의 고유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가령 일반적인 경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 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지만, 모바일 미술은 완성된 그림 파일을 종이나 다른 소재에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바일 미술의 가치 평가는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할까?
“판화 역시 여러 장 찍어낼 수 있잖아요. 대신 한정된 수량을 제작하고, 찍는 순서대로 숫자 표기와 서명을 남기죠. 가령 판화 아래 1/10이라고 표기돼 있다면, 10개 찍은 작품 중 첫 번째 에디션이라는 뜻이에요. 그렇게 판화의 개념으로 가치를 판단하면 좋겠습니다. 또 실크스크린 판화는 판면의 구멍에 잉크를 넣어 찍는데, 이 기법으로 여러 작품을 만들 수 있죠. 같은 방법으로 모바일 미술은 완성된 작품이라도 툴을 이용해 색이나 요소를 수정하고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쉽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그는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의 개념을 접목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근래 디지털 수집품 거래가 활발해지며, 이러한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도구로 NFT가 사용되고 있다. 미술 시장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추세다. 모바일 미술 작품의 경우 파일 형태로 저장돼 NFT로의 변환이 용이하다. 정병길 씨 역시 이러한 장점을 살려 수익 창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신기술과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 집중한 아이템은 바로 ‘줌’(Zoom,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이다. 주로 방과후교실이나 사회교육원 등에서 모바일 미술을 가르쳤는데, 코로나19로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줌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첩하게 태세 전환을 하고 기술을 익힌 그는 이제 줌에 관해서도 반전문가가 됐다. 최근 2년 사이 ‘줌을 알려줌’, ‘줌 활용을 알려줌’이라는 줌 활용서를 두 권이나 펴냈으니 말이다. 물론 줌 역시 모바일 미술과의 접점을 꾀하고 있는 그다.
“제 목적은 모바일 미술의 매력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건데, 그동안 시공간의 제약이 많았거든요. 특히 섬이나 농어촌에 사시는 어르신처럼, 문화 수혜 격차를 겪는 지역민에게 줌으로 모바일 미술을 전파하려고 해요. 또 그런 분들도 모바일을 통해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줌 전시회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꼭 전에 없던 무언가를 해야만 창의적인 건 아니에요.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을 어떻게 융합하고 접목하느냐에 따라 창작과 창직이 가능하다고 봐요. 자신의 재능이나 관심 있는 분야를 신기술과 잘 연결 지으면 누구든 저처럼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정병길 씨는 2020년 설립한 모바일아티스트협동조합을 통해 체계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전문인력 양성도 꾸준히 해나가고 있고, 장차 자격증 발급 절차 등도 논의해볼 방침이다. 그런 그가 모바일 아티스트로서 갖는 최종 목표는 분명했다. 바로 ‘모바일 아티스트가 가장 많은 나라 대한민국’을 이루는 것. 어쩌면 자칫 거대한 포부처럼 들리겠지만, 그는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고 말한다.
“요즘 BTS(방탄소년단)를 비롯해 가수들의 한류 열풍이 대단하잖아요. 사실 우리나라처럼 동네마다 곳곳에 노래방이 즐비한 나라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일상에 스며든 예술이 결국 거대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봐요. 노래방에서 노래하듯 모바일을 통해 손쉽게 미술을 접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말하는 우리 동네 가수처럼, 우리 모두 저마다 작은 예술가가 되는 거죠. 특히 나이가 들수록 가슴속 예술 감수성을 깨우고 자유롭게 표현해야 삶이 풍요로워져요. 많은 중장년이 모바일 아트에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중에도 그의 손엔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20초 남짓한 짤막한 순간에도 무언가를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시간을 무위(無爲)로 흘려보낸 기자가 이유를 묻자 그 또한 목표라 답한다. 어딜 가든 획 하나라도 긋고 오는 게 목표라고. 그 말을 들으니 수많은 획이 켜켜이 모여 언젠가 미술계에 큰 획을 긋게 될 정병길 씨의 모습이 더 선명히 그려졌다. 문제는 시간. 하지만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조급함이 없었다. 무언가를 이루기에 아직 인생은 늦지 않았으니까.
“모지스 할머니로 잘 알려진 미국의 국민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곤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내놓은 작품만 1600점이 넘는다고 해요. 그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렸다고 하고요. 그분의 삶은 제게도 큰 영감과 희망을 줍니다. 제가 힘을 얻었던 모지스 할머니의 말을 독자분들께 공유하고 싶네요. 여러분,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분석팀은 13일 ‘노동공급 확대 요인 분석: 청년층과 고령층을 중심으로’ 리포트를 통해 고령층의 노동 공급 확대의 주요인을 생활비 등 재정적 사유라 밝혔다.
경제활동참가율(이하 경활률) 상승에 대해 분석한 결과, 인구구조 변화는 경활률 하락요인으로 작용한 반면 청년층과 고령의 활발한 경제활동 참여는 경활률 상승요인으로 작용했다.
구체적으로 인구구조 변화는 2010~2015년, 2015~2022년 중 경활률을 각각 0.45%p, 1.93%p 하락시켰다. 이는 고령화의 영향으로 생산가능인구(15세 이상) 중 상대적으로 경활률이 높은 청년층과 핵심노동연령층의 비중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한편 개별 연령대의 경활률 변화는 2010~2015년, 2015~2022년 중 경활률을 각각 2.08%p, 2.61%p 상승시켰다. 2010~2015년에는 핵심노동연령층의 경활률 상승이 경제 전체 경활률 상승을 주도했으나, 2015~2022년에는 청년층과 고령층의 경활률 상승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핵심노동연령층의 활발한 경제활동 참여가 경활률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미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청년층의 노동공급 확대는 높은 대학진학률, 낮은 혼인률 등 사회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반면, 고령층 노동공급 확대는 생활비 부족 등 재정적 사유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건강 유지, 일하는 즐거움 등의 사유로 경제활동 참여를 원하는 고령층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나, 재정적 사유(자금 필요, 생활비 보탬 등)가 주된 이유로 자리 잡았다.
고령층 중 나이 및 현재의 직업유무와 상관없이 계속 근로하기를 희망하는 인구 비중은 2015년 53.0%에서 2021년 62.6%로 9.6%p 상승했다. 이는 의료비 증가, 기대수명 증가 등의 영향으로 재정적 사유로 계속근로를 희망하는 고령층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타나낸다.
아울러 고령층 가구 간 자산불평등 확대는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고령층의 노동공급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순자산 분위별로 고령층 가구주의 취업율을 보면 2017년 대비 2021년 순자산이 큰 폭으로 증가한 3분위의 가구주 취업 비율은 소폭 하락(-0.3%p)했다. 반면 1분위의 동 비율은 6.7%p 상승했다. 이는 자산 가격 상승과 맞물린 자산불평등 확대로 인해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계층을 중심으로 노동공급이 확대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불어 65세 이상의 경우 상승하여 민간부문보다 공공부문 고용률에서 더 큰 상승폭을 보였다. 민간부문보다 취업이 쉽고 접근성이 좋은 공공일자리의 증가도 고령층 취약계층(중졸 이하 저학력 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고령층 중 저학력자의 민간부문 고용률은 2015년 33.0%에서 2022년 30.9%로 하락한 반면, 공공부문(공공행 정·보건복지) 고용률은 동 기간 중 3.9%에서 8.3%로 크게 상승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담당자는 리포트를 통해 “고령층 노동공급은 기대수명 증가 등으로 지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청년층과 핵심노동연령층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고령층이 제공하는 노동력은 향후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고령층들이 자신들의 경쟁력을 충분히 발휘할 일자리를 찾도록 정책적으로 노력(국가 주도의 시니어인재센터 설립 등)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는 어르신 문화예술 축제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이 10월 20일(목)부터 22일(토)까지 개최된다. 아마추어 예술가로 활동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문화를 매개로 나이 불문 소통할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올해 8회째를 맞는 이번 행사는 실버문화페스티벌 최초로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하이브리드’ 형태로 진행된다. ‘우리가 꿈꾸는 실버 유니버스’를 주제로 꿈꾸는 시니어들의 실버 스테이지 ‘샤이니스타를 찾아라’ 경연 대회, 어르신 중심 온·오프라인 문화 콘텐츠 ‘문화나눔한마당’이 열린다.
‘2022 샤이니스타를 찾아라’는 숨은 아마추어 어르신 문화예술가를 발굴하는 경연 대회다. 전국 16개 권역에서 진행된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16개 팀의 경연 무대가 10월 22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유튜브와 화상채팅 서비스 줌(Zoom)을 통해 온라인에서 생중계될 예정이다.
생중계에는 사전에 촬영한 본선 경연 영상과 당일 ‘버추얼 스테이지’(Virtual Stage)가 활용된다.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 문자투표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또한 줌으로 진행하는 ‘세대 공감 퀴즈쇼’, 본선 출연 팀을 비대면으로 응원하는 ‘방구석 응원전’ 등 행사를 관람할 방구석 관객들을 위한 코너도 마련한다. 무대 이후 트로트 가수 박군의 축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홈페이지 사전 투표 10%, 실시간 문자투표 10%, 심사위원 투표 80%를 합산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어르신의, 어르신에 의한, 어르신을 위한 ‘문화나눔한마당’
‘문화나눔한마당’은 △에듀버스(교육) △헬씨버스(건강) △컬쳐버스(체험) △콜럼버스(공모) △투게더스(세대 공감) 5개의 테마에 따라 어르신 중심의 온라인 문화 콘텐츠를 공개한다. 8월 12일부터 10월 28일까지 실버문화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에 매주 금요일 업로드되고 있다.
에듀버스의 ‘제1회 실버문화포럼’과 ‘인문학 특강-나이듦 수업’은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의 유일한 오프라인 프로그램이다. 실버문화포럼에서는 실버 세대와 실버 문화에 대한 강연과 좌담회 등이 열릴 예정이다. 포럼은 올해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실버문화페스티벌에서 실버 문화를 이야기하는 자리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이어지는 인문학 특강은 책 ‘나이듦 수업’의 저자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연으로, 어른으로 늙을 용기를 알고 일과 삶을 재구성해 노인으로서 가치를 확립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실버문화포럼은 10월 12일 오후 2시, 인문학 특강 ‘고미숙의 나이듦 수업’은 같은 날 오후 7시 서울시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인사동 코트’에서 열릴 예정이다. 실버 세대 문화와 축제에 관심이 있다면 나이를 불문하고 참여 가능하다. 행사들은 추후 영상으로 제작돼 10월 28일 공식 홈페이지에 업로드된다.
헬씨버스에서는 △젊은 세대가 즐기는 댄스를 배우며 성장하고 스스로 건강을 챙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조명한 ‘시니어 스우파’(스스로 챙기는 우리들의 파워) △전현나 시니어 모델의 일상을 따라가며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꿔가는 모습을 담은 일상 다큐 ‘뷰티인사이드’ 등 건강한 시니어를 위한 건강 프로그램을 영상으로 제공한다.
컬쳐버스에서는 △일상 속 문화 공간을 탐방하며 쓰레기도 줍고 건강도 챙기는 어르신 크루의 현장 밀착 취재 ‘일석삼조 플로깅 프로젝트-쓰담 달리기’ △삶의 ‘단짠’ 경험을 연극으로 풀어내는 어르신 인형극단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담아낸 휴먼 다큐 ‘우리들의 두 번째 블루스’ 등 활기찬 시니어를 위한 문화예술 기반 프로그램을 영상으로 제공한다.
콜럼버스에서는 △메이크오버를 통한 아빠들의 숨겨왔던 매력 발굴 프로젝트 ‘숨은 아빠 찾기’ △시니어 인플루언서 ‘아저씨즈’와 함께하는 ‘릴레이 실버 댄스 챌린지’ △어르신들에게 의미 있는 헌옷을 수선해 재탄생시키며 새로운 쓰임과 가치를 부여하는 시니어 업사이클링 프로그램 ‘너와 나의 공유 옷장’ 등 도전하는 시니어를 위한 공모 및 캠페인을 진행한다.
투게더스에서는 같은 직업을 가진 주니어(젊은 세대)와 시니어(선배 세대)가 삶과 직업에 대해 대화하며 세대 공감을 이루는 토크멘터리(토크와 다큐멘터리를 합친 형식) ‘세대 간 잡(job) 수다-코-리어’를 9편으로 나눠 공개한다.
우영우 댄스 챌린지 함께한 더뉴그레이 ‘아저씨즈’는 누구?
THE NEW GREY(더뉴그레이)는 시니어 패션 콘텐츠 에이전시로, 시니어 모델 또는 인플루언서를 발견하고 관리하며 양성하고 있다. 패션 브랜드를 포함한 기업과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동시에 패션 메이크오버 캠페인을 벌여 다양한 기업과 브랜드 협업을 진행했다. 주로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 주요 SNS 채널을 통해 콘텐츠를 공개하고 있으며, 팔로어 300만 명, 최근 6개월 동안 누적 조회수 5억 회를 기록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한편 더뉴그레이 소속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 그룹 ‘아저씨즈’가 함께한 ‘우영우 댄스 챌린지’는 9월 21일까지 참여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