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진 않을 거라고 믿었어요.”
어머니는 딸 앞으로 암보험, 실비보험 등 보험만 4개를 들었다고 했다. 40대 초반의 딸은 유방암으로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했지만 결국 말기 환자가 됐다. 주치의는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보라고 했는데 모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남편과 이혼 후 홀로 키운 딸이고, 모녀가 함께 살 집 장만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여태껏 죽도록 일만 한 딸이었다. 그리고 딸은 오래된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암이 발견됐다.
집 근처 병원을 마다하고 서울의 유명한 대형병원을 찾아가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날부터 담당 교수는 신이었고, 병원은 신전이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녀는 살아남기 위한 갖은 고생 외엔 딱히 행복을 느낄 여유조차 없는 삶이었기에 딸의 암진단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 새로운 항암치료를 대비해 여러 가지 보험을 들었다. 그 어떤 가능성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암의 진행은 멈추지 않았고, 임상시험 치료까지 참여했지만, 야속하게도 암세포가 척추까지 퍼져 딸은 하반신 마비가 진행됐다. 그러자 주치의는 치료 중단과 함께 퇴원을 요구했다. 대신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모녀는 떠밀리다시피 퇴원을 했다. 딸은 평생 일해 장만한 그 오래된 아파트에서 눈을 감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호스피스는 가지 않고 집에서 지냈다.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 딸을 보며 어머니는 매일 눈물을 흘렸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고열과 함께 오한으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의식도 흐려지는 것 같아 놀란 어머니는 119를 불렀고 근처 병원으로 이송하려 하자 딸은 서울의 대형병원 환자라며 당장 그곳으로 가달라고 졸랐다. 응급실에는 4일을 머물렀다. 각종 검사가 다시 진행됐고, 요로감염이라며 항생제 처방과 함께 퇴원이 결정됐다. 하지만 너무 놀란 어머니는 입원을 원했다. 그러나 병실이 없다며 거절당했고 담당 교수는 끝내 얼굴조차 볼 수 없었고 대신 젊은 전공의는 왜 호스피스를 가지 않냐 재촉했다. 단 한 번도 거부나 주저함 없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와서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배신감이 밀려왔다. 문전박대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택시를 타고 그 병원을 떠나면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고 모녀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한강변을 달리던 택시 차창 밖으로 다른 병원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도저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안 나 입원을 부탁할 요량으로 택시를 돌려 무작정 그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다행히 그곳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었고 때마침 병실도 하나 비어 있어서 바로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된 그 날의 상황을 나중에 모녀는 신의 인도라고 말했다.
마치 길을 잃은 나그네가 안식처를 만난 것처럼 그들은 그곳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일일이 그곳의 간호사와 자원봉사자 이름을 거론하며 그곳에서의 추억을 내게 풀어냈다. 그곳에서 2주가량을 쉰 후 딸은 다시 그 오래된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불안해하는 어머니에게 그곳 호스피스에서는 가정형 호스피스를 제안했다. 호스피스를 운영하는 집 근처 병원의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하면 집에서도 통증 조절과 영양수액 등 의료적 처치를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고, 그렇게 이 모녀는 내게 연결됐다.
우리 병원 호스피스팀은 딸이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정기적으로 딸이 평생을 바쳐 장만한 그 아파트를 방문했다.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어머니는 어김없이 딸이 우수사원이 되어 받은 상패를 꺼내 어루만지면서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왜 억척스럽게 살아온 자신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눈물을 쏟아냈다. 그 다음은 어김없이 자신들을 버린 서울의 대형병원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용기 있게 의미 있는 마지막 시간을 갖도록 일찍 안내했으면 증오가 덜 했을 텐데, 계속해서 새로운 치료를 제안하며 희망을 주었던 것들조차 이제 모두 원망스럽다고 했다. 여전히 상심과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녀를 보며 우리는 안타까웠다. 우리 호스피스팀은 후원회의 도움으로 두 모녀에게 바다가 보이는 멋진 호텔에서의 추억 여행을 선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딸은 그 오래된 허름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친척들 가운데 눈을 감았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어머니는 그 집이 너무 싫어 팔고 이사를 갔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돈을 쥐고 있으면 병원에서 문전박대 당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대형병원과 담당 교수로부터 버림받았다며 ‘배신자’라는 말을 입에서 놓지 않던 딸의 목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지방에서 서울로 몰려드는 암환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병실이 없어 대형병원 옆에는 지방 환자들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위해 수일에서 수주 간 머물다 가는 고시원 같은 환자방이란 게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대형병원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암환자로 호황을 누리며 수도권에 큰 규모의 분원들을 건립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로 서울로 몰려드는 환자 중에 완치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셀 수 없는 말기환자들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 대형병원들은 암센터를 키우고 분원도 새로 건립하면서 그 말기환자에게 일말의 따뜻함을 건넬 수 있는 작은 호스피스 병동을 만드는 것에는 왜 그리 야박한 것일까? 지금도 암환우 카페에 들어가면 말기진단 후 쫓겨나듯 퇴원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서러움 담긴 글들이 끝없이 올라온다.
갑자기 다큐멘터리 일본영화 ‘엔딩 노트(Ending Note)’의 한 대사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69세의 말기위암환자다. 그는 선거에서 평생 지지했던 여당 대신 처음으로 야당에게 표를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암 환자에게 따뜻하길”
병원과 의사들은 수술도 함암치료도 하지 않는 말기암환자들에게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가사 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으로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중년 여성에게는 명절증후군과 갱년기 증상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명절 후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증상이 계속된다면 갱년기를 의심해봐야 한다. 여성 갱년기에 대한 궁금증을 김영선 경희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여성 갱년기는 질병 또는 노화에 의해 난소 기능이 감소하면서 폐경과 관련된 신체적 및 심리적 변화를 겪는 시기를 말하며, 폐경 전기와 후기를 모두 포괄한다. 대개 1년간 생리가 없을 때 폐경으로 진단한다. 폐경은 주로 50세 전후에 발생한다. 갱년기는 평균 4~7년 정도다.
여성 갱년기 증상에는 안면홍조, 빈맥, 발한 등이 있다. 급성 여성 호르몬 결핍이 원인이다. 피로감, 불안감, 우울, 기억력 감퇴, 수면 장애 등의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이 있을 때 증상은 더 악화될 수 있다.
갱년기는 모두가 겪는 증상이라며 고통을 참는 경우가 많지만, 의료기관을 찾아 전문가의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갱년기를 건강하게 보내고 행복한 노년기를 맞이할 수 있다.
Q. 잘 알려진 증상 외에 갱년기에 나타나는 특이 증상에는 무엇이 있나요?
A. 갱년기 여성은 여성 호르몬, 즉 에스트로겐 감소로 지방 분해 능력이 떨어져 복부 비만이 2배 이상 증가합니다. 또한 비뇨생식기 위축으로 질 건조증과 가려움증, 성교통과 배뇨통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골 손실로 인한 골감소증 및 골다공증도 유발됩니다. 그 외에 두통, 성욕 감소 등 폐경증후군 증상이 특이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Q. 폐경은 노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나요? 그리고 늦을수록 좋을까요?
폐경이라는 것은 난소 기능의 소실로 인해 월경이 영구적으로 중지되는 상태일 뿐, 노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폐경이 되는 나이는 유전적으로 결정되며, 사회경제적 위치나 초경 연령, 이전 배란된 난포 수 등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50대가 되기 전 생리가 멈추는 것을 조기 폐경이라고 하는데, 폐경 이후 발생하는 여성 질환에 더욱 잘 노출될 수 있습니다. 폐경기는 너무 늦게 나타나도 좋지 않습니다. 늦은 폐경은 55세가 지나서까지 생리를 계속 하는 경우인데, 자궁 내 질환이 있어 환경이 좋지 않거나 문제가 있어서 생리가 지연되거나 지속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로 인해 빈혈 및 피로감, 무기력, 신체 노화 등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늦은 폐경이 유방암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Q. 갱년기 우울증 원인과 대처 방법, 극복 방법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과거에는 갱년기 우울증의 원인을 ‘상실감’ 등의 사회심리적 원인으로 설명했으나, 최근에는 연구 결과를 통해 신경생물학적 원인이 갱년기 우울증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습니다. 폐경을 전후해 내분비계의 변화는 대뇌의 전두엽과 기저핵에 산재된 신경세포군을 손상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우울 증상이 발생합니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 사람들과 여가 활동 및 친교 활동을 꾸준히 하며, 스트레스나 마음에 쌓이는 화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햇볕을 쬐면서 산책, 경보, 자전거, 스트레칭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Q. 갱년기 증상 완화를 위해 여성 호르몬제를 많이 복용하는데, 의학적으로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인가요?
A. 여성 호르몬 요법은 여러 가지 폐경 증상의 완화 및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안면홍조와 야간 식은땀, 비뇨 생식기계 위축과 관련된 증상을 줄이고, 감정적인 증상들(우울증, 불면증, 신경질, 주의산만)의 호전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성욕 감소 증상이 호전되고, 골다공증 예방 및 치료에도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결정은 의사와 상담한 후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치료와 마찬가지로 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여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치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치료를 하기 전에 일반적인 신체검사와 산부인과 검사를 받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시작하면 됩니다.
Q.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또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요?
A. 갱년기 호르몬 요법 중에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토겐 복합 요법을 장기간 사용할 경우 유방암 발생이 증가할 수 있으나, 에스트로겐 단독 요법은 사용 후 7년간 유방암의 위험성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다만 호르몬 요법은 허혈성 뇌졸중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60세 이상의 폐경 여성에게 호르몬 요법은 오히려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도를 높일 수 있으므로, 호르몬 요법은 폐경 후 일찍 시작할 것을 권장합니다.
Q. 갱년기 증상 예방에 좋은 음식과 생활 습관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적절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고, 칼슘과 비타민 D를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메가6 지방산의 일종인 감마리놀렌산 또한 혈액순환과 콜레스테롤 조절에 도움을 주어 갱년기로 인한 열감과 손발 저림, 발한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대두 이소플라본은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뼈 형성을 촉진하고 골밀도를 증가시킵니다. 비타민 B군은 에너지 대사를 활성화시켜 피로와 스트레스 해소도 가능합니다. 마그네슘은 신경 이완 작용을 통해 기분 변화와 불면증 같은 수면장애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70대 중반 여성이 딸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지럼증과 피로, 불면, 식욕부진을 호소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다고 딸이 대신 말을 했다. 환자인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다. 의자에 앉아 넋이 나간 듯 멀거니 진료실 바닥만 내려다보신다. 그에 비해 딸은 약간 격앙돼 있다. 이런 어머니의 상태에 걱정이 큰 것 같다. 나의 첫 질문은 언제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냐는 것이었다. 딸은 올해 초 그러니 거의 9개월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이미 다른 병원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질문으로 어떤 병원을 방문했고, 또 어떤 검사들을 받았냐고 물었다. 역시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고 딸이 대신 답을 한다. 어지럼증 때문에 머리 MRI(자기공명영상) 촬영도 했고, 혹시 암일까 걱정돼 위내시경에 복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특성상 병이 진단됐건, 그렇지 않건 병원을 방문해 불편감을 호소하는 분에게는 무조건 약 처방이 나간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 다음 질문은 어떤 약들을 먹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역시나 동네 신경정신과 의원에서 불면증과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이제 어머니는 왜 1년여 전부터 이런 우울감과 더불어 온몸의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병을 겪게 되신 건지 천천히 파헤쳐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어머니는 현재 그럼 누구랑 함께 지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내내 높은 목소리로 답을 하던 딸이 잠시 침묵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혼자 지내신다고 했다. 작년 11월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 쭉 혼자 지내오고 계신다고 말했다. 환자는 거의 20여 년간 뇌졸중으로 누워지내는 남편을 돌봐왔다. 작년 말 남편이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그의 역할 역시 사라져버렸다. 마치 20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느낌이랄까. 아마도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심각한 것은 이제 자신의 숨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텅 빈 집이었다. 이제 환자의 목소리를 들을 차례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일을 하시나요?”
환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혼자 지내면서 언제부턴가 식사를 차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심지어 잠을 자는 것도 살기 위한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버린 것이다. 조심스레 따님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살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딸은 당황해했다. 형제는 3남매지만 누구 하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어렵다고 했다. 급기야 딸이 말했다.
“그냥 입원시켜 주시면 안 돼요?”
입원해서 MRI든 CT든 다시 모든 검사를 다 받더라도 반드시 원인을 찾고 싶다고 했다. 나는 구태여 불과 몇 달 전에 한 그 검사들을 다시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어머니의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인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아마 딸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수 개월간 여러 병원을 함께 다니면서 나와 같은 얘길 한 의사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다시 환자에게 시선을 돌려 질문을 했다.
“그래서 식사는 어떻게 드시나요? 목 안으로 넘어가는 음식은 있으신가요?”
“혼자 있는데 뭘 차려 먹습니까. (딸을 가리키며) 가끔 이 애가 와서 같이 먹을 때나 밥술이 넘어가지...”
자녀들이 다 독립해서 집을 떠나고 단 둘만 남은 노부부 중 먼저 한 명이 떠나면 나머지 한 명의 삶은 참 고독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들이 와서 다시 돌보기도 쉽지 않다. 딸도 알고 있다. 선택지는 결국 노인요양시설이라는 것을. 그러나 차마 그러고 싶지 않아서 대학병원 진료실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왔을 것이다. 누굴 비난할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맞아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거의 20여 년째 우리와 경제 수준이 비슷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자살률 특히, 노인 자살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노인 빈곤율 또한 독보적인 1위다.
우리는 젊은 날 자식들의 사교육과 재테크를 위한 주식, 부동산에 온통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 우리가 늙었을 때 어떻게 지낼 지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과 공부 그리고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다들 막연히 은퇴 후에는 여행이나 다녀야지 하는 뻔한 말뿐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노년은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낮은 출산율만큼이나 노년기의 우울과 사회적 고립에 대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병으로 치부하고 병원으로 달려오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일하는 고령자는 비취업자에 비해 대체로 건강하고, 노후준비도 되어 있으며, 소득이나 소비에서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령자 통계’를 오는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이해 26일 발표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령자 통계 중 일하는 고령자의 생활과 의식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면, 고령자 취업자 비중은 2017년(30.6%)부터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36.2%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결과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로, OECD 평균 15%를 크게 상회했다. 2021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34.9%, 일본은 25.1%, 미국은 18%로, OECD 평균 이상을 나타낸 국가는 이 3개국이 전부였다.
일하는 고령자 10명 중 8명(80.8%)은 자신의 건강을 보통 혹은 좋다고 표현한 반면, 비취업자의 40%는 자신의 건강을 나쁘다고 평가했다. 또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정도도 취업자는 34.4%만 느낀다고 표현했지만, 비취업자는 다소 높은 36.4%가 느낀다고 답했다.
생활비 마련 방법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취업자의 10명 중 9명(93%)은 본인이나 배우자가 부담한다고 응답한 반면, 비취업자의 48.1%는 자녀나 친척, 정부 보조금 등에 의존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소득 및 소비 만족도 역시 취업자가 높은 경향을 나타냈다.
노후 준비에 대해서는 취업자의 68.1%가 준비하고 있거나 되어 있다고 답한 반면, 비취업자의 48.6%는 준비하거나 되어있지 않다고 답했다.
통계청은 이 밖에 고령자 통계를 통해 고령인구 비중이 올해 18.4%에서 2070년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6.4%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발표 내용 중 눈에 띄는 부분은 고령자 사망원인에 관한 것. 2022년 기준으로 사망원인 1순위는 암, 2순위는 심장질환으로 나타났는데, 3순위로 코로나19(10만 명당 331.3명)가 지목돼 질환의 심각성이 다시 재조명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배우 변희봉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변희봉은 췌장암이 재발해 투병한 끝에 18일 사망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17호실에 마련됐다.
변희봉은 앞서 지난 2018년 방송된 tvN ‘나 이거 참’에서 “지난해 ‘미스터 션샤인’ 캐스팅 요청을 받으면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때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며, 이후 관리를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밝힌 바 있다.
변희봉은 1963년 DBS 동아방송 성우 1기로 데뷔했으며, 이후 1966년 MBC 2기 공채 성우로 이적했다. 1970년 MBC 드라마 '홍콩 101번지'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드라마 ‘욕망’ ‘질주’ ‘1%의 어떤 것’ ‘늑대’ ‘위대한 유산’ ‘하얀거탑’ ‘공부의 신’ ‘울랄라 부부’ ‘오로라 공주’ ‘불어라 미풍아’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또한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에 그는 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렸다.
변희봉은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로 제21회 백상예술대회 TV부문 인기상을 받았으며, 영화 ‘괴물’로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대중문화 각계에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발인은 오는 20일이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끝내 용서하지 못한 사람
1955년에 태어나 2011년에 세상을 떠난 이 사람은 시리아계 미국인으로 대학에서 철학과를 다니다 중퇴했습니다. 장례를 불교식으로 치른 불교 신자이며, 췌장암 투병 끝에 향년 56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바로 창의와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한 스마트폰 시대를 연 스티브 잡스(Steve Jobs)입니다. 남다른 업적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자리에서 암에 걸려 끝내 일어서지 못한 그는 자신을 버린 생부(生父)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친아버지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평생에 걸쳐 품고 있던 아버지를 향한 증오심, 한순간도 용서하지 않았던 그 돌덩이 같은 모진 마음이 병으로 발현되지 않았을까요.
암세포보다 위험한 것
가수 윤도현은 최근 3년에 걸친 암 투병 끝에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면역세포인 림프구가 악성으로 바뀌어 종양이 생긴 ‘위말트림프종’이란 희귀암에 걸린 뒤 치료와 회복에 전념해온 그는 “암세포보다 부정적인 마음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힘든 투병 생활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공포와 고립 대신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잃지 말자고 환자들을 응원했습니다.
가장 취약한 곳에 파고드는 그분
필자는 지난 한 달 용서, 사과, 화해 이런 말에 몰입해서 내가 얼마만큼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재작년 이맘때 일기를 꺼내 보았네요.
요즘 계속 마음이 좋지 않아 그런지 말도 삐딱하고 가시 돋친 듯 날카롭고 하더니 결국 몸에서 사달이 났다. 사람마다 가장 취약한 틈을 바이러스나 병균이 침투한다더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나한테는 바로 방광염이다. 얼마나 아프던지 밤새 앓으면서 화장실에서 나오지도 못할 정도였다. 원인을 찾으려 병원 가서 검사해봤더니 듣도 보도 못한 균들이 내 몸을 장악했다고 한다. 의사는 항생제와 주사 처방 뒤에 마음을 편히 가지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면역력은 떨어진다. 이제라도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얼른 멈추고 말과 마음을 회복해야 몸도 잘 회복되겠지. 잘 될까?
용서(容恕)란 무엇일까요?
당신은 용서를 구해보거나, 용서를 구하는 상대를 용서한 적이 있습니까? 이 ‘용서’란 게 왜 이리 힘들까요. 용서가 우리한테 좋은 것인가요, 할 수 있기는 한 것인가요, 용서하면 무슨 이득이 생길까요.
‘그 사람이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해서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
사전 뜻풀이만으로는 용서의 본질에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용서(容恕)에서 핵심 단어는 용서할 서(恕)로,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남의 처지에 동정하는 어진 마음을 ‘서’라고 합니다. 내 마음과 상대 마음을 같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용서입니다. 마음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단계로 내 그릇, 얼굴(容)이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두 마음을 같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 입장에, 그 위치에, 그 상황에 똑같이 처해 헤아려보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이게 바로 용서하는 마음, 용서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용서에 도달하는 다섯 단계(REACH)
상담심리학 교수이자 용서 분야 학자인 에버렛 워딩턴(Everett Worthington) 박사. 정작 자신은 1955년 어머니가 강도 살인을 당했을 때 정신적 고통과 살인자를 향한 복수심에 사로잡혔다고 합니다. 피해자이자 연구자로서 그는 오래도록 살인자를 용서해야 할지를 놓고 씨름하면서 ‘용서와 화해’(Forgiving and Reconciling)라는 책을 저술했고, 다섯 단계를 거치는 용서의 기술을 전했습니다. 범인을 증오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용서의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1단계(R:Recall the Heart, 상기하기) : 상처를 부인하거나 억지로 잊거나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입니다.
▶2단계(E:Empathize, 공감하기) :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봅니다.
▶3단계(A:Altruistic, 이타심 갖기) : 상대를 축복하고 잘되기를 비는 마음으로, 내면의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4단계(C:Commit, 약속하기) : 상대를 용서하기로 자신과 약속하고 실행합니다.
▶5단계(H:Hold on, 견디기) : 용서라는 결정에 회의가 들더라도 그 마음을 견디고 유지하는 과정입니다.
살인자 구명운동에 나선 두 아버지
1987년 서울예고 성악과 2학년 재학 중 점심시간에 선배들한테 끌려가 폭행당해 죽은 고(故) 이대웅 군의 아버지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 해외 출장길에 아들 소식을 들은 그는 학교를 다 부숴버리리라 했을 만큼 격분했던 마음을 간신히 고쳐먹었다고 합니다. “제가 난동을 부리면 아버지가 저리 모질어 아들이 벌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 굳게 마음먹고 감옥에 갇혀 있던 가해 학생을 풀어달라고 담당 검사에게 탄원서를 냈습니다. 그때부터 아들 이름으로 장학회를 만들어 30년 남짓 3만 명이 넘는 학생을 도왔습니다. 더욱이 아들 죽인 원수의 학교인 서울예고와 서울예술학원을 인수해 재정난을 해결해주고, 지난 5월에는 200억이 넘는 사재를 기부해 대형 문화공간 서울아트센터를 완공했습니다.
1958년 미국 필라델피아 해밀턴가에서 무차별 폭행으로 한국인 유학생 오인호 씨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돌아서는 순간 11명이나 되는 흑인 청소년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입니다. 1달러도 안 되는 댄스파티 입장료를 구하려고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오기병 씨는 미성년인 범죄자들을 용서하고 무죄로 석방해달라는 탄원서와 함께, 가난한 수감자들의 직업교육과 사회적응에 쓰라고 당시로는 큰돈인 500달러를 재판장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두 아버지는 그렇게 두 아들을 영원히 기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용서 안 하면 마음의 병만 커져
‘용서’라는 행위는 종교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나 우리가 하지 않을 때 도리어 손해 나는 일로 자주 밝혀지곤 합니다. 용서하지 못한 상태는 내 안에 증오와 복수라는 불을 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결국 내 속을 태워 아프고 병들게 합니다.
인간의 염색체 끝에 붙어 있는 텔로미어(Telomere)라는 조직은 세포 노화 및 질병과 밀접한데,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지면 수명을 다하게 됩니다. 텔로미어 연구로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 교수팀은 ‘자애(慈愛) 명상’을 통해 남을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커질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더 이상 짧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길어지는 경우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명상 훈련을 한 집단이 분노와 증오 같은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에 비해 더욱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결과는 다른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입증되고 있습니다.
최근엔 하버드 T. H. 챈 보건대학원 연구팀에서 ‘용서 워크북’을 작성한 사람은 우울감과 불안감이 완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용서를 하면 과거를 곱씹는 빈도가 줄어들어 부정적인 감정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갈수록 커지는 양극화와 적대감으로 광포해진 현대 사회에서 용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 평생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마음 치유의 첫걸음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때 그 사건으로 항상 자신을 갖다놓곤 합니다. 뒷걸음질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용서는 영어로 ‘forgiveness’라고 합니다. 무언가를 앞으로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용서함으로써 뒤로 향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복수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용서입니다. 말처럼 쉽다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노력한다고, 안다고 용서가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용서해야 내가 살고, 내 병이 낫고, 내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다니 마음 깊숙한 곳에 뒤돌아 있던 자신에게 용서 해보자고 용기를 북돋아봅시다.
이해인 수녀님의 ‘용서의 계절’을 함께 나누며 마음 반창고 9화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 시간을
알뜰하고 성실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쓸데없이 허비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함께 사는 이들에게 바쁜 것을
핑계로 삼아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듣는 일에 소홀하며 건성으로 지나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내가 어쩌다 도움을 청했을 때
냉정하게 거절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다른 사람에게 남의 흉을 보고
때로는 부풀려서 말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전달하고
그것도 부족해 계속 못마땅한
눈길을 보낸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감사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하고
나의 탓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말을
교묘하게 되풀이한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사소한 일로 한숨 쉬며, 실망하며
밝은 웃음보다는 우울을 전염시킨
당신을 용서해드립니다.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심근경색증이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인 관상동맥이 막혀 심장 근육에 충분한 혈액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괴사하는 질환을 말한다. 국내 사망 원인 1위 질환은 암이지만, 돌연사 1위 질환은 바로 심근경색증이다. 암과는 달리 분초를 다투는 응급 질환이기 때문이다. 심근경색증에 대한 궁금증을 전기현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심근경색증은 급성(Acute)과 진구성(오래된, Old)으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심근경색증은 급성 심근경색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심근경색증은 갑자기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로 위험도가 높다.
심근경색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가슴 통증’이다. 환자들은 ‘가슴을 쥐어짜는 것 같다’,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 등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 이러한 고통이 30분 이상 지속되면 반드시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환자의 30%는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한다. 병원에 도착해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도 병원 내 사망률이 5~10%에 이른다.
심근경색증 환자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7년 9만 9647명에서 2021년 12만 6342명으로 5년 새 26.78% 증가했다. 중장년층은 노화로 인해 혈관에 노폐물이 축적되어 심근경색증 발병 위험이 높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Q. 심장 질환인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이 함께 거론되는 경우가 많은데. 두 질환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협심증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동맥경화로 인해 좁아져서 심장 근육에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지 못해 가슴 통증 등의 증상이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심근경색증은 좁아진 관상동맥이 혈전에 의해 갑자기 막혀서 심장 근육으로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심장 근육이 손상되는 질환을 말합니다. 이 둘을 합쳐 관상동맥 질환이라고 부릅니다.
Q. 심근경색증 증상 중 하나로 소화불량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소화기 질환 소화불량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A. 관상동맥 질환에 의한 통증으로 위, 담낭의 이상이나 역류성 식도염과 비슷한 증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위장관 질환에 의한 증상과 가장 큰 차이는 관상동맥 질환에 의한 증상은 운동할 때 특히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관상동맥 질환에 의한 가슴 통증은 대개 2분에서 5분 사이로, 통증이 몇 초 내로 잠깐 느껴진다면 협심증 가능성이 크지는 않습니다. 단 신체 활동 시 2분에서 5분 사이로 흉통이 느껴지는 협심증 환자가 30분 이상 통증이 지속된다면, 이는 심근경색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이므로 즉시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합니다.
Q. 심근경색증 증상이 공황장애 증상과도 매우 비슷하다고 하는데,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A. 공황장애뿐 아니라 관상동맥 질환과 혼동할 수 있는 질환은 많습니다. 위장관, 폐, 흉부 신경이나 골관절 이상,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 흉통을 일으킬 만한 원인은 복합적이고 다양합니다. 또한 공황장애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심장 질환이나 위장관 질환이 아닌 것을 확인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자가 구분법보다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흉통이 발생하면 전문의와 상의를 권합니다.
Q. 심근경색증 치료법에는 무엇이 있나요? 현재 의료진은 어떤 치료법을 가장 추천하는 추세인지도 궁금합니다.
심근경색증은 인간이 느끼는 통증 중에 가장 심한 통증에 속합니다. 모르핀을 사용해도 통증 조절이 잘 되지 않습니다. 심근경색증은 이미 혈관 질환이 심한 상태로 약물 치료만 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대부분 분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수술을 기다리기보다는 바로 중재 시술, 흔히 말하는 스텐트(금속 그물망) 삽입술을 하여 혈류를 회복해야 합니다. 과거에 중재 시술을 하기 전 연구 결과들을 보면 심근경색증 환자의 사망률이 60%가 넘었지만, 중재 시술이 도입된 후인 현재는 사망률이 10% 미만으로 줄었습니다. 심근경색증 시술은 생존율을 유의미하게 높이는 치료입니다. 의료진 입장에서 심근경색증 환자 치료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심근경색증을 예방하기 좋은 음식과 생활 습관에는 무엇이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A. 관상동맥 질환은 비만과 연관이 있습니다. 비만 환자는 동맥경화와 관련된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고, 운동을 적게 할 확률도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심근경색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방, 나트륨, 당 섭취를 주의해야 하며, 견과류나 과일 위주로 섭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육체적 활동이나 유산소 운동을 중등도 강도로 일주일 3일 이상, 하루 30분 이상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과로와 스트레스도 피해야 하며, 금연도 중요합니다.
만성 콩팥병은 3개월 이상 콩팥에 손상이 있거나 콩팥 기능이 저하된 상태의 질환을 말한다. 60대 이상이 전체 환자의 79%를 차지한다. 나이가 들수록 신장 기능이 저하되며, 고령자의 대표적인 만성 질환인 고혈압, 당뇨병 등이 신장 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만성 콩팥병에 대한 궁금증을 김소연·권순효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신장내과 교수와 함께 풀어봤다.
콩팥에는 사구체라는 혈액 여과기가 있다. 이곳을 지나며 걸러진 노폐물은 소변으로 배출된다. 만성 콩팥병(만성 신부전증)은 콩팥이 여러 이유로 지속적으로 손상을 받아서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을 말한다. 주요 원인으로 당뇨병과 고혈압이 꼽힌다. 고혈압으로 혈관이 손상되면 콩팥에 이상이 생기며, 당뇨병으로 혈액 속에 당이 많으면 신장 조직에 손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만성 콩팥병은 ‘많고 비싼 병’으로 통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만성 콩팥병 환자는 2017년 20만 3978명에서 2021년 27만 7252명으로 5년 새 36% 증가했다. 국내 성인 7명 중 1명은 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또한 최근 10년간 만성 콩팥병 진료 환자 수 및 진료비 모두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849만 원이었다. 진료비가 높은 이유는 ‘투석’과 관련 있다.
만성 콩팥병은 진행 상태에 따라 1~5기로 구분한다. 초기 1~2기는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약물 치료와 철저한 관리만으로도 유지가 가능하다. 사구체 여과율 60% 미만의 3기에 이르러야 증상이 나타나는 편이다. 특히 가장 심각한 단계인 5기는 ‘말기 신부전’이라고 하며, 투석 치료나 이식을 받아야 한다. 이 시기에는 5년 생존율도 약 61.5%로 떨어지는데, 이는 일부 암의 5년 생존율보다 더 낮은 수치다. 이에 따라 조기 발견이 중요하며, 건강한 습관으로 병을 예방하는 것이 좋다.
Q. 부종과 같이 뒤늦게 나타나는 만성 콩팥병의 증상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자신이 당뇨 환자라면 만성 콩팥병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A.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지만, 신장 기능이 저하되면서 피곤함, 집중력 저하, 식욕부진, 수면장애, 발목 부종, 야뇨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전신이 붓는 증상은 신장과 심장, 간 등의 질환이 있을 때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당뇨병 환자 3~4명 중 1명에게 만성 콩팥병이 생기고, 말기 신부전 환자 2명 중 1명은 당뇨병이 원인일 정도로 당뇨병 환자와 신장 합병증은 관련이 깊습니다. 적절한 식이·운동·약물요법을 통해 혈당 관리를 철저히 해 합병증 발생을 예방하고, 정기적인 소변 검사와 혈액 검사로 신장 합병증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형 당뇨가 있는 사람은 최소 1년에 한 번씩 소변 알부민뇨 검사와 혈액에서 추정하는 사구체여과율 검사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Q. 5기 환자의 경우 5년 사망률이 암보다 높다는 통계를 봤습니다. 위험도가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A. 5기 말기 신부전 환자들의 가장 높은 사망 원인은 심혈관 질환입니다.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는 당뇨, 고혈압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심혈관 질환 위험인자인 요독증, 혈관 석회화, 대사성 산증을 가지고 있어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10~30배 높습니다.
Q. 신장이식 수술은 위험성과 부작용이 잇따를 것 같습니다. 현재 의료진이 이식 수술을 권장하는지, 반대로 지양하는지 추세가 궁금합니다.
A.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는 신장이식이나 투석 같은 신 대체요법을 시행합니다. 최근에는 과거보다 신장이식을 받는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신장이식이 투석에 비해 장점이 많습니다. 거의 정상 신장 기능을 가지게 되어 투석으로 잘 빠져나가지 않는 노폐물도 제거할 수 있으며, 조혈 호르몬, 활성화 비타민 같은 호르몬이 만들어집니다. 투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거의 정상적인 식사와 생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식할 신장을 제공받기가 쉽지 않으며, 수술에 대한 정신적・육체적・경제적 부담이 있습니다. 또한 이식 후 거부반응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고, 이로 인해 감염이나 암 같은 면역억제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식을 준비하기에 앞서 이식의 장단점을 잘 따져봐야 합니다.
Q. 만성 콩팥병 환자는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게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신장 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만성 콩팥병 환자는 수분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데, 이 상태에서 물을 과다하게 마시면 혈액량, 체액량이 늘어 폐부종이나 부종이 생길 수 있습니다. 다만 무조건 수분 섭취를 제한하면 오히려 탈수로 인한 신장 손상을 유발할 수 있어, 만성 콩팥병 단계와 소변량 등을 살펴보고 주치의와 상의해 적정 수분 섭취량을 결정해야 합니다.
Q. 만성 콩팥병을 예방하기 좋은 음식과 생활 습관에는 무엇이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만성 콩팥병의 원인이 되는 당뇨, 고혈압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생활 습관 개선과 적절한 약물 치료를 통해 혈당 및 혈압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담배는 반드시 끊고 술은 하루에 한두 잔 이하로 줄이는 것을 독려합니다. 더불어 만성 콩팥병 환자는 충분한 열량과 적당한 양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며, 염분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또한 포타슘(칼륨)과 인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다만 이와 같은 식이요법은 증상 악화를 막을 수는 있겠지만, 질환 자체를 고칠 수 없다는 점을 알아둬야겠습니다.
보기만 해도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지는 영화 5편을 추천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2012)
티빙, 웨이브, 왓챠 시청 가능
혼자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주인공 ‘길’은 매일 밤 1920년대로 떠나게 된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여행.
라라랜드(2016)
티빙,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시청 가능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는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에서 만난다. LA가 배경인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2(2018)
티빙, 웨이브, 왓챠, 넷플릭스 시청 가능
파티를 준비하는 소피는 엄마의 비밀과 뜻밖의 손님까지 마주하게 된다. 그리스 섬에서 열리는 한여름 밤의 파티가 시작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왓챠 시청 가능
일본의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사는 세 자매는 이복동생을 만나면서 가족의 인연을 그려나간다.
네 자매의 추억이 담긴 다이어리 같은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2014)
티빙 시청 가능
런던의 정신과 의사 헥터는 행복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마지막 여행을 떠난 말기암 환자, 가슴속에 간직해 둔 LA의 첫사랑 등을 만나게 된다.
건강을 잃고서야 절절한 심정으로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게 사람이다. 위중한 병을 얻었을 때 인생의 유한함을, 시간의 소중함을 비로소 뼈저리게 절감하며 새롭게 눈을 뜬다. 함지애(58, ‘지애의 봄향기’ 대표)는 40대 때 폐암 1기 선고를 받고 투병을 했다. 용케 조기에 발견된 암인 데다 수술이 잘돼 예후가 좋았다. 천운으로 병마를 다스렸으니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얼마 뒤 폐암보다 무섭다는 폐섬유증(폐가 굳어지면서 심각한 호흡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환)이 다시 기습했단다. 어이하나?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폐섬유증 수술을 마친 함지애는 고심 끝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김제로 내려갔다. 그건 요양을 위한 낙향이었지만 귀농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여기고, 이제 시골에서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는 점에선 당찬 투신이자 기꺼운 모험이었다.
서울에 살 때 그는 의류유통업을 했다. 중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동대문 상가, 남대문 상가에서 뛰었다. 뛰더라도 그냥 뛴 게 아니라 경주마처럼 열렬한 질주를 했나? 그의 가게엔 자주 고객들이 줄을 섰다지. 아마도 그의 천성일 패기와 근성이 성과를 불러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자수성가로 우뚝하게 일어선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몸에 중병이 찾아와 위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면 서울을 뜰 일이 없었으리라. 시골살이? 그건 그의 사전에 아예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시골 생활은 무섭고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을 통과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삶의 방향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뜻밖에 찾아온 변곡점은 차라리 하나의 기쁜 선물이었다. 낙향 이후의 삶이 한결 새롭고 만족스럽다는 게 아닌가. 시골에 내려와 비로소 인생의 향긋한 열매를 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왕 삶을 바꿀 거라면 다 내려놓고 가자!”
낙향 때 그의 머리에서 나부낀 기치가 그랬다. 인생을 레이스하는 데 쓸모가 큰 방편으로 여겼던 욕심과 경쟁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물질이든 행복이든 가급적 손아귀에 한가득 움켜쥐고자 했던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생존의 정글에서 지친 노루가 쉴 만한 물가를 찾아가듯이 마음을 비우고 낙향했다. 사람이 마을을 비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가치한 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다 버렸다. 그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라고 봤다. 함지애가 김제로 내려간 건 2012년. 초기 한동안은 요양에 전념했다.
“텃밭 농사로 거둔 깨끗한 채소류를 먹거나, 산야에서 약초를 얻어 섭취했다. 도시에 비할 수 없이 맑은 공기도 몸에 좋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시골 생활이 주는 평온함이었다. 마음이 그토록 편안해지다니, 예상과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맛보며 안도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빠른 속도로. 웃음을 달고 살다시피 했으며, 이웃들과 좋은 사이로 지냈다. 아, 시골에 오기를 잘했어. 좀 더 빨리 내려올걸!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유능한 강소농 모델로 떠올라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함지애는 슬슬 농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즈넉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성장한다는 게, ‘일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즐거울 수 있다’는 게 그가 인생에서 배운 일종의 공리다. 농사에 뛰어드는 방식은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여러 농업 교육기관을 통해 공부부터 충실히 하는 한편, 대담하게도 5000여 평의 전답까지 마련해 바닥을 다졌다.
“농토에 벼, 찹쌀, 보리, 콩 등을 재배했다. 농사 방법은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기로 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고추장, 된장, 청국장, 간장을 만들자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혼자서 5000평이나 되는 너른 전답에 농사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주로 위탁영농 방식으로 농사를 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봄철의 논밭 갈이부터 가을철 수확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주니까. 그런데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사전에 부지런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농업을 공부했다. 건강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초기 5~6년은 수련기였다. 거의 공부 기간이었다. 이때 다수의 농업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나?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 가공학과에 적을 두고 배웠다. 버섯과 화훼 공부도 병행했다. 김제에 있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전통장류, 조청, 꽃차 등에 관한 이론과 실재를 교육받았으니까. 이렇게 공부하며 농어촌체험지도사, 전통장류제조사, 꽃차 소믈리에, 천연발효식초 제조관리사 등 자격증 여러 개를 취득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로 부문이다. 판로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공부해둔 게 있었나?
“판로 문제야말로 농업 경제의 핵심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화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농사 시작과 동시에 SNS 마케팅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농사의 출발은 식초 사업으로 열었다지?
“2018년에 식초 생산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작업장과 체험장을 지어 생산과 체험 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가공 분야 가운데 식초를 선택한 이유는?
“아까 말했지만 난 농업 관련 공부에 많은 시간을 썼다. 딴엔 제법 공부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느 수준인지, 뭐 좀 실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다. 테스트 수단으로 식초 사업을 택한 건 식초가 사람 몸에 가장 좋은 식품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남의 건강을 위해서도 식초만큼 좋은 게 없다고 봤으니까.”
촘촘한 사전 준비에 힘입어 식초 사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유의 현미식초를 만들어 특허 등록을 냈으며, 연잎식초라는 희귀한 제품을 만들어 역시 특허를 받았다. 스스로 설정한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셈이다. 이후 그는 식초의 이웃사촌인 술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전통주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둔 상황에서였다. 따라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단 필이 꽂히면 냅다 덤벼들어 몰두하는 평소의 습성과 기량을 풀가동해 전통주 개발과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가 주어졌다. 각종 경연대회에 출품한 그의 술이 큰 상을 연달아 받으며 일약 알아보는 눈이 꽤 많은 실력자로 부상했다는 게 아닌가. 그는 2019년 충남도 농업기술원이 후원한 ‘우리 발효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1년엔 ‘대한민국 명주대상’ 경연에서 청주 부문 대상을, 2022년엔 광주MBC가 주관한 ‘우리 술 어워즈’에서 ‘왕중왕’상을 거머쥐었다. 전통주 초심자가 거둔 만만치 않은 성취였으니 이변이라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이제 그는 술과 더불어 유능한 강소농의 모델로 떠올랐다.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
“난 술에 미친 여자다.(웃음) 좋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양조엔 디테일한 기술력이 필수다. 누룩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효모로 단맛과 신맛 등 풍미를 지닌 술을 빚어내기 위해선 반복적 실험이 선행돼야 한다. 술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미치지 않고선 도달할 수 없는 게 양조다.”
어떤 술들을 만들고 있나? 가장 자부하는 술을 꼽는다면?
“현재 6종류의 술을 생산한다. 대표 상품은 ‘초야’(初夜)라는 청주다. 신혼 첫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술에 담았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탁주인 ‘순애보’ 역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술이다.”
시중에 수많은 민속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신의 술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
“남들은 흔히 말한다. 여러 가지 꽃을 양조 재료로 삼은 꽃술은 함지애의 것이 뛰어나다고. 민속주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이게 바로 한국의 술이야!’라고 자신할 만한 술을 만들고자 노력할 텐데,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술의 풍미 수준을 가르는 건 기술력보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손길에 달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 때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게 좋은 양조의 비결이라 믿는다.”
양조란 창의적 감각이 요구되는 난해한 장르다. 자력으로 단기간에 일정한 성취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누군가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나?
“운 좋게도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 명품 전통주 ‘호산춘’의 명인 이연호 선생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인 박록담 선생님을 통해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스승들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시골에 내려온 이후 나는 이렇다 할 실패나 착오를 겪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좋은 인간관계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좋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좋은 걸 배웠고, 배운 걸 토대로 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일뿐만이 아니다. 삶의 질 자체가 아등바등 살았던 서울에서보다 훨씬 좋아졌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일과 생활, 양면에서 선순환을 해왔다는 얘기다. 남의 가르침과 의견을 경청해 피드백으로 삼기. 이웃과 도타운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사업 이상의 정성을 쏟아 감흥을 누리기. 이쯤이면 결함 없는 생활이다. 인생의 중세시대라 할 만한 투병기는 어느덧 종료됐다. 여러 측면에서 서울에 살 때와 완연하게 변했다. 이제 그가 지닌 지배적인 감정은 만족감, 그 하나란다.
다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는 양상이 있으니, 여전히 바쁘게 산다는 게 그렇다. 함지애가 만드는 건 식초와 전통주만이 아니다. 들에선 곡물을 생산하며 장류 사업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대파에서 피어나는 보랏빛 꽃을 부재료로 가미한 이색 꽃두부도 생산한다.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다. 김제 시내에 오픈 스튜디오를 두고 대표를 맡고 있는 ‘징게맹갱 우리술 협동조합’의 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돌보는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시내의 침체된 구역 일부를 놀이문화 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의 가짓수가 이토록 넘치다니. 그는 남몰래 비명을 지르는 건 아닐까? 일에 치여 부질없이 소비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희로애락은 여전하고 때로 눈물도 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비로소 하고 있다는 실감으로 행복하다. 돈을 벌려고 바동거렸던 과거에서 벗어난 것만도 어딘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본성을 회복한 건 또 어떻고? 욕심을 내려놓고, 짧고 굵게 살다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흔히들 까먹고 산다. ‘욕심에 휘둘리는 삶은 이제 싫어!’ 함지애의 드라마를 난 그런 외침으로 새겨두기로 했다.
함지애가 주는 귀농 Tip
•땅과 집을 마련하기 이전에 귀농 교육부터 충분히 하라.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1년 살아보기 프로그램’ 같은 걸 통해 농촌 생활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다. 그 과정에서 나의 숨겨진 역량을 발굴할 수 있으며, 과연 귀농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 초기 3년 정도는 성공을 위한 수련기로 삼아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내지는 농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활용하자. 농업의 경제 효과는 현명한 운영을 했을 경우에도 대체로 귀농 5년 이후에나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이나 특기를 살려 재활용하라. 이를테면 꽃에 조예가 있다면 꽃차 사업에 도전하는 식으로.
•여성의 단독 귀농을 두려워하지 마라. 다만 남다른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귀농 초기엔 소득 발생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많다. 예비비 확보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