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용노동부는 신중년 구직자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지원 중인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의 2021년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올해는 4차산업혁명과 한국판 뉴딜 시행에 따라 향우 수요가 증가 및 신중년의 재취업 확대가 기대되는 신규 직업 29개가 신규 편성됐다. 새롭게 등장한 신중년 적합직무는 무엇이고 해당 직무 종사자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PART1. 디지털 분야
1) 스마트시티 운영·관리자: 다양한 유형의 전자 데이터를 취합해 스마트시티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관리
2) 스마트팜 운영·관리자: 스마트팜 시설, 시스템 및 환경을 관리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작물 생산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도록 지도
3) 인공지능학습교육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수집, 분석, 처리하며 인공지능 머신러닝, 딥러닝 등을 지원
4) 디지털금융강사: 디지털 기술을 응용한 금융상품과 서비스 관련 정보 및 전자상거래 방법 등을 모바일 등을 활용해 교육
5) 스마트공장 운영자: 기획, 생산, 유통, 판매 등 제조과정의 전부 또는 일부를 IoT, AI, 빅테이터 등의 기술을 적용해 제품의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키는 지능형 공장 운영 및 관리
6) SW품질 테스터: 소프트웨어 정식 출시에 앞서 프로그램 테스트 후 문제점 및 보완점 평가
7) 스마트 팩토리 코디네이터: 빅데이터, AI, IoT 기술을 융합해 스마트 팩토리 설비의 설계 및 구축을 위한 제반 업무 담당
8) 스마트 복지케어 안내사: 사용자 헬스케어를 위한 데이터 수집, 임상 분석 등을 통한 개인 대상 맞춤형 복지 안내
PART2. 그린(환경) 분야
9) 신재생에너지차 정비원: 태양광, 수소 연료전지 등 에너지 기술을 접목한 차량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정비 관련 업무 수행
10) 귀농귀촌 전문가: 귀농귀촌인을 대상으로 귀농 전 상담, 교육부터 이후 주거, 일자리, 재무 등 종합적인 서비스 제공
11) 노후 건축물 에너지 진단 컨설턴트: 노후된 건물을 대상으로 에너지 절약을 위한 대책 마련 및 진단 결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분석을 통한 컨설팅
12) 대기환경 시험원: 대기환경 오염원을 테스트해 환경 상태 평가하거나 관련 기술 개발을 통해 대기오염 문제 예방 및 환경 개선에 필요한 각종 시험 시행
13) 태양광 설치 건설현장 감독: 친환경 에너지 설비인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는 현장을 총괄, 관리, 감독
14) 실내공기질 관리사: 지하철, 어린이집, 대규모 점포 등 다중이용시설의 실내공기질 전문 관리 및 컨설팅
15) 신재생에너지 충전소 운영관리자: 친환경 자동차 충전 인프라(충전소) 전반 운영 및 관리
16) 자연환경해설가: 생태경관보전지역 및 습지보호지역 등 생태우수지역 탐방객 대상 생태해설, 교육 및 탐방 안내
17) 에너지 어드바이저: 에너지 소비 현황 등을 진단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 컨설팅
18) 친환경 유기농 전문가: 친환경 유기농업 교육 및 생산, 유통, 가공 등 관리 업무 수행
19) 나무의사: 수목 진단, 처방 및 예방 등 진료와 치료 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
20) 바이오 진단 전문가: 질환 및 건강 관련 신체 지표 등 체외 진단 업무 담당
PART3. 창직 분야
21) 반려동물 미용사: 반려동물의 미용과 청결에 관련된 서비스 제공
22) 방역모니터링 요원 및 방역원: 감염병 등 질병 발생과 전파 과정 감시, 역학조사 및 자료 분석 등 기술지원
23) 건설현장 안전관리자: 건설 재해 분석을 통해 건축물의 시공, 관리상의 위험성을 도출하고 공정별 안전대책 마련 및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
24) 은퇴설계 전문강사: 은퇴 예정자를 지원하기 위해 관련 프로세스에 따라 상담 및 관리
25) 시멘트 광물제품 생산기계 조작원: 석회석이나 석고를 가열하는 소성 작업을 거쳐 각종 시멘트와 석회, 콘크리트를 제조하는 장치를 조작
26) 플라스틱제품 생산기계 조작원: 화합물을 혼합, 합성해 플라스틱 부품 및 제품을 제조하는 기기를 조작
27) 장례지도사: 유족과 장례 정차를 상담하고, 장례용품 준비 및 시신관리, 장례식 주관 등 장례 절차 관리
28) 생애경력 설계사: 구직자, 재직자가 경력을 바탕으로 작업 역량을 분석하고 미래 설계를 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코치하는 역할
29) 목재가공기계 조작원: 원목 또는 1차 제재한 재목을 절삭, 파쇄하거나 단판, 파쇄된 목재를 접착, 압착해 한판을 제조하는 등 각종 목재 가공 장치를 조작
이들 신규 직무를 포함한 2021년 신중년 적합직무 사업 규모는 5100명이며, 예산은 243억 원이다. 우선지원대상기업 또는 중견기업이 고용부가 선정한 신중년 적합직무에 50세 이상 구직자를 채용하는 경우 혜택받을 수 있다. 우선지원대상기업은 최대 월 80만 원, 중견기업은 최대 월 40만 원까지 최대 1년까지 지원 가능하다. 지원금 신청을 원하는 중소·중견 기업은 고용보험 누리집을 통해 온라인으로 신청하거나 고용복지+센터에 우편, 방문 신청하면 된다.
점프슈트를 입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방미가 소녀처럼 웃었다. 특유의 눈웃음, 그리고 다부진 몸매, 허스키한 목소리로 팬들의 마음을 흔들며 데뷔한 40년 전의 얼굴 그대로라면 믿겠는가. 부동산 관련 책을 출간하고 저자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는 요즘 ‘BangmeTV’ 제작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맨 얼굴로 그날그날의 이슈와 생각을 이야기하면 할수록 재미와 의미가 더해지는 작업이란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여자 방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봤다.
MBC 2기 공채 개그맨으로 1978년 연예계에 데뷔한 방미는 1980년 ‘날 보러 와요’로 한국 가요계를 휩쓸었고 동명의 영화 출연료를 종잣돈으로 국내 부동산 투자를 시작해 해외 부동산까지 성공, 서울 강남은 물론 제주도까지 섭렵하며 큰 부를 쌓았다.
“1983년 LA 공연차 미국을 방문한 뒤 해외 진출과 비즈니스를 꿈꿨어요. 그러다 1993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발표한 후 연예계를 떠났고 미국 뉴욕으로 갔어요. 2007년 거기서 이모가 하던 주얼리숍 등을 운영하면서 뉴욕, 로스앤젤레스, 하와이 등의 부동산에 투자했어요. 성공을 거둔 건 맞아요. 이 모든 것들이 근검절약하고 노력한 덕분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어요.”
연예인을 하면 돈 좀 벌 수 있을까 하고 시작했다는 그녀는 그동안 전심전력하며 열심히 살았던 젊은 날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육십의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에 호탕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 반갑다.
사람들은 아직도 감칠맛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한다. 그녀를 ‘날 보러 와요’를 부른 1980년대 인기가수로만 여기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2007년에 가수생활 종료를 선언하고 재야의 부동산 투자 고수로서 활약한 지 오래다.
언니, 아직 죽지 않았다요?
서울 신사동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지금 한국 사회는 뭔가 안 풀리고 답답한 상태라며 쓴소리를 한다. 그 답답함이 너무 싫어서인지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그녀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런 시원시원함이 나이를 거스르는 듯한 그녀의 외모와 잘 어울렸다.
방미는 2018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BangmeTV’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 삶의 이야기, 헬스, 부동산 투자, 정치에 대한 얘기들을 풀어내는 출구다. 그런데 그녀의 채널은 댓글을 달 수 없게 해놨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맥락 없는 비난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나를 꼴 보기 싫어해요. ‘너는 뭐냐. 뭔데 잘난 척이냐’라는 식으로 말하죠. 하지만 저는 전혀 신경 안 써요. 버닝썬 사건처럼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잘난 척하는데 알고 보니 ‘바지사장’인 경우 많잖아요? 심지어 나를 사기꾼이라고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세금 안 내고 사기꾼이었으면 가만 놔뒀겠어요?”
그녀의 솔직 담백함은 지독히 가난했던 ‘흙수저’ 시절을 극복한 자신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는 듯싶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 어렵게 살다가 출세를 하고 돈을 벌고 명예를 얻었죠. 돈을 벌기 시작한 건 ‘날 보러 와요’를 부를 무렵이었고, 버는 대로 저축했어요. 시작과 동시에 계획을 잘 짰어요. 돈에 대한 플랜을 말이죠. 적금을 부어 오백만 원을 모으면 차를 사고 전세를 얻을 수 있겠다 하는 식으로 구상이 늘 있었죠. 그게 습관이 됐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계획에 맞춰 살아왔죠.”
물론 그녀의 삶이 생각한 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젊었을 때는 굉장히 싸가지 없었다”라고 표현하는 그녀는 20여 년 전, 믿었던 사람에게서 1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하고는 자신의 교만함을 반성하고 깨닫게 됐다고 한다.
잘 하는 일 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계획을 중시하는 방미답게 오래전부터 유튜브 방송도 차근차근 준비했다. 사실 그녀는 유튜브를 하기 전에 이미 10년 넘게 블로그 ‘악질 방미’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었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가수를 그만뒀어도 ‘연예인’이라는 자신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번 연예인은 영원한 연예인이죠. 방미가 죽으면 신문에 ‘가수 방미’라고 기사화될 테니까요. 그러니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볍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행사를 하거나 신곡을 또 내기는 싫었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블로거에서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또 다른 모험을 하며 그녀는 제작, 연출, 각본, 진행 등 실로 다양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중이다. 현재 구독자 수는 1만6000여 명.
“아직 폭발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고 있어요. 50대, 60대가 시청자의 주류이다 보니 구독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분위기는 아니예요. 그게 좀 아쉽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제가 여전히 무대 체질인 거 같기는 해요. 유튜브를 하면 신나거든요.”
유튜브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고 싶은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특히 비중을 두고 방송을 하는 분야는 재테크다.
“제가 현물은 잘 모르지만 부동산은 40년간 발로 뛰면서 많은 정보를 얻었어요. 그래서 알려줄 게 많아요. 20년은 한국에서, 20년은 미국에서 부동산 투자를 하며 보냈으니까요.”
‘나는 해외 투자로 글로벌 부동산 부자가 되었다’
사실 방미는 그동안 세 권의 책을 낸 저자이기도 하다. 그녀가 가장 최근에 낸 책은 ‘나는 해외 투자로 글로벌 부동산 부자가 되었다’로,
5월 초에 발간되어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보를 쉽게 얻기 힘든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내용을 다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녀가 실제로 수익을 낸 지역들을 예로 들어 비자 발급, 관련 용어 설명, 미국의 각 지역 정보에서부터 수수료와 세금까지 다양하고도 실전적인 투자 정보를 담고 있다. 해외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주목할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그녀는 지금도 국내외를 오가며 지내고 있지만 현재는 청담동에서 거주하고 있다. 사무실은 압구정동에 있다. 그리고 작년에 제주도에 리조트도 마련했다.
“해외에서 살다 보니 한국에 왔을 때는 꼭 자연을 충분히 느낄 수 이 있는 곳이어야 하더라고요. 이장희 ‘형’(그녀는 이장희에게 노래 ‘주저하지 말아요’를 받으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도 울릉도에 사는 이유가 그래서일 거예요. 산과 바다 등 자연을 보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부동산 관련 책을 출간한 의미까지 듣고 나니 부동산 투자가로서의 방미가 궁금해졌다. 특히 제주도는 10여 년간 계속 투자가들의 관심을 끌었기에 그녀가 전문가로서 제주도의 부동산 가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슬쩍 듣고 싶었다. 독자들을 위해 제주도 투자에 대한 그녀만의 노하우를 청했다.
제주도 투자, 이것만은 명심하라
“제주도는 집을 잘 선택해야 해요.”
그 이유는 중국인들이 이미 많은 땅을 선점했고 매체의 영향으로 제주도 붐까지 일어나면서 난개발을 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 속에 지어진 집들이 문제점이 많다는 게 방미의 진단이다.
“제주도는 섬이고 초원이다 보니 야생동물, 바퀴, 개미 등 벌레가 많아요. 그리고 하수구 등 배수 문제도 있고요. 나이 들어서 거기 가서 영원히 살겠다? 그건 무리라고 봐요. 제주도 초원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죠. 그런데 가서 막상 살면 한 달도 못 견뎌요.”
방미는 제주도에서의 집은 세컨드하우스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세컨드하우스로 살 때 제주도의 분위기를 한껏 내보겠다고 검은 화산석으로 치장한 집을 사는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말리고 싶어요. 제주도 돌은 TV에서나 다른 사람 집 보면서 감상하고, 정말 편하고 세련된 집을 선택해야 해요. 집 밖으로 나갔을 때 KFC도 있고 스타벅스도 있는 편의성이 있는 곳에 마련하는 게 좋아요.”
그녀는 사방이 펼쳐져 마치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하는 곳은 오히려 불편함이 많다고 지적했다. 밖으로 나오면 바로 문화를 즐길 수 있고 편리함이 있는 곳, 인프라 접근성과 재밋거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야의 부동산 고수로서 한마디
“그래서 제주도는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집을 사면 안 돼요. 그건 하와이도 그래요. 철칙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바닷가 앞에 있는 집에는 필연적으로 벌레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습한 날씨가 많은 섬에서 바닷가까지 앞에 있으면 생활 환경이 최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제주도는 쉬려고 가는 곳이지 고생하려고 가는 게 아니라는 게 그녀의 관점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그녀가 주택이 아닌 리조트를 선택한 것이 당연해 보였다. 리조트나 레지던스는 청소와 식사 등 필요한 서비스들을 기본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투자처로서의 제주도는 지금 어떨까? 그녀는 제주도의 부동산 경제 사정이 현재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되려 그렇기 때문에 투자처로서의 가치는 높아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눈여겨보고 있어요. 올 하반기가 투자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삼방산 밑 지역과 서귀포 중문 관광단지 쪽이 괜찮아 보여요. 삼방산은 요즘 방송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예전부터 핫한 곳이었어요.”
최소한 10년 계획을 세운다
부동산 투자에서 전문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그녀를 보니 현재의 방미에게 가수로서의 욕구는 더 이상 없다고 봐도 좋을 듯했다. 사실 그녀는 꼭 참석해야 할 행사가 있어도 가서 노래는 절대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설 수 있는 무대들은 이제 후배에게 물려줘야죠. 그 자리 외에도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자리들이 있을 테니까요.”
가수로서 최선을 다한 시절이 있기에 후배의 자리를 뺏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정의(正義)가 느껴졌다. 그렇다면 가수가 아닌 부동산 투자 강의를 하는 방미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제 강의료가 1000만 원이에요. 그렇게 금액을 정한 건 강의를 꼭 들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시라는 의미도 있지만 너무 비싸니까 부르지 말라는 의미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의미가 있는 자리에서 강연을 할 때는 돈을 받지 않으려고 해요.”
그녀는 삶을 충분히 즐겼다고 말한다. 해외에서의 삶도 풍족했다. 뉴욕에서 10년 번 돈으로 LA에서 5년 동안 즐겁게 살았다. 이제 그녀는 4~5개월은 한국에서, 3개월은 미국에서, 나머지는 여행을 하며 여생을 보낼 생각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잘살았어요. 이제 내일모레가 칠십(?)인데 인생 정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봐야죠. 그러니 더 돈을 벌겠다, 다시 노래 좀 불러볼까 하는 욕심은 없어요.”
방미는 모든 계획의 단위가 최소한 10년이라고 했다.
내 마음대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
그녀는 유튜버 활동이 큰 욕심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매력이 있단다. 그걸로 돈을 벌기는커녕 되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며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으니 그 정도 자유는 당연하지 않냐는 게 그녀의 말이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쉬운 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10년 동안은 내 맘대로 살고자 해요. 이제는 나한테 투자를 하고 싶어요. 우선 충분히 잘 멋지게 쓰고 행복해지는 데 집중하자, 그러니 미리 고민하지 말자는 생각이죠.”
물론 늘 계획하고 사는 게 습관이 된 그녀가 모든 걸 내려놓을 리는 없다. 우선 유튜브 구독자 수를 올해 말까지 3만 명 정도까지 늘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어요. 강연과 세미나, 공연, 요가, 운동, 놀이터 등이 가능한 만남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은 거죠. 요즘 시니어는 예전에 비해 훨씬 건강해요. 베네피트에 공감하며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브라보는 젊은 애들이 잘 안 하는 말이다. 진정 우리 나이여야 할 수 있는 말”이라면서 멋지게 정리해버리는 방미는 그야말로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고 외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브라보’스러운 미래 계획은 또 어떻게 세울지 궁금해졌다.
나라마다 아침을 맞는 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씩 다르다. 일본은 개인의 일상을 중요시하는 편. 아침에 활동하는 시니어를 위해 오전 7시에 문을 여는 쇼핑센터도 등장했고, 심지어 중장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새벽에 개점하는 소위 ‘빠칭코’도 인기몰이 중이다. 반면 미국은 가족이나 지인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오전이 긍정적인 감정을 주고받기에 좋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여기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아침 활용법을 모아보았다. 우리네 생활 실정과는 다소 다를 수도 있지만, 즐거운 아침 시간을 위해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매체 ‘기나리노’가 추천하는
즐거운 아침만드는 법
1 창문을 열자!
수면 중 발생한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실내 공기를 내보내고 신선한 공기를 공급합니다. 충분한 산소는 우리 몸을 각성시켜줍니다. 또한 차가운 공기는 기분 전환에도 도움이 됩니다.
2 백탕을 아시나요?
일본에선 따뜻한 물을 백탕(白湯,しらゆ)이라고 부릅니다. 별것 아닌 물일 뿐이지만 그 효과는 보약에 버금가기 때문이지요. 아침에 따뜻한 물 한 잔은 수분을 보충하고, 혈액순환과 위장의 기능을 도와줍니다.
3 도시락을 준비하자
요리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재미입니다. 게다가 도시락을 만드는 과정에서 뇌의 혈류가 좋아지고 몸과 마음이 활성화됩니다. 점심값 절약은 즐거운 덤이지요!
4 다림질을 하자
다림질이 돼 걸려 있는 옷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은퇴 후에도 사회생활이 활발한 신중년·꽃중년에게 필요한 말끔한 외모의 기본이 되기도 합니다. 익숙해지려면 요령이 필요하지만, 학습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뇌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5 SNS는 아침에만!
이제 SNS는 시니어에게도 생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까지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있으면 생체시계를 혼란시켜 불면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SNS는 아침에 활용합시다!
6 조활 수첩을 작성하자
만약 이런저런 아침활동을 생각해봤는데, 실천이 잘 되지 않는다면? 일본에선 아침활동을 조활(朝活)이라고 부르는데 전문가들은 하고 싶거나 해낸 것을 메모하는 조활수첩을 만들어보기를 권합니다. 동기유발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미국 건강그룹 선헬스 재단이 말하는
시니어 건강을 위한 아침 습관
1 10분 아침 명상
하루를 시작하기 전 잠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10분이라도 명상을 하면 정신과 육체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2 산책으로 몸에 활력을!
산책은 신선한 공기도 얻고 피부의 저항력도 높여주는 좋은 방법입니다. 또 아침 산책을 위한 다양한 준비는 몸과 마음에 활력을 줍니다. 동네 주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혈액순환 등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3 집중력을 높여주는 읽기
신문도 좋고, 시집이나 소설집 몇 페이지도 좋습니다. 아침에 글을 읽으면 산만해져 있는 뇌와 마음이 집중이 됩니다. 또 무언가를 읽으며 커피나 차를 마시는 건 신체를 깨우는 좋은 방법입니다.
4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
아침 식사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식사입니다.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면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곡물과 야채, 과일이 함께하는 아침상을 차려보세요!
5 오늘의 할일 목록
꼭 성취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일 목록을 만들어보세요. 목표를 위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싶은지 작성해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6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
친구에게 전화를 해도 좋습니다. 자녀나 손자에게 하루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즐겁습니다. 이웃과의 간단한 대화도 괜찮습니다. 따뜻한 대화로 하루를 시작하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2003년 8월 22일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나라 역대 최대 전력 소비를 기록한 날이다. 이에 미래 에너지 확보를 위해 다각도로 방안을 검토하고 모색했으며, 국민으로부터 절약 정신과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 이듬해인 2004년 '에너지의 날(8·22)'을 제정했다.
여름철 오후 2시부터 3시까지 1시간 동안 에어컨 끄기, 밤 9시부터 전국 동시 5분간 전등 끄기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 에너지 절감 효과와 절약 실천을 위한 묘책이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절약과 절감은 최선책이다. 우리 모두 평상시에도 에너지 절약을 유념하고, 나부터 ‘내일’이 아닌 당장 ‘지금’부터 적극 실천해야 한다.
만일 전기가 없었다면, 일상생활은 물론 선풍기, 형광등, 텔레비전 등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온라인과 오프라인 등에 재미있고 유용한 글들을 읽고 쓰는 것도, 모두 다 이 유익하고 편리한 전기 덕분일 테다.
우리가 일할 수 있는 능력, 형태에 따라 위치, 운동, 열, 전기 따위로 구분하는 것을 에너지라고 한다. 근대적인 문화생활 또는 생산 활동에 불가결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자원, 태양열, 풍력, 수력 등이 에너지 자원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8월 22일 '에너지의 날'이 며칠 안 남았다. 올해로 15회째 맞이했으나 큰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각성해야 한다. 꼭 이날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절약을 위한 의식과 실천 의지를 가지고 생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뜻깊은 날조차도 외면하고 소홀한 요즘이다.
‘전등록’의 한 구절을 인용해, 에너지 절약을 위한 실천을 일깨워보고자 한다. 백낙천(당나라 시인)이 물었다.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조과선사가 대답했다. “나쁜 짓 하지 말고 선행을 하여라.” 이에 백낙천이 되받아쳤다. “그런 것쯤이야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말입니다.” 조과선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쉽게 알 수 있으나, 백 살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조관선사의 말을 되새기며, ‘실천’의 중요성을 명심하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연료 값이 점차 상승하고 있다. 주행거리가 많은 경우 가계의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연료를 절감할 수 있는 운행 요령에 대해 알아봤다.
시동 전
1. 목적지 정보는 미리 준비
목적지 경로에 대한 사전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나게 되면 주행할 거리가 불필요하게 많아지게 되고 이럴 경우 주행 중 지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게 되므로 위험하기도 하고 시간 낭비까지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여행 전 미리 지도를 점검해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잘 숙지하고 운행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 운전 중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다 큰 사고가 난 사건을 봤는데 본인의 과실이므로 보험 전액을 받을 수 없다.
2. 무게와 연비의 관계
차에 불필요한 짐을 많이 싣고 다니면 연비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트렁크에 있는 불필요한 짐을 정리해 차를 가볍게 하는 것이 연비 개선의 첫걸음이다. 차에 있는 짐을 반드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류해 불필요한 물건들은 집에 보관하고 꼭 필요할 때만 가지고 다니도록 한다(삼각대. 공구. 예비 타이어는 필수 지참).
3. 타이어는 적정 공기압으로 유지
타이어의 공기압도 연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공기압이 부족한 상태로 주행하면 연료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모되므로 적정 공기압 유지는 필수다. 차량에 장착된 타이어는 기간이 오래 경과하면 특별한 사고가 없어도 서서히 압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차량별 타이어의 규정 압력은 약간씩 다르다. 연비를 좋게 한다고 과다한 압력을 주입하면 승차감이 떨어지므로 반드시 규정 압력을 준수한다.
시동 후
1. 불필요한 공회전은 피한다
시동을 걸어놓은 채 일을 처리한다든가 사람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공회전을 오래하면 연료 소비가 많아질 뿐 아니라 환경오염을 가중시키므로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
2. 급가속, 급제동을 피하자
가속 페달을 급히 밟을 때 연료 소비 역시 급격하게 늘어난다. 급가속을 계속하면 연료가 추가로 소모될 뿐 아니라 엔진에 무리가 간다. 급가속과 급제동을 번갈아가며 조작하면 연료 소모는 물론 브레이크 패드의 조기 마모를 가져오므로 주의해야 한다. 연료 절감에 가장 경제적인 운전은 ‘급출발, 급가속, 급정지’ 등 이른바 3급에 대한 방지다. 상황에 따라 연료가 2배 이상 소모되기도 한다. 연료 소모뿐 아니라 ‘급’ 자가 들어간 운전을 하면 매우 위험하다. 급출발, 급가속, 급정지, 급회전, 급차선 변경 등 하나같이 안전운전에 장애가 되는 나쁜 습관이다. 다른 차에 혼동을 일으켜 사고를 유발하기도 하고, 에너지 낭비도 상당하다. 차량 사고를 방지하는 기본 운전은 다른 차량에 내 차의 위치와 추후 운전 방식을 알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방향지시등이나 비상등으로 다른 차량에 내 차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차선을 변경하거나 내 차의 정지를 알려주는 비상등도 켜지 않는 운전자가 많다. 이럴 때 다른 차량이 능동적인 대처를 하지 못해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앞뒤 차의 간격이 좁다 보니 앞차에 사고가 발생하면 몇 대가 연이어 충돌하는 큰 사고로 커진다. 예방과 안전은 한 템포 느린 운전과 여유다. 앞서 언급한 ‘급’ 자가 들어가는 운전을 지양하면 교통사고도 줄이고 연료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3. 정속 운전 = 좋은 연비
흔히 시속 60~80km를 경제속도라 한다. 차량별로 약간씩 다르지만 이 속도 내에서 운행하면 가장 높은 연비가 나오기 때문이다. 가속 페달을 고정해 시속 60~80km로 주행하면 연비는 더욱 좋아져서 같은 거리를 급하게 운행했을 때보다 연료 소모가 월등히 준다. 반드시 경제속도가 아니라 해도 90km, 100km와 같이 규정 속도를 정해 정속으로 주행하면 안전하고 알뜰한 운전을 할 수 있다.
4. 타력 운전과 엔진 브레이크
엔진 브레이크란 내리막길에서 주행 속도보다 낮은 기어를 한 단계씩 서서히 낮게 선택하며 가속 페달 누름 상태를 가감해 동력 손실을 줘 제동력을 얻는 것을 말한다. 고속 주행 중에는 관성과 중력을 이용한 타력 운전을 하고 내리막을 운전할 때는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하자.
5. 예측 운전
주행 중 신호등이 적색에서 청색으로 바뀌는 시간을 예측해 운행하는 것을 말한다. 서행 시에는 뒤에 오는 자동차의 주행을 방해하지 않는 운행이 필요하다. 차가 멈췄다가 출발할 때는 연료 소모가 많다.
6. 오랜 정차 중에는 기어를 N으로 한다
신호 대기를 하거나 잠시 정차할 때는 괜찮지만 오랜 시간 정차할 때는 기어를 N으로 위치해야 변속 레버를 보호할 수 있다. 또 수동 차량의 경우 불필요하게 클러치나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려놓으면 연료 소모는 물론 브레이크 라이닝 수명이 단축되므로 주의를 요한다.
7. 에어컨 사용은 효율적으로
에어컨을 작동시키면 압축기가 작동하기 때문에 연료 소모가 많다.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 연료가 아깝다고 에어컨을 켜지 않고 창문을 열고 달리면 압력 때문에 자동차에 힘이 필요하게 되고 그만큼 연료 소비가 많아진다. 이럴 때는 에어컨 사용이 오히려 경제적이다
8. 평상시에는 연료를 반으로 채우며 겨울철에는 빙결을 방지하기 위해 가득 채울 것
가솔린 1L의 무게는 0.71kg 경유는 0.8kg이다. 연료의 무게로 인한 연료의 소모도 크다. 자동차에 경고등이 들어올 때 기름을 넣는 경우도 있는데 경고등이 들어올 때까지 타면 자동차 연료 펌프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따라서 경고등이 켜지기 전에 주유를 하는 것이 자동차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경고등이 들어올 경우 차종마다 약간 다르지만 20~30Km까지 운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연료의 찌꺼기가 연료 순환 중에 차량 성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
9. 차계부를 만들자
가정에서 가계부를 사용하면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고 알뜰한 살림을 할 수 있듯이 자동차도 차계부를 만들어 차량 관리 및 연료 주입량 등을 기록하고 어떤 운전 방법이 경제적인가를 월별로 비교하면 연료 절감법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엔진오일이나 다른 소모품 교환, 즉 스파크 플러그 등 기간이 경과하면 교환 날짜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차계부 기록은 반드시 필요하다.
얘기하다 보니 3분 만에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투명하고 맑은 느낌이다. 마치 자신이 부른 노래들의 영롱함을 모습 그대로 보여준다고나 할까. 그 주인공은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꿈을 먹는 젊은이’ 등의 명곡들로 80년대 초중반을 장식한 포크 가수 남궁옥분이다. KBS가요대상 신인가수상, MBC 10대 가수상 등 가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녀는 가수로서만이 아니라 방송 MC, 광고 모델, 라디오 DJ로도 활약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제 ‘그토록 기다렸다고’ 하는 60을 맞이하며 여전히 행복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의 현재와 인생관을 들어봤다.
글 김영순 사진 박규민 parkkyumin@gmail.com
인기 DJ 이종환이 1973년 종로2가에서 문을 연 음악감상실 쉘부르는 무교동에 자리한 세시봉의 뒤를 잇는 1970년대 대표적인 음악감상실로 수많은 포크 가수와 진행자 들을 배출했다. 그 쉘부르 출신의 남궁옥분은 포크로 대변되는 청년 문화의 끝자락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가수였다.
그 시절의 청년다운 건강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60을 맞이하고 있는 남궁옥분이 기자 앞에 있었다. 첫 인상은 섬세하고 차분했다. 그러면서도 호탕하다는 인상을 줬다. 이런 이미지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책임져 온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기에 가능하기 마련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을 이해 못한다
“윤회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확신하고 살아왔어요.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생의 업보겠지 하죠.”
남궁옥분은 108배를 17년 동안 했다. 정신적 수련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윤회 사상과 108배를 봐도 알겠지만 그녀의 세계관에는 불교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그 불교적 영향력은 삶에 대한 달관적인 시선으로도 드러나고 있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요. 새장 안에서 사는 새는 새장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도 있죠. 나도 내 영역을 가진 것이니까 행복한 거예요. 누가 나를 보면 답답해 보일지라도, 내 기준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사는 것이 내가 후회하지 않을 일이기 때문에 합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을 이해 못한다’는 말은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한다’는 말과 함께 남궁옥분의 생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즉,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마련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외고집이 있다.
“애초에 돈이나 명예에 관한 욕망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그 어떤 직책도 안 맡았었죠. 그러다가 최백호 오빠가 운영하는 한국음악발전소에서 이사를 맡게 됐어요. 과거에는 그런 일을 안 했지만, 이제는 선배가 후배들에게 큰 우산이 되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나도 그 역할을 하고 싶어진 거죠.”
한국음악발전소는 최백호가 독립음악인들의 창작 지원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사단법인이다. 그녀가 한국음악발전소에 몸을 싣게 된 것은 최백호에 관한 믿음 때문이었다. 최백호가 하는 일이라면 타협하지 않으면서 공공적인 선의를 구현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사람을 그토록 전적으로 신뢰하는 경우는 흔치않다.
인터뷰 중 그녀는 물질보다는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더 크다고 말했다. 유명인이 되고 연예인으로서 방송계 일을 하게 되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크고 작은 상처들을 무수히 겪어야 했고, 심지어 허술한 인간관계로 인해 아예 2년 동안 방송을 완전히 안 한 시기도 있었다. 오죽하면 자신을 키운 게 사람이라고 말할까.
오랜시간 다른 사람의 삶을 읽을 수 있게 된 그녀에게는 산과 사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많은 사람 안에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스승이에요.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크는 것이죠. 제가 사람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때는 자신이 다져지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었을 거예요. 지난 시간 동안 저는 피해자의 입장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없었으면 정신적으로 단단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리라는 생각이 저를 지탱시켜주죠. 그래도 사람으로 만들어진 상처는 사람이 치유해줘요.”
노력한 만큼의 댓가는 확실히 있다고 믿는 그녀
그녀는 자신을 밟고 올라가서는 그 전과는 완전히 바뀐 사람들을 수없이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봤을 때 그들이 걷는 그 길은 잘못된 길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녀는 무작정 분노하기보다는 스스로를 가다듬는 쪽을 택했다.
“난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고 싶으니까요.”
디딤돌의 마음가짐으로 고통을 깨닫고, 고통이 지나가는 과정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맥없이 절망에 빠져 버리지 않은 것은 그녀가 가진 인간적 역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힘은 평등과 박애로 무장되어 있는 어떤 의지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들으며 그러한 그녀의 박애 정신은 어쩌면 천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1993년에 돌아가셨어요. 1922년에 태어나셔서 지주 집안도 아니고 가장 평범한 사람의 한 명으로서 대한민국의 가장 힘든 시기를 살다 가셨죠. 근검절약이 몸에 배신, 완전 보살이셨어요. 주변 사람들에게는 중심축과 같은 역할을 하셨죠. 김장철이 되면 김장을 엄청나게 해서는 어려운 동네에 갖다 주시곤 했죠.”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 나이가 되면서 느끼는 바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50대에도, 60대에도, 70대에도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자임을 포기하고 엄마로만 살다가 돌아가셨죠.”
그녀는 소위 엄마로서의 삶만을 강요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여기서 남궁옥분을 설명하는 단어가 또 떠올랐다. 바로 ‘자유’다. 스스로 원칙을 세우고 그를 단호히 지킴으로써 그녀는 자신만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앞서 그녀가 말한 새장이란 표현은 그녀가 추구하는 법도의 다른 말이기도 할 것이다.
항상 60이 되기를 기다렸다
남궁옥분은 그녀 스스로가 말하듯이 긍정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긍정론은 극단적이고 무조건적인 행복을 강요하는 게 아니다. 대신 그녀는 “안 행복하다고 불행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행복은 적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의미다. 즉, 행복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많느냐 적느냐의 문제라는 것. 행복과 불행이라는 양 극단의 정의가 아닌 행복의 높낮이를 주시하는 그녀의 태도에는 삶을 관조하면서 보다 침착해진 사람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얼마 전에는 가수 선배를 만나서 얘기를 할 일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우리 나이에 싫은 일에 굳이 시간을 갖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코드가 안 맞는 사람과 시작된 일은 뭔가 트러블이 생겨요. 그럼으로써 잃게 되는 게 있죠.”
남궁옥분은 60 이전이 인연법에 의한 삶이었다면 60 이후부터는 자신이 지난 6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모습이 보이는 출발선이라고 정의했다. 그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그녀는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멋지게 살아온 것에 자신을 기특하다고 여기며 바쁘게 살고 있었다. 윈드서핑과 볼링 등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고 인터뷰가 끝난 다음에는 김해 공연과 라디오 출연, 봉사활동 등등의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또한 그녀는 미술가로서도 활동하고 있었다. 개인전에 관한 제안은 꾸준히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문필가로서의 능력을 살려 책을 집필하려는 계획도 있다.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아울러서 보다 복합적인 프로젝트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200석 정도 되는 작은 공간에서 책과 전시, 공연을 합친 이벤트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60을 새로운 출발선이라고 정의한 사람답게 그녀의 머릿속은 창의적 시도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지난 20년 전, 그러니까 40대부터는 정리를 해야 하는 법이죠. 사실 60에 의미를 두고 살아서 그런지 작년부터 뭔가 열매가 맺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요. 60만을 기다렸다고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다니고(웃음). 너무 행복하게 맞아들이고 있어요. 주변의 상황과 함께 할 때 시너지가 생기는 법인데 요즘이 그런 것 같아요.”
사유와 자기 성찰에 전념하다
여전히 무명인 가수 선후배들을 챙기는 남궁옥분은 자신의 그런 행동의 이유를 “힘이 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이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40대부터 60까지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삶의 보람에 대해 “돈보다 멋진 기억들을 얻었다”고 말한다.
“나에게 만족하는 삶, 그리고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 삶이 제가 원하는 삶이에요. 천억 원을 준다 해도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나를 가치 있게 만들고 싶어요.”
그녀는 죽음을 절대로 알리지 않고 떠날거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녀를 ‘명예롭게 퇴진하는구나’는 정도의 말을 듣는 게 좋겠다고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오래 지나지 않아 바로 발견하는 누군가가 ‘아무 소리 없이 떠났는데 이걸 해놨네?’라는 말을 하게 만드는 그런 삶. 딱 그 정도가 남궁옥분이라는 존재가 세상에게 가지고 있는 소박한 욕심이다. 그러나 그녀의 진실한 욕심보다는 크게,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자기 원칙과 소신과 기준이 있는, 그리고 여백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남궁옥분이 머지않아 60을 맞이하는 방법은 그렇게 단단하게 다잡고 있었다.
오늘도 그녀의 밴드 에는 행복한 것과 안 행복한 것에 기준을 아는 팬들은 그늘을 내어주는 그녀의 수다로 미소가 번졌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 나만의 집을 짓고 살아간다는 것은 중년들에겐 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로망이다. 굳이 ‘님과 함께’ 가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때문에 내 집 짓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시선을 사로잡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얻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만약 직접 집 짓기에 성공한 사람이 세운 학교가 있다면 어떨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고제순(高齊淳·57) 원장의 흙집학교가 바로 그런 곳이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고제순 원장은 애초에 농촌이나 건축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그곳에서 그는 ‘비판적 합리주의’로 잘 알려진 칼 포퍼(1902~1994)를 전공했다 . 1993년 한국으로 돌아와 원주에 자리를 잡고 연세대학교와 상지대학교 등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가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한국으로 돌아온 지 2년쯤 되던 시기였다.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나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스스로의 물음에 대해 그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죠. 가장 큰 문제는 건강이었어요. 원주의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몸이 갑자기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때는 ‘새집증후군’이라는 단어도 몰랐으니까 대처할 방법도 알 수 없었죠. 아토피와 천식이 생기더니, 나중에는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병도 얻었습니다.”
대책을 찾기 위해 고심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의식주를 공부하고,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의(衣) 식(食) 주(住)가 아니다. 의(醫) 식(食) 주(住)이다.
“현대사회에서 옷은 충분히 해결된 문제니까요. 우리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을 돌보는 것과 무엇을 먹는가, 어디에 사는가인데, 현대인들은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잖아요. 제도권에서 수십년 교육을 받았음에도 말이죠. 이런 삶의 기초적인 부분이 해결되어야 삶의 질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귀농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서 원주 외곽 지금의 자리, 현재는 흙집 학교도 함께 자리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에 터를 잡았다. 소설가 박경리(朴景利) 선생이 생을 마친, 지금의 토지문학관이 있는 자리 인근이다.
터를 잡는 것과 동시에 시작한 것이 집에 대한 공부다. 그 전까지 못질 한 번 제대로 해본적이 없던 그였기에 공부를 기초부터 시작해야 했다. 공구도 조금씩 사 모았다. 황토로 벽돌을 만들 수 있게 유압식 장비까지 구입했다. 그런 준비과정을 통해 3년 만에 흙집을 완공했다.
왜 흙집이었을까? “다양한 형태의 집들 중에서 흙집을 선택한 것은 우선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많이 사용하는 참숯을 비롯해서 흙과 나무, 돌 등에서 나오는 좋은 기운이 이로운 에너지를 주거든요. 황토는 조직이 느슨해 온도와 습도를 자연적으로 조절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태적인 집을 원했던 것도 이유입니다. 집의 수명이 다했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도 흙집은 전혀 문제가 없으니까요. 콘크리트로 지은 집은 뒤끝이 고약해요. 폐기물로 변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니까.”
물론 흙집을 짓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집을 지을 당시 흙집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틈 날 때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옛집들을 살펴봤다.
가족과 함께 낙안읍성이나 용인민속촌, 안동 하회마을 등 옛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설계도 모눈종이를 사다가 직접 그려가면서 수정했다. 몇 번이나 수정해야 하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물론 전기나 수도와 같은 전문적인 분야나 준공검사를 위한 행정적인 부분은 전문가들의 손을 빌려야 했지만, 대부분의 작업들은 혼자 해내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해냈다. 2000년 5월부터 11월까지 반년이 걸렸다. 그렇게 완성된 첫 번째 흙집은 여전히 아름드리나무처럼 그가 기대고 쉴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두 딸을 위해 만들었던 다락방부터 볕이 잘 드는 거실, 일하기 편해 보이는 부엌 등 집안 곳곳에 그의 정성이 배어 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이 좋은 것을 혼자만 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학교였다. 이야기 도중 그는 책을 한 권 소개했는데, 후나세 스케(船瀨俊介)의 이다. 그 책의 부제는 ‘콘크리트에 살면 9년 일찍 죽는다’인데, 다소 과격해 보이기까지 하다. “흙집에서 사니 너무 좋더라고요. 4년 동안이나 앓고 있던 질환들도 싹 나았어요. 나는 이렇게 좋은데, 사람들은 평생 일하고 돈을 모아 몸에 좋지 않은 아파트를 장만한다는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화가 나더라고요. 누군가 이 흙집을 전파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건축 전문가라는 분들은 대부분 콘크리트 전문가들이니 할 수 없을 것 같았죠. 그래서 경험은 짧지만 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해 포털 사이트 다음에 카페를 개설하고 ‘흙처럼 아쉬람’을 시작했죠.”
이름에 ‘흙처럼’이란 단어를 쓴 것은 그의 호 여토(如土)에서 따온 것이다. 자연 속에서 흙처럼 살고 싶다는 염원을 담은 것. 또 다른 단어 ‘아쉬람’은 인도 힌두교도들의 명상을 위한 수행처, 즉 기거하는 집이나 촌락을 뜻한다. 인도 전역에는 수행자들을 위한 아쉬람들이 곳곳에 있고, 마하트마 간디(1869~1948)가 지냈던 간디 아쉬람은 수행자들이 순례하는 성지로 꼽히기도 한다.
고 원장이 학교 이름을 아쉬람으로 지은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노동을 넘어 정신 수양과 자기 공부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수행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교육을 위해 그는 그간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흙집 건축이론을 보완하고 체계화해야 했다. 어떻게 흙집을 지어야 이상적인 구조가 되는지, 구조적으로 어떤 요소들을 갖춰야 튼튼한 집을 얻는지, 단열과 건축공법, 디자인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이다. 문득 이런 이론적 정리를 위해 그가 찾았던 스승이 궁금해지는데,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온다.
“저에게 집 짓기를 알려 준 스승이 있습니다. 바로 새와 벌이죠. 풀숲에서 새의 둥지를 살펴보다 그 구조적 완벽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어요. 벌집도 마찬가지고요. 그들이 집 짓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배워야 할 점들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자연 소재로 직접 짓고,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집을 튼튼하게 짓는다는 점이죠.”
그가 말하는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집은 방의 형태를 뜻한다. 대칭 형태의 원형이나 육각형, 팔각형 형태의 방 구조를 갖는 집. 세계적인 명상 공간들도 비슷한 구조다. 이런 구조는 에너지가 집중되는 특징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흙집학교 ‘흙처럼 아쉬람’의 교육과정에서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철학, 그중에서도 생명철학을 토대로 한 구체적인 기술과 함께 생태적인 삶에 대해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는 말 그대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어요. 나와 남, 나와 사물을 떼어 놓고 생각하는 분리의식이죠. 하지만 실제로 우주에서 나만 잘되고, 나만 행복한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이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남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고, 내가 즐거워야 남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인간 중심적인 생명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결국 자연과 인간은 분리될 수 없고,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다는 합일 의식을 통해 생태학을 바라보라고 이야기하죠.”
그의 흙집에 대한 철학은 전문가들에게도 인정받아 명지대학교에서 건축과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한 적도 있다고. 그가 운영하는 흙집학교를 건축과 교수나 건축사들이 찾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2004년 시작한 학교는 벌써 초급과정은 103기, 종합과정은 94기까지 배출했다. 인원으로 따지면 2700명 정도 되는 적지 않은 숫자다. 한 기수에 15~20명으로 운영되는 데, 초급과정은 이론 중심으로 3일 동안 진행되고, 종합과정은 13일간 이론뿐만 아니라 집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을 실습과 함께 가르친다. 학생은 주로 40~50대가 많고, 60대도 적지 않다. 30대나 여성도 기수마다 한 명씩은 있다고 한다.
“종합과정은 공구 사용법 같은 기초 지식에서부터 거푸집 설치, 구들이나 골조의 구성, 설비나 전기까지 모든 부분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함께 배운 동기끼리는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통하게 되는데, 안부만 묻는 것이 아니라 집 지을 때 서로 품앗이를 하는 전통이 생겼어요. 건축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도 줄이고, 아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런 식으로 본인들의 집을 지은 졸업생의 수는 적지 않다. 학교 쪽에 알려진 것만 따져 봐도 30% 정도 직접 지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숫자로 따지면 900채 정도 되는 셈이다. ‘흙처럼 아쉬람’의 다음 카페(cafe.daum.net/mudhouse)를 방문하면 졸업생들이 직접 건축한 흙집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집을 짓으면 실제로 어느 정도 건축비를 절약할 수 있을까. 흙집학교에서 알려주는 방식의 단단한 집을 시공사를 통해 지으려면 토지 매입가를 제외하고 3.3㎡당 약 6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인건비를 제외하고 자재비만 따지면 약 250만원이 소요돼 절반 이상 절약이 가능하다고 고 원장은 설명했다. 예를 들어 165㎡(50평) 정도의 흙집을 짓는다면 1억2500만원에 나만의 집을 갖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시공사에 의뢰했을 때에 비해 1억7500만원을 절약한 금액이다. 물론 모든 건축 과정을 내 손으로 직접 하는 수고로움은 즐거운 마음으로 감수해야 한다.
흙집에 대한 그의 또 다른 꿈은 무엇일까? 그는 현실 속에서의 ‘흙집 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저처럼 자연으로 들어와 흙집을 짓고 사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대인들에게 이런 삶은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자연 속 흙집으로 올 수 없다면, 흙집이 그들에게 가는 것이 맞지 않나하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파트를 흙집공법으로 짓는다든가, 연립을 흙집으로 리모델링하는 형태의 일들 말이죠. 아직 구체적으로 시도는 못 해보고 있지만, 충분히 사업성도 있고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흙집 알리는 일을 더 열심히 하다보면 충분히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중.장년의 희망은 오직 기술뿐 !.
자신과의 싸우며 기술 배우기를 3년……
수백 통의 이력서로 취업 활동 후 드디어 취업에 성공!
저는 56년생으로 2010년 10월 은행 경영의 악화의 원인으로 고액 연봉자들의 대대적인 명예퇴직을 유도하여 전직원의 25%인 3800명이 퇴직할 때. 저 또한 나이가 정년에 가깝고 경영악화의 주범으로. 그리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하여 자리를 양보하고 퇴직을 하였습니다..
2010년 11월부터 그동안 여행하고 싶었던 몇 몇 곳을 선정하여 나 홀로 도시락을 배낭에 넣고 전국으로 여행 다녔으나. 마음은 항상 퇴직 후 무엇 하며 노후를 보낼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볍지만은 아니하였습니다.
◆무엇으로 제2인생 준비할 것인가? “노력하는 자에겐 하늘이 돕는다”
퇴직을 결심하고 돈을 절약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 집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로 이동하기 위해, 그동안 타지 않았던 자전거를 수리하기 위하여, 동네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가서 고치면서 기다리는 중에 주인 사장님의 친구분들이 옆에 있어, 물었죠, ‘이 자전거 가게 사장님은 노후 걱정은 안하셔도 되겠다’고, 그랬더니 가게 주인 사장님의 친구분들이 하시는 말씀이’이 자전거 가게를 이 자리에서 40년을 했는데 큰돈은 벌지 못해도 자식을 공부시키고 결혼도 시켰으며, 작은 건물도 구입했노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또한 같은 60대 나이에 은퇴도 없고 자식들에게도 손 내 밀지도 않고 친구들 모임에 회비를 낼 수 있고 가끔 막걸리도 사주는 친구들 중 가장 유일하며,가장 행복한 친구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 그렇구나.
‘기술만이 남은 여생 30년을 보낼 수 있겠구나’를 생각하였으며, 나도 자전거 수리를 배워, 노후를 보낼까를 생각하면서 삼천리 자전거 홍보부에 근무하는 후배를 만나 자전거 수리점에 대하여 많은 의견과 자문을 받아 보는 등 여러가지로 고민하며 수일을 보냈습니다.,
2010년11월 은퇴 후, 12월 중순에 은행으로부터 2년 계약직(지점감사업무)으로 근무할 수 있다고 통보 받아 1월 초에 근무지로 출근하던 중. 지하철역에 붙여있는 홍보 벽보에 서울시에서 기술교육을 무상으로 가르쳐 준다는 포스터를 보았으며. 아! 그렇구나 내가 여생은 큰 힘 들이지 않고, 적은 수입이라도 뭔가 할 수 있는 일거리로 보람을 느끼며 앞에서 언급한 자전거 가게 사장님과 같이 뭔가 기술을 배워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며, 늙어서 할 수 있는 기술이 뭔지를 고민하였습니다.
◆어떤 기술을 배울 것인가?
그동안 강남의 대형 점포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알고 지냈던 사장들과 식사하는 중에 ‘조경과 보일러, 목공, 자동차 수리, 조리 기술 중 어느 기술을 배우는 것이 미래가 가장 유망 하겠나’를 물었더니, 조경 쪽으로 교육 받으라고 하였으며, 조경은 무료교육 대상자 모집에서 연령제한이 없었으나, 보일러, 자동차 수리 등은 만 55세는 이후 노령자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하여, 연령이 제한되기 전에 보일러, 자동차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였으며, 보일러 기술은 월급이 적지만 힘이 들지 않는 직종이라 생각하여, 2011년 2월에 서울종합직업학교(현 동부기술교육원) 보일러과에 지원하였습니다.
등록 후 합격자 발표만을 손 꼽고 기다렸으나, 합격자 발표일에 제 이름 석자가 없었기에, 아! 그럼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또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발표일 3일 후 기술학교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등록학생 중 몇 명이 주간으로 등록을 변경하게 되어 야간학생 결원이 있어 예비 합격자 중에 제가 포함되어 합격 했으니 3월 3일부터 학교에 나와서 기술을 배우라고 하여, 3월부터 기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기술 취득과정
(1) 보일러 기능사 취득 과정
2011년 3월부터 고덕동 소재 서울종합직업학교에 오후 6시부터 9시 30분까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개월 공부하였으며, 실습할 때는 30년간 책상에 앉아서 근무한 은행원이 보일러 용어 하나하나가 생소하여 용어를 익히는데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특히, 가스나 전기 용접시에는 옷을 태우기도 하였으며, 손이나 발을 다치기도 하는 등 잦은 실수를 연발하여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로부터 웃음꺼리가 되기도 하여 창피하기도 하였으며, 개인적으로 자존심이 많이 상했으나 참고 견디었습니다.
필기시험은 과거 5년간 시험 출제 문제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어느 문제가 자주 출제되는지를 분석하고 외웠습니다. 입학 2개월 후 용어도 잘 모르던 제가 현장에 근무하면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하여 입학하여 공부한 학생들도 낙방하는 보일러 기능사 필기시험에 합격하였으며, 5월부터 보일러 기능사 2차 실기시험을 준비하였으며, 6월에 최종 합격하여 보일러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2) 공조냉동 기능사 취득과정
공조냉동시험 준비는 기술학교에서 보일러시험 끝난 후 기초적인 내용을 가지고 졸업할 때까지 약 2개월간 배우고 실습하였으며, 학생들이 쉴 때도 수업이 끝난 후에도 틈틈이 홀로 가스 용접 실기에 매달렸으나 무난히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한 것과는 달리 2차 시험인 실기 시험에 낙방하여 10월에 재 응시하여 12월에 어렵게 합격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3) 에너지산업기사 취득과정
공조냉동을 가르쳐 주시는 교수님께서 보일러, 공조냉동 자격증을 취득 후에는 요즘에 인기 있고 정부차원에서 각종 지원되는 에너지관리 기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셨으나, 정해진 수업기간이 끝나 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기술학교 보일러 과정을 끝마친 후 또 다른 기술을 준비 중에 기술학교 홈페이지를 열어 보았더니, 에너지 관련 수업이 9월부터 진행된다고 하여 9월에 지원하여 9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에너지관리기사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에너지 기사시험은 실무 경력이 없어 에너지관리 산업기사 시험만 응시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시험은 1년에 1회밖에 없으며, 2011년의 경우는 124명이 응시하여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하는 아주 어려운 시험이라고 유념하여 공부하라고 하였다.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공부할 때는 33명이었으나, 각종 공식이나 수치 계산 등으로 점차 공부가 난해 함을 느끼고 또한 수업하는 교실이 추워서 공부하기가 너무 힘드니까, 다들 중간에 포기하였으며, 마지막 남은 3명의 학우들도 포기하자고 하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금년 아니면 내년에 공부한다고들 하지만 저의 경우는 나이가 60대를 바라보니 지금 이 기술 공부를 포기하면 갈 곳이(취직할 곳)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하며 끝까지 기술 공부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011년에는 한 명도 합격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험이지만, 2012년에는 내가 한번 도전하여 합격 했다는 소문을 듣게 하겠다고 하면서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에너지관리시험 준비하기를 7개월,.. 드디어 1차 시험을 무사히 합격하고, 2차 실기시험을 주관식을 치르게 되었으며, 합격자 발표 전날 밤 꿈에, 합격자 명단을 보니까 4명이 있는데 나의 이름이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합격자 발표하는 날 인터넷 검색을 하니, 전국에 단 4명만이 합격하였으며, 그 명단에 제 이름이 있어 크게 감동했으며 노력하는 자는 하늘이 돕는 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근무하던 지점의 은행 직원들이 더 좋아했으며 같이 공부한 동료학생들과 교수님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습니다. 1차 시험에 60점으로 겨우 통과했는데, 2차 시험은 과연 몇 점이나 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 했더니, 문답 50점 만점에 22점, 동영상 문제 50점 만점에 38점으로 더도 덜도 아닌 합격점수 커트라인인 60점으로 합격하여 감동의 드라마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4) 전기기능사 취득과정
보일러, 공조냉동, 열에너지관리산업기사 자격증 있으면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은행보다는 조건이 더 좋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취업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 가입하여 컨설턴트와 상담도 하고, 베이비부머 취업박람회에 참가하는 구직활동에 전념하였지만 성사되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회 전반적으로 많이 활용되며 취업대상업체가 더 광범위한 전기기술을 배워 기술력을 더욱 향상시켜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전기기능사과정 교재와 동영상 C/D를 구입하여 혼자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전기기술을 가르쳐 주는 기술학교 야간과정에 등록하여 9월부터 수업을 듣게 되었으며, 수업 듣는 그해 12월에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보다 먼저 1차 필기 시험과 2차 실기시험을 통과되어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5)전기산업기사 자격증 취득 도전기
2012년 12월에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여 이젠 취업이 쉽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여러 곳에 취업활동을 하여 00시설관리공사, 00회사, 00구청 등 무려 수십 곳에 서류전형에 합격하여 면접을 보았으나 결과는 역시 나이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젊은이에게 밀려 나기를 수십 번….
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능사 자격증만으로는 나이에 대한 한계를 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점점 나이에 따른 압박관념에서 모든 일이 점점 위축되었으며, 노후에 대한 자신감과 활기를 잃어가며 가족들 간의 유대도 소홀해 지며, 패배의식이 팽배해져 가며, 우울증으로 지내기를 수개월 지난 후 어느 날
한편의 신문에 실린 다음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참판집 종으로 일하며 ‘도둑공부’… 신분벽 넘어 형조판서 우뚝
공부하고 싶은 노비의 열망이 높은 신분의 장벽마저 뛰어넘었다. 참판 집안의 종에서 형조판서로 우뚝 선 반석평(潘碩枰·?∼1540)의 이야기다.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조상이다.19세기의 족보 ‘만가보’에 따르면 석평은 충북 음성에서 아버지 반서린(양반으로 추정)의 서자로 태어났다.
석평은 1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노비 신분으로 서울의 이 참판 집에서 종노릇을 했다. 본래 똑똑했던 그는 얼마나 공부가 하고 싶었던지 자기 또래였던 주인집 아들 이오성이 방에서 글을 배우고 있을 때 밖에서 ‘도둑공부’를 했다. 땅바닥에 글씨를 쓰면서도 배우는 대로 외우는 영리한 아이였다.
석평의 도둑공부를 알게 된 이 참판은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 석평은 이 참판에게 집을 나가 공부를 더 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종은 공민권이 없어서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다. 석평의 재주와 성품을 남달리 여긴 이 참판은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석평의 노비문서를 불태워 없애고 아들이 없는 친척 양반집에 양자로 보낸 것이다.
석평은 1507년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했다. 이후 예문관검열(예문관에서 사초를 기록하던 정9품 벼슬)이 되었다. 경차관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어 여진의 동정을 보고했으나 천얼(賤孼)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16년 문신 안당의 추천으로 경흥부사가 되었고 이후 함경남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병조참의,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충청도 관찰사 등을 지내고 1531년에는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예조참판,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관찰사, 형조참판, 한성부 판윤 등을 거쳐 형조판서(정2품·지금의 법무부 장관에 해당)를 지냈다.
그는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다. 석평이 형조판서일 때 길에서 옛 주인집 아들 이오성이 거지가 다 되어 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석평은 초거(종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수레)에서 내려 그의 앞으로 달려가 절했다. 석평은 왕에게 자신의 원래 신분을 밝히고 자신의 벼슬을 깎아 이오성에게 주기를 청했다. 조정에서는 이를 오히려 기특하게 여겨 용서하고, 이오성에게 사옹원 별제 벼슬을 내리고 석평의 관직도 그대로 유지했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석평과 조정을 모두 높이 평가하며 “이와 같이 한다면 세상 풍속이 어찌 분발하지 않겠으며 재주 있고 덕 있는 자가 어찌 감동되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물론 석평의 출세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 참판이 스스로 노비문서를 불태워 양인이 되게 해 주었고 석평이 노력해 정식으로 문과에 급제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의 처지를 보살펴 준 이 참판의 아들이 거지꼴이 된 것을 마음 아프게 여기고 양심고백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 중종실록에는 석평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특히 그가 종 출신이지만 문벌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으로 등용된 바람직한 사례로 든 것이 인상적이다.
위 기사에 힘을 얻어 다시 전기산업기사에 도전하면서 취업 활동을 해 보겠다는 마음에서 2013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시락을 지참하여 인근 도서관에 9시에 도착하여 밤 10시까지 공부하였으며, 친목회,동창 모임 등 참석하지 않고 기술 공부에 홀인 하였습니다.2014년 3월 제1회 전기산업기사에 시험을 응시했으나 역시 유사직종에 근무한 경험이나 유사한 학과에 공부하지 않는 터라, 또다시 5~8점 차이로 낙방하는 쓴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격증으로 재 취업!
전기기능사는 어느 정도의 노력으로 합격하였으나, 역시 기사 시험은 실무나 관련 학과와 인연이 있어야 이해가 쉬워 기사 시험 응시에 쉽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도서관 다니며 공부하다보니 경제적 어려움과 마음마저 우울해지게 되어 기사 시험 종료와 동시에 취업하겠다는 마음으로 매일 전경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홈페이지와 노동부의 워크넷에 등재된 채용공고를 검색하던 중에 2014년 2월 27일 국민은행 본점 시설과 근무 직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을 보고 28일 이력서를 제출하여 가진 자격증으로 응시하여 서류 전형과 면접을 거친 후 2014년 3월5일부터 근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결론적으로 말하면 눈높이를 낮추면 미래가 보이며
국가나 사회나 자식들에게 손을 내 밀수 있는 것보다 은퇴후에도떳떳한기술하나라도배우고익히면,개인이 행복하고 가정이 건전하며 나라가 튼튼해진다고 확신합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다음 세가지만 유념 하시면 됩니다.
첫째, 지난 것 다 잊으시고, 오직 기술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과거에 지점장을 했느니? 정부, 재계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했느니? 월급을 얼마나 받았느니? 이런 생각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세라야 기술을 배울 수 있으며, 같이 배우는 옆 학우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요즘 시대는 과거 어느 학교 출신인가, 어느 직업을 가졌나 보다는 오직 자격증만이 살길입니다. 자격증 없이는 사회적으로 대우도 못 받으며 월급도 많이 받지 못합니다. 물론 경력도 중요하지만 당장 회사에 취직을 한다든가,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자격증을 소지해야만 우선 지원서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금이 넉넉하여 쉽게 회사나 가게를 차리실 수는 있겠지만, 기술이나 경험이 없이 시작하는 것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둘째, 처음 시작하는 아름다운 마음 변하지 마시고 끝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기술을 배울 때는 하루 빠지시면 그 다음 수업과 연결이 안 됩니다. 특히, 기술을 배우시는 분들은 더 더욱 그렀습니다. 용어 등이 생소하기 때문이며, 교수님께서 설명하시는 용어들을 그때그때 듣고 놓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저와 같이 보일러과에 등록하신 분들 중에 열심히 참석하신 분들은 보일러 기능사 자격증을 다 취득하셨으며, 또한 공조. 냉동자격증 까지 바라보고 공부하여 원하는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반면에 상반기 공부했던 학생들 중에 출석이 부진 했던 분들은 교수님께서 출제 예상 문제를 가르쳐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결석이 빈번하여, 불합격 원인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물론, 기술을 배우시려고 하신다면 중간에 여러 가지 극복하셔야 할 일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야간으로 기술 받는 기간 중에도 여러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자는 제안이, 유혹이 많았습니다.
물론, 2~3년은 현재보다는 더 많은 월급 받고, 대우도 받으며 살겠지만,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여 정중히 거절하였으며, 또한, 연말 연시 때나 주말에 동창, 동료직원, 각종 사회모임으로부터 회식, 등산, 골프, 낚시 등 많은 종류의 유혹들도 있었지만, 제2인생을 준비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회사 퇴근 후나 주말에는 곧바로 기술학교로, 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말입니다.
셋째,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를 잘하면 또 다른 하나를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즉, 필기 시험에 자신이 있는 분은 실기 시험에 약한 분들이 있고요. 실기시험에 강한 분들은 필기 시험에 약한 분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은 서로 협력하여 같이 합격하실 수 있도록 상호 서로 도와주라는 뜻 입니다. 그래야, 힘들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는 기억력이 약하여 외워도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되고. 특히 실기시험은 완전 빵점 인생 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을 위해 필기시험에 대비하여 교수님께서 설명하신 내용을 요약하여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제공 하였더니, 필기시험에 도움 받은 동료 학생들이 실기 때는 제가 모르는 각종 공구들, 밸브들, 전기용접 및 가스용접 등등… 많은 도움을 주어 쉽게 실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지난날들을 회상해 볼 때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에게 은행 지점장이 겨우 보일러 기능사 공부 하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와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만, 기술만이 남은 30년 인생을 하나님을 위하여!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원봉사하며! 내가 배운 기술로 겨울을 따뜻하게, 여름을 시원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너지를 절약하도록 기술을 펼치며 보람 있게 살며, 멋지게 보내리라 확신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끝으로 이 모든 것들을 먼저 기도로 준비했으며, 다음에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위 내용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에서 올해 초 실시한 중장년 재취업 성공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어느 정도 급성장이 기대됐던 LED시장이 최근 들어 완전히 성장을 멈췄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거의 제자리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이며 세계시장은 1조4000억 엔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조명용 LED가 과잉으로 예상되는 데다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백열전구, 형광등으로의 교체가 지지부진한 까닭이다.
LED는 극히 적은 전류로 빛을 낼 수 있어 절전 차원에서 말하자면 세계적 친환경 붐을 타고 있는 전자 디바이스라 할 수 있다. 특히 백색 LED는 1990년대 후반 일본의 니치아화학공업이 청색 LED를 개발하고, 여기에 황색 형광체를 씌워 백색화에 성공한 것이 효시다. 이에 따라 조명광원으로서의 용도가 단숨에 확대됐다. 당초 휴대전화 액정 패널의 백라이트 수요를 통해 보급됐다.
이후 대형 LCD TV에 대량 채용되면서부터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형 LCD TV는 500~1000개의 LED를 이용하는 것으로, 특히 대형 애플리케이션이었으나 세계 출하 대수가 연간 2억 대를 넘은 시점부터 완전히 성장이 멈췄다. 현재로서는 교체 수요가 중심이며, 이에 따라 LED 세계시장도 성장이 멈춰 버린 것이다.
그런데 LED 제조업체의 매출 순위를 보면, 니치아화학공업이 장기간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 LG전자, 서울반도체 등 한국 기업들이 맹추격하고 있지만 고급 제품에서든 저가 제품에서든 강한 니치아화학공업의 아성은 여간해선 무너지지 않는다.
기술적으로도 세계에 가장 앞서 있어 품질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니치아화학공업은 설비투자에도 적극적이다. 2010년 582억 엔, 2011년에는 826억 엔, 2012년에는 614억 엔, 2013년에도 500억 엔을 투입했다고 보여지는 등 항상 일정 수준의 높은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는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이 매우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덕분에 높은 수준의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이다. 2006년 당시 매출의 약 60%가 영업이익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냈고, 최근 줄었다고는 하나 매출의 30% 이상이 이익이라고 알려졌다. 일본 반도체 업체 중 이 정도의 고수익을 내는 업체는 드물 것이다.
현재 니치아화학을 쫓고 있는 세계 2위 삼성은 플래시 메모리, DRAM, LCD 등 항상 대형 투자를 하고 있어 솔직히 LED에 전력 투입할 수 없는 것도 니치아에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세계 4위인 LG전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시점에서 나라별 시장 점유율을 보면 일본 기업들이 세계시장 점유율 30%를 가지고 여전히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다. 니치아를 필두로 세계 8위인 도요타갓세이, 9위인 샤프가 분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기업들은 점유율 28%로 일본을 맹추격하고 있어 향후 상황에 따라서는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격차를 한층 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참고로 미국·유럽 기업들은 점유율 19%, 대만 기업들의 점유율은 15%,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8%다.
백색 LED는 최근 들어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지만 적색 LED는 향후 급성장이 기대된다. 적색 LED는 혈액 중의 헤모글로빈 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특성이 있으며, 이것을 헬스케어 분야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 스마트폰에는 상당히 많은 적색 LED가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즉, 혈압, 혈류 등의 헬스케어를 모바일 단말기로 실시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LCD TV용 백라이트라는 거대 시장에 대해 포화상태라고 하지만 다양한 용도 확대는 계속될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의 LED조명 보급 계획을 보더라도 2030년에는 LED 보급률을 74%로 상향해 기존 대비 46%의 에너지 절약을 전망하고 있다. 참고로 중국에서의 LED 보급 확대가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LED 조명이 가장 많이 보급된 나라는 일본이다. 절약 정신이 강한 일본에서는 2015년 LED 조명 보급률이 7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음은 이즈미야 와타루 대표의 특별기고 원문이다.
世界のLED市場は2017年まで1.4兆円規模で長期横ばいが続く
~意外と伸びない照明向け白色LED、ヘルスケア用途で赤色LEDに期待
あれだけ急成長の期待がかけられたLEDマーケットはここに来て全く伸びが止まっている。2012年から2017年にかけての5年間についてもほぼ横ばいで推移すると見られており、世界市場は1.4兆円で止まったままだ。照明用途に過剰な期待が集まったが、実のところは世界的には白熱電球、蛍光灯からの置き換えがなかなか進まない。
さて、LEDはきわめてすくない電流で光を発することができるため、省エネルギーという観点でいえば世界のエコブームに乗っている電子デバイスだ。特に白色LEDは1990年代後半に日本の日亜化学工業が青色LEDを開発し、これに黄色の蛍光体をかぶせることで白色化に成功したのが始まりだ。このことで照明光原としての用途が一気に広がった。当初は携帯電話の液晶パネルのバックライト需要ではじけた。
その後には、大型液晶テレビに大量採用され、これで爆発的に伸びた。大型液晶テレビは500~1000個のLEDを用いるわけであり、まさに大型アプリであったが、世界出荷台数が年間2億台を越えたあたりから完全に伸びが止まった。
現状では買い換え需要が中心であり、このことでLEDの世界市場も伸びが止まってしまったのだ。
ところでLEDメーカーの売り上げランキングを見れば、日亜化学工業が長期にわたって世界チャンピオンの座を守っている。ここにきてサムスン、LG、ソウルセミコンダクターなど韓国勢の追い上げも激しいのであるが、ハイエンドでもローエンドでも強い日亜化学の牙城はなかなか崩せない。技術的にも世界に最先行しており、品質の良さでも定評のある同社は設備投資についても積極的だ。2010年には582億円、2011年には826億円、2012年には614億円、2013年についても500億円を投入したと見られ、常に一定レベルの高水準投資を断行している。
この背景としては、同社の営業利益率が非常に高い、ということがあり、要するに高水準投資を充分にできる環境にあるのだ。2006年当時は売り上げの約60%が営業利益というすさまじさであり、最近はさすがに減ってきたとはいえ、やはり売り上げの30%以上が利益だといわれている。日本の半導体メーカーでこれだけの高収益をたたき出すメーカーはまずいないだろう。
現状で日亜化学に迫っている世界ランク第2位のサムスンは、フラッシュメモリー、DRAM、液晶など常に大型投資案件を抱えており、正直言ってLEDに全力投入できないことも日亜にはプラス要因に働くのだ。これは世界4位のLGについても同じことが言えるだろう。2012年段階における国別マーケットシェアを見れば、日本勢が世界シェア30%を持ち、いまだ世界トップの座にある。日亜を筆頭に世界ランク8位のトヨタ合成、同9位のシャープがそれなりに頑張っている。これに対して韓国勢はシェア28%で日本を猛追しており、今後の状況によっては韓国が日本を追い抜き、さらに差を広げる展開とも言えそうだ。ちなみにアメリカ・ヨーロッパ勢はシェア19%、台湾勢はシェア15%、中国勢はシェア8%となっている。
白色LEDはここに来て伸びを欠いているが、赤色LEDについては今後急増が期待できる。赤色LEDは血液中のヘモグロビン濃度を測れるという特性があり、これがヘルスケアに生きるのだ。次の世代のスマートフォンにはかなり多く赤色LEDが搭載されるといわれている。すなわち、血圧や血流などのヘルスケアをモバイル端末で行うという時代がもうそこまで来ているのだ。
液晶テレビ向けバックライトという大きなマーケットが成熟化してきたとはいえ、さまざまな用途拡大は今後も続くだろう。米国エネルギー省のLED照明普及計画を見ても2030年にはLED普及率を74%に引き上げ、従来比46%の省エネを見込んでいるというのだ。ちなみに中国におけるLEDの普及拡大が話題になったが、実際のところLED照明が世界でもっとも普及している国は日本である。もったいない精神が国民の一般的な哲学となっているこの国では、2015年にはLED照明普及率が70%を超えてくるとまで予想されているの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할 때마다 올해 꼭 해야 할 최우선 과제 서너개 가운데 꼭 들어가는 항목이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체중조절, 즉 다이어트다.
그만큼 목표를 이루기 어렵고 실패 리스크가 크다. 그러나 다이어트가 주는 효과는 건강뿐만 아니라 금전적인 것은 물론, 개인의 사회생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근 조지워싱턴대학(GWU)의 공중보건 서비스 관련 연구조사에 따르면 체중을 감량해 건강을 회복하면 보험료를 비롯해 교통비, 의료비 등에서 연평균 5000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비즈니스인사이더가 보도했다.
연구 조사 결과, 미국에서 과체중인 여성은 정상 체중일 경우보다 연간 524달러를 더 지출하고, 과체중인 남성은 432달러를 더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 여성일 경우에는 4879달러, 비만 남성은 2646달러를 매년 더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중만 조절해도 저절로 따라오는 금전적 혜택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우선 체중조절을 통해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GWU에 따르면 체질량지수 기준으로 25~29로 과체중인 경우 평균 체중인 사람보다 직·간접적으로 346달러 정도를 의료비로 더 지출한다. BMI가 30 이상 비만인 사람은 평균 1년에 807~2845달러의 의료비 부담을 더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중이 의료비 부담과 비례관계에 있다면 연봉과는 반비례 관계에 놓여 있다.
특히 여성이 과체중인 경우 남자보다 수입액의 격차가 더 클 수 있다고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지적했다.
지난 2011년 미국 청소년 추적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만 여성은 정상 체중인 여성보다 평균 15% 낮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는 체중과 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체중은 채용에서부터 승진까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걸림돌이 된다고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설명했다.
끝으로 체중을 줄이면 자동차 연료 소비를 줄일 수 있다고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전했다. 미국 환경보호국에 따르면 100파운드당 자동차 에너지 효율이 2% 개선된다. 또한 다이어트에 성공하게 된다면 공항에서도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인한 추가 요금을 내지 않고 자유롭게 탑승할 수 있다고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