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세컨드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타인과의 접촉 없이도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길 수 있어서다. 세컨드하우스에 알맞은 입지, 보유하기 전 고려해야 할 주의사항을 살펴본다.
세컨드하우스란 도시 거주자가 주말 또는 휴일에 쉬기 위해 도시 근교나 지방에 마련한, 말 그대로 ‘두 번째 집’을 가리킨다. 주로 강이나 바다, 산 등 자연과 가까운 지역에 자리 잡아 별장처럼 활용하기 때문에 자연 조망이 우수할수록 세컨드하우스 입지로 인기가 많다. 따라서 세컨드하우스를 선택할 때는 산, 강, 바다 등 주변 자연환경을 어떻게, 얼마나 접할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팔방미인 세컨드하우스, 보유 전 세금 살펴봐야
부동산 시장 분석업체 리얼캐스트는 “세컨드하우스를 소유하거나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국민소득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과거 미국, 영국 등의 국가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GNI)이 3만 달러를 돌파하는 시점에 세컨드하우스 및 전원주택 수요가 늘어났다. 2017년부터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 역시 세컨드하우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모양새다.
여행을 떠날 때 숙박 시설을 예약하기 위한 수고를 들이거나 숙박비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세컨드하우스의 장점이다. 초기 부담 비용이 낮고 환금성이 높아, 차후 양도할 때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해당 지역 또는 주변 지역이 개발되거나 새로운 수요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면 세컨드하우스 가격도 덩달아 상승할 수 있어서다. 추후 주택을 시장에 내놓을 때 양도세를 웃도는 수익을 얻을 수도 있으므로, 후보지를 몇 군데 추려 꼼꼼하게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
세컨드하우스가 유명 관광지 근처에 있다면 ‘연세’(임대료를 연 단위로 지불하는 형태) 등의 방식으로 임대수익을 거둘 수 있다. 관광 이외에도 직장, 학업 등의 이유로 수요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라면 공실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세컨드하우스를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지, 사용하지 않는 기간에는 어떻게 활용할지 미리 계획을 세워두기를 추천하는 이유다.
세컨드하우스를 보유하기 전 몇 가지 따져봐야 하는 사항이 있다. 우선 취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주민세 등 각종 세금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구입할 때 납부해야 하는 취득세부터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주민세 등 매년 상당한 액수의 세금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세컨드하우스가 위치한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인지 비조정대상지역인지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므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조정대상지역인 서울에 거주하면서 비조정대상지역에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한다면 취득세가 1~3% 발생한다. 그러나 비조정대상지역에 살면서 조정대상지역에 세컨드하우스를 구입하면 취득세율은 8%까지 올라간다.
조정대상지역 여부는 종합부동산세도 좌우한다. 비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세율은 최대 3%에 불과하나, 조정대상지역의 경우 최대 6%까지 부담해야 한다. 또한 보유 주택의 공시지가에 따라 종부세 대상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고, 공동 명의와 부부 각각 단독 명의일 때도 계산이 달라지기 때문에 세무사를 고용해 세부 사항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양도세 절세, 농어촌주택이 해답
주택 수에 따라 증가하는 양도세율 때문에 세컨드하우스 마련을 주저하는 경우,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농어촌주택으로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하는 것. 다음 요건을 충족하는 농어촌주택은 주택 수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일반주택을 양도할 때 중과세율 적용을 피할 수 있고, 1세대 1주택 비과세 적용도 가능하다.
첫째, 농어촌주택 불가 지역이 아닌 지역의 주택이어야 한다. 농어촌주택 불가 지역으로는 △수도권 지역(연천군, 인천 옹진군 제외) △부동산거래신고법상의 토지거래허가지역 △국토계획법에 의한 도시 지역 △관광진흥법에 의한 관광단지 △조정대상지역이 있다. 단, 도시 지역 중 인구 20만 명 이하인 시는 일부 예외로 인정된다. 둘째, 일반주택과 농어촌주택이 같은 읍·면, 또는 연접한 읍·면이 아닌 곳에 있어야 특례를 받을 수 있다. 셋째, 취득 당시 주택가액(개별주택가격)과 토지가액(공시지가)의 합계액이 2억 원 이하, 한옥은 4억 원 이하여야 한다. 넷째, 농어촌주택을 최소 3년 이상 보유해야 한다. 일반주택을 먼저 양도할 때는 세컨드하우스로 농어촌주택을 취득한 지 3년이 되기 전이라도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혜택을 받은 후 농어촌주택을 3년 미만으로 보유하다 양도하면 비과세를 받았던 양도세가 추징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공익 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한 협의 매수, 또는 수용의 경우나 사망으로 인한 상속, 멸실의 사유로 농어촌주택을 보유하지 못하는 경우는 예외로 인정된다.
농어촌주택 특례는 2022년 12월 31일까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주택을 구매했을 때 적용된다. 일반주택 매도 시 양도소득세 신고기한 내에 일반주택의 토지대장 및 건축물대장과 농어촌주택의 토지대장 및 건축물대장을 첨부해 과세특세신고서와 함께 제출하면 된다. 보유세와 취득세는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
[TIP] 세컨드하우스, 어떤 형태가 좋을까?
세컨드하우스로는 단독주택이 가장 수요가 많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형태의 세컨드하우스가 등장하는 추세다. 단독주택이 주를 이루던 과거와 달리, 직접 거주와 임대 둘 다 가능한 수익형 부동산 형태의 세컨드하우스가 최근 인기다. 생활형 숙박 시설, 오피스텔, 아파트 등이 있는데, 이 중 아파트는 수요층이 다양하고 단독주택에 비해 관리가 쉽다는 것이 장점이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단독주택을 마련하고 싶다면 모듈하우스를 고려해보자. 집의 기본적 형태인 기본 골조와 현관문, 욕실, 전기 배선 등을 70% 이상 공장에서 만들어오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 면에서 경제적이다.
계절, 날씨, 노을, 함께하는 사람, 생각나는 음식에 따라 어울리는 술이 다르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의 도움을 받아 중장년층이 겪을 법한 상황에 곁들일 술을 준비했다. 취향대로 골라 마음껏 즐겨보시라.
1. 젊은 사원들과의 회식,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술
요즘 젊은 친구들은 한창 유행하거나, 구하기 어렵거나, 이색적인 느낌의 술을 좋아합니다.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를 권한다면, 젊은 사원들에게 존경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을 것 같네요. 곧 편의점에서 판매한다고 하니 기회를 노려보시길 바랍니다. 크기로 어필한다면 1.5L짜리 ‘한산소곡주 생주’ 됫병을 꺼내도 좋아요. 배상면주가의 ‘오매락퍽’도 추천합니다. 술 마시기 전에 토기를 퍽퍽 깨는 재미가 있어 회식 분위기를 업(Up)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2. 은퇴한 남편의 인생 2막을 응원하는 술
인생 2막이라. 노후와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은 기본이요, 젊을 때의 패기와는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지요. 양조장 대표님 중에도 본업을 뒤로하고 양조의 길을 걷는 분이 많은데, 맹개술도가의 박성호 대표님이 떠오르네요. 잘나가는 IT(정보기술) 기업인이던 그는 돌연 안동으로 내려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외딴 섬에 농산물을 심고 땅을 일궈 맹개마을을 꾸렸어요. 지난해 농업인의 날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직접 지은 유기농 밀로 만든 ‘진맥소주’는 안동을 대표할 만한 증류식 소주입니다. 은퇴한 남편의 미래를 응원하는 술로 딱 맞죠.
3.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마음 달래기 좋은 술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을 시커먼 놈(?)에게 보낸다고 생각하면 잠을 못 이룰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위가 나타나도 탐탁지 않을 수밖에요. 하지만 딸이 짝을 만나지 못하고 평생 혼자 산다고 상상해보면? 그것도 정말 답답할 노릇이지요. 딸을 보낸다고 생각하기보다 새로운 식구를 맞았다고 생각하면 좀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요. 충북 영동 도란원의 ‘샤토미소 웨딩 자두 와인’은 안남락 대표가 딸의 결혼을 기념해 출시한 와인입니다. 사랑스러운 연한 오렌지 빛깔을 띠며, 자두의 달콤함과 새콤함이 어우러져 상큼한 매력을 선사하죠. 딸의 결혼을 축하하며 맛보면 좋은 술입니다.
4. 오랜 벗과 편한 자리에 제격인 술
오랜 벗과는 격식을 차릴 필요 없이 세상 누구보다 편하게 만날 수 있고, 속 이야기를 훌훌 털어놓게 되죠. 편안하게 껄껄껄 웃으며 꿀꺽꿀꺽 마실 수 있는 술이 제격입니다.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 남태령 옛길에 위치한 과천도가의 ‘관악산생막걸리’는 알코올 도수 6도, 용량은 1L로 부담은 적고 용량은 많아 느슨한 자리에서 술술 마셔도 좋겠습니다. 담백한 맛으로 산행 뒤에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대중적인 술이며, 잔에 졸졸 따라 건배하고 원샷 하기에도 깔끔한 양입니다.
5. 오랜만에 놀러 온 자식 부부에게 대접할 만한 술
사위 또는 며느리가 함께한다면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수밖에 없죠. 좋은 음식도 맛보여주고 싶고, 귀한 술을 준비해 자리를 빛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담은 술이 필요한 상황이네요. 한국을 대표하는 포도 품종인 청수로 만든 와인은 이런 자리를 빛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입 품종에서 느끼지 못하는 색다른 화이트와인인 데다, 한국 음식과의 어울림이 아주 좋기 때문이죠. 경북 경산의 와이너리 비노캐슬에서 만드는 ‘비노페스티바’는 전문가들이 손꼽는 와인입니다. 100% 청수로 만들었으며, 생선, 갑각류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립니다. 킹크랩이나 대게를 쪄서 함께 내면 어린 부부가 하트를 뿅뿅 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6. 가족과의 여름휴가, 더위를 날릴 수 있는 술
다가오는 여름, 맥주나 스파클링와인이 아닌 뭔가 새로운 술을 찾는 분들을 위해 막걸리를 하나 추천합니다.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 청포도, 샤인머스캣으로 빚은 ‘써머 딜라이트’입니다. 대동여주도와 같이 양조장이 협업해서 만든 제품이에요. 구멍떡으로 빚은 삼양주라 그 자체로 향이 좋고 단맛이 도는데, 포도를 넣어 더욱 진하고 상쾌합니다. 얼음을 넣어 차가워진 술을 테라스에 다 함께 앉아 즐기면 여름 칵테일로 사랑받는 모히토보다 싱그러운 맛을 느낄 수 있지요.
경기도가 올해 도내 작은도서관 342개소에 냉난방비를 지원해 취약계층 등을 위한 ‘무더위‧혹한기 쉼터’로 활용한다. 냉난방비는 연말까지 지원돼 여름에는 무더위 쉼터, 겨울에는 혹한기 쉼터로 각각 활용될 예정이다.
작은도서관은 대규모 예산이나 부지가 필요한 공공도서관 외 주민자치센터, 복지시설, 아파트, 교회 등에서 도민 접근 편의성을 위해 설치된 시설이다. 도내에는 총 1천 825개소의 작은도서관이 운영 중이다.
도는 취약계층 쉼터 제공 등을 위해 2017년부터 도내 작은도서관을 무더위‧혹한기 쉼터로 활용 중이다. 올해에는 5억 5천만 원(시군비 3억 8500만 원 포함)을 들여 시‧군에서 무더위‧혹한기 쉼터로 요청한 작은도서관을 대상으로 전기료, 가스비 등 냉난비와 85개소 냉난방기기 구입비를 지원한다.
무더위‧혹한기 쉼터로 운영될 작은도서관 342개소는 도서관별 운영 요일 및 시간이 다른 만큼 방문 전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에서 확인해야 한다.
동네 사랑방이자 쉼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던 경로당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수차례 문을 닫은 바 있다. 사회적‧정서적 고립 상태에 놓이자 노인들의 정신건강은 날로 악화돼왔다. 보건복지부 ‘2021년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 우울 위험군은 지난해 3분기 12.4%에서 4분기 13.8%로 늘었다. 우울 평균 점수도 4.0점에서 4.2점으로 상승했다. 60대 이상 여성 우울위험군은 19.2%로 남성(8.1%)보다 높았다.
이에 도내 작은도서관들은 도와 시‧군의 냉난방비 지원을 바탕으로 화성시 만세작은도서관의 ‘도서관에서의 1박 2일 야간행사’ 등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도민들을 맞이할 계획이다. 이화진 경기도 평생교육국장은 “작은도서관이 정보제공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무더위나 추위에 취약한 계층을 위한 나눔‧소통 장소 역할도 수행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곳의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되면 그곳이 떠오른다. 바로 국립서울현충원이다.
6월을 앞둔 어느 날, 국립서울현충원에는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위로하듯 이팝나무꽃이 흩어져 내렸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슴이 아려지는 그곳에서 김수삼(57) 현충원장을 만났다.
김수삼 원장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행시 40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국방부 군수기획과장, 직무감찰담당관, 기획총괄담당관, 국제군수협력과장, 기획관리관 등을 역임했다.
국립서울현충원도 국방부 소속이다. 김수삼 원장은 지난 1월, 제23대 국립서울현충원장으로 취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별도의 취임식을 치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TV에서 그를 볼 기회가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후와 5월 10일 취임식 때 현충원을 찾아 참배했기 때문. 김 원장은 “TV에서 저를 봤다며 반가워하는 지인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현충원장에 취임해 책임감을 느끼고 걱정도 많았는데요. 무사히 치를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어요.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이 선거를 치르거나 당선될 때 현충원을 가장 먼저 찾는 것을 보고 정말로 중요한 곳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국민이나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도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목숨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의 중요성을 느끼고 자주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국을 위한 선열들의 장소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 현충탑에 새겨진 글귀
서울 동작구에 자리한 국립서울현충원은 휴전 2년 후인 1955년 설립된 국군묘지가그 뿌리다. 6·25전쟁에서 전사·순직한 군인들을 안장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후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5년 국군묘지에서 ‘국립묘지’로 승격됐고, 군인이 아닌 순국선열 및 국가유공자 안장도 가능해졌다. 이어 1996년 국립현충원, 2006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름을 확정했다.
김수삼 원장은 “국립서울현충원은 조국의 독립과 수호, 발전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해 계시는 민족의 성역이다. 국난을 극복해온 민족의 얼과 호국 의지, 나라 사랑 정신이 가득 서려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총면적은 약 44만 평이며, 네 분의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총 18만 7000여 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모시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국립대전현충원은 1985년 건립됐고, 국립연천현충원은 2025년 건립을 목표로 준공 중이다. 김 원장은 “서울현충원, 대전현충원, 연천현충원은 모두 같은 위상을 가진 국립묘지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서울, 대전, 연천현충원에 안장되는 대상자를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립서울현충원은 국방부 소속이고, 대전과 연천현충원은 국가보훈처 소속이다.
김수삼 원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강조하며,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이 갖는 역사적인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의미 있는 곳의 원장으로 반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그의 소감은 어떨까.
“올해 1월 국립서울현충원장에 취임해 현충탑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참배를 드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상반기가 다 지나갔네요. 처음 참배를 드릴 때 현충원장으로 취임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한편,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느꼈습니다. 제가 당시 다짐한 것이 있어요. 장례와 추모 행사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와 엄중한 코로나19 상황 등에 맞춰 보다 체계적이고 품격 높은 안장 및 참배·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공자 및 유가족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기 위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좀 더 노력하겠다는 것입니다.”
김수삼 원장은 최고의 예우를 다하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설 명절 때 유가족을 대신해 직원이 참배드리고 이를 사진 찍어 전송해주는 ‘설맞이 참배 대행 서비스’를 실시했다. 또한 유가족의 편의를 위해 참배용 사다리 및 참배용 원목 의자를 비치했고,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던 셔틀버스 운행도 시작했다고.
김 원장은 취임 후 가장 뜻깊었던 일로 지난 4월의 ‘제2충혼당 개관’을 꼽았다. 제1충혼당은 영현 2만 468위를 모신 후 2020년 7월 만장됐다. 제2충혼당은 2018년 착공돼 올해 4월 13일 완공됐다. 제2충혼당에는 3만 2952위를 추가로 안장할 수 있다.
“제2충혼당 건립을 통해 유공자분들을 최고의 시설로 모실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나라 사랑 및 호국 정신을 후대에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제2충혼당 개관식에서 배우 신현준 씨가 사회를 봐주셨고, 가수 진미령 씨가 추모시를 낭독해주셨습니다. 두 분 모두 이곳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유공자의 후손입니다. 행사 며칠 전에 갑자기 부탁드렸는데도 기꺼이 다른 일정을 조정하고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유해 발굴 및 확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6·25전쟁 당시 전사한 사실은 확인됐으나 유해를 찾지 못한 이들의 위패가 10만 3000여 위나 있다. 김수삼 원장은 “현재도 이분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유해 발굴 사업이 꾸준히 진행 중이지만 발굴된 유해 중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호국용사는 극소수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위쪽에 있는 무후선열제단에도 134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구한말 의병 활동 및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분들 가운데 유해를 찾지 못하고 후손이 없는 선열들의 위패다.
그러나 안장되어 있고 유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음에 따라 유가족이 꾸준히 현충원을 찾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그 원인은 거주 지역이 멀어서 일 수도 있고, 가족이 달라지거나 건강 상태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분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때문에 기혼자가 적어 후손이 없거나, 남은 유가족 대부분이 형제나 조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묘역을 찾는 유가족이나 친지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점점 쓸쓸한 묘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선열의 희생에 감사하며 ‘내가 후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쓸쓸한 묘소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죠.”
현충원, 국민 속으로
일반 국민에게 ‘현충원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나?’, ‘실제로 현충원에 가본 적이 있나?’라고 물어보면, 현충원 근처에 사는 서울시민이나 견학을 가본 경우가 아니라면 스스로 현충원을 찾아가 봤다고 답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보통 TV를 통해 6월 6일 현충일 행사를 보면서 국립서울현충원을 접한 경우가 대부분일 터. 그렇기 때문에 현충원은 정부 관계자나 유공자의 후손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원래는 국립묘지였기 때문에 매우 엄숙한 공간이라고 느껴진다.
김수삼 원장 역시 ‘일반인이 현충원에 들어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현충원이 무겁고 어려운 이미지가 아닌 국민과 함께하는 열린 호국공원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특히 44만 평의 국립서울현충원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김 원장은 “봄에는 아름다운 수양벚꽃, 여름에는 이팝나무 가로수길, 가을에는 현충원 둘레를 잇는 은행나무길이 아름답다”면서 “이와 더불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가슴 깊이 간직할 수 있는 뜻깊은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수삼 원장의 말대로 국립서울현충원은 아름답고 뜻깊은 곳이다. 현충원을 걷다 보면 느껴지는 감정도 많을 것.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근무 환경이 좋아서 오래 일하고 싶다”는 김 원장은 현충원의 명소로 현충천과 현충지를 추천했다.
“현충원에 천이 있다는 것을 아는 분이 많지 않은데요. 현충천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사시사철 다양한 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고기들도 많고요. 현충지는 조그마한 연못으로 가만히 앉아서 사색하거나 소위 ‘멍때리기’ 좋은 곳입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시기도 하는데요. 심지어 심신을 치유하신 분도 많아 후손들이 감사한 마음에 기증한 의자도 있어요. 저도 점심 식사 후 산책할 때 현충천과 현충지는 거의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김수삼 원장은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국립서울현충원은 온라인을 통해 ‘기일 : 기억의 날’(당신을 기억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독립유공자가 서거한 달에 맞춰 업적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독립유공자 하면 어떤 분들이 떠오르시나요? 대부분은 우리가 잘 아는 김구 선생님이나 안중근 의사 같은 분들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이분들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독립유공자들이 계십니다. 기일 프로젝트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신 독립유공자들의 업적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기획했습니다. 한분 한분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5월 21일에는 국립서울현충원 경내에서 호국 문예 백일장과 그림 그리기 대회를 개최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년간은 비대면으로 개최됐다. 김 원장은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서 많은 이들의 현충원 방문을 뿌듯해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제한됐던 행사를 앞으로 적극적으로 개최하고, 시민들의 참여의 장을 넓히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수삼 원장은 재임 기간의 목표에 대해 “국민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는 열린 호국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국민들이 언제나 편안히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호국정신을 배우며 후손들에게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수삼 원장에게 현충원장으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목표를 물었다. 그는 “곧 정년을 맞이하기 때문에 퇴직 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먼저 퇴직하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 건강, 취미, 친구들이 있어야 노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근로소득은 정년까지 일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퇴직 이후에는 금융소득을 통해 번다는 목표로 퇴직연금, 리츠, 부동산 펀드 등을 적립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요즘 사이버 대학이 많아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한 공부를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며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금은 한국어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졸업하면 외국인 학습자를 가르칠 수 있는 한국어교원자격증이 부여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깜빡깜빡하게 되고 인지 능력 등이 떨어지며 ‘혹시 내가 치매인가?’라고 의심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스스로 병원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혹여 진짜 치매에 걸렸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실제 치매 환자 4명이 자신의 질환을 인지하고 인정하까지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네 사람은 “무엇보다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신의 치매를 의심하게 된 순간은 언제부터일까? 그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를 담아봤다.
“왜 갑자기 멍해지고 둔해졌지?”(Deb Jobe, 56세)
고객서비스관리자로 일하던 뎁은 평소 하던 일이 어렵게 느껴졌을 때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아차렸다. 당시 50대 초반이던 그녀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동안 멍하니 있는가 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끊임없이 질문을 반복했다. 초반에 그녀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인 존 역시 그녀가 대화를 되풀이하고 기억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심상찮음을 직감했다.
결국 존의 권유로 그들은 병원을 찾았다. 뎁의 경우, 종종 일부 폐경 여성에게 나타나는 ‘브레인 포그’ 증상과 유사했지만 주치의는 이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정밀 검사를 진행하도록 했다.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스캔 검사 결과, 뎁은 공간 지각, 시각 처리, 계산 등을 담당하는 뇌에 영향을 미치는 희귀한 형태의 알츠하이머병인 ‘후피질 위축증’(PCA)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당시 했던 몇몇 검사 과정은 잊었지만, 진료실에서 최종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 세상 전체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속이 쓰라리고 울렁거리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며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라며 실감했다.”
그녀는 처음 6개월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을 뿐더러,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기도 막막했다. 그녀의 상황을 알게 된 친구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들 거리가 멀어지게 됐다. 현재 뎁은 ‘알츠하이머 협회’(Alzheimer's Association)의 초기 단계 자문 그룹(Early-Stage Advisory Group)의 일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녀는 “일부 사람들이 나와 거리를 두는 것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알츠하이머 협회가 나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치료와 더불어 내가 기대고 이야기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놨다.
그녀는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고, 수표에 ‘0’을 하나 더한 적도 있지만, 치매는 그녀의 삶에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선사했다. 바로 예술적 능력이다. 뎁은 성인용 컬러링북을 시작으로 최근 더욱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스케치 작업도 하고 있다. 스스로 “얼마나 매혹적인 작품인가?”라고 감탄할 정도로 긍정적인 태도로 일상을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이들에게 당부한다. “조기 발견이 핵심이다. 이상 증상이 있을 때 꼭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라. 자칫 이 시기를 놓친다면 당신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몇 년을 허비할 지도 모른다.”
“그게 뭐더라? 그 단어가 생각 안 나.” (Clare Sulgit, 51세)
목사였던 클레어는 발병 초기 이상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들조차 그녀의 질환을 확진하지 못했다. 알츠하이머 협회에 따르면, 65세 미만 미국인 200만 명이 초기 검사에서 알츠하이머 확진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PET 스캔 등의 검사를 받고 난 뒤 올해 1월 51세 나이에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 장애 진단을 받았다.
클레어는 이상 증상을 느꼈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지난 해 여름, 내가 원하는 단어를 찾아 말하는 게 어려웠다. 그렇게 가끔 혼란을 느꼈는데, 내겐 무척 생소한 경험이었다.” 사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때문에 이러한 변화를 의식해 몇 번 의사와의 면담도 잡았지만, 이내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라 여기고 일정을 취소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클레어 역시 아버지와 같은 ‘전두측두엽 치매’ 진단을 받았다.
치매 진단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클레어는 “인생은 여전히 좋다. 나는 평생 치료법을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살아갈 이유가 많고, 사는 동안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길 희망한다”며 “목사로서 계속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 믿음은 위안과 희망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최근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의 록펠러 신경과학 연구소의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 새로운 의학적 치료를 받으며 질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길 바라는 한편,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치매 환자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희망했다.
“알파벳 K를 알지만… 어떻게 쓰더라?” (Daniel Miller, 59세)
조달분석가였던 다니엘은 은퇴 후 타이핑 작업에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난독증이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주치의마저도 나이가 들며 발생하는 관절염 정도라 일축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가 던진 한마디에 의사의 표정은 달라졌다. “알파벳 K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겠다. 또 K를 보면 그것이 K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K를 어떻게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이야기에 의사는 MRI(자기공명영상검사) 전문의에게 그를 보냈고, 결국 알츠하이머병의 하나인 ‘후피질 위축증’(PCA) 진단을 받았다.
그날 이후 그는 운전을 멈춰야 했다. 아내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야만 이동이 가능해졌다. 다니엘은 이러한 일상의 변화를 ‘독립의 상실’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고 자신을 향한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일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알츠하이머의 단서를 찾았던 경험에서 비롯해 그는 당부한다. “자신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단호하게 바라보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느껴진다면 병원 방문을 미루지 말라. 또, 의사를 만난다면 그런 자신의 상황을 가능한 한 아주 자세히 설명하라.”
“왜 내가 엉뚱한 공항에 왔지?” (Bart Brammer, 72세)
자동차 제조업 30년 경력의 바트는 잦은 출장 업무로 보통 일주일에 3곳 정도 타 지역에 방문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날짜, 호텔, 렌터카, 비행기 등 주요 정보를 혼동하기 시작했다. 엉뚱한 공항에 도착해있는가 하면, 예정된 일정보다 하루 일찍 나타나는 등 그 증상이 심각했음에도 그는 곧장 의사에게 가지 않았다. 그저 바쁜 일정 탓에 잠시 헷갈렸거나 스트레스가 과해 벌어진 일 정도로 여긴 것. 그러던 중 70세가 되던 해 뇌졸중을 앓게 됐고, 회복하던 중 말을 더듬거나 기억력이 감퇴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단순 뇌졸중 후유증으로 간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주치의가 관련 검사를 진행했고, 바트에게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치매 진단 후 그는 공허함이 컸지만,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슬펐다. 가령 누군가 내년 7월 4일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던 것. 그는 “내가 그때는 그 사람 주변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먼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6개월 동안 자신의 상태를 비밀로 했는데, 치매 환자로 낙인찍힌 삶에 대한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홀로 불안한 나날을 보낼 수 없었다. 결국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공유했고, 그 후로부터 삶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과거 치매를 앓기 전 그는 줄곧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다음은 무엇인가? 다음에 무엇을 할까? 다음에 어디를 갈까?” 그러나 이제 그런 질문은 불필요해졌음을 느낀다. 대신 “오늘을 위해 산다. 나는 그 순간에 있다”라고 여기며 하루하루를 감사히 살아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촌 관광 활성화를 위해 농촌관광상품 할인, 농촌 방문 인증 이벤트, 주제별 우수 농촌여행지 추천 등 ‘2022 여행가는 달’ 캠페인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22 여행 가는 달’은 국내여행을 통해 일상을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은 “여행으로 재생(再生) 하기”를 주제로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여행가는 달’과 연계해 주제별 우수 농촌관광지를 추천하고 다양한 농촌관광 홍보 행사를 진행한다.
더불어 6월 2일부터 농촌체험휴양마을과 지역의 관광지를 연계한 체류형 농촌관광상품을 30~50% 할인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경기도 연천군, 강원도 홍천군, 경상북도 상주시 등 7개 시군에서는 낙농체험, 글램핑, 시골밥상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농촌여행지 방문 인증 행사(농촌, 어디까지 가봤니? 6월 2일~7월 31일), 농촌관광 누리집 웰촌 캐릭터 작명 대회(웰촌 캐릭터, 이름을 지어주세요 6월 7~17일), 여름농촌여행 밸런스게임(밸런스게임, 당신의 선택은? 6월 20일~7월 1일) 등이 열릴 예정이다. 추첨을 통해 농촌체험꾸러미, 편의점 상품권 등 다양한 경품도 제공된다.
‘여행가는 달’ 농촌관광상품 할인 내용과 주제별 농촌여행지, 홍보행사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한국농어촌공사 농촌관광 누리집 웰촌과 한국관광공사 누리집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언덕을 오르면 무슨 일이 기다릴까. 종로구의 그 골목으로 접어들면 거대한 고목이 중심을 잡고 있다. 권율 도원수 집터의 은행나무다. 여름이면 주변을 시원하게 할 만큼 초록이 울창하고 가을이면 온 동네에 노란 은행잎이 흩날린다는 이야기다. 오래전 살던 집을 찾기 위한 단서로 붉은 벽돌집과 바로 이 큰 나무가 있는 은행나무골 1번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딜쿠샤의 역사를 언덕 위의 은행나무는 지금껏 지키고 있었다.
거의 100년 전 개인의 공간이 당시와 거의 흡사하게 복원되었다. 딜쿠샤는 그 시절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에 있던 저택으로 3.1 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AP통신 특파원 고 앨버트W.테일러(Albert Wilder Taylor)와 메리L.테일러(Mary Linley Taylor)부부가 살던 집이다.
두 외국인 부부의 취향이 가득 담긴 공간이 우리의 오묘한 역사의 흔적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이야기가 깃든 딜쿠샤는 그 시절의 디테일한 분위기와 일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탈바꿈되어 공개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탄광 개발을 위해 아버지와 한국을 찾은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 출장차 일본에 갔다가 운명의 여인 메리를 만난다. 영국 출신 배우 메리와 1917년 인도에서 결혼을 하고 한국에서 신혼 생활을 하게 된다. 어느 날 한양도성을 산책하다가 은행나무골로 불리던 행촌동(杏村洞)의 은행나무에 반한 메리가 이곳에 집을 짓고 싶어 한 것이 딜쿠샤의 시작이었다.
1923년에 정초석을 세우고 1년 만에 완성된 딜쿠샤(Dilkusha). 이국적인 이름 딜쿠샤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 희망, 이상향'을 뜻한다. 부부는 인도에서 딜쿠샤라는 궁전을 보고 그들의 스위트홈이 완성되면 딜쿠샤라 할 생각이었다. 드디어 한국에서 정착해 살면서 창 밖으로 은행나무가 보이는 딜쿠샤에 살게 된 부부는 고통스럽고 혼란했던 시기의 한국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기업인이자 연합통신 특파원으로 고종의 장례식 취재를 의뢰받았던 테일러는 기사 내용에 3.1 운동을 추가하게 된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마침 아들 브루스가 태어난다. 메리는 출산 직후 세브란스 병원 창문을 통해서 고종의 장례 행렬을 보았다고 했다. 이때 병원에 왔던 테일러는 갓 태어난 아들 브루스의 침대 밑에 숨겨진 종이 뭉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기미독립선언문이었다. 이것을 동생 윌리엄의 구두 뒤축에 숨겨서 도쿄에 가서 타전했고 마침내 뉴욕타임스에 3.1 운동 기사가 실리게 된 것이다. 이 뿐 아니라 테일러에 의해서 제암리 학살사건을 비롯해서 3.1일 운동을 제압하기 위한 일제의 각종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금광사업과 특파원으로 갖가지 일을 겪으면서 테일러 부부는 점차 조선에 깊은 애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으로 위기가 찾아왔고 테일러는 구금되고 메리도 가택연금 상태가 되어 결국은 외국인 추방령에 따라 이 땅을 떠나게 된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캘리포니아에 상륙한 테일러는 줄곧 한국행을 꿈꾸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1948년에 세상을 떠났다. 메리는 한국을 사랑한 남편의 뜻에 따라 테일러의 유해를 가지고 그해 한국을 찾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딜쿠샤에도 들렀다. 앨버트 테일러는 현재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아버지와 함께 잠들어 있다.
이토록 다사다난했던 역사 속의 사실을 이들이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방인이었지만 한국을 사랑했고 위험 속에서도 한국을 위한 일을 서슴지 않았던 앨버트 테일러, 마지막 안식처로 한국에서 잠들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렇게 테일러와 메리 부부의 딜쿠샤가 잊혀 가던 중 아들 브루스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을 찾고 싶다고 한 것이다. 그동안 소유권이 몇 번이나 바뀌고 국가 소유가 되었지만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릴 만큼 방치되었던 집, 한국 전쟁 후 집 없는 많은 사람들이 버려진 딜쿠샤의 공간을 쪼개서 살았다고 한다. 2006년 66년 만에 딜쿠샤를 찾은 부르스는 이것을 보고 그동안 어려운 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어 감사해했다고 전한다.
이후 서울시는 딜쿠샤의 복원 및 재현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특히 메리는 다재다능해서 글과 그림이 뛰어나 남겨진 많은 그림과 기록이 전시되었고 그녀의 기록이 복원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테일러 씨의 손녀 제니퍼 린리 테일러는 딜쿠샤 관련 자료 1026건을 기증했다. 2018년부터 시작한 복원 작업 끝에 역사전시관으로 재탄생되어 2021 3월에 개관에 이르렀다. (2017년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등록)
1층과 2층의 전시장은 그들이 살던 1920년대의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파티나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던 1층은 거실 내부를 상세히 재현했다. 부부의 결혼과 입국, 한국생활을 보여준다. 메리의 그림이나 호박 목걸이 이야기도 전시되었다. 테일러가 메리에게 청혼할 때 준 호박 목걸이는 미국으로 추방되어 살면서 한국에서 살던 기억을 바탕으로 쓴 책의 제목이 '호박 목걸이'다. 그리고 금광 사진이나 금강산 여행을 그림과 기록으로 남긴 것들, 벽난로…. 모두 그들의 숨결이 깃든 추억들이다.
2층에는 테일러 부부가 여가를 보내는 공간이다. 영상으로 딜쿠샤의 복원 과정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전시물 중에는 메리가 한국의 주변 사람들을 그린 초상화가 인상적이었고 테일러의 언론활동 모습도 남겨져 있다. 한국의 병풍이나 고려청자, 램프나 테이블 등 동서양이 조화를 이룬 집안이 전체적으로 아름답다.
수많은 시간들을 견뎌낸 널찍한 거실의 창문으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온다. 당시에는 언덕 꼭대기 집이어서 멀리 지나가는 기차가 보이고 남산과 한강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전망 좋은 집이었다는데 지금은 아파트와 건물들로 가로막혀있다. 다만 옆의 창문을 통해서 은행나무의 풍경은 고스란히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딜쿠샤는 종로구 사직터널 오른쪽 축댓길로 오르면 언덕 위의 2층 붉은 벽돌집이다. 이제는 복원되어 겉모습이 살짝 새것 느낌이 들긴 하지만 1923년부터 추방되던 1942년까지 테일러와 메리 부부 가족이 살던 100년 전의 테일러가(家)이다.
◇ 가는 길: 서울의 서대문역이나 독립문역에서 나와, 김구(金九) 선생의 사저였던 경교장(京橋莊)을 거쳐 돈의 박물관을 지나면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이 나타난다. 행촌 성곽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주변을 오가는 이들의 여유로운 산책길이다. 월암근린공원에서 곧바로 나타나는 홍파동 언덕배기의 홍난파 가옥을 지나면 저 앞으로 400년이 넘는 수령의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 은행나무에 마음을 빼앗겨 집터를 선택한 메리의 시선으로 나무를 바라보기도 하며 발걸음을 하다 보면 “DILKUSHA 1923” 명판이 새겨진 붉은 벽돌집 딜쿠샤가 맞아준다.
◇ 딜쿠샤 방문은 사전예약제로 진행한다.
- 예약 방법 :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검색 → 딜쿠샤
https://yeyak.seoul.go.kr/web/reservation/selectReservView.do?rsv_svc_id=S210226112026774583
- 문의 : 딜쿠샤 전시관(070-4126-8853)
질병관리청은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2022년 5월 20일부터 9월 30일까지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를 운영한다.
온열질환은 열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질환으로 뜨거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 시 두통, 어지러움, 근육경련, 피로감, 의식저하 등의 증상을 보이고, 방치 시에는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질병이다. 열사병과 열탈진이 대표적이다.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는 전국 500여 개 응급실 운영 의료기관이 관할 보건소 및 시·도, 질병관리청과 협력해 응급실에 내원한 온열질환자를 파악하고 폭염의 건강 영향을 감시한다. 수집된 온열질환 발생현황 정보는 질병관리청 홈페이지를 통해 매일 제공될 예정이다.
지난해 감시체계를 통해 파악된 온열질환자는 총 1736명으로, 이중 사망자는 20명이었다. 남자(75.9%)가 여자(24.1%)보다 많았고, 연령별 인구 10만 명당 온열질환자 수는 80세 이상이 7.6명으로 가장 많았다.
시·도별로는 경기 271명, 경남 126명, 경북 124명, 서울 121명, 전남 110명 순으로 많았다. 발생장소는 실외 작업장이 40.3%(555명)로 가장 많았다. 이 역시 남자(75%)가 여자(25%)보다 많았고, 주로 실외 논·밭(25%)에서 발생했다.
추정 사망자는 온열질환 감시체계 운영을 시작한 2011년 이후 두 번째로 많았다. 사인은 모두 열사병으로 추정된다.
질병관리청은 폭염에 노출돼 열사병 증상이 의심되는 경우 즉시 병원으로 이송하여 조치할 것을 권하고 있다. 백경란 질병관리청 청장은 “올여름은 평년(1991~2021)보다 무더운 날씨를 보일 때가 많을 것이라는 기상청의 기후 전망에 따라 갑작스러운 더위로 인한 온열질환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을 통해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조기에 인지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발생현황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겠다”고 전했다.
자생의료재단은 이른 무더위에 복지 사각지대 독거 어르신들이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혹서기 물품을 지원한다고 16일 밝혔다.
자생의료재단은 전국 12개 자생한방병원(강남·대전·목동·부천·분당·안산·울산·일산·잠실·창원·청주·해운대)과 협력해 5월 한 달간 전국 각 지역의 독거 어르신에게 여름 이불세트 총 360채를 기부한다. 혹서기 위험에 노출된 50가구를 선정해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청소 봉사도 실시한다.
지난달 28일 청주자생한방병원은 청주자생봉사단과 함께 여름 이불세트 30채와 독거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반려식물 30개를 청주시독거노인통합지원센터에 기탁했다. 지난 3일에는 자생한방병원도 강남구청을 찾아 혹서기 물품 지원에 동참했다. 특히 지역 내 독거 어르신 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한국에 입국한 고려인 가정 1가구에 대한 지원도 이뤄졌다.
이어 지난 10일 일산자생한방병원과 일산자생봉사단이 지역 독거 어르신 30가구에 이부자리를 전달하고 주거 환경 개선 활동에 나섰다. 부천·잠실·해운대자생한방병원도 지난 12일 부천희망재단과 송파실벗뜨락 구립노인복지관, 대한적십자사 부산광역지시회에 이불세트 30채씩을 각각 지원했다. 자생의료재단은 이달 안에 대전·목동·분당·안산·울산·창원자생한방병원과 함께 전국적으로 이불세트 및 기타 혹서기 물품 기부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박병오 자생의료재단 이사장은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이번 기부 활동이 때 이른 무더위로 고생하는 독거 어르신들의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자생의료재단은 불볕 더위가 예상되는 올해 여름철 복지 사각지대를 적극 발굴해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의료기관이 되겠다”고 말했다.
한편 자생의료재단은 혹서기 물품 지원과 더불어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척추·관절 질환 치료 전문성과 노하우를 살려 복지 취약계층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한방의료방소에 나서는 등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꽃이 필 즈음의 이른 새벽, 쪽을 잘라내 하루이틀 물에 우려낸다. 자연산 굴 껍질을 구워 만든 석회를 섞고, 잿물을 부어 발효시켜야 준비가 끝난다. 손등이 파랗게 물들 때까지 커다란 천을 쪽물에 담갔다 빼는 과정은 고된 빨래를 연상시킨다. 지난한 과정이 꽃피운 쪽빛은 탄성을 자아낸다. 철 따라 탈바꿈하는 자연 풍광, 20년 넘게 이어지는 장인의 열정 앞에서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감탄 말이다. 쪽 염색에 대해 묻자 푸른 산에 흐르는 물(靑山流水)처럼 애정과 자부심이 쏟아졌다.
홍루까 하늘물빛 전통천연염색연구소 대표는 20년 넘게 전통 천연 염색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쪽 염색을 활용한 회화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책 ‘한국 천연 염색 백서 2017’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인 쪽염 보존을 위해 힘썼다. 현재는 쪽 염색 체험, 천연 염색 자격증 강좌 및 전문가 양성 과정을 운영하며 쪽 염색의 전통과 미래를 잇고 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더라
처음부터 가업을 이으려던 건 아니었다. 여름 휴가철에 어머니인 조일순 전통매듭 장인이 매듭실 염색할 때 도와드렸을 뿐이다. 천연 염색에 대한 열정을 지핀 것은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천이 펄럭이는 장면이었다.
“염색이라는 게 빨래나 다름없어요. 색이 제대로 날 때까지 염색물에 넣었다가 꺼내서 헹구고, 다시 넣었다가 헹구는 과정의 반복이거든요. 그걸 다 도와드리고 쉬려고 평상에 누웠는데, 그날따라 천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도 어머니를 도와드렸지만 한 번도 예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도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나 봐요.”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자연 색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들어온 화학 염색이 제아무리 다양한 색을 뽑아낸대도, 자연의 빛에 견줄 수는 없었다. 길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에선 ‘와’ 하고 탄성이 터져 나오지만, 동대문 원단 시장을 가득 채운 원단들을 본다고 해서 감탄하는 사람은 없잖은가.
염색 경력만 스무 해를 훌쩍 넘는다. 한창 때 응했던 인터뷰 기사의 제목 ‘나는 아직도 미쳐 있다’가 과장이 아니었다. 자려고 누우면 바람에 날리는 천이 아른거렸다. 눈에 담는 모든 색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전통염색에 대한 책이 없었기 때문에 온갖 문헌을 뒤지며 전통을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때만큼 뜨겁지는 않아도, 열정은 여전히 그를 움직이게 한다.
그의 열정을 논할 때 어머니 조일순 장인을 빼놓을 수 없다. 화학 염색에 밀려나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춘 쪽을 다시 살려낸 데에는 조 장인의 역할이 컸다. 1년생 풀인 쪽은 염색에 쓰이지 않으면 잡초나 다름없었고, 1970년대 당시 쪽 염색을 할 줄 아는 이도 전무했다. 그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직접 구해온 쪽 씨앗을 전라남도 나주에 심었다. 현재 나주 문평읍, 당시 문평마을에서는 찬물염색이라 불리던 쪽염이 마을 단위로 행해지곤 했다. 그는 어머니가 윤병운 인간문화재와 쪽염을 재현해내기까지 갖은 노력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제대로 쪽염을 성공한 게 1980년대 초반이었어요. 어머니는 ‘이 기술을 무조건 살려야 한다. 꼭 살려내서 후대에 전달해야 한다’고 하셨죠. 윤병운 어르신이 염색 분야에서 최초 인간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당신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도우셨고요. 다른 사람들은 ‘최초 인간문화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왜 남에게 주느냐고 아까워했는데, 어머니는 ‘나는 매듭 장인일 뿐, 염색 전문가는 아니다. 남의 것을 탐내면 안 된다’고 대답하셨어요. 확고한 면모가 정말 존경스럽죠.”
염색 0.5세대의 열정
‘염색 0세대’ 어머니의 열정은 고스란히 아들에게 가 닿았다. 천연 염색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없으면 서운할 지경이다. 그는 쪽염을 최초로 시작했고, 무늬를 내어 염색하는 문양염 기법을 최초로 개발한 염색 전문가이며, 찹쌀풀을 이용해 산수화를 최초로 그린 작가다. 자연에서 새로운 염색 재료를 발굴해내 소개하거나, 인도나 일본 등 해외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알리는 역할도 기꺼이 맡았다. 1세대보다는 앞서 염색을 시작했기에 그는 스스로를 염색 0.5세대라고 칭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 년에 한 번씩 해외도 꼭 나갔어요. 원래 쪽빛, 즉 남색이 인도에서 온 푸른색이라 영어로는 Indigo Blue라고 불러요. 우리나라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건데, 세계 천연염색 심포지움(ISEND)이나 자연염색교류전으로 미국, 브라질, 호주, 일본, 한국 등지의 작가들이 모여서 교류하곤 했어요. 염색된 색상을 직접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3년째 모임을 못 갖고 있죠. 일본도 자주 갔어요. 쪽염이 마치 제 것인 양 특화를 잘 시켜뒀더라고요. 쪽은 독초과에 속하는데, 어떻게 한 건지 쪽으로 차도 만들고 쿠키도 만들더라니까요. 여러모로 빨리 하늘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열정으로 덮지 못하는 어려움도 분명 있었다. 지금은 연구소를 옮겼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 도심, 그것도 북촌 한가운데 한옥에 있다 보니 환경이 항상 아쉬웠다. 마당이나 밭이 있었다면 천도 널어놓고, 염료 식물도 매일 관리하며 다양하게 염색할 수 있었을 테니까. 특히 쪽이나 염료 식물을 재배할 때는 새벽에 잡초를 뽑아줘야 하는데, 그나마 가진 땅에 심자니 짬 내서 들러도 잡초만 어마무시하게 자라 관리하기 어려웠다. 쪽이 열대 식물인지라 나주나 김천에서 자리를 잡을까도 고민했다. 결국 상황이 여의치 않아 서울에서 버텨왔지만, 어려움을 견뎠기에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어렵게 연구를 이어나가면서도 그는 원칙을 고수했다. 전시회에 작가로 참여해 열 필의 천을 전시해두고 그 앞을 지킬 때였다. 관람객 서넛이 다가오더니 천 앞뒷면을 한참 번갈아 보더란다. 무얼 그리 뚫어져라 보느냐 묻자 색상이 어쩜 이렇게 균일하냐, 정말 천연 염색한 것이 맞냐고 도리어 되물었다. ‘천연 염색 작품이라고 플래카드 걸어두고 거짓말을 하겠나, 그러니 전문가가 아니겠느냐’ 하고 당당하게 받아쳤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열 번이든, 그 이상이든 반복하는 고집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스카프만 한 크기든 20m에 달하는 천을 염색하든 다르지 않다.
“처음 염색한 천을 보면 균염(均染)된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햇볕에 널어두고 보면 군데군데 물이 덜 들어서 빈 곳이 보이거든요. 그러면 염색 과정을 반복하는 거예요. 저는 기본 열 번은 해요. 그러니까 10년이 지나도 색이 안 바래고 그대로인 거죠. 물론 천연 염색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어머니만 해도 얼룩이 있어야 천연 염색이 아니겠느냐고 하셨고요. 주먹구구식이던 예전과는 염색 방법이 달라졌으니 그 영향도 있겠죠.”
이제는 원칙을 지켜야 할 때
쪽의 매력은 고운 빛깔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환경오염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화학 염색과 달리 친환경적인 천연 염색은 패션업계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천연 염색된 옷을 사거나 직접 염색을 배우는 등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쪽으로 염색된 천은 방충, 방균, 방염 성능을 지니고 있다. 쪽 염색된 옷을 걸치는 것만으로도 피부의 상처나 아토피 같은 질환이 완화되는 경우도 있더라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 일본의 한 교수가 쪽 성분을 분석해, 여드름을 유발하는 포도상구균 항균 기능이 있다는 걸 밝혀내기도 했으니 검증까지 된 셈이다. 게다가 쪽염된 옷은 여름철 높아진 체온을 어느 정도 낮춰주는 ‘쿨링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부르던 노랫말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싶다.
중년들이 특히나 천연 염색을 자주 찾는다. 자연의 빛에 부쩍 관심이 많아질 나이인 데다, 눈 번쩍 뜨일 효능에 반해서 그러겠거니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천연 염색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걸 원치 않는다. 천연 염색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흔들리는 일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천연 염색한 옷을 판매하는 분들 중에서 필요 이상으로 비싼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전 일부러 같은 옷을 팔더라도 훨씬 싼 값에 내놓죠. 항의받을 때도 있지만 저는 당당하게 그래요. ‘작품하고 상품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기껏 만든 옷이 안 팔리면 그건 무슨 소용이 있냐. 그래서 밥 벌어먹고 살겠냐’고요.”
전문가 양성 과정에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천연 염색 체험 프로그램에서 한두 번 염색하고서 끝났다고 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직접 가르치는 제자들에겐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천연 염색을 배워 창업하려는 중년들에게는 디자인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여유가 된다면 디자이너와 계약하거나, 의상이나 디자인을 전공한 대학생을 아르바이트로 채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전통문화산업 지원 사업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자연
염색 일은 앞으로 5년 정도나 더 할까 싶다. 다만 문화재 보존과학과 염색을 동시에 전공한 전문가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스스로 선구자가 되어 후학을 이끌고자 산업대학원 섬유예술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문화재보존과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출토복식특별전 및 학술 세미나에 참석해보면, 시신이 입고 있던 옷을 분석해서 바느질 기법, 원단 종류를 밝혀내는데 염색에 대해선 전문가가 없어 추측만 하는 현실이 아쉬웠던 탓이다. 지금은 마음을 접었지만, 전통염색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전문가가 꼭 생기기를 소망하고 있다. 아들이 그 역할을 맡아주길 내심 바라고 있지만 강요하진 않는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최근에는 염색에 대한 애정 뒤편으로 숲 해설가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자라났다. 염색밖에 모르던 외골수의 도전이다. 하던 일과 대단히 다른가 싶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숲 해설가는 자연휴양림, 유아숲체험원, 숲길 등에서 국민이 산림에 대한 지식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설하거나 지도하는 직업이다. 숲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 이야기, 나무나 식물에 대한 지식, 숲에 얽힌 역사, 숲과 인간의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처음엔 풀만 보면 ‘저걸로 염색하면 무슨 색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죠. 자연에서 난 재료를 다루긴 했지만 평생 염색만 하고 살았는데, 직접 숲속에 들어와 보니 훨씬 좋더군요.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숲에 직접 나가 해설사 강의를 듣고 있어요. 어떨 땐 배를 잡고 웃고, 어떨 땐 감동받기도 해요. 듣다 보니 재미있어서 공부 좀 제대로 해봐야겠다 마음먹었죠. 석 달 뒤에 자격증 시험을 보는데 경쟁률이 만만찮아요. 느리더라도 꾸준히, 열심히 하려고요.”
돌고 돌아 자연이다. 쪽빛으로 물든 손과 흙 잔뜩 묻은 등산화가 전혀 거슬림 없이 자연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먹은 것은 이뤄내는 끈기와 열정이 뒷받침되기에 그럴 것이다. 그의 한결같음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꽃이 가득 핀 오월의 봄 거리가 그렇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