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댈러스. 이날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발생한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진범이 따로 있는지, 배후에 누가 있는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궁금증을 마음에 담은 관광객들은 아직도 이곳을 찾는다. 암살범인 오스왈드가 저격했던 딜리 플라자의 그 자리는 ‘6층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방문객을 맞는다. 이 현상을 관찰한 영국의 연구자들은 ‘다크 투어리즘’이란 개념을 착안해냈다.
다크 투어리즘은 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던 곳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반성과 교훈을 얻는 형태의 여행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역사교훈 여행’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크 투어리즘이 주창된 초창기에는 위험한 장소를 탐사한다는 인식이 많았다. 체르노빌 같은 핵 재난 지역이나 국제적인 분쟁 지역 인근에 접근하는 형태까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익히고, 인간의 잔혹함이나 고통에 대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스릴과 모험을 추구하는 이들이 몰리면서, 희생자들의 고통을 재밋거리로 희화화한다는 비난도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내전으로 홍역을 앓은 시리아다. 인구의 절반이 전쟁을 피해 나라를 떠난 이곳의 전흔을 일부 여행사들이 ‘볼거리’로 홍보했다가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관광자원 활성화 수단으로 활용
최근에는 다크 투어리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변화하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을 지역의 관광자원을 살리는 가치 부여 과정, 즉 스토리텔링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기념관 등 관련 시설의 정비를 통해 ‘여순사건’을 정확히 알리면서 관광자원으로 삼은 여수시가 대표적이다. 여수시는 2021년부터 ‘여순사건 다크 투어리즘 및 남해안 명품 전망 공간 조성 등 관광자원개발 사업’을 통해 관광 상품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사건이나 참사가 일어난 장소를 묻고 잊어버리려 애쓰기보다는 계속해서 애도하며 과거를 이해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선영 홍익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장소는 철거해버리고 없애버리는 것, 잊어버리는 것이 더 옳다는 관념이 지배했지만, 최근에는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반면교사의 계기로 삼고, 지속 가능한 관광 대상으로 만들어 관심 있는 여행자들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순기능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크 투어리즘은 관광객에게만 가치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크 투어리즘 목적지의 보존과 발전에도 기여한다. 관광 수입이나 자원봉사를 통해 장소 복원과 유지 비용을 지원하거나, 사회적인 인식과 관심을 높여서 장소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전파하고, 희생자들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제주4·3평화공원이다. 제주 4·3사건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진상조사가 이뤄졌음에도 최근까지 일부 정치세력을 통해 왜곡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제주4.3평화공원은 희생자 유족의 트라우마를 회복하고,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알리는 중심지이자 관광지로 기능하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을 통해 나타난 이러한 이념적 갈등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호기심을 더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베트남이다. 호찌민의 독립궁이나 메콩강의 구찌터널 등 그곳의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들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미국이나 우리나라 입장에선 패전의 기록인 셈이지만, 베트남인들에게는 승전의 기록이자 전리품으로 남아 있다. 승전국 입장에서 작성된 현장의 기록을 읽는 경험은 미국 관점의 역사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생경한 경험이 된다.
지나친 엄숙주의 경계해야
특별한 장소를 찾는 만큼, 현장을 방문하는 관광객에게도 특별한 태도가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단순한 여가활동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선영 교수는 “당초 목적이 비극의 역사를 느끼고 다시 생각하기 위해 찾는 여행이기 때문에 가볍게 즐기기보다는 진지하고 숙연해질 필요는 있지만, 말 그대로 관광의 한 과정이므로 지나친 엄숙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3월 초, 봄이다. 아직 일러 꽃이야 보이는 게 없지만 저만치 있는 팔달산에 봄기운 아련하다. 대기에도 도로에도 봄볕 묻어 따사롭다. 돌아다니기 좋은 날이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더니 화성행궁 쪽으로 밀려간다. 행궁광장은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거니는 이들로 평화롭다. 수원시립미술관은 광장 북쪽에 있다. 유서 깊은 행궁과 예술의 그릇인 미술관이 공존하는 곳이다. 역사와 예술이, 전통과 현대가 어깨동무를 했다. 볼 것도, 느낄 것도, 담을 것도 많은 동네다.
2층 건물인 수원시립미술관의 외관은 좀 독특하다. 높이는 낮지만 좌우로 무척 길다. 입면의 길이가 75m나 된다. 그렇게 지은 정황이 있다. 행궁 일대에 적용되는 고도제한을 고려해 지었다. 높이 올릴 수 없어 폭을 넓혔다. 설계자는 ‘간삼건축’ 부사장 진교남. ‘건축의 본질과 정신을 시민 건축(Civic Architecture)으로 구현하는 건축가’라는 찬사를 듣는 인물이다. 역사 옆에 예술을 앉히기. 조선 최대의 행궁이자 정조의 족적이 서린 화성행궁 바로 옆에 미술관 짓기. 이게 쉬운 일인가? 곤혹스러웠겠다. 설계자로서 정색하고 궁리해야 할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을 테니까.
무엇보다 행궁의 품격과 위엄을 깎아내리는 결례를 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진교남은 꾸벅 머리 숙여 자세를 낮춘 건축으로 예를 다하고 싶었나? 행궁 쪽 높이를 반대쪽보다 낮추어 겸손을 표한 장면을 주목할 만하다. 겸손보다 유능한 조화의 기법이 드물다는 걸 통기하는 대목으로 읽어도 되겠다. 미술관 전면의 광장은 드넓어 휑하다. 때로 이벤트가 펼쳐지면 인파가 몰려들겠지. 따라서 광장의 모호하고 광활한 기세에 조응할 만한 미술관 형상이 요구됐을 터인데, 설계자는 무뚝뚝하고도 육중한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지어 기를 돋우었다. 광장에 눌리는 게 없다. 진교남은 이런 요지의 얘기를 했다.
‘전통적이냐, 현대적이냐, 디자인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 결국 두 가지 선택지 중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 대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떠나 시대정신을 담는 일에 가장 큰 비중을 뒀다.’
건축의 기본을 조화에 두되 ‘시대정신’을 지향했다는 얘기다. 시대정신이란 사회 전반에서 공유되는 본질적 가치를 말하는 것일 텐데, 그는 대중과의 소통을 건축의 키워드로 삼았다. 따라서 열린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권위적인 디자인 요소를 배제했다. 뽐내거나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처럼 벽 없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미술관 하부 벽면에 통유리를 끼워 안팎 경관이 서로 자유롭게 드나들게 했다. 내부 동선을 통하지 않고 밖에서도 바로 건물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또 어떻고? 계산이 다 있다. 울타리 없이 대범하게 열린 미술관이라는 시그널이니까.
편안하다! 무엇이? 미술관 내부의 분위기를 말함이다. 입구를 통해 라운지로 들어서자 긴 병풍처럼 즐비한 유리창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외부로 확 트인 개방성으로 답답한 게 없다. 행궁과 광장과 행인의 풍경은 물론, 햇살마저 거침없이 솰솰 창으로 쏟아져 들어와 환하다. 조도(照度) 조절이 필요한 전시실을 제외하고 모든 실내 공간에 대형 창을 내 태양광을 끌어들인다.
반갑다, 나혜석의 ‘자화상’
출입문은 세 개다. 어느 문으로 들어오든 카페테리아 구역을 경유해 전시실로 들어갈 수 있다. 공간 구조물들은 선이 굵은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처럼 호연한 맛을 풍긴다. 치레와 장식과 군더더기를 깨알처럼 맵시 있게 집어넣어 시각적 쾌감을 주는 미술관이 많지만, 이 미술관은 별반 양념을 치지 않고 내부의 선과 면을 단장했다. 고로 편안하다. 미술관에 왔으니 전시실 작품에 주로 눈길을 꽂아달라는 청유가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악센트를 준 대목도 있다. 통로의 양쪽 벽을 사선(斜線)으로 슬쩍 기울여 세웠다. 회심의 한 획처럼 과감한 공법을 단행한 벽 구조다. 그렇다면 디자인 혁신? 아무려나, 통로를 지나는 사이에 통째 몸을 숙여 착하게 인사하는 벽면의 환대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을 야기한다. 벽엔 무늬가 박혀 있다. 송판으로 거푸집을 짜 만들어낸 문양으로, 노출콘크리트의 딱딱한 질감을 눅이는 자연미를 구현했다. 간과하기 쉽지만 설계자는 이 대목에 방점을 꾹 찍었다.
전시실로 들어선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세계에 이름을 날린 에르빈 부름(Erwin Wurm)의 개인전 ‘나만 없어 조각’전이 펼쳐지고 있다. 미술의 본령은 보이지 않는 걸 보게 한다는 데에 있다. 미술 작품이 재미있는 건 남들이 하지 않던 행위를 찾아 해내는 일에 이골 난 사람들의 산물이라는 데에 있다. 그들은 이상한 상상력과 놀라운 창의성으로 조형한 작품으로 지루하고도 멍청한 세속에 엔도르핀을 배송한다. 에르빈 부름 역시 창의로 세상을 비튼다. 웃어주거나 비꼰다. 국내엔 부름에 갈채를 보내는 마니아가 많다지. 아마도 부름의 전위성에 박수를 치는 것 같다. 그는 일찌감치 옷을 조각의 오브제로 끌어들였다. 나아가 변화하거나 증감하는 세상의 모든 현상 자체를 조각으로 보았다. 조각의 외연을 무진장하게 확장한 셈이다. 일반적인 의미의 조각 작품만이 아니라 그가 손을 댄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드로잉, 회화까지 모두 조각이라고 정의한다. 하기야 세상을 고성능 감관으로 바라보면 뭐 하나 예술 아닌 게 있으랴.
한국에서 펼쳐진 부름의 전시회 중 최대 규모인 이번 개인전은 작품 61점을 3개의 전시실에서 선보였다.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지고 뚱뚱한 자동차 형상을 한 작품 ‘팻 카’(Fat Car)는 가지면 가질수록 허기지는 소비사회의 탐욕을 꼬집는다. ‘UFO’는 실제 포르쉐 차를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납작하게 변형시킨 조각이다. 물신을 예배하는 세상의 허영과 가식을 풍자했다. 작가는 이렇게 욕망을 동력으로 해 급발진을 일삼는 자본주의 풍속에 옐로카드를 휘젓는다. 그의 메시지는 사실 범상하다. 재미있는 건 작풍(作風)이다. 쉽고 가볍고 익살맞다. 다른 전시실에서 다른 콘셉트로 진행되는 ‘1분 조각’전은 관객 참여형 전시회다. 부름이 설치한 조각에 관람자가 직접 1분여간 개입해 일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작품이 완성되도록 했다. 가히 기발하지 않은가? ‘1분 조각’전은 일찍이 부름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출세작이다.
2층 한편엔 나혜석홀이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불리는 나혜석의 유화 넉 점을 전시했다. 그의 대표작 ‘자화상’도 있어 반갑다.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때 그는 야수파 화가들과 어울리며 영향을 받았다. ‘자화상’에서 강렬한 색감과 대담한 묘사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야수파의 경향성이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 걸 느낄 수 있다. 자화상이지만 실물과 다른 전형적인 서구 여성상을 그린 건 왜일까. 나혜석은 못 말릴 투사형 페미니스트였다. 세상의 빙하를 데카당스로, 마그마 같은 열정으로 섭렵하며 냉대를 자청하기도 했다. 뒤틀린 시대를 고발하고 도발했으며, 성취에서든 방황에서든 그는 매우 독립적인 인간이었다.
박현주 수원시립미술관 홍보마케팅팀 주무관
“에르빈 부름 전시회에 자그마치 4만~5만 명 다녀가”
수원시립미술관은 화성행궁, 성곽길, 행리단길 등을 즐길 수 있는 관광 벨트 안에 있다. 특유의 장소성을 보유한 미술관이다. 그래서일까. 8년 전 개관 이래 관람 인원이 점차 늘더니 요즘엔 급증했다. 장소성 외에 차별화된 전시 클래스와 미술관의 편안한 분위기 역시 관람객 확산을 견인한다. 박현주 주무관은 수원시립미술관이 ‘전시회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미술관’이라는 촌평을 흔히 듣는다며 말을 이었다.
“위압감을 주는 대형 미술관이나 디자인에 복잡한 디테일을 가미한 미술관에선 관람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는 다르다. 편안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성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에르빈 부름의 작품 전시장에 관람객이 많더라. 게다가 다들 작품에 몰입돼 뜨거운 분위기였다.
“3개월에 걸친 전시 기간 중 찾아온 관람객이 4만~5만 명에 달한다. 지역 미술관에서 이 정도로 성황을 이루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 부름의 인기도를 반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는 물질적 팽창을 가속하는 현대사회의 병증을 풍자한다. 심각하기보다 유쾌한 위트로 가볍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를 드러낸다.”
문제적 개성의 표본이라 할 만한 나혜석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가 그린 회화는 300점이 넘지만 작업실 화재로 대부분 소실됐다지?
“국내에 존재하는 나혜석 작품은 10여 점에 불과하다. 이 중 넉 점을 우리 미술관이 소장했다. 나혜석의 일생은 워낙 파란만장해 가십거리로 취급된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는 굉장히 유능한 여성 운동가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도발적인 어록을 보라. 당대는 물론 이 시대에도 의표를 찌르는 메시지가 실려 있는 게 아닌가.”
주로 어떤 작품들을 소장했나?
“페미니즘과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소장품 역시 나혜석 작품을 필두로 주로 여성 작가들의 것이다. 그게 수집 방향이다.”
미술관 개관 이래 실감한 관람객의 추세 변동이 있다면?
“젊은이들의 관람이 확연하게 늘었다. 미술관을 찾아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는 청년층에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미술의 저변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현대미술은 알고 보면 즐겁지만 무관심한 이들에겐 따분할 수 있다. 미술관을 알차게 향유할 수 있는 기법이 있다면?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일차로 작품을 감상한 뒤, 개별적 투어로 작품을 재차 감상하는 게 요긴하다. 그렇게 하면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을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반복하다 보면 서서히 안목이 생긴다. 안목이 열리면 드디어 미술을 즐길 수 있고.”
이 미술관엔 옥상정원이 있다. 화성행궁을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박현주 주무관은 미술 관람 뒤엔 꼭 옥상정원에 올라가길 ‘강추’한다. 조망은 물론 ‘시간이 멈춘 듯한 운치를 자아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예약된 시간에 병원을 갔는데 한참 흘러서야 진료를 본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통증에 부랴부랴 응급실을 찾아도, 이런저런 절차 때문에 마냥 기다리는 처지일 때도 있다. 나에게만 불공평한 것이 아닌,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기에, 당연한 듯 참게 된다. 그러나 이 당연한 기다림 속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지쳐갈 수밖에 없다. 박중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칼럼 한 편을 보내왔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당연함이 강자의 일방적인 생각이거나, 약자가 수긍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것은 공감이 아닌 폭력이 된다. 우리는 종종 상대와 내가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당연함도 착각일 수 있다. 특히 병원에서 의사들은 환자와 같은 배를 탄 동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배가 망가져 침몰하면 환자는 물속에 잠기더라도, 병원과 의사는 안전하다. 그래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원이 정한 원칙을 진심으로 당연하다고 인정하기보다는, 치유라는 약속을 믿기 위해 그저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의대의 정신과 교수이자 의료인류학자인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은 10년간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간병 보호자로 살았다. 그 경험을 담은 책 ‘케어(The Soul of Care)’에서 그는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이란 공간에서 한 없이 기다리는 존재이고, 당연하게 요구되는 그 기다림은 자신들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당연한 기다림을 거부한 말기 암 환자의 웃음
60대 중반 여성 말기 위암 환자가 있다. 완치라는 희망으로 병원이 요구하는 그 모든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50대를 병원에서 보냈다. 10여 년 동안 셀 수 없는 검사를 했고, 위를 모두 잘라냈고, 힘든 항암 주사도 견뎠다. 하지만 병은 멈추지 않고 몸의 다른 장기로 번져갔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에게 요구되던 당연함을 점점 참을 수 없게 됐다. 기적과 같은 가능성을 얘기하며 새로운 항암치료를 시작하자는 의사의 제안을 처음으로 거절했다. 마지막까지 치료 가능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환자의 당연한 도리를 거부한 순간, 담당의사는 집 근처 호스피스를 알아보라 했고 동시에 그를 위한 시간과 공간은 병원에서 사라졌다. 병원이란 곳은 고통의 크기보다 치료 가능성을 우선한다는 그 당연함을 말기 환자가 되어서야 새롭게 알게 됐다.
호스피스를 권유받았지만 병원에 이골이 난 그는 그냥 집에서 지냈고, 이내 복수로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병원을 찾게 됐다. 복수 천자라는 것이 간단한 시술인 줄 알았지만 과정은 항암 주사를 맞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미리 혈액검사를 하고, 오래 기다려 짧은 외래진료 후에 주치의의 복수 천자 처방이 떨어지면, 다시 영상의학과로 가서 한참을 기다려 초음파 검사로 주삿바늘로 찌를 부위에 표식을 받고, 주사실로 가서 누워있으면 한참 뒤 수련의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와서 배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선 지 8시간 만에 첫 복수 한 방울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해가 진 후 집에 돌아와 탈진으로 이틀을 드러누운 후에야 그와 남편은 그동안 거들떠보지 않던 호스피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10년 넘은 세월을 함께 했던 병원과 작별했다. 그가 호스피스 신청을 위해 우리 병원에 들고 온 진료의뢰서에는 위암과 다발성 전이 외에도 처음 들어보는 ‘병원 공포증’이라는 소견이 함께 적혀 있었다. 그만큼 병원이라면 그는 진저리를 쳤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그가 호스피스를 찾은 진짜 이유는 어디선가 호스피스에 가면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복수 천자를 위한 것 외엔 입원치료는 물론 그 어떤 주삿바늘이 몸에 닿는 것도 거부했기에 호스피스팀이 집으로 방문하는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로 연결됐다.
나는 가정형 호스피스팀과 함께 그의 집을 방문했다.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그의 배를 휴대용 초음파로 간단히 살핀 후 바로 복수 천자를 시작했다. 1시간 동안 무려 4ℓ 정도 되는 복수가 빠져나오자 그는 ‘허파에 바람 든 사람’마냥 어쩔 줄 몰라 하며 계속 웃음소리를 냈다. 병원에서 반나절을 허비해야 받을 수 있는 이 간단한 시술을 내 집 내 침대에서 이렇게 편하게 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며 씁쓸한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제가 있었다. 그의 복수 증가 속도가 빨라 최소 주 2회 복수 천자를 해야 하는데, 인력은 부족하고 방문할 환자는 많고, 그의 집은 너무 멀어 규칙적으로 주 2회 방문이 어려웠다. 그래서 아직 그의 거동이 자유롭고, 남편은 은퇴 후 여유가 많으니 주 2회 내 진료실로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신 나는 그에게 그동안 당연하게 겪어야 했던 ‘기다림과 번거로움’을 더 이상 겪지 않도록 해주겠다 약속했다. 그날부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가장 한가한 시간에 맞춰 그는 내 진료실로 방문했고, 나는 즉시 비어있는 옆 진료실에서 복수 천자를 시행했다. 모든 것들은 사전에 준비해뒀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복수 천자가 이뤄졌다. 1시간 안에 4~5ℓ의 복수가 빠져나가면 그는 날 듯한 가벼운 몸이 되어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체중이 38㎏ 남짓인 그에게 4~5㎏의 복수를 배에 담고 사는 것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는지 그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꼬박꼬박 방문했다.
원칙의 당연함이 아닌 ‘배려’가 필요한 때
그렇게 석 달이 흘러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됐고,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그는 조금씩 수척해져 갔다. 그만큼 월요일과 목요일의 만남도 익숙해졌고, 병원 공포증이 있다는 그는 언제부턴가 이 두 번의 외출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는 복수 천자를 시행하기 전 늘 습관처럼 애원하듯 뱃속에 있는 복수를 단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최대한 뽑아달라고 했다. 마치 복수를 증오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수척함이 맘에 걸려 병원에 온 김에 영양제 주사나 알부민 주사라도 맞고 가라고 부탁해도 그는 말없이 씨익 웃으며 바로 집으로 향했다.
어느 날 나는 또 어김없이 주사라도 맞고 가라는 부탁을 거절당한 후, 왜 그렇게 약이나 주사는 거부하고 복수에 대해 집착하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이제 몇 개월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처음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고 했죠. 그런데 2년이 지나도 하늘에서 불러주진 않고, 갑자기 배가 산처럼 커지더라고요. 이젠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그냥 집에서 누워있는 게 제일 편해요. 선생님, 조금 더 지나면 누워있는 것도 고통스럽고 힘든 때가 오겠죠? 사실 요즘 그런 걸 느껴요.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태를 겪어야 할 텐데, 과연 이게 언제 끝나는 걸까요? 그걸 빠짐없이 다 겪어야 하느님이 불러줄까요? 그냥 어디가 더 망가지더라도 상관없어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편하게 보내고 싶어요.”
또 한 달이 흘렀다. 난 가끔 복수배액관을 심는 시술이나, 알부민 주사를 슬며시 권유했지만 그는 씨익 웃으며 늘 똑같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복수를 뽑아달라는 말만 했다. 그리고 봄의 문턱에서 꽃샘추위가 찾아온 어느 날 그는 매우 힘들어하며 진료실을 찾았다. 알 수 없이 온몸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모든 뼈마디와 뼛속까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이전에 받아놓은 마약진통제가 있지만 그전부터 자신은 그 약이 전혀 듣질 않기에 애초에 진통제를 챙겨 먹을 생각은 포기하고 그냥 견디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답답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그의 태도에 속상해 오래 살라고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아픈 걸 참지 말라며 타박했다. 그리고선 다른 진통제를 처방해주겠다고 제발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그는 광대가 더 도드라진 수척해진 얼굴에 늘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네 아프지 않고 싶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견딜 수 없게 아픈 게 반갑기도 했어요.”
난 아픈 게 반갑다는 그의 궤변에 어리둥절해서 그게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전보다 확실히 더 나빠진 거잖아요. 점점 끝이 다가오고 있다 생각하니 왠지 즐거워졌어요. 이제야 하늘이 나를 불러주는 것 같아요.”
나는 차마 그 말에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지난 2년간 그가 매일 겪었을 고통과 죽음을 향해가는 고독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었기에 그는 더 나빠진 몸이 오히려 반갑다고 하는 걸까?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이렇게 선생님 만나러 1주일에 두 번 병원에 오는 게 제 유일한 외출이고 즐거움이에요. 세상에는 저한테 친절한 게 하나도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여기 병원에 올 때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쉽고 편하게 이뤄지니 너무 신기해서 지난 10년 동안 쌓였던 화가 다 풀리는 것 같아요. 몸은 아파도 잠도 잘 자고 마음은 너무 편해요.”
10년 동안 참았다는 말이 서글펐다. 우린 그동안 병원의 규칙과 절차들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라 믿었기에 환자들도 기꺼이 따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공감대 위에 의료진과 환자는 수평적인 눈맞춤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각자가 짊어진 무게는 매우 달랐다. 우리는 직업이었지만, 환자는 자기 삶 전체를 짊어지고 우리가 당연하다 그어 놓은 그 선 위에 서 있었다. 자신의 미래가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참고 또 참으면서 말이다. 더 이상 목숨에 연연하지 않을 때야 비로소 당연한 기다림을 거부할 수 있게 된 그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외치는 당연함의 본질에 대해 혼란스러워졌다. 한 가지 깨달음은, 세상에는 모두가 지켜야 하는 당연함이 존재하지만 그 당연함을 넘어서는 친절을 우리는 배려라고 불러왔다는 것이다. 원칙의 당연함보다 배려의 당연함이 지금까지 세상의 질서를 지켜 온 진짜 버팀목은 아니었을까?
박중철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2009년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에서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동안 그가 직접 체험하고 고민한 우리 사회의 죽음의 문제를 사회, 역사, 철학, 의학이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를 펴냈다. 현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임상조교수,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학술위원을 맡고 있다.
인도 콜카타(Kolkata)의 로열 캘커타 골프클럽(Royal Calcutta Golf Club)을 소개한다. 로열 캘커타 골프클럽은 영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클럽이다.
1829년에 세워진 로열 캘커타 골프클럽은 누구나 평생 한 번쯤 라운드해봐야 할 아시아 골프장의 성지다. 현 위치에서 코스에 대한 작업이 1908년에 시작되었고, 1912년에 18홀이 완성되었다. 로열 캘커타 골프클럽은 1914년에 420명, 1931년에 1770명, 오늘날 3500명의 회원이 있다.
코스의 첫 번째 특징은 그린 주변에 의도적인 마운드와 함께 벙커가 많고, 벙커 턱이 1m가 훌쩍 넘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린 주변에는 여지없이 깊은 벙커들이 있다.
둘째는 전략적으로 위치한 물탱크(물호수)와 자연적인 워터 해저드다. 7번 홀과 12번 홀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는 전장이 매우 길고(7237야드, 레귤러 티 6803야드), 파4 홀이 많으며 길어 도전적이라는 점이다. 어프로치 샷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파3 2개 홀, 파4 14개 홀, 파5 2개 홀로 구성되어 있다.
골프장은 그린과 페어웨이 모두 버뮤다를 식재했으며, 최고의 관리 상태를 보여주었다. 그린 스피드는 8.5피트로 인근의 톨리건지 골프장보다는 조금 느린 느낌이었다.
남성 캐디와의 호흡 이색적
로열 캘커타 골프장은 원래 A 코스와 B 코스가 있었다가 1970년대에 A 코스 자리에 캘커타 TV 방송국이 들어섰으며, 현재는 B 코스 18홀만 남아 있다. 회원 수는 3500명에 달하며, 회원 멤버십은 100만 달러다. 그래도 회원권을 추가로 판매하지 않으며, 현재 회원이 회원권을 반납하거나 세상을 떠나는 경우에 순서대로 구입할 수 있다. 회원권은 개인이 판매할 수 없으며, 불필요할 경우 골프장에 반납하면 시세의 25%를 정산해준다고 한다.
평일에는 이용객이 150~200명 정도이며 주말에는 300명 정도로 늘어난다. 대부분 인도인이고, 일본인도 적지 않으며 한국인이나 중국인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필자가 라운드한 2018년 3월 29일은 오전 26℃, 오후 35℃로 조금 높은 온도였지만 건조한 날씨로 더운 느낌을 많이 받지는 않았다.
인도는 여자 캐디를 쓸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되었다. 그날의 캐디는 30년 경력의 47세 남성으로 모자를 쓰지 않았다. 라운드 중에도 모자를 쓴 캐디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클럽하우스에서는 조금 격식을 차린 식사와 음료를 즐길 수 있다. 라운드를 마친 후 필자는 인도식으로 Veg Fried Rice(80루피), Chilly Chicken(200루피), Watermelon Mojito(180루피)를 주문하니 세금을 보태 1만 원 정도 되었다.
190년 전통의 자부심 가득
직접 만나 인터뷰한 골프장 GM 역시 골프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세계 최고의 190년 역사와 그것을 지키고 이어가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골프장 라운드는 아침 5시부터 가능하며 저녁 6시면 어두워진다. 특히 이곳에는 200마리 정도의 자칼(톨리건지 골프장은 400마리)이 산다고 한다. 사람을 해치지는 않지만 어둑해지는 해를 배경으로 유유히 즐기고 있는 자칼이 마냥 평온해 보이지는 않았다.
골프장 주위는 비교적 허름한 전통적인 인도 분위기의 주택가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2번 홀 뒤로 새로운 아파트들이 보였다. 앞으로 인도의 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면 다음에 다시 방문할 때는 골프장 주위로 화려하고 높은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쉽고도 소중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골프장을 나섰다.
거주지를 정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가 일본 빈집 해결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주거구독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지자체는 다거점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이동을 반기는 분위기다.
70대의 노만 겐조(乃万 兼三) 씨는 은퇴 후 가족의 사업을 도우며 수도권에서 주로 거주하지만, 사업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다. 50대의 세시타 유키에 씨는 리노베이션 전문 건축가로 25년간 일하다가 2021년부터 전국의 시골을 돌아다니며 빈집을 리모델링하는 다거점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에는 ‘장인’이라고 불리는 고령자들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사용하기 때문에 원격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여러 지역에서 일할 수 있다.
다거점 생활 선호하는 ‘호퍼’
코로나19 발생 이후 정주(定住)보다 다거점(多據點) 생활(여러 지역을 거점으로 두고 옮겨 다니는 것)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원, 은퇴 후 살고 싶은 지역을 찾기 위해 미리 살아보고 싶은 고령자, 일을 유지하되 살고 싶은 곳으로 이주하고 싶은 시니어들의 관심이 높다.
주거구독 서비스 어드레스(ADDress)의 ‘ADDress 다거점 생활 이용 실태 리포트 2021년판’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다거점 생활을 하는 사람은 프리랜서(30.7%)보다 회사원(40.4%)이 더 많았다. 다거점 생활을 하는 이유로는 ‘워케이션’(일+휴식)이 32.6%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주요 생활 거점’(24.2%)이라는 응답이 높았다. ‘체류지에서 일은 하지 않고 액티비티, 휴가, 관광을 위해’라는 응답은 20.2%였으며, ‘원격근무’라는 응답도 19.7% 수준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40.4%는 ‘머지않아 이주할 곳을 생각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드레스는 이들을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라고 부른다. 하나의 주거지에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생활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어드레스는 “다거점 지역을 이동하는 교통비가 1만 엔 안팎”이라면서 “멀리 떨어진 도시들을 거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을 거점으로 두고 ‘호핑하는 것’(옮겨 다니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식비와 교통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연령대는 60대로 지역을 더 활발하게 둘러보는 경향이 있었다.
집도 ‘구독’하는 시대
최근에는 주거를 ‘구독’한다는 개념도 생겼다. 정액제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기간만큼 살아보고 싶다는 수요가 늘어난 것. 주거구독 서비스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인 어드레스는 자연과 역사가 풍부한 지역을 중심으로 빈집들을 리모델링했다. 20여 곳의 지자체가 함께하고 있으며, 일정 금액을 내면 어드레스에 등록된 전국의 주택을 돌아다니며 살 수 있다. 또한 사용자들이 단순히 집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지역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각 주택에 ‘야모리’(家守)라고 불리는 생활 교류 서포트 스태프를 두고 있다. 어드레스 이용자들은 야모리 덕분에 지역을 좀 더 알게 되고 지역 커뮤니티에도 녹아들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야모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는 지역에 오래 살았던 주민이면서 은퇴한 시니어들이 참여해 2만~5만 엔(약 20만~50만 원)의 용돈도 벌고, 빈집을 임대한 집주인에게는 월 약 4만 엔의 임대수익이 보장된다. 지역도 살리고 빈집 문제도 해결하면서 이용자들은 여러 지역을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거구독 서비스다.
크로스 하우스(XROSS HOUSE)는 도쿄도 내에서만 특화된 주거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다. 아파트, 개인실, 세미 프라이빗, 다인실 등 네 종류의 주거 형태를 제공한다. 비어 있는 집들을 모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용 요금이 같은 집이라면 무료로 이동하며 살아볼 수 있다. 하프(HafH)는 빈집을 활용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집을 구독할 수 있어 인기다. 제2의 주거 ‘코리빙’(Coliving), 여행하고 일하는 ‘트래블링’(Traveling), 만남과 배움 ‘코워킹’(Coworking) 등 세 종류의 정액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자체들도 주거구독 서비스를 반기고 있다. 빈집 이주자를 위해 ‘빈집 뱅크’ 제도를 운영하는 지자체들은 주거구독 서비스 업체들과 협업해 빈집 정보를 제공하고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2017년에는 주택안전망법을 개정했다.
지자체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관계인구가 되어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관계인구는 지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를 말한다.
어드레스 설문조사에서 다거점 생활을 하는 회사원 중 40%는 부업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어드레스는 “향후 기업들이 근로자의 다양한 근무 방식을 인정한다면, 다거점 생활을 하는 회원을 대상으로 지역 고용 창출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럿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이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편이 못 되다 보니 가능하면 이럴 땐 피하고 싶기도 하다. 혼자 혹은 동행 한 명쯤과 다니기 좋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람은 어수선함이나 소음으로 피곤한 상황을 피하기 좋다. 혼자서 자기 속도대로 구경하고 한참씩 멈춰 있어도 뭐라 할 이 없으니 말이다. 동행이 있어도 각자 생각의 방향으로 돌아보고 나서 만나면 된다.
이번에 가본 안성의 한국조리박물관도 그렇게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조리박물관의 메인 전시관과 요리아트스쿨 교육장을 중심으로 주변의 너른 공원과 잘 정돈된 조경, 예쁜 카페와 식당까지 고루 잘 조성된 테마파크형 박물관이다. 서양요리 100년의 역사를 갖춘 한국조리박물관은 국내 최초이면서 세계에서는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한다.
전시관은 국내 서양요리 역사, 조리인, 메뉴 레시피, 식문화 조리단체, 조리기구와 도구, 소스와 향신료, 커피·바리스타·와인·베이커리 등 8개 테마로 구성되었다. 공간 구획에 따라 준비된 각종 자료들이 생생한 역사를 전달한다. 찬찬히 돌아보며 만난 도구 하나하나, 맛과 연관된 역사적 사실이나 작은 소스 하나까지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한참씩 들여다보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뜻깊은 관람이다. 이를 이루고자 한 걸음씩 심혈을 기울이며 나아간 이들의 진심이 느껴진다. 총 부지 1만 평 정도의 테마파크형 박물관으로, 자연 속에서 관람과 휴식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이번엔 조용히 혼자 전시장을 돌아보려던 생각을 바꿨다. 키오스크로 입장권을 사서 입장하려는데 안내석에 계시던 분이 말을 건넨다. “해설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사실 해설을 들으며 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다며 그냥 들어섰다. 그러다가 문득 이곳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제대로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해설사로 교육받으신 분답게 자신의 소개를 시작으로 친절한 안내와 꼼꼼한 설명으로 전시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어찌나 성심성의껏 안내를 하시는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연륜이 돋보이는 분이었다. 안내를 마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안성시청 소속 문화관광해설사로서 현재 이곳 한국조리박물관에서 파견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문화해설사는 20명 정도인데 우리가 사는 지역을 위한 일이어서 다들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합니다. 이곳의 문화해설은 팀마다 다르지만 한 번에 한 시간 정도, 경우에 따라 세 시간 한 적도 있어요. 내가 즐거우면 관람객들도 즐겁고, 잘 따르도록 리드하는 능력도 생깁니다. 그런 즐거움이 날마다 여기로 나오게 합니다.”
맡은 일에 자부심이 넘치신다. 청산유수로 설명하는 내용도 귀에 잘 들어오고 구수하기까지 하다. 주어진 일이 즐겁다고 연신 말한다. 유용한 시간으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전해진다.
“내가 7학년입니다, 하하하. 건강관리만 잘하면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죠. 지금 하는 일이 대가 여부를 떠나서 보람이 큽니다. 문화 관련 일을 접하는 것도, 또 전시관 주변의 자연도 아름다워서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행복한 일 아니겠어요?”
은퇴 후의 시간을 이렇게 보람찬 나날 속에 보내는 심혁주 문화관광해설사님의 진심 어린 말이다. 시니어들의 일자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고령화 시대를 사는 시니어에겐 안정된 노후나 취미 생활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노후의 경제활동이나 적극적인 사회활동이 필요하다. 심혁주 문화관광해설사님의 말처럼 일이란 건강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진취적인 삶이 행복을 유지해준다.
마침 한국조리박물관 초대 관장을 맡은 최수근 관장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경희대 교수를 은퇴한 최 관장은 여러 호텔 근무 경력도 지닌 식품학 박사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분이다. 특히 ‘소스의 대가’로 불리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요리 일을 열심히 하다가 더 공부하기 위해 파리 르코르동블루로 유학을 갔지요. 그때 처음으로 이런 박물관을 세우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남프랑스 니스에 있는 개인박물관이었어요. 프랑스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 셰프의 기념박물관에서 받은 감동을 오랜 꿈으로 간직해왔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방 관련 사업을 하는 이향천 대표를 만난 겁니다. 문화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인데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셔서 한국 최초의 조리박물관 건립이 이루어졌습니다. 요리 분야 원로들이 귀한 자료들을 많이 주셨고 저 또한 모든 것을 쏟아부었죠. 지금도 콘텐츠 발굴이나 행사 진행을 하고, 자문을 얻으며 공부합니다. 요리에 관해서라면 누구든 언제든 이곳에 찾아오시면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습니다.”
넓은 공원의 자연과 전시관을 돌아보는 그의 시선에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바쁜 와중에도 조리박물관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성의껏 이야기해주셨다. 일정 때문에 급히 이동하면서도 끝까지 예의를 다해 조리박물관의 의미를 전해주시는 마음이 와 닿았다.
한국조리박물관에 가면 근현대 요리와 조리의 방대한 자료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마주하게 된다. 조리계 원로들과 한국 조리명장들이 분야별 자문위원단으로 동참한 귀하고 소중한 것들을 가득 만날 수 있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의 유명한 박물관이나 요리학교, 셰프들을 방문하고 벤치마킹하며 진행해온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주방 제조업계의 이향천 대표와 한국 조리업계의 역사를 보존하고 재조명하려는 최수근 관장의 열정이 힘을 합친 결과로 지금에 이른 것이다.
현재 한국조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대통령의 밥상’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요리사가 들려주는 대통령의 밥상 이야기와 청와대 요리사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전시장에는 대통령의 식기가 역사 순으로 전시되었는데 이 또한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빈 만찬에 일본 도자회사의 그릇을 사용해왔다. 이를 본 육영수 여사가 한국 도자기를 주문 생산했고, 그 뒤로 국빈들에게 당당히 우리 그릇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요즘은 가히 요리와 먹방의 시대다. 맛있는 요리를 나누고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이 근래의 일만은 아니다. 답답한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맛의 역사에 다가가 보는 시간이 알차다. 조리인들의 철학과 발자취를 돌아보며 흥미로운 요리 세계로 빠져볼 만하다. 안성 일죽면에 가면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맛의 원천을 되새기는 시간을 만날 것이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
서일농원 한국조리박물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서일농원이 있다. 볕 잘 드는 곳에 자리 잡은 2000여 개의 장독대에서 우리의 장맛이 익어가는 옛 정서를 만끽해볼 만하다. 연못가를 지나 산책로를 걸으며 차분히 사색에 빠져보아도 좋을 듯하다. 코로나19 이후 닫혔던 문이 비로소 올해는 열린다고 한다.
죽주산성 죽산면 쪽으로 조금만 더 달려보자. 시원하게 죽주산성에 올라 봄바람을 맞아볼 일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이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확실한 기분전환을 할 수 있다.
아들과 의절한 정 선생
지난 설날 고향 다니러 온 아들을 한밤중에 내쫓았다고 속상한 마음을 전한 정순일(가명) 씨. 올해 88세, 미수(米壽)가 되는 정 선생은 저녁상을 물리고 오십 넘은 아들과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 한판 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지지하는 사람과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이 달라서 그동안 선거를 치를 때마다 종종 부딪혔던 이력이 있었다는군요. 하지만 이번에는 첨예하게 맞붙어 서로 양보하지 못하고 으르렁대다 너무 화가 치밀어서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 다신 꼴도 보기 싫다!”고 덩치가 산만 한 아들 등을 밀어 기어이 쫓아내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것도 밖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통에 말입니다.
격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 신 여사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러 광화문 나들이에 나선 신연정(가명) 여사. 집구석에 갇혀 있다 콧바람 쐬니 기분이 좋아 발걸음마저 가벼웠습니다. 초코 와플과 시저 샐러드 그리고 거품 가득 카푸치노까지 완벽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요. 당시 쟁점 한가운데 있던 성추행 사건을 두고 팽팽하게 입장 차를 보이던 두 사람. “자기는 가난하게 자랐는데 어떻게 보수가 되었어요?” 지인이 내뱉은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어하던 신 여사는 “그런 오만한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요? 진보는 다 그래요?” 맞받아치고 말았습니다. 주고받는 말은 더 이상 대화가 아닌 평행선을 달리는 입씨름에 불과했습니다. 참다못한 신 여사는 마침내 카페 안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더 이상 당신이랑은 얘기 못 하겠어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는군요. 분이 안 풀려서 밖에 나와서도 씩씩거렸다고 합니다.
시비가 아니라 취향 차이
시비(是非). 옳음과 그름 혹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다툼을 뜻합니다. 해 일(日) 밑에 바를 정(正) 자를 옆으로 펼쳐놓은 게 옳을 시(是)라는 글자입니다. 며칠 전 천지가 상쾌하게 맑은 공기로 가득 찬다는, 청명(淸明)이었잖아요. 보통 4월 5~6일 즈음이라 성묘도 하고 나무도 심고 그래왔습니다. 1년이 24개 절기(節氣)로 나뉘어 있는데 그 절기를 구분하는 경계, 기준이 바로 태양의 움직임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일, 계절의 변화, 낮과 밤, 이런 게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는 데서 시(是)라는 글자는 ‘옳다, 바르다, 어긋남이 없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아닐 비(非)라는 글자는 새가 양 날개로 날아가는 모습, 두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두 날개가 등을 대고 반대편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르다, 틀리다, 아니다, 나아가서는 ‘비방(誹謗)하다’라는 뜻을 갖게 됩니다.
사람 사이 관계가 틀어지거나, 어떤 현상을 볼 때 논쟁을 넘어 언쟁이 되거나, 그래서 의절하거나 영영 안 보는 사이가 되는 경우가 바로 시비를 따질 때입니다. ‘나는 옳고 당신은 그르고, 내 말은 맞고 네 말은 틀리다.’ 한 걸음도 양보 없는 이런 고집, 아집 때문에 관계가 어긋나고 상처를 받기 십상입니다.
봄이 좋은 시어머니와 겨울 좋은 며느리
당신은 어떤 계절을 좋아하시나요? 필자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정말 단순한 이유입니다. 겨울에 태어난 겨울 아이여서 겨울을 좋아합니다. 물론 눈이 좋아서도 그렇습니다.
“얘야, 너는 무슨 계절을 가장 좋아하니?”
“어머니, 저는 겨울이 좋아요.”
“야, 겨울이 뭐가 좋냐? 춥고 다 얼어붙고, 미끄러질까 무서워 외출도 못 하고.”
이렇게 시비가 붙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필자가 겨울을 좋아하는 거랑 시어머니가 봄을 좋아하는 것은 시비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호불호(好不好), 취향(趣向)인 거죠. 필자가 정윤희라는 배우를 좋아하고 다른 배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잖아요? 또 ‘미스터 트롯 시즌1’에서 경연(競演) 참가자 101명 가운데 이찬원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역시 필자가 옳고, 다른 참가자를 좋아하는 분이 그른 것이 아니듯이 말이죠.
‘부먹’과 ‘찍먹’ 사이
며칠 전 후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저녁을 먹고 빙수 가게에 갔습니다. 주문한 빙수가 나왔을 때 숟가락을 들기 전 필자가 먼저 물었습니다.
“그쪽은 빙수를 다 섞어 먹어요? 아니면 인절미 따로, 팥 따로, 얼음 따로 먹어요?”
그랬더니 다행히 한 사람은 둘 다 괜찮고, 나머지 두 사람은 얼음은 얼음대로, 콩가루는 그 맛대로, 팥은 팥 맛대로 느끼며 따로 먹는다는 거예요.
탕수육 ‘찍먹’과 ‘부먹’, 그걸로 논쟁이 많이 붙곤 합니다. 튀긴 고기 전체에 소스를 부어 먹느냐, 고기마다 따로 소스를 찍어 먹느냐로 어느 편이 더 맛있는지 곧잘 시비나 승부를 가리려 합니다. 누가 맞나요?
호불호나 취향이 반대되거나 확실한 사람을 만나면, 그게 부부든 자식이든 아주 친한 사이든 직장 동료든 간에 마음이 상하고 기분이 언짢을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취향이 다를 뿐인데 말입니다.
한신과 유방
누구나 한 번쯤 ‘삼국지’나 ‘초한지’에 빠져 영웅호걸들을 손꼽으면서 친구들과 침을 튀며 열띤 토론을 펼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화려한 라인업 가운데 필자는 금기(禁忌)였던 배수진(背水陣)을 처음으로 전략에 역이용한 불세출의 명장이자 신출귀몰한 용병술로 패배를 몰랐던 병법(兵法)의 신, 한신(韓信)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비범한 능력으로 유방(劉邦)에게 천하 패권을 쥐어준 일등공신, 한신.
마침내 초패왕 항우(項羽)나 한고조 유방보다 유리한 입지에서 천하를 손에 넣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름 없는 자신을 중용했던 유방이 베푼 은혜를 잊지 못해 멈추고 말았던 인물입니다. 자신이 가진 뛰어난 능력과 사양하는 마음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반란을 도모한다는 유방의 의심에 결국 처형당하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역사적 인물인 한신과 유방을 놓고도 평가가 극과 극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밥을 얻어먹고 살 만큼 보잘것없던 자신에게 막중한 역할을 맡긴 은혜를 잊지 않았던 한신이 옳은가요? 아니면 출중한 부하에게 권력을 뺏길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모반하게끔 몰고 가 싹을 잘라버린 유방이 옳은가요? 평가가 엇갈리는 만큼 시비 가리기 참 어렵습니다.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인물도 시비보다는 취향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비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우리 삶에서 시비로 명확히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있을까요. 태양의 움직임은 항상 일정하고 한결같지만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나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은 한결같을 수도 없고 쉽게 예측하기 힘듭니다. 동식물이나 물건도 좋아졌다 금방 싫증을 내기도 합니다. 나아가서는 정치적인 성향도 진보와 보수라는 스펙트럼 안에서 결이 무척 다양합니다. 한쪽에 실망해서 반대편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 상처받아서 그 반대편으로 옮겨가기도 하듯이 말입니다. 시비를 걸고 시비를 따지는 대신 취향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덜 고통스럽습니다.
취향이나 호불호에 시비 걸지 맙시다! 딱 시비 걸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필자가 앞서 들었던 예를 떠올리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하나를 누가 좋아하는 게 죄가 아니고 틀린 게 아니지. 어리석은 게 아니지. 또 탕수육, 팥빙수도 그렇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관계가 좀 더 부드러워지고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거라 믿습니다. 그 사람 나름대로의 생각과 의견과 취향을 존중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옳고 그름으로 정색해 따지지 말고 취향의 문제로 존중하고 이해하면 한결 따뜻한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정답 없는 인생, 모범답안이 있을 뿐
나와 당신을 옳고 그름이라는 시비하는 마음으로 볼 때는 갈등이 고조되고 관계를 망치기 쉽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그 사람에게 공연한 적개심을 품어 이성을 잃은 행동을 저지르고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생깁니다. 우리 인간은 해와 달이 일정한 주기로 움직이듯 한결같을 수 없습니다. 늦잠을 자는 해와 결근하는 달을 본 적이 있습니까. 봄이 지나가고 오뉴월에 겨울이 다시 온 적 있습니까. 정답이 하나인 수학 문제와 우리 인생은 다릅니다. 저마다 모범답안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답이 여러 개라고 틀린 삶이 아니고 그릇된 인생이 아니듯이요. 자신이 푼 답안을 존중받고 싶다면 남이 푼 답안도 존중해줘야 합니다.
잡초로 볼지 꽃으로 볼지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
나쁘다고 없애고자 하면 풀 아닌 것이 없고, 좋아하여 취하고자 들여다보면 모두가 꽃이라는 뜻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취향이 다르다고 상대를 미워할 때 그 사람은 세상 쓸모없는 잡초밖에 되지 못합니다. 백해무익하다 단정해 얼른 뽑아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나와 다른 의견이 관계를 발전시키고 묵혀온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되는 경우도 많이 경험합니다. 듣기 불편하고 괴로운 이야기도 좋게 새기려는 마음을 먹는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숨겨진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는 일에 우리 도전해볼까요. 내가 소중하듯 나와 다른 그 사람도 소중하니까요. 내가 아름다운 존재이듯 그 사람 역시 아름다운 존재니까요. 모두가 꽃입니다.
2022년 11월 공개된 ‘ChatGPT’(챗GPT)는 출시 일주일 만에 사용자 100만 명을 넘으며 광풍을 일으켰다. 현재 글로벌 검색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구글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는 ‘Google is done’(구글은 끝났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챗GPT로 대표되는 대화형 인공지능이 구글을 대체할 수 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처럼 챗GPT도 우리 일상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오픈 에이아이(OpenAI)가 개발한 GPT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문장과 글을 생성할 수 있게 만들어진 인공지능(AI)이다. 2018년 GPT-1 출시 이후 GPT-2, GPT-3로 꾸준히 버전을 높여왔다. 지난해 11월 GPT-3.5에 해당하는 챗GPT를 공개했으며, 이후 4개월 만에 성능을 개선한 GPT-4 버전의 차세대 모델까지 선보였다.
챗GPT는 로봇과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서비스다. 언어 능력에 특화돼 있어 사용자가 대화창에 질문을 입력하면 그에 맞춰 로봇이 다양한 답변을 내놓는다. 기존 대화형 AI는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문법과 맞춤법을 완벽하게 구사하거나 언어의 특성과 해석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동문서답을 하거나 아예 답변을 도출하지 못해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었던 반면, 챗GPT는 대화의 숨은 맥락을 이해하고 이전 대화를 기억하며 답변해 마치 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졸업 논문, 회사 시말서, 제안서도 OK
챗GPT는 미국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SAT 읽기 및 쓰기와 수학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의사·변호사 시험을 가뿐히 통과했다. 뛰어난 지능 덕인지 수행할 수 있는 업무도 다양하다. 기사, 논문, 법원의 판결문뿐 아니라 의회에 제출할 법안 초안도 작성한다. 국내에서는 챗GPT가 쓴 책들이 잇달아 출간됐다. 책 ‘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은 기획안과 목차를 제외한 모든 내용을 챗GPT가 직접 쓰고, 편집과 교열 작업까지 완료하는 데 단 30시간이 걸렸다.
챗GPT의 출시 이후 실생활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챗GPT로 시말서를 작성했다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자세한 내용을 보면 챗GPT는 “저는 이번 일로 인해 회사의 정책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라며 “무심코 생각 없이 행동을 하게 된 것이지만,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서술했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 내부의 정책과 규정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을 다짐한다”며 “앞으로 회사의 이익과 안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경각심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겠다. 회사와 동료들에게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라고 마무리했다. 누리꾼들은 사람이 작성한 결과물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다.
챗GPT 똑똑하게 활용하자
챗GPT의 문장은 깔끔하고 정갈하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한다. 이용자가 입력한 질문에 대해 학습된 데이터가 없을 경우, 그 내용 자체가 틀렸을지라도 해당 정보를 기반으로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기 때문이다. GPT-3.5 버전에서는 ‘신사임당이 이순신의 아내’라든가, ‘티타늄 전차가 조선 중기에 사용됐다’는 등의 황당한 이야기를 성의 있게 답변한다. “이순신 장군이 고종의 옷에 커피를 쏟은 사건에 대해 알려줘”라는 질문을 하면 “이순신 장군이 고종의 옷에 커피를 쏟은 사건은 유명한 역사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대한제국 말기인 1896년에 일어난 일로, 당시 고종은 이순신 장군을 모시고 국사조사를 하던 중 이순신 장군이 실수로 고종의 옷에 커피를 쏟았습니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으며, 이후 둘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결국 AI 답변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건 사용자의 몫이다.
즉 챗GPT는 잘 아는 정보를 요약하거나 정리하는 용도에는 적합할 수 있지만,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한 사실을 묻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용자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답변의 수준도 현저히 달라진다. 얻고자 하는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요구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50대 배우자와 갈 만한, 물가가 비싸지 않고 골프장이 많은 여행지는 어디야?”와 같이 명확한 지시와 완결된 문장으로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질문을 거듭해도 뾰족한 정보를 얻을 수 없을 때는 한글보다 영어로 지시하면 더 깔끔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챗GPT는 영어에 조금 더 최적화돼 있다.
유명세에 따른 사칭 사이트 증가
챗GPT에 관심이 생긴다면 한 번쯤 사용해보는 것도 좋지만, 사칭하는 사이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으로 앱을 다운받기 위해 플레이 스토어에 들어가 ‘챗GPT’를 검색하면 유사한 명칭의 앱이 존재한다. 하지만 오픈 에이아이가 개발한 공식 앱은 아직 출시되지 않은 상태다.
실제로 챗GPT와 같은 해외 유명 사이트와 비슷한 이름의 사이트 혹은 앱으로 유도해 카드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었다. 금융감독원은 카드 정보 유출 피해를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전체 숫자, 카드 비밀번호 네 자리 등의 개인정보 입력을 요구하면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카드 정보 유출이 의심되면 불편하더라도 카드 사용을 정지하고, 재발급받아 부정 사용을 차단하는 것이 안전하다.
오픈 에이아이에서 개발한 챗GPT를 체험해보고 싶다면 ‘openai.com/blog/chatgpt’로 이동해야 한다. 우선 회원가입을 통해 계정을 등록하고, 화면 하단에 있는 입력 칸에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입력하면 된다. 또는 ‘에지 브라우저’를 통해 검색 엔진 ‘www.bing.com’에 접속한 뒤 왼쪽 상단의 ‘채팅’ 버튼을 누른다. 계정을 생성하고 로그인하면 채팅을 시작할 수 있다. 검색창에 궁금한 점을 입력하면 해당 내용과 관련한 AI의 답변이 검색 페이지 오른쪽에 나타난다. 답변을 보고 온라인 출처를 자세히 검증하거나, 더 구체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영포티, 신중년, 낀 세대, 꽃중년, 디지로그 등으로 불리는 40·50세대는 곧 액티브 시니어, 뉴 그레이 대열에 들어간다. ‘시니어’라 불리길 거부하는 세대이자 새로운 50·60세대를 만들어갈 이들을 ‘후기청년’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알아봤다.
120세 시대,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청년기와 중장년기가 길어지고 있다. 인구 분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40·50세대는 청년보다 성숙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장년이라기에는 청년처럼 젊게 산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나이가 생애주기를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며, 과거의 중장년과 지금의 중장년은 다른 격동기를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장년 꼬리표 떼는 ‘후기청년’
2022년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는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이하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40대 이상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허리를 담당하는 40대는 807만 명, 50대는 861만 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수인 약 32%를 차지한다. 이 중에서도 일명 X세대라 불리던 1970년대생(만 44∼53세)이 중심에 있다.
‘4050 후기청년’을 쓴 정책학자 송은주 박사는 전 세계의 X세대가 중장년으로 편입되면서 ‘세대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 ‘위기’라는 말로 수식되던 중년의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후기청년’으로 새로운 생애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베이비붐 세대가 버티는 것을 답으로 여겼다면, 지금의 40·50세대인 X세대는 버티는 것으로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걸 안다. X세대는 처음으로 숫자를 벗어나 가치관으로 정의된 세대다. ‘기존의 관습이나 질서를 거부하는 세대’이자 신(新)인류이며 낀 세대라고 불렸다.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해 ‘나’라는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사춘기 시절 워크맨으로 음악을 즐긴 첫 세대이자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다.
그런가 하면 MZ세대의 문화를 이끄는 트렌드 리더 역할도 한다. 1990년대 흘러넘치던 문화를 향유했던 이들이 지금은 문화 생산자 역할을 한다. 보이그룹 BTS를 프로듀싱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더글로리’ 김은숙 작가, ‘킹덤’ 김은희 작가, 나영석·김태호 PD,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신원호 감독 등 MZ세대가 열광하는 콘텐츠의 중심에는 X세대가 있다.
송은주 박사는 “(지금의 40·50세대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첫 주자이면서 역사상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세대로서 많은 경험과 변화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세대다. 평균수명이 60대이던 시절에 나온 ‘중년의 위기’라는 사회적 편견을 깨고, ‘성장’이라는 청년의 특성과 ‘성숙’이라는 중년의 특성을 조화롭게 버무린다. 그저 길어진 인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청년기를 잘 후숙된 과일처럼 영양가 있게 보낸다”면서 이들을 중년이 아니라 ‘후기청년’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념 파괴하는 X세대
이렇게 40·50세대가 중장년의 꼬리표를 떼는 동안, 120세 시대에 맞게 생애주기도 다시 설계되고 있다. 나이를 기준으로 보자면 120세 시대는 60세, 100세 시대는 50세가 중년일 것이다. 그렇다면 40대, 더 나아가 50대까지도 청년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60∼70대는 중장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세계 국가들은 노인의 법적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청년기본법에서는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이라 규정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자체 법령을 마련해 40대까지도 청년이라 정의하고 있다. 기대수명에 맞춰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가 재편되고 있다는 뜻이다.
행정적·법적으로는 숫자를 기준으로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 나이로 생애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은주 박사는 “관련 정책을 연구하며 ‘4050 후기청년’ 책을 쓰던 2017년에 이미 세계에서는 ‘연령 파괴 시대’라는 개념이 나오고 있었다. 기존의 통념과 다르게 40대에 결혼하고, 50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대에 배낭여행을 가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적령기, 출산 적령기, 퇴직 적령기와 같은 인생의 통과의례가 특정 나이에 적용되지 않고 다양해지고 있으며, ‘어떤 나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관념이 파괴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젊게 느끼는지를 결정하던 중요한 요인으로 더 이상 나이가 고려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던 X세대의 특성과도 맞물린다.
캐나다 앨버타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행복도는 20대 초반부터 서서히 올라가 중년기에 만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도는 결혼할 때와 건강해졌을 때 높아졌고, 직장을 잃었을 때 낮아졌다. 삶의 행복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나이가 아니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개인별로 노화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송 박사는 “과거에는 유전자가 노화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많은 연구들이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이 노화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생각도 노화에 영향을 준다. ‘나는 나이 들었어’, ‘나이 먹는 게 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명에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나이는 심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슷한 연령대에 비슷한 이벤트를 겪었기 때문에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라는 생애주기를 나눌 때 나이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사람마다 이벤트를 겪는 시기가 달라졌다. 이의훈 카이스트 경영대학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40∼50대는 은퇴, 이혼, 사별, 자녀의 독립 등으로 인생에 이벤트가 많은 시기”라면서 “사람마다 에이징(나이 듦)이 개입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신체적·심리적·사회적 에이징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이 시기에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균형을 잡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변화의 핵심은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온다는 것’이다. 40·50세대는 ‘남들이 볼 때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재정의하고 있다. 마치 사춘기 시절 ‘X세대’라고 불리길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IMF 함께 겪은 다양한 삶
후기청년의 시작을 알리는 4050세대는 IMF,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라는 공통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X세대라는 특징을 보이지만, 동시에 개인별로 삶의 양상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의훈 교수는 “코호트(집단)는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각 집단의 현재는 과거의 경험이 반영된 결과다. 인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프리미엄 소비를 하는 40·50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시니어가 되는 것이다. 10년 뒤 고령화 시대의 소비는 결국 이 집단의 성향을 따라간다. 지금 MZ세대가 시간이 흐르면 다음 후기청년 세대로 편입되는 것과 같다. 차세대 후기청년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지금의 MZ세대를 연구해야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살아온 경험, 사회·경제적 위치, 신체 건강 정도, 자녀와의 관계, 학력, 배우자 여부 등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이 풍부해진다”며 “후기청년은 단순히 청년의 연장이라기보다 많은 면에서 청년보다 성숙한(Mature)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은주 박사도 지금의 40·50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풍성하고 규정되지 않은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그는 “지금의 40·50세대에게는 메소력(MESO Force)이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후기청년의 삶은 의미 있고(Meaningful), 흥미진진하며(Exciting), 특별한(Special), 기회(Opportunity)로 만들어갈 시기다. 40∼50대는 뭘 좀 아는 나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그에 맞추며 유연하게 살아갈 경험과 통찰이 있다”고 분석했다. 생의 이벤트가 많아 변화를 겪어내는 시기에 문화를 향유할 줄 알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다는 X세대로서의 특징은 각자의 후기청년기를 만들어가기에 좋은 소스가 된다는 의미다.
이의훈 교수도 “40∼60세 집단은 나이가 들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활동적이고 건강하며 젊은 층과 큰 차이점이 없는 소비 행동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볼 때 소득이나 지위가 최고의 위치로 안정되어 있고, 고급·고가 제품의 대표적 소비자들이며, 레저·여행 등의 웰빙 소비를 지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도 핵심 소비자인 40·50세대의 이런 성향을 반영해 12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후기청년의 등장을 알아챈 듯, 유통업계는 연일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40·50세대를 조명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노년층에 비해 부족했던 중장년 지원 정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전환기 중장년 집중지원 프로젝트 ‘다시 뛰는 중장년 서울런 40·50’ 일자리 정책을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23년을 ‘40·50 중장년 책의 해’로 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송 박사는 “100세 시대는 인생 피벗(Pivot, 농구 경기에서 쓰이는 용어로, 상황에 맞춰 방향을 바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의 시대다. 30대가 오히려 40대가 되는 것을 겁내는데, 40대에는 40대의 찬란한 인생이 있다. 40·50세대를 위한 정책이 있고 피벗을 뒷받침해줄 수 있다면 메소력을 더욱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들을 위한 정책 마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생을 그림에 비유해보자. 전반기는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후반기는 물감으로 채색한다. 색을 칠할 때는 가끔 연필 선을 벗어나도 괜찮다. 선을 넘나들다 보면 때론 밑그림보다 더 아름다워지는 순간도 있으니까. 박승숙 다시배움 대표 또한 과거의 밑그림에 갇히지 않고 의도적 탈선(?)을 즐기는 인물이다. 그의 그림은 하나의 모자이크 조각이 되어 언젠가 동년배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박승숙 대표가 지난해 1월 문을 연 ‘다시배움’은 중장년 세대를 위한 교육기관이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프로그램 카테고리를 보면 미술, 극, 음악, 무용 등 예술 분야 교육이 이뤄짐을 알 수 있다. 1세대 미술치료사로 활약했던 박 대표의 이력 때문에 자연스러운 행보로 읽힐지 모르지만, 속사정을 들어보면 일종의 모험이다. 이 험난한 여정은 그가 돌연 퇴직을 자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퇴직을 결심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딸아이의 유학이 계기가 됐어요. 그동안 일 핑계로 엄마 노릇을 잘 못 했는데 그때라도 뒷바라지 좀 해보자 싶었죠. 일하는 내내 ‘시간 없어’, ‘바빠’라는 말을 달고 살았거든요. 그때부턴 돈이 아닌 시간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외엔 특별한 계획 없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하던 일만 계속 하면 무슨 의미?
퇴직 후 박 대표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랩을 배우는 등 그동안 전혀 경험하지 않은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의욕을 갖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일상을 채워나갔지만, 그 끝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맴돌았다.
“초반에는 젊은 세대와 함께하는 수업도 많이 나갔는데, 늘 ‘고참’, ‘왕언니’라는 수식어가 붙더라고요. 그런 상황이 몹시 불편했고, 어린 수강생들 눈치도 많이 봤어요. 때론 제 열정이 그들에게 위화감을 주기도 했죠. 존재 자체가 민폐라는 생각이 들고, 이제 변방으로 밀려난 나이가 됐구나 싶더군요. 그러다 결국 중장년 대상 기관들을 찾았는데, 역시나 제가 추구하는 바를 채울 순 없더라고요.”
평생직장을 강조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중장년 대상 기관들은 일자리 관련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추세다. 박 대표도 경험 삼아 보람형 일자리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취지나 내용은 훌륭했지만, 그에겐 여전히 마뜩잖게 느껴졌다.
“몇몇 프로그램은 일종의 스펙 쌓기 식으로 흘러가더라고요. 참여자들도 과정을 음미하기보다 수료증 취득에 만족해하는 모습이었죠. 사실 일부 관리 기관은 성과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요. 제 결과물 역시 어딘가 중장년 관련 통계 수치에 머릿수로 더해졌겠죠. 물론 백세시대에 앞으로 50년은 더 일해야 한다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근데 한편으론 그게 좀 슬프더라고요. 그동안 돈벌이한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앞으로도 계속 일할 생각을 하라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차라리 좀 덜 먹고 덜 쓰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다른 생각을 해보고 싶었어요. 어떤 반발심일 수 있지만, 가능한 한 먹고사는 문제와 동떨어진 일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퇴직 후 5년간의 방황 끝에 박 대표가 찾은 건 ‘예술’이었다. 흔히 ‘배고픈 예술가’라는 표현도 쓰이듯,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면 당장 생계에 큰 도움을 얻기 힘든 분야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인생 후반전에 예술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크게 보면 전반전의 키워드 또한 예술이다. 달라진 점은 과거에는 예술을 매개로 ‘치료’를 했다면, 이제는 ‘교육’으로 풀어낸다는 것. 한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볼 때 치료와 교육의 목표는 유사하다. 그렇다면 왜 박 대표는 전공인 치료가 아닌 교육을 택한 것일까?
“치료는 제게 너무나 능숙하기 때문이에요. 잘하던 걸 계속 잘하는 건 후반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전자동 전문성이랄까? 노력 없이도 줄줄 떠들 수 있고, 척하면 척 바로 해낼 수 있잖아요. 그럼 저는 계속 한쪽만 쓰는 사람이 되는 거고요. 그 노련함을 버려야 새로운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퇴직하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닐 때도 일부러 초심자거나 무지한 분야만 골라서 간 거예요. 조금이라도 전문성이 발휘될 곳은 피했죠. 덕분에 더 많이 배우고 깨우칠 수 있었고, 그런 과정을 동년배들과 나누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다시배움을 만들게 된 겁니다.”
역사상 가장 긴 중장년을 사는 세대
박 대표가 다시배움을 선보인 이유 중에는 부모의 영향도 있다. 그의 아버지는 단색화의 거장으로 잘 알려진 박서보 화백이다. 92세의 나이에도 꺼지지 않는 창작열을 불태우는 진정한 시대의 예술가다. 어머니 윤명숙 작가는 여든이 넘어 수필집을 펴내는 등 창작 활동으로 예술 뒷심을 발휘 중이다. 부모의 그런 의욕적인 삶의 태도는 박 대표에게 큰 영감을 줬다.
“최근 어머니께서 ‘내 존재의 의미는 창작 하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노년기에 그런 결론을 내리셨다는 점에 깜짝 놀랐어요. 계속해서 글을 쓰려 하시고, 책을 붙들고 계시죠. 아버지께서도 지금 식사가 힘들 정도로 불편하신데도 여전히 붓을 놓지 않으세요. 두 분의모습을 보면 몸은 늙고 불편하지만 예술로 젊고 자유로워지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창작을 통해 여생을 일궈갈 중장년만의 공간도 필요하리라 여겼죠.”
중년 이후로는 부모와 함께 늙어가는 삶 속에서 더욱 배울 점이 많아졌다는 박 대표다. 한편으론 부모와 자식이 ‘나이 듦’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만나는 이 상황이 반갑기도 하단다. 그는 이러한 세대 간 동행이 백세시대가 주는 축복 중 하나라고 말한다.
“우리 부모 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긴 노년을 사는 분들이에요. 이미 중장년기는 과거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지났는데 수명이 계속 늘어가는 상황이니까요. 비슷하게 저와 동년배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가장 긴 중장년기를 보내고 있죠. 지금 65세 이상은 노인 등 몇몇 기준이 있지만, 그 또한 점점 뒤로 늦춰지리라 봐요. 그렇게 우리의 중장년기는 더 길어질지도 몰라요.”
그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긴 중장년기와 노후를 보내게 될 후배 세대를 위해 더 혹독하게 현재를 깨우치고 알아가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배움을 동년배들이 함께 해주길 바랐다.
“저는 사회적인 사람이라서 이런 사안에 책임을 많이 느껴요. 퇴직 전까지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일만 했는데, 다행히 그 덕에 노후 생계는 크게 고민하지 않을 정도가 됐어요. 대신 나 같은 사람이 그 외의 다른 고민을 해줘야죠. 근데 중장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다 각개전투로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우왕좌왕하고 있고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모아야 한다고 봐요.”
박 대표는 중장년 교육기관을 꿈꾸며 ‘또래 만들기’에 주안점을 두기도 했다. 단순히 친목 도모를 위한 건 아니다. 그보다는 동료의식에 가깝다. 때문에 다시배움 프로그램의 과제는 개인보다는 협업 프로젝트 형태로 이뤄진다.
“상황적으로 비슷한 고민을 하지만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동료로 뭉치는 거죠. 저희는 ‘창작 집단’이라고 하는데, 함께 창작물을 만들다 보면 계속 대화하고 시선을 맞춰보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때론 자연스럽게 도전받는 기회가 생기고, 경청하고 수용하며 집단 안에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돌아보는 기회도 생기죠. 사실 다시배움의 최종 목표는 공동체 형성인데요. 지금 같은 양극화 시대에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웃? 종교? 새로운 사회를 꿈꾼다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려면 남다른 사고를 해야 하는데, 늘 해오던 일 안에서는 같은 답밖에 안 나오죠. 그런 점에서 예술이라는 낯선 경험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답을 줄 수 있다고 봐요. 어쩌면 그게 정답에 가까울지도 모르고요.”
우울은 원동력, 취미는 감정 방패
공동체에 대한 로망은 가득하지만, 기대감은 ‘0’에 가깝다고 진단하는 박 대표다. 자신감 결여보다는 현실적인 처지가 그러하다. 코로나19가 극성이던 시기에 다시배움을 열고, 어느덧 1년 차. 박 대표는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고 있다. 실수도 많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며 솔직한 심경을 들려줬다. 어찌 보면 수순일지도 모른다. 가보지 않은 길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법.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세상이 참 우울해요. 너무나 슬퍼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제겐 그 우울함이 힘이 되고 있어요.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을지언정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그 우울함을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아요. 정확히는 우울을 벗어나기 위한 과정이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셈이죠. 그런 무력감을 갖는 분들이 적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좀 움직이셨으면 좋겠어요. 아시다시피 우리에겐 아주 긴 세월이 남았잖아요. 지금 주저앉아 있긴 너무 이릅니다. 더 크게, 더 멀리 바라보고 현재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가면 좋겠어요.”
그는 동년배를 일컬어 ‘늙은이’가 아닌 ‘늙는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계속 늙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서글픔도 있지만, 잘 늙어가자는 응원도 담긴 듯했다. 아무렇게나가 아닌 제대로 나이 들고 싶다는 박 대표는 훈련하듯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심리치료로 오랜 시간 타인을 상담해온 그이지만 나이 들수록 제어가 잘 되지 않는 감정이 하나 있단다. 바로 ‘서운함’이다.
“예전에는 감정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의 카테고리로 뭉뚱그려져서 나타나더라고요. 나중엔 카테고리도 몇 개 안 남게 되는데, 그중 가장 큰 게 ‘서운함’이더군요. 거기엔 슬픔, 분노, 절망 등 웬만한 부정적인 감정이 다 들어가요. 중년 이후로 서운함은 커지고, 예전처럼 감정의 꼬리가 잘 잘라지지도 않더라고요. 정말이지 이러다 나중엔 모든 감정 중에 서운함만 남을 것 같아요.(웃음)”
그런 서운함을 온전히 사라지게 하기는 어렵다는 게 박 대표의 결론이다. 그렇다고 방치해두는 것은 아니다. 조금 뒤로 가려둘 뿐. 그럼 무엇으로 가리느냐. 그는 취미를 전진 배치하는 전략을 세웠다.
“이런 감정은 개인 문제라기보다는 노화로 인한 뇌과학의 영역이라고 봐요. 즉 언젠가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현상이죠. 차이는 대응에 있어요. 제 경우엔 그 서운함을 안고 가지만, 거기에 다른 무언가를 더해 완화하는 쪽이에요. 내가 몰두하고 즐겁고 기분 좋은 무언가를 찾아 계속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거죠. 그런 서운함을 이길 방법은 취미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예술도 그 일환이 될 수 있겠죠. 여전히 많은 분들이 취미나 예술이 돈이 되느냐고 반문하시는데요. 물론 직업으로는 어려울 수 있지만 진로는 된다고 봅니다. 돈을 벌고 안 벌고를 떠나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아야만 노후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