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지를 정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가 일본 빈집 해결의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주거구독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지자체는 다거점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이동을 반기는 분위기다.
70대의 노만 겐조(乃万 兼三) 씨는 은퇴 후 가족의 사업을 도우며 수도권에서 주로 거주하지만, 사업에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고 있다. 50대의 세시타 유키에 씨는 리노베이션 전문 건축가로 25년간 일하다가 2021년부터 전국의 시골을 돌아다니며 빈집을 리모델링하는 다거점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에는 ‘장인’이라고 불리는 고령자들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사용하기 때문에 원격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여러 지역에서 일할 수 있다.
다거점 생활 선호하는 ‘호퍼’
코로나19 발생 이후 정주(定住)보다 다거점(多據點) 생활(여러 지역을 거점으로 두고 옮겨 다니는 것)을 하는 사람이 늘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원, 은퇴 후 살고 싶은 지역을 찾기 위해 미리 살아보고 싶은 고령자, 일을 유지하되 살고 싶은 곳으로 이주하고 싶은 시니어들의 관심이 높다.
주거구독 서비스 어드레스(ADDress)의 ‘ADDress 다거점 생활 이용 실태 리포트 2021년판’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다거점 생활을 하는 사람은 프리랜서(30.7%)보다 회사원(40.4%)이 더 많았다. 다거점 생활을 하는 이유로는 ‘워케이션’(일+휴식)이 32.6%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주요 생활 거점’(24.2%)이라는 응답이 높았다. ‘체류지에서 일은 하지 않고 액티비티, 휴가, 관광을 위해’라는 응답은 20.2%였으며, ‘원격근무’라는 응답도 19.7% 수준이었다. 또한 응답자의 40.4%는 ‘머지않아 이주할 곳을 생각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드레스는 이들을 ‘어드레스 호퍼’(Address Hopper)라고 부른다. 하나의 주거지에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생활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어드레스는 “다거점 지역을 이동하는 교통비가 1만 엔 안팎”이라면서 “멀리 떨어진 도시들을 거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을 거점으로 두고 ‘호핑하는 것’(옮겨 다니는 것)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식비와 교통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연령대는 60대로 지역을 더 활발하게 둘러보는 경향이 있었다.
집도 ‘구독’하는 시대
최근에는 주거를 ‘구독’한다는 개념도 생겼다. 정액제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기간만큼 살아보고 싶다는 수요가 늘어난 것. 주거구독 서비스라는 개념을 처음 선보인 어드레스는 자연과 역사가 풍부한 지역을 중심으로 빈집들을 리모델링했다. 20여 곳의 지자체가 함께하고 있으며, 일정 금액을 내면 어드레스에 등록된 전국의 주택을 돌아다니며 살 수 있다. 또한 사용자들이 단순히 집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지역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각 주택에 ‘야모리’(家守)라고 불리는 생활 교류 서포트 스태프를 두고 있다. 어드레스 이용자들은 야모리 덕분에 지역을 좀 더 알게 되고 지역 커뮤니티에도 녹아들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야모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는 지역에 오래 살았던 주민이면서 은퇴한 시니어들이 참여해 2만~5만 엔(약 20만~50만 원)의 용돈도 벌고, 빈집을 임대한 집주인에게는 월 약 4만 엔의 임대수익이 보장된다. 지역도 살리고 빈집 문제도 해결하면서 이용자들은 여러 지역을 체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주거구독 서비스다.
크로스 하우스(XROSS HOUSE)는 도쿄도 내에서만 특화된 주거 구독 서비스를 선보인다. 아파트, 개인실, 세미 프라이빗, 다인실 등 네 종류의 주거 형태를 제공한다. 비어 있는 집들을 모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용 요금이 같은 집이라면 무료로 이동하며 살아볼 수 있다. 하프(HafH)는 빈집을 활용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집을 구독할 수 있어 인기다. 제2의 주거 ‘코리빙’(Coliving), 여행하고 일하는 ‘트래블링’(Traveling), 만남과 배움 ‘코워킹’(Coworking) 등 세 종류의 정액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자체들도 주거구독 서비스를 반기고 있다. 빈집 이주자를 위해 ‘빈집 뱅크’ 제도를 운영하는 지자체들은 주거구독 서비스 업체들과 협업해 빈집 정보를 제공하고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2017년에는 주택안전망법을 개정했다.
지자체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관계인구가 되어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관계인구는 지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를 말한다.
어드레스 설문조사에서 다거점 생활을 하는 회사원 중 40%는 부업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어드레스는 “향후 기업들이 근로자의 다양한 근무 방식을 인정한다면, 다거점 생활을 하는 회원을 대상으로 지역 고용 창출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가는 치솟고 경기는 얼어붙고 있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풍요의 상징이며 예로부터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뜻한다고 한다. 20인의 중장년 취·창업 전문가에게 2023년 중장년이 주목할 만한 분야를 물었다. 전문가들의 전망을 잘 살펴 약간의 지혜를 더한다면 계묘(癸卯)의 미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인생 도전을 위한 2023 중장년 취·창업 트렌드를 소개한다.
▲ trend1 전체 시장 전망
창직과 N잡러의 해
2023년에는 경기 불황이 예상되는 만큼 적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가 중장년에게 적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장년에게 강도 높은 노동력이 요구되는 직무는 한계가 있지만 기술이나 자격이 필요한 직무 직종은 3D 업종을 기피하는 청년들로 인해 취업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인·장애인 관련 복지 서비스 분야에서도 대면 기술과 상담 능력 면에 강점이 있는 중장년이 유리할 수 있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장 희유 스님은 정부가 정책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돌봄, 디지털, 환경 분야를 중장년이 공략해볼 만한 일자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23년 중장년 취업‧재취업 시장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보고 창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경력, 취미, 특기 등을 기반으로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창직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문성식 창직교육협회 이사장은 “창직을 통해 긱이코노미(필요에 따라 일을 맡기고 구하는 경제 형태) 시장에서 N잡러(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가 될 중장년이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종근 디올연구소 대표는 “소자본으로 시작하는 저가형 프랜차이즈 창업, 무자본ㆍ무점포형 창업,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체크 포인트
전문가들은 현직에 있을 때보다 수입이 줄어들 것을 인정하고, 업무 수행 성과 또한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나이를 내려놓고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더불어 건강관리는 필수다.
▲ trend2 취업 시장 전망
시간제 일자리가 대세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고, 자신의 적성과도 맞으면서, 업무 강도가 낮고, 수입은 적절하게 나오는 일이 중장년에게 가장 적합하다. 풀타임보다는 시간제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취업‧재취업 시장에서는 새로운 일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사발전재단 같은 기관을 통해 나에게 적합한 직무가 무엇인지 잘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심우정 한양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자문 수준이 아니라 경험을 살려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중장년을 원한다”면서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활용해 자신의 역량을 넓히고 기업에 적용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장년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유망 직업 및 분야
장례·웰다잉 분야 기존 장례지도사, 유품정리사뿐 아니라 디지털 장례 수목장 등 새롭게 변하는 장례 문화에 따라 새로운 직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돌봄 분야 인지건강지도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간병사 등 노인 돌봄 분야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안전관리 분야 기업재난안전관리사, 고령자 주택 개조사, 연구실 안전전문가 등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앞으로 채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직업·전직 상담 및 컨설팅 분야 전직지원 전문가, 직업상담사, 은퇴 코치 노년 플래너, 창직 컨설턴트, 스타트업 컨설팅, 귀농귀촌 컨설팅 등 코칭 분야가 유망하다.
이외에도 반려동물 간식 시장, 도시농업활동가, 건강식품 및 간편식, 도시농업관리사, 주택관리사, 조경기능사, 신용상담사, 손해평가사, ESG나 환경 관련 직업, 자연·문화해설사, 관광통역안내사 등이 꼽혔다.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
신중년 적합 직무는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에 어떤 분야가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혹은 공공에서 지원하는 뉴딜 인턴십, 시니어 인턴십 등의 사업을 통해 훈련 후 일자리 연계를 노려볼 수도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 검색을 통한 취업 시도보다는, 일할 경험을 주는 공공 취업지원 플랫폼을 활용해보길 권유한다.
▲ trend3 창업 시장 전망
지식과 기술 창업 유망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창업이 대세일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중장년에게 적합한 분야는 ‘지식 창업’ 분야다. 사회에서 쌓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시장성과 경쟁력이 있다는 전망이다. 또한 시니어가 가진 사회 경험과 네트워크가 창업에서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유연성 언더독스 본부장은 “대기업이 접근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창업가에게는 적합한 규모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창업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 소장은 “중장년 창업은 소자본 창업, 직접 일하는 창업, 최소 인원으로 가능한 창업, 돈보다 일이 재미있는 창업, 오래 할 수 있는 창업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 트렌드
프랜차이즈보다 무인 창업 최근 많은 중장년이 ‘오토 매장’(본인의 노동력 투입 없이 소수의 직원으로 자동 운영되는 매장)에 혹해 프랜차이즈를 고려하지만, 정말 수익성이 잘 나오는지 따져봐야 한다. 차라리 무인 매장이 나을 수 있다. 반찬, 고기, 문구, 옷 등 아이템도 다양하다.
1인 지식 창업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녹인 1인 지식 창업이 많아질 전망이다. 한때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했던 퍼스널 브랜딩(자신을 브랜드로 만드는 일)을 이제는 중장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영업보다 기술 창업 시니어 대상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 반려로봇 개발, 빅데이터 기반 노인 안부 확인 사업, 위급상황 대처 기술 사업, 기술을 통한 정서 교류 상담 등의 기술 창업이 유망하다. 또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세대융합형 기술 창업도 도전해볼 만하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창업 청년에 비하면 창업 자금이 넉넉하다는 게 중장년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실패하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청년보다 큰 것도 현실이다. 소자본 혹은 무자본 창업 가능한 온라인 창업이 유망하다.
권정훈 ‘장사 권프로’ 채널 유튜버
인력난이 심각한 외식업계에서 기회를 찾아보자. 대부분의 예비창업자들은 프랜차이즈 문을 두드리고 자본금을 과도하게 투자한다. 하지만 저렴한 값으로 전수창업을 배우는 것도 틈새시장이다. 전수받은 레시피에 나만의 색깔과 브랜드를 입혀 창업해보면 어떨까. 외식시장 인력난 기회를 놓치지 말자.
▲ trend4 새로운 시장 전망
떠오르는 新분야는?
중장년에게 적합한 새로운 분야로 디지털, 모빌리티(이동성을 높여주는 이동 수단 혹은 서비스), 시니어 뷰티 등이 꼽혔다. 전혜진 이지태스크 대표는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면서 40~50대의 비대면 활동 경험이 90%를 넘어섰다”면서 “디지털 중년 시대를 맞이해 체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비대면 분야에서 중장년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는 “청년들은 단순하고 지루한 반복 작업이라 좋아하지 않는 데이터 라벨링(인공지능 학습을 위해 수집한 데이터에 라벨을 다는 작업) 같은 일자리에 대한 중장년의 만족도가 의외로 높다”면서 “정식 출시 전인 제품 및 서비스 결함을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베타 테스터도 좋다. 앞으로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중장년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은 “일본에서는 화장을 해주며 심리상담과 만족감을 높여주는 ‘뷰티 터치 테라피스트’라는 직업이 생긴 지 오래”라며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젊게 살고 싶어 하는 중년의 욕구인 ‘네버랜드 신드롬’이 트렌드라고 짚은 것처럼, 무인 ‘피터팬 스토어’ 같은 창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새롭게 눈여겨볼 직업
디지털 분야 디지털 라벨러, 베타 테스터, 디지털 문해 교육자, 디지털 중개사
모빌리티 분야 프리미엄 택시 운전사, 드론조종사, 이동수단용 콘텐츠 큐레이터, 운송 서비스
시니어 뷰티 분야 안티에이징, 젊은 감성 입힌 패션, 뷰티 터치 테라피스트
박지혁 초고령사회 뉴노멀라이프스타일연구소 소장
초고령사회로 흘러가는 만큼 실버 비즈니스와 관련된 직무, 직업, 창업 분야가 새롭게 열릴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언택트, 메타버스 등의 기술 창업 분야도 커질 전망이다.
설문 참여 전문가 리스트
▲강소랑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팀 박사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 소장
▲김경환 성균관대 글로벌창업대학원 원장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
▲김중진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연구위원
▲김찬흥 국민은행 경력컨설팅센터 센터장
▲권정훈 ‘장사 권프로’ 채널 유튜버
▲문성식 창직교육협회 이사장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박지혁 초고령사회 뉴노멀라이프스타일연구소 소장
▲변영조 한밭대 중장년기술창업센터 센터장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
▲심우정 한양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유연성 언더독스 본부장
▲이종근 디올연구소 대표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
▲전혜진 이지태스크 대표
▲조연미 리봄 시니어플래너 대표
▲한희윤 신한은행 은퇴사업부 수석
▲희유스님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센터장
어릴 적 주입식 교육의 힘은 아주 세다. 우리 모두가 흔히들 아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말고도 그 시절엔 각 지역의 특색이나 지역명은 모두 머릿속에 집어넣지 않았나 싶다. 그중에 영주도 있었다. 영주라 하면 무조건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부석사 무량수전이 따라붙었다. 강산이 무수히 바뀌고 세상은 달라졌어도 부석사 무량수전의 고장, 경북 영주다.
또는 영주 사과일까. 선비의 고장답게 사찰이나 서원은 당연하다. 추억의 풍경이 곳곳에 남겨져 있어 도심과 골목길에서 가슴 뭉클한 그리움도 솟는다. 그리고 무섬마을을 지키며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둘러보면 어디서든 수백 년 혹은 수십 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영주 여행은 옛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해도 괜찮을 듯하다.
물 위에 뜬 섬,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
영주의 내성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너른 모래톱, 그 위로 S라인의 곡선이 길게 이어진 무섬마을 외나무다리의 풍경이 무심하다.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고 해서 무섬마을이다. 물 수(水), 섬 도(島). 수도리의 물섬이 무섬이 되었고,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가 이 마을의 역사를 말해준다. 외나무다리 저편으로 수도교라는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300년 넘도록 무섬마을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이 다리였다.
홍수라도 나면 다리는 강물에 잠겼고 휩쓸려 내려가, 그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다리를 다시 놓곤 했다.
폭 20~30cm, 높이 60cm, 총길이 150m. 폭이 좁아 걸을 때면 아슬아슬해서 장대에 의지하기도 했다. 한 사람만 걸을 수 있는 폭이어서 예전에는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이 보이면 지레 모래톱에 앉아 기다렸다고 한다. 지금은 외나무다리 중간의 몇 군데에 마주 오는 이를 피할 수 있는 ‘비껴다리’가 놓여 있다. 걷다가 어질하거나 자칫 기우뚱하다가는 물에 빠질 듯한 두려움도 생긴다. 다리 위를 걷는 발끝만 보며 걷다가 강의 물결에 취하면 낭패다. 그래서 강 건너를 잇는 이 다리는 그 옛날엔 시집올 때 가마 한 번 타고, 죽어서야 상여 타고 한 번 지나간다는 애환이 서려 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물돌이 마을, 무섬의 느린 시간 속에 잠겨 모래톱에 주저앉아 저편을 바라보면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랫빛…’ 이 노래가 절로 입안에 맴돈다.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운 외나무다리는 이제 영화나 드라마, TV 예능과 CF 등의 촬영지로 알려지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무섬마을
“십 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에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뫼아리”. 시인 조지훈은 서울로 유학을 떠나면서 무섬에 남겨둔 아내와의 이별을 ‘별리’(別離)라는 시에 담았다. 조지훈 시인의 처가로 알려진 김뢰진 가옥은 마을 첫머리쯤에 있었다.
무섬의 집들은 새롭게 조성된 한옥마을과는 달리 늘 그 자리에 있던 풍경이다. 한때 100여 가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50여 가구만 사는 작은 마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무섬마을은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다.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라고 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만죽재(晩竹齋), 해우당(海愚堂)을 비롯해 지정문화재가 10곳이고, 100년 넘는 고택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울 밑에 선 봉숭아도, 풀숲 가득한 곳에 피어난 들꽃들도 물씬한 그리움을 소환한다. 수백 년 켜켜이 쌓인 깊은 역사가 그대로 전해지는 옛집들이 고스란히 무섬마을이었다.
마을이 어찌 이리도 조용할까. 발소리조차 민망하다. 걷다가 호박이 매달린 담장을 향해 셔터를 누르니, 마당에서 일하시던 어르신이 “그게 뭐 볼 게 있기나 한가. 쓸데 있으면 그 호박 따가”란다. 그래도 되는지 싶어서 괜찮다고 하니 직접 두 개나 따주셔서 황송한 마음에 보물처럼 잘 모시고 왔다.
영주라 하면 부석사
유홍준 교수는 자연과 건축이 제자리를 지키며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문화유산 부석사는 그 어떤 표현으로도 나타내지 못한다고, 오직 한마디 위대한 건축이라고 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조선 땅 최고의 명상로’라 칭송한 부석사 당간지주 인근 은행나무 산책로는 여전하고, 그 길 위에서 홀로 명상에 잠겨볼 만하다.
천년고찰 부석사의 하이라이트 무량수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중 하나다.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그 앞으로 펼쳐진 백두대간 능선의 풍광에 넋을 잃어보는 것도 부석사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온통 경사진 경내를 돌기엔 다리가 뻐근하고 숨찰 때도 있다. 하지만 영주까지 와서 어찌 유구한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목조건물 부석사에 들지 않을 수가 있을까.
마음 내려놓고, 소수서원과 선비촌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공인된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던 곳이다. 조선 중종 때 주세붕이 세운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당시 향교나 서원은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국립인 반면 서원은 사립학교라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한 소수서원의 역사와 향기가 물씬하다.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때맞추어 선비 복장으로 글을 읽는 이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고,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한 그 뜰에 앉아 가만히 옛 선비들의 기운을 전해 받을 수도 있다. 선비교를 따라 너른 뜰을 지나면 선비촌으로 접어든다. 옛 선비정신과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고래등 같은 양반님네 고택의 안마당과 대청마루, 담 너머로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과 배롱나무, 그리고 강학 시설과 저잣거리도 조성되어 있어 옛 선비마을의 풍취가 가득하다.
오래된 골목길을 걷다, 근대역사문화거리
현대 일상에서 찬찬히 되돌아보기 좋은 곳으로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가 있다. 영주 원도심에 가면 근대 생활 모습과 건축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근대 산업 시기의 양곡가공업을 짐작해볼 만한 풍국정미소, 문을 밀고 들어가니 여전히 동네 주민의 머리를 깎고 계시던 80년 전통의 영광이발소, 몇 걸음 건너편에 고딕 건축양식의 영주 제일교회가 붙어 있고, 근대 시기의 주거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영주동 근대 한옥은 주변으로 풀밭이 무성하다.
또한 관사마을은 역사문화의 공간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이다. 일제강점기에 영주-안동 간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고 철도 역무원들의 관사가 지어지면서 형성된 마을이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 불리게 된 관사골은 반세기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칠이 벗겨지고 낡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일식 목조 관사 주택의 전형인 5호와 7호 관사를 볼 수 있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집주인이 수리를 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집 안에 욕실과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신기해하던 집이었지만, 근대 건축이라고 지정만 되면 뭐하냐 넋두리 한다. 낡고 헐어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수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데 곤란한 점이 많은 모양이다. 도시생활사적 가치가 크다지만 변화에 따른 관사골 주민들의 환경과 지속 가능한 삶의 여건도 염두에 둘 일인 듯하다. 그럼에도 낡은 지붕과 담벼락, 포도가 주렁주렁 달리던 안마당의 텃밭에서 정 깊은 추억이 솟는다. 관사골 저편 언덕 위로 부용공원이 내려다보고 있다. 흑백 필름 같은 풍경 속에서도 현재와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은 계속된다.
하루하루를 계획하며 살지 않는다. 거대 담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그 과정을 즐긴다. 그의 과학 이야기에 약 9만 명의 사람들이 열광하지만, 그는 “내 삶은 우연과 우연의 중첩일 뿐”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과학을 전하는 원종우 작가 이야기다.
‘파토’(Pato)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원종우 작가의 이력을 쭉 듣다 보면 맥락을 잡기가 쉽지 않다. 철학도, 록 뮤지션, 대중음악 운동가, 칼럼니스트, 정치사회 논객, 음모론 전문가, 다큐멘터리 작가, 과학 커뮤니케이터. 그를 수식하는 말이다. 경희대학교 철학과를 중퇴하고 런던 칼리지 오브 뮤직&미디어에서 기타를 전공했다. 이후 SBS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코난의 시대’ 작가, ‘딴지일보’ 편집장 및 논설위원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 ‘과학과 사람들’ 대표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데, 그의 답은 한결같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어요.”
거대 담론을 농담처럼 던지는 과학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거대 담론이라 불릴 만한 과학 이야기를 농담을 섞어 쉽게 전달하는 팟캐스트다. 2019년 말 기준 누적 1억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의 구독자 수는 약 9만 명, 유튜브 구독자 수는 약 8만 명에 달한다. 사람들에게 과학을 더 쉽게 알리고 싶었던 원종우 작가가 2013년 ‘과학과 사람들’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시작한 채널이다.
철학을 공부하고 록 음악을 하던 그는 어떻게 과학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걸까? 그의 과학 사랑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한 살 무렵, 당시로서는 거금인 4000원을 주고 과학 교양서의 고전이라 불리는 어마무시한 두께의 책 ‘코스모스’를 샀다.
“당시에는 대중교양 과학 서적이 거의 없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이 아무리 똑똑하대도 그 책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어요? 대신 예쁜 컬러의 우주 그림이 많았고, 1부는 스토리가 재밌었죠. ‘코스모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과학책들을 찾아 읽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생기더라고요. 세상을 더 흥미롭게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가 팟캐스트를 시작할 즈음에는 대중 과학이 태동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예능 프로그램 ‘스펀지’에서 다루는 것 같은 ‘바닷속에서 상어를 만났을 때 건전지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이야기나, 맥가이버처럼 ‘무엇이든 고치는 과학’ 같은 접근이었다. 과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던 셈인데, 원 작가는 반대로 바라봤다. 특히 인문학 대중화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문학이 대중화될 때 두 가지 소비 방식이 있었어요. 수박 겉핥기처럼 가볍게 다루거나, 청중이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방식. 둘 다 좋은 소비는 아니죠. 쉬운 과학은 오히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거대 담론을 편하게 던져주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과학은 스토리지만 어떤 건 수학이고 어떤 건 실험이잖아요. 대중이 이걸 100%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그 안에서 딱 한 가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꼭 가져갔으면 했어요. 과학으로 인문학 이야기를 한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팟캐스트에서 제가 지향했던 부분이에요. ‘자, 지금부터 내가 거대 담론을 말할 거긴 한데, 듣는 사람은 과학하고 앉아있네 같은 시선으로 들었으면 해’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가 팟캐스트에서 다룬 상대성 이론 이야기만 모두 합해도 8시간 분량이다. 양자역학은 더 많은 분량의 오디오가 있다. 내용도 어려울 수밖에. 하지만 그는 그 안에 핵심이 있다고 강조한다. “핵심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면서 눈이 열려요. ‘유레카’를 외치는 것처럼요. 제가 과학을 통해 느꼈던 경외감, 놀라움, 충격, 그리고 세상을 일상적인 경험 이상으로 이해하게 된 지점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는 전문가의 입을 통해 거대 담론을 설명하면서 청중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중간에서 통역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교수가 열심히 설명을 했는데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다면 ‘나는 바보인가’ 싶을 수 있잖아요? 그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제가 중간에서 ‘사실 몰라도 돼요’라고 농담을 던짐으로써 청중은 긴장을 풀게 되죠. 그러다 보면 정말 이해하는 사람도 생겨요.”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시대
미디어 채널이 홍수처럼 흘러넘치는 시대다. 팟캐스트가 흥행한 이후 유튜브와 같이 개인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다. 대중을 상대하는 개인이 늘었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더 이상 통역자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어려운 과학 이론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그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시원섭섭한 마음이었다.
“제가 연구자는 아니다 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스스로 한계를 느꼈어요. 이제는 대중 앞에 나서는 연구자도 늘었고요. 과거에는 연구자가 대중을 상대하면 ‘연구할 시간도 없으면서 한가하네’ 같은 안 좋은 시선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니잖아요.”
‘내 역할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그는 과학만큼이나 좋아하지만 한참이나 미뤄두었던 ‘픽션 쓰기’에 도전한다. 그렇게 나온 책이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다. 과학적 근거 위에 쌓아 올린 8개의 픽션이 실린 책이다. 각 픽션의 앞뒤에는 ‘앞설과 뒷설’을 달아 과학적 이해를 도왔다. 그는 픽션을 통해 생각해볼 지점을 남겼다. 영원히 죽지 않는 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죽음이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한다거나, 자의식이 없는 AI만이 지구에 남아 살고 있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묘사했다. 과학기술의 장점을 알지만, ‘인간에게 영생이란 어떤 의미인가’, ‘인공지능이 정말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책에서 다룬 주제들로 한참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다가, 원 작가는 앞으로 120세까지 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0년을 산다는 게 결코 우리가 상상하는 120세의 모습으로 죽는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천천히 늙는다는 뜻이죠. 안티에이징의 연구 속도가 어마어마해요. 쥐 실험에서는 실제로 노화를 역전시키기까지 했어요. 쥐를 젊게 만든 거죠. 만약 사람에게 적용된다면 우린 정말 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인류는 그런 기술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길게, 더 젊게 살 거예요. 좋게 말하면 많은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고요. 문제는 그 시간의 지루함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죠. 그러니 그동안 어떻게 살 것인지 물을 수밖에요.”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인간은 언젠가 죽지 않을까.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웰다잉’(Well-dying) 개념이 나오는 이유다. 그에게 웰다잉에 대해 묻자 특유의 유머가 나왔다. “웰다잉의 반대는 배드 리빙 앤드 다이(Bad Living & Die)일 텐데요. 안 좋게 오래 살다가 안 좋게 죽는 거죠.(웃음) 모두가 느끼는 공포일 텐데요. 웰다잉에 대해서는 시야를 조금 더 넓고 멀리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지금 50대니까 7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고 남은 생을 생각할 때는, 현재가 아니라 20~30년 뒤의 세상을 생각해야 해요. 그때는 또 얼마나 기술이 발전해 있겠어요? 연금, 기본소득 같은 개념도 오늘의 관점이 아니라 문제가 닥칠 미래 시점에 어떤 기술, 과학 등이 주변에 있을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야 해요. 사회는 거기에 맞춰 재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또한 AI나 로봇의 발전이 제 역할을 다한다면 노화를 눈치 보지 않는 노년기를 보낼 수 있을 거라 상상했다. 원 작가의 아버지는 올해 94세다. 지난해만 해도 정정했던 분인데, 올해 들어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자식들이 돌봄을 자처했지만 아버지는 오로지 어머니의 돌봄만을 허락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나이도 87세. 노노(老老) 케어다. 결국 요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버지가 ‘남의 손길’을 받아들이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일 거라 생각한다.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수용자’가 되는 거잖아요. 이럴 때 AI, 로봇, 기계가 충실히 역할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로봇 앤 프랭크’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상황이 아주 잘 나타납니다.” ‘로봇 앤 프랭크’는 따분한 전원생활을 하는 프랭크에게 아들 헌터가 ‘VGC-60L’이라는 로봇을 보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인간을 돕는 가정용 로봇이 보편화된 미래를 그렸다.
“상상을 해볼까요. 노인들은 아침잠이 없어 3, 4시면 일어나죠. 아무리 가족이 나를 잘 챙겨도 새벽 3시에 밥을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로봇은 항상 곁에 있고 부르면 원하는 걸 해결해줘요. 그렇다고 뒷말을 할 걱정도 없고요. 내가 돌봄을 받는데 눈치를 안 봐도 된다는 게 굉장히 큰 부분이에요. 심지어 그냥 만사가 귀찮아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꺼버리면 돼요. 로봇의 내면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적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생긴다는 거죠.”
과학이 어디까지 왔는지, 그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이런 과학기술을 누구나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영생을 주는 기술이 나왔을 때 10억 원이 넘는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는 거예요. 소위 빈익빈부익부라는 양극화 개념이 단순히 건강이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까지 이어지는 거죠. 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는 거니까요. 그런데 저는 사회를 낙관적으로 봐요. 유동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물론 서브프라임 사태라든가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중간중간 에러가 생기지만, 인류는 모두가 죽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게끔 조직된 생명체입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초연결 시대에 인류는 하나의 유기체가 되었죠. 인류는 공도동망(共倒同亡)하진 않을 거예요. 그러려면 결국 기술은 가장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될 겁니다.”
스스로 일궈놓은 나만의 세계
노화를 늦출 수 있다면, 정말 120세까지 살게 된다면, 50세에 은퇴해도 70년이라는 세월을 더 보내야 한다. 살아온 시간 이상을 보내야 할 이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원 작가는 ‘나만의 세계를 꼭 일구시라’ 당부했다.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나이가 120세여도 신체는 50세일 수 있죠. 그러면 그 사람은 50세의 능력치로 일하면 돼요. 노인이 많아진다고 무조건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겠죠. 과학기술이 이런 성과를 낸다면 사회는 그에 맞춰 움직일 거예요. 노화로 인해 일하지 못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 겁니다. 다만 그 기술이 적용될 때까지 우리는 늙어가잖아요. 이 시기를 살아갈 시니어들은 내가 경제적으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그 시간을 살아갈 내가 일궈놓은 세계가 있어야 해요.”
뭐라도 좋다.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는 악기 연주를 적극 추천했다. 오랜 시간 기타를 연주한 그의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내가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을 해보세요. 남이 알아주고 몰라주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악기는 손가락이 고장 나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면 계속 늘어요. 어제보다 낫고, 내일 되면 오늘보다 낫습니다. 마흔이 넘은 친구가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를 칩니다. 그러니 좀 더디게 늘겠죠. ‘이걸 계속할까?’ 묻더라고요. 무조건 하라고 했어요. 20년 뒤에는 동네에서 피아노를 가장 잘 치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거라고요. 피아니스트 될 거 아니잖아요.(웃음) 무엇보다 스스로 연주할 수 있는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게 중요한 거죠.”
그 역시 음악을 다시 해 앨범도 내고 연주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안 되어도 그만이다. 그저 그 과정이 좋다고. 하루를 계획하며 살지 않는다곤 했지만 꿈이 궁금했다. 그의 꿈은 ‘세계 평화’다. 무언가를 꿈꿔야 한다면 ‘무엇이 되겠다’가 아니라 ‘흑인과 백인이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가치’를 꿈꿨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오늘도 그는 농담처럼 거대 담론을 던진다.
귀촌(歸村), 촌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 보통은 도시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지방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귀촌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역에 살지 않고도 귀촌한 것처럼 그 지역에 참여하는 새로운 인구가 나타났다.
지역과 마음이 이어지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누군가와 마음이 이어지든, 관계인구는 그렇게 지역의 무엇과 엮인다. 열렬한 응원이든, 묵묵한 응원이든 지역에 관심을 갖다가 물들듯이 자연스럽게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그들은 또다시 지역의 느슨한 연결자가 된다.
1. 서동민 가가책방 대표
‘언젠가 책방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채, 여느 직장인처럼 서울에서 책을 추천해주는 회사에 다니던 서동민 대표. 독서 모임으로 알고 지내던 권오상 대표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는 소식에 공주에 내려왔다가 이곳에 책방을 열게 됐다. 6개월 동안 공주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2019년 6월 무인 책방 ‘가가책방’을 열었다. 동네 곳곳에 버려진 재료들을 모아 손수 책방을 꾸몄다. 젊은 청년이 무언가를 뚝딱거리자 옆집 무궁화회관 사장님은 ‘밥은 먹고 있느냐’며 식사를 챙겨주기도 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오며 가며 ‘동네 어디에 가면 물건이 있다’고 알려줬다. 알음알음 가가책방을 찾은 사람들은 ‘나만의 비밀 공간이 생긴 기분’이라며 ‘부디 오랫동안 운영해달라’고 편지를 남겼다. 책방을 운영하며 동네 가이드 일을 하던 서 대표는 2021년 2월 ‘마을스테이’의 안내소 역할을 하는 ‘가가상점’을 두 번째로 열었다. 그의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를 통해 공주와 연결된다.
2. 천재박·김현정 부부
천재박 대표는 ‘쌈지농부’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7년을 일했다. 아내 김현정 대표는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에서 브랜드 제품 기획 일을 오래 했다. 천 대표는 2018년 ‘농부가 우리 사회의 공유 자산’이라는 의미를 담은 ‘어프로젝트’라는 회사를 차렸고, 농업회사법인 ‘어콜렉티브 그레인’을 세워 우리나라의 장을 연구하는 일을 해왔다. 공주가 고향이었던 김 대표는 2018년 아버지 생신 잔치할 곳을 찾다가 봉황재를 우연히 알게 됐고, 원도심에서 하루를 묵었다. 오래된 역사를 담고 있는 원도심에 반해 2020년 봄, 집을 보지도 않고 매물로 나온 한옥집을 매입해 U턴했다. 이곳에서 부부는 우리 곡물이 가진 가능성을 탐구하는 카페 ‘곡물집’과 ‘곡물 연구소’를 운영한다. 한 편에는 ‘데시그램북스’라는 책방도 있다. 김 대표의 친구가 운영하는 문학 전문 서점이다. 두 사람은 곡물과 문학이 가진 느슨한 연결 지점을 가지고 ‘식경험디자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3. 김광호 마을건축가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건축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났던 김광호 마을건축가. 프랑스에서 18년 정도 살다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삼성 계열사의 건축소장으로 일하던 때 ‘전국이 나의 현장이라면 꼭 서울에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공주, 부여 등 여러 도시를 둘러보았는데, 도시와 교통이 잘 연결되어 있으면서 1500년이 넘는 역사가 서린 공주가 살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0세로 접어들면서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며 살아도 짧다’며 삶의 방향을 정리했다. 공주에 살 곳을 알아보다가 100년 역사를 가진 노인회관을 매입했는데, 막상 집으로 사용하려니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권오상 퍼즐랩 대표를 알게 됐고, 이들이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듣게 됐다. 그들의 가치관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김 건축가는 노인회관을 10년 동안 무상 임대해주었다. 지역사회에 내려와 기반을 잡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편하려면 내 주위가 편해야 한다’는 프랑스 친구들의 말을 전하며, 지역사회가 잘되어야 나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ㆍ김광호 마을건축가 인터뷰
Q 귀촌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
A 아파트는 제외했다. 그러니 신도시는 당연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긴 세월 동안 주거지로 검증된 지역을 찾았다. 몇십 세대에 걸쳐 사람이 늘 살던 곳들이다. 집은 오래됐겠지만, 고쳐 살면 되니까. 공주는 역사에 나온 것만 해도 천 년이 넘어가니 딱 좋았다. 공주에서 현재 사람이 더 많이 사는 곳은 북쪽 신도시인데, 과거 수도였던 웅진이라는 곳은 공산성을 끼고 있는 공주 원도심이다. 사실 전원의 조건을 다 갖춘 집이라면, 도심 한복판에서 도시의 편리함도 누리고 전원도 즐기는 게 가장 좋다. 심야에 슬리퍼 신고 편의점에 갈 수 있다는 게 도시의 좋은 점 아닌가.(웃음) 공주나 부여 규모의 지역이라면 전원의 맛도 있으면서 도시가 주는 혜택도 누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생활권이 수도권에도 있으니, 교통이 가장 편한 공주를 택했다.
Q 귀촌을 한 이유가 궁금하다.
A 건축은 문화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랑스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철저히 수도에 모든 게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서울을 떠나면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집 앞에 미술관이 있는 곳에서 가질 수 있는 무형의 어떤 권리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내 나이 60이 되면서 삶의 방향을 정리한 게 있다. 앞으로 길어야 20년 아니겠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며 살아도 시간 짧겠더라. 아마 젊었으면 쉽게 서울을 떠나지는 못했겠지.(웃음) 나이가 들고 한 분야의 일을 오래 하면 모든 걸 쫓아다니지 않아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방향성도 많이 좁혀질 테고. 그렇다면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Q 지역에서 마을을 만들어가는 청년들에게 무상임대를 해주었다고 하던데..
A 내가 살 집을 찾다가 노인회관을 소개 받았다. 이 건물을 잘 고쳐봐야겠다 했는데, 막상 내가 원했던 집의 구조가 아니었다. 그런데 집이라는 게 쉽게 사고 팔고 하기가 어렵지 않나. 그러다가 퍼즐랩에 권오상 대표를 알게 됐는데, 이들이 원하는 공간으로 노인회관이 적합했다. 어차피 나는 쓰지 않을 공간이니 그들이 필요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나도 그 안에서 무언가 해보고자 했다. 지역사회에 내려와 기반을 잡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의 좌충우돌하는 시간이 잘 적립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복지 제도가 잘 되어있는데 열심히 일하고 떼어가는 세금을 보면 그들도 허탈해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내가 편하려면 내 주위가 편해야 한다."고 하더라. 내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가 편해야 나도 행복하다.
Q 새로운 지역에 녹아드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먼저 귀촌한 사람으로서 팁을 준다면?
A 조급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것에 적응하려다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우린 시간이 없지 않나.(웃음) 건축과 비슷하다. 특히 지방에 정착해 활동할 때는 거기에 맞는 정도의 건축, '적정 건축'이라고 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설계다. 한정된 예산으로 어디까지 고치고 어떻게 손을 대야 할까 고민하는 거다. 너무 지나치게 다가가고 가까워지는 것 보다, 어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지역을 온전히 느끼며 소소한 일상을 만끽하는 여행, 한달살기가 인기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활성화를 유도하고, 숙박업체는 장기 임대 상품을 선보인다. 한달살기를 하고 싶은 중장년이라면 이번 기사를 참고해 계획을 세우고, 당장 떠나보자.
중장년 10명 중 8명은 ‘장기간 살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한달살기는 중장년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중 하나지만, 막상 떠나려니 어디에서, 어느 정도의 비용으로,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이들이 많다. 자유롭게 떠나도 되지만,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이 익숙한 중장년이라면 프로그램으로 첫 한달살기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지원해 활동비를 받으며 한 달을 보낼 수도 있고, ‘작가로 한달살기’처럼 테마가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호텔에서 한달살기도 하나의 방법이 됐다. 조금 더 알찬 한달살기를 위해 입문이 되어줄 프로그램, 숙소를 찾을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 한달살기 꿀팁이 가득한 도서까지 참고가 될 내용을 소개한다.
◆한달살기가 처음이라면
많은 중장년이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하는 곳은 제주다. 하지만 제주 외에도 한달살기에 적합한 다양한 도시들이 있다. 어느 도시가 좋을지 모르겠다면, 한달살기를 지원해주는 각 지자체 프로그램을 참고해보자. ‘남도에서 한 달 여행하기’, ‘경남에서 한 달 여행하기’ 등이 대표적이다. 예산을 지원하다 보니 조건이 까다로울 수 있지만, 기회와 혜택을 생각하면 도전해볼 만하다. 각 지자체는 지역의 특색을 담은 명소나 특산품 혹은 농장 체험 등의 다양한 여행을 제안하는데, 만약 프로그램 신청이 어렵다면 지자체의 추천을 참고해 자유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달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면 3박 4일이나 일주일부터 시작해도 된다. 지자체별로 지원하는 예산 범위와 신청 조건, 신청 시기가 다르므로 미리 알아두면 좋다. 예산 지원은 사전 지급이 아닌 사후 정산이라는 점 참고하자.
◆마을과 깊게 교류하는 한달살기
지역 주민들과 교감하고 머무르는 지역에 깊이 녹아들고 싶다면 ‘마을 호텔’ 형태의 도시에서 한달살기를 해보자. 한 건물에 라운지, 숙박, 헬스, 식사 등의 서비스가 모여 있는 호텔과 달리, 마을호텔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 기능을 한다. 마을 입구의 카페가 안내데스크 역할을 하고, 마을의 맛집이 다이닝 역할을, 곳곳의 공방 등이 체험 서비스 역할을 한다. 그러니 마을 전체가 곧 즐길 거리다.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건 덤이다. 관광형 한달살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한달살기를 찐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마을호텔은 어떨까.
ㆍ공주 마을스테이 ‘제민천’ 공주 제민천은 주민들이 유기적으로 마을호텔을 구성하고 있다. 한옥스테이 ‘봉황재’에서 시작하는 마을호텔의 프런트는 ‘가가상점’이 담당하고, 커뮤니티이자 로비 역할은 ‘반죽동247’ 카페가 하고 있다. 봉황재 외에도 ‘공주하숙마을’ 등의 고즈넉한 한옥스테이가 곳곳에 위치하며, 제민천을 중심으로 마을 곳곳에 먹거리와 볼거리가 숨어 있다.
ㆍ강원도 정선 ‘마을호텔 18번가’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마을호텔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고한읍의 낙후된 폐광촌에 고한18리 주민들이 힘을 모아 조성했다. 빈집을 리모델링한 숙소에 머무르면 마을식당, 카페, 사진관, 이발관 등에서 사용 가능한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마을회관은 로비 역할을 한다. 마을을 둘러보다 쉬어가도 좋고, 어르신에게 볼거리를 물어봐도 좋다.
ㆍ군산 ‘후즈데어’ 군산 영화동에서는 ‘영화장’이라는 오래된 목욕탕과 여관이 게스트하우스로 재탄생 한 ‘후즈데어’에서 마을호텔이 시작된다. 프런트 역할은 영화타운에 있는 미국 음식점 ‘럭키마케트’가 담당한다. 스페인 레스토랑 ‘돈키호테’, LP바 ‘해무’, 청주바 ‘수복’ 등이 모여 있는 영화타운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유명한 군산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ㆍ서울 ‘서촌유희’ ‘서촌유희’는 오래된 한옥과 옛길의 흔적이 골목 곳곳에 녹아 있는 동네의 개성 넘치는 가게들을 연결하고, 걷기 좋은 골목과 장소를 제안한다. 서촌유희의 한옥 숙소는 휴식을 취하며 나를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책으로 미리 챙기는 한달살기 ‘꿀팁’〉
1_여행 말고 한달살기
저자 김은덕, 백종민 출판 어떤책
한달살기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이드북. 장기 여행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꿀팁이 가득하다. 특히 해외에서 한달살기를 해보고 싶다면 상황별·계절별 추천 도시들을 보고 나에게 맞는 나라를 찾아보자.
2_60대 부부의 피렌체와 토스카나,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 소도시 한 달 살기
저자 김영화 출판 바른북스
한 도시에 머무르며 주변 소도시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운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책. 대중교통을 이용해 유럽을 둘러볼 방법을 소개한다.
3_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
저자 배지영 출판 시공사
일하며 한달살기, 은퇴 후 한달살기, 반려동물과 한달살기 등 나의 상황에 맞는 계획을 세우기 좋은 책. 국내에서 한달살기를 했던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떠나고 싶어진다.
◆호텔에서 한달살기
‘호텔에서 보내는 바캉스’라는 의미의 ‘호캉스’가 유행하더니 ‘한달살이’ 상품도 등장했다. 깔끔한 공간과 다양한 부대 서비스로 중장년에게 인기가 많다. 즐길거리가 많은 도심에서 일상을 만들어가는 한달살기를 하고 싶다면 호텔에서 머물러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격은 천차만별. 롯데호텔이 내놓은 ‘한 번쯤 꿈꾸는 호텔에서의 삶’을 주제로 한 시그니엘 서울 한달살기는 1000만 원이 넘는다. 신라스테이, 포포인츠바이쉐라톤, 롯데시티호텔 등은 100만~200만 원대에 이용할 수 있다. 호텔별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다르니 취향에 맞게 골라보자.
◆주제가 있는 한달살기
하나의 주제를 정해 한달살기를 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만 19세 이상 60세 이하인 작가들의 한달살기를 지원하는 ‘묵호등대마을 논골담길 한달살기’, 제주 시골집에서 보내는 어른의 방학 콘셉트의 ‘제주맥주 한달살기’, 다른 지역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살아보는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함께하는 ‘강원도관광재단 워케이션’, ‘제주 세화리 질그랭이 워케이션’ 등이 있다.
〈쉼이 되는 공간, 숙소 찾는 플랫폼〉
한달살기에서 중요한 건 머무르는 공간이자 생활을 하는 숙소다. 장기 숙박 상품을 모아둔 플랫폼에서 살고 싶은 숙소를 찾아보자.
ㆍ미스터멘션 ‘쉼’을 제안하는 장기 숙박 플랫폼. 한달살기, 보름살기, 일주일살기에 맞춰 전국의 숙소를 볼 수 있다. 추천 숙소, 호텔, 프라이빗한 곳,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곳 등 다양한 테마가 다양하다. 개인이 숙소를 예약했다가 일어날 수 있는 ‘이중 계약’, ‘당일 입실 거부’ 등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 100만 원까지 숙소 비용을 보장하는 안전거래제도가 있다.
ㆍ호텔에삶 한달살기를 할 수 있는 호텔만 모았다. 저렴한 3성급부터 5성급 프리미엄까지 서울, 수도권, 경상, 제주에 있는 호텔 숙박 정보가 있다. 호텔을 예약하기 전 미리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매월 할인 프로모션도 있으니 원하는 도시의 호텔 가격을 비교해보고 합리적인 호텔 라이프를 즐겨보자.
ㆍ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는 숙박 공유 서비스다. 전문 숙박업체가 아니라 개인이 제공하는 빈집을 빌리는 개념이기 때문에 공간 상태도 천차만별이고 숙박업체와 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신 저렴한 숙소를 구할 수 있다. 장기 숙박이라면 할인 제안도 해볼 수 있다. 특히 해외는 에어비앤비가 활성화되어 있어 잘 둘러보면 좋은 집을 구할 수 있다. 숙소 선택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슈퍼호스트’가 제공하는 숙소 위주로 보고, 해당 숙소의 후기와 별점을 참고하는 게 좋다.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언제나 그렇듯 추모공원 입구에 차를 세웠다. 1년마다 어김없이 해온 일이다. 특별히 나들이 철도 아니고 성묘객이 몰리는 명절도 아닌데 길이 막히는 것이 짜증스러웠지만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내색조차 못 했다. 평소에는 앞차가 시야를 가리고 브레이크를 자주 밟게 되면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내뱉곤 하지만 아내의 성묫길에는 교통체증에도 입을 꾹 다문다. 옹졸한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늘 통 큰 남편인 척하는 것도 솔직히 지겹다. 아내는 내가 통 큰 척하고 있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내가 통이 크든 작든 아내에게는 아무 상관도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내가 왜 이래야 하나. 벌써 20년째다. 이제는 그만둬도 되지 않나. 그런데 왜 나는 아내에게 이제 그만둘 수 없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걸까.
“조심해서 다녀와. 같이 갈까?”
“아니에요. 혼자 갈게요. 운전해줘서 고마워요. 쉬고 계세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무거울 텐데… 제수(祭需)만 들어다주고 난 내려올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 늘 하던 일인데요, 뭐.”
그래, 늘 하던 일이지. 20년을 한결같이. 추모공원 앞에서 나누는 우리의 대화도 늘 똑같고. 그런데 왜 오늘따라 짜증 나고 답답하고 억울한가 말이다. 아니 억울할 것까진 없지만.
전남편 제사 지내는 아내
아내와 나는 20년 전에 재혼했다. 아내와 나 둘 다 30대 중반에 배우자와 사별했다. 혼자 지낸 지 3년쯤 지나 지인의 소개로 만났을 때 동병상련이 서로의 마음을 움직였다. 당시만 해도 이혼보다 사별이 재혼에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사별은 불가항력이니까. 그러나 이혼은 선택이니 사정이야 어쨌든 자기주장이 강하고 드센 사람이란 인상을 준다. 특히 여자에게는.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보수적이라고 비난해도 하는 수 없다. 어쨌든 나는 그랬다.
혹자는 이혼은 자기 의지로 관계를 끊었기 때문에 전 배우자에 대한 미련이 더 이상 없지만, 사별은 생전에 사이가 나빴던 부부조차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이유로 애틋한 환상에 빠져 없던 사랑도 만들어내서 내내 잊지 못한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아내의 경우가 그랬던 것이다.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매해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그럼 나는?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때 죽은 아내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리고 이따금 꿈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냥 그뿐이었다. 아이들 엄마로서 아이들을 볼 때 떠오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 내 삶에서는 이미 떠나간 사람이었다.
아무튼 재혼 상대로 나온 여자가 전남편과 사별했다는 것이 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결혼 전 아내가 들고 나온 약간 이상한 조건도 상대에 대한 나의 호감을 더했으면 더했지 감하지는 않았다. 그 조건이란 재혼을 하더라도 전남편의 기일을 지키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건 아니고 성묘를 가고 싶다고 했다.
죽은 사람 못 이기는 산 사람
아내가 좋았기 때문에 무슨 부탁을 해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제안을 할 줄이야! 그토록 지고지순한 사람일 줄이야! 세상 떠난 남편에게 그 정도의 순정이라면 살아 있는 내게는 얼마나 정성스러우랴. 죽은 남편을 못 잊어 하는 것은 남이 들어도 그 자체로 칭찬받을 갸륵한 마음씨 아닌가. 그런 여자를 흔쾌히 받아들인 나는 더 넓은 마음씨의 소유자고. 이 모든 것이 나의 상상 속 이야기이자 착각이었다 해도 나는 통 큰 남자가 되기로 하고 그렇게 해온 지 20년째다. 그랬던 내가 뒤늦은 심술이 동한 것일까. 설마 죽은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일까. 왜 내 심사가 이리 꼬이냔 말이다. ‘죽은 남편을 죽도록 사랑했나 보지. 그렇다 해도 세월 앞에 장사 있나. 몇 년 그러다 말겠지.’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먹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랬다면야 예상이 빗나간 게 약올라서 심통을 부릴 수도 있겠지만.
아내는 왜 전남편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전남편과 산 기간보다 나와 함께 산 기간이 두 배나 긴데도. 세월조차 지우지 못하는 둘의 추억은 무엇일까. 물론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걸 물어볼 정도로 얼간이는 아니다. 자존심이 있지. 그렇다고 아내와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 둘은 잘 지낸다. 둘 사이에 자녀는 없지만 재혼할 때 각자 데리고 온 남매들끼리도 무난하게 잘 지낸다. 이젠 모두 성인이 되어 자주 만날 일이 없지만 나도 아내도 내 자식, 네 자식 나눠서 서운한 마음이나 갈등을 겪은 일이 없다. 오히려 상대의 자녀들을 서로 잘 챙긴다.
우리는 건강한 편이며 돈도 아주 없지 않고 주변의 관계도 원만하다. 이만하면 노후를 대비해 부족함 없는 복 받은 중년 부부다.
문제는 아내의 전남편이다. 전남편이 우리 사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니, 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허,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죽은 사람이 산 사람 일에 끼어든다고? 하긴 산 사람은 결코 죽은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아내는 죽기 전까진 ‘저 짓’을 그만둘 의향이 없는 듯하다. 저러다 내가 먼저 죽으면 아내는 내 제사는 안 지내고 저 인간만 챙기는 거 아냐?
아내가 전남편을 못 잊는 이유
아내의 전남편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늦은 밤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었다고 했다. 빨간색 보행자 신호등에서 건너간 남편 쪽 과실이었다고. 딴생각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아니면 자투리 초록 신호등에서 무리하게 뛰어 건너다 변을 당한 것일지도. 남편은 즉사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재혼 후 5년쯤 되었을 때 아내의 친구에게서 사고 당일 밤 부부가 크게 다투었다고 들었다. 화가 난 남편은 술이라도 마실 생각으로 집을 뛰쳐나간 것 같은데 진정되지 않은 마음에 보행자 신호등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 같다고.
그러면서 아내의 친구는 그 순간은 일부러라도 차에 뛰어들어 죽고 싶지 않았겠냐는 야릇한 여운을 남겼다. 아내의 전남편이 죽고 싶을 정도로 격렬했던 싸움의 원인은 뭐였을까. 내 얼굴에 어쩔 수 없는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의 친구는 당시 아내가 잠깐 한눈을 판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아내의 외도 사실이 남편 귀에 들어가 부부가 대판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구태여 내게 말하는 이유를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고 말았다. 그 사실 자체로 불쾌했고, 무슨 속내인지는 몰라도 친구의 치부를 폭로하는 그 여자에게도 불쾌했다. 안달이 난 쪽은 아내의 친구, 그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 입을 더 이상 열게 하지 않았다. 불쾌를 넘어 불안했다. 아내에 대해 내가 모르는 무슨 말이 더 나올까 싶어서.
그냥 아내에 대한 시기 질투로 이해하기로 하고 마음을 정리했다. 그 친구는 아내가 사별한 비슷한 시기에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안정된 재혼 생활을 하는 아내가 부러울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더구나 캐묻고 싶지 않았다. 물론 아내는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모른다. 자존심을 지켜주고 오히려 아내를 이해하는 쪽으로 작용한 나머지 전남편의 기일 성묘를 이제 그만둘 수 없냐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영혼은 누구에게?
그랬다. 지난번 결혼에서 아내는 남편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의식으로 20년간 남편의 기일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에, 그것도 아름답지 않은 일에, 따라서 보람도 없는 일에 나까지 발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남들이 이 일을 알면 나를 바보라고 할 테지. 무엇보다 저 여자는 너무 뻔뻔하지 않나. 아무리 내가 허락했고 약속했다고 해도 20년을 한결같이 그의 기일을 챙기고 있으니. 나를 무시하고 깔보는 마음이 없고서야 미안해서라도 스스로 알아서 그만뒀어야 하지 않나.
더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성묘에 참여시키지 않고 있다. 나를 위한 배려라고 하지만 현 남편인 나를 전남편에게 한 번쯤 인사를 시켜줄 법도 하건만. 이쯤 되면 전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갖겠다는 심사가 아니고 뭔가. 아내는 죽은 남편의 묘 앞에서 매해 무슨 말을 할까.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또 사과하며 용서를 비는 걸까. 만약 그날 그 사고가 없었다면 저 사람이 아닌 당신과 해로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눈물을 찍어내는 걸까. 그나저나 조신한 아내가 어쩌다 그런 실수를 저질렀을까.
자동차 사이드미러 저 멀리서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는 아내가 보인다. 가까워올수록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이 드러난다. 아까 올라갈 때의 스산한 표정이 아니다. 상념에서 깨어나, 시동을 걸어놓고 아내의 손에 들린 제사 음식 보따리를 받아들기 위해 차에서 내린다. 이제 아내는 다시 내게로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내가 차지하고 산 건 아내의 몸뚱이뿐이고 아내의 영혼은 늘 저곳, 저 남자에게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니 몸조차 거기에 있고 지금 내게 오고 있는 여자는 아내의 모습을 한 허깨비가 아닐까. 내 아내는 여전히 묘 앞에서 전남편과 도란도란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건 아닐까.
✽브라보 마이 러브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사실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곳의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되면 그곳이 떠오른다. 바로 국립서울현충원이다.
6월을 앞둔 어느 날, 국립서울현충원에는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위로하듯 이팝나무꽃이 흩어져 내렸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슴이 아려지는 그곳에서 김수삼(57) 현충원장을 만났다.
김수삼 원장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행시 40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국방부 군수기획과장, 직무감찰담당관, 기획총괄담당관, 국제군수협력과장, 기획관리관 등을 역임했다.
국립서울현충원도 국방부 소속이다. 김수삼 원장은 지난 1월, 제23대 국립서울현충원장으로 취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별도의 취임식을 치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TV에서 그를 볼 기회가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후와 5월 10일 취임식 때 현충원을 찾아 참배했기 때문. 김 원장은 “TV에서 저를 봤다며 반가워하는 지인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현충원장에 취임해 책임감을 느끼고 걱정도 많았는데요. 무사히 치를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어요.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들이 선거를 치르거나 당선될 때 현충원을 가장 먼저 찾는 것을 보고 정말로 중요한 곳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국민이나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도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목숨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의 중요성을 느끼고 자주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국을 위한 선열들의 장소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 현충탑에 새겨진 글귀
서울 동작구에 자리한 국립서울현충원은 휴전 2년 후인 1955년 설립된 국군묘지가그 뿌리다. 6·25전쟁에서 전사·순직한 군인들을 안장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후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5년 국군묘지에서 ‘국립묘지’로 승격됐고, 군인이 아닌 순국선열 및 국가유공자 안장도 가능해졌다. 이어 1996년 국립현충원, 2006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름을 확정했다.
김수삼 원장은 “국립서울현충원은 조국의 독립과 수호, 발전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해 계시는 민족의 성역이다. 국난을 극복해온 민족의 얼과 호국 의지, 나라 사랑 정신이 가득 서려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총면적은 약 44만 평이며, 네 분의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총 18만 7000여 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모시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국립대전현충원은 1985년 건립됐고, 국립연천현충원은 2025년 건립을 목표로 준공 중이다. 김 원장은 “서울현충원, 대전현충원, 연천현충원은 모두 같은 위상을 가진 국립묘지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서울, 대전, 연천현충원에 안장되는 대상자를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립서울현충원은 국방부 소속이고, 대전과 연천현충원은 국가보훈처 소속이다.
김수삼 원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강조하며,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이 갖는 역사적인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의미 있는 곳의 원장으로 반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그의 소감은 어떨까.
“올해 1월 국립서울현충원장에 취임해 현충탑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참배를 드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상반기가 다 지나갔네요. 처음 참배를 드릴 때 현충원장으로 취임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한편,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느꼈습니다. 제가 당시 다짐한 것이 있어요. 장례와 추모 행사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와 엄중한 코로나19 상황 등에 맞춰 보다 체계적이고 품격 높은 안장 및 참배·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공자 및 유가족들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기 위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좀 더 노력하겠다는 것입니다.”
김수삼 원장은 최고의 예우를 다하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설 명절 때 유가족을 대신해 직원이 참배드리고 이를 사진 찍어 전송해주는 ‘설맞이 참배 대행 서비스’를 실시했다. 또한 유가족의 편의를 위해 참배용 사다리 및 참배용 원목 의자를 비치했고,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던 셔틀버스 운행도 시작했다고.
김 원장은 취임 후 가장 뜻깊었던 일로 지난 4월의 ‘제2충혼당 개관’을 꼽았다. 제1충혼당은 영현 2만 468위를 모신 후 2020년 7월 만장됐다. 제2충혼당은 2018년 착공돼 올해 4월 13일 완공됐다. 제2충혼당에는 3만 2952위를 추가로 안장할 수 있다.
“제2충혼당 건립을 통해 유공자분들을 최고의 시설로 모실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나라 사랑 및 호국 정신을 후대에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제2충혼당 개관식에서 배우 신현준 씨가 사회를 봐주셨고, 가수 진미령 씨가 추모시를 낭독해주셨습니다. 두 분 모두 이곳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유공자의 후손입니다. 행사 며칠 전에 갑자기 부탁드렸는데도 기꺼이 다른 일정을 조정하고 참여해주셨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유해 발굴 및 확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에는 6·25전쟁 당시 전사한 사실은 확인됐으나 유해를 찾지 못한 이들의 위패가 10만 3000여 위나 있다. 김수삼 원장은 “현재도 이분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유해 발굴 사업이 꾸준히 진행 중이지만 발굴된 유해 중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호국용사는 극소수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위쪽에 있는 무후선열제단에도 134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구한말 의병 활동 및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분들 가운데 유해를 찾지 못하고 후손이 없는 선열들의 위패다.
그러나 안장되어 있고 유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음에 따라 유가족이 꾸준히 현충원을 찾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 그 원인은 거주 지역이 멀어서 일 수도 있고, 가족이 달라지거나 건강 상태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분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에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때문에 기혼자가 적어 후손이 없거나, 남은 유가족 대부분이 형제나 조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묘역을 찾는 유가족이나 친지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점점 쓸쓸한 묘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선열의 희생에 감사하며 ‘내가 후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쓸쓸한 묘소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죠.”
현충원, 국민 속으로
일반 국민에게 ‘현충원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나?’, ‘실제로 현충원에 가본 적이 있나?’라고 물어보면, 현충원 근처에 사는 서울시민이나 견학을 가본 경우가 아니라면 스스로 현충원을 찾아가 봤다고 답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보통 TV를 통해 6월 6일 현충일 행사를 보면서 국립서울현충원을 접한 경우가 대부분일 터. 그렇기 때문에 현충원은 정부 관계자나 유공자의 후손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원래는 국립묘지였기 때문에 매우 엄숙한 공간이라고 느껴진다.
김수삼 원장 역시 ‘일반인이 현충원에 들어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현충원이 무겁고 어려운 이미지가 아닌 국민과 함께하는 열린 호국공원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특히 44만 평의 국립서울현충원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김 원장은 “봄에는 아름다운 수양벚꽃, 여름에는 이팝나무 가로수길, 가을에는 현충원 둘레를 잇는 은행나무길이 아름답다”면서 “이와 더불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과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가슴 깊이 간직할 수 있는 뜻깊은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수삼 원장의 말대로 국립서울현충원은 아름답고 뜻깊은 곳이다. 현충원을 걷다 보면 느껴지는 감정도 많을 것.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근무 환경이 좋아서 오래 일하고 싶다”는 김 원장은 현충원의 명소로 현충천과 현충지를 추천했다.
“현충원에 천이 있다는 것을 아는 분이 많지 않은데요. 현충천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사시사철 다양한 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고기들도 많고요. 현충지는 조그마한 연못으로 가만히 앉아서 사색하거나 소위 ‘멍때리기’ 좋은 곳입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시기도 하는데요. 심지어 심신을 치유하신 분도 많아 후손들이 감사한 마음에 기증한 의자도 있어요. 저도 점심 식사 후 산책할 때 현충천과 현충지는 거의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김수삼 원장은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온·오프라인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국립서울현충원은 온라인을 통해 ‘기일 : 기억의 날’(당신을 기억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독립유공자가 서거한 달에 맞춰 업적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독립유공자 하면 어떤 분들이 떠오르시나요? 대부분은 우리가 잘 아는 김구 선생님이나 안중근 의사 같은 분들을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이분들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독립유공자들이 계십니다. 기일 프로젝트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신 독립유공자들의 업적을 국민과 함께 기억하고,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기획했습니다. 한분 한분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5월 21일에는 국립서울현충원 경내에서 호국 문예 백일장과 그림 그리기 대회를 개최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년간은 비대면으로 개최됐다. 김 원장은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라고 생각한다”면서 많은 이들의 현충원 방문을 뿌듯해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제한됐던 행사를 앞으로 적극적으로 개최하고, 시민들의 참여의 장을 넓히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수삼 원장은 재임 기간의 목표에 대해 “국민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는 열린 호국 추모공원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국민들이 언제나 편안히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호국정신을 배우며 후손들에게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수삼 원장에게 현충원장으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목표를 물었다. 그는 “곧 정년을 맞이하기 때문에 퇴직 후를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먼저 퇴직하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돈, 건강, 취미, 친구들이 있어야 노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근로소득은 정년까지 일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퇴직 이후에는 금융소득을 통해 번다는 목표로 퇴직연금, 리츠, 부동산 펀드 등을 적립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평생학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요즘 사이버 대학이 많아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한 공부를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저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며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금은 한국어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졸업하면 외국인 학습자를 가르칠 수 있는 한국어교원자격증이 부여됩니다.”
호기심이 많다. 원체 돌아다니길 좋아해 여행을 자주 다녔다. 흥미가 생긴 분야는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공부하는 아빠’, 한의사 문성택 씨는 6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을 만날수록 아쉬웠다. 식사만 잘 챙겨도 훨씬 나아질 텐데. 나이 들어서도 내 집, 집밥을 고집하는 부모님을 향한 걱정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버타운을 발견하자마자 생각했다. 이거다!
남편 문 씨가 아내 유영란 씨를 설득했다. 전국 실버타운 중 스무 군데를 추려낸 목록과 함께. 남편의 끈질김에 두손 두발 다 든 아내도 실버타운에 대해 공부하고 함께 견학을 다녔다. 벌써 6년 전 일이다. 직접 다녀보니 ‘노인들 가둬두고 막 대하는 요양 시설’, ‘현대판 고려장’ 정도의 취급이 말도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실버타운이야말로 나이 들어 고생하지 않고도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편견 때문에 노후 거주지로 고려조차 않는 게 안타까워 동영상을 제작해 올린 것이 공빠TV의 시작이다.
처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때만 해도 입주자 정원을 채운 실버타운이 거의 없었다. 이제는 실버타운마다 대기자가 수두룩하다. 입주하려면 최소 몇 달, 몇 해는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 견학을 위해 방문한 실버타운에서 ‘공빠TV’를 보고 입주를 결심했다며 반가워하는 이들도 종종 만난다. 실버타운의 이미지 제고를 이끈 주인공, 공부하는 아빠 문 씨와 공부하는 엄마 유 씨에게 실버타운에 대해 물었다.
실버타운을 고를 때 무얼 체크해야 하나?
먼저 ‘일반 아파트형’이 아닌 ‘업체 관리형’인지 확인한다. 직접 분류하고 정의 내린 개념 중 하나인데, 업체 관리형은 운영사 측에서 고용한 직원들이 상주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실버타운이다. 반면 아파트형 실버타운은 아파트와 똑같은 형태에 60세 이상만 입주할 수 있으나, 상주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이 없다. 시설만 존재할 뿐 정작 활용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일반 아파트형은 거르는 게 좋다. 다음은 보증금을 잃을 위험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전화로 전세등기를 발급받을 수 있는지, 혹은 보증보험을 들 수 있는지 꼭 물어보도록 하자. 직접 방문 시엔 직원들 수가 충분히 많은지, 태도는 어떠한지도 눈여겨본다. 그 다음으로 식사가 건강식으로 운영되는지, 시설과 프로그램 운영 현황이 어떤지 체크한다. 시설만 있을 뿐 관리가 안 되거나, 막상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실버타운 과대광고에 속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운영자에 대한 파악이 중요하다. 운영자가 누구인지, 경영 마인드가 어떠한지, 그동안 어떻게 운영해왔는지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경매’, ‘부도’, ‘파산’과 관련 있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역시 직접 방문하기다. 직원들과 입주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실버타운 내 분위기를 직접 확인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실버타운에 들어가면 안 되는 유형도 있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자신의 집과 요리를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다. 고집 센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실버타운에 일찍 들어갈수록 더 오래 살 수 있다. 자가를 갖고 매일 직접 요리하며 밥 차려먹는 게 은근 고생스러운 일이라 늙기 십상이다. 두 번째는 경제력이 약한 분들. 부부 기준 실버타운 생활비는 월 200만~300만 원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실버타운에 입주할 돈은 그렇다 치더라도, 매달 지불해야 하는 생활비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알뜰실버타운, 즉 고령자 복지주택을 추천한다. 세 번째로는 공동생활에 거부감이 있는 분들이다. 실버타운에는 공동생활 공간이 무조건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느낀 실버타운의 단점은 무엇이었나?
우선 좁다. 보통의 실버타운 전용률은 공동생활 공간을 제외하면 50% 내외다. 높아봐야 70%인데, 이마저도 많지 않으니 입주 초반에는 생활 공간이 좁게 느껴질 수 있겠다. 나이 제한도 아쉽다. 현재 실버타운 입주가 가능한 나이는 만 60세 이상이다. 또한 보통 80~85세가 넘어가면 암묵적으로 입주가 제한된다. 실버타운은 일찍 들어갈수록 건강과 비용 모든 면에서 이득이기 때문에, 노인을 위한다면 미국처럼 만 55세로 제한 연령을 낮추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 번째로는 비싸게 ‘느껴진다’는 점. 월 300만 원을 생활비로 한 번에 지출하려니 비싸게 느껴지지만, 자가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관리비, 식비, 운동 등의 취미 활동에 쓰이는 지출을 모두 합치면 크게 차이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실버타운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만 60세 이상 인구는 약 12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한다. 그런데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있는 세대는 고작 1만 세대에 불과하다. 즉 0.1%의 선택받은 사람만이 실버타운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실버타운에 대해 공부할수록 이 점이 가장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실버타운을 택해야 할 이유는?
독신과 부부 등 가구 형태와 무관하게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버타운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아예 모르고 있거나,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유튜브로 좋은 실버타운을 더 많은 어르신들에게 알리고, 입주율을 높여서 실버타운이라는 사업 자체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실버타운을 포함한 실버 사업은 사실 돈이 안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잘 운영되는 모범 사례가 생긴다면 실버타운 공급도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버타운을 이용할 예비 입주자 입장에서도 실버타운 증가는 좋은 일이다. 양질의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건 소비자에게 좋은 일이니까.
지금 당장 입주할 수 있다면 어느 실버타운을 선택하겠는가.
현재 분양 중인 롯데호텔 실버타운 1호점 VL 오시리아를 택하겠다. 고급형인 데다 막 지어진 신축 건물이고, 호텔 서비스를 제공하며 전용률도 높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비교적 저렴한 보증금으로 자연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가평의 청심빌리지, 강남에 있고 최신축 건물을 자랑하는 더시그넘하우스도 좋다. 언급한 곳들 말고도 살아보고 싶은 곳이 많아 고민이다. 빨리 60세가 되기만 기다리고 있다. 최대한 다양한 실버타운에서 직접 살아보며 이점을 누리고 싶다.
[TIP] 공빠TV가 추천하는 시니어 유형별 실버타운
부부 동반 입주형 부부가 입지와 주변 시설, 가성비, 전용률 등 다양한 요소 중 어떤 것을 기준으로 두느냐에 따라 갈린다. 가성비와 전용률 면에선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를, 입지나 대형 병원 접근성 면에서는 서울시니어스 분당타워를 추천한다. 각종 인프라가 구축된 도심에 살고 싶거나 신축 시설을 이용하고 싶다면 서울의 더시그넘하우스가 좋겠다.
무조건 럭셔리형 90식으로 환산한 의무식과 2인 가구 부부 기준으로 생활비를 따졌을 때 1위는 더클래식500, 2위가 삼성노블카운티다. 서울 2호선 건대입구역에 있는 더클래식500은 건국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시설로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한다. 게다가 건너편에 건국대병원이 있고, 주변에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이 있어 실버타운으로는 최고의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삼성노블카운티 역시 최고급 실버타운으로, 행정구역은 용인이지만 수원 영통역과 가까우며 청명산과 기흥호수를 조망할 수 있어 전원형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1인 입주형 성별에 따라 달라진다. 남성 가구에게는 입지와 가성비를 기준으로 용산 하이원빌리지, 서울시니어스 가양타워, 서울시니어스 강남타워를 추천한다. 문화 시설이나 쇼핑 시설 유무, 인테리어를 중시하는 여성 가구에게는 서울시니어스 강서타워, 성북 노블레스타워, 가평 청심빌리지가 안성맞춤이다.
가성비 추구형 보증금이나 생활비가 비교적 저렴한 전원형 실버타운이 좋다. 보증금이 저렴한 곳을 원한다면가평 청심빌리지(보증금 2000만 원), 미리내실버타운(보증금 5000만 원)이 좋다. 생활비가 저렴한 곳으로는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월 80만 원), 김천 월명성모의 집(월 90만 원)을 추천한다.
반려동물 동반형 현재 반려동물 동반 입주가 허용된 곳은 없다. 그러나 부산 오시리아의 롯데호텔 실버타운 1호점, VL 오시리아를 시작으로 신축 실버타운에서는 가능해질 것이다.
시니어(Senior)란 보통 고령자, 노인 세대를 말한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시니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요즘은 시니어 세대를 경제·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는, 2040세대의 부모 세대 정도로 여기고 있다. 반대로 꾸밀 줄 모르고 고독하게 혼자 늙어가는 꼰대라는 인식은 줄어들었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방송가에 불고 있는 시니어 열풍에 대해 조명해봤다.
지난 1일 첫 방송 된 LG헬로비전, MBN ‘엄마는 예뻤다’는 의학 패션 뷰티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해 엄마의 예뻤던 청춘을 다시 돌려주는 건강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이다. 배우 황신혜와 가수 이지혜, 장민호,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이 진행을 맡았다.
특히 황신혜로 인해 그가 과거에 진행을 맡았던 메이크오버 프로그램 tvN ‘렛미인’이 떠오른다. 이와 관련 황신혜는 제작발표회에서 “‘렛미인’이 젊은 친구들의 메이크오버였다면 이번에는 또래, 동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엄마의 인생을 찾아준다”고 차이점을 짚었다.
‘엄마는 예뻤다’는 사연 접수, 솔루션, 애프터 3단계로 구성된다. 자녀들이 엄마를 위한 사연을 보내 신청하면,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닥터스 군단’이 카운슬링부터 시니어 뷰티, 패션팁까지 사연자에게 맞는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박현우 CP는 “엄마들이 가족을 위해서만 살고 본인 삶이 없다. 그런 엄마들을 위한 건강 프로그램인데 패션, 뷰티까지 더했다. 자식들이 엄마의 사연을 신청한다”며 “대반전은 없지만 표정이 변한다. 웃음을 되찾고 당당해진다. 엄마들이 행복해지니 자식들도 자연스럽게 밝아진다. 그것이 우리 프로그램의 매력이다”고 밝혔다.
앞서 2020년~2021년에는 MBN에서 ‘오래 살고 볼일-어쩌다 모델’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바 있다. 시니어 스타일 아이콘을 찾는 시니어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장장 5개월의 시니어 모델 선발 과정은 웃음과 감동을 안겨줬다.
최종 우승은 73세의 최연장 도전자 윤영주 씨가 거머쥐었다. 윤영주 씨는 “70대를 대표해 통쾌한 기분”이라며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기쁘다. 힘들지만 짜릿한 도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와 같은 메이크오버 프로그램 외에도 시니어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 중인 혼자 사는 중년 여자 스타들의 동거 생활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7년부터 방영됐고, 현재의 시즌3에 와서 정규 프로그램으로 안착했다.
또한 시니어 연예인들의 합창단 도전기 JTBC ‘뜨거운 씽어즈’도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합창단은 배우 김영옥, 나문희를 중심으로 하며, 평균 연령 56.3세다. 김영옥, 나문희, 박정수가 고민 상담을 해주는 채널S ‘진격의 할매’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젊은 세대의 고민을 인생 경험이 많은 할매들이 듣고 매운맛 상담을 해주는 콘셉트인데 그 조언의 깊이가 달라 매회 화제를 모으고 있다. 특히 할매들의 입담은 젊은 MZ세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같은 시니어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이유는 고령화 사회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의 65세 노인 인구 비중은 17.3%다. 특히 2020년부터 2040세대의 부모 격이자 총인구 800만 명의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에 진입했다. 엄마, 아빠 세대가 고령층이 된 셈으로 노인 세대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더욱이 100세 시대에 50·60대는 사회·경제적으로 젊은 층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사회상은 ‘꼰대’가 아닌 ‘진짜 어른’을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에 시청자들은 나이가 많아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도전하면서 참된 말을 해주는 어른들을 원한다. 제작진은 그 니즈를 프로그램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