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장년 취업에 대한 지침의 상당수는 가짜 뉴스 수준입니다.” 2005년부터 한국과 미국계 전직지원(轉職支援) 회사를 통해 중장년 재취업과 인생 2막 설계 컨설팅 분야에서 입지를 다져온 돈·일·꿈 연구소 간호재(簡鎬宰·49) 소장의 일갈이다. 현재 인력수급기업 ㈜에이치알맨파워그룹에서 4050 재취업컨설팅 사업부에 소속돼 활동 중인 그는 40~50대의 재취업을 위한 제도가 빈약하고, 지나치게 단기적 성과를 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중장년들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서 ‘4050 재취업 성공의 비밀’을 통해 중장년 재취업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제시한 그를 만나 40~50대가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할 5가지 원칙에 대해 들어봤다.
소극적인 태도를 바꿔라
간 소장은 우선 퇴직 후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랜 직장생활로 굳어진 몸과 마음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조직생활은 사람을 경직시키고 수동적으로 만들어요. 특히 공기업, 대기업 출신이 더 심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직장을 원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또 원하는 직장과 새로 진출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면 스스로 알아보고 기본 조사활동 등을 해야 하는데 수동적인 태도가 발을 떼기 어렵게 만듭니다. 퇴직자들이 일자리 관련 기관에서 무턱대고 좋은 직장을 소개해 달라고 하거나, 프랜차이즈 사업에 현혹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는 현장에서 구직자들을 만나보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을 뿐, 대다수가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간 소장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라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거나 관심 분야에 대한 시장조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는 사람,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받게 돼요. 그동안 쌓아온 인맥도 도움이 되고요. 하지만 방 안에서 인터넷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넷 정보는 한계가 있다
간 소장은 “갈 곳이 없다며 푸념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만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구직자들을 만나 구직활동에 하루 몇 시간 투자하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2시간도 채 안 돼요. 중장년 구직자, 특히 공기업·대기업 출신자들은 그렇게 해선 원하는 직장을 찾기 어려워요. 그 나이의 재취업은 부장급 이상을 바랄 텐데, 중견기업도 그 정도 직급은 채용공고를 통해 선발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요.”
그가 권하는 방식은 “나를 마케팅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일을 잘할 수 있을 만한 기업을 골라 해당 기업의 임원이나 대표에게 직접 접근해보라는 얘기다.
“수십 년간 직장생활을 해왔으니, 자신이 조직에 얼마나 이바지할 수 있는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그 점을 기업이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지요. 부장급 이상 직원 채용에 관여할 만한 임원이나 회사 대표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회사에 어떤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제안서’를 보내보라는 겁니다. 물론 정성을 들여 작성해야겠지요. 특히 우편을 통해 전달된 서류는 의사결정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줍니다. 결원이 생겼을 때 자연스레 후보 대상이 될 수 있지요.”
임원 채용 시에도 자소서를 본다
그는 재취업 과정에서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십 년 전 입사해 지금까지 일만 해온 분들이라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또 성장 과정 등을 작성할 때 빈칸 채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임원 채용을 할 때 자소서를 봅니다.”
간 소장은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할 때 중요한 원칙이 있다고 했다. 바로 회사 입장을 생각하면서 쓰라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데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작성하고 마는 것이죠. 하지만 서류에 들어갈 내용은 회사가 듣기 원하는 것들이어야 해요. 자신이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데 적합한 태도와 가치관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줘야 해요. 그러려면 성장 과정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 기업에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눈높이 낮출 필요 없다
중장년 취업과 관련된 기관이나 전문가들은 구직자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조언한다. 부족한 일자리에 경쟁도 심하니 설령 낙오되더라도 좌절감에 빠지지 말고 눈높이를 낮춰 일자리 확보부터 하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간 소장은 반기를 든다. “그동안 전문성을 갖고 기업이나 기관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왔던 40~50대라면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눈높이를 낮춘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만약 최저임금 정도로 급여 수준이 낮다면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을까요? 또 연봉을 낮춘다고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연봉을 얼마나 낮출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재취업할 기업을 위해 어떻게 이바지할까를 고민하는 게 훨씬 합리적입니다.”
그는 만약 연봉을 낮춰야 한다면 그 마지노선을 전 직장의 70%로 잡으라고 조언하면서 100일 안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계획을 잡고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발적인 준비를 통해 재취업에 성공할 경우 취업 요령이 생겨 원하는 시점에 회사를 옮길 수 있는 능동적인 삶의 기틀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간 소장은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할 때 “돈부터 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돈부터 쓸 생각 버려라
“창업 업계에서 공무원, 군인, 교사 등의 퇴직자는 주요 고객입니다. 금전적 여유도 있고 돈으로 투자하는 결정을 쉽게 내리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지요. 퇴직 후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6개월 정도는 무작정 쉬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여행도 하고 취미활동을 하며 시간을 잘 보내다가 어느 날부터 주변 눈치를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취업이나 창업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무턱대고 자격증부터 따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겪게 되는 초조함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체면을 세우기 위해, 창업이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돈부터 쓸 생각을 해선 안 됩니다. 잘못된 결정으로 회복할 수 없는 경제적 타격을 입으면 남은 삶을 포기할 수도 있어요.”
창업을 하고 싶다면 자산 규모에 맞춰 실패를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고려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다. 그가 기술·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소자본 창업을 추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40~50대가 여생을 설계할 때는 일보다 삶을 우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지금의 중장년들은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요. 조직에서 오래 생활했던 사람은 의존적인 태도를 버리고 온전한 독립을 이뤄내야 하고,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책임이 끝날 때는 완전한 해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 이 시점에 이루고 싶었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도 고려 사항이 되는 것이죠. 일이 인생을 결정했던 평생직장 시대와 달리 지금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고 나서 그에 맞춰 직업을 고민해야 합니다. 충분한 사유를 통해 인생 2막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저마다 살아온 인생 속에서 ‘고수’라 불릴 만한 영역은 존재한다. 스스로 고수라 자부할 만한 재능이 있다면 좀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면 어떨까. 재야에 숨은 고수들을 널리 알리고, 고수들의 손길이 필요한 소비자를 매칭해주는 O2O플랫폼 ‘숨고’를 소개한다.
도움말 숨고(soomgo)
최근 ‘재능거래’, ‘재능마켓’ 등으로 불리며 전문가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늘어났다. ‘숨은 고수’를 뜻하는 ‘숨고’는 이러한 전문가들을 ‘고수’라 칭하며 900여 분야의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900가지라는 숫자에 놀라겠지만, ‘반려견 산책’, ‘주례’, ‘게임레슨’ 등 그만큼 소소한 영역까지 폭넓게 아우르기에 가능한 일이다.
중장년 고수들 환영합니다!
은퇴 후 경제활동을 위해 그동안의 경력이나 경험을 살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이때 회사에 입사하지 않고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 등으로 활동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고객유치를 위한 홍보비용이나 중개수수료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 ‘숨고’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수에게 수수료 차감 없는 수입을 보장한다. 게다가 온라인과 앱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홍보하면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까지 가능해 부담 없이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고수들을 선정하는 기준도 따로 정해진 것은 없다. 타 플랫폼과 다르게 소비자에게 고수들에 대한 선택과 평가를 맡기는 시스템. 덕분에 누구나 자기 노력에 따라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고수는 사회 경험이 풍부하고 오랜 경력을 지닌 중장년층. 각종 외국어 과외, 번역, 인테리어, 청소, 컨설팅, 출판 등 대부분 주요 서비스에서 시니어 고수가 주목받고 있다. ‘숨고’ 박성현 마케팅 담당자는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정도 사용하는 시니어라면 충분히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특히 은퇴 후 경제적 부담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고민했던 일에 도전하거나 창업 전 소규모 비즈니스를 시험해보기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고수들의 공통점 ‘경험×노력’
‘숨고’를 통해 고수로 활약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거 청소의 고수 김해수(60) 씨. 과거 30여 년 동안 인테리어 관련 중소·중견 기업의 관리직으로 일한 경험과 유난히 꼼꼼한 성격 덕분에 퇴직 후 제2직업으로 ‘주거 청소’ 분야로 전향할 수 있었다. 청소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지만, 내 집 아닌 고객의 집을 청소해 만족감을 주는 건 또 다른 얘기였다. 즉, 고수라 자부했어도 타인에게까지 인정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 김 씨는 “청소는 손기술이 전부라 생각하지만, 공부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관련 분야 다른 고수들의 기술을 관찰하거나 새로 나온 세제나 약품 등을 조사하고, 자신만의 청소법을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앞으로는 주거 공간 외에 빌딩이나 공장 등으로 영역을 넓혀 진정한 ‘청소 고수’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오랜 세월 주부생활로 갈고닦은 살림 노하우를 살려 ‘정리수납’ 고수로 활동 중인 류현숙(57) 씨. 주거 청소와 더불어 중장년 여성들의 참여가 많은 분야다. 류 씨 역시 평범한 주부였지만, 건강만 유지된다면 노후 자금 마련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에 ‘숨고’에 자신의 재능을 알렸다. 정리수납 전문 자격증도 취득한 그는 “자격증보다 중요한 건 경험치”라며 “정리수납 서비스를 대행하는 업체를 통해 활동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프리랜서로서 개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리수납 일은 거의 하루 종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어린 자녀를 둔 사람은 힘들 수 있다. 자녀가 독립한 중장년 주부들이 도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LG전자 연수원장과 LG플레이 총무팀장 등을 지내며 인사 관리와 교육 관련 일을 해온 권규청(58) 씨는 직장에서의 이력을 바탕으로 ‘취업 컨설팅’ 분야의 고수가 됐다. 취업난을 겪는 청년 세대에게 자신의 경험을 통해 도움을 주고 싶었고,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심리 상담이나 멘탈코칭 등 관련 공부를 해나갔다. 그는 “취업 컨설팅 관련해서는 젊은 코치들도 많지만 조직생활 경험이 적어 부서별, 업무별로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자들도 사회생활 노하우가 풍부한 시니어 고수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숨고’ 담당자는 “청년 고수들과 비교해 오랜 경력을 자랑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잘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중장년 고수를 신뢰하는 편”이라며 “꼭 직장 경험이 아니더라도 오랜 취미나 특기를 살려 고수로서 제2의 커리어를 찾길 바란다”고 시니어 고수들의 활약을 독려했다. 숨겨두기 아까운 재능이 있다면, ‘숨고’의 고수가 되어 필요한 이들에게 한 수 발휘해보는 것 어떨까?
귀농·귀촌은 시대적 화두다. 그러나 막상 도시인이 귀농·귀촌을 하려고 하면 막연하기 그지없는 게 현실이다. 어디서 정보를 얻고 어떻게 준비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당연히 지역과 지자체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평창군은 귀농·귀촌 인구를 위한 다양하고 실제적인 준비들을 진행하고 있다. 평창군농업기술센터 김상래 기술지원과장과 황창윤 귀농·귀촌 담당과의 인터뷰를 통해 평창 귀농·귀촌의 현재, 그리고 귀농·귀촌 인구를 위한 조언을 듣고 준비된 상황을 짚어봤다.
2015년 6월 평창군으로 귀농해 여름 딸기를 재배하고 있는 이철성 ‘아빠랑 딸기랑 아이랑’ 대표는 11브릭스 이상의 당도를 자랑하는 고품질 딸기를 연간 60여 톤 생산하고 있다. 6월부터 국내 유명 백화점에 독점 공급을 시작한 그는 해외 수출도 준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태아와 임신부, 출산부를 위한 여름 딸기 비영리 공급 사업을 통해 대한민국 여름 딸기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또한 비영리 교육기관인 ‘미션 코리아 스쿨’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을 위한 영어, 수학, 과학 및 예체능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사회 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호주에서 평창군으로 귀농했다. 거리로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거리에서 귀농·귀촌한 사람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잘 준비된 계획과 나눔의 마음으로 성공적 귀농·귀촌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귀농·귀촌의 딜레마
최근 일선에서 본격적인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고향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또한 고도화된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도시인도 삶의 대안으로 귀농·귀촌을 눈여겨보고 있다. 귀농·귀촌에 관한 TV 프로그램은 일정 시청률 이상을 보장하는 분명한 트렌드가 됐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흐름에도 불구하고 귀농·귀촌은 여전히 큰 틀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기보다는 개인들 각자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치르는 복마전에 가깝다.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빈약한 인프라와 텃세에 실망해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평생을 한자리에서 산 고향 사람들은 고향 사람들대로 도시인들의 ‘뜨내기 기질’에 질려서 스트레스받는 게 현실이다. 귀농·귀촌이 이뤄지는 지역 단체의 적극적인 중개자적, 중재자적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평창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평창군이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은 무엇보다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공이 컸다. KTX도 개통되어 예비 귀농·귀촌인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지역인 평창은 2017년 기준 귀농 가구가 114가구로 강원도 전체 1074가구의 약 10.6% 정도다. 그중 약 75%인 86가구가 1인 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통계를 보면 지난 5년간 귀농인구는 100여 가구 내외, 귀촌 인구는 1200가구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귀농인구의 경우 2016년 대비 2017년 귀농 가구 수가 27% 증가했고, 귀농 가구원 수도 9.5% 증가하는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다.
정착 지원을 위한 금융 프로그램 제공
평창군도 다른 지역 지자체와 비슷하게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 확보와 귀농인의 안정적인 정착이 절실한 상황. 그를 지원하기 위해 평창군은 여러 가지 금전적인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귀농 농업 창업 및 주택 구입 지원사업’이 있다. 귀농인이 안정적으로 농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농업 창업 및 주거공간 마련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농지 구입이나 농업용 시설 설치 등의 농업 창업에 3억 원, 주택 구입이나 신축에 7500만 원을 연리 2%, 5년 거치 10년 원금균등 분할상환 조건으로 융자받을 수 있는 사업이다.
지역을 젊게 만들기 위한 ‘귀농인 정착지원금 지원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청·장년층을 귀농인으로 적극 유치해 미래 농업인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으로 20세 이상 45세 이하의 귀농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1년 차 농업인에게는 월 80만 원, 2년 차에게는 월 50만 원의 정착지원금이 지원된다. 또한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1개소당 500만 원의 주택 수리비가 지원되고 농업기계, 농업용 시설, 농업 자재 등의 구입비 50% 지원하고 있다.
교육과 창업으로 귀농·귀촌 성공 유도
평창군은 귀농인 정착 지원이 때로는 인구 늘리기 정책의 일부가 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소모적인 경쟁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문제로 보고 있었다. 이 점을 유념해 실제적인 귀농인 정착 지원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 핵심은 교육과 창업이었다.
김상래 과장은 “귀농·귀촌은 생활의 거주지가 도시에서 농촌으로 변동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귀농·귀촌은 삶의 큰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어쩌면 귀농·귀촌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정도로 나이를 먹은 상당수의 사람들은 세상을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 과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에 대한 관심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고, 더불어 우리 사회의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귀농인 스스로의 철저한 준비다.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트는 만큼 극복해야 할 현실의 벽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귀농·귀촌에 대한 기본정보 숙지하라
김 과장은 개인의 귀농·귀촌 준비를 위해 우선 귀농·귀촌 종합센터(www.returnfarm.com)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도록 권했다.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에서는 온라인 교육은 물론 민간기관 공모교육, 현장실습 교육장, 귀농·귀촌과 관련한 기본 공통교육, 청년교육, 소그룹 강의 등 귀농·귀촌과 관련한 교육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귀농인이 선택한 품목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싶다면 강원도 농업기술원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물론 평창군도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평창군은 농업·농촌에 대한 이해 증진과 농업경영 마인드를 함양하고 성공적인 농촌 정착을 돕기 위한 취지로 ‘신규 농업인 기초영농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귀농인의 농촌 정착 환경 조성뿐 아니라 귀농·귀촌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고 있으며, 농촌 정착에 필수적인 인적 네트워크 형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김 과장의 설명이다. 여기서는 소득작목선정 방법, 미래형 농업 마케팅 전략,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관리와 소통 등 다양한 영농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귀농인 현장실습교육’을 마련해 신규 농업인과 지역 선도 농업인이 함께하는 영농 실습 교육 프로그램으로 실질적인 영농 방법과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평창군에서는 현장실습에 소요되는 교육훈련비 귀농인 월 80만 원, 선도농가 월 4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귀농 창업 지원 사업’은 귀농인의 귀농 창업 우수 아이템 발굴 및 소자본 창업 지원으로 귀농인의 소득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귀농 창업 아이디어 발굴과 지적재산권 확보, 농업 기반 조성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귀농 교육 우수 수료자를 대상으로 1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는 중이다.
공유하고 나누다 보면 지혜 터득
귀농·귀촌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지역민의 텃세다. 도시인은 특히 타인에 대한 믿음에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평창군은 매년 ‘평창군 귀농·귀촌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다. 1박 2일 코스로 진행되는 귀농·귀촌 페스티벌은 예비 귀농·귀촌인을 초정해 정책 안내, 영농 체험, 선도농가 방문, 평창군 투어 등으로 이뤄진다. 이는 예비 귀농·귀촌인이 지역 주민과 교류할 수 있는 계기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귀농·귀촌인과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 조성을 위해, 귀농·귀촌 화합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귀농·귀촌 화합 프로그램은 귀농·귀촌에 관심이 있는 마을을 대상으로 귀농·귀촌인과 마을주민 간 갈등 해소 및 소통을 위한 갈등 해소 교육을 실시하고 화합 행사를 개최하는 등 마을 여건에 맞는 세부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귀농해 농촌생활을 꿈꾸는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여건이 다르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농촌형 삶을 선택하고 준비한다면 자연에 몸을 맡기려는 도시민들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고 말하는 김 과장은 더욱 알차고 다양한 귀농·귀촌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귀농·귀촌인의 안정적인 정착 기반 마련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과 산 사이 도로를 줄기차게 달려도 산 첩첩. 깊고 후미진 산간이다. 도로를 버리고 접어든 비좁은 산길 끝자락 산 중턱, 후련하게 탁 트인 거기에 나무선(57) 씨의 거처가 있다. 풍경의 절반은 산, 절반은 하늘. 또는 절반은 청풍, 절반은 구름. 절집 자리처럼 개활하니 명당이렷다.
나무선 씨는 서점을 운영한다. 외진 산골짝 서점을 누가 찾아들까 싶지만 드나드는 발길이 허다하단다. 해서, 그는 느긋하다. 살뜰히 정붙이고 산다. 여기가 낙원이거니, 그리 자족한다. 서점 이름은 ‘터득골 북샵’이다. ‘자연주의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다. 일찍이 자연 속에서 자연스레 자연과 동화하는 삶을 그리다 마침내 이루었다. 이 산중으로 귀촌한 지 10여 년이 흘렀다.
나무들 울창한 숲속에 차린 서점이란 필시 이색이다. 게다가 장사가 된다 하니 거의 이변이다. 책 또는 독서는 긴 세월 동안 매력적인 향을 뿜었다. 지식 축적과 소통의 유력한 도구였다. 그러나 인터넷, 휴대폰, SNS 등속의 강력한 적들에 밀려 변방으로 밀려났다. 출판사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온라인 서점의 파죽지세에 오프라인 서점들이 나가떨어졌다. 정황이 이러하지만 나무선 씨의 숲속 서점은 순항 중. 귀촌생활 방식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중.
귀촌 이전, 그는 서울에서 출판업자로 뛰었다. 말하자면 책을 만드는 사람에서 책을 파는 사람으로 변신했다. 지금으로부터 2년쯤 전에 ‘터득골 북샵’을 오픈했다. 나는 언젠가 서울에서 출판사를 하던 사람 하나가 시골에 내려가 1인 출판사를 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연과 생태에 관한 책들을 주로 출간한다 했다. 당시 퇴고를 마친 원고의 출간을 위해 출판사를 물색 중이었던 나는 그 산골 출판사 사장에게 구미가 동해 원고를 보냈다. 하지만 퇴짜를 맞았다.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두세 차례 전화통화만으로 상황 끝. 당시 그 사장은 재정난을 내세우며, 더 유능한 출판사를 찾으소서! 라는 요지의 기별을 해왔었다. 전화기에서 울려온 그의 언사가 어찌나 정중하고 수굿하던지 스타일 구기고 사기 저하됐던 나는 충분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의 그 산골 출판사 사장이 바로 나무선 씨다.
“20대 후반에 출판사를 창업, 이후 30여 년 동안 300여 권의 책들을 냈어요. 1년에 한두 권쯤은 베스트셀러에 올랐죠. 그러나 출판이라는 게 남의 뒷바라지나 하는 일이 아닌가, 내 마음은 늘 시골로 향하는데 어쩌자고 서울에 눌러 사는가, 그런 회의가 밀려들더라고요. 그게 귀촌의 단초였어요.”
“황대권 작 ‘야생초 편지’도 기획하셨죠? 몇 부나 찍었죠?”
“100만 부 정도 나갔습니다. 그 밀리언셀러의 파장으로 야생초 바람이 일었죠. 저 개인에게도 큰 행운이었어요. 덕분에 수입을 올려 이곳 산중턱에 너른 터를 장만하고 이주할 수 있었으니까. 출판을 해서 땅을 산다는 게 사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빈번한 헛발질 뒤에 용케 운이 따랐던 거죠.”
“아까 마음은 늘 시골로 향했다 했어요. 시골의 그 무엇에 끌렸죠?”
“은둔자 성향, 제겐 그런 게 있습니다. 젊어서부터 철학이나 자연, 명상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어요. 니어링 부부가 실현한 ‘조화로운 삶’에, 존재지향적인 사유에 깊이 경도되기도 했죠. 그들의 삶이 부러웠고 그리웠고 꿈꾸었어요. 그렇다면 사람을 지치게 하는 서울을 벗어나 시골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당연하다 봤어요.”
“사는 일의 희로애락은 시골에서건 도시에서건 마찬가지 아녜요?”
“필생의 프로젝트로 귀촌을 했으나 막상 실현은 어려웠어요. 터를 잡아 집을 짓는 일에서부터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일 등등 상처받기 쉬운 난항이 많았어요. 한동안 너무도 힘들었죠. 먹고살아야지, 무아(無我)도 해야지, 벅찼어요.”
“무아? 자아에서 벗어나면 해탈이라죠? 불로 태우고 도끼로 찍어내도 없어지지 않는 게 자아라 하고.”
“자칫 제멋에 취해 가족이나 생활을 외면한 채 뜬구름 잡기에 그치기 쉬운 게 무아 공부죠. 저 역시 거기에서 예외가 아닐지 모르지만, 산중에 살며, 야생의 자연을 경험하며, 리얼하게 몸으로 생태와 부닥치며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됐어요.”
나무선이라는 이름에 그의 지향이 이미 완연하다. 고요한 ‘나무[木]’를 닮은 ‘선(禪)’으로 날뛰는 마음을 단속하겠다는 의미로 지었단다.
호랑이를 봤다!
마음을 돌보면 눈도 밝아지는가. 나무선 씨의 눈은 남들이 보지 못한 걸 본 눈이다. 호랑이를 보았다는 게 아닌가. 귀촌 직후, 계곡 물가에서였단다.
“폭우가 쏟아진 이튿날 아침이었어요. 천둥처럼 요란한 물소리 들리는 계곡 저편에 호랑이 한 마리가 떠억 앉아 있더라고요.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바로 지척이었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어요.”
“햐! 들고양이를 호랑이로 오인한 거 아녜요? 국내의 야생 호랑이는 이미 멸종했다고 알려졌어요.”
“남들은 영양 부실로 헛것을 본 거 아니냐고들 하지만 분명히 호랑이였어요. 황소처럼 커다란 호랑이. 냅다 달아났지만 반갑더라고요. 야생 호랑이가 생존하는 생태계에 외경을 느꼈어요.”
“토속신앙에서 호랑이는 산신령으로 간주되죠. 귀촌 환영 사절단으로 신령이 납시었군요.(웃음)”
“나의 삶은 이제 모험 속으로 들어와 있다! 저는 그렇게 호랑이 출몰의 의미를 해석했어요. 이전과는 다른 적극적이고 충실한 삶을 살라는 통첩으로 여겼어요.”
호랑이라는 전설과의 기묘한 해후를, 그는 삶을 일깨우는 자연의 선물로 간주하는 것 같다. 호랑이뿐일까. 들풀에 얹힌 아침 이슬도, 말매미의 그악스런 사이렌도, 듣고 보는 관점에 따라 무상의 선물이자 위안이자 기적일 수 있다. 나무선 씨는 한때 ‘조화로운 삶’을 구현하기 위한 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내 이효담 씨와 동행, 미국의 인디언 촌락이나 인도의 오르빌 같은 생태마을을 답사하기도 했다. 공동체 운동의 비전을 탐색하기 위해.
“국내외의 공동체를 나름 둘러본 뒤엔 생각이 바뀌었어요. 장단점을 고루 확인하고서였죠. 특히나 저 같은 인물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든다는 건 교만이거나 무익한 도전일 수 있다는 판단을 했어요. 제가 보기보다는 엄청나게 고집이 센 사람입니다. 마음공부라는 걸 해왔지만 때로 문제가 불거져요. 공동체를 꾸렸다가는 자칫 생태근본주의에 매몰된 독불장군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겠더라고요. 해서, 새로운 걸 만드는 대신, 기존 우리네 마을에 서린 미덕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움직이는 게 더 소중하다고 봤어요. 마을 노인들의 고단했던 삶에 서린 내공을 배우는 건 더욱 소중한 학습이라 봤고요.”
“쇠약한 노인들을 무시하는 게 현실이죠. 과거 전통사회에선 노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죽임을 당하기조차 했어요. 오늘날에도 노인에 대한 푸대접은 비일비재해요. 이는 어쩌면 인간사의 숙명일지도. 노화란 쓸쓸해요.”
“비록 고달픈 인생을 살았더라도 시골 노인들의 기본 태도는 매우 정중합니다. 상대의 성정까지를 헤아려 존중해줘요. 이게 엄청난 내공이죠.”
“마을과 관련해선 어떤 일들을 했죠?”
“예컨대, 이곳 산간 지구 일대에 산재하는 100여 가구 주민들이 동참하는 마을신문을 만들었어요. 계간 신문을 8년째 발행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만들며 저 자신부터 주민들과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었고, 외지에서 들어온 귀촌인들과 토착민 사이의 유대도 강화됐어요.”
여한 없는 삶이란?
초여름 산야의 풍광이 싱그럽다. 바람에 설레어 부푸는 숲, 나무 우듬지를 비집고 은빛 비늘처럼 쏟아지는 햇살, 저마다 가창력을 뽐내는 새들의 노래…. ‘터득골 북샵’의 명품은 어쩌면 자연 풍경이다. 나무선 씨 부부가 10년 이상을 공들여 가꾼 집과 정원과 텃밭 역시 빼어나기는 마찬가지. 이 근사한 공간에 무시로 사람들이 찾아들고, 수시로 공연과 이벤트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나무선 씨가 이 산골에 들어와 첫 번째로 한 일은 집짓기였다. 8평짜리 흙집을 손수 지었던 것. 이후 증축을 통해 맵시 있게 규모를 늘렸다. 부부 살림채로 쓰이는 이 집엔 ‘다명헌(多明軒)’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에 쓴 글,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坐, ‘작은 창문에 빛이 밝아 나로 하여금 오래 머물게 한다’는 뜻)에서 빌려 쓴 이름이다. 예순 살을 코앞에 두었으니 부질없는 욕망이 잦아들 시절이다. 삶을 한층 진솔하고 겸허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나이이지 않겠는가. 이 점에서 나무선 씨는 귀촌으로 절호의 찬스를 포착했다. 그가 추구하는 무아와 무욕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일구고 있으니.
“흙집을 지을 때 다산 초당을 염두에 뒀었죠. 삼간 초막이면 산중 살림에 족하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이젠 살림 규모가 크게 늘었어요. 소박한 귀촌생활을 작정했으면서도 서점을 차린 건 어쩌면 모순이죠. 색다른 방향으로 삶이 풀려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궁리해왔던 지역문화의 거점 하나를 구축해나가고 있다는 보람과 만족이 커요.”
“산골에서 돈도 벌고, 지역문화에도 이바지하고, 일거양득의 신선한 모델이에요. 극히 내성적이고 조심성 많은 사람으로 보이는 선생에겐 복주머니나 꾀주머니가 장기처럼 붙어 있는 건 아녜요?(웃음)”
“어떤 이들은 가급적 일판을 벌이지 말고 조용히 사는 게 더 좋지 않냐고도 하지만, 일이 없으면 무슨 재미? 일 없이 사노라면 괴팍해지고 피곤해지고 폐쇄적으로 변할 게 빤하지 않겠어요? 자신이 꿈꾸는 삶과 현실을 일치시키는 것, 좋아하는 곳에서 적당한 수입이 가능한 일을 하며 맘 편하게 사는 것, 그게 여한 없을 삶이라 봅니다.”
일로부터의 은퇴란 일을 싫어하는 사람에겐 해방이지만, 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감옥이다. 귀촌을 하더라도 공을 쏟을 일 하나는 쥐고 있어야 한다! 나무선 씨의 생각은 그렇다.
나무선 씨가 주는 귀촌 준비 TIP
❶ 시골에 대한 피상적인 선입견을 완전히 버리자. ❷ 귀촌으로 실현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를 준비하자. ❸ 수입 창출을 위한 일을 갖고자 한다면 신선한 아이템을 발굴하자. 가령 산골 북샵도 유망하다. 500평 정도의 부지에 크지 않은 집을 지어도 무방하다. 서책 구입과 가구 장만에 소요될 비용 조달 여력은 필수다. 책에 관한 안목을 기르고, 도서 유통 구조를 철저하게 이해해야 한다. 고객들은 책만을 사기 위해 산골 북샵을 찾지 않는다. 주변 자연경관을 즐기기 위해 온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❹ 귀촌 현장과 귀촌인들을 사전에 충분히 접하라.
경제 성장이 절실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불 안 가리고 앞만 보고 달렸더니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한 마리로 불렸다. 고도성장을 과시하듯 연이어 열린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전쟁의 아픔을 말끔히 씻어낸 듯 우리나라가 함박웃음 짓던 그때. 우리를 동경하던 대륙의 청년이 있었다. 한국의 발전상이 그저 궁금했을 뿐 저 먼 미래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눈 맑은 청년. 훗날 그는 한류 문화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한류를 파는 중국인, 중국 온라인 패션 기업 한두이서(韓都衣舍) 두정국(杜廷國) 부회장을 만났다.
한류 때문에 하루가 바쁜 사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빡빡합니다. 이곳저곳 다니며 직접 상담하다가 돌아갑니다.”
한국에 오면 주로 뭐하냐는 질문에 재미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 패션계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온라인 기업 한두이서그룹주식유한공사(이하 한두이서) 공동 창업자이자 부회장의 서울 일정이 야박할 정도로 쉴 틈이 없다. “그저 일만 하다 간다”는 넋두리가 여운처럼 슬며시 깔린다. 알고 보면 사정이 딱하지도 않다. 한국에 오기 위해 이용하는 중국 칭다오 류팅 국제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한 시간 거리. 중국 내 출장보다 가까워 당일 출입국이 가능할 정도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두정국 부회장에게 대한민국 서울은 나쁘지 않은 업무 장소다.
“한국 분들이랑 짧게 몇 마디 정도 대화하면 제가 한국 사람인 줄 알더라고요. 얘기가 깊어지면요? 그때는 중국놈으로 알아챕니다!(웃음)”
중국 사람을 낮춰 부르는 표현도 넉살 좋게 쓰는 것을 보면 한국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두정국 부회장은 한국 기업과 한두이서 사이 소통 창구 기능을 톡톡히 하며 한국을 자주 찾고 있다. 최근 한국 콘텐츠 회사와의 만남은 물론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패션 업체와의 선약으로 한국 방문이 부쩍 잦아졌다.
시니어 패션도 한류다
한두이서(韓都衣舍)는 ‘한국 옷을 파는 집’이란 뜻이다. 2006년 온라인 전문회사로 창립해 2년 뒤인 2008년 본격적인 한류 패션 전문 쇼핑몰로 새 단장했다. 중국 온라인 패션 업계 1위 자리를 꿰찰 만큼 성장가도를 달리는 중.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국 현지 스튜디오에서 한국인 모델을 기용해 촬영한 이미지로 한두이서 홈페이지(handu.com)를 채우고 있다. 온라인 사이트에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델이 죄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친근함이 묻어난다. 한두이서가 특히 한국에서 이름을 알린 이유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 스타 전지현, 지창욱, 박신혜 등을 피팅 모델로 발탁했다는 점. 배우 전지현은 지금도 한두이서를 대표하는 모델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출에서도 한두이서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룹 내 자체 브랜드 16개 중 하나인 ‘H스타일’은 이용 회원만 1700만 명, 연간 매출은 우리 돈으로 3500억 원이 넘는다.
한두이서 홈페이지에는 매일 한류 패션 브랜드를 비롯해 유아, 어린이, 시니어 브랜드에 이르는 제품들이 각각 100개 이상 업데이트된다. 특히 ‘H스타일’ 못지않게 시니어 패션 브랜드의 활약도 눈부시다.
“4, 5년 전에 꽃중년 여성을 겨냥한 한류 스타일의 브랜드 디큐나(Dequanna)를 런칭했습니다. 젊은 중국 여성 패션이 한국과 큰 차이가 안 나는 반면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중년 패션은 한국과 많이 다릅니다. 그것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탤런트 윤해영 씨가 ‘디큐나’ 홍보모델로 활약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큐나의 실제 구매자는 누구일까? 바로 H스타일에서 옷을 사 입는 시니어의 자녀들이다.
“스스로 옷을 사 입는 시니어도 있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구매합니다. 우리 메인 브랜드인 ‘H스타일’ 회원만 1700만 명이고 한두이서몰 전체 회원이 4000만 명입니다. ‘H스타일’에 들어왔다가 ‘디큐나’가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어머니가 입는 옷에도 눈이 가는 것이죠.”
현재 중국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시니어 패션 브랜드 중에서 ‘디큐나’가 1위라고 두정국 부회장은 말했다. 1위가 아니면 배우 윤해영을 어떻게 쓰겠냐며 시원하게 웃는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한류를 알아보다
두정국 부회장이 배우 윤해영을 설명하면서 MBC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 나왔던 배우라고 소개해서 적잖이 놀랐다. 1990년대 후반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이지만 한류 드라마로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 그렇다면 한류 전문가 느낌이 물씬 나는 두정국 부회장은 언제부터 한국을, 한류를 직감한 것일까?
“한국을 알게 된 건 한류 열풍이 불기 아주 오래전 전부터죠.”
이웃 나라 한국의 성장이 궁금했던 두정국 부회장은 한국을 알고 싶은 마음에 1993년 산둥대학교 외국어학원 한국어학과에 진학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어학과가 신설됐으니 한국어를 배운 첫 번째 세대다. 한류 전문가로서의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뭔가 멀리 봐서 전공을 결정한 거라기보다는 한국의 빠른 성장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운 것이 운명이었던 것이죠. 마침 우리 회사 조영광(趙迎光) 회장님도 같은 학과, 같은 반 출신입니다. 유학덕(劉學德) 한국지사장은 기숙사 룸메이트였고요.”
한국어를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많이 알게 됐다.
“1980~90년대, 중국에서는 홍콩류나 일본류가 있었습니다. 오래가지 못했어요. 인기가 좀 생기나 싶었는데 사라졌어요. 그런데 한국어를 전공한 저와 회장님은 한국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 문화는 다른 나라의 유행과 달리 침투력이 강했습니다. 1990년대 말 한국 정부도 국가 정책으로 문화 관련 사업에 투자를 많이 했고요. 유행이 오래갈 것으로 판단했고 사업 콘텐츠로 삼기로 했습니다.”
한류 패션을 지탱하는 것은 한류 문화라고 두정국 부회장은 목소리에 힘을 줘 강조하면서, 한류 패션은 한류 문화, 드라마, 연극, 영화 등으로 시작해 패션으로 뻗어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한류 스타에 대한 친근함도 중국 스타와 비교되는 점이었다고.
“중국 일반인에게 연예인이란 거리감이 있고 숭배해야 하는 대상이었어요. 그런데 한류 문화로 알게 된 한국 연예인은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뭐든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대상이었어요. 한국 사람들을 보면 노래도 잘하고, 잘 노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런 욕구가 있는 만큼 한류 패션도 생명력이 있다고 판단했죠. 결국 우리의 판단이 맞았음이 증명되고 있잖아요. 2003년쯤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15년이 지났는데 한류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한류 스타일로 패션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 년. 그 노력의 결과로 중국에서 제일가는 온라인 패션 브랜드로 한두이서는 성장했다. 현재는 한류 패션을 넘어서 뷰티와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투명 경영이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든다
두정국 부회장에게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 “마음 관리에 꽤 엄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5년 전부터 철저하게 채식을 하고 있다. 누구를 만나든 도를 닦는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행동하고 사고한다. 두정국 부회장은 본인의 생각이 회사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철저하게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두이서의 비전은 사원들과 외부 파트너가 꿈을 성취하고 실현하는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저만의 생각이 아니고 임원진과 함께 많은 토론을 거친 부분입니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꿈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 회사 문화는 협동으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궁극적으로 직원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들면 회사는 자연스럽게 성장합니다. 직원들이 부자가 되면 회사는 더 큰 부자가 되는 거잖아요. 직원이 다 실패하면 회사도 물론 무너지고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사주 일가의 갑질과 관련한 이야기가 새어나와 두정국 부회장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경쟁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항상 남을 이기려고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부작용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안전하게 오래 사업을 하고 싶다면 투명 경영을 해야 합니다. 저희는 대내외적인 투명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모두가 좀 솔직해야죠.”
한두이서는 수직적인 상하관계를 지양한다. 대신 작은 조직체를 많이 만들어서 개별적으로 일을 하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실적이 좋은 팀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이때 원인을 파악해 팀원을 다른 조직으로 분산 배치하거나 개인 실력 차에 따라 조직에 기여하게 한다.
“이것도 자연의 법칙입니다. 순환의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죠. 우리는 온라인 시장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두이서는 회사 내 조직이나 관련 외부 업체가 일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줍니다. 물류, IT, 생산, 홍보 등 다양한 시스템을 지원합니다. 사내 자체 브랜드이든 파트너 업체이든 모두 한두이서의 시스템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회사 연혁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빠르게 업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온라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프라인에서는 이런 조직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온라인에서는 이런 식으로 조직을 이끌어가야 발전 흐름을 제대로 잡을 수 있습니다.”
한두이서의 장기적인 목적 중 하나가 빅데이터 자료를 기반으로 한두이서 내부 조직을 포함해 함께 일하는 업체가 더욱 편하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일이라고 했다. 성장 중이거나 온라인 창업을 준비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교육도 제공하고 온라인 생태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빅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이미 갖췄기 때문에 한두이서가 중국 내 규모가 가장 큰 온라인 브랜드 그룹이 됐다고 두정국 부회장은 설명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업체와 협약식이 있었다.
“우수한 한국 패션 브랜드의 중국 진출을 돕는 것도 우리 일입니다. 오늘은 임블리(부건FNC)와 업무 협약을 맺었습니다. 나라마다 온라인 시장의 규칙이 다릅니다. 무턱대고 진출하면 실패율이 높습니다. 임블리가 한국에서는 잘나가는 회사일지 몰라도 중국 시장에서는 쉽지 않을 겁니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거예요.”
끝으로 한류를 파는 두정국 부회장에게 한류의 수명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냐고 물었다. 뉴웨이브란 이름으로 왔다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타이완류, 일본류, 홍콩류는 늘 있었다.
“제가 50년은 더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을 겁니다. 한류의 유통기한을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일본류나 홍콩류보다는 길 수밖에 없습니다. 한류 문화 기반이 이미 잘 닦여 있으니까요. 한류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한류 패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계속 만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일할 것 같습니다.(웃음)”
평생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하나의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이들에게 두 번째 삶, 은퇴 후 인생설계는 그저 막막한 일일 뿐이다. “후배들에게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잔소리했지만, 정작 회사 밖으로 나오니 눈앞이 캄캄하더라”는 어느 공기업 정년퇴직자의 소감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퇴직 후의 삶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자사 임직원의 은퇴 준비, 노후 준비를 돕기 위한 기업들이 늘고 있다. 선명한 미래가 업무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것 아닐까. 이런 기업 중 모범 사례로 꼽히는 포스코를 찾아 인생설계 프로그램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본지 제호와 비슷해 친숙하게 여겨지는 이 이름은 포스코의 퇴직 후 인생설계 프로그램명이다. 교육 참여는 50세 이상의 포스코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은 2001년부터 포스코인재창조원이 운영해온 정년퇴직 예정자 대상의 교육 과정인 ‘그린 라이프 디자인’이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교육 진행 과정 중 정부의 정년퇴직 연장 정책에 따라 2016년과 2017년에는 정년퇴직자가 발생하지 않게 되면서 프로그램 운영에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준비기간’에 대한 의견도 반영됐다. 교육 시점이 정년퇴직 3개월 전부터 시작되어 인생설계에 제대로 반영하기엔 빠듯했기 때문이다. 그린 라이프 디자인 교육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약 3000여 명의 직원들이 참여했다.
인재창조원 관계자는 “정년퇴직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그린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이 퇴직이 임박한 이들을 대상으로 실제적으로 필요한 서류 처리나 연금 문제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은 퇴직 후 생활에 대한 마인드 변화, 방향성 제고와 같은 포괄적인 부분이 중심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래가 명확해야 근로의식 높아져
올해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에 참여 예정 인원은 330명. 포스코의 주된 사업장인 포항과 광양의 임직원 300명과 서울 근무자 30명이 참여한다. 강의에 참여하는 인원만 13명. 포스코인재개발원의 교수 외에 다양한 분야의 사외 강사들이 각 전문 분야의 교육을 담당한다.
포스코인재창조원 김일수 교수는 이 프로그램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50대를 넘어선 직원들이 퇴직 후 삶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젊은 시절부터 포스코에 몸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회사 밖에서의 삶에 겁을 먹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회사가 나서서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생애설계와 퇴직 준비를 지원해 불안감을 해소시키고, 근로의식도 고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또 퇴직 후 삶의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부분도 있고요.”
2016년과 2017년 진행된 프로그램에는 총 700여 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 본인의 생애설계에 대한 진단과 자산관리, 생애관리, 건강관리 교육이 중점적으로 이뤄졌고, 관심 분야와 관련한 현장 탐방과 체험 학습도 이뤄졌다. 참여자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어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5점 만점에 평균 4.88점의 반응이 나왔다.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은 올해 변화를 줬다. 초기 프로그램이 1일 8시간 포괄적인 방식으로 진행돼 교육시간 부족, 교육 내용 전문성에 대한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직업형 트랙과 자산형 트랙으로 나눠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자산형 트랙의 경우 자산관리는 결국 부부 공동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해 임직원의 배우자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원한다면 두 프로그램 모두 참가할 수 있다. 일반적인 재무관리 교육과 달리 특정 금융상품의 밀어주기가 없다는 점도 참여자들에게 환영받는 이유다.
‘먹고사는 문제’ 이외의 것까지
직업형 트랙은 1인 창업이나 프랜차이즈 창업의 특징과 차이점, 창업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위험 요소, 재취업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구직 목표 설정, 자격증 취득 등과 같은 현실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자산형 트랙은 수익형 부동산이나 부동산 경매 또는 공매에 대한 정보, 세금과 관련 법률에 대한 소개, 각종 금융상품이나 상속·증여와 관련한 교육도 실시한다.
또 각 프로그램에선 즐거운 여가를 위한 본인의 여가 유형 진단에서부터 여가 활용 방법과 건강관리를 위해 지켜야 할 사항 등도 함께 소개한다.
프로그램의 구성이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것이 흥미로운 부분. 포스코인재창조원 관계자는 이렇게 주제가 넓어진 것에 대해 “직원들의 요구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임직원들의 관심이 많은 건강과 재무, 인간관계, 여가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단순한 재테크 활동뿐만 아니라 정년퇴직 후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를 반영한 것이다.
물론 재취업이나 창업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이나 준비사항에 대한 교육도 진행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개인별로 성격검사와 적성검사도 실시한다. 여기에 직원에게 재취업 장애요인은 없는지 체크한다.
오프라인 교육과 별도로 사이버학습을 사전학습 형태로 진행하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특징 중 하나다. 인생설계, 창업, 귀촌과 같은 커리어 디자인과 재무 디자인, 라이프 디자인을 온라인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은퇴 대비에 ‘눈치 보기’는 없어
올해 브라보 라이프 디자인 프로그램의 참석률은 전체 대상자의 20% 정도. 은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년퇴직을 10년 앞둔 임직원까지 대상에 포함되는 것을 고려하면 꽤 높은 편이다.
혹시 회사가 먼저 나서서 ‘퇴직’에 대해 논하는 것이 사측에서 퇴직을 권하는 것처럼 비춰지진 않을지, 또 프로그램 참여가 퇴직 의사를 밝히는 것처럼 여겨지진 않을지 의문을 가졌지만 참가자들은 “사내 분위기를 모르는 상태에서 갖는 의문”이라고 일축한다.
한 프로그램 참석자는 “포스코라는 기업의 특성상 대부분의 직원들이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정년 때까지는 업무에만 집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서 “이런 문화 때문에 정년퇴직 후 생애설계에 대해 논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이 사내 분위기다”라고 설명했다.
도희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미싱을 돌렸다고 말했다. 엄마와 할머니의 심장 소리에 맞춰 미싱은 잘도 돌아갔고, 도희의 심장도 함께 박자를 맞췄을 것이다. 20대 중반이 된 지금 도희는 엄마 옆에 바짝 붙어 앉아 함께 미싱 페달을 밟는다. 할머니 대에서부터 시작한 수예점 가업은 50년이 돼간다. 가업을 잇는 것만으로 계승할 수 있을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다. 특별한 계승 유전자를 바탕으로 가업을 이어받았다면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할머니에서 어머니 그리고 딸, 가업을 엮어가다
각자 다른 듯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행복한 가업 승계를 하는 수예 전문업체 연희데코2050(이하 연희데코)의 모녀 대표 고백연(57), 김도희(24) 씨를 만났다. 이들이 함께 운영하는 연희데코의 작업실은 재래시장 현대화 공사가 한창 진행되는 성남중앙시장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연희데코는 원래 재래시장 가업 승계의 바른 사례로 성남중앙시장을 대표하는 업체이기도 하다. 재개발 공사가 완료되는 내년 가을까지 지금의 작업실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임시 거처라지만 방문객을 고려한 상품 진열은 물론 가업 승계의 향수를 느낄 만한 전시물을 마련해 놨다. 고백연 씨의 어머니가 사용했다던 50년 된 가위와 자, 미싱 그리고 가족의 모습을 그린 캐리커처와 사진들이 작업실 입구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서비스 정신에 창의력을 더한 엄마 고백연 씨
“옛날 재래시장 좌판에다 원단 놓고 이불 팔던 것이 시작이었어요.”
1970년 무렵 초등학교 2, 3학년이던 고백연 씨는 인천에서 성남으로 이사 왔다. 그때부터 어머니 김순남(85) 씨가 성남중앙시장 좌판에서 이불 장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뭐든 꿰매고 기워 쓰던 시절, 이불만 팔아치우면 될 법도 한데 어머니는 좌판 한쪽에 미싱을 들여놓았다. 베개며 이불이며 떨어진 것을 수선해주는 서비스를 손님들에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 모습을 보던 고백연 씨는 그것뿐만 아니라 누군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새롭게 만들어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첫아이를 임신하고 난 뒤 엄마가 계신 중앙시장으로 들어왔어요. 5평 남짓 가게에 들어와 미싱 앞에 앉았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물론 남들의 시선이 좀 의식됐다. 없는 살림에도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 덕분에 고백연 씨는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다녔다. 경희대학교 간호학과를 나와 간호사 생활도 10년 정도 했다. 산부인과 간호사 생활을 하고 나니 힘도 들고 미래가 없어 보였다. 고백연 씨 머리에 첫 번째로 스친 것이 원단 제작이었다.
“신생아를 받는 조산원에서 일했어요. 힘들기도 하고 제2직업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했는데 딱 첫 번째로 생각났어요. 저는 그때 10년, 20년이 지나면 직접 만든 제품에 대한 수요가 반드시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한 분, 한 분 일을 해드리고 나면 손님이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나중에는 우리 엄마보다 제 장사가 더 잘됐어요. 원단을 산더미같이 쌓아두고 일할 때도 있었고요. 도희가 저랑 일한 게 7년이라고 하지만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장사한 거예요. 손님들이 이 아이 친구죠. 이렇게 오랜 시간 일했지만 저는 지금도 원단을 보면 설레요. 제품을 보면 죽은 애들 같아요. 창작한다는 거는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가업 승계에 대한 인식이 바뀐 딸 김도희 씨
엄마와 딸 ‘덜그럭’, ‘드르륵’ 하는 미싱 소리의 이끌림으로 성장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애초에 두 사람 다 엄마가 가는 길을 따라갈 거란 생각은 없었다. 고백연 씨는 간호학과에, 딸 김도희 씨는 영문학과에 진학했으니 말이다. 원단 사업은 꿈에도 없었다.
“남들 다 똑같이 하는 거처럼 인서울을 목표로 수능점수 맞춰서 대학에 갔는데 학교가 너무 재미가 없었어요. 자퇴는 자신이 없어서 1학년 1학기 때 휴학을 하고 엄마 가게에 매일 나갔어요. 그때 상인회 회장님이 중소기업청에서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로 상인들을 교육하는 대학을 만들었는데 엄마 대신 저더러 한번 가보라고 권하셨어요.”
한 달 코스로 진행된 그곳에서 김도희 씨는 생각에도 없었던 일에 눈을 뜨게 됐다. 가업 승계였다.
“전통시장의 역사를 이어나가려면 가업 승계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엄마와 함께 일을 할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교육을 통해 인식이 바뀌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소스들, 어머니와 할머니요. 이건 정말 남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차별성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까지 별다른 꿈이 없었는데 내가 하면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교육이 끝나자마자 수예점을 홍보하고 판매까지 연결할 수 있는 인터넷 블로그를 개설했다. 그해 겨울에는 온라인 판매를 위해 독자적으로 사업자 등록증을 내 어엿한 업체 대표가 됐다. 영문학과에서 경영학과로 전과해 사업가로서의 수업도 병행 중이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실제 사업에 적용하면서 공부하니 학교 성적도 좋아졌다.
엄마와 딸이 따로 또 같이 성장해가다
“어머니는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작업을 하면서도 어린 저를 독립적인 주체로 대해주셨어요. 대개는 자식이 부모 밑에 들어가 기술을 배우잖아요. 어머니는 처음부터 제가 버는 것과 당신이 버는 것을 구분하셨어요.”
충분히 펼치고 성취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만으로도 자식이 성장한다는 것을 고백연 씨는 알고 있었다. 바로 어머니 김순남 씨가 그랬기 때문이다.
“제가 먼저 저희 엄마랑 일을 하면서 겪은 경험이 있잖아요. 다른 집들을 봐도 가족이 같이 사업을 해서 좋은 게 있는 반면에 의견 차이도 심해요. 엄마의 기존 틀이 있다면 딸이 생각하는 것도 있잖아요. 우리 엄마 고마운 것이 뭐냐면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셨어요. 잘하든 못하든 간에 하라고 하셨어요.”
할머니로부터 이어지는 모녀의 가업 승계 개념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조상이 물려준다는 의미보다는 하나의 독립체로 성장하다가 어떤 시점에서 엮이듯 오묘하게 닮아간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제 스타일과 딸의 스타일이 서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각자의 개성과 장점이 다르니 서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죠. 그렇게 꾸준히 각자 노력하다 보면 결국에는 조화롭게 멋진 모습으로 어울리게 되는 겁니다. 원색보다는 섞여서 나오는 창조적인 결과물이 중요한 것이죠. 우리 색깔을 지키고 찾아가는 것, 그게 가업 승계라고 봐요.”
지금의 연희데코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백연 씨가 우리 집 셋째 ‘도순’이라고 부르는 연희데코 전시실이 있다. 오래된 3층짜리 단독주택으로 1층은 작업실과 구제 및 원단 전시실, 2층에는 손님맞이 테이블과 전시실이 있다. 아직 완벽하게 준비된 상황이 아니기에 문의를 해오는 고객에게만 개방하고 있다. 이 또한 미래를 내다본 고백연 씨 모녀의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다.
“제 꿈은 도순이 집을 중심으로 연희거리를 만드는 거예요. ‘한국에 성남이라는 곳에 가면 엄마와 딸이 함께하는 거리가 있다’라고요. 외국 사람들도 방문하는 거리를 꿈꿉니다. 이곳이 활성화되면 수선하는 사람, 원단 파는 사람, 커피 파는 사람 등이 모이게 될 거고, 간단하게 음식도 만들어서 팔고요. 여기라고 북촌마을처럼 되지 말라는 법 있어요?”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지 10여 년이 됐다. 이제 스마트폰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됐다. 시니어 역시 스마트폰 보유율과 SNS 이용률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5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약 90%에 달한다. 또 50대의 SNS 이용률도 2014년 21.5%에서 2016년 33.4%로 10% 이상 큰 폭으로 증가했다. 60대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시니어가 디지털 세상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대인의 일상, ‘SNS’에 있다
최근 시니어도 빠르게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고 있다.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사진이나 건강 정보를 공유하고, 스마트폰으로 은행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가족 간에도 단톡방을 만들어 대화를 나눈다. 또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에서 취미와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도 많다. SNS의 가장 큰 순기능은 바로 ‘소통’이다. 온라인은 연령과 성별을 초월한다. 그래서 시니어가 많이 이용하는 SNS도 중요하지만 다른 연령층에서 이용하고 있는 SNS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7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위 ‘인스턴트메신저’를 이용하는 사람의 99.4%가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SNS 이용자 10명 중 6명이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 그 뒤를 카카오스토리(47.6%), 인스타그램(30.5%), 네이버밴드(29.7%)가 잇고 있다. 이들이 SNS를 하는 이유는 ‘친교(76.5%)’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또 다른 사람이 올린 콘텐츠를 보거나(55.3%), 취미나 여가 등 관심사를 공유하기 위해(43%) 이용하는 사람도 다수였다. 이들은 SNS를 이용하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고(68%), 최신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고(66.4%)도 생각했다. 또 직접 만나지 않아도 SNS를 통해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일하는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봐주는 조부모가 늘고 있다. 특히 저출산으로 ‘식스포켓(six pocket)’, ‘에잇포켓(eight pocket)’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에 더해 이모, 고모, 삼촌까지 모두 아이 한 명을 위해 지갑을 연다는 의미다. 손주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을 접하는 모태 디지털 세대다. 이들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들과 소통하려면 인터넷과 SNS 활용은 필수다.
SNS가 주는 3가지 장점
SNS는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첫째, 돈을 벌 수 있다. 요즘은 1인 미디어 전성시대다.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 올린 영상이 인기를 얻으면 수익으로 연결된다. 일상생활, 반려동물 이야기, 먹방(먹는 방송) 등 다양한 내용을 동영상으로 담을 수 있다. 조회수에 따라 광고 수익도 들어오며, 유명한 크리에이터는 제품 협찬 등으로 수익원이 다양하다. 또 창업을 하거나 소규모 자영업을 할 경우 SNS를 통한 홍보가 가능하다. 입소문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SNS는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
SNS의 또 다른 장점은 가족을 비롯해 다른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36년 만에 브라질에서 귀국한 이찬재(76)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내 손주들을 위한 그림들’이라는 SNS 계정을 운영한다. 브라질에 있을 때 한국과 뉴욕에 사는 손주들이 그리워 2015년부터 SNS에 매일 그림을 올렸다. 이러한 사연이 영국 BBC에 소개되며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사실 그는 인터넷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돌보던 손주들이 한국으로 귀국한 후 그림으로 손주들에게 추억을 남겨주기로 결심했다. 한국의 옛 모습에서 최근의 평창동계올림픽까지 그가 그린 그림은 700여 점을 넘어섰다. 그에게는 33만여 명의 팔로워도 있다. 전시회도 개최하고 그림도 판매한다. 그는 늦은 나이에 SNS를 시작해도 충분히 배울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점은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셀카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일본인 니시모토 키미코(90). 72세에 사진을 배운 그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거나 개구리 분장 사진 등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현재 약 8만 명의 팬들과 소통하고 있는 그녀의 유쾌한 사진을 보면 구순의 할머니라는 상상이 전혀 안 된다. 사진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책도 출간했다. 이외에 노부부의 커플룩, 먹방 등을 SNS를 통해 공유하며 노후를 즐겁게 보내는 시니어도 많다.
SNS를 시작할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SNS는 더 이상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SNS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먼저 어떤 SNS를 이용할지 결정하기 위해 각각의 특징부터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는 프로필을 기반으로 지인들과 연결된다. 반면 인스타그램은 사진이나 동영상 등 특정 관심사를 올릴 수 있는 이미지 기반의 서비스다. 만약 그림이나 패션 사진을 주로 올리고 싶다면 인스타그램이 적합하다. 각 SNS 앱은 스마트폰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다음은 계정 만들기다. 사용할 SNS를 결정했다면 가입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이름과 휴대폰 번호 또는 이메일, 생일, 성별을 입력한다. 또 시니어가 많이 이용하는 카카오스토리는 카카오톡을 사용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SNS 활용 교육을 무료로 하는 시도별 지자체도 많다. 가까운 지자체의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등록하면 된다. 교육 참가가 어렵다면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다. 유튜브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SNS 사용법을 검색하면 많은 자료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용어와 사용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하다 보면 신비한 SNS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시니어는 다양한 삶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창업에서 취미까지 활용 범위가 넓다.
외로움은 시니어의 4대 고통 중 하나라고 한다. SNS에서는 멀리 사는 자녀, 친구와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아직 SNS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 디지털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이번에 시도해보면 어떨까.
이나영 시니어 전문 칼럼니스트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차의과학대학교에서 고령친화산업학을 전공했다. 한화그룹과 신한은행에서 근무했다. 현재 경향신문에서 고령사회 담당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며, ‘이나영의 고령사회 리포트’를 연재하고 있다.
‘글을 잘 쓰는 패션 디자이너’
필자의 후반생 꿈이다.
2012년 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봤다. 패션 디자인, 패션 모델, 발레와 왈츠 그리고 탱고 배우기, 영어회화, 서유럽 여행하기, 좋은 수필 쓰기, 오페라와 발레 감상하기, 인문학 공부하기 등 많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무엇이 중요할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필자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선생님이 되어 30여 년을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일했다. 퇴직을 했어도 공무원 연금이 나와 최소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은 정말 심각하단다. 절반이 빈곤층이라고 한다. 그래도 필자는 평생 원하던 일을 하고 퇴직 후에는 최소한의 생활까지 보장이 되니 이처럼 다행스런 일이 없다. 지금부터는 필자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 공부는 주로 집에서 한국방송 통신대 강의를 통해 충족한다. 요일별로 국문학과 철학, 역사와 서유럽 문화기행,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창 자랄 때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의지만 있다면 TV와 인터넷 그리고 서울 각 구의 문화원에서 무료로 혹은 가성비 높은 비용으로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TV를 바보상자라면서 멀리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필자는 제자들에게 ‘정보의 바다’라고 표현했다. 인터넷에서 전복을 구하느냐 미역을 건져 올리느냐는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요즘엔 방송대 강의도 그렇고 교양 프로그램과 양질의 다큐멘터리 등 좋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방송대 강의가 너무 재밌어서 외출을 못할 때도 있을 정도다.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의욕에는 세월도 못 당한다. 필자는 퇴직 후 제일 먼저 강남 라사라 학원에 등록했다.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릴 때 선생님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패션디자인이었다. 이곳에서 패션디자인 과정 초급 3개월, 중급 3개월을 마치고 서울시 창업스쿨에서 2개월간의 패션디자인 과정을 수료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은 아마 평생 가지고 가게 될 것 같다. 발레는 어려서부터 필자의 로망이었기에 패션디자인 과정을 마친 후 바로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발레를 할 때마다 얼마나 큰 행복을 느끼는지 모른다. 발레가 어린 시절의 로망을 실현시켜주는 취미 정도라면 왈츠와 탱고는 능숙하게 아주 멋들어지게 추고 싶다. 운동할 때는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왈츠와 탱고를 출 때는 어느새 끝나는 시간이 되곤 한다. 건강을 위해, 바른 자세를 위해, 힐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춤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에서는 팔십이 넘은 노인들도 발레를 한다. 노인분들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인다.
서초문화원에서는 수필을 잘 쓰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으며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쓴 글이 96편이 될 정도로 글쓰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틈틈이 압구정역에 있는 무지크 바움에 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몇 해 전에는 강남시니어플라자의 모델워킹반에도 등록했다. 주 1회 모델워킹을 연습하고 있다. 2년 동안 패션쇼도 다섯 번 했다. 개성 강한 동료들의 기상천외한 옷차림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옷차림은 전략이고, 옷 입는 것도 일종의 예술 행위’다. 기왕이면 예쁘게 입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액세서리는 젊음이다. 젊은이들을 값싼 옷을 입어도 예쁘지만 나이 들면 옷차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물기 빠진 피부에 옷차림까지 추레하면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녹화가 있는 토요일은 될 수 있으면 여의도로 간다. 서포터즈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5포세대, 혼밥, 실업문제, 4차 산업혁명 등 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며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메인 브로드캐스터가 강연한 후 미래참여단 서포터즈들이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장에서 녹화에 참여하면 더 생생한 공부가 된다. 20대 젊은이에서 70대 시니어까지 다양한 세대와의 만남도 즐거움 중 하나다. 주 2회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주관하는 서울 둘레길 걷기에 참여한다. 둘레길 걷기는 주 3회 30분 이상 운동을 해야 하는 시니어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배움이 이어지면 기회가 이어진다’고들 한다. 지금 같아서는 지구촌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식을 것 같지 않다.
이래도 되는 거야?
삶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거냐고요!
어제는 너무 좋아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올해 4월부터 활동하게 된 온․오프라인 잡지 에 필자 글이 실렸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온라인에만 꾸준히 실렸는데 잡지사에서 정해준 주제 ‘으이구! 주책이야!’에 맞춰 쓴 글 ‘교재를 망가트려 죄송합니다’가 7월호에 실린 것이다. 제시한 주제에 맞춰 처음 써낸 글이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다. 에서 주관한 시니어 헬스 콘서트에 필자와 함께 온 사람들은 대부분 필자 스타일을 좋아하는 여성과 남성들이다. 모두들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인 분들이다. 하는 일도 인터넷 기자, 사회복지사, 공예가, 모델, 시인, 수필가, 교수 등 다양하다. 서초문화원 문화기행 프로그램에서 만난 분도 있고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구두매장에서 필자 스타일에 필이 꽂혀 인연을 맺게 된 분도 있다.
평택여고에 재직할 때 필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정성껏 대하라. 그 사람이 나와 어떤 인연으로 맺어질지 모른다.” 서둔야학 단톡방, 서민동 단톡방, 서울시 낭송회 시음 단톡방, 왈츠 단톡방, 명견만리 서포터즈 단톡방, 꿈방송 단톡방, 뉴시니어 리더스포럼21 단톡방, 강남시니어프라자 해피미디어단 단톡방, 모델워킹 단톡방, 서리풀 문학회 단톡방, 오페라 동호회 모임,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친구들 등 단체회원 단톡방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인적 네트워크다. 살아보니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2년 전 메르스 사태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에서 녹화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느라 고심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필자가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모델워킹하는 동료들과 해피미디어단 회원들을 왕창 모시고 갔다. 담당 PD가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필자는 바람잡이 역할을 즐긴다.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행사를 할 때는 담당 PD를 초대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필자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각자의 재능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시니어 헬스 콘서트에 참석한 분들도 너무 재밌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필자에게 말했다. 다음 행사에도 초대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아자아자! 이런 것이 바로 윈윈이다.
날개를 달아준 에 감사해하며 오늘도 필자는 저 푸른 하늘을 향해서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지금 필자의 삶은 글자 그대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 이런 삶이 수어지교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한 기쁨!
따봉, 원더풀!
사회적 수명과 생물학적 수명의 간극은 시니어들을 가장 고민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직업은 단지 경제적 자원을 얻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인생의 보람, 즐거움 심지어는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자격증을 선택하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결국 취업이든 창업이든 기술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니어들을 위한 자격증, 무엇이 좋고 어떻게 딸 수 있을까?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시니어들의 자격증에 대한 관심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은퇴 후 삶을 대비하기 위해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하는 50~60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발간한 를 살펴보면 2015년 50대 자격증 취득자는 2011년 2만6307명에서 2015년 3만8260명으로 45.4% 늘었다. 65세 이상 고령자도 2011년 571명에 불과했던 것이 2015년에는 1017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은 78.1% 증가했다.
자격증 수요와 효용가치 잘 따져봐야
자격증은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뉜다. 특정 기술에 대한 기능자격을 국가가 관리하는 국가기술자격이 있고, 기술 외 전문 분야에 대한 자격인 국가전문자격 그리고 민간자격증이다. 국가기술자격과 국가전문자격은 크게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시행하는 자격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나 한국인터넷진흥원과 같은 관련 정부산하 기관에서 시행하는 자격으로 나뉜다. 이런 자격증에 관한 일반적인 정보는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포털사이트Q-net(www.q-net.or.kr)에서 자세히 검색할 수 있다.
자격증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모든 자격증이 취업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일부 민간자격증의 경우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과 응시비용 자체를 ‘수익 모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잘 따져봐야 한다. 물론 민간자격증도 업계에서 공정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자격증 획득 전에 발급기관 연혁이나 회원수, 자격 보유자수 등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또 취업사이트에서 검색을 통해 해당 자격증 보유자를 구인하는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전액 공짜! 기술교육원을 아시나요
보통 자격증 취득을 생각하면 가까운 지역 학원에 가서 수강료를 내고 수업을 통해 응시 준비를 하는 것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니면 온라인 학원을 통해 교재를 산 뒤 최근 유행하는 인터넷 강의에 참여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운전면허증에서 공인중개사까지 마찬가지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만약 모든 교육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교육기관이 있다면 어떨까. 자격증 취득과 취업 알선까지 지원해주는 공립기관 중 대표적인 기관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기술교육원이다. 서울시 기술교육원은 동부, 중부, 북부, 남부 4개 기관이 운영되고 있으며, 4개 기관에서 1년짜리 정규 과정 53개 학과 1842명, 단기과정 25개 학과 915명을 교육시키고 있다. 교육 과정은 취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격증 취득을 우선시한다. 또 예산으로 진행되는 만큼 수료 후 취업자들에 대한 모니터링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일단 합격만 되면 수료 때까지 교재와 실습 재료비를 포함해 전액 무료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취업 알선과 취업 후의 생활 상담까지 가능하다. 일부 과목의 경우는 협력기관,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 지원금까지 제공받을 수 있고, 수업시간이 긴 과목은 점심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게 제공되는 혜택이 많다 보니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 과목에 따라 경쟁률이 2대 1에서 4대 1을 넘기도 한다. 전형은 면접이 50%, 서울 거주기간(5년 이상 만점)에 따른 배점이 50%다. 면접에서는 기술을 익히려는 뚜렷한 목적이나 계획을 중점적으로 심사한다.
전통기술에서 첨단기술 분야까지 다양
교육 현장의 실무자들은 시니어들의 자격증 취득에 대한 관심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높다고 말한다. 남부기술교육원의 남혜성 팀장은 현장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시니어 교육생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20%대까지 늘었고, 시니어들의 관심이 큰 학과의 경우는 40~50% 정도까지 비율이 늘었습니다. 창업 등을 고려해 바리스타나 외식조리학과를 지원하는 중·장년층도 많아졌고, 옻칠나전, 조경관리와 같은 분야도 시니어들이 많이 관심을 갖는 분야입니다.”
취업에 유리한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학과도 인기가 높다. 예를 들어 전기학과의 경우 전기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건물 관리인 등으로 취업하기 쉬워 남성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다. 여성 중·장년층은 피부미용 관련 자격증을 통해 피부과, 성형외과, 피부관리실 등에 취업한다.
최근 구인 수요가 가장 많이 늘어난 자격증 중 하나는 요양보호사다.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노인을 위한 노인요양보호시설이 늘어나면서 인력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 그러나 궂은일을 꺼리는 추세와 저임금의 처우까지 겹쳐 여전히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같은 첨단 분야의 교육도 진행된다. 관계자들은 매년 새로 생겨나는 자격증이나 취업시장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중부기술교육원의 박훈균 팀장은 “신재생에너지PM(프로젝트 매니저)학과가 대표적이죠. 전력 직거래를 통해 태양열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의 교육입니다. 협동조합에 취업하는 경우도 많지만, 토지나 자본이 있으신 분들이 직접 사업화하기 위해 교육을 받으시는 경우도 많습니다”라고 귀띔한다.
무엇을 할지 몰라도 방법은 있어
은퇴를 앞둔 시니어들 중 상당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실제로 상담을 신청하는 시니어 중 대다수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실무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자아실현, 취업을 통한 생계유지나 창업, 자기계발 등 어떤 목적을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전문가와 함께 찾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목표가 설정되면 그다음부터는 교육 과정 속에서 함께 고민을 하므로 쉬워진다.
중부기술교육원 한국의상학과의 김경미 교수는 기술 전달뿐만 아니라 취업이나 창업 이후까지도 고민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최근 개량 한복이 인기를 끌면서 한복 분야도 다양해졌어요. 중·장년 학생들은 창업에 관심이 많고요. 학생들과 옷 만드는 방법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주소비자로 떠오르고 있는 젊은 층이나 외국인들에게 한복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남부기술교육원에서 옻칠나전공예를 가르치는 임충휴 명장은 교육의 효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전칠기를 활용해 창업을 준비하시는 시니어들도 적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과 중·장년층이 섞여 수업을 하다 보니, 오랜 경험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시너지 효과를 내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제품으로 응용이 시도되기도 하고요. 저 역시도 전통적인 디자인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학생들의 아이디어에서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각 지역 기술교육원은 이달 중순까지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