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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탄’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비밀을 찾아서
- 지구상에서 세계화와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고유의 전통을 지키는 곳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오직 한 나라,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희귀한 나라가 있으니 바로 부탄이다. 전 세계가 GNP(국민총생산)만을 부르짖으며, 효율과 편리라는 기치 아래 경제성장에 목을 맬 때도, GNH(국민총행복지수)를 최고 정책으로 삼고 있는 나라. 지구상에서 환경보호에 가장 민감하며, 영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늦은 1999년에 텔레비전이 도입되었고, 유일한 금연 국가로 담배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새들의 목에 줄이 걸릴까 염려되어 전깃줄을 잇지 않는 나라. 지극한 불심에서 우러나온 윤회사상으로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을 부모처럼 섬기고 아끼는 나라. 나무 한 그루를 벨 때도 국가의 허가증이 필요한 나라가 부탄이다. 이 나라를 여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점점 늘고 있지만 부탄은 환경과 전통 보호 차원에서 일일 관광객 숫자를 제한하고 있다. 돈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듯한 분위기가 팽배한 나라에서 살아온 나는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도도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지 궁금했고 그 비밀을 찾아 부탄으로 날아갔다. 국민 행복이 국가 정책인 나라 히말라야 동쪽에 위치한 불교 왕국. 북으로는 티베트, 남쪽과 동쪽으로는 인도, 서쪽으로는 인도 시킴 주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곳. 전체가 산악 지형(해발 150m에서 7000m)이고, 자신들의 고유 언어인 종카어를 쓰는 나라. 수백 년 동안 외부 세계에 문을 닫고 폐쇄적으로 살아왔으며,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거나 식민지였던 적이 없는 독립심 강한 나라. 부탄이 결정적으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이 척박해 보이는 나라가 선진국들을 다 제치고 국민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랭크되면서부터다. 이상적인 지도자를 국왕으로 둔 행복한 국민들 “세상에 그런 지도자가 어딨어?” 정치가들에게 실망할 때마다 우리가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지도자’를 국왕으로 둔 행복한 국민들의 나라가 있으니 바로 부탄이다. 부탄의 집집마다, 거리마다 국왕과 왕비의 사진이 넘쳐난다. 그 이유를 알기 전까진 잔뜩 의심스러웠다. ‘행복 국가라더니 여기가 북한도 아니고 국왕 사진이 너무 많잖아!’ 마치 충성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여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부탄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실로 대단했다. 그들은 1대 국왕부터 5대 국왕까지 모두 다 존경하지만 특히 3대, 4대, 5대 국왕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이다. 3대 국왕이었던 지그메 도르지 왕축은 현명하고 빠른 판단으로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부탄의 독립을 지켜냈다. 그러나 3대 국왕은 일찍 사망하고 만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4대 국왕은 고작 17세였지만 국민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로의 초석을 다졌다. 과거의 미덕을 돌아보게 하는 백미러 같은 곳 행복에 관한 연구들은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삶이 가져다주는 강한 정체성이 행복감에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의상에서부터 가옥, 노인 공양에 이르기까지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부탄 왕국의 모습은 세계 어디를 가든 똑같은 패션과 풍경을 보게 되는 여행자에겐 신기하고도 이색적인 풍경이 된다. 부탄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언제나 전통 의상을 입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남자들의 의상은 ‘고(goh)’, 여자들의 의상은 ‘키라(kira)’라고 하는데 학교에 갈 때는 물론 농사를 짓거나 일상생활을 할 때도 늘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 부탄인 가이드도 더운 날씨임에도 전통 복장인 ‘고’를 갖춰 입었다. 법으로 정해져 있어 지켜야 한다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 부탄 국적을 가진 사람은 전통 복장을 입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하니 이 나라가 전통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는지 알 만했다. 도출라 고개에서 맛보는 장엄한 대서사시, 히말라야 파노라마 팀푸에서 17세기에 부탄의 겨울 수도였던 푸나카(Punaka)로 가는 길, 해발 3140m의 도출라(Dochu-la) 고개에서는 히말라야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등반을 하지 않고도 눈 덮인 히말라야의 장관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은 부탄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여름 수도였던 파로(Paro)에는 부탄의 상징과도 같은 절벽사원 탁상 곰파가 있다. 차를 타고 2600m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3140m 탁상 곰파까지는 무조건 걸어서 가야 한다. 영화 ‘리틀 부다’의 촬영지였던 파로종에서는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들이 마치 지상의 것이 아닌 양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자줏빛의 승복을 입은 꼬마 승려들과 마니차(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를 들고 코라(탑 주변을 시계 방향으로 도는) 의식을 하는 순박한 사람들도 만났다. 파로종 옆에 있는 오래된 나무다리에서는 학교에 가는 순수한 얼굴을 만났다. “쿠주장폴라(Ku-Zu Zangpo-la,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부탄어)”라고 인사하니, 수줍은 듯 “쿠주장폴라” 하고 답한다. 사진기를 들이대니 바쁜 걸음을 멈추고 기꺼이 모델이 되어준다. 여러 컷을 찍는 동안 가만히 기다리는 소년에게 이제 충분하니 가도 좋다고 신호를 보내니 그제야 발걸음을 옮긴다. 순간 부탄의 속담 한 구절이 떠올랐다. “당신이 친절하다면 가난해도 상관없다. 당신이 관대하다면 게을러도 상관없다. 하지만 가장 나쁜 것은 거만함이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룽다 깃발과 초르텐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죽음을 직시하는 것이라 한다. 부탄에서는 매일 다섯 번 죽음을 생각하라고 가르친다. 삶과 함께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는 당장 눈앞의 일에 급급해하며 살아가는 것을 막아준다. 산악지대의 왕국 부탄을 여행하면서 특이하게 느낀 점은 묘지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는 죽음에 대한 불교적 태도 때문인데, 부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약 90%는 화장해 강에 뿌린다. 일부는 작은 탑 안에 재를 넣어두기도 한다. 주변엔 108개의 흰색 룽다(lungta) 또는 다르초(darchor)를 건다. 룽다는 티베트어로 ‘바람의 말[馬]’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바람 부는 곳에 룽다를 걸어놓는 것은 부처님 말씀이 널리 전해지기를 염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2세 미만의 아기가 죽었을 땐 조장(鳥葬)을 하기도 한다. 유명인이나 부자의 경우는 초르텐(chorten, 塔)을 세운다. 우리나라처럼 매년 제사를 지내지는 않고 2~3년에 한 번씩 간단한 추모식을 갖는다. 부탄 사람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고 극락세계로 가는 과정이자 윤회의 한 고리일 뿐 슬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많은 사람이 히말라야 첩첩산중에 있는 은둔의 왕국 부탄을 찾는 이유는, 척박한 환경임에도 전 세계적으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의 사람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가 궁금해서일 것이다. 부탄의 지도자는 국민들의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서는 적어도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 없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했다. 부탄을 여행하면서 그 현명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없는 완벽한 나라는 아니었다. 텔레비전이 도입되면서 젊은이들은 변화를 겪고 있고 부탄에 와 있는 인도, 네팔인들과의 마찰도 왕왕 일어난다. 세상에 완벽한 국가는 없다. 그러나 부탄 여행은 국민을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이상적인 지도자’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이 ‘경쟁’과 ‘돈’이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들을 재발견하도록 해준다. 부탄의 한 사원에는 제2의 부처로 추앙받는 구루 린포체가 한 말이 새겨져 있다. “변하는 것은 시대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자신이 살아온 나쁜 업은 생각하지 않은 채, 평화도 없고 우주 만물의 조화도 깨진 시대 탓만 하는구나.”
- 2018-05-0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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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의 시간
- 손목 위의 작은 우주라 불리는 시계. 시계는 당신이 누구인가를 표현하는 징표일 수도 있고, 패션을 완성하는 마침표일 수도 있다. 시계란 참 묘한 물건이다.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착용한 사람의 취향까지 읽을 수 있게 해준다. 한 번 구입하면 대를 물려 쓸 정도로 시계 안에서의 시간은 값지게 흐른다. 우리의 손목 위에서 수많은 문장들을 만들어내는 시계. 그 안에도 트렌드가 존재한다. 또 다른 럭셔리 아이템 요즘 가장 잘 팔리는 아우터는 고급 소재의 코트가 아니라 고가의 패딩이고, 가장 인기있는 차종은 고급 세단이 아니고 레인지로버와 같은 럭셔리 SUV다. 이런 현상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과거와는 달리 사람들이 현명한 소비의 기준을 단순히 비싼 가격표에만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실용성을 겸비한 고가의 제품을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럭셔리라는 단어 앞에 또 다른 형용사가 붙은 것을 좋아한다. 시계 시장도 다르지 않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에, 오토매틱보다는 기계식 워치에 더 큰 의미를 두던 럭셔리 시계 브랜드들이 2015년 애플 워치 출시 이후 일대 변혁을 겪는다. 단단한 줄만 알았던 스마트 워치와 럭셔리 워치 사이의 벽은 애플 워치를 통해 조금씩 무너졌고, 럭셔리 시계 시장은 ‘디지털 럭셔리’라는 새로운 장르에 속속 도전장을 던졌다. 최근 2018년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는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수많은 스마트 워치들이 등장했다. 벤틀리보다 비싼 스마트 워치로 불리는 태그호이어 커넥티드 모듈러 45 풀 다이아몬드는 총 589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스마트 워치로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GPS 연결 기능은 물론이고 안드로이드 페이까지 가능하다. 루이비통 역시 구글과 협업한 커넥티드 워치 탕부르 호라이즌을 내놓으며 스마트 워치 시장에 뛰어들었다. 탕부르 호라이즌은 사용자 인근에 있는 여행 명소를 제안하는 지능형 위치 기반 서비스인 ‘니어 미(Near Me)’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젠 시계를 고르기에 앞서 우리가 가진 럭셔리 시계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바꿔야겠다. 수트 차림에만 차는 고급 시계가 아니라, 운동복 차림에도 찰 수 있는 시계. 이것이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또 다른 럭셔리의 기준이다. 다시 돌아온 얼굴 최근 시계 트렌드가 흥미로운 이유는 상반된 트렌드의 공존 때문이다. 시계 브랜드들은 한쪽으로는 맹렬히 미래를 좇고 있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과거의 것을 복각하고 있다. 지난해 블랑팡은 1957년 선보였던 ‘피프티패덤즈 MIL-SPEC 1’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버전을 다시 내놓았다. 태그호이어 역시 1966년에 출시됐던 오타비아 린트 모델을 복각해서 출시했으며 예거 르쿨트르, 제니스, 파네라이, IWC 등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파네라이는 자신들의 첫 시계인 라디오미르 3데이즈 아치아이오를 80여 년 만에 새롭게 복각하며 시계 안에서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빈티지한 디자인의 복각 시계들은 요즘 복고 패션 트렌드와 맞물려 매력을 더하고 있다. 컬러를 입은 시계 시계 하면 으레 떠오르는 컬러들이 있다. 골드, 실버, 블랙, 브라운 등. 마치 우리나라 도로 위의 풍경처럼 시계는 질리지 않아야 된다는 이유로 보수적인 컬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컬러의 스트랩과 다이얼로 무장한 시계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 팬톤 컬러로 선정된 그린 컬러 트렌드는 시계 시장에도 예외가 없었다. 몽블랑 1858 모노푸셔 크로노그래프 리미티드 에디션 100, 오데마 피게 로열 오크 오프쇼어 셀프와인딩 크로노그래프 등 깊이 있는 그린 컬러로 무장한 시계들은 남자들의 손을 컬러 네일 못지않게 산뜻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 2018-02-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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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맞닿아 눈부시게 빛나는 곳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 자연을 마주하는 일은 거울을 보는 일과 같다. 자연이 거대하고 단순할수록 내 안의 껍데기는 사라지고 알맹이만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곳에서 느끼는 나는 아주 작고 또한 아주 크며 힘없고 미약한 존재다. 동시에 우주를 포함한 자연이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다. 여행이란 교실에서 배운 지식들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시간이 아닐까. 많은 이의 버킷리스트인 우유니(Uyuni). 잘 알려진 소금사막과 바람이 만들어낸 놀라운 기암괴석, 붉은 빛깔의 호수, 안데스의 희귀동물 라마까지 신비함이 가득한 곳이다. 새롭고 아름다운 그 세계로 떠나보자. 해발 366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라파스’ 볼리비아는 남미의 가장 가난한 나라이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모험심 많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꿈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우유니 사막에 가려면 먼저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로 들어가야 한다. 볼리비아의 헌법상 수도는 수크레이지만 실질적인 행정수도는 라파스로 ‘평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멀리서 해발 3660m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오색 성냥갑으로 만든 산처럼 보인다. 대표적인 사가르나가 거리 골목에는 안데스 특유의 패브릭과 장신구들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재래시장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안데스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모자를 사서 쓰고 나니 금방이라도 빗자루를 타고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부풀린 치마에 중절모를 쓰고 등짐을 진 컬러풀한 의상의 인디오 여성들 모습에서는 이국적인 향기가 느껴진다. 높은 지대라서 모든 길이 언덕처럼 되어 있어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지만 거리마다 가득한 상점들과 사람들 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른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신비한 ‘마녀시장’ 사가르나가에서도 가장 유명한 골목은 ‘마녀시장(Witch Market)’이다. 이곳엔 말린 라마의 태아와 향료들이 기묘한 냄새를 풍기며 진열되어 있다. 온갖 색상의 돌과 장식품을 작은 병에 담아 행운의 상징으로 팔기도 한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 이곳 또한 스페인이 전파한 천주교가 안데스의 전통적 제의와 만나 독특한 형태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토속신앙도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천주교도인 인디오들은 하나님께 중요한 소원을 빌 때 살아 있는 라마를 잡아 바치는데, 이때 말린 라마 태아를 올리기도 한다. 온갖 허브와 목각, 희귀한 진열품을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빗자루를 탄 마녀가 나타나 마법을 부릴 것 같다. 이곳 골목은 뭔가 음험하면서도 삶의 비밀을 들킬 것 같은 으스스함이 함께 느껴져 색다른 감흥이 일어난다. 1549년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 산 프란시스코 성당과 레스토랑, 전통 공예품을 파는 상점들, 여행사들이 즐비한 좁은 골목들은 여행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해준다. 라파스에 머무는 동안 시간이 허락된다면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투어를 떠나보자. 달 모양과 흡사하다고 해서 달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마치 화성에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해줄 것이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소금사막 ‘우유니’ 볼리비아 남서쪽, 해발 약 3600m에 자리 잡은 우유니 사막(Salar de Uyuni)은 남미를 대표하는 매혹적인 여행지다. 원래 바다의 땅이었던 우유니는 대륙붕의 충돌로 바다 아래의 땅이 하늘 가까이 솟구쳐 오르면서 만들어졌다. 고지대의 공기가 건조해 시간이 흐르면서 바닷물이 증발되었고 이로 인해 생겨난 소금평원 우유니는 언제 가도 아름답지만 특히 12~2월의 우기 때 가면 비가 고인 물에 푸른 하늘이 반사되어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서울과 경기도를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의 거대한 소금사막을 사륜구동차를 타고 가로질러가다가 다른 행성에 착륙이라도 한 듯 소금사막 한가운데 발을 내딛었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사막의 풍경 앞에서 모두들 카메라 셔터를 눌러가며 인생샷 한 장이라도 건져보기 위해 바쁘다. 소금사막의 광활한 풍경 앞에 서면 삶의 가장 소중한 것들이 떠오른다. 2박 3일의 우유니 사막 투어가 가장 인기 우유니 사막 투어는 초입의 작은 광산마을 포토시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사람을 모아 1일 투어, 2박 3일 투어 등 다양한 투어를 한다. 시내에는 많은 여행사가 있다. 경쟁이 심한 만큼 몇 곳을 비교해서 선택하는 것이 좋다. 길이 험해 사륜구동차를 이용해야 하며 투어 비용은 한 대를 기준으로 책정되므로 함께 투어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비용은 낮아진다. 우유니 사막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려면 2박 3일 투어가 좋다. ‘우유니’ 하면 대부분 하얀 소금사막만 생각하는데,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사막 지대와 플랑크톤 작용으로 인해 붉은 빛을 띠는 신비로운 호수, 눈 덮인 산, 수많은 플라밍고를 볼 수 있는 호수까지 희귀한 풍경이 가득하다. 또 소금호텔을 둘러본 후 눈부신 사막 한가운데 앉아서 맛보는 라마 스테이크의 맛은 잊을 수 없다. 조금 전 귀엽다고 쓰다듬어주었던 라마가 입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은 조금 께름칙하지만 그토록 부드러운 고기는 태어나 처음 맛보는 진미였다.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온천욕 덜컹거리는 지프를 타고 뜨거운 태양 아래를 달리는 동안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바람이 깎은 예술조각들이 가득한 협곡과 붉은 빛깔의 신비로운 호수를 지나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플라밍고를 만날 때까지…. 이토록 짧은 기간에 신비로운 풍광을 흠뻑 경험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변화무쌍하고 이국적인 향기를 열린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 건 함께 차를 타고 2박 3일 동고동락한, 칠레와 독일에서 온 친구들이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할 때는 국경이나 언어 장벽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칠레에서 온 친구는 어디선가 커다란 타조 알을 주워와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칠레 국경을 넘기 전에 만난 노천 온천은 축복이었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물도 잘 나오지 않는 곳에서 씻지도 못한 채 다니다가 대자연 속에 거짓말처럼 준비되어 있던 따스한 온천을 만나자 모두들 앞뒤 재지 않고 옷을 벗어던지며 뛰어들었다. 볼리비아의 자연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곳곳에 반짝이는 풍경이 많다. 팀 케일은 ‘나를 유혹한 낭만적인 곳들’이라는 책에서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먼 곳까지 가는 색다른 모험을 꿈꾸었다. 이런 꿈은 가슴 설레게 하는 꿈 아니었는가?” 하고 묻는다. 그의 말처럼 그 시절처럼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있다면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 안 그러면 영원히 떠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이루지 못한 꿈을 아쉬워하며 자신에게 큰 죄를 저질렀다며 안타까워할지도 모르니까. travel tip 항공>> 한국에서 볼리비아 라파스로 가는 항공편은 미국과 페루를 경유한다. 라파스에서 우유니는 국내선 항공이나 버스를 이용한다. 우유니 마을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다양한 사막투어에 참여할 수 있다. 당일치기로 소금사막을 즐기는 1일투어와 우유니를 출발해 칠레 북쪽의 사막도시 산페드로데 아타카마로 가는 2박3일의 투어가 인기가 좋다. 비자>> 볼리비아는 여행시 비자가 필요한 나라다. 여행비자의 경우 30일 단수비자가 발급된다. 한국에서 볼리비아 영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 출국할 수도 잇지만 비용이 비싼 편이다. 라파스 국제공항으로 입국시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보다 저렴하고 간편하게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남미의 다른 나라를 거쳐서 볼리비아로 들어간다면 페루 쿠스코영사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영사관, 브라질 상파울루 영사관, 칠레 산태아고 영사관 등에서 무료로 발급이 가능하다. 고산병>> 해발3600미터에 위치하고 있어 간혹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지만 라파즈에서부터 오는동안 어느정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유니에서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산병은 낮은 지대에서 해발 2000-3000미터 이상의 고지대로 이동했을 때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생기는 신체반응으로 피로, 두통, 호흡곤란, 체온저하 등이 있다. 대처방법은 낮은 지대로 이동하는 가장 좋으며, 물을 충분히 마시고, 천천히 걷는 것도 도움이 된다.
- 2018-02-0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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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빛을 만나러 떠나는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
- 여행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여행 아닐까. 이왕이면 평소 사는 곳과 다른 곳일수록,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일수록 완벽한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 하지만 누군가는 별을 보고 있다네”라고 했던가. 살면서 꼭 한 번은 밤하늘에 펼쳐지는 신비로운 빛을 만나보고 싶다. 그 황홀한 광경을 보고 나면 우주는 더욱 위대해 보일 것이고 우리네 삶도 조금은 숭고하게 느껴질 것 같다. 최고의 오로라 관측소, 옐로나이프! 전 세계적으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같은 북구의 나라와 미국 알래스카, 캐나다 화이트호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 옐로나이프는 나사(NASA)가 지정한 오로라 관측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여름에도 오로라를 볼 수 있지만 11월에서 4월 사이 밤이 긴 겨울이 가장 좋다. 북극광(northern light) 혹은 극광이라고도 불리는 오로라는 라틴어로 ‘새벽’을 뜻한다.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스마 입자가 자석 성질을 가진 지구의 극지방 주변을 둘러싸면서 붉은색이나 녹색, 파랑, 노랑, 분홍 등 다양한 색의 자기 에너지 띠로 나타나는 것이다. 엘로나이프로 향하는 프로펠러 비행기 안. 일본인들과 중국인들, 영국 등지에서 온 유럽인들, 그리고 캐나다인처럼 보이는 가족들도 보인다. 일본은 오로라 여행이 대중화되어 일반인과 신혼여행객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오로라가 뜰 때 아기를 가지면 그 아기가 천재가 될 확률이 높다는 믿음 때문이라지만, 혹한과 어둠을 뚫고 세상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신비로운 빛을 함께 경험하는 일은 두 사람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을 선사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비행기 안에서 엷은 환호가 터져 나온다. “저기… 저기… 오로라다.” 반대편에 앉은 승객이 창 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자 기내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창밖으로 향한다. 나도 벌떡 일어나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하늘에 두 줄기 오로라가 어른댄다. “아~ 저것이 말로만 듣던 오로라구나.”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오로라, 그것은 마치 바닷속의 돌고래를 보는 것과 같다. “고래다!” 하고 소리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존재 말이다. 오로라 빌리지를 통하면 모든 예약이 하나로 오로라를 보러 옐로나이프를 간다면 오로라 빌리지(Aurora Village)를 통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한국에서 비싸기로 유명한 캐나다 구스는 영하 50도까지 내려간다는 이곳 옐로나이프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평소엔 입을 일이 없기에 오로라 빌리지에서 대여해준다. 방한 점퍼와 바지, 마스크, 두터운 신발과 장갑까지 착용하고 나면 마치 우주복을 입은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저 하늘을 둥둥 떠다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사진마다 등장하는 아름다운 원주민 텐트 ‘티피(teepee)’ 안엔 따뜻한 화로가 있고 간단한 수프와 빵, 차와 커피, 코코아 등이 준비되어 있어 장시간 오로라 사진을 찍거나 관측하다 꽁꽁 언 몸을 녹일 수 있다. 캄캄한 어둠속을 달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스고이”, “스고이”라는 일본말과 외국인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뛰어나가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지상에서 보는 오로라는 어떤 모습일까? 정말 사진에서처럼 그렇게 환상적일까? 깜깜한 밤하늘에서 처음엔 희미한 듯하더니 점점 더 강렬하게 하얀 빛줄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20초. 마침내 신의 영혼인 듯, 천상의 빛인 듯, 신비롭고 영험한 기운이 내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잊지 못할 오로라 여행이 시작되었다. 낮 동안의 신나는 북극 체험 전날 밤 오로라를 보고 숙소에 돌아온 시각은 새벽 3시. 이곳에서의 일정은 밤에 오로라를 보기 위한 기다림으로 채워진다. 바쁠 것 없는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내다보는 창밖 풍경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영화 속 엘사가 살던 ‘겨울 왕국’ 그 자체였다. 밤엔 매일 오로라를 관측하고, 낮엔 다양한 북극 체험을 했다. 얼어붙은 그레이트슬레이브 호수를 걸어보는 아이스로드(ice road) 체험, 시베리안 허스키를 타고 하얀 숲을 달리는 개썰매 체험, 이누이트 원주민들이 신던 스키를 신고 산속을 트레킹하는 스노슈잉(snow shoeing) 체험이 대표적이다. 이런 액티비티한 경험은 어디서도 해볼 수 없는 이색 체험들로 반드시 해보기를 권한다. 노스웨스트 의회 청사나 박물관에 들러 이곳의 역사를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노슨이미지(Nothern Image)에서는 원주민이 직접 그리거나 만든 예술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밤, 오로라를 보며 신에게 감사를 드디어 떠나기 전 날 마지막으로 오로라를 보러 가는 길, 호텔 로비의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밤 9시의 기온은 영하 33도, 체감온도는 영하 40도!!!!! 실제로 체험해보기 전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기온이다. 그러나 언제나 상상이 더 무서운 법. 막상 가보면 별것 아니다. 오로라 빌리지에 도착하니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오로라도 별이나 달처럼 날이 맑을수록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티피 안에서 코코아를 마시고 있을 때 밖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4박 6일의 여행기간 중 가장 눈부시고 화려한 오로라가 나타나줬다. 영하 40도의 혹한과 어둠을 뚫고 마지막 날 가장 아름다운 신의 영혼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의 마음이 북받쳐 올라왔다. 좀체 보기 힘들다는 핑크오로라도 볼 수 있었다. 마시초 갓(Mahsi-cho, god)! 원주민어로 “신이시여, 감사합니다”라는 의미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오로라의 아우라’를 실제로 체험하고 나니 오랫동안 꿈꿔왔던 소원 하나를 이룬 느낌이다. 모든 여행은 눈을 뜨고 꾸는 꿈이라 했는데,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꿈을 꾼 듯했다. 지구별이 아닌 다른 행성으로 다녀온 꿈 말이다. travel tips>> 항공편>>인천-밴쿠버-캘거리-옐로나이프로 연결된다. 밴쿠버에서 옐로나이프로 바로 가는게 없고, 캘거리를 거쳐야 하므로 비행기를 최소한 세 번을 바꿔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가는데만 하루가 소요되는 힘든 길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오로라 빌리지 예약 시스템>> 옐로나이프 여행의 핵심은 오로라빌리지이다. 모든 여행 시스템은 오로라빌리지를 중심으로 매우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개별여행자는 오로라 빌리지를 통하면 방한복 대여 및 오로라관측에 대한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Aurora village (www.auroravillage.com)4720 Northwest Territories Ltd.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669-0006 추천숙소>> 옐로나이프엔 혹한과 어두음을 피해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숙소가 다양하다. 필자의 경우, 더운 나라에 갈때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 등을 이용하는 편이지만 이곳은 혹한의 환경이라 가장 좋은 익스플로러 호텔을 선택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텔급에서부터 inn, B&B, 게스트하우스, 로지, 콘도스타일까지 다양하므로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숙소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시내 중심의 관광 인포메이션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센터에서 얻을 수 있다. Explorer Hotel 익스플로러 호텔 엘리자베스 여왕도 묵고 갔다고 해서 로비에 사진도 걸려있는 가장 럭셔리한 호텔이다. 그날그날의 일기예보는 물론 친절하고 품격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운 타운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이 용이하다. 로비와 방에서 무료인터넷도 가능하다. (www.explorerhotel.ca) P.O.Box 7000,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873-3531 추천레스토랑>> 극지방에 왔으니 다른 곳에서 먹어볼 수 없는 특이한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익스플로러 호텔 1층에 있는 트레이더스 그릴(Trader's Grill) 레스토랑은 극지방에서 잡아올린 신선한 해산물과 원주민 전통요리인 순록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늑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Address 4823-49th Avenue, Yellowknife, NT, CANADA Tel 867-873-3531 추천 준비물>> 오로라 사진은 핸드폰으로는 잘 찍히지 않는다. 일정시간 이상 노출을 해야 하므로 오로라 사진을 찍고 싶다면 트라이포드(삼각대)와 수동설정이 가능한 카메라와 광각렌즈(18mm이상)를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여행경비400만원 내외
- 2018-01-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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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의 죽음 준비 ‘종활(終活)’이 바꾼 풍속도
- 종활(終活, 슈카쓰)은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준비 활동을 뜻하는 일본 사회의 신조어다. 보통 일본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공채 시기에 맞춰 취직활동(就職活動)에 노력하는 것을 슈카쓰(就活)라고 줄여 부르는 것에 빗댄 것. 발음까지 같다.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기업 면접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처럼 죽음이 머지않은 시니어도 그만큼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종활은 지금 어디쯤 왔을까? 일본에서 종활이란 단어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유명 매체인 주간 아사히(週刊朝日)에서 이에 관한 연재가 진행되면서 일본인들 입에서 종활이란 단어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유력 출판사가 선정하는 ‘신조어·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대중화가 됐다. 일본에서의 종활은 단순한 장례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미리 내 삶을 정리하는 대표적 아이콘인 ‘엔딩노트’의 작성에서부터, 이달 국내에서도 시범사업이 마무리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도 연관이 있는 연명의료 혹은 존엄사에 대한 논의도 포함된다. 일본 사회에서 종활은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묻힐 묘지 동기들과 온천여행을 통해 친분을 쌓는 서비스 등 고령화 사회를 등에 업고 이와 관련된 사업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장례식 찾아줄 지인 없어”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종활을 준비하는 일본인들에게 걱정 중 하나는 비용이다. 일본은 절에 고인을 모시고 친척이나 직장동료, 지인 등 손님을 맞이하는 장례 형태가 일반적인데, 이럴 경우 우리 돈으로 2000만~300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물론 이는 일본인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일본도 우리처럼 조의금 문화가 있는데, 보통 1만 엔(10만 원) 전후의 금액을 전달한다. 문제는 장례식을 찾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고인의 사망 시점에는 직장과 같은 인적 교류가 이미 단절된 상태인 경우가 많기 때문. 부를 사람도 많지 않고, 부르고 싶어도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실적으로 찾아줄 사람이 없다면 장례비용이 유족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또 상조회사의 높은 상품가격에 대한 불만도 장례에 대한 시선 변화에 불을 지폈다. 이로 인해 가족들끼리만 장례를 치르는 ‘가족장’ 등 소규모 장례식을 선택하는 일본인이 늘고 있다. 화장만 하면 우리 돈으로 200만 원 내외, 가족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장례식은 500만 원 이하로 가능하다. 최근에는 이런 소규모, 저비용 상품을 내놓는 상조회사가 늘면서 가격이 점점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죽기 전 지인들과 이별하는 ‘생전장’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의 생전장(生前葬)도 종활의 새로운 방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사실 일본 사회에서 생전장은 최근에 생긴 문화가 아니다.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만담가나 군인이, 현대에는 연예인 등이 죽기 전 지인을 만나는 마지막 기회로 활용하는 행사를 가져왔는데 이를 생전장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활동의 종료를 알리는 수단인 셈이다. 죽은 자가 없는 장례식인 만큼 자서전 출판기념회나 파티 등의 형태를 띤다. 지난해 10월 21일에는 프로레슬러 김일과의 대결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전직 프로레슬러이자 사업가인 안토니오 이노키(アントニオ猪木)가 자신이 선수로 활약했던 료고쿠 경기장(両国国技館)에서 생전장을 치렀다. 이런 행사는 ‘유명인’의 행사로만 인식됐지만 종활이 대중화되면서 생전장의 대상도 일반인들에게 확대되고 있다. 지인들을 불러놓고 사진이나 기록 등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고, 그간의 신세에 대해 감사를 전하는 식이다. 선물을 전달하기도 하고, 노래방 기계를 놓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생전장의 장점은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행사의 형식을 정할 수 있고, 본인의 뜻과 전언을 직접 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또 형식이 자유롭다 보니 비용면에서도 유리하다. 다만 일본 내에서도 완전히 대중화된 문화는 아니어서 낯설어하는 지인들에게 이해를 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우주장, 애완동물 종활 서비스도 등장 최근 종활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서비스 중 하나는 바로 우주장(宇宙葬) 서비스다. 미국과 일본 회사가 준비하고 있는 일종의 상조상품으로 상업용 로켓을 이용해 고인을 화장한 골분을 대기권 밖까지 이동시켜주는 방식이다. 화장한 유해 모두를 하늘 위로 올리는 것은 아니다. 가로·세로·높이가 모두 1cm 정도의 작은 캡슐에 유골의 일부를 담는다. 무게로 따지면 1g 남짓 된다. 다른 신청자들과 함께 로켓에 실려 발사된 후 대기권 밖에 도달하면, 위성궤도에 캡슐이 뿌려진다. 캡슐은 궤도를 따라 지구 주변을 돌게 되는데, 어느 시점이 되면 중력에 이끌려 대기권으로 추락해 재로 변한다. 우주 쓰레기처럼 대기권 밖을 떠돌거나 위성 등 다른 시설에 방해가 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비록 유골의 형태이지만 삶의 마지막에 우주와 지구 전체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는 로맨틱한 내용이 마케팅 포인트다. 이런 우주장 서비스를 받으려면 1인당 28만5000엔, 우리 돈으로 약 300만 원 정도 비용을 내야 한다. 애완동물을 위한 종활 서비스도 있다. 이동식 화장 차량을 통해 애완동물을 화장할 수 있고, 장례 서비스도 지원된다. 사람 장례식 못지않다. 원할 때 만날 수 있는 납골당도 준비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인의 이러한 종활 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종활 따위 그만두세요(終活なんておやめなさい)’의 저자이자 불교 학자인 히로 사치야(ひろさちや)가 대표적이다. 60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하며 일본 불교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그는 이 저서를 통해 “종활은 사후를 위한 불필요한 준비에 불과하며 지금 즐거운 인생을 사는 편이 낫다”고 말하면서 “상속 등 사후에 벌어질 일들 역시 남아 있는 유족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 2018-01-0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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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체 사진작가가 된 前 지구과학 선생님 이경훈씨
- “학교는 왜 그만두셨어요?” “8월에 미국에서 있었던 개기일식이 보고 싶어서요.” 정년퇴임 2년여를 앞두고 명예퇴직을 선택한 전 부산과학고등학교 이경훈(李京勳·60) 선생님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 놀랍고 신선하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하산하듯 선생 자리에서 물러났단다. 은퇴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을 텐데 답변 한번 간단하다. 통쾌함도 몰려온다. 걱정 따위는 잊고 내가 즐기는 삶, 내가 소중한 삶을 살아가는 얘기를 들어봤다. 좌우명 ‘놀자’, 백발소년(白髮少年) 이야기 “개기일식 날짜가 딱 여름방학 끝나고 2학기 개학하고 나서였거든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제 인생 좌우명이 ‘놀자’거든요(웃음).” 개기일식을 이런 것 저런 것 신경 안 쓰고 보고 싶었다고 했다. 날짜도 조금 애매하게 걸려 있었다. 그렇게 과학 선생님으로서의 인생을 마감하고 신나게 개기일식 여행을 준비했다는 이경훈씨. 부산지부장으로 있는 (사)아마추어 천문학회 회원 48명과 함께 미국 아이다호로 개기일식을 보러 다녀왔다. “이번 개기일식은 2분 16초 동안 진행됐거든요. 이 짧은 시간 동안 알차게 촬영을 하기 위해 두 달 동안 계획을 세웠어요.” 달이 해를 가리는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동안 사진과 동영상을 동시에 찍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기다려왔던 그 순간을 만끽할 만한 여유가 없다. “개기일식을 볼 때보다 준비할 때가 더 좋아요. 현실로 닥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계획했던 것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요.” 하늘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일도 좋지만 새로운 장비를 장만하고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이 즐겁다고. 사실 간단하게 ‘개기일식 때문이었다’고 은퇴 이유를 밝히긴 했지만 결정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현직과 전직의 차이, 정년퇴직으로 누릴 수 있는 금전적 차이가 꽤 크다. “3월에 학교를 그만뒀어요. 은퇴가 한 2년 반 정도 남아 있었을 때죠. 계속 과학고등학교에서 근무했으면 연봉이 대략 1억이 넘어요. 제가 2년 반을 일찍 그만둬서 명예퇴직수당이 한 5000만원 조금 안 됩니다. 임용과 관련한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다른 건 모르겠고 개기일식이 정말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훌쩍 떠나버린 선생님의 빈자리에 대해서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교직에 있던 시절 이경훈씨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깨나 누렸던 선생님이었다. 친구처럼 함께했던 선생님과의 갑작스런 이별을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했다. “학생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아마 알았을 거예요. 제가 나중에 자유로워지면 뭘 할 거다, 이런 얘기들을 자주 했어요. 과학고등학교 아이들이라 한마디 딱 던져도 눈치를 잘 채거든요. 깜짝 놀랐겠지만 ‘아, 이 선생님 같으면 그래서 은퇴했을 거야’라고 짐작을 했을 겁니다.” 백발의 이경훈씨는 철없는 소년처럼 생글생글 잘도 웃으며 얘기한다. 인생의 좌우명이 ‘놀자’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고 즐거운 소풍 길이었으리라. 사업가 집안에서 선생님을 꿈꾸다 이경훈씨가 만약 선친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면 부산 지역에서 이름 높은 기업 대표가 돼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비롯해 친척 대부분이 국제시장에서 철물, 전기와 관련한 사업을 했고 지금도 부산 지역에서 다양한 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사업가 집안이다. “우리 집안과 친척들 중에서 사업을 안 하는 사람은 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렸을 적 이경훈씨는 사업하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다. 선친이 운영하던 사업은 바로 위 누님 내외가 이어받았다고 한다. “제가 뭘 보고 컸냐면 월말이 되면 직원들에게 급여 챙겨주려고 돈 세는 모습과 부도였어요. 부도나면 집안 여기저기에 빨간 딱지가 붙잖아요. 그걸 보며 사업은 ‘내가 할 일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그때가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물론 장사를 했으면 잘했을 거예요. 하기 싫어서 그렇지(웃음).” 사업가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은 한 번쯤은 찾아오는 ‘고비’ 때문이다. 고비에 대처할 자신이 없어 일찌감치 사업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 “그럼 뭘 할까 고민하다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올라가서 과학에 대한 흥미도 좀 생겼고요. 선생님이란 직업이 나빠 보이지 않았어요.” 사업도 사업이지만 대단하게 치열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고 그렇게 사는 것도 싫다고 했다.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요(웃음). 그냥 교실에만 앉아 있으면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오잖아요. 공부를 치열하게 했으면 성적이 더 나왔겠죠. 그럼 인생 진로가 바뀌었을 거고. 만약 그랬으면 대단히 피곤하게 살았을 가능성이 커요.” 공부를 좀 더 잘했다면 사회적 지위는 더 올라갔겠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놀면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직업을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 사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경남고등학교에 응시했다 떨어져서 부산사대 부속 고등학교에 들어갔어요.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어요. 고3 때 대학 진학을 결정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그러는 거예요. 사업을 이어받으려면 관련되는 학과를 가라고요.” 사범대 지원을 못하고 부산 수산대학교(현 부경대학교) 식품공학과에 진학했다. “1학기 다니고는 몰래 자퇴했어요. 그리고 한두 달간 입시준비 뒤 부산대학교 사범대학에 합격하고 나서야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대학교에서도 자신의 성적과 상황을 받아들이며 진로를 결정했다. 그렇게 전공과목으로 선택한 것이 지구과학교육학과였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 대학교 때 지구과학을 선택한 것입니다.” 지구과학이 천체 사진에 빠져들게 하다 지구과학교육학과에 들어가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천체 사진에 눈을 뜨게 됐다.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바로 핼리 혜성 때문이었다. “1986년에 핼리 혜성이 한국에 왔었어요. 모교였던 부산사대 부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어요. 학부생들이랑 같이 핼리 혜성 찍겠다고 다대포도 가고 금정산성도 오르고 그랬죠. 차가 없어서 많은 장비들을 짊어지고 버스 타고 다녔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천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천체 사진을 찍으려면 천체망원경이 필요했다. 중등 교사를 하는 동안 학교와 정부 지원 예산을 적절하게 지원받아 천체망원경을 구입해 학교에 비치했다. “선생님들이 예산을 잘 안 써요. 돈 세고 계산하는 거 귀찮으니까요. 연말이 되면 다른 과에서 돈을 안 쓰니 돈이 남죠.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이번에 안 쓰시면 천체망원경 하나 사겠다고 말하고 장만했습니다.” 연말이 되면 천체망원경 한 세트 사고 카메라도 샀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천체망원경을 구입하고 학생들의 천체 동아리 활동을 이끌었다. 지금도 그렇게 만난 제자들과 자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난 뒤 그는 천체 사진을 찍고 또 천체 사진 찍는 방법 등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학교 과학 선생님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그때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과학을 대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천체 사진의 매력은 무엇일까? “대상에 대한 매력이죠. 별에 대한, 우주에 대한. 우선 별을 좋아하지 않으면 천체 사진에 관심이 생길 수가 없죠. 과학 중에서도 아마추어라는 이름으로 다가갈 수 있는 분야가 천문학밖에 없습니다. 과학 이론이나 지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고 미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천체를 ‘아름답다, 정말 보기 좋구나’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죠.” 아마추어 천체 사진가들 중에는 천문학적인 과학 지식과는 상관없이 미적 대상으로만 접근하는 사람도 많다. 이경훈씨는 취미로 찍기도 하지만 주로 전문 사진을 찍고 있다. 과학 정보를 얻기 위한 데이터 중심의 천체 사진은 하드디스크에 저장해놓는다. 이렇게 저장된 사진과 영상들은 필요할 때 과학 자료로 쓰인다. 미치지 말고 서서히 중독돼라 “경북 영천에 보현산 천문과학관이라고 있거든요. 바로 그 건너편에 제 개인 천문대를 만들려고 올 초에 땅을 좀 매입했어요. 개인 공간에서 별이나 원 없이 봐야죠.” 천체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이것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인류를 위한 봉사 같은 것. 수익을 생각해 영천에다가 개인 관측지를 만들 생각이다. 전문적으로 별을 관찰할 수 있는 천체 펜션도 생각 중이다. “별을 보러 온 사람들은 통제된 숙박을 하게 될 겁니다. 먹는 것도 통제를 받고 자는 것도 통제받고요. 별을 보기 위한 게 목적이니까. 와서 먹고 자기 위한 게 목적이 아닌 거죠. 먹고 잘 시간에 별을 봐라, 뭐 이런(웃음).” 펜션 관리를 하는 대신 천체와 관련한 고급 정보를 주고 가이드도 해줄 생각이다. 장비가 없는 사람들한테는 장비도 대여해주고 말이다. 천체 사진이나 천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당부할 게 있단다. 갑자기 매료돼 미쳐서 달려들지 않기를 말이다. “제일 경계하는 게 미치는 거예요. 미치면 빨리 떠나요. 대체로 그래요. 너무 치열하게 하지 마라. 쉬엄쉬엄 여유를 가지라고요. 같이 시작한 사람들 중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거든요.” 2035년 9월 2일 우리 만나자! “은퇴하고 나니까 남는 건 시간, 모자란 건 돈이에요. 2019년과 2020년 칠레에서 개기일식이 있는데 한 번은 갈 거예요. 2024년에는 미국에서 개기일식이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도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날이 있다. 바로 2035년 9월 2일. 제자들을 비롯해 강연회에서 만난 교육생들과 이날 만나자고 이미 약속했다. “이때 개기일식이 평양을 지나 동해안, 그리고 DMZ박물관을 지나갑니다. 통일이 되면 평양 가서 볼 거고, 안 되면 동해안 DMZ박물관에서 봐야죠. 2004년부터 개기일식 관련 수업을 학생들과 할 때마다 2035년 개기일식 시뮬레이션을 했어요. 그때마다 얘기했죠. 만나자고요.” 물론 제자들이 그 약속을 평생 간직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2035년이 되면 한국의 개기일식에 관한 뉴스가 나올 테고 제자들의 기억이 봉인 해제되듯 살아날 거라 생각한다. “2035년 9월 2일 DMZ박물관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다들 올 거예요. 근데 당일 출발하면 동해에서 길이 막혀서 못 들어올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적어도 4~5일 전에 캠핑카 타고 가서 천체망원경 몇 대 깔아놓고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제자들이 애기들 데리고 오겠죠?” 이경훈씨가 팔십이 되기 전이니 정정하게 제자들과 해후하지 않을까? 얼마나 많은 제자가 모일까? 사뭇 궁금해진다.
- 2017-12-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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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들이 소곤댈까? 홍콩의 밤거리엔?
- 해외여행에 익숙지 않은 초보 배낭 여행객들에게 홍콩은 매우 적격한 나라다. 중국 광둥성 남쪽 해안지대에 있는 홍콩은 1997년 영국령에서 반환되어 국적은 중국이지만 특별행정구다. 다른 자본주의 체제가 적용되는 ‘딴 나라’다.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오래된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병 고쳐 달라 기원하면 낫게 해줄까? 웡타이신 사원 홍콩의 주룽반도(九龍半島)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도교 사원이 웡타이신(黃大仙)이다. 원래는 중국 광저우(廣州)의 황사에 있었는데 1912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은 1956년부터다. ‘웡타이신’은 우리말로 황대선이라는 인물을 뜻한다. 그는 원래 저장성의 한 지방에서 살던 양치기 소년. 15세 때, 정제된 황화수은을 질병 치료 약으로 만들어 인술에 많은 공적을 쌓았다. 그래서 이 사원은 병 치료에 도움을 주는 신앙처로 알려지게 된다. 모습은 여느 사원과 비슷하다. 각자의 소원과 병 치료를 기원하는 제수를 놓고 향초를 피우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사원 안은 눈이 매울 정도로 향내가 진동한다. 특히 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나무 산통을 이용해 행운의 점(산통점)을 친다. 일을 그르칠 때 쓰는 ‘산통 깨다’라는 표현은 바로 이 ‘산통점’과 관련해서 생겨났다. ‘산통(算筒)’에 대나무를 잘게 잘라 100개 정도를 넣고 산통의 막대가 나올 때까지 흔들고 막대가 나오면, 막대와 같은 번호의 종이와 바꾼다. 점쟁이는 그 내용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점괘가 나와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또 이 사원에 들러 꼭 찾아야 할 곳은 뒤쪽의 정원. 황대선이라는 이름이 선명한 정원은 연못과 함께 꾸며져 있어 주변 고층 아파트의 삭막함을 무색케 할 정도로 아름답고 정적이다. 홍콩 영화 속 주인공처럼 침사추이 거리 헤매보기 주룽 지구의 침사추이(尖沙咀)는 홍콩 최대 번화가다. 고층빌딩 숲, 옛 향기가 가득 배인 칙칙하고 좁은 골목들. 오래된 재래시장과 파도처럼 일렁대는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의 물결.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영화 같은 매력이 폴폴 넘쳐나는 곳. 홍콩 누아르 영화 속에서 이미 친근해진 풍경이 반갑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영화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를 모티브로 만든 ‘스타의 거리’다. 2003년에 시작해 1년 뒤인 2004년부터 공개되었다. 너비 4~5m, 길이 440m로, 9개의 붉은 기둥에 홍콩 영화 100년사가 기록되어 있다. 또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의 조형물, 이소령 동상 등이 눈요기를 시켜주고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길바닥에 새겨진 영화인 명판들. 이연걸, 홍금보, 임청하, 양조위, 오우삼, 서극, 매염방 등 국제적으로 친숙한 홍콩 스타들의 손도장과 사인들이 거리를 장식했다. 이름만 새겨진 배우는 스타 거리가 조성되기 이전에 죽은 사람들이다. 이곳이 유난히 좋은 이유는 주변 바다 풍치가 덧대어져 있기 때문이다. 유람선과 고깃배가 떠다니고 바다 너머로 홍콩섬 금융가의 건물들이 뾰족하게 올라가 있는 주변 풍광이 매력적이다. 이외에도 미술관, 우주박물관, 시계탑, 문화센터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특히 주룽반도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시계탑(높이 44m)은 1910~1978년 중국과 유럽을 오가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역이었던 주룽역 앞에 서 있던 것. 조화롭지 않은 듯 조화를 이루고 있는 침사추이가 매력적이다. 홍콩의 부자 동네, 리펄스 베이 침사추이에서 리펄스 베이(Repulse Bay)로 가려면 일단 홍콩섬으로 들어가야 한다. 페리호와 해저터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홍콩섬은 홍콩 개항 이후, 상업 및 정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산, 빅토리아 피크(554m) 고갯길을 넘어서면 차창 밖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빽빽한 건물 대신 초록색 산과 바다가 어우러지고, 띄엄띄엄 고층 아파트가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건축 형태가 자연과 잘 어울리고 있다. 이곳이 바로 리펄스 베이다. 성룡 등 홍콩의 유명 인사들이 주로 사는 부촌이다. 길 끝나는 바닷가 끝에 틴하우(天后) 사원이 있다. 사원 앞에 틴하우 여신이 해탈의 미소를 건네고 있다. 산정이 아니라 바다와 눈높이가 같다. 1865년에 세워진 도교 사원은 독특한 중국 건축 양식을 전하는 지붕의 곡선이나 조각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원엔 바다의 수호신인 ‘쿤암(Kwun Yum)’과 틴하우를 모시고 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틴하우 여신은 뱃사람들이 복을 빌면 소원을 들어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을 구해준다고 믿었다. 또 건너가면 젊어진다는 장수교와 손으로 문지르면 재물복을 준다는 정재신(正財神) 석상, 만지면 3일 안에 인연을 만들어준다는 인연신이 있다. 특히 인연신 앞에서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떨어질 줄 모른다. 유럽 거리 걷는 건가? 스탠리 마켓과 머레이 하우스 리펄스 베이 해변을 벗어나 찾아갈 곳은 스탠리 마켓(Stanley Market)이다. 스탠리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150여 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장 거리다. 마치 서울의 이태원동과 같은 분위기다. 마켓 거리는 고급 제품을 파는 곳이 아니다. 반면 스탠리 베이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확연히 모습을 달리한다. 아기자기한 유럽식 바와 식당, 숍들이 해변을 따라 이어진다. 세계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띄어 이국적인 풍치가 연출된다. 아기자기한 바와 레스토랑에서는 커피 한 잔, 파스타, 피자 한 조각으로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만(灣)’ 형태의 넓지 않은 바다를 따라가면 머레이 하우스(Murray House)를 만난다. 옛 센트럴에 위치한 1844년대 식민지시대 건축물을 1991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40만 개의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을 분해해서 옮긴 후 재조립했다고 한다. 아직도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건물은 딱히 멋은 없지만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시대 건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는 레스토랑과 홍콩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된다. 머레이 하우스 앞 바닷가 쪽의 정자와 옹기종기 매여 있는 조각배의 풍치에 반한 여행객은 그 순간 긴장을 스리슬쩍 내려놓는다. 홍콩 야경 보고 레이저 쇼 보니 기분 최고, 맥주 한잔 어때? 홍콩 여행에서 야경을 빼놓을 수 없다.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여러 곳 있다. 그중 홍콩섬의 빅토리아 피크는 야경 보는 인기 뷰포인트. 홍콩의 가장 높은 전망대로 서울의 남산타워, 63빌딩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산정에서 바라보는 야경도 훌륭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서야 완벽하게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의 명물로 꼽히는 것은 피크 트램. 1888년부터 긴 세월 동안 가파른(373m) 산등성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어느 순간 건물이 거꾸로 서 있는 듯 몽롱해진다. 특히 피크 타워 바로 옆, 사자 정자는 환상적인 야경을 볼 수 있는 명소다. 또 승강기를 타고 타워 꼭대기 층인 스카이 테라스로 올라가면 더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야경을 보는 데에도 피크 타임이 있다. 오후 8시부터 약 20분간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영화 거리와 이어지는 시계탑 근처, 연인의 거리에 마련된 2층 뷰포인트가 명당자리. 바다 건너 홍콩섬의 금융가 건물에서 뿜어대는 광선에 취하는 홍콩의 밤이다. 이런 날, 침사추이 밤거리로 들어가 몽콕 야시장에서 야식을 사먹는 재미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Travel Data 교통편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캐세이패시픽, 타이항공 등에서 매일 인천~홍콩 간 직항편을 운행한다. 2014년부터 제주항공, 진에어와 같은 저가 항공사도 직항편을 운항 중이다. 3시간 30분~3시간 50분 소요. 현지 교통 정보 홍콩 공항에 도착하면 공항고속전철을 타고 20~30분 만에 중심가인 주룽반도와 홍콩섬에 갈 수 있다. 시내를 여행할 때는 배(스타 페리)와 2층 버스, 전차(트램)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된다. 옥토퍼스 카드라고 불리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지하철, 배, 전차, 버스 등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화폐 단위 홍콩 달러(HKD)를 이용해야 한다. 마카오에서는 홍콩 달러를 사용할 수 있으나 거스름돈은 현지 화폐인 파타카(Pataca)로 받을 수 있다. 화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음식과 숙박 정보 홍콩 음식은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완탕이 유명하고 시장통에만 가도 먹을 게 지천이다. 유명 호텔 숙박은 몇십만원대이지만 5만~8만원 선에 이용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주룽반도 쪽이 가격이 저렴하다. 특히 1928년 문을 연 페닌술라 호텔(香港半島酒店)은 세계 10대 호텔 중 하나로 꼽힌다. 또 40여 년의 전통을 지닌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mandarin oriental Hong Kong)은 미슐랭 스타(Michelin Star)를 받은 호텔로 10개의 레스토랑, 스파 및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 있다. 가격은 70만~80만원대다. 물가 정보 홍콩은 면세가 되는 품목들이 대부분이다. 의류, 가방, 시계 등은 한국보다 다소 저렴하다. 그러나 주류, 담배 등의 품목 몇 가지는 한국보다 가격이 더 높고 세금을 부과한다. 전체를 합치면 홍콩 물가는 서울과 비슷하다. 날씨와 옷차림 정보 홍콩의 12월은 평균 최저기온이 15.9℃, 평균 최고기온이 20.2℃로 우리나라 가을과 비슷하다. 일교차가 작아 낮이나 밤이나 서늘하고 쾌적하다. 가을 옷 위주로 챙기고 머플러 등을 준비하면 된다.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홍콩과 마카오(澳門)는 빼놓을 수 없는 밀접한 여행지다. 홍콩 항에서 뱃길로 40여 분(약 60㎞) 달려가면 마카오다. 또 홍콩과 인접한 도시가 심천이다. 홍콩의 지하철(MTR)이 주룽의 홍함에서 중국 국경인 광둥까지 국철(KCR)로 연장되지만 통과하려면 비자가 필수다. 심천은 경제특구 지역으로 새로 생긴 신흥도시. 건물들도 깨끗하고 홍콩보다 물가도 싸다. 매우 좁은 도시여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면 된다.
- 2017-12-1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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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의 차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파스칼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미약한 존재지만 생각을 할 수 있으므로 그 어떤 존재보다 위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은 갈대처럼 가냘픈 존재이기는 하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우주를 포옹할 수도 있는 위대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양극을 공유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존재, 어쩌면 인간은 존재 자체로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2원적인존재인 것 같다. 그 모순을 어떻게 극복하여 순리에 맞춰서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용의 삶을 사는 방법인 것 같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방향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의사결정의 중요성은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 할 만큼 때로는 중요한 것일 수가 있다.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많이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사는 내내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학습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아는 만큼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고 아는 만큼 지혜롭게 의사결정을 하면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인생2막을 시작하는 시니어들은 인생1막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학창시절만큼의 오랜 시간은 아니더라도 인생 2막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학습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교육이 한 인간을 양성하기 시작할 때의 방향이 그의 삶을 결정할 것이다”라고 강조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은 노후로 가는 여행을 위한 최상의 양식이다” 고 말했다. 굳이 이런 철인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교육과 학습의 필요성을 절실히 삶을 통해 느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움은 인간을 사람답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자기 뜻에 따라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사람은 배워서 행복하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요약하여 한 마디로 “배움은 미래를 위한 가장 큰 준비다”라고 했다. 둘째 인생길을 안내 해주는 멘토가 필요하다. 삶을 바로 살기 위해서는 인간에게도 항해할 때 등대처럼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스승이나 멘토가 필요하다. 훌륭한 멘토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고전과 같은 책이 될 수도 있다. 직접 경험에 의해 지혜를 터득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현명한 사람은 간접경험을 통해서도 삶의 지혜를 깨우칠 수 있다. 가장 훌륭한 멘토는 자신과 코드가 맞는 선지자가 아닐까 싶다. 함께 공감하고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나 분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서 이를 깨우쳐주고 가이드 해주기 때문이다. 멘토는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존재이다. 마치 나침판이나 등대처럼 배가 옳은 방향으로 바로 항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 사물의 본질을 알고 핵심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다리, 배, 코 등 어느 일부분만 확인해서는 안 된다. 우리 인간은 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파스칼처럼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생각 없는 삶은 무미건조하다. 삶의 맛을 북돋우는 것은 생각과 행동이다. 그러면 우리는 삶의 와중에서 어떻게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꽃밭에 있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함께 피어 있는 것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꽃들은 종류가 다르지만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 꽃을 피우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서로 다른 개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장점을 존중하면서 단점을 보완하여 함께 공존해 나갈 수가 있지 않을까? 만일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 옳으니 따르라고 한다면 우리는 꽃밭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자연의 생존법칙에 따라 항상 불안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차이란 서로 다름이지 다르다고 적은 더욱 아니다. 다른 것은 결코 잘못된 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 우리의 삶은 발전이고 평화로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오케스트라처럼 서로 다른 악기들이 다른 음으로 화를 이루기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트럼펫 소리가 아름답기는 하나 혼자 내는 소리는 단조롭다. 서로 다른 악기들이 화음을 만들어 낼 때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에 있어 보수와 진보도 마찬가지다. 보수와 진보는 모두 삶을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공통적인 목적이 있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다른 차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때 미국과 같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장점을 수용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그런 사고가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될 것이고 이는 한마디로 중용의 삶과 상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차이의 화합된 순열과 조합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2017-07-0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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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Will You Be There?)
- 인간이 사는 우주는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교직(交織)되어 있다. 우주에 관해 잘 모를 때도 공간은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시간은 잡히는 게 없어서 그런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아니 어쩌면 시간은 삶 그 자체라고 생각하다 보니 존재에서 떼어내 객관화하기가 어려웠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운 것은 숙명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의 불가역성(不可逆性)에 대해 과학이 어느 정도 그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측면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오로지 상상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과거에 대해 후회하는 지점이 있고, 어느 날 문득 그때로 돌아가 과거를 고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가. 는 이런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다. 시간여행이 가지는 재미 때문에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최근엔 우리나라에서도 이나 등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프랑스의 이야기꾼 기욤 뮈소의 작품이 원작이라 화제가 되었다. 주인공 수현(김윤석)은 외과 의사로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 활동 중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아이의 할아버지로부터 신비로운 알약 10개를 선물로 받는다. 호기심에 알약을 삼킨 수현은 순간 잠에 빠지고 깨어나니 30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1985년. 애인 연아(채서진)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과거의 수현(변요한)은 우연히 길에 쓰러진 자신의 미래와 조우한다. 그 후 수현은 10개의 알약의 힘을 빌려 부단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과거의 자신을 만나 가슴에 맺힌 회한을 풀려 한다. 시간여행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이 갈등은 늘 과거가 바뀌면 현재가 달라진다는 딜레마가 중심이 된다. 현재의 수현은 사랑했던 애인 연아를 지켜주고 싶지만, 그러면 현재 사랑하는 딸 수아(박혜수)가 사라진다. 이런 유의 고전으로 할리우드 영화 가 있다. 주인공이 부모가 헤어지지 않도록 애쓰는 장면이 재미있다. 감독(홍지영)도 이 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마이클 J 폭스가 극 중에서 부른 노래를 O.S.T로 활용한다. 그러나 할리우드가 탄탄한 스토리와 과학적 개연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이 영화는 서사보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홍지영 감독의 여성적 취향에 따라 감성적 멜로로 방향을 잡는 바람에 박진감은 떨어지지만, 연말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그런대로 어울리는 영화라는 느낌이다. 인간은 살아온 과거에 늘 후회하는 존재이지만, 후회를 남긴 과거도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이다. 정해진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후회하지 않을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디딜 일이다.
- 2016-12-2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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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소 나를 돌보기 PART5] 美, 온전히 나를 위해 사는 사람들
- 남을 위해 사는 것은 쉽다. 오히려 나를 위해 사는 게 더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이제라도 시작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美베이비부머들의 ‘나를 사랑하는 길’을 들여다봤다. 정리 남진우 뉴욕주재기자 ◇ 작가, 캐런 마이잔 밀러 : 정원 가꾸기는 나의 천직 20년 전 나는 25분 단위로 수당이 책정되던 직업을 포기했다. 그때 40세였으나 완전 기진맥진했다. 동료들이 왜 그리 급하게 현실에서 벗어나려 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모험적인 인생 2막으로 과감히 뛰어들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새 남편과 함께 서부로 와서 유서는 깊지만 버려진 헐값의 집을 사는 데 저축한 돈을 몽땅 털어넣었다. L.A. 교외에 있는, 80년 전에 조성돼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반 에이커(약 2023㎡) 규모의 일본식 정원이 있는 집이었다. 악취가 나는 연못과 무성한 잡초와 산더미 같은 낙엽이 가득한 정원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상적인 곳이라는 확신이 섰다. 남편은 좋아하는 우주공학 관련 일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이사로 내 진로는 막혀버렸다. 1년간 이력서를 보내고 인터뷰를 하면서 허송세월했다.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교사나 간호사 자격증을 따야 하나? 시간을 현명하게 쓰고 싶었지만 언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될지 고민이었다. 공백이 길어지면서 대답은 분명해졌다. 바로 여기가 시작이란 것을. 수년간 땀내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 낡은 바지를 입고 무릎 굽혀 작업을 하면서 그 생활을 좋아하게 된 것을 깨달았다. 아무런 경험이 없었지만 남는 시간에 머리를 비우고 해왔던 정원 가꾸기가 천직이었던 것이다. 정원 가꾸기로 하루가 가고 수년을 보내면서 이보다 값진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땅 지킴이로 인생 2막의 꽃을 피우고 있다. 정원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다 보니 잡초가 연못과 오솔길로 나를 인도하고 가을에는 낙엽이 나를 호출한다. 노력해도 금전적인 보상은 없지만 정원은 가장 이상적인 일자리다. 고요하고 끈기 있고 믿음직하며 창조적인 일자리다. 내가 실수를 해도 그들 스스로 바로잡는다. 부족한 내가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아무도 내 자리를 탐내지 않는다. 남편 혼자 버는 돈으로 살지만 적은 돈으로도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많은 것을 탐하지 않으며 만족스럽고 행복한 결혼생활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정원에서 자라나는 것은 풀만이 아니다. 42세에 첫아기를 낳고 50세에 작가가 되었으며 선종 불교의 수련을 쌓아 그 결실도 얻었다. 계절의 느린 반복 속에 야망과 후회에서 벗어나 시간에 쫓기지 않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됐다. 환갑을 자축하면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준 정원에 감사하며 항상 정원에서 살아갈 작정이다. ◇ 배우, 린다 카터 : 스컬, 잔잔한 강물 위에서의 명상 스컬(좌우의 노를 한 사람이 젓는 가벼운 보트)은 배우기는 쉽지만 마스터하기는 매우 어렵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는 것 자체가 즐겁다.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은 공연 연습을 하는 데 이상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공연을 위한 신곡을 준비할 때면 스컬을 하면서 가사와 리듬을 내 몸속으로 완전 체화시킨다. 처음에 친구가 스컬을 권유했을 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포토맥 강을 따라 사이클링을 하다가 조정을 하는 모습에 끌려 요트클럽을 찾게 됐고 바로 좋아하게 됐다. 워싱턴 DC에 사는 사람이면 포토맥 강이 바로 옆에 있어서 쉽게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체단련에도 좋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강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을 것이다. 보트가 좁고 길어 균형 잡기가 힘들며 뒤집어지면 올라오기 어려운 것이 최악이다. 어느 날은 스컬을 하다가 자살한 여자 시체를 발견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때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가족들은 행방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별로 무섭지 않았고 장례식에 참석해 조사(弔辭)도 낭독했다. 스컬을 시작한 2008년부터는 공연을 위한 신곡 연습을 보트를 타면서 했다. 아이팟만 있으면 연습을 할 수 있다. 바람이 없는 잔잔한 강물 위로 노를 저을 때는 물과 혼연일체가 되고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 ◇ 여행작가, 키티 빈 얀세이 : 멕시코 산 미구엘에서의 일주일 나는 데킬라 술잔을 들고 예술가들의 멕시코 메카에서 오랜 친구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나의 동반자 배리와 친구 론니, 제인과 함께 이국적인 꽃들이 활짝 핀 파티오와 벽난로가 있는 세 개의 마스터 스위트룸을 갖춘 기막힌 빌라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산 미구엘의 임대 방식이 다 그렇듯, 일주간 반나절씩 일하는 가사도우미도 있다. 구릉진 자갈 깔린 길로 10분 정도를 걸어 다채로운 색상의 집을 지나면 고딕양식의 파로키아 성당과 광장이 있는 도심에 도착한다. 현지 주민과 관광객들은 잘 정리된 월계수 아래 벤치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마시거나 무료로 와이파이를 이용한다. 낮에는 어린 학생들이 광장을 돌며 서로를 쫓아가기도 하고 저녁에는 연인들을 유혹하는 마리아치 세레나데가 흘러나온다. 나는 제인과 함께 노천시장에서 요가 수업과 쇼핑을 즐기고 부티크, 공방, 갤러리 등을 돌아본다. 식당에서는 채식주의자용 요리와 스시 그리고 군침 돌게 하는 멕시코 요리가 나온다. 예정된 일주일이 끝날 무렵 론니는 임대 아파트를 찾아 나섰고 나는 배리를 이끌고 부동산소개소로 갔다. 애틀랜타에서 만났던 한 여인이 산 미구엘은 마술의 소용돌이라고 묘사했는데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 ◇ 가수, 달린 러브 : 삶의 전부가 된 킥복싱 딸 로즈가 대단한 킥복싱 수업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킥복싱 동작을 배운 딸이 나와 몇몇 부인들에게 킥복싱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그 후 6년이 지나 76세가 된 나에게 킥복싱은 삶의 전부가 됐다. 운동과 노래는 젊은 시절 가장 중요한 일상이었다. 나는 항상 무언가 활기찬 것을 원했고 아버지가 목사로 있었던 샌안토니오의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했다.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우리 합창단이 할리우드 볼에서 냇 킹 콜과 공연을 한 것은 위대한 순간이었다. L.A.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야구와 배구를 했다. 1958년에는 블로섬스 걸그룹에 합류했고 몇 년 후 필 스펙터와 계약을 하면서 ‘He’s a Rebel’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마침내 싱글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도 제인 폰다의 비디오를 보면서 운동을 계속했지만 너무 많은 당분을 먹어 체중이 자꾸 불었다. 먹으면 운동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킥복싱이 너무 힘들었지만 팔, 다리, 허리 등에 너무 좋았다. 남편이 딸의 교실에 데려다줬고 수업이 끝난 후 차를 탈 때는 눈썹 이외의 모든 곳이 쑤셨다. 그러나 점차 익숙해졌고 내 목표는 전보다 더 잘하는 것이었다. 지금 딸 교실의 수강생은 30명으로 늘었고 그중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 그래서 수강생들은 “저 늙은이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하곤 한다. 일주일에 5일, 오전 5시에서 한 시간 동안 킥복싱을 하지만 수업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다리 근육운동을 할 때는 서로 도와준다. 이제는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서로 기합을 넣으면서 동료애를 느낀다. 몸매를 유지하는 것은 모든 면에서 도움이 된다. 특히 공연을 할 때 그렇다. 이제 나는 더 많은 에너지로 충만해졌고 15파운드나 빠졌다. 하지만 때로는 승용차에서 넘어지고 정크푸드를 먹기도 한다. 이럴 때 꿈을 되새긴다. 물과 비타민을 섭취하고 운동을 하러 간다. 우리 몸은 인생이다. 몸을 돌봐야 마음이 몸과 함께 작동한다. 무대에서 노래할 때처럼. 나는 내 느낌을 청중들도 느낄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한자리에서 노래하기보다는 청중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한다.
- 2016-12-05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