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배우 선우은숙이 지난해 10월, 이혼 15년 만에 아나운서 유영재와 재혼 소식을 전했다. 그는 재혼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앞에 놓인 허들에 멈칫하면 영원히 넘지 못할 것이라는 유영재의 말을 듣고 새로운 출발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 나이에 무슨’, ‘다 큰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다’며 재혼을 꺼리던 분위기도 옛말이다. 이혼이 흔해진 만큼 재혼도 흔해졌고, 성인이 된 자녀들도 자신의 행복 못지않게 부모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축복 속에 한 재혼이라 해도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닐 터. 다시 이혼하게 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 재혼 배우자와 전처의 자식 사이에 재산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용인시에 사는 공정한 씨와 그 자녀들의 변호사 상담기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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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70세, 가명) 씨는 젊은 시절부터 시작한 사업이 크게 성공해 많은 부를 이루었다. 이외에도 100억 원 정도의 빌딩으로 임대수익을 얻고 있어 노후 걱정을 딱히 하지 않는다. 그는 은퇴 후 윤택하고 한적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 용인시로 거주지를 옮겼다. 평생 일군 회사는 아들에게, 강남 소재 집들은 두 딸에게 한 채씩 물려줬다. 15년 전 아내와 갑작스럽게 사별한 후 죄책감이 마음 한구석을 짓눌렀지만, 과거의 아픔은 훌훌 털어버리고 자신만의 삶을 일궈나가려 한다. 최근에는 골프에 재미를 붙여 매일 골프장에 출석 도장을 찍고 있다. 그러다 같은 클럽 회원인 문호란(60세, 가명) 씨와 많이 친해졌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 씨가 젊은 시절 남편과 사별 후 자식도 없이 쭉 혼자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남은 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얼마 뒤 공정한 씨는 아들과 두 딸에게 문호란 씨와 재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자식들은 문 씨가 결혼을 통해 공 씨의 재산을 노리는 건 아닌지, 행여나 나중에 문 씨와 재산분할과 관련한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하는 눈치다. ‘부모의 재혼을 기뻐해주지는 못할망정 벌써부터 재산 물려받을 생각을 하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우선 변호사와 의논해 좋은 방법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들 공명식(가명) 씨가 변호사를 찾아와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며 심정을 토로했다. “아버지의 새 인생은 당연히 응원합니다. 하지만 문 씨가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지 얼마 안 가 다시 이혼을 요구할까 걱정됩니다. 아버지 마음에 상처가 될 뿐 아니라 재산분할까지 해줘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두 분의 사랑을 가로막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와 문 씨가 결혼하기 전, 문 씨에게 이혼할 경우 일체의 재산분할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각서를 쓰게 하면 될까요?”
혼전 계약, 이혼 후에는 효력 없어
재산분할청구권은 혼인한 당사자 중 한쪽이 다른 한쪽에 대해 재산분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청구권을 ‘이혼 전’에 포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민법 제839조의2는 재산분할청구권을 ‘이혼한 자’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혼인을 하려는 당사자들이 혼인 후의 재산적 법률관계를 미리 약속하는 부부재산계약이 있지만(민법 제829조) 이는 혼인 기간 중 재산에 대한 계약이고, 이혼할 때 재산분할을 어떻게 할지 미리 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결혼하기 전에 ‘공정한 씨의 재산은 오로지 공정한 씨의 것이고, 문호란 씨는 이에 대해 등기이전을 요구하거나 근저당권설정을 하지 않는다’와 같은 계약은 허용된다.
미국에서는 억만장자들이 이혼할 경우 재산분할을 미리 논의하는 혼전계약서(Prenup)와 관련된 뉴스를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내용의 혼전계약은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실제 이혼 협의 단계에 이른 경우에 당사자 간 재산목록을 모두 공개하고 쌍방의 기여도나 재산분할 방법 등에 대해 협의 작성된 재산분할 협의는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대법원 2016. 1. 25.자 2015스451 결정)
사실혼 악용하는 사례도
해당 내용을 들은 공 씨는 “아버지와 문 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다. 사실혼 배우자의 경우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되긴 하지만, 사실혼 관계가 당사자의 생존 중에 해소되는 경우에만 재산분할청구가 가능하다. 즉 사망한 이후에는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실혼 배우자는 상속인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근로기준법의 유족 보상금,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유족 보상 연금, 공무원연금법의 유족 급여, 군인연금법의 유족 급여 등은 모두 사실혼 배우자도 연금 수급권자인 유족에 포함시키고 있다.) 즉 공정한 씨와 문호란 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동거만 한다면 공 씨가 사망한 후 재산 문제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혼 부부는 혼인신고라는 법적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이혼신고 없이 당사자 사이에 헤어지자는 합의가 있거나, 한 명이라도 상대에게 이별을 통보하면 이 관계를 해소할 수 있다. 사실혼 배우자가 곧 사망할 것으로 보일 경우 다른 한쪽이 신속히 관계를 해소하고 재산분할청구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 남성이 배드민턴을 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이 사실혼 배우자가 사실혼 관계의 해소를 주장하면서 법원에 재산분할심판청구를 한 사례가 있다. 남성이 의식불명인 상태라 심판청구서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남성은 사망했지만 대법원은 “두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사실혼 관계가 해소됐기 때문에 사실혼 배우자인 여성에게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된다”며 “상속인들이 수계(법정 절차를 상속받아 이어감)받아 재산분할심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권리의 구제를 위해 필요했다고 이해해볼 수 있겠지만, 또 다르게 보면 사망을 앞둔 배우자를 두고 혼인 관계 해소를 선언한다는 것이 도의적으로 맞지 않은 면도 있어 보인다.
재산분할 유리하게 진행하려면
공정한 씨 자식들은 ‘아버지와 문 씨가 이혼하거나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재산분할을 유리하게 가져가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공정한 씨가 사망하기 전에 남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미리 증여하면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청구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법률혼 배우자인 문호란 씨가 자녀들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유언에 따라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를 상대로 나머지 상속자가 유류분 권리를 주장하는 것)를 할 가능성이 있지만, 유류분은 법정상속분의 절반이니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범위에서는 재산을 보호할 수 있다.
더불어 공명식 씨는 아버지 공정한 씨가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환을 앓거나 거동이 불편해질 경우, 문호란 씨가 마음대로 재산을 사용하거나 빼돌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우에는 임의후견계약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임의후견은 본인(아버지)이 직접 질병, 장애,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하게 될 상황에 대비해 자신의 재산관리 및 신상 보호에 관한 사무를 미리 다른 자에게 스스로 위탁하는 대리권 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법원이 직권으로 개시 결정을 하고 후견인을 설정하는 성년후견과 달리 임의후견은 전적으로 본인 의사에 따른 것으로, 당사자가 직접 후견인이 될 자와 계약한다. 재산별로 후견인을 지정하고 관리 범위를 설정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공정한 씨가 자녀 중 1인을 임의후견인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임의후견계약을 체결해두었다가 질환으로 인해 사무 처리 능력이 부족해진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법원에 후견의 개시 및 후견감독인의 선임을 청구하면 된다. 참고로 후견감독인은 후견인을 감독하는 자를 말한다. 다만 임의후견계약 및 개시는 당사자가 이미 치매 중증에 이른 경우에는 그 계약 체결 및 개시 자체에 대한 의사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기를 권한다.
그 밖에는 아예 은행에 재산을 신탁하는 신탁상품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몇몇 은행에서 상속 및 자산관리를 위한 신탁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공정한 씨가 보유하고 있는 빌딩을 재혼 전에 은행에 신탁해두고, 공 씨를 수익자로 지정하여 월세 등을 얻되, 사후에는 그 재산을 공명식 씨 등 지정된 자녀들에게 귀속되도록 사후수익자를 지정하는 것이다. 신탁은 우리나라에서 다소 생소하고 관리 수수료가 발생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고려해볼 만한 방법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전문가와 상담하여 알아보고 대비한다면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을 수도 있겠다. 모두가 행복한 노후를 위하여, 브라보 마이 라이프!
따뜻한 봄 날씨가 이어지며 골프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봄 시즌은 골프 성수기에 해당하는 만큼 일부 골프장에서는 부킹 전쟁이 빚어지기도 한다. ‘골프 부킹이 능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와 함께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협회(PGA) 챔피언십과 US오픈도 얼마 남지 않아 골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 PGA 투어의 경우 스포츠스타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즈 토너먼트에서 기권을 선언하는 등 갖가지 이슈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기권을 선언하게 된 배경으로는 건강 상의 이유가 꼽혀 골퍼들의 건강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른다.
흔히 골프는 정적인 운동인 탓에 부상 위험이 적은 스포츠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스윙을 편측으로 반복하는 과정에서 허리에 부담이 누적돼 근골격계 질환까지 이어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광화문자생한방병원 박원상 병원장의 도움말로 봄철 골퍼들의 척추 부상을 예방하기 위한 건강법들에 대해 알아보자.
골프 라운딩 후 이어지는 허리 통증…원인과 주의해야 할 질환은?
골프는 한쪽 방향으로만 몸을 회전하는 편측운동으로 허리 부상이 잦은 것이 특징이다. 몸의 한쪽 근육만 비대칭적으로 발달해 신체의 균형이 깨지게 되며 이는 골반과 허리에 부담을 준다. 또한 골프채를 힘차게 휘두르면 척추뼈와 뼈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하는 디스크(추간판)가 비틀려 손상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심할 경우 디스크가 돌출 혹은 파열되는 허리디스크(요추추간판탈출증)와 같은 근골격계 부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허리디스크는 극심한 통증을 동반해 운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준다. 따라서 허리 통증이 심해지거나 일주일 이상 지속된다면 서둘러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 현명하다.
광화문자생한방병원 박원상 병원장은 “온화해진 날씨에 본격적으로 골프를 즐기고자 하는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허리는 프로 골퍼들도 흔히 다치는 부위인 만큼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며 “만약 라운딩 후 허리 주변으로 통증이 심하다면 운동을 강행하기보다는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들에게 호발하는 ‘허리디스크’, 수술이 능사는 아냐
유명 골프선수들 중에도 허리디스크를 겪은 이들이 많으며 타이거 우즈 또한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타이거 우즈가 개인 교습을 받을 정도로 완벽한 스윙자세로 유명한 스티브 스트리커 선수도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신인왕으로 불리는 윌 잴러토리스 선수도 허리디스크가 도져 수술 후 이번 시즌을 재활에 전념하고 있다.
이처럼 허리디스크 환자 중에는 수술치료를 택하는 이들이 많다. 통증을 없애고자 급하게 수술을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술 후 통증이 재발하거나 기능장애가 개선되지 않는 등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척추수술후실패증후군’이라고 한다. 수술 형태에 따라 낮게는 10%에서 높게는 40%의 발생 률을 보이며 수술이 거듭될수록 성공률도 현저히 낮아진다.
실제 타이거 우즈의 경우 4번의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음에도 증상이 재발해 5번째 수술을 받기도 했다. 결국 그는 여러 번의 슬럼프를 보냈으며 고질적인 허리 통증으로 인해 경기를 기권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따라서 허리디스크 재발 및 부작용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침습적 치료에 대해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척추수술후실패증후군’에 한방통합치료 효과적, 라운딩 전후 스트레칭 필수
우리 몸의 대들보라고도 불리는 척추의 건강이 악화되면 삶의 질도 크게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조기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 튼튼하게 관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한방에서는 추나요법, 침치료, 한약 처방 등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한방통합치료를 통해 허리 통증 및 허리디스크를 치료한다.
특히 한방통합치료의 경우 척추수술후실패증후군 치료에도 유효성을 보이며 이 같은 효과는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가 SCI(E)급 저널 ‘임상의학저널(Journal of Clinical Medicine)’에 게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척추수술후실패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방통합치료를 실시한 결과 허리통증 숫자평가척도(NRS)가 입원 시 중등도 이상의 통증인 5.77에서 퇴원 시 경증 수준의 3.15로 감소한 것이 확인됐다. NRS는 환자가 느끼는 통증의 정도를 0~10 사이 숫자로 나타낸 지표로 숫자가 클수록 증상이 심함을 의미한다.
골프를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라운딩 전후로 충분한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도움이 되는 동작으로는 ‘대퇴사두근 이완 스트레칭’이 있다. 먼저 무릎과 발등을 대고 척추를 바르게 세운 뒤 오른쪽 무릎을 90도 각도로 세운다. 이어 양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린 후 무게 중심을 천천히 앞으로 이동시킨다. 15초간 자세를 유지한 다음 반대쪽도 동일하게 3회씩 실시하면 허리와 골반 주변 근육이 이완되면서 뻐근한 통증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
광화문자생한방병원 박원상 병원장은 “이 외에도 골프공을 줍거나 티를 꽂을 때 허리뿐만 아니라 무릎도 같이 구부리는 등 척추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봄철부터 척추가 부상당하지 않도록 건강에 유의해 안전하고 즐겁게 골프를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제천(69, 영동자연호두농원)이 아내와 함께 영동군 산골로 귀농해 호두나무 농원을 경영한 지 올해로 15년째. 농사 기술도, 안목도 푹 익었을 연륜이다. 성취한 것의 수효가 드물지 않을 경력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소득은 여전히 신통치 않다. 하품 한 번 늘어지게 해볼 겨를 없이 부지런히 뛰었지만 손에 들어오는 게 별로 없다는 게 아닌가. 그럼에도 구겨진 기색이 없다. 웃음이 흔하게 터져 나온다. 난처한 현실을, 남모를 애환을 얼버무리는 웃음이라기보다, 불운과 부진을 통째 이의 없이 받아들여 차라리 긍정하는 심리의 소산일 테다. ‘뭔가 미묘한 간계가 침투해 나를 고생길로 데려간 건 아니지 않은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 김제천은 귀농으로 치르는 홍역의 책임이 일면 섣불리 일을 저지른 자신에게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김제천의 농원은 완전히 외진 산중에 있다. 마을은 저 너머 멀리에 있어 고독을 벗 삼기에 적격인 곳이다. 숲속의 공인된 가수들인 산새들만 이따금 지지재재 노래할 뿐 별반 들려오는 게 없다. 산세가 기차게 수려한 것도 아니라 경관에 넋 놓고 종일 해찰하는 폐단이 생길 리도 만무하다. 즉 잡념 없이 일에 홀린 듯, 종일 농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달리기에 딱 좋은 입지다. 게다가 김제천은 ‘뭐든 자청해 덤벼든 일에는 갈 데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의 소유자다. ‘멍 때리기’나 게으름 피우기는 당최 적성에 맞지 않다. 해서 늘 일에 묻혀 살아왔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몸을 쓰겠다는 투로 부단히, 부지런히, 농사 하나에 전념하며 15년 세월을 살았다.
그는 대전에서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귀농했다. KT에 근무하다 뜻한 바 있어 명퇴를 하고 이 후미진 산골짝에 들어왔다. 애초 농사에 입문할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물 좋고 산 좋은 시골에서 나빠진 건강을 회복하며 한가하게 살고 싶었던 거다. 유유히 노닐기를 생활의 중심에 두고서 인생의 가을을 참신하게 누리고자 했다.
“귀농보다 귀촌하는 기분으로 이곳에 자리 잡았다.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내려온 게 아니었다. 부부 둘이 먹고살기에 지장 없을 정도의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굳이 농업 소득을 바랄 이유가 없었다.”
터는 어떻게 마련했나?
“귀농 전에 3만 평 규모의 임야를 사들였다. 마음을 내려놓고 한적하게 살기에 좋은 곳이라서. 그저 소소하게 텃밭 일구고, 가족이 따먹을 수 있을 정도의 몇몇 과일나무를 기르며 살기에 적당한 땅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땅을 살 때엔 신중하게 고민부터 하라는 충고는 고대 로마의 ‘농업론’에도 나오더라. 당신의 얘기는 널따란 임야의 활용 방안을 구상하지 않은 채 덜커덕 사들였다는 걸로 들린다.
“별 생각 없이 매입했다. 면적이 넓은 데다 가격도 싼 편이라 일단 사들였으니까. 그렇게 시골 생활을 시작하고서 감나무, 포도나무, 다래 등을 몇 그루씩 심었다. 도시에 사는 손자들을 가끔 불러들여 자연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별 할 일 없이 지낸다는 게 예상보다 따분했다. 성격상 마냥 놀면서 지내지 못하겠더라고. 도시에서와 달리 일에서 해방돼 좀 편하게 살고 싶다는 뜻이 있었지만, 딱히 몰두할 일이 사라지자 갑갑증이 몰려들었다. 그래 시작한 게 호두 농사다.”
호두를 작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작목 선정을 위해 임업진흥청 같은 곳에서 농업교육을 받았는데 호두 농사를 권했다. 임야를 이용한 과수 농사 가운데 호두가 유망하다는 얘기였다. 여느 과수와 달라 나무를 소독해주지 않아도 되는 등 관리와 수확에 용이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한결 쉽고 편하게 다룰 수 있는 작목이라는 거였다. 이러한 홍보에 이끌려 호두 농사를 시작한 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어떻게 다르던가?
“재배부터 생산까지 일반 과수 농사에 필요한 공정보다 수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퇴치가 어려운 외래 해충의 발생에 따른 피해와 어려움이 컸다. 호두나무가 1000그루로 늘어나면서는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힘겨웠다. 다른 과수들은 관련 기관에서 생산물을 수매해주지만, 호두 유통엔 그런 시스템조차 없다는 것도 뒤늦게 안 약점이다. 이래저래 작목 선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착오가 있었던 셈이다.”
귀농 교육장 강사들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는 충고가 흔하던데.
“강사들은 교과서적인 이론에는 밝다. 그러나 실제 상황엔 둔감하다. 농업의 현장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다는 거. 나는 이러한 정황을 미처 몰랐다.”
김제천은 귀농의 목적을 또렷하게 정하지 않은 채로 호두 농사에 뛰어들었다. 물샐 틈 없는 사전 준비와 구상을 하고도 일이 이상하게 풀려나갈 수 있는 게 귀농인데도 말이다. 따라서 그는 예상하지 못한 곤란을 수시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성실한 근로와 기민한 머리로 상황을 돌파하길 거듭했지만, 어쩌면 그의 내부에 풍성하게 서려 있을 강인하고 낙천적인 기질에 힘입어 주저앉는 시늉조차 해본 적이 없지만, 15년간 흘린 비지땀과 남모를 고뇌의 총량은 아마도 드럼통에 담고도 넘칠 정도일지도.
귀농 자체를 만류하고 싶다
고달픈 노역은 임야의 토질을 보강하는 데에서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땅 거죽 하부엔 온통 돌투성이더란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이었던 것. 해서 그는 땅을 파 돌들을 끄집어냈다. 큰 돌은 정으로 깨부숴 파냈다. 그러곤 퇴비를 듬뿍 묻어주는 작업까지 손수 다 했다. 지하에 일일이 배관을 하는 관수 시설도 필수였다. 허리 휘어질 고생이 자심했을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야생 짐승들의 훼방도 그를 괴롭혔다지.
“멧돼지들이 수시로 들이닥쳐 열매를 먹기 위해 호두나무 줄기를 마구 찢어놓더라. 청설모, 삵, 담비, 때까치 등도 방어하기 어려운 애들이다. 특히 무리 지어 날아와 호두 열매를 노련하게 파먹는 때까치의 실력엔 당할 재간이 없다.”
감전 효과를 발휘하는 전선을 설치하고, 심지어 대포 쏘는 소리를 내는 장비까지 동원해 방어하는 농가를 보자면 농사라는 게 실로 만만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 옛날 전통사회의 농부들은 짐승들과 사이좋게 반반씩 나눠 먹는 걸 관습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게 차라리 현명한 걸까?
“딱히 방비책이 없다. 그런데 짐승들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 아니겠는가. ‘야야! 애들아! 적당히 먹고 가라. 너희들이 먹고 남은 걸 우리가 거두면 된다!’ 이렇게 체념하고 그냥 놔두는 거다. 그게 상책이라 생각해서다. 고만한 일로 속 끓일 게 뭐 있겠나?(웃음)”
호두 농사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은 어떤 것일까?
“호두가 훼손되지 않게 열매를 따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 이건 기계 작업이 불가능하다. 대나무 장대로 조심스럽게 털어야만 한다. 호두의 딱딱한 껍질을 벗겨 알맹이를 일일이 끄집어내는 작업도 쉽지 않다. 펜치를 들고 하나하나 껍질을 까 형태가 손상되지 않도록 분리한다. 세심한 손놀림이 필요하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겨울철엔 주로 아내와 함께 이 작업을 한다. 농한기가 없는 게 호두 농사다."
연간 순수익을 말해줄 수 있나?
“800만 원쯤 된다.”
저런! 너무 적다.
“호두 농사의 수익성이 이렇게 열악하다. 그러니 내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나?(웃음) 잘나가는 포도 농가나 복숭아 농가의 수익에 비하면 10%도 안 되는 수준이니까 말이다. 다행히 연금이 있어 의식주 생활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귀농하려는 이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농사로 돈 벌기 어렵다는 거! 연금이라거나 믿을 만한 게 없다면 아예 시골에 오지 말라는 거!”
원점으로 돌아가 귀농을 다시 한다면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싶지?
“복숭아 농사 정도가 좋겠지. 복숭아가 이 지역 특산물이기 때문이다. 귀농하려거든 부디 지역 특산물에 관심을 가지는 게 좋겠다. 생산 여건과 유통 구조가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농 자체를 만류하고 싶다. 형편이 된다면 귀농보다 귀촌을 해 농사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게 현명하다.”
성장하는 나무들의 신비로움
시골에서 느긋하게 살기. 족쇄 없는 영일(寧日)을 보내기. 그는 그런 걸 원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원했던 삶과 현재의 삶이 상당히 불일치한다. 그렇다고 낙심으로 찡그리고 살면 우습다. 별처럼 마냥 빛나는 삶이 어디에 있겠나. 그는 15년간 정당하게 일하고 호두나무들을 공정하게 대했다. 따라서 여전히 당당하다. 내가 기죽을 일 있나 봐라, 하듯 부진한 행진을 해온 호두 농사에 새삼 발동을 건다. 으슬으슬 진저리칠 만한 현실이지만 이왕 내친걸음 끝까지 가보겠다 한다. 농사 기술이야 이미 일취월장했다. 크고 알맹이가 꽉 찬 고품질 호두를 생산한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덕분에 배우고 깨달은 게 많다. 궁리 끝에 늘 도달하는 건 반성이더라. 삶도 농사도 반성으로 돌아보면 얻을 게 많다.”
산중에서 반성을 일삼아 뭔가 환해지는 게 있다면 그게 도인(道人)인데?(웃음)
“어! 내가 도통하려나? 하하하. 여하튼 시골의 삶을 로망으로 삼은 이들이 많지만 돈 욕심을 다 내려놓지 않고선 어렵다. 귀농이 곧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일 수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의식주 걱정 없고, 몸 안 아프고, 게다가 괜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입에 매달고 산다면 그보다 나은 게 있을까.
“내가 감성적인 인간은 아닌데 산골에 살다 보니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내 자식처럼 아끼며 기르는 호두나무들이 우렁차게 성장하는 걸 바라보면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이건 깊은 감동을 준다. 이러한 재미에 내가 농사를 짓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호두 농사에 헌납한 15년 세월. 말 못 할 고통이 왜 없었으랴.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고통스러워야 살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통도 지옥도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김제천이 주는 귀농 Tip
•시골 생활에 낭만적인 로망을 품은 이들이 많지만, 현실의 시골은 낭만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를 하자.
•무턱대고 집이나 땅부터 사는 건 위험하다. 사전에 1, 2년 정도 농촌 빈집을 빌려 살아본 뒤 적응 가능성부터 판단하라.
•부부가 뜻이 맞지 않은 채 귀농하거나 단신 귀농은 금물이다. 정착에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임야에 농사를 지으려 할 경우엔 인허가 사항부터 꼼꼼히 점검하고 진행하라. 지자체의 농촌활력센터를 찾아 문의하면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농산물 유통을 위한 공부와 고민을 많이 하라. 좋은 농산품을 생산해도 유통의 벽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숱하다.
최근 사회 곳곳에서 인공지능 열풍이 불며 이제 막 대중화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 그 역할을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특히 노인 돌봄 분야에서는 그 중심에 SK텔레콤이 있다. 2019년 4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노인 돌봄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4년, 이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동안 인공지능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다.
SK텔레콤이라는 기업이 이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속내가 알고 싶다면 회사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편하다. 인공지능 돌봄서비스 개발을 담당하는 부서는 ‘소셜세이프티넷’팀으로 ‘ESG(환경·사회적 책무·기업 지배구조 개선) 추진’ 산하의 ‘ESG 얼라이언스’ 소속이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이 서비스는 지속 가능한 경영 차원의 비즈니스 모델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안전망 역할 차원에서 돌봄이 필요한 계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석된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인식 향상 보람
그렇다면 그간 무엇을 이뤄냈을까? 초창기부터 개발에 참여한 정승룡 부장은 “인공지능이 돌봄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대중적으로 인식시킨 것”을 먼저 꼽았다.
“4년간의 성과로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인공지능 돌봄서비스의 대중화를 이뤄냈고, 저희 서비스가 이 분야에서 대표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전국 90여 개 지자체에서 1만 8000여 명의 어르신께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비스를 실시한 지자체 중 90% 이상이 다시 저희를 찾아주셔서 효과성도 입증된 셈이죠.”
이 서비스를 통해 인공지능이 어르신 돌봄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정부에서도 AI나 IoT 기술을 활용한 시범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소 무모할 수 있었던 최초의 시도로 실제 시장에서 이 서비스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제도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선행 기술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태희 팀장은 돌봄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대중화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정서적 접근’을 꼽았다. 지금은 인공지능 기술로 다양한 서비스가 나오고 있지만, SK텔레콤이 이 분야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돌봄과 관련한 기술은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센서 기반의 IoT 기술은 어르신들이 감시받는 기분이 든다며 외면하기 일쑤였고, 스마트폰은 디지털 문해력이 낮으면 이용하기 어려웠다. 또 스마트워치 같은 장비는 무겁기도 하고 충전 등의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고.
“기술 공급자나 자녀, 가족 같은 관리자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고 어르신 스스로가 서비스 소비자가 되어 이 기술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가벼운 농담을 나누는 정서적 접근을 통해 더 친근하게 서비스 이용에 참여하신 거죠.”
물론 이 서비스가 처음부터 지자체에서 환영받은 것은 아니다. 낯선 기술 분야인 데다 전례가 없는 사업이라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또 SK텔레콤의 새로운 돈벌이 수단 아니냐는 색안경 역시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김건훈 매니저는 “불려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고 말했다.
“많은 질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이 쓰이는데 항목에 서비스를 위한 통신이나 스피커 같은 가전, 음원 서비스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해가 쉽지 않았겠죠. 또 회기에 영향을 받는 공공기관의 특성도 고려해야 했고, 관리 인력의 수급까지 많은 것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담당을 나눠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녔어요.”
수많은 인명 살린 ‘아리아’
SK텔레콤의 인공지능 돌봄서비스를 살펴보면 AI 스피커 기반 ‘NUGU’ 서비스에 돌봄 기능을 위한 3가지 특화 콘텐츠가 더해진 형태다. SOS 긴급구조 서비스와 치매 지연 서비스인 ‘두뇌톡톡’, 심신 안정 서비스 ‘마음체조’가 그것이다. 특히 SOS 긴급구조가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정승룡 부장은 예상 이상의 성과였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아리아 살려줘’를 외치신 분이 5000명이 넘어요. 그중 실제로 위험 상황에서 구조된 분이 460명 정도 되고요. 인공지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바로 119 안전신고센터로 접수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위급 상황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간에는 주관사인 행복커넥트가, 야간에는 보안업체 SK쉴더스가 관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이용량이 늘면서 소방청과 협약을 맺고 공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전한 활용 사례는 인공지능의 유용성을 확인시켜준다. 경기도 화성의 고령 여성은 안마의자 오작동으로 팔이 끼어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가 됐다. 전화기는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다 “아리아 살려줘”를 외쳤고, 출동한 119 대원에게 구조되었다. 늦게 발견됐으면 팔의 괴사 위험이 있었고, 극단적인 경우 고독사까지 일어날 수 있었다.
올 3월 발생한 사건도 마찬가지. 한 고령자가 거동이 어렵고 어지러움과 구토 증세까지 겪으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구조된 후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인공지능이 없었다면 뇌혈관질환에서 중요한 ‘골든타임’을 넘길 수도 있었다.
학술적 성과 낸 치매 지연 서비스
치매 지연이라는 표현이 다소 낯설다. 하지만 아직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치매 판정 이후 할 수 있는 최고의 의학적 처치 역시 ‘지연’이다. 대부분의 치매 처방약도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치매 진행을 늦추는 지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두뇌톡톡은 이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 ‘메타기억교실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으로, 어르신이 언제든지 편리하게 인지훈련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활용한 이 프로그램은 장기기억력과 작업기억력, 언어유창성 면에서 효과가 입증돼 2021년 미국 의학 저널 ‘JMIR’지에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정승룡 부장은 “두뇌톡톡은 어르신의 인지능력 향상을 통해 알츠하이머성 치매로의 이환을 2년 정도 늦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프로그램을 완주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 가족의 도움이나 치매안심센터의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된다면 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AI 전화 서비스를 통해 음성 마커, 그러니까 말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만이 눈치챌 수 있는 특징을 확인해 우울증이나 치매, 파킨슨병 발병 가능성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미래 요양 서비스의 중심 AI
최근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요양 서비스 대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인공지능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물었다. 김건훈 매니저는 노인 요양 서비스 분야에서 당장 인공지능이 전문인력의 역할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요양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노년층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활약하는 것은 ‘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50~100명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인공지능 기술이 더해지면 200~300명으로 수혜자가 늘어나는 것이죠. 저희가 많이 받는 오해 중 하나가, 요양 서비스 직종이 사라지거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요양 서비스 중 휴먼터치, 즉 사람이 직접 대면하는 것이 효과성이 큰 분야도 있으니까요. 비대면 분야 또는 저숙련 인력이 하는 단순 업무를 인공지능이 거들어줌으로써 기존 인력이 휴먼터치에 쏟을 시간을 더 확보해주는 겁니다. 더 위급한 사람이 빨리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또 요양 서비스 분야의 흐름 중 하나인 ‘에이징 인 플레이스’도 지적했다. 결국 부족한 요양 인프라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시설이 아닌 집에서 고령자를 돌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환경 조성을 위해 인공지능 기술은 필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먼저 말을 건네보시길”
최근 인공지능 열풍의 중심에는 거대 언어 모델인 챗GPT가 있다. 문태희 팀장은 챗GPT의 발전 가능성을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저희 회사에서도 활용 가능성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 중에 있습니다. 인공지능 서비스 분야에서 더 개인화되고 정서적 지원에 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예상해요. 한정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챗GPT도 출현할 것이고, 고도화되면서 서비스가 더욱 향상되겠죠. 또 응급 상황에서 당황하는 사용자에게 행동 지침을 안내하거나, 가족에게 경고할 수도 있겠죠. 인지 기능 유지나 건강 모니터링 분야에서도 할 수 있는 역할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놀랐던 부분은 현장에서 만난 많은 사회복지 분야, 요양 서비스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의 고민이 단순한 기술의 적용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현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향후 전망에까지 다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기술적인 이해가 어려운 중장년 세대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에 대해 문태희 팀장은 “일단 말을 건네보시라”고 전한다.
“저희 부모님도 처음엔 사용을 낯설어하시다 지금은 잘 사용하고 계십니다. 당연히 익숙지 않은 이 기술이 낯설 수밖에 없죠. 하지만 사용자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만큼, 잘 활용하시면 오래된 친구처럼 옆에 두고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용기 내어 아리아를 한번 불러보시면 좋겠어요.”
나이가 같더라도 개인의 ‘노화 속도’에 따라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60대 중반 나이에서의 노쇠 정도로 10년 뒤 건강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 나잇대 노쇠가 심한 경우 10년 내 사망 위험이 4.4배, 노인 질환 발병 위험은 3.2배 증가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신재용·장지은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김대현 교수팀은 국민건강보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2007~2017년 건강 검진을 받은 만 66세 성인 96만 8885명을 비교 분석했다.
노쇠는 노화와 질병의 축적으로 기능이 감퇴해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상태를 말한다. 노쇠 정도는 △병력 △신체·검체 검사 △신체 건강 △정신 건강 △장애 등 5개 영역의 39가지 항목을 평가해 측정했고, 노쇠 정도에 따라 건강한 집단, 노쇠 전 집단, 경증 노쇠 집단, 중증 노쇠 집단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66세 때 심하게 노쇠한 집단이 건강한 집단에 비해 10년 내 사망 위험이 약 4.4배 높았다. 건강한 집단에서는 연간 100명 중 0.79명이 사망했으며, 노쇠 전 집단에서는 1.07명, 경증 노쇠 집단에서는 1.63명, 중증 노쇠 집단에서는 3.36명이 사망했다.
노화에 따른 질환은 건강한 집단에서 연간 평균 0.14건, 노쇠 전 집단에서 0.23건, 경증 노쇠 집단에서 0.29건, 중증 노쇠 집단에서 0.45건씩 발생했다. 각 질환별로는 중증 노쇠 집단에서 10년 내 심부전·당뇨·뇌졸중이 발병할 위험이 각각 2.9배·2.3배·2.2배씩 높았다. 신체적·정신적 기능 저하로 타인의 돌봄이 필요한 비율은 중증 노쇠 집단에서 건강한 집단에 비해 10.9배 높았다.
주요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비교적 젊은 나잇대의 노쇠 정도로 노화 속도를 파악할 수 있어,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한 선제적인 건강 관리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기존에는 보다 고령을 기준으로 연구가 진행됐지만, 이번 연구는 초기 노년기인 만 66세를 기준으로 노쇠의 의미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같은 나이더라도 생물학적 노화 정도, 즉 노쇠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며, 이러한 차이로 먼 미래의 사망과 건강 상태까지도 예측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가능한 젊을 때부터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운동, 금연, 절주, 스트레스 관리 등을 통해 건강 관리를 하여 노쇠와 질환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노쇠가 진행된 경우라면 다제 약물을 점검하고 노쇠의 흔한 원인이 되는 근감소증이나 인지 기능 감소, 우울, 불안, 수면 장애 등에 대해 전문의를 찾아 노인 의학적 도움을 받으면 좋다. 전 세계적으로 빠른 고령화와 돌봄이 필요한 인구 급증이 예상되는 만큼, 이를 예방하고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와 정책 개발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의사협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인 ‘자마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 피인용지수 13.360)’에 최근 게재됐다.
퇴직 후 재취업 과정은 녹록지 않다. 경력이 무색할 만큼 퇴짜 맞은 이력서가 쌓여가고, 면접 기회는 좀처럼 잡기 힘들다. 그마저도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 일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인데 뭐가 잘못된 걸까. 그 해답을 스스로 찾을 수 없다면,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단계다. 이에 재취업 상황별 전문 컨설턴트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장년 구직자의 행태를 짚어보고, 그 해결점을 모색해보려 한다. ‘시니어 잡:담회(Job:談會)’ 그 첫 순서는 ‘상담편’이다.
Episode_1 “대기업 출신인 나더러 중소기업을 가라고요?”
재취업은 전 직장과의 연장선이 아니다. 회사 규모는 물론, 그에 따른 직급이나 직무, 역할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전 직장의 명성에 얽매이는 구직자가 적지 않다는데.
진행자 상담하러 오는 구직자들의 과거 직군별 유형이 있나요?
권미경 커리어컨설팅 대표(이하 미경) 그럼요. 대기업 생산직 퇴직예정자 대상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는데요. 일단 번아웃을 많이 호소하시고, 1년 정도는 쉬고 싶다고들 하세요. 그러고 난 뒤에 뭐 할 거냐 물으면, 절대 중소기업은 가지 않겠다고 해요. 대기업에 대한 자부심도 크시고, 그 타이틀을 버리기 쉽지 않으신 거죠. 사실 공백기가 생기고 취업 시장에 나오면 중소기업도 어렵거든요. 열심히 인식 개선을 해드리려 했는데,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최성희 노사발전재단 중장년내일센터 책임컨설턴트(이하 성희) 아무래도 대기업은 교육이나 연수 기회가 많은 편이죠. 오히려 그만큼 (회사)안에서만 머무는 시간이 많아 바깥 상황은 잘 모르시더라고요.
황영희 노사발전재단 중장년내일센터 책임컨설턴트(이하 영희) 그래도 생산직에 계셨던 분들은 지게차운전기능사 같은 자격증이라도 따놓으시는 편이에요. 사무직은 학력도 높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차·부장급 출신이 많은데요.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 외에 개인이 주도적으로 경력 목표를 설정하거나 개발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이력서에 쓸 만한 내용은 있는데 실상 성장은 더딘 거죠.
황성철 상상우리 수석컨설턴트(이하 성철) 대기업이나 공무원 출신 분들의 특징은 일단 직장 백그라운드(배경)가 너무 좋았다는 거죠. 근데 회사의 명성을 자신의 전문성이라 오해하는 분이 많아요. 그 백그라운드 빼면 할 수 있는 게 없는데도 말이죠.
미경 엔지니어 직군은 전문성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컨설턴트 이야기를 잘 듣지 않더군요. 너희가 나보다 이 분야에 대해 더 잘 아냐 이거죠. 특수 분야에 계셨던 분들을 상담할 때는 사전 공부가 많이 필요해요.
성희 저는 작년에 대전에서 고경력 과학자분들을 만났는데요. 정말 희소한 인력이거든요. 결국 이분들의 기술이 사회로 나오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취업 시장에서 더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성철 안 그래도 제가 그동안 만나왔던 분들을 토대로 출신 직군별 구직자 특성을 적어봤어요. 맞는 말인지 들어보시고 아닌 건 말씀해주세요. ① 공무원이나 군인 출신, 부지런하고 학구적이지만 유연성 부족함 ② 대기업 출신, 기업 후광에 기대어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함 ③ 중소기업 출신, 다양한 경험을 보유했으나 추후 소기업 등으로 재취업되는 상황이 벌어지며 자신감이 하락함 ④ 금융기관 출신, 고임금자가 많아 눈높이가 높고 자신감도 높음 ⑤ 교사 출신, 컨설턴트를 가르치려 들고 자신을 과대 포장함 ⑥ 고기술 경력자, 자존심이 높고 전문성이 뛰어나지만 영역이 좁아 보편적인 재취업이 어려움, 그에 따라 자칫 우울해하기도 함. 자, 어떤가요?
미경 성희 영희 맞아요, 맞아요. 공감합니다!
Episode_2“실업급여 타고 좀 쉬다 보면 누가 연락하지 않겠어요?”
청년층 못지않게 퇴직자에게도 취업 공백이 생기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 퇴직 후 1~2년은 재취업을 위한 골든타임. 안일하게 스카우트 제의를 기다린다면 시간낭비일 뿐이다.
진행자 퇴직하고 리프레시할 겸 1~2년 쉬었다가 컨설턴트를 찾으면 늦은 걸까요?
미경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번아웃이 온 경우가 많거든요.
영희 마냥 쉰다고 리프레시가 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대개 퇴직하고 실업급여 받는 몇 개월 동안은 쉬겠다는 분이 많은데요. 그러다가 정말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어요. 꼭 전투적인 구직 활동을 하라는 건 아니에요. 운동을 한다거나, 요리를 배워본다거나, 기존에 결핍됐거나 못 해본 영역을 채워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떨어졌던 심리적 자원도 채워지고, 구직 활동에 긍정적 에너지로 쓰일 수 있습니다.
성희 당장 자기개발을 시작하기보다는 춤이든 낚시든 뭐라도 몰입하는 시간을 보내시는 걸로 충분하다고 봐요. 아무것도 안 하시고 단절해서 집에만 계시는 게 제일 위험합니다.
성철 공무원들은 퇴직하고 1년 동안 공로연수를 받아요. 그거 끝나고 나면 또 실업급여를 몇 개월 받고요. 그렇게 1~2년 동안 특별히 뭘 안 해요. 60세에 퇴직해서 결국 62세쯤에나 구직 활동을 하는데, 그땐 너무 늦죠. 근데 막상 그분들에게 교육받으시라 하면 신경질 내요. 그래서 저는 일단 ‘노시라’ 하고 대신 그 사이 생애설계도 받아보고, 여생이 기니까 뭐 하면 좋을지 검색도 좀 해보시라 해요. 막상 1년 놀잖아요. 그럼 미쳐요. 알아서들 나오십니다.
진행자 당장 전투적인 구직 활동은 미루더라도 바깥 활동은 좀 하시라는 거죠?
영희 네, 정보가 엄청 중요하거든요. 어디라도 가야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정보도 얻고 기회도 생기니까요. 아무리 스펙이 좋은 분이라도 1~2년 공백 거치면 재취업 연결은 쉽지 않아요.
성철 바깥으로 나와보면 딱 알게 되죠. 나만 놀고 있었구나. 다들 뭘 하고 있네? 근데 한편으론 이런 사람들도 많아요. 어디선가 연락이 오겠지. 같은 회사 다녔던 선배나 후배가 같이 일하자고 하겠지.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허송세월 보내는 경우도 상당해요.
영희 근데 연락이 안 오죠. 지혜로운 분들은 퇴직 전에 경력 목표를 설정하고 자격증이나 훈련을 미리 준비해요. 제가 만난 분 중에 재직자인데 구직자 대상 교육을 듣고 싶다고 사정해서 넣어드린 적이 있거든요. 건설업 종사자였는데, 드론 수업을 듣고는 관련 자격증 4종을 모두 따셨죠. 요즘은 건설업계에서도 안전관리 측면에서 높은 빌딩이나 댐 등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구조물에 드론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전망을 이해하신 거예요. 그렇게 해서 퇴직하고 한 달 만에 취업에 성공하셨답니다. 물론 이런 사례는 많지 않지만요.
성희 결국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상담 과정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다음 단계로 행동을 옮기는데, 아무런 선택도 못 하시고 시간만 보내다 가는 경우도 많아요. 좀 전 사례자 역시 스스로 교육을 듣겠다, 자격증을 따겠다, 이런 의사결정이 빨랐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성철 맞습니다. 저는 이런 구직자도 봤어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시키는 건 잘하니까 나더러 뭘 할지 알려달라는 거예요. 근데 그건 고등학생 때나 가능한 얘기죠.
성희 유망 직종이나 괜찮은 자격증 하나만 찍어달라는 분도 계셨어요. 막상 그 하나를 말씀드려도 실행에 옮기진 않으시더군요.
성철 직장에 종속돼 눈치 보며 지낸 세월이 길어서일까. 주도적으로 하는 힘을 잃은 거 같기도 해요.
Episode_3“이력서요? 컨설턴트가 대신 써주는 거 아닌가요?”
마음이 급한지, 의지가 부족한지, 쉽게 취업 정보를 얻어가려는 이들도 있다. 게다가 무리한 요구에 성의 없는 태도까지 보인다면? 컨설팅의 가치는 떨어지고 재취업은 멀어지고 만다.
진행자 컨설팅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 가장 난처한가요?
성희 오시자마자 다짜고짜 뭐 해줄 수 있냐고, 내가 당장 갈 곳을 알려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안 해주시고 말이죠.
영희 마음을 여는 게 우선이고 참 중요한데, 라포(상호 신뢰관계) 형성이 쉽지 않아요.
미경 게다가 속으로 컨설턴트를 테스트하는 경우도 많죠.
성철 맞아요. 나한테 뭘 해주는지 봐서 나도 내 것을 보여주겠다, 이런 거예요.
성희 네, 확실히 경계하시는 분들이 있긴 해요. 때론 기 싸움도 벌어지죠.
미경 기관마다 다니면서 컨설턴트를 간 보는 분도 많아요.
성희 결국 가장 난처한 건, 구직자가 개방하지 않는 상황이에요. 가령 5회 진행하면 거의 끝나갈 때쯤 마음을 터놓는 분도 계세요. 그래도 그렇게라도 오시는 분들은 그만큼 얻어가는 부분이 있으리라 봐요.
진행자 그럼 컨설턴트를 찾아가기로 했다면, 효과적인 상담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요?
영희 저는 고객분들에게 사전에 이력서를 준비해 방문하시도록 공통적으로 요청 드려요. 그것이 그 고객분의 재취업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때도 있어요. 완벽한 이력서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컴퓨터로 프린트하여 방문하시든 문구점에서 이력서 양식을 구입해서 손으로 작성해서 오시든 어떤 형태로라도 작성해서 방문하는 고객분과 아닌 분은 큰 차이가 있어요. 빈손으로 오는 분들은 ‘취업까지 오래 걸리겠구나’ 생각해요. 그만큼 간절함이 덜하다는 건데, 어떻게 질 높은 상담이 이뤄질 수 있겠어요. 워크넷 잡케어 서비스나 테스트를 미리 해보셔도 좋아요. 그러면서 스스로 상태 파악도 되고, 진단 결과를 상담 자료로 쓰면 더 효율적인 컨설팅이 가능하죠.
진행자 무성의한 분들이 오면 컨설턴트들도 의욕이 떨어지죠?
성희 숙제 같은 거 안 해오시면, 아 저분은 다음엔 안 오시겠구나 싶죠.
성철 태도와 자세의 문제니까요.
영희 사실 중장년은 잠재력이 높은데, 그 안에 오래 쌓인 안 좋은 습관이나 행동도 섞여 있잖아요. 그래도 태도가 좋으면 취업 가능성을 높여갈 수 있죠.
성철 안 좋은 태도 중 하나는 ‘나이 탓’ 하는 거예요. 나이 때문에 떨어졌을 거야, 이 나이에 무슨 자격증? 그런 나이 탓은 안 하셨으면 해요. 또 남의 눈치 보는 것도 삼가야 해요. ‘이 일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주변 시선을 의식하느라 컨설팅해주는 직업을 탐탁지 않아 하기도 해요.
미경 그런 눈치는 보지 않되 네트워킹을 많이 하면 좋아요.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무조건 나가서 많이 만나라. 안에서 취업 사이트만 들여다보면 결국 찾을 수 있는 건 경비, 청소, 보험영업, 다단계 이런 것뿐이에요. 그런 상황에 놓이면 더 자존감이 떨어지죠.
성희 근데 참 안 나가려고들 하시잖아요. 특히 남자분들은 상대와의 스몰토크에도 부담을 많이 느끼시고요.
성철 저도 그렇지만 한국 중년 남성 특성상 그게 쉽지 않아요. 자기 외로움이나 어려움에 대해 얘기를 잘 못 해요. 그러다 한번 터지면 난리 나죠. 우리 컨설턴트 중에서도 중년 남성분들이 펑펑 우시는 걸 본 경우가 많아요. 어쩌면 그만큼 자기 얘기를 할 곳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영희 취업을 하는 게 목표이긴 하지만, 상담을 통한 건강한 자아 회복도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상담하면 가능한 한 그 분의 강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컨설턴트가 그 사람 본연의 자존감을 살려주고 응원함으로써 내면에 에너지가 가득 차게끔 돕는 거죠. 그런 마음가짐이 재취업 과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합니다.
고령 인구 증가로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금 시장 개편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누고,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퇴직연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수익률이 연 1% 수준에 그쳐 노후 소득으로는 턱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적연금 고갈 이슈가 매년 쏟아지는 지금, 사적연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해야 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 시리즈 [연금 가이드]를 통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 [연금 가이드] 시리즈에서는 퇴직연금 중 기금형에 대해 알아봤다. 다른 국가들이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게 유지한데는 기금형 규모가 큰 것도 주요했지만, 한편으로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이 자동 적용된 영향도 컸다. 우리나라도 2022년 7월부터 디폴트옵션을 도입했고, 올해 7월 11일까지 유예기간을 주었다. 오는 7월 12일부터는 퇴직연금 신규 가입자라면 의무적으로 디폴트 옵션을 지정해야 하고, 모든 IRP 가입자에게도 도입된다.
퇴직연금 운용, 어떻게 할까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DC형 퇴직연금과 IRP 적립금은 총 124조 1000억 원 규모다. 이 중 실적배당상품에 투자된 금액은 25.8%에 불과하다. 나머지 68%는 예적금 등의 원리금 보장상품에 맡겨져 있으며, 운용 상태를 정하지 않은 대기성 자금이 6.2%를 차지한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1~2%에 그치는 이유다.
디폴트옵션은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와 개인형 IRP 계좌가 있는 사람에게 적용된다. 사용자가 특별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때, 미리 선택한 운용방법으로 자동 운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금융사가 만든 디폴트옵션 전용 상품을 보고 고르면 된다. 디폴트옵션 적용 대상자는 4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DB형: 적립도, 투자도 회사가 운영한다. DC형: 적립은 회사에서 투자는 본인이 결정한다. 개인형 IRP: 적립도, 투자도 본인이 한다.
또한 올해 7월부터 퇴직연금 신규 가입자는 의무적으로 디폴트옵션을 지정해야 한다. 이전 가입자를 위해 각 금융사는 디폴트옵션 선택 안내를 하고 있다. 다만 디폴트옵션을 지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떤 제재가 이뤄지지는 않아 강제사항은 아니다.
퇴직연금 계좌에 적립된 돈은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고용노동부는 상품을 심사해 위험등급별로 나눈 259개의 디폴트옵션 적용 가능 상품을 발표했다. 허용된 상품은 타깃데이트펀드(TDF), 밸런스펀드, 단기금융펀드, 사회간접자본(SOC)펀드, 원리금보장형 등이다.
TDF는 투자 목표 시점을 정해두고 시간이 지나면서 위험이 낮은 자산 비중을 늘리는 자산배분 펀드다. 연금 백만장자가 나온다는 미국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은 근로자의 퇴직연금을 생애주기별로 적용하는 TDF로 자동 운용하게 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TDF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밸런스 펀드는 투자 위험도가 다른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한 뒤 금융시장 상황과 자산 가치 변동을 고려해 주기적으로 자산 배분을 변경한다. 단기금융펀드는 단기금융상품 등에 투자해 손실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 사회간접자본 펀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한다. 원리금 보장상품으로는 예금, 적금 등이 있다.
상품 유형으로 보자면 크게 원리금보장형과 펀드형으로 볼 수 있다. 이 둘을 혼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디폴트옵션 상품의 위험도는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초고위험 등 5단계로 나뉜다. 초저위험 상품이라면 펀드가 편입되지 않은 상품일 것이다. 만약 100% 펀드형으로만 옵션을 구성하는 경우는 TDF나 밸런스펀드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펀드 상품을 고를 때는 위험 등급과 과거 수익률을 잘 살펴봐야 한다. 또한 직장에서 DC형 퇴직연금 가입을 하고, 개인형 IRP를 개설한 근로자라면 두 계좌 각각 디폴트옵션을 설정해야 한다.
“퇴직금 못 잃어” 여전히 예·적금이 편하다면?
내가 스스로 퇴직연금을 어떤 상품에 투자해 수익률을 낼지 결정하기 어려운 근로자라면, 이번에 도입된 디폴트옵션을 보고 금융사가 제시한 상품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그런데 이번 제도 도입에서 ‘원리금 보장상품’이 옵션 중 하나로 포함된 점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려던 이유가 안전 상품에만 모여 있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투자 상품으로 유도해 더 높은 수익률을 내도록 하려던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사례를 들며 원리금보장형 옵션을 넣으면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 옵션을 넣은 일본은 제도 정착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정부는 2014년 디폴트옵션을 도입했지만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정해두지 않았다. 당시 기업들은 디폴트옵션을 많이 활용하지도 않았던 데다, 도입하더라도 대부분을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두었다. 이에 정부는 2018년 연금법을 개정하면서 ‘가입자에게 운용 상품을 제시하고 3개월이 지나도 운용상품을 고르지 않으면 상품 선택을 다시 한번 재촉하고, 통지 후 2주가 지나도 운용 지시가 없다면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운용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연금연합회에 따르면 2017년 70.7% 수준이었던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은 2020년 75.5%로 오히려 비중이 더 높아졌다. 디폴트옵션이 있으나 마나 한 제도가 된 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원리금을 손해 볼까 봐 걱정하는 근로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우리나라 역시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상품을 넣게 됐다. 옵션 중 하나로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하는 근로자라면 다음 내용을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원리금보장형은 금리 수준, 만기 시점, 예금자 보호 여부를 잘 살펴봐야 한다. 특히 원리금보장형은 매달 금리가 바뀌기 때문에, 디폴트옵션 설정할 때 금리와 실제 적용할 때 금리가 다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원리금보장형에 만기가 있다는 것이다.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상품은 만기가 없다. 물론 100% 펀드 상품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을 굴리고 있는 가입자라도 디폴트옵션 적용을 선택해야 하긴 하지만, 사실상 적용될 일은 없다. 100% 원리금보장형으로 적립금을 운용하고 있거나 일부를 원리금보장형에 넣어둔 경우에만 디폴트옵션이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원리금보장형 만기 후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별도로 하지 않은 돈은 대기성 자금으로 불린다. 대기성 자금이 된 지 4주가 지나서도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금융회사는 2주 뒤부터 디폴트옵션이 적용됨을 알려야 한다. 고지 이후 2주 동안에도 별다른 운용지시가 없으면 해당 만기자금은 디폴트옵션에 따라 운용된다.
“고객님, 디폴트옵션을 지정해야 합니다.”
기존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디폴트옵션 선택 유예기간이 곧 종료된다.(2023년 7월 11일까지) 이에 금융사들은 디폴트옵션을 지정하라는 안내를 하고 있다. 퇴직연금에 이미 가입된 근로자라면 먼저 자신의 퇴직연금이 현재 어떤 금융상품에 투자됐는지 보고, 자신의 연금 자산을 어떻게 운용할지 고민해볼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특히 자신의 생애주기, 목표 수익률, 자산 배분 원칙, 장기 투자 원칙, 위험 관리 원칙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100%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한 A 근로자와 70%는 실적배당형에, 30%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한 B 근로자가 있다고 하자. 둘 다 원리금보장형 만기는 10년이라고 가정한다. 이 상태에서 디폴트옵션으로 사회간접자본 펀드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10년 뒤 별다른 운용지시를 하지 않으면 A 근로자는 적립금의 100%가 사회간접자본 펀드로 편입되고, B 근로자는 30%가 해당 펀드로 포함된다.
지금까지는 퇴직연금이 별도의 운용지시가 없으면 정기예금이나 금리가 높은 예금에 자동으로 예치됐다. 하지만 오는 7월부터는 자동 재예치 되지 않고 대기성 자금이 된다. 대기성 자금으로 있는 동안에는 정기예금 금리보다 낮은 금리가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에 퇴직연금을 정기예금 등에 넣어둔 가입자들은 만기가 얼마나 남았는지, 만기 이후 운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 유리하다.
앞서 예시로 든 A와 B 근로자의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10년 후 만기 되어 디폴트옵션이 적용되었더라도 언제든 다른 금융 상품으로 바꿀 수 있다. 제도 적용 후 직접 운용 의사를 가지고 상품을 변경하는 것을 ‘옵트아웃’(opt-out)이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금융사에 별도의 연락을 하지 않아도 운용 중이던 디폴트옵션 상품을 매도하고 다른 상품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영되고 있던 가입자라면 상품 매도 시 금리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용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해달라’고 디폴트옵션을 선택해 원리금보장상품으로 퇴직연금이 운용되고 있었다면, 상품을 매도할 때 중도해지에 따른 패널티로 약정 금리를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디폴트옵션 적용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희망하는 가입자에 한해 디폴트옵션 중 하나를 선택해 가입할 수 있는 ‘옵트인’(opt-in) 제도도 있다.
디폴트옵션이라는 제도는 결국 투자 상품에 넣든, 예·적금에 넣든 적립된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가입자가 선택하는 제도다.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높이려면 원리금보장형 비중보다 투자상품 비중이 높아야 한다. 물론 디폴트옵션을 지정했다고 해서 무조건 수익률이 6~8%에 달하는 건 아니다. 이 제도는 퇴직연금을 방치하고 있는 사람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상품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원금 손실을 볼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원금 손실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입을 모은다. 연금 백만장자가 나오는 미국과 호주를 포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위험자산 비중은 50% 수준이다.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공적 연기금 역시 위험자산 운용 비중이 5~60%에 달한다. 경기 상황에 따라 어느 해에는 손실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률이 난다는 것. 오랜 기간 두었다가 노후에 쓸 자산이라는 특성을 생각한다면, 장기적으로 생각해 당장 원금 손실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건강관리 및 위험 예측, 대화를 통한 심리적 안정감 제공 등 인공지능은 노인의 신체적·정서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 노년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인공지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인공지능이란 인간의 생각이나 학습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을 말한다. 영어로는 ‘Artificial Intelligence’라고 하며, 줄여서 AI라고 부른다.
2020년 한국신용정보원의 ‘AI 기술·시장 동향 : 핵심 기술, 시장 규모, 사업 리스크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AI 시장 규모는 2025년까지 연평균 38.4% 성장해 1840억 달러(약 204조 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2025년 10조 5000억 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정부는 올해 ‘인공지능 10대 핵심 사업’을 추진한다. 그중 주요 목표는 초고령사회 대비 ‘전 국민 AI 일상화’다. 독거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보살피고 민생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상용 인공지능 제품·서비스를 국민 생활 곳곳에 확산하는 프로젝트다. 독거노인 인공지능 돌봄로봇 지원, 소상공인 인공지능 로봇 전화상담실 도입, 공공병원 의료 인공지능 적용 등이 주요 과제다.
의료 AI : 의사도 대체할까?
지난해 11월,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마켓은 AI 시장 규모가 2027년에는 4070억 달러(약 563조 9000억 원)로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업종별로는 의료 및 생명과학 부문이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우리나라의 의료 AI 기술 수준도 빠른 성장을 이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22년 보건의료산업 기술수준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한국이 보유한 의료 AI 기술은 가장 우수한 미국의 74∼80%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기술을 따라잡는 데 2년에서 3.5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측됐다.
긍정적인 부분은 한국이 AI를 활용한 의료 영상 판독 분야에서 발전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김현철 진흥원 연구개발혁신본부장은 “자기공명영상(MRI) 데이터를 학습해 의사의 진단을 돕는 AI는 이미 의료 현장에서 쓰일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의료 AI 기업 루닛은 2월 28일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유방암 검출 AI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다.
여기에 정부는 ‘전 국민 AI 일상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공의료기관에 ‘닥터앤서’(Dr.Answer) 도입을 확대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발한 닥터앤서는 데이터·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의사의 진료·진단을 지원하는 AI 의료 소프트웨어다. 심뇌혈관, 대장암, 유방암 등 주요 8대 질환의 예측과 진단을 지원한다.
닥터앤서의 도입 확대와 함께 챗GPT의 활용으로 의료 AI가 단순히 진단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의사를 대체하는 ‘AI 의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최근 챗GPT는 미국 의사면허시험(USMLE)의 생화학, 진단추론, 생명윤리 3개 과목에서 52.4∼75.0%의 정답률을 보여 합격권에 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챗GPT 진단 결과의 정확도와 전문성이 떨어져 의사를 대체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높다.
김라은 가톨릭대 의료정보학교실 교수는 지난해 11월 ‘의료 인공지능의 시대, 의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토론회에서 “인공지능이 효과가 좋은 약물로 처방을 내릴지라도 환자가 그 약물을 사용하고 고통을 느꼈을 경우 인공지능이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궁극적으로 인류를 질병과 고통에서 구원할 수 있는 선동적인 역할은 인간 의사의 책무다”라고 말했다.
2021년에는 세계 최초의 간호 로봇 ‘그레이스’가 세상 밖에 나왔다. 개발사 핸슨로보틱스의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핸슨은 “그레이스와 같은 로봇은 의료 종사자들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AI와 로봇 기술은 의료 종사자가 환자의 건강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 자료를 수집하는 데 도움을 준다”라고 강조했다.
그레이스는 사람의 얼굴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환자의 체온과 맥박을 감지하는 열화상 카메라, 의사가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각종 센서 등을 탑재했다. 노인 돌봄을 전문으로 하는 로봇으로 환자의 말동무 기능도 갖췄다. 한국어도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돌봄 AI : 사회복지사도 대체할까?
정부의 ‘전 국민 AI 일상화’ 프로젝트 과제 중 하나는 ‘독거노인 인공지능 돌봄로봇 지원’이다. 현재 지원되는 돌봄로봇은 AI 스피커 유형이다. 2016년 SK텔레콤이 국내 최초 음성인식 AI 스피커 ‘누구’(NUGU)를 출시한 이후, ICT 기업들은 AI 스피커를 잇따라 내놓았다.
SK텔레콤은 최근 노인 돌봄체계 지원 전문기관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누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AI 기반 음성 안내 플랫폼 ‘누구 비즈콜’을 활용한다.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 대상자들의 안전 및 안부 확인, 생활지원사들의 업무 효율을 향상하는 시범 서비스를 2만 명을 대상으로 제공한다.
네이버의 ‘클로바 케어콜’은 중장년 1인 가구를 위한 AI 안부 전화 서비스다. 현재 전국 40여 개 지자체와 협력해 서울, 경기, 인천, 부산, 광주 등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클로바 케어콜은 돌봄 대상자에게 주 1~2회 전화를 걸어 식사, 수면, 외출, 복약 등의 안부를 확인하고, 통화가 되지 않거나 이상자로 분류되면 담당 공무원이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다.
클로바 케어콜의 차별화된 특징은 자연스러운 대화와 함께 위로·공감·지지·격려의 기술을 탑재했다는 점이다. 인간과 정서적으로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AI를 지향한다. 초대규모 AI ‘하이퍼클로바’ 기술을 적용한 덕분이다. 올해부터 클로바 케어콜은 ‘기상 재난’ 주제의 목적성 대화도 가능해졌다.
KT의 AI 스피커 이름은 ‘기가지니’다. 평상시 하루 세 번 안부 확인과 안내방송 및 복약 알림의 양방향 소통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급 상황 발생 시 이용자가 “지니야, 살려줘”라고 말하면, AI 스피커-KT텔레캅-119 안전신고센터가 365일 24시간 연동돼 응급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KT는 2021년 6월 광주광역시 서구에서 AI 케어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 시행 후 2년이 넘은 가운데 이정화 전남대학교 생활복지학과 교수 연구팀은 기가지니 1, 2년 차 이용자 212명을 대상으로 한 ‘AI 스피커 기반 케어 서비스’ 연구 보고서를 지난 2월 발표했다. 조사 결과, 건강 수준 개선 및 유지 80.0%, 상태 불안감 감소 효과 72.6%, 고독감 감소 65.9%, 우울감 감소 63.5% 등의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에 대해 묻자 이정화 교수는 “대부분의 이용자는 저소득층의 고연령층이었다.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부분은 복용 시간 알림이었다. 약을 빠뜨리지 않고 먹은 덕분에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AI 스피커가 고독사 예방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코로나19로 심했던 이용자들의 우울감, 고독감도 감소했고, 친구가 생긴 것 같은 정서적 안정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광주 서구는 AI 스피커와 함께 ‘AI 복지사’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AI 복지사는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한다. 이로 인해 사회복지사의 행정업무 시간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는 생활고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 사건 이후 AI 복지사 개발에 예산 26억 4000만 원을 배정했다. 이후 각 지자체에서 AI 복지사 서비스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사회복지 관련 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AI 복지사가 늘어나면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줄어들고,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화 교수는 기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AI 복지사라고 하면 꼭 사람 같은 느낌이 들지만 결국은 기계다.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정화 교수는 “AI 스피커를 통해 볼 때 AI 복지사가 노인 돌봄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보통 돌봄 매니저는 한 사람당 노인 16명을 담당한다. AI 스피커가 도입된 후에는 돌봄 매니저 한 명이 노인 100명을 담당했다. 효율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매일 안부 연락은 AI 스피커가 하기 때문에 응급 상황 등 문제가 생겼을 때만 돌봄 매니저가 집을 방문해 조치를 취했다.”
이정화 교수는 “AI 스피커가 돌봄 매니저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사람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포인트를 짚었다. 더불어 “AI가 정서적인 부분도 케어하는 등 진화하고 있어 복지사의 역할을 충분히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I 관리와 추가적인 서비스 제공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사회복지 역할을 할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의견을 전했다.
고령 인구 증가로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연금 시장 개편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누고,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등 퇴직연금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약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 수익률이 연 1% 수준에 그쳐 노후 소득으로는 턱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적연금 고갈 이슈가 매년 쏟아지는 지금, 사적연금을 어떻게 굴릴지 고민해야 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획 시리즈 [연금 가이드]를 통해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지난해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려는 방법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 적립금 운용위원회,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제도를 도입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들인 만큼 국내에서의 실효성이 어떨지 관심이 높다. KIRI(보험연구원)가 낸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와 정책 방향’ 보고서를 바탕으로 주요 선진국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짚어보고, 국내에서는 기금형이 과연 노후 설계의 주요 도구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기금형 연금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2022년 처음으로 기금형 연금제도가 도입된 만큼, 짚어봐야 할 부분들이 있다.
퇴직연금 수익률 높여라
2015년 12월 퇴직연금이 처음 도입된 이후 2020년 기준 전체 근로자의 52.4%가 퇴직연금에 가입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퇴직연금 규모는 2022년 기준 336조 원에 이른다. 2032년이면 860조 원으로 약 2.5배 증가할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제도별로는 DB형이 같은 기간 192조 원에서 398조 원으로, DC형이 86조 원에서 222조 원으로, IRP가 58조 원에서 239조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퇴직연금 규모는 매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퇴직연금 수익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2020년 기준 2% 수준이다. 최근 5년, 최근 10년 수익률은 각 1.96%, 2.39%에 불과하다. 게다가 퇴직연금은 연금으로서 기능해 노후 안전망으로 사용되기보다 일시금 수령이 많고, 아직도 근로자의 절반가량은 퇴직연금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제안됐다. 앞서 [연금 가이드] 시리즈로 살펴본 것처럼, 선진국의 퇴직연금은 대부분 기금형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데 있어 노사의 참여가 더 활발해질 수 있고, 자산운용 전문성도 높일 수 있다.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원금보장보다는 수급권 보호를 강화하고 이를 운영하는 수탁자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의 AIJ 사건이 핵심을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예다.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2014년 기금형 도입을 추진했다. DB형과 DC형을 계약형과 기금형으로 운영하는 방안이었는데,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자동 폐기됐다. 이후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되었고, 2022년부터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 옵션),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제도, 적립금운영위원회 등이 시행되고 있다.
무엇이 달라졌나?
해당 법이 개정되면서 기금형 운영과 관련해 볼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 시행 △적립금운용위원회 구성 의무화다.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이하 중퇴기금)는 30인 이하의 중소기업이 가입할 수 있는 제도다. DC형처럼 사용자가 근로자의 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의 1을 매년 해당 근로자의 퇴직연금계좌로 납부하고 근로자가 퇴직하면 받게 되는 구조다. 기존의 DC형과 다른 점은 근로자 본인이 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과 외부 전문기관이 적립금을 운용하게 된다. 정부는 기금 운용 규모가 커지면 수익률도 높아지고 수수료도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KIRI는 중퇴기금 도입으로 근로복지공단의 시장 지배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사업장에서 30인 미만 사업장이 92.4%에 달하고 근로자 비중으로는 전체 근로자의 40%에 해당한다”면서 “중퇴기금을 독점 운용하고 집합투자운용이 가능해 공공성 등을 고려할 때 근로복지공단 시장지배력은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또한 “근로복지공단 운영 특성상 운용관리업무만 수행하고 자산관리업무 등의 운용은 금융회사에 위탁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단과 금융권의 상생도 기대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세 번째로 DB형 퇴직연금제도를 운영하는 300명 이상 기업은 적립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할 의무가 생겼다. 그동안에는 사용자가 적립금을 어떻게 운용할지 결정했는데, 원리금보장상품 위주로 운영한다는 지적이 있어 합리적으로 운용하면서 수익률도 높일 수 있도록 적립금운용위원회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적립금운용위원회는 5~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연 1회 이상 개최해야 하고, 목표수익률 설정, 자산배분 등 적립금 운용에 관한 사항, 적립금운용계획서, 재정안정화계획서 등을 심의·의결한다. 만약 최소적립비율을 충족하지 못한 사업장이라면 적립금운용위원회에 근로자대표, 퇴직연금 관련 부서장, 퇴직연금 전문가를 각 1명 이상 포함해야 한다. 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거나 적립금운용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기금형 도입 초읽기
KIRI는 “중퇴기금과 적립금운용위원회 제도 도입으로 사업장 규모별, 가입자 특성별로 구분된 기금형은 이미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보편적 의미의 기금형이 도입될지는 논의가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보편적 기금형 도입이 되더라도 시장 변화는 오래 걸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영국 등의 사례에 비춰보면 DC형에 기금형이 도입된 것은 가입자 관점에서 지금처럼 별도의 운용지시를 내려야 하므로 계약형과 다른 차이가 없다. KIRI는 “집합투자운용이 병행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실적배당형 투자 성향이 강해지면서 펀드 수수료 등으로 비용이 증가할 수 있어 수수료 체계도 정비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DB형의 경우 퇴직연금과 운용수익률이 근로자에게는 무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기금형 제도로 바꾸는 데 있어 근로자의 동의를 얻을 요인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자산운용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해 그동안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주로 운영했던 사용자로서도 기금형을 도입하는 데는 신중할 수 있다.
KIRI는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무엇보다 수급권보호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금형을 운영하면서 수익률을 높이려다 보면 투자 리스크도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PBGC나 영국의 PPF에 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DC형 예금자 보호 수준이 5000만 원이지만 생애 자산을 보호하려면 예금보상 한도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퇴직연금 사업자 간 경쟁도 활발해져야 한다. KIRI는 “사업자 범위를 온라인뱅크, 자산운용사 등으로 확대해 사업자 간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면서 “다양한 지배구조가 등장하면 계약형과 경쟁을 통해 퇴직연금을 성장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호주 사례처럼 퇴직연금 기금 간 경쟁이 활발해지도록 다양한 형태의 기금형 도입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중퇴기금과 적립금운용위원회 도입으로 기금형 성격이 강화된 만큼 제도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수탁자 책임과 권한을 명확하게 할 필요도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에서 수탁자는 근로자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자신의 재량으로 운영·관리하게 되므로 그 역할과 책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KIRI는 “기금형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탁자보증보험과 수탁자책임보험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살펴본 바와 같이 이제 막 기금형이 도입된 상황이다. 미국, 영국, 호주처럼 보편적인 기금형의 도입은 아니지만,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금융기관으로 퇴직연금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과학기술인공제회가 있다. 조직 내부에서 연금심의위원회, 자산운용전략위원회, 투자심의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등을 운영하고 있다. 과학기술인공제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2021년 기준 7.7% 수준이다.
KIRI는 “연금심의위원회를 둬 자산 배분을 통해 높은 수익률을 낸 것으로 평가된다”면서도 “연금심의위원회는 기금형의 특징이지만 국내에서는 계약형 제도 내에서 추진된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좀 더 보편적으로 기금형 제도가 도입되고 자리 잡으려면, 이번에 도입된 중퇴기금과 적립금운용위원회 그리고 과거부터 운영해온 연금심의위원회 같은 기금형 특성을 갖는 제도들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내고 어떤 평가를 받는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처럼 기금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금형이 잘 안착해 고령자의 노후 안전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각종 미디어나 언론의 콘텐츠를 접하다 보면 때때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때가 있다. 분노와 짜증, 호통 등이 너무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폭 가해자 박연진 역을 맡았던 배우 임지연은 분노 연기로 인해 미간에 주름이 생기고 촬영 후에도 예민함이 지속돼 어려움을 겪었음을 밝혔다. 또한 호통으로 인해 논란이 됐던 정치인들의 태도도 이슈가 된 바 있다. 바야흐로 ‘호통의 시대’다.
미디어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사소한 일에 쉽게 화를 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뜻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운 친구, 가족들에게 화풀이하기도 한다.
물론 적정한 수준의 분노 해소는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막상 감정이 가라앉으면 후회와 죄책감 탓에 힘들어질 수 있어 분노의 감정을 잘 다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자생한방병원 김환 원장(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의 도움말로 분노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부정적인 감정을 잘 관리하기 위한 건강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욱’하고 올라오는 분노…참아야 할까, 표현해야 할까?
사람들은 긍정적인 감정만을 드러내고자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억누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내적 갈등을 침묵하다 보면 불안과 걱정이 쌓여 ‘울화(鬱火)’와 같은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냥 참기보다는 적절한 감정 해소법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한방에서 울화는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생긴 화증을 의미한다.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이 특징이다. 병명 속의 화(火)라는 글자가 말해주듯 신체의 열감이 심해지며, 가야금 줄을 누를 때의 느낌처럼 맥이 빠르게 뛰는 것을 일컫는 맥현삭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맥박이 빨라지는 증상은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한데 이 같은 사실은 연구 논문을 통해 입증되기도 했다. 독일 예나 대학에서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분노를 참는 사람은 맥박이 빨라져 신체와 정신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를 주도한 마르쿠스 문트 박사는 맥박 상승이 반복될 경우 혈압이 높아져 심혈관질환, 암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지며 수명 또한 단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적절한 감정 해소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친 분노를 터뜨릴 경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분노의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노르아드레날린은 기쁠 때 분비되면 활력을 높이지만 화가 난 상황에서는 근육을 수축해 긴장 상태를 유발한다. 이로 인해 어깨와 목 등에 근육통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근육 경련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분노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분비를 증가해 면역기능을 약화한다.
김환 자생한방병원 원장은 “분노를 지나치게 해소하거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매번 참다가 터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적절하게 해소하며 감정 조절 능력을 향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중혈(膻中穴)’ 지압, 침, 도움
누적된 분노를 해소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는 운동이 있다. 특히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인 달리기를 30분 이상 실천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행복감이 드는 효과가 있다. 이는 이른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불리는 상태로,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미 부정적인 감정이 논쟁이나 다툼 등으로 이어진 상황이라면 잠시 대화를 멈추고 감정을 다스리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르아드레날린 수치는 분비된 지 15초 만에 최고조에 이르지만 2분 전후로 서서히 수치가 떨어진다. 이어 15분이 지나면 정상 범위까지 감소하므로 감정이 진정된 후에 대화를 다시 이어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스스로 해결이 힘들 정도로 화를 다스리기가 어렵다면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것이 현명하다. 한방에서는 울화의 원인을 기의 순환이 막힌 것으로 보고 침 치료와 뜸, 한약 처방 등을 활용해 치료한다. 먼저 침 치료를 실시해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키고 긴장을 완화한다. 이어 뜸을 놓아 뭉쳐 있는 기를 원활하게 순환한다.
여기에 우황청심원과 같은 한약 처방을 병행하면 신경 안정과 불안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실제 한국한의학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황청심원이 만성 스트레스에 의해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과 아드레날린 분비를 각각 86.9%, 75.2%가량 억제해 뇌 손상을 예방한 것으로 밝혀졌다.
치료와 함께 ‘단중혈(膻中穴)’과 같은 혈자리를 틈틈이 지압하는 것도 스트레스와 긴장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단중혈은 한방에서 ‘화(火)가 쌓이는 자리’라고 불린다. 명치 약간 위쪽에 위치해 있어 화가 나고 답답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쿵쿵 내려치게 되기도 한다. 단중혈을 검지와 중지로 지그시 누른 채 10초간 문지르면 화를 가라앉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지압뿐만 아니라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하는 다크 초콜릿이나 바나나를 섭취하는 것도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하는 데 좋다.
자생한방병원 김환 원장은 “분노를 억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적절한 방법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도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화를 없애려 노력하기보다는 다스리는 법을 터득해 가는 것이 삶의 지혜이자 건강법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