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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역사의 정취에 빠지는 문화재 야행 탐방
- 선선한 가을밤에는 전국 문화재 야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지역별 문화재 야행을 알아보고 문화 체험도 소개한다. 경복궁 별빛야행 10월 8일까지 | 경복궁 외소주방에서 궁중음식체험과 전통 공연을 관람하고, 전문 해설사와 함께 별빛 산책도 할 수 있다. 예산 문화재 야행 9월15~16일 | 예산군청 일원 예산 성당, 예산호서은행본점 등을 방문하며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한 야간 문화 향유 콘텐츠를 체험하자. 보은 회인 문화재 야행 9월15~17일 | 회인 인산객사, 회인로 일원 도깨비 마을로 변한 보은 회인에는 천연염색체험, 무형문화재 줄타기 등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부여 문화재 야행 9월 15~17일 | 부여 정림사지 백제의 문화유산 정림사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야간 역사문화체험을 하면서 사비백제의 밤을 누비자. 충주 문화재 야행 9월 22~23일 | 충주 중앙탑 사적공원 일원 가족, 연인, 반려견과 함께하는 문화재 야행. 문화재 스탬프 랠리와 공연 등을 즐기며 역사를 배울 수 있다.
- 2023-09-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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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기부, 소상공인 유니콘으로... ‘글로컬’ 상권 만든다
-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 프로젝트가 이태원에서 시작을 알렸다. 소상공인들을 1조 원의 기업가치가 있는 유니콘 기업형으로 육성하고, 지역의 상권이 글로컬(글로벌+로컬)로 거듭나도록 만들 계획이다. 지난 1일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이자 이태원 상권 회복 프로젝트로 진행된 팝업스토어 ‘헤리티지 맨션’이 문을 열었다.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은 로컬크리에이터와 소상공인의 협업으로 지역의 인적·물적 자산을 연결하고, 상권관리 모델 도입과 자체 역량 강화를 통해 골목상권을 브랜드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5월 서울 이태원(어반플레이), 인천 개항로(개항마을), 공주(제민천), 군산 영화타운((주)지방)을 ‘로컬브랜드 상권 창출팀’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2일 이태원에서 간담회를 열어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시작을 알리고, ‘헤리티지 맨션’을 둘러보며 이태원 소상공인을 응원했다. 이영 장관은 “퇴근하고 대중교통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어떨까? 동네가 바뀌면 온 동네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고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생활 속 창업에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는 이태원의 독특한 문화, 역사, 가치들을 모아 상권을 개발하고자 했다”면서 이태원 상권 회복을 응원했다. 이태원에서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해 헤리티지 맨션을 기획한 어반플레이 홍주석 대표는 “우리나라 로컬크리에이터의 시작은 이태원”이라면서 “이태원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문화 프로젝트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이날 열린 간담회에서 상인 700여 명의 감사의 뜻을 담아 제작한 감사패를 이영 장관에게 깜짝 전달하기도 했다. 유태혁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회장은 “(지난해 참사 이후)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중기부 지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희망을 보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중기부는 소상공인을 기업가로 키우는 지원 사업들을 연계할 계획이다. 지역의 상인들을 ‘라이콘’(라이프스타일 유니콘)으로 성장시키고, 지역이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는 글로컬 상권으로 재도약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이번 로컬브랜드 창출사업에 선정된 지역 중 이태원 헤리티지 맨션을 시작으로 공주 제민천 창업실험실, 마계인천 유니버스, 군산 술익는 마을 순으로 팝업스토어, 축제, 네트워킹 데이가 연속 개최된다. 이태원의 낮과 밤 담은 “헤리티지 맨션” 헤리티지 맨션은 도시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가 이태원의 로컬크리에이터, 소상공인과 협업해 만든 팝업스토어다. 독특한 지역성을 가진 이태원의 문화와, 시대를 선도하는 문화를 제안해온 이태원 구성원들의 유산을 담은 공간이다. 이날 헤리티지 맨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다. 오후 4시가 되자 DJ의 디제잉이 이어지며 마치 클럽에 온 듯한 느낌도 주었다. 헤리티지 맨션 자체가 곧 이태원이었다. 최은지 어반플레이 PD는 “9월 한 달 동안 앵커스토어인 헤리티지 맨션 팝업스토어를 중심으로 8군데의 지역 상인들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헤리티지 맨션에 방문하면 누구나 웰컴키트를 받을 수 있다. 이 안에는 이태원의 헤리티지(유산)를 보여주는 헤리티지 프로젝트에 관한 설명과 함께 이태원 일대를 돌아다니며 모을 수 있는 키링이 들어있다. 봉투 안의 키링을 가지고 쿠폰에 적혀있는 공간을 방문해 1만 원 이상의 소비를 하면 각 카테고리별 색깔의 열쇠 모양 키링을 받을 수 있다. 맨션 1층에는 웰컴레코즈(WELCOME RECORDS), 웝트(WARPED)의 제품들을 볼 수 있다. 한 편에는 이들을 지원하는 위스키 브랜드 짐빔의 하이볼을 맛볼 수 있는 부스가 있고, 옆에서는 매주 금, 토, 일 오후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DJ들의 릴레이 공연이 이어진다. 2층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믹스미디어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윤일 작가가 이태원에서 7일 동안 실제로 살면서 담은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태원의 색깔을 담은 F&B 부스가 운영된다. 3층에서는 비슬라(VISLA) 매거진의 ‘이태원의 낮과 밤’을 주제로 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에 담겨있지 않은 이태원 사진들은 포스터로 구매할 수 있다. 한편에는 관광특구도시인 이태원의 특징을 담은 굿즈가 판매된다. 보이롱페이스 작가와 협업해 그래피티를 넣은 티셔츠와 이태원 도시 명칭과 함께 헤리티지 맨션의 위도와 경도가 그려진 수건 등이 있다. 또한 매주 금요일에는 댄스 등의 공연이 열리며 매주 일요일에는 플리마켓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헤리티지 프로젝트는 오는 9월 24일까지 진행된다. ‘이태원’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단연 DJ 문화일 것이다. 웰컴레코즈는 DJ들을 서포트하기 위해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번 헤리티지 프로젝트에서도 DJ를 지원하기 위해 헤리티지 맨션과 컬래버레이션 한 LP를 선보이며, 볼레로(BOLERO)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웝트는 서브컬쳐나 발굴되지 않은 문화를 옷으로 표현한다. 홍콩, 뉴욕 등 전세계 아티스트들의 러브콜을 받는 팀이다. 헤리티지 맨션에서 선보인 옷들은 해외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것들로 국내에는 없는 수입 제품들이다. 전윤일 작가는 7일간의 이태원에서의 생활을 기록했다. 실제 이곳에서 소비한 영수증, 필름, 가게의 소품으로 만든 오브제 등을 선보인다. 또한 이태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태원의 헤리티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태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담은 다큐멘터리도 상영한다. 이태원 곳곳에 그래피티 작업을 한 작가의 그래피티도 감상할 수 있으며 매주 달라지는 F&B도 즐길 수 있다. 종이 잡지로 시작해 글로벌 에이전시로 활동하고 있는 비슬라 매거진은 서브컬쳐를 주류로 끌어오는 힘이 있다. 이태원 출신의 사진작가들을 섭외해 ‘이태원의 낮과 밤’을 담았다. 낮에는 조용하고 비어있는 듯한 이태원이 밤이 되면 화려하고 다양한 문화가 섞이는 이중적인 모습이 이태원의 매력이라는 점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 2023-09-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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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 품었걸랑 정자에 오르라… 원림의 귀감, 남원 광한루원
- 비가 내린다. 비는 감정의 농도와 온도를 높여준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며 억눌렸던 감정을 해방시킨다. 그렇다면 비 내리는 날에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 남원 광한루원(廣寒樓苑)에 장맛비가 내린다. 그래 사람이 거의 없어 적적하다. 비는 쉼 없이 내려 풍경을 변주한다. 미인은 주렴 사이로 보라 했던가. 그래야 운치가 돋는다 했다. 미인뿐이랴. 주렴처럼 드리워지는 빗발 사이로 보이는 광한루원의 풍경 역시 맑은 날과 달라 오히려 이색 정취를 자아낸다. 비에 흥건히 젖은 누정과 수목의 표정을 주시할 만하다. 육안보다 심안으로 봐야 할 것만 같은 내향성이 서려 있다. 광한루원은 남원시의 자랑거리이자 관광명소다.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유명해진 건 광한루원이 고전소설 ‘춘향전’의 무대로 등장해서다. 사람들은 흔히 광한루원과 ‘춘향전’을 동격쯤으로 여긴다. 그래 광한루원에 와서 춘향과 이몽룡이 남긴 열애의 행적을 더듬는다. 그러나 광한루원의 본질은 ‘춘향전’과 무관하다. ‘춘향전’의 한 배경 장소로 쓰였을 뿐, 본래 조선 중기에 지어진 원림(園林)의 귀감이라는 데에 광한루원의 정체성이 있다. 사실관계가 그러하지만 흔히 간과한다. 광한루원에 와서 원림에 꾹 방점을 찍고 답사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대부분 춘향의 상열지사를 염두에 두고 풍경을 바라본다. 유심히 살펴보고 감흥을 즐길 만한 조선 원림이 엄연히 이곳에 있으나 ‘춘향전’을 표상하는 구조물들이 혼재해 정작 또렷이 인식하지 못한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관점의 조절이 필요할 텐데, 관광 소재로 들어앉은 시설물들을 시야에서 걷어낸 셈치고 원림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겠다. 그게 광한루원을 담뿍 마음에 담는 방법일 테다. 광한루원은 관아가 주도해 지은 관아 원림이다. 관아 원림이란 고을의 관원이나 시인 묵객들이 연회와 풍류를 즐긴 야외 정원이다. 광한루원은 중심 누각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그 일원에 조영된 원림을 통틀어 지칭하는 이름이다. 광한루의 스케일은 매우 웅장하다. 위엄이 넘친다. 상징과 지향을 담은 사물들의 디테일로 아름답기도 하다. 정원과 연못 역시 호방하고 수려하다.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된 팔작지붕 형태의 누각이다. 남쪽에서는 간결한 구조로 보이지만, 북쪽에서는 매우 복잡하고 장식적인 외관에 눈길이 쏠린다. 거기에 세 겹의 작은 지붕 아래로 층계를 설치한 회랑이 있어서다. 월랑(月廊)이라 부르는 묘한 구조물이다. 이걸 조성한 이유가 있다. 광한루는 초창 이후 중수를 거듭했다. 그 와중에 정자의 총량이 너무 과중해 북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했는데, 이 난처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계단이 있는 회랑을 덧대어 지지대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여느 정자에서 볼 수 없는 기묘한 형태미와 기능성을 확보하게 됐다. 이와 같은 건축적 개성과 위트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한루엔 당대 문호들이 쓴 시문 편액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멋들어진 정자가 있으니 드나든 시인이 한둘이었으랴. 여기에서 붓에 먹을 적신 묵객이 한둘이었으랴. 호남을 지나는 선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렀다고 한다. 지리산 솔바람이 드나드는 정자 마루에선 청담(淸淡)이 자주 오갔으리라. 끽다와 음풍영월이 있는 풍류도 다반사였을 테고. 조선의 문인 임제가 광한루에 올랐을 때엔 매화라도 피었나? 매화 가지에 달이라도 걸렸나?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깬 채 밤이 깊어졌다고, 함께 노닌 사람과 헤어질 땐 꽃이 지더라고, 임제는 그렇게 시로 노래했다. 광한루는 세종의 총예를 받았던 명재상 황희가 남원에서 유배를 살 때 지은 작은 누각 광통루에서 유래했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1444년 전라감사 정인지가 “아하, 여기가 바로 달나라의 미인 항아가 산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로다!”라고 찬탄한 데에서 비롯됐다. 정인지가 괜히 달나라 운운한 게 아니다. 광한루가 애초 월궁(月宮)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지어졌으니까. 즉 광한루는 천상의 궁궐인 셈이다. 옛사람들은 상상력을 발동해 결국 천상계를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천상에 모래알처럼 무수히 뿌려진 것은 별인데, 광한루 전면의 넓고 유려한 연못이 바로 은하수를 상징한다. 연못 가운데엔 섬 세 개를 만들어 삼신산을 표상했다. 광한루원의 기저엔 이렇게 신선 사상이 깔려 있다. 도교, 유교, 음양론, 풍수지리 등이 추구하는 이상향의 상징 구조들로 어우러져 있다. 안팎이 두루 광활한 세계관으로 상통하는 원림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앞줄에 설 조선 정원이다. 신선을 마음에 들여놓고 다시 빗속을 운전해 정자를 찾아간다. 지리산 기슭,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에 있는 퇴수정(退修亭)이다. 매천 박치기(梅川 朴致箕, 1825~1907)가 1870년에 지은 누정이다. 그는 토목건축을 관장하는 벼슬살이를 하다 은퇴하고 여기 후미진 산골짝에 은거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결국 자연으로 흘러가는가? 퇴직 뒤엔 정해진 순서처럼 산림에 여생을 의탁했던 선인들의 유전자가 후세까지 이어지나? 박치기의 고향은 함양군 안의면이다. 그러나 퇴직 후엔 고향을 떠나 이곳에 터를 잡았다. 왜 그랬는지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박치기가 지은 퇴수정의 모습이 그의 선조 박명부가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지은 농월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닮아 흥미롭다. 경치 좋은 냇가에 지은 정자라는 점에서도 퇴수정과 농월정은 유사하다. 경관을 보는 취향과 정자를 짓는 경향에 집안 내림이라는 게 있지 않았나 싶다. 박치기는 널리 이름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근사한 정자를 지어 한몫 단단히 했다. 그의 전공이 건축이었으니 퇴수정에서 구현된 건축 미학의 완성도를 보지 않고도 가늠할 만하지만, 실제 이 정자는 빼어나 인상적이다. 당대 누정 건축의 첨단 기술력으로 빚어낸 작품일 수도 있다. 명품 정자라 추켜세우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정자의 규모는 작아서 소박미가 물씬하고, 흠결 없는 비례로 조화롭다. 은근한 세련미로 우아하기까지 하다. 퇴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주목할 만한 요소가 많은 정자다. 가령 배흘림기둥을 구사해 시각적 안정감을 부여했다. 조선시대에 일반적이었던 막돌 초석 대신 사각 다듬돌을 놓은 것도 당시로선 획기적인 건축 공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뚜렷한 특징을 꼽자면 훤칠한 냇물과 동행하는 정자라는 점이다. 지리산에서 굴러 나온 계류가 정자의 코앞을 흘러가는 게 아닌가. 기기묘묘한 물가의 암반들과 물속의 바위들까지 퇴수정의 동아리로 삼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숲과 물 사이에 들어앉은 정자다. 자연과 긴밀하게 얽힌 집이다. 박치기의 생리는 초야를 닮아 거친 나물밥만으로도 자족했다. 퇴수정 마루에 올라서는 곧잘 객과 더불어 술과 거문고를 즐겼다지. 그는 신선을 닮고 싶어 산수에 묻혀 산 인물이다. 속세의 질서와 규율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그러나 마음 안에 신선을 들여놓고 자연에서 노닐 경우엔 경지가 달라진다. 신선을 흠모한다는 건 이미 도(道)에 밝다는 뜻일 테니까. 김주완 남원문화원장 “남원 문화의 성장 지리산의 영향력 덕분” 예로부터 남원을 일컬어 ‘천부지지(天府之地) 옥야백리(沃野百里)의 고을’이라 했다. 하늘이 내린 땅이며, 비옥한 들판이 펼쳐지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저 옛날의 농경사회 시절, 땅에서 나오는 생산물이 풍부해 의식주가 넉넉할 경우엔 문화마저 덩달아 융성했다. 남원이 딱 그랬다. 농업이 발달한 덕분에 향토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현대에까지 상속된 유형・무형의 문화자산이 수두룩한데, 이를 견인차로 삼아 남원은 문화 관광도시로 부상했다. 이에 대한 김주완 남원문화원장의 얘기는 이렇다. “농업경제의 힘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먹고사는 게 무난해 예술이 발흥한 거다. 삼국시대부터 남원이 교통의 요충이었다는 점도 문화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교통로를 통한 인적・물적 교류는 물론, 외부의 다양한 문화 유입이 활발했으니까.” 남원은 지리산 자락에 있다. 지리산이 남원 문화에 미친 영향도 클 것 같다. “남원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어머니 산’이다. 삶의 희망과 안식을 지리산을 통해 얻으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원의 문화예술 역시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성장했다고 본다. 남성적인 판소리 동편제를 완성한 가왕 송흥록의 성취는 지리산이 주는 정신적 영향력에 의해 가능하기도 했다. 남원은 문학의 요람이다. 고전소설 ‘춘향전’과 ‘흥부전’의 무대이자 발상지이며,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남원 사람이다. 이 모든 문학적 성장의 뿌리 역시 지리산에 있다고 생각한다.” 6년째 남원문화원을 이끌고 있다. 그간에 거둔 성과를 소개한다면? “큰 성과 하나를 소개하겠다. 과거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베 짜는 소녀가 있었는데, 우리 문화원은 이 소녀의 스토리를 전해 듣고 전말기를 조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조사단을 꾸려 일본 현지를 찾아가 여러 기록을 뒤지는 등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 결과 마침내 영상 다큐에 모든 걸 담을 수 있었다.” 매우 뜻깊은 발굴 사업을 성공시킨 셈이다. 소녀는 포로로 끌려갔으나 좌절하지 않고 굳세게 일어섰던 것 같다. 자신이 지닌 직조(織造) 재능을 일본 지역민들에게 전수해 직조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게 아닌가. 소녀의 사후, 일본인들은 존경하는 마음을 내어 추모비를 세웠다 한다.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소녀의 명민한 자질에 감동할 수밖에. 소녀 관련 발굴 자료들을 향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다큐 상영은 물론, 그림책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할 계획이다. 연극이나 창극, 혹은 소설로 가공할 수 있는 콘텐츠도 개발할 것이다.” 문화원마다 지역민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문화원의 사업과 프로그램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 개발에 고심하는 것 같다. 이 문제엔 어떤 기법이 필요하다 보나? “외부에서는 문화원이 주민들의 참여나 관심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이미 가까이에 있다고 본다. 미진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우리는 ‘열린 문화원’을 지향한다.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기 위해, 문화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 2023-08-0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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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자산 지키는 마지막 수단, 성년후견이 필요한 이유
- 73세 남현명 씨는 남다른 기억력과 판단력으로 자신의 재산을 꼼꼼히 관리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금 납부를 깜빡하거나 중요한 계약을 놓치는 등 금융 업무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남현명 씨는 자녀로 남일명, 남이명, 남삼명 씨를 두고 있는데, 그중 미혼인 남삼명 씨와 함께 살고 있다. 한편 첫째 남일명 씨는 본인과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토지를 함께 개발하고자 남현명 씨의 토지 명의를 확인하다 땅이 매각된 상태인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남일명 씨는 최근 동생 남삼명 씨가 사업을 시작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남현명 씨의 토지 매각 대금이 남삼명 씨의 사업자금으로 쓰인 것이라고 강력히 의심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성년후견 판단 요건과 절차 남현명 씨와 자녀들의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일어난다. 판단 능력이 떨어진 부모의 재산을 자식이 흥청망청 써버리고 다른 자식들이 알았을 때는 이미 손쓰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필요한 법적 수단은 바로 성년후견 제도다. 우리 민법은 사무처리 능력 결여의 정도에 따라 후견의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한다.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성인에게 성년후견(민법 제9조)을,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성인을 대상으로는 한정후견(민법 제12조)을, 정신적 제약으로 일시적 후견 또는 특정 사무 후견이 필요한 성인에게는 특정후견(민법 제14조의2)이라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성년후견 제도를 이용하려면 가정법원의 성년후견 개시 결정이 필요하다. 우선 피후견인에게 후견을 받아야 할 정도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지 판단한다. 2018년 판단 사례로는 뇌병변(외상성 뇌손상, 뇌경색, 뇌출혈, 뇌성마비, 뇌종양 등 뇌의 병변으로 인한 정신적 장애 포함)으로 인한 경우가 41.6%로 가장 많았고, 치매(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알코올중독성 치매 포함) 26%, 발달장애 22.2%, 정신장애 7.4%, 기타 정신적 제약 2.8% 순이었다. 이러한 정신적 제약이 있는지는 법원과 업무협약을 맺은 병원 등에서의 감정을 원칙으로 하지만, 의사의 진단서(‘회복 가능성 없음’ 등의 문구가 들어가야 함) 등으로 정신 상태를 판단할 충분한 자료가 있으면 비용과 소요시간을 고려해 감정 절차를 생략하기도 한다. 감정이 필요한 경우, 필요에 따라 제출된 진료기록으로 진행하는 진료기록 감정과, 본인이 직접 의사를 만나 감정하는 신체 감정으로 진행된다. 신체 감정은 감정병원을 외래로 방문하여 감정을 실시하는 외래감정(의사가 직접 자택이나 요양원을 방문하는 출장감정도 있을 수 있음)과, 입원을 요하는 입원감정(보통 10~14일)으로 나뉜다. 친족 등 관계인들 사이에 다툼이 있는 경우, 신상보호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출장조사가 필요한 경우, 후견 청구의 실질적인 동기가 된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이나 문제점을 파악해야 할 경우, 후견인 후보자가 지나치게 연로하거나 연소한 경우 등일 때는 보통 가사조사가 실시된다. 가사조사에서는 사건 본인의 정신적 제약 여부와 정도, 사건 본인 생활 내력, 현재 생활 상태, 재산 내역 및 관리 상황, 후견 개시 여부 및 후견인 선정에 대한 상속인들의 의견 등을 조사한다. 본인이 의식불명이나 사지마비 등으로 법정에 출석하여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인이 법정에 출석하여 의견을 진술하는 심문 절차도 가진다. 후견 신청 절차는 다툼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6개월 이내부터 1년까지 소요되기도 한다. 성년후견인 선정 과정 성년후견 개시의 심판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등이 이를 청구해야 한다. 다만 성년후견인은 반드시 친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후견인 선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후견인의 의사지만, 성년후견 신청 단계에서는 피후견인의 의사가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피후견인이 예전에 작성해둔 문서나 영상, 친족들의 진술 등 정신적인 제약 상태에 이르기 전에 표시한 의사를 토대로 피후견인의 보호와 복리에 가장 적합한 후견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참고한다. 친족후견은 대체로 피후견인과 친밀감 및 심리적 유대감이 높고 피후견인의 필요를 잘 알고 있으므로 신상 보호에 용이하지만, 후견인으로서의 의무를 망각하고 횡령이나 학대 같은 비행이 나타나는 사례도 있다. 친족 간 분쟁이 있을 경우에는 전문가 후견인을 선정하기도 하는데, 주로 변호사, 법무사, 사회복지사, 공익법인 등이 있다. 전문가 후견인은 친족 사이의 다툼에 휘말리지 않고 공정하게 사무를 처리할 수 있지만, 비용이 비교적 높으며 실질적인 욕구를 잘 알지 못할 우려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후견인이 복수로 선임돼 신상에 관해서는 현재 본인을 돌보고 있는 친족에게, 재산에 관해서는 전문가 후견인에게 각각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기도 한다. 재산을 마음대로 쓸까 불안하다면 성년후견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견인은 선임 후 2개월 내에 재산을 조사해 목록을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하기 전까지는 재산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또한 법원은 필요한 경우 후견인을 감독할 성년후견감독인을 선임하는데, 이러한 후견감독인은 후견인의 사무를 감독한다. 후견인의 가족은 감독인이 될 수 없으므로 주로 전문가가 후견감독인으로 선정된다. 후견인은 정기적으로 후견감독인에게 후견사무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출, 부동산 매매, 소송 등 중요한 행위는 별도로 후견감독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성년후견인이 피성년후견인과 부동산 거래를 하는 등 서로 이해가 대립되는 행위를 하면 후견감독인이 피성년후견인을 대리한다. 예컨대 성년후견인이 돈을 빌리면서 피성년후견인을 연대보증인으로 하거나, 피성년후견인 소유의 부동산에 저당권을 설정하고자 하는 경우다. 성년후견인이 제3자에 대한 채무에 관해 성년후견인과 피성년후견인의 공유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특히 피성년후견인이 거주하는 부동산에 대해서 매도, 임대, 저당권 설정, 임대차 해지 등의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허가도 받아야 한다. 재산뿐 아니라 성년후견이 개시되면 혹시 멋대로 정신병원 등에 격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수 있다. 성년후견이 개시되더라도 자신의 신상(의료 행위에 대한 동의, 사회복지 서비스 선택 또는 결정, 거주 이전에 관한 결정 등)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하고, 그럴 수 없다면 성년후견인이 본인을 대신해 동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치료 등의 목적으로 정신병원이나 그 밖의 다른 장소에 격리하려는 경우, 의료 행위의 직접적인 결과로 사망하거나 상당한 장애를 입을 위험이 있을 때에 그 의료 행위를 성년후견인이 동의하기 위해서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주의할 점은 법원이 피성년후견인(위 사례의 남현명 씨)으로 심판한 자는 원칙적으로 행위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그가 한 법률 행위를 성년후견인이 취소할 수 있다. 다만 법원은 피성년후견인에게 남아 있을 능력을 고려해 일정액 이하까지 성년후견인의 법률 행위 취소를 제한할 수 있다. 즉 취소할 수 없는 피성년후견인의 법률 행위 범위를 법원이 정해줄 수 있다. 법원이 따로 정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 필요하고 그 대가가 과도하지 않은 피성년후견인의 법률 행위는 성년후견인이 취소할 수 없다. 더불어 법원은 후견인의 청구에 의해 피후견인의 재산 상태를 참작하여 피후견인의 재산 중에서 상당한 보수를 후견인에게 수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민법 제955조). 다만 일반적으로 친족후견인에게는 전문가 후견인과 달리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 맘대로 후견인을 정할 수 있을까? 남현명 씨의 입장에서는 내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데 남은 가족들끼리 후견 신청을 하네 마네, 누가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 등 다투는 것이 보기 좋을 리 없다. 건강이 온전할 때는 집안 어른으로 호통이라도 치겠지만, 이미 판단 능력이 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 것도 불편할 테다. 그렇다고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는데, 법원이 정하는 사람 말고 내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미리 후견인을 정할 수는 없는 걸까? 나를 어떻게 돌봐줄지, 내 자신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도 미리 정해두고 싶다. 민법은 임의후견이라는 제도를 두어, 당사자 간 사적인 후견계약을 통해 후견 개시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을 때 가정법원에 임의후견인을 감독할 임의후견감독인의 선임을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임의후견인 등이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후견계약서의 내용 역시 미리 상세히 정해둘 수 있다. 이러한 후견계약은 신중한 결정과 사후 분쟁의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공정증서로 체결해야 하고, 후견계약 체결 후 정정 또는 변경하는 경우에도 공정증서에 의하여야 한다. 후견계약에는 후견인이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비용이 필요한 경우 어떤 재산을 순서대로 처분하여 비용을 충당할지(재산 처분 순서), 후견 개시 이후 몇 년간 특정 재산은 처분 금지, 후견 개시하는 경우 요양원 입소 여부(원하는 요양원 지정), 후견 개시 이후 후견인의 피후견인 방문 횟수(월 몇 회 이상), 의료 행위가 필요한 경우 원하는 병원 지정, 연명치료 여부 등도 기재할 수 있다. 임의후견인의 자격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으므로 친족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임의후견인이 될 수 있다. 다만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해야만 임의후견의 효력이 발생한다. 초고령화 사회가 다가오면서 성년후견 제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아직 성년후견 제도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해당 제도는 초고령화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 좋은 취지에 맞게, 성년후견 제도가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하기 바란다.
- 2023-07-3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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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이 주는 교훈… “어이 명리(名利)를 좇으랴? 삶이란 즐거워야”
- ‘지역 문화유산 순례기’는 한국문화원연합회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다양한 지역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지역N문화는 한국문화원연합회와 지역문화원이 함께 발굴한 다양한 지역 이야기를 서비스하는 지역문화포털입니다. 기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지역N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산 풍경 푸르러 첫눈에 싱그럽다. 청명한 정취를 느끼게 하는 마을이다. 한갓진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택들. 산야의 초록과 고택의 수묵색이 차분하게 어우러져 푸근하다.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있는 군자마을이다. 원래 2km 정도 저 아래 ‘외내’에 있었으나 1974년 안동댐이 들어설 때 이곳으로 집단 이주했다. 수몰을 피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택과 고택 사람들의 몸살이 자심했을 테다. 억지 춘향으로 밀려났으니까. 군자마을만이 아니라 안동의 많은 전통마을이 불운을 맞이했다. 일부 마을은 그대로 수몰됐으며, 군자마을처럼 문화재로 지정된 마을의 고택은 이건(移建)으로 살아남았다. 당시 안동의 유림에선 논의가 많았더란다. 결국 ‘문중을 지키는 소리(小利)보다 국가가 도모하는 대의(大義)에 승복하자’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고 한다. 군자마을은 ‘외내’에서 통째 옮겨온 고택 20여 채로 이루어져 있다. 이건 이후 어언 반백 년이 지났다. 상처를 씻어주는 건 언제나 세월이라는 약이다. 이건 과정에서 곁들인 새 단장으로 고택 마을 특유의 고졸한 맛은 덜 익었지만 찾아오는 이들이 흔해 생기가 감돈다. 답사객들, 또는 한옥 스테이 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유구한 세거로 이어진 후손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지금은 소수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마을이 지닌 역사성과 고건축이 지닌 미감을 힘으로 삼아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옛 마을의 생존 방식과 풍속이 이렇게 진화한다.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도 우람하게 자라 너른 그늘을 드리운다. 마을을 에워싼 숲과 전면으로 탁 트인 조망도 빼어나다. 풍경의 절반은 청산이요, 나머지 절반은 하늘이거나 구름이다. 군자마을은 이렇게 자연 안에 있다. 쉴 만한 곳이며, 눈요기할 만한 곳이고, 기억에 남길 만한 곳이다. 군자마을은 광산 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派)가 조선 초기부터 600여 년 동안 세거한 곳이다. 입향조는 농수 김효로(聾叟 金孝盧, 1454~1534)다. 그는 생원시(生員試)에 붙었으나 출세에 뜻이 없어 매양 초야에 묻혀 살았다. 퇴계가 김효로를 일컬어 ‘결백한 절개를 지켰다’고 한 걸 보면 정치의 탁류에 발 담그기를 싫어한 인물이었음을 알 만하다. 김효로를 사표로 삼아 성장한 덕분인가? 그의 친손과 외손 중에 학덕 높은 선비들이 많이 나왔다. 이른바 ‘오천 7군자’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그렇다.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인 한강 정구(寒岡 鄭逑)는 안동부사로 재임할 때 이곳을 방문했는데, “이 마을엔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고 탄복했다지. 이후 군자리라 부르게 됐다. 돌계단을 걸어 올라 후조당(後彫堂) 대종택으로 들어선다. 군자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고택이며, 마을의 깊은 유서를 웅변하는 대표적 건물이다. 입향조 김효로의 장손인 김부필(金富弼, 1516~1577)이 1567년에 초창, 자신을 호를 따 ‘후조당’(後彫堂)이라 이름 붙였다. 후조당은 안채, 사랑채, 사당, 별당 등으로 구성됐다. 대종택답게 규모로나 건축 미학으로나 빼어나다. 특히 후조당 별당의 가구(架構)와 구색이 흥미롭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 건물로, 서편엔 6칸 대청을 설치했다. 대청 동편엔 2칸의 온돌방을 배치했고, 잇달아 마루 1칸과 가마 형태의 작은 온돌방 1칸을 덧붙여 위트가 실린 건물 형태를 연출했다. 천장 부위에 설치한 소슬 대공은 매우 희귀한 받침 형식인데, 여말선초의 기법이라 한다. 화각을 한 마루 대공의 화려함도 수작으로 평한다. 6칸 대청의 칸마다 단 사분합문(四分閤門)의 묘미는 또 어떻고? 모조리 들어 올려 걸쇠에 걸면 단박에 외경이 안으로 들이친다. 햇살과 바람이 밀려든다. 사분합문은 이렇게 풍경을 변주한다. 아울러 공간을 확장하는 기능을 해 문중의 제례나 회합 같은 대형 행사를 너끈히 치를 수 있다. 선비가 쓴 요리책 ‘수운잡방’ 후조당 별당에 걸린 현판은 퇴계가 썼다. 군자마을 선비들은 다들 퇴계를 스승으로 삼았는데 김부필 역시 제자였다. 후조당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건을 위한 건물 해체 때 지붕 아래 합각에서 고서, 문집, 교지, 토지문서, 노비문서 등 희귀한 문화유산이 다수 발견돼 큰 화제가 되었던 것. 문중 선조들이 600여 년간 은밀하게 소장했던 고문서와 전적들이 천장에서 쏟아지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기상천외한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겠다. 당시 발견된 수천 점의 유물 중 일부는 보물 제1018호와 제1019호로 지정됐다. 사람들은 대개 군자마을의 고택에 관심을 갖지만, 이곳 문중 사람들의 자긍심을 돋우는 건 바로 이 기록유산들이다. 그렇다면 군자마을의 군자들이 지닌 정신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들은 명민해 학문에 밝고 처신에 맑았다. 흔히 탈속한 풍모와 깨끗한 운신을 일삼아 세상의 농간과 꿍꿍이에 초연했다.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도학자란 세속보다 산림에서의 은거와 공부로 오히려 삶의 진수를 건질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지 않았던가. 군자마을 ‘7군자’의 중심인물이었던 김부필은 과거에 급제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은둔했다. 임금이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스승 퇴계가 벼슬을 권했지만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때 퇴계가 읊은 칠언절구가 있다. ‘후조당 주인은 소박하고 절개가 굳어/ 임금의 임명장이 내려와도 기뻐하지 않았다/ 매화와 마주 앉아 빙설 같은 향기를 맡으며/ 그저 도(道) 공부에만 매진하더라.’ 이제 탁청정(濯淸亭)을 볼까. 입향조 김효로의 둘째 아들 김유(金綏, 1491~1555)가 1541년에 살림집을 지으면서 바로 옆에 함께 건립한 별당 정자다. 군자마을엔 두 개의 종가가 마을의 기풍과 질서를 주도해왔다. 항렬로 보아 큰집인 후조당 종가와 작은집인 탁청정 종가가 바로 그렇다. 탁청정의 이름은 김유의 호에서 따왔으며,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썼다. 한석봉은 도산서원의 현판을 쓰기도 했는데, 서예가들에 따르면 탁청정 글씨가 도산서원의 것보다 빼어나다고 한다. 탁청정은 정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로 매우 아름답다. 허전한 구석 없이 당당하고 흠결 없이 수려해 당대 최고수 목수가 지은 집임을 짐작케 한다. 영남 지방의 개인 정자치고 탁청정처럼 웅장하고 우아한 정자가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뜰에 있는 연못에선 여름이면 연꽃 향기가 은은하게 피어올라 누각으로 스며든다. 이토록 경탄할 만한 정자를 지어놓고 김유는 무엇으로 소일했나? 그의 뇌에 세팅된 최고의 가치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이지 않았을까. 그는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무과엔 실패, 그 길로 벼슬을 포기하고 향촌에 살며 도학자로서의 영일(寧日)을 구가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김유는 ‘어찌 명리(名利)를 좇으랴. 삶이란 즐거워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학덕은 드높았고 인격도 고매했다. 즐기는 방식에도 기품이 있었다. 부모 봉양과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함)에 충실함으로써 선비의 본분을 다했다. 특히 접빈객에 공을 들였다. 그는 열 살 연하의 퇴계를 비롯해 당대의 시인 묵객들과 두터운 교유를 했다. 정자 마루에선 청담(淸淡)과 풍류가 화개(花開)처럼 번졌으리라. 이름난 이들만 접대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걸인에게도 대접을 했다는 게 아닌가. 그의 집 주방에선 늘 술이 익어가고 음식이 요리됐다. 김유는 요리책 ‘수운잡방’(需雲雜方, 보물 제2134호)을 저술하기도 했다. 남존여비의 비루한 관념이 엄연하던 시대에 선비가 요리책을?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아마도 김유는 삶이라는 여행을 경계 없이 넘나든 게 아니었을까. 수신(修身)이 깊지 않고선 가능치 않은 경지다. 권석환 안동문화원 원장 유교 자체에 무슨 폐단이 있으랴 ‘안동학’이라는 게 있다. 안동 지역의 역사·문화·지리·민속 등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지역학이다. 이 흔치 않은 학문 장르의 존재를 통해 안동의 문화적 광량(廣量)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안동 사람들은 흔히 유교 문화와 불교 문화는 물론 민속 문화까지 번성한 곳으로 안동을 능가할 지역이 없는 걸로 본다. 권석환 안동문화원 원장을 통해 안동의 문화와 안동문화원의 일에 대해 들었다. “‘안동정신’의 핵심은 ‘의’(義)를 중시한다는 데 있다. 여기엔 역사적 맥락이 있다. 일찍이 고려 건국 때 안동의 지도자 김선평·권행·장정필이 정의로운 편에 섰다. 일제강점기 때엔 전국 어느 곳보다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게 왜 그런가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안동 출신으로 성리학의 태두였던 퇴계 선생의 정신에서 영향을 받은 게 그 배경이 됐다. 즉 의리를 본분으로 가르친 퇴계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왔다는 얘기다.”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를 표방하고 있다. 이른바 ‘선비정신’이 여전히 살아남은 지역이라는 뜻을 담은 슬로건인가? “현대의 다양화된 사회에서 올곧은 선비정신을 가지고 살 수야 있겠나. 그러나 유교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이 바르게 사는 길을 가르치는 게 유교니까. 다시 말해 선비정신을 어떻게든 이어가자는 게 안동의 바람이다. 사실 안동은 전통과 예절이 그나마 잘 지켜지고 있는 고장이다.”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요즘 세상에 유교가 가르치는 모럴이 지닌 폐단은 없을까? “옳은 삶을 가르치는 유교 자체에 무슨 폐단이 있을까? 다만 가르침을 시늉만 낼 뿐 실제로는 이기심을 채우는 얌체들은 이 지역에도 많다. 매사 조상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처신을 하는 게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권 원장님은 전통 유가의 후예로 오랫동안 유림활동을 했다. 일상의 처신에서 중시하는 가치들이 있다면? “기본적인 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지키고자 한다. 상경여빈(相敬如), 즉 서로 공경하기를 손님 대하듯이 하라는 가르침과, 입장 바꿔 생각하자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역시 현대사회에서도 요긴한 미덕이라 믿는다.” 얼마 전에 펼쳐진 ‘차전장군 노국공주 축제’는 시민 중심의 참여형 축제로 성황을 이뤄 호평을 받았더라. “안동문화원이 주관한 축제로 성과가 컸다. 안동문화원이 부각되는 효과를 낳기도 해 보람을 느낀다. 향후 젊은 층을 축제에 적극 끌어들여 질적 성장을 도모할 참이다.” 안동의 문화답사 때 놓치지 않고 찾아보길 바라는 명소를 꼽아달라. “도산서원을 찾아가 사당에서 절을 하는 걸로 퇴계 선생을 뵙고 그 정신을 담아오면 좋겠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월영교에서는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보길 바라고. 이 둘만으로도 안동이 오래가는 기억으로 남을 게 틀림없다.” 그는 안동만의 먹거리를 추천하기도 했다. 500년 전통의 종가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수운잡방 체험관’을 통해 음식의 낙원을 경험하라는 것.
- 2023-07-0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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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김광석 뮤지컬 ‘그날들’ 10주년… 7월 문화소식
- ●Exhibition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 일정 8월 15일까지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1인당 수산물 소비량 세계 1위의 한국. 그중에서도 조기·명태·멸치와 조명치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어류라고 할 수 있다.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은 조명치가 지닌 문화적·역사적 의미를 찾고, 바다에서의 조명치 잡기부터 가공과 유통·판매, 밥상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오랜 기간 해양문화를 조사 연구해온 김창일 학예연구사가 전시의 기획을 맡았으며, 170여 점의 전시품이 소개됐다. ‘규합총서’, ‘자산어보’ 등의 옛 문헌들, 그물 같은 어업 도구와 용품들, 어시장과 어물전, 위판과 파시 등을 만날 수 있다. 국내에서 최초 공개된 1940년대 촬영한 명태 관련 영상과 바다에서 들리는 조기의 울음소리 등 다양한 시청각 자료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관객은 전시를 즐기다 보면 해양 생태계 문제와 어촌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정숙하고 우아한 전시가 아닌 생업 현장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비린내 가득한 전시로, 삼면이 바다인 해양민족 한국인의 삶과 문화에 대해 관람객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 일정 8월 20일까지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196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많은 화가뿐 아니라 알프레드 히치콕, 마틴 스코세이지 등 영화감독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전시에서는 호퍼의 전 생애에 걸친 회화, 드로잉, 판화 등 160여 점의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 11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대표작은 호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밝힌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재임 기간 백악관 집무실에 걸어두었던 ‘벌리 콥의 집, 사우스 트루로’(1930~1933) 등이다. ●Stage ◇그날들 일정 7월 12일 ~ 9월 3일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연출 장유정 출연 유준상, 이건명, 오만석, 엄기준, 오종혁, 지창욱, 김건우, 영재 등 가수 故 김광석의 명곡들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이 역사적인 10주년을 맞았다. 이야기는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하며, 20년의 세월을 넘나든다. 작품에 담긴 한국적 정서는 전 세대를 사로잡았으며, 누적 관객 55만 명을 돌파했다. 이번 10주년 공연에는 모든 시즌에 출연한 유준상을 비롯해 이전 시즌에서 명연기를 보여줬던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그날들’ 측은 “10년간 끊임없는 애정을 보여준 관객들에 대한 보답으로 최고의 창작진,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역대 최고의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라스트 세션 일정 7월 8일 ~ 9월 10일 장소 대학로 TOM 1관 연출 오경택 출연 신구, 남명렬, 이상윤, 카이 2020년 초연된 연극 ‘라스트 세션’이 세 번째 시즌이자 마지막 공연으로 돌아온다. 초연과 재연 때 프로이트를 연기한 신구와 루이스 역의 이상윤이 이번에도 출연해 유종의 미를 거둔다. 이상윤은 “평소 신구 선생님을 존경했는데, 함께 무대에 서면서 존경을 넘어 사랑하게 됐다”고 전했다. ‘라스트 세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C. S. 루이스가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3일간의 비 일정 7월 25일 ~ 10월 1일 장소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이해랑예술극장 연출 오만석 출연 김주헌, 박정복, 김바다, 이동하, 김찬호, 유현석, 류현경, 하니, 정인지 연극 ‘3일간의 비’가 6년 만에 관객과 만난다. ‘3일간의 비’는 2003 토니상 수상자인 미국의 유명 극작가 리처드 그린버그가 집필한 서정적인 작품이다. 극은 유명 건축가인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일기장을 통해 과거 부모 세대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내용을 담는다. 배우들은 모두 1인 2역을 소화한다. 현재는 1995년이며, 1960년대 과거에서는 부모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것은 물론, 2017년에 이어 배우 오만석이 연출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 2023-07-0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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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여관 하나가 불러들인 매우 긍정적인 파장
- ‘지역 문화유산 순례기’는 한국문화원연합회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다양한 지역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지역N문화는 한국문화원연합회와 지역문화원이 함께 발굴한 다양한 지역 이야기를 서비스하는 지역문화포털입니다. 기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지역N문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보성 사람이 잘라 말한다. “보성군이야말로 남도 여행 1번지이지!” 볼 것도 즐길 것도 먹을 것도 기억에 남을 것도 숱하다는 얘기다. 자세한 내용이야 캐묻지 않아도 알겠다. 주마간산식으로나마 예전에 보성 땅을 훑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풍경도 풍물도 역사도 문화도 개성이 있어 오래가는 여운을 남겨준 게 아닌가. 하오의 해변에 앉아 멍 때리며 바라본 바다에 일렁이던 붉은 윤슬을 잊을 수 없다. 찰나의 잔물결에 불과한 삶의 눈부신 슬픔을 환기시켜 죽비처럼 가슴을 쳤으니. 해서 내겐 그날의 윤슬이 보성 최고의 명장면으로 새겨졌지만, 여행자의 눈과 감성을 일깨우는 이 고장의 명소는 손가락으로 일일이 꼽기가 부족할 지경으로 즐비하다. 오늘은 건축문화유산을 답사할 참이다. 보성여관을 찾아간다. 벌교읍 다운타운 중심지에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5년에 한국인 강활암(姜活岩)이 지은 일본식 목조건물이다. 그 시절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대형 여관이었다. 건물 7채에 방이 13개나 됐다. 요즘으로 치면 5성급 호텔? 이렇게 화려한 여관이 어떤 연유로 남도 끝자락 포구 벌교에 들어서게 됐을까? 당시 벌교는 상업과 교통의 요충이었다. 전남의 4대 도시에 들었다고 하니 기세를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벌교의 번성은 일본인들의 거주와 왕래가 잦은 데에서 비롯됐다. 그들은 육상교통과 해상교통의 접점인 벌교의 지리적 이점을 영리하게 간파했다. 전남 내륙의 곡창에서 긁어모은 양곡을 벌교항을 통해 일본으로 운송했다. 즉 식민지 수탈기지의 한 전형이었다. 하루 20여 차례 화물선이 드나들 정도였으니 가혹한 정황이 훤히 비친다. 여하튼 벌교는 인파가 북적이는 도시였다. ‘본정통’이라 부른 신시가지가 형성됐다. 보성여관이 들어선 시대적 배경이 완연하다. 소설 ‘태백산맥’의 남도여관 그곳 보성여관은 건축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인정받아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후 2012년 복원작업을 통해 옛 모습을 되찾았다. 일본식 건물의 특징인가? 전체적으로 개방적인 느낌을 준다. 건물 전면을 가득 채운 유리문들과, 2층에 줄느런한 창문들이 외부의 햇빛과 거리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덕분에 오밀조밀해서 갑갑해 보일 수 있는 내부 구조에 생기가 돋는다. 주로 직선과 사각의 연쇄로 이어진 공간이라는 점도 우리의 전통 건축과 다른 걸 알 만하다. 가늘고 날렵하게 깎아 세운 사각기둥, 널빤지로 마무리한 벽면과 천장, 다다미방, 중정에 조성한 작은 정원…. 곳곳에서 일본식 작풍이 느껴진다. 독특하기론 원래의 용도대로 지금도 여전히 여관과 찻집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공연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기도 하다. 단순히 관람만 할 수 있는 여느 근대 건축유산과 달리 보성여관은 실제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보성여관은 조정래의 밀리언셀러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남도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조정래는 성장기 한때를 벌교에서 살았다. 벌교의 변천사와 벌교 사람의 희로애락에 밝다. 그래 ‘태백산맥’에 벌교의 지형지물과 풍속과 인물을 끌어들여 리얼하게 묘사하곤 했는데, 보성여관은 그중 한 곳이다. 거장의 소설에 출연한 보성여관의 운세는 별안간 환하게 열려 드라마틱한 상승을 하기에 이르렀다. ‘글 감옥에 갇혀 살면서도 황홀하다’는 조정래의 치열한 문학정신까지 더듬어보게 하는 명소로 부상했으니까. 보성여관만이 아니다. 벌교읍이 통째 ‘태백산맥’의 아우라에 힘입어 활기를 띠게 됐다. 답사객들이 밀려들면서였다. 조정래의 문학 장정과 작품세계를 알아볼 수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이 건립되고, 덩달아 ‘태백산맥 문학기행 코스’도 마련되면서 문예적 공기마저 감도는 곳으로 변했다. 소설 한 편이, 잘 보존된 근대 건축물이, 고즈넉했던 지방 소읍을 생동감 넘치는 문화지구로 바꿔놓은 셈이다. 참 아름다운 숲속의 정자, 열화정 이제 조선 고택을 만나기 위해 강골마을로 접어든다.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에 있다. 강골마을은 원래 바닷가 마을이었다. 마을 뒤편으로는 야트막한 산들이 펼쳐지고, 자연이 연주하는 원초적 선율에 다름 아닌 파도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리던 곳이었다. 그러다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저 멀리로 밀려났다. 하지만 강골마을은 여전히 수려하다. 풍수지리상 길지라고 한다. 그러니 눈 밝은 옛사람들의 정주가 필연이었겠지. 이곳엔 ‘이진래 고택’과 ‘이정래 고택’이 있다. ‘이준회 고택’도 있다. 보성 지역 사대부 가문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구현한 셋 모두 국가지정문화재다. 마을 뒷산 초록 풀숲엔 살포시 감춰진 듯 조붓한 길이 하나 있다. 섬려한 발길을 기다리는 오솔길인가? 바닥에 희고 미끈한 박석들이 깔려 있다. 이윽고 길 끝에서 열화정(悅話亭)이 모습을 드러낸다. 숲속에 묻혀 사는 은자처럼 평온한 정자다. 아름다워 첫눈에 매혹될 수밖에 없는 작은 집이다. 협착한 산골짝에 걸맞은 크기라서 조화롭다. 조선 후기 문신 이진만이 지은 정자로 앞면 4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자연석을 쌓아 올린 기단 위에 사뿐히 올라앉은 정자다. 덤벙 주춧돌 위에 세운 둥근기둥, 누마루와 쪽마루와 툇마루, 기능성을 고려해 배치한 방들, 방과 아궁이를 연결하는 작은 쪽문 등 고수의 배합 솜씨가 능란하다. 숲은 초록 일색이다. 여름으로 가는 나무들이 토하는 저 초록빛 아우성이라니. 실바람 한 뭉텅이에도 서슴없이 설레어 몸을 흔드는 꽃들, 잎사귀들. 식물들의 희열과 자유를 이해할 만하다. 열화정 주인은 이 청산에 묻혀 나무처럼 살고 싶었나? 속세의 탐욕과 광기를 밀어내며? 세상과 절연하고 싶은 심정일 때 의지할 곳은 자연이다. 김현진 보성문화원 원장 ‘막걸리 페스티벌’로 한국을 쩡쩡 울려보겠다! 보성은 예로부터 산·바다·호수를 일컫는 3경(三景)과 의향·예향·다향을 뜻하는 3보향(三寶鄕)의 고장이라 불렸다. 김현진 보성문화원 원장에게 보성의 문화에 관해 이모저모 얘기를 청해 들었다. “먼저 바로잡고 싶은 것이 있다.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에 관해서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인데, 보성 땅 벌교가 마치 주먹으로 위세를 떨치는 이들이 많은 고장인 양 엉뚱한 오해를 초래했다. 팩트는 그게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순사가 벌교장에서 아낙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안규홍 의병장이 일본 순사를 한주먹으로 때려눕힌 사건에서 유래한 말이니까.” 보성은 항일 독립운동을 치열하게 펼친 고장이다. 보성군은 의병장 안규홍의 동상과 ‘황금주먹’ 조형물을 만들어 설치했다. 사실관계를 외부에 알려야 할 필요를 느껴서인 것 같다. 흔히 가치 있는 근대 건축유산들이 속절없이 사라지거나 망가졌다. 반면 보성여관은 원형 훼손 없이 잘 보존됐다. 그 배경이 있다면? “보성 사람들은 일찍부터 보성여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인식하고 소중하게 여겼다. 심지어 개발 바람이 거셌던 새마을운동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2008년 문화재청이 매입해 관리에 나섬으로써 안전한 보존 조건을 확보하게 되었다.” 지자체마다 문화원의 역할도 그만큼 커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문화원의 존재감을 실감하지 못한다. 왜 그렇다고 보나? “아쉬운 대목이다. 문화원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단체지만 혁신에 소홀하다. 침체를 털어내고 이미지를 제고해야 하는데 잘 구현되지 않고 있다. 문화원은 지역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그렇다면 콘텐츠 개발을 통해 그릇을 채워야 하는데 여전히 구습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7년째 보성문화원 원장직을 맡고 있다. 그간 거둔 성과를 소개한다면?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 프로그램을 새롭게 디자인하고자 노력했다. 내심 전국 최고의 문화원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뛰었다. 그러자 성과가 나오더라. 다양한 문화 테마를 설정, 내실 있는 운영을 하자 주민들이 뜨거운 호응을 보내줬다. 보성문화원은 이미 주민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셈이다. 보성문화원을 통해 문화를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주민들이 늘어났다. 청년층의 동참도 적극적이다.” 보성군은 ‘서편제보성소리축제’로 2022년부터 2년 연속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을 받았다. 김 원장은 내년에 흥미로운 축제 하나를 개최할 계획이다. 전국의 모든 막걸리와 국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막걸리 페스티벌’을 열어 ‘한국을 쩡쩡 울려보겠다’는 것.
- 2023-06-0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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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추천하는 국내 역사교훈 여행!
- 비극적인 사건이나 참사가 일어난 장소를 찾아 반성하고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리즘(역사교훈 여행).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주제로 하는 국내 다크 투어 코스를 소개한다. 현충일을 앞두고 가족들과 함께 소개된 코스를 따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항쟁의 역사: 일제강점기 코스① 남산 국치의 길 명동역 1번 출구 ▶ 한국통감관저 터‧기억의 터(현 서울유스호스텔 아래) ▶ 한국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 ▶ 노기신사(리라초교 내 남산원) ▶ 경성신사(숭의여대) ▶ 한양공원 ▶ 조선신궁(한양도성 발굴지) *상당 구간이 언덕길이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는 것도 괜찮다. 코스②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독립문역 5번 출구 ▶ 서대문독립공원 입구 ▶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집(독립문 맞은편) *독립문을 기점으로 왕복하는 코스다. 역사적 사건 순으로 둘러볼 수 있다. 전쟁의 역사: 한국전쟁 코스① 피란수도 부산 유산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임시중앙청(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옛 부산측후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 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등 총 9곳 *하루에 9곳을 전부 들리기 보다는 시간을 오래 두고 다닐 것을 권한다. 코스② DMZ 평화의 길 강화 코스, 김포 코스, 고양 코스, 파주 코스, 연천 코스, 철원 코스, 화천 코스, 양구 코스, 인제 코스, 고성 A‧B 코스 *현재 고성 B 코스는 안전 문제로 한시적 중단 상태다. 【여행 전 확인!】 다크 투어 예절 -경건한 마음으로 임하되, 지나친 엄숙주의에 빠지지 않기 -큰 목소리로 떠들거나 사진 촬영 등 집중하는 분위기를 흩뜨리지 않기 -누군가에게는 생활 터전이므로, 현지 문화와 규범을 존중하기
- 2023-05-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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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젓한 숲속 미술관에서 마음 다듬는 산책을
- 구불구불 거듭 휘어지는 길, 조붓한 찻길을 따라 닻미술관을 찾아간다. 누굴까? 외진 야산 자락에 미술관을 만든 이. 자연에 심취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 대도시 근교도 아니고, 접근도 쉽지 않은 산중에 사립미술관을 열다니. 이는 모험일 수 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쉬우랴. 속된 말로 파리 날릴 수 있다. 하지만 외져서 오히려 호감을 살 수도 있겠다. 도시엔 없는 정적과 고독이,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이곳에 흔하게 있는 게 아닌가. 이윽고 길의 끝에 닿자 닻미술관 푯말이 보인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에 있다. 넓고 훤칠한 정원 안에 미술관이 있다. 정원 안이라 했지만 숲속에 있는 미술관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백마산이라 부르는 야산이 늘어뜨린 치맛자락에 폭신하게 안긴 미술관이다. 미술관의 너른 부지 자체가 산과 정원의 융합으로 이루어져 통째 아늑하다. 청신해서 생동한다. 게다가 계절은 봄. 부지깽이도 꽂아두면 싹이 튼다는 4월의 봄이다. 물오른 나무들의 몸엔 이미 튼 싹눈들. 설레어 곱살스레 하느작거리는 연둣빛 잎사귀들. 희거나 붉거나 노란 꽃들은 작렬하듯 일제히 피어나 날 좀 보소, 아우성친다. 햇볕은 궁금한가? 그것은 유난히 풀꽃들 소담하게 핀 둔덕에 모여 앉아 있다. 풀꽃이 전하는 소식에 귀 기울이는 것 같다. 벌써 후루룩 떨어져 땅바닥에 누운 벚꽃들의 모습은 또 어떻고? 휘황한 장제(葬祭)를 닮아 애절하게 아름답다. 미술관에 왔으나 눈길과 발길은 이렇게 서정적인 정원 풍경에 오래 머문다. 이런 미술관, 아마도 드물지 싶다. 수려한 정원으로 일단 유혹하고 매혹한다. 수목과 화초들이 연출하는 예술과, 숲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이 내는 선율에 씻긴 마음은 샘물 한 바가지 퍼마신 양 개운하다. 나무들에 가려 감춰진 듯 살짝 보이는 입구를 찾아 미술관 본관으로 들어간다. 건물의 양식도 분위기도 이채롭다. 지중해 휴양지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의 집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디귿(ㄷ)자를 닮았다. 건물 복판에 조성한 중정 좌우로 전시관과 카페 공간이 있다. 눈길을 붙잡는 건 역시 중정이다. 중정을 이룬 사물들마다 고풍스런 미감을 돋우고 있다. 고재와 고철로 만든 출입문, 빈티지 타일이 깔린 바닥, 처마를 떠받친 하얀 기둥들, 획일적이지 않은 의자와 탁자들의 낡음과 아름다움…. 한층 독특한 건 중심부에 팔각형 형태로 설치한 연못이다. 아주 작은 연못이라 연못다운 기능성에 착안하기보다 뭔가 상징적인 물웅덩이를 표상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여성성이라거나, 궁극의 자연성을. 중정 뜰에 앉아 만날 수 있는 풍경 중 빼어난 건 하늘의 동향이다. 지붕 없이 확 열린 상부의 사각 프레임으로 파란 하늘과 구름과 햇살이 들이친다. 닻미술관 건물은 이렇게 자연을 향해 열려 있다. 자연을 끌어들인다. 닻미술관은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2010년에 개관했다. 설립자는 사진작가이자 미술관 관장인 주상연. 그는 건축과 정원 조성에 따르는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 그가 미술관 설립에 나선 계기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트 인스튜어트’(Art Institute)에서 공부하면서였다고 한다. 유학을 통한 개안? 그는 국내에 있을 땐 착안하지 못했던 구상을 했다. 예술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일 수 없다는 것.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것. 삶과 예술과 자연, 이 셋의 소통과 유대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간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 이러한 생각을 가슴에 담고 귀국한 그는 마침내 닻미술관을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사진 중심의 예술서적을 작가와 협업해 출간하는 닻프레스도 설립했다. 닻미술관과 닻프레스는 서로 손잡고 동행한다. 닻프레스의 출간 콘텐츠가 곧장 미술관 전시로 이어지면서 확장되는 게 아닌가. 닻프레스의 존재감은 해외에 더 또렷하게 부각됐다고 한다. 억지 꾸밈이 없는 야생정원 주상연 관장에게는 유학 중에 인연을 맺은 예술적 어머니가 있다. 미국의 사진가 린다 코너(Linda Coner)다. 코너는 하늘과 땅, 성과 속, 우주와 인간의 본질에 관한 탐구와 질문을 사진 작업으로 하는 작가로, 주 관장의 삶과 사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미술관 설립의 배경을 이루는 정신적 에너지 역시 코너에게서 얻은 것 같다. 한편 주 관장은 자연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고요한 숲속에 미술관을 지은 걸 보면 이미 알 만한 일이지만, 그는 인생에 자연이 결부돼 있을 때 삶의 더 나은 지평이 열린다고 믿는다. 따라서 사진작가로서, 미술관 운영자로서 자연이 발신하는 언어를 포착한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자연과 예술이 주는 ‘무작위적 친절’이 공기처럼 세상에 미만하길, 그래 저마다의 삶에 창조성과 영성이 깃들길 바라서다. 전시실에선 국내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꼽히는 주명덕의 작품전 ‘풍경, 저 너머’가 펼쳐지고 있다.(6월 18일까지) 80대 고령에 접어든 주명덕은 아직도 암실에 들어박혀 사진 작업을 하는 열정의 화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과속 질주하는 세태에 여전히 아날로그적 사진 작업을 고수하는 것에서도 뚝심과 지향이 드러난다. 평생 한국의 자연과 풍속과 문화유산을 흑백 기록사진에 담은 이유를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문명, 풍요, 공해 같은 개념과 상관없는 한국의 고유한 전통과 특색을 보존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회는 2021년 닻미술관의 기획전 ‘집’과 이어지는 주명덕의 두 번째 사진전이다. 기록사진으로 시작해 예술사진으로 확장된 후반기 작업에 속하는 세 가지 시리즈, 즉 ‘잃어버린 풍경’과 ‘장미’, 그리고 ‘사진 속의 추상’을 함께 엮어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피사체의 사실성을 포착하는 데 능란한 작가가 추상 이미지의 구축에도 유능함을 알려주는 전시회다. 다만 한 획을 쓱 그은 듯 간결한 이미지를 담은 주명덕의 추상사진엔 허무와 초탈이 실려 있다. 리얼리즘으로 도달할 수 없는 깊이와 높이를 보여주고 있으니, 마침내 그의 눈은 세상과 인간의 이면을 그윽하게 관조하나? 대가의 사진은 그렇다면 한 줄의 경전에 맞먹나? 본관 저 뒤편 프레임실에서는 ‘구름의 노래’전이 진행된다. 닻미술관이 소장한 사진작품 가운데 구름을 소재로 한 것들을 골라 걸었다. 구름이라는 이름의 자유로운 나그네를 저마다의 작풍으로 은유한 사진가 12인의 흑백사진이다. 전시실을 나와 다시 정원 숲길을 헐렁헐렁 산책한다. 억지 꾸밈이라곤 없는 야생정원이다. 가꾸는 건 가두는 것이다. 가만히 방목해둔 나무와 풀들은 저리도 무성하다. 스스로 조화를 이룬다. 정원 길 한편에 오두막 한 채 있다. 은자처럼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작은 집은 데이비드 소로가 살았던 월든 호숫가 오두막의 실제 도면에 따라 지었다. 월든을 주제로 한 기획전을 치를 때 만들어 실내에 전시했던 걸 정원으로 옮겨놓았다. 소로는 말했다. ‘나의 직업은 산책가’라고. 산책이 직업? 이보다 좋은 직업이 있나? 대봐라, 더 나은 게 있거들랑. 주상연 닻미술관 관장 “자연과 소통하는 미술관 추구” 닻미술관의 정원은 아름답다. 인위와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정원의 외곽은 야산 그대로를 다듬지 않고 원형 그대로 두어 야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미술관의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주상연 관장은 정원 공간을 전체 콘셉트의 중심에 두고 숙고했던 것 같다. 유학차 미국에 살 때 만들었던 개인 정원에 관한 경험도 되살려 활용했다. 사람 드문 지방의 외진 산자락에 있는 미술관이다. 운영 문제를 고려한다면 아무나 쉽게 나설 여건은 아닌데? “처음엔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산기슭에 이상한 지중해식 건물을 짓고 들어선 미술관이라니, 이게 왜 여기에 있을까? 그런 의아심을 표시했다. 초기 수년간은 관람 인원도 극히 드물었다. 내가 산속에서 지금 뭐하고 있지? 이런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운영에 관한 어떤 전략적 대안을 가지고 개관한 게 아니라 힘든 점이 많았다. 다만 꾸준히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확신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리가 잡혔다. 서서히 팬이 생기고 조력자들이 늘더라.” 닻미술관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불러들인다고 보나? “예술과 정원과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라는 점이 포인트라 생각한다. 보통 미술관은 화이트 큐브를 구성하지만 우리는 빛과 공기가 드나드는 건물을 지었다. 이 역시 장점이다. 자연과 소통하는 미술관이라는 게 관람객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미술관들은 대부분 악전고투를 했다. 닻미술관은 여기에서 예외였단다. 팬데믹 국면에 오히려 방문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 바이러스조차 침투할 수 없는 숲속 미술관이라는 안전성이 거둔 뜻밖의 성과였다. 사진 전성시대랄까, 요즘은 남녀노소 누구나,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이들도 많아졌다.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풍속이지 않을까? “사진을 쉽고 친숙한 매체로 대하는 현상은 긍정적이다. 반면 사진에 관한 인식이 얕아지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정말 좋은 사진을 만날 기회가 오히려 적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나 대중이나 디지털 사진에 편중된 점도 문제다. 해외에선 다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니까.” 현재 진행 중인 주명덕 사진전에 나온 추상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재능과 내공이 느껴져서. “주명덕 선생이 그저 전통가옥이나 풍경을 찍는 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한결 다층적인 작품 세계를 구현해왔다. 기록사진에서 더 깊이 들어간 관념적 사진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동양철학적 지향을 가진 걸로 보인다. 나에게는 큰 스승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가 말했다. ‘뜻을 얻으면 말을 버린다!’ 선가의 법어 같지 않나?” 당신 역시 사진작가다. 어떤 작품 세계를 추구하지? “자연에 대한 경외감, 영성에 관한 생각, 시간과 공간에 관한 성찰 등을 테마로 삼는다. 늘 잊지 않는 건, 예술의 치유력이 삶과 정신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고.”
- 2023-05-2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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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보다 관심, 역사 새기는 해외의 다크 투어리즘
-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뉴욕 911 메모리얼파크, 체르노빌 원전사고 지역 등은 연간 수백만 명이 다녀가는 세계적인 명소다. 같은 장소라도 눈으로만 보는 관광에 치중하기보다는 비극의 역사를 조명하고 마음에 되새긴다면 다크 투어리즘의 교훈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우리 역사와 연관됐거나 인접한 지역이라면 그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난다. 이에 착안한 해외 다크 투어리즘 스폿 두 곳을 소개한다. [1] 독일: 베를린, 분단의 아픔을 기억하다 분단의 상처를 지녔다는 점에서 독일은 한국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그런 독일의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조물이 바로 ‘베를린 장벽’이다. 이 베를린 장벽 동쪽에 조성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는 1990년 전 세계 예술가들이 참여한 100여 점의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얼핏 보면 장난스러운 그림들 같지만 저마다 아픔과 희망, 평화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관광객들은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그림 속 포즈를 따라 하는 등(특히 ‘형제의 키스’가 유명하다) 야외 갤러리를 즐긴다. 다만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반달리즘의 영향도 적지 않아, 2009년부터는 복원과 보존을 위한 작업을 병행 중이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 멀지 않은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에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유대인 대학살 추모공원)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 600만 명을 기리는 공간으로, 추모의 의미로 각기 다른 높이의 콘크리트 비석 2700여 개를 조성했다. 미로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비석 위에 걸터앉거나 눕는 등 자유로운 모습이다. 경건함과는 거리가 먼 행동으로 보이지만, 오랜 시간 머물며 역사를 되새기게끔 몇몇 비석의 단을 의도적으로 낮췄다고 한다. 때문에 (무덤도 아닐뿐더러) 에티켓에는 어긋나지 않는다고. 그밖에도 독일은 ‘발길 닿는 곳곳이 다크 투어리즘 스폿’이라 할 정도로, 거리마다 역사를 기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소가 즐비하다. [2] 일본: 나가사키, 원폭의 잔해로부터 참상과 마주하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는 핵무기가 폭발한 지점이나 피복 중심지를 뜻하는 용어다. 최근에는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를 일컫기도 한다. 그러나 ‘그라운드 제로’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원폭) 피복 지점을 가리키면서였다. 당시 1945년 8월 12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일본은 9월 2일 정식 항복했다. 전쟁은 종료됐지만, 원폭으로 인한 고통과 상흔은 오래 남았다. 그 참상을 기록하고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 바로 나가사키 원폭낙하중심지공원과 평화공원 그리고 원폭자료관이다. 원폭낙하중심지공원 한쪽에는 피복 당시 지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고열로 녹아내린 유리병이나 식기 등이 눈에 띈다. 인근 원폭자료관에는 폭격 당시 피해를 실감케 하는 자료들이 보관돼 있다. 공원과 자료관 사이에는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도 보인다. 당시 사망한 조선인은 1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낙하중심지의 북쪽 언덕에는 평화공원이 조성됐다. 전쟁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세계 평화를 위한 소망이 담겼다. 한편 한국인으로서는 원폭을 계기로 해방과 독립을 맞았기에, 참상의 잔해를 마주할 때 마음이 불편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을 잘 소화하고 곱씹어보는 과정도 중요하다.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가슴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시공간을 넘어 다크 투어리즘이 주는 교훈이다. 유형별 해외 다크 투어리즘 스폿 ㆍ전쟁 일본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미국 게티즈버그 국립군사공원, 베트남전쟁박물관, 태국 칸차나부리 국립묘지, 하와이 USS 애리조나 국립기념관 등 ㆍ항쟁·학살 체코 바츨라프 광장, 사이판 만세절벽, 캄보디아 투올슬랭 대학살박물관, 중국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 아르메니아 인종학살추모관 등 ㆍ노동 역사 세네갈 고레섬, 노르웨이 산업노동자박물관, 영국 셀라필드 원자력단지, 프랑스 노르파드칼레 광산,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소금광산 등 ㆍ재난·재해 일본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파크,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사고 지역, 미국 시애틀 언더그라운드 투어, 아일랜드 타이타닉 벨파스트 박물관 등 ㆍ격리·수용 싱가포르 창이교도소와 박물관, 미국 알카트라즈 감옥, 인도 바라나시 화장터, 호주 교도소 유적, 남아프리카공화국 로벤섬 등
- 2023-05-10 0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