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나이 쯤 되면 세월이 정말 빠르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금방 월요일이었는데 또 벌써 주말이라거나, 달이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다 갔다는 식의 얘기이다. 마음은 아직 젊은데 잠깐 사이에 나이도 많이 먹었고 백발이 되어 어느덧 노인이 되었다는 얘기도 한다. 나이에 따라 시속이 빨라진다니 맞는 얘기인 것 같다.
필자 스케줄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원래 정해져 있는 편이다. 월요일, 수요일은 댄스 동호인들끼리 댄스를 즐기고 화요일은 노래 교실에 나간다. 토요일은 장애인 댄스 지도와 연습을 한다. 목요일와 금요일은 비워두고 있으나 대부분 사적인 모임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금년 들어 고정적으로 목요일은 만나서 책 하나를 만드는 작업을 맡았다. 금요일은 내가 가르치는 댄스 동아리에서 회원들에게 댄스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온전히 비어 있는 요일은 일요일뿐이다. 일요일에는 주로 산에 간다. 요즘처럼 계절이 좋으면 꽃과 바람이 유혹하니 집에 눌러 있을 수가 없다.
스케줄대로만 움직이면 바쁠 것도 없는데 문제는 스케줄이 겹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선순위에 따라 기존 스케줄을 포기하거나 조정해야 한다. 수요일은 별 일 없으면 저녁에 동호인들과 댄스를 하러가는데 오후 시간에 걷기 모임이 생겼다. 서너 시간 걷고 허기졌으니 뒤풀이를 한다. 식사만 하고 일어날 수도 있지만 대부분 막걸리를 곁들이다 보면 댄스하러 가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 막걸리를 안 마시고 댄스를 하러 갈 수도 있지만, 이미 운동량이 충분한데다 땀 냄새 밴 채로 파트너와 춤을 춘다는 것도 무리이다. 그러다 보니 댄스 학원에 결석이 잦다며 원성을 듣는다. 어쩔 수 없다.
그 다음으로 만만한 요일이 월요일이다. 역시 댄스하러 가는 날이다. 다른 요일이 꽉 찼으니 새로 생기는 스케줄은 월요일로 하다 보니 월요일마저 결석하는 일이 잦다.
화요일 노래 교실은 웬만하면 안 빠지려고 노력한다. 결석하면 그날 배우는 새 노래를 못 배우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입 꾹 다물고 살다가 소리 내어 노래를 불러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다. 새 노래야 안 배워도 그만이지만 여기 뒤풀이도 무시 못 한다. 10년 이상 유지해온 모임이라 우선순위를 높게 둔다.
토요일 장애인 댄스 강습도 결석하기 어렵다. 나를 기다리는 장애인이 있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각종 경기 대회에 나가려면 둘이 연습도 많이 해야 한다.
그날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오면 영화에 빠져 든다. 영화 채널을 10개 정도 계약해서 채널을 돌리다가 시작하는 시간이 우연히 맞으면서 취향에 맞는 영화를 고른다. 좋은 영화가 이어지면 하룻밤에 3편도 본다. 당연히 수면 부족 현상이 생긴다. 건강에 지장을 주기도 하지만 가끔 불면증이 와서 뒤척거리던 생각을 하면 차라리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굉장히 바쁜 것 같지만 댄스, 노래 등은 저녁시간이고 걷기, 책 만들기 작업, 댄스 강의는 오후시간이다. 오전 시간은 온전하기 때문에 그때 글을 쓴다. 늦게 자기도 하지만, 원래 아침잠이 많아 느긋하게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 커피 한잔 마시고 머리를 맑게 하면, 오전에 글 한편은 쓸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나이가 60대 중반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좋은 시기를 만끽하고 살아야 후회 없는 여생이 될 것 같다.
여름휴가철이 돌아오면 대개는 낭만적인 일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필자는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사건 하나가 툭 하고 마음에서 일어난다. 지금부터 43년 전 일이나 필자 ‘기억의 창고’에서는 조금도 스러지지 않은 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대학 3학년 때 일이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느라 학교생활은 늘 따분했다. 대학 캠퍼스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고, 사회는 우리에게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빈번하게 이어지는 데모와 휴교는 더욱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마음을 모아 여름방학에 경포대로 가기로 했다. 말이 나온 후부터 이미 마음은 바다로 가 있었다. 당시 필자가 탄 기차는 정말 느렸다. 그래도 동해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조금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바다 앞에 서는 순간 가슴이 확 펴지는 듯한 해방감이 들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대천에는 두어 번 갔지만 바닷물 색깔부터 달랐다.
한참을 눈으로 감상하다가 환상적 물색깔이 보내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물로 들어갔다. 세 명의 친구가 모두 수영할 줄 몰랐기에 유끼(물 위에 뜨는 돗자리 같은 것)을 띄우고 그 위에 올라앉아 한껏 기분 좋게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유끼가 뒤집어졌다. 누군가 장난을 친 것이다. 셋은 각자 영문도 모른 채 물 밖으로 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그러나 아무리 발을 흔들어 봐도 발에 걸리는 것은 까마득한 물뿐이었다. 계속 허우적대며 실오기라도 잡으려는 노력은 허사였다. 이제는 기운도 빠지고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순간 손에 잡히는 게 있었다. 유끼였다. 버둥대며 간신히 그 위에 올라앉은 순간 다른 친구 한 명이 이미 그 위에 누워 눈도 뜨지 못했다. 그리고 곧 이어 다른 친구도 올라왔다. 지쳐서 말할 힘도 없었다. 알고 보니 장난을 쳤던 사람이 필자 일행이 모두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걸 보고 겁이 났던 모양이다. 유끼를 필자 일행이 허둥대는 곳으로 밀어놓고 모두 올라온 후 백사장 가까이 끌어다 놓고는 어디론가 도망갔다.
같이 갔던 일행 중 다른 두 명은 설악산으로 가려던 계획이어서 바다에는 들어가지 않고 백사장에서 바다를 보며 얘기하는 것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친구들도 처음에는 우리가 장난하는 줄만 알았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다 여겨 바다 가까이로 왔는데 그제서야 사태를 알게 됐다. 그날 셋은 병이 나서 밤새 고생하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왔다. 피서.. 바다.. 가슴 부풀게 하는 이 단어가 한순간에 지옥 같은 기억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장난질에 죽음을 생각하는 데까지 갔었다.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고, 항의 한 번 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마음에 쌓인 두려운 기억만 남았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연못에 있던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사건이었다.
줄담배를 피웠던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금연을 시작하였다. 금단현상이 너무 심하여 수많은 중단위기를 맞았으나, 17년 동안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다. 이제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유혹을 다 뿌리치고 금연에 성공하였다.
한여름 더위에 가벼운 차림으로 산에 올랐다. 중간에서 친구와 간식을 들면서 쉬고 있었다. “산에서 담배를 피우면 되는 거예요?” 누구인가 소리쳤다. 주위를 살폈더니 또래 등산객이 조금쯤 흥분한 상태였다.
“담배를 피우다니요?” 반문했더니, “담배냄새가 엄청 나는데요.” 또 들이밀었다. 담배냄새가 났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금연 중 ‘담배냄새’ 금단현상에 매우 시달렸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담배골초였으나 휴일 하루만은 피우지 않았다. 1999년 2월 첫 휴일, 산에서 만난 등산객과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웠다. 월요일 출근하였더니, 큰 사무실에서 생담배 타는 냄새 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악취가 내 코에서 진동하였다. 머리가 아프고 헛구역질이 났다.
금연경험자로부터 ‘금단현상’의 한 형태라는 말을 들었다. 손 떨림, 체중증가, 우울 등은 종종 들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고통스러운 금단현상이 악취, 기억력감퇴, 꿈 3가지 형태로 찾아왔다.
악취가 몇 개월간 너무나 심하여 금연중단의 유혹을 수 없이 느꼈다. “금단현상의 강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낮아지지만, 담배를 한 대만 피워도 다시 처음처럼 강해진다.”고 하였다. 수시로 코를 헹구면서 지독한 악취를 이겨냈다.
제일 큰 문제가 기억력 일시 감퇴현상이었다. 폐인이 될 것 같은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생각 끝에 기억력 이상 유무를 테스트하려고 2개의 국가자격시험에 도전하였다. 읽고, 쓰고, 외우면서 기억력 회복에 힘을 기울였다. 다행히 합격의 영광을 안고 금연을 계속하는데 자신감을 가졌다.
꿈에서 담배를 피우는 현상이 제일 오래 갔다. 아주 맛있게 담배를 피우다가 벌떡 잠에서 깨어나 가슴을 쓸어내리곤 하였다. “내 의지력이 이것뿐인가?” 담배가 완전히 꿈에서 사라진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17년 금연 작전은 막을 내렸다. 신진대사가 잘되고 건강해져서 좋다. 깨끗한 시니어가 되어서 좋다. 무엇보다 손주들과 뒹굴고 놀아도 냄새나지 않아서 좋다. 우연히 찾아 온 금연기회를 끝까지 지켜낸 금연성공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필자는 남양주시 퇴계원에 살고 있다. 구리시와 서울시가 만나는 꼭지점으로 앞에는 용암천이 뒤에는 불암산 수락산등이 병풍처럼 펄쳐져 있다. 오랜 세월을 미국에서 살다 보니 복잡한 도심이 싫어 안주한 곳이다. 올해 초 이사를 와서 이곳 저곳 주변을 돌다 보니 가까운 곳에 별내라는 신도시가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보니 엄청나게 변해져 있는 모습으로 낯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꼼짝없이 집에만 있던 필자는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멋진 건물로 잘 지어진 주민 센터를 발견했다.
건물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현수막에는 작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차를 세우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수강생모집이었다.
그 길로 센터로 들어가 이것 저것 질문을 하고 시설물들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그 옛날과 달라진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주민들의 건강과 지적 향상을 위한 재능기부 교육들이 다양한 혜택으로 저렴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 되어있었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필자에게 각양각색의 수업들이 총천연색으로 유혹을 했다. 우선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과목씩을 선택해보았다.
그 동안 해보지 못한 것들. 관심이 있던 것들로 우선순위를 두며 시간을 채워 나갔다. 다시 시작한 고국의 멈춘 시간들이 필자를 자극시켰다. 오랜 시간 동안의 육체노동과 시니어에 입문으로 안주했던 마음들에 햇살이 비추며 살랑살랑 설레 이기를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양로보건센터라는 곳이 있어 65세 이상의 시니어들은 아침 9시부터 센터의 계획에 맞춰 하루가 시작된다. 필자는 아직 적령기도 아니었지만 일하기에 바빠 근처도 갈수가 없었다. 그곳은 하루의 일정이 누군가에 의해 짜여져서 물레방아처럼 돌아간다.
자기가 하고 싶은, 관심 있는 분야에서 남은 정열을 다하는 모습은 충분히 멋지고 아름답기만 하다. 저렴한 수강료에 자신이 부지런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시니어들의 하루는 일주일은 그리고 시간들은 바쁘기만 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부여된 얼마나 고급화된 고국의 복지 정책의 모습들에 감탄을 했다. 결코 선진국의 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제 전세계 어디에나 정신 건강 육체건강은 결코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 없는 인생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그때마다 알고도 모르고도 순식간에 지나쳐 갈 때가 있다. 이제 남은 시간 속에서 남아있는 기회를 기다리기 보다는 주어진 삶 속에서 열정과 함께 직접 찾아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기회가 우리를 기다리며 주변에 널려져 있다.
필자도 여러 기회를 찾아 지루하던 고국생활의 하루가 벅차기만 하다.
정열과 환희가 넘치는 섬 필리핀 보라카이 섬을 다녀왔다. 눈부신 햇살, 블루레몬에이드 같은 바다, 먹어도 먹어 도 물리지 않는 망고쥬스. 우리가 꿈꾸는 홀리데이 그 이상을 채워줄 보라카이를 소개해 본다.
필리핀은 총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다도해 국가로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섬을 자랑한다. 그 중에 800여 개의 섬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때 묻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가졌다. 특히에메랄드 빛 바다는 필리핀 바다의 상징이다.
필리핀은 크게 3지역으로 나눈다. 북부지방인 루손에는 수도 마닐라가 있어 경제의 중심지고, 남부지방인 민다나오는 불안한 정치로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며, 중부지방인 비사야스는 휴양의 중심지인 보라카이와 세부 팔라완이 있는 곳이다. 필리핀은 지방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보라카이에서는 아클란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보라카이 섬! 말로만 듣던 환상의 섬을 가기 위해 현지 공항에서 내리던 순간 필자는 혼란스러워졌다. 공항이 국의 조그만 기차역만큼이나 협소하고 정리돼 있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입국 차도 허술하면서도 무척이나 까다로왔다. 더구나 면세품에 대한 절차가 쓸데없이 엄격해 걸리기만 하면 폭탄 요금을 맞게 된다. 단단히 한몫 챙기려는 술수가 나의 환상여행 첫인상을 장식하고 말았다.
지저분한 공항을 나서자 숨이 막히도록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를 따라 승용차를 타고 섬으로 향한 1시간 20분 동안 편도 1차선으로 이어지는 시가지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빌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양쪽 길가로 늘어서 있는 주민들의 옷은 볼품 없었다.
질서 없이 오가는 오토바이 삼륜차가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굉음소리도 전율을 느끼기 충분했다. 정신없이 15분 가량을 혼란 속으로 달리다 보면 어느새 제3의 세상 여행객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곳은 바로 옆 블록 이었다. 호텔 앞에 다 달았을 때는 앞서가는 선진국이었다.
진입로에 펼쳐진 원주민의 고된 삶과 이방인들의 부로 형성된 환상의 세계는 그야 말로 묘한 힐링을 선사해주었다.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와 끝이 없이 이어진 백사장, 길게 늘어서 있는 키가 큰 야자수, 문만 열면 쏟아지는 에어콘의 시원함, 설탕가루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화이트 비치…. 천국이 따로 없었다.아침에는 멋진 부페조식과 숙소 바로 앞에 펼쳐진 수영장에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낮에는 맛사지 천국의 각종의 서비스로, 초저녁엔 붉게 물드는 석양과 함께 하는 신나는 뱃놀이와 스쿠버 다이빙이 이어진다. 하늘과 바다를 모두 내것 처럼 맘껏 소유한다. 그리고 육지의 밤에 펼쳐지는 불타는 젊음의 마당에 앉아 그 유명한 산미구엘 맥주 한 모금은 반복되는 일상을 탈출하기에 아주 충분했다.
길게 이어지는 화이트 비치 해변가 주변에는 각종의 현지 식 먹거리들이 즐비해 있고 감동으로 버글 대는 사람들이 미어 터진다. 지상낙원의 섬에서 맛보는 다양한 요리들, 더구나 우리나라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밤의 시작부터 깊어질수록 쿵쿵대는 음악소리, 젊음과 낭만이 출렁대는 심장의 소리들이 특별한 추억으로 낮과 밤의 두 얼굴 되어 총천연색으로 해변을 수놓는다.
특히 맛사지를 좋아하는 필자는 전 일정 내내 각종의 스파 서비스를 받았다. 천차만별의 스파가 화려하게 또는 고풍스럽게 전세계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열심히 달려온 우리 시니어 들에게는 환상의 보답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여행은 선호한다. 모든 게 만사 귀찮을 때는 여행의 참 맛을 느끼는 것도 인생을 사는 한 방법일 것이다. 다 안정된 다음에 라고 하지만 우리 삶에는 안정이란 영원히 오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다리 떨리지 않을 때 그저 심장이 떨릴 때 그때, 떠나라고 한다. 더 늦기 전 어느 날에 훌쩍 떠나 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할까? 이글거리는 자연 아래 조금 타면 어떠랴. 젊음이 들끓는 곳에서 그들과 함께 잠시라도 동행 하는 것, 어차피 삶의 주어진 시간 속에 무거웠던 몸을 맡기고 맛사지 받으며 둥둥 떠보는 것도 시니어 들의 멋진 일상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모든 일정을 끝내었다.
다시 검은 얼굴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현지인들의 빈곤함을 거쳐 공항으로 향했다. 세상에는 빈부가 함께 공존한다는 진리를 깨달으며 그 또한 삶의 일부이기에 거부할 수 없는 다른 매력을 느끼며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새삼 느끼는 천국의 행복 대한민국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그 옛날에 초가집이 아닌 고급스러운 저택 같은 곳, 세계 1위인 우리나라 공항이었다. 새삼 깊은 감사와 안도를 느꼈다. 필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서서히 커튼이 오르자 무대 중앙에 커다란 붉은 꽃이 수 놓인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서 있다. 무대 양옆의 삼 층으로 된 발코니에는 총을 든 병사가 장총을 들고 있다. 긴박한 음악 속에 구령 소리가 나면서 일제히 총구를 그에 맞추고 곧 총성이 울린다. 그리고는 곧바로 신나는 음악에 맞춘 캉캉 춤이 난무하는 물랭루주의 화려한 쇼가 펼쳐진다.
뮤지컬 ‘마타하리’는 여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는 첫 시작으로 장면전환이 되는데 무대 회전도 빠르게 펼쳐지고 화려한 배우들의 움직임이 관객을 몰입하기 충분했다.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아들이 공연 티켓을 가져왔다. 아들 덕분에 국내에서 펼쳐진 많은 대작을 섭렵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번엔 흥미로운 이중간첩 ‘마타하리’ 공연이다.
남자 주인공은 트리플로 한 배역에 세 명씩 캐스팅됐고 원조 아이돌이었던 핑클의 옥주현이 더블 캐스팅의 여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다. 귀엽고 예쁘기만 한 아이돌에서 이제는 어엿한 중견 뮤지컬 배우가 된 옥주현의 연기가 대견하고 기대됐다.
마타하리, 그 이름은 어딘지 모르게 은밀하고 고혹적인 느낌이 든다. 우리는 마타하리를 뛰어난 용모와 매력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고위층에 접근해 기밀을 빼내는 스파이, 그것도 이중스파이로 결국 프랑스 측에 체포돼 총살당했다고 알고 있다. 아름다운 마타하리는 왜, 어떻게 스파이가 되었을까?
1917년 1차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시끄러웠지만 프랑스의 사교계 물랭루주에는 연일 화려한 쇼와 환락으로 흥청대고 있었다. 마타하리는 물랭루주의 가장 인기 있는 무용수로 신비함과 관능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여자였다. 그는 이국적인 동양 인도의 춤 밸리 댄스로 많은 사람을 잡아 끌며 인기를 끌었다. 자연히 그곳을 찾는 유럽 각국의 고위 장교나 특권층과의 친분이 더해져서 넘나들기 어렵다는 국경을 자유로이 오가며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의 라두 대령이 그를 찾아온다. 팬인 줄만 알았던 그는 마타하리에게 무서운 제안을 한다. 당시 프랑스는 연일 전투에서 패배해 수많은 장병이 전선에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 기밀을 알아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도 아닌 마타하리가 선뜻 응할 리가 없었다. 라두 대령은 그녀의 어두웠던 과거를 팬들이 알면 어쩌겠냐고 협박한다. 부유한 네덜란드 집안의 딸이었던 마타하리, 본명은 ‘마가리타 거트루드 젤’로 친척에게 성폭행당한 후 오히려 유혹했다는 누명을 쓰고 집안에서 쫓겨나 사회의 밑바닥에서 어두운 생활을 했었다. 이후 팜무파탈로 명성을 떨치며 마타하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마타하리는 말레이어로 ‘새벽의 눈동자’라는 뜻이다. 인기가 치솟은 만큼 그 약점으로 어쩔 수 없이 대령의 요청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치명적인 매력을 무기로 독일 장교로부터 비밀 작전을 빼내어 프랑스에 전달해 큰 성과를 이루게 했다. 마타하리는 당시 센 강변에서 우연히 만난 조종사 아르망과 사랑에 빠졌는데 실은 라두 대령이 그를 감시하려고 붙인 부하였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에 가려져 있던 그의 진실 된 모습을 보고 깊은 연민을 느낀 아르망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투철한 군인인 라두 대령도 어쩔 수 없는 마타하리의 매력에 그를 사랑하게 돼 질투를 느끼고 아르망을 독일의 점령지이자 위험지역인 ‘비텔’로 파견한다.
아르망의 소식을 알 수 없어 찾아다니던 그는 부상한 아르망이 비텔의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라두 대령은 아르망이 그를 감시하려고 붙인 부하였다고 폭로하고 그 말을 들은 마타하리는 충격을 받는다.
이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그는 진실을 알기 위해 이미 출입 금지령이 내려진 국경을 가짜서류로 건너 비텔의 병원을 찾아가게 된다. 상처를 입은 그와의 기쁜 재회도 잠시 그로부터 사랑하지만 처음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하며 프랑스로 돌아온다.
그때 독일 장교는 정보가 새나가 작전이 실패한 원인이 마타하리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역공으로 그가 독일에 프랑스 정보를 넘겼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다. 그래서 프랑스에 돌아온 마타하리는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결국 총살로 사라지고 만다.
전쟁 후 영국첩보부에 의하면 마타하리가 독일 측에 정보를 넘겨주었다는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고 한다. 냉혹한 라두 대령의 각본에 스파이가 됐다가 목숨까지 잃은 마타하리의 불꽃 같은 인생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화려한 무대장치는 빠르게 변화했고 주연부터 조연 모두 열과 성을 다한 연기를 펼쳐 참으로 멋진 한 편의 작품을 보여줬다.
넓은 무대지만 필자는 주연의 자리만 보지 않고 옆이나 위쪽의 자리를 지킨 조연배우들에도 눈길을 주며 공연을 즐겼다. 그들도 주연 못지않은 열정으로 작품에 이바지했다는 생각이다.
“목숨을 전부 걸어도 좋으니 내 길은 오직 하나뿐, 사랑하는 그대 품 안에”라고 외치는 정열의 마타하리가 새삼 부럽게 느껴지는 건 언젠가 필자에게도 있었을, 그런 열정이 이미 필자에게선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5월, 집집마다 활짝 피어 올랐던 카네이션 꽃들이 아쉬운 눈빛으로 저만큼 자취를 감추고 그 남은 향내마저 시들어 뒹굴 때쯤이면 부서진 꽃잎들은 흐린 미소로 전해온다. 또다시 6월의 꽃들은 정녕 눈부심이라고 나지막하게 내 귓가에 희망을 담고 속삭여온다.
장하다. 내 딸들아! 그리고 앞으로도 화이팅!
내게는 두 딸이 있다. 그리고 그 딸들은 6월이 되면 한아름의 장미꽃으로 내게 남은 열정을 태워주는 불씨가 된다. 그들이 가져다 주는 행복선물에 나는 고여 드는 눈물로 하늘 우러러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느 부모나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 자식이 잘 되기를 소원하지만 이 서서히 타오르는 계절, 그것들은 분명 그 아름다운 어떤 보석보다 빛나고 귀한 인생의 값진 선물이리라.
우리 가족은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격은 시련의 시간들이 많았다. 나라의 경제위기와 함께 닥쳐온 가정의 몰락, 그 여파의 빈털터리로 도피해야만 했던 이민생활, 어린 나이에 겪어야 했던 이산가족의 아픔, 낯설기 만한 이국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겪어야 만 했던 수많은 고통들, 그 상처들은 피나는 눈물로 파고들어와 뼈 속으로 스미는 칼날이었다. 험난한 절벽아래 낭떠러지 위기의 고통을, 우리는 어쩌다 상봉하는 가족이었지만 그리움의 빛깔로 채워진 가족이라는 힘으로 빛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온몸으로 발버둥을 쳤던가.
다행히도 아이들은 긍정의 힘으로 열심히 잘 버티어 주었고 그 초라하고 가난했던 상처들은 이제 얼룩진 추억으로 남아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그 힘겨웠던 돌덩이 들은 멋진 유학생활로 탈바꿈하여 어엿하고 당당한 여의사들이 되어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다. 이 어찌 더한 빛나는 기쁨이 있으리오.
우리의 삶이 때론 아무리 견디기 힘들다 해도 지독한 고통과 함께 견디어 냈기에 지나고 보면 그래도 견뎌 낼 만했었다고 그리고 참아낸 만큼 또 하나의 찬란한 눈부신 행복으로 우리 곁에 머물러 주기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말이다. 살면서 찾아오는 순간의 기쁨을 또 누릴 수 있기에 그 어떠한 고통도 더 견뎌 나갈 수 있을 것이리라. 또한 그 기쁨 눈물은 기도로써 간절히 갈구했던 부모의 마음이었기에 더 값지게 솟아 날것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말한다. 물 안주고 너무도 잘 자라주었다고 말이다. 어느 어떤 나무가 물 안 먹고 자랄 수 있단 말 인가. 나는 그저 회심의 미소로 답할 뿐이다. 언젠가 시간과 침묵이 말해줄 것을 기대할 뿐이다. 부모와 자식 그 관계가 뭔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언제나 부모는 자식 잘 되기만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고 자식은 이 다음 언젠가 또 부모가 되었을 때 아마도 그 때쯤이면 부모마음 어미마음을 이해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내 생일이 담긴 6월이 찾아오면 두 딸들은 호텔 부폐로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가난해진 어미를 끌고 다니며 명품으로 포장시키고 그 화려한 선물 아름다운 유혹으로 나를 초대 한다. 이제는 나이 들고 시들어진 어미에게 카네이션 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잔잔한 가슴에 불씨를 댕겨준다. 누군가 말했듯이 행복은 누구에게나 자기 안에 웅크리고 앉아 언제고 주인님이 꺼내어 줄 때만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또 나의 그날이 오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행복들을 끄집어 내어 아주 찬란하게 환한 빛으로 말하고 싶다.
다시 찾아온 6월의 눈부신 행복이라고.
그리고 그 강하게 퍼부어대던 낯 설은 소나기의 위기 속에서 훌륭한 꽃으로 피어나준 내 아이들에게 고마움의 박수갈채를 보낸다.
갖가지 향신료를 넣어 만든 인도 요리를 통틀어 커리(curry)라 한다. 인도는 치매 발생률이 낮은 국가로 잘 알려졌는데, 그 일등 공신으로 커리의 주성분인 강황을 꼽는다. 강황에 들어 있는 커큐민이 뇌 속에 쌓여 있는 단백질을 제거하는 효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뇌를 건강하게 하는 향긋한 커리 맛집 ‘나마스테’를 소개한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5월 가족 외식엔 영양 만점 인도 커리
인도에서 시작된 커리는 영국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카레’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해진 음식이다. 채소와 고기를 넣고 뭉근하게 끓여 밥에 얹어 먹는 한국식 카레라이스도 맛있지만, 다양한 재료와 향, 색깔로 입맛을 사로잡는 인도식 커리 맛집을 찾는 이도 늘고 있다. 특히, 중·장년의 치매 예방은 물론 성장기 아이들의 두뇌 발달에도 좋아 가족 외식 메뉴로 즐기기에 알맞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인도 커리 전문점 ‘나마스테(NAMASTE, 인도 인사말이기도 함)’는 30여 가지 커리(1만4000원~1만6500원 선)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채소, 닭고기, 양고기, 소고기, 해산물 등 (돼지고기는 들어가지 않는다) 주재료와 향신료 배합에 따라 어른들이 좋아하는 매콤한 커리부터 아이들이 먹기에 부담 없는 달콤한 커리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나마스테에는 커리 외에도 인도 셰프들이 엄선한 현지 식재료로 만드는 애피타이저와 탄두리(tandoori: 화덕에서 구워낸 요리), 디저트 메뉴 등이 있다.
메뉴 고르기가 어렵다면 런치세트나 디너세트를 추천한다. 런치 코스A(1인 1만3200원)는 그린샐러드, 커리(치킨 마크니와 믹스 베지터블 중 택1), 난 또는 밥, 후르츠 라이타(과일 수제 요거트)로 구성된다. 런치 코스B(1인 1만9800원)는 그린 샐러드, 탄두리치킨, 커리(프론 마크니와 팔락 파니르 중 택1), 난(플레인, 갈릭, 버터 중 택1), 밥, 차 또는 커피를 제공한다. 디너에는 애피타이저나 탄두리, 케밥 등이 어우러진 코스(1인 A-2만8000원, B-3만5000원, C-4만5000원)로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인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빨간 벽에 아기자기한 타일 문양이 어우러진 홀(hall)과 짙은 푸른빛 벽지에 금색 무늬가 돋보이는 룸(room)이 대조를 이룬다. 곳곳에 인도의 상징인 코끼리 장식이 놓여 있다. 조명이 살짝 어둡지만 매장 가운데 놓인 촛불이 은은한 분위기를 더한다. 초 밑에는 초 4~5배 정도 길이의 촛농이 쌓여 마치 얼음기둥처럼 보인다.
보통 여러 명이 주문을 하면 다양한 커리를 시켜 나누어 먹는데, 조금씩 덜어서 맛볼 수 있도록 커리 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낸다. 밥 위에 한꺼번에 부어 먹는 카레라이스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커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커리와 함께 먹는 밥은 3종류가 있다. 한국 쌀로 만든 플레인 라이스(2000원), 인도 쌀로 만든 바스마티 라이스(3500원), 그리고 사프란(saffron)을 넣어 만든 사프란 라이스(5500원)이다. 꽃잎을 말려 만든 고급 향신료인 사프란을 넣은 밥은 노란빛을 띠는데 별미로 즐길 만하다.
한국인은 밥이 익숙하지만, 인도에서는 주로 화덕에 구운 부드럽고 납작한 빵인 ‘난(nan)’을 곁들여 먹는다. 커리에 찍어 먹거나, 탄두리 치킨 등을 싸서 먹기도 한다. 나마스테에는 기본 난(2500원)을 비롯해 버터 난(3000원), 갈릭 난(3500원), 치즈 난(6500원), 나마스테 스페셜 난(5500원, 견과류를 넣어 만든 난)을 판매한다.
밥과 난에 잘 어울리는 인기 커리 메뉴는 신선한 토마토, 크림 허브로 만든 치킨 마크니(1만5500원), 매콤한 맛이 일품인 비프 빈달루(1만6500원), 시금치와 쿼티지 치즈가 들어간 팔락 파니르(1만4500원) 등이다. 식후에는 디저트로 인도식 수제 요거트로 만든 라씨(5500원, 플레인·망고·딸기·키위)나 마살라 차이티(5000원, 시나몬·카더멈·우유를 넣고 끓인 차) 등을 즐기면 이색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52길 5 지하1층 (압구정 로데오역 4번 출구·학동사거리 일지아트홀 근처)
문의 02-549-4667
영업시간 11:00~22:00 (연중무휴)
크로아티아 흐바르(Hvar)는 유명 여행전문잡지에 ‘세계에서 아름다운 섬’으로 자주 손꼽힐 이유가 충분하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자주 찾았던 곳이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인과 일반인의 여행 시각이 뭐가 다를까? 그저 살아생전 찾아가봐야 할 섬이 흐바르다.
이 섬의 아름다움은 그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표현해 낼 수 없다.
진한 라벤더 향기 머금은 스타리 그라드의 골목길
스플리트에서 배를 타고 2시간 거리. 여객선은 2008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흐바르 스타리 그라드(Stari Grad) 섬으로 다가선다.
한눈에도 볼 수 있는 작은 섬이 눈 앞으로 스르르 다가선다. 선착장에 멈춘 거대한 배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내린다.
하선한 관광객과 다시 배를 타고 이 섬을 나가려는 인파로 복잡한 선착장 주변에 라벤더 향기를 가득 담은 난전 두어 개가 펼쳐져 있다. 라벤더의 강한 향기가 코 끝을 ‘훅’ 자극한다. 즉석에서 갈아주는 주스 파는 곳으로 다가간다. 햇살 좋은 섬에서 자란 과일 주스는 맛이 참 좋다. 피자 한쪽을 사서 미처 먹지 못한 ‘아점’도 먹는다. 그러는 사이 북적대던 사람들은 섬 어디론가 흩어져 갔다. 돌아갈 배편을 미리 구입하고 천천히 섬 안으로 발을 옮긴다.
해안 길(riva)을 피해 일부러 민가가 있는 계단으로 올라선다. 해묵은 느낌이 가득한 골목길엔 치즈 빛 담 벽과 반질반질한 돌이 이어진다. 골목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좁은 골목길에서 앙증맞은 숍, 여행사, 호스텔 등의 간판들을 만난다.
강한 향내를 풍기며 유혹하는 라벤더 가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가게는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금발 생머리의 날씬한 판매원을 닮은 듯 예쁘고 현혹적이다. 라벤더 오일, 건제품들은 예뻐서 꼭 사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흐바르에 라벤더 가게가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 이 섬은 ‘라벤더 섬’으로 불릴 만큼 라벤더 재배가 성행한다. 5월이면 온 섬은 라벤더 꽃과 향이 코끝을 간지를 것이다.
수녀가 만드는 알로에 레이스와 하니발 루치치 동상
골목길에서 11세기 베네딕트회 수도원(Benedictine Monastery)을 만난다. 그저 유럽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수도원이다.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지만 이 수도원은 ‘알로에 레이스(Aloe Lacemaking Skill)’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알로에 화분 하나가 놓여 있고 건물에는 레이스 그림을 새긴 팻말이 있다. 유럽 마을마다 흔히 볼 수 있는 레이스 공예지만 흐바르는 색다르다.
크로아티아에는 3가지 서로 다른 레이스 공예 전통이 전해지고 있다. 아드리아해 연안의 파그(Pag) 마을에서 전하는 ‘니들포인트 레이스 공예(Needle Point Lacemaking Skill)’, 크로아티아 북부의 레포글라바(Lepoglava)에 전하는 ‘보빈 레이스 공예(Bobbin Lacemaking Skill)’, 그리고 달마티아(Dalamatia) 연안의 흐바르 섬에서 전승되는 ‘알로에 레이스 공예(Aloe Lacemaking Skill)’다.
‘알로에 레이스’는 흐바르에 거주하는 베네딕트회 수도원의 수녀들만 만든다. 생 알로에 잎의 심에서 나오는 얇은 흰색 실을 이용해 보드지 뒤에서 망이나 다른 패턴을 짠다. 이렇게 완성된 레이스 작품은 흐바르 지방을 상징한다.
이 수도원 앞에는 르네상스기의 위대한 작가인 하니발 루치치(Hanibal Lucic)의 동상이 있다. 15~16세기 크로아티아의 대표적 작가인 하니발 루치치(1485~1553)는 ‘로비냐’ 라는 서사시를 썼다.
멀지 않은 곳에 르네상스의 시인 페타르 헤크토로비치(Petar Hektorovi?, 1487~1572)의 요새와 트브르달리(Tvrdalj) 성의 안내 팻말이 붙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그는 이곳에서 나고 죽었다. 그는 어부의 노래를 수집했고, 기행담 등을 친구와 서신으로 대화를 즐겼다. 그가 기록한 해상 및 동물원 용어들은 크로아티아어 표준 언어에 통합되었다. 요새와 성은 직접 설계했는데 현재는 숙소로 이용되고 있다.
스타리 그라드 랜드마크 스테판 광장엔 그리스 흔적이
골목을 비껴나면 흐바르 타운의 중심지인 넓은 스테판 광장이 얼굴을 내민다. ‘U’자 모양의 항구가 있는 이 광장에는 성 스테판(St. Stephen's) 대성당이 있고 1612년에 지어진 유럽 최초의 시민극장 등 유적지가 몰려 있다. 한눈에 봐도 스타리 그라드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오래된 건물들에선 어김없이 레스토랑, 와인바 등이 성업 중이다. 이 광장은 흐바르에 그리스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으로 아드리아 해안 달마티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스타리 그라드에 처음 사람이 정착한 때는 그리스 시대다. 그리스가 아드리아해까지 영역을 확장한 시기는 고대 시칠리아 시라쿠사(Siracusa)의 독재자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세(재위 BC 405~BC 367)때부터다. 그는 384년, 일리리아인의 도움으로 비스(Vis) 섬을 정복해 첫 번째 식민지를 세웠다. 10년 뒤, 디오니시우스와 동맹을 맺은 에게해의 파로스 섬 거주민들이 섬을 정복해 식민 도시를 건설했다. 현재 남은 요새, 고대 석담, 건물 골조, 돌로 만든 작은 대피소 등이 그리스 시대의 흔적들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토지 구획 체계인 ‘코라(chora)’는 24세기 동안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BC 4세기 중반, 시라쿠사 제국이 몰락했고 BC 5~BC 6세기 경 일리리아인의 독립 공국이 되었다. 일리리아인들은 요새를 재사용하고, 여기에 새로운 요새를 구축하면서 번성했다. 데메트리우스(Demetrius)가 왕이 되어 통치하면서 권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로마인들에 의해 식민지화한다. 그때 파리아(Pharia, Faria)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고, 아우구스투스(Augustus)와 티베리우스(Tiberius) 통치 기간에는 자치도시(municipium)의 지위를 획득했다. 몇몇 로마식 무덤이 만들어지고, 물탱크가 축조되기도 했다. 파리아는 그리스 시대보다는 좀 더 작은 경계로 다시 요새화했다. 이후 12세기에는 기독교 주교의 관할권 아래 있었고, 13세기 중반부터는 베네치아인들에게 정복 당해 1797년까지 정치적인 통제를 당했다. 베네치아 왕국 시대(14~16세기) 때 교통, 군사상 요지로서 번영했다. 15세기부터 교역 중심지 항구로서의 부흥기를 맞이했는데, 당시의 지역명은 캄포 산 스테파니(Campo San Stephani)였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19세기 말, 포도나무 뿌리를 썩게 만드는 필록세라(phylloxera) 병이 돌면서 이 섬의 경제는 흔들거렸다. 많은 농부들이 농지를 포기했고 20세기에는 이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포도를 경작하던 남부 마을들은 부분적으로 사라지고, 토지와 도로 대장 체계도 관리 부족으로 명맥만 유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에는 새로운 위협에 맞닥뜨렸다. 집단농장과 농업의 기계화가 그 원인. 그래도 지금은 다시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조금씩 떠난 농부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흐바르 요새는 천국의 자리
흐바르 스타리 그라드의 백미는 흐바르 요새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전망이다. 스페인 요새, 베네치아 요새(Spanjola Fortica, Spanol Fortress)라고 불린다. 스테판 광장에서 북쪽의 산 언덕으로 오르면 된다. 오르는 길목의 모습은 타운과 엇비슷한 골목이다. 돌길을 따라 이어진 주변 화단에는 알로에와 사보텐 선인장이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10여분 걸음 끝에 만나는 요새는 중세 때, 오스만 투르크 족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요새 안 박물관에는 부서진 유적들이 있지만 딱히 볼만한 것은 없다. 대신 앞이 환하게 트인 성벽에서 바라보는 발밑 풍경에 넋이 빠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치를 누군들 반하지 않겠는가? 흐바르 타운과 쪽빛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조망하면서 위치를 가늠해 본다. 흐바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브라치(Bra?)섬과, 비스(Vis) 해협을 사이에 두고 비스와, 코르출라(Kor?ula) 해협을 사이에 두고 코르출라와, 네레트바(Neretva) 해협을 사이에 두고 펠제샤츠(Pelje?ac)섬과 마주 보고 있다. 풍광만으로 흐바르 사랑이 가슴 속 깊숙히 채워지는 곳. 더 이상 말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오를 때 무겁던 발걸음은 몇십 배 가벼워져 하산한다. 다시 선착장을 기점으로 반대편으로 걸어간다. 물 속까지 들여다보이는, 맑은 쪽빛 바다에는 물놀이 즐기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이 울려퍼진다. 생선 굽는 냄새에 코끝을 킁킁대며 굴 전문 식당, 와인숍을 한가하게 기웃거리다가 만난 프란체스코(Franciscan) 수도원. 15세기에 코르출라 출신의 유명 석공 가문이 건설했다고 한다. 바다를 정원 삼은 작은 수도원에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포인트를 주고 있다. 수도원 내부는 박물관으로 이용되는데, 특히 마테오 이그놀리의 ‘최후의 만찬’ 등이 눈여겨 볼 그림들이다. 겨우 하루였지만 흐바르의 눈 시리게 아름다운 풍광과 코끝을 파고드는 라벤더 향기는 아직도 가슴 속에 선연하게 박혀 있다.
TRAVEL TIP!
항공편 크로아티아로 바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일단 유럽의 주요 도시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일 뮌헨,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 헝가리 부다페스트, 슬로베니아 루블라냐,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등의 국제선을 이용해 자그레브 공항으로 갈 수 있다. 근교 도시에서는 버스나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필자는 슬로베니아에서 열차로 이동했다.
배편 스플리트에서 페리를 이용하면 된다. 페리는 스플리트 항구, 타운 버스 터미널 맞은편에서 일반 페리가 매일 3회 출발한다. 쾌속선은 1시간 5분 정도 소요되지만 보편적으로 2시간 정도 예상하면 된다. 단 시기에 따라서 페리 스케줄이 다를 수 있다. 정확한 스케줄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는 게 좋다. 날씨에 따라 출발이 결정되므로 여유있게 여행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여행시기 라벤더가 피어나는 5월과 6월 가장 아름답고 한가롭다. 여름 피서철에는 사람이 많아져서 배편, 숙박 이용하기가 불편해진다.
와인 크로아티아의 2대 와인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남쪽은 적포도주, 스타리 그라드와 젤사 사이 중앙 평원은 백포도주 산지다.
먹거리 해물 스파게티와 신선한 새우요리, 그릴에 구운 생선구이 등 바닷가라서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많다. 바닷가 옆이나 스테판 광장 쪽에 식당이 많으며 아시안 음식점도 있다. 또 골목 속에 박혀 있는, 작은 레스토랑이나 선술집(konoer)들도 많다.
특산물 흐바르는 라벤더의 섬이다. 난전은 물론 골목에 가게들이 있다.
화폐 쿠나(HRK) 전압 220V, 50Hz(공통)
크로아티아 추천 여행 코스 수도 자그레브를 시작해서 플리트비체-시베니크-자다르-트로기르-스플리트-흐바르-두브로브니크 순으로 여행을 즐기면 된다.
여행 유의점 크로아티아는 한국인이 가보고 싶은 여행지 1위란다. 현지에서도 한국인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크로아티아 일부에서는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짐 값은 당연히 받고 택시기사의 바가지 상흔도 아주 흔하다. 국내 여행사 상품이 여러 군데 나와 있으니 패키지를 이용해도 좋을 듯하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와인을 거품의 유무로 분리하면 거품이 생기지 않는 ‘안정 와인’(still wine)과 거품이 생기는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이 있다. 이산화탄소가 함유되어 잔에 따를 때 거품이 이는 와인을 통틀어서 스파클링 와인 혹은 발포성 와인이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샹파뉴’도 스파클링 와인의 일종이다. 그러나 거품이 난다고 해서 모두 샹파뉴는 아니다.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 스파클링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프랑스의 알사스를 비롯한 일곱개 지역에서 소위 크레망(cremant)이라는 수준급의 스파클링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사용되는 포도 품종에는 차이가 있지만, 방식도 거의 샹파뉴 방식으로 주조된다. 한때는 크레망의 레이블에 ‘샹파뉴 방식으로 주조’라는 문구가 들어가기도 했지만, 샹파뉴 지역 생산자들의 항의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밖에도 스페인의 대표적인 스파클링 와인인 카바(cava)가 있고, 미국·이탈리아·호주 등에서도 여러 종류의 스파클링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니 거품만 난다고 샹파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물론 맛과 향, 즉 질에서도 분명 차이가 있다. 샹파뉴의 섬세하고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꽃과 과일 향은 물론이고 거품의 질(잘고 가늘며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이 좋은 거품이다)에서도 큰 차이가 드러난다. 그리고 샹파뉴가 발효할 때 형성되는 이산화탄소를 병 안에 가두어서 거품을 만드는데, 호주나 미국에서 생산되는 많은 스파클링 와인은 이산화탄소를 주입해서 만들어진다.
파리에서 동쪽으로 약 100km 쯤 떨어진 지역을 샹파뉴(La Champagne)라 부른다.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보르도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샹파뉴는 이 지역의 수도인 랭스(Reims)를 중심으로 에뻬르네(Epernay)와 에(Ay)라는 도시 주변에서 재배된 샤르도네, 피노 누와, 피노 머뉘에, 이 3가지 세빠주와 이 지역의 전통적인 주조방식인 샹파뉴 방식(methode champenoise)으로 주조하고 숙성하여 병입한 스파클링 와인에만 붙일 수 있는 등록된 상표 이름이다. 한때 이브 생로랑(YSL)이 샹파뉴란 이름의 향수를 시판했다가, 샹파뉴 제조업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패해, 결국 YSL(이브 생로랑의 이니셜)로 이름을 바꾼 유명한 일화도 있다. 그만큼 상파뉴의 상표 가치는 대단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생일 등에 흔히 마시는 플라스틱 마개로 된 소위 우리식 ‘샴페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샹파뉴가 아니며 질적인 면에서 아주 형편없는, 그냥 스파클링 와인에 불과하다. 참고로 샹파뉴는 프랑스어이고, 샴페인은 영어식 표기다.
사실보다는 신화에 가까운 일화지만, 샹파뉴는 17세기 랭스 부근 오빌리에(Hautvillier)란 조그만 마을의 수도사이자 와인 주조자였던 돔 페리뇽(Dom Perignon)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딴 돔 페리뇽이 최상급 샹파뉴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샹파뉴는 누가 뭐래도 기쁨과 축제의 상징이다. 탄생과 승리는 물론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샹파뉴다. 옛날에는 ‘왕들의 와인’이었다가, 지금은 ‘와인의 왕’이 되어 세계적으로 그 명성을 누리고 있다. 약 300헥타르의 면적에서 연간 3억 병 정도 생산되는 샹파뉴 한 병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포도의 양은 약 1.2kg이며, 원자재인 포도 값도 다른 지역이 보통 kg당 1유로를 조금 넘는 데 비해 샹파뉴에서는 7유로 정도로 고가다. 역시 제대로 된 축제나 파티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값을 치러야 하나 보다.
전 세계에서 매 초마다 10병의 샹파뉴가 터진다고 한다. 잔 안에서 쉼 없이 솟아오르는 잘고 섬세한 거품은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귀를 간지럽게 하는 그 소리는 모래사장 위로 파도가 스치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축제의 술인 것만은 분명하다.
현재 샹파뉴는 204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2007년 생산량은 3억3870만 병이나 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45억유로(6조8000억원 정도)이며, 그중 반이 수출에서 이루어진다. 마시는 사람들의 기쁨과 축하의 자리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상품이기도 하지만, 샹파뉴 지역과 프랑스의 경제를 위해서도 크게 기여하는 효자 제품임에 틀림없다.
샹파뉴는 빈티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샹파뉴 지역은 프랑스 와인 산지 중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가 한랭한 편이라 같은 해 생산한 포도로만 주조하기가 어려워, 여러 해 여러 떼루아에서 생산된 와인을 블랜딩하여 주조하기에 빈티지가 없는 것이 주를 이룬다. 기후 조건이 특별히 양호한 해에만 주조가 가능한 빈티지 샹파뉴는 10년에 평균 두 번 꼴로 나온다.
그리고 샹파뉴는 화이트와 로제가 있으며, 당도에 따라 잔여당분 0g인 부뤼트 나튀르(Brut nature)에서 잔여당분 50g 이상인 두(doux)까지 있다. 빈티지 없는 샹파뉴는 8도, 빈티지 있는 것은 10도, 그리고 오래된 빈티지 샹파뉴는 12도 정도에서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또 한 가지, 샹파뉴를 딸 때는 병목을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하면 안 된다. 자칫 사람에게로 코르크가 튀어나가고 원치 않는 샹파뉴 세례를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사전조치다. 묶인 쇠줄을 풀어 그대로 코르크 위에 씌워 놓은 채, 병을 약간 기울인 상태에서 코르크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병을 돌린다. 즉 (오른손잡이일 경우) 왼손으로 코르크를 단단히 쥐고, 오른손으로 병을 돌린다는 얘기다. 그리고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천천히 코르크를 뽑아(약간의 연습이 필요하지만) 가스가 ‘피식’ 하고 새어나가게 한 후, 가능하면 소리가 거의 없이 여는 것이 샹파뉴를 따는 최고의 예의이고 멋이다. 샹파뉴 병을 열심히 흔들어 승리자의 머리 위로 거품을 마구 뿜어내는 행위는 특별한 세리머니일 뿐이다.
샹파뉴가 축제와 유혹의 술인 만큼 많은 일화가 전해온다. 대단한 샹파뉴의 애호가로 목욕도 샹파뉴로 했다는 루이 15세(Louis XV)의 애첩 퐁파두르(Madame de Pompardour) 부인은 “아무리 마셔도 여성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는 유일한 술”이라 극찬했다. 그녀의 샹파뉴에 대한 남다른 애정 때문인지, 처음으로 만든 샹파뉴 잔은 그녀의 젖가슴에서 주물을 뜬 것이란 소문이 돌 정도였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가슴은 그리 풍만하지 않았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카사노바나 돈 주앙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도 샹파뉴가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넘치는 개인적 매력을 폄하할 의도는 없지만, 유럽 귀족 여성들의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하고, 작업을 거는 데 샹파뉴보다 더 적절한 수단은 없었다고 한다. 이는 지금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 장 홍 (張洪)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