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아 대선 주자들이 부동산 대책⋅연금⋅노동 개혁 등 각자 공약을 내놓고 있다.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자 한국 사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면서 정책 경쟁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여러 후보가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관련 정책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경선 초기라 구체적인 정책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지만 전체적으로 노인 복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모습이다.
여권 유력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환적 공정 성장’을 대선 제1공약으로 내놓았다. 이 지사는 공정 사회, 미래 과학기술 역량 강화를 강조하며 기후에너지부, 대통령 직속 우주산업전략본부⋅데이터 전담부서 설치 등 정부 체계 개편안도 함께 발표했다. 공정 성장 방안으로 공정거래위원회 강화, 불공정 거래와 악의적 불법행위에 대한 엄중한 징벌 배상, 사회적 대타협을 제시했다.
또 다른 여권 후보 이낙연 전 총리는 5대 핵심 공약에 균형 발전, 문화 강국, 여성 일자리, 정부 혁신, 교육⋅과학 분야 정책을 내세웠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야권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부동산 위주의 정책을 내놓았다. 추 전 장관은 ‘택지조성원가연동제’를, 홍 의원은 ‘쿼터 아파트’ 공약을 발표하며 부동산 가격을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공약을 제시했다.
야권에서 윤희숙 의원은 대선 공약으로 노동 개혁안을 들고 나왔다. 야권의 유력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현재 뚜렷한 정책방향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유승민 전 의원만이 국민연금 개혁안을 꺼내들었으나 노후소득 보장성을 강화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국민연금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정책이었다. 유 의원은 “청년들이 돈만 내고 나중에 연금을 못 받는 일이 없도록 고갈 시점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개혁을 단행하겠다”며 노인 빈곤층에 대해서는 “공정 소득으로 국가가 이 분들의 노후를 책임지겠다”고 설명했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이 내세운 노인 정책을 살펴보면 의료공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치매국가책임제, 노인 일자리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치매등급기준을 완화해 치매의 장기요양보험에 확대 적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노인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고도 밝혔는데, 주로 독거노인에 한정돼 있어 보편성 측면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진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당시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 공약에 대해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을 명시한 점은 돋보였지만 치매노인과 독거노인으로 한정함으로써 선별적 접근방식을 취했다는 점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당선 후 문재인 정부의 노인 복지는 나쁜 점수를 줄 수는 없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복지정책 평가’ 보고서에서 “시장의 반발, 관료의 소극성, 보수진영의 재정안정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포용복지는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는 당선 후 노인 복지를 일부 확대했다. 대표적으로 기초연금 인상을 꼽을 수 있다. 2021년 1월부터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은 모두 30만 원의 기초연금을 받게 됐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유산으로 남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는 그대로 방치돼 인상 효과가 무력한 상황이다.
이는 국민연금 급여가 기초연금의 150%를 넘으면 최대 50%까지 줄게 한 독소조항이다. 올해 기준 국민연금을 70만 원 받으면 기초연금이 7만 원 정도 줄어든다. 2018년 제4차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에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가입기간 연계 폐지를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생계급여 지급 시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다. 하지만 의료급여는 여전히 부양의무자 기준을 따진다. 기초연금 수급 노인이 포함된 부양의무자 가구 외 나머지는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수립 때까지 기준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후퇴했다.
국민연금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을 핵심으로 하는 국민연금 개혁은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2018년 4차 재정추계 당시 ‘제도발전위원회’에서 2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가입자 단체가 보험료 단계적 인상안을 제출했으나 사용자 단체가 반대한다는 의유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기초연금, 부양의무자 기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같은 당면 과제 외에 종합적인 노인 복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재훈 연구위원은 “노후소득, 일자리 보장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며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제도적 지원과 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동산시장이 다시 한번 양도소득세로 출렁이고 있다. 올 6월부터 양도세를 중과하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양도세 완화 이야기가 나왔다. 부동산 소유자가 부동산을 쉽게 팔 수 있는 방법으로 양도세 완화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하지만 당정은 6월부터 양도소득세 중과는 차질 없이 시행할 것이라고 재차 못을 박았다.
부동산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이다. 따라서 부동산시장은 국가의 거대한 경제 정책에 반응하면서 그 모습이 변화한다. 현재 부동산 가격 폭등은 공급 부족과 유동성 과잉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공급이 늘거나 유동성이 줄지 않는다면 부동산 가격 하락은 쉽지 않다. 현재 과잉 유동성이 주식으로 옮겨가고 있지만, 주식으로 발생한 수익이 곧 다시 부동산을 자극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세금 정책은 정부가 부동산시장에 개입하는 대표적인 수단이다. 유동성과 공급의 문제보다 훨씬 단순하며, 대증요법처럼 바로 단기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부동산 세금 정책은 크게 감세 정책과 과세 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근본적으로 시장에 배타적이고 개입 또는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다. 한쪽에서는 부동산 정책이 3~4년이 걸린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2~3개월이 멀다 하고 끊임없는 부동산 대책을 날짜 넣은 ‘조치’ 형식으로 양산했다. 과연 이러한 문재인 정부에서 양도소득세를 완화할 수 있을까.
양도소득세 완화는 홍남기 부총리가 ‘다주택자 매물 유도’를 언급하면서 불거졌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말하고, 보궐선거나 향후 대선의 승리 전략으로 양도소득세 완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양도소득세 완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양도소득세 완화는 그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가진 자를 더 대우하는 정책이다. 이 정부가 정책 실패로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고 그 폭등을 현금화할 수 있는 편리한 길을 자기 손으로 열어준다면, 문재인 정부를 믿는 지지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문재인 정부에게 부동산 폭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성 지지자들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열린우리당의 붕괴, 호남지지 철회 등 강성 지지층 이반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경선에서도 강성 지지층의 의사가 공천 결과를 좌우했다. 조국 사태, 추미애-윤석열 사태 등에 대한 대처도 그 연장선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양도소득세를 완화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6월 양도소득세를 중과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난해 아파트 증여가 9만1866건으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다. 증여세율은 누진세로 과세표준 1억 원 이하 10%, 1억~5억 원 구간 20%, 5억~10억 원 구간 30%, 10억~30억 원 40%, 30억 원 초과 50%다. 그리고 자녀에게 하는 증여는 5000만 원, 배우자에게 하는 증여는 6억 원까지 공제된다. 현재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약 9억 원이므로, 2억 원 정도의 증여세가 발생한다.
양도소득세는 부동산 전체 가격이 아닌 차익에 대한 과세이므로, 부동산의 시가로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부동산을 매각하고 양도소득세를 차감해 보유한 금원을 추후 증여할 경우, 바로 부동산을 증여한 것보다 세금 관련해서 훨씬 불리할 것이 자명하다. 추후 부동산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면, 증여가 아닌 매각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종부세 확대를 통해 보유도 힘들고, 양도세 강화를 통해 양도도 힘들게 하는 이중의 압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부동산시장의 공급 확대와 유동성 감소가 이루어지리라는 전망도 전혀 없다. 부동산 정책의 큰 틀이 변하지 않는데, 부동산 가격 하락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이제 임기 말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효과’보다 ‘의도’만 남아 있다. 부동산 정책의 자명한 실패 앞에서 ‘착한’ 정책, ‘선한’ 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개선할 명확한 변화가 없는 한, ‘증여 권하는 나라’는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원영섭 변호사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나와 중앙대학교에서 건설경영학과 석사와 건축시공 및 건설관리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군 시절에는 카투사로 복무하다가 자원해 미 2사단 공중강습부대에 배치되었고, 제대 후에는 ‘공대생’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건설 부동산 분야의 법적 분쟁 해결을 위한 법률사무소를 운영했다. 그러던 중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정치계에도 뛰어든 그에게 변호사 이후에 꿈꾸는 제2의 인생은 무엇일지 들어봤다.
집주인은 소비자가 아닌 사업자
그렇다면 건축 전문 변호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시니어들은 스스로 만드는 집을 어떤 의미로 봐야 하는 걸까?
“집짓기를 스스로 하겠다는 분들은 자신이 ‘소비자’가 아닌 ‘사업자’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스스로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건축 행위는 분양을 받거나 매수하는 것에 비해 이익률이 훨씬 높습니다. 이익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당한 자본을 고위험 사업에 투자한 것입니다. 고위험 사업에서 ‘무엇을 몰랐다’는 것은 전혀 변명이 안 됩니다. 소비자는 약자지만 사업자는 강자입니다. 법원 소송과정에서도 땅과 자본을 가진 건축주는 시공업자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가진 자로 간주됩니다. 자신이 스스로 사업을 행할 준비를 철저히 하셔야 합니다.”
사업자로서 자신에 대한 자각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원변호사의 충고는 스스로 만드는 집에 대해 엄격해야 한다는 관점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에서 시니어들을 위한 주택의 방향성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나이 들면 공기 맑은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농사나 지으며 편하게 살겠다는 분이 많지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고령자를 위한 가장 좋은 주택은?
“어르신들은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병원과 가까워야 하고, 자식들과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기에 도심에 있어야 합니다. 각종 편의시설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분들도 고령자입니다. 결국 고령자를 위해 가장 좋은 주택 유형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상복합 아파트입니다. 신축 아파트를 많이 공급하고, 오래된 아파트를 쉽게 재건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최고의 고령자 주택 정책입니다.”
아파트 공급량을 늘리고 쉽게 재건축하게 법을 바꿔야 한다는 원 변호사의 설명을 듣다 보니 재개발과 재건축 정비 사업에서 유독 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이 분야에서 전문가인 그가 봤을 때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소송과 최근 추이는 어떤 양상일까?
“재개발 및 재건축 정비 사업은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조합이라는 단체를 구성해서 의사를 통일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기에 조합장 선임 등 여러 안건에 대한 총회의 결의가 가장 중요한데, 이 과정에서 총회 결의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이 일어나게 됩니다. 특히 정족수와 통지, 동의 방식 등이 문제가 됩니다. 판례의 방향은 과거에 비해 결의의 절차적인 부분을 점점 엄격하게 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IMF 시절부터 정치를 꿈꾸다
원 변호사의 이력에는 변호사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의 경력들도 있다. 그는 꾸준한 총선 도전 기록을 갖고 있으며 지난 총선에서는 자유한국당의 비례정당 TF팀장으로서 자매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처음 정치에 눈을 뜬 것은 IMF 시절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IMF를 겪고 나라의 의사를 결정하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치는 법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사법시험을 본 것도 비록 건축학도지만 법을 알아야 정치를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한 것입니다. 단순히 정치 낭인이 아니라 확실히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된 후 정치를 시작하고자 했습니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서초동 변호사 시장에서 제가 일해온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정리한 전문 서적을 여러 권 내고 10년 이상 활동하면서 어느 정도 전문성을 확보했습니다. 앞으로 건설 부동산 정책 및 입법 분야에서 제 능력을 발휘해보고자 합니다.”
인생 2막을 정치인으로 열겠다는 그의 포부는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현재 그는 국민의힘 중앙당 윤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상태다. 그의 입장에선 고향인 부산에서 치러지는 오는 4월 7일 부산시장 보궐 선거에 대해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전임 부산시장의 불미스러운 일로 갑자기 치르게 된 보궐선거입니다. 여당은 자기들의 당헌 당규에 따라 보궐선거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야당은 1년 정도 짧은 기간의 임기임을 감안해, 부산 시정에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어 그동안의 업무 공백을 신속히 안정화할 수 있는 후보를 내야 합니다.”
부동산 시장은 2021년에도 불안정할 것
2020년 부동산 시장은 다사다난했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사실상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를 보완하기 위해 24번째의 추가 대책을 내놓으면서 응급 대응을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원 변호사에게 올해 부동산 상황은 어떨지 물어봤다.
“여전히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는 공급 확대를 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경기 침체로 내수는 줄고 산업 투자는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중의 유동성은 많고, 그 유동성이 빠져나갈 부동산의 공급이 없기에, 부동산 시장이 쉽게 안정화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는 또한 최근 정국의 화제인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개혁의 본질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검찰입니다.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검찰을 조종하여 검찰권을 행사해왔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검찰 개혁의 열망이 있는 것입니다. 윤석열-추미애의 갈등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검찰이 아닌 권력에 굴종하는 검찰을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의 폭주를 보면 검찰 개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자명합니다. 우선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하고, 검사징계위원회의 자의적인 구성을 막아야 하며, 검찰총장의 인사권도 보장해야 합니다.”
이제 40대 중반. 인생으로 보면 중년이지만 정치인으로선 아직 젊은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 변호사는 과거와 지금의 자신이 조금은 달라졌다고 본다.
“옛날에는 뭐든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잘할 수 있는 일과 잘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려고 합니다. 지금 무엇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능력과 적성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경험까지 녹아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 고생과 경험을 인정하기에 반대로 ‘잘함’에 대한 선망이 없어졌고, 제 자신이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분명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만들고, 그 의견을 설파할 때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과정 등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현실과 이상의 조화는 끊임없이 지혜와 용기를 요구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낙선과 공천 실패는 말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인지도를 만들기 위한 쉬운 길의 유혹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한 정치인의 뜻이 세상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는 그 무게감을 인식한다면, 이런 힘든 과정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정치는 수학의 미적분과 같다고 말한다. 그동안 경험하고 배운 모든 것들이 정치를 하기 위해 준비해온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제2의 인생,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생각하면서 상당히 길고 먼 길까지 각오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인생 2막의 성공률을 높이려면 자신이 일평생 해온 업무 범위 내에서 가장 새로운 일을 찾아 사회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포인트라고 말했다.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듯, 완벽한 이상향이 아니라 과거보다 발전된 미래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부단히 노력하고 냉철한 판단력을 가다듬고자 합니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중국 동진(東晋) 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대(宋代) 초기까지 살았던 사람이다. 지금부터 1600여 년 전 인물인데, 하지 않은 말이 뭐가 있을까 싶을 만큼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노래한 시인이었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담(平淡)한 그의 시는 후세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평담은 평범하면서 담담하고 평이하면서 담백하다는 뜻이다. 도연명과 동시대 사람들은 그의 시가 너무 쉽다고 깔보기도 했다지만 시든 서예든 음악이든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최고 경지는 평담과 천진이 아닐까. 남송의 주희(朱熹, 1130~1200)도 “시는 평이하고 담백하게 하는 데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연명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벼슬을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쓴 산문시 ‘귀거래사’(歸去來辭)다. “돌아가리라. 전원이 바야흐로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라고 시작된다. 이 시 이후 귀거래는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감’이라는 뜻으로 정착됐다.
귀거래사는 전문 334자 모두가 보석같이 빛나지만, 그중에서도 서두 부분의 다음 몇 줄이 특히 유명하다(이치수 번역).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悟已往之不諫]
앞으로의 일은 바른길 좇을 수 있음을 알았다네[知來者之可追]
실로 길을 잘못 들었으나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으며[實迷塗其未遠]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覺今是而昨非]
마지막 줄을 요약한 금시작비(今是昨非)는 그 뒤 삶의 반성과 전환, 깨달음과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성어가 됐다. “책을 보다 지난날이 잘못됨을 깨닫고, 술잔 잡고 지금이 옳음을 아네[觀書悟昨非 把酒知今是]”. 이것은 명나라 말기에 장호(張灝)라는 사람이 옛 경전의 좋은 글귀를 전각가들에게 새기게 해서 엮은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 1629년)’에 나오는 시다. 여기에 실린 건 아니지만 앞부분이 “나를 성찰하니 어제가 그른 줄 깨닫겠네[省己悟昨非]”라고 돼 있는 시도 있다. 둘 다 출전은 몰라도 도연명의 시에서 유래된 표현임은 분명하다.
조선조의 문신 이광진(李光軫, 1513~1566), 임의백(任義伯, 1605~1667) 같은 분들은 당호를 금시당(今是堂)으로 짓기도 했다. 이광진의 별서(別墅)였던 밀양의 금시당은 수령 400여 년을 헤아리는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또 2015년 제68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도 제목의 뿌리는 도연명이다.
그런데 이 ‘금시작비’는 전에 저지른 일을 덮어 변명하는 변절의 둔사(遁辭)로 쓰이거나 내 잘못을 제쳐두고 남을 비난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정치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은 금시작비(今是昨非)의 자세와 어긋난다”고 한 말에 뱀의 독이 묻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을 찍어냈다고 정홍원 국무총리를 호되게 닦달하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추 장관은 “정부를 공격한다든지 정권을 흔드는 것이 살아 있는 권력 수사라고 미화돼선 안 된다”는 말도 했는데, 그에게는 모든 일이 금시작비가 아니라 금시작시(今是昨是)인 것 같다.
1주일 후 추 장관은 “(윤 총장이) 대권후보 (여론조사 지지율) 1위로 등극했으니 차라리 (총장직을) 사퇴하고 정치를 하라”는 말도 했다. 언론이든 정치인이든 대권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게 좋지만, 등극은 아예 맞지도 않는 표현이다. 등극(登極)이란 문자 그대로 더 오를 곳이 없는 상태, 임금이나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닌가.
이런 정도의 문자 지식과 언어 실력으로 장관직을 수행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까. 허난설헌(許蘭雪軒)과 허균(許筠)의 아버지 허엽(許曄, 1517~1580)은 동·서인이 대립할 때 김효원(金孝元, 1542~1590)과 함께 동인의 영수가 됐던 사람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그에 대해 “자신은 선을 좋아한다고 했으나 시비가 분명치 못하고 사람을 취하는 데에도 착오가 많았다”고 썼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차라리 학식이 없었다면 착한 사람이 됐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추 장관을 보며 이런 이야기도 생각했다.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거백옥(蘧伯玉)은 공자가 그 행실을 칭찬했던 사람이다. 겉은 관대하지만 속은 강직한 성품으로, 잘못을 고치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는 그가 “나이 50에 49년의 잘못을 알게 됐다[行年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고 했다는 말이 나온다. 줄여서 오십세지비(五十歲知非)라고 하는데, 도연명이 이 말에서 금시작비를 생산해냈는지 모르겠다. 정조 임금도 이 말을 본받아 “나이 50이 다 돼서야 재위 24년 동안에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또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자신의 묘비명에 “나이 90에 89년의 허물을 알겠구나[年九十而知八十九非]”라는 말을 삽입한 바 있다. 추 장관은 김 전 총리를 당연히 좋아하지 않을 텐데, 아직 일흔도 안 된 1958년생이니 앞으로도 작비(昨非)를 저지르다가 금시(今是)를 깨닫게 될 시간은 충분하다 하겠다. 그런데 추 장관의 윤석열 찍어내기는 쉽지 않은 일 같다. 그가 금시작비라는 말을 되뇌면서, 가슴을 치면서, 귀거래사를 읊으면서 드디어는 어디론가 평담하게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지난주에 ‘물서가 진란한 말장난’을 썼더니 재미있다고 하는 분이 의외로 많아 나 스스로 놀랐다. 원래 인간은 유희본능이 있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여서 그런 글이 먹히는가보다. 더구나 코로나19가 갈수록 더 기승을 부리는 데다 어디 나다니기도 겁나니 즐거운 걸 자꾸 찾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떤 분이 글을 읽고 “절망 댄다하닙다!”라고 카톡을 보내왔기에 “내가 염오시켰나보다” 했더니 “전느 직잔 옴여되고 탁라한 삼라이닙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아, 그러니까 스타시군요”라고 응수했다. 스타는 스스로 타락한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애들같이 주고받다가 이왕 말장난을 시작한 거 이번엔 받침을 뺀 이름 이야기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친구 임철수와 나는 니은 하나 차이이지만, 받침을 빼면 지나 내나 똑같이 이처수가 된다. 사람 이름에서 받침을 빼는 이유는 놀려먹기 위해서다. 짝사랑 상대가 도대체 내 맘을 몰라준다면 그 사람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휴지가 없어 트월킹(twerking)으로 털어내는 걸 상상하면 좋다고 한다. 트월킹은 자세를 낮추고 상체를 숙인 채 엉덩이를 빠르게 흔들며 추는 춤이다. 받침 빼버리기는 이름에 대한 트월킹 같은 거다.
그렇게 받침을 빼고 보니 김대중은 기대주, 문재인은 무재이, 이재명은 이재며, 반기문은 바기무, 윤석열은 유서여, 조국은 조구, 정경심은 저겨시, 강경화는 가겨화, 윤미향은 유미햐, 손혜원은 소혜워, 최강욱은 최가우, 김어준은 기어주, 노영민은 노여미, 이성윤은 이서유 이렇게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차가 지고 이나여가 올라왔다. 그런데 와, 추미애는 역시 세다. 빼버릴 받침이 없어 온전하게 그냥 추미애다. 과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름이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그동안 받침 없는 삶이 얼마나 모질고 힘들고 억지였을까?
이렇게 받침을 빼고 사람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건 47년 전인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지방에서 교생실습을 해야 할 때 나는 이천북중에 가서 독일어 대신 영어를 가르쳤다. 중학교엔 독일어 과목이 없으니까 그랬던 건데, 지방 실습은 유신시대의 말도 안 되는 제도였다.
하여간 그 학교에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 평화봉사단원 한 명이 있었다. 성이 Knapp인 그 젊은이를 교사들은 납도 아니고 냅도 아니고 크납도 아닌, 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받침을 빼고 편하게 부르려고 성을 나 씨로 지어준 것이었다.
그 나 선생이 내 지도교사(그도 독어과 출신 영어교사였다)와 이야기하면서 날 평하기를 “very sour”라고 했다고 한다. 처음엔 신랄하다는 말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맛이 간 녀석’이라는 뜻이었던 거 같다. 거 왜 있잖은가? 음식이 상했다는 산패(酸敗)라는 말. 그러니까 지도교사랑 둘이서 나를 흉보고 안주 삼아 씹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한국인 중에는 ‘바서오 선생님’이 있었다. 무슨 과목이었는지 잊었는데, 키 작고 머리가 약간 벗겨진 바서오는 이웃집 아저씨같이 사람 좋고 귀엽고 약간 어수룩하고 모자란 듯도 해 놀려먹기 좋았다. 그래서 교사들이 박성온이라는 이름에서 받침을 이 뽑듯이 다 빼버리고 바서오로 개명을 해준 것이었다. 알고 보니 대학 선배였던 바서오 선생은 역시 대학 선배인 교장과 함께 우리 교생 일동 5명(?)에게 거하게 저녁을 사준 적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짓궂은 내가 그날 술자리에서 바서오라고 부르며 놀려먹은 기억이 난다.
바서오 선생님을 안 뒤부터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이름에서 받침을 빼보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대상이었던 건 아니고 이름이 좀 특이하거나 별나다 싶으면 그랬다. 이천북중 당시 내 지도교사는 오늘날 미국에서 저명한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인 박흥진 씨인데(나는 걸핏하면 바킁진이라고 쓴다), 받침을 빼니 바흐지가 됐다. 근데 이게 뭐야? 바가지도 아니고. 바흐친이라면 몰라도 좀 재미가 없었다.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바흐친(1895~1975, 러시아의 사상가, 문학 이론가)
여러 사람의 받침을 빼 봐도 바서오만큼 재미있고 말맛이 좋은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그나마 좀 재미가 있다 싶은 이름은 다음과 같다.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 글 읽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누군지 다 알 것이다. 기조피[血?], 소재피[血?], 이혀[舌?]규, 소우혀[舌?], 하태혀[舌?], 유태혀[舌?], 바과수, 바사도, 바서수, 바재우, 바저사, 바조지, 야조서, 이조거, 채여보….
이 글을 쓰면서 겨우 안 건데, 받침을 뺄 때는 박이나 반, 방 씨 성 가진 분들의 이름이 가장 인상적이고 재미있다는 점이다. 이런 발견을 하게 만들어준 바서오 선생님은 지금 어디서 살아가고 계실까. 정확히 모르지만 나이가 팔순을 좀 넘었지 싶은데, 혹시 이름이 성온(性溫)이라면 글자 그대로 따뜻한 성품으로 가족은 물론 이웃들과 잘 화목하게 지낼 것 같다.
이름은 남의 놀림감이 될 수는 있으나 젊어서든 늙어서든 변함없이 소중한 것이니 저마다 이름값을 제대로 하면서 살아야 한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이름을 닮아간다는 말도 들었다. 전혀 아름답고 사랑스럽지 않은데 그렇다고 주장하면 정말 참 거시기한 일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