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혼주석에 앉을 나이가 되었다. 자녀를 품에서 떠나보낼 생각을 하면 버진로드를 걷던 그때보다 더 두근거린다.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할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오랜만에 준비하는 예식이 떨리고 걱정스러운 이들을 위해 결혼 준비 전후 알아두면 좋은 에티켓을 소개한다.
Step 1 결혼 준비의 첫 단추, 상견례
상견례는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 넘어야 할 첫 관문이다. 가족이 될 이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인 만큼 자녀뿐 아니라 혼주도 긴장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 상견례의 장소나 일정 등은 자녀 측에서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혼주는 예비 사돈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데 집중한다. 단정한 옷차림, 온화한 미소 등 외적인 부분도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상견례에서는 대화 주제가 분위기를 좌우한다. 특히 자녀 입장에서는 어른을 상대로 대화를 주도하기 어렵기 때문에 양가 부모가 화젯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처음은 간단한 안부 인사로 시작해 자녀가 고심해 예약한 상견례 장소와 메뉴를 칭찬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좋다. 그다음 자녀의 어린 시절, 취미 등 가벼운 화제로 이야기를 돌린다. 자녀와 평생을 함께할 상대인 만큼 궁금한 것이 많을 테지만, 가정형편이나 정치, 종교, 학력 등 민감한 질문은 지양한다. 또 학술적 이슈를 논하며 지식을 과시하지 않도록 유의하고, 연예인 가십 등 가벼운 소재도 언급을 삼간다. 이외에 집안마다 말 못 할 사정이 있을 수 있으므로 대화 중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자녀에게 미리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상견례 중 예물, 혼수 등 결혼 준비에 필요한 요소를 논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칫하면 금전적인 이유로 얼굴을 붉히게 될 수도 있다. 준비 과정에서 상대 집안과 의견이 쉽게 일치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정리된 뒤 상견례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 시대 상견례의 ‘웃픈’ 준비물 ▶ 이제는 상견례가 ‘5인 이상 집합 금지’의 예외 규정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찜찜해하는 이들이 많다. 일부 식당은 가족임을 증명해야 하는 곳도 있다고 하니, 만일을 대비해 가족관계증명서나 청첩장을 챙기는 것이 좋다. 국제결혼 등의 이유로 대면이 어렵다면, ‘줌’ 등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는 방법도 있다.
Step 2 일생일대의 순간, 결혼식
예식 당일에는 최소 2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의외로 식장에 촉박하게 도착해 허둥대는 혼주가 꽤 있다. 웨딩홀을 둘러보고, 이른 시각부터 식장을 찾은 하객을 맞이하려면 여유 있게 출발해야 한다.
식 중 혼주의 참여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양가 어머니의 화촉점화는 대부분 당일에 리허설이 진행되지만 신부 입장 시 딸과 손을 잡는 법, 사위에게 손을 넘겨주는 타이밍 등은 예식 직전 간단히 안내되는 경우가 많다. 헷갈릴 것 같으면 유튜브에서 ‘신부 입장’, ‘혼주 입장’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 예식 영상을 보고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녀와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는 등을 토닥여주며 생각해놓은 덕담을 건넨다. 그 한마디가 자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된다. 다만 눈길을 끌 정도로 펑펑 울 경우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식이 끝나면 원판 사진 촬영을 깜박하고 곧장 연회장으로 이동하는 혼주가 있다. 혼주가 자리를 비우면 촬영이 불가하고, 다음 예식까지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식순이 끝날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
폐백의 분위기는 덕담이 좌우한다 ▶ 본식 후 신부와 시댁 가족이 인사를 나누는 자리인 폐백은 신부에게 매우 어려운 행사다. 어색한 건 시니어도 마찬가지지만, 어른으로서 용기를 북돋아주면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덕담은 신부가 절을 하고 술을 올릴 때 건네면 된다. 높은 어른이 함께할 때도 시부모가 먼저 절을 받는 것이 관례다. 잘살라는 의미가 담긴 ‘절값’도 잊지 않고 준비한다.
Step 3 마무리까지 품격 있게, 답례
첫인상만큼 끝 인상도 중요하다. 식이 끝난 뒤에는 하객에게 답례 인사를 전하는 것이 마지막 매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식사가 그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하객이 줄어 답례품에 더욱 신경 쓰는 분위기다. 답례품 종류는 캔들, 꿀, 홍삼, 와인, 기프트 카드 등 다양하다. 비대면 시대인 만큼 메신저 등을 통해 전해도 되지만, 축의금을 내고 예식에 참석하지 못했거나 모바일 청첩장으로만 초대한 하객에게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상례다. 특히 자녀와 연결고리 없이 개인적인 친분으로 초대한 하객은 자녀가 직접적으로 연락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경 써서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성의를 표현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의 행사에 참여해준 이들을 잊지 않고, 훗날 그들의 경조사에 참석해 받은 마음을 배로 돌려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귀해지는 시니어에게는 가장 고마운 답례가 될 것이다.
은퇴 후 자녀 결혼시키면 하객이 줄어든다? ▶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지만, 그 자리를 빛내주는 건 하객이다. 문제는 은퇴를 하면 인간관계가 협소해져 초대할 하객 수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녀에게 결혼을 독촉할 수도 없는 노릇. 자녀의 결혼식을 북적북적하게 해주고 싶다면, 은퇴 전부터 지인의 경조사를 꾸준히 챙기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SNS)를 활발히 해 많은 이들과 교류하는 것이 좋다.
도움 사단법인 한국웨딩플래너협회
어제 내린 비로 씻긴 하늘이 말끔하다. 덕수궁 돌담길도 밝아 상큼하다. 돌담길 따라 늘어선 나무들을 흔드는 바람결엔 뜻밖에도 향기까지 묻어 있다. 이건 흡족한 기분의 반향일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느껴지는 서울이 모처럼 유쾌하다. 고적한 정취까지야 아니지만 싱그러워 삼삼한 운치를 맛본다. 미술관은 돌담길 모퉁이에 있다. 기분 좋게 다가갈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한 미술관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초입은 온통 초록이다. 크고 작은 수목들로 빼곡하다. 숨쉬기 좋은 작은 숲이며, 물먹은 소금자루처럼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홀가분해질 수 있는 소공원이다. 소음과 미세먼지와 풍문이 들끓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만한 숲이라도 만날 수 있는 건 요행에 가깝다.
이 소공원은 조각 전시장으로 쓰인다. 작가들의 작품이 산재하다. 저기 숲에 불타오르는 것처럼 붉디붉은 꽃 한 송이 솟아 있다. 최정화의 설치 작품 ‘장미꽃 인생’이다. 그는 싸구려 물건의 대표인 플라스틱으로 작품을 만드는 데 이골이 났다. 이 ‘플라스틱 연금술사’는 플라스틱 조형물로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위계를 깬다. 불온한 물질문명에 딴죽을 걸며, ‘싸구려’로 표상되는 모든 낮고 만만한 것들의 꿈과 상상에 날개를 부여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가 펼치는 미술운동의 전진기지다. 시의 거대한 지원을 돛으로 삼았을 이 미술관은 공립 기관이 속성처럼 지니기 쉬운 관료주의의 따분한 틀에서 벗어나 서울특별시민들을 위한 특별 문화 공간으로 부상하고자 하는가. 표방하기론 ‘서울을 보듬는 모선(母船) 미술관’이다. ‘현대미술을 매개로 활력과 매혹이 가득한 서울과 세계 도시를 연결하겠다’는 희망을 천명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1988년 구 서울고등학교 건물을 고쳐 입주, 개관하면서 발동을 걸었다. 이후 초기 10여 년간은 난항이었다. 학예 인력은 물론 관장조차 없었다. 1999년에야 전문 관장 체제를 구축했으며, 2002년엔 현재의 위치인 구 대법원 자리로 이전, 건물을 새로 지어 재개관했다. 당시의 신축 상황이 흥미롭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재판소로 지어졌다가 광복 후 줄곧 대법원 청사로 쓰였던 원래의 건물은 근대 고딕 양식과 미국식 모던 빌딩 스타일을 절충한 건축으로 보존 가치를 평가받았다. 이 근대 건축의 전면 아치형 현관 부분만 그대로 놔두고 지하 2층, 지상 3층짜리 건물을 붙여 지은 게 지금의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이다. 웅장한 맛과 장식의 멋을 느낄 수 있는 현관 파사드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를 이루고 있다.
미술관 내부 중앙홀에 들어서자 크넓은 공간이 펼쳐져 시원하다. 유리로 만든 천장과 벽면의 창으로 자연광이 물살처럼 들이친다. 인위를 최대한 자제한 조명 기법을 구사했다. 빛은 자유롭게 들이쳐 벽면을 하얗게 표백하고, 빛이 침투하지 못한 공간엔 잔잔한 음영이 깔린다. 광폭의 층계와 직선의 교직으로 이루어진 난간의 간결한 구성도 인상적이다. 군더더기 다 털어내고 골자만 담아 기능성과 미를 동시에 돋우었다.
1층 전시실에선 현재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전이 열리고 있다.(8월 8일까지)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전시회다. 기후위기로 가속되는 생태 파괴의 진상과 인간의 무신경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기획전이다.
재미있다, ‘호민과 재환’전
2층과 3층에서는 ‘호민과 재환’전이 진행되고 있다.(8월 1일까지)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 웹툰 작가로 널리 알려진 주호민(40)과 그의 아버지 주재환(81) 화백이 펼치는 2인전이다. 그런데 이 전시회의 분위기가 후끈하다. 부자가 의기투합해 함께 작품을 들고 나온 것부터 이색적이지만, 두 사람의 작품이 뿜는 재미와 개성이 각별해서다. 특히 노화백 주재환의 그림이 인기 ‘짱’이다. 그의 그림은 쉽고 기발하며 번뜩인다. 위트와 유희, 심드렁함과 너스레로 별별 작품을 다 만들어냈다. 오잉? 이것도 그림인가? 관람객은 평소 보지 못한 작풍에 머리를 득득 긁으며 난처해하다가 아하! 찬탄한다. 주재환이 발신한 메시지가 유리창을 뚫고 날아온 돌멩이처럼 돌연하고도 신속하게 관람객의 심중으로 박혀들어 급기야 의표를 찔러서다. 그는 물구나무 선 세상을 물구나무 선 그림으로 뒤집는다. 세상의 꿍꿍이와 잘난 권위를 풍자로 전복한다.
주재환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를 볼까.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2’를 패러디한 이 그림엔 계단에 서서 소변을 갈기는 남자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계단 상층에서 발사된 오줌발은 아래층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데, 하층으로 내려갈수록 굵어진다. 계급사회의 질곡과 잔혹을 까발리는 은유다. 뒤샹의 다다이즘 그림을 향해 내지른 어퍼컷이기도 하다. 이렇게 주재환의 쉬운 그림은 선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회 이슈에 하고 싶은 말 다 하지만 심각하게 폼 잡진 않는다. 따뜻한 감성으로 비튼다. 재미와 생각거리를 동시에 제공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구작(舊作)인 건 아쉽다. 회고전 성격의 전람회로 보면 되겠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천경자(1924~2015)의 그림 93점을 소장하고 있다. 모두 작가가 기증한 작품이다. 이 가운데 20여 점을 골라 ‘영원한 나르시스트, 천경자’라는 타이틀의 전시회를 펼치고 있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 초현실로 비상하고자 하는 내면적 갈구, 몽환과 이국 정서, 슬픔과 우울의 정조 등을 일관되게 표출한 그의 작품을 다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천경자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내 전설의 슬픈 22페이지’도 만날 수 있다. 혀를 날름거리는 뱀 네 마리를 화관처럼 머리에 두른 자화상이다. 팁 하나! 이 미술관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시립이라서.
큰 꿈을 품고 신사업에 뛰어든 청년, 혹은 인생 삼모작을 시작한 중년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우리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 무대에 줄줄이 등장한다. 정도전부터 이성계, 이방원까지. 알고 보니 ‘나라를 열다’는 사전적 의미의 ‘창업’이다.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의 이야기를 다룬 퓨전사극 ‘창업’은 배우 서범석이 공연 제작사 ‘광나는 사람들’을 차리고, 연출과 제작을 총괄한 첫 뮤지컬이다. 그에게 이번 공연이야말로 새로운 도전이자 창업인 셈.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배우에서 프로듀서로 출사표를 던진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뮤지컬 제작을 결심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있었어요. 30대 후반쯤부터 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죠. 그런데 그동안은 배우 생활을 하느라 바빠서 꿈을 펼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 작년에 코로나19로 강제 휴식을 하게 되면서 열정을 쏟아부을 곳이 사라진 거예요. 지금이 찬스다 싶어서 작가 형에게 포부를 말했죠. ‘형, 대본 좀 써주세요. 저 조선 왕조 이야기로 뮤지컬 다섯 개 만들고 싶습니다’라고요.
Q. 왜 조선 왕조 이야기인가?
저는 우리 것이 신기할 정도로 좋아요. 우리 말과 글, 소리, 악기가 마음을 움직이죠. 춤을 배울 때도 발레나 재즈댄스보다는 한국무용이 제일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공연계에 외국 작품의 비중이 큰 게 아쉬워요. 셰익스피어를 시리즈물로 만들려는 사람은 많아도 한국적 소재를 꾸준히 다루려는 사람은 드물죠. 그렇다면 내가 한번 시리즈로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조선 건국 이야기가 그 시작이고요.
Q. 장르를 퓨전사극으로 택한 이유는?
대하드라마 같은 스케일을 갖출 수 없다면, 적어도 식상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극 어투를 최대한 빼고 요즘 말로 바꿨어요. ‘야 정몽주, 네가 잘났다고 생각해?’ 이런 식으로요. 대사 곳곳에 요즘 이슈도 반영했어요. 정도전이 날씨를 물어보면 정몽주가 ‘미세먼지 매우 나쁨’이라고 대답해요. 작품을 본 친한 형님은 ‘이성계가 이렇게 웃겨도 되는 거냐?’ 하시더라고요. 사극에서 흔히 본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다수 관객분들은 그런 포인트에 재미를 느끼신 것 같아요. 연령 불문 좋아하시더라고요.
Q. 제작에 어려움을 느꼈던 순간은?
출연하는 배우들이 거의 신인이에요. 신인을 발굴해서 함께 작품을 만드는 게 제 또 다른 목표였거든요. 아주 무모했죠.(웃음) 주변에서도 뜯어말렸어요. ‘신인이 뭘 할 수 있겠냐’는 반응이었죠. 그런데 이 친구들, 연기 못 한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모든 시간을 연습에 쏟아 가창력, 연기력이 일취월장했어요. 문제는 인지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찾아주시는 분이 많지 않다는 거죠. 보석 같은 친구들이 많은데, 빈 객석을 볼 때면 마음이 좀 아프더라고요.
Q. 작품을 보고 느꼈으면 하는 바는?
‘창업’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자신의 신념에 확신을 갖고 이를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사는 인물이에요. 그들을 보면서 ‘나는 과연 저들만큼 뚜렷한 신념을 갖고 살고 있는가?’ ‘나의 확신이 욕심이 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 하는 고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사라는 게 그렇잖아요. 과거의 인물로 오늘의 나를 돌아보는 역할을 해주니까요. 사실 작품을 통해 우리 역사에 작은 흥미를 갖게 되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Q. 첫 연출작, 어떻게 기억될 것 같나?
제가 지금 나라를 창업한 이성계의 마음과 똑같은 것 같아요. 이성계의 노래 중에 ‘누구의 손을 잡고, 누구의 손을 놓고, 하나의 뜻을 가질 수는 없는가’라며 고뇌하는 가사가 있어요. 그 가사처럼 프로덕션을 이끌면서 매번 선택과 갈등의 순간이 이어졌어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추구하는 색깔을 잃지 않고 만들어낸 작품인 만큼, 새 뮤지컬의 탄생을 알리는 진정한 ‘창업’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뮤지컬 '창업'
일정 7월 18일까지 장소 예그린씨어터 연출 서범석
출연 서범석, 박종찬, 김재한, 박상돈, 안유진, 장대성 등
오전 10시, 탑골공원 앞이 소란하다. 서울시 종로구에 사는 박 모(71)씨는 동년배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공원을 찾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공원은 지난해 2월부터 무기한 폐쇄된 상태다. 하지만 박씨와 같은 시니어들은 여전히 탑골공원 담장 바깥에 모여 앉아 있다. 집에서 가만히 있기엔 무료하고, 아파트 단지 공원은 젊은 친구들이 많아 앉아 있기가 민망해서다.
코로나19는 그나마 시니어들이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경로당, 노인복지관 같은 시설의 문을 걸어 잠갔다. 전염병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시니어들의 삶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 탑골공원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스마트폰으로 무료함을 달래보려 시도한다. 하지만 박씨는 고개를 내젓는다. 인터넷과 디지털 세상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길어질수록 빠르게 자신에게 맞는 취미를 찾고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박씨와 같은 시니어들은 다르다. 주로 경로당과 공원, 노인복지관을 방문하며 오프라인 활동을 많이 하고, 정보를 습득하는 속도가 더디며 역량도 낮다.
2019년 기준 세계 인구의 51%에 달하는 41억 명이 인터넷을 사용할 정도로 정보통신기술은 현재 우리 삶의 모든 부문에 관여하며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모든 분야에서 가속화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 가속화는 젊은 층에게는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회이지만 시니어들에게는 디지털 소외 현상을 초래하는 사회 문제도 이슈화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0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시니어 가운데 여건은 되지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자발적 비이용’이 72.5%, 나머지 ‘비자발적 비이용’에서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 이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5.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박씨 또한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지만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얼마 전 친구가 끔찍이 여기는 늦둥이 아들 결혼식을 축하하는 마음에서 100만 원을 부치려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은행을 직접 방문했다. 이 은행 계좌를 40년 가까이 보유했지만 인터넷 뱅킹은 할 줄 모른다. 젊은 세대가 카카오톡이나 은행 앱에서 수수료를 면제받아 1분도 걸리지 않는 시간에 송금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박씨는 “은행 앱은 설치할 줄도 모르는 데다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정작 사용할 줄 모르니 그냥 교통비를 지불해서 은행에 오고, 수수료도 낸다”며 “매번 모른다고 자식한테 부탁하는 것이 무척 미안하다”고 말했다.
디지털 세상과의 만남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초면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난 5월 어린이 날을 맞아 손주에게 장난감을 사주고 싶어 완구점을 찾은 박씨는 정가 10만8000원짜리 로봇을 8만6800원에 구매했다. 20%나 싸게 샀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30대 딸의 반응은 달랐다. 왜 비싸게 주고 샀느냐며 환불을 권유했다. 서둘러 완구점에 가 환불을 마친 박씨는 씁쓸했다. 박씨 딸은 인터넷 쇼핑몰 최저가를 한바퀴 훑더니,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똑같은 장난감을 6만6430원에 구매했다.
이처럼 ‘요즘 세대’는 다양한 앱을 활용해 저렴한 금액으로 제품을 구매하고 후기도 작성해 적립금도 톡톡히 챙긴다. 식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SNS에 인증샷을 올리거나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식당 계정을 추가한 뒤 서비스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박씨는 매일 가던 식당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폰을 가져가서 직원이 이것저것 누르더니 “다음에 이 화면을 보여주면 서비스를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화면을 어떻게 띄우는지 몰라 혜택을 누리지 못한 셈이다.
공공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구청이나 주민센터 민원 창구에서 공무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를 발급받는 비용은 1000원이다. 하지만 공공기관 내 무인 민원 창구를 이용하면 500원에 발급할 수 있고, 인터넷을 이용하면 무료다.
박씨는 “필요한 서류가 있어 구청을 방문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한참을 기다렸다”며 “종이 한 장 짜리 서류를 발급 받으려고 30분을 기다리는 게 맞나 싶었다. 하지만 항목이 너무 많고 눈까지 침침해 기계를 사용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와 같은 70세 이상 시니어들은 현대사회의 ‘디지털 흐름’에서 소외된 많은 ‘디지털 이방인’이다. 디지털 혁신이 이뤄지고 있으나 경제적 빈곤과 디지털 활용 능력 부족 등으로 이러한 변화에서 소외되고 있다. 시니어들은 온·오프라인 기반의 각종 서비스에서 제외돼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있다.
이들을 위해 국가와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말 이들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올해 국내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84명보다도 더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만큼 대한민국 출산율이 사회적 이슈가 된 가운데, 50세 여성이 얼리지 않은 본인 난자로 임신과 출산에 성공한 사례가 나왔다.
강남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는 A(50)씨가 얼리지 않은 자기 난자로 시험관 시술을 받고 지난달 말 2.7kg 건강한 남아를 출산했다고 22일 밝혔다. 관계자들은 “젊은 나이에 냉동보관해놨던 난자를 사용하거나, 난자를 기증받지 않고 임신에 성공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령 산모가 늘고 있지만 50대 산모는 드물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출생아 30만2676명 중 50세 이상 산모가 낳은 아기는 18명이다. 국내 최고령 산모는 2012년 출산한 57세로 기록돼 있다. 다만 해당 산모는 폐경 이전 냉동해둔 난자로 시험관아기 시술로 임신했다.
지난 2018년 6월 강남차병원 난임센터인 여성의학연구소를 찾은 A씨는 2019년 9월 시험관아기 시술을 시도했다. 노화 때문에 난소기능 저하된 터라 총 5번의 과배란과 저자극 배란을 거쳐 수정란 2개를 확보했고 2020년 9월 배아를 이식한 뒤 임신에 성공했다.
A씨는 고위험 산모로 분류되는 위기도 겪었다. 임신 기간에도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아서다. 이에 A씨는 강남차여성병원 산부인과와 내과 간 협진을 바탕으로 식단과 생활습관 등을 개선한 끝에 지난달 말 제왕절개로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난임센터 주치의 이우식 여성의학연구소장은 “40대 후반~50대 초반 여성이 얼리지 않은 자기 난자로 임신과 출산에 성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난소기능 저하 등으로 난임 시술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부부의 의지와 경험 많은 의료진이 한 팀이 돼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이 한끝 차이이듯 ‘웰다잉’을 위해서는 ‘웰빙’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니어의 웰빙은 대부분 거처가 좌우한다. 노후에 어떤 형태의 돌봄을 받고, 어디에 머무는지에 따라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집 또는 병원, 두 가지 선택지가 전부였지만,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고민하는 ‘웰엔딩’에 관심이 늘면서 ‘실버타운’이 제3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버타운 입주를 고민 중인 이들을 위해 실버타운의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닌 시대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고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과거엔 10여 년, 길어야 20년 정도로 여겨지던 노후의 정의가 30~40년 가까이 늘어났다. 직장에서 몸담은 시간보다 노후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질 좋은 서비스와 시설로 눈을 돌리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30여 년간 ‘열일’ 한 대가로 얻은 경제력이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누리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심리다.
실버타운은 이 같은 액티브 시니어의 수요를 만족시켜주며 최근 몇 년간 노후의 또 다른 보금자리로 각광받고 있다. 실버산업 전문가 이한세 초고령사회미래연구원 위원장은 “20여 년 전의 60대와 지금의 60대는 다르다. 옛날에는 60대만 돼도 ‘인생 다 살았다’고 했지만 지금은 노후를 편안하고 활기차게 보내려는 시니어가 많다. 또 과거에는 실버타운 입주 보증금이 강남 아파트 한 채를 팔아야 충당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20년 사이 보증금은 크게 오르지 않은 반면 집값은 10배 가까이 오르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며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 실버타운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버타운 언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한마디로 오늘날 ‘액티브 시니어’라 불리는 이들은 실버타운에 입주할 경제력을 갖췄으며, 노후를 즐길 시간도 충분하다. 문제는 언제, 어떤 실버타운에 들어가느냐다. 포털 사이트에서 ‘실버타운’을 검색하면 각종 노인주거복지시설이 쏟아져 나와 정확한 정보를 추리기 어렵다. 또 노후가 길어진 만큼 어느 연령대에 입주해야 하는지도 새로운 고민거리다. 적절한 시기에 실버타운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인주거복지시설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노인복지법 제32조에 따르면 노인주거복지시설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어르신들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곳’을 말하며, 성격에 따라 양로시설과 노인공동생활가정, 노인복지주택으로 구분한다. 양로시설은 크게 무료 및 실비, 유료로 나눌 수 있는데, 무료 및 실비 양로시설은 65세 이상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등 취약계층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서비스 외에 기타 부대시설을 유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 유료 양로시설은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입주 가능하다. 대개 경제력 있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운영해 입소자로부터 비용을 전부 수납하며, 그 특성상 여가 시설, 취미 프로그램, 의료 서비스 등이 특화돼 있다. 비유하자면 유료 양로시설은 시설이 뛰어난 5성급 호텔, 무료 및 실비 양로시설은 비용이 합리적인 게스트하우스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 같은 노인주거복지시설 가운데 고급형 노인복지주택과 소수의 유료 양로시설을 합한 개념을 통상적으로 실버타운이라 부른다. 즉 실버타운은 60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입주 가능하다.
그렇다면 노후 어느 시기에 입주하는 것이 일반적일까. 서울시니어스타워 관계자는 “실버타운 초창기에는 60~65세에 입주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고령화 시대가 되면서 70대 중반에서 80대에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가사노동을 할 체력이 되지 않거나 크고 작은 돌봄을 받고 싶을 때 이곳을 찾으신다”라며 “그러나 열에 아홉은 ‘더 일찍 들어올걸’ 하며 후회하신다. 나이가 들수록 동호회나 취미 프로그램, 행사 등을 즐기기에 육체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버타운의 각종 시설을 알차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조건에 부합하는 연령이 되었을 때 바로 입주하는 것을 권장한다”라고 말했다.
[TIP] 실버타운 입주 시 고려해야 할 4가지
비용 ▶ 가장 먼저 자신이 충당할 수 있는 입주 보증금과 월 생활비를 고려해야 한다. 입주 보증금은 대개 2억~9억 원, 월 생활비는 100만~200만 원 선이다. 같은 실버타운도 평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니, 싱글이라면 가장 많은 세대를 차지하는 평수를 기준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다.
위치 ▶ 실버타운은 위치에 따라 도시형, 근교형, 전원형으로 나눌 수 있다. 위치는 개인의 선호도나 자녀의 거주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다만 수도권 내에 있는 실버타운은 땅값에 따라 입주 보증금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병원 ▶ 복용 중인 약이 있거나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시니어는 대형병원이 가까운 실버타운이 좋다. 또 ‘너싱홈’(실버타운과 요양원의 성격이 결합된 형태)이나 ‘데이케어센터’(주간보호시설) 시스템을 함께 운영하는 곳도 있으니, 각 실버타운에서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 좋다.
여가 ▶노후의 질은 여가가 좌우한다. 후보별로 각 절기별 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취미 활동, 커뮤니티 센터 등을 알아본 다음 알맞은 곳을 택한다. 단 해당 서비스가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육관은 있지만 트레이너의 관리가 허술하고, 동호회가 존재하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없으면 ‘보여주기 식’일 가능성이 높다. 프로그램의 활성화 정도를 함께 고려한다.
피해 줄었지만 상담 꼼꼼해야
알맞은 실버타운을 골랐다면 다음은 입주 상담이다. 실버타운 입주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만큼 충분한 상담으로 머물 곳을 신중히 선정해야 한다. 특히 입주 보증금 반환 방식을 세밀하게 살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입주 보증금 관련 피해가 문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수년 전 일부 실버타운이 분양 저조, 사업비 부족 등의 이유로 입주민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몇 차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용인시 A실버타운은 서비스 불이행, 일방적인 관리비 인상, 보증금 미지급 등 사업자의 독단적인 운영으로 구설수에 오르다 2017년 시설폐쇄명령을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B실버타운은 2016년 무리하게 사업 분야를 키워나가면서 부도가 발생해 입주민들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사업자가 입주 보증금의 50% 이상을 돌려주는 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세권이나 근저당권 설정으로 보호하는 경우 예외 조항이 적용돼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전세권 및 근저당권 설정으로 보호받을 경우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때까지 대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에도 한계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과거에 비해 제도에 다각적인 보완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강대빈 전국노인주거복지시설협회 부회장은 “요즘은 시공자나 금융권에서도 사업성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큰 피해 이슈는 없지만, 운영의 건전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차원에서도 대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입주하려는 실버타운이 운영상 문제가 없고 건실한지 분별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전문성과 사회적 신용도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파악하기 어려울 땐 식사 체험을 하며 입주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최종 계약을 할 때는 보증금 반환 보장 방안과 지급 방법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는지 꼼꼼하게 읽어봐야 한다. 이 위원장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잘 갖춰져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시설만 강조하는 곳보다 시니어에 대한 직원들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곳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인생의 보너스 같아”…공동체서 찾는 활력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입주자들의 실제 후기는 어떨까. 대부분 비용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여성 입주자들은 식사 준비를 비롯한 가사노동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큰 장점으로 꼽는다. 50여 년 운영하던 약국을 닫고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에 나란히 입주한 조명자(77)·조미자(73)·조경희(65) 자매는 “모든 게 만족스럽지만 무엇보다 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세 자매에게 꿈만 같은 일”이라며 “함께 식사를 하고 웃음꽃을 피우다 보면 이곳에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서울시니어스 강서타워에 입주한 정태분(78) 씨도 “정성과 영양 가득한 식사와 청소 서비스는 그동안 고생한 인생의 보너스 같아 매일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실버타운 내 각종 취미 프로그램도 즐거움을 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에 3년 간 거주한 배순애(72) 씨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한다. 코스도 다양하고 산책로도 여러 개다. 10년째 취미로 하는 색소폰을 무대에서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동호회 활동도 활발히 이뤄져 심심할 틈이 없다”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모임이 잠정 중단됐지만 남편과 주변 관광지를 돌며 나들이 다니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해프닝도 공동체 생활에서만 겪을 수 있는 쏠쏠한 재미다. 특히 은퇴 후 외로움을 느끼는 시니어에게 실버타운은 또 다른 만남의 장이다.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이성 간 건강한 교류를 맺는 이들도 있고, 사회복지사 직원과 입주자가 서로 엄마, 아들이라 부르며 모자지간처럼 지내는 경우도 있다.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주임교수는 “같은 실버타운에 입주한 시니어는 서로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하고 빈부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공감대로 친밀도를 쌓기 쉽다”며 “동호회, 문화 프로그램 등으로 형성해나가는 사회적 관계는 노후의 또 다른 활력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에게 맞는 실버타운은 어디?
전국 40여 곳의 실버타운을 직접 방문해본 이한세 초고령사회미래연구원 위원장이 추천한 실버타운을 세 곳을 소개한다. ✽비용은 1인 기준
TYPE A | 액티브한 도시형 ▶ 서울 ‘더클래식500’
‘소셜 리더를 위한 실버 하우스’라는 슬로건에 알맞게 최상급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우스 키핑, 퍼스널 컨시어즈, 발레파킹 등 호텔식 서비스와 건국대학교병원 교수진으로 구성된 전문의 및 전담 관리팀이 개인별 맞춤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파, 피트니스, 골프연습장, 수영장 등 여가 시설과 각종 문화 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입주자 중 은퇴 후에도 강연, 컨설팅 등 도시 내에서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많다.
입주 보증금 9억 원 월 생활비 213만 원(식비 26만 원) 문의 02-2218-6000
TYPE B | 편리한 근교형 ▶ 인천 ‘마리스텔라’
성모요양병원, 인천국제성모병원을 가까이에 끼고 있어 응급 시 신속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또 단지 내 일반 상가와 푸드 코트 등이 있어 식사의 선택지가 다양하고, 젊은 사람과 어린이 등 외부인의 방문이 잦아 고립감이 덜하다. 천주교 인천교구가 운영하는 곳으로, 1층 성당에서 매일 미사가 진행되어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 도시의 편리함과 근교의 호젓함을 모두 느끼고 싶은 시니어에게 알맞다.
입주 보증금 2억4000만~4억 원 월 생활비 142만~196만 원 문의 032-280-1500
TYPE C | 정다운 전원형 ▶ 김제 ‘부영실버아파트’
전국 실버타운 가운데 보증금이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중가 실버타운 수준의 합리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인근에 노인대학과 게이트볼장, 요양병원, 노인종합복지관이 들어서 있어 주변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식사는 복지관 식당에서 저렴하게 해결 가능하다. 여름에 다 같이 모여 문 열어놓고 비빔밥을 해 먹고, 단체로 여행을 떠나는 등 입주민 간 교류가 잦으며 정겨운 분위기다.
입주 보증금 2000만~4000만 원 월 생활비 없음 문의 063-545-0343
한 해 동안 부산시 인구 규모가 주식 투자자로 새롭게 진입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주식 투자가 처음인 사람들이 지난해 기준 300만 명에 달한다. 계속되는 경제 불황 속 탄탄한 미래를 그리기 위해 재테크는 필수다. 아무리 절약하고 열심히 저축해도 돈 모으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노후 자금을 준비해야 하는 시니어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50대 주식 투자자는 1인당 주식 1억 724만 원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1억 원을 돌파한 것이다. 60대가 보유한 주식 잔액은 1인당 1억 1647만 원, 70대 이상은 1억 7168만 원에 달했다.
또, 미래에셋증권이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주식에만 투자하는 ‘동학 개미’ 121만 6600명 중 52.8%가 5060세대에 해당했다.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주체는 50대 이상 시니어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주식 투자 이외에도 새롭게 떠오르는 재테크 방법들이 있다. 시니어들은 주식 투자 대신 어떤 재테크를 하고 있을까?
주식·부동산 대신 나무 키우며 힐링하는 ‘나무 재테크’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직원의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나무 재테크'에 대한 시니어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뒤 이를 유지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는 하는데, 알고 보니 나무 재테크를 통한 수익만 해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 퍼졌다.
나무 재테크는 나무를 키워 시장의 수요만큼 키운 뒤 차익을 보고 파는 투자 방법이다. 최근 부동산이나 주식 재테크가 예전만큼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대체 수단으로 제시됐다.
나무 재테크를 하려면 최소 5년은 봐야 한다. 그러면 적지 않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설명이다. 인기 있는 품종을 잘만 고르면 일정 기간이 지나 배 이상의 수익도 낼 수 있다. 약 4000원에 에메랄드 그린 묘종을 사서 4년 정도 키우면 품질에 따라 3만~4만5000원에 판매할 수 있다.
묘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씨를 뿌려 모종을 길러 팔거나 다육 식물 등 작은 화분을 만들어 파는 방법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식물로 재테크에 도전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인지 은퇴자 또는 귀농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들에게 좋은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빌딩 숲 미세먼지 자욱한 도심에서 벗어나 진짜 숲에서 친환경적인 생활을 즐기고 이익도 얻는 ‘일거양득’ 재테크인 셈이다.
다만 환상을 갖고 함부로 뛰어드는 것은 금물이다. 나무를 심기 위해서는 토지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무리하게 토지를 매입하거나 분석 없이 처음부터 과하게 비싼 묘목을 사들여서는 안 된다. 먼저 이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뒤 토지를 매입하거나 빌려서 본인이 잘 관리할 수 있는 식물을 선택하며 추진해야 한다.
샤테크(샤넬+재테크)? 샤넬 가방으로도 돈 벌 수 있다
최근 국내 명품 소비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실제 시니어들의 명품 구매도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3~5월 15%에 머물렀던 G마켓과 옥션 5060세대 구매 품목 비중은 2020년 21%까지 올랐다. 매출 비중은 23%에서 25%로 늘었는데, 특히 수입 명품 구매액이 1년 새 24% 급증했다.
최근 사람들은 명품 브랜드인 샤넬 제품을 구매하려 새벽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까지 생기며 과열 양상을 보인다. 명품 업체들은 1년에도 4~5차례 가격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구매 제한까지 둔다. 샤넬 클래식 라인은 1인당 1년에 한 개 제품만 살 수 있다. 돈을 지불한다고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제품을 구매한 뒤 비싸게 되파는 ‘리셀’ 가격은 더욱 치솟고 있다.
명품 업체들이 계속 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명품은 오늘 가격이 제일 싸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돈벌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샤테크(샤넬+재테크)’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이는 희소성이 큰 명품 브랜드의 가방을 구한 뒤 바로 되팔기만 해도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차익을 낼 수 있어 5060세대에서도 명품 구매가 하나의 자산 관리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상화폐, 돌풍인가 광풍인가
최근 시니어들 사이에서 가상화폐 광풍을 일고 있다. 요즘 주식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 가상화폐는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하면 계속하게 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정부는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지만 2030세대는 물론 5060세대까지 뛰어들 정도로 대세 투자상품으로 성장했다. 요즘 시니어들은 젊은이들을 크게 뛰어넘는 시드머니(종잣돈)를 가상화폐 시장에 붓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이해는 젊은이들보다 부족하지만 주식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투자 경험과 든든한 자본력이 밑천이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가상 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50대 이상 이용자는 작년 10월 7만6765명에서, 올 4월엔 70만1018명으로 6개월 새 10배 수준이 됐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코인 시장에 뛰어든 장년층은 젊은이들보다 더 공격적으로 단타 매매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올해 1분기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에서 50대와 60대의 매매 횟수는 각각 326번, 292번으로 20대(226번)보다 많았다. 하지만 변동성이 매우 큰 가상화폐에 투기했다가 노후자금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는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특징이 있으며 코인 열풍에 투자 사기 사건도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65세 이상 고령자인 노인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는 기술이 준비된다. 최근 노인 운전자 사망자 수와 사고 건수가 늘고 있고, 노인에 의한 사고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비율이 23.4%로, 교통사망사고에서 4명 1명이 고령자 사고로 확인됐다. 2018년 22.3%에서 2019년 23.0%로 매년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교통안전공단(교통공단)이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도록 첨단운전자 보조장치(ADAS, Advanced Driver Assistant System)를 차량에 달고 이용했을 때 실질 효과를 분석해 연구한다고 15일 밝혔다.
교통공단은 이를 위해 지난 14일 김천경찰서,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경북지부와 함께 ‘고령 택시 운전자 교통사고 예방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번 협약으로 교통공단은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는 운전행태 분석과 정책개발 연구에 나선다.
김천 고령 개인택시 운전자 40명 차량에 ADAS를 설치해, 운행기록정보(DTG)와 ADAS 효과를 분석한다. ADAS는 차선을 이탈하면 경고하고, 전방에 있는 차량이나 물체와 추돌할 가능성이 생기면 경고해 운전자가 안전운행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단은 또 ADAS 기능이 효과를 발휘하면 경찰청이 추진하고 있는 '고령운전자 조건부 면허제도'와 연계해 ADAS를 장착하면 고령자 운전면허를 허용하는 방안을 건의할 계획이다.
조경수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본부장은 "다양한 교통안전 사업을 통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감소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70) 주교가 바티칸 교황청의 장관에 임명됐다. 교황청에 한국인 성직자 장관이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0대 시니어도 현역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준 사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일(현지시간) 바티칸 시국에서 유흥식 라자로 주교를 교황청 고위직인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하고, 대주교 칭호를 부여했다. 교황청 성직자성은 세계에서 사제·부제의 직무와 생활 업무를 관장하는 부처다. 신부의 사목 활동을 감독·심의하고, 신학교 관할권도 갖는다.
유흥식 대주교가 맡게 될 성직자성 장관은 교황, 국무원장 등으로 구성되는 교황청 행정 10위권 안에 포함되는 핵심 보직이다. 한국인 성직자가 차관보 이상 고위직에 임명된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유 대주교에 따르면 이번 임명은 이탈리아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추기경이나 대교구의 대주교가 아닌, 극동의 주교가 유서 깊고 영향력 있는 부서 장관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유 대주교는 대전교구 홈페이지에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에게 전하는 서한’을 올려 지난 4월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 당시 교황에게서 장관 제안을 받은 사실을 알렸다. 장관 제안을 받고 당황해하는 그에게 교황은 “교황청에는 아프리카 출신 장관은 두 분인데 아시아 출신 장관은 한 분뿐”이라며 “유 주교는 세계 보편교회에 매우 중요한 아시아 대륙 출신”이라고 설득했다.
바티칸 현지에서는 유 대주교의 장관 임명을 두고 북한이나 중국 문제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보도가 나왔다. 유 주교는 지난 12일 세종시 대전교구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북한이 교황님을 초청한다면 북한으로서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황님께서도 북한에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며 “제 자신이 교황청에 갔을 때 그러한 역할이 주어진다면 기꺼이 모든 일에 참여하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축전을 보내 “한국 천주교회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위상을 드높인 기쁜 소식”이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오신 분이어서 더욱 기대가 크다”고 축하했다.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유 대주교는 1979년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 교의신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현지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총장을 거쳐 2003년 주교 서품을 받았다. 2005년 4월부터 지금껏 대전교구장을 맡고 있다.
유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깝게 소통하는 몇 안 되는 한국인 성직자 중 한 명이다. 2014년 열린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충남 당진 솔뫼성지)에 교황을 초청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 한국을 찾았다. 지난 4월 바티칸에서 교황을 알현해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최양업 신부 시복 문제와 한반도 평화 이슈 등을 설명하기도 했다.
유흥식 대주교는 다음 달 말 교황청이 있는 로마로 출국해 8월 초부터 성직자성 장관직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장관 임기는 5년이다.
역사와 전통, 자연이 어우러진 고창군을 즐겁게 설명하는 그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모든 요소를 가진 천혜의 환경 속에 여러 가지 특용작물 재배로 의욕적인 발걸음을 이어나가고 있는 고창군은 이미 귀농귀촌인들에게 자연과 사업을 아우르는 이상적인 곳으로 소문나 있다. 유기상 군수의 목소리로 도시민들이 고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와 고창군의 특별한 매력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광범위한 고인돌 유적지가 알려주듯 고창군은 3000년 전 한반도에서 해양 문화, 대륙 문화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곳입니다. 가히 한반도의 수도였다고 할 수 있죠. 산, 들, 강, 바다, 갯벌까지 자연의 모든 게 있는 곳이며,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기상 고창군수의 목소리에 배어든 자신감처럼 전라북도 고창군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지명이다. ‘삼시세끼’, ‘1박2일’, ‘6시 내 고향’, ‘한국인의 밥상’ 등 시청률 높은 다양한 방송을 통해 산과 바다, 들녘이 공존하는 깨끗한 환경의 청정 지역으로 꾸준히 전국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2013년 5월에는 고창의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청정한 자연환경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이를 증명하듯 고창에는 선운산 도립공원, 노래로도 익숙한 선운사, 운곡습지, 학원농장 청보리밭, 동호해수욕장, 구시포해수욕장, 석정온천 등 관광지가 많고, 고창읍성, 무장읍성 등 역사·문화유적지가 계속 이어진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다.
하늘·땅·사람이 상생하는 고창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한 지방 소도시 대부분이 당면한 문제는 바로 인구 감소 현상이다. 기존 인구는 고령화되고 젊은 인구는 대도시로 유출되다 보니, 출생자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서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그런 반면 은퇴한 시니어들과 도시 생활에 지친 젊은 세대에게 귀농귀촌이 삶의 대안으로 각광받는 현상 또한 그 이면에 있다. 도시민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을지 결정짓는 열쇠 중 하나는 농업 소득 창출에 있는데, 그 부분에서 고창은 특별한 장점이 있다.
“고창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농토가 넓고, 다양한 소득 작물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복분자, 수박, 멜론, 블루베리, 쌀, 인삼, 고구마, 땅콩, 고추, 김 등 고소득 작물이 많고, 이런 작물들을 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받고 있죠. 그리고 고창의 농경지는 대부분 황토로 구성되어 게르마늄 성분이 타 지역보다 11% 더 많고, 볏짚에 많이 들어 있는 고초균도 타 지역 토양에 비해 5배 이상 많은 것으로 김길용 전남대학교 교수님의 연구 결과가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천 년을 가는 식초 만들다
유 군수는 고창에는 특산 고소득 작물이 많은 덕분에 부모님 대를 이어 농업에 도전하는 청년 농부들이 꽤 있다고 밝혔다. 그가 요즘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이 있다. 바로 식초다. 최근 마이크로바이옴 등의 이슈로 발효식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커진 상황. 그는 고창의 특산품인 복분자로 만든 식초는 기존 발사믹 식초보다 항산화 효과가 네 배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마실거리 중 최고는 식초죠. 천 년을 갈 수 있는 식초는 사람을 살리는 식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창을 세계 4대 식초도시 중 하나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고창군은 식초 원료가 되는 쌀과 보리 등 곡류와 복분자, 아로니아 등 베리류의 국내 최대 산지로 유명하다. 복분자 가공산업의 발달로 시설 기반이 이미 조성되어 있으며, 관련 분야 전문 인력 및 자체 연구소도 확보하고 있다. 식초 시장은 다른 발효식품과 달리 선도 지역이 없는 초기 산업 형태이기 때문에,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춘다면 고창식초가 세계적인 명품 식초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에 따라 2021년에는 식초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 추진된다. 발효식품 공유 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발효식품 공유 플랫폼 구축 사업과 복분자식초를 활용한 면역력 제품 개발 사업, 식초 문화 확산을 위한 식초마을 구축 확대 등 식초산업이 미래 농생명 식품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문화·치유 도시로서의 귀농귀촌 지역
최근 5년간 해마다 평균 1300세대, 1600명 이상 인구 유입 성과를 올리고 있는 고창군이 귀농귀촌인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는 무엇이 있는지 들어봤다.
“우선 예비 귀농귀촌인을 위한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2018년부터 30세대 규모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1950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를 대상으로 입교신청서를 접수한 결과 39명이 지원했더군요. 이후 서류심사 및 면접을 통해 30세대를 선정했습니다. 입교생들은 센터 내 공동주택 및 단독주택에 거주하면서 3월부터 11월까지 공동 실습 하우스와 텃밭을 활용한 작물 재배, 선도 농가 현장 견학, 고창군의 문화유적지 답사 등 다양한 교육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귀농인을 위한 영농정착금 지원과 초보귀농인 서포트 사업도 있다. 영농정착금은 주민등록 주소 기준으로 도시 지역에서 12개월 이상 거주하다 고창으로 전입(3년 이내)해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만 60세 이하 귀농인을 대상으로 1인당 100만 원을 3년에 걸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초보 귀농인 서포트 사업은 고창으로 전입 3년 이내, 만 60세 이하로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귀농인에게 종자·비료·농약 등 농업에 필요한 경상비용으로 200만 원 이내의 지원금을 준다.
귀농창업 활성화 지원 사업은 좀 더 고참(?) 귀농인을 위한 사업이다. 이는 고창으로 전입 5년 이내, 만 65세 이하 귀농인 세대주로서 창업자 또는 창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필수 교육과 창업 컨설팅 완료 후 사업계획서 발표 및 심의 결과에 따라 창업실행비를 차등 지원한다. 고창에서 거주지 마련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위해 시행하는 귀농귀촌 농가주택 수리비 지원 사업은 고창으로 전입 5년 이내로 주택을 구입 또는 임차 후 수리하여 정착하고자 하는 세대주에게 지붕·화장실·주방 개량 및 보일러 교체 등 주거 생활에 꼭 필요한 수리비를 3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최근 인구 통계적인 급격한 변화에 따른 가족과 이웃의 해체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고창군에서는 이러한 점에도 주목해 소규모 귀농귀촌 기반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5세대 이상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대표자를 선정, 건축 허가를 받은 후 사업을 신청하여 대상자로 선정되면 5000만 원 이내의 사업비로 진입로 포장, 상하수도 관로 매설, 배수로 및 옹벽 설치 등 필요한 기반을 조성해준다.
귀농 인구 전국 1위 기록
이러한 배경과 노력 덕분일까.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창으로 전입한 귀농귀촌 총 인구는 1만2755세대, 1만7842명이다. 특히 통계청 조사 결과 2018년에는 1363세대 1748명이 전입하여 전국 기초지자체 중 귀농 인구 1위를 했으며, 2019년에는 1104세대, 1370명이 전입하여 전국 5위(전라북도 1위)의 성과를 달성했다.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에서의 성과 또한 출중했다.
“지난해 27세대가 체류형 시설에 입주하여 8개월간 영농 관련 교육을 받고 총 20세대가 고창에 정착, 74%의 정착률을 기록해 체류형 시설을 운영 중인 전국 8개 지자체 중 가장 높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지난해 교육을 수료한 후 고창에 정착한 20세대는 고창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며, 도시에 사는 친구 및 지인들에게 아름답고 깨끗한 고창으로 오라고 권유하는 등 고창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고창군은 이러한 가시적 성과를 바탕으로 귀농귀촌인 재능기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쌓고 귀농이나 귀촌을 해 농촌에서 소중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고창군 자원봉사센터 및 각 읍면 귀농귀촌협의회 지회와 연계하여 각 마을 상황에 맞는 재능기부가 가능하다. 이런 재능기부를 통해 성취감 및 자존감 향상은 물론, 기존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며 갈등도 해소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유 군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해도 귀농귀촌은 어려운 일이다. 생활의 근거지를 변경하는 것은 큰 변화가 뒤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 군수는 예비 귀농귀촌인들에게 귀농귀촌을 한 후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농사를 짓는다면 어떤 작물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연구하고 많은 정보를 찾아서 비교 분석해보라고 조언했다. 목표를 분명히 설정한 다음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곳을 귀농귀촌지로 정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주거지 및 농지 마련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당 지역을 자주 찾아서 여기저기 다녀보길 바랍니다. 먼저 귀농귀촌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도 들어보고, 행정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 상담실을 찾아가 상담도 해보고, 발품 팔아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결정했을 때, 귀농귀촌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 삶의 가치를 위해 생활의 틀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오시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원정책이나 보조금만 기대하고 오시지 않길 바랍니다. 그저 자연과 하늘·땅·사람과 함께하는 고창에서 치유하며 사는 행복한 삶을 생각하고 내려오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