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창업’으로 인생 2막을 ‘창업’하다

기사입력 2021-07-02 08:00 기사수정 2021-07-26 09:43

‘창업’ 배우 겸 연출 서범석

▲뮤지컬 '창업'의 총괄 프로듀서와 연출을 맡은 배우 서범석.(광나는 사람들)
▲뮤지컬 '창업'의 총괄 프로듀서와 연출을 맡은 배우 서범석.(광나는 사람들)


큰 꿈을 품고 신사업에 뛰어든 청년, 혹은 인생 삼모작을 시작한 중년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우리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 무대에 줄줄이 등장한다. 정도전부터 이성계, 이방원까지. 알고 보니 ‘나라를 열다’는 사전적 의미의 ‘창업’이다. 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의 이야기를 다룬 퓨전사극 ‘창업’은 배우 서범석이 공연 제작사 ‘광나는 사람들’을 차리고, 연출과 제작을 총괄한 첫 뮤지컬이다. 그에게 이번 공연이야말로 새로운 도전이자 창업인 셈.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배우에서 프로듀서로 출사표를 던진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뮤지컬 제작을 결심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있었어요. 30대 후반쯤부터 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죠. 그런데 그동안은 배우 생활을 하느라 바빠서 꿈을 펼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 작년에 코로나19로 강제 휴식을 하게 되면서 열정을 쏟아부을 곳이 사라진 거예요. 지금이 찬스다 싶어서 작가 형에게 포부를 말했죠. ‘형, 대본 좀 써주세요. 저 조선 왕조 이야기로 뮤지컬 다섯 개 만들고 싶습니다’라고요.

Q. 왜 조선 왕조 이야기인가?

저는 우리 것이 신기할 정도로 좋아요. 우리 말과 글, 소리, 악기가 마음을 움직이죠. 춤을 배울 때도 발레나 재즈댄스보다는 한국무용이 제일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공연계에 외국 작품의 비중이 큰 게 아쉬워요. 셰익스피어를 시리즈물로 만들려는 사람은 많아도 한국적 소재를 꾸준히 다루려는 사람은 드물죠. 그렇다면 내가 한번 시리즈로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조선 건국 이야기가 그 시작이고요.

Q. 장르를 퓨전사극으로 택한 이유는?

대하드라마 같은 스케일을 갖출 수 없다면, 적어도 식상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극 어투를 최대한 빼고 요즘 말로 바꿨어요. ‘야 정몽주, 네가 잘났다고 생각해?’ 이런 식으로요. 대사 곳곳에 요즘 이슈도 반영했어요. 정도전이 날씨를 물어보면 정몽주가 ‘미세먼지 매우 나쁨’이라고 대답해요. 작품을 본 친한 형님은 ‘이성계가 이렇게 웃겨도 되는 거냐?’ 하시더라고요. 사극에서 흔히 본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다수 관객분들은 그런 포인트에 재미를 느끼신 것 같아요. 연령 불문 좋아하시더라고요.


▲뮤지컬 '창업' 공연 스틸컷. 캐스트 대부분이 신인 배우로만 구성된 이번 작품은 도전적이면서도 새로운 시도로 가득하다.(광나는 사람들)
▲뮤지컬 '창업' 공연 스틸컷. 캐스트 대부분이 신인 배우로만 구성된 이번 작품은 도전적이면서도 새로운 시도로 가득하다.(광나는 사람들)


Q. 제작에 어려움을 느꼈던 순간은?

출연하는 배우들이 거의 신인이에요. 신인을 발굴해서 함께 작품을 만드는 게 제 또 다른 목표였거든요. 아주 무모했죠.(웃음) 주변에서도 뜯어말렸어요. ‘신인이 뭘 할 수 있겠냐’는 반응이었죠. 그런데 이 친구들, 연기 못 한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모든 시간을 연습에 쏟아 가창력, 연기력이 일취월장했어요. 문제는 인지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찾아주시는 분이 많지 않다는 거죠. 보석 같은 친구들이 많은데, 빈 객석을 볼 때면 마음이 좀 아프더라고요.

Q. 작품을 보고 느꼈으면 하는 바는?

‘창업’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자신의 신념에 확신을 갖고 이를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사는 인물이에요. 그들을 보면서 ‘나는 과연 저들만큼 뚜렷한 신념을 갖고 살고 있는가?’ ‘나의 확신이 욕심이 되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 하는 고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사라는 게 그렇잖아요. 과거의 인물로 오늘의 나를 돌아보는 역할을 해주니까요. 사실 작품을 통해 우리 역사에 작은 흥미를 갖게 되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요.

Q. 첫 연출작, 어떻게 기억될 것 같나?

제가 지금 나라를 창업한 이성계의 마음과 똑같은 것 같아요. 이성계의 노래 중에 ‘누구의 손을 잡고, 누구의 손을 놓고, 하나의 뜻을 가질 수는 없는가’라며 고뇌하는 가사가 있어요. 그 가사처럼 프로덕션을 이끌면서 매번 선택과 갈등의 순간이 이어졌어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추구하는 색깔을 잃지 않고 만들어낸 작품인 만큼, 새 뮤지컬의 탄생을 알리는 진정한 ‘창업’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뮤지컬 '창업' 포스터(광나는 사람들)
▲뮤지컬 '창업' 포스터(광나는 사람들)


뮤지컬 '창업'

일정 7월 18일까지 장소 예그린씨어터 연출 서범석

출연 서범석, 박종찬, 김재한, 박상돈, 안유진, 장대성 등

<이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2021년 7월호(VOL.79)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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