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가 구리시 아치울에서 투병 끝에 타계한 뒤 13번째 봄날이 찾아왔다. 구리시에서는 올해도 그를 추모하는 낭독 공연을 열었다. 박완서 작가를 기리고 그의 문학을 잊지 않기 위해, 구리아트홀이 생기기 전 시청 한편에서부터 시작한 공연이 어느덧 12회 차를 맞았다.
구리아트홀 코스모스 대극장 앞은 공연 30분 전부터 중장년 관객들로 북적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포스터 앞에서 다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관객들은 대극장 1층은 물론이고 2층까지 객석을 가득 채웠다. 공연은 영상, 노래, 연주, 연기, 낭독까지 다채롭게 구성됐다. 관객들은 웃기도 울기도 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하며 공연을 즐겼다. 한 관객은 무대가 끝나자 “낭독 공연은 처음 보는데 색다르네”라고 평하기도 했다.
설교하지 않는, 그러나 여운 주는 동화
자전거를 갖고 달리면서 맛본 공포와 함께 까닭 모를 쾌감을 회상한다. 마치 참았던 오줌을 내갈길 때처럼 무거운 억압이 갑자기 풀리면서 전신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그 상쾌한 해방감. 한번 맛보면 도저히 잊힐 것 같지 않은 그 짙은 쾌감. 아 나는 도둑질을 하면서 죄책감보다 쾌감을 더 짙게 느꼈던 것이다.
-‘자전거 도둑’ 中
한국 문단의 어머니라 불리는 박완서 작가의 동화 ‘자전거 도둑’의 주인공 수남의 독백이다. 토실하니 붉은 볼과 깨끗한 눈을 가진, 청계천 세운상가 뒷길 전기용품 도매상의 열여섯 살 꼬마 점원 수남이. 꼬마의 고백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자전거 도둑’은 1979년 동화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 들어 있던 작품이다. 이 중 아이들이 읽을 만한 것을 모아 1999년 다시 펴낼 때 책의 표제가 됐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작품이기에 한 번쯤 읽어봤을 내용이다.
박완서 작가는 소설, 수필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썼지만, 동화에 특히 애정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이야기꾼 할머니로 남고 싶었기 때문에 동화를 집필할 때는 특히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어느 한 작품을 꼽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화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쓰기 마련인데, 그는 동화를 통해 설교하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어른들도 읽었으면 했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는 ‘자전거 도둑’을 오히려 어른을 위한 동화 같다고 했다.
이날 낭독 공연 사회를 맡은 최지애 소설가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16세에 이미 깨달은 수남이가 2024년 우리 곁에 있다면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텐데, 분명 좋은 어른으로 반듯한 삶을 살았으리라 믿는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책 ‘박완서의 말’을 인용해 “박완서 작가님은 문학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고민하고 갈등했지만, 고정관념이나 잘못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설교하려 하지 않았다.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 동화는 참 드물다. 작품을 읽고 오래도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박완서 문학의 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완서 작가의 문장 따라 걷는 길
1년에 한 번 열리는 낭독 공연 외에도 언제든 박완서 작가를 추모할 방법이 있다. ‘박완서 자료실’에서 그의 문장을 음미해보는 것이다. 자료실은 구리시 인창도서관 2층에 있다. 구리시 아치울에서 생을 마감한 박완서 작가의 발자취를 담은 공간이다.
자료실 입구에는 박 작가의 작품을 필사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다. ‘박완서 필사’ 코너를 지나 자료실로 가는 길 벽면에는 작가의 삶과 작품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마치 그의 삶을 따라가듯 걸으며 자료실로 들어서면 그의 등단작 ‘나목’부터 소설, 수필, 동화, 문학상 수상 작품 등 분야별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자료실 운영 시간 10:00~16:00)
올해는 ‘리멤버, 박완서’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주 토·일요일 하루에 네 번(가족 대상 : 10시·14시, 일반 대상 : 11시·15시) 구리시 문화관광해설사가 박완서 작가의 주요 작품과 일생을 연결 지어 해설한다. 주제는 △소녀,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여자, 박완서 : 나목 △엄마, 박완서 :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노인, 박완서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등 네 가지다. 해설 프로그램은 박완서 자료실에서 진행되며, 구리시 문화예술과(031-550-2565)로 전화 예약을 하거나 구리시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호원숙 작가
딱 알맞은 사랑 주신 어머니를 그리며
박완서 작가의 맏딸, 호원숙 작가는 책 ‘박완서의 말’을 엮으면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리워지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책을 펼치면 살아 계실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 생생한 목소리로 들릴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작품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매년 열리는 박완서 작가 추모 낭독 공연에 참석하며 호 작가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이번 13주기 추모 낭독 공연에도 참석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 작품과 인터뷰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많이 보여주셨는데요. 13주기 추모 낭독 공연을 맞이하는 작가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공연을 올리지 못했던 한 번을 제외하고 1주기부터 매년 공연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구리시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공연은 작품 ‘자전거 도둑’이 동화라는 점에서 조금 특별합니다. 어머니가 첫 손주를 보았을 때 쓴 작품이죠. 그야말로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자전거 도둑’에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어른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머니를 보며 좋은 어른의 역할을 깨닫게 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머니는 어른으로서 상대에게 알맞은 사랑을 주신 분이에요.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었죠.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이 사랑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북돋아주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거든요. 넘치도록 사랑을 붓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아셨죠.
2023년 ‘어른의 부재’가 트렌드 키워드로 꼽혔어요. 그래서인지 박완서 작가님이 더 그립습니다. 그만큼 좋은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 쇼츠라는 게 유행이라면서요? 저도 어떤 짧은 메시지를 보면 ‘어머 진짜 옳은 소리다’ 싶은데 순간적으로 날아가 버리더라고요. 휴대폰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누구든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필요한 걸 배우면 좋겠어요. 가장 가까운 곳에 배울 게 많아요. 사실 70세가 다 된 제 나이에도 선택해야 할 때 무엇이 옳고 그른가 망설이거나 쉽게 판단이 안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배웁니다. 용기 내어 사랑을 주고, 받은 사랑에 책임지며 살면 좋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그런 것들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는 문학 작품 속에서도 어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짧은 영상과 달리 작품 속 인물을 보며 생각하고 배울 수도 있으니까요. 어른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작품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요즘 고전을 봐요. 전에 읽었던 건데도 다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이런 게 있었구나!’ 싶어요. 그 시절 작가와 책을 통해 공감하고 교감하며 대화하는 거죠. 어머니 작품 중에서는 ‘미망’을 추천하고 싶어요. 구한말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로, 할아버지는 옛날 사람이지만 미래 주역이 될 손녀에게 꿈을 심어주는 모습이 나오는데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그냥 꿈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거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해요. 딱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사랑이요.
오고 오는 칭찬
많은 직장인이 그러하듯 에디터가 업무 도중 칭찬받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취재원과는 일로 만나 일을 하고 쿨하게 헤어진다. 시니어 매거진에서는 다르다. 첫 만남부터 칭찬이 오간다. 칭찬받는 쪽은 거의 에디터다. 시작은 대개 이런 식이다. “나이 있는 사람이 오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젊은 분이!”
칭찬은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더 후해지는 경향이 있다. 자칭 ‘초고령자 전문 인터뷰이’ 문혜진 기자는 자존감을 충전해 올 정도다. “어르신이 그래요. ‘키도 크고 얼굴도 귀엽네.
몇 살? 아이고, 애기다. 애기!’라고요. 뭐랄까, 되게 귀하게 대해주는 느낌?”
일이 끝난 뒤엔 감사 인사도 받는다. “이런 기회 아니었으면 나 같은 늙은이가 젊은 사람하고 언제 또 이야기해 보겠어요.” 칭찬에 민망해하다가 뒤돌아 콧잔등이 시큰한 것이 우리에겐 예삿일이다.
간단한 심층 인터뷰
에디터는 취재원 눈치채지 못하게 슬쩍슬쩍 시간을 체크하는 버릇이 있다. 섭외 당시 약속한 시간에 맞춰 취재를 마감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시니어 매거진에선 넘기기 일쑤다. 어르신 말씀 끊기 어려워서 30분, 질문 잊어버리셔서 30분, 인생 조언 듣다가 30분… 그렇게 삼천포로 빠진 인터뷰 방향을 되돌려 마감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부담될까 “간단히 이야기 좀 들으려고요” 하고 갔다가 깊고 길게 이야기하는 게 일상이다.
자주 간식, 가끔 식사
대개 인터뷰는 목을 축이면서 이뤄진다. 커피나 차. 그것도 아니면 생수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시니어 매거진에선 간식이 추가된다. “출출하겠다”면서 하나둘 내오는 먹거리를 완곡히 거절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어느 순간 아기 새 마냥 받아먹는 모양새가 된다. 우리는 이런 걸 먹었다. 깨찰빵, 수박, 고구마(까주심), 귤(까주심), 장어(구워주심) 등등등. 그 결과 취재팀은 입사 초기보다 조금씩 확대됐다.
뜻‘밭’의 선물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은 현장에서 잘 지켜지고 있다.
시니어 매거진에서도 마찬가지다. 뭐라도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 없진 않지만 마음만 받겠다고 하고선 얼른 내뺀다.이따금 그 마음은 택배 상자에 담겨 편집국에 도착한다. 직접 밭에서 키웠다는 상추, 쑥갓 등 농산물이다. 그런 날엔 값을 매길 수 없는 어르신의 사랑을 한 줌씩 들고 퇴근한다.
시니어 매거진에서는 다반사지만 확실히 흔한 일은 아니다.
과거에는 나이가 곧 경험이고 지혜여서 ‘나이 든 사람’이 ‘어른’이었다. 5060세대가 ‘동네 어른’을 추억하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2024년 우리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 어떨 때 어른이 되었다 느낄까? 좋은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 세 명의 전문가와 함께 이 시대의 어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대담 참여자 강용수 작가·백종화 리더십 코치·최영희 메타연구소 소장 진행 이연지·문혜진 기자
◇강용수 작가(56세,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교수)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한다. 최근 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백종화 리더십 코치(45세, 그로플 대표)
18년 직장생활 후 회사 그로플을 설립, 리더십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대기업 CEO·임원·팀장 등의 리더십 코칭을 한다.
◇최영희 메타연구소 소장(67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다. 약물 치료를 선호하지 않아 인지행동·스키마·마음챙김 치료 등을 하고 있다.
진행자 본지에서 진행한 ‘세대 간 존경-존중에 대한 인식조사’(2024)에 따르면 ‘어른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책임감 있는’이 꼽혔어요. 2014년 조사에서는 ‘윤리’가 중요한 키워드였는데, 2024년에는 ‘책임감’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른 이유가 뭘까요?
강용수 책임이라는 말이 조금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니체는 타인을 책임져야 한다는 걸 기대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주권적 개인이라는 말을 하는데요. 어떤 공동체를 아우르는 책임이라기보다, 자신을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죠.
백종화 사람마다 책임감에 대한 정의가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신뢰와 실력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을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데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고, 점점 어려운 일을 맡게 될 때 잘해내기 위해 전문성을 끊임없이 확보하는 게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영희 그러니까 책임이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결과를 자기 몫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과거 결핍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가 부모가 되어 내 자식에게 결핍을 물려주려 하지 않다 보니, 젊은 친구들은 의사결정할 일이 별로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부모가 깨워주고 옷 입혀주고 밥 먹여서 정해준 학원에 보내고, 집에 오면 이 닦고 잠자리에 드는 식이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언젠가 스스로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좋든 싫든 올 텐데,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굉장히 불안해하죠. 책임져야 한다는 건 알지만, 어렵고 두려울 수밖에요.
백종화 조직에서도 의사결정 경험이 중요해요. 리더들이 결정해왔기 때문에 결정하지 않은 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 구성원들은 의문을 가지고, 반대로 리더는 구성원 자신의 일인데 왜 책임지지 않느냐며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거든요.
진행자 일상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경험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의미네요. 그래서인지 설문조사에서도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있을 때,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책임질 수 있을 때 어른이 되었다고 보는 듯한 결과가 나왔어요.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느낄 것 같은 순간’을 물었을 때 2030은 ‘경제적으로 자립했을 때’를, 5060은 ‘일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때’를 꼽았거든요.
최영희 나 혼자도 벅찬데 누구를 돌보겠어요. 하버드대학교에서 사회적 관계를 70년 넘게 연구한 것이 있는데요.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가 좋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관계는 어떤 사람이 고통받는다면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고,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나누는 관계를 의미하는데요. 개인주의와는 반대라고 볼 수 있죠. 시대에 따라 우리가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의 기본적인 기준, 뭐랄까 도덕의 의미가 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백종화 우리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것도 있어요. 5060세대는 ‘우리’가 익숙해서 ‘우리 안에서 내가 이 정도는 해야 돼’라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2030세대는 우리 가족, 우리 회사가 아니라 나의 가족, 나의 회사라는 개념이라 충돌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진행자 요즘에는 많은 분들이 책·강연·영상 등으로 정보만 얻는 것이 아니라 고민에 대한 답도 찾고 위로도 받는 것 같아요. 비대면으로 어른을 찾는 셈이랄까요?
강용수 사실 제 나이쯤 되면 주변에서 어른을 찾는 것도, 어른이 되는 것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듣는 사람이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어른이라면 쓴소리도 좀 해야 하죠. 다만 남을 가르치려 하고 “내가 겪어봤는데 말이야”라며 나서는 게 아니라, 타인이 어른으로서 인정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종화 요즘 세대는 유튜브로 모든 걸 배우잖아요. 어른한테 고민을 공유할 필요가 없어져버린 거예요. 지식과 경험이 온라인에 다 있으니까요. 세대 이슈가 아니라 이제는 시대 이슈라고 봐야 해요. 모두가 똑똑해진 시대라 오히려 젊은 꼰대가 훨씬 많아요. “내가 아는 게 많으니까 내가 맞는데 왜 엉뚱한 소리 하세요?”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건 다른 건데 말이죠. 그런데 SNS에서 보는 것들은 다 결과거든요. 성공한 모습만 보는 거잖아요.
최영희 옛날에는 사회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우리가 어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세히 보면 뭐 단점도 있고 그래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개인의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비치잖아요. 그러니 소위 신화적인 존재가 나오기 어렵죠. 이걸 다시 말한다면,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느냐는 거예요. 어른을 정의할 때 아주 완벽한 기준을 들이대는 접근 방법은 옳지 않은 것 같아요.
강용수 공감합니다. 완벽한 어른은 없어요. 고통과 실패를 보여주는 게 어른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성취하려는데 잘 안 되잖아요? 그런 경험이 오히려 성숙해지는 기회 같거든요. 쇼펜하우어 역시 40대에 많은 실패를 경험했는데요. 외부에서 깨져보면서 남들의 시선과 평가를 벗어나 온전한 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패를 거쳐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과정을 보는 게 중요한데, 요즘은 결과로만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최영희 멀리서 대단한 노력을 하는 사람을 찾아내 따르려고 할 게 아니라, 매일 만나서 부딪히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찾는 게 좋죠.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이 가까이 있으면 학습이 쉬워요. 누군가를 흉내 내겠다는 게 내가 변화하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되거든요. 거창하진 않아도 나름의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 인간다움이 있는 사람을 어른으로 삼아야 하는 거죠. 삶은 고통이잖아요. 예상치 못한 좌절들이 올 때 넘어졌다가도 잘 일어나는 것, 즉 회복 탄력성이 좋을수록 건강한 어른이라고 봅니다.
진행자 결과 중심적인 사회이다 보니 주변에 있는 어른들을 미처 보지 못하는 것 같네요. 그럼에도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는 어른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아요. 설문조사에서도 ‘가까이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83.8%가 그렇다고 했거든요.
백종화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만 과정이 중요해요. 어려움도, 고난도, 극복하는 것도 볼 수 있거든요. 어른이라면 그런 걸 보여주는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의 과정을 도와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어른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에게 배울 점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해요. 좋은 어른, 나쁜 어른이 아니라 나와 맞는 어른을 찾아야 하는 거죠.
최영희 그리스 신전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해요. 세대 차이는 계속됐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예요. 요즘에는 20대도 10대를 이해 못 해요. 그러니 내가 옳고 내가 항상 중심이라는 생각을 깨야 합니다. 그냥 다른 거거든요.
백종화 맞아요.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려면 먼저 나를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나다움이 먼저인 거죠. 리더십의 핵심 역시 ‘자기 인식’(Self Awareness)입니다.
강용수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차이를 알고 인정하는 과정인데요.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개성이라고 봅니다. 부·명예와 같은 외부의 나다움이 있고, 건강·성격 같은 내부의 나다움이 있다고 하는데요. 자기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게 필요하죠. 그걸 알아가는 노력이 어른이 되는 과정 아닐까 싶습니다.
진행자 어른이 되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네요. 다음으로는 나와 상대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거고요. 그렇다면 어른이 되는 걸 훈련할 수 있을까요?
백종화 조직에서의 어른을 리더라고 본다면 리더는 태어나는 걸까요, 만들어지는 걸까요? 과거에는 태어났습니다. 영향력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교육을 받아 리더로 성장하는 거라, 그 말이 맞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부모, 팀장, 매니저, 선배 어떤 역할이든 리더에 포함됩니다. 태어난 대로 사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더 다양한 영향력을 키울 필요가 있죠.
강용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면 남과의 차이도 알게 되죠.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주에서 가장 개성이 도드라진 존재라고 해요. 내가 개성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의욕의 차원으로 넘어가면 나와 타인은 다르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그가 고독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죠. 쇼펜하우어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한 경험과 학습으로 새롭게 획득되는 성격이 있다고 봐요. 물론 유전적인 성격은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기에, 새로운 성격은 아주 어렵게 얻어진다고 합니다.(웃음)그래서 글쓰기, 책읽기 등을 좋은 습관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죠.
최영희 프로이트는 우리 인간의 모든 선택이나 행동의 결정이 무의식 안에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 무의식의 영역을 찾아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죠. 그런데 깨달았다고 쉽게 변하지는 않아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또 다릅니다. 매일 다니는 산책길을 생각해볼까요. 기존에 있는 길을 걸어요. 그런데 지름길을 내려면 풀숲을 헤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하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요즘 효율적인 방법이 많이 개발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훈련할 수 있습니다.
백종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건 결국 행동이거든요. 행동의 시작은 성격이라고 봅니다.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기질과 후천적으로 받은 영향으로 생긴 성격인데요.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행동이 있고, 그것에 익숙해져요. 이를테면 평생 오른손으로 젓가락질하는 것과 같아요. 왼손으로 젓가락질하려면 어색하죠. 그런데 평생 하던 행동과 반대되는 어색한 행동을 훈련할 때부터 영향력이 달라집니다.
최영희 정신과 진단에 ‘성격장애’라는 게 있어요. 20여 년 전에는 치료가 안 된다고 했어요. 오늘날 보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지금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스키마 치료도 그런 맥락인데요. 스키마는 자극과 반응 세트의 총합입니다. 백 코치님이 말한 익숙한 행동이라는 게 스키마 이론으로 보면 자극이 왔을 때 내가 하는 반응이 자동화된 거예요. 그대로 살아도 되는데, 그게 자신에게 고통을 주거나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나를 위해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명상 등으로 내 안에 있는 걸 끌어내는 훈련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사랑하는 능력을 훈련할 수 있어요. 내 성격은 나 외엔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백종화 어른이 된다는 것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정답을 고민하는 사이에 시대도 상황도 바뀔 거예요. 결국 기존에 하던 익숙한 행동을 그대로 하게 됩니다.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해야 변화가 있잖아요. 어색하고 불편하고 실패하겠지만, 그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훈련하다 보면 어른이 되어가지 않을까요?
●Exhibition
◇유람일지: 유(儒)를 여행하다
일정 4월 21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에서 만나는 충청 유교 문화유산’을 주제로 하는 전시는 조선시대 선비의 삶을 ‘고택’, ‘서원’, ‘구곡’(九曲)으로 나눠 소개한다. 집, 학교, 자연이라는 공간을 통해 나고 자란 선비의 삶의 궤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닮았다. 1부 ‘고택유람’은 충청도 명문가인 파평 윤씨 가문의 명재고택을 중심으로 한다. 윤증의 초상 초본, 문중의 교육 공간인 종학당의 디오라마(실물 축소 모형) 등을 볼 수 있다. 2부 ‘서원유람’에서는 충청도 유일의 유네스코 등재 서원인 돈암서원을 통해 배움과 실천을 지향한 선비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예학을 정립한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 그리고 송준길, 송시열은 서원의 대표 선비로 꼽힌다. 3부 ‘구곡유람’에서는 율곡 이이의 정신적 이상향이자 선비들이 자연에 은둔하며 학문을 수양했던 공간인 ‘구곡’을 디지털 화폭에 담아낸 수묵 미디어아트 영상을 전시한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선비들이 이야기하는 시대정신, 일상의 가치, 타인을 대하는 태도, 자연을 품은 풍류 등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힐링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제길 : 빛 사이 색
일정 5월 12일까지 장소 전남도립미술관
평생 ‘빛’을 쫓으며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한 우제길(1942~) 작가의 회고전. 총 1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1부 ‘기하학적 추상의 시작’은 ‘빛’을 주제로 하기 전인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그의 과도기적 작품을 살펴본다. 2부 ‘어둠에서 찾은 빛’에서는 절단된 면의 틈 사이로 솟아나는 빛 작품들과 어두운 배경에 작가 특유의 직선이 강조된 대작들을 소개한다. 3부 ‘새로운 조형의 빛으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구도가 다양해지고 밝은 색채가 등장하며 확장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4부 ‘색채의 빛’은 원색의 빛을 다양한 실험적 방식으로 구현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5부 ‘지지 않는 빛’에서는 신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Book
◇어른의 말습관(김진이·다른상상)
같은 말이라도 어떤 사람은 반감을 사고, 어떤 사람은 호감을 얻는다. 그 이유는 바로 ‘말하기’의 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경인방송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진이는 책 ‘어른의 말습관’을 통해 성숙하게 말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어른답게 말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분명히 말할 줄 알고, 그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또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관계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킬 줄 안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말투만 바꾼다고, 기술만 답습한다고 되지 않는다. 내 말 속에 숨어 있는 디테일과 패턴, 즉 말하는 습관을 돌아보고 바꿔야 한다. 노력만이 말습관을 기르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책에서는 서투른 언어를 다듬어 말하는 법, 각각의 상황과 내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말과 태도를 장착하는 법, 사람들과 주파수를 맞춰나가며 내 세계를 확장하는 법, 부정적 말의 패턴을 소거하는 법, 감정을 차분히 다스려 담백한 말로 갈무리하는 법 등 여러 가지 말하기 방법을 소개한다. 자기 말의 주인이 되어 일, 관계, 인생을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 보자.
◇멋진 인생을 위해 오십부터 해야 할 것들(김옥림·미래문화사)
‘가슴이 뛰는 한 영원한 청춘’이라는 시인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나답게 사는 것이 인생 후반기를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위험하고 매혹적인 제로 이야기(찰스 세이프·DKJS)
제로(0)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자 철학, 종교, 수학, 물리학의 근간이다. 저자는 0의 출현, 억압, 성장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시니어를 위한 슬기로운 디지털 생활(조진화·임지윤·포레스트북스)
디지털 전문 강사인 모녀가 합심해 만들었다. 스마트폰·키오스크 사용법 등 부모님이 알았으면 하는 디지털 정보 10가지를 안내한다.
●Stage
◇러브레터
일정 4월 4일 ~ 4월 27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연출 김민정
출연 정보석, 박혁권, 하희라, 유선
연극 ‘러브레터’는 30개 언어로 공연된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작품이다. 밀도 높은 2인극이 특징으로, 무대에는 50년 동안 편지를 매개로 서로의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앤디와 멜리사만 존재한다. 글을 사랑하는 모범생 앤디 역은 정보석과 박혁권이 맡아 연기한다. 그림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멜리사 역에는 초연 당시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 하희라와 함께 유선이 캐스팅됐다. 제작사 측은 “깊은 내공으로 다져진 베테랑 배우들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사랑과 이별, 그 무수한 사연들도 디지털 기기의 버튼 하나로 정리되는 요즘, 잊고 있었던 우리의 순수성을 깨워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친정엄마
일정 4월 20일 ~ 5월 26일
장소 서울 한전아트센터
연출 김재성
출연 김수미, 이효춘, 신이현, 선예, 김도현, 박장현 등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친정엄마’는 2004년 원작소설 출간 이후 연극,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특히 뮤지컬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진수로 통하며, 실력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이번 시즌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딸을 걱정하는 친정엄마 봉란 역에 김수미와 이효춘이 캐스팅됐다. 김수미는 초연부터 봉란 역을 연기하고 있으며, 이효춘은 뮤지컬에 첫 도전한다. 엄마와 티격태격하다 이내 사랑을 깨닫게 되는 딸 미영 역은 신이현이 지난 시즌에 이어 연기하며,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새롭게 합류했다.
◇클로저
일정 4월 23일 ~ 7월 14일
장소 플러스씨어터
연출 김지호
출연 이상윤, 진서연, 김다흰, 이진희, 최석진, 유현석, 안소희, 김주연
연극 ‘클로저’는 1997년 초연 이후 50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공연됐으며, 2004년에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극은 현대 런던을 배경으로 앨리스, 댄, 안나, 래리라는 네 명의 남녀가 만나 서로의 삶에 얽혀드는 과정을 그린다. 국내 공연은 8년 만인 가운데, 원더걸스 출신 안소희가 연극에 첫 도전해 눈길을 끈다. 앨리스 역을 맡은 그는 “연극이라는 무대와 관객들과의 교감에 긴장과 더불어 설레는 마음이 있다”며 좋은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국민연금공단이 기초연금 도입 10주년을 기념해 ‘국민 참여 공모전’을 개최한다.
공모전은 기초연금 수급자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참여할 수 있도록 공모주제와 공모부문을 선정했다.
주제는 ‘기초연금 관련 모든 이야기’다. 수급자 본인, 미래의 수급자, 수급자 가족 등 다양한 이들의 입장에서 기초연금에 관한 이야기를 낼 수 있도록 다섯 가지 세부 주제를 마련했다.
세부 주제는 △나의 노후생활을 지켜주는 기초연금 △기초연금과 함께하는 나와 내 가족의 일상 △기초연금의 장점 또는 필요성 △내가 바라는 기초연금 △기초연금을 떠올릴 수 있는 자유주제다.
공모 부문은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동영상, 생활수기, 사진+한 줄 메시지 부문이 있다. 다음으로 기초연금 수급자가 지원할 수 있는 손글씨와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포스터 부문이 있다.
수상은 독창성, 전달성, 활용성 등을 기준으로 예선과 본선 심사를 마친 뒤 ‘대국민 온라인 심사 이벤트’를 열어 선정할 계획이다.
수상자에게는 각 부문에 따른 상금과 함께 분야별 최우수상은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나머지 수상자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상을 수여한다.
한편 ‘대국민 온라인 심사 이벤트’에 참여하는 이들을 대상으로도 100명을 추천해 5000원 상당의 모바일 상품권을 지급한다.
공모전은 3월 18일부터 시작해 오는 5월 6일까지 진행된다.
공모전과 관련된 안내사항은 공모전 누리집에서 확인하거나 사무국으로 전화해 문의하면 된다.
“요때 죽으면 딱 좋아.”
“친구? 다 뒷산에 누워있지.”
TV 속 어르신 인터뷰를 보다 보면 속절없이 웃음이 터질 때가 있다.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고 살아낸 이들만 할 수 있는 풍자와 해학에 ‘웃참’해 보지만 결과는 실패다. 일본 어르신도 내공이 상당하다. 노인의 일상과 고충을 유쾌하게 담은 ‘센류(일본의 정형시)’에 연신 킥킥대고 말았다. “이 두근거림. 옛날엔 사랑, 지금은 병”이라뇨. 아, 어르신...!
는 일상을 유쾌하게 담은 어르신의 시를 기다립니다.
출처 : 서적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 포레스트북스 출간
새로운 휴식과 작업의 공간 '누스테이(NOU:STAY) 목포'가 지속 가능한 삶과 일과 휴식의 균형을 추구하는 이들을 위한 이상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공간은 목포의 유달산과 근대 역사 문화 속에서 휴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누스테이 목포는 서울역에서 기차로 2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찾는 이들에게 탈출구를 제공한다. 이곳은 요가, 명상, ESG 플로깅, 요트 다이닝, 홍어 쿠킹 클래스, DJ 파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목포의 문화를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누스테이 목포 박종문 대표는 “누스테이 목포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로컬 지역의 지속 가능한 문화를 고민하며 탄생했다”고 설명하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변화한 삶의 방식에 적응하고, 일과 휴식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워케이션을 위한 공간으로, 지역 사회와의 소통과 커뮤니티 형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누스테이 목포는 또한 지역의 매력을 전하는 작가 레지던시 지원 사업을 준비 중이며, 목포 인근의 신안, 완도, 진도 등 남도 로컬의 다양한 매력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은 목포와 주변 지역의 문화와 자연을 깊이 있게 탐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2023년 10월에 문을 연 이곳은 단순한 휴가지를 넘어, 일과 휴식, 개인의 성장과 지역 사회의 발전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새로운 형태의 휴식처를 제안한다. 목포의 매력적인 풍경 속에서 휴식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누스테이 목포는 떠오르는 선택지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누스테이 목포는 4월까지 연박 30% 할인 이벤트를 진행 중이어서 봄의 목포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 중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전국 어디서든 배달이 가능하고, 택시도 부르고, 기차 예약도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많은 어르신들이 이런 기술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누구든 4차 산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원더풀플랫폼이 만들어진 계기다.
원더풀플랫폼은 어르신 돌봄 서비스를 만드는 플랫폼 회사다. 원하는 종류의 디바이스를 선택해 원더풀플랫폼의 ‘다솜K’를 탑재하면 된다. 다솜은 순우리말로 사랑을 뜻한다. 꼭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어떤 기기에서든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솜이를 사용하는 전국 어르신은 약 1만 명. 2023년 10월 기준 94개 지자체와 147개 기관에 보급된 다솜이를 더 많은 어르신이 만나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더풀플랫폼의 목표다.
어르신의 말벗 ‘다솜이’
다솜이는 ‘다솜K’를 부르는 애칭이다.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는 어르신들을 위해 특화된 것이 ‘말벗 기능’이다. “보통 구글 등의 음성 명령 서비스는 기기를 부르는 ‘명령어’가 필요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대답하는 것에서 끝나는데요. 다솜이는 대답 후 다른 질문을 덧붙이기 때문에 정말 대화하듯 말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또 사용자가 부르지 않아도 먼저 말을 걸기도 하고, 한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다른 주제를 물어보기도 합니다.” 정진현 원더풀플랫폼 국내영업팀 팀장은 다솜을 만들 때 ‘대화’에 강점을 두었다고 설명했다.
다솜의 또 다른 특징은 학습한다는 점이다. 사용자가 다섯 살 손자가 있다는 걸 언급했다면, 기억해두었다가 다른 대화를 할 때도 적용한다. 어르신들의 어눌한 말투나 사투리도 학습한다. 따라서 대화를 많이 하면 할수록 다솜이는 똑똑해지고 고도화된다. 누가 다솜이와 대화를 했느냐에 따라 집집마다 다솜이의 성격이 달라진다. 쓰면 쓸수록 사람처럼 진화하는, 말 그대로 ‘말벗’이 된다. 말벗 기능은 챗GPT가 오픈되기 전부터 개발하던 것으로, 이제 5년 차가 됐다. 최근에는 챗GPT도 결합해 기능을 좀 더 다양화했다.
보고 듣는 기능도 있다. 젊은이들이야 유튜브에 검색해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원하는 콘텐츠를 검색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다솜이에게 “쫛쫛 검색해줘, 쫛쫛 노래 틀어줘”라고 말하면 된다. 음식 레시피가 궁금하면 “김치찌개 끓이는 법 알려줘”라고 하면 영상을 찾아 재생해준다. 정 팀장은 “요즘 시대에 나오는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높여드린 셈”이라면서 “무엇이든 말로 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2023년 10월 기준 다솜이를 통해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기능은 콘텐츠 재생, 날씨 정보, 화상통화다.
건강관리도 다솜이로
현재 다솜이는 지자체, 보건소, 치매안심센터 등을 통해 주로 보급되고 있다. 지자체에서 대상자를 선정하면 원더풀플랫폼에서 다솜이가 탑재된 디바이스를 댁에 방문해 설치해드리고 사용 방법을 알려준다. 원더풀플랫폼은 관리자 페이지에 대화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저장한다. 어떤 어르신이 다솜이와의 대화 중에 “오늘 다리가 아프네”라고 말하고 며칠간 이런 대화가 반복될 경우 어르신을 방문할 생활지도사나 간호사에게 ‘아픈 부위 1순위 다리’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면 어르신을 방문할 때 “어르신 요즘 다리가 많이 아프시다면서요?”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또한 자주 말하는 단어를 기록하는데, 만약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자주 보인다면, 정서적 케어가 필요하다는 것을 관리자가 확인할 수 있다.
알림 기능도 있다. 휴대폰 전용 앱을 이용하면 다솜이가 ‘어르신 오늘 보건소 방문하셔야 하는 날이에요’라는 일상 알림이나 재난 문자 등을 읽어준다. 지방의 경우 태풍이 불고 천둥이 치면 마을 방송 확성기 소리가 묻혀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지자체의 요청을 받아 기능을 개발했다. 다솜이에게 ‘도와줘’, ‘살려줘’라고 말하면 원더풀플랫폼에서 24시간 운영하는 관제시스템으로 연결되는 응급 기능도 있다. 직원이 상황을 파악한 후 필요한 경우 119에 대신 신고해준다.
병원에서도 다솜이를 활용하고 있다. 큰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한 환자에게 위급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 간호사들이 귀가 후 주의사항이나 해야 할 것들을 다솜이를 통해 알릴 수 있고,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을 때 긴급 호출을 요청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정신건강센터에서도 다솜이 이용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2024년 원더풀플랫폼이 집중하는 것은 ‘스마트 빌리지’ 사업이다. 지자체에서는 움직임이 있는 휴머노이드형 로봇을 복지관을 비롯해 어르신들이 자주 방문하는 장소에 보급할 계획을 갖고 있다. 원더풀플랫폼은 각 기관에 있는 로봇과 집 안의 로봇을 연결하고자 한다. 몸이 불편해 경로당에 나가지 못해도 경로당에 나와 있는 어르신들과 소통할 수 있고, 경로당끼리 노래방 대회 등 교류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4차 산업 시대에 효과적인 기능의 혜택을 어르신들도 함께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솜이에게 ‘치약이 떨어졌다’고 말하면 치약을 대신 주문해주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르신 곧 치약이 떨어질 때가 되었는데 주문해드릴까요?’라고 물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글쓰기가 힘들다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내 대답은 간명하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30년 넘게 글 쓰고 책 써서 먹고산 내게도 글쓰기는 힘든 일이다.
글쓰기가 힘든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글쓰기는 나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이다. 글은 내가 아는 지식과 정보의 수준, 내 생각의 깊이와 감정의 변화, 내가 살아온 여정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벌거벗고 남들 앞에 서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더욱이 글은 누군가의 평가가 따른다. 말처럼 흩어지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글쓰기는 또한 이런저런 역량을 요구한다. 어휘력, 문장력, 논리력 등등. 집중력과 끈기도 필요하다.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지적인 부하가 걸리는 작업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쓰자
글쓰기처럼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글쓰기가 두렵고 힘든 이유는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커서다. 기대 수준을 낮추고 어깨의 힘을 빼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누가 당신에게 천하의 명문을 쓰라 했는가. 글을 못 쓰면 패가망신당할 일이라도 있는가. 왜 못 쓰는가. 한글을 모르는가? 쓸 수 있는 종이와 펜이 없는가? 못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잘 쓰려는 욕심 때문이다.
욕심을 내려놓는 방법이 있다. 자주 쓰면 된다. 곧바로 또 쓸 것이므로 지금 쓰는 글에 목숨 걸지 않는다. 지금 못 보여준 것이 있으면 다음 글에서 보여주면 된다. 지금 못 써도 다음에 만회할 기회가 있기에 그냥 쓴다. 하지만 가끔 쓰면 그냥 쓰기 어렵다.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기 마련이다. 물론 글을 자주 쓰다 보면 또 다른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작가들은 이런 욕심 앞에서 낙심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쓰면 쓸수록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욕심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차후 문제다. 우선은 자주 쓰는 것으로 욕심을 잠재워보자.
독자에게 주눅 들지 않는 방법
욕심과 쌍을 이루는 글쓰기 장애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주눅이다. 글은 독자가 있고, 독자는 내 글에 감 놔라 대추 놔라 상관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이에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된다. 다행히 대다수 글 쓰는 사람은 그럴 생각이 없다. 오히려 여기에 손뼉을 맞추기라도 하듯, 독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달이다. 이런 조바심이 글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독자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한다. 문제는 주눅 들면 글을 잘 쓸 수 없다는 점이다. 잔뜩 얼어붙은 손으로는 자판을 두드릴 수 없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머릿속으로만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
겁이 많고 남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나는 늘 독자 앞에 서면 오금이 저린다. 그런 내가 글쓰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시도를 하면서다. 하나는 아내를 글동무로 두는 것이다. 직장에 다닐 적에는 아내가 내 글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디 나가지 않으면서부터 쓴 모든 글의 첫 번째 독자는 아내가 됐다. 아내는 내 글을 늘 좋다고 칭찬한다. 물론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으면 기탄없이 지적도 하지만, 대부분 괜찮다며 격려한다. 나는 이 말에 기대어 글을 쓴다. 아내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후다닥 글을 쓴다.
독자에게 주눅 들지 않기 위해 활용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독자를 특정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내가 잘 알고 내게 우호적인 한 사람을 정해서 내 머릿속에 앉혀놓고 쓰면, 그 독자는 무섭지 않다. 그 독자를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대상을 주로 직장 생활할 때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서 고른다. 써야 할 글에 따라 그에 맞는 독자를 선택한다. 보고서 관련 글이면 내가 아는 30대 여성 김 모 씨를 소환하고, 지금 쓰는 이런 글은 입사 동기이자 오랜 친구인 박 모 씨를 불러다 내 앞에 앉힌다. 그리고 이들에게 얘기한다 생각하고 조곤조곤 쓴다. 이렇게 쓰면 독자가 두렵기는커녕 그들이 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가려운 곳이 어디인지 훤히 알 수 있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간절함까지 더해져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
나는 루틴으로 쓴다
욕심과 두려움을 어느 정도 잠재우고 나면, 그다음 할 일은 습관 들이기다. 글은 쓰고야 말겠다는 의지로는 쓰기 어렵다. 일상적으로 의욕을 불태우기가 어디 쉬운가. 이런 의지와 의욕은 오래가기 어렵다. 우리 뇌는 이런 일에 쉬 지친다. 아니, 자기를 옭아매려는 이런 시도 자체를 싫어한다. 글쓰기를 루틴화해야 한다. 나는 하고 싶은 일 사이에 글쓰기를 끼워 넣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한 후 글을 쓰고, 하고 싶은 일로 보상하는 것이다.
첫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쓸 때 다니던 출판사에서 두 달간의 유급 휴직을 받았다. 집에 들어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20여 일간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매일 의지를 다지며 글쓰기를 시도했지만 써지지 않았다. 글을 쓰진 못했어도 그 기간에 매일 하던 일이 있었다. 산책과 커피 테이크아웃, 샤워가 그것이다. 그렇게 20여 일이 되던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때처럼 산책을 마친 후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주문한 후 집에 돌아가 글을 쓰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자마자 빨리 집에 가서 글을 쓰고 싶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니 쓸거리가 막 떠올랐다. 그것들을 잊을까 봐 몸을 씻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바로 그날부터 봇물이 터지듯, 봉인이 해제되듯, 산책을 나가면 내 뇌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쓸거리가 떠올랐다. 그렇게 글을 쓴 후에는 막걸리 한 병씩 마시며 나 자신을 칭찬했다. 이런 소소한 보상은 상승효과를 가져와 내 뇌는 막걸리 먹고 싶은 마음에 쓰기를 재촉했다.
습관은 글쓰기 제조 라인이다. 정해진 루틴 위에 나를 올려놓으면 뇌는 써야 할 시간임을 인지하고 글을 쓴다. 이쯤 되면 안 쓰고 버티는 것보다 쓰는 게 더 편하고 익숙해진다. 나만의 얘기가 아니다.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난 시인•소설가 모두 글쓰기 전후에 자신만의 루틴을 갖고 있었다. 어떤 이는 글을 쓰기 전에 연필을 깎고, 어떤 이는 음악을 들었으며, 또 다른 이는 카페에 갔다. 이런 루틴이 없는 작가는 없었다. 그들의 글은 루틴의 산물이었다.
시간만 들이면 누구나 쓸 수 있다
마음의 준비가 되고 습관이 몸에 배었으면 이제 남은 건 시간을 들이는 일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필요한 것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시간을 꼽는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은 시간이다. 나는 시간에 의지해 글을 쓴다. 내게 시간이 있다는 건 늘 희망이었다. 시간만 들이면 글은 언제든 쓸 수 있다. 써질 때까지 쓰면 써지는 게 글이니까. 아는 게 부족하다고? 글쓰기 실력이 없다고? 시간은 이 모든 걸 채워주고 키워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가.
내가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섯 가지다. 첫째, 글 쓰는 시간을 낸다. 당신은 글을 쓰는 데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는가?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쓰라는 게 아니다. 나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다만 나는 하루에 몇 줄이라도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블로그나 SNS에, 메모장에 한 줄이라도 쓴다. 글을 전혀 쓰지 않는 날은 없다. 이것이 중요하다. 누가 작가인가. 오늘 글을 쓴 사람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작가는 오늘 하루 잠시라도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낸 사람이다.
둘째,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다. 나는 짬짬이 글을 쓴다. 글을 써야겠다고 정색을 하고 쓰면 잘 안 써진다.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처럼 굳이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오히려 글이 잘 써진다. 학교 다닐 적에도 시험 기간에는 공부하기 싫다가 시험이 끝나고 놀아도 되는 시간에 하는 공부는 꿀맛이었다. 누구에게나 짬이 난다. 그 시간에 글을 써보라. 쓰고 있는 자신이 대견하고 쓰는 행위에서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셋째, 사람마다 글이 잘 써지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찾아서 공략하자. 새벽녘일 수도, 심야일 수도 있다. 우울하거나 심심할 때일 수도 있고, 텐션이 올라 의욕 충만한 시간일 수도 있다. 나는 도서관에 앉아 있을 때가 그 시간인 적도 있고, 카페에서 그런 시간을 만난 적도 있었다. 무언가를 읽거나 들은 직후에 그런 시간이 온다는 걸 안 후부터는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다.
넷째, 마감 시한을 정해놓고 쓴다. 글은 완성하는 버릇이 필요하다. 쓰다가 마는 게 아니라 끝까지 써보는 습성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데드라인을 두고 써야 한다. 언제까지 글을 완성한다는 마음으로 쓰고, 실제로 그것을 지켜야 한다. 블로그에 사흘에 하나씩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그렇게 하고, 브런치에 한 달에 한 편씩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했으면 그것을 지키는 것이다. 직장 다닐 때는 보고서이든 기획서이든 늘 마감이 주어졌다. 소심한 나는 늘 마감을 지켰다. 혼나는 게 무섭고 잔소리 듣는 게 싫어서 마감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다. 직장을 나온 후 지난 10년간은 스스로를 구속하기 위해 신문이나 잡지의 연재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감 지키는 글쓰기를 지속해왔다.
다섯째, 오래 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오래 살아야 한다. 오래 쓰면 잘 쓸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순 넘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칠순을 넘겨 빛을 본 작가들이 부지기수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닥터 지바고’는 그의 나이 63세에 완성됐다. ‘로빈슨 크루소’를 쓴 대니얼 디포는 예순이 다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58세에 썼다. 박완서 선생도 전업주부로 살다가 마흔 살에 등단했다. 작가의 세계만큼 ‘늦깎이’, ‘대기만성형’이 통용되는 분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 쓰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나는 매일 걸으면서 쓸 수 있는 날을 늘린다. 당장은 잘 쓰지 못해도 오래 살기만 하면 언젠가는 글을 잘 쓰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도 쓴다. 자, 이제 쓸 시간이다.
‘녹기 전에’는 아이스크림에 시간의 철학을 접목해 세계관을 확장하는 디저트 가게다. 녹싸(녹기 전에 사장)는 녹기 전에, 늦기 전에 만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매개로 연결된 사람들이 시간을 음미하길 바란다. 신간 ‘좋은 기분’에는 흐르는 순간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일과 삶의 태도를 단단히 한 그 만의 경험을 스쿱 가득 담았다.
외관부터 요상하고 의미심장하다. 간판 대신 멈추지 않는 시계와 하루하루 넘기는 형태의 달력이 걸려 있다. 재고 관리가 자신 없어 매일 다른 아이스크림으로 진열장을 채우고(그렇게 탄생한 메뉴만 350가지 이상이다), 디자인에 서툴러 로고조차 새기지 않은 컵과 포장 용기는 오히려 상징이 됐다. 내부 곳곳엔 시간을 주제로 한 책들과 흘러넘치는 아이스크림 모형이 비치돼 있다. 메뉴 순위가 궁금할 이들을 위해 “10.아이스크림의 9.맛 선호도는 8.인기의 7.문제가 6.아니라 5.각자가 가진 4.취향의 3.문제 2.입니다 1.쌀”이라는 재미난 설명도 붙어 있다. 남다른 분위기의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다.
이곳의 주인 녹싸는 팀원들과 아이스크림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을 도모한다. 공식 SNS 계정에 손님들이 남기고 간 사연이나 방명록을 라이브 방송으로 소개하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녹기 전에 주주총회’를 연다. 물론 이외에도 악필대회, 사생대회를 열거나, 숲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한 달에 한 번씩 함께할 누군가를 모집해 나무를 심으러 가기도 한다. 정체성을 물으니 “여기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흐물흐물한 곳이에요. 아이스크림은 핑계죠”라 대답한 이유가 있었다.
흐르는 시간과 아이스크림
‘녹기 전에’가 탄생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어릴 적부터 줄곧 시간에 대한 화두를 껴안고 살았다. 머리를 맞대고 듣는 벽시계 초침 소리가 좋았고, 짧은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긴 시간은 단순히 재단하기 힘든 감동이 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공상은 ‘죽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가’라는 고민으로 끝났다. 살면서 의존할 만한 안식처는 즐거운 기억뿐이라는 확신에, 한평생 질린 적 없는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하고 많은 디저트 중 ‘흘러서’ 시간을 알려주는 아이스크림은 삶과 미래, 죽음에 대해 넌지시 교훈을 준다고, 세상에 기여할 일이 지금보다 훨씬 많을 거라 생각했다.
“2017년 종로구 익선동에서 호기롭게 장사를 시작했지만 빠른 상권 변화에 부침을 겪었습니다. 옆에 크레페·호떡 등 다른 디저트 가게가 생길 때마다 크게 영향을 받았고, ‘핫플레이스’ 특성상 일회성 방문이 대부분이라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느껴줄 단골손님이 없었어요. 매출이 떨어지니 자신감이 바닥나 한동안 가게 안쪽에 숨어 있었죠. 새벽 4시까지 닥치는 대로 콘텐츠 기획, 마케팅, 브랜딩, 디자인 분야의 책을 읽었어요. 각자의 위치에서 활약하는 멋진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독서 생활의 말미에는 ‘아, 결국 동력을 얻으려면 책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인간인지 먼저 들여다보고, 현장 경험으로 체득해야 하는구나!’ 깨달았어요. 그러던 중 2022년 마포구 염리동이라는 동네로 이사했고, 접객의 의미에 더욱 집중하게 됐습니다.”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
많은 점주가 접객 업무를 단순노동으로 여긴다. 점원도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때우거나, 경력 쌓기와는 무관한 스쳐가는 일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자기 시간의 일부를 할애하는데도 소모적이라고만 여기며 하루를 보내기 십상이다. 그러나 녹싸는 접객이 제조자의 세계와 손님의 세계를 매끄럽게 이어주고, 주파수를 맞추는 섬세한 작업이라 말한다. 신간 ‘좋은 기분’은 원래 가게의 또 다른 얼굴이 되어줄 동료를 구하며 해주고 싶은 말을 모아 쓴 글이다. 100쪽이 넘는 별난 채용공고는 입소문을 타면서 책으로 출간됐다.
“과거에는 오히려 제품을 전달하는 사람의 역할이 더 컸어요. 이 제품으로 당신의 삶이 얼마나 윤택해질지 납득시키려면 누군가 친절히 설명해줘야 했죠. 점점 개인의 기분과 역할은 도외시되고 흘러넘치는 물건 자체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키오스크나 로봇으로 대신하는 풍경도 꽤 익숙해졌어요. 하지만 저는 오래 지속됐던 것들의 힘을 믿습니다. 직접 인사를 건네고, 상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접객 일도 마찬가지에요. 다만 나를 갉아먹는 상태에서 서비스하지 않으려면 걷고, 목욕하고, 책을 읽고, 불멍을 하는 등 일과 삶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번잡함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습니다. 일의 목적과 가치를 분명히 하고 내면의 근육까지 단단하게 만들 수 있어요.”
덕분에 ‘녹기 전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편히 찾는 일상의 거처가 됐다. 어떤 기준으로 아이디어를 좁히거나, 뾰족한 마케팅으로 일부를 소외시키지 않는다. 특정 연령만을 대변하기에는 아이스크림이 모든 세대가 전 생애에 걸쳐 즐기는 디저트라서다. 오늘도 그는 6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조금 퉁명스러운 단골손님이 오면 ‘스푼은 2개, 집에 가는 길은 30분 정도 소요된다’는 사실을 바로 떠올린다.
“아이스크림 매장 접객은 찾아온 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바라보고 유지해주는 일입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항상 눈에 생기를 띠는데, 그 흐름을 해쳐선 안 돼요. 가게 주인과 직원이 올바른 가치관과 의식을 부지런히 공유해 값진 매장 경험을 겪도록 힘써야 하죠. 그러다 보면 누군가 ‘진정성’의 유무를 판단하지 않을까요. 그저 소박하게 자리한 가게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간판 대신 걸린 시계를 보며 동네 주민들이 시간을 확인하고, 오가며 마음 나눌 편한 공간이 됐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