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갑작스런 사위의 발령으로 인해, 손자들은 어학 준비를 못 한 채 파리의 국제학교에 입학했다. 영어, 불어, 모국어 사이에서 방황하는 손자들은 매일 아침 등교를 거부하였다. 낯선 이국생활의 시작은 딸 자신에게도 매우 버거웠다. 급기야 나에게 SOS가 날아왔고 딸바보인 나는 이틀 만에 프랑스에 도착했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손자들의 등하교 챙기기였다. 군소리 안하고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 등교 시 1유로씩, 하교 시 나를 쳐다보지 않고 앞장서서 제대로 집을 찾으면 1유로씩을 지급했다. 그리고 각종 생활수칙을 잘 지키면 즉시 현금 포상을 하였고, 특히 그 돈들은 절대 딸 내외가 손을 못 대게 하였다. 이렇게 등하교 및 이국생활 문제들은 해결되었고 애들은 점차 학교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1년이 지나자 손자들의 학교생활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먼저 식당에서부터였다. 프랑스에서는 급식시간에 모든 학생들에게 잼이 지급된다. 그런데 그 용기는 햄버거 가게의 토마토케첩처럼 손톱으로 찢어야만 한다. 그런데 외국 아이들은 그것에 매우 서투르다. 하지만 우리 손자들은 옷에 흘리지 않게 귀퉁이를 잡아 찢는, 그 섬세한 작업을 아무렇지도 않게 쉽사리 해 냈다. 그래서 점심시간마다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에게 잼 봉지 찢기 봉사를 하며, 손자들의 위상은 높아졌다. 그 후 체육시간에 신발 끈을 제대로 못 매 쩔쩔매는 영국 애들, 교복 넥타이를 못 매는 독일 애들, 연필을 칼로 못 깎는 미국 애들까지 도와주면서, 타고난 손재주를 과시하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모두 한민족 유전자 덕분이었다.
프랑스 주최인 2019년 5월의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의 명성은 상한가를 쳤다. 딸네가 살고 있는 파리 근교의 자그마한 동네(Chatou) 영화관에서도 ‘기생충’이 상영되었다. 딸 부부는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자막 없이 보는 한국 영화가 반가웠기도 했지만, 영화 종료 후 동네사람들이 딸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축하를 받으며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2020년, 우울한 시작이었다.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한반도를 급습했다. 그러자 프랑스 사람들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다. 교장선생님은 직접 딸에게 전화를 해 겨울방학 중 한국에 다녀왔는지를 물었다. 길거리에서의 동양인들은 기피 대상이었고, 2월인 작은 손자의 생일파티는 당연히 취소되었다. 그들에게 우리 한국인은 검정색 마스크를 쓴 채 파리 중심가에서 쇼핑하는 중국인 관광객들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유력 신문인 ‘르몽드’에 코로나19 확산의 주역인 신천지교회 이만희 총회장이 땅에 엎드려 절하는 사진이 실리면서, 그동안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급락하였다. 프랑스 사람들은 IT산업 강국인 한국과 이상한 종교가 판치는 한국 사이에서 우왕좌왕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원래 신체가 건장하고 생활수준도 높아 코로나19쯤은 걸려봤자 감기처럼 금방 낫는다고 자부했다. 자신들의 문화와 어긋나는 마스크 착용은 당연히 무시되었다. 그들에게 코로나19는 먼 극동의 비위생적인 국가들 얘기였다. 그런데….
프랑스에서의 코로나19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는 마크롱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코로나19에 대한 논의를 하였고 그로 인해 G20 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다시 롤러코스트를 탔다. 이제는 한국 방역모델이라는 말이 일반명사화 될 정도로 자주 등장하고, 한국을 걱정하던 이들이 한국을 부러워하는 분위기로 급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앞으로 또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파리에서 3명의 자녀와 함께 4년째 거주하고 있는 딸과 사위는 이렇게 고국의 위상 변화에 얹어져 어지러운 롤러코스트를 타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 Exhibition
◇ 물, 비늘, 껍질
일정 4월 26일까지 장소 복합문화공간에무 B2 갤러리
김정옥의 단독 기획초대전으로, 그동안 작가가 주목해왔던 ‘물고기’ 연작에서 더 나아가 물고기가 살고 있는 환경, 즉 수족관의 영역까지 아우르는 작품들로 이뤄졌다. 작가는 “투명한 수족관은 제한성을 전제로 한 삶의 환경”이라며 “물이 아닌 공기로 치환된 수족관 속에서 인간은 서로 무리 짓고 군중 속에서 부대끼다 동시에 문득 개인으로 반짝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상을 바탕으로 수족관 안에서 무리 지어 사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을 유추해보고,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을 비늘의 반짝임으로 표현했다.
◇ 히말라야... 그리움을 찾아서
일정 5월 17일까지 장소 갤러리 하리&멘탈ART
‘마음을 읽는 작가’로 알려진 김애옥의 2020년도 첫 전시다. 하얀 눈을 휘덮고 있는 설산이 태양의 빛을 받아 마치 카멜레온의 보호색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들로 채워졌다. 작가는 히말라야에 다채로운 컬러를 입힌 데 이어 인간들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러 있던 그리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애쓰지 않아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쁨과 슬픔의 조각들을 스펙트럼의 파장 이미지로 펼쳐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관람자가 특정 히말라야 이미지를 선택하면 그에 따른 마음의 상태를 읽어준다. 아울러 그림을 통해 숨어 있던 내면의 그리움을 비추는 등불 역할도 한다.
◇ 추니박, 침묵의 숲
일정 4월 25일까지 장소 사비나미술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융합산수’를 개척한 추니박의 ‘검은 풍경’ 연작과 ‘치유의 숲’ 연작을 감상할 기회다. 30여 년간 작가가 확장해온 한국화의 지평을 확인하는 자리인 동시에, 그의 최신 작품세계까지 살펴볼 수 있다. ‘검은 풍경’ 연작은 그동안 한국 풍경화를 그려왔던 작가가 그랜드캐니언, 캘리포니아 등 미국 서부 지역을 여행하면서 만난 광활한 대자연을 한국 전통 필법으로 풀어내 해외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중 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또 ‘치유의 숲’ 연작 총 120여 점 중 주요 작품 34점을 선별해 공개할 예정이다.
◇ 툴루즈 로트렉 展: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일정 5월 3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후기 인상주의파 화가이자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국내 첫 단독전이 열린다.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헤라클레이돈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150여 점으로 구성되며, 모두 국내에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포스터,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및 수채화를 비롯해 로트렉의 사진과 영상, 당대의 생활용품 등이 19세기 말 생동감 넘치는 파리 몽마르트 언덕과 물랭 루주의 모습을 투영한다. 아울러 로트렉의 일생을 담아낸 미디어 아트와 물랭 루주의 히스토리를 간직한 특별 제작 영상 등 다채로운 장르의 볼거리가 마련돼 있다.
● Stage
◇ 드라큘라
일정 4월 28일~5월 17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데이비드 스완 출연 김준수, 조정은, 손준호 등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로, 수백 년이 지나도록 오직 한 여인만을 사랑한 드라큘라 백작의 판타지 로맨스를 그린다. 뱀파이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프랭크 와일드혼의 드라마틱한 음악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블랙 스크린을 설치하고, 스탠딩 세트를 플라잉 세트로 전환하는 등 극적인 연출을 보여주기 위해 장비와 세트를 보강해 웅장한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아트
일정 5월 17일까지 장소 백암아트홀 연출 성종완 출연 이건명, 엄기준, 박건형 등
15년간 유지해온 세 남자의 우정이 허영과 오만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가를 일상의 대화를 통해 표현한 연극이다. 대학로 공연 당시 최고 객석 점유율 103%, 누적관객 수 20만 명을 기록하며 ‘아트 광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인간의 이기심, 질투, 소심한 내면의 심리를 블랙코미디 특색을 살려 거침없이 드러낸다.
◇ 사운드 오브 뮤직
일정 4월 28일~5월 17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출 정태영 출연 이연경, 배다혜, 송일국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지배를 피해 조국을 떠나야 했던 폰 트랩 가족 합창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이다. ‘에델바이스’, ‘도레미송’ 등 동명의 영화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넘버들로 꿈과 희망을 노래한다.
● Movie
◇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 밴드
개봉 4월 2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T.G. 헤링톤, 대니 클린치 출연 벤 재프, 월터 해리스 등
뉴올리언스 재즈를 대표하는 ‘프리저베이션 홀 재즈 밴드’가 음악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를 담았다. 쿠바를 배경으로 한 즉흥 버스킹 등 소울 가득한 재즈 선율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 밥정
개봉 4월 예정 장르 드라마, 다큐멘터리 감독 박혜령 출연 임지호
임지호 셰프가 자신의 친어머니와 양어머니, 그리고 길 위에서 인연을 맺은 어머니들을 위해 그리움으로 차린 밥상과 인생의 참맛을 함께 담았다. 산과 들, 계곡 등 한국의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도 감상 포인트다.
● Book
◇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 저ㆍ심심
25년간 우울증을 알았던 저자가 자연에서 위안을 얻었던 1년간의 소회를 쓴 일기다. 가벼운 무기력증부터 자살 충동에 이르기까지 우울증의 다양한 양상을 경험하며, 그때마다 자신을 위로했던 자연의 모습을 생생한 글과 그림, 사진으로 묘사했다. 섬세한 문장과 감성적인 이미지를 통해 인간을 어루만지는 자연의 따뜻한 손길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제니퍼 라이트 저ㆍ산처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코로나19 못지않게 역사상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해온 전염병 13가지를 살펴본다. 발병 당시의 상황과 에피소드, 질병 극복 방법까지 소개한다.
◇ 건강 공부 엄융의 저ㆍ창비
건강의 정의부터 올바른 스트레스 및 식습관 관리, 신종 바이러스와 미세먼지 등으로부터 내 몸을 지키는 방법을 정리했다. 주제별 건강 상식과 더불어 일상생활 수칙 등도 제시한다.
◇ 내가 사랑한 시옷들 조이스 박ㆍ포르체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세계의 명시 30편을 사랑, 사람, 시라는 ‘시옷’의 단어들로 풀어냈다. 저자는 숨 가쁘게 달린 하루의 끝에서 ‘시’와 마주하며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길 바란다.
◇ 햇볕이 아깝잖아요 야마자키 나오코라 저ㆍ샘터사
베란다 작은 정원을 가꾸며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베란다는 세계의 축소판, 그 작은 공간에 우주가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신선한 통찰력이 곳곳에서 빛난다.
매일 아침 눈뜨고 잠드는 공간. 집이다.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시니어들에게 딱 맞는 인테리어 포인트를 찾아봤다.
사진 각 사 제공
최근 인테리어 업체들과 전문가 집단이 2020년을 대표할 인테리어 트렌드를 내놓았다. 각자 추구하는 방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된 의견이 있다. 보이지 않았던 공간의 재발견과 돌, 식물 등 자연에서 해답을 찾은 인테리어. 지금까지는 미니멀리즘, 즉 ‘비움’에 비중을 뒀다면 앞으로는 창의적이고 과감하고 실험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맥시멀리즘’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연에서 찾은 트렌드 컬러
글로벌 트렌드 조사기관인 ‘WGSN’은 올해 트렌드 컬러로 ‘네오민트’를 선정했다. WGSN의 발표는 색상 선정을 넘어 사회 기류도 함께 반영했다. 최근에는 이 컬러에 해당하는 다양한 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자연에서 찾은 색상인 ‘그린’(녹색)과 연결 지어 식물이나 자연에서 유래한 소품, 친환경 인테리어에 안전성까지 담은 제품들이다.
LG하우시스는 시트 바닥재인 ‘은행목’과 ‘뉴청맥’에 최근 트렌드를 반영했다. 실내 낙상사고를 줄여주는 안티슬립 기능을 넣어 안정성도 챙겼다. 지난해 5월 출시된 ‘엑스컴포트’는 바닥재 속에 고탄성 2중 쿠션층을 적용했다. 푹신한 상부층과 탄성력이 높은 단단한 하부층이 보행 시 충격을 줄여주고 발이 푹 꺼지지 않도록 해준다.
동화자연마루의 ‘나투스진’은 찍힘과 긁힘, 수분 침투, 열에 의한 변형 때문에 발생한 소비자 불만을 해소한 바닥재다.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첨가되지 않은 신소재 나프(NAF)를 적용했다. 또한 국내산 소나무 100%를 원재료로 생산한 친환경 소재 E0 등급의 ‘동화에코보드’를 사용해 피부자극을 최소화했다. 안정적인 보행과 건강을 생각한 이들 제품은 시니어 세대에게 유용한 인테리어 제품이다.
실내나 집 안에 정원을 꾸미는 이른바 ‘홈가드닝’도 눈길을 끈다. 남는 공간을 작은 화분으로 장식하는 게 인테리어 포인트. 롯데주류는 발코니에 정원을 꾸미는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 행사의 하나로,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2019’에서 반려나무 입양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또 롯데마트도 ‘초보자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수경재배 식물’을 판매 중이다.
조경 전문업체인 조경나라 관계자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시사철 볼 수 있는 소나무, 율마, 에메랄드그린 등과 함께 야생화를 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맥시멀리즘 인테리어 대세
크고 작은 인테리어 소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집 안을 가구나 조명, 인테리어 소품으로 꾸미는 ‘홈퍼니싱족’도 늘었다. 인테리어 전문 브랜드 까사미아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을 위해 프리미엄 내추럴 스타일링을 제안했다. 내추럴 스타일은 자연 소재의 질감과 색감을 최대한 살려 부드러우면서도 온화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를테면 까사미아의 ‘라메종’ 컬렉션은 자연에서 온 소재와 절제된 장식, 간결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원목 계열의 고급 하드 우드, 천연 소가죽, 포근한 컬러의 패브릭 등을 소재로 사용하고, 핸드메이드 공법으로 품격을 더했다. 또 ‘토페인’ 소파는 프리미엄 가구의 인기에 힘입어 3~4인 소파가 ‘ㄱ’자, ‘ㄷ’자 등으로 재탄생했다. 천연 아닐린 가죽을 100% 수작업으로 가공해 부드러운 감촉과 자연스러운 색감을 살린 프리미엄 소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테리어 소품 중 하나인 벽난로는 위험성 때문에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안전성과 디자인을 겸비한 벽난로가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왐 벽난로는 투박한 형태에서 벗어나 세련된 디자인으로 진화해 집 안 인테리어를 위한 멋진 도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자동연소 조절장치를 내장해 안전성을 높이고 장작 소모는 40% 줄였다.
집 안 분위기를 바꿔주는 조명도 운치를 더해주고 개성 있는 인테리어를 연출한다. 최근에는 물방울무늬의 샹들리에보다 펜던트 형이나 직선 위주의 깔끔한 스타일의 조명기구가 인기 있다. 미국의 조명 디자인 브랜드 애퍼래터스 스튜디오의 제품은 차별성 있는 디자인에 디테일하고 고급스러운 마감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오래 묵혀둔 반닫이도 올해 인테리어 시장에서 유행할 대표 앤티크 가구라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과 그 시간만큼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박경숙 동연갤러리 관장은 “가치가 남다른 만큼 제대로 된 이해가 있는 사람들만 앤티크 가구를 소화할 수 있다”면서 “적게는 100만 원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제품도 있으니 차근차근 공부한 뒤 접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웰컴 투 시그나기(Sighnaghi)!”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 안내를 받으며 간 곳은 객실이 아닌 테라스였다. 파란 하늘 아래 짙은 녹음 속 밝은 산호 빛 마을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엽서 같았다.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의자에 앉으니 주인아저씨가 수박과 와인을 가지고 왔다.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면서 와인을 한 잔 따른 후 건배 제의를 했다. 트빌리시 동쪽의 카헤티(Kakheti) 주에 있는 ‘시그나기’. 인구가 3000명 정도 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본 첫 광경이다.
조지안의 크베브리 와인 사랑
조지아인들의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와인을 마시느라 신이 부르는 자리에도 늦었다는 우화를 말하면서 신도 포기한 와인 사랑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 러시아는 조지아를 지배할 때 조지아 정교회에 대한 탄압뿐 아니라 포도나무를 자르는 정책을 펼쳤다.
이렇게 조지아인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인 와인은 ‘성스러운 액체’로 불릴 정도로 그들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도원에서도 와인을 만들었고, 아직도 몇몇 곳에서는 와인을 판매한다. 그레미(Gremi) 수도원에서 담근 레드 와인을 마셔보니 선입견 때문인지 일반 와인보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향이 마음의 무늬를 더 나긋나긋하게 해주었다.
조지아 와인은 56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포도 품종에서 생산된다. 3km마다 기후가 달라서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 지역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와인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면 ‘치난달리’(Tsinandali), ‘사페라비’(Saperavi), ‘킨즈마라울리’(Kindzmarauli) 라벨이 붙은 와인을 선택했다. 가격에 비해 맛은 일품이었다.
조지아 와인의 주 생산지는 카헤티(Kakheti) 주. 조지아 와인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코카서스 산맥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분지에 알라자니(Alazani) 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다 보니 포도나무를 비롯해 과일나무들이 잘 자란다. 카헤티 주의 중심 도시 시그나기와 텔라비(Telavi)도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지점 두물머리처럼 조지아에도 쿠라 강과 아라그비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도시가 있다. 조지아 초기 왕조인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조지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므츠헤타’(Mtskheta)다. 지금은 수도가 트빌리시이지만 아직도 조지아 정교회의 총본산인 스베티치호벨리(Svetitskhoveli) 성당이 이곳에 있어 조지아 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장소다. 이 마을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즈바리(Jvari) 수도원 앞 언덕에 앉아 바라본 므츠헤타는 그리움이 안개처럼 차분하게 깔려 있는 도시였다.
“조지아 와인은 이렇게 마시는 거야”
오래된 역사만큼 와인을 마시는 조지아만의 전통문화가 있다. 술자리에는 반드시 덕담과 건배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타마다’(Tamada)라고 부른다. 타마다가 ‘가우마조스’(cheers)를 외치며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긴 덕담을 한다. 건배 제의 내용은 순서가 있다. 처음에는 신께 감사하고, 다음 잔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며, 그다음 잔에서는 성 조지를 위해, 그다음 잔에서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이런 식으로 계속한다. 이렇게 이어지다 보면 ‘옛날에 헤어졌던 애인을 위해’ 건배 제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술자리에서 나온 건배 내용에 대해 질투를 하면 안 된다. 보통 기쁜 날은 26잔, 슬픈 날은 18잔의 와인을 마시며 술자리와 건배가 이어진다.
또 한 가지, 취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술을 그만 마시고 싶으면 타마다에게 말해 벌주를 받으면 된다. 이때 사용하는 잔이 ‘깐지’(Kantsi)다. 염소나 소의 뿔로 만든 전통 와인 잔으로 조지아 어느 곳에 가도 기념품 판매점에서 볼 수 있다. 이 잔은 뿔로 만든 잔이라 세워지지 않는다. 벌주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원샷을 해야 한다.
사랑에 빠지는 도시 ‘시그나기’
달콤한 포도 향이 바람에 실려 퍼지는 작은 도시 시그나기에 신의 물방울만 있는 건 아니다. 18세기에 지은 요새, 돌 성벽, 주황빛 마을은 해발 790m 높이의 자연과 함께 시그나기를 동화 같은 마을로 만들었다. 아무 목적 없이 마을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다. 이 마을에서는 누구라도 천사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고풍스러운 시청 건물에서는 365일, 24시간 내내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흔히들 시그나기를 ‘사랑의 도시’라고 말한다. 마음 예쁜 사람들이 사는 그림 같은 마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그나기에는 사랑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이곳 출신인 조지아의 국민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의 사랑이다. 그는 프랑스 출신 여배우 마르가리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가난했던 그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림과 집을 팔아 장미를 사서 그녀가 사는 집 앞을 꽃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고, 그에게는 그녀를 그린 그림만 남게 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그가 죽은 후 세상에 알려졌고, 1980년대 러시아 가수가 ‘Million Alykh Roz’라는 제목의 노래로 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나라에서 가수 심수봉이 ‘백만 송이 장미’로 번안해 부른 곡이다.
시그나기에서 가까운 곳에 카헤티 주의 주도인 텔라비가 있다. 텔라비는 작지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조지아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튜세티 국립공원’(Tusheti National Park)으로 가는 전초 기지 역할도 한다.
감동의 폴리포니 공연
도로 양옆으로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싱그러운 포도밭을 보며 달리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조지아의 아름다운 연녹색 매력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 길가에 서 있는 와이너리 안내 간판은 여행자를 향해 손짓을 했다. 카헤티 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오래된 마을 크바렐리(Kvareli)의 ‘카레바’(Khareba) 와이너리로 갔다. 단순한 와이너리가 아니었다. 조지아를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규모와 콘텐츠를 잘 갖추고 있었다.
휴식공간으로 보이는 건물 앞 정원은 크베브리 황토 항아리를 비롯해 각종 소품과 조형물이 꾸며져 있었다. 건물 안은 와인 저장고, 시음 및 판매시설, 와인 관련 도구 전시실, 와인 제조 설명 프로그램 진행장, 기념품 판매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와인 체험을 하고 나오니 로비에서 5명의 남성이 환상적인 다성 창법의 폴리포니 공연을 했다.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조지아의 노래는 현대 음악보다 훨씬 관념적이다”라고 극찬한 이유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매혹적인 보컬의 다성 창법이 들려주는 하모니가 장엄하게 가슴을 울렸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라기보다는 영혼의 울림 같았다. 환상적인 조지아 와인만큼이나 황홀한 폴리포니의 벅찬 감동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시그나기에서 가볼 만한 곳
보드베 수도원(Bodbe Monastery) 조지아 왕비의 병을 치료하면서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가 생을 마감한 수도원이다. 수도원 밑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면 ‘니노의 샘’이 나온다. 지금도 치유 효험을 믿고 많은 사람이 찾는다.
시그나기 성곽 길(Sighnaghi Wall) 마을 언덕 위에 있는 아치형 돌문을 지나면 성곽 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아침과 저녁 시간에 성곽 길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환상적이다.
로라시빌 도로(Lolashvili St.) 시그나기 마을 정상부터 산을 타고 구불구불 내려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카헤티 지방의 광활한 평원을 조망할 수 있다.
알아두면 좋은 Tip
텔라비에서 트빌리시 혹은 므츠헤타로 갈 경우, 혹은 반대의 경우 ‘38번’ 도로인 ‘곰보리 패스’(Gombori Pass)를 이용하길 권한다. 해발 2000m의 산을 넘으며 한없이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 야생화에 푹 빠질 수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소소한 풍경을 즐기며 심신을 가다듬어 주는 곳, 세상의 소음을 잊고 평온한 마음으로 한 나절 보낼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마곡 서울식물원의 겨울
서울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수목원이나 식물원이 100개 가까이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도심 근교나 수도권을 벗어난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지난해 5월에 개장한 '서울식물원'은 지하철이나 버스로도 쉽게 가볼 수 있다.
오래전 온통 논밭이었던 때와는 달리 요즘 거길 가면 공항 가는 길 일대의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실감한다. 마곡 지구로 형성된 그 지역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치솟은 빌딩들이 이미 가득하다. 그곳엔 도시인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어느덧 마곡의 랜드마크가 되어 있는 '서울 식물원'이 자리 잡고 있다. 미세먼지의 공습과 겨울 추위가 외출을 망설이게 할 때 언제라도 떠나볼 수 있는 곳이다.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 역에 내리면 지름이 약 100m에 달하는 원형 온실의 멋진 모습이 눈앞에 떡하니 서 있다. 관람객들이 자연스러운 동선으로 순환하면서 입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도록 설계된 건축물의 부드러운 표정이 압도한다. 미래도시를 연상케 하는 식물원의 디자인이 얼핏 생명체의 구조를 느끼게 한다.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듯 걷다
식물원은 열린숲, 주제원, 호수원, 습지원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입구의 열린숲의 안내 서비스를 받는다. 온실 외부로는 한국 정원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여덟 가지 주제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며 들길을 산책하듯, 아이들의 놀이동산처럼, 사람과 잘 어울리는 자연이 거기 있다.
온실로 들어가면 열대식물원과 지중해식물원이 세계 12개 도시 정원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최초의 보타닉 공원이다. 원형 건물의 벽과 천장을 그물 모양의 철제 프레임과 유리로 마감해 하루 종일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 시야가 환해서 어느새 마음도 밝아진다.
열대 식물원은 적도 근처 월평균 기온 18°C 이상인 지역으로 하노이, 자카르타, 상파울루, 자카르타, 보고타의 식물을 볼 수 있다. 밖은 한겨울인데 벗은 외투를 팔에 걸치고 산책하듯 걷는 관람객들이 흔하다. 이 겨울에 지구 반대편에서 자라는 이국적인 식물들을 이곳에서 여행하듯 걸으며 즐긴다.
후끈한 열대관에서 지중해관으로 넘어가면 기온이 확 다르다. 이어지는 지중해 식물원은 바르셀로나, 샌프란시스코, 로마 등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풍부하고 온화한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가득하다. 정글처럼 숲을 이루거나 생물종 다양성이 풍부하다. 로마의 올리브나 싸이프러스, 아마존을 방불케 하는 숲, 낯선 이국의 식물들이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특히 지중해관 스카이워크 입구 쪽에 우뚝 서 있는 어린 왕자를 떠올리게 하는 바오밥 나무가 인상적이다.
바오밥 나무를 지나 스카이워크로 올라가 내려다보면 다양한 각도에서 식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숲 위를 걷듯 스카이워크를 걸으며 내려다보는 온실의 푸르름이 평화롭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이국적인 식물들을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유를 누려보는 시간이다.
이곳에서 옆문으로 나가면 식물문화센터가 이어진다. 로비 한가운데 시선을 잡아끄는 녹색 샹들리에. 정찬부 작가의 작품 ‘피어나다’가 생동감 있게 밝고 힘을 느끼게 하는 초록 색감이 싱그럽다. 이밖에도 식물전문도서관, 씨앗도서관, 편의 시설이 있어서 궁금한 것을 더 살펴보거나 편안하게 쉴 수도 있다. 초록의 식물 속에서 차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연인들이나 체험 프로그램에 몰두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이쁘다.
일제강점기 근대문화유산 마곡 문화관
식물원 밖 뒤편 쪽으로 '어린이정원학교'와 '마곡 문화관'이 보인다. 마곡문화관은 예전에 가뭄이나 대홍수에도 안정적인 논농사를 위한 물관리 역할을 하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건립되었고 등록문화재 363호로 한국 근대 산업 문화유산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축물로 보존가치가 크다.
한때 용도 폐지되었던 것을 복원하여 1층은 기획전시실, 2층은 상설전시실, 지하엔 배수펌프관이 있다. 1928년 지어진 일제강점기의 펌프장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가 되고 있다. 근대문화적 건축물의 분위기 때문에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낮보다 아름다운 식물원 호숫가의 밤
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싼 호수의 야경은 더없이 좋은 산책로다. 식물원을 감싸던 노을이 지고 가로등이 켜지면 고요함과 한적함 속에서 고품격의 산책을 제공한다. 신비로운 조명이 호수에 반영되고 영화처럼 그 길을 걷는 맛을 즐겨볼 일이다. 이른바 마곡의 핫플로드다.
멀리 가지 않아도
“훌쩍 떠나고 싶어”고 종종 이런 말을 한다. 그렇게 일상에서 멀찍이 벗어나면 과연 자유로운 영혼이 이입되고 막연하게 그려오던 신기루에 다가갔을까. 더러는 여행 폐인처럼 무수한 날들을 멀리 떠나 있기도 한다. 그런 모습이 때로 감흥 없을 때가 있다. 과연 그런 날들이 어떤 시간을 제공했을지 생각해 본다.
머나먼 곳을 찾아가는 일은 돈과 시간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다만 일상에서 내 안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편안함과 관대함이 온몸으로 퍼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값비싼 티켓으로 외국의 이름난 성지나 낯선 곳을 누비고 돌아오면 그 거리만큼 영혼이 치환되었을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하루쯤 가뿐히 식물원을 다녀오면 알 수 있다. 날마다 새순이 피어나는 곳, 온실의 채광 아래서 산소 뿜뿜하는 식물들의 생명력과 함께 숨 쉬는 시간은 더없이 충만한 시간이었음을. 멀리 가지 않아도.
-주소 :서울 강서구 마곡 동로 161 서울식물원
△여행정보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8번 출구 (도보 10분) ▷ 주제원 (7번 진입구)
-9호선 마곡나루역 3, 4번 출구 연결 ▷ 열린 숲 (1번 진입구)
*버스
-겸재정선미술관 정류소 하차(도보 2분) 672, 지선 6631, 6642, 6712
-마곡나루역 정류소 하차 (열린숲 도보 5분) 672, 6642, 6645, 6648,
* 운영 시간
평시(3~10월) : 오전 9:30 ~ 오후 6시
동절기(11~2월) : 오전 9:30 ~오후 5시
( 열린숲, 호수원, 습지원은 연중무휴. 주제원은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 무료입장- 6세미만 65세이상, 1~3급 장애인(보호자1인 포함), 4급~6급 장애인 본인, 국가유공자, 참전용사증소지자, 서울특별시 명예시민증 소지자
- 공원구간(열린숲, 호수원, 습지원) 무료
- 주제원 유료- 어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 제로페이 결제 시 30% 할인.
-평소에도 특별전시나 이벤트를 자주 하므로 언제 가더라도 즐길 거리가 풍성하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
식물원을 나와 조금만 걸으면 양천 향교가 있다. 향교로 올라가는 길에 홍원사(弘願寺)라는 절이 있고, 거기서 한 발짝 더 걸으면 오래된 국숫집이 보인다. 이름조차 '옛날국수' 집이다. 오래 전의 향수 어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침 날이 흐려서 만들어 놓은 국수가 처마 밑 구석에 한 줄로 모여져 있다. 햇빛 쨍한 날이면 주렁주렁 널어놓은 국수를 볼 수 있다.
몇 걸음 더 걸어가면 '양천 향교(陽川鄕校)'가 보인다. 조선 태종 11년에 만들어져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향교다. 이름은 양천향교지만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해 있다. 대숲으로 둘러싸인 주변과 함께 옛 시절의 맛을 느껴볼 수 있다. 특히 능소화가 향교 담벼락을 뒤덮는 초여름 무렵 다시 찾아가 볼 만하다.
양천 향교에서 이어진 골목을 통해 걸어가면 '궁산 근린공원'이 강서지역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그곳의 궁산 기슭에 ‘궁산 땅굴’이 나타난다.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 대륙 침략의 기지로 쓰인 김포비행장과 한강 하구 일대를 감시하던 일본 군부대의 본부와 탄약고 등으로 사용된 곳. 이렇게 아픈 역사가 곳곳에 있다.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그 옆으로 우리 산천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작가 겸제 정선의 연구를 토대로 만들어진 ‘겸제정선미술관’이 궁산을 배경으로 앉혀졌다. 화가의 작품과 예술적 업적을 볼 수 있으며 기획전시와 체험문화공간도 있다. 한국화의 대표적인 화가의 작품 속에 들어가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또 미술관 주변에 '허준박물관'도 있어서 들러 볼만 하다. 박물관 둘레의 산책로를 걸으며 옛 시간의 향기를 즐겨볼 수 있다. 서울 식물원을 비롯 주변의 볼거리도 놓칠 수 없는 서울 서남지역이다.
어린 시절의 겨울을 떠올려보면 추운 날씨에도 바깥 활동을 참 많이도 했다. 팽이치기, 자치기, 썰매타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얼음땡 등 겨울 놀이가 풍성했다.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따뜻한 실내에서도 다양한 놀이와 체험을 할 수 있다. 손주 손 잡고 가족과 함께 즐길 만한 핫 플레이스를 찾아봤다.
1. 힐링과 웰빙을 담는 곳 ‘미리내 힐빙클럽’
이 겨울 따뜻한 곳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미리내 힐빙클럽’(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몸과 마음을 함께 보해주는 예방 의학과 ‘마음 챙김’ 철학이 만난 공간으로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50분 거리에 있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로 심신을 내려놓고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피곤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곳이다.
스트레스 체크를 시작으로 유산균이 배합된 팩을 얼굴에 바르고 누워서 하는 ‘바디스캔 명상과 디토피팩’은 미리내 힐빙클럽의 특별 프로그램이다. 깊은 휴식을 통한 이완과 재충전도 하고 피부 노폐물도 제거할 수 있다.
‘실내 체험존’에는 ‘풀이 우거진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순우리말 이름의 ‘가든푸실’이 있다. 100여 종에 이르는 초록 식물과 반신욕, 족욕 등 물을 테마로 한 공간으로 조용하고 편안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다. 말초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테마별 족욕탕도 곳곳에 있다. 잇꽃 입욕탕, 겨우살이덩굴 입욕탕, 쑥탕 등 생약초 족욕탕, 오감 족욕탕, 게르마늄 족욕탕 등으로 나뉘어 있어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다. 바이오 세라믹볼 찜질도 방문객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라고. 인체에 유익한 다섯 가지의 광석 물질이 몸속 깊숙이 열을 전달해주는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옛날 아랫목이 있던 구들방을 연상케 하는 ‘구들잠休’는 평소 숙면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잠깐 자고 일어나도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힐빙체험존에는 간, 비위, 콩팥, 폐, 심장을 중심으로 한 오행 테라피와 향기, 명상, 소리, 색깔을 이용한 오감 테라피 등이 있다.
2. 도시 속 예뻐지는 정원 ‘아모레 성수’
이곳에 가면 예뻐질 수 있다! 건물 안에서 정원도 감상하고 아모레퍼시픽의 다양한 제품들을 직접 써볼 수 있는 공간, 바로 ‘아모레 성수’다.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관대한 이곳은 지난 10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문을 열었다. ‘아모레 성수’는 아모레퍼시픽의 30개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뤄진 만들어진 뷰티 라운지다. 1층에서 3층 옥상까지 총면적은 300평 규모. 어린 시절 엄마의 콜드크림을 얼굴에 조금씩 발라보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마치 그때 그 시절 화장대를 넓은 공간에 예술적으로 표현해놓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아모레 성수 건물 안 중앙에는 ‘성수가든’이라고 이름 붙인 정원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간을 배치해 건물 어디에서나 정원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정원수로 쓰인 꽃들은 비비추, 앵초 같은 우리 강산에서 나고 자란 식물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매장 입구에서 간단한 웹 체크인을 하고 나면 아모레 성수에서 체험할 수 있는 미니어처 교환권과 오설록 할인권 등을 스마트폰으로 다운로드해 쓸 수 있다. 화장품을 사용하기 전 세안을 할 수 있는 클렌징 룸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뷰티 라이브러리’. 아모레퍼시픽 30여 개 브랜드의 2000여 개 제품을 마치 도서관에서 책을 빼서 보듯 꺼내 쓸 수 있다. 뷰티 라이브러리 맞은편에 있는 가든라운지는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다. 비치된 의자에 앉아 성수가든을 바라보며 다양한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다. 2층에는 오설록 아모레 성수점이 입점했다. 3층은 옥상으로 연결돼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성수동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3. 기차 안에서 놀자! 크루즈 열차 ‘해랑’
크루즈 여행은 한 장소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목적지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탑승과 함께 진행되는 유람선 안 프로그램이 낭만적이다. 아주 멀리 배를 타고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기차 안에서 놀고 즐길 수 있는 해랑을 타고 달려보자. 일명 레일크루즈라 불리는 ‘해랑’은 코레일관광개발에서 운영한 지 11년째 된 관광열차다. 상시 여행 코스는 2박 3일 전국일주(서울-순천-경주-동해-태백), 1박 2일 동부권(서울-단양-경주-서울),
1박 2일 서부권(서울-고창-보성-순천-서울) 3가지가 있다. 오는 12월 30일과 31일에는 해맞이 특별 열차가 운영될 예정이다.
‘해랑’으로 운영되는 열차는 총 2대로, 1대당 8량으로 구성돼 있다. 중심 차량인 4호와 5호는 레스토랑 카페와 이벤트 라운지이고, 나머지 6량은 객실이다. 2인실(스위트·디럭스룸)과 3~4인실(2층 침대) 패밀리 룸과 스탠다드룸 등 4개 타입이 있다. 호텔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시설 또한 고급스럽다. 관광 전용 열차에 걸맞게 침대, 소파, 화장실, 헤어드라이기 등 여행과 휴식에 필요한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여행이 시작되면 승객과 승무원들은 이벤트 라운지에 모여 여행 시작을 알리는 작은 파티를 연다. 다양한 이벤트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준비하는데 승무원들의 장기자랑도 이때 볼 수 있다. 승객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하면서 새로운 여행 친구들과 인사한다. 보다 친근한 여행을 즐길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해랑 승무원들은 맡은 소임은 물론 각 여행지에서 관광객 인솔과 이벤트 공연, 식음료 등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해랑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쇼핑을 강요받는다거나, 추가 요금을 내는 일이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 시니어들에게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출발하는 전국일주 2박3일 코스가,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에게는 1박 2일 코스가 인기 있다.
4. 손주들과 함께 가는 실내 동물원 ‘주렁주렁’
주렁주렁은 도심 속에서도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겨울철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동물원 나들이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실내 동물원 ‘주렁주렁’은 동물들과 함께하는 테마파크로 하남, 일산, 경주,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들어서 있다. 시간 여행자와 생명의 나무(타임스퀘어), 잃어버린 기억(하남), 여행자의 추억(일산), 숨겨진 비밀(경주) 등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운영된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이라 실내 평균온도와 내부 환경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고. 실내는 23℃에 맞춰져 있어 외부 날씨 영향을 받지 않고 사시사철 이용이 가능하다. 춥거나 미세먼지가 많아도, 눈비가 와도 즐길 수 있는 동물원이다.
운영 프로그램도 각 동물원마다 색다른 특색이 있다 ‘하남 주렁주렁’에서는 전 연령 대상으로 앵무새 ‘민트’와 함께하는 토크쇼 ‘모퉁이 상담소’, ‘주렁숲 요정의 산책’이라는 환영 행사를 진행한다. 올해 7월에 문을 연 영등포 타임스퀘어점은 1000평 규모의 실내 동물테마공원으로 대중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복합쇼핑몰 안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 시간 여행자와 생명의 나무 콘셉트에 맞춰 게임을 하듯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면서 동물원을 관람할 수 있다. 미션을 마친 뒤에는 영상 불빛 쇼도 볼 수 있다 하니 이번 겨울에 꼭 한 번 가보시길.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많은 ‘일산 주렁주렁’은 파충류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생생 도슨트 체험 파충류 대사전’과 ‘걱정인형 만들어주기’, 동물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생태체험 주렁쿠키’, 앵무새 비밀 친구(마니토)를 뽑아 특별 간식을 선물하는 ‘생태체험 나의 마니또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경주에서는 동물먹이주기 체험이 주를 이룬다. 상어, 사바나캣, 카피바라에게 먹이를 주고 싶으면 현장에서 신청하면 된다. 방문 전 주렁주렁 사이트에서 가고 싶은 곳 정보를 확인하면 보다 알차게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다.
5. 숲속 맑은 공기와 찜질 스파 ‘테르메덴 풀앤스파’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이천. 복합휴양 공간인 ‘테르메덴 풀앤스파’가 있다. 추운 날씨에도 실내외 온천 사우나와 수영장은 물론 카라반 캠핑 시설과 한옥을 갖추고 있어 유럽에 온 듯한 숲속 정취와 우리 전통의 향취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실내에 마련된 풀앤스파는 각종 질병 예방과 요양,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개발된 건강보양온천 시설이다. 이를 바데풀(Bade Pool)이라고 하는데 독일의 바데하우스(Bade Haus)를 모델로 했다. 유수풀, 유아풀, 테마 이벤트탕, 아로마 사우나 닥터 피시 등이 마련돼 있다.
실내 시설 중 하나인 찜질 스파는 전형적인 온천에 찜질을 더한 것. 온천욕을 즐긴 후 편백나무방, 황토방, 소금방, 맥반석방 등에서 찜질을 할 수 있다. 일본의 편백나무와 히말라야의 암염, 전북 고창의 최고급 황도, 경북 예천의 맥반석을 사용해 최고의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찜질방과 함께 패밀리룸, 가든 커뮤니티, 안마의자룸, 키즈라이브러리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이밖에 건·습식 사우나, 온천탕, 노천 이벤트탕은 일상의 지친 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춥다고 해서 꼭 실내 시설만 이용할 필요는 없다. 노천 이벤트탕은 생각보다 춥지 않다고. 겨울에는 바닥에 살얼음이 낄 수 있어 걸어 다닐 때 조심해야 한다. 추위가 걱정된다면 긴팔로 된 래시 가드를 착용할 것을 권한다. 테르메덴 풀앤스파에서는 수영복 대여가 안 되므로 꼭 챙겨가야 한다.
춥다고 외출을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때때로 발걸음을 옮겨 즐길 거리 가득한 실내 놀이터를 찾아보자. 찬바람에도 끄떡없는 테마별 실내 5樂 공간을 소개한다.
1樂 문화를 즐기다
◇ CGV 특별 상영관
국내 최초의 잔디 슬로프 특별관 ‘씨네&포레’는 영화와 숲을 테마로 한 콘셉트로 자연 친화적 스타일로 꾸며졌다. 숲속을 재현한 분위기와 더불어 영화 상영 전 피크닉타임, 캠핑 감성 메뉴, 그리너리 라운지 등을 즐길 수 있다. 또 거실에 대한 로망을 담은 거실형 극장 ‘씨네&리빙룸’은 가죽소파와 칸막이를 설치해 프라이빗한 공간을 연출했다. 각 좌석에는 개인 테이블, 쿠션, 휴대폰 충전기 등을 놓아 편안함을 더했다. 어두운 상영관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실제 거실처럼 밝은 조도의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씨네&포레: CGV 강변·광주금난로·천안터미널·부천점, 씨네&리빙룸: CGV 왕십리점.
enjoy + ‘씨네드쉐프’는 고급 레스토랑 식사에 이어 영화 관람까지 가능하다. 상영관은 침대관인 ‘템퍼시네마’와 다양한 소파가 마련된 ‘살롱S’ 중 선택하면 된다. CGV압구정·센텀시티·용산아이파크몰 등에서 즐길 수 있다.
◇ 송파책박물관
책장의 레이어를 본뜬 외벽이 돋보이는 ‘송파책박물관’은 다양한 연령대가 찾는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건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널찍한 중앙 계단. 관람객이 쾌적하게 독서를 하거나 각종 문화 행사를 즐기도록 설계했다. ‘책을 통한 소통’을 주제로 꾸며진 1층에는 카페라운지를 비롯해 북키움, 키즈스튜디오 등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책 속에 들어가 바라보다’라는 콘셉트가 담긴 2층에서는 책과 독서를 소재로 한 상설·기획 전시실과 미디어 라이브러리 등 다양한 사료와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날씨가 포근할 때는 야외정원에서 책을 읽으며 여유를 만끽해도 좋다. 서울시 송파대로37길 77, 화~일요일 10:00~18:00
enjoy + 송파책박물관의 특별 공간은 바로 ‘보이는 수장고’다. 대부분의 수장고는 유물처럼 귀한 자료가 많아 접근이 어려운 반면, 이곳에선 유리창을 통해 수장고의 모습과 소장품의 관리·보존 상황을 엿볼 수 있다.
2樂 자연을 즐기다
◇ 서울식물원
지난해 개방한 ‘서울식물원’은 지하철 9호선·공항철도 마곡나루역 3·4번 출구와 연결돼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도 쉽게 방문 가능하다. 지중해 12개 도시 식물을 전시한 온실에서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야외 활동이 괜찮은 날엔 한국 자생식물로 전통정원을 재현한 야외 주제정원을 거닐어보자. 그밖에 식물문화센터, 어린이정원학교, 마곡문화관, 숲문화학교, 수변데크 등을 둘러봐도 좋다.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로 161, 화~일요일 09:30~17:00(동절기)
enjoy + 서울식물원 내 식물문화센터에서는 각종 행사와 전시 등을 통한 다양한 식물문화 체험이 이뤄진다. 온실과 보타닉홀(대강당), 식물전문도서관, 씨앗도서관, 기획·상설 전시관을 비롯해 푸드코트, 카페테리아 등 편의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 식물관PH
유리온실과 닮아 자칫 식물원으로 보이는 ‘식물관PH’는 ‘식물과 사람이 함께 쉬는 고유한 경험의 공간’을 지향한다. 실제 사람과 식물이 더불어 활동하기 적합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곳에선 팥배나무, 야자나무 등 100여 종의 나무들과 다육식물을 전시한 재배온실을 볼 수 있다. ‘식물관’은 식물원과 미술관을 합친 이름이다. 입장료 1만 원을 내면 식물원과 3층 미술관을 구경하고 음료 주문까지 가능하다. 서울시 강남구 광평로34길 24, 화~일요일 11:00 ~20:00(동절기)
enjoy + 식물관PH 3층에서는 12월 15일까지 도예가 한정용 서울대학교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참여한 기획전시 ‘Formation’이 열린다. ‘흙’이라는 집중된 소재 안에서 만듦새의 확장성을 연구하고, 그 쓰임을 바탕으로 형태를 짓는 도예의 작은 시도를 들여다볼 수 있다.
3樂 놀이를 즐기다
◇ 숲, 숨 Gray
‘PLAY=HEALING’ 노는 게 곧 쉼임을 실현하게 해주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평일 1시간 5000원(주말 6000원)의 이용료를 내면 보드게임, 노래방, 오락실, 만화방, 안마의자, 영화 감상 등을 모두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아메리카노 1잔이 공짜로 제공되고, 3시간 이용 시에는 케이크까지 함께 증정한다. 5층으로 이뤄진 다양한 공간을 체험하다 보면 1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맨 꼭대기 층에는 와인을 곁들일 수 있는 바(bar)도 마련돼 있어 각종 모임 장소로 활용해도 좋다(대관 별도 문의).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156길 45,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제주점: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965)
enjoy + 액션, 어드벤처 등 인기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부터 농구, 다트, 레트로 오락기와 수준별 보드게임, 최신 코인노래방, 고급 안마의자까지 남녀노소 즐길 거리가 풍부해 누구와 함께해도 만족스럽다. 물론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 VR스퀘어
화이트·그린·블루·레드·옐로 등 총 5가지 콘셉트로 나뉜 5층 공간에서 각종 VR 어트랙션(가상현실 체감형 기기)을 체험할 수 있다. 이용요금은 평일 기준 어트랙션 수에 따라 BIG1 8000원, BIG3 2만 원, FREE PASS 2만9000원(3시간 자유이용)으로 나뉜다. VR 체험이 처음이라면 어지럽거나 멀미를 할 수도 있으니 1회권이나 3회권으로 먼저 이용해본 후 횟수를 늘리는 게 좋다. 여럿이 함께 간다면 원하는 시간 동안 인기 콘텐츠 13종을 즐길 수 있는 VR 파티룸(평일 3만6000원)을 이용하는 게 실용적이다. 서울시 마포구 어울마당로 68, 일~금요일 11:00~23:00, 토요일 11:00~24:00
enjoy + 실제 사용자의 행동이 게임에 그대로 반영되는 VR 워킹 어트랙션을 비롯해, 기계에 탑승해 운전이나 비행 등을 즐기는 VR 시뮬레이터, 근래 유행하는 VR 방탈출까지 몰입도 높은 가상현실 기기들이 설치돼 있어 다양한 VR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사진 제공 서울식물원, 식물관PH, 숲, 숨 Gray, VR스퀘어
4樂 여가를 즐기다
◇ 통의동 보안여관(BOAN 1942)
1942년부터 2005년까지 약 60여 년간 수많은 나그네가 머물렀다 간 쉼터 ‘통의동 보안여관’은 2007년 복합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재작년부터는 본래의 기능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숙박시설인 ‘보안스테이’를 새롭게 열었다. 북악산, 경복궁, 서촌 한옥마을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과 더불어 휴식을 극대화하는 객실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빈티지한 분위기의 외관과 실내 디자인뿐만 아니라 보안책방, 아트스페이스보안(전시 공간), 보안클럽 등 볼거리가 많아 이따금 여가를 보내기에 제격인 장소다.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33, 화~일요일 12:00~18:00, 잔술집33 18:00~24:00
enjoy + 통의동 보안여관 1층에 자리 잡은 33마켓은 한국적 정취와 계절의 흐름을 담은 공간이다. 낮에는 차를 우리는 티 카페로 운영하고, 밤에는 크리에이터들이 공예 작가들의 작품 잔에 술을 파는 ‘잔술집33’이 되어 손님을 맞이한다.
◇ 국립현대미술관 X 더 플라자 호텔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이하 ‘광장’)의 개최를 맞아 더 플라자 호텔과 함께 제휴 프로그램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x더플라자’를 진행한다. ‘광장’은 한국 미술 100년을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으로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에서 내년 2월까지 만날 수 있다(과천관은 3월 29일까지). 해당 기간 호텔 클럽층 투숙 고객에게 국립현대미술관 3개관 초대권과 무료 아트셔틀버스를 제공하는 등 편안한 휴식과 함께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더 플라자 호텔 서울시 중구 소공로 119
enjoy + 기본 제휴 프로그램 외에 미식과 예술이 결합된 ‘코리아 모던 아트 패키지’를 운영한다. 프리미어 스위트에서 1박과 함께 미쉐린 가이드가 선정한 한식 레스토랑에서의 식사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투어까지 누릴 수 있다(가격은 53만5000원부터).
5樂 취미를 즐기다
◇ 상생상회
상생상회는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지역 중·소농을 돕고 판로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1층에는 지역물품 판매장과 카페가, 지하 1층에는 전시 홍보 및 상생공유의 장이 마련돼 있다. 전시 홍보 공간에서는 지역 축제, 특산물, 관광자원 등을 주제로 정기적인 전시를 진행하며, 국내 여행 및 귀농·귀촌 등 유용한 지역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상생공유주방은 상생상회에서 판매하는 식재료를 활용해 요리하는 ‘서로맛남’과 금요일 점심시간 셰프가 만드는 제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금요미식회’를 진행한다. 요리가 취미인 이들이라면 한 번쯤 찾아가 보길 권한다.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39, 1층 매장 11:00~20:00, 자원홍보공간 9:00~18:00
enjoy + ‘서로맛남’과 ‘금요미식회’는 제철 식재료에 따라 매달 프로그램이 달라진다. 일정 확인 및 예약은 홈페이지(sangsaeng.seoul.go.kr)에서 가능하고, 상생상회 SNS나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를 통해서도 신청할 수 있다.
◇ 엔젤공방거리
진득하게 자리 잡고 앉아 취미를 즐기기엔 공방만 한 곳이 없다. 서울 강동구에 조성된 엔젤공방거리에는 도자기, 커피, 디저트, 플라워, 캔들, 금속, 목재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공방이 즐비하다. 각 공방에서 판매하는 이색 공예품들은 물론 데일리 클래스나 정기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원하는 공예품을 제작하거나 배울 수 있다. 서울시 강동구 성안로 일대.
enjoy + 강동구 엔젤공방거리에 입점한 공방은 현재 총 18곳이다(2019년 11월 기준). 도자기 공예 수업을 진행하는 ‘베이크 포터리’(성안로 109)를 1호점으로 시작해 18호점인 애견 관련 수공예품점 ‘오늘도 예쁘구나’(성안로 43)까지 각양각색의 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핸드드립 커피와 디저트 등을 즐기고 배우는 ‘커피 플라스크’(성안로 41), ‘알라망’(성안로 75) 등을 비롯해 테라리움 DIY 공방 ‘고니네미’(성안로 47), 젓가락 예절교육을 진행하는 ‘시와저’(성안로 101), 업사이클 금속공예방 ‘메탈룸’(성안로 35) 등 취미에 따라 공방을 선택해 즐길 수 있다.
토목공학을 전공해 35년간 건설회사에서 몸담았던 민병직(71) 씨. 퇴직 후 서울 시민정원사로 활발히 활동 중인 그는 현재의 일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반평생 토목공사를 하며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산을 깎아 길을 내고 댐도 만들었죠. 돌이켜보니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식물이 희생됐더군요. 그 시절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젠 자연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 분야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꼭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 유독 꽃을 심고 화단 가꾸는 일을 좋아했다. 평소에도 집에서 다양한 식물을 키웠고, 도심 속 작은 텃밭도 일궈왔다. 그러던 중 퇴직을 앞두고, 자신의 전공 분야와 접목해볼 만한 일을 찾던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건 ‘조경’이었다.
“예전엔 조경도 토목의 한 분야였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조경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했는데, 나름대로 연관성 있는 분야라 어렵지 않게 잘 마칠 수 있었어요. 그러곤 뭔가 더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서울 시민정원사 1기 모집’ 공고를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2014년 가을 기본 과정을 수료했고, 이듬해 심화 과정을 이수하며 서울시장 명의 ‘서울 시민정원사’ 인증서를 취득할 수 있었다. 물 흐르듯 순탄하게 방향 전환에 성공한 그는 유기농업기능사, 종자기능사 등 국가기술자격까지 섭렵하며 제2인생을 위한 항해를 시작했다. 자격증 취득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이후 실전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은 자연의 시간표대로 묵묵히 흘러갔다.
“자연을 상대하려면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보통 씨를 뿌리고 결실을 내려면 1년은 걸립니다. 요즘엔 자격증 공부하며 이론으로 터득한 내용과 별개로 텃밭 한쪽에 제 나름의 방법으로 식물을 키우며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있습니다. 자연의 일은 체험이 중요하다고 봐요. 다양한 시도를 통한 경험의 수치가 생기기도 하고, 뜻밖의 선물을 얻기도 하죠. 그게 바로 자연과 더불어 일하며 얻는 가장 큰 수확이자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사의재 (四宜齎)
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죽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
‘그늘이 되어주시던 주상이 승하하시고 나니 이 한 몸 간수할 곳이 없구나. 주상이야말로 나에겐 꽃이셨네. 꽃 잎인 한 분 형님은 순교하시고, 다른 한 분 형님은 따로 떨어져 다른 곳으로 유배되고...... 견딜 수 없는 것은 더 이상 희망의 창이 보이지 않는 것이구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정약용은 그의 형들과 함께 신유사옥(1801년) 때 유배를 당한다. 그는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그가 강진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를 둘러싼 세상은 온통 절망이었다. 유배가 그렇듯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게 무의미해 보였다. 그의 나이 40세.
그는 길을 잃었다.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닌 마음의 길, 인생의 길을 잃었다. 길을 잃은 그가 선택한 것은 미친 듯이 걷는 것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헤매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패라는 상실감이기도 했고, 끝나버린 인연의 아픔을 곱씹는 것이기도 했다. 어쩌면 치밀하게 준비했던 인생 계획표가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진에 온 정약용의 초기 생활을 지켜보던 주막의 나이 든 주모가 어느 날 그에게 한마디 했다.
“어찌 그냥 헛되이 살려고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부터 그는 변했다. 스스로 생활의 태도를 바꾸었다.
그는 사소한 기대를 통해 우선 현실을 극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작은 의미 부여와 노력을 통해 절망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태도를 바꾼 순간 다산은 자기가 겪고 있는 시련의 의미를 찾아냈다. 그때부터 4년 동안 그는 그곳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했다.
또한, 삶의 의미를 철저하게 현실 속에서 찾은 다산에게 이 시기는 민초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는 묵묵하게 성실히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해서 본인이 묵은 방을 ‘생각을 맑게, 용모를 단정히, 말은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라는 의미로 ‘사의재(四宜齋)’로 지었다.
본래 경세제민을 실천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라기도 했지만, 이때의 시간이 그의 명저 ‘목민심서’를 구상하는데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강진군에서는 다산의 뜻을 기리고자 그가 유배를 와서 초기에 머물렀던 사의재를 복원하여 한옥 체험 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이 아니라 복합 문화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한다. 사의재가 있는 위치가 강진읍의 중심지여서 걸어서 ‘영랑 생가’와 ‘세계 모란공원’도 둘러볼 수 있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긋함과 함께 마루 턱에 앉아 고즈넉한 가을밤 달구경 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가슴 깊숙한 곳에서 다산의 삶의 지혜가 울려오는 밤이 된다.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의 외가는 해남 윤씨로, 어머니가 문인인 윤선도의 딸이다. 학문을 중시하는 외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강진으로 유배를 왔지만, 외가인 해남이 가까이에 있는 것이 다산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해남의 외가에는 자체적으로 장서를 수집해 보관해 놓는 만권당이라는 장서각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유배기간에 학문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는 외가에서 마련해준 이곳 다산초당에서 1808년부터 유배가 끝나는 1818년까지 지냈다.
다산은 유배를 온 신분의 한계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내면서 기존 제도의 개정을 논하는 ‘경세유표’, 지방관이 부패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목민심서’, 공정한 재판을 논하는 ‘흠흠신서’ 등 실학과 조선 유학, 법의학 등 500여 권의 저서를 썼다. 그의 생애 업적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그에게 학문은 살아가는 것 그 자체였다. 기본이 유학자이다 보니 먼저 자기 성찰과 세계 인식의 기준이 성리학에 바탕을 둔 실학이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공부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변화가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 대해 그토록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던 것이다.
다산의 유배 생활로 인한 세상과의 단절을 메꿔준 이는 벗이자 스승이며 제자인 ‘혜장선사’였다. 그들은 대화하고 공감하며 화합하기 위해 초당 뒤 만덕산 백련사 가는 오솔길을 무수히 걸었다. 제한된 세상과의 통로였지만 소나무 숲길, 동백꽃 길, 차 밭으로 이어진 이 길을 걸으며 그는 세상을 제대로 보는 법을 터득했다.
가두어진 하루하루는 생의 의미를 사라지게 하는 물리적 장치다. 하지만 다산은 초당 지붕 끝에서 흘러내리는 가을비 소리에 번뇌를 멈추고, 약천(藥泉)에 달인 차로 속기(세속의 기운)를 씻으며 스스로 인생의 격조를 올렸다. 그가 위대한 이유다.
다산초당은 노후화되어 붕괴한 것을 1957년 복원한 것이다. 소나무 뿌리가 뒤엉킨 소나무 숲 ‘뿌리의 길’을 800m 정도 올라가면 고적한 유배 생활의 정취가 서려 있는 초당이 나타난다. 다산이 직접 새겼다는 ‘정석 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茶竈 ㆍ 차 달이는 부뚜막)’ 등을 초당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초당으로 가는 숲속 길에서부터 절제되고 제어된 기운이 느껴진다. 다산초당은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다산 학문의 핵심과 통하는 것이다.
가을이어서 그런지 벌써 겨울이 기다려진다. 아마, 동백꽃 핀 다산초당 숲길을 걷고 싶어서 그런지 모른다.
백운동 원림
10년 동안 시베리아에서의 감옥과 유배 생활을 마친 후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스토옙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Notes from a dead house)”이라는 장편 소설을 썼다. 그는 감옥과 유배 생활을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집’으로 표현했다. 그만큼 유배의 시간은 고통이고 지옥 같은 생활이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와 ‘구원에 대한 희망’을 본인 문학의 화두로 삼았던 도스토옙스키는 유배 생활을 통해 무엇이 모든 죄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을까? 그것은 ‘단절’이었다. 단절은 고립이고 대립이며, 증오와 이기주의의 시작이다.
유배지의 폐쇄적 환경인 단절을 벗어나기 위해 다산이 선택한 길은 ‘사랑’이었다. 사랑은 실천적 사랑과 공상적 사랑으로 나뉜다. 유배지에서 다산의 실천적 사랑은 후학 양성과 학문 탐구다. 공상적 사랑은 초의선사, 이시헌 등과의 교류와 월출산 줄기를 중심으로 한 자연과의 만남이었다.
다산이 제자들과 함께 강진의 자연을 만난 곳이 백운동 원림(園林)이다. 백운동 원림은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불린다.
17세기에 이담로가 조성한 이곳은 자연과 인공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균형 잡힌 조화를 보이고 있다. 집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인공적으로 끌어들여 마당의 상지와 하지를 거쳐 아홉 굽이 휘돌아 나가는 유상구곡(流觴九曲)의 구조를 갖추었다. 화단에는 소나무, 대나무, 국화, 난초 등이 자라고 있다.
다산은 그림을 잘 그리는 초의를 시켜 ‘백운동도’를 그리게 했다. 스스로는 12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칭송하는 시를 읊어 시와 그림을 묶은 ‘백운첩’을 남겼다.
백운첩에 담긴 12곳이 ‘백운동 12 승경’이다. 1경: 옥판봉 (절경의 월출산 산봉우리) 2경: 산다경 (원림입구 동백나무 숲길) 3경: 백매오 (집 주변 언덕의 매화나무) 4경: 홍옥포 (대문 앞 단풍나무와 작은 폭포) 5경: 유상곡수 (마당의 여섯 굽이 물굽이) 6경: 창하벽 (다산이 붉은 먹으로 쓴 푸른빛 석벽) 7경: 정유강 (언덕 위, 용 비늘처럼 생긴 소나무) 8경: 모란체 (본채 아래 3단의 화단) 9경: 취미선방 (고즈넉한 세 칸의 초가 사랑채) 10경: 풍단 (창하벽 위 단풍나무) 11경: 정선대 (창하벽 위 정자) 12경: 운당원 (왕대나무 숲)
강진의 자연을 정원에 담은 이곳에서 다산은 견뎌냈다. 유배지에서의 견뎌냄은 사랑의 힘이었다.
강진 백운동 원림은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백운동 원림에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 옆에 있는 소나무와 동백나무 우거진 숲길을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늘 그렇듯이 숲길을 걸을 때 느껴지는 신선한 자연의 공기가 온몸을 깨운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하얀 가을 햇살이 눈 부시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대문 앞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 서려 있는 녹색 이끼는 자연의 시간이다. 낮은 담벽을 타고 올라오는 넝쿨은 수줍은 듯 여행자를 훔쳐본다.
곧게 뻗은 대나무 사이로 청정한 가을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앞마당이 보이는 툇마루에 앉아 한나절을 보내고 싶다. 다산처럼 건너편 차 밭에서 실려 오는 가을내음을 맡으면서 자연과 통(通)하는 시간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나무를 좋아해 나무와 더불어 한평생을 살았다. 늘 나무를 심었다. 애지중지 가꾸고 돌보고 어루만졌다. 몸뿐인가. 마음까지 나무에게 바쳤다. 그 결과 들판 가운데에 있던 황무지가 장엄한 숲으로 변했다. 거대한 정원이 태어났다. 들어보셨는가. 나주시 금천면에 있는 죽설헌(竹雪軒)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한국화가 박태후(64).
사건? 그렇다, 가히 ‘사건’이라 할 만하다. 개성적인, 너무도 개성적인 초대형 개인정원을 만든 게 아닌가. 정원 면적은 자그마치 14만㎡(약 1만2000평). 대략 축구장 6개를 합친 크기의 정원이다. ‘이 사람은 금수저를 물고 나와 팔자 좋게도 평생토록 정원을 즐기나보다.’ 그렇게 지레짐작을 하는 이도 있을 테지. 돈이면 무엇이건 다 해낼 수 있다는 미신이 만연한 세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박태후는 가난한 농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간신히 밥 먹고 자랐다. 줄곧 손에 거머쥔 것 없이 살았다. 맨땅에 헤딩하듯, 무모하게도 거대한 정원 조성에 인생을 던졌다.
‘개성적인, 너무도 개성적인!’ 죽설헌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 무엇으로 개성적인가? 일단 줏대 넘치는 정원이다. 전국 곳곳엔 개인이 조성한 화려한 정원이나 수목원이 많다. 대체로 서양식 아니면 일본식 정원, 또는 이도저도 아닌 짬뽕이다. 박태후의 정원은 다르다. 한국 정원의 전통과 양식을 추구해왔다는 게 아닌가. 외제와 외풍과 외래종을 얕잡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다. 본때 있는 토종 정원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한국적인 정원의 정신과 고유성을 탐구해 나름대로 구현하는 실험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스스로 과제를 부여한 셈이며,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스스로 배웠고, 배운 대로 밀어붙였다. 줏대 아니면 푹 쓰러질 인물이다.
“한국적인 정원의 특징엔 어떤 게 있죠?”
“자연을 존중하는 정신이 여실히 드러난 게 한국식 정원입니다. 서양식 정원은 달라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서구의 사고 전통이지요. 정원의 구조에도 정복의 정신이 고스란히 서려 있어요. 성(城)을 건축하듯이 과감한 기하학적 기법으로 정원을 만들어요. 일본 정원은 자연의 최대 축소치를 추구합니다. 자연을 넘어 우주까지를 축소시켜 집 안에 끌어들이고자 해요. 그 축소 노력을 통해 발달한 게 전지(剪枝) 기술이죠. 고도의 인위를 구사하는 겁니다. 반면 전래의 한국 정원은 나무를 가급적 있는 그대로 놔뒀어요. 자연스럽게 자라 어우러지도록 존중, 인위적 변형이나 관리를 자제하는 거죠.”
“지친 마음을 나무 그늘 아래에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정원이지 않을까? 굳이 한국적 정원을 한사코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지 않겠어요? 조경이건 미술이건 뭐건, 세계 속에서 최고를 구가하려면 전통의 독창성과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일테면, 대통령 부부가 외국 순방을 할 때 한복을 입지 않는 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마찬가지로 고유의 한국적 정원이 아닌 일본풍과 서양풍 일색으로 변한 조경 관습에 개탄을 금할 길이 없어요. 오늘날의 정원 99%가 남의 나라 방식을 따르고 있다니, 이게 정상일까?”
“말하자면 죽설헌이 한국적 정원의 본보기라는?”
“아, 그렇진 않아요. 큰 틀에서 보자면 한국식 정원이지만, 온전히 규범적인 한국식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지향한다, 한국적 자연 정원을 지향한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만약 죽설헌을 전형적인 한국 정원이라고 내세운다면 학계로부터 쏟아지는 신랄한 비난을 면하기 어렵겠지요. 조경 학자들의 이론(異論)이 난무할걸요. 아마도 게거품을 물고 덤비지 않을까.(웃음)”
정원 조경의 실제 경험에 관한 한 박태후를 능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재야 조경가다. 고독한 고수다. 일쑤 삐딱한 눈총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는 언젠가 때가 오면 ‘대한민국을 통째 디자인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사는 인물이다. 그런 박태후가 제도권 전문가들을 바라보는 태세에도 날카로운 게 들어 있다.
“이론들끼리 기탄없이 다투어야 답이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원탁회의라도 열어 토론을 해봅시다! 제가 자주 그런 얘길 합니다. 그러나 아직 반향이 없다는 거. 오늘 저는 또다시 토론을 제안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요점이 뭐냐면, 대다수의 학자나 이론가들은 비원 같은 궁중정원이나 사대부들의 별서정원(자연에 귀의, 유유자적하기 위해 지은 별장에 딸린 정원)을 한국 정원의 원류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저는 서민들이 누린 토속적 정원에서 원형을 봐요. 장독대와 텃밭까지를 포괄한 자연 정원에 더 흥미와 애정을 느껴요. 정원을 일부 상층부의 전유물쯤으로 국한하는 견해에 동감할 수 없는 겁니다.”
모네의 정원 답사하고 감명받아
남도에 태풍이 스쳐지나가는 날이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죽설헌 숲이 출렁인다. 둥근 야산 하나가 통째로 몸을 떠는 것 같다. 개인 정원이 어이 이토록 동산처럼 방대한가? 한국적인 걸 지향하는 데에 규모화가 기본일 리는 없을 것이다. 방대할 뿐 아니라 어느 한구석 허술한 게 없으니 놀랍다. 나무에 최대한 손을 대지 않은 걸 원칙으로 삼았다지만, 정원다운 운치와 구성과 미학이 생동하니 손길과 숨결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번듯한 정원을 만들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게 좋아 그냥 심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심으면 자라고, 가꾸면 꽃피어나는 식물들의 질서정연한 생리와 생태에 점점 빠져들었어요. 본격적으로 한국적 자연 정원이라는 것에 착안하고 올인하기 시작한 건 중년에 접어들어서였지요.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정원을 답사하고 깊은 감명을 받고서였어요. 같은 화가로서 강렬한 매혹을 느꼈어요. 비록 일본식 정원이었지만.”
“처음 나무를 심기 시작한 건 언제였죠?”
“제가 가정형편상 원예고등학교에 진학해 과수, 채소, 화훼 재배기술을 배웠어요. 재학 중에 이미 나무를 심는 재미를 알았지요. 저희 집 소유의 황무지에 틈만 나면 달려가 나무를 심었으니까. 그게 죽설헌의 시발입니다. 졸업 뒤엔 관공서 정원사를 거쳐 농촌지도소에서 근무했지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나무를 가꿨고요. 40대 초반엔 사표를 던졌습니다. 이후론 정원 가꾸기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죠. 낮에는 정원 일을, 밤에는 그림을. 이건 지금까지 사오십 년째 반복되어온 일상이에요.”
박태후는 제대 뒤 의재 허백련의 조카 허의득 선생에게 사군자를 배우면서 한국화에 입문했다. 늦깎이로 미술 관련 석사학위도 받았다. 끔찍한 노력파다. 조경과 그림, 그 둘에 쏟은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자기 자신에게 입증해 보인 열혈한이다.
정원을 산책해볼까. 폭염이 살갗을 굽는 여름 한낮이지만 정원의 공기는 서늘하다. 저녁 으스름처럼 어둑한 건 나무들이 허공을 가려서다. 박태후의 몸은 대나무처럼 늘씬해 나무숲에 어울린다. 잔인한 세월이 내려앉은 머리칼은 허옇지만, 자신의 평생 동행인 나무들을 바라보는 표정엔 온정이 가득하다.
백련이 벙그러지는 연못가. 못을 빙 에두른 노랑꽃창포 군락이 싱그럽다. 또 다른 연못가엔 왕버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수면에 어린 제 그림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둘 다 박태후가 각별히 아끼는 초목이다.
“5월이면 한 달 내내 노랑꽃창포들이 꽃피어 연못물마저 노랗게 물들입니다. 장관이죠. 저는 이 꽃을 ‘습지의 여왕’이라 불러요. 왕버들과 마찬가지로 물가에서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아주 강합니다. 뿌리의 수질정화 능력도 탁월해요. 생태조경에 적격이죠. 이 좋은 노랑꽃창포가 예전엔 너무도 흔해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어요. 그 바람에 요즘은 흔히 보기조차 힘들어졌어요.”
“정원을 만들려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수종을 권한다면?”
“최상의 정원수는 유실수예요. 감나무, 사과나무, 앵두나무, 살구 등등 꽃도 즐기고 과실까지 얻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열매를 쪼아 먹으려고 새들이 날아듭니다. 새들의 노래마저 즐길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해야겠네.”
‘시행착오’가 가장 유능한 교사
죽설헌의 풍치엔 허전한 게 없다. 있을 게 다 있으니까. 200여 가지의 수종들, 수백 종류의 야생초들, 여섯 개의 인공 연못, 고와(古瓦)로 야트막이 쌓은 울, 숲의 사방으로 뻗어나간 산책로…. 가지를 잘라내거나 솎아주기를 극도로 삼갔으니 나무들은 자유롭게 자랐다. 저마다 길길이 가지를 뻗어 허공을 움켜쥔다. 나무 아래에선 꽃들이 병아리처럼 종종대며 형형색색의 물감을 짜낸다. 백련과 홍련이 맑고 고운 얼굴을 수줍게 드러내는 연못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련된 인공 정원이다. 그러나 인위가 세월에 발효되어 자연과 동화해서일까. 일부러 애써 꾸민 티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야생의 숲이라 해두자. 간섭받지 않고 성장한 나무들이 내쉬는 거친 숨소리, 자잘한 꽃들과 키 작은 음지식물들이 도란거리는 속삭임까지 귓가에 고이는 기분이다. 이토록 천연스런 숲 정원을 만든 건 여기가 피안이라는 뜻인가.
“나무를 가꾼 지 반세기가 지났군요. 어떤 일이든 하나에 평생을 바쳐 열정을 쏟아 붓는다는 건 영혼이 움직이고서야 가능하겠죠. 죽설헌을 만든 당신의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이라 보나요?”
“시행착오. 바로 그거예요. 저는 전문적인 조경 교육을 받은 게 없이 일체를 혼자 해결해왔어요. 당연하게도 갖가지 오류가 빈발했죠. 쉬운 예로, 초기엔 외래종 화초와 토종 화초의 구분조차 하질 못했어요. 그걸 깨닫고 공부하며 초목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수시로 그런 식의 과정을 거쳤지요. 인생에서 시행착오보다 더 유능한 교사는 없다고 봅니다.”
“이 너른 정원을 조성하기까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됐겠죠? 자금 조달엔 문제가 없었을까?”
“가장 난감했던 게 바로 그 대목이었어요. 수입이라곤 얼마 안 되는 연금뿐, 부부가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왔습니다. 감자나 참깨를 농사지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어요. 그러나 빚을 얻어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나무를 계속 심자면 주변 땅을 사들여야만 했으니까.”
어렵사리 터를 매입해 나무들을 심는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었단다. 나무들의 키가 커지고 둥치가 불어나면 적절히 이식을 해줘야만 했다. 그러자면 다시 땅을 확보해야 했으니 주기적으로 자금난에 봉착했던 것 같다. 간벌(間伐)로 쉽게 처리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박태후는 나무를 베어내거나 파내는 행위를 금기로 삼고 있다. 나무와 혈맹조약을 맺은 것처럼.
“저것들도 엄연한 생명인데, 저것들도 한번 살아보겠다고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베어낼 수 있단 말인가. 결국은 옮겨 심을 터 마련에 나서게 되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당신, 욕심을 너무 부리는 거 아니야? 라는 투로 바라보지만 터무니없는 오해예요. 나무와 함께 살다 보면 나무에게 많은 이치를 배우게 됩니다. 세상을 진정 잘 사는 길을 숲의 자연 생태에서 깨닫게 되는 거죠. 이게 자연 정원을 가꾸는 최상의 목적이자 낙이에요.”
자연에의 외경을 지닐 경우, 교만과 허영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삶의 과욕과 과속은 마음속에 자연을 들여놓지 못해 생기는 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처럼 살기는 사실 어렵다. 사람이 나무처럼 살 수 있겠나. 가을마다 잎을 모조리 털어내는 나무의 허심을 흉내낼 수 있겠는가.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채 혹한을 묵묵히 견뎌내는 겨울나무를 시늉할 수 있겠는가. 박태후는 나무들의 생태에 인간사의 고통과 한계를 대입하고 그 치유책을 찾아 나선 사람이진 않을까.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며 과욕이란 헛된 거라는 걸 자주 느껴요. 제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저승까지 가져갈 길이 있던가요? 결국엔 모든 걸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명백한 진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사는 게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