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거리의 주인공 송해 선생님!
5월호 아지트 기획을 위해 종로의 송해거리로 나섰습니다. 출동(?)한 지 10분 남짓 흘렀을까요?
앗, 그분이 나타났습니다. 잽싸게 인사를 드리고 짧게나마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게 바로
현장 취재의 묘미가 아닐까요?
따뜻한 대구의 기억
초여름에 찾은 대구, 그곳엔 이규리 시인이 있었습니다. 때 이른 더위에 따사로운 한
줄기 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그녀의 품에 쏙 들어왔습니다. 초겨울이라 그런지, 미지근했던 그날의 온도가 이제는 포근하리만큼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만난 최고의 캐릭터 정경교 씨
마을 사람들에게 ‘정도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촬영하는 동안에도 내공 있는 무도인의 면모를 보여주셔서 멋진 B컷이 남았습니다. 내 취향대로 이왕이면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살겠다는 의지가 보이는군요.
눈은 이렇게 뜨는 것!
한여름에 만난 찐한 언니들 루비밴드. 좀 더 강렬한 표정을 지어달라고 하니 보컬인 이오옥 씨가 눈을 크게 뜨고 카메라를 주시합니다. 다른 멤버들은 그 모습이 웃긴지 카메라 보기를 포기했군요.
선글라스일까요?
창가를 바라보는 황덕호 재즈평론가. 안경에 빛이 반사되며 마치 선글라스를 낀 듯한 모습이 연출됐습니다. 그 앞에 쌓인 음반들까지 몽환적으로(?) 그려지며 오묘한 느낌이 듭니다.
매우 인상적인 컷이었지만, 그의 맑은 눈을 먼저 보여드리고파 잠시 숨겨두었습니다.
나들이 떠나기 좋은 계절,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 2019
일정 10월 1~5일 장소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
국내 대표 불꽃축제로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찾는다. 올해는 ‘Life is COLORFUL’을 테마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불꽃 아틀리에와 더불어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 쇼까지 감상할 수 있다.
◇ 영화 '트루 시크릿'
개봉 10월 3일 출연 줄리에트 비노쉬, 프랑수아 시빌 등
외로움 속에서 자존감까지 잃어가던 50대 여교수 클레르는 SNS를 통해 스물넷 여성으로 위장해 아슬아슬한 연애를 시작한다. 정체를 숨겼지만, 오히려 잃었던 삶의 열정을 회복해가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 제16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일정 10월 4~6일 장소 경기도 가평군 자라섬 일대
15회 동안 55개국 1105팀의 아티스트가 방문한 세계적인 재즈 페스티벌이다. 재즈를 잘 모르더라도 소풍 떠나듯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시원한 가을, 자라섬 잔디밭에 누워 아름다운 재즈의 선율에 푹 빠져보자.
◇ 무용극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일정 10월 9~20일 장소 LG아트센터
가녀린 여성이 아닌 근육질의 남자 백조를 등장시키며 원작 무대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현대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유약한 왕자와 강인한 백조의 애달픈 이야기가 역동적인 군무와 함께 펼쳐진다.
◇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
일정 10월 16일~11월 10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2013년 초연 당시 동아연극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등 국내 연극상을 휩쓴 작품이다. 김재엽 작가의 실제 가족사를 바탕으로, 아들의 훈련소 앞에서 아버지가 흘린 눈물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일생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 뮤지컬 '귀환'
일정 10월 22일~12월 1일 장소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
육군 본부 주최 뮤지컬로,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도 돌아오지 못한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조국의 품으로 찾아오는 이야기를 다뤘다. 군 복무 중인 장병 30여 명이 무대에 함께 올라 의미를 더할 예정이다.
산들산들 가을바람이 부는 9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일정 9월 3~15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하려 생체 실험을 하다가 자신의 숨은 자아에 영혼을 잠식당해버리는 지킬박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대중에게 익숙한 ‘지금 이 순간’, ‘한때는 꿈에’ 등 서정적인 넘버와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앙상블을 이룬다.
◇ 영화 '집으로...'
개봉 9월 5일 출연 김을분, 유승호 등
한때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던 영화 ‘집으로...’가 추석을 맞아 18년 만에 재개봉한다. 일곱 살 개구쟁이 서울 소년 상우와 그런 손자를 무한한 사랑으로 돌보는 시골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 제19회 불갑산 상사화 축제
일정 9월 18~24일 장소 전남 영광군 불갑사 관광지 일원
사시사철 야생화가 아름다운 불갑사 인근에서 매년 가을 상사화를 테마로 여는 축제다. 올해는 ‘상사화, 천년 사랑을 품다’를 주제로 상사화 꽃길 걷기, 국악공연, 앙상블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공연, 전시 및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이다.
◇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
일정 9월 20~21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봉오동 전투’를 배경으로, 세종문화회관 산하 7개 예술단이 모두 참여하는 대규모 음악극이다. 대한독립군의 영웅이지만 인생의 말년에는 쓸쓸한 삶을 살아야 했던 홍범도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재조명한다.
◇ 제48회 안동 국제 탈춤페스티벌
일정 9월 27일~10월 6일 장소 경북 안동시 탈춤공원, 시내 일원
‘여성의 탈, 탈 속의 여성’을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축제는 전통사회 속에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삶과 꿈을 그려낼 계획이다. 행사 동안 할미탈, 부네탈, 왕비탈 등 다양한 여성 탈을 테마로 한 공연과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일정 9월 28~29일 장소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일대
도심 속 자연을 벗 삼아 재즈의 선율에 흠뻑 빠져볼 기회다. 국내 정상급 재즈 뮤지션의 무대는 물론 대중음악과의 협업 무대까지 고루 경험할 수 있다. 재사용 가능한 용기에 도시락을 가져오는 캠페인도 함께 진행되니 가을 소풍 떠나듯 축제를 즐겨보자.
저무는 놀빛 앞에선 허허롭다. 서산 너머로 사라진 해는 이제 어느 숙소를 찾아가는가. 인생 황혼에 접어든 사람은 어디로 가나. 만족은 없고 갈증은 자글거린다. 요즘 말로 ‘심쿵’은 멀고, 딱딱한 가슴에 먼지만 폴폴 날린다. 이건 겁나게 먹은 나이에 보답하는 정경이 아니다. 어이하나. ‘나, 물처럼 살래! 흐르는 물이 돌부리에 걸리거나 진땀 빼는 법이 있던가, 물이 답이자 선생이다!’ 문순우(73) 화백은 그리 생각한다. “너, 나를 물로 보니?”라 할 때의 그 물이다. 옳다구나, 가급적 만만하게 살자는 얘기일 게다. 그게 잘 사는 길이라는 소식이다. 노자가 설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그 물이니 문순우 기자, 아니 문순우 도사가 취재한 ‘도(道) 뉴스’일 수 있다.
못 믿을 게 도인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그러하니 문순우를 도사로 읽는 건 결례이거니와, 그는 ‘도’라는 거룩한 단어 자체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는 그저 물이 좋아 물을 닮고자 한다. 물처럼 거침없이 흘러가는 노경(老境)을 선망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물로 봐야 한다. 그게 예의에 맞다. 이 물은 오늘 숲속의 잠잠한 초록호수처럼 평온하다.
“나 요즘 편안하거든. 만족스럽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고. 여기에서 더 바랄 게 없는 것이에요.”
문순우의 올해 나이 일흔셋. 이미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연치(年齒). 이젠 귀신조차 바라보일 시절이다. 그러나 그가 요새 주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건 캔버스다. 죽자사자 그리는 것 같다. 창작이란 방울방울 피를 뿜는 일. 흔히 산고(産苦)에 견준다. 이 힘든 일을 왜 용을 쓰고 하나, 싶지만 문순우는 힘 안 들이고 대꾸한다.
“힘은 무슨 힘? 영감(靈感)이 나를 데려가는 것을.”
‘영감’이라는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서 후루룩 내려오는지 난 모르겠다. 그러나 매사를 힘들이지 않고 시원하게 해치우는 문순우의 내공이랄까, 그런 게 영감님을 모셔다주는 모양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문순우는 그림만 그리진 않는다. 그는 사진으로 예술에 입문했다. 도예도 주 종목이다. 목수이자 오디오 평론가이기도 하다. 와인과 재즈에 통달한 전문가다. 아마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남몰래 눈물을 훔칠 요리의 달인이기도 하다. 이 기똥찬 다재를 일컬어 ‘전방위 예술가’라 한다. 어찌 보자면 이도 저도 아니다.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하나를 들입다 파더라도 도로아미타불에 그치기 쉬운 게 예술이다. 하나에 쉬 질리거나 옹골차게 돋우지 못해 여럿을 동시에 신나게 파 젖히는가? 딴엔 그게 자연스럽다. 물에 무슨 경계가 있던가. 열에 열 골 물이 하나로 통하고 모이는 게 물의 생태 아니던가.
나부터 사랑하기
문순우가 점심 요리를 한다. 아내 박미광(64)이 조수로 나서 묵은 김치를 물에 헹궈 숭숭 잘게 썬다. 그 사이 그는 양파와 토마토 등 갖가지 재료를 올리브유에 지지고 볶아 소스를 만들고 국수를 삶는다. 이름은 묵은지 파스타. 작은 꽃송이와 향신채소 잎 두어 개를 파스타 위에 살짝 얹고 요리 끝! 그러나 진정한 마무리는 아니다. 촛불을 켜고 글라스에 레드와인을 채우고서야 식사가 시작되니까. 나는 한낮의 식탁에서 제 몸을 사르는 촛불에 황송하다. 생일 밥상을 받은 기분이다. 촛불 보시를 한 이여, 복되도다.
“웬 촛불이냐고? 이게 격(格)이라는 것이지. 우린 항상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해요. 라면을 먹더라도 초를 켠다고. 하하핫. 이왕이면 소소한 일상이더라도 축제처럼 사는 게 좋지 않겠어요? 내가 나를 기쁘게 하기,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하기, 내가 나부터 사랑하기, 그런 게 돼야 남을 즐겁게 할 수 있지 않겠어? 그게 생활의 격이라 보는 것이지.”
“요리는 언제 배우셨지?”
“마흔 살 넘어 사진 공부를 위해 파리에서 유학했는데, 그때 요리를 배웠어요. 내겐 특이한 성향이 하나 있어요. 왕성한 호기심, 그거! 중학생 땐 전축에 호기심이 불붙어 진공관식 앰프를 직접 만들었다고. 남들은 어떻게 사나, 그런 호기심을 누를 길 없어 유목민처럼 평생 곳곳을 떠돌기도 했어요. 파리 유학 시절엔 프랑스 요리에 호기심이 들끓더라고. 그 무엇보다 파리의 살롱 문화에 반해버렸고.”
“궁정과 귀족의 저택을 무대로 성행한 프랑스의 사교 모임, 그게 살롱의 유래죠? 사르트르나 피카소가 즐겨 드나들었던 몽마르트의 카페들이 그 후신일 테고.”
“한마디로 문화 사랑방이라 해야겠지. 프랑스 문화의 기저, 단순히 예술가들의 집합소가 아니라 논쟁과 소통이 다반사로 벌어져 당대 문화와 예술을 주도해나간 공간, 다종다양한 보헤미안들이 몰려들어 생을 즐긴 아지트. 꼭 필요한 그게 한국엔 드물다는 걸 알고 귀국하자마자 살롱을 차렸어요. 재즈 클럽 ‘라 끌레’라고 삼청동에 있었다고. 너무도 빨리 망하고 말았지만.(웃음)”
나에겐 삼사 년 전 문순우의 거처에서 한나절을 놀았던 추억이 있다. 당시 그의 집은 시골 숲속에 있었다. 그의 집이랄 것도 없다. 그는 돈이라는 게 당최 없다. 남의 헌털뱅이 대형 창고를 빌려 집으로 개조해 부부가 살았다. 그게 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만가지 진기한 사물들이 절묘한 미학으로 어울린 예술적 파빌리온. 작업실과 와인 바와 집채만 한 오디오 장비가 혼융된 그 창고 건물은 그가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살롱 용도로 쓰였다. 수많은 예술 동네 종족들이 물방개처럼 부산히 드나들었다.
현재 그의 거처는 안성시 외곽 대로변에 있다. 큼직한 신축 건물에 산다. ‘제네시스 미술관’이라 쓴 손바닥만 한 팻말이 붙어 있다. 이 집도 그의 것이 아니다. 갸륵한 후배들이 지어 내준 건물이다. 내부는 전에 살았던 창고 건물 풍경과 거의 이하 동문이다. 고스란히 옮겨 적절히 반죽해 치장했다. 별개의 사물과 사물들이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 공감각적 코러스를 자아낸다. 오디오를 켜면 그의 귀는 칡넝쿨처럼 뻗어 선율을 빨아들일 게다. 와인 병이 즐비하니 취하고 싶을 때 취할 테지. 이 집의 모티브 역시 살롱이다. 사적으로는 미술 작업실이고 공적으로는 재즈 클럽이다. 그는 재즈에 홀려 산다. 재즈의 무엇에 심취하지?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 얘길 해볼까. 그녀의 대표곡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은 백인 인종주의자들에게 살해된 흑인들의 억울함과 슬픔을 노래했어요. 자유와 해방, 그걸 노래로 외쳤다고. 그게 재즈 정신이에요. 재즈를 듣다가 인생이 변한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재즈란 고도의 매혹적 예술이겠고.”
“이곳에서 매월 한 차례씩 재즈 공연이 펼쳐진다죠? 재즈 전도사로 나선 거예요?”
“한국의 암 발생률이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라더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난 문화의 열악함에도 원인이 있다고 봐. 예술이란 어디에 쓰이느냐, 남들에게 이바지하는 거, 즉 사회적 공헌에 목적이 있다고 난 봐요. 내 그림도, 재즈 공연 기획도 문화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데에 일조하길 바라며 하는 짓들이지. 공연 때 놀러오라고. 1세대 재즈 밴드를 비롯해 국내 최고 수준의 재즈 뮤지션들이 오거든.”
“비쌀 텐데, 개런티!”
“기름값밖에 못 주지만 부르면 다들 기꺼이 달려와요. 자유로운 영혼들이거든. 게다가 내가 일찍이 한국 재즈 발전에 기여한 바가 있어서.”
집문서 없어도 잘 산다
인생이란 희로애락을 다탄두로 매단 럭비공을 닮았다. 문순우의 삶이 그걸 알게 한다. 젊은 날의 그는 날품팔이나 구두닦이로 밥을 벌며 세상이라는 정글을 배웠다. 공수부대원으로 3년간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가진 거라곤 돈뿐이던 시절도 있었다지. 디자인 분야 사업을 해 17명의 직원들을 거느렸고, 스포츠카를 몰았더란다. 그러다 회의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돈에 덜미 잡힌 삶이 원숭이를 껴안고 블루스를 추는 것처럼 요상하고 우스웠던 모양이다. 해서, 사업을 접었다. 돈벌이의 노예로 사느니 천성인 방랑벽을 고이 살려 유목민으로 살자, 늦깎이로나마 예술과 한판 붙어보자, 그런 작심을 야무지게 하고 프랑스 유학에 나섰던 것. 이후 오늘날까지 예술이라는 참호 속에 들어앉아 세상을 겨눈다.
돌아다닌 세상, 겪은 세사가 많아 일화도 숱하다. 누적된 연기(緣起) 속에서 명멸한 기억들…. 아프기론 월남전에서 목도한 참상이다. 곱살하기론 걸레스님 중광의 해맑은 심혼이 남긴 잔상으로, 일테면 그건 문순우가 보유한 정신적 체력을 북돋운 한 가지 양분이었던 것 같다. 들어볼까.
“언젠가 용산역 앞에서 어느 스님이 건달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더라고. 그걸 내가 뛰어들어 수습했어요. 알고 보니 중광 스님이더라고. 묘한 인연이었지만 이후 가족처럼 지냈지. 내 삶으로 육박해온 가장 청명한 성좌였다 할까. 때로 파격의 괴물이었으나 근본은 순진무구의 화신이었어요.”
“사람이 새벽이슬도 아닌 것을, 순진무구를 유지하며 이 난잡한 속세를 견딜 수 있을까요? 때 묻히고 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지 않나?”
“그렇기에 용케도 순수한 사람들이 그립고 좋고 사랑스러운 게 아니겠어? 이 순수란 증류수와도 같은 무균 상태가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품성과 실천을 말하는 것이라고.”
“당신 역시 봄바람처럼 따사로워 인간적이지만, 일면 자학적이기도 해요. 그 독한 파이프담배 아니면 시가만을 피우다니, 그거 자학 아닌가?(웃음)”
“애연가 등소평은 아흔네 살까지 살다 간 것을.(웃음) 그가 말했지. 흡연은 젊은이에겐 낭만을, 늙은이에겐 위엄을 부여한다고. 와인은 또 얼마나 좋은가. 내가 아
술타령으로 죽을 쑨 인생이 많지만, 술이 건진 고통과, 술이 익힌 시와 노래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는 와인과 노닐어 멋과 낭만을, 작업의 효율을 구가하는 것 같다. 버선목이 아니라서 문순우의 속을 뒤집어볼 순 없지만, 그의 내부에도 고독과 불안이 고여 있을 테지. 그 어찌할 수 없는 생의 우수를 술과 음악으로, 또는 창작으로 청소하길 능란하게 하는 사람. 해서, 태연하고 평온하게 노년을 영위하는 사람. 그게 문순우이며, 이런 그에게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없는 건 돈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모두 그 앞에서 절을 하는 물신(物神)의 가호를 받지 못한 채로 영일(寧日)을 누리다니. 늙어서도,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돈이라는 감옥에 갇히기 십상인 게 삶이지만, 그는 감옥 밖에서 말짱하다. 비결이 뭘까? 그를 물로 보면 답이 나온다. 어디든 흘러가 채워주는 물! 목마른 자에게 흘러들어 한 잔의 샘물이 되는 삶! 그는 그런 지향으로 살아왔다는 게 아닌가. 그 결과 집문서는 없으나 사람문서를 쥐게 됐다.
“나를 부르주아라 오해하기 십상이지. 시가에 와인에, 고급 음악에, 모든 호사를 누리는 걸로 보일 테니까. 그러나 난 가진 게 없어요. 옷가지도 30년째 입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작품 재료도 모두 폐품을 활용한다고. 전화기도 오래된 폴더 폰이야. 식재료도 텃밭에서 손수 길러 쓰고 말이지. 딱히 잡기라는 것도 없어요. 돈 들어갈 게 뭐란 말인가.”
“날마다 한두 병씩 마시는 와인은 어디서 오죠?”
“작품이 팔리면 와인부터 비축하지만, 작품이 팔리는 일은 드물지. 그걸 잘 아는 제자나 후배들이 와인이며 시가며, 심지어 거처까지 마련해주더라고. 차후 ‘문순우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하더군. 아아, 내가 헛되이 살진 않았구나. 그런 생각 자주하는 것이여.”
“반대급부 없는 도네이션은 없는 법.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었기에 그토록 받으시지?”
“좌우명을 말해볼까? ‘남을 대하기를 나를 대하듯이 하자.’ 이기심을 버리는 게 자유롭게 사는 지름길이라 여기며 살았어요. 주변과 타인을 채우는 샘물로 살아야겠다, 언제 어디서든 남을 소중하게 아끼면 그게 메아리로 돌아온다, 그게 나를 채우는 길이다, 그런 신념을 잊지 않고 실천했어. 사실, 우리는 모두 빚쟁이 아닐까? 남들에게, 세상에게 신세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던가? 그렇다면 날마다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사는 게 옳지 않나?”
이 악물고 살 거 없다, 계산 없는 물로 돌아가 세상 빚을 갚으면 빛난다! 그게 문순우의 비결이다. 윽! 난 오늘 한 방 맞았다. 허울 좋은 처신과는 격이 다른 고수(高手)의 이타(利他), 그 실천적 뉴스에.
재즈’ 하면 대개 분위기 좋은 바에서 와인을 곁들이며 듣는 모습을 떠올린다. 황덕호(黃德湖·54) 재즈평론가는 이러한 선입견이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라는 편견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재즈는 화려한 레스토랑의 만찬보다 시장 골목 외진 식당에서 그날그날의 재료로 말아주는 즉석 국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개성 있는 연주자들이 즉흥으로 이루는 재즈 앙상블의 매력을 비유한 것이다. 또 애써 격식 갖춘 공간을 찾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황덕호 역시 오랜 시간 자신의 다락방에서 재즈를 즐겼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전, 훌륭한 재즈들이 다락방에서 탄생했다.
올해 3월 이사하기 전까지, 황덕호는 다락방이 딸린 후암동 빌라에서 8년여 동안 재즈를 듣고 글을 썼다. 그곳에서 집필한 마지막 책이 바로 ‘다락방 재즈’다. 이제는 예전처럼 다락방은 없지만 어디서든 재즈를 통해 다락방의 감성을 얻는 그다.
“영어로 하면 ‘로프트 재즈’(loft jazz)인데 실제 1970년대부터 쓰인 용어입니다. 당시 뉴욕 맨해튼의 작은 다락방 작업실들에서 실험적인 재즈가 많이 만들어졌거든요. 제가 썼던 다락방과는 다소 의미가 다르지만, 번듯한 환경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들꽃처럼 피어나는 재즈의 특성과 맞닿는 부분이 있죠.”
독자가 책을 어떻게 읽길 바라는지 묻자 그는 “틈틈이 가볍게 읽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재즈 이야기를 낯설고 어렵게 여길 수도 있는 이들을 염두에 둔 답변이었다.
“줄곧 재즈 입문자의 눈높이로 글을 써왔어요. 대중적이거나 애호가가 많은 음악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번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책을 냈어요. 때문에 어떤 글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볼 책은 전혀 아니고요. 짤막짤막한 단편 모음이니까 순서에 상관없이 제목 보시고 읽고 싶은 글 위주로 읽으시면 돼요. 독자가 ‘재즈가 들을 만한 음악인가보네? 재미있네?’ 정도의 호감을 갖는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자신의 책처럼 쉽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평소 “음악은 대충 듣는 것”이라 말해왔다. 집안일이나 식사를 하며 즐겨도 만족감을 준다는 데 그 이유가 있었다. 역설적으로 그 음악을 알려면 제대로 집중해 듣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극장에서 다른 일 하지 않고 조용히 영화나 공연을 보는 것처럼, 음악도 30분이든 1시간이든 몰입해서 들어야 비로소 그 실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좋아할 수는 있어도 잘 알지는 못하거든요. 가령 우리가 누군가를 두고 ‘그 사람 괜찮아’라고 하는 것과 ‘그 사람 잘 알아’라고 하는 게 다르듯 말이죠. 사람을 알아가려면 많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깊이 헤아려야 하는 것처럼, 음악도 제대로 알려면 많이 듣고 집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익숙하고도 낯선 최고의 앙상블
그는 책에서 “진정한 재즈 팬이란 방금 탄생한 싱싱한 즉흥연주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 일컬었다.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말투와 성격을 파악하듯, 즉흥연주를 통해 연주자의 개성과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 특히 즉흥연주 앙상블은 연주자 간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호흡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재즈에서 앙상블은 지휘자가 정교하게 이끄는 합주와는 다릅니다. 모든 음이 기록된 악보에 맞춰 연주하는 것으로 완성도를 따지는 음악이 아니니까요. 재즈 뮤지션들은 악보에 쓰이지 않은 여백을 조화롭게 즉흥적으로 채워나가죠. 솔로에서는 연주자 개인의 개성을 보여줘야 하지만, 앙상블에서는 서로의 개성이 얼마나 어우러지느냐가 관건입니다. 뛰어난 재즈 뮤지션들은 상대의 연주에 귀 기울이고 그에 맞게 자신의 개성을 노련하게 드러내죠. 혼자만 돋보이려고 하다 보면 음악은 무너지고 말아요. 즉 상호 존중이 필요하죠.”
물론 지나친 배려 때문에 각자의 개성까지 잃어버리면 재즈의 맛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무한대로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연주하는 곡의 화성, 박자 등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들은 존재한다. 그는 느슨한 틀 안에서 적절히 개성을 발휘하는 것은 숙련된 연주자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재즈 연주자들의 전성기는 대개 마흔이 넘어 옵니다. 어느 분야이든 자기 스타일을 완성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젊은 시절엔 연주 테크닉만으로도 주목을 받지만, 나이 들어서도 같은 방식을 고수한다면 그건 퇴보라 할 수 있죠. 훌륭한 뮤지션들은 다른 연주자와 상호 작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동시에 자신의 개성을 더 견고하게 만듭니다. 재즈 대가들을 보면 오히려 육체적인 힘은 떨어지지만 한 음을 눌러도 자기만의 세계를 딱 펼쳐내죠. 음악만 듣고도 누구의 연주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만큼이요.”
재즈의 즐거움은 재즈 그 자체
슬플 때 위로를 주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즐거울 때 흥을 더해주는 음악도 있다. 또 젊어서는 별로였던 음악이 나이 들어 좋아지기도 한다. 이렇듯 감상은 자신의 기분이나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재즈는 어떤 감정과 세대에 어울리는 음악일까?
“사실 재즈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하고는 무관해요. 사람들은 음악을 통해 기분을 전환하고, 그 감정에 빠져들곤 하죠. 그러나 재즈는 음악 그 자체의 논리가 더 중요합니다. 애호가들이 재즈를 통해 느끼는 즐거움은 순전히 음악적인 교감에서 오는 거예요. 애초에 뮤지션들을 위한 음악으로 만들어져 발전했기 때문에 대중음악의 기능과는 거리가 멀죠. 재즈 뮤지션들은 자신이나 청중의 감정을 대변하기보다는 연주 자체의 재미를 전달하는 게 목적이거든요. 기쁘거나 슬프라고 들려주는 건 아니라는 얘기죠. 오히려 그런 점에서 어느 때고 평생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일까? 20여 년을 재즈에 푹 빠져 살면서도 여전히 재즈에 관한 일을 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황덕호다. 30대에 시작한 KBS 라디오 ‘재즈수첩’ 진행도 어느덧 올해 20주년을 맞이했다. 재즈 프로그램이 거의 사라진 요즘, 매주 주말 단 2시간이라도 재즈를 들려줄 수 있어 다행이란다. 물론 그의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나마 재즈 팬들에겐 가뭄 속 단비 같은 시간이다.
“만약 어느 채널에서 록 프로그램이 하나만 있는데, 일주일에 딱 2시간만 진행된다고 쳐봅시다. 그러면 비틀스와 롤링스톤스의 음악을 빠트릴 수 있을까요? 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곡들을 위주로 선곡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주어진 시간 안에 재즈의 명작들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크죠. 물론 그런 기준으로 음악을 골라도 소스는 무궁무진해요. 시간이 부족해서 그렇지, 아직도 광산에는 금이 가득합니다.(웃음)”
‘다락방 재즈’의 저자 황덕호 재즈평론가는 때때로 재즈를 더 심도 있게 듣는 방법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재즈를 알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듣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자세한 이야기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온라인과 매거진 6월호 인터뷰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재즈를 알아가는 이들을 위한 추천도서 by 황덕호
◇ 재즈 선언 (윈튼 마살리스 외 공저)
재즈와 클래식 두 분야에서 그래미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윈튼 마살리스의 재즈와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평생 자신의 분야에서만 매진해온 한 음악인의 열정과 철학을 그리며 재즈의 역사를 아우른다.
◇ 재즈를 듣다 (테드 지오이아 저)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평론가인 테드 지오이아가 선정한 재즈 252곡을 소개한다. ‘불후의 명곡’이라 불리는 재즈의 원곡이 수록된 뮤지컬과 영화를 비롯해, 연주자들에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 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저)
알랭 드 보통과 무라카미 하루키가 존경하는 작가 제프 다이어의 대표작이다. 레스터 영, 아트 페퍼, 버드 파웰 등 재즈 뮤지션들의 삶 속 결정적 장면들을 치밀하게 그리며 그들의 예술과 철학을 통해 우리네 인생을 사색하게 한다.
◇ 당신의 두 번째 재즈 음반 12장 (황덕호 저)
부담 없이 듣기 좋은 대표 재즈 보컬 음반 12장을 통해 재즈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재즈가 래그타임, 가스펠, 블루스 등의 영향 아래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는지 설명하고, 이러한 재즈에 독자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클래스가 다르다는 기분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느리고 즉흥적인데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미가 있다. 라틴댄스인 살사, 바차타와는 태생부터 다르다. ‘키좀바’란 이름의 춤. 너무 생소해 이름이 귀에 잘 붙지 않지만, 유럽에서는 세대 불문 사랑받는 대중적인 춤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키좀바를 통해 삶의 활력도 찾고 중년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일산 보니따’를 찾아가 봤다.
키좀바라는 춤을 조금이라도 출 수 있다거나 이름이라도 안다는 사람은 무도장에서 살사나 바차타 등 라틴 리듬 좀 타본 사람이다. 요 몇 년 사이 한국에서도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막 알려지고 퍼지는 새로운 춤이 키좀바다. 아프리카 앙골라의 전통 춤 셈바(Semba)가 이 춤의 바탕이 됐다는 게 정설이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앙골라의 춤이 유럽으로 넘어가 주크라는 음악 장르와 만나면서 도시적이고 세련된 형태의 춤이 됐다. 라틴댄스인 살사에 탱고의 느낌을 입힌, 주로 남녀가 짝을 이뤄 추는 춤이라고 하면 될까. 한국은 여전히 태동기이지만 옆 나라 일본에서는 최근 키좀바 페스티벌이 열렸다. 유럽에서 열리는 키좀바 페스티벌에는 수천 명이 몰려 성황을 이룬다. 춤을 좀 아는 사람들의 얘기를 빌리자면 키좀바는 음악이 빠르지 않아 무릎 관절에 큰 무리가 없다. 작게 걸으면서 편안하게 추는 춤이 키좀바다. 국내에서는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단계라서 살사나 탱고에 비해 키좀바만 추는 동호회는 흔치 않다. 지난 1월 일산 서구 대화동에 문을 연 라틴댄스 바(bar) ‘일산 보니따’에 키좀바 동호회가 생긴 것도 이 춤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는 의미. ‘일산 보니따’의 이원근 대표가 특별히 우리나라의 키좀바 대부로 불리는 성태진 강사를 모시면서 자연스럽게 동호회가 만들어졌다.
‘키좀바’에 빠진 사람들
매주 일요일 저녁 6시는 동호회의 정기모임이자 키좀바 수업이 있는 날이다. 넓은 무도장 안. 성태진 강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구령에 맞춰 동작을 연습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큰 동작 없이 서서 무릎을 살짝 내리거나 올리고 허리를 돌리기도 한다. 혼자 거울을 보고 자세 교정을 하고 나면, 둘씩 짝지어서 배운 자세를 파트너와 실습해본다. 뭔가 꼬이는지 웃음과 깊은 한숨이 교차되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을 보니 만만치 않은 운동인 듯하다.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 이날 배운 동작을 성태진, 이지영 강사가 커플 댄스로 보여주면서 마무리한다.
회원들이 이곳에서 만나기 시작한 것은 이제 두 달가량이지만 모두들 어디서 춤 좀 추다 왔기에 이미 안면이 있다. 같은 춤을 배우면서 더욱 돈독해졌다. 취재를 갔던 날에는 수업을 마치고 난 뒤 다 함께 모여 준비해 온 음식들을 먹었다. 매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서로 친해지면서 만들어진 문화가 됐다고 정수진 씨가 말했다.
“이런 시간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강사이자 이곳 매니저인 젤리(이지영) 님이 음식 솜씨가 좋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분들도 맛있는 거 있으면 가지고 옵니다. 분위기가 가족적이에요. 밥도 먹고 마음도 편해요.”
사무직으로 일하는 직장맘 정수진 씨가 키좀바를 배운 지는 5개월째라고.
“살사가 들어왔던 초창기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추지는 않았어요. 직장생활하며 가정도 돌보던 중에 ‘내가 못해본 게 뭐지?’ 생각하다가 그제서야 배우기 시작했어요. 키좀바를 하고 나서는 다른 춤은 안 춰요. 5개월 췄는데 다양한 분들과 춤을 춰보면서 경험치를 많이 올렸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남녀가 붙어서 추는 거처럼 보이지만 배울 게 많아요. 스트레스도 풀고 좋습니다.”
중년들도 출 수 있는 춤
‘일산 보니따’의 키좀바 동호회 회원들은 대부분 50대 꽃중년이다. 50대라고만 밝힌 박지은 씨가 발산하는 에너지에는 중년의 깊이에 젊은 쾌활함이 있다. 중학교 때까지 발레를 배워서 춤과는 늘 친근했다. 재즈댄스를 오래하다가 라틴댄스로 몸매가 아름다워지는 친구를 보고 종목 변경(?)을 시도했다. 결국 키좀바에까지 발이 닿았다.
“키좀바는 여자를 200% 예쁘게 만들어주는 춤이라고 생각해요.
3년 전에 스콜(성태진 강사) 선생님이 수업을 들어보라고 해서 인연이 됐어요. 두 달 해봤는데 힙업이 되더라고요.(웃음) 복근에 힘을 주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는 동작이 있는데 그게 도움이 됐나봐요. 지금도 살사를 열심히 추지만 나이가 드니까 리듬이나 몸 쓰는 모든 것을 생각했을 때 키좀바가 더 맞는 거 같아요. 키좀바를 추고 나서 살사와 바차타를 추는 몸의 선도 굉장히 예뻐졌어요.”
동호회 회원 중에는 ‘일산 보니따’에 술을 납품하러 왔다가 들어온 이도 있다. 키좀바 배운 지 한 달 차인 태형석 씨다.
“동호회에 들어온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이 좋아서예요. 춤이 인기를 얻고 성장하면서 새로운 음악도 많이 만들어지더군요. 남미에서 22년을 살아서 아르헨티나 탱고를 비롯해 라틴댄스는 출 수 있어요. 한국 와서 남미 주류상을 하게 됐고 여기 와서 키좀바를 알게 됐어요. 이 춤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습니다.”
‘일산 보니따’ 이원근 대표의 동생인 이현경 씨는 대학 시절 에어로빅 강사 경험이 있다고. 오빠가 클럽을 열면서 자연스럽게 동화돼 춤을 추고 있단다.
“춤은 늘 즐겁고 행복해요. 더 중요한 것은 춤추는 사람들은 치매나 노인병에 걸릴 확률이 낮대요. 요즘은 사람들 관심사가 건강이잖아요. 건강하게 나이 먹으면서 몸도 예쁘게 가꿀 수 있거든요. 내가 나를 사랑하니까 춥니다. 이 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나를 깨워주는 느낌을 줘요. 그게 키좀바를 하는 이유입니다.”
취재 이후 유튜브를 통해 세계 각국 키좀바 영상을 보면서 어떤 춤일까 나름 연구했다. 격한 춤을 더 이상 출 수 없는 시점이 왔을 때 연륜으로 녹여 오래도록 출 수 있는 춤이 키좀바라는 생각이 들었다. 춤에 조예가 깊은 독자가 있다면 키좀바의 매력에도 빠져보시길.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바람에 실려’, ‘밤에 떠난 여인’ 등으로 7080세대 청년들의 마음을 울렸던 하남석. 최근 24세의 나이로 사망한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 ‘천화’와 나이 들어서도 꿈을 꾸는 청춘의 노래 ‘황혼의 향기’가 유튜브에 소개되며 그가 다시 대중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철학을 표현하는 올곧은 뮤지션으로 여전히 노래를 부르는 그는 1949년생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은 정신으로 무장해 있었다. 여전히 지혜와 담론이 담긴 노래를 부르길 멈추지 않겠다는 몽상가, 칠순의 하남석이 꾸는 꿈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1974년, 포크와 싱어송라이터의 전성시대에 자신의 이름을 깊이 새긴 가수가 대중 앞에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하남석. 데뷔 앨범 ‘바람에 실려/밤에 떠난 여인’에는 총 10곡이 실렸고 타이틀곡인 ‘바람에 실려’와 ‘밤에 떠난 여인’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이후 TBC 라디오 DJ로도 활약하며 그 시대의 다운타운가를 장식했다. 나지막하면서도 쓸쓸한 음색의 목소리로 청춘의 아이콘이 된 그는 7080세대의 가슴에 남게 됐다.
청춘들을 위로해온 목소리
그가 첫 앨범을 발표한 지 어느새 45년이 흘렀다. 강산이 다섯 번은 바뀌었을 그 긴 시간 동안 하남석은 결코 지치거나 꺾이지 않았다. 그동안 낸 앨범이 무려 14집. 소위 ‘대박을 친 노래’가 없어서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졌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절대로 놓지 않고 있었다.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온 그 긴 시간이 놀랍다. 대표적으로 그의 14집 앨범에 실린 타이틀곡 ‘몽상가’를 들어보면 그가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어떻게 넓혀왔는지 알 수 있다. 재즈 음악을 기반으로 한 편곡에 블루지한 색채의 관조적인 목소리 톤이 잘 어울리는 이 곡은 칠순이 넘는 가수의 노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면서도 고급스럽다. 그가 젊었을 때보다 도리어 더 젊어진 감각으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계속 발전시키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젊었을 때보다 더욱 젊게 사는 70대
하남석이 최근 푹 빠져 있는 가수는 호주 출신으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라이 엑스(RY X)라고 한다. 그는 아예 그들처럼 공연을 해보고 싶은 게 꿈이라 말한다. 처음에는 싱어송라이터라고 하기에 자신처럼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는 가수로 생각했단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포크와 일렉트로니카를 결합시킨 포크트로니카 장르의 뮤지션에 온갖 악기들을 활용하는 다채로운 스타일의 가수였다. 보컬 스타일도 요즘 팝 음악계에서 소위 ‘대세’인 얇고 호소력 있는 고음을 구사한다. 심지어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도 않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젊은 실력파였다. 하남석의 음악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그의 데뷔가 1973년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가 가수를 하게 된 데에는 그보다 먼저 1960~70년대를 풍미한 형 하남궁의 영향이 컸다.
“형은 프랭크 시나트라, 앤디 윌리엄스 등 주로 팝송 레퍼토리로 노래를 불렀던 중후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였죠. 특히 김희갑 씨가 형 목소리를 좋아해 곡을 많이 줬어요. 그런데 1973년에 형이 가수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나버렸죠.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수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그래서 형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노래를 하게 됐죠.”
진정한 뮤지션으로서 묵직한 존재감
그러나 그는 형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에만 만족할 가수가 아니었다. 장르를 넘나드는 창법, 그리고 트렌디한 작곡과 작사 등 예상 가능한 부분이지만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발전시키는 데도 게으르지 않았다.
“요즘 매일 산에 다녀요. 그 이유가,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길을 알게 돼서죠. 거기가 지금 제 아지트가 됐어요. 사람들이 없으니까, 산에 갈 때면 그곳에 꼭 들러 음악 들으면서 연습을 하거든요. 옛날에는 소리를 지르는 노래가 별로 없었어요. 저음 가수를 선호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승철, 김종서, 김건모 등 고음을 잘 지르는 가수가 세상에 나오게 됐어요. 저도 시대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쪽으로도 창법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가 최근 발표한 노래를 들을 때 느낄 수 있었던 세련된 변화는 그러한 꾸준한 연습 덕분으로 보였다.
“30대부터 연예인이 아닌 진정한 뮤지션이 되고 싶었죠. ‘진정 좋은 음악을 이 세상에 남기자’ 그게 원동력이 돼서 지금까지 활동한 거예요.”
사회의 약자들을 보듬는 ‘몽상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젊어지고 있는 하남석의 감각은 시대의 아픔과 정서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가 2004년에 내놓은 ‘거리의 아이들’은 방황하는 가출 청소년들을 보듬는 노래이고, 2010년에 나온 ‘넌, 특별한 사람이야’는 장애우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만든 노래다. 2011년에 발표한 곡 ‘길 위의 남자’는 노숙자들의 애환을 담았고 최근에 작사·작곡한 ‘천화’는 태안화력발전소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을 추모하며 만든 곡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노래로 만드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자꾸 눈길이 그쪽으로 가더라고요” 한다. 그가 가수 활동을 시작했던 시절의 포크가 청년의 정서를 대변했던 만큼, 여전히 청년의 마음을 지녔다면 시대의 고통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제 노래는 돈 많고 신나게 사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는 아니죠. ‘몽상가’처럼 살아왔고 ‘몽상가’라는 노래를 만들어 세상에 던진 이상 그렇게 계속 해야죠.”
사회, 정치, 음악, 문화가 너무 흔들리고 있다며 각 분야가 주체성을 갖고 가고자 하는 길을 확고하게 가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이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 노래를 건지고 그 노래가 삶과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였다.
결국 뮤지션일 수밖에 없더라
하남석의 노래들 중 ‘나이 듦에 대하여’는 제목 그대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담은 노래다.
나이 듦에 대하여 걱정 말아요
나이 들어가면 갈수록 그대는 더욱 멋지고 아름답죠
더 깊고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죠
커다란 고목나무 그 나무처럼
더 많은 그늘을 만들어 사랑을 주죠
나무가 되어 그늘을 만들고 그 그늘을 통해 사랑을 주자는, 나이에 대한 철학이 담긴 노랫말을 보고 문득 궁금해졌다. 45년이 넘는 긴 시간을 같은 일을 하면서 그 또한 지치고 힘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지냈을까?
“현실은 항상 돈 문제가 있으니까, 위기의식은 늘 있었죠. 그래서 미사리, 평택에서 가게도 하면서 꾸준히 라이브를 했지요. 그런데 장사를 하려면 철저한 장사꾼이 해야 해요. 자존심 다 버리고 어떻게 해서든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프로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게 없었죠. 노래 부르는데 술 취한 사람이 올라와 방해하면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고. 그런 게 쌓이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을까’ 하며 자괴감이 들었죠. 결국 작년 8월에 가게는 정리했어요.”
자신이 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만뒀다는 것은, 결국 하남석은 가수이자 뮤지션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자각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는 최근 후배들에게도 곡을 주기 시작했다.
“후배들에게 준 곡이 많지는 않아요. 저는 전문 작곡가도 아니고 싱어송라이터니까, 주제넘게 누구에게 곡을 주나 싶은 생각도 했고. 그런데 그동안 200곡 정도를 만들었는데, 알려지지 않으면 그저 묻혀버리는 것 아니겠어요? 히트나 상업적인 결과를 원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제부터라도 주변 후배들에게 주자는 마음이 든 거죠.”
비록 외로울지라도 할 수밖에 없다
“삶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돈만 벌고…. 제가 활동하는 통기타 쪽은 애초에 그런 것과는 거리를 둬야 하는 것 같아요. 의미 있는 이야기를 가사에 담고 싶고…. 이 나이에 판 팔고 다시 인기 얻으려고 음악하겠어요? 좋아서 하는 거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그게 삶의 ING죠. 그래서 안주하고 있는 동료 가수들을 보면 속으로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선배가 후배들에게 가교역할을 해야지 옛날 노래만 갖고 인사나 하고 돈이나 벌려고 하는 그런 모습들이 참….”
그는 자신과 같은 이른바 ‘선배 가수’들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일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어쩌면 가수들 중에서도 그이라서 볼 수 있었던 드문 격정이었다.
“나라도 하자, 외로울지라도. 하다 보면 멜로디가 생각나고 책을 보다가 이게 좋겠다 싶으면 노래로 풀어나가고…. 어차피 완성은 없지만 그래도 근사치에 가까워지는 것, 그래서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거죠.”
‘책과 음악 그리고 자연’.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황혼의 향기가 이 세 가지라고 말한다.
“정말 좋은 음악을 남기고, 누군가가 나중에 인정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젊음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에게 시간의 흐름은 자신의 목적과 비교하면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이가 들어 불편할 수 있고, 달라지는 부분들 또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변치 않을 것을 끝까지 품에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젊음이란 그렇게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가진 사람이어야 지켜지는 것 아닐까. 여전히 치열하게 도전하는 하남석의 노래가 펼쳐 보일 젊음에 기대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보다 더 오래 남게 될 그의 노래에 실릴 새로운 꿈을 응원한다.
바깥에서 유리문 가까이 고개를 낮춰 눈을 들이밀었을 때 그녀의 얼굴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깜짝 놀라 몸이 뒤로 밀렸다. 점심시간.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손맛 좋기로 소문난 동네 맛집으로 고민 없이 향했다. 가을볕 맞으며 맛난 된장찌개 삭삭 긁어 나눠 먹고는 그녀의 별로 들어가 향 깊은 커피를 마주하고 앉았다. 음악소리가 나뭇결을 타고 전해지는 문화살롱 ‘아리랑’ 안. 그곳에서 노래하는 예술가 최은진(崔銀眞·58)의 지나온 인생과 살아갈 날의 이야기 실타래를 조금이나마 풀어봤다.
“문화쟁이들은 나 모르면 간첩이지!”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옆에 예술인 최은진의 문화공간 ‘아리랑’이 있다. 사람들이 익히 알 만한 설명이라면 말 많고 탈 많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우리 선희’의 주요 무대가 바로 아리랑이다. 낮에는 손님 받을 생각 없는 듯 늘어지고 한산한 모습이다. 밤이 되면 그녀의 별 ‘아리랑’에서는 따뜻한 불빛 아래 술잔이 오간다. 기분이 좀 오른다 싶으면 최은진의 노랫가락에 흠뻑 젖을 수도 있다. 화가, 글 쓰는 작가, 건축가, 교수 등 예술에 조예가 깊다는 이들은 성지마냥 이곳을 찾는다.
“예술가들 많이 오죠. ‘평범’이라는 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예인들이 많이 와요.”
최은진의 인생 스토리를 다룬 한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만요 가수로만 소개한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재능이 많다. 타고난 음색은 노래 분위기에 따라 아이 목소리도 됐다가 농염한 재즈가수도 된다. 옛 가요에 세련미와 특별함을 더해 사랑받고 있다.
인천 출신인 최은진은 초등학교때 인생 최초로 듣게 된 ‘흑자청춘(1966년·정원 노래)’ 한 곡으로 노래에 빠져들었다. 동춘 서커스단 공연 모습을 보고는 교내 체조부에 입단해 활동했다. 20대에는 영혼에 대한 갈증으로 신학교에 들어가 목회자의 길도 꿈꿨다. 지금은 동서양 모든 종교와 철학적 경계를 뛰어넘어 정신세계에 관한 공부와 수행, 묵상하는 삶을 산다. 젊은 시절연극배우로서도 두각을 보여 각종 무대에 올랐다. 그 후 결혼과 출산으로 잠시 활동을 멈췄다가 1999년 현대방송 슈퍼보이스 탤런트 선발대회에서 우수상을 타면서 매스컴 앞에 섰다. 그때 최은진 나이 마흔. 예인의 길을 걷고자 신중하게 진로를 고민하면서 우리의 음악 아리랑과 인연을 맺었다.
아리랑에 정착하다
“젊지도 않은 나이에 방송사에서 시키는 거 하는 게 싫었어요. 대신 재즈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서 뉴욕으로 유학을 가려고 마음을 굳혔어요. 그때 우리 아들이 어리니 한 5년만 다녀올까 생각했는데 제 앞에 아리랑이 다가왔어요. 오케스트라 협주로 된 아리랑을 듣고 눈물을 잔뜩 쏟아냈습니다. 이게 내 운명인가보다. 아리랑도 결국 재즈잖아요. 우리만의 소울이 깃든 재즈요. 2003년에 나운규 탄생 100주년 음반 ‘다시 찾은 아리랑’을 낸 것이 새로운 삶의 시초가 됐습니다.”
진정한 음악을 찾아 뉴욕에 가고자 했다. 알고 보니 영혼이 깃든 음악의 본질은 최은진 자신이 서 있는 토양에도 있었다.
“이생에서 정체성을 찾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아리랑을 하러 세상에 왔구나. 아리랑 음반을 내고 나서 이곳에 터를 잡았어요. 마이크랑 스피커도 가져다 놓고요. 여기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더니… 희한해요. 사람 구경 못하던 거리에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저기 가면 옛날 목소리 나는 여자가 있다면서요.”
아리랑에 무슨 애환이 있기에 최은진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는 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언젠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국제교류 아리랑 축제에 초청돼 갔어요. 그때가 추석쯤이었는데 아리랑 요양원이라는 곳에서 위문공연을 했어요.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목화밭에서 그렇게나 많이 고생하셨답니다. 차를 타고 가는데 나도 모르게 입구에서부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공연을 못할 뻔했어요. 너무 울어가지고요. 일주일 전쯤 소록도에 갔을 때도 화장장 근처에서 비슷한 경험을 또 했죠. 교감이 되는 거죠. 그 당시 힘들었던 사람들의 삶이 저에게 그대로 오는 거예요. 나도 조금은 특별한 별인 셈이죠.”
다가오는 영혼들의 울림이 있기에 곡마다 정성과 마음을 담아낸다. 2010년에는 지극정성의 보답처럼 2집 음반 ‘풍각쟁이 은진’이 1만 장 이상 팔려나가며 인기를 얻었다.
“‘오빠는 풍각쟁이(1938)’를 리메이크한 앨범을 냈어요. 처음에 음반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줄 서서 구입했다더군요. 서점에 가서 모르는 척하고 물어봤죠.(웃음) 인터넷도 안 하고 매일 이곳에 있으니 알 수 있겠어요? 마니아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었대요. 이 여자가 누구냐고요.”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강산에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부른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도 그녀의 왕팬을 자처했다. 그렇게 최은진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소문을 타고 흘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가들에게도 알려졌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치가 세션과 프로듀싱을 담당하면서 그녀의 두 번째 음악 작업에 힘을 보탰다.
진정한 레트로 음반 ‘헌법재판소’
최근 최은진은 엄청난 시도를 감행했다. 아리랑 소리꾼 혹은 조금 현대적인 느낌으로 편곡된 옛 곡을 부르던 것과 차원이 다른 음악 장르에 도전한 것. 바로 옛 가요를 1980~90년 대 인기를 끌었던 일렉트로닉 스타일로 재해석한 세 번째 앨범 ‘헌법재판소’다.
아들 또래인 젊은 음악가와 작업을 하고 음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으로 앨범을 제작했다. 그녀의 이전 음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같은 사람이 불렀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파격 그 자체다. 시니어가 노래방에 가서 18번으로 잘 부르는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1960)’과 백년설의 ‘아주까리 수첩(1942)’은 젊은 세대의 숨을 불어넣어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으로 거듭났다. 원곡을 즐겨듣던 시니어에게는 신선함을, 곡을 전혀 모르는 세대에게는 새로운 음악으로 느껴질 만하다. 지난 호 ‘브라보 마이 라이프’ 커버스토리로 다뤘던, 진화하는 레트로 열풍의 기류에 최은진의 새 앨범도 합류했다.
“정말 현대적으로 만든 거예요. 나이어린 음악인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새로운 걸 배우는 거죠. 젊은 세대도 저하고 음악을 만들면서 배우는 게 있었을 겁니다. 옛날 정서를 무시하고 과정 없는 음악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해줘요. 그리고 가사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요즘은 ‘아리랑’ 문을 여는 일 외에는 새 앨범 홍보 쇼케이스 무대에 선다. 12월 1일에는 홍대 더스텀프에서 새 앨범을 소개하고 알리는 쇼케이스를 열어 성황을 이뤘다.
“처음에는 ‘아우! 전자악기 반주에 맞춰 어떻게 노래하지?’ 그랬는데 들을수록 좋아요. 이게 정서에 맞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제가 작사, 작곡한 음악도 수록했고요.”
군대 간 아들을 생각하며 썼다는 ‘양구’는 최은진이 작사와 작곡을 맡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이 배어 있는 노래인데 여성들은 무덤덤하게 듣는 반면 남성들은 곡을 듣자마자 “엄마 보고 싶다”를 연발한단다.
삶의 씻김, 문화살롱 ‘아리랑’
3집 타이틀곡인 ‘헌법재판소’는 이노경이 쓴 곡에 최은진이 가사를 붙였다. ‘아리랑’에서 만나온 사람들을 생각하며 써내려간, 모든 세대를 위로하고 싶어 만든 곡이다.
“사람들이 술 한잔 마시면 그렇게들 울어요. 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낸단 말이죠. 대부분 다 울어. 그러면 나도 울고. 저마다의 인생에는 어마어마한 일이 많잖아요. 위로가 필요한 모두를 위해 썼어요. 해우소라는 말 있잖아요. 내가 볼 때 이 집은 울다가 웃다가 위로받는 집이야.(웃음)”
어떤 것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뭘 하든 이렇게 가는 거지 뭐”라고 답한다. 그냥 매일을 사는 것. 시상이 떠오르면 적고 악상이 떠오르면 함께 작업하는 음악인들과 얘기하면 된단다.
“그 젊은 친구들 밴드 이름도 만들었어요. 대열차강도밴드래요.(웃음)”
무엇보다 공연에 힘을 좀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무대가 늘 그리운 천생 무대 체질 그녀다. 세상을 위한 조언이 마지막으로 이어졌다.
“머리 말고 가슴을 써야 해요. 그래야 바로 연결될 수 있죠. 소통 말입니다. 그러려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해요. 후배들에게 고독한 시간이 중요하다고 조언해요. 오늘 인터뷰 때문에 산책을 못했는데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려나….”
시간을 너무 많이 뺏은 걸까. 헌법재판소 옆. 땅거미가 지면 작은 별 하나가 떠오른다. 위로받고 싶은 이들이 호주머니에 손 넣고 한 명, 두 명 들어와 착석. 위로가 필요한 당신들을 위해 오늘밤도 아리랑의 문은 열린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브라보!”
레트로는 단순히 오래된, 옛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50년째 장사를 이어온 노포와 1970년대 인테리어로 새로 문을 연 식당. 전자는 전통이라 말하고, 후자가 ‘레트로’라 하겠다. 이러한 레트로 콘셉트의 가게들은 중장년 세대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자녀와 함께 데이트 즐기기 좋은 레트로 핫 플레이스를 소개한다.
◇ 익선동 한옥섬을 한눈에 ‘낙원장’
옹기종기 기와지붕 아래 레트로풍 맛집과 아틀리에가 즐비한 익선동 거리. 부티크호텔 ‘낙원장’에서는 골목을 가득 메운 한옥 150채의 전경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다. 1980년대 지어졌던 ‘그린필드’라는 낡은 여관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매입,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해 탄생시킨 공간이다. 클래식한 건물 외관과 달리 세련되고 모던한 실내 인테리어가 레트로 플레이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객실은 일반뷰와 한옥뷰, 프리미엄 한옥뷰 총 3단계로 나뉜다. 그중 LP플레이어가 있는 한옥뷰 룸을 선택하면 커다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익선동 풍경과 함께 LP음악까지 만끽할 수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25 숙박비 평일(일~목) 7만~9만 원, 주말(금~토) 9만~11만 원
◇ 아날로그 선율에 빠지다 ‘바이닐 앤 플라스틱’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바이닐 앤 플라스틱(VINYL&PLASTIC)’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사라져가는 음반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음악체험형 공간이다. 노출콘크리트와 나무 소재 인테리어가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입구 왼편으로는 턴테이블이 놓인 긴 탁자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 바이닐 앤 플라스틱이 선정한 200장의 LP명반을 감상할 수 있다. 1층에서는 클래식, 재즈&소울,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LP음반 9000여 장과 다양한 음향장비를 전시, 판매한다. 2층은 1만6000장에 달하는 CD와 더불어 음악감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페 공간으로 꾸며져 여유를 즐기기 좋다.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48 이용시간 화~토요일 12:00~21:00, 일요일 12:00~18:00 (현대카드 미소지자도 입장 가능)
◇ 한국·태국의 퓨전 레트로 맛집 ‘동남아’
태국요리전문점 ‘동남아’의 입구. 세월이 켜켜이 쌓여 낡은 검푸른색 철문을 활짝 열면 레드벨벳 커튼과 이국적인 샹들리에가 맞이한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이 오묘한 식당은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한옥을 개조한 실내는 태국 연회장을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로, 동남아 여행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을 표현했단다. 메인 홀 외에 공간을 다양하게 나누었는데, 룸마다 강렬한 색감의 독특한 벽지가 눈길을 끈다. 특히 대중탕 욕조(?)를 연상케 하는 앞마당의 테이블은 겨울철 식사를 즐기기엔 다소 불편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인기 메뉴인 꽃게와 커리로 맛을 낸 ‘뿌빳 퐁 커리’와 태국식 볶음 쌀국수 ‘팟타이’ 등 현지 셰프가 요리한 다양한 오리지널 로컬 푸드를 맛볼 수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23-6 이용시간 매일 12:00~22:00, 브레이크타임 15:30~17:00(주말 제외)
◇ 도도한 모던걸의 화려한 외출 ‘경성의복’
익선동 골목을 걸어가다 보면 개화기풍의 원피스와 정장을 입은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궁 일대에서 한복 체험을 하듯, 이곳에서는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 레트로 감성을 한껏 즐기는 것이 트렌드. ‘경성의복’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복고 의상과 셀프 촬영을 위한 포토존이 구비돼 있다. 고풍스러운 원피스와 장신구로 치장하고 모던걸이 되어 거리를 누벼보는 것 어떨까?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30길 56 2층 이용시간 매일 10:00~20:00
가격 의상대여(의상·장신구·모자·기타소품) 3시간 3만 원/6시간 4만 원/하루 4만5000원/1박2일 5만 원
◇ 딸과 데이트하는 날엔 ‘경양식 1920’
1980년대 전후, 가족외식 하면 떠오르는 경양식집을 테마로 한 레스토랑 ‘경양식 1920’. 레트로 거리로 유명해진 인선동 골목에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와 함께 올 수 있는 외식 공간을 만들기 위해 인테리어를 꾸미고 추억의 메뉴들을 불러왔다. 24시간 숙성한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는 남녀노소 모두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 실제 방문한 고객들을 살펴봐도 젊은 연인부터 엄마와 딸, 노부부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른다. 사이드 메뉴로는 1980년대 경양식집에서 맛보던 수프와 멕시칸 사라다(샐러드)를 선보인다. 특별한 날에는 하우스 와인 한 잔 곁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17-30 이용시간 평일 12:00~22:00, 주말 11:00~22:00, 브레이크타임 15:00~17:00(주말 제외)
◇ 뒹굴뒹굴 잠시 쉬어가는 ‘만홧가게’
과거 만화잡지 ‘챔프(CHAMP)’를 비롯해 ‘우주소년 아톰’, ‘스타워즈’ 등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과 그래픽노블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평일에 방문한다면 런치스페셜(라면·즉석밥·계란·김치/단무지+만화 1시간, 6000원)로 이용해보자.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로28길 33-7 영업시간 11:00~23:00 가격 1인 기준 10분당 500원, 좌석(주말 및 공휴일) 2000원
동년기자가 직접 다녀온 레트로 핫 플레이스
◇ 최원국 동년기자/ 돌고 도는 레트로 액티비티 ‘자이언트 롤러장’
부천의 레트로 명소 ‘자이언트 롤러장’. 방문한 날은 휴일이라 인파가 붐벼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30여 년 전 부천의 ‘자이언트 롤러장’이 유명했는데, 장소는 다르지만 복고풍에 맞춰 추억의 이름을 다시 불러왔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부천역 3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이내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30년 전 롤러를 타던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옛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아이들과 많이 찾는 듯하다. 롤러장의 경쾌한 분위기를 담당하는 DJ가 있어 음악에 맞춰 롤러를 타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곳곳에 간식을 판매하는 매점을 이용하면 시장기를 해결할 수 있다. 과거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시절의 낭만을 다시 느끼고 싶은 시니어라면 친구 또는 아이들과 꼭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위치 경기도 부천시 장말로 376 지하 1층 1일 입장료 성인 1만1000원, 유아~고등학생 9000원 영업시간 평일 12:00~22:00(무제한 이용), 주말 10:00~22:00(3시간 이용)
◇ 윤영애 동년기자/ 시간이 머무는 곳, 우유 카페 ‘희다’
논현동 주택가 골목에 하얀 3층집, 카페 희다. 낮은 계단을 테라스 삼아 나무 소반에 왕골방석이 놓인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언젠가 분명 와본 듯 너무나 친숙한 느낌!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 냄새도 나는 듯하다. 높다란 1인용 앤티크 의자, 사각밥상 테이블, 양은 개다리소반, 자개문양 화장대와 거울, 낡은 찬장과 괘종시계까지. 곳곳을 돌아보며 낡은 물건들에게 속말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 있다가 여기로 왔니?’ 메뉴를 보니 우유가 주다. 기본 우유에 커피, 홍차, 말차, 페퍼민트, 미숫가루까지 6가지다. 사이드 메뉴로 옥춘당 때때사탕과 큼직한 레몬 마들렌도 있다.
프런트의 젊은이에게 주문을 하고 대표님이 누구시냐 물으니 본인이란다. 긴 생머리가 멋진 나두리 대표 역시 작년 7월 오픈 이래 가장 연로한 리포터가 왔다며 빙긋 웃는다. 주고객은 복고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고, 우연히 동반한 부모님이 친구들과 다시 와서 단골이 된단다. 대부분의 물건은 나 대표 할머니가 집에서 실제로 사용했던 것들이다. 때문에 “외할머니 집에 온 것 같다”는 고객의 평이 가장 맘에 든단다.
느슨한 공간에서 익숙한 것을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이 콘셉트였다는 나 대표의 의도는 조용한 음악과 소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갓 씌운 백열등, 도자기, 왕골바구니, 낡은 찬장 속 오래된 커피 잔과 유리컵까지 모든 것이 눈에 익어 정겹다.
‘희다’는 기쁘다[喜]와 많다[多], 즉 기쁨이 넘치는 곳 혹은 우유의 하얀 빛깔을 뜻한다. 오래됨과 잘 어울리는 가게 이름이다. 카페 한편에 ‘검다’라는 글자가 쓰인 화분을 가리키니, 개업 후 “희다인지, 검다인지 카페는 잘돼가냐?” 했다던 아버님의 조크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창밖 현관 옆에는 ‘웃다’라는 이름의 화분도 있다. 잠시 후 혼자 들어온 고객은 동네 주민이라며 아이를 기다리다 들렀는데 편안하고 조용하다면서 레트로풍의 독특한 인테리어에 흡족해한다.
바람 불고 서늘한 가을의 어느 날, 논현동 도심 한복판에서 어릴 적 시골집을 본 듯하다. 500㎖의 대용량 미숫가루우유는 인심만큼 넉넉하다. 남겨온 때때사탕을 구순 노모에게 드리니 어디서 이런 사탕을 사왔냐며 좋아라 하신다. 시간이 멈춘 나만의 비밀 아지트에 다녀온 것처럼 왠지 마음이 따시다.
위치 서울시 서초구 주흥15길 16-4층 영업시간 매일 11:00~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