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예술가 문순우, 이 악물고 살 거 없다, 물처럼 살면 빛나거든!

기사입력 2019-07-12 10:46 기사수정 2019-07-12 10:46

[고수 열전]

(사진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사진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저무는 놀빛 앞에선 허허롭다. 서산 너머로 사라진 해는 이제 어느 숙소를 찾아가는가. 인생 황혼에 접어든 사람은 어디로 가나. 만족은 없고 갈증은 자글거린다. 요즘 말로 ‘심쿵’은 멀고, 딱딱한 가슴에 먼지만 폴폴 날린다. 이건 겁나게 먹은 나이에 보답하는 정경이 아니다. 어이하나. ‘나, 물처럼 살래! 흐르는 물이 돌부리에 걸리거나 진땀 빼는 법이 있던가, 물이 답이자 선생이다!’ 문순우(73) 화백은 그리 생각한다. “너, 나를 물로 보니?”라 할 때의 그 물이다. 옳다구나, 가급적 만만하게 살자는 얘기일 게다. 그게 잘 사는 길이라는 소식이다. 노자가 설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그 물이니 문순우 기자, 아니 문순우 도사가 취재한 ‘도(道) 뉴스’일 수 있다.

(사진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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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믿을 게 도인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그러하니 문순우를 도사로 읽는 건 결례이거니와, 그는 ‘도’라는 거룩한 단어 자체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는 그저 물이 좋아 물을 닮고자 한다. 물처럼 거침없이 흘러가는 노경(老境)을 선망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물로 봐야 한다. 그게 예의에 맞다. 이 물은 오늘 숲속의 잠잠한 초록호수처럼 평온하다.

“나 요즘 편안하거든. 만족스럽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고. 여기에서 더 바랄 게 없는 것이에요.”

문순우의 올해 나이 일흔셋. 이미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연치(年齒). 이젠 귀신조차 바라보일 시절이다. 그러나 그가 요새 주로 뚫어지게 바라보는 건 캔버스다. 죽자사자 그리는 것 같다. 창작이란 방울방울 피를 뿜는 일. 흔히 산고(産苦)에 견준다. 이 힘든 일을 왜 용을 쓰고 하나, 싶지만 문순우는 힘 안 들이고 대꾸한다.

“힘은 무슨 힘? 영감(靈感)이 나를 데려가는 것을.”

‘영감’이라는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서 후루룩 내려오는지 난 모르겠다. 그러나 매사를 힘들이지 않고 시원하게 해치우는 문순우의 내공이랄까, 그런 게 영감님을 모셔다주는 모양이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문순우는 그림만 그리진 않는다. 그는 사진으로 예술에 입문했다. 도예도 주 종목이다. 목수이자 오디오 평론가이기도 하다. 와인과 재즈에 통달한 전문가다. 아마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남몰래 눈물을 훔칠 요리의 달인이기도 하다. 이 기똥찬 다재를 일컬어 ‘전방위 예술가’라 한다. 어찌 보자면 이도 저도 아니다.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하나를 들입다 파더라도 도로아미타불에 그치기 쉬운 게 예술이다. 하나에 쉬 질리거나 옹골차게 돋우지 못해 여럿을 동시에 신나게 파 젖히는가? 딴엔 그게 자연스럽다. 물에 무슨 경계가 있던가. 열에 열 골 물이 하나로 통하고 모이는 게 물의 생태 아니던가.

(사진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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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사랑하기

문순우가 점심 요리를 한다. 아내 박미광(64)이 조수로 나서 묵은 김치를 물에 헹궈 숭숭 잘게 썬다. 그 사이 그는 양파와 토마토 등 갖가지 재료를 올리브유에 지지고 볶아 소스를 만들고 국수를 삶는다. 이름은 묵은지 파스타. 작은 꽃송이와 향신채소 잎 두어 개를 파스타 위에 살짝 얹고 요리 끝! 그러나 진정한 마무리는 아니다. 촛불을 켜고 글라스에 레드와인을 채우고서야 식사가 시작되니까. 나는 한낮의 식탁에서 제 몸을 사르는 촛불에 황송하다. 생일 밥상을 받은 기분이다. 촛불 보시를 한 이여, 복되도다.

“웬 촛불이냐고? 이게 격(格)이라는 것이지. 우린 항상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해요. 라면을 먹더라도 초를 켠다고. 하하핫. 이왕이면 소소한 일상이더라도 축제처럼 사는 게 좋지 않겠어요? 내가 나를 기쁘게 하기, 내가 나를 소중하게 대하기, 내가 나부터 사랑하기, 그런 게 돼야 남을 즐겁게 할 수 있지 않겠어? 그게 생활의 격이라 보는 것이지.”

“요리는 언제 배우셨지?”

“마흔 살 넘어 사진 공부를 위해 파리에서 유학했는데, 그때 요리를 배웠어요. 내겐 특이한 성향이 하나 있어요. 왕성한 호기심, 그거! 중학생 땐 전축에 호기심이 불붙어 진공관식 앰프를 직접 만들었다고. 남들은 어떻게 사나, 그런 호기심을 누를 길 없어 유목민처럼 평생 곳곳을 떠돌기도 했어요. 파리 유학 시절엔 프랑스 요리에 호기심이 들끓더라고. 그 무엇보다 파리의 살롱 문화에 반해버렸고.”

“궁정과 귀족의 저택을 무대로 성행한 프랑스의 사교 모임, 그게 살롱의 유래죠? 사르트르나 피카소가 즐겨 드나들었던 몽마르트의 카페들이 그 후신일 테고.”

“한마디로 문화 사랑방이라 해야겠지. 프랑스 문화의 기저, 단순히 예술가들의 집합소가 아니라 논쟁과 소통이 다반사로 벌어져 당대 문화와 예술을 주도해나간 공간, 다종다양한 보헤미안들이 몰려들어 생을 즐긴 아지트. 꼭 필요한 그게 한국엔 드물다는 걸 알고 귀국하자마자 살롱을 차렸어요. 재즈 클럽 ‘라 끌레’라고 삼청동에 있었다고. 너무도 빨리 망하고 말았지만.(웃음)”

나에겐 삼사 년 전 문순우의 거처에서 한나절을 놀았던 추억이 있다. 당시 그의 집은 시골 숲속에 있었다. 그의 집이랄 것도 없다. 그는 돈이라는 게 당최 없다. 남의 헌털뱅이 대형 창고를 빌려 집으로 개조해 부부가 살았다. 그게 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만가지 진기한 사물들이 절묘한 미학으로 어울린 예술적 파빌리온. 작업실과 와인 바와 집채만 한 오디오 장비가 혼융된 그 창고 건물은 그가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살롱 용도로 쓰였다. 수많은 예술 동네 종족들이 물방개처럼 부산히 드나들었다.

현재 그의 거처는 안성시 외곽 대로변에 있다. 큼직한 신축 건물에 산다. ‘제네시스 미술관’이라 쓴 손바닥만 한 팻말이 붙어 있다. 이 집도 그의 것이 아니다. 갸륵한 후배들이 지어 내준 건물이다. 내부는 전에 살았던 창고 건물 풍경과 거의 이하 동문이다. 고스란히 옮겨 적절히 반죽해 치장했다. 별개의 사물과 사물들이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 공감각적 코러스를 자아낸다. 오디오를 켜면 그의 귀는 칡넝쿨처럼 뻗어 선율을 빨아들일 게다. 와인 병이 즐비하니 취하고 싶을 때 취할 테지. 이 집의 모티브 역시 살롱이다. 사적으로는 미술 작업실이고 공적으로는 재즈 클럽이다. 그는 재즈에 홀려 산다. 재즈의 무엇에 심취하지?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 얘길 해볼까. 그녀의 대표곡 ‘이상한 과일(strange fruit)’은 백인 인종주의자들에게 살해된 흑인들의 억울함과 슬픔을 노래했어요. 자유와 해방, 그걸 노래로 외쳤다고. 그게 재즈 정신이에요. 재즈를 듣다가 인생이 변한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재즈란 고도의 매혹적 예술이겠고.”

“이곳에서 매월 한 차례씩 재즈 공연이 펼쳐진다죠? 재즈 전도사로 나선 거예요?”

“한국의 암 발생률이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라더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난 문화의 열악함에도 원인이 있다고 봐. 예술이란 어디에 쓰이느냐, 남들에게 이바지하는 거, 즉 사회적 공헌에 목적이 있다고 난 봐요. 내 그림도, 재즈 공연 기획도 문화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데에 일조하길 바라며 하는 짓들이지. 공연 때 놀러오라고. 1세대 재즈 밴드를 비롯해 국내 최고 수준의 재즈 뮤지션들이 오거든.”

“비쌀 텐데, 개런티!”

“기름값밖에 못 주지만 부르면 다들 기꺼이 달려와요. 자유로운 영혼들이거든. 게다가 내가 일찍이 한국 재즈 발전에 기여한 바가 있어서.”

(사진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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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문서 없어도 잘 산다

인생이란 희로애락을 다탄두로 매단 럭비공을 닮았다. 문순우의 삶이 그걸 알게 한다. 젊은 날의 그는 날품팔이나 구두닦이로 밥을 벌며 세상이라는 정글을 배웠다. 공수부대원으로 3년간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가진 거라곤 돈뿐이던 시절도 있었다지. 디자인 분야 사업을 해 17명의 직원들을 거느렸고, 스포츠카를 몰았더란다. 그러다 회의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돈에 덜미 잡힌 삶이 원숭이를 껴안고 블루스를 추는 것처럼 요상하고 우스웠던 모양이다. 해서, 사업을 접었다. 돈벌이의 노예로 사느니 천성인 방랑벽을 고이 살려 유목민으로 살자, 늦깎이로나마 예술과 한판 붙어보자, 그런 작심을 야무지게 하고 프랑스 유학에 나섰던 것. 이후 오늘날까지 예술이라는 참호 속에 들어앉아 세상을 겨눈다.

돌아다닌 세상, 겪은 세사가 많아 일화도 숱하다. 누적된 연기(緣起) 속에서 명멸한 기억들…. 아프기론 월남전에서 목도한 참상이다. 곱살하기론 걸레스님 중광의 해맑은 심혼이 남긴 잔상으로, 일테면 그건 문순우가 보유한 정신적 체력을 북돋운 한 가지 양분이었던 것 같다. 들어볼까.

“언젠가 용산역 앞에서 어느 스님이 건달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더라고. 그걸 내가 뛰어들어 수습했어요. 알고 보니 중광 스님이더라고. 묘한 인연이었지만 이후 가족처럼 지냈지. 내 삶으로 육박해온 가장 청명한 성좌였다 할까. 때로 파격의 괴물이었으나 근본은 순진무구의 화신이었어요.”

“사람이 새벽이슬도 아닌 것을, 순진무구를 유지하며 이 난잡한 속세를 견딜 수 있을까요? 때 묻히고 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지 않나?”

“그렇기에 용케도 순수한 사람들이 그립고 좋고 사랑스러운 게 아니겠어? 이 순수란 증류수와도 같은 무균 상태가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품성과 실천을 말하는 것이라고.”

“당신 역시 봄바람처럼 따사로워 인간적이지만, 일면 자학적이기도 해요. 그 독한 파이프담배 아니면 시가만을 피우다니, 그거 자학 아닌가?(웃음)”

“애연가 등소평은 아흔네 살까지 살다 간 것을.(웃음) 그가 말했지. 흡연은 젊은이에겐 낭만을, 늙은이에겐 위엄을 부여한다고. 와인은 또 얼마나 좋은가. 내가 아

술타령으로 죽을 쑨 인생이 많지만, 술이 건진 고통과, 술이 익힌 시와 노래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는 와인과 노닐어 멋과 낭만을, 작업의 효율을 구가하는 것 같다. 버선목이 아니라서 문순우의 속을 뒤집어볼 순 없지만, 그의 내부에도 고독과 불안이 고여 있을 테지. 그 어찌할 수 없는 생의 우수를 술과 음악으로, 또는 창작으로 청소하길 능란하게 하는 사람. 해서, 태연하고 평온하게 노년을 영위하는 사람. 그게 문순우이며, 이런 그에게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없는 건 돈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모두 그 앞에서 절을 하는 물신(物神)의 가호를 받지 못한 채로 영일(寧日)을 누리다니. 늙어서도, 심지어 죽어가면서도 돈이라는 감옥에 갇히기 십상인 게 삶이지만, 그는 감옥 밖에서 말짱하다. 비결이 뭘까? 그를 물로 보면 답이 나온다. 어디든 흘러가 채워주는 물! 목마른 자에게 흘러들어 한 잔의 샘물이 되는 삶! 그는 그런 지향으로 살아왔다는 게 아닌가. 그 결과 집문서는 없으나 사람문서를 쥐게 됐다.

“나를 부르주아라 오해하기 십상이지. 시가에 와인에, 고급 음악에, 모든 호사를 누리는 걸로 보일 테니까. 그러나 난 가진 게 없어요. 옷가지도 30년째 입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작품 재료도 모두 폐품을 활용한다고. 전화기도 오래된 폴더 폰이야. 식재료도 텃밭에서 손수 길러 쓰고 말이지. 딱히 잡기라는 것도 없어요. 돈 들어갈 게 뭐란 말인가.”

(사진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사진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날마다 한두 병씩 마시는 와인은 어디서 오죠?”

“작품이 팔리면 와인부터 비축하지만, 작품이 팔리는 일은 드물지. 그걸 잘 아는 제자나 후배들이 와인이며 시가며, 심지어 거처까지 마련해주더라고. 차후 ‘문순우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하더군. 아아, 내가 헛되이 살진 않았구나. 그런 생각 자주하는 것이여.”

“반대급부 없는 도네이션은 없는 법.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었기에 그토록 받으시지?”

“좌우명을 말해볼까? ‘남을 대하기를 나를 대하듯이 하자.’ 이기심을 버리는 게 자유롭게 사는 지름길이라 여기며 살았어요. 주변과 타인을 채우는 샘물로 살아야겠다, 언제 어디서든 남을 소중하게 아끼면 그게 메아리로 돌아온다, 그게 나를 채우는 길이다, 그런 신념을 잊지 않고 실천했어. 사실, 우리는 모두 빚쟁이 아닐까? 남들에게, 세상에게 신세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던가? 그렇다면 날마다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사는 게 옳지 않나?”

이 악물고 살 거 없다, 계산 없는 물로 돌아가 세상 빚을 갚으면 빛난다! 그게 문순우의 비결이다. 윽! 난 오늘 한 방 맞았다. 허울 좋은 처신과는 격이 다른 고수(高手)의 이타(利他), 그 실천적 뉴스에.

(사진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사진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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