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녀 관계에서 밀당(밀고 당기기)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밀당을 잘하면 연애에 도움이 되듯 국민연금 역시 밀당을 잘하면 노후생활에 도움이 된다. 국민연금 밀당이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연금수령시기를 적절하게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금수령 개시시점(나이)이 되어 기본적인 ‘노령연금’을 받을 수도 있지만 좀 더 당겨서 받는 ‘조기노령연금’이 있고, 미뤄서 나중에 받는 ‘노령연금 연기제도’도 있다. 국민연금 밀당의 법칙에 대해 살펴보자.
자료 출처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금의 모든 것(김진웅 부소장)
국민연금의 기초, 노령연금
국민연금은 나이 들거나 장애 또는 사망으로 인해 소득이 감소할 경우 정해진 급여를 지급하여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보험이다. 지급받게 되는 급여의 종류도 노령연금(분할연금)부터 장애연금, 유족연금 등 생각보다 다양하다. 이중 국민연금의 기초가 되는 급여는 나이 들어 받는 노령연금이다. 노령연금은 연금보험료를 10년 이상(가입기간) 납부하고 연금수급개시연령이 되면 기본연금액과 부양가족연금액을 합산하여 평생 동안 지급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은 출생연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수명연장 추세가 반영되면서 수급연령 상향규정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1952년생까지는 60세부터 받을 수 있지만, 이후 4년 단위로 1년씩 늦춰지면서 1969년 이후 출생이면 65세가 되어야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소득 있으면 노령연금이 줄어든다
한편 노령연금은 소득이 있는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 수급개시 연령부터 5년 동안 기본연금은 소득구간별로 감액하여 지급되며 부양가족연금은 지급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소득이 있다고 무조건 감액되는 것은 아니다. 소득이 있는 업무란 월평균소득금액이 최근 3년간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월액(2020년 기준 243만8679원)을 초과하는 경우를 말한다. 여기서 월평균소득금액이란 소득세법 규정에 따른 본인 근로소득금액, 사업(부동산임대소득 포함) 소득금액을 합산하여 소득이 발생한 해의 종사(근무)월수로 나눈 금액으로 금융소득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또 월평균소득금액은 근로소득공제나 필요경비를 제한 후 금액이기 때문에 근로소득만 있는 경우 근로소득 공제 전 급여가 연 4060만4894원(월 338만3741원)을 초과해야 감액 대상이 되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중에 더 받는 연기연금
국민연금을 그동안 열심히 납입했는데 소득이 있다고 노령연금을 덜 받는다면 좀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노령연금 연기제도를 활용하면 좋다. 연금수급 연령이 되었어도 계속 일을 하여 안정된 현금흐름이 있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당장 연금을 받지 않고 연금액을 좀 더 늘려 받고 싶은 이들을 위한 제다. 연금연기제도는 노령연금 수급자가 희망하는 경우(1회 한) 연금수급권을 취득한 이후부터 최대 5년 동안 연금 전부 또는 일부(50~90%)에 대해 지급 연기를 신청할 수 있다. 같은 연금액이라면 굳이 미루어 받을 이유가 없을 터. 지급 연기를 신청한 금액에 대해서 연기된 매 1년당 7.2%(월 0.6%), 최대 36% 더 많은 연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다.
아쉬울 때 당겨 받는 조기연금
현재 소득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만 65세가 돼야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법정 정년은 60세이고 실제은퇴연령도 58.6세(2020중산층보고서, NH투자증권)로 예상하고 있어 5년 이상 소득공백기가 발생, 은퇴 후 생활에 경제적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국민연금은 노령연금을 앞당겨 받을 수 있는 조기노령연금 제도도 운영한다. 조기노령연금은 가입기간 10년 이상이고 소득 있는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경우 노령연금 수급개시연령 이전(최대 5년)이라도 미리 당겨 받도록 한 연금이다. ‘빨리 받으면 무조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빨리 받기 시작하는 연령에 따라 그만큼(연 6%, 1개월 당 0.5%) 감액되어 지급한다. 소득공백기 대안이 없고 정말 어려운 경우에만 사용하는 비상용으로 생각하면 된다.
조기연금, 연기연금 뭐가 더 유리할까?
기본 노령연금(65세 개시)을 연간 1000만 원으로 가정하고 조기연금(60세)과 연기연금(70세)을 비교해보자. 물가상승은 저성장 시대에 높지 않은 편이므로 특별히 고려하지 않겠다. 먼저 조기연금과 노령연금을 비교해보면 76세 기준으로 노령연금 누적수령 금액이 더 많아진다. 수명연장 추세를 감안했을 때 조기연금은 불리한 금액이 점점 커지므로 정말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선택을 지양하는 것이 좋다. 다음 노령연금과 연기연금은 비교해 보면 83세 기준으로 연기연금 누적수령 금액이 많아진다. 연기연금은 장수에 유리한 구조로 오래 살수록 이득이 더 커진다. 다만 소득이 많지 않음에도 무리해서 연기연금을 선택하기보다는 건강, 재무상태 등을 잘 고려해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요에 따른 연금수령시기 선택
조기연금이나 연기연금으로 당겨 받거나 늦춰 받는 것을 이자개념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 정확히는 받게 되는 전체 연금수령기간의 증가 또는 감소에 따른 보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평균수명보다 적게 산다면 조기연금이 유리하고, 장수를 한다면 연기연금이 유리하다. 하지만 얼마나 살 지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연금액의 많고 적음을 따지기 전에 지금 노후생활비가 부족해 연금이 필요한지 아니면 여유 있어 당장은 필요 없는 지를 판단하고 그에 맞는 연금수령시기를 선택한다.
은퇴 후에도 능동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노년층을 의미하는 액티브 시니어가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다.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액티브 시니어를 우리말로 바꿔 ‘활동적 장년’으로 선정했다. 런던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과정 수업 도중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당신이 100년 산다고 가정할 때, 소득의 약 10%를 저금하고, 최종 연봉의 50%를 가지고 은퇴할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인가?” 학생들은 곧바로 계산을 했다. 답은 80대였다. 일순간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80대까지 지금과 같은 업무 강도로 일해야 한다니….
런던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린다 그래튼과 앤드루 스콧이 함께 쓴 ‘100세 인생- 저주가 아닌 선물’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장수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다. 교육-일-퇴직으로 이어지던 전통적인 3단계 삶의 모습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앞으로는 은퇴와 정년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70세 혹은 80세까지 일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의 나이가 몇 살이든 우리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시대를 선도적으로 살아가고 제2의 청춘을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처럼 다가오는 노년의 꿈을 계획하고, 노후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액티브 시니어는 누구인가?
은퇴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100세 시대, 아무 준비 없이 은퇴하기엔 여생이 너무 길다. 은퇴 후 노후에 대한 청사진이 필요하다면,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액티브 시니어를 롤 모델로 추천한다. 액티브 시니어는 미국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버니스 뉴가튼이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노인과 다르다”고 말하며 만들어낸 신조어다. 뉴가튼 교수는 55세 정년을 기점으로 75세까지를 젊은 노인(young old)으로 구분했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은퇴 후에도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세대로 가족 중심에서 벗어나 자기중심의 삶을 영위하면서 자기개발과 여가활동, 사회적 관계 맺기 등을 적극적으로 한다. 기존의 시니어가 노년을 인생의 황혼기로 인식했다면, 액티브 시니어는 노년기를 새로운 인생의 시작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실제 나이보다 5~10년 젊다고 생각하고, 진취적으로 삶을 사는 세대다.
액티브 시니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액티브 시니어의 공통점은 자신이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지 알고 노년의 삶을 준비한다. 다시 말해 미래의 삶에 대한 자기 기준이 명확하게 정립돼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길거리 화가가 된 60세 여성, 의상 공부가 하고 싶어 다시 대학을 간 80세 여성, 40세에 사진을 취미로 배워 10년 후 프랑스에서 전시회를 연 50세 남성, 자식을 다 키우고 60세에 요식업을 시작한 남성 등, 이들은 은퇴를 제2의 인생 시작점으로 설정했다. 은퇴 이후의 삶을 자녀 세대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과 배움을 통해 스스로 노후를 대비했다. 이들은 못다 이룬 꿈을 성취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꿈이 반드시 거창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면서 만족감과 행복감을 얻는 이들은 항상 활력이 넘친다. 그래서 액티브 시니어라 부른다.
시니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액티브 시니어들처럼 노후를 잘 준비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노후를 아직 준비하지 못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난 5월 ‘하나금융그룹 100년 행복연구센터’에서 발간한 보고서 ‘대한민국 퇴직자들이 사는 법’에 따르면, 퇴직자의 평균 생활비는 월 252만 원이다. 또 대부분의 퇴직자들이 경제활동을 못하면 1년 내 형편이 어려워질 것을 걱정했다. 이분들께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현금 흐름을 유지할 것을 권유한다. 재취업이나 소자본 창업, 주택연금 등을 통해 소득을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도 있다. 아직 퇴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노후 준비를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다가오는 미래는 먹고만 사는 시대가 아니다. 보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노후를 위해서는 소득, 취미, 일자리, 관계, 건강 등 행복을 주는 요소들이 골고루 갖추어질수록 좋다. 자신만의 삶의 기준들을 정하고 장기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행복만큼이나 미래의 행복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노후 준비 Early Design, Self Planning!
고령화가 심각해질수록 사회적으로 노인 문제도 점점 커질 것이다. ‘100세 인생’을 한 편의 드라마로 보면 주인공의 행복과 불행은 결국 작가이자 감독인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시니어 당신에게 무엇을 준비했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제대로 예측하고 준비한다면, 장수는 저주가 아니라 선물이고 축복이다. 주체적으로 제2, 제3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노후 준비를 위한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후원으로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주최하고 ㈜드림업컨설팅이 주관하는 ‘2020 해피에이징 교육캠페인’도 그중 하나다. 노후준비문화 확산을 위해 액티브 시니어를 주제로 진행 중인 ‘해피에이징 교육캠페인’은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올해로 6년째 진행하는 무상교육 프로그램이다. 사회공헌적 취지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초고령사회에 대비할 수 있도록 노후 준비의 중요성을 고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고령 사회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개인 스스로 노후를 대비해 ‘Early Design, Self Planning’하는 것이다. 노후 준비에 대한 인식의 확산이 필요한 시대다. 지금 당장 준비해야 늦지 않다. 당신도 액티브 시니어가 될 수 있다.
정년 연장 고령자가 1명 늘어나면 청년층 고용이 0.2명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KDI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명 이상 1000명 미만이 근무하는 민간기업의 고용 자료를 분석했다. 2013년에 개정된 고령자고용법은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하도록 의무화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 연장 혜택을 받는 근로자가 1명 많아졌을 때, 고령층 고용은 0.6명 증가하고 청년층 고용은 0.2명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100명 이상 기업의 정년 연장 근로자가 늘어났을 때 청년 고용의 감소가 더 뚜렷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기존에 정년이 55세 또는 그 이하였던 기업에서는 청년 고용이 0.4명 줄어 고용 감소 효과가 더 컸다. 반면 58세 또는 그 이상이 정년이었던 경우에는 청년 고용 감소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이런 결과는 정년을 한꺼번에 큰 폭 늘릴 경우 부작용이 상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년 연장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시행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 연구위원은 “제도적 정년 연장이 사회적 합의로 결정돼도 점진적으로 시행해 노동시장에 가해지는 충격이 흡수될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은퇴 후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데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혹시라도 치료비나 간병비로 가족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고민을 완전히 털어내진 못하더라도 줄일 순 있다. 그 방법은 바로 ‘보험’이다.
기대수명은 길어졌지만, 건강수명은 짧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12년 80.9세에서 2017년 82.7세로 늘었다. 반면 건강수명은 65.7세에서 64.9세로 줄었다. 만 60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5년가량 지난 후부터 약 17년 7개월 동안 건강하지 못한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활동이 조금 불편한 수준이라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중대질병을 앓게 된다면?
◇발병률 높아진 ‘3대 질병’
암,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걸리는 3대 질병이다. 이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만큼 중대질병으로 분류된다.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암 발생률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1회 이상 암 진단을 받게 될 확률이 최고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5명 중 2명이 암에 걸린다는 뜻이다.
2018년 통계청이 조사한 ‘주요 사망 원인별 사망률 추이’에 따르면, 2017년 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154.3명이었다. 이어 심혈관질환은 62.4명, 뇌혈관질환은 44.7명 순으로 조사됐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망자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것. 암의 경우 2008년 10만 명당 139.5명에서 2016년 153.9명으로 14.4명(10.32%)이 늘었고, 2017년에는 0.4명(0.26%)이 많아졌다. 이 같은 흐름은 암뿐만 아니라 뇌혈관질환과 심혈관질환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들 질환 관련 사망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과거에 비해 의료기술이 발달했고, 더 나은 치료법도 꾸준히 연구 중이라 3대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점차 낮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분석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매년 받는 건강검진으로 대부분의 질병이 초기에 발견되고 있어 완치율은 계속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큰 고통은 ‘치료비 부담’
은퇴한 시니어들은 그동안 여유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즐거운 일들을 계획하며 행복한 100세 시대를 꿈꾼다. 하지만 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오면 이러한 꿈들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 육체적인 고통에 경제적·정신적인 문제가 더해지고, 가족까지 부담을 짊어지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결국 꿈을 이루고 살려면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이 ‘암 환자들이 겪는 고통 요인’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암 환자들은 대부분 경제적(37.3%), 정신적(31.9%), 육체적(27.6%) 고통을 겪는데 이 중 ‘경제적 요인’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간암 1인당 치료비는 6622만 원, 폐암은 4657만 원, 위암은 2685만 원으로 조사됐다. 또한 심혈관질환은 4484만 원, 뇌혈관질환은 3062만 원의 1인당 치료비가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 사이 암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늘어난 것 역시 치료비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완치는 정상적인 치료가 이뤄진 경우에 가능하고, 새로운 의료기술을 적용받으려면 고액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암보험을 준비하면 보장을 통해 치료비 걱정을 줄일 수 있다. 보험은 위급 상황에 생활비와 치료비로 융통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활용한다. 따라서 암뿐만 아니라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 등과 관련한 보험상품 가입 시 진단금, 수술비, 보험료 등 3가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게 좋다.
◇치료비보다 무서운 ‘간병비’
3대 질병에 포함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치매’ 역시 보험으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노령층 건강정보이용 현황 조사연구’에 따르면, 노후에 가장 걱정되는 질병은 치매(44.3%)다. 심혈관질환(30.5%)이나 암(24.0%)보다 높은 수치다. 또한 65세 이상 고령층의 치매 발병률은 2018년 10.2%에서 2020년 10.3%, 2030년 10.6%, 2040년 12.7%, 2050년 16.1%로 증가할 것이라는 중앙치매센터의 조사결과도 있다.
치매는 특별한 치료약이 없어 완치를 기대하기 힘들고, 오랜 기간 간병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정파괴질환’으로 불린다. 치료비보다 간병비가 더 무섭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간병비 상승률은 2014년 2.5%, 2015년 1.5%, 2016년 1.6%, 2017년 3.5%, 2018년 6.9%로 계속 상승 중이다.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의 통계 발표에 따르면, 치매 환자는 증상이 처음 나타난 때로부터 평균 12년 6개월,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이후부터는 9년 3개월 동안 투병생활을 한다. 이때 관련 보험이 없다면 가족들은 상당한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된다. 따라서 치매보험이나 간병보험 등으로 이러한 상황을 미리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간병이 필요한 환자들은 자신을 간호해주는 사람이 마냥 고맙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더 들 수 있다. 특히 부모 입장에서 간병을 받게 되면 자녀에게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담도 안겨주는 것 아닌가 하고 복잡한 마음이 될 수밖에 없다. 또 개인적 사정 때문에 부모 간병을 하지 못하는 자녀는 불효를 하는 것 같아 괴로울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3대 질병뿐만 아니라 치매도 본인과 가족을 매우 고통스럽게 하는 질환”이라며 “중대질병으로 인한 치료비와 간병비 등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험을 꼼꼼하게 준비해 고통을 덜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60세정년 이후에도 일정한 나이까지 고용을 연장하는 ‘계속 고용제도’ 도입을 위한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생산가능 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대비하려면 여성과 어르신의 경제활동 참여를 최대한 늘여야 한다” 라면서 “고용연장에 대해서도 이제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노인 일자리 사업은 더 확대된다”라면서 “어르신들께는 복지이자, 더 늦게까지 사회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고용연장 발언과 관련 지난해 9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정감사에서 "정년 연장은 단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령화 진행속도가 빨라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할 필요는 있지 않나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경영계에서는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추가로 정년을 늘리면 부담이 더 늘어난다는 이유로 난색을 보였다. 또 청년층의 청년실업 심화 우려 등으로 논의를 접은 바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올해 고용연장 문제를 다시 꺼낸 것은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년 65세 연장을 임기가 끝나는 2022년 5월까지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 고용연장이 정년 연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고용 연장에는 재취업, 계속 고용, 계약직 전환, 정규직 지위 연장 등 다양한 방식이 있고 이를 통해 중고령자의 고용을 늘리자는 것”이라며 “정년 연장은 기업 등이 부담이 커, 도입하려면 사회적 공감대가 갖춰져야 한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침체된 시장과 강화된 규제에 발목 잡힌 대한민국 베이비부머.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인응 우리은행 종로영업본부장은 “시야를 넓게 보고 과욕을 버리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100세 시대와 정년 60세. 평균수명이 늘자 노후 걱정도 늘었다. 퇴직 후를 설계하려니 한숨만 나온다. 50대는 소득이 가장 많은 시기인 만큼 공을 좀 들이면 별 문제 없이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50대 고소득자의 노후 준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세금이다. 이들에게 적용되는 과세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고소득자일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셈이다. 결국 소득이 많은 50대라도 노후 준비가 말처럼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자산관리시장에 20여 년간 몸담고 있는 재무설계 전문가 김인응 우리은행 종로영업본부장을 만나 노후 준비 해법을 들어봤다.
50대는 노후자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요?
“소득세율을 높이는 경계선인 과세표준, 즉 세금을 매기는 기준을 보면 6600만 원에서 1억5000만 원인 경우 35%, 1억5000만 원 초과분은 38~42%의 세율이 적용됩니다. 실질 과세율이 높아지면서 저축 여력도 많이 줄어 노후자금 마련이 만만치 않죠. 물론 시장에는 아직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손실이 나는 경우도 자주 있죠. 안정적인 보험사 상품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금리로 시장이 약세를 보이면서 저조한 수익률을 뛰어넘지 못해 매력이 사라졌습니다. 결국 내 돈을 넣어 N분의 1로 나눠 쓰는 방법만이 유일해 보입니다. 투자, 세무 등 여러 관점에서 접근해봐도 노후 준비에 애로사항이 많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하라는 얘긴 아닙니다. 우선 개인형퇴직연금(IRP)이나 연금신탁과 같은 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은 소득이 높지 않을 경우 공제를 받을 수 있으니 이를 활용해볼 만합니다. 또 그나마 남은 이런 종류의 상품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터넷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상품을 선택하고 운용해야 합니다. 운용 수익을 높이려면 전문가들과 상담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어떤 상품을 선택하고 운용해야 하나요?
“국내 시장은 침체 국면입니다. 과거에는 증시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시기에 코스피 3000포인트 돌파를 기대할 순 없습니다. 오히려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와 증시 하락을 걱정해야 할 때입니다. 기업의 수익률은 전반적으로 낮아질 전망입니다. 따라서 보수적인 관점에서 투자하는 게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상에 무언가는 분명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헬스케어 등 성장산업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 △시장이 안정된 국가 등을 IRP와 같은 상품에 담아 중장기적 관점으로 운용해야 합니다. 특히 신흥국과 동남아 시장에 투자되는 상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 국가의 성장성은 올해도 여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익이 실현될 수 있는 상품 관련 투자 펀드는 주가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 IRP에 이런 상품들을 넣어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모두 잡길 권합니다.”
미국이나 중국에 투자하는 건 어떨까요?
“미국과 중국 시장은 주의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미국 시장은 미래성장가치가 너무 빨리 반영됐기 때문에 앞으로 조정이 예상됩니다. 또 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조정 시그널이 충분합니다. 따라서 업종별로 투자하는 건 괜찮지만 미국 전체 시장으로 접근하는 건 지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이 협상을 하건 안 하건 여러 리스크가 잠재돼 있는 국가입니다. 미국 정부의 부채와 소비·경기 침체, 인건비 상승, 기업경쟁력 악화, 섀도 뱅킹 취약성 등이 그 요인입니다. 중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금융위기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물론 근거가 있는 예측이죠. 부실화한 중소 규모 은행들이 금융위기 불안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기업 부채는 10년 새 다섯 배나 늘었습니다. 때문에 중국의 금융위기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과 중국 시장에는 이와 같은 위험이 있습니다.”
상가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건 어떨까요?
“지금 상가에 투자하는 건 많은 리스크가 예상됩니다. 특히 공실률은 꾸준히 리스크 요인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상가 투자는 월세를 받아 수익을 얻는 방식인데 과거에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 노후 준비로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정부 정책에 따른 상황을 살펴보면 △임대수익에 따른 과세 강화 △부동산 과세 강화 △공실률 증가 등이 노후자금 마련을 위한 수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상가에 잘못 투자하면 코너에 몰릴 수 있습니다. 과거에 노후자금으로 최고였던 부동산 월세는 이제 매력이 사라졌습니다. 시장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상가 투자도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아파트에 투자해 월세를 받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이 역시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주도 세력으로 인해 일반 세력이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추경매수를 하는 모습은 일시적으로는 반짝일 수 있지만 세금을 제외하면 실익이 없습니다. 오히려 대출제한이 지속될 경우 발목을 잡힐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분간 관망하는 것입니다. 올해 4·15 총선이 있어 현금이 풀릴 것으로 보입니다. 일시적으로 유동성 장이 형성될 수 있지만 장기적이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동성 장이 이루어지면 잘 빠져나오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미 은퇴했다면 노후 준비가 늦었나요?
“이미 은퇴한 사람이라면 IRP 활용은 의미가 없습니다. 은퇴자의 경우는 노후 준비가 더 어려운 시기입니다. 고가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본의 아니게 세금 등 유지비용이 많이 듭니다. 때문에 비용 줄이기와 평수 줄이기, 세금 줄이기, 지출 줄이기 전략을 짜야 합니다. 은퇴 후에는 세금에 시달리는 상황을 없애야 합니다. 12억 원짜리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면 세금이 300만 원 좀 넘게 나옵니다. 은퇴자의 거의 세 달치 용돈이죠. 소득이 없는 사람이 이 세금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주택으로 인한 세금 부담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기회비용을 따져야 합니다. 작은 주택으로 옮기는 게 해결책입니다. 서울 주변으로 이사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고가주택 갈아타기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외에 건강보험료도 부담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은퇴 전 순수보장성(소멸성) 보험을 준비해두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은퇴를 했다면 보험 가입에 한계가 있으니 구체적인 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소주택을 보유한 은퇴자의 노후 준비는요?
“최근 규모가 작은 주택 가격이 상승했는데 비정상적으로 많이 올랐기 때문에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시장유동성을 살펴 주택연금제도를 활용하길 권합니다. 자녀에게 집을 물려주는 건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주택 가격이 떨어져도 주택연금제도를 활용하는 게 낫습니다. 주택연금제도는 현재 가격으로 책정해 연금액을 결정하기 때문에 노후자금으로 활용해볼 만합니다. 노후자산은 안전성을 중심으로 관리하는 게 좋습니다. 연금상품은 큰 의미가 없고 투자자산도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리도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의 헤게모니를 쥔 나라가 미국인 만큼 굳이 투자를 원한다면 미국 달러를 들여다보길 권합니다. 미국 통화는 그 나라의 가치입니다. 인적자원, 에너지자원, 기술자원, 군사력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미국 시장은 장기적으로 범접할 수 없는 위치를 점할 것입니다. 따라서 원/달러 환율이 1100~1130원 이하로 내려갈 경우 재테크로 활용할 만하다고 봅니다.”
김인응 우리은행 종로영업본부장은?
이론은 물론 실무 능력까지 갖춘 금융자산 재무설계 전문가. 20여 년간 한길만 걸어온 ‘금융장인’이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8년 가계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창의적인 자산관리 공적을 인정받아 금융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지금까지 수백 회의 재테크 강연을 비롯해 각종 언론 기고 및 자문, 방송 활동을 해왔으며 지속적으로 금융 지식을 공유·전파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자는 결혼을 하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출산을 하고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하면서 살다 보면 젊은 시절의 경력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이렇게 사는 것이 여자의 일생이지’ 하면서 단념하려던 순간,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잘해보겠다고 다짐하며 빛을 따라 즐겁게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취업과 생애 설계 분야 전문 강사이자 컨설턴트인 일·생애연구소 임순열 대표는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에요”라며 활짝 웃었다.
지난 10월 10일 경기도 파주시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일·생애연구소 임순열(55) 대표와 만나기로 했다. 이곳은 임순열 대표에게 친정과도 같은 곳. 작년 말까지 센터 내에 있는 파주상공회의소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직업상담 팀장으로 일해왔다. 이날은 일·생애연구소 대표로서 강단에 서는 날이었다.
“10월 1일에 일·생애연구소 사업자등록증을 받았어요. 직업상담사로 일하면서 취업 역량 강화,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작성법, 면접 교육 관련 일을 해왔는데 좀 더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싶었어요. 취업과 생애 설계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할 계획입니다. 오늘은 ‘중장년의 셀프 마케팅’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합니다. 일자리를 찾을 때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얻는 방법을 전달해드릴 계획입니다.”
목적이 있는 삶을 살다
임 대표는 직업상담사로 사는 게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도와서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도, 취업이 된 사람들이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단다.
“거의 직업상담 일에 미쳐서 살았어요. 구직자들이 처음에 센터를 찾아올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십니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분들도 그렇고요. 어떤 경력이 있는지 자격증은 있는지 등등 초기 상담을 하면서 맞춤 일자리를 지원해드렸습니다. 이력서 쓰는 방법도 알려드리고 동행 면접 서비스를 원하시면 같이 갔습니다. 별종 소리를 들을 정도로 7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때를 회상하면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냈을까 싶을 정도로 제대로 빠져 있었다. 막내아들의 군 입대가 계기였다고 했다.
“2010년에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친구랑 동반 입대를 했어요. ‘그래, 넌 나라 지켜라. 엄마는 엄마 일 할게’ 이런 마음으로 가족상담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저랑은 성향이 맞지 않았어요. 그 무렵 누군가 직업상담사도 있다고 소개해줘서 2011년 5월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상담에 필요한 자격증은 부지런히 공부해 하나씩 따냈다. 가족상담사 2급을 시작으로 직업상담사 2급, 평생교육사 2급 등을 취득한 후 2017년에는 직업상담사 1급 자격증까지 섭렵했다. 상담사 자격증을 따면서 동시에 교육자로서의 꿈도 함께 키우기 시작했다.
“고양시에서 직업 관련 교육을 받을 당시에 강사님이 인상에 남았어요. 나도 저런 강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강의를 너무 잘하셨어요. 상담사 공부를 할 때부터 강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 걸어온 것입니다.”
특히 임순열 대표가 취득한 직업상담사 1급 자격증은 전국적으로 500명이 조금 넘는 정도. 직업상담사 2급 자격증 보유자가 5만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직업상담사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1%밖에는 안 된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임순열 대표다.
“2012년 파주시교육문화회관에서 계약직 직업상담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2년 후에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버렸어요.”
파주상공회의소가 고용노동부 사업인 중장년일자리 프로그램 사업을 따오자 임순열 대표의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2015년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짜리 채용공고가 났습니다. 물론 제 판단으로는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자리였고 상담보다는 교육 관련 일을 주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기계약직 체결을 해줄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래도 해보고 싶어서 지원했는데 채용됐어요. 파주상공회의소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팀장으로요. 무기계약직도 좋았지만 저는 상담보다는 교육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고 도전하는 것에 큰 두려움도 없었어요.”
비서교육 제대로 받은 커리어우먼
직업상담사의 길을 걷기 전까지 임순열 대표도 몇 번의 경력단절을 겪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결혼을 하면 으레 회사를 나가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했다.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한국과학기술대학(현 카이스트)에서 학장 비서로 근무했어요. 그때는 비서 하면 커피나 타고 전화만 받던 시절이었는데 저희 학장님은 달랐어요. 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오셔서 비서를 제대로 쓸 줄 아는 분이셨죠. 스케줄 관리에서부터 서류작업, 각종 스크랩 업무 등을 보면서 VIP 응대도 자주 했습니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룹 회장님도 만났어요. 비서로서 제대로 일을 배웠습니다. 제가 결혼할 무렵 학장님이 한국과학재단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저도 함께 갔는데 그만둬야 했어요. 재단 쪽 분위기가 결혼한 여자가 일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저도 학장님께 폐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 후 아이 낳고 가정주부로만 살다 보니 좀 답답하더라고요.(웃음)”
임 대표가 집 밖으로 뛰쳐나온 계기가 된 건 2001년 친정부모님이 다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갑작스러운 부모님과의 이별에 우울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밖에 나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고 결국 주부가 쉽게 도전 할 수 있는 학습지 선생 일을 4년간 했다. 그리고 5년여를 다시 쉬다가 2010년부터 직업 상담 분야에 눈을 떠 지금에 이르렀다.
“2018년 12월에 사표를 내고 프리랜스 강사로 독립했습니다. 오랜 시간 참 많이도 다니면서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좋은 인맥들이 생겼어요. 올해까지는 준비하는 상황이라서 홍보도 못했는데 강의해 달라고 연락을 주십니다. 한 달에 네다섯 번 정도는 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의 입성기
임 대표가 주로 강의활동을 하는 곳은 고양, 파주, 청주 등 수도권이다. 그런데 지난 9월 처음으로 서울에서 강의할 기회가 찾아왔다.
“노사발전재단에도 중장년일자리지원센터가 있어요. 노사발전재단에서 퇴직 교원들을 위한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진행했는데, 퇴직 교원이 아니더라도 구직자라면 그 과정을 들을 수 있었어요. 양성과정이 끝날 때 강의 시연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원하는 사람만요. 시연을 잘하면 노사발전재단에서 전문 강사로 쓰겠다는 문구가 떠올라서 저도 한다고 했습니다. 생애설계 관련 주제였는데 퇴직 교사들에게 맞춘 강의을 했어요. 전문 강사 한 분과 노사발전재단 소장님이 심사위원이셨는데 좋은 평가를 주셨어요. 이후 강의제안서를 냈고 제가 된 거죠. 노사발전재단은 공공기관이잖아요. 강의자리 따기가 쉽지 않아요. 서울에서 강의를 마친 다음 날 청주에서 강의가 있어 새벽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서울 입성기를 올렸어요. 라디오 DJ가 첫 사연으로 읽어줬습니다.”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겪은 어려움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임순열 대표는 말했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어요. 비서 시절에는 높은 분을 많이 상대하면서 예절을 잘 배웠고요. 학습지 선생으로 활동할 때는 교육 일과 영업 일을 경험했습니다. 성당에서 봉사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제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됐습니다.”
60세 전에 퇴직하는 사람이 꽤 많다. 그 뒤에도 20~30년은 더 살게 될 텐데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기엔 너무 고약한 현실이다. 그래서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임 대표는 말한다.
“노년의 삶에 대해 공부를 더 해서 봉사도 하고 강사로도 활동하면 좋겠어요. 역량이 되는 한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며 살고 싶습니다.”
평범한 세일즈맨의 일생이었다. 그저 그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무난한 삶을 원하는 이 시대의 가장.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또 하루를 지내다 보니 어느덧 베이비붐 세대라는 꼬리표와 함께 인생 후반전에 대한 적잖은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지금까지 숨죽이고 조용히 살았으면 됐다 싶어 너른 멍석 위에 윷가락 시원하게 던지듯 직장 밖으로,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다. 전반전 인생이 무채색이었다면 후반전은 돌고 도는 윷판 속에 수만 가지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윷놀이연구소의 조광휘(趙光彙·56) 소장을 만났다.
용산구 효창원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오래된 주택가 한 모퉁이에 윷놀이 연구소가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벽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긴 윷판이 부착돼 있고 박스와 작은 선반마다 윷놀이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집이랑 가까워서 이곳에 연구소를 차렸습니다. 월세도 싸고요.”
한복을 입고 반갑게 많이 하는 조광휘 소장은 찾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시원한 물과 커피를 내놓았다. 그저 명절이 되면 누군가 어디선가 꺼내 달력 뒤를 펴서 도, 개, 걸, 윷, 모 윷판을 매직펜으로 그려놓고는 동전 혹은 바둑알 색으로 편을 나누어 윳놀이를 한다. 언제부터 윷판 그리는 것을 기억해놓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다들 잘도 그린다. 윷판 위에 말을 올리고 놓는 것도 수준급. 다들 알고 있는 이 윷놀이에 무슨 매력이 어떤 새로운 점이 있어 윷놀이 연구소까지 열었는지 궁금했다.
“저는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인 1963년생입니다. 부산 출신으로 KB국민은행에서 27년 6개월 동안 일하다가 2017년 희망퇴직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을 윷과 함께 맞이했습니다.”
그가 회자될 때 불리는 직함은 바로 우리나라 1호 윷놀이전문강사(노사발전재단 금융센터 전문강사 양성과정 인증). 30년 가까이 고객 응대하던 친절한 행원이 한판 흥겨운 윷놀이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알리는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뭘 좀 준비하고 회사 밖을 나왔어야 하는데 사실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입행할 때 130명이 들어갔는데 현재 29명이 남아 일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좀 많으면 빨리 퇴직하더군요. 그리고 지점장까지 오른 사람들도 회사생활을 마감하고요. 지점장이 안 된 사람들은 오래 근무를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받아오던 임금의 반을 받으며 정년까지 일하는 임금피크제를 선택하든가 아니면 퇴직을 하는 거죠. 팀원 내에 계속 남아 있는 동기들은 여러 가지 사연 때문에 근무를 선택한 거죠. 저는 지점장은 아니고 팀원으로 퇴직했습니다. 굳이 진급 못한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상급자에게 잘하는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웃음)”
은행의 지점에서 일한다는 것은 영업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다.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가 있다. 임금피크제 대상자로 정년까지 근무하는 선배들의 뒷모습은 아련하기만 했다. 어제까지 선배 대우 잘해주던 후배도 임금피크제로 보직이 변경된 선배에게 색안경 끼고 행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저렇게까지 이곳에서 일해야 할까?’ 하는 의문과 회의감마저 들었습니다. 희망퇴직도 기간에 대한 보상이 있거든요. 특별 퇴직금이 있었어요. 제 인생을 생각해보니까 60세에 은퇴하면 할 수 있는 것도 못할 거 같았어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하고 은행을 나왔습니다. 인생 후반전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실 별생각 없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한 우물과도 같은 직장을 박차고 나왔으니 솔직한 마음으로 앞이 캄캄했다. 은행에 다니면서 땄던 자격증은 금융기관이 아니면 써먹을 곳이 없었다. 새 삶을 살려면 옛것을 버려야 했다. 지금까지 했던 것 말고 무엇을 하고 싶었고 어떤 것을 추구했는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었다.
“구직활동을 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잖아요. 이력서도 내고 면접도 보고 시험도 보러 다녔습니다. 백세시대이다 보니 제가 노노(老老)케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쪽 일을 하려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필요하더라고요. 자격증의 필요함을 느꼈다면 현직에 있을 때 땄겠지만 그때는 조직에 충성하기도 바빴습니다. 주5일 근무제가 되어 시간이 많아졌다지만 자기계발하는 친구가 주변에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스트레스 많은 직종이기도 하죠. 돈을 다루고 고객을 대하는 일이요. 지금은 비대면이 많지만 저는 온전하게 대면하는 은행원의 삶이었죠. 아무 대책 없이 인생 2막을 생각한 것이 후회스럽긴 합니다.”
은행 생활에서 윷놀이를 발견하다
윷놀이에 대한 관심은 은행원 시절부터 있었다고 했다. 조직에 있을 때 서무파트 담당을 많이 하다 보니 야유회나 체육 행사 계획을 도맡게 됐다.
“1박 2일 혹은 당일 코스로 계획을 짤 때마다 윷놀이를 포함했습니다. 소통 놀이로요. 은행에 팀이 4개였는데 토너먼트로 윷놀이를 하면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놓았는데 사람들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퇴직 후 보통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하는 활동 중 하나는 실질적인 구직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부에서 인가한 단체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다.
“공덕동에 있는 노사발전재단에 좋은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금융전문강사 양성과정이 있었어요. 처음 1주 과정을 마치고 나니 저더러 5분 스피치를 준비하라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스피치를 준비할 때 재무관리, 은퇴설계, 노후관리 등을 대부분 고르더라고요. 저는 금융강사가 되어보겠다는 절박함이 없었고 실업 급여를 받으려고 간 거였어요. 그래서 그냥 자유롭게 윷놀이로 주제를 정했습니다.”
은행에 다닐 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마이크 잡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50세 넘어 도전 과제가 생겼다. 남들 앞에서 뭔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 바로 프레젠테이션이었다.
“금융전문강사 강습을 받고 스피치를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신경써보지 않았던 것을 배웠어요. 윷놀이로 5분 스피치를 했더니 잘했대요.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 뒤 심화과정 있다고 해서 들었는데 이번에는 15분 스피치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때도 윷놀이가 주제였다. 반응이 또 좋았다.
“15분 스피치 마치고 나서 며칠 후에 노사발전재단 강원센터에서 2시간 강의를 해보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2017년 1월에 퇴직했는데 그해 8월 윷놀이로 첫 강의를 했습니다. 정말 짧은 기간에 강사로 서게 됐습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제가 강사로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윷판에 우리 역사와 삶을 담다
처음에는 어떻게 두 시간 동안 강의할까 걱정했는데 나중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말을 놓는 윷판에는 29개의 밭이 있습니다. 꺾어지는 곳은 모퉁이 밭이라고 해요. 윷판은 하늘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북두칠성이기도 하고, 땅위의 밭이기도 합니다. 윷판을 골똘히 보면서 그 안에 스토리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인터넷 검색으로 동서남북을 잡아 배치해서 윷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근대사와도 접목했는데 그게 백범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였어요. 그분들 일대기의 키워드를 윷판에 담았어요.”
윷판은 세상의 이치와 역사, 지도, 절기를 적절히 담아 설명할 수 있는 스토리보드였다.
“첫 강의에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강의를 하니까 두 시간이 거짓말처럼 지나갔습니다. 스토리를 담은 윷판을 제작해 윷놀이 세트로 17개나 출시했죠.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데 교육기관에서 관심을 가지고 구매하시더라고요. 오늘도 주문받아서 납품해야 해요. 기자님 가시면요.(웃음)”
윷놀이연구소의 든든한 조력자는 바로 노사발전재단에서 함께 금융전문강사 과정을 들었던 동기들이라고 했다. 과정을 모두 이수한 13명 중 10명이 윷놀이연구소 연구원으로 들어와 같이 의견을 나눈다고 했다.
“노인대학처럼 인원이 많은 곳에 가면 200에서 300명 정도 되니까 혼자 가서는 감당을 못해요. 연구원 분들이 같이 가서 윷놀이 심판도 하고, 진행도 하십니다.”
물론 강사비가 발생하면 함께 나눈다. 앞으로 윷놀이 관련 강사 자격증도 만들 생각이다.
“SNS에 윷놀이 전문 강사라고 띄워놓았는데 딴지거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 보니 제가 1호가 맞나봐요.(웃음) 인터넷을 쭉 훑어봤는데 예전에도 윷놀이가 너무 좋은 전통놀이니까 판을 키우려고 노력했던 분이 좀 있었나봐요.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니 중도에 그만두셨더라고요.”
윷놀이판을 벌여놓았으니 할 일이 많기도 많다. 우리 전통놀이라고는 하지만 윷놀이에 관련한 제대로 된 자료가 없다.
“구한말이던 1895년 미국 민속학자 스튜어트 컬린 교수가 한국, 중국, 일본의 놀이를 정리해서 쓴 ‘한국의 놀이(Korean Game)’에 보면 ‘한국의 윷놀이는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하는 수많은 놀이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요. 아직까지도 이를 반박하는 논문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윷놀이가 인도문화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인도에도 윷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동물 뼈로도 많이 하고요. 윷놀이는 원래 조개로 했는데 고동으로도 할 수 있어요. 제대로만 정리하면 윷으로 대단한 발견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윷을 제대로 만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고 말하는 조광휘 소장.
“몰라요. 윷에 미쳤습니다. 하루가 정말 즐겁게 갑니다. 일단 윷놀이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옛날에도 우리와 함께했고 먼 미래에도 남아 있을 거예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합니다. 며칠 전에 윷 문화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려고 민속박물관에 갔다가 천문도에 대해 강연하는 80대 강사를 봤습니다. 솔직히 내용보다도 나이 들어서 강의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나도 저렇게 가야겠다. 그때 딱 영감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제 다른 것을 안 본다. 윷놀이만 보자. 은퇴하고 오십 훌쩍 넘어 발견한 제 인생 최고의 아이템이 바로 윷입니다.”
은퇴한 시니어들의 화두는 뭐라해도 ‘일’이다. 300만 원 이상의 연금 수급자들도 돈을 떠나 ‘일’하고 싶어 한다. 재취업, 인생 2모작 등 현역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시니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일까, 시니어들 사이에서는 노후 불안과 함께 65세 정년연장에 대한 얘기들이 뜨겁게 오가고 있다. 일하는 시니어가 많은 상황에서, 현재의 정년이 60세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정년을 연장하는 일은 일견 단순해 보여도 쉬이 풀기 힘든 무수한 문제들이 따른다. 대체 정년연장으로 어떤 변화들이 발생할 것인지 짚어봤다.
정년연장 논의 가속화에 팔 걷어붙인 정부
정년은 누구에게나 오게 된다. 현재 시니어의 생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소위 ‘불이 붙은’ 이슈는 바로 ‘정년연장’일 것이다. 기존의 60세를 65세로 올려야 한다는 정년연장 화두는 올해 2월 대법원에서 본격적인 포문이 열렸다. 육체 노동자의 가동 연한을 60세로 산정한 원심을 깨고 65세로 늘려야 한다며 판례를 바꾼 것이다.
이어서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정년연장 문제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23일에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정년연장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함을 밝히고 6월 초에는 TV에 출연해 정부에서 현재 해당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음을 알리는 등 거듭해서 정년연장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6월 말에 발표된 60세 이상 고령자의 재고용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정부 시책은 이 문제에 기름을 부었다.
정년 60세,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나라의 고령자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연령은 남성은 72세, 여성은 72.2세로 알려져 있다. 이것도 2016년 기준이기에 2019년인 현재에는 더 높아졌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는 OECD 35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나이대다. 그런데 한국고용정보원 추산에 따르면,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은 49.1세에 불과하다. 이는 첫 퇴직을 하는 평균 나이가 49.1세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완전히 일에서 물러나는 72세까지 22년이라는 긴 시간을 재취업 혹은 계약직, 자영업의 세계에서 일하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다 지난 5월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5.2%로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65세 이상 인구의 3분의 1이 아직도 일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60세 정년이라는 현재의 기준은 은퇴 시점을 앞당기는 주요한 원인이면서 현실성 없는 기준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실에 맞게 정년도 5년 늘려서 65세로 간단하게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이 간단한 해법 뒤에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 역학 작용들로 인한 갈등들이 시한폭탄처럼 숨겨져 있다. 올해 769만 명으로 집계된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20년 813만 명, 2024년 995만 명 등으로 늘어 2025년이면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청년 일자리와의 상충
100세 시대라는 명칭에 맞게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막대한 수의 베이비부머가 매년 80만 명이 은퇴하기 시작하는 근간에, 60세 정년이라는 기준은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을 보다 현실적인 나이인 65세로 올리는 일의 발목을 잡는 문제는 바로 청년실업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국내외의 문제들이 중첩되어 경제 침체와 함께 높은 청년실업률이 이어지며 사회적 갈등으로 연결되는 상황이다. 정년연장으로 가뜩이나 부족한 청년 일자리를 시니어들이 빼앗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이 있다.
정년연장의 실현을 통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1차적으로 공무원이나 대기업 근로자 등 소위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좋은 일자리’는 청년들에게도 ‘좋은 일자리’이며 수년간의 고시 공부를 해서라도 들어가려는 곳이다. 정년연장으로 인한 일자리 축소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러나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를 줄인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OECD는 일찍이 1990년대에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조기퇴직의 활성화를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세대 간 비교우위에 따른 고용분리로 인해 기존의 일자리 전쟁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채택했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양 세대 고용을 늘리는 정책 방향을 권고하고 있다.
이제 정부 입장을 보자. 현행 60세 정년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 예산 정책을 위협하는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현행 60세 정년 기준은 대부분의 복지 우대 대상 나이를 65세로 묶어두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즉 60세 정년을 유지하면 복지혜택을 받는 ‘노인’의 기준 연령을 낮추게 돼서 대상자 수가 늘어나게 되고 복지 부문의 지출을 늘리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복지혜택을 받지 않아도 되고 계속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시니어가 늘어나는 현재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까지 겹치면 복지 지출의 단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정년연장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정년연장 정책은 연령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얽혀 있는 문제들이 서로의 급소를 죄고 있는 듯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
다음은 기업의 입장을 살펴보자. 국내 기업들 다수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임금 체계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정년연장이 이뤄지면, 65세까지 늘어난 시간에 따라 연공급에 맞추는 기업의 인건비 지출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 60~65세 인구 내에서 정년연장을 보장받으며 일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젊은이들 사이의 양극화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들은 무조건적인 정년연장이 임금 지출 상승 및 전체 국민 경제에 피해를 줄 것이라며 반발부터 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의 해소를 위해 정년연장과 함께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다. 60세 이상 직장인의 업무량을 점차적으로 줄여 65세에 은퇴 준비를 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비용절감과 함께 청년층의 고용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임금피크제를 활성화하자는 주장이다. 임금피크제가 정착되기 위해선 시니어 당사자들 전반의 이해와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관련된 갈등들이 이곳저곳에서 펄펄 끓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민연금도 함께 검토해봐야
정년연장 문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국민연금이다. 현행 60세 정년을 계속 유지하면 소위 ‘소득 크레바스’라고 불리는 소득 단절시기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기존 60세였던 국민연금 수급시점이 2013년부터 5년마다 한 살씩 상향조정돼 2033년에는 65세로 늘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행 60세 정년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2033년에는 최대 5년 동안 국민연금을 받지 못해 금전적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는 인구가 상당수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65세로 정년연장을 할 경우 국민연금 차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지금까지 본 사례들처럼,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일을 하면서도 연금을 받는 사람들로 인해 소득격차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연금공단 입장에서도 연금의 본래 취지와는 다른 성격의 지출이 발생함으로써 재정 부담과 함께 제도의 본질이 훼손되는 문제를 겪을 수 있다. 물론 2033년이 되면 65세로 수급 시점이 올라가니 65세 정년과 맞춰지겠지만, 그때까지 10여 년가량은 누수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즉 정년연장은 국민연금 제도의 근간도 검토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선진국들의 대처
정년연장 문제는 전형적인 선진국형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제도가 갖춰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동인구 감소를 겪는 선진국의 사회 변화 추이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 문제를 맞닥뜨려야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은 1980년대에 이미 정년 개념을 없앴다.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나이에 따라 차별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영국은 이보다 늦은 2011년에 대부분의 직업에서 정년제를 없앴다. 단 영국은 고령자가 직무 역량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는 부분적인 일자리들에서는 아직 정년제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이미 65세 정년을 적용하고 있는데 곧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대표적 장수 국가인 일본은 70세까지 정년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이렇듯 선진국들은 정년연장을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순서로 보고 발생할 문제를 해소하는 쪽에 집중해 대처하고 있다.
불가피한 득과 실, 사회적 합의로 풀어야
지금까지 열거된 것들만으로도 정년연장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당사자인 개인과 국가, 기관, 조직의 사정들이 얽히고설킨 상황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정년연장의 적용이 이뤄지면 각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잃고 얻는 것들이 있으며 그러한 결과를 회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적 논의로써 정년연장 이슈를 공론화해, 철저히 사회통합적인 가치 기준에서 조정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해서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단어 ‘소쏠행’을 더 좋아한다.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세상인 데다 ‘소소하지만 쏠쏠한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한 이들은 물론 은퇴를 앞둔 이들도 이 같은 소쏠행을 미리부터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연금 300만 원을 받고 있는 공무원 출신 은퇴자는 동네 초등학교 보안관(학교지킴이)으로 근무한다. 주로 밤에 학교를 지키면서 월 100만 원 남짓 받는다. 60대 후반이지만 아직도 건강한 모습으로 손녀가 다니는 학교를 지킨다는 사명감에 불타 있다. 게다가 그의 손녀는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 보안관이라고 친구들에게 으스대기까지 한다는 이야기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단다. 말 그대로 소쏠행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던 100세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문상을 가면 고인의 연세가 대부분 80대 중후반이고 90대도 흔히 볼 수 있다. 실제로 최빈사망연령, 즉 한 해 사망자 중 가장 빈도가 많은 나이가 1999년 82세에서 2017년 88세로 높아졌다. 최빈사망연령이 90세쯤 되면 주변에 100세 안팎의 어르신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해서 ‘100세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난 2월 대법원은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989년 가동연한을 만 55세에서 만 60세로 상향조정한 이후 30년 만에 다시 5년을 연장한 것이다. 육체노동의 가동연한이란 ‘더 이상 일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나이’로 사고 등으로 사망하거나 영구적 장애가 발생했을 경우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잣대다. 대법원은 가동연한을 상향조정한 이유로 사회경제 구조 및 생활여건의 급속한 향상과 발전을 들었다.
구체적으로는 기대수명의 연장과 높은 실질은퇴연령,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 상향, 국민소득 증가 등을 제시했다. 기대수명은 1989년 남자 67세, 여자 75.3세에서 2017년 남자 79.7세, 여자 85.7세로 10년 이상씩 높아졌다. 주된 직장을 물러난 다음에도 소득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있는 나이를 따지는 실질은퇴연령(effective retirement age)에서 우리나라는 남자 72세, 여자 72.2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여기에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이 60세에서 65세로 올라가고 있고 1인당 국민소득도 1989년 6516달러에서 2017년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오래 사는 것은 물론 실제로도 일자리 현장을 떠나지 않는 등 여러 정황으로 판단컨대 가동연한을 연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쏠행’ 일에서 찾자
몇 년 전 은퇴 3년 차인 선배가 필자를 찾아왔다. 은퇴연구소장이니 고민을 좀 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은퇴한 후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취미와 스포츠를 마음껏 해보겠다고 2년여를 보내고 나니 갑자기 허망해지면서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은퇴 후 먹고살기가 어려워져서가 아니라 아직은 젊은데 뭔가 작아도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은퇴자가 한둘이 아니다.
60세가 정년이라지만 주된 직장을 그만두는 나이는 55세 전후로 더 빠르다. 그렇다면 은퇴 후 100세가 되려면 40~50년을 더 살아야 한다. 90세, 100세 된 이들이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더라면 그 많은 세월을 허송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OECD에서 나온 한 보고서의 제목은 ‘길어진 수명, 길어진 은퇴(Longer life, longer retirement)’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기간도 길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은퇴 후 그 긴 시간을 하릴없이 놀 수만은 없는 일이다.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는 지나간 유행가 가사일 뿐이다. 좀 더 일해도 충분히 건강하게 잘 놀다 갈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휴대폰을 여러 차례 돌렸다. 구청 민원센터와 CCTV 관제실, 공항 택시 단속반, 버스와 택시 위법행위 단속반, 산림보호원 등 청장년들의 일자리와 부딪치지 않는 일자리에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은퇴한 친구들이었다. 급여 수준이 월 30여만 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대까지라고 서슴없이 말해준다. 너무 자세하게 말하면 우리 일자리의 경쟁률이 높아져서 안 된다는 말을 덧붙이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작고 소소해 보여도 내가 발로 뛰어서 얻는 행복이 쏠쏠하면 바로 소쏠행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누가 물어다주는 행복은 없다. 소득을 얻는 일에 얽매이기 싫다면 자원봉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소쏠행은 마음에 달려 있지 소득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다. 자신감에서 나오는 긍정이 긍정 에너지를 만드는 선순환 고리를 소소한 일자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쏠쏠하면서도 큰 행복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있다. 소쏠행의 문을 찾아 두드리자. 슬기로운 은퇴 생활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