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르신보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좋아
- 지난해 '노인 교구 지도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노인 교구 지도사란 유아들의 두뇌활동을 돕기 위해 원목 등의 교구를 이용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처럼 노인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교구를 이용하여 노인들의 운동 능력이나 인지 기능 등 다양한 활동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다. 치매 안심 센터와 같은 시설에서 80시간의 봉사 시간을 채우면 1급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의 영양소'라고도 불리는 노인 교구는 총 아홉 가지로 되어있고 세상 이야기, 균형 의자, 바느질 이야기 등 이름도 재미있다.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서부 캠퍼스의 정기 강좌를 수료한 후 별도의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가 있는데 자격시험인 만큼 나름 까다롭다. 필기는 3단계(1단계 놀이도구, 2단계 인지기능 증진 도구, 3단계 이야기 도구)의 노인 교구 프로그램에 대해 단계별로 60점 이상 받아야 한다. 3단계 중 하나만 점수에 못 미쳐도 탈락이다. 실기는 시험감독 앞에서 실제 수업을 진행하여 평가를 받는 것이다. 40시간 수업에 성실히 참여한 사람들은 큰 어려움 없이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나와 함께 수료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격을 취득했다. 교구 지도사라는 자격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활동에 대한 애정과 대상의 관심이다. 나는 친정 부모님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이 자격을 취득했다. 여건이 되면 친정아버지의 두 번째 집인 요양원에서 프로그램을 해드리고 싶었고 점점 노년의 시간으로 가고 있는 내 삶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지난해 함께 지도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팀을 정해 시설이나 단체에 강의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후 시연까지 만족하면 활동을 시작하는데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은 1월부터 중구의 한 시설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10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첫 수업을 하는 날. 삼십 분 먼저 모여 미팅을 하는데 강사 한 분이 말했다. "수업 때 부를 호칭을 정해야 해요. 어르신이라고 하면 싫어하셔서...." 사회복지사로도 활동하는 그분 말인즉 가끔 80세가 넘은 분도 어르신이라고 하면 싫어하니 호칭을 따로 정하자는 것이었다. 호칭에 대한 고민은 다들 예상 못 한 일이었다. "아버님 어머님은 어떨까요?" "요즘은 독신인 분도 계시니 그건 곤란해요." "선생님은 어때요?" "그것도 불편해하시더라고요." "그럼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이면 어때요?" 공방 끝에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이기로 결정이 났다. 사실 그동안 노인의 호칭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나이가 들어 보여 싫다면 노인이라는 호칭은 더할 것 같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구 이름이 노인 교구인데 참 듣기 싫겠구나 싶었다. 가르치던 강사님이 노인 교구를 '마음의 영양소'라고도 부른다고 했던 이유를 알겠다. 우리가 진행한 프로그램은 시작한 지 4주 만에 끝나버렸다. 정확히는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그 무렵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금방 다시 시작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5월도 중순이다. 이름을 불러드리면 수줍게 웃으시던 김00 님, 이00 님, 모두 잘 지내고 계실까? 코로나19가 물러가면 다시 찾아 가 못다 한 시간을 채우고 싶다. 눈을 맞추고 한 분 한 분 이름을 불러드리고 싶다.
- 2020-05-22 10:02
-
- 환절기 건강은 물과 함께 챙기세요
- 각종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쉬운 요즘 물 마시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입 안이 건조하면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쉬운 환경이 됩니다. 개인 물병을 늘 소지하고 물을 자주 마셔서 입안을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봄철 꽃가루가 날릴 때마다 의사들이 하는 말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예외는 아니다. 각종 병원균을 예방하려면 청결도 중요하지만 수분 섭취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은 우리 몸의 유해산소를 제거하고 미세먼지와 같은 독소를 몸 밖으로 배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충분한 수분섭취가 탁한 혈관을 맑게 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킨다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다. 체온을 조절하거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물론 영양소를 운반하는 등의 대사과정에도 물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말은 곧 우리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건강에 이상을 초래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견상으로는 피부 탄력이 떨어지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입안이 건조해지고 각종 병원균이 침투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수분부족으로 혈액의 농도가 탁해지면 고혈압과 고지혈증의 발생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알고 있는 탈수 현상도 수분부족으로 전해질의 균형이 깨지는 것이 원인이다. 따라서 건강에 관심이 있다면 평소 미지근한 물을 자주 마시는 게 좋다. 특히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무기질을 보충할 수 있도록 미네랄이 풍부한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단, 미네랄 함량이 높은 물은 신장이 약한 사람에게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하니 자신의 체질을 잘 알고 마셔야 한다. 잠들기 전 마시는 한 잔의 물이 숙면에 도움을 준다는 것도 잊지 말자. 인체는 자는 동안에도 수분을 소비하는데 물을 미리 마시면 목이 마르지 않아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물 건강법’도 기억해두자. 아침 공복, 자기 전 물 한 잔 마시기 식사 2시간 후 물 한 잔 마시기 식사 30분 전 물 한 잔 마시기 생수를 자주 마시기가 쉽지 않은 사람은 연근이나 레몬, 혹은 볶은 우엉, 수수, 현미를 넣어 끓인 물을 수시로 마시는 것도 좋다. 특히, 우엉과 현미에는 혈관을 맑게 해주는 사포닌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완화에 좋다. 이런 건강한 물은 재료만 있으면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 수수, 현미차 만드는 법 재료: 수수, 현미, 각 1 컵 1. 현미와 수수를 따로 씻어 물기를 뺀다. 2. 약한 불에 각각 20분가량 덖어준다. 3. 물 2리터에 덖은 현미(수수) 2큰술 + 수수(현미) 1큰술을 넣고 끓여준다. 4. 실온에 두고 수시로 마신다.
- 2020-04-30 08:00
-
- '다시, 뜨겁게 사랑하라'처럼 반전이 온다면
- 당신이 암에 걸려 절망하고 있을 때 남편이 바람피우는 걸 알았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 인생 최악의 순간이 되지 않을까? 이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녀온 날 우연히 남편의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으로. 영화 '다시, 뜨겁게 사랑하라!'는 항암 치료 중인 여주인공이 암과 남편의 바람이라는 절망의 순간에 딸의 결혼식이 있는 이탈리아로 혼자 떠나게 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딸의 시아버지 될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아이들도 다 자라고 무뚝뚝하지만 평범한 남편과 미용사라는 직업이 있는 ‘이다(트리네 뒤르홀름)’는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치료 중에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한다. 남편은 그동안 자신도 힘들었다며 별로 미안한 기색이 없다. 이탈리아에서 하게 될 딸의 결혼식도 따로 가자고 간다. ‘이다’는 그동안의 삶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을 느끼고 딸의 결혼식을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다. 혼자 떠나는 길이 익숙지 않은 ‘이다’는 주차를 하다가 ‘필립’(피어스 브로스넌)의 차를 들이받는다. 알고 보니 '필립'은 딸의 시아버지가 될 사람이었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필립'은 오래전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지내는 중이다. 결혼식이 다가오면서 '이다'의 남편은 바람을 피운 젊은 여자와 같이 나타나고 약혼자로 소개한다. 결국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를 모두 알게 된다. 딸의 결혼식은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흘러간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이다'의 모습은 필립의 관심을 끌고 생각이 바뀐 남편은 다시 시작하자고 ‘이다’에게 용서를 구한다. 일상으로 돌아온 '이다'의 미용실에 필립이 찾아온다. '필립'은 '이다'에게 마음을 전하고 떠난다.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심한 '이다'는 남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필립을 찾아간다. 이 영화는 2013년 개봉작이다. '수사네 비르(Susanne Bier)'라는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의 여자 감독이 만들었으며 제26회 유럽 영화상을 받았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영화를 보는 내내 빠져들게 한다. 요즘 영화 다시 보기를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예전에 본 영화를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처음 봤을 때와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영화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이 변한 것일까?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홀로 남겨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이혼이든 사별이든 어떤 이유로 혼자가 되었을 때 이런 멋진 사랑이 다시 찾아온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혹시 지금 혼자 있다면 주위를 둘러보라. 영화 속 '필립' 혹은 '이다'처럼 멋진 주인공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다시 뜨겁게 사랑하게 될지도.
- 2020-04-27 08:00
-
- 내장비만 확 빼준다는 'ABC 주스'
- 며칠 전 거의 두 달여 만에 참여 중인 모임에 나갔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었지만 시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활동이 제한적인 만큼 대부분 예전 그대로거나 조금 후덕해진 모습이었는데 유독 얼굴이 갸름해진 한 사람이 있었다. 들어보니 역시 그녀는 그냥 갸름해진 게 아니었다. 지난겨울 체중이 늘어서 불편했다는 그녀는 특별히 굶거나 하지 않고 공복에 주스 한 가지를 먹었다고 한다. 그녀가 말한 주스는 바로 'ABC주스'였다. 그녀는 아침마다 ABC주스를 공복에 마시고 식사는 똑같이 했다고 한다. 3주 정도 마시고 있는데 체중이 3킬로 가량 줄었으며 뱃살이 특히 많이 빠진 느낌이라고 했다. 이참에 나도 한 번 먹어볼까 싶어 찾아봤다. 재료는 A=Apple, B=Beet, C=Carrot 으로 사과, 비트, 당근이다. 이 세 가지 조합만 들어도 건강한 주스라는 느낌이 확 온다. 일단 사과는 대표적인 ‘슈퍼 푸드’로 꼽히는 과일이다. 사과에는 만성질환의 원인이 되는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항산화 성분이 많아 노화를 늦추는 데도 도움을 준다. 사과에는 플라보노이드 성분도 풍부해서 파킨슨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사과를 섭취한 사람들이 파킨슨병 발병률이 40%나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도 있다. 빨간 뿌리를 사용하는 비트에도 항산화 성분인 안토시아닌과 베타인이라는 알칼로이드 성분이 풍부하다. 이 물질들은 각종 암과 만성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고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서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간의 해독작용도 도와줘서 지방간 예방에 도움이 된다.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여 새로운 슈퍼 푸드로 떠올랐다 당근은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 비타민은 물론 항산화 성분도 풍부해 다양한 요리에 활용되고 암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당근에는 카로티노이드와 티아민, 리보플래빈, 니아신 등 각종 화합물이 풍부하므로 그만큼 건강상 이점이 많다. ABC주스는 각각의 식재료가 노폐물 배출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아침 공복에 마시면 체내 독소 배출은 물론 풍부한 식이섬유로 배변활동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저칼로리에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고 특히 내장지방을 효과적으로 제거해주는 효능이 있다. 단, 비트를 많이 섭취하면 신장 결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 신장이 약한 분이라면 양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재료] 사과 1개, 비트 1/3개, 당근 1개, 꿀 [만드는 법] 1. 사과, 비트, 당근을 깨끗이 씻는다. 2. 사과와 당근을 껍질째 적당히 자른다. 3. 비트는 작은 크기로 자른다. 4. 사과, 비트, 당근과 물 한 컵을 넣고 갈아준다. 5. 완성된 주스를 하루 1~2회 식전에 마신다. 6. 꿀은 기호에 따라 첨가한다,
- 2020-04-23 08:00
-
- “걱정 말아요. 파리는 어디 안 가요”
- 요즘처럼 시간이 여유로울 때는 지난 영화를 검색해서 다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최근에 본 영화 ‘파리로 가는 길’은 2017년 개봉작으로 ‘엘레노어 코폴라(Eleanor Coppola)’ 감독의 데뷔작이다. 남편의 동유럽 출장에 동행하려다 감기가 걸리는 바람에 일정에 차질이 생긴 ‘엘레노어 코폴라’ 감독이 남편 동료의 제안으로 프랑스를 여행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감독 데뷔 전에는 ‘회상, 지옥의 묵시록’과 같은 다큐멘터리 연출도 했고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설치미술가, 작가 등 다양한 이력이 있다. 여주인공 ‘앤’역은 배우 ‘다이안 레인(Diane Lane)’이 맡았다. 초반에 잠깐 등장한 남편 ‘마이클’역은 ‘알렉 볼드윈(Alec Baldwin)’이, 프랑스의 연출 겸 작가, 배우로 활약하는 ‘아르노 비야르(Arnaud Viard)’가 남편의 사업 동료인 ‘자크’역으로 나와 프랑스 남동부 곳곳을 안내한다. 자꾸 어딘가를 들르는 ‘자크’에게 ‘앤’은 “파리, 오늘은 갈 수 있나요?” 하고 묻는다. ‘자크’ 는 “걱정 말아요. 파리는 어디 안 가요.” 라고 센스 있는 대답을 한다. 결국 칸에서 파리까지 7시간이면 오는 파리를 거의 40시간 만에 도착하게 된다. ‘엘레노어 코폴라’ 감독은 이때 경험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약 6년간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남편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든든한 외조 덕에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은 자신의 이야기를 에 녹여낼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풍경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하는 이 영화는 제41회 토론토국제영화제와 제60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제35회 뮌헨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특별하지 않은데 설레게 하는 영화 화면에는 프랑스 남동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프랑스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세계적인 영화제가 열리는 칸을 출발하여 프랑스 곳곳을 여행하는 중년 남녀의 모습 역시 청춘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의 설렘을 준다. ‘프랑스의 심장’으로 불리는 리옹에서는 세계 최초로 영화를 제작한 뤼미에르 형제의 ‘뤼미에르 박물관’이 나온다. 도시의 세련됨과 여유로움이 있는 리옹에서 가장 큰 ‘폴 보퀴즈 시장’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사진을 찍는 ‘앤’의 작은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프랑스 정통 와인과 프렌치 푸드의 다양한 색감과 화려함은 색다른 즐거움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행 중에 ‘앤’이 먼저 가자고 한 곳이 한군데 있다. 성모 마리아의 유해가 있다고 알려진 ‘성 막달레나 대성당’ 이곳에서 ‘앤’은 마음 깊이 있던 자신의 상처 하나를 ‘자크’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는다. 남편의 사업 동료가 안내하는 여행은 내내 정중하고 사려 깊다. 특별하지 않은데 아련하게 다가온다. 두 중년 배우가 주는 원숙미와 프랑스 거리의 풍경들. 두 사람의 여행이 길어지면서 불안해하는 남편의 반응과 호들갑스럽지 않지만 덤덤하게 드러나는 서로에 대한 관심도 재미있다.
- 2020-04-13 08:45
-
- 보폭이 닮은 친구와 산에 오르다
- "산에 가자" 오랜만에 전화한 동갑내기 친구가 대뜸 산에 가자고 한다. 정년까지 일하겠다는 당찬 그녀. 코로나19로 장기간 출근을 못하는 상황이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떠올랐지만 서로 바쁘기 전에는 자주 산행을 하던 친구라 단칼에 거절이 어렵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전수칙을 잘 지키면 되지 않을까. 조심조심 다녀오자고 마음을 굳힌다. 그녀와 나는 걸을 때 보폭이 비슷하다. 빠르거나 더디지 않으니 산길에서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편이다. 오랜만에 산에서 먹는 밥맛은 또 얼마나 좋을까? 쳐져있던 마음이 한껏 부풀어 들뜬 맘으로 집을 나선다. 불광역 2 번 출구에서 장미공원 방향으로 걷다보면 북한산 족두리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그녀와 내가 좋아하는 코스다. 시작부터 가파른 만큼 재미도 있다. 맘이 통했는지 우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족두리봉으로 향했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진분홍 꽃들이 길 양 쪽에 마주 서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 길에 진달래가 이렇게 많았나? 새삼 놀랍다. 겨울이 멈칫대는 사이 몰래 온 봄이 족두리봉과 연결된 좁은 오솔길 사이에서 노닐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끝에 누런 흙먼지가 날린다. 중턱쯤 오르다 마스크를 벗었다. 때마침 능선을 타고 넘어오던 바람이 맑은 공기를 훅 몰아준다. 누구랄 것 없이 크게 숨을 들이킨다. "와아! 너무 좋다~" 산 중턱에서 마시는 공기는 집에서 마실 때와 확실히 다르다. 역시 나오길 잘했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혹은 코로나19에서 벗어난 곳이라고 생각해선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족두리봉 너른 바위를 등지고 앉아 건물이 다닥다닥 붙은 마을을 내려다본다. 바짝 말라 건조한 하늘 아래 봉긋봉긋 솟은 아파트와 빌딩, 사이사이 납작납작 엎드린 다가구 주택들. 탁한 느낌인데 신기하게 하늘은 푸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이 다가갈수록. 산에서 먹는 밥은 유난히 맛있다. 후다닥 챙긴 밥과 조금씩 덜어내 온 반찬이 꿀맛이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마주하니 마음도 여유롭다. 사는 게 뭐라고 그리 아옹다옹 하냐고 즐겁게 살자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꾹꾹 눌러 담은 밥그릇이 텅 비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 손질해온 딸기를 입에 넣던 그녀가 불쑥 말했다. 지난 연말 세상을 떠난 남편이 시간이 갈수록 그립다고. "그렇구나… 그렇겠지…."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게 그저 끄덕끄덕 고갯짓이라 슬프다. 족두리봉을 끼고돌아 향로봉으로 향했다. 진분홍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나무 사이사이마다 만개했다. 사진을 찍어 확인해보니 수분이 모자라 꽃잎이 바짝 말랐다. '멀리선 아름답게만 보이더니 너도 애쓰는 중이었구나' 하긴, 사람도 그렇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한 걸음 가까이 들어가 보면 걱정과 근심이 있다. 사람이나 꽃이나 서로 적당한 거리에 있을 때 보기 좋다는 생각을 한다. 달콤한 행복을 떠올리다 습기라곤 없는 진달래꽃을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본다. 텁텁한 꽃 향이 입안에 퍼진다. 기분이 좋다. 나란히 걷는 친구의 입에도 넣어준다. 몇 해 전, 혼자 배낭을 메고 산에 올랐다가 소나기를 만난 날은 아카시아 꽃을 따먹었다. 비를 피하느라 바위 아래 멈췄다 내려오는 길에 따먹었던 젖은 아카시아 꽃잎은 얼마나 달콤했던지. 그 후로 산에서 꽃을 보면 입안에 넣고 씹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처럼 먹어도 되는 진달래, 아카시아가 대부분이지만. 그녀의 수다가 줄었다. 진분홍 꽃잎을 오물오물 씹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오늘 같은 날은 아카시아 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씹을수록 달콤한 그 꽃. 아카시아 꽃을 씹으며 행복하던 그 느낌이 그립다. 그녀와 함께 오물오물 달콤한 행복을 씹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다음엔 내가 먼저 전화를 해야지. 아카시아 꽃 필 무렵 산에 가자고 해야겠다.
- 2020-04-08 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