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보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좋아

기사입력 2020-05-22 10:02 기사수정 2020-05-22 10:03

지난해 '노인 교구 지도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노인 교구 지도사란 유아들의 두뇌활동을 돕기 위해 원목 등의 교구를 이용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처럼 노인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교구를 이용하여 노인들의 운동 능력이나 인지 기능 등 다양한 활동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다. 치매 안심 센터와 같은 시설에서 80시간의 봉사 시간을 채우면 1급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의 영양소'라고도 불리는 노인 교구는 총 아홉 가지로 되어있고 세상 이야기, 균형 의자, 바느질 이야기 등 이름도 재미있다.

▲숫자이야기와 한글이야기를 이용해 만든 은행나무(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숫자이야기와 한글이야기를 이용해 만든 은행나무(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서부 캠퍼스의 정기 강좌를 수료한 후 별도의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가 있는데 자격시험인 만큼 나름 까다롭다. 필기는 3단계(1단계 놀이도구, 2단계 인지기능 증진 도구, 3단계 이야기 도구)의 노인 교구 프로그램에 대해 단계별로 60점 이상 받아야 한다. 3단계 중 하나만 점수에 못 미쳐도 탈락이다. 실기는 시험감독 앞에서 실제 수업을 진행하여 평가를 받는 것이다.

40시간 수업에 성실히 참여한 사람들은 큰 어려움 없이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나와 함께 수료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격을 취득했다. 교구 지도사라는 자격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활동에 대한 애정과 대상의 관심이다.

나는 친정 부모님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이 자격을 취득했다. 여건이 되면 친정아버지의 두 번째 집인 요양원에서 프로그램을 해드리고 싶었고 점점 노년의 시간으로 가고 있는 내 삶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균형의자이야기로 수업하는 모습(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균형의자이야기로 수업하는 모습(사진 정용자 시니어기자)

지난해 함께 지도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팀을 정해 시설이나 단체에 강의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후 시연까지 만족하면 활동을 시작하는데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은 1월부터 중구의 한 시설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10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첫 수업을 하는 날. 삼십 분 먼저 모여 미팅을 하는데 강사 한 분이 말했다.

"수업 때 부를 호칭을 정해야 해요. 어르신이라고 하면 싫어하셔서...."

사회복지사로도 활동하는 그분 말인즉 가끔 80세가 넘은 분도 어르신이라고 하면 싫어하니 호칭을 따로 정하자는 것이었다. 호칭에 대한 고민은 다들 예상 못 한 일이었다.

"아버님 어머님은 어떨까요?"

"요즘은 독신인 분도 계시니 그건 곤란해요."

"선생님은 어때요?"

"그것도 불편해하시더라고요."

"그럼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이면 어때요?"

공방 끝에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이기로 결정이 났다.

사실 그동안 노인의 호칭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나이가 들어 보여 싫다면 노인이라는 호칭은 더할 것 같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구 이름이 노인 교구인데 참 듣기 싫겠구나 싶었다. 가르치던 강사님이 노인 교구를 '마음의 영양소'라고도 부른다고 했던 이유를 알겠다.

우리가 진행한 프로그램은 시작한 지 4주 만에 끝나버렸다. 정확히는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그 무렵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는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금방 다시 시작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5월도 중순이다. 이름을 불러드리면 수줍게 웃으시던 김00 님, 이00 님, 모두 잘 지내고 계실까? 코로나19가 물러가면 다시 찾아 가 못다 한 시간을 채우고 싶다. 눈을 맞추고 한 분 한 분 이름을 불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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