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월)은 중국 북부지방에서 확장하는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전국 대체로 맑겠으나, 서해상에서 한기에 의해 만들어진 구름대의 영향으로 호남서해안과 제주도는 대체로 흐리고 매우 많은 눈이 오는 곳이 있겠고, 충남 서해안과 전라 내륙에도 많은 눈이 오는 곳이 있겠으니, 비닐하우스 등 야외 시설물 관리와 교통안전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라며, 앞으로 발표되는 기상정보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 호남 서해안, 충남 서해안과 제주도는 모레(16일)까지 눈이 오는 곳이 있겠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예상 적설(14~16일)
- 전라 서부, 제주도 산지, 울릉도·독도: 5~20cm
(많은 곳 전북 서해안, 전남 북부 서해안, 제주도 산지, 울릉도·독도 30cm 이상)
- 충남 서해안, 제주도(산지 제외): 2~7cm
(많은 곳 충남 남부 서해안 10cm 이상)
- (15일) 충남내륙: 1~3cm
▶한파정보
서울·경기 북부와 강원 영서, 충북 북부, 경북 북부 내륙에 한파 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유입되면서 글피(17일)까지 아침 기온이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5도 이하, 중부내륙과 경북 북부를 중심으로 -10도 이하로 떨어지겠고, 낮 기온도 영하권에 머물면서 바람도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 매우 춥겠으니,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랍니다.
※ 월요일인 오늘(14일)은 어제(13일) 내린 비나 눈이 얼어 빙판길이 되는 곳이 있어 교통이 매우 혼잡할 수 있고, 한파로 인해 야외활동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 교통안전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랍니다.
▶기온정보
오늘(14일) 낮 최고기온은 -5~3도가 되겠습니다.
▶강풍정보
내일(15일)까지 서해안과 경상 동해안, 제주도에는 바람이 9~14m/s로 매우 강하게 불고, 그 밖의 지역에서도 바람이6~10m/s로 강하게 부는 곳이 있겠으니, 시설물 관리와 안전사고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랍니다.
▶ 해상예보
대부분 해상에 풍랑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남해 먼바다 오늘(14일)까지, 서해상은 내일(15일)까지, 동해상과 제주도 해상은 모레(16일)까지 바람이 10~20m/s로 매우 강하게 불고, 물결이 2.0~5.0m로 매우 높게 일겠으니, 항해나 조업하는 선박은 각별히 유의하기 바랍니다.강원 동해안에는 너울에 의한 높은 물결이 갯바위를 넘거나 백사장으로 강하게 밀려오는 곳이 있겠으니, 해안가 안전사고에 각별히 주의하기 바랍니다.
11일(금)은 중국 북부지방에 위치한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전국이 구름이 많고, 충청도와 전라도에는 아침까지 빗방울이 떨어지거나 눈이 날리는 곳이 있겠습니다. 제주도는 남해상을 지나는 기압골의 영향을 받겠으므로 오후부터 비(산지는 비 또는 눈)가 오는 곳이 있겠습니다.
* 예상 강수량(11일 오후부터 밤사이)
- 제주도: 5mm 내외
▶건조정보
건조 특보가 발효된 강원 영동과 경상 해안, 경북 북동 산지는 대기가 매우 건조하고, 그 밖의 지역도 대기가 건조한 곳이 많겠습니다. 강원 영동과 경상 동해안에는 바람도 약간 강하게 불어 작은 불씨가 쉽게 큰불로 이어질 수 있으니, 산불 등 각종 화재 예방에 각별히 주의하기 바랍니다.
▶기온정보
오늘(11일) 낮 최고기온은 6~14도가 되겠습니다. 내일(12일)은 중부내륙, 모레(13일)는 전국 내륙에서 영하권에 들겠습니다. 낮 기온은 내일과 모레 대부분 10도 이하의 기온분포를 보이겠으나, 모레 서울 및 경기도와 강원 영서는 북서쪽에서 찬 공기가 남하하면서 5도 이하로 쌀쌀하겠습니다.
▶안개 정보
오늘(11일) 아침까지 중부내륙을 중심으로 가시거리 1km 미만의 안개가 끼는 곳이 많고, 일부 경기내륙과 강원 영서 북부에는 가시거리 200m 이하의 짙은 안개가 끼는 곳이 있겠으니, 교통안전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
기온이 낮은 지표면에서 안개가 결빙되어 도로가 매우 미끄러운 곳이 있겠으니, 교통안전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랍니다. 오늘(11일) 낮 동안 연무가 나타나는 곳이 있겠으니 건강관리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강풍 정보
모레(13일) 오후부터 서해안과 경상 동해안, 제주도에는 바람이 35~60km/h(10~16m/s)로 매우 강하게 불면서 강풍 특보가 발표될 가능성이 있겠고, 그 밖의 지역에서도 바람이 25~45km/h(7~12m/s)로 강하게 부는 곳이 있겠으니, 시설물 관리와 안전사고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라며, 앞으로 발표되는 기상정보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해상예보
모레(13일) 오전에 서해 중부 먼바다부터 바람이 차차 강해져 오후에는 대부분 해상에서 바람이 10~16m/s로 매우 강하게 불고, 물결이 2.0~4.0m로 매우 높게 일면서 풍랑특보가 발표될 가능성이 있으니, 앞으로 발표되는 기상정보를 참고하기 바라며, 항해나 조업하는 선박은 각별히 유의하기 바랍니다.
모 방송국에 ‘편애중계’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중계진 이름은 축구팀, 야구팀, 농구팀으로 왕년에 축구, 야구, 농구로 이름을 떨치던 운동선수 출신 세 사람과 입담 좋은 예능인 세 사람이 1대 1로 팀이 되어 출연자를 선택하고 편애중계를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일단 자신의 팀이 될 출연자가 정해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편이 되어 응원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응원하듯 없는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칭찬을 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 억지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별로 내세울 일도 아닌데 어떻게든 아름답게 버무려 띄워주는 모습이 시청자의 배꼽을 잡게 했다.
‘편애중계’를 보면 예전에 본 ‘계춘할망’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제주도에서 해녀로 살아가는 계춘 할망에게는 손녀 혜지가 있다. 어느 날 계춘 할망이 장을 보는 사이 혜지가 사라진다. 백방으로 찾아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어느 날 혜지가 찾아온다. 하지만 혜지는 가짜다. 계춘 할망은 혜지가 아닌 걸 알면서도 모른 체한다. 이후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영화를 안 본 분을 위해 여기까지 하겠다. 영화에서 계춘 할망은 자신을 속인 혜지(은주)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가 느 편 해줄 테니 너는 느 원대로 살아라."
‘편애중계’에서 한 팀이 된 출연자를 위해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하는 걸 보면서 계춘 할망이 생각난 것은 이 대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혜지가 아닌 걸 알지만 편이 되어줄 테니 원대로 살아라 하던 그 말은 영화 속 혜지(은주)뿐 아니라 그날 영화를 보던 내 마음도 흔들었다. 이 세상에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이보다 더 든든한 일이 있을까? 문득 내 편에 대해 생각해본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응원해주는 내 편.
아이들에게 부모의 존재가 그렇겠지. “우리 엄마는 무조건 내 편이야” 하는 믿음.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지극히 사소한 일들, 특히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늦둥이는 가끔 잘생긴 남자 연예인의 이름을 대곤 "엄마 000이 잘생겼어, 내가 잘생겼어?" 하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우리 아들이 잘생겼지. 그걸 말이라고 하니?" 한다. 내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을 기다리던 아이는 "엄마는 그럴 줄 알았어!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하하" 하면서 자신이 이미 내 대답을 알고 있었다는 듯 폭소를 터트린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 예쁘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언제나 내 편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그랬다. 결혼한 뒤에는 남편을 내 편이라고 생각했다. 더 살아보니 부모님은 늘 내 편이지만 남편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중년이 되어서는 남의 편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이해하게 되었으니 남편은 확실히 자신 있게 내놓을 내 편은 아니다. 내 편은 고사하고 적이 되지 않은 것만도 고맙다고 해야 할까.
일주일에 한 번 오직 한 사람을 응원하던 ‘편애중계’는 얼마 전부터 다른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편이 되어주는 게 힘들었을까?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하며 응원해줄 내 편이 그리운 날이다.
아주 먼 옛날 높은 산 인적이 드문 암자에 노스님과 동자승이 살았습니다. 어느 겨울날 노스님이 양식을 구하러 마을에 내려갔는데, 그만 큰 눈이 내려 길이 끊기는 바람에 제때 암자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천애고아였던 동자승은 이제나 오시나 저제나 오시나 하며, 암자 밖으로 나와 노스님을 기다리다 그만 얼어 죽었습니다. 뒤늦게 돌아온 노스님이 몹시 애통해하며 양지바른 곳에 동자승을 묻어주었는데, 그해 여름 억수 같은 장대비가 그친 뒤 바로 그 자리에 주황색 꽃이 피어났습니다. 동자승의 해맑은 얼굴을 똑 닮은 동그란 꽃이 피어났습니다.
처연한 주황색 동자꽃에 담긴 애잔한 전설. 진부하고 상투적이지만, 그래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연에 턱없는 소리 말라며 내치기는커녕 한 번 더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야생화의 진가를 미처 알지 못하고, 하나하나 그 이름을 불러주지도 못하던 시절 푹푹 찌는 무더위를 피해 경기도 양평의 한적한 골짜기에 들었습니다. 용문산과 유명산 사이 임도를 지나는데 가까이에 꽃 한 송이가 눈에 띄기에 차를 세웠습니다. 장미처럼 붉은 것도 아니고, 원추리처럼 노란 것도 아닌 묘한 중간색의 꽃. 지름 4㎝ 안팎의 단정한 생김새에 티 없이 맑고 밝은 주황색 꽃 색이 참 매력적이어서 하염없이 바라보며 “너는 어디서 온 누구냐”라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꽃이 바로 ‘어린 동자승의 눈물 꽃’임을 뒤늦게 알고는, 왠지 모를 처연함을 주체할 수 없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 어느 산에서나 흔하게 자라는 동자꽃. 높고 깊은 산에서는 초입에서도 자라지만, 도심 인근의 산에서는 숲 안으로 조금은 들어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전초는 키 50㎝에서 1m 정도.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 또는 둥근 타원형에 끝이 뾰족합니다. 한여름인 7~8월 줄기와 잎겨드랑이에서 꽃자루가 나와, 그 끝에 주황색 꽃이 한 송이씩 달립니다. 꽃은 지름 4㎝ 안팎의 납작한 원형인데, 가운데가 파인 거꿀심장모양의 꽃잎 5장이 둥글게 원을 그립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전국 어디서나 비교적 손쉽게 볼 수 있는 동자꽃 이외, 3개의 유사종 동자꽃이 더 있습니다. 꽃은 물론 잎과 줄기 등 식물체 전체에 길고 흰 털이 있고 진홍색의 꽃잎이 손가락 굵기 정도로 갈라지는 털동자꽃, 진한 홍색의 꽃잎 5장이 전체적으로 동그란 원형을 유지하되 각각의 꽃잎 끝이 잘게 갈라져 끝이 뾰족뾰족한 톱니바퀴를 연상케 하는 가는동자꽃, 그리고 제비동자꽃이 있습니다. 진홍색 꽃잎이 크게 5개로 나뉘고 각각의 꽃잎은 다시 4갈래로 가늘고 길게 갈라지는데, 날렵하게 뻗은 모습이 마치 제비의 꽁지를 닮았다고 해서 제비동자꽃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Where is it?
동자꽃은 전국에 분포하지만, 나머지는 쉽게 만날 수 없다. 털동자꽃은 남한에는 자생지가 거의 없고 백두산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희귀식물인 가는동자꽃은 멸종된 것으로 여겨지다 몇 해 전 부산 금정산 습지에서 극소수가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제비동자꽃 역시 알려진 자생지는 대관령과 대암산 등 단 2곳에 불과하다. 지구온난화 및 불법 채취 등으로 절멸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따라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다만 가는동자꽃이나 제비동자꽃은 인위적인 증식이 잘되는 편이어서, 자생지 이외 여러 식물원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어렵게 되자, 이국적인 국내 여행지가 주목받고 있다. ‘바다 위의 식물 낙원’이라 불리는 경남 거제도의 외도 보타니아도 그중 한 곳이다. 사실 외도 보타니아의 인기는 새삼스럽지 않다. 1995년 개장 이래 누적 방문객 수가 2000만 명이 넘는 거제 대표 명소이니 말이다. 나만 해도 그 방문자 수에 ‘4’를 더했다. 이번 방문 때는 비가 왔다. 비 오는 날의 섬 여행도 꽤 낭만적이었다.
바깥 섬이 식물의 낙원이 되기까지
거제도 남쪽 외딴 섬 외도(外島)는 미운 오리 새끼였을까. 마음 심 자를 닮아 ‘지심도’, 보배에 비길 만한 풍광을 지녀 ‘비진도’라 불리는 거제도의 다른 섬들에 비하면 이름조차 초라한 섬이었다. 그랬던 외도가 부침개처럼 운명이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50여 년 전 이창호(1934∼2003) 씨가 낚시하러 외도에 들른 것이 인연이 되어, 몇 년에 걸쳐 외도를 매입한 것이다.
이창호 씨와 그의 아내 최호숙 씨는 1969년부터 외도를 해상식물원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무시로 닥치는 태풍과 거친 파도에 맞서며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웠다. 외도는 기후가 따뜻하고 물이 풍부해 종려나무, 야자나무, 선인장 같은 아열대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했다. 첫 삽을 뜬 지 26년이 지난 1995년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외도 보타니아를 선보일 수 있었다. ‘보타니아’(botania)는 ‘botanic’과 ‘utopia’의 합성어로서 바다 위 ‘식물의 낙원’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외도는 ‘보타니아’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답고, 이국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된 것처럼.
국내 최초 해상식물원의 인기는 개장한 지 25년째인 지금도 여전하다. 외도행 유람선 선착장이 거제도에 7곳이나 있으며, 유람선이 매일 여러 차례 외도 보타니아를 왕복한다. 바람의 언덕과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2019~2020 한국관광 100선’에도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해금강 유람선 타고 바다 위 정원으로
외도 선착장 7곳 중에 도장포를 애용한다. 도장포 가까이에 외도 보타니아와 인기 쌍벽을 이루는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가 있어서다. 외도로 가는 길에 즐기는 해금강(海金剛) 유람은 덤이다. 선실 밖으로 나가 출렁대는 유람선에 몸을 맡기고,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기분이 상쾌하다.
해금강은 강이나 바다가 아닌, 바다 위로 솟은 바위섬이다. 금강산처럼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바다 위의 금강산’이라 부른다. 해금강 해안 절벽 위에는 거센 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노송들과 석란, 풍란 같은 희귀한 난초들이 자생한다. 절벽 아래에는 파도가 오랜 세월 조각해놓은 십자동굴, 부엌굴 등의 해식동굴이 있다. 선장의 설명을 들으며 해금강의 기암을 바라보면 사자, 촛대, 기도하는 소녀처럼 보인다.
30분가량의 해금강 유람이 끝나면 외도 보타니아에 도착한다. 외도 모양을 형상화한 빨간 등대가 맨 먼저 반긴다. 선장이 1시간 반 뒤에 유람선으로 돌아오라고 당부한다. 순환형 산책 코스대로 걸으면 되므로 관람시간 90분이 턱없이 부족하진 않다.
유럽식 정원과 건축물로 꾸민 외도
외도 보타니아 관광은 아치 모양의 작은 정문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세계 각국 방문객을 맞이하는 외도 광장에는 한글·영어·한자로 쓴 ‘외도 보타니아’ 조형물들이 장식돼 있다. 광장을 지나면 향나무 여러 그루를 연결해서 한 몸처럼 다듬어놓은 나무 작품이 보인다. 이곳의 인공미를 대표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 나무는 눈이 부리부리한 뿔 달린 도깨비 또는 기세등등한 불꽃을 닮았다. 산책로 입구에 턱 버티고 서 있어 사찰의 사천왕상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선인장, 알로에, 용설란 등이 자라는 선인장가든을 지나면 외도 보타니아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비너스가든이 나온다.
지중해풍의 건축물과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뻗은 정원,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세워진 하얀 비너스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최호숙 씨가 영국 버킹검 궁의 뒤뜰을 모티브로 직접 구상하고 설계한 공간이라고 한다. 비너스가든 끝에 있는 유럽식 사택 ‘리하우스’는 KBS 드라마 ‘겨울연가’(2002)의 마지막 촬영 장소였다. 외도 보타니아를 전국에 소문낸 일등 공신이다.
이탈리아어로 ‘환영합니다’라는 뜻을 지닌 벤베누토정원은 사계절 꽃이 피는 꽃동산이다. 철따라 튤립과 양귀비, 수국, 동백 등이 피고 진다. 이 꽃들은 관람객들의 감탄을 먹고 자란다. 꽃길을 걷다 보면 짙푸른 동백숲길과 대숲길이 나타난다. 밀감나무 3000그루와 편백나무 8000그루가 늘어선 ‘천국의 계단’을 내려서면 야자수 산책로가 기다린다. 프랑스식 연못과 조각상을 배치해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하다. 외도 보타니아는 구석구석 아름답다. 귀부인이 그려진 화장실 이정표마저 예쁘다. 화장실 벽 둥근 창으로 보이는 해금강과 외도 등대는 또 어떻고.
바람의 고향 도장포
외도 관람을 마치고 도장포로 돌아와 바람의 언덕에 오른다. 하늘이 맑으면 언덕 아래에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비췻빛 바다가 일렁인다. 바람의 언덕은 바다로 돌출한 곶이라 늘 세찬 바람이 분다. 풀들이 바람 부는 방향으로 일제히 누워 있다. 언덕 위의 풍차는 신나서 춤추듯 바람개비를 씽씽 돌린다.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혀도 시원한 바람이 그저 반갑다. 만약 이 언덕을 ‘도장포 잔디공원’이나 ‘도장포 민둥산’이라고 이름 지었다면 얼마나 낭만이 없었을까.
풍차 왼쪽, 숲속 계단을 오르면 호젓한 동백숲길이 나온다. 이 숲길이 도장포마을 윗길로 이어진다. 윗길에서 굽어본 도장포마을 전경도 엄지를 치켜세울 만큼 장관이다. 마을 뒤로는 산이, 앞으로는 바다가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도장포마을 남쪽 바닷가에는 신선이 머물렀다는 신선대가 있다. 부안의 채석강과 지형이 비슷하다. 책을 포개놓은 듯 가로지층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 태곳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공룡 발자국 같은 작은 웅덩이도 수없이 많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는 파도가 으르렁대며 들락거린다. 신선대를 본 사람들이 웅장한 기암절벽과 절벽 아래 몽돌해변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이색 명소&맛집◇
매미성 매미성은 2003년 태풍 매미 때문에 바닷가 경작지를 잃은 백순삼 씨가 자연재해로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16년 동안 혼자 쌓아 만든 성벽이다. 처음에는 시멘트 벽돌로 쌓아 볼품이 없었다. 점차 네모반듯한 화강암을 쌓고 시멘트로 메우는 방식으로 바꿔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유럽 중세시대의 성을 연상케 해 이국적인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 풍경보다 사진에 담았을 때 더 멋지게 보여 인생사진 명소로 유명해졌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복항길
외도널서리 외도 보타니아 설립자인 최호숙 씨가 구조라해변에 유리 온실 콘셉트 카페인 외도널서리를 개장했다. ‘널서리’(nursery)는 ‘묘목을 기르는 땅’이라는 뜻으로 외도 보타니아와 통하는 면이 있다. 유럽풍으로 지어 외국에 여행 온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다는 점도 같다. 테라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빛깔 고운 구조라에이드 한 잔 어떨까. 계절에 상관없이 초록 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게 큰 매력이다.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로4길 21, 매일 10:00~21:00
예이제게장백반 거제도에서 이름난 무한리필 게장 백반집이다. 본점은 도장포에 있다. 바람의언덕점은 도장포와 가까워 외도 관광 전후에 들르기 좋다. 메뉴는 게장백반 한 가지다. 메인 요리인 간장게장과 꽃게장을 비롯해 불볼락구이, 간장새우, 충무김밥, 조개미역국 등 반찬이 한 상 가득 나온다. 작은 꽃게를 사용하지만, 살이 제법 차 있어 먹을 만하다. 쫀득한 맛이 일품인 간장새우도 리필된다.
경남 거제시 남부면 해금강로 132, 매일 10:30~21:00, 게장백반 1인분 1만5000원
반려동물 인구 1000만 명 시대라는 요즘 개나 고양이와 실내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도시이든 시골이든 집마다 병아리를 앞뜰에 놓아 키우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병아리는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대명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때문인지 병아리풀이니 병아리꽃나무, 병아리다리, 병아리방동사니, 병아리난초 등처럼 이름에 ‘병아리’란 단어가 들어가는 식물이 여럿 있습니다.
그중 6월에 피기 시작해 여름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는 7월에 만개하는 병아리난초가 오늘의 주인공 야생화입니다.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전국에 분포한다”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의 설명대로 제주도와 울릉도 등 섬 지역은 물론 경기·강원도 등 중부 지역까지 전국 어디서나 자라고 있습니다. 귀하디귀한 광릉요강꽃이나 복주머니란처럼 아주 제한된 자생지에서 드물게 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가 즐겨 찾는 북한산이나 관악산 등 서울 시내의 이름난 산에서도 만날 수 있어, 눈 밝은 이들은 간혹 예기치 않은 조우의 기쁨을 누리기도 합니다.
서식 환경 또한 반 그늘진 계곡의 바위는 물론, 높은 산 능선의 절벽 위 또는 바닷가 모래밭 등 아무리 열악해도 손바닥만 한 이끼와 몇 가닥 뿌리를 내릴 틈만 있으면 족합니다. 다시 말해 원예종 난초처럼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비 오면 뿌리가 썩을세라, 가뭄 들면 말라 죽을세라 애지중지하지 않아도 해마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전형적인 야생 난초입니다. 일부러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작은 관심과 정성만 쏟으면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접근의 용이성은 더할 나위 없는 장점입니다.
‘병아리’란 이름 앞머리에서 상상되듯 키도 작고 체구도 가냘픕니다. 낱낱의 병아리난초는 너비 1~2cm, 길이 3~8cm의 타원형 이파리 한 장을 땅바닥에 깔고, 그 위로 높이 8~20cm의 꽃대를 올립니다. 6~7월 쇠젓가락보다 가는 꽃대 윗부분에 작게는 서너 개에서 많게는 20개 이상의 자잘한 꽃이 한쪽으로 치우쳐 층층이 달리는데, 꽃은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차례차례 핍니다. 1~4cm 꽃차례에 4~8㎜ 정도 크기의 자잘한 꽃을 촘촘히 달고 오뚝 선 모습은 첫눈에 귀엽고 깜찍한 게 ‘병아리난초’란 이름이 그럴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럼에도 딱히 꽃이나 잎 또는 전초 등의 어떤 특정한 형태가 병아리와 닮았다는 것인지는 아리송합니다. 예로부터 전해오던 명칭이거나 우리 학자들이 새로 지은 식물명이라기보다는, 일본명 ‘히나(병아리)란(蘭)’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꽃 색은 옅은 홍자색인데, 간혹 흰색으로 피는 개체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같은 병아리난초 속 식물로 구름병아리난초와 점박이구름병아리난초가 고산지대에서 드물게 자생합니다.
Where is it?
전국에 자생한다. ‘바위난초’라는 이명에서 알 수 있듯 주로 계곡이나 능선의 습한 바위 위에서 자란다. 야생화 동호인들이 최고로 꼽았던 자생지는 경남 김해의 불모산 중턱. 7월 초 되풀이되는 태풍과 장맛비를 이겨내고 수백 촉씩 꽃 피우던 병아리난초 군락은 그러나 불법 도채(盜採)로 몇 해 전 거의 파괴됐다. 서울 관악산과 인천 무의도 바닷가, 충북 괴산의 이만봉도 병아리난초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자생지다. 특히 이만봉은 등산로 바위 절벽마다 자랄 만큼 병아리난초가 흔하다.
지난 5월 마지막 주, 수업을 같이 듣는 동료들과 제주 여행을 했다. 미션이 있는 워크숍 형식의 여행이었다. 첫째 날 조별 미션을 수행하고 둘째 날은 다시 조를 바꿔 자유여행을 했다. 자유여행은 각자 가고 싶은 곳을 확인해 동선이 비슷한 두어 군데를 묶기로 했다. 조 팀원 중 한 사람이 비자림에 한 번도 안 가봤다며 꼭 넣어달라고 한다. 비자림이야 자주 가도 좋은 곳이니 안 될 이유가 없다.
제주 관광지 추천 목록에 빠지지 않는 장소가 바로 비자림이다.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 보호하고 44만8165㎡의 면적에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빼곡하게 자라는 비자림은 사려니숲길과 함께 제주의 걷고 싶은 길로 손꼽힌다.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높이 7m 이상의 비자나무들이 군집해 있다.
재질이 좋은 비자나무는 고급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비자열매는 구충제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또한 비자림은 풍란, 콩짜개란,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식물의 자생지이기도 하다. 울창한 비자나무 숲은 혈관을 유연하게 하고 피로회복을 도와 인체의 리듬을 되찾게 해주는 자연 건강 휴양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비자림 주변으로 월랑봉, 아부오름, 용눈이오름 등이 있어 가벼운 등산이나 운동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동료들과 찾은 비자림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사람이 많다. 키 큰 나무들이 사방을 가린 초록의 숲을 걸었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을까 잠시 유혹을 느꼈다. 여기저기 추억을 가두려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댄다. 처음 왔다는 조 팀원도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두 해 전 여름, 친구와 들렀을 때가 떠오른다. 해가 쨍쨍 내리쬐던 한여름 비자림에서 만났던 청춘들이 생각났다.
스물 초반 여학생으로 보이는 그녀들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얀 챙 모자에 흰 원피스를 입은 그녀와, 역시 비슷하게 생긴 모자에 디자인만 다른 똑같은 색 원피스를 입은 또 다른 그녀가 서로 포즈를 잡고 깔깔대며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우리는 만났다. 사실 만났다기보다 초록의 숲에서 흰 원피스를 입은 그녀들이 너무 화사해서 친구와 내가 걸음을 멈췄다. 사진을 찍어 확인하면서 깔깔대는 그녀들이 눈부셔 멈추고 바라본 것이다.
"사진 찍어줄까요?"
그녀들이 셀카봉을 들고 이리저리 포즈를 잡을 때 내가 물었다. 그들은 "감사합니다" 하면서 또다시 깔깔 웃었다.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웃을 나이지' 우리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그녀들과 헤어져 비자림을 걷고 주차장으로 막 나왔을 때 우리는 다시 만났다. 흰 원피스는 편한 반바지로, 챙 모자는 야구모자로 바뀌어 있었다.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아니었으면 몰라볼 뻔했다. 그녀들은 비자림에서 기억에 남을 사진을 찍으려고 소품을 미리 챙겨온 거라고 했다. '그랬구나.' 조금 전 초록 숲을 배경으로 서 있던 그들이 꿈인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우리도 나중에 원피스 챙겨 사진 찍으러 오자"
친구가 하는 말에 "그전에 살을 빼야 하지 않을까?" 했더니 그녀는 "어우 야~" 하면서 툴툴거렸다. 그날 우리는 한여름 태양 아래 다시는 갈 수 없는 청춘을 애잔해하며 낄낄거렸다. 우리 앞에서 깔깔거리던 그녀들의 청춘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흰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그들의 젊음을 훔치고 싶었던 것 같다.
흰 원피스가 펄럭이던 곳에서 동료들과 사진을 찍었다. 초록을 품고 높이 솟은 비자나무를 배경으로 어색한 포즈를 지으며. 생각난 김에 친구에게 전화해볼까?
"희정아, 흰 원피스 입고 비자림 가자"
여름은 누가 뭐래도 ‘물의 계절’입니다. 폭염이 시작되면 산과 들로 향하던 발길이 자연히 시원한 바다와 강, 계곡, 연못 등을 찾기 마련입니다. 앞서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 공중에서 천상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등칡꽃을 소개하면서 귀띔했듯, 우리의 삼천리 금수강산에는 땅과 하늘, 바다, 물 등 어느 곳에서든 꽃이 핍니다. 그중 연꽃과 수련을 비롯해 각시수련, 남개연, 어리연꽃, 마름, 자라풀, 통발, 물여뀌, 보풀, 물옥잠, 부들, 갈대 등 다양한 식물들이 저수지나 연못, 늪지, 습지 등에 자생하며 특유의 꽃을 피웁니다. ‘수생식물’이라 불리는 이들 중 어떤 것은 물밑 땅속에 뿌리를 내린 채 잎과 줄기를 물 밖으로 내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잎을 수면에 띄우기도 하고, 어떤 것은 뿌리와 줄기를 수중에 뻗은 채 물 위를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식물체 전체가 아예 물에 잠겨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 식물 중 6월이면 피어나 ‘물의 계절’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물풀이 있습니다. 처음엔 암꽃이었다가 그다음 날부터는 수꽃으로 살기에 ‘물의 요정’이라 부르는 순채(蓴菜)가 그 주인공입니다. 지금은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연꽃이나 수련, 마름처럼 친숙한 수생식물이었습니다. 나물 채(菜) 자가 이름에 들어 있듯, 잎과 줄기 등을 쌈과 국 등으로 식용하거나 약재로 활용했을 만큼 전국적으로 폭넓고 풍성하게 자라던 우리 꽃입니다. 하지만 근대화와 산업화의 여파로 순채가 자라던 저수지, 연못, 물웅덩이 등이 없어지거나 오염되면서 대부분 함께 사라졌고, 일부만 살아남아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연못에서 어렵사리 명맥을 이어가는 순채는 고달픈 생존 투쟁의 와중에도 어김없이 5월 말부터 늦게는 8월까지 단아하면서도 품격 높은 홍자색 꽃을 선물처럼 내어줍니다. 꽃자루마다 하나씩 달리는 2cm 안팎의 꽃은 이틀 동안 피는데, 첫날 오전 암술이 성숙한 암꽃으로 피었다가 오후가 되면 물속에 잠깁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두 배 이상 높게 물 위로 솟아 수술이 가득한 꽃잎을 펼쳤다가 물속으로 잠깁니다. 처음 10개 안팎의 암술이 성숙한 암꽃이었다가 다음 날 20개 안팎의 수술이 암술을 감싸는 수꽃이 되어 수면 위로 높게 오르는 것은, 자기 꽃가루받이를 피해 열성 유전을 막으려는 고도의 생존 본능 결과라고 식물학자들은 설명합니다.
꽃의 크기는 지름 2cm 안팎이고, 각각 3장인 꽃잎과 꽃받침잎이 모두 꽃잎처럼 보이지만, 안쪽의 꽃잎이 바깥쪽 꽃받침잎보다 다소 길어 구분됩니다. 특히 순채의 물속줄기와 꽃줄기, 어린잎은 우무라 불리는 투명하고 끈끈한 액체에 싸여 있는데, 예로부터 약재이자 나물로 쓰였다고 합니다. 다 자란 잎은 길이 6~10cm, 너비 4~6cm 크기의 타원형으로 수면을 가득 채웁니다.
Where is it?
북쪽의 강원도 고성과 속초에서 시작해, 중부의 충북 제천, 남으로는 경남 합천, 그리고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10여 곳 정도의 몇몇 오래된 연못이 순채의 자생지로 남아 있다. 제주의 경우 북제주의 선흘곶자왈을 비롯해 김녕, 동복, 덕천, 남제주의 하천과 신풍 등 6곳의 연못에 순채가 자라고 있어 비교적 만나기가 수월한 편이다. 자생지의 수는 적지만 자생지에 서식하는 개체 수는 풍부해, 찾아가기만 하면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엄마, 카네이션보다 화초가 좋을 것 같아서."
딸들은 가끔 화초를 사 들고 온다. 화초 기르기에 대해선 거의 똥 손(화초를 잘 키우지 못하는 손)이라 불안한 내 맘은 안중에 없다. 기왕 있는 식물에 공들이는 걸 보고 화초 기르기에 취미가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받을 때마다 기쁘다는 표현을 과하게 했는지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어버이날에도 카네이션 대신 화초를 사 온다. 이번에도 영락없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하루 차이를 두고 생소한 화초가 담긴 흰색의 작은 화분을 용돈과 함께 내밀었다.
싱그러운 초록이 담긴 작은 화분을 받는 느낌은 상상보다 더 좋다. 카네이션을 받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준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얘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한 마음. 그간의 똥손 경험으로 기쁨만큼의 부담이 얹히는 게 사실이다.
화초의 생김이 생소해서 이름을 물으니 하나는 레몬 버베나(Lemon Verbena), 하나는 셀로움(Selloum)이라고 한다. 처음 큰딸이 사 온 레몬 버베나는 키가 크고 작은딸이 나중에 사 온 셀로움은 그보다 키가 작다. 이름도 그렇고 다소 낯선 종이라 특성을 찾아본다.
레몬 버베나의 꽃말은'인내'였다. 잎 모양은 꽃이 지고 난 개나리 잎이 막 나오는 느낌이다. 남미 칠레가 원산지이며 1784년에 스페인 사람들이 유럽에 전파했다고 한다. 낙엽송 관목으로 내한성은 약해도 제주도와 같이 따뜻한 온도에서는 노지재배가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남미에서는 키가 10m까지도 자라지만 일반 실내에서는 키가 약 1m 전후로 자라고 집안에서 키우게 되면 상쾌한 레몬 향을 맡을 수 있다고 한다. 향이 좋고 강해서 정원이 있는 개인 주택에서는 현관 근처나 발코니에도 많이 심는다고 한다. 허브차로도 마신다기에 손으로 잎을 쓸어 맡아보니 강한 향이 올라온다. 마음을 안정시킨다고 하니 잘 키워서 나중에 차로 마셔볼까 하는 야무진 생각도 해 본다.
작은딸이 사 온 셀로움은 레몬 버베나 보다 잎 모양이 넓고 두껍다. 약간 우산처럼 펼쳐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큰딸이 사 온 레몬 버베나와 서로 생김이 다른데 잘 어울린다. 셀로움의 꽃말은 ‘나를 사랑해주세요'다. 원산지는 남아메리카로 보통 셀로움 혹은 셀렌이라 부르지만 필로덴드론 셀로움(Philodendron selloum)이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식물은 물을 좋아하고 햇빛이 적은 반음지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레몬 버베나와 다르게 독성이 있어서 차로 마시면 안 된다고 적혀있다. 잎이 옆으로 넓게 퍼지는 셀로움은 공기정화 능력이 뛰어나서 거실에 두면 좋다고 한다. 이미지 검색으로 찾아보니 풍성하게 잘 자란 셀로움은 아주 멋스럽다. 우리 집 거실 한쪽에 1미터쯤 자란 셀로움의 모습을 살짝 상상해 본다.
딸들이 화분을 들이밀 때마다 부랴부랴 키우는 법을 찾아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식물도 정성을 쏟는 만큼 성장한다. 잠시 방심해서 죽이기라도 하면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다. 하물며 딸이 사 온 화초라면 그 마음이 배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화초와 달리 딸들이 선물한 화초는 딸 보듯 하게 되니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미리 특성을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잠시 주저앉아 아이들을 보듯 화초를 본다. 나란히 두고 보니 두 딸은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화초를 고르는 안목도 다르다. 작은딸이 사 온 셀로움의 꽃말이 '나를 사랑해주세요'라는 게 불쑥 마음에 걸린다. 이 아이는 꽃말을 알고 골랐을까? 언니와 동생을 비교하며 가운데 낀 샌드위치의 불만을 토로하던 작은딸의 얼굴이 셀로움 위로 겹쳐진다. 풀리지 않는 숙제를 훅 떠안은 것 같다. 모양이 확연히 다른 두 식물을 앞에 두고 ‘더 잘 키워야지’ 불끈 다짐까지 한다.
작은 화초를 앞에 두고 앉으니 잡다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확실히 나는 카네이션보다 화초를 받았을 때 기쁘다. 그 기쁨을 더 즐긴다. 다음엔 더 강렬하게 표현해 줘야지.
"맞아, 엄마는 카네이션보다 화초를 더 좋아해!!"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4월 1일(수)부터 ‘임철순의 즐거운 세상’을 주 1회 온라인 연재합니다. 코로나19로 어둡고 우울한 시대에, 삶의 즐거움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유머로 버무려 함께 나누는 칼럼입니다.
소설가 김훈은 봄만 되면 춘수(春叟), 봄 늙은이 이야기를 한다. 올해에도 어느 잡지 기고에 이 말을 써먹었다. 칠순이 넘었으니 늙은이인 게 확실하지만, 늙은이로 앉아 있으면 글쓰기 쉽고 말을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봄은 늙음과 함께 온다. 춘수라는 말에 노인의 건강과 병, 시름과 기억이 다 들어 있다. 춘한노건(春寒老健)은 봄추위와 노인네 건강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걸 “봄이 추워도 노인은 건강하다”고 새기는 사람이 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게 아니라 노 젓기 좋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억지를 부리고 새로운 해석을 하거나 말거나 헤르만 헤세의 시(‘봄의 말’)를 빌리면 봄은 이렇게 말한다. 헤세는 대체 왜 이런 걸 썼을까.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걸.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지고 삶을 겁내지 마라!
늙은이들은 다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걸.
늙은이여, 땅속에 묻혀라,
씩씩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어라,
몸을 내던지고 죽음을 겁내지 마라!
이런 말 해주지 않아도 잘 낡고 잘 늙어서 갈 때 되면 알아서 잘 갈 텐데. 1절만, 아이들 이야기만 하고 마시지. 하지만 헤세가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들은 건강하고 싶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겁내면서도 앞으로 봄을 얼마나 더 맞을까 싶어 꽃 주위에 다가가게 된다.
노인의 건강은 눈이 생명이다. 눈동자가 풀리면 가는 거다. 늙었지만 기력이 정정하다는 말이 확삭(矍鑠)인데, ‘矍’ 자에 형형한 눈 두 개가 형형하게 박혀 있다. 허균(1569~1618)이 사명대사(1544~1610)의 모습을 돌이키는 글에도 그 말이 나온다. “안장에 기대 좌우를 돌아보면서 요기(妖氣)를 쓸어버리려는 의지는 또 확삭(矍鑠)한 노장(老將)과도 같기에 내가 더욱 경중(敬重)해 하면서….” 임진왜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승병장의 모습이 약여하다.
하도 확삭하여 왜병들을 향해 눈으로 확 레이저를 쏜 장군도 있다. “공은 모습이 장대하고 씩씩했으며, 안광(眼光)이 횃불과 같아서 깜깜한 밤중에도 사물을 비출 수 있었는데, 선조대왕께서 일찍이 ‘잠자는 호랑이 상[眠虎相]’이라고 칭하신 적도 있었다.” 갈암 이현일(1627~1704,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아들)의 충의공 정기룡(1562~1622) 장군 묘사다. 그거 참! 확삭에 나오는 삭(鑠)은 녹이다, 태우다 이런 뜻이니 레이저에 데거나 타고 녹은 왜병들이 많았던 거 같다.
확삭, 재미있는 말이다. 모처럼 알게 된 이 말을 한번 써먹으려고 요즘 재미있는 글로 독자들을 이리 끌고 저리 몰고 다니는 칼럼니스트에게 “늘 확삭하시오, 할아부지” 하고 써 보냈다. 그랬더니 재깍 “하루가 다른디요? 확삭이 아니라 팍삭이야요” 하는 답이 왔다. 몇 마디 더 주고받은 뒤, “이런 걸로 글 한 편이 되겠네” 그러고는 “내가 쓸 팅게 손대지 마셔”, 이렇게 으름장을 놓은 게 2주 전이다.
그 뒤 머릿속에서 글 제목을 이리 공글리고 저리 떠다밀고 해봤지만 ‘확삭 팍삭’만 떠오르지 뭔가 좀 있어 보이는 일곱 자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무슨 글이든 칠언(七言)이 돼야 그럴듯해 보이는데. ‘확삭 팍삭 동방삭’ 이래볼까? 동방삭(東方朔)은 무려 삼천갑자를 살았다니 당연히 확삭한 사람이었을 테지,
그러다가 더 시간 끌기 거시기해서 일단 글을 쓰던 중 그 칼럼니스트가 새벽 4시 조금 넘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걸 알게 됐다. 반갑고 궁금해서 “안 잔 겨? 깬 겨?” 하고 물었다가 오줌이 마려워 3시쯤 깼다는 대답에 ‘소변삭’을 떠올리게 됐다. 오줌을 조금씩 자주 누는 증상이 소변삭(小便數)이다. 수삭(溲數), 소변빈삭(小便頻數)도 같은 말인데, 두 자나 네 자는 필요 없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확삭 팍삭 소변삭’이 됐다.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글 쓰는 게 늦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목 붙이느라 제주도 말로 정말 ‘폭삭 속았다’. 노인들은 대개 소변삭을 한다. 자다가 몇 차례 깨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확삭하다가 팍삭해져서 소변삭으로 자다 깨다 결국 가는 거 아닐까. 헤세가 뭐라거나 말거나 내가 아는 노인들 모두 확삭하면 좋겠다. ‘아기 궁둥이 같은’(소설가 박완서의 표현) 눈엽(嫩葉, 嫩=어릴 눈)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으며.
임철순 약력
서울 보성고,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역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등 수상. 저서 ‘손들지 않는 기자들’, ‘노래도 늙는구나’ 등. 대한민국서예대전 5회 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