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새로운 주거 형태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코리빙(Co-living) 하우스’가 주목받고 있다.
코리빙 하우스는 다수가 한집에서 살면서 침실과 같이 개인적인 공간 외에 거실·화장실·주방 등을 공유하는 주거 형태다. 한집에서 공간을 나눠 쓰는 셰어하우스와 달리 코리빙 하우스는 개인 공간을 보장받으면서 헬스장, 서재, 영화관, 업무 공간 등을 공유하고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1~2년 단위로 이루어지던 기존의 임대 계약과 달리 유동적인 기간 설정이 가능하다.
코리빙 하우스는 1인 가구의 증가와 함께 최소한의 물건만 갖추고 사는 미니멀 라이프, 제품을 여럿이 함께 사용하는 공유경제 개념이 확산되면서 점차 수요가 늘고 있다. 해당 흐름에 맞춰 정부에서도 규제를 정비했다. 국토교통부는 ‘건축분야 규제개선 방안’을 발표해 대규모 공유주거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임대형 기숙사 용도를 신설했다.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아닌 민간 임대사업자도 건축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해외에서는 이미 코리빙 하우스가 주거 형태의 하나로 자리 잡은 상태다. 영국 런던의 ‘콜렉티브 올드 오크(Collective Old Oak)’가 대표적인 예다. ‘넉넉한 품을 가진 오래된 참나무’란 의미를 담은 이 공유 주택은 2015년 문을 연 뒤부터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약 3평 크기, 546개의 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유 공간이다. 영국의 젊은이들이 도심에서 살고 싶어 하는 심리를 파고들고자 최신 유행을 담은 문화 시설을 함께 조성했다.
우리나라에서도 MGRV, SK D&D, KT에스테이트 등 다양한 기업이 관련 시장에서 적극 활동하고 있다. MGRV에서 만든 맹그로브는 독립된 개인 주거 공간과 업무, 취미, 문화생활을 위한 공용 공간이 마련된 형태다. 라운지, 헬스장, 시네마, 도서관 다양한 콘셉트의 주방 등의 시설을 비롯해 싱잉볼 명상, 요가, 제철 음식 다이닝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한 달 이하의 유연한 임대 계약이 가능하며 거주 시설에 이상이 생겼을 때 도움을 주는 전문 시설 관리인이 24시 대기하고 있다. SK D&D의 공유 주거 브랜드 에피소드는 서울 성수와 서초, 강남 등지에서 총 3800실을 운영 중이다. 오는 2026년까지 서울 시내에 5만 실을 공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코리빙 하우스가 고령화 시대의 주거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김동환 서울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장은 “한국의 코리빙 하우스는 주로 젊은 세대의 필요에 맞춘 스마트한 형태로 공급되고 있어 중장년층이 거주하기에 좋은 형태는 아닐 것으로 판단한다”며 “월세도 도시형생활주택이나 고시원 등에 비해 저렴하지 않아 저소득층이나 1인 가구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리빙 하우스는 주로 역세권 위주의, 토지 가격이 비싼 상업 지역에 조성되는 경우가 많아 임대료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고, 일반적인 형태와 비교했을 때 낯선 형태의 주거 환경이라 제한된 계층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아파트, 단독 주택 등의 보편적인 형태를 대체할 정도로 활성화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일정 부분 1인 가구의 도심 주택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고 코리빙 하우스에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을 통해 고독사를 예방할 수 있다”며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가 한 공간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세대 통합의 효과를 기대해볼 법하다”고 말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배롱나무꽃이 많이 떨어졌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꽃을 보기란 참 애매하다고는 하나 배롱나무는 가을의 문턱을 넘었어도 붉은 꽃을 보여준다. 요즘 하는 말로 핫핑크 색감이다. 땡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어나기 시작해서 가을까지 피고 지는 식물, 강한 생명력으로 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화려한 꽃 호강을 선사한다. 배롱나무꽃을 보려거든 서천이다. 서천의 해안도로를 달리면 배롱나무꽃 길이 우리를 맞아주고 전통 건축과 어우러진 꽃 무리가 운치를 더한다.
빗소리는 주룩주룩 빈 당에 가득한데 / 낮 꿈을 막 깨고 나서 붓을 바삐 찾노니 / 마음이 맑아 절로 사사로운 뜻 없는지라 / 더위 한 번 식혀준 은혜 하늘에 감사하네.
고려 삼은 중 한 분인 목은(牧隱) 이색 선생의 시를 찾아보았다. 충남 서천의 문헌서원은 목은 이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지방 유림들이 뜻을 모은 곳이다. 기록에 따르면 창건 연대는 1594년이고 당시 이름은 효정사였다. 그 후 정유재란으로 소진되었으나 이전하여 광해군 때 문헌(文獻)이라 사액받았다고 전한다. 그러다가 고종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라졌으나 뜻있는 유림들이 복설하였고, 문헌서원 역사마을 조성사업에 따라 현재에 이르렀다.
배롱나무꽃과 함께하는 서원의 품격
서천 솔바람길을 따라 이색 선생 동상이 보이는 정원이 평온하다. 서원의 홍살문을 넘으면 연지 위 경현루의 반영이 잔잔히 흔들린다. 예스러움이 은은한 연못은 배우 박보검이나 유아인이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하던 곳이기도 하다.
널찍한 잔디밭을 걸어 외삼문인 진수문과 정면의 진수당에 들면 양쪽으로 유생 숙소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 잡고 있다. 문헌서원(文獻書院)이라는 현판은 진수당 마루 안쪽으로 걸려 있어 들여다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뒤편 돌계단으로 오르면 떡하니 장판각이 중심 잡듯 위치한다.
담장 따라 효정사, 교육관, 영모재, 그 길 안으로 목은 선생의 영정을 보관하는 영당(影堂)을 따로 앉혀 아늑하다. 이색의 선비 정신과 성리학, 그리고 풍류가 깃든 기린산 중턱의 묘소를 바라보며 세월을 거슬러 보는 시간이다. 산수 좋은 수려한 자연 속을 산책하다 보면 옛 어른의 멋과 정취, 정신과 자연관의 교감에 빠진다.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힐링 여행지다. 숲이 감싼 산줄기 뒤편으로 선비의 기개를 닮은 듯 쭉쭉 뻗어 울창한 소나무가 든든하다.
바로 영당 뒤편 노거수 두 그루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배롱나무꽃을 풍성하게 피워 올린다. 전통 건축의 지붕 위로 진분홍 배롱나무꽃 무리가 몽글몽글하다. 지난밤의 비바람으로 이미 많은 꽃이 떨어졌지만 배롱나무의 강한 생명력은 계속 이어진다. 아무리 꽃이 붉어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대단한 권력 또한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부귀라는 꽃말의 배롱나무꽃은 7~9월까지 계속 꽃을 피워서 백일홍 나무라고도 불린다. 무려 석 달 열흘 동안 피어나니 비바람에 꽃을 좀 떨구었기로서니 그저 슬플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지지대에 의지한 채 노구를 딛고 서서 해마다 꽃을 피워내는 문헌서원의 배롱나무를 본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충분하다.
문헌서원 옆 전통 한옥 숙소
이렇게 고즈넉한 곳에 짐을 풀고 하루나 이틀쯤 쉬며 돌아보는 소도시 여행은 휴식이 된다. 하룻밤 묵어갈 숙소로 문헌서원 전통호텔이 서원 입구에 있다. 정부와 서천군의 전통역사마을 조성사업계획에 따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지은 우리나라 고유의 한옥마을 형태다. 나무를 이용한 서까래와 온돌, 돌을 이용한 기단, 문풍지가 정겨운 두 겹 곁문을 열면 친환경자연 속에 스미듯 지은 옛 가옥의 따스함이 다가온다. 안온하게 스며든 햇살을 받으며 툇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가만히 쉴 수 있는 시간은 가히 ‘득템’이다.
한옥 스테이를 할 경우 미리 예약하면 식사도 가능하다. 문헌 전통 밥상은 모두 지역 제철 농수산물을 사용해 만든 신토불이 건강식이다. 상쾌한 새벽 산책 후 한옥 마당을 내다보며 받는 소박하고 정갈한 아침 밥상은 추천할 만하다.
한산 모시와 소곡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산 모시 짜기. 전통의 맥을 잇고자 서천에서는 모시풀을 처음 발견한 건지산 기슭에 한산모시관을 개관했다. 모시관 담장 아래 푸릇하게 자라고 있는 모시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시관에서 모시의 모든 것을 관람한 후, 모시 체험과 중요무형문화재 전통직조기능 보유자의 시연 공방도 볼 수 있다. 모시 짜는 여인상이 있는 정원 아래 너른 마당에서는 여행자들이 투호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옛날 백제 유민이 나라를 잃고 한을 달래기 위해 빚어 마신 백제 궁중 술이라고 전하는 한산 소곡주. 보통 추수가 끝난 가을에 빚어서 100일 동안 땅에 묻는다. 술이 독해서 며느리가 젓가락으로 찍어 맛보면 취해서 일어나지 못하고 앉아서 엉금엉금 긴다는 일화는 물론, 조선 시대에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한산에서 쉬다가 술맛에 눌러앉아 과거 시험장에 가지 못했다 하여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전해 내려오는 소곡주다. 취해도 좋을 가을이다.
솔바람 숲 맥문동과 서해 갯벌
다시 꽃구경, 서천의 장항 쪽으로 달리다 보면 장항 송림 산림욕장이 나타난다. 방풍림만으로도 압도한다. 수령 50년 이상 된 해송이 하늘을 가려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해송 아래 온통 보랏빛 맥문동 물결이다. 이곳에 오토캠핑장이 있어서 공기 밀도 걱정 없이 휴식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해솔밭 산책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기벌포 장항 스카이워크 전망대가 바다 위로 우뚝하다. 15m 높은 상공에서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상쾌한 시간 속에 서는 것은 멋진 일이다. 이곳 이름이 기벌포 해전 전망대인데 백제의 마지막 해전지였다. 발아래로 해송림이 있고 눈앞에는 서천 바다 갯벌이 있다. 멀리 서해 근대산업의 중흥을 이끈 장항제련소도 보인다.
레트로 장항 골목 여행과 서천 맛집
옛날 기찻길을 지나 장항 골목 여행의 묘미도 쏠쏠하다. 편하게 레트로 흐름대로 놀거나 시대극처럼 양산 예쁘게 쓰고 느린 감성으로 즐기는 여행도 어울릴 듯한 곳이다.
장항에 맛집들이 즐비한 6080 음식 골목 맛나로(路). 특히 홍어탕과 아귀찜이나 탕으로 유명한 식당이 몇 군데 있으니 그중에서 끌리는 곳으로 들어가면 바로 맛집이다. 탕에 향긋한 미나리가 푸짐하다. 식사 후 맛나로 옆 골목을 걷노라면 레트로 분위기가 솔솔 난다. 라테 위에 달고나 듬뿍 얹은 달고나 라테를 먹을 수 있는 명물 카페도 빠뜨릴 수 없다. 때에 따라 체험도 가능하다. 지역의 젊은 청년들이 지역사회 살리기를 위한 건강한 일꾼 역할을 자처했다.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전통 횟집 또한 장항 부근에 많다. 매일 공급되는 제철 해산물을 이용해 고급스러운 코스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소박한 물회 한 상으로도 바닷가 식사를 만끽할 수 있다. 이제 홍원항 전어가 제철이다.
O₂, 산소, 원자 번호 8, 화학 산소족에 속하는 비금속 원소, 공기의 주성분이면서 맛과 빛깔과 냄새가 없는 물질. 호흡과 동식물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체라는 사전적 의미의 산소. 강원도 홍천에 산소길이 있다. O₂길. 마스크 때문에 마음껏 숨 쉴 수 없어 미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수타사 산소길이 떠올랐다.‘그래 이번에는 산소길이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홍천의 수타사 산소길은 1~4코스로 총 4개 코스가 있다. 수타사 산소길을 걷는다고 하면 대부분 1코스를 말하는데, 수타사 주차장에 주차하면서부터 걷기가 시작된다. 인근에 오토캠핑장까지 있어 주말 여행지로도 손색없다. 공작산 생태숲 산소길 코스는 3.8km로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수타사-공작산 생태숲-귀소(출렁다리)-용담-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이다. 걷기에 따라 1~2시간 정도 걸리지만, 수타사 경내를 천천히 돌아보고 숲길을 걷다가 쉬다가 느긋하게 숲멍도 한다면 3시간도 금방이다. 참 여유롭게 돌아보는 산소길 트레킹이다.
눈을 들어보니 해발 887m의 공작산이 날개를 펼친 듯 에워쌌다. 깊은 골짜기 위로 봉우리들이 겹겹이 솟은 모습이 공작새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공작산은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하나다. 그 산 아래 수타사 가는 길이 반기듯 쭉 뻗어 있다. 산소길 초입에 천년 고찰 수타사의 품격을 거친다는 것, 시작부터 차분히 숨 고르기를 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건 당시에는 우적산 일월사(日月寺)였다가 공작산으로 옮기면서 수타사(水墮寺)로, 다시 새 한자인 수타사(壽陀寺)로 바뀌었다. 수타사 옆의 용담에 매년 승려들이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잦아 목숨 ‘수’(壽)로 바꾸었다고 한다. 예스러움이 물씬 전해지는 절의 분위기가 꾸밈없이 단아하다. 옛 모습을 품고 있는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에서도 위엄을 보여준다. 한나절 푹 퍼질러 앉아 목탁 소리 들으며 쉬면 좋을 깊은 산속 절이다.
수타사를 나오면 바로 공작산 생태숲이다. 생태숲 자리는 예전 수타사에서 경작하던 논이었는데, 이제는 동식물의 서식 환경을 보호하고 다양한 생태체험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생태연못 탐방로로 온통 연잎으로 뒤덮인 연밭이다. 그 사이로 놓인 부드러운 곡선의 데크 위를 걷는 이들의 풍경이 그림 같다.
산소길은 대부분 흙길이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깊은 숲속이다. 오래된 홍우당 부도가 숲길 옆으로 자연스럽게 나란하다. 부도는 부처나 승려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탑이다. 그 길을 지나면 정말 빽빽한 숲속이다. 폭도 좁아서 나란히 걷기보다는 홀로 걷기 좋으니 숲을 자연스럽게 즐기면 된다. 막상 숲에 들어서면 마치 밀림에 온 듯 오래된 숲속 풍경에 놀란다. 얼기설기 나무줄기가 양쪽으로 서로 얽혀 고개를 숙여 지나가야 하고, 빼곡한 나무 사이로 하늘이 빼꼼히 보이는 것 또한 깊은 산중에 파묻혔음이 느껴진다. 걷기 좋은 완만한 오솔길이 계속 이어진다. 어느 순간 새와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자연 속에 내가 있다. 짙은 풀 냄새가 나를 둘러싸고, 비로소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다. 초록이 가장 초록다운 숲이다. 싱그러움이 가슴속 가득 찬다. 역시 산소길이다.
수타사의 산소길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홍천 읍내로 장 보러 가던 길이었다. 그 길을 걷다가 쉬어 가라고 쉼터가 있지만 힘들 것 없으니 그냥 계속 천천히 걷게 된다. 신봉마을을 반환점 삼아 돌며 시골 마을의 평온함도 얻는다. 수타사 계곡이 흐르는 출렁다리 소 구간에서 물소리 들으며 멍하니 쉬면 된다. ‘’은 소나 말 등의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여물통인 구유를 뜻하는 강원도 방언이다. 계곡이 마치 구유처럼 생겼다 해서 소라 불린다.
나무가 바람에 사사삭 흔들리는 나즈막한 소리,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 숲 내음, 흙 내음, 초록의 색감만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다. 한참을 걸었어도 가뿐하다. 후텁지근하고 끈적이던 더위도 잊었다. 숲이 깊어 햇빛도 저만치에 있다. 산소길에선 다만 마음껏 숨 쉬고 청량한 산속의 운치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초록을 실컷 눈에 담았다. 천천히 한숨 돌리며 용담에 다다르니 계곡 쪽으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줄을 이어놓았다. 바위와 물의 깊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예부터 용이 승천했다는 용담은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어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메워져 평범한 소(沼)의 모습이다.
운동화를 툭툭 털며 산소길을 내려가다 옆길로 고개를 돌려보니 산림치유쉼터의 숲속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그야말로 신선놀음 중이시다.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 숲속에 쉼터와 명상 공간이 마련되어 시원하고 건강하게 여름을 나는 모습이다. 어딜 보아도 산소 뿜뿜. 보는 사람 마음도 시원하다.
홍천의 자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홍천을 다녀보면 무궁화 꽃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마을길에서도 볼 수 있지만 무궁화공원, 무궁화테마파크, 무궁화수목원, 체험관 등 온통 무궁화 꽃 도시다. 이는 홍천군이 우리나라 무궁화 메카로 선정되어 무궁화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자 조성됐기 때문이다. 무궁화 명소인 홍천의 무궁화수목원을 찾았을 때는 꽃이 한두 송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무궁화수목원은 국내 최초로 무궁화를 테마로 조성한 공립수목원으로,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의 무궁화 사랑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각 테마별로 남궁억 광장, 무궁화 조형물, 품종원, 미로원과 16개의 주재원을 비롯한 숲속 산책로, 숲속 도서관 등 즐길거리가 마련돼 있다. 특히 무궁화가 한창 피어나는 8월에는 ‘나라꽃 무궁화 홍천 축제’가 열려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무엇보다 수목원 입구에 길게 이어지는 280m 산책로 끄트머리에 위치한 무궁화(Rose of Sharon)의 집이 연출하는 풍경이 시선을 끈다. Rose of Sharon. 서양 사람들은 무궁화를 이렇게 부른다. 샤론의 장미는 성스럽고 선택받은 곳에서 피는 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꽃이 우리 민족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희망의 빛이 되기를 소망했다는 설명이다.
무궁화의 집을 둘러싼 푸른 들판엔 코스모스가 자라고 있었다. 무궁화와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난 들판의 풍경은 홍천의 핫플레이스 예약이다. 현재 야간 경관 조명으로 은하수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연출되어, 데이트 커플들이 찾아오는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곳이다.
홍총떡과 올챙이국수
홍천의 맛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저렴하면서 맛도 좋은 서민 음식 홍천메밀총떡(홍총떡)은 시장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홍천의 메밀로 만든 반죽을 얇게 부쳐서 준비한 소를 넣고 드르르 만 홍총떡은 홍천의 대표 향토음식이다. 구수하고 개운한 김치나 무채 양념의 순한맛과 매운맛, 강원도 제철 나물이나 시래기를 넣은 나물맛으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홍천중앙시장에 가면 총대를 닮아 총떡이라는 홍총떡과 메밀전, 올챙이국수 등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또 한 군데, 전직 청와대 셰프가 운영한다는 음식점에서 명태회막국수와 낙지만두도 먹어볼 만하다.
홍천 여행
수타사 산소길 :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덕치리 5-3
교통 : 수도권 기준 자동차로 약 두 시간. 대중교통-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홍천종합버스터미널까지 약 한 시간 반 소요
홍총떡 : 홍천중앙시장 및 홍천 각 관광단지에서 판매. 홍천 오일장 1, 6일. 장날 아니어도 홍총떡은 영업 중
●Exhibition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일정 8월 28일까지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아스테카,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한-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국내 최초의 아스테카 특별전이다. 아스테카는 마야, 잉카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 3대 문명으로 꼽힌다.
전시에서는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을 비롯해 독일 린덴박물관,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등 멕시코와 유럽의 11개 박물관이 소장한 아스테카 문화재 208점을 만날 수 있다. 총 5부로 구성됐으며, 1521년 스페인 정복자들의 침략 전까지 아스테카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1부와 2부에서는 아스테카의 문화와 종교 등 그들의 독특하고 복잡한 세계관과 신화를 설명하고, 자연환경과 생활 모습 및 정치, 경제 체제를 소개한다. 3~5부에서는 수도였던 테노치티틀란의 모습과 그 가운데 핵심적인 건축물인 대신전 템플로 마요르에 대해 알 수 있다.
특히 지하세계의 신 ‘믹틀란테쿠틀리’ 소조상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13~16세기 아스테카인은 인간이 지하세계에서 나온 거인의 뼈로 창조됐다고 믿었다. 높이 176㎝, 무게 128㎏의 소조상은 기괴한 모양새가 인상적이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인신공양과 활발한 정복전쟁에서 비롯된 잔혹한 이미지, 스페인 정복자를 신으로 오해했다는 이야기와 달리 아스테카 문명의 예술과 지식은 매우 발달했다”라면서 “멕시코에서 이뤄진 최신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정복자가 왜곡하고 과장하기 이전 아스테카의 본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나의 하루 이야기-헝가리에서 온 사진
일정 9월 12일까지 장소 서울역사박물관
헝가리 민족학박물관과 공동으로 여는 이번 전시에서는 세 아이의 사진을 통해 1936년과 2021년 헝가리 어린이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약 70km 떨어진 작은 마을 볼독(Boldog)에 사는 두 소녀의 사진은 지난 80여 년 동안 헝가리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보여준다. 또 헝가리 남서쪽에 위치한 퇴코파니(To¨ro¨kkoppa´ny)에 살고 있는 피테르 코바치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오던 전통 놀이 ‘파프리카’(Paprika) 게임을 친구들과 즐겨 한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피테르와 친구들이 파프리카 게임을 현대화해 즐기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Book
◇오늘 한 끼 어떠셨나요?(이우석·꿈의지도)
저자 이우석 소장은 스포츠서울에서 20여 년 여행기자로 활동하면서 주로 밥과 여행에 관한 글을 썼다. 퇴사 후 그는 ‘놀고먹기연구소’라는 회사를 차리고 미식과 여행에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다. ‘오늘 한 끼 어떠셨나요?’는 문화일보에 연재 중인 ‘이우석의 푸드로지’를 엮은 것이다.
이우석 소장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식재료와 음식을 네 가지 주제 ‘따뜻한 밥 한 끼’(국밥·솥밥·꽃게·덮밥·볶음밥·달걀·순대·불고기·닭곰탕·배추), ‘제철에 먹는 별미’(도다리쑥국·봄나물·조개·보리·막국수·민물고기·새우·추어탕·버섯·굴·냉면·대구), ‘한잔 술 부르는 일품요리’(곱창·양고기·복어·소고기·갈비·전·오징어·족발·육회), ‘정식 부럽지 않은 분식’(떡볶이·오뎅·만두·라면·국수·돈가스·햄버거)으로 나눠 소개했다.
특히 저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음식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순대는 몽골 기병의 행동식이며, 대구 떼를 쫓다가 뉴펀들랜드를 발견한 사실, 공깃밥이 1960년대 분식장려운동에서 탄생한 배경, 어묵이 아니라 ‘오뎅’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 등을 알려준다. 이우석 소장은 음식과 함께 맛집 230곳도 소개했다. 이 소장이 20여 년간 직접 맛보고 검증한 곳이다. 일 년에 360일은 맛집 순례를 하는 저자가 적어도 몇 번씩은 방문한 집들이다.
◇셜록 홈즈 다시 읽기(안병억·열대림)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인 저자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관통하는 12가지 핵심어로 명탐정 홈즈를 새롭게 바라본다. 컨설팅 탐정, 과학수사, 천재성, 네트워크, 전쟁 등을 주제로 홈즈와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가치관, 그리고 동시대의 사회상을 들여다본다.
◇사우디 집사(배영준·델피노)
저자 배영준은 현대중공업에 근무하고 있다. 사우디에서 근무한 적 있는 그는 당시의 경험을 녹여 소설을 썼다. 소설은 프랑스 국립 집사학교를 졸업하고 사우디 왕가의 집사가 된 한국인
피터의 모험기를 그린다.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닐 올리버·윌북)
저자 닐 올리버는 BBC 다큐멘터리 진행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동해온 고고학자다. 그는 지구 위의 특별한 유물과 유적 36개를 엄선해 거기에 담긴 인류의 깊은 사연을 들려준다. 역사, 예술, 문화, 지리, 인류학을 아우르는 인문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Stage
◇레 미제라블
일정 8월 5일 ~ 15일
장소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연출 유준기
출연 윤여성, 김명수, 정욱, 박웅, 임동진, 문영수, 최종원, 강희영 등
연극 ‘레 미제라블’은 한국 연극 역사와 함께한 배우들이 2011년부터 만들어온 공연으로 매번 전회 매진을 기록한 작품이다. 2020년 코로나19를 뚫고 공연이 올라 화제를 모았으며, 2년 만의 귀환이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걸작을 원작으로 한다. 19세기 프랑스대혁명 전후 혼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며,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의 이야기를 그린다.
진정한 휴머니즘과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윤여성, 김명수, 정욱, 박웅, 임동진 등 원로 배우와 문영수, 최종원, 강희영 등 중견 배우들이 이번에도 명품 연기를 펼친다. 더불어 400여 명의 오디션 지원자 가운데 발탁된 젊은 배우들이 화합의 무대를 펼칠 예정으로 기대를 더한다.
◇두 교황
일정 8월 30일 ~ 10월 23일
장소 한전아트센터
연출 김민영
출연 신구, 정동환, 서인석, 서상원, 남명렬, 정재은, 조휘 등
원로 배우 신구와 정동환이 연극 ‘두 교황’으로 만난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우정을 다룬 연극 ‘두 교황’이 영국 초연 이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펼친다.
신구는 서인석, 서상원과 함께 베네딕토 16세 역에 캐스팅됐다. 정동환은 남명렬과 프란치스코 역을 소화한다. 영국 극작가 앤서니 매카튼이 극본을 썼다.
규율과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 성향 베네딕토 16세와 자유로운 진보 성향의 개혁파 프란치스코의 대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9년 6월 연극으로 초연됐고, 같은 해 12월에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엘리자벳
일정 8월 25일 ~ 11월 13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옥주현, 이지혜, 신성록, 김준수, 노민우, 이해준, 이지훈, 강태을, 박은태 등
뮤지컬 ‘엘리자벳’이 10주년을 맞았다. 2012년 초연 당시 15만 관객을 동원하고 각종 뮤지컬 어워즈 상을 석권한 스테디셀러 대작이다.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벳의 드라마틱한 인생에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한 서사와 음악, 무대예술, 3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호평받고 있다.
이번 10주년 공연에는 ‘엘리자벳’의 독보적 흥행을 이끌어낸 옥주현·신성록·김준수·이지훈·박은태·민영기 등의 배우들이 귀환한다. 또 이지혜·노민우·이해준·강태을 등의 뉴캐스트들이 합류, 역대급 무대를 예고한다.
본 기사에 소개된 공연을 관람하신 독자분의 생생한 후기를 기다립니다. 채택된 분께는 소정의 상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 잡지를 보내드립니다. shjlife@etoday.co.kr
김치 맛이 나는 하이볼 칵테일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토치로 살짝 그을린 인삼정과가 올라간 생강 향의 칵테일은? ‘K-문화’ 열풍이 이국적일 수밖에 없는 공간 ‘바’(bar)에까지 가 닿았다. 전통주로 재현해낸 클래식 칵테일과 2022년 버전으로 재해석한 한국적인 안주가 기다리는 공간, 포시즌스호텔 서울의 컨템퍼러리 바 ‘오울’(OUL)이다.
오울 바는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통주와 한국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선보이자는 취지로 탄생했다. 바의 이름 ‘오울’(OUL)은 서울의 영문 스펠링 ‘SEOUL’에서 착안했다. 또한 올빼미를 뜻하는 영어 단어 ‘OWL’ 발음과의 유사성을 통해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메뉴판과 함께 제공되는 웰컴 드링크와 웰컴 푸드부터 독특하다. 김치누룽지 칩과 우엉조림이 스낵처럼 담겨 나온다. 웰컴 드링크는 주기적으로 바뀌는데, 충주 사과로 만든 로제 사이더를 활용한 드링크가 제공될 예정이다.
오울의 칵테일은 전통 시대, 근대, 현대의 세 가지 콘셉트에 따라 나뉜다. 취향에 따라 직접 술을 빚어 마시던 가양주 문화의 전통 시대, 맥주나 와인 등의 서구 주류가 막 유입되던 근대, 전 세계 주류 문화가 모여드는 현대의 서울을 대변한다. 모두 한국의 식재료나 주류를 활용해서 만들었으며, 한국 전통 음료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크래프트 소주를 베이스로 한 ‘식혜’나 ‘수정과’ 등이 대표적이다. 안주 역시 떡볶이나 라면, 튀김 등 대중적인 음식을 활용해 모든 세대를 아우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철따라 달라지는 계절 메뉴도 있다. ‘화채’라는 칵테일은 제철 과일을 활용하는데, 지난달까지는 딸기화채가 손님들을 맞았다. 오울의 칵테일 개발을 담당하는 유승정 시니어 바텐더는 “여름에는 수박, 가을에는 배, 겨울은 모과를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4050 중장년층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칵테일은 ‘서울뮬’과 ‘폭탄주’다. 모스코뮬(Moscow Mule) 칵테일의 한국식 변주인 서울뮬은 유 바텐더가 가장 애정을 갖는 칵테일이기도 하다. 볶은 마늘과 버터를 선비 보드카에 숙성시키고, 간 마늘과 생강으로 만든 시럽과 라임주스를 섞어 완성한다. 모스코뮬의 상징과도 같은 구리 머그잔은 방짜유기 잔이 대신한다.
이름만 봐선 도수가 어마무시하리라 생각되지만, 사실 폭탄주는 오울 바에서 취급하는 칵테일 중 가벼운 편에 속한다. 크랜베리를 훈연해 향을 첨가하고 애플 사이더(사과 증류주)를 섞어, 스모키하면서도 사과의 달달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소주잔을 따로 제공해, 칵테일 잔에 직접 소주잔을 빠뜨려 섞어 마시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굳이 성별 구분을 하자면 여성에게 식혜 칵테일과 랍스터 떡볶이 페어링, 남성에게 서울뮬 칵테일과 육회 페어링을 추천한다. 토끼 소주를 베이스로 한 식혜는 편하게 즐기기 좋다. 서울뮬은 알싸한 마늘 향과 탄산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칵테일과 마늘 향이라, 상상하기 쉬운 조합은 아니지만 막상 접해보면 그 맛과 향이 조화롭다. 서울뮬과 잘 어울리는 오울의 안주는 육회다. 이색적인 맛을 좋아하거나 새롭게 도전하기를 즐긴다면 한국의 블러디메리 같은 김치하이볼을 추천한다. 물론 육회는 오울의 모든 칵테일과 무난하게 잘 어울리므로 김치하이볼과의 페어링도 좋다.
오울에서는 메뉴에 없는 칵테일이라도 취향이나 선호하는 칵테일을 따로 주문하면, 전통주로 재현해낼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제공하고 있다. 페루와 칠레 등 남아메리카에서 주로 마시는 피스코 사워는 문배주로, 마티니는 국내에서 생산된 진으로 구현하는 식이다.
한국적인 분위기에 맞추기 위한 센스는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아이스버킷이 된 항아리, 워터 저그로서 충실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양은 주전자만 봐도 그렇다. 바텐더와 서버의 유니폼은 한복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제작됐다. 족자를 닮은 메뉴판, 병 단위로 따로 판매하기도 하는 투명 담금주 항아리도 오울만의 즐길거리다. 형형히 빛나는 네온사인 호랑이 민화, 바 내부를 가득 채우는 디제잉 음악이 낯설 수는 있지만, 그대로 발걸음 돌리기는 아쉽다.
오랜만에 만나는 외국인 친구나 외국인 바이어를 대접할 때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젊은 신입사원들과의 회식 때 찾는다면 ‘센스 있는’ 상사가 될 수도 있다. 혹은 1990년대에 처음 마주한 바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면서, 지금의 오울 바에서 ‘힙’(Hip)함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당시의 추억을 간직한 옛 친구들과 함께한다면 전통주 칵테일의 맛이 배가 될 테다.
서울시가 중장년 1인 가구가 함께 모여 제철·건강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행복한 밥상’을 이달부터 시작한다. 만성질환 위험이 높고 사회적 관계망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중장년 1인 가구의 식생활을 개선하고, 음식을 매개로 한 소통과 교류를 통해 사회적 관계망 회복에 기여하고자 함이다.
행복한 밥상은 오세훈 시장이 지난 1월 발표한 ‘서울시 1인 가구 안심 종합계획(2022~2026)’의 4대 안심정책 중 ‘건강안심(혼자여도 건강한 먹거리 안심프로그램 운영)’ 대책의 하나로 추진된다.
우선 올해는 자치구 수요조사를 통해 선정한 10개 자치구(광진구, 양천구, 성북구, 마포구, 서대문구, 관악구, 용산구, 중구, 강서구, 도봉구),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하고 향후 확대 시행한다.
행복한 밥상은 제철‧건강 식재료를 활용해 직접 요리를 만들어보는 ‘요리교실’과, 농촌체험활동 같이 각 자치구별로 특색 있는 다양한 부가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1인 가구를 위한 간단 요리, 제철‧친환경 식재료 활용 건강 요리, 만성질환별‧성별‧연령별 맞춤요리 같은 실용적인 내용으로 마련됐다. 요리에 익숙지 않은 참가자도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강의 주제에 맞는 식재료 꾸러미도 제공될 계획이다.
또한, 참여자들에게 활동 인센티브를 부여해 활동 의지를 높이고 효과적인 식생활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서로 만든 음식을 공유하고 맛을 평가해보는 ‘음식 공유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우수 참여자에게는 소정의 상품을 지급한다.
시는 요리교실 및 활동 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참여자들 간 친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소규모 그룹을 조성하고, 활동 종료 후에도 참여자들이 지속적으로 교류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온라인 커뮤니티를 지원할 예정이다.
‘요리교실’과 함께 진행되는 부가 프로그램(활동 지원 프로그램)은 대표적으로 성북구에서 진행 예정인 ‘농촌체험활동’이 있다. 직접 만든 음식을 지역 내 독거 어르신들과 나누는 행사를 진행한다. 광진구에서는 요리교실에서 배운 레시피를 ‘건강밥상 요리책자’로 제작한다.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를 원하는 중장년 1인 가구는 10개 자치구에 직접 신청하면 된다. 자치구별 문의처는 1인 가구 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치구별 모집대상, 모집일정 및 모집인원, 제출서류 등 구체적인 내용은 자치구별 문의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설거지를 사랑하는 남자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부자 두 사람.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마이크로소프트를 탄생시킨 빌 게이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 두 부호(富豪)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하는 습관이 바로 설거지라고 합니다.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면 설거지를 거르지 않습니다. 일과 삶,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균형 있게 운영하는 것을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은 나아가 직장과 가정의 조화, ‘워라하’(Work-Life Harmony)를 추구합니다. 가정에서 에너지와 사랑을 충전해 다음 날 일터로 나가는 두 남자.
해외에 두 남자가 있다면 국내에도 못지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편이라면 ‘공공의 적’ 역대 1위 자리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최수종 씨를 떠올립니다. 옆집 정 여사가 집안일에 과부하가 걸린 어느 날 숨도 못 쉬게 몰아치며 설거지까지 겨우 마친 순간, 하필이면 텔레비전에서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어떻게 앉아서 밥을 차려달라 할 수가 있어? 난 단 한 번도 아내가 밥할 때 앉아 있어 본 적이 없어. 옆에 꼭 붙어서 뭐가 필요한지 챙기고 심부름하고 무거운 것도 들고 그래야지.”
그 순간 소파에 편안히 기대 휴대전화로 유튜브에 몰입해 있는 남편이 눈에 띕니다. 울컥 눈물이 속에서 차오릅니다. 분노를 넘어 슬픔입니다. 이거 정 여사만 느끼는 심정일까요?
엄마가 뿔났다!
마음 미장공 세 번째로 나눌 주제는 ‘살림’입니다. 살림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요. 엄마, 아내, 주부. 그렇습니다. 집안일을 도맡은 사람. 밥, 빨래, 청소, 육아, 공과금 납부, 저축, 분리수거, 제사, 경조사 챙기기 등 눈에 보이는 일과 보이지 않는 일이 산더미입니다. 해도 해도 티가 안 나지만, 안 하면 금방 티가 나는 그 일이 살림입니다.
2008년 방영되어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엄마가 뿔났다’(KBS-2TV).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주인공을 맡은 김혜자 씨는 그해 방송사와 백상 연기대상을 수상합니다. 엄마이자 며느리이자 아내인 주인공은 62세 되던 날, 당당히 1년 휴가를 선언하고 원룸을 얻어 집안 탈출에 성공합니다. 남편부터 세 자식, 며느리까지 모두가 반대하던 휴가를 단 한 사람 시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감행합니다. ‘엄마 파업’으로 획득한 자유와 나만의 시간을 누리기도 잠깐, 임신한 며느리는 하혈하고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복귀합니다. 66부작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하지만 다음 생에는 나도 내 이름 석 자로 불리면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
금쪽같은 내 새끼와 82년생 김지영
그 뒤 10여 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강산이 적어도 한 차례는 바뀌었고, 세상은 빛의 속도로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정은요? 책과 영화로 엄청난 공감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82년생 김지영’은 오히려 동서양 할 것 없이 나라 밖에서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요즘 ‘금쪽같은 내 새끼’(채널A)에는 집안일에 질식해 숨구멍 하나 찾지 못한 채 사회와 단절되어 정신적·육체적·정서적 고통을 안고 사는 엄마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201호도 그렇고 504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림의 힘
살림의 가치를 살려야 합니다. 살림하다 아프고, 마음 상하고, 병드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 살림은 살리는 일이니까요.
살림은 OO이다!
빈 곳에 알맞은 답은 무엇일까요?
예, 맞습니다. 침대가 가구가 아닌 과학이란 광고 문구처럼, 살림은 과학입니다. ‘밥은 하늘이다’, ‘밥심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밥을 지을 때 모든 과학이 다 동원됩니다. 물, 불, 가스, 전기 같은 에너지의 원리도 알아야 하며, 칼, 솥, 팬 등 각종 재질의 도구와 전자제품에 대한 이해와 능숙함도 필요합니다. 제철 식재료를 알아야 신선하고 영양 있는 것들로 값싸게 구입해 맛있게 조리할 수 있습니다. 김장김치만 해도 발효 기간과 온도가 맛과 선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요. 된장이나 간장 만들기는 어떻고요. 과학의 정수가 모여 있는 게 김치와 장맛입니다.
1단계를 통과하셨다면 이번엔 다섯 글자에 도전해볼까요?
살림은 OOOOO이다.
제가 준비한 답은 ‘정성 끝판왕’입니다. 정성이란 귀찮은 게 귀찮지 않은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아이 똥 기저귀를 가는 일, 산지에서 갓 올라온 생선과 채소를 사러 전통시장에 가는 일, 퀴퀴한 고린내 나는 양말을 빠는 일이 힘은 들어도 귀찮지 않습니다. 내 식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귀한 일입니다. ‘귀찮다’는 ‘귀(貴)하지 아니하다’는 말입니다. 귀찮지 않다는 그래서 매우 소중하고 귀하다는 뜻입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온 식구가 재택근무에 비대면 수업으로 삼시세끼 집밥 시대가 열렸습니다. 돌아서면 밥하는 ‘돌밥돌밥돌밥’으로 살림하는 일이 새삼스레 의미가 생긴 세상이니 참 알다가도 모를 요지경 속입니다.
살림은 OOOO테스트다.
3단계는 좀 더 어렵습니다. 맞히셨다면 대박! 진정한 살림꾼, 프로 ‘살림 장인’으로 인정합니다. 최근 들어 세대 가릴 것 없이 유행하는 성격 유형 검사 MBTI라고 답하셨다면 정답에 거의 근접한 셈입니다. ‘성질머리’가 제가 원하는 답입니다. 살림을 해보면 자기 본성, 성품이 성질머리로 뾰족 튀어나오는 순간이 정말 많습니다. 배운 적이 있든 없든 계급장 떼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이 살림입니다. 예전에 살던 본가에서 해오던 습성을 새 식구, 새 풍습과 문화에 맞춰가는 과정에서 지지고 볶다가 툭툭 성질 하나가 머리를 들이밀기 마련입니다. 모난 마음, 욱하는 성질을 누르고 둥글리는 것이 살림입니다. 못된 생각, 원망하는 마음으로 칼질을 하면 꼭 손을 베거나 다칩니다. 피를 보고서야 아차 합니다. 식구들 먹일 음식, 살리려는 음식을 만들면서 독한 마음, 살기(殺氣)를 넣을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 먹은 밥은 희한하게 체합니다. 귀신같이 어찌 알았을까요.
엄마라는 경력 왜 스펙 안될까?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살림을 우리는 오랫동안 어떻게 치부해왔을까요. ‘부엌데기’, ‘솥뚜껑 운전수’, ‘아줌마가 밥이나 하지’ 이런 말로 비하하고 업신여기지 않았나요? 남자들뿐만 아니라 살림의 주된 당사자인 여자들조차도 하찮거나 허드렛일로 여기고, 잡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습니다. 그 일을 잡일이니 막일이니 허드렛일이라고 대하는 그 마음이 하찮고 사소할 뿐이고, 그 태도가 값쌀 뿐입니다. 모두가 소중하고 꼭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살림은 신성하고 고귀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물건과 주변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허드렛일로 대하는 순간 자기 자신을 위축시키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고 맙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부, 살림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습니다.
“집에서 놀면서….”
‘놀면서’라고도 안 하죠. ‘처놀면서’라고 하죠.
“집에서 처놀면서, 잠이나 처자면서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
안 그래도 무보수 노동, 사적 영역에만 묶여 있는 삶에서 느끼는 소외와 단절로 살림하는 사람은 충분히 불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식으로 비하와 경멸과 조롱이 섞인 표현을 스스럼없이 한다면 댁의 아내는, 엄마는, 며느리는 위축되고 분노할 것입니다. 오죽하면 몇 년 전 장안에 화제가 되었던 제약회사 자양강장제 광고도 있었잖아요.
(태어나서 가장 많이 참고 일하고 배우며 해내고 있는데)
“왜 엄마라는 경력은 스펙 한 줄 안 될까?”
이렇게 자조적으로 한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게 바로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화나게도 하고 울렸던 부분입니다. 주부의 일, 살림살이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한 것도 한때 유행으로 그치고, 2022년 현재까지도 이력서, 자기소개서 한 줄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남에게 맡길 때는 이 모든 살림살이 단계마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출산, 육아, 가사 노동, 가정 경영과 관리, 부모님이나 아픈 가족을 부양하고 돌보는 일이 아예 경력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외의 영역에서 경력을 개발하라고 밖으로 내몰기만 하는 게 어불성설(語不成說)이고, 선후(先後)가 바뀐 이야기입니다.
먹을 때
밥 먹을 때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제아무리
난 척하려 해도
뻐기려 해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먹을 수 없기에
내 앞에서
정수리 보여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합니다.
-, 19쪽
오늘 아침 봄동으로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멸치다시 육수와 쌀뜨물에 친정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된장과 생애 처음 담근 보리고추장으로 국물을 내서 상에 올렸는데 다들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국그릇에 고개를 박고 맛나게 먹는 남편과 두 아들의 정수리를 보고 저도 정수리를 보여줍니다. 누구나 밥 먹을 때 어떤 자리에서든 정수리를 보여주잖아요. 특히 한국 음식은 국물이 많기 때문에. 같은 동양 문화권이라도 중국이나 일본 음식처럼 그릇을 손에 들고 먹는 게 아니라 고개를 숙여서 먹습니다. 그런 것처럼 먹는 일, 살리는 일이 신성하고 고귀한 한편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바로 살림의 힘이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요. 맛난 음식 드시고, 서로 정수리 보여주면서 낮추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푹 빠져서 즐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름의 격한 취미생활일 경우 부부라면 대부분 다른 한쪽에서는 뜯어말리는 걸 본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한다면 문제가 없을 듯하다. 30년 넘도록 부부가 수집한 2만여 점의 예스러운 부엌세간이 전시된 덕포진 생활사 박물관에서 만난 김홍선 관장은 고개를 내젓는다.
"애초에 우리는 아내가 더 앞장섰지요. 이런 취미로 말년의 재미를 책임진다고 내게 큰소리쳤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사기를 당한 것 같다니까요. 하하... 이것 봐, 지금 고생은 나만 하잖아요."
고생이라고 말했지만 젊었던 시절의 취미로 이제는 느긋하게 누리는 부엌 전시관 앞에서 김포 덕포진의 가을 숲을 바라보는 그의 오늘을 들여다보았다.
"안 다녀본 데가 없어요. 장안평, 인사동, 황학동은 물론이고 직장 출장길에서도 찾아갔었고, 소문 따라 지방으로 쫓아가고 미친 듯이 모았거든. 점점 늘어나면서 창고를 임대해서 보관해 왔지요. 그러다가 자꾸 늘어나니까 감당이 안 되어서 말이지. 처음엔 지금의 이 건물을 지을까 말까 망설였어요. 짓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런데 창고에 보관하느라 지출되는 창고비용이 은행 이자와 별다르지 않아서 지었습니다.
사실 이런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는 건 머리 아픈 일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모으는 사람들 중엔 부자도 있지만 그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살면서 돈이 생기면 사러 다닙니다. 나는 그래서 그들에게 하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못 말려요. 마약은 격리라도 시킬 테지만 이런 취미의 중독성은 마약보다 더합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제 그거 샀어야 하는데 하면서 꿈에도 나타나는 통에 미친다니까요."
담백하고 따뜻한 언어 외할머니
그렇게 모아지고 쌓인 2만여 점의 생활용품들이 박물관 1층을 빼곡히 채웠다. 우리네 외할머니의 부엌에 있었음직한 무쇠솥부터 채반, 술을 내리던 소주고리, 맷돌, 도무지 용도나 이름조차 알 수도 없는 생활도구들이 방대하다.
"이건 도둑시루라고 하지, 시어머니가 무서우니까 몰래 먹으려고 요렇게 만들어진 떡시루인데... " 설명만으로도 재미있다. 귀중한 식수원이었던 우물통, 김치 양념 가는 돌확이나 자배기,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는 호미와 가래, 갖가지 모양의 무쇠화로, 디딜방아, 맷돌과 어처구니, 주꾸미랑 문어 잡는 도구, 양푼, 참빗,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두레반의 정다움... 도구들과 연결된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온갖 부엌 살림살이들이 지방 특색이나 용도별 삶의 형태에 따른 이야기들로 흥미진진하다.
"연가라고 아는가" 묻기에 '비바람이 치는 바다 잔잔해져 오면~' 이런 노래를 흥얼댔더니 '연기의 집'이라며 투구처럼 생긴 옹기를 가리킨다. 이름 한 번 이쁘다. 그 틈에서 꽤 큰 장독 옆구리를 한 땀 한 땀 꿰맨 모습이 지금으로선 새로운 디자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일회성이 판치는 세상에 꿰매서 썼던 장독의 세월을 그려본다. 천년 이상 땅 속에 묻혀있었다는 옹관, 물때가 끼지 않는 숨 쉬는 옛 옹기의 현상, 은행잎으로 섬세한 무늬를 놓은 토기 장인들의 섬세함, 옹기장이 이야기를 소설처럼 들었다.
지금은 사라져 흔적조차 만나기 어려운 아주 오래 전의 생활용품 전시장 속에 덕지덕지 외할머니의 일생이 담겨있었다. 정겹다. 조상들의 삶 속에 들어가는 따뜻한 시간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부엌세간들 속에서 속정 깊은 외할머니를 그려보고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부엌 세간들이 품어낸 세월의 가치
"이곳에 온지는 5~6년 됐나? 서울 사직동 한옥에서 살았는데 아내는 지금도 서울과 덕포진을 오가고 있어요. 원래 마당의 정원 관리는 아내가 하기 때문에 바삐 오가죠. 올해는 덩굴장미를 많이 심어서 텃밭을 많이 점령했어요. 이쪽에 덕포진 진지가 있고 강도 보이고 풍광이 좋아요. 평화누리길도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긴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카페로 용도 전환을 하라고, 요리교실로 활성화하라고 갖가지 조언들을 하는데 그 말에 딱히 반박을 하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동안 찾아오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볼 수가 없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박물관을 지키는 일이 녹록지 않음이 짐작된다. 젊은 시절의 취미가 노후에 소일할 일이 되는 것만큼 이상적인 사례가 있을까만 교류와 관계성의 현실이 배제되면 재미가 덜할 수 있다.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의 역사적 가치와 소중함을 알아주어야 할 텐데 무심함에 때론 서운할 만도 하다. 그럼에도 자부심만은 만만찮다.
"차라리 사람들 말대로 이 건물에 카페를 하거나 임대를 주면 더 여유로울 텐데 이건 개인이 할 짓이 아니라니까. 지역이나 국가에서 해야지. 박물관이라고 어디서 지원이 있는 줄 아는데 지가 좋아서 하는 걸 어디서 도와줄 리가 있나. 팔아야 뭐가 나올까 지금은 생기는 것은 별로 없어요. 아무리 좋은 문화 콘텐츠라도 중요한 자료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부유층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민속박물관에 가면 전시된 물건은 다 양반 위주지 여기처럼 서민들 용품은 별로 없거든요.
공유 부엌의 사용도 가능
전시관 2층은 음식 체험실이다. 잘 갖추어진 조리대와 넓은 홀은 쿠킹클래스의 현장이란 게 단박에 연상된다. 이곳 체험실은 공유 부엌 개념으로 이용되고 있어서 그동안 강사를 초빙해서 전통 장류나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 김장철엔 김장 담그기, 제철음식으로 감자전이나 호박요리, 샌드위치나 떡볶이, 중국을 비롯 동남아 요리 등 시대와 나라 구별 없이 다양한 종류의 수업을 진행해 왔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 주춤했으나 경기도 김포시 보조사업으로 희망의 밥상 펼치기 프로그램을 계획하기도 했다. 김포시에 거주하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화상을 통한 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이었다. 어려운 시절에 밥상이 주는 위로와 화합으로 소통의 시간이었다고.
물론 평소에도 함께 한 끼 식사를 하며 쉼을 얻고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전엔 박물관 마당에서 로컬푸드 장마당이 열리곤 했다. 지역주민들이 가꾼 신선한 식재료들을 판매하고 무료 요리교실이 열렸었다. 가족요리대회, 어린이 요리교실 등이 때때로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젠 한적하다. 알고 보면 따뜻한 놀이마당이란 걸 아는 사람만 안다.
직접 내린 드립 커피 한 잔 건네며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와 이어질 겨울의 멋을 슬그머니 자랑한다. 박물관 주변의 자연이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어 늘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멋도 공유한다. 누구라도 원한다면 이런 풍경을 내다보면서 각자의 취향대로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도 제공된다는 것.
“방역 수칙 강화로 모임들이 편치 않으니까 서울에 사는 우리 친구가 주말이면 놀러 와요. 다른데 가면 오래 앉아있을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여긴 조리실도 있고 마당에 가마솥도 걸려 있고 야외 천막 텐트도 있으니 여기서 마음껏 쉬며 먹고 숲에도 들고 시간 보내기 좋으니까 그런가 봅니다. ”
“가끔씩 때가 되면 오는 젊은 친구들도 있어요. 여행 관련 모임인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본으로 몇 명씩 모여서 먹을 것 사 가지고 와서 요리해 먹고 함께 모여 토론도 하고 와인도 마시며 편히 놀다가 갑니다. 3층엔 카페 공간도 있으니까."
외할머니 부엌의 느릿한 정서에 잠기다
하루쯤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겐 이런 여유로운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찌 알았는지. 이곳이 공유 부엌의 개념으로 만들어져서 소액의 이용료만 지불하면 각자 먹을 재료만 사 와서 요리도 하며 느릿한 템포로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옛 마을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외할머니의 부엌, 방학이면 놀러 갔던 외가댁의 편안한 정취를 맛보고 싶을 때 떠올릴 만하다.
미리 예약한 덕분에 로컬푸드로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부엌 조리대엔 대부분 텃밭에서 조달하는 식재료들이다. 단호박은 박물관 옆 채마밭에서 자란 수확물이다. 앉은뱅이 우리밀로 만든 수제비와 단호박전은 다시 한번 찾아가 맛보고 싶게 한다.
외할머니 부엌의 푸근함 속에서 따뜻한 위로의 소리를 그는 날마다 듣는다. 인적이 드문 박물관 들꽃 정원에 나와 자연의 변화에 흠뻑 빠지고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도시에서 맛보지 못할 평온한 휴식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있을지. 뚝 떨어진 김포의 덕포진 숲길 옆 외할머니 부엌의 김홍선 관장은 자발적 유배와도 같은 잔잔한 사색의 시간에 묻혀 산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법률가 브리야 사바랭이 1825년 발간한 ‘미각의 생리학’(원제, 한국어판 제목 ‘미식 예찬’)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미식과 식도락’의 경전이라 할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음식을 학문적으로 살펴본 미식 담론의 첫 번째 책으로 꼽히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위드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음식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게다가 질병 저항력을 높여주는 신체 면역력이 집중 조명되면서 면역력 향상을 통해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음식과 조리법 등을 너도나도 소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다 보면 건강하게 면역력을 높이고 자연 치유력을 기를 수 있는 식단이란 결국 공통적인 몇 가지로 압축된다. 건강한 식재료 사용, 가공 과정 최소화, 인공 조미료나 방부제, 풍미를 위한 착색제나 인공 향신료 사용 절제 등이다.
이런 담론을 거쳐 새롭게 부상하는 것이 유기농 재료로 구성된 친환경 생채식이다. 환자들이 먹는 특수한 식이요법이라고 생각했던 채식이 유기농과 친환경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면역력 체질 강화를 위해 유기농 식재료를 구매하고 채식을 하려는 가정이 늘고 있다.
백화점 식품매장의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던 친환경, 유기농 코너가 그 면적을 넓혀가고 있는 것은 물론, 1인 가구용 유기농 맞춤 밀키트 배송까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걸쳐 친환경과 유기농을 향한 마케팅이 뜨겁다.
채식이 유행이라지만 그다지 맛도 없고 만들기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곳을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생채식 전문 식당 ‘날일달월’이다. 각종 신선한 채소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이곳은 몸속 독소를 배출하고 면역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친환경 유기농 식재료를 기본으로 한 생채식으로 구성한다. 여기에 맛까지 훌륭해 소리 소문 없이 진화 중이다.
유기농 친환경 채소들의 집합소
생채식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재료인 채소일 것이다. 어느 친환경 유기농 농장에서 구매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물어봤다. 어찌 보면 영업 비밀이랄 수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다 같이 건강하게 맛있게 먹고 행복하게 살겠다는데 영업 비밀이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날일달월의 초록초록 반짝이는 채소들의 원산지를 차례차례 들여다본다.
•쌈채소 전북 남원 사회적협동조합에서 배송
•파프리카 전북 무주와 남원 지지팜에서 배송
•잎줄기 채소 충남 홍성 젊은협업농장에서 배송
•표고버섯 경남 거창 빛솔농장에서 배송
•밤 충북 충주에 위치한 보늬숲농장에서 배송
•당근 & 깻잎 제주도 평대리 부석희 님이 농사지은 당근과 깻잎
•양배추 & 버섯 충북 괴산 박달마을에 위치한 꿈꾸는느티나무농장에서 배송
•양파 & 마늘 경남 창녕 낙붕이네농장에서 배송
•자색양파 & 청오이 전북 부안 총각네농장에서 기른 토종 청오이와 자색양파
•김치 생채소는 아니지만 배추를 발효시킨 김치 역시 채식의 주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음식이다. 날일달월에서는 경남 진주의 법성사 스님이 직접 농사짓고 담근 김치를 배송받고 있다. 종종 경주 김호 장군 종가집 종부의 김치도 테이블에 올라온다. 이밖에도 여희숙 대표가 회장으로 있는 전국의 도서관 친구들이 인근 로컬 농장에서 추천하는 건강한 채소를 필요할 때마다 배송받고 있다. 이외 채소류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과 ‘자연드림’에서 신선한 것으로 구입한다.
몸속 독소 빼주고 면역력 높여주는 해조류 맛 일품
재료가 신선하면 그 자체가 훌륭한 음식이 되는 대표적인 식재료, 해조류. 그래서 해조류는 재료를 걷고 손질하는 정성이 더욱 중요하다. 날일달월에서 사용하는 해조류는 김, 미역, 다시마, 톳, 꼬시래기 등으로 다양하다.
•김 전남 장흥 김양진 님이 생산하는 무산 김
•미역 자연식 식재료 청미래의 자연산 미역
•다시마 전남 장흥 이승호 님이 청정 해역에서 채취한 다시마
•톳 & 꼬시래기 전남 장흥에 위치한 에벤수산의 제품
생채식에서 빠질 수 없는 식물성 단백질 보고, 두부와 콩물
생채식 메뉴에서 빠질 수 없는 두부는 생식에 알맞은 식물성 단백질 보고다. 전북 전주에 위치한 함씨네에서 직접 만든 토종 콩물과 두부, 순두부를 날일달월에서 선보인다. 또한 각종 소스 만드는 데 요긴하게 쓰이는 발효효소들도 전국 각지에서 배송된 제품을 엄선해 사용한다.
•발효효소 변산공동체에서 만든 생강청과 자하생강가루, 경남 하동에서 만든 매실효소, 경남 함양의 오미자청과 양파효소, 버섯균사체 발효 특허품인 현미와 17곡물 발효효소 등이 소스에 사용된다.
디저트를 책임지는 견과류
•생견과 충북상회 광희네 작품이다. 해바라기씨와 호박씨, 아몬드를 72시간 정제해 만들었다.
•잣 경기도 가평은 한국의 유명한 잣 생산 가공지다. 날일달월의 디저트에 들어가는 잣은 경기도 가평 살구재에서 생산된 으뜸 잣을 사용하고 있다.
•대추 충북 보은 국악대추농원에는 유기농 대추가 주렁주렁 열린다. 열린 대추를 날일달월에서 맛볼 수 있다.
전국 제철 과일
•포도 경기도 가평 아름농장
•사과 충북 괴산 가을농원 선녀와 나뭇꾼의 껍질째 먹는 사과
•깐 밤 충북 충주 보늬숲 밤농장
•유기농 감귤 제주도 응모루농장 / 제주도 김건호농장 / 제주도 서귀포 김상현농장
•바나나 자연드림
•단감 & 블루베리 경남 의령군 고상근농장
재료 고유의 맛, 샐러드는 이렇게 만들어요
1 샐러드는 잎채소, 줄기채소, 뿌리채소가 10가지 이상 골고루 들어가게 한다. 요즘 만드는 샐러드에는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에서 공수해온 치커리, 적근대, 적치커리, 케일, 깻잎, 양배추, 트레비소, 겨자채, 뉴그린, 고구마, 당근, 양파 등이 들어간다.
2 먼저 양배추와 적양배추를 채썰어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놓는다. 양배추 물기 빼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한다.
3 양배추 다음에는 잎채소들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놓는다.
4 물기가 마르는 동안 고구마와 당근을 잘게 채썰어둔다.
5 양배추와 고구마, 당근이 준비되면 씻어놓은 잎채소에 남은 물기를 깨끗한 행주로 닦는다. 맛있는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기 제거가 가장 중요하므로 잎채소 한장 한장 깨끗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준 후 잘게 채썰어놓는다.
6 큰 볼에 잘게 채썰어놓은 채소를 모두 넣어 골고루 섞어준다. 7 양파는 따로 채썰어두었다가 샐러드 먹기 바로 전에 섞는 것이 좋다.
샐러드소스
1 무는 무쌈처럼 얇게 썰어놓고 일부는 깍둑썰기한다.
2 유기농 황설탕, 자연드림 현미식초와 물을 1:1:1 비율로 섞고 빛소금은 1큰스푼 넣는다.
3 2~3주 숙성시킨 후, 무쌈은 건져내 해조류나 채소를 싸 먹는 쌈으로 준비하고, 숙성시킨 액체는 잘 섞어 샐러드소스로 사용한다.
오행현미죽과 오행현미밥 만들기
1 영산농원의 신선한 오행현미를 발아시키고 깨끗이 씻어 그늘에서 일주일 이상 잘 말린다.
2 천천히 충분히 말린 오행현미를 방앗간에서 살짝 빻아 가루로 만든다.
3 찬물에 가루를 풀어 잘 저어가며 빠른 시간에 살짝 끓여 빛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4 정제한 견과류와 참깨를 얹어 오행현미죽을 완성한다.
✽오행현미밥은 오행현미와 찰현미를 섞어 밥을 짓는다.
맛있는 채식의 조건, 채소 맛을 깊게 해주는 레시피
▶쌈된장 만들기
1 오래 숙성시킨 약된장에 양파효소, 매실청, 생강청을 넣는다. 2 현미와 17가지 곡물 발효효소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상온에서 하루 동안 발효시킨다. 3 충분히 발효된 된장에 수수조청과 원당으로 맛을 낸다. 4 상에 내기 전 마지막에 참기름과 통깨를 넣어 섞는다.
▶초고추장 만들기
1 오래 숙성한 전통 고추장에 고춧가루와 매실효소, 양파효소, 오미자청, 생강청을 넣는다. 2 현미와 17가지 곡물 발효효소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상온에서 이틀 동안 숙성시킨다. 3 충분히 숙성된 초고추장에 수수조청과 원당, 현미식초와 빛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통깨를 넣어 섞는다.
▶양념간장 만들기
1 숙성된 죽염 약간장에 양조간장을 반반 넣고 고춧가루를 넣은 후, 매실효소와 양파효소, 생강청을 더한다. 2 현미와 17가지 곡물 발효효소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상온에서 하루 동안 숙성시킨다. 3 충분히 숙성된 간장에 수수조청과 원당, 빛소금으로 맛을 낸다. 4 여기에 다진 파, 생들기름, 통깨를 넣어 양념간장을 완성한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도 지났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더운 여름엔 삼계탕 같은 보양식을 먹으며 건강을 챙기지만, 환절기인 가을에는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온도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지는 환절기에는 혈액순환이 잘 안 되거나 감기 등 질환에 걸릴 수도 있다.
여름 더위에 시달려 지친 몸을 추스르고 긴 겨울을 대비한 체력보충을 위해서는 가을에도 영양식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 이에 대한 동서양의 관점은 다소 차이가 있다. 동양의 관점에서 보양식은 '고기'가 중심이 되는 식단을 선호하지만, 서양의 경우 영양이 풍부한 과일이나 채소를 추천하고 있다. 먼저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 포럼에서 추천한 가을 보양식을 살펴보면 추어탕이나 장어구이 같은 음식이 꼽힌다.
추어탕
추어탕의 추(鰍)는 가을 추(秋)가 아니라 추어탕에 들어가는 가을 생선인 미꾸라지를 뜻한다. 미꾸라지는 겨울잠을 자기 전인 가을에 영양소가 풍부하다. 추어탕은 소화가 잘돼 위장병 환자나 노인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미꾸라지와 파, 고사리, 우거지 등 동물성 식품과 식물성 식품이 잘 조화돼 있어 각종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기도 하다. 미꾸라지의 뼈까지 먹는 추어탕은 칼슘을 보충할 수 있고, 뼈 건강에 좋은 비타민 D도 풍부하다. 따라서 골절‧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장어구이
장어구이는 원기회복에 도움을 주는 영양식이다. 장어에는 피부, 소화기관의 세포를 보호하고 항암작용을 하는 비타민 A가 풍부하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 포럼에 따르면 장어의 비타민 A 함량은 육류의 200배, 다른 생선의 50배에 달한다. 장어는 피로회복에 도움되며, 위벽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뮤신 성분이 다량으로 들어있어 위장기능을 강화한다. 특히 장어는 가을이 되면 산란을 위해 바다로 향하는데, 이 시기 장어엔 각종 영양소가 꽉 차 있다.
한편 미국 생활정보사이트 '리얼심플닷컴'은 가을 보양을 위한 식물성 식품을 추천했다. 건강 보충을 위해선 육류, 생선 등 동물성 식품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일, 채소 같은 식물성 식품에 보양이 되는 음식이 있다. 환절기에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식물성 식품도 알아본다.
호박
주황빛을 띤 늙은 호박은 가을이 제철이다. 호박의 주황빛 색소인 베타카로틴은 암의 위험률을 낮추는 데 도움을 주고, 천식, 심장질환, 시력 감퇴 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면역력 강화에도 좋아 일교차가 큰 가을에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 늙은 호박은 생것의 열량이 100g당 27kcal로 훌륭한 다이어트 식품이다.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 않고 위점막을 보호해 당뇨 환자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사과
사과는 사계절 먹지만 제철인 가을에 먹으면 특히 맛이 좋다. 사과는 100g에 식이섬유 함유량이 1.4g인 고섬유질 식품이다. 사과는 껍질을 깎지 말고 깨끗이 씻어 과육과 함께 먹는 게 좋다. 사과 껍질은 항산화 성분과 폴리페놀이 풍부해 노화 예방에 도움이 되고 체내 지방 배출을 촉진에 체중 감량에도 효과적이다.
계피
향신료로 쓰이는 계피는 따뜻한 차에 잘 어울린다. 계핏가루를 물이나 꿀과 함께 마시면 코막힘이나 기침 증상 완화에 도움이 돼 환절기인 가을에 호흡기 보호를 돕는다. 디저트에 뿌려 먹어도 맛이 좋다. 또 계피의 폴리페놀 성분은 혈당을 조절해줘 고혈압에 효과적이고 인슐린 작용을 해 당뇨를 개선한다. 이 같은 특별한 건강상 이슈가 없더라도 계피는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차나 커피에 더해 마시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