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젊은 세대들만 즐길 것 같은 모임에도 나가고, 온라인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사회 구성원의 중심 축으로서 은퇴 후 삶을 즐기며, 소소한 꿈에 다가서는 시니어들의 후반전이 시작됐다.
은퇴 후 어떤 모임에 나갈까. 예전엔 주로 동창회나 계모임 같은 친목 모임을 통해 구성원과의 관계를 쌓아왔다. 범위를 더 확장하더라도 정적인 모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랬던 시니어들이 바뀌었다. 새롭게 합류한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만 즐길 법한 동호회에 참여하고,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온라인에서도 활약한다. 시니어들이 세대의 벽을 넘나들며 활기찬 노후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도 한다” 젊음을 공유하다
이른 아침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공원에 남성들이 모이더니 승용차 트렁크에서 묵직한 ‘드론’(Drone)을 꺼냈다. 평균 연령 60대의 시니어들이 뭉친 ‘실버드론’ 동호회원이다. “자~ 놀아볼까.” 회장의 한마디를 시작으로 6명의 구성원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오전 내내 드론 조종에 푹 빠졌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취미를 즐기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12㎏이 넘는 드론은 첨단기술이 집약된 장비라 젊은 사람들만 즐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니어의 비중도 높다. TV 시청과 라디오 청취, 음악 감상, 산책, 사우나, 낮잠…. 취미라고 보기 애매한, 그리 특별하지 않은 옛 시니어들의 여가 활용법이 젊어지고 있다.
구성원의 평균 연령이 70대인 밴드도 있다.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탄생한 6인조 밴드 ‘딴따라 실버스타 상상밴드’의 가장 어린 멤버는 67세, 최고령자는 87세다. 대부분 미8군 트리플 에이(AAA) 출신의 전문 프로 연주가다. 평균 연주 경력 50년이 넘는 이들은 지금도 전국 무대를 누비며 노익장을 뽐내고 있다.
은퇴한 시니어들은 이제 보고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몸을 던진다.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점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황규만 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사무총장은 “고령층이 가진 고정관념을 버리고 젊은 감각으로 활동하는 시니어도 늘고 있다”며 “이들은 시니어와 젊은 층의 세대 차를 넘는 소통으로 더욱 활기찬 모임 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물어진 벽, 세대 차를 극복하다
일요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자리한 미니카 경기장이 아이들과 어른들로 북적인다. 트랙 위에는 미니카(MINI 4WD)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재빠르게 달린다. “이야~ 신기록이다!”, “나 따라 오려면 아직 멀었다.” 30대 청년과 60대 시니어의 대화다. 미니카 동호회 ‘번개’ 회원인 두 사람은 나이 차가 30세를 넘지만, 이 순간만큼은 또래 같다.
이곳에는 6세 꼬마 아이부터 60대 시니어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찾아온다. 나이 차로 인한 거리감은 한 치도 없다. 이들은 오로지 미니카에 집중한다. 경기장을 찾은 한 미니카 동호회원은 “트랙 위에선 누구나 동등한 경쟁자라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미니카는 누군가에겐 장난감이지만 이들에게는 인생을 즐기는 평생 놀이였다.
조립 완구나 피규어 등의 장난감을 즐기는 어른이 늘면서 ‘키덜트’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커머스업체 티몬에 따르면, 올 초 조립식 프라모델과 피규어 등 키덜트 완구 매출은 지난해 대비 192% 올랐다. 또 60대 이상 연령대의 매출도 매년 성장세를 보인다는 게 티몬 측 설명이다. 실제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나이가 들어 인스턴트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 피규어를 받기 위해 어린이 세트 햄버거를 주문했다”는 글은 꽤 의미심장하다.
레고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시니어도 있다.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이 동호회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모임에서 자신이 조립한 레고를 소개하고 노하우를 공유한다. 또 소장가치가 낮은 여러 제품을 구매한 뒤 분해해 제비뽑기로 부품을 나눠 갖는 이벤트도 진행하는데, 시니어를 우대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 시니어들도 회원들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는 모임이 오히려 편하다고 얘기한다.
◇취미 즐기려고… 인터넷도 ‘척척’
레고 조립을 즐기는 시니어들은 대부분 온라인 거래에 익숙하다. 인터넷에 익숙한 베이비붐 세대는 물론, 이들보다 연령층이 높은 회원들도 해외 이베이 사이트에서 부품을 척척 구매한다. 자신이 조립한 레고 사진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다양한 연령층과 쌍방향 소통도 한다.
여행과 사진 동호회도 시니어의 활동이 활발하다. 은퇴 후 늘어난 여가시간에 가족과 여행을 떠나거나,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사진 동호회 역시 인터넷에 능숙한 시니어가 많다. G-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여사회’(여행&사진 동호회) 회원들은 인터넷 카페와 SNS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리며 기종과 촬영 노하우를 공유한다.
이외에도 시니어들은 나이와 소득, 학벌을 떠나 다양한 놀이터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들은 은퇴 후 유튜브스쿨, 팝송클래스, 줌바·라인댄스, 수채화모임, 서예모임, 요리서클, 캠핑클럽 등의 동호회를 통해 온·오프라인을 들락거리며 젊은이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경험을 나눈다.
황규만 사무총장은 “‘이 나이에 무슨’이라며 움츠러들었던 시니어들이 학습을 통해 젊은 세대 못지않게 디지털 기기를 다루고, 크로스 컬처를 활용한다”면서 “지혜와 그동안 배운 지식, 살아오면서 쌓은 경험 등을 토대로 세대 차를 극복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거주 어르신 돌봄을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회장 성미선)는 오는 22일 서울 종로구 소재 서울역사박물관 아주개홀에서 ‘2019년 서울시 노인종합복지관 세미나’를 개최한다.
올해는 ‘서울시 어르신 돌봄을 위한 복지서비스의 융합전략과 노인종합복지관’이라는 주제로 오후 2시 30분부터 열린다.
이번 세미나 주제발표는 이기연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가 ‘지역 어르신 돌봄에서 : 민관의 연계와 협업’에 대한 논의사항을 제시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좌장으로 ‘지역 어르신 통합적 돌봄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패널발표를 할 예정이다.
이날 패널로는 김연아 교수(성공회대 사회적기업연구센터), 이병도 서울시의회 의원(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 박지은 관장(시립 노원노인종합복지관), 신화선 과장(마포구 노인장애인과), 최경애 팀장(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사회사업팀)이 참석한다.
“우리 장(醬)은 무엇보다 재료와 숙성이 중요해요. 알고 먹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어요.” 된장과 간장이 늘어선 진열대 앞. 백발 노신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전통 장류를 소개하는 이곳은 당연히 수십 년간 부엌을 휘어잡았던 여성들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허를 찔린 기분이다. 게다가 그가 장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종심(從心), 그러니까 70세가 넘어서의 일이다. 이런 그를 주변에선 장금이라 부른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이관(李寬·77) 씨의 이야기다.
국내에 장카페, 그러니까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전문적인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관 씨가 근무하는 이곳은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 위치한 장카페, ‘종로&장금이’.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장금이’라 부른다. 여기서 그는 국내 전통 장류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 담그는 방법까지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종로&장금이’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의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된 곳으로, 애초에는 봉사활동을 위해 결성된 모임이 발전돼 번듯한 매장까지 생겼다. 지난해 6월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측이 서울시의 노인일자리 공모에 당선되면서 결실을 맺게 됐다.
일흔 넘어 갖게 된 우리 장의 매력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 다니기 시작한 건 2007년 부터예요. 그리고 ‘종로&장금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봉사단으로 시작한 2013년이었죠. 사실 이전에는 된장, 고추장을 먹을 줄만 알았지 어떻게 담가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어요. 완전히 문외한이었어요. 그전부터 지역에 보탬이 되고 싶어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해왔어요. 문화재 지킴이 활동을 하다, 낙산공원 일대를 책임지는 낙산 지킴이가 되어 미화작업이나 계몽활동을 하기도 했죠. 그러다 우리의 장을 알리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아 이 활동에 뛰어든 것이 인연이 되어 이렇게 장금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렇다고 이 씨가 음식을 만드는 일과 완전히 무관한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한때는 식재료를 유통하는 중소기업에 다니기도 했고, 강남 한복판에서 번듯한 제과점 사장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이후 건축재료 유통 등 다양한 사업에도 손을 댔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다사다난, 파란만장했다”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장에 대한 공부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설렁설렁 할 수는 없었다. 기왕 하는 것 제대로 하고 싶었다. 봉사활동 내용에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있었기에 더 철저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다른 봉사활동 단원들이 장 담그는 것을 도우며 어깨너머로 견학하다가 나중에 종로에 있는 우리 토속음식에 대한 연구소에서 ‘빡세게’ 공부했어요. 학습한 내용에 대해 동료들 앞에서 발표도 해야 했고,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수료증을 주지 않는다 해서 잔뜩 긴장했었죠.(웃음) 이후에는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경남 산청의 금수암 주지이신 대안 스님께 다시 기초부터 배웠어요. 메주를 부수는 정도, 장 담그는 데 적당한 습도 등을 알게 되고 계속 교육을 받으면서 된장이라는 음식에 빠져들었고 재미도 점점 커졌어요.”
여전히 출근하는 삶, 너무 행복
매장이 손님으로 북적이는 편은 아니지만 정성들여 만든 장이라 그런지 단골이 꽤 많다. 이 씨는 “오히려 입맛이 까다로운 중장년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고 설명한다.
‘종로&장금이’가 장카페로 변신하면서 봉사활동을 멈춘 것은 아니다. 카페 근무자에 봉사활동 인원이 더해져 총 30명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곳 봉사자들은 경로당이나 어린이집 등 장 담그는 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이 씨 역시 이러한 교육활동이 즐겁다고 말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요. 이제 손주들도 다 커버려서 어린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기회가 별로 없거든요. 2년에 한 번씩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종로장(醬)축제’가 열리는데, 지난해에는 초등학생들이 청국장 체험관에서 맛을 보더니 청국장을 갖고 싶다고 욕심을 내는 거예요. 냄새가 나서 아이들은 싫어할 거 같았는데 말이죠. 그 모습이 어찌나 대견한지 행사에 참여한 보람을 느꼈어요.”
‘종로&장금이’ 카페에 출근하는 인원은 총 15명.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3교대로 근무한다. 이 중 남성은 이관 씨를 비롯해 2명뿐이다. 장카페는 기관에서 운영하는 매장 종사자인 ‘시장형’ 일자리에 속한다. 서울에서 거주하는 60세 이상 중 업무에 적합한 지식이나 경험을 갖춘 사람을 면접을 통해 선발한다. 초단시간 근로자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3일 출근하고 하루 3시간 근무한다. 시급은 시간당 8000원. 내년엔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높아질 예정이다. 매달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지만 “내게는 큰 돈”이라고 이 씨는 말한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퇴근 전 쓰레기 비우는 걸 봤는데, 미안해서 말을 못 걸었다고. 그래서 그랬어요. 제가 하는 일이 늘 자랑스럽고 떳떳하다고요. 홀에서 손님 시중을 들고 컵을 닦는 허드렛일을 해도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늙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일을 해야 사회생활은 물론 건강도 유지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요. 갈 곳, 일할 거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매일 아침 ‘오늘은 뭘 할까?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 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