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가는 현재 우리는 ‘나는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퇴직하면 무엇을 해야 하지?’ 등의 주제로 남은 인생에 대한 희망 또는 고민을 하게 된다.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중장년층의 퇴직 평균 나이는 49.1세라 한다. 이때부터 다시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미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층이나 곧 퇴직을 앞둔 퇴직 예정자들은 노후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일자리위원회·관계부처 합동)’을 보면, 신중년 대상 장기근속을 위한 개선방안, 전직 지원 및 신규 일자리 확대 등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고용창출장려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고용안정장려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등 장년층 이상의 고용 및 일자리 안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책들은 대부분 만 45~60세 이상의 연령을 대상으로 신규 고용과 정년 연장 또는 임금 보전 형태의 지원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보다는 일자리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청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55~64세인 중장년층은 평균 49.1세에 실직을 하게 되지만 이들 중 64.1%가 생활비에 보탬(59.0%), 일하는 즐거움(33.3%) 등의 이유로 평균 72세까지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용 유지를 위한 정책 대상의 나이와 일하기를 희망하는 나이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혹자는 60세 이상의 중장년층에도 정책 지원이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정년이 60세인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59세 김OO 씨. 정부의 고용안정 관련 지원금을 받아 정년을 62세까지 보장을 받았다. 김OO 씨는 일하고 싶어도 62세에 퇴직을 하면 실업자가 된다. 이 경우 김OO 씨는 62세 이후 정부지원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자리가 고용유지 기간이 짧거나, 계약직 등으로 불안하다면 김OO 씨는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김OO 씨의 사례처럼 중장년, 특히 60세 이상의 시니어(여기서는 60세 이상을 시니어로 칭하겠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많은 시니어가 소득 단절과 노년기 여가 및 사회활동 부족 등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2016년부터 정년 연령을 넘기 시작해, 2024년에는 정년을 초과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가 현실화되면서 더 커질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55세 이상의 인구는 1389만 명, 2024년도에는 1843만 명으로 급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니어 인턴 제도, 희망인가?
대안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사업이 진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만 45~60세 내외의 고용유지 중심 정책을 지원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60세 이상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은 2004년 도입 당시 공익참여형과 공익강사형, 인력파견형과 시장참여형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활동 유형이 세분화되고 신규 사업 유형이 개발되어 2011년 시니어 인턴십, 고령자 친화 기업 등과 같은 시장자립형 노인일자리사업, 2014년 재능나눔활동, 2017년 기업연계형 사업 등으로 나눠진 일자리 지원 사업이 작동 중이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시니어 인턴십 사업은 만 60세 이상인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 직업 능력 강화 및 재취업 기회를 촉진함과 동시에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확산을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인턴십 사업은 60세 이상 근로자를 채용한 기업에게 인턴기간(3개월) 중 월 급여의 50%의 급여를 지원(전략직종형 최대 월 40만 원·일반형 최대 월 30만 원)한다. 인턴기간 종료 후 계속근로계약(6개월 이상) 체결 시 최대 3개월간 급여의 50%를 추가 지원(전략직종형 최대 월 40만 원·일반형 최대 월 30만 원)한다.
시니어 인턴십은 인턴형과 연수형으로 나뉜다. 인턴형은 단기 근로자 신분으로 고용되어 3개월간의 정부 지원 종료 후 기업이 계속고용 여부를 결정한다. 연수형은 기업이 직접 근로자와 계약을 맺고 해당 직무 연수생으로 3개월간 교육을 시킨 후 신규 채용하는 방식이다.
인턴 채용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나 시니어 인턴십 운영기관에서 신청한 뒤 해당 운영기관에서 진행하는 사전 교육을 이수하고 기업 상담을 거쳐 결정된다. 현재 전국 100곳의 사업장에서 운영 중이다.
[표1]의 노인일자리사업은 시니어 계층이 ‘일하는 즐거움’을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표2]와 [표3]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용 유지와 일자리 창출이 강화된 지원 사업 분야는 지속적으로 증가(단, 2017년은 기업연계형이 새롭게 진입해 실적이 하락)하고 있으며, 취업유지율과 계속고용율, 1인당 월평균 소득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시니어 계층에게 긍정적인 일자리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17년 노인일자리사업 통계에 따르면, 시니어 인턴십의 경우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 도매 및 소매업 등 단순 기능직 중심의 일자리 연계가 55.1%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시니어 인턴 일자리가 대부분 경비 아니면 운전밖에 없는 것이다. 일자리 지원 사업이 기존 일자리를 기반으로 저숙련, 진입장벽이 낮은 직무로 연계되는 현실은 대체 가능한 인력이 많은 시니어에게 여전히 고용불안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니어만이 할 수 있는 직무 중심의 일자리 창출
그렇다면 시니어 인턴 제도를 디딤돌로 새로운 일자리에서 시니어의 다양한 경력과 역량을 이어갈 수 있을까? 2017년까지 고용노동부에서 수행해왔던 중장년 인턴제는 근로조건, 직무불일치(43.7%), 고령자 고용을 꺼리는 편견(34.8%), 건강상태(20.8%) 등의 문제가 지속되어 ‘신중년 적합 직무 고용장려금 사업’으로 대체했다. 이는 청년창업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신중년의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을 선발해 우선지원대상기업 월 80만 원, 중견기업 월 40만 원 등의 수준으로 고용지원을 하는 제도다. 이 사업은 신중년의 적합직무 유형을 경력활용, 역량강화, 신직업 도전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지원된다. 서울시도 이와 유사한 50플러스 보람일자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만 50~67세까지 월 57시간 이내(월 52만5020원) 근무하는 인턴을 위한 공헌형·혼합형 중심의 일자리 지원 체제다.
[표4]에서 보듯이 시니어 계층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선택을 통해 직무와 직업을 연계할 수 있도록 지원 분야를 보다 전문화, 세분화해 취업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니어 세대가 바라는 취업처를 모두 포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전문적이어서 다른 세대와의 일자리 경쟁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 근력 등의 저하가 발생해 높은 노동 강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능직 분야도 제한적일 수 있다.
시니어는 주니어가 경험하지 못한 직무 경험과 노하우를 가졌다. 그리고 퇴직 후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직무 경험과 노하우를 유지한 채 타 직무로의 전직을 해야 하는 노동생산성의 손실을 보고 있다.
이제는 일자리 지원 정책이 직업 또는 고용유지 정책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역량을 일자리 관련 정책과 연계해야 할 시점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각 정부 및 지자체는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부족한 인력이 각 분야에서 활동 경험과 역량이 출중한 산업 현장 전문가들일 것이다. 시니어는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는 직업 중심의 일자리 지원보다 시니어가 보유한 직무 능력을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 대안이 직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직업 발굴과 지원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품질, 마케팅, 경영, 인재선발, 해외진출, 생산관리 등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직업훈련을 받거나 예비 창업자들은 경험이 풍부한 각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현재 중장년 또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 사업’은 청년창업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시니어 계층의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니어의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 유지 기능만으로는 안 된다. 일하고 싶어 하는 순간까지 일할 수 있는 지원 정책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으로 시니어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청년창업자와 중소기업의 경영난 해결을 위한 문제해결 및 대안제공 전문가, 자문 및 경영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산업별, 직무별 전문가 직업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시니어 인턴십 사업과 고용노동부의 장년 인턴제 등을 포함한 시니어 인턴 제도가 복지수혜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도 정착되어야 한다. 시니어 일자리 정책은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부처를 통합한 컨트롤타워를 통해 좀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겠다.
고령화 미래 직업을 고민해야 할 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인재가 창의융합형 인재라 한다. 그리고 프리랜서의 역할이 더 증대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현재 시니어 대상 일자리 지원 방향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오늘날에 앞으로 사라질 직업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일정 교육 과정을 거치고 실무현장에서 은빛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시니어 인턴들에게 재취업 혹은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시니어 개인으로서는 앞으로 다가올 직업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시니어의 축적된 노하우와 기업의 융합은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니어 인턴 제도의 일자리 정책은 시니어가 보유한 노하우나 자원을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직무 기반 직업 마련을 위해 펼쳐나가야 한다.
100세 시대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이제 50대는 청년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은 그 이름대로 서울 시민 50세부터 64세까지인 50플러스 세대의 삶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2016년에 설립된 이후 재취업, 일자리, 교육, 정책 개발 등의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50플러스재단은 지난해 10월 김영대 전 국회의원을 대표이사로 임명해 향후 3년 동안의 사업 전개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최대 화두가 된 시대, 김영대 대표이사를 만나 50플러스 세대의 일과 삶에 대한 대안을 들어봤다.
새해 이슈는 일자리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그 조짐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로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등 단순 서비스직 업계에서는 사람을 쓰지 않는 대신 자동화 설비, 로봇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니어가 은퇴 후 직업으로 많이 선택하는 택시 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카풀 논란 또한 자율주행차가 도입될 미래의 택시 산업과 연결되는 사전적 갈등이다. 이처럼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일자리가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들면서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50플러스 세대는 노인 세대도 청년 세대도 아니어서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모든 50플러스 세대가 생산적이고 준비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각 방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입니다. 사실 생계형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곳은 이미 많습니다.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 등에서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죠. 그래서 재단은 인생 후반 새로운 일의 유형으로 ‘사회공헌일자리’를 발굴하고 확산하고자 합니다. 보통 ‘앙코르커리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지속적인 수입뿐만 아니라 개인적 보람, 사회적 가치 모두를 만족하는 활동, 일거리, 일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50플러스 세대를 위한 일자리 해법
시니어에게 일자리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수명이 늘어나고 부양 의무가 계속되면서 현역으로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자리 마련을 위한 노력은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정무적 책임을 갖고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도 50플러스재단을 발족해 시대적 화두에 동참했고, 최근 김영대 대표이사가 임명되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민주노총 부위원장 출신으로 시민사회단체, 국회의원, 중소기업 CEO 등의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남북경제협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임명에서부터 50플러스재단의 방향성에 대한 큰 그림이 느껴졌다.
“재취업, 일자리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십니다. 이제는 많은 분이 칠십까지 노동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되는데, 그중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 부분에 우리가 좀 더 노력해서 저소득, 취약 계층의 50플러스 세대를 케어하는 노력을 보강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50플러스재단이 시니어 취약 계층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우리나라의 고령자 빈곤율은 OECD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2.7%, 7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60.2%에 달한다. 고령화 속도도 가장 빨라서, 높은 노인 빈곤율과 고령화의 쌍끌이 현상은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더 가중시키는 상황을 불러오고 있다. 시니어의 일자리 확보가 본인 스스로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로운 틈새시장 공략해나갈 것
일자리를 찾아내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장년 일자리와 시니어를 매치시키는 것도 만만찮다. 현장에 가면 정책과 현장의 차이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50대 이후의 직업 훈련, 생계를 위한 일자리 알선 등은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노동의 가치를 살려 저소득 취약 소외 계층, 그리고 일하고 싶은 분들을 잘 안내해야겠죠. 또한 서비스직, 문화관광, 기타 영업 마케팅 쪽으로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도록, 구력과 경험 많은 분을 매칭하고 관련 프로그램과 직업들을 만들고자 합니다.”
김 대표는 최근의 일자리 대책이 세대 융합 일자리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모범적인 사례를 찾아내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만큼 그런 사례를 만들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창업과 관련해서는 당사자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창업하는 분들 중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순식간에 돈을 까먹습니다. 조사해보니 창업자 10명 중 6~7명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수를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창업을 철저히 준비하게 해야 하고, 창업자 수도 줄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진입장벽을 높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하겠다고 하면 사전에 꼼꼼히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실행 전에 미리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재단에서 올해 개발해볼 생각이에요.”
시니어가 대거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면 엄청난 손실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잃어서 순식간에 나이 들어버린다는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려온다. 청년 때는 아래로 떨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지만 나이 들면 어렵다. 따라서 선경험을 해보고 안 맞으면 빨리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 설명을 들으며 김 대표가 말하는 “조사, 증명과 함께 새로운 길을 제안하는 방향”이라는 게 어떤 모양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외국인 관광객 수를 보면 일본의 성장세를 우리나라가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건 관광 서비스하고도 맞물려 있어요. 관광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 중에 50플러스 세대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길들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관광 가이드, 문화관광 해설사, 외국인들을 안내할 수 있는 문화재 해설사 역할 등이 있겠죠.”
은퇴자를 위한 귀촌 일자리 창출
김 대표가 생각하는 대안 중에는 귀농·귀촌도 있다. 귀농·귀촌이라고 하면 무조건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농촌에 가서 생활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걸로 하고 귀촌을 하면 생기는 일자리가 있다. 수확기에는 일당 받는 일자리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통, 택배를 도와주는 일도 있다. 그리고 지방에 가면 축제가 많은데 축제에 활용될 인력으로 50플러스 세대가 가장 적합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살려고 하면 힘들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농한다고 부부가 함께 갔다가 몇 달 후 아내 혼자만 올라오는 일도 있고요. 차라리 가벼운 마음으로 일정 시간 귀촌해서 살아보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일주일 중 월화수목은 도시에, 금토일은 귀촌을 하는 거죠. 경험을 쌓고 그 속에서 익숙해지면 정착하는 걸로 계획을 세우게 해 너무 부담을 갖고 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 분들을 모아 집단으로 공유주택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귀농·귀촌과 일자리 문제 해결이 함께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북경제협력, 돌파구 될 수 있어
김 대표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이 남북경제협력 부분이다. 현재 남과 북 사이에는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분야가 경제협력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경제협력 전문가인 김 대표가 50플러스재단 대표로 임명된 것은 남북 간의 경제, 일자리 문제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은 아닐까.
“사실 정년에 걸려 배출되는 50플러스 세대가 많잖아요. 서울만 해도 교통공단, 시설관리공단, 교사, 금융인 등등 꽤 많은데 이분들이 제2인생을 설계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50플러스 세대가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습니다.”
김 대표는 남북 간 교류가 진행되면 당장 철도에 대한 시설관리 점검에 들어가야 하는데 개선, 보수 부분에서 나름대로 시장이 꽤 크게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50플러스 세대의 인력들은 기능직이 많다. 북측의 도로 보수, 여러 가지 인프라 조성 등의 기간산업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는 50플러스 세대 기능직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50플러스재단이 중추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강하다면 계속 일할 것
“저 역시 50플러스 세대로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대한민국 50플러스 세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은 실제 경험해본 사람이 시민들의 피부에 느껴지도록 설계해야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0플러스재단에서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기획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50플러스보람일자리’다. 은퇴한 50플러스 세대가 학교, 마을, 복지시설 등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경험과 전문성을 살린 사회공헌활동을 하며 인생 2막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2015년 6개 사업 총 442명의 규모로 시작해 지난해는 총 31개 사업에 2236명이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신중년 커리어 프로젝트 ‘굿잡5060’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고용노동부, ㈜상상우리가 재단과 함께 풀어가는 사업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5060세대 1000명에게 전문 교육을 제공한 후 사회적기업 취업률 50%를 목표로 하는 장기 계획이다.
“저도 칠십 세까지는 일할 계획이 있고 그 이후에는 건강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건강할 때까지는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일하던 사람이 집에서 쉬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엄청난 여유가 있어서 여행만 다니며 살 조건도 못 돼요. 그래서 칠십까지는 일하고 이후에는 사회봉사형 일자리, 공헌형 일자리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담백한 목소리로 불필요한 부분 없이 실제를 말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읽고, 통찰력과 정책으로 다듬어진 김 대표 자신이 무엇보다도 50플러스 세대인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다양한 캘리그라피 작품과 마주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손글씨를 전문으로 하는 캘리그라퍼가 새로운 직업으로 탄생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 새로운 취미활동으로도 인기라는 캘리그라피를 김수영(66), 김종억(66) 동년기자가 배워봤다.
촬영협조 한국캘리그라피협회
서예와 비슷한 듯 다른 캘리그라피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그리스어 kallos(아름다움)와 graphy(쓰기)의 합성어로 ‘글이 가지고 있는 뜻에 맞게 아름답게 쓰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쉽게 말해 ‘예쁘게 쓴 손글씨’라고 이해하면 된다. 간혹 캘리그라피를 서예와 혼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징을 가진다. 그렇다면 서예와 켈리그라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서예는 점과 선, 먹의 농담(濃淡), 문자 상호간의 조형미를 통해 완성되고 집필법, 완법 등의 규칙이 정해져 있다면, 캘리그라피는 기본 원리는 서예와 같지만 보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글씨에 감정과 생각, 기분 등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캘리그라피협회 유현덕 회장은 “‘풍선껌’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뾰족뾰족한 글씨체보다 동글동글한 글씨체가 어울리듯 단어 분위기에 맞는 개성 있는 글씨체로 생동감을 살려 글씨를 표현하는 게 캘리그라피”라고 설명했다.
김수영 동년기자
처음엔 느낌을 담아서 글씨를 쓰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럴 땐 단어를 입 밖으로 소리 낸 뒤 써보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따라 해보니 효과가 있었다. 글씨에 강, 약을 표현했을 때 그 느낌이 달라진다는 점이 신기했다.
김종억 동년기자
솔직히 캘리그라피란 용어가 있는지 잘 몰랐다. 단순히 ‘예쁜 글씨네’, ‘잘 썼네’라고만 생각했던 글씨체들이 캘리그라피였다니! 글씨를 쓴다는 점에서는 서예와 다르지 않았지만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캘리그라피의 다양한 활용
개성과 핸드메이드를 선호하는 현시대에 캘리그라피는 새로운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으며 그 활용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기업의 로고, 영화 포스터, 간판 등 폭넓은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소주 ‘처음처럼’의 상표가 있다. 이처럼 캘리그라피의 사용이 대중화하면서 캘리그라퍼, 캘리그라피 자격증, 학원 등이 생겨났다. 유 회장은 “기본부터 다양한 선을 그리는 방법까지 꾸준한 연습이 중요하다”며 “최소 일주일에 한 번씩, 세 시간 이상 투자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조언했다. 캘리그라피를 배웠다면 단순히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엽서, 부채, 머그잔 등 일상 소품에 써넣어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보는 것도 좋겠다.
김수영 동년기자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캘리그라피 교육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캘리그라피를 검색하면 수많은 교육기관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배울 수 있으니 시니어도 한번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특히 한 번 배우면 집에서도 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김종억 동년기자
시니어들이 캘리그라피 자격증을 취득하면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을 것 같다. 재능기부뿐만 아니라 손주들에게도 멋진 캘리그라피 솜씨를 한껏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더불어 창작활동도 함께하면 약간의 수익 창출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캘리그라피
캘리그라피는 누구나 관심만 있으면 도전할 만하다. 물론 악필이어도 상관없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처음 시작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붓 또는 붓펜, 먹, 머루, 종이만 준비하면 끝. 고가 제품의 붓은 필요없다. 초보자에게는 1만 원짜리 정도면 적당하다. 유 회장은 “고가 제품의 붓은 필요 없다. 초보자에게는 선의 질감 등 다양한 표현을 담을 수 있다”며 “캘리그라피를 심도 있게 배우고 싶다면 붓펜보다는 붓으로 시작하는 것을 권한다”고 조언했다. 캘리그라피는 붓의 종류, 잡는 방법, 종이 종류 등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처음 시작할 땐 다른 작품을 따라 쓰는 것보다는 선 긋기, 원 그리기 등의 반복 훈련을 통해 기본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연습이 끝나면 인사말, 계절과 관련한 문구, 명언 등을 따라 써보자. 보다 즐겁게 연습을 마무리할 수 있다.
김수영 동년기자
처음엔 재미있다기보다는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평소에 붓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붓을 먹에 적시는 것부터가 어색했다. 긴장해서인지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붓을 든 손이 바르르 떨리기도 했다. 천천히 써야 하는데 자꾸 마음이 앞서 선생님으로부터 ‘침착하게 쓰라’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성격이 급한 시니어는 캘리그라피를 통해 마음을 다스려봐도 좋겠다.
김종억 동년기자
2시간의 체험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처음에는 서예를 배운 경험이 있어 아주 쉬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각적인 요소를 고민하다 보니 마음처럼 예쁘게 써지지 않았다. 그다음엔 선생님이 쓴 글씨를 따라 써봤는데 웬걸… 더 이상할 뿐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나만의 느낌을 담은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점점 모양을 잡아가더니 마지막엔 꽤 괜찮게 문장을 만들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지속적으로 배워보고 싶다.
요즘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너무 멀게 느껴진다. 4차 산업혁명의 주창자 클라우스 슈밥은 자신의 책 에서 4차 산업혁명을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바이오산업, 물리학 등 3개 분야의 융합된 기술들이 경제체제와 사회구조를 급격히 변화시키는 기술혁명’이라고 정의하였다. 당장 이 말만 들어서는 무슨 얘기인지 와닿는 사람이 그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먼 얘기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은 당장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 얘가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카카오의 카풀 사업 진출이다. 카카오는 4차 산업혁명의 총아인 ICT기술을 활용한 카풀 앱을 통해 출퇴근 시간 택시를 구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의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택시 보완재 역할을 할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택시업계에서는 카카오 카풀이 기존 택시업 종사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택시 대체재라며 반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발전은 분명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고하여 인간의 여러 수고로움을 크게 덜어줄 것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발전이 장밋빛 미래인가는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다. 카카오의 카풀 사업 건처럼 이전 수많은 사람들이 담당하던 업무를 인공지능(AI), 로봇 등이 수행하게 되어 더 이상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게 되고 있다. 따라서 단순 직무 종사 근로자의 경우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인력수요 전망’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9.8%이며, 청년 체감실업률은 22.8%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2030년까지 172만여 명의 고용변화가 예상된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의 발달에 따른 편의를 주겠지만 동시에 가뜩이나 고용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에 고통을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 이러한 대전환에 대비하여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적자본을 육성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와 교육·훈련기관에서도 교육제도 개편 및 재교육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드라이빙할 수 있는 고숙련 인력의 수요는 오히려 확대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고숙련 인력 육성 지원을 통해 4차 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먼저, 미래 유망 분야인 로봇, 바이오화학 등 신사업 분야의 자격 종목을 적극 발굴하고 있다. 오는 12월부터 3D프린터운용기능사 등 5개 종목을 대상으로 수시검정 시험을 시행할 예정이며, 내년 1월에는 로봇기구개발기사, 바이오화학제품제조산업기사 등 12개 종목을 신설하여 시행을 앞두고 있다.
또한, 2016년 7월 개발이 완료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과정평가형 자격을 도입하여 국가기술자격의 현장성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 5년차를 맞는 과정평가형 자격은 특성화고, 전문대학, 폴리텍 등 직업훈련교육기관에서 교육훈련을 이수하고 내·외부평가를 거쳐 자격을 취득하는 제도이다. 올해 부산권역에서는 56개 기관 39개 종목 3092명이 교육훈련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참여자 수가 확대되고 있다.
시대의 변혁기에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불안한 사람들은 안정적인 것만 찾는다. 최근 시니어들은 공인중개사에 열중하여 공인중개사 시험에는 전국 33만 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청년층은 공무원에 몰두하여 공무원 시험은 기본 경쟁률이 100대 1을 넘는다. 그러나 이런 편중 현상이 국가적으로 과연 옳다고 여길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앞서 말했듯 4차 산업혁명은 단순 직무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공인중개사와 공무원의 역할 또한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서 어떻게 변화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할 부분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쓰게 된지는 아직 10년이 채 안 됐지만 이미 스마트폰은 우리 생활의 많은 것을 바꿔버리지 않았는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의 고도화는 분명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기존의 것에 안주하기보다는 新국가기술자격을 통해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은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웃음), 다시 생을 산다면 발레를 하고 싶어요.”
유년기에 발레리나가 꿈이었던 소녀. 그러나 너무 훈련이 고되고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도중에 그만둔 그 소녀는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가수 혜은이의 얘기다. ‘진짜 진짜 좋아해’, ‘당신만을 사랑해’, ‘제3한강교’ 등 수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던 노래들의 주인공인 그녀는 지금 모든 것을 불사르는 듯한 무대를 선보이면서 여전히 가수로서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마음을 확인해봤다.
아이돌이라는 단어는 1990년대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지만, 그 의미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은 있었다. 혜은이를 197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1972년 10월 유신으로 시작되어 1979년 10·26 사건으로 끝나는 1970년대의 엄혹함은, 오히려 그렇게 엄혹했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더더욱 낭만을 꿈꾸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갈망을 채워준 가수가 혜은이였다. 동양적이고 발랄한 얼굴과 그와 대비되는 서구적인 길쭉한 체형. 길옥윤 사단이 만들어낸,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과 그 노래들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가창력. 혜은이라는 이름은 비주얼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당시 대중가요의 가장 세련된 경향으로서 역사에 새겨졌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다
KBS 음악 프로그램 ‘가요무대’ 출연을 준비하는 사이에 대기실에서 만난 혜은이는 조금 살이 빠진 느낌이었다. 10월부터 시작되는 공연들을 준비하느라 그런 것일까. 수도권과 대도시 위주로 했던 지금까지의 공연과는 달리, 이번에는 소도시까지 훑는 공연이 될 예정이다. 그녀로서는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문득 지난 호 남진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지방공연을 갈 때마다 굉장히 신나 한다고 말해준 것이 생각나 그대로 그녀에게 전해줬다.
“어휴, 선배님은 공연 안 하면 못 사는 분이야. 내가 무명일 때 그분 리사이틀에 찬조 출연한 적이 있어요. 열아홉, 스무 살 시절이었는데 공연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시지.(웃음)”
그러나 공연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론 혜은이도 못지않다. 데뷔 이후 어느덧 수십 년 세월이 흘렀고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혜은이의 노래는 더 진화하면 했지 퇴화하지 않았다. 그녀의 공연을 본 사람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예순이 넘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워풀한 그녀의 목소리와 뛰어다니며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젊은 시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관록과 에너지가 공연을 휘어잡고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래가 천직이었다
45년. 공식적으로 혜은이가 데뷔해서 지금까지 가수로서 보낸 시간이다.
“사실은 더 오래됐어요. 정식으로는 45년이지만 어려서부터 아버지 따라서 노래를 불렀으니. 무명 시절이 4년 정도 있었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중에도 이제는 가요계의 대선배가 된 그녀에게 인사하려고 후배들이 끊임없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후배들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최고죠. 노래를 한결같이 똑같이 부르세요.”
한 후배 가수의 말에서는 음악인 혜은이를 향한 존경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한 상태로 노래를 불렀던 것이 아니었다.
“노래를 하면서 이게 나의 즐거움, 천직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어려서는 가장 노릇을 해야 했고, 생계형 가수로 살았죠. 어찌어찌하다 유명해져서 활동을 할 때도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죠.. 첫 결혼이 잘못돼 정신없이 살았고, 두 번째 결혼에서도 난리가 나서….”
쉽지 않은 얘기,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그 얘기였다. 무대 위에서와는 다른 차분한 목소리가 그녀가 견뎌온 세월의 무게만큼 묵직했다.
뒤돌아보면 자식들이 보물
그동안 너무 힘들고 바쁘고 딴 곳을 쳐다볼 새도 없이 일하다 보니 ‘노래란, 가수란 나에게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변화가 찾아왔다. 데뷔 30주년이 됐을 때였다.
“노래가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한 것은 얼마 안 됐어요. 10년 남짓? 15년인가? 그러고 보니 나는 맨날 10년이라고 하네.(웃음) 그제야 ‘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네?’ 깨달았죠. 가수가 아니었다면, 내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녀는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더 많은 행복을 느끼며 살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도 했다 한다. 그러나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이냐며 흐뭇해했다.
“나를 단단하게 만든 거요?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고 하죠. 제 목적은 딸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어떤 모습이든 나를 기다려주는 팬들이 있었고요. 그것들이 제 목적이었죠. 그래서 버텼고 앞으로도 살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없고 자식 둘이 전 재산”이라고 말하는 혜은이는 그 말처럼 딸과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헤어져 살았던 딸과는 ‘30년 기도해서’ 요즘 같이 살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이 정말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면 좋겠어요. 그래서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라고 말해요. 결혼을 하겠다면 하고 아니면 말고. 아들은 요리에 관심이 많아 조리사 자격증 따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딸은 스킨스쿠버 강사로 일하는데 투잡해야겠다고 해서 얼마 전부터 시작했어요. ‘엄마, 한 가지 일로는 돈 못 모으겠어’ 하더라고요.(웃음)”
내 목소리 지키는 게 중요
후배들의 찬탄처럼, 혜은이가 가수로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가수로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 자신은 가수의 의미를 모른 채 오랜 세월을 보냈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가수를 철저히 직업으로서 여겼기에 그토록 자신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가수가 지켜야 할 본분에 대한 신뢰와도 이어졌다.
“옛날 가수들과 요즘 가수들을 실력으로 비교하면 요즘 가수들이 훨씬 잘하죠. 우리 때는 레슨 이런 게 있기나 했나요?(웃음) 타고난 게 있으면 가수가 됐고 작곡가들과 녹음할 때 연습하는 정도였죠. 지금은 기계적인 사운드가 발달해서 깜짝 놀랄 정도로 잘하는 후배가 많아요. 그래도 역시 반짝하는 후배들은 가창력이 없는 후배들이고 10년 넘게 오래하는 가수들은 노래를 잘하는 후배들이에요.”
그렇다면 공식 활동기간이 45년인 그녀의 현재 마음가짐은 어떨까?
“사람은 세월이 지나면서 타성에 젖어서 변하게 돼요. 안 변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저는 요즘 노래를 더 잘 부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옛날의 내 목소리를 지키는 데 더 힘을 쏟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에프엠대로 하는 거예요.”
사실 자기 목소리를 좋아하는 가수는 드물다. 혜은이 또한 임재범의 굵고 허스키한 소리가 좋다고 한다. 그녀의 맑고 소녀 같은 목소리를 떠올리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자신과는 다른 것에 끌리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신곡을 녹음할 때 다르게 부른다고 부르면 노래가 안 되더라고요. ‘선생님, 다시 한 번 불러보실까요. 조금 더 잘하면 좋을 거 같은데’라는 말 듣게 되고. 그러다 결국 찾아내는 건 내 원래 목소리예요. 지금은 옛날보다 노래를 훨씬 잘 불러요. 음량도 더 넓고 풍성하고. 그러나 예전의 그 순수했던 목소리는 못 내죠, 그래서 저에게는 그게 진짜 어려운 거예요.”
혜은이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에 대해 묻자 ‘물론 데뷔곡’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사실 애착 안 가는 노래가 있을까. 콘서트를 하면 시작, 중간, 끝 부분을 대표해야 하는 노래들이 있기 마련이죠. 내 경우에는 그 위치에 분명한 노래들이 있어서 공연 프로그램을 짤 때 편리하긴 하죠.(웃음) 요즘은 모든 공연의 피날레를 ‘열정’으로 맺고 있어요. 나온 지 한 30년 됐나? 그런데 마치 엊그제에 나온 것처럼 불러요.”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시절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 사랑”이라는 가사가 담긴 ‘열정’은 그 가사처럼 활화산 같은 박력과 리듬감으로 관객을 방방 뛰게 만드는 노래다. 그 노래를 들으면 항상 모든 것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혜은이와 비슷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말에 그녀는 다소 씁쓸하다는 듯 말했다.
“옛날에는 그랬어요. 그런데 사는 데 시달리고 힘들다 보니까…. 45년 가수 생활을 했지만 중간 20년 정도는 개인 사정으로 빛을 못 발휘했죠. 내 골든타임을 놓친 거예요. 사실 많이 억울하죠.”
그러나 이대로 그냥 마무리할 혜은이가 아니다 싶었다. ‘다시 새로운 도약을 해보자. 난 할 수 있다’라고 되새겼다. 혼자서는 못하지만 팬들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자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결심이 이번 공연의 핵심이다.
“혜은이를 사랑한 수많은 팬에게 노래로 갚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공연 투어는 중소도시를 꼭 포함시켜야 했어요.”
측은지심에서 시작된 남편과의 의리
혜은이에게 깊은 사연이 된 남편 김동현 얘기를 여기서 반복해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미 너무 많이 얘기됐지 않았나. 그저 조심스럽게 물어볼 뿐이었다. 그 많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부부로서 잘 지낼 수 있었던 지혜가 있었는지. 어찌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지탱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냥, 측은지심. 상대를 불쌍하게 생각하면 되는 거 같아요.”
그녀는 인간의 삶이란 항상 ‘맞다, 아니다’의 두 가지라고 말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사람과 안 살려면 끝을 봐야 하지만, 함께 살려면 불쌍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나름대로 힘들었겠구나. 내가 이렇게 힘든데 당사자인 상대는 얼마나 힘들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이만 봐도 그렇다.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내가 주사를 맞을 수는 없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마음으로는 아픔을 느끼지만 육체로는 느낄 수가 없다. 상대의 아픔을 알 수가 없으니, 그것에 대해 함부로 재단을 해선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제 종교가 기독교예요. 그래서 항상 ‘내가 저 사람 입장이라면’ 하는 생각을 해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이 실수했을 때, 무조건 질책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그동안 인생 공부 무지 많이 했죠. 말로 다 할 수 없어요.(웃음)”
작은 일에 행복을 느끼는 여자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공식적인 혜은이의 출생 연도를 보면 1956년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1954년생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태어났는데 목포로 나가서 호적 신고를 하느라 신고를 늦게 했대요. 호적에 나이가 그리 되어 있으니 다행이다 싶은데 마음이 그리 안 돼.(웃음) 그래도 ‘호적 나이대로 할래’라곤 못하겠어요. 2년이 어디야?(웃음)”
나이 얘기가 나오니 옆에 있던 매니저가 한마디 거들었다.
“팬들이 물어보면 호적이 아닌 실제 나이로 말씀하시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 다들 ‘나는 나이를 줄이고 싶어 죽겠는데 왜 나이를 올리시지?’ 하더라고요.”
“언젠가는 호적 나이대로 할 거야. 아마 칠십이 가까워지면 그럴 수 있을 거야.(웃음)”
인터뷰 말미로 가면서 그녀의 웃음이 더 많아졌다. 준비했던 무대가 끝나서일까? 아니면 긴장이 풀려서일까? 그 웃음 속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그 시절 그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는 공연만 생각하고 싶어요. 뮤지컬도 해봤는데, 뮤지컬은 아쉬운 게 개인 콘서트를 했을 때의 기쁨과 속 시원함이 없어요. 다 같이 하는 거니까요. 지금 나한테 절실한 건 노래하는 거예요. 나만을 위해 노래를 하고 싶어요. 그게 정말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아닐까요.”
많은 어려움과 맞서 싸운 사람
얼마 전 방송에서 혜은이는 45세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골든타임을 놓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그렇죠. 그런데 실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또 그런 고생이 기다리고 있을까봐.(웃음)”
그녀는 오랫동안 미로와도 같은 길을 걸었고, 거듭 출발선에 서야 했다. 묵직한 울림과 고통을 알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더욱 응원한다. 그리고 그녀는 변하지 않는 가수로서의 자신으로 그들에게 보답한다.
“열심히 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가수로서도 아내로서도 엄마로서도 최선을 다했고 많은 어려움과 맞서 싸웠죠. 피하지 않고.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러길 참 잘했다 싶어요.”
혜은이의 시대는 계속 진행 중이다. 무대가 있는 한, 그 시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연일 일자리 정책에 대한 뉴스가 쏟아진다.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700만 베이비붐 세대’까지 은퇴 후 유입되면서 취업 시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경쟁이 심해졌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겐 더욱 일자리가 필요해졌다는 뜻.
정년 후 20~30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시니어 입장에선 단 한 번의 실패도 극복하기 어렵기에, 제2직업에 대한 선택과 도전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하고 선택하는 게 좋을까? 중장년 일자리와 관련해 대표적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대중(金大重·51)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본부장을 만나 물었다.
김대중 본부장은 퇴직자나 재직자의 전직(轉職)지원 분야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많은 정부부처에서 운영 중인 공공부문 전직지원 프로그램은 대부분 그가 개발한 모델을 원형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그가 중장년일자리사업 총괄 본부장으로 돌아왔다. 순환보직으로 4년 만의 귀환이다.
수요 늘었지만 기관 규모는 제자리
과거와 변화가 느껴지느냐는 질문에 김 본부장은 “시장이 확대된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중장년 일자리 지원 사업에 나선 기관이나 지자체도 많이 늘었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장년 일자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서비스의 성격이 개인별 맞춤 서비스보다는 단체를 대상으로 한 획일적인 교육이나 취업 알선에 국한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일자리 정책 하면 우리는 흔히 두 가지를 떠올린다. 바로 교육훈련과 취업 정보다. 구직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기술을 알려주고, 교육훈련을 마치면 갈 만한 일자리를 알려주는 방식. 하지만 김 본부장은 이런 단편적인 접근은 전직자들이 재취업 일자리에서 1년 버티기도 힘들게 한다고 단언한다.
“지금 40대 이상의 중장년들은 적성과 무관하게 전공을 선택하고, 전공과 무관하게 직장을 고른 사람이 많아요. 다시 말하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젊을 땐 학습능력도 있고, 시행착오를 이겨낼 힘도 있으니까 버틸 수 있지만, 중장년이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방황할 수 있는 1~2년의 여유도 없어요. 개개인에게 맞지도 않는 교육과 알선은 오히려 인생 후반부 역시 그분들을 그릇된 길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맞춤형 서비스가 중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 뭔지 알아야
그래서 그가 최근 심혈을 기울인 일이 9월 11일 진행된 ‘신중년 인생3모작 박람회’다. 단순히 구직정보만 나열해 즉흥적인 취업을 유도하기보다는 중장년들이 재취업과 재취업 후의 인생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중장년 입장에선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의 조건들이 정해져 있어요. 본인 진로에 대한 계획 없이 근무 지역이나 급여 등의 조건만 챙기면 전직에 실패하게 돼요. 또 엉뚱한 교육을 받느라 시간만 낭비하기도 하죠. 이런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습니다.”
그가 중장년 일자리와 관련해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구인의 주체인 기업이다. 중장년 구직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꿔주고 싶다는 것.
“나이가 많으면 열정이 없다, 급여 수준이 높다, 고집이 세다는 선입견이 커요. 기업들이 중장년을 고용하지 않으려는 이유죠. 사실은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은데 말입니다. 이러한 선입견을 깨기 위해 임원 대상 간담회나 채용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 등을 늘려나가고 싶습니다.”
중장년이 청년 일자리를 침범한다는 인식도 개선해야 할 부분. 그는 “중장년은 자식(청년) 보살피고 고령의 부모를 모셔야 하는 가정의 기둥이기 때문에 조건 없는 희생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되레 전통적으로 중장년이 해왔던 일자리에 청년들이 진출하는 것이 가정까지도 해체시킬 수 있는 더 큰 문제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인생의 2모작, 3모작을 원하는 중장년들은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까?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열의가 생겨 스스로 공부하고 자기계발에 나서기도 합니다. 또 조건보다는 일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면 구직자가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더라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구직자가 그러니까요. 전국에 있는 저희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는 이런 분들을 위한 전문 컨설턴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진짜 내가 원하는 제2직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강사 일을 시작했다. 은퇴 후 경로당 봉사를 시작했는데,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잘 못해 한국언어문화원에서 스피치를 배웠다. 몇 개월 후 어느 정도 발성 훈련이 된 듯해 대통령기쟁탈 웅변대회 출전해보자 하고 나갔다가 특등을 했다. 그러자 자신감이 생겼고 2년 뒤에 출전한 대회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그 후 우연히 시니어파트너즈 강사 과정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노느니 한번 배워볼까?’ 하는 마음으로 등록했다.
그런데 교육을 받는데 몰라도 이렇게 모를까, 내가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했다. 교육이 끝나면 필기시험을 봐야 했는데 떨어지면 수료증도 못 받고, 실기시험에 떨어지면 강사 자격증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했다. 얼마나 긴장이 됐는지, 동기생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나만 떨어져 망신당하는 꿈까지 꿨다.
병아리 강사에게도 회사에서 강의 기회를 줬다. 그러나 나는 계속 미룬 채 닥학열공(닥치는 대로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며 내공을 쌓았다. 첫 강의는 29명의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졌다. 어떻게 끝났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박수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강단에서 내려오던 순간의 희열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이날을 계기로 나는 강의를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강의의 매력은 신나고 재미있고 보람찬 데 있다. 강사가 마련한 유쾌한 긴장 속으로 이끌려오는 수강생들, 강의의 본질과 개념을 터득해가는 눈빛들, 그 주인공들과 여백을 서서히 채워나가는 뿌듯함이 있다. 온통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사는 이 시대에 눈빛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은 아마도 강사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강사가 되는 데는 어려운 점이 있다. 강사의 기본은 스피치다. 말은 그냥 말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면 그 말은 사람에게 행복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려면 같은 말도 더 맛깔스럽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강의가 끝나고 이메일 혹은 전화로 상담이 들어올 때 이 직업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하며 보람을 느낀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 못 했는데 그런 내가 연단에 서고 강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를 강사로 이끈 우연한 기회, 그 선택을 이제는 천명처럼 받아들인다.
법무부 2017년 통계자료를 보면 일반 교도소에서 출소한 6만 2624명 중 3년 이내에 24.7%가 재복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법무부 교정본부 통계에 따르면 출소 후 창업, 취업에 성공한 출소자 1670명의 재범률은 일반 출소자와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대부분 출소자들이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로 생계 문제를 꼽는 만큼 출소자의 취업이 재범을 방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 맞춰 일반 비영리법인 사회적기업에서 출소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주는 업체가 있어 화제다. 바로 일반기업으로는 최초로 법무부 인가를 받은 한울배터리 사회적협동조합 이명원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출소자들에게 취업은 사회와 출소자를 잇는 가장 효과적인 가교(架橋) 역할이 되고 있다. 이 업체는 갱생보호대상자와 사회취약계층 채용에 중점을 두고 사회 공익을 실천하는 비영리법인 사회적협동조합이며 예비 사회적기업이기도 하다.
이명원 대표는 “전문기술 습득을 위한 직업훈련이 출소자 취업의 질적 향상과 더불어 재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배터리를 판매하거나 출장 교체 서비스 및 갱생보호대상자와 사회 취약계층을 고용해 기술교육을 제공하고 있다”며 “갱생보호대상자 및 사회 취약계층의 안정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교정본부의 구인·구직 만남의 행사에 참여하고, 직업 훈련을 통한 창업을 지원하고, 매출 수익금을 갱생보호대상자와 사회 취약계층, 결손가정 청년 등의 사회 진출과 복귀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명원 대표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사업체를 운영하던 중에 부도를 막기 위해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빚을 갚지 못해 결국 1년 형을 선고받는다. 가족을 생각하며 그 절실함에 절망을 딛고 교육을 통하여 기술을 습득하였고, 모범수가 되어 가석방되었다. 출소 후 유통 분야 10여 년, 배터리 분야 9년 등 20여 년에 걸친 사업 경험을 토대로 서울시에서 3000만 원을 지원받고 무담보대출은행에서 1000만 원을 빌려 그 당시 받은 기술교육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확대하기 위하여 사업자 20여 명을 모아 힘을 합쳤다. 이로 인해 배터리업체를 열어 전국 30여 곳에 지점을 내면서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명원 대표는 “나 자신이 전과자였기에 재소자 내면에 엄습하는 현실적 불안감과 두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재소자들의 성공적인 사회 복귀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재범률을 낮추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일을 하게 된 동기는 갱생보호대상자들은 출소 후에도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다시 방황하며 결국 재범을 하게 되는 상황이 무척 안타까웠고, 당장 먹고살 걱정 때문에, 사회에서의 삶보다 오히려 수감생활이 더 마음이 편하다는 재소자들의 말에 충격을 받아 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자립을 위한 다양한 지원으로 재범을 줄여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은 취약계층과 출소자들의 주요사업 특징과 그중 배터리사업을 대표사업으로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 출소자의 생계를 위한 일자리 창출, 창업지원, 기술교육 등은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것이 중요하기에 그 일환으로 자동차정비 기술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운영 리스크가 적고, 기술습득이 용이한 차량 및 배터리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주요 사업 분야는 차량용 배터리, 산업용 배터리, 정류기반 배터리, UPS 배터리 설치 및 유지보수로, 조합원 모두가 다년간의 차량 및 배터리 분야의 사업 노하우를 지닌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차량에 관한 모든 상담과 업무가 가능하다. 한울배터리 서울 본점을 비롯해 전국 30여 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조합원 모두 개인사업자를 갖고 있어 분류상 사업자 협동조합인 것이 특징이다.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수익금은 사회복지사업에 환원되고, 갱생보호대상자 및 취약계층 결손가정 청년 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업 다각화와 고용 인원 증대에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은 배터리사업을 위주로 하는 시스템분야에서 2017년에 법무부 고용 실적 1위를 기록했다. 또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은 법무부, 교정본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과 연대하여 갱생보호대상자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쳐오고 있으며, 교정본부와 법무보호복지공단과의 유기적인 연대로 많은 공공단체들이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법무부 사회적협동조합의 인가를 최초로 받은 취지와 공로를 인정받아 ‘2016 대한민국 인물대상(사회공헌부문)’ ‘2018 이노베이션 기업 &브랜드대상’ ‘2018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인물대상’ 등을 수상했다.
이명원 대표는 “회사 운영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시 하는 것은 업무 시 직원들의 안전”이라며 “안전한 작업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사회적 적응 능력 배양과 더불어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나 개인적인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이라도 함께 고민하고 들어주며 소통의 시간을 갖는 직장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고 전한다.
한울배터리사회적협동조합은 향후 출소자들 모두가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데 중점을 둘 예정이다. 올해부터 사업 영역을 확장해 갱생보호대상자들을 위해 기숙사를 설립하여 편안한 환경을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정비소 개설, 여성 출소자를 위한 크리닝사업부 신설 등을 계획하고 있고, 조합원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해 출소자들의 경제 자립 프로세스 마련을 위한 방안도 꾸준히 마련할 계획이다. 향후 갱생보호대상자들에게 문턱이 높은 일자리, 기업 외면의 본질적 문제점을 분석·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술교육을 병행·고용을 확대함으로써 일자리 창출에서 나아가 창업을 위한 단계적인 서비스를 펼쳐나간다는 방침이다.
경사이신(敬事而信)의 마음으로 ‘함께 나눔, 함께 행복, 함께 발전’을 위한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노력하는 이명원 대표는 “갱생보호대상자의 창업교육과 기술교육, 각 구치소 및 교도소 교정본부 산하기관의 구인·구직 만남의 날 행사에 지속적으로 적극 노력할 예정”이라 밝혔다.
택시운전사를 선망하던 시대가 있었다. 차량의 증가를 운전자가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던 시절. 그때만 해도 운전면허증은 우월함의 상징이었다. 미래에도 그런 시대가 올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바로 최근 유행하는 드론 얘기다. 이제 드론은 사람을 나르고, 농기계로 쓰고, 짐을 배달하고, 군사용으로도 쓰인다. 현재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드론을 보면 자동차 문화가 시작되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자동차도 처음 나왔을 땐 지금의 용도를 상상하지 못했다. 드론도 그렇다.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이런 급격한 성장은 시니어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할까.
드론을 정확히 정의하면 무선전파로 조종할 수 있는 무인항공기를 뜻한다. 드론 하면 떠올리게 되는, 프로펠러가 여러 개 달린 형태의 비행체 외에 정찰이나 지상목표물 공격 등 다양한 임무를 맡고 있는 군용 무인비행기도 드론에 속한다. 우리가 드론이라고 생각하는 비행체는 항공안전법상 무인비행장치에 속하는 무인멀티콥터다. 프로펠러가 여러 개 달려 멀티콥터라고 부르는데 장비에 따라 대개 4~6개의 프로펠러가 작동한다.
드론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계기는 역시 기술 발전 때문이다. 과거 드론 형태의 원격조정 비행체는 제 몸 하나 띄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늘로 날아올라도 조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원격조정 헬리콥터는 동호인 사이에서도 난이도가 최고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조종이 어렵다. 그러다 약 5년 전부터 드론이 일반인에게 보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카메라를 거뜬히 싣고 날아올랐고, 방송용 헬리콥터에 사람이 타고 촬영한 것보다 떨림 없는 안정된 화면을 제공했다. 적재할 수 있는 무게도 늘고, 조종이 쉬워지면서 드론의 용도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방제 조종사 성수기에 연소득 올려
대표적인 드론 관련 직종은 역시 영상이나 사진 촬영 분야와 연관이 있다. 이미 드론을 활용한 항공촬영 업체가 여러 곳 성업 중이다. 일반 방송촬영뿐만 아니라 기업 홍보용 영상, 지도제작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
또 다른 유망 직종 분야는 농업. 그중에서도 드론을 활용한 농약 살포가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농업용 드론 시장은 세계적으로도 급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드론 조종사의 평균 연봉이 약 1억원에 이른다는 발표도 있었다. 상용 드론 시장의 세계 최강국으로 불리는 중국은 넓은 농토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본은 농촌의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드론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방제용 드론의 도입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5년부터 농약살포용 드론을 ‘무인항공방제기’로 분류해 정부융자지원 대상 농기계로 등록시키고 있다. 아직은 중국산 업체가 시장을 선점하고 있지만 국산 업체들도 하나둘 뛰어들고 있다.
업계에선 드론을 이용한 수요가 늘면서 “3개월 일하면 1년 쉬어도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능숙한 드론 조종사는 월 소득이 300만~5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농약 살포시기가 정해져 있고, 아직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 일부 지자체에선 공동구매 형식으로 지역 농민을 대신해 드론 방제업체와 일괄 계약하기도 한다. 산업용 드론은 12kg이 넘으면 자격증 소지자만 운용이 가능하다. 농가에서 정부 융자를 통해 드론을 구매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운용하려면 자격증을 따야 하는 등 쉽지 않다.
농약 살포에 드론 활용이 선호되는 데에는 시간 절약뿐만 아니라 그 효과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농민 5~6명이 하루 종일 살포해야 하는 면적을 드론은 한 시간이면 방제한다. 게다가 사람이 뿌리는 방식은 농약이 비처럼 떨어져 농작물의 윗면만 도포가 되지만, 드론으로 방제할 경우 강한 바람으로 와류가 발생해 농약이 앞뒷면에 골고루 묻는다. 면적당 농약 사용량도 줄일 수 있어 토양 관리에도 유리하다.
국내에서 대표적 드론 개발 기업으로 알려진 바이로봇의 홍세화 이사는 “방제용 드론은 아직 모든 조정을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는 수준이지만, 현재 개발 중인 제품은 방제 지역의 위치나 면적을 사전에 입력하면 자동으로 농약이 살포되고, 살포된 양까지 빅데이터로 기록해서 농작물의 생육까지 관리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로봇에선 완구용 드론 생산뿐만 아니라 어린이 대상의 드론 코딩 교육도 하고 있는데, 드론의 위치, 고도, 동선, 비행시간 등을 프로그래밍해서 드론 동작을 제어하는 것이다. 이런 코딩 방식이 산업용 드론에 적용되기 시작하면 방제 등 드론을 응용한 각종 작업이 간편해진다.
이 밖에도 드론은 사람 손이 미치지 못하는 여러 분야에 쓰인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드론 조종자를 미래 유망 직업으로, 한국고용정보원은 5년 내 부상할 새로운 직업으로 선정했을 정도. 군이나 경찰, 소방 등 공공기관에서 드론 운용 전문가 수요는 꾸준히 늘 것으로 예상된다. 수색이나 정찰, 구조 작업에 드론이 쓰이고 원자력 발전소 같은 주요 건축물 점검이나 교통 상황 분석 등에도 활용된다.
자격증 취득 비용은 300만원 선
기본적으로 완구나 경량 드론은 비행 가능 지역이라면 누구든 날릴 수 있다. 그러나 12kg이상의 무게가 나가는 드론은 초경량 비행장치 비행자격증명 중 무인회전익비행장치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14세 이상의 운전면허나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한 수준의 신체검사증명이 있는 사람이면 지원할 수 있다. 또 국토교통부와 교통안전공단이 지정한 기관에서 20시간 이상 비행 경력을 쌓아야 한다. 파일럿의 숙련도를 인증받은 비행시간으로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다. 비행시간을 쌓기 위한 비행은 교관 입회 하에 휴일과 날씨가 안 좋은 날을 제외한 날 중 낮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획득하기는 어렵다.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은 시니어가 자격증 취득에 유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격증 취득은 학과시험을 본 후 항공이론 구술과 실제 비행시험을 거쳐야 한다. 자격 취득을 위한 지정 교육기관은 항공교육훈련포털(www.kaa.atims.kr)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조종자격 취득 희망자는 포털을 통해 국내 모든 전문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이나 교육기관에서 이수한 교육이력 및 증빙자료, 자격증명 취득 방법 등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올해 자격을 획득한 인원은 지난 2월까지 총 1536명. 그간 전문교육기관이 부족해 배출 인원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각종 규제혁신, 조종교관 요건완화, 교육기관 설립지원 등을 통해 전문교육기관이 확대돼 지난해 교육수용 가능인원 994명에서 두 배가량인 1700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수강생이 부담해야 할 교육비는 기관마다 다르지만 국가자격증 과정은 약 300만원 내외다.
시니어 취미로도 안성맞춤
전문가들은 드론이 시니어에게 알맞은 분야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직업이 아닌 취미로 즐길 수도 있고, 또 맘만 먹으면 충분히 수익 사업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한국드론교육협회 이재윤 대구시협회장은 “시니어들이 드론을 배우고 나면 집중력도 늘고 손주나 다른 가족에게 아직 늙지 않았음을 자랑하는 계기로도 삼는다”며 “드론 조종이 산책이나 운동을 유도하고, 치매예방 등 교육 외적인 효과도 있어 노인대학 등에서 학과개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드론은 잘 알려진 촬영이나 방제뿐만 아니라 드론의 유지 보수, 강사 등 다양한 직업 창출 효과가 기대되고 있으며, 조종교관자격 취득이나 숙련도를 확보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니어에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부산인적자원개발원과 함께 시니어드론기술창업스쿨을 운영했던 동의대학교 임환섭 교수도 “모집과정에서부터 시니어가 상당히 높은 관심을 보였고 결과도 성공적이었다”며 “드론과 관련한 창업에 성공한 분과 수료생들의 취업 소식을 접했는데, 보람과 함께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또 방제업계 관계자들은 만약 귀촌을 고려하고 있다면 지역 주민들의 인심을 얻는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귀띔한다. 귀촌의 성공은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관계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드론 방제 기술이 있다면, 연고가 없거나 마을발전기금을 내놓지 않아도 환영받는 존재가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도슨트(docent)’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작품을 관람객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전시 해설자다.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게 해주며,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또 미술관, 박물관이라는 장소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도슨트는 ‘지킴이 역할’도 함께한다. ‘지킴이’란 전시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다. 미술관에 따라서 전시 해설과 지킴이 역할을 구분 없이 함께하는 곳도 있고, 철저히 분리된 곳도 있다.
‘도슨트’에 도전하다
시니어가 되면 젊었을 때 하던 일들은 웬만하면 정리하고 정신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지려는 사람이 많다. 대신 용돈 정도만 벌 수 있는 일거리를 원한다.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즐길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들 만한 취미를 찾기 위해, 여러 교육기관에서 이것저것 배워보지만 잘할 수 있고, 재미도 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본인에게 꼭 맞는 취미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도 그랬다.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에서 여러 교육을 받아보다가 겨우 만난 것이 ‘도슨트’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가능
전시품을 수집하고 기획해야 하는 큐레이터는 전문지식이 많아야 하지만, 도슨트는 전문지식이 없어도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교육 과정을 거쳐 도슨트로 활동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에는 정기적으로 도슨트를 선발해서 교육을 시키고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원봉사는 비용을 받고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도 무료다. 그러므로 도슨트 입문에는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지원 정보를 알 수 있다.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하고, 실력과 경력을 쌓은 후 원한다면, 자연스럽게 급료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직업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현재 유일하게 교육을 시켜 자원봉사가 아닌 급료를 받고 일할 수 있도록 취업 알선을 해주는 곳이 서울시어르신취업훈련센터다.
이곳의 교육 프로그램은 시니어 도슨트로서 취업을 했을 때의 마음가짐, 서양미술사, 한국사, 설명할 원고작성,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지켜야 할 예의와 관람객들을 대하는 자세 등을 가르친다. 필자도 이곳에서 교육과정을 마친 후, 취업 알선을 해줘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관람객과 공감대 형성이 요령
작품을 전시할 때는 항상 작품 설명을 써둔다. 그런데도 읽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다. 관람객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 설명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함께 얘기해주면 즐거워하면서 다른 관람객한테도 꼭 설명해줄 것을 부탁까지 한다. 다른 관람객도 본인처럼 안 읽고 가면, 이렇게 좋은 내용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에서다.
시니어가 설명을 해주니까 젊은 사람이 설명해주는 것보다 이해가 잘되고 더 크게 감동된다고, 고맙다고, 기뻐하며 갈 때면, 필자도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다. 실제로 관람객들도 필자가 설명하는 것을 볼 때면 참 행복해 보인다고 말하면서 그들도 즐거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람객도 행복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필자도 행복하고, 이렇게 관람객과 도슨트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것이 하나의 재미이면서 보람이기도 하다.
도슨트 활동이 가져다준 삶의 변화
도슨트를 하기 전에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늘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관람객들과 작품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필자의 삶의 가장 큰 변화다.
시니어가 하면 시너지 효과 더 좋다
젊은 사람들은 아직 부족한 다양하고 소중한 경험들을 시니어는 갖고 있다.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아둔 경험들을 녹여내 도슨트 활동에 덧입힌다면 관람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이 만족스러워하는 도슨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관람객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젊은 사람보다 시니어가 해야 시너지 효과를 더 낼 수 있고, 시니어에게 특히 좋은 취미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직 취미를 찾지 못한 시니어에게 ‘도슨트 활동’을 취미로 삼아볼 것을 적극 권하고 싶다.
도슨트 Tip
첫째, 설명할 때 긴장하면 관람객과 소통이 안 된다.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 또는
가족과 이야기하듯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둘째, 작품 설명은 핵심만 몇 개 골라서 설명한 후 흥미를 끌 수 있고 의미 있는 소재
중에서 작가나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때 세대별로 공감할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춘다.
셋째, 시간 배정이 중요하다. 설명은 풀타임의 80%만 하고, 나머지는 질문을 받는다.
사람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30분이 넘어가면 지루해한다.
넷째, 과도한 복장과 구두, 액세서리, 헤어스타일은 전시 관람에 방해가 된다.
전시 작품보다 시선이 집중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관람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편안한 복장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