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드디어 매미의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동네에 갑자기 여름이 왔다고 알려주는 듯 매미가 일제히 소리를 냈다. 우리 동네는 산 밑이어선지 뒷동네 숲속에 여름이면 매미의 노랫소리로 가득했고 아파트 마당에도 시끄러울 정도로 많은 매미가 노래를 불렀다.
아들이 어릴 적, 친구들과 매미채를 들고 매미를 잡으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언젠가는 지인이 자기네 동네에는 매미가 없는데 아이의 여름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이 있다며 우리 아파트에 와서 아이들이 잡은 매미를 가져가기도 했다. 지인은 숙제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 좋았고 동네 아이들은 아줌마가 사준 아이스크림에 즐거웠던 추억이 있다.
매미가 지천이니 그렇게 잡는 걸 개의치 않았는데 사실 매미의 일생을 알면 함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매미는 알에서 애벌레로 변한 후 땅속에 들어가 나무즙을 빨아 먹으며 7년을 기다린다고 한다. 7년이나 땅속에서 지내다 드디어 지상에 나오면 2주나 한 달 정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니 참 안쓰럽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될 것 같은 곤충이다.
소리를 내는 매미는 수컷으로 7년 동안의 보상이라도 받을 듯 짝짓기할 암컷을 찾으려 그렇게 노래를 부른 후 짝짓기 후 죽는 운명이다. 암매미는 산란관이 있어 소리 내지는 못하고 짝짓기 후 많은 알을 나무에 낳고 죽는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의 종족 보존의 의무는 지켜지는 것이다.
7년을 기다려 세상에 나와 두어 주를 살고 죽는다니 애처롭기도 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매미의 본분을 다하려고 노력할지 안타깝기도 하다. 저렇게 시끄러울 정도로 소리를 내는 건 아직 짝을 찾지 못해서라니 매미 소리를 즐기긴 하지만 마음 아픈 일이다.
잘 들어보면 매미의 소리엔 패턴이 있다. ‘맴맴맴맴 매에에에~’를 반복한다. 소리는 청량하고 울림이 크다. 거실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듣는 매미의 노랫소리는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는 한편의 세레나데 같다. 멀리서 울어도 그 소리는 정확하게 귓가에 머문다.
집안일을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너무나 큰 매미 소리에 깜짝 놀랐다. 살펴보니 거실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가 붙어서 큰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라디오 볼륨을 크게 한 것처럼 집안이 울렸다. 건너편 숲에서 우리 집 창 방충망까지 날아온 매미가 반가웠다. 살포시 마주 보고 앉아 날카롭기도 하고 청량하기도 한 매미의 세레나데를 들었다. 내가 마주 보고 있는데도 계속 울어대서 여기는 암매미가 없는데 어쩌지? 하며 방충망을 톡 건드리니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여름 소식을 좀 더 들을 걸 조금 후회하며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는 전령사 매미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졌다.
정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곤충의 일생처럼 사람도 사는 동안 후회 없는 아름다운 삶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집은 딸과 아들이 애를 둘씩 낳아 손주가 넷이다. 식구가 늘다 보니 가족들과의 소통을 위해 단톡방을 개설하기로 했다. 필요한 소식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사소한 집안일이나 유익한 생활정보까지도 올려놓는다. 그런데 한 달 전 딸애가 사진으로 찍어 올린 톡 내용은 매우 황당하기도 했고, 애들이 어른들에게 한 방 펀치를 날리는 충격을 주었다.
사연은 이렇다. 올해 초등학교에 간 지 2개월밖에 안된 셋째 손녀가 학교숙제를 집에 와서 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숙제의 교육내용은 ‘식구들이 같이 돈을 모았다면 가족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이 돈을 어려운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면 더 좋다’는 취지였다. 이런 설명을 한 후에 애들에게 질문을 통해 선한 행동으로 유도하려는 학습 내용이었다.
“만약 여러분의 가족이 함께 모은 돈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집을 살 거예요!”
“그와 같이 생각한 까닭을 써보세요.“
“엄마가 자꾸 부동산에 가서….”
실은 딸애가 몇 달 전부터 학군이 좋은 강남 쪽으로 이사해볼까 해서 전셋집을 물어보러 복덕방에 다니고 인터넷에서 자주 부동산을 검색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어린 애들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 본 대로 들은 대로 배우고 어른들을 따라서 행동을 한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어이가 없고 황당해하는 딸에게 무슨 답을 할까 하다가 나는 이렇게 카톡에 올렸다.
“애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란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자란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어린애들에 그치지 않으며 성장을 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누구든지 부모들은 자기의 애들이 핸드폰에 무어라고 입력해두었을까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엄마, 아빠라고 그대로 찍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해 송년회 모임에서 외교관 출신 정부 고위관료였던 국장이 실토한 실제 이야기다.
모처럼 일요일 집에 있는데 갑자기 고2에 다니는 딸애가 학원을 가려고 나서던 차 핸드폰이 안 보인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혹시 집 어디엔가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니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때 그가 파자마 차림으로 앉자 있던 소파 밑에서 전화가 ‘삐르르’하고 울렸다. 평소 딸애한테 아빠로서 최선을 다해주었다고 생각해왔던 그는 딸이 핸드폰에 무어라고 입력해놨을까 궁금하던 차에 이를 확인해볼 절호의 기회라 생각되어 흘깃 바탕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왕 짜증!’
순간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애지중지 키우며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았고, 인생을 헛되이 살아온 박탈감까지 일 다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도저히 그 마음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어서 마음을 달래려고 집을 나와 평소 다니던 절로 달려가 스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스님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만 던졌다.
“다 업보입니다. 그 답은 오직 거사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때 TV프로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본 기억이 났다. 아이가 문제라고 생각하던 부모들이 CCTV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단지 부모를 따라 할 뿐이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자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 생각났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한참 지난 뒤에야 모든 게 다 나의 잘못임을 깨달았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등교해서, 학교로 학원으로 하루 16시간을 공부에 지쳐 녹초가 돼 들어온다. 현관문에 들어서는 딸을 보고, '얼마나 힘들었냐' 위로는 고사하고 ‘빨리 씻고 공부 좀 더 하다 자라’고 다그치기 일쑤였다. 또 한 달 내내 죽도록 고생하고 시험 봐서 성적표 받아오면 수고했다는 격려는 못 할망정 ‘너는 아빠 닮아서 머리는 좋은 데 노력을 안 해서 이렇다’라는 둥 몰아붙이기만 했으니…. 짜증이 날 만도 하다. 왕짜증 맞다!
그 뒤로 개과천선이라고나 할까. 예전과는 완전히 달리 딸애의 입장에 서서 친구 같은 눈높이에 맞게 화법 먼저 바꾸었다. 무조건 잘 해주고 베풀기보다 딸애가 원하는 쪽으로 하나씩 다가갔다. 처음에는 서로 너무 어색했지만, 서서히 딸애의 태도와 행동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2년 뒤 대학에 들어간 딸이 아버지의 생일이라면서 일찍 집에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따라 설레는 맘으로 딸이 무슨 말을 할까 너무도 궁금했다. 빨간 장미꽃 몇 송이와 함께 딸애가 준 최고의 선물은 스마트폰에 찍힌 왕짜증이 이렇게 바뀐 문구였다.
‘대한민국 최고 울 아빠!’
살아가는 데 음식은 꼭 필요하다. 요즘은 과잉 섭취 때문에 고민이거나 다이어트가 큰 관심사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집 안 물건을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간소하게 먹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TV를 틀면 넘쳐나는 쿡방, 먹방 프로그램. 과거의 요리 프로그램은 전문가가 나와 요리법을 시연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음식점을 컨설팅해주거나 여행과 결합해 외국의 맛집까지 탐방하는 등 계속 진화 중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이 미식과 여행에 관심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먹는 즐거움이 영원히 가능하면 좋겠지만, 시니어는 노화로 인한 신체 기능 저하로 식생활에 제한이 생긴다. 그래서 최근 고령화 사회가 심화되며 시니어를 위한 식품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시니어 식품 시장 규모 갈수록 늘어
바나나, 두유, 두부, 청국장의 공통점은? 고령화로 매출이 성장하고 있는 식품들이다. 1인 가구와 고령화로 간편식을 찾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식품의 매출 판도도 달라지고 있다. 과일도 깎지 않고 씻기만 해서 간편하게 먹는 과일이 인기다. 유통회사나 식품 관련 기업들은 이런 흐름을 파악하고, 매장 진열은 물론 시니어 식품 시장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7명 중 1명인 고령화 사회다. 또 황혼이혼이나 사별로 인한 노인 1인 가구도 늘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삼시 세끼는 필수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시니어 식품 시장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기업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시니어의 식생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의 유명한 욕구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하위 단계에서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즉 가장 하위 단계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인 안전 욕구가 충족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인들의 식생활 사정은 심각해 보인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가 노인 28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6명 중 1명은 영양 섭취가 부족했다. ‘영양 섭취 부족’은 1일 권장 열량 섭취량(남성 2000kcal, 여성 1600kcal)의 75% 미만에 해당하고, 칼슘 등의 섭취량이 평균에 못 미치는 경우를 말한다. 칼슘은 전체의 약 82%, 지방은 약 71%나 부족했다. 단백질이 부족한 노인도 약 31%나 됐다. 이렇게 영양이 부족하면, 신체의 대사기능이 저하되고 면역체계에 이상이 온다. 최근 한 기업에서 40~80대 부모를 둔 자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절반이 끼니를 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귀찮다(26%), 소화가 안 된다(22%)는 이유로 식사를 하지 않았다.
시니어는 연령대에 따라 건강상태도 다르다. 스스로 식재료를 준비하고 식사를 챙길 수 있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노화로 신체 기능이 저하되어 혼자 식사를 챙기지 못할 경우가 문제다. 나이가 들면 왜 식사하는 데 불편함을 겪게 되는 걸까. 그것은 몇 가지 신체 변화 때문이다. 우선 미각의 변화다. 혀에서 맛을 느끼는 미뢰가 크게 줄어들면서 미각이 둔해지는 탓에 짜거나 달게 먹게 되어 당뇨와 고혈압 위험이 커진다. 그다음으로는 저작(咀嚼) 장애다. 치아와 잇몸 손상으로 음식 씹기가 힘들어 영양 섭취가 어려워진다. 또 연하(嚥下) 장애(삼킴 장애)로 음식물이 기도나 폐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소화액이나 연동운동 감소로 인한 소화 장애도 생긴다. 이러한 여러 장애 때문에 고령자를 위한 별도의 식품과 서비스 개발이 시급한 것이다.
실버 푸드가 발달한 일본
고령친화산업 진흥법에 따르면, 고령친화식품은 ‘노인을 위한 건강기능식품 및 급식 서비스’로 정의된다. 건강기능식품, 특수의료용도식품, 두부류 및 묵류, 전통 및 발효식품, 인삼과 홍삼 제품이 여기에 포함된다. 농림축산식품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고령친화식품 시장 규모는 출하액 기준 2011년 5104억 원에서 2015년 7903억 원으로 약 55%나 급증했다. 2015년 국내 전체 식품 시장 규모로 보면 아직 1.5% 수준으로 비중이 미미하지만, 고령화 속도로 볼 때 급성장이 예상된다.
같은 보고서에서 소비자 조사 결과를 보면, 고령친화식품은 영양분과 소화 용이, 저작과 연하 용이 순으로 중요했다. 또 60세 이후 건강한 간식을 챙겨 먹거나, 영양보다는 소화가 잘되는 식품의 소비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시니어를 위한 식품과 서비스 산업이 크게 발달해 있다. 일본은 전체 인구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노인이다.
이들을 위한 고령친화식품을 일본에선 개호(介護)식품이라 표현한다. 일본개호식품협의회는 유니버설 디자인 푸드(UDF, Universal Design Food)로 식품의 굳기와 점도를 고려해 규격에 맞춘 식품을 판매한다. 유니버설 디자인 푸드는 쉽게 씹을 수 있는 1단계부터 삼킬 수 있는 4단계까지 구분된다. 이후 2014년부터 개호식품은 스마일케어식(Smile Care Foods)으로 명칭을 바꿔 판매 대상을 넓혔다. 개호 예방을 위한 식품부터 무스나 젤리 상태의 식품까지 범위도 넓다. 이런 음식들은 외관상으로는 차이가 없이 물성을 변화시킨다.
심화되는 고령화, 실버 푸드 시장 온다
나물 종류의 채식을 좋아하는 시니어도 있고 육식을 선호하는 노인도 있다. 또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은 식단 조절이나 영양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래서 고령자를 위한 식품은 만성질환을 위한 건강식, 끼니를 챙기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한 간편식, 저영양 상태를 보충하는 영양식, 건강이 악화된 사람의 간병식 등 세분화되어야 한다.
신체가 쇠약해져 이동이 어려우면 식재료를 사러 다니기도 힘들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구매 난민, 쇼핑 난민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한 편의점이 진화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배달하고 노인을 위한 식품을 판매하거나 이동 점포까지 운영한다. 또 상품배달뿐 아니라 고령자 혼자서 하기 힘든 전구 교체 등의 집안일까지 지원해 인기다.
우리나라도 최근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고령친화식품 한국산업표준(KS)을 제정했다. 식품기업들도 고령자를 위한 식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요즘 시니어는 미식과 간편식을 즐긴다. 고령친화식품 시장은 이제 막 걸음을 뗀 상태이지만, 시니어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식품과 서비스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이나영 시니어 전문 칼럼니스트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차의과학대학교에서 고령친화산업학을 전공했다. 한화그룹과 신한은행에서 근무했다. 현재 경향신문에서 고령사회 담당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며, ‘이나영의 고령사회 리포트’를 연재하고 있다.
작은 농촌 지역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고객의 대부분은 60대 이상입니다. 평균연령이 60대 이상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온화하거나, 무표정한 표정으로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하듯 한 분이 천천히 사무실로 입장했습니다.
더러는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물과 차를 마시러 오기도 합니다. 또는 햇살이 따사로운 앞마당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기도 합니다. 또 어떤날은 생뚱맞게 묻지도 않은 소식이나 의견을 전달합니다. 본론을 듣기까지 한참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 시계는 천천히, 평화롭게 갑니다. 다시 생각하면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삶’의 속도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대표선수 몇 분만 소개하겠습니다.
1. 머리에 곱게 힘을 준 P
아이고, 여기는 참 좋네. 다른 곳에 여행 가지 않아도 되겠네. 사무실이 산 아래 아늑히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네. 나도 이런 곳에서 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젊은 시절에 학교 선생이었거든. 아이들이 어찌나 떠드는지, 매일매일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래서 집에 가면 내 자식들에게 유독 엄격했지. 왜 그랬나 몰라. 지금도 살갑게 대하는 게 잘 안 돼. 다른 일을 했으면 좋았을 것을.
2. 보석 같은 아들을 둔 K
우리 며느리 또래 되겠네. 나는 그 친구가 어려워. 우리 아들을 너무 부려먹어. 고기도 아들이 굽고, 설거지도 아들이 많이 해.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해. 그래서 싫어.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만나면 스트레스 받아. 아들이 너무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 나는 상관없어. 그래서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잘 만나지 않아. 대화도 별로 없어. 각각 살아가는 거지 뭐.
3. 43세 아들 학비 대는 N
아들이 미국에서 파일럿 공부를 하는데 돈이 필요해! 이제 그만하면 좋으련만. 참 똑똑한 아이였는데. 공부도 정말 잘했어. 서울에 있는 K 대학교를 갔거든. 동네에서 제일 공부를 잘했어. 그런데 나도 늙어가는데, 이게 마지막 논인데…. 어쩌겠어. 공부를 꼭 하고 싶다는데…. 나야 뭐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촌(村) 에서 살면 돈도 별로 안 들어.
서로 다른 이유로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았을 우리의 시니어. 그들에겐 큰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짝사랑, 끝도 없는 사랑 바로 ‘자녀 사랑’입니다. 대부분의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라는 거 아시죠? 짝사랑을 받은 자식들은 그 벌로 또다시 자신의 자식들을 짝사랑하겠죠.
필자는 대표선수들이 입장해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마다 흥분하며 목에 핏대를 세웁니다. 인생은 뭐가 되냐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한평생 일만 하다가 죽는 노예도 아니고, 자식은 자식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아야지 그런 식으로 살면 절대 안 된다고. 요즘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세상이라고.
한참을 듣곤 지긋한 표정으로 고개도 끄덕입니다. 분명 동의하는 표정 같습니다. 뿌듯합니다. 분명히 앞으로는 다르게 살 것 같습니다. 내 말에 100%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충격적인 한마디에 필자는 모든 희망을 내려놓습니다.
“난 돈 필요 없어.”
필자가 이렇게 종종거리는 이유도 다 돈 때문인데, 돈이 필요 없다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겸손하게 살아가나봅니다. 돈보다 자식이 무섭고, 돈보다 자식이 어렵고, 돈보다 자식을 사랑합니다. 필자도 조금은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끝없는 짝사랑은 이제 제발 그만두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랑은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
미안하고,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3년 전, 공기업 지방 지점장을 할 때 일이다. 서른 살 후반인 사무실 여직원 K양이 나에게 자동차 구매에 대한 자문을 구해왔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여자상업고등학교를 나와 근검절약하며 어렵게 살아온 K양이었다. 집도 회사에서 가까웠기에 자동을 왜 사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자동차를 사면 주로 어디에 쓸 거냐고 말이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 아니고요. 남동생이 쓸 자동차예요.”
동생은 결혼도 했고 자동차도 가지고 있는데 차를 바꿀 계획이라고 했다. 이미 자동차를 사 본 경험이 있는 동생이 굳이 누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는 것일까? 나로서는 황당했다. 결혼도 했다면서 아내가 아닌 누나와 상의 하냐고 물었다.
“지점장님! 다 아시면서요. 동생 속마음은 누나에게 돈 보태달라는 거지요.”
결혼하지 않은 누나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한 것이란다. 사실 누나가 정해주는 자동차는 참고만 하고 동생 부부가 상의해서 살 거라고 했다. 지금까지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면 제사 장보기부터 제사상 차리기까지 도맡아온 그 집안 장녀 K양. 딸이지만 맏이로서 집안일을 챙기고 결혼까지 한 동생까지 돌보고 있었다. 아름다워 보이는가?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생이 마냥 마마보이로 미숙아로 보여 K 양이 안쓰러웠다. 누나가 동생을 도와주는 행동이 형제간 우애라기보다 독립과 자립심을 갉아먹는 일처럼 느껴졌다. K양에게 말했다. 동생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게 하라고 말이다. 앞으로 K양도 결혼해야 하고 할 일이 많은데 독립 못 한 동생이 자꾸 눈앞에 얼씬거리면 인생이 점점 비참해진다고 조언했다. 누나에게 의지하지 못하게 따끔하게 말하라고 했다. 그 말을 직접 하기 어려우면 내가 대신 말해줄 테니 데리고 오라고도 했다. 며칠 후 K양에게 물어봤다. 차종 고르는 것을 비롯해 동생 집안일에 관해서 상의하지 않기로 얘기했단다. 대신 이번에 5백만 원을 도와줬다고 했다.
몇 해 전, 방송에서 자식이 게임중독에 빠져 울고불고하는 부모의 일화를 본 적이 있다. 일이 바빠 어린 자식을 잘 돌보지 못하는 대신 돈만 열심히 손에 쥐여준 것이다. 부모로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게임 중독자가 돼 버리고 말았다. 어린 시절 자식은 부모 주머니가 화수분인 줄 알고 크기 마련이다. 성장을 하다가 독립심을 길러야 하는 시점을 놓쳐버린다면? 다 큰 자식이건 어린 자이건 부모 등에 빨대 꼽고 계속 부양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K양처럼 형제간에 돈을 잘못 다루면 원수가 되거나 더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나이에 걸맞는 독립심을 가져야 제대로 된 성인으로 살 수 있다. 그저 도와만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의 인생 경험이다.
지금은 흔히 쓰이는 말인 ‘섹시 디바’.
그 말에 어울리는 가수로 민해경(본명 백미경·56)을 꼽으면 수긍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보고 싶은 얼굴’,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사랑은 이제 그만’, ‘미니스커트’ 등의 히트곡은 민해경 특유의 이국적인 인상과 더불어 한국 대중가요계의 이단아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독보적인 섹시함과 고혹적인 보이스, 시원한 가창력 등은 한국 가요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탤런트였다. 최근 소극장에서 열린 ‘대학로 릴레이 콘서트’를 통해 관객들과 특별한 시간을 함께한 그녀를 만났다.
민해경이라는 가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인상들이 있다. 열정, 섹시한 눈빛, 파격, 허스키한 목소리, 카리스마 등등…. 그 인상들을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해경은 쎄다’. 그런데 과연 무대 뒤의 그녀 또한 정말로 그토록 ‘쎈’ 사람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사람마다 사람을 보는 시선은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떤 연예인이든 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게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릴 순 없으니 느끼는 대로 그대로 생각하는 것도 고마운 일이긴 해요. 하지만 사람의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리라 믿거든요.”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가수 민해경
올해가 데뷔 40주년. 민해경은 지난 시간을 ‘만만치 않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에 메여 사는 사람이 아니다. 과거나 추억에 집착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과거가 있어 자신이 있는 것이 맞지만 현재에 더 많이 집중하고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미래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뭔가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사는 삶을 거부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이미 그런 삶을 너무나도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굉장히 중요한 게 마음의 평화잖아요. 돈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불행한 것도 아니고요.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삶이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행복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노래를 하든 안 하든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평화로워요. 돈이 없어도 평화로운 사람들이 있듯이. 생계 때문에 노래를 해야 했고 너무 어렸을 때부터 치열하게 살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최선을 다해 견뎌온 삶이잖아요.”
말하자면 그녀에게 있어 과거와 미래는 현재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철저한 현재형 인간이다.
남편과 딸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
민해경에 대해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그녀가 실제로는 현재형 인간이라는 데서 깨져버린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차가운 도시 여자 같고 자유로울 것 같은 이미지이지만, 정작 그녀는 저녁 여덟 시 반에 잠들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또한 집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집에서의 삶을 철저하게 즐기는 소위 ‘집순이’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할 일이 그렇게 많냐고.
“많죠. 일단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보고 하루 동안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해요. TV는 거의 안 보고 대신 영화를 많이 보죠. 이런 패턴이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는 않아요.”
거의 집 안에서만 지내며 가족만을 기다리는 생활. 외롭지 않을까?
“전 외로움을 잘 못 느껴요. 혼자 있어도 집안일 하느라 너무 바빠요. 완전 잘 놀아요. 사람들이 그런 저를 보면 이상하다고 하는데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집에 들어올 사람만 잘 들어오면 되고요. 바로 남편이랑 딸이죠.(웃음) 그 외에는 제가 사람에게 원래 관심이 없어요. 일하는 아주머니가 ‘사모님처럼 자기에 관한 일 빼고 모든 일에 관심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내가 관심 가진다고 그 사람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바쁘고.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 얘기나 뒷담화를 싫어해요. 좀 무심하죠.”
집에서 혼자 놀기를 즐기는 원조 디바라니, 상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 밖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어색하거나 꾸며진 티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자신에게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고 은근한 매력이었다.
‘독함’이 아닌 ‘일관성’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그녀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전의 민해경 같지 않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솔직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충실히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스스로를 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저 자신은 과거와 똑같은데 과거에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한 부분이 있었죠.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가 사람들과 좀 더 소통을 하고 있고 그런 저를 사람들이 알아주게 된 거라고 봐요.”
그동안 사람들은 민해경에 대해 단절된 모습만 보고 말하곤 했다. 그녀의 진짜 모습을 가족은 알았다. 그래서 남편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아내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쎄고 건방지고 교류 없고…. 제가 많이 들은 얘기들이에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여자, 지지 않는 사람. 그런 것들이 제 내면에 있긴 하겠죠. 그게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테고요.”
진정 하고 싶은 꿈은 뒤로 하고 내키지 않는 노래로 가정을 지켜야 했던 삶. 그러면서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는 연예계에서 정상에 올라 10여 년 동안 거듭 그 자리를 지켜냈다. 언뜻 생각만 해도 쉽지 않은 일, 그게 가능하려면 기본적으로 어떤 종류의 ‘독함’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받는 오해들은 그 독함을 위한 일관성에서 비롯된 바가 아닐까 싶었다.
“그럴 수도 있어요. 그걸 이기적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데 개의치 않아요. 제 욕을 해도 제게 들리지만 않게 하면 돼요.(웃음)”
노래는 곧 나 자신
지난 3월 민해경은 새로운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극장 공연을 치렀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져서 쉽지는 않았던 공연 준비였다. 그러나 그녀는 베테랑이었다.
“어렸을 때는 잘 안 되는 게 있으면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그랬어요. 그러나 지금은 안 되는 상황을 빨리 접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게 내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거의 하루 만에 제가 연출을 다 했죠. 아무래도 대중가수가 히트곡만 들려주는 것은 흔한 레퍼토리죠.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관객들은 민해경이란 가수가 보여줄 수 있는 멋이나 맛, 카리스마에 대한 기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어린 시절까지 아우르는 자신의 인생을 무대에서 풀어내는 것이었다. 가수는 무대로 말한다고 했던가. 그녀의 인생 이야기에 관객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저는 그대로 꾸밈없이 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짧은 시간에 다는 보여줄 수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울고 감동받았다고 말씀을 주셨어요. 저 여자가 쎄 보여도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구나 느끼신 거겠죠. 무대에서는 그게 다 보인대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좋아해서 고마웠어요.”
다소 빤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지점에서 그녀에게 노래란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많이 들은 질문이에요. 돈이다, 생명이다 얘기 많이 하잖아요. 얼마 전에 생각해봤는데, ‘노래는 나와 같구나. 그래서 그 노래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노래는 곧 저예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숙성된 느낌으로 부르게 돼요. 한 번 부를 때보다는 열 번, 열 번 부를 때보다는 백 번 부를 때가 점점 나와 같아지는 느낌이죠.”
위로가 되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점점 자신과 노래가 하나가 된다고 말하는 민해경이 지금 가수로서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 궁금했다.
“저는 본분이 가수여서 계속 머릿속에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이것을 해야지, 그걸 해야지’ 하지는 않아요. 그런 시기는 지났으니까요. 무언가를 해보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그냥 주어졌을 때 그걸 잃지 않고 잘 유지하고 싶은 거죠. 그게 베테랑이라고 봐요.”
그녀는 최근 신곡 ‘We Love You’를 발표했다. ‘바람 바람 바람’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이후 녹색지대의 앨범을 제작한, 성공한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김범룡이 작곡한 노래다.
“처음 노래는 원래 작곡가 본인이 부르려고 했던 남자 노래였어요. 그런데 제가 받아서 잘 풀어나가게 됐죠. 순수하게 제가 선택해서 가사를 만든 노래인데, 제 마음이 이 노래의 가사와 같아요. 비유법도 은유법도 없는 순수한 가사로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는 노래로 만들고 싶었죠.”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은 남편이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여느 평범한 여자처럼 그녀도 남편을 만난 것을 정말 잘한 일로 꼽았고 딸을 낳아 키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결혼은 항상 마지막 관문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너무 감사해요. 지금 결혼한 지 22년이 됐는데, 그 전에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뒤돌아볼 수 없었던 것을 결혼 후에 조금씩 알게 됐어요.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일 또한 돈을 주고 할 수 없는 경험이죠.”
열정, 화려함, 사랑… 장미 같은 그녀
삶에 더없이 만족하는 사람. 민해경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만족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가수로서의 삶이다. 수십 년을 최고의 가수로 살았던 사람이 가수가 어렵다는 말은 일견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무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무대의 엄중함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힘들게 생각하지 말고 즐기라고 하는데, 안 돼요. 그래서 힘든 거죠. 무대는 서면 설수록 어려워요. 지금 더 많이 느껴요. 옛날엔 못 느꼈죠. 완벽한 무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지금은 안 그래요. 하면 할수록 어려워서 즐기지 못하는 거 같아요. 물론 막상 무대에 서면 괜찮지만 서기 전까지의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죠.”
그것은 그녀가 가수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을 잊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무대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어쩌면 그녀가 더욱 진화하는 모습을 좀 더 오래도록 확인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으로 무대를 즐기게 된 가수로서의 민해경이 미래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 모습은 장미’, 민해경의 노래처럼 역시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대 모습은 장미 같았다.
꿈에 대한 열망 하나로 89세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대학원을 또 입학하는 우제봉(禹濟鳳·89) 씨는 내친김에 박사까지 도전한다.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서 삶의 관록이 묻어난다. 1남 2녀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 어머니로서의 삶을 완성한 그녀가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격동기를 지나온 여자의 삶과 그녀가 이루려 하는 꿈에 대해 들어봤다.
“배움에는 때가 없어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해요.”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또박또박 말한다. 89세. 적지 않은 나이라고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장수한 나이다. 우제봉 씨의 나이가 놀라운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을 향한 뜨거운 열의가 있고 그것을 하나하나 이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2월 숙명여자대학교 원격대학원 실버비즈니스학과를 졸업하는 그녀는 우수논문상까지 탈 정도로, 젊은 사람들과의 공부 대결에서 전혀 뒤처지지 않는 열정과 결과를 보여줬다.
겸손하고 순종적인 여자
5년 전 우 씨는 남편을 먼저 보냈다. 그녀는 지금도 죄의식이 느껴진다고 했다. 마치 자신이 잘못해서 남편이 떠난 것 같아 부끄럽다 말한다. 부끄러움이라고? 젊은 세대라면 이 상황에서 왜 그런 죄의식을 느끼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온 시대는 지금과는 다르다. 누구 하나 떠나보내면 다 그런 마음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날카로운 자로 잰 듯 나누고 재단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섞이고 묶이던 예(禮)의 시대가 거기에 있었다.
“시집살이할 적에도 잉꼬부부니 애처가니 공처가니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서로 참 사랑했죠. 남편은 절 존중해주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었어요.”
우제봉 씨의 기억은 남편을 처음 만났던 시절로 돌아갔다. 그녀의 집안은 소위 있는 집안이었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취직을 원했지만 부모님은 가문의 망신이라고 만류하며 어떻게든 결혼을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와세다대학교 출신의 아버지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스스로 시청 문화과에 이력서를 냈고 취직이 됐다.
그녀가 시청에서 근무하다 상사의 심부름으로 다방을 들렀을 때의 일이다. 친구 누나가 운영하는 그 다방에는 미래에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다 그녀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중 남편이 가장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대시를 했다.
어느 날 퇴근 후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더니 남편이 그녀를 막아서더란다. 그리고 자신과 교제하자고 했다. 요즘 같으면 스토킹으로 신고할 일이었다. 그 시절엔 여자에게 구애할 때 무데뽀로 밀어붙이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녀는 무시하고 문을 닫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복학하기 전까지 만날 그 다방에 죽치고 있었다. 우제봉 씨는 심부름을 갈 때마다 그를 만났다. 솔직히 그렇게 다짜고짜 행동하는 남편이 무서웠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이 승낙하면 만나보겠다고 쪽지를 써서 그에게 전달했다. 설마 부모님까지 동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다짜고짜 시작된 연애, 그리고 결혼
그러나 남편은 그녀의 상식을 넘어서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퇴근하는데, 남편의 고모와 가족들이 우르르 와서 그녀를 만났다. 남편만큼이나 기질이 화끈한 집안이었다. 다음 날에는 아예 시아버지가 만나자며 찾아왔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사주를 봐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사주부터 보고 사귀기 시작했다.
그녀로서는 갑작스러운 연애, 더구나 처음 하는 연애였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렵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의 관계를 망가뜨리지 않은 것은 그의 인상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이순재를 닮았다는 남편은 이번에는 다짜고짜 그녀의 집까지 따라와서는 그녀의 어머니를 만났다. 그런데 의외로 남편의 그런 행동을 친정에서는 좋게 봤다. 패기 있고 자신 있는 모습이라는 평가였다. 이 또한 요즘 같으면 무단 침입으로 걸릴 일이었다. 과연 그 시절의 낭만이란 드라마틱한 사연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힘이었던 듯싶다.
“제가 살던 시집이 정릉 기와집이었어요. 지금은 성북 구립 유치원이 됐어요. 거기서 남편과 70년을 살았죠.”
남편 이야기를 꺼내니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소녀 같은 미소가 번졌다.
성실하고 강인한 여자
“결혼하니 주위에서 쟤 뭣도 모르고 결혼했네, 사흘도 못 살고 달아날 거라고들 얘기했죠.”
그러나 작고 단아한 이미지이지만 그녀의 심지는 굳고 두터웠다. 스스로 고된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아니 힘들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그냥 견뎠던 것 같다.
집안일뿐만 아니라 시부모가 낳은 늦둥이인 시동생도 키워야 했다.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힘들 때마다 그녀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생각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그녀를 많이 챙겨줬다. 사실 우 씨는 쌀도 씻을 줄 몰랐다. 요리하는 법도 시집에 와서 배워야 했다. 여느 시부모라면 그런 모습에 혀를 차며 한심해했을지도 모른다. 시아버지도 그녀가 마냥 예뻤던 듯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면 밤 열두 시까지 방에 앉지 못하는 고달픈 생활이었어도 웃으면서 시집살이를 할 수 있었다.
우 씨의 이러한 태도는 그녀의 인성과 지성이 함께 어우러진 데서 나온 게 아닐까. 그녀는 자주 ‘내가 여기서 행동 잘못하면 타인에게 누가 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명문학교 출신에 덕망 있는 집안의 가풍이 그녀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강인한 태도야말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이제야 자신만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었다.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꿈, 패션디자이너
“내가 공부하기엔 진짜 고령이지.(웃음) 입학할 때도 시선들이 만만치 않았어. 방송국에서도 오고 신문에도 나오고.”
남편을 여의고 평창동 예능교회 봉사활동을 할 때만 가끔씩 밖에 나오던 우 씨를 부추긴 것은 자식들이었다. 자식들은 “엄마 좋아하는 일은 공부잖아”,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가장 보기 좋다”며 어머니가 늦게라도 공부하기를 종용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가 하고 싶은 공부였을까?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꿈, 그것은 바로 패션디자이너였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부터 패션디자이너 꿈을 갖고 있었고 공부를 위해 미국에 갈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 가서 공부하는 것을 남편도 반대했고 시댁 식구들도 반대했다.
“그때 시댁에선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어요. 우리 딸들은 학원도 못 다니고 대학교를 갔죠.”
너무나도 이루고 싶었던 꿈을 갖고 있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여자. 경력 단절의 경험이 있는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었다. 벽은 높았고 그녀는 오를 힘이 없었다. TV에서 앙드레 김을 볼 때마다 ‘나도 할 수 있는데’ 하는 미련이 몰려오곤 했다.
시니어를 위한 패션은 필요
자신이 놓친 꿈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숙명여대에 전화를 했을 때 그날이 마침 신청 마감날이었다. 그것조차 어떤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운명은 졸업을 위해 논문까지 쓰는 단계로까지 흘러갔다.
“학기 중에 교통사고도 나고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이 나이에 논문을 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시험을 봐야겠다 싶어서 김숙응 교수님에게 말했더니 ‘아깝게 왜 시험을 보느냐, 논문을 써야지’ 해서 논문을 쓰기 시작했어요.”
논문을 쓰면서 그녀는 계속 자신을 재촉했고 교수에게도 재촉했다. 빨리 졸업한 후 다른 것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 후회들을 던져버리고 다시 출발선에 선 그녀에게 공부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힘을 마땅히 써야 하는 당위성 같았다. 평창동 예능교회에 가서도 열심히 기도했다. 그녀는 패션을 본격적으로 배울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노리는 분야는 실버를 위한 패션 사업. 그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이론이 필요했고 체계적인 공부를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고, 집에서 버리는 옷들을 리폼해 선물로 주던 사람이다. 이미 실전을 충분히 익히고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학문적 지식이었다. 그녀는 최근 이론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으며 운좋게 합격을 했다.
90대 패션디자이너의 꿈
패션디자이너가 되면 그녀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옷을 만들어서 팔아야죠. 돈을 벌어서 도와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요.”
돈을 버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촉’을 믿고 패션디자인 길을 걸어갈 의지로 불타고 있다. 자신이 번 돈으로 남을 돕는 일의 즐거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니어를 위한 패션이 필요해요. 젊은 사람들 것은 이미 많으니까요. 시니어가 젊은 사람 옷 입으면 안 어울리거든요. 나는 그런 옷을 사면 다 고쳐서 입어요. 입으면 제 몸에 안 맞으니까요.”
젊은 취향의 옷만 있지 시니어 몸의 특색을 살린 옷은 없다는 그녀의 진단은 정확하다. 90대 패션디자이너. 듣기만 해도 경이롭다. 어쩌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의상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그게 아직 홍보가 덜 됐어요. 그래서 내가 마음이 급할 수밖에요.(웃음) 그래도 늦으면 늦는 대로, 내 스타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입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말이죠. 나이에 맞는 패션은 없잖아요. 젊은 디자이너가 만든 시니어 옷이 아니라 몸매나 취향에 맞게 시니어가 좋아할 만한 옷을 만들고 싶어요.”
그녀의 야무진 꿈은 어떤 결실을 가져오게 될까?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을 현실로 만든 그녀이기에, 그 어떤 꿈보다도 젊게 빛나는 그녀의 꿈이 기대가 된다.
백수가 과로사 했다는 말을 들으며 멋진 농담이라고 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은 든다. 직장에 나갈 때는 직장이란 조직이 개인의 역량보다 조직의 힘으로 움직이는 집단이었다. 정해진 회사의 작업스케줄 대로 업무에 종사하면 되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가 단순해서 좋았다. 출근하고 일상 업무보고 퇴근하면 끝이었다. 집안일이나 어느 모임에 참석을 하지 못해도 회사 출근하는 날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서되었다. 또박또박 급여도 나오고 건강검진까지 회사에서 알아서 다 해주니 별 신경 쓸 일이 없었다.
퇴직하고 집에 있으면 지금껏 가족부양에 고생했으니 휴식중이라고 말해야 옳지만 빈둥빈둥 놀고 있다고 말한다. 누가 오라고 부르는데 가지 않으면 노는 놈이 뭐가 바쁘다고 그 모양이냐며 핀잔부터 들어야 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참가하다보면 백수가 과로사 했다는 말이 맞는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집에 놀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마음이 편할지 알았는데 딱히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안개처럼 늘 몸 주위를 감싼다. 밥을 먹을 때도 진짜 식충(食蟲)에 오물제조기로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 겁이 덜컥 날 때가 있다. 집에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 집밖으로 탈출하고 싶다. 콧바람 쏘이러 외출한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하다못해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라도 하는 일거리를 만들어 집에서 나와야 뭔가 밥값 하는 것 같아 마음에 부담이 덜하다.
스스로 살이 있다는 행동을 하고 싶고 보이고 싶다. 배낭 속에 물통을 넣고 산에라도 올라가야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도서관에 가서 신문이라도 읽어야 시대에 뒤처진다는 강박관념에서 조금 진정된다. 한가로운 소설책보다는 생활 에세이 같은 글을 읽어야 ‘그렇지!’하는 공감과 마음속이 뿌듯해진다. 놀 수는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이곳저곳의 무료강좌에 눈독을 들이고 참가한다. 공짜커피라도 주는 곳은 고맙고 좋은 곳이다
한 번도 퇴직이나 은퇴자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새파란 젊은 사람이 강사로 나와서 70세에 유엔군 사령관이 된 맥아더 장군 이야기를 들먹이며 막연하게 힘내라고 할 때는 ‘내가 맥아더냐?’하는 반발 질문을 하고 싶다. 한 번도 퇴직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통계자료 몇 개 들고 나와 세상물정 다 아는 것처럼 말 할 때는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삼십년 이상을 가족과 국가를 위해 일한 당신들 이제 몸과 마음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주위에서 격려를 받고 싶지만 국가도 사회도 가족도 퇴직자에게는 인사치례 말뿐이고 실질적인 배려나 관심이 없다. 일만하다 죽을 수 없고 지금껏 잘해왔다고 격려의 박수를 받고 싶다. 이제 숨차게 달려온 몸보다 마음 휴식이 필요한 때다. 어떤 사람이 어떨 때 마음 휴식이 필요한가를 도서관에 가서 이런저런 책을 뒤져 보았다. ‘마음휴식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찾았다. 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편적인 것을 추려 적어본다.
1,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
2,불면증에 시달리고 정신적으로 불안하다.
3,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싫다.
4,휴가 때도 어디 가는 것보다 집에서 쉬고 싶다.
5,다 내 잘못 같은, 죄책감을 느낀다.
6,일하는 것에 보람보다 심적 부담과 긴장을 많이 느낀다.
7,맡은 일을 하는데 소극적이고 냉소적이다.
8,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술, 담배를 즐긴다.
9,최근 짜증과 화가 늘었다.
10,세상이 원망스럽다.
11,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암울하다.
12,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중에서 6개 이상 해당되면 절대적으로 마음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딱히 퇴직자가 아니더라도 자신감이 떨어지는 사람은 일단 마음휴식을 고려해 보자.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100년을 사는 세상에 몇 년 쉰다고 크게 달라질 일도 없다. 길고 오랜 인생길에 쉬엄쉬엄 쉬었다 가자. 크게 숨 한번 들이마시고 하늘한번 바라보고 천천히 가고 싶다.
전기밥솥에 맛있는 밥을 짓는다. 거실에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기로 묵은 빨래를 한다. 커튼은 닫고 집안 온도를 따뜻하게 올린 뒤 공기 청정기를 켠다. 별것 아닌 집안일이지만 이 모든 것을 집 밖에서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편리함은 물론 안정성까지 갖춘 스마트 주거 공간에서라면 가능한 일이다. 일상을 유익하게 해줄 스마트기기와 더불어 공간별 인테리어 아이디어까지 담아봤다.
사진 및 도움말 대림, 로얄컴바스, 삼성전자, 솜피, 에몬스, LG 유플러스, LG전자, 청호나이스, 한샘
Living Room
리모델링 제안
거실 한 쪽에는 한옥에서 툇마루 역할을 하는 공간을 재현했다. 발코니를 확장하고 단열공사 후 단을 높여 보일러를 시공하는 과정을 거친다. 창밖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늑한 공간에서 편안한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인테리어 팁
▶원목마루의 경우 고급스럽지만 유지관리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UV코팅마감이나 특수시트가 부착돼 물걸레 청소가 용이하고 충격 완화 효과가 있는 소재를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집이 넓다면 너무 밝은 마감재보다는 어두운 톤의 자재를 사용해 공간을 차분하게 구성해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다.
1 솜피 IoT 커튼 거주자의 생활 패턴에 맞게 요일별로 시간을 예약하면 원하는 시간에 자동으로 커튼이 열리고 닫힌다.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때문에 복층이나 높은 천장에 설치된 커튼도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집 밖에서도 커튼을 닫을 수 있어 편리하다.
2 하니웰 온도조절기 언제 어디서나 집 안 온도를 조절하고 사용 이력을 살펴볼 수 있다. 취침 후 일정 시간 후에 꺼졌다가 아침에 다시 켜지도록 하는 등 예약 설정이 가능하다. 난방 사용량과 사용 패턴을 확인할 수 있고, 20시간 이상 보일러를 사용할 경우 알림을 보내준다.
3 LG 로보킹 밖에서 원격으로 청소를 시키고 집안을 실시간 모니터링 할 수 있다. 하단, 전방, 상단카메라 총 3개의 카메라로 주변 공간을 파악하고 충돌을 최소화한다. 집 안에서 움직임이 감지되면 휴대폰으로 사진이 자동 전송되어 집을 비운 날에도 안심할 수 있다.
4 삼성 QLED TV 어느 각도에서 봐도 색이 변하지 않도록 시야각 문제를 해결해 생생한 화질을 구현한다. 무선으로 휴대폰과 TV를 연결할 수 있으며 휴대폰 속의 동영상, 사진 등을 TV 화면으로 즐길 수 있다. 또 음성인식 기능을 통해 방송 중인 프로그램이나 영화, 광고 속의 음악을 바로 찾아볼 수 있다.
5 LG WHISEN 듀얼 에어컨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합쳤다. 휘센 듀얼 에어컨은 극초미세먼지까지 감지하여 공기 상태가 나쁠 경우 자동으로 공기청정기능을 작동시킨다. 공간학습, 인체감지센서로 사람 수, 위치 정보를 수집해 실생활 공간 중심으로 냉방을 제공한다.
6 IoT 열림알리미 센서 외출 중에 창문과 문이 열리면 즉시 스마트폰으로 알림을 받고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다. 갑자기 비나 눈이 왔을 때 창문이 열려 있는지 바로 확인 가능하다. 집안에 외부인의 침입이 감지될 경우, 사람이 있는 것처럼 조명이나 TV가 자동으로 켜진다.
Kitchen
리모델링 제안
한국 전통 대청마루를 본뜬 좌식 아일랜드를 배치해 동서양을 넘나드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은퇴 이후 여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이들을 위한 디자인으로 손주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등 활용도가 높다.
인테리어 팁
▶최근에는 ‘ㅡ’자나 ‘ㄱ’자 부엌보다 아일랜드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식재료를 다듬고 조리하고 설거지를 하는 동선이 짧아 편리한 것이 장점이다. 특히 플로팅 아일랜드(상판 아래 공간이 비어 있는 형태)를 활용하면 의자에 앉아서도 요리할 수 있어 허리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부엌 바닥 광택이 심하면 미끄러질 염려가 있고, 눈부심을 유발하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식탁 위에 조명등이 매달릴 경우 지나치게 밝은 식탁보나 광택이 있는 소재를 깔면 빛 반사로 눈이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에 무광이나 어두운 톤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다.
1 LG DIOS 3구 인덕션 전기레인지 전기레인지를 껐는지 켰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휴대폰으로 체크하자. WiFi 기능으로 외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2 IoT 가스잠그미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으로 가스밸브를 확인하고 잠글 수 있다. 또 가스밸브 주변이 위험온도에 도달하면 경보음과 함께 알림 메시지가 오고, 65℃까지 올라가면 자동으로 밸브가 차단된다.
3 LG DIOS 광파오븐 광파오븐에 내장된 WiFi 기능으로 원격세팅이 가능하다. 휴대폰을 통해 주방 밖에서도 오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조리 후엔 탈취, 스팀청소, 건조기능을 활성화해 오븐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
4 쿠쿠 IoT 밥솥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격으로 밥을 짓거나 요리 예약이 가능하다. 입맛에 따라 밥을 지을 수 있도록 가열 온도를 설정하고 찰진 밥, 부드러운 밥 등을 선택할 수 있다.
5 삼성 셰프컬렉션 패밀리허브 냉장고 모니터를 통해 TV시청은 물론 음악감상, 라디오 듣기가 가능하다. 요리법을 검색하면 냉장고가 요리 속도에 맞춰 음성으로 레시피를 알려준다.
Bathroom
인테리어 팁
▶습식 타일은 물기가 잘 마르지 않아 미끄러워 낙상의 위험이 크고 곰팡이가 잘 낀다. 특수코팅 엠보싱 처리가 된 바닥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욕실 문은 밖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안으로 여는 문은 사람이 쓰러졌을 경우 사람에 의해 출입구가 막히기 때문에 도움을 지연시킬 수 있다.
1 삼성 플렉스워시 삼성 스마트 홈 앱을 실행해 밖에서도 세탁을 시작하거나 종료 알람을 받을 수 있다.
2 대림 SMARTLET 800 물 내리는 것을 깜빡했어도 괜찮다. 비데에 추가된 인체감지센서가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사용이 끝나면 자동으로 물을 내려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동으로 여닫히는 시트 커버로 편리함을 더했다.
3 로얄컴바스 R2 세면기 디지털 압력방식의 조작버튼으로 물의 온도와 양 조절이 편리하다. 자외선 칫솔 살균기가 내장되어 있다.
Bedroom
인테리어 팁
▶시니어의 경우 노화로 인해 청력이 약해지더라도 오히려 소음에는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 수면에 영향을 받곤 한다. 비경화성 방음 재료나 흡음 천장을 설치하면 효과적으로 소음을 차단할 수 있다.
▶암막 커튼이나 어두운 톤의 벽지를 골라 숙면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바닥에 러그를 깔면 바닥에 조명 반사가 덜해 눈의 피로도가 감소하고 걸을 때 충격을 줄여주기 때문에 발도 편안하다.
1 에몬스 웰라이프 모션침대사용자의 수면습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프레임 각도를 조절하는 모션 침대의 장점에 스마트 기술을 더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진동과 자세전환을 통한 알람 모드, 취침 타이머 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2 한샘 팔렛 LED 방등 스마트폰으로 집 안에서 등을 켜고 끄는 것은 물론 외출 시에도 작동이 가능하다.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취침 타이머와 기상 알람 기능으로 원하는 시간에 조명을 조절할 수 있다. 학습, 활력, 휴식 등 상황별 테마를 설정해놓으면 그에 맞게 조명이 방 분위기를 연출한다.
3 청호나이스 휘바람IV IoT 공기청정기 스마트폰 앱을 통해 집 안의 실내 공기 상태 및 초미세먼지, 가스 오염도, 습도, 온도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풍량, 이온, 타이머 등을 장소에 상관없이 조절할 수 있고, 스마트 모드를 켜면 자동으로 사용자 환경에 맞는 공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앤티크는 세월과 함께한 흔적을 통해 멋을 발한다. 대대손손 물려받은 가보로서 또한 기꺼이 그 값을 지불한 사람들 곁에서 100년, 200년의 시간을 이어간다. 취미로 앤티크 제품을 수집하기란 쉽지 않다고들 한다. 백정림(白瀞林·53) 대표는 앤티크 물건들을 모아 이고 갤러리를 열었다. 그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서일까? 그렇기도 하지만 그전에 그는 앤티크의 멋에 푹 빠졌다고 한다.
자연과 어우러져 더 빛나는 ‘이고 갤러리’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엔 꽤 큰 별장촌이 숨어 있다. 꼭대기까지 오르는 길을 따라 근사한 별장이 들어서 있는데 그중 맨 위쪽에 위치한 곳이 바로 백정림 대표가 운영하는 이고(以古) 갤러리다. 이곳은 그가 20여 년간 모아온 앤티크 컬렉션을 일부 전시해 여러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자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개인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하다.
“이고 갤러리를 차린 이유 중 하나가 너무 많아진 작품을 주체할 수 없어서였어요. 지금 와서 수집을 그만둘 수도 없고…(웃음). 그래서 이왕에 만드는 거 상업적인 공간보다는 앤티크를 좋아하는 사람, 관심 있는 사람이 모여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자 해서 하우스 갤러리 개념의 공간으로 꾸미게 됐죠.”
대문을 지나자마자 보이는 정원에서부터 그의 앤티크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 주위로 물확, 석등, 항아리 등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골동품으로 정원을 꾸몄다. 통유리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거실과 부엌을 장식한 앤티크 컬렉션을 비추며 갤러리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갤러리를 마련할 장소를 찾기 위해 안 가본 곳이 없어요. 그러다가 이곳을 알게 된 거죠. 무엇보다 자연 속에 위치해 탁 트인 느낌을 주는 곳이라 좋았어요.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한눈에 조망하고 그때마다 어울리는 앤티크 물건으로 갤러리를 꾸며 새로운 분위기의 공간으로 탄생시키기도 하죠.”
알수록 빠져드는 앤티크의 매력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앤티크 컬렉션의 향연이 시작된다. 주방, 거실, 침실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화병 제품은 18세기 세브르 화병이고 아르누보 시대의 화병도 있어요. 그리고 19세기 초의 저그, 빅토리안 시대의 티 캐디… 아! 탁자는 조선시대 교자상입니다. 쿠션은 100년 가까이 된 우리나라 방석을 재해석해서 만들었고요. 2층으로 가면 크리스털과 은으로 된 빅토리안 시대 디캔터도 볼 수 있어요. 거의 다 100년의 세월을 거친 아이들이죠.”
집 안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작품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앤티크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뿜어져 나왔다. 백 대표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대학생 때 본격적으로 앤티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엔 7년 동안 서양 앤티크를 공부하며 홈 인테리어나 커트러리 위주의 수집을 시작했다.
“어머님이 상당히 상류층 분이셨어요. 그 당시 유행했던 제주도 연자방아를 활용한 테이블과 조선시대 반닫이를 집에서 볼 수 있었죠. 덕분에 일찍 앤티크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어요. 앤티크 물건은 들여놨을 때 집 안 전체를 우아하게 마무리해주는 문화의 힘이 있어요. 정리정돈을 해준다고 해야 하나? 그게 바로 앤티크가 갖고 있는 세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한 점도 안 사는 사람은 있지만 한 점만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하죠. 그 매력에 빠지면 그야말로 중독되는 거 같아요(웃음).”
재력가들이 앤티크 물건에 투자를 하기 시작하고 이태원에 앤티크 가구거리가 조성되면서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반 앤티크 열풍이 한차례 불었다. 사실 진짜 골동품이기보다는 그 모양새를 흉내 낸 ‘앤티크풍’의 가구가 유행한 것이다.
“앤티크가 주는 고급스러움과 멋스러움도 한몫했겠지만 상류층 사람들이 즐긴다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더 많은 모조품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다수의 사람이 앤티크는 다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만은 않아요. 누구나 취미로 할 수 있는 게 앤티크 수집인걸요. 단 소비를 어느 정도의 선에 둘 것인가의 문제죠. 취미로 하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한 가지 조언을 해드리고 싶어요. 제발 공부를 하고 난 후에 시작하면 좋겠어요!”
앤티크를 잘 아는 사람이 워낙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관련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섣불리 다가가면 예상치 못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백 대표는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작품을 사는 것 또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며 추천했다.
“고려청자로 만든 기와를 뭐하러 사겠어요. 가치는 있겠지만 박물관에 있어야 더 잘 어울리겠죠(웃음). 저 같은 경우 테이블에 세팅해둔 빅토리안 시대 제품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어요. 깨지면 어때요! 깨질 수 있는 DNA인걸요. 무서워서 쓰지 못한다면 앤티크를 최상으로 즐길 수 없어요.”
앤티크 강연 펼치며 제2인생 시작
젊은 시절 영어 강사로 유명했던 백 대표는 남편과 함께한 교육사업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전국 프랜차이즈 망까지 갖춘 사업을 대기업에 넘긴 백 대표는 그 후에도 강의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했다. 앤티크 물건을 수집하면서 차곡차곡 배운 지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강의를 시작했다.
“이고 갤러리에선 한 달에 한 번씩 앤티크 인문학 강의가 열려요. 또 반얀트리에서도 1년에 두 번 정도 한국 앤티크와 서양 앤티크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죠. 강의하면서 행복해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역시 나는 강의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해요(웃음).”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요즘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자, 살림하는 남자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백 대표는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품격 있는 홈 문화를 퍼뜨리는 게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tvN의 를 보니 남자가 다 일하고 그러는 모습… 에휴. 요즘 여자가 너무 중성화되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 아내가 아내 역할을 하고 거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게 정말 중요한데 말이죠. 품격 있는 홈 문화를 가르쳐 가족에게 정성껏 대접하고 그럴 때 느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