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은 어떤 일자리가 좋을까? 취업을 할까? 창업을 할까? 어떤 분야가 내게 맞을까? 퇴직을 앞둔 이들이라면 이러한 고민에 휩싸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장년의 일자리 탐색은 곧 자신에 대한 탐색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회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과 역량, 여생 동안 지속할 수 있는 흥미와 소질 등 개인이 지니고 있는 특성과 성향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진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러한 어려움을 온라인 자가진단 도구를 통해 해결해볼 수 있다.
◇ 중장년 워크넷 ‘생애경력설계 자가진단’과 ‘전직준비도 검사’(NJRT)
취업 관련 서비스나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진단도구들을 보면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아 중장년의 상황과는 들어맞지 않을 때가 있다. 40세 이후 맞춤형 자가진단을 원한다면 ‘중장년 워크넷’이 적합하다. PC나 모바일을 통해 무료로 테스트 가능한 ‘생애경력설계 자가진단’과 ‘전직준비도 검사’(NJRT) 두 가지 툴이 마련돼 있다. 중장년 워크넷 홈페이지(포털에서 ‘중장년 워크넷’ 검색 또는 ‘워크넷’ 홈페이지 내 우측 상단 ‘중장년’ 메뉴)에 접속해 상단 카테고리에 있는 ‘진단검사’ 항목을 누르면 된다.
먼저 ‘생애경력설계 자가진단’은 고용노동부가 중장년의 고용불안, 노후 걱정 등을 해소하기 위해 운영하는 ‘생애경력설계 서비스’의 일환이다. 단 5분이면 이뤄지는 테스트를 통해 중장년 스스로 자신의 생애경력설계 준비 상황을 점검해보고, 그에 맞는 경력 준비 가이드라인을 제공받을 수 있다. 구직태도, 구직기술, 직무능력 등에 따라 총 8개 유형으로 구분되며(△경력개발 우수형 △눈높이조절 필요형 △경력개발 조급형 △경력개발 안주형 △경력개발무 관심형 △구직기술 필요형 △자기개발 필요형 △ 능력개발 필요형), 결과에 따라 경력유형별 특성과 행동 전략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직준비도 검사’(NJRT)의 경우 구직자의 심리상태, 신념, 태도, 기술 등 네 영역을 기준으로, 전직 및 이직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알아볼 수 있다. 심리상태 영역에서는 △현실수용성 △정서 안정성 △미래 낙관성을, 신념 영역에서는 △구직유능감 △자기관리 △변화 유연성을, 태도 영역에서는 △개방성 △적극성 △독립성 △강인성을, 기술 영역에서는 △자기이해 △목표설정 △네트워크 활용 △디지털정보 수집 및 활용 △서류작성 및 면접 등을 하위요소로 하여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진단 결과를 제시한다. 해당 결과를 통해 중장년들은 스스로 재취업을 위해 필요한 현재 수준을 파악해보고, 개발해야 할 요소와 그 방법에 대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노사발전재단 서울서부중장년내일센터 최성희 책임 컨설턴트는 “생애경력설계 자가진단의 경우 40대 이상 중장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한 도구다. 진단 결과의 경우 절대 값이 아닌, 다른 응답자와 비교한 상대적인 지표다. 때문에 가령 스스로 구직 활동에 적극적인 편이라고 여기는 경우라도, 다른 중장년에 비해서는 소극적인 편으로 나오는 등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며 “구직 활동을 하며 중장년내일센터 등 관련 기관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연히 찾아가기보다는 사전에 이러한 자가진단을 해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컨설팅을 받으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좀 더 구체적이고도 심도 있는 진단을 원한다면 전직준비도 검사를 권한다. 해당 검사 또한 40대 이상의 전직 또는 이직을 앞둔 이들의 데이터를 통해 진단하는 도구인데, 심리 상태를 포함한 세부 지표를 살펴볼 수 있다. 상세 결과 도출을 위해 99개 문항으로 이뤄져 있어, 시간적 여유를 갖고 테스트에 임해보시길 바란다”며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진단 결과가 나와, 일반 중장년이 스스로 내용을 해석하긴 쉽지 않을 수 있다. 정확한 점검과 계획 및 실천 방법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면, 테스트 후 컨설턴트를 찾아 상담을 받아보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 사람인 ‘인·적성 검사’
과거 중장년의 청년 시절과 다른 취업 문화가 있다면, 구직 과정에서 인·적성 검사가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중장년들의 경우 이러한 문화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직무에 대한 적합성이나 소질 등을 파악해볼 겸 이러한 테스트를 한 번쯤 해본다면 감을 잡기 수월할 것이다. 취업 플랫폼 ‘사람인’ 홈페이지에서도 이러한 인·적성 검사를 무료로 제공한다. 가령 어떤 작업을 해내기에 알맞은 능력을 갖췄는지, 적응력을 겸비했는지,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등을 점검해보는 데 도움이 된다.
◇ 소상공인마당 ‘창업자가진단’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더욱이 적성과 능력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 창업은 개인의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 만큼, 제대로 된 점검 없이 시작했다가 실패했을 때 노후에 리스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창업의 경우 잘 될수록 같은 사업을 오랜 기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소질이나 능력, 적성과의 적합성이 더 잘 맞아야 한다. 자영업자를 위한 플랫폼 ‘소상공인마당’에서는 이러한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자가진단 도구를 제공한다. 소상공인마당 홈페이지 로그인(회원가입) 후 ‘창업지원’ 메뉴 내 ‘상권정보시스템’에 접속하면 ‘창업자가진단’ 툴을 확인할 수 있다.
업소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의 심리적, 기술적, 환경적 요인에 대한 수준을 점검해 실패 위험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창업전문가들과 학계 연구자들이 참여해 개발된 진단도구다. 총 17개 요인에 따른 60문항의 질문으로 이뤄져 있으며, 10분 정도면 진단부터 결과까지 받아볼 수 있다. 대상자들은 응답 결과를 통해 미리 입력한 관심 업종에 대해 창업 요인 중 부족한 점을 진단해보고 이에 대한 대응방법 또는 권고 사항 등을 받아보게 된다. 아울러 상권정보시스템에서 제공하는 보완 콘텐츠를 비롯해 전문 컨설팅 또는 관련 교육 수강 등 창업 계획 수립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진단 결과 화면에서는 예비 창업자의 심리특성(△도전정신 △ 성실성 △외향성 △적성 △준비성 △지구력), 창업 준비(△경쟁력 △고객분석 △기술력 △상품차별성 △위험감수 △창업역량 △창의력), 배경 분석(△거시적 △미시적 △사업안정성 △시장탄력성)에 따른 상세 수치를 보여준다. 각 항목에 대한 수치는 개인적인 수치와 더불어 설문 응답자의 평균 수치와 그래프를 함께 제공해 다른 창업자들과의 비교 분석도 해볼 수 있다.
+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 ‘소상공인 자가진단’
서울시의 상권분석서비스 홈페이지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서비스’에는 창업자들을 위한 ‘소상공인 자가진단’이 마련돼 있다. 총 두 가지 테스트로 ‘경영 환경 진단’과 ‘경영 센스 진단’으로 나뉜다. 각각 대상자의 응답에 따른 빅데이터를 정량적으로 비교분석한 진단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테스트 항목에서, 창업 점포 위치나 업종 등 구체적인 내용을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창업 전이라면 계획 중인 또는 가상으로 살펴보고 싶은 정보를 기준으로 진단해보면 된다.
지난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평균 49.3세로 나타났다. 같은 해 경기연구원 조사에서 60세 이상 노동자들은 평균 71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즉, 중장년에겐 퇴직 후 20년 또는 그 이상을 책임질 제2의 직업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1월 취·창업 분야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2023년 중장년 유망 직업에 대해 조사했다. 해당 결과를 토대로 시니어가 알아야 할 유망 직업을 하나씩 소개해나가려 한다. 그 네 번째 순서로 ‘공인중개사’에 대해 알아봤다.
◇ 공인중개사, 왜 유망할까?
공인중개사는 오래 전부터 인기 있는 직업 중 하나로 실질적으로 노년기 대비에 좋은 일자리다. 국가전문자격인 ‘공인중개사’는 응시 자격에 제한이 없고, 한번 취득하면 갱신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나이가 많더라도 도전하는 데 무리가 없어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도 시도해 볼 만하다.
-김경환 성균관대학교 글로벌창업대학원장
40대 이상 중장년은 오랜 사회활동 경험을 통한 대인처세술, 폭넓은 대인관계, 복합적인 인지능력 등이 성공적인 공인중개사가 되는 밑거름이 된다. 직업전환의 부담이 적으며 소자본으로도 개인·합동사무소 중개법인 등의 설립이 가능하다. 소득의 경우 개인의 노력에 따라 단기간 내에 기존 업무와의 소득 격차를 최소화 또는 상향할 수 있다. 또한 고령화 사회에 은퇴 후 20년 이상의 사회활동을 준비 할 수 있는 평생직업이다.
-KCI 한국자격증정보원 ‘공인중개사’ 소개란
부동산중개사로도 불리는 공인중개사는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직업으로, 부동산(중개사무소)을 열어 운영하는 이들을 보면 중장년이 상당수다. 눈으로도 쉽게 확인될 정도로 중장년의 수요가 높은 직업임을 알 수 있다. 공인중개사는 다른 업종에 비해 초기투자자본(인테리어, 집기 및 업무시설 등)이 비교적 적게 들고, 진입 장벽이 낮다고 알려져 제2직업으로 염두에 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인중개사는 주택이나 상업용 건물, 공장, 토지 등의 부동산에 대해 거래 당사자 간 매매, 교환, 임대차 등의 득실 변경에 관한 행위를 알선하고 중개한다. 부동산 이용과 개발에 대한 상담이나, 주택과 상가 분양 대행, 경매 대상 부동산에 대한 권리 분석, 입찰대리 업무 등을 수행하기도 한다. 때문에 실무에서는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대인관계 능력, 협상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중개 의뢰를 받은 부동산의 지변, 평수 등을 파악해 매입자와 예정자에게 시세, 재테크, 향후 전망 등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현장 답사나 시장 조사 등도 진행한다. 부동산이나 금융 정책, 세무 및 법률 지식, 부동산 경기나 동향 등에 대한 정보 수집 능력이 요구돼, 지식을 습득하는 데 흥미가 있어야 적성에 맞는다.
아파트나 주택 등의 경우 봄, 가을 이사철 주말에 고객이 많은 편이다. 고객의 여건과 편의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근무 시간은 다소 유동적이다. 영업 차원에서 시장조사나 매물분석, 온라인을 통한 고객 상담 등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부동산 현장 방문 외에는 특별히 체력 소비가 되지 않고, 업무 강도가 높지 않아 나이에 제한 없이 평생직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년의 관심이 높게 나타난다.
◇ 공인중개사, 나도 될 수 있을까?
공인중개사로서 부동산중개 일을 하려면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국가전문자격 공인중개사 시험(국토교통부 주관)에 합격증이 필요하다. 시험은 1차와 2차가 있는데, 둘 다 합격해야(매 과목 100점 만점 기준 40점 이상, 전과목 평균 60점 이상 득점) 자격증이 발급된다. 시험은 연 1회 시행되기 때문에, 시험 일정을 잘 숙지하고 준비하는 것이 좋다.
공인중개사 시험의 경우, 다른 시험과 마찬가지로 1차를 합격해야 2차 시험 응시가 가능한데, 두 시험을 하루에 동시에 치를 수도 있다. 다만, 1차 시험에 불합격했을 경우 2차 시험은 무효 처리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개인의 역량이나 여건에 따라 단기간에 1·2차를 동시에 대비하기도 하고, 시간을 두고 두 해에 걸쳐 각각 준비하기도 한다. 시험 합격률은 20~30% 내외로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따라서 관련 지식이 전무 하다면 사이버대학 등 관련 대학이나 학원 등에서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된다.
자격 취득 후에는 중개사무소 개설 등록을 위해 한국공인중개사협회나 대학에서 위탁받아 시행하는 실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다면 부동산중개사사무실에 중개보조원으로 취업한 후 실무경험을 쌓아 자격증 취득을 준비해도 된다. 중개보조원은 주로 중개대상물에 대한 현장안내 및 일반서무 등 부동산중개사의 중개업무와 관련된 단순한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꼭 부동산 관련 학력이나 전공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 따르면 자격증 시험 준비나 취득 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대학이나 대학원 등에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단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이하 협회) 관계자는 “이전에는 은퇴 후 창업 등을 목표로 한 중장년층이 시험 응시생의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요즘은 개업공인중개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며 청년들의 응시율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창업의 목적 외에도 건설사 또는 분양사 등 관련 업계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 용도로 자격증을 도전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 공인중개사, 도전을 꿈꾸고 있다면?
중장년층의 선호도가 높고, 진입 장벽은 낮은 만큼 제2직업으로 떠올려본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몇 가지 염두에 둘 부분이 있다. 먼저, 현재 공인중개사의 경우 과포화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개업공인중개사 수는 2023년 4월 30일 기준 11만 7786명이다. 통계청 집계에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는 2202만 2753명으로, 공인중개사 사무소당 수요 가구가 약 187명으로 계산된다.
협회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사무소당 가수요층을 300가구로 본다. 공인중개사는 자격 배출이 많고(2022년까지 52만 여 명), 진입장벽이 낮다보니 개업공인중개사 수가 과포화 상태라 할 수 있다”며 “지난해 한 해 동안 전국 휴·폐업자 수가 1만 3217명에 이를 정도로 중개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최근 전세사기 등 불미스런 사회적 이슈에 따른 부담이나, 개업공인중개사끼리의 경쟁 구도와 갈등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협회 관계자는 “타인의 거의 모든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부동산을 거래하는 업종이므로 안전한 거래와 권리 이전에 신경 써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 윤리와 소명 의식도 필요하다” 며 “부동산 중개 업무는 다량의 정보 취득과 다양한 기법이 뒷받침돼지 않으면 동종 업계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나만의 사무실 운영 및 홍보 노하우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무엇보다 안전한 부동산 중개를 위해 타 중개사무소에서 일정 기간 소속공인중개사 등으로 활동하며 중개 기법을 익히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직업도 있어요!" 공인중개사 자격증 활용 직업 5選
[1] 부동산개발업자
· 유사 명칭: 부동산디벨로퍼(Developer), 부동산시행자, 부동산개발자
· 숙련 기간: 4~10년
· 하는 일: 사업 대상 부지의 입지여건, 주변수요 등을 분석해 적합한 부동산상품을 기획하고, 이를 위한 용지구입, 인허가절차 진행, 자금마련, 건축, 마케팅, 분양, 입주, 정산, 사후관리까지 총괄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2] 부동산정비사업관리자
· 유사 명칭: 재건축정비사업자, 재개발정비사업자, 도시환경정비사업자
· 숙련 기간: 2~4년
· 하는 일: 사업시행자로부터 위탁을 받아, 조합설립 및 정비사업 동의, 조합설립인가 신청 등을 진행한다. 사업성검토 및 정비사업의 시행계획서 작성, 설계자 및 시공사 선정, 사업시행인가 신청, 분양 및 관리 처분계획 수립을 대행하거나 자문하기도 한다.
[3] 부동산경매인
· 유사 명칭: 부동산 경매사
· 숙련 기간: 1~2년
· 하는 일: 고객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법원 경매나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법인에 의해 시행되는 공매 등 부동산경매 시장에 나온 경매 물건에 대해 권리분석과 현장 확인 업무를 하고 의뢰인의 경매 참여를 지원한다.
[4] 부동산신탁관리원
· 유사 명칭: 부동산처분신탁관리원
· 숙련 기간: 1~2년
· 하는 일: 부동산 소유주로부터 신탁청약을 접수하고, 신탁에 따른 내용을 설명한다. 신탁부동산에 대한 물건, 환경, 법적규제, 이용상황, 인근의 임대료 등을 조사하고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신탁부동산의 종합관리계획을 작성하고, 소유권이전 및 신탁등기를 한다.
[5] 부동산컨설턴트
· 유사 명칭: 주택상담원, 재건축상담원, 부동산상담원
· 숙련 기간: 2~4년
· 하는 일: 토지나 건물의 최적의 활용방안을 분석하기 위하여 각종 자료를 수집·분석한다. 부동산의 보유, 매매, 개발의 타당성을 검토하거나 개발 최적시설·최적규모를 판정, 투자수익성을 파악한다.
[참고] 한국고용정보원 '2020 한국직업사전'
다크 투어리즘은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전 세계적인 핵심 테마는 전쟁과 항쟁(식민지)이다.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들 수 있다. 아직 생소한 개념인 다크 투어리즘을 어떻게 계획하고 즐길지 모르겠다면, 위의 두 역사를 중심으로 명소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PART1. 항쟁의 역사 : 일제강점기
[1] 남산 국치의 길
남산은 낭만적인 야경이 돋보이는 명소로 유명하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를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강화도조약(1876) 이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남산 자락에 조선 통치를 위한 시설들이 자리 잡았다. 당시의 상흔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길이 바로 ‘남산 국치의 길’이다.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한국통감관저 터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 도착하면 ‘거꾸로 세운 동상’이 눈에 띈다. 과거 일제는 을사늑약을 체결한 공을 인정해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통감관저 앞에 설치했다. 해방 후 당시의 치욕스러움을 기억하고자 사라진 동상의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운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이어 리라초교와 숭의여대로 향해 노기신사와 경성신사 터를 둘러본 뒤에는 케이블카 탑승장 인근 한양공원을 찾는다. 1910년 일본인들이 조성한 곳으로, 당시 공원 입구에 세웠던 비석도 볼 수 있다. 계속해서 남산을 향해 걷다 보면 옛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일부가 나온다. 조선신궁은 조선총독부가 조성한 신사로, 해방 후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철거되며 현재 우리가 아는 남산공원으로 탈바꿈했다. 한때 연인과의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로 남산을 찾았다면, 한 번쯤 이러한 역사를 한발 한발 따라가 보길 추천한다.
[코스] 명동역 1번 출구 ▶ 한국통감관저 터·기억의 터(현 서울유스호스텔 아래) ▶ 한국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 ▶ 노기신사(리라초교 내 남산원) ▶ 경성신사(숭의여대) ▶ 한양공원 ▶ 조선신궁(한양도성 발굴지) *상당 구간이 언덕길이니 이 점 참고하자. 반대 방향으로 돌아봐도 괜찮다.
[2]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하 서대문형무소)은 일제강점기 시절 4만여 명에 달하는 독립운동가가 수감됐던 곳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철거 논의도 이뤄졌으나, 교육의 현장으로 기능하기 위해 현재의 역사관 형태로 복원됐다. 서대문형무소 하면 붉은 벽돌로 이뤄진 외관이 상징적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따스한 봄볕 아래 그림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외관과 비교해 내부는 삭막하고 음울한 기운이 느껴진다. 독방과 고문실, 시구문 등을 복원해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생생히 드러냈다. 당시의 수형기록표나 사진들을 보노라면, 독립투사들의 모진 세월이 전해져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서대문형무소는 올 한 해 ‘이달의 독립운동가 시민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온라인을 통해 예약하면 된다. 방문 당시에는 ‘한국 독립운동을 이끈 청년 독립운동가들의 외교’를 주제로 강의가 열렸다. 이날 소개된 독립운동가는 황기환, 이희경, 나용균이었다. 강의에 참여한 한 시민은 “김구나 윤봉길처럼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처음엔 생소했다. 세 분의 역사를 들으면서 나의 무지함을 깨달았고, 반성하는 마음도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강의를 준비한 김철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학예사는 “과거 서대문형무소는 인왕산, 안산, 무악재 고개로 둘러싸여 있어 수감자들의 탈출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 현저동에 자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산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 때문에 중장년 방문객들이 등산을 겸해 오시기도 한다. 아울러 실제 수감자들의 후손이나 가족들이 오기도 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모임을 꾸려 자체적으로 투어를 즐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사교훈여행(다크 투어리즘의 우리말)의 측면에서 볼 때, 많은 분들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추구했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신념을 느껴보셨으면 한다. 또한,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신 후에는 근처의 독립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 등도 찾아도 좋겠다”고 조언했다.
[코스] 독립문역 5번 출구 ▶ 서대문독립공원 입구 ▶ 독립문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집(독립문 맞은편) *독립문을 기점으로 왕복하는 코스로, 역사적 사건 순으로 둘러볼 수 있다.
PART2. 전쟁의 역사 : 한국전쟁
[1] 피란수도 부산 소막마을
지난해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확정됐다. 현재 부산시는 2028년 등재를 목표로 지속 연구와 관리에 힘쓰고 있다. 부산에는 유독 가파른 언덕에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광경이 눈에 띄는데, 이 또한 피란기의 흔적이다. 한국전쟁 후 40만 명이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까지 늘어났다. 몰려든 피란민들은 생존과 생계를 위해 높은 언덕까지 판잣집을 지어 올렸던 것이다.
선별된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총 9곳으로, 그중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도 피란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2018,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715호 지정) 소막마을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으로 소를 수출하기 위한 검역소와 소막사가 있었던 곳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공업화·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여러 형태의 집들로 변모해 현재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한국의 근대화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산물인 셈이다.
[코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임시중앙청(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옛 부산측후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근대역사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 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등 총 9곳이다. 하루에 몽땅 급하게 둘러보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피란민들의 삶을 음미하며 살펴보길 바란다.
[2] DMZ 평화의 길
시간을 두고 여러 날에 걸쳐 다크 투어리즘을 계획한다면, ‘DMZ 평화의 길’을 추천한다. 도보 여행가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테마 코스 중 하나로 문화체육관광부, 환경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통일부 등 5개 부처가 합동으로 조성한 길이다. 2018년 4월 27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꼬박 1년 뒤인 2019년 4월 27일 강원도 고성 구간이 처음으로 개방됐다. 이로써 일반 시민들도 DMZ(비무장지대)를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철원, 파주, 양구 등 구간이 속속 개방되며 현재 총 11개 코스가 마련됐다. 전 구간 예약탐방제(두루누비 사이트 이용)로 운영되며, 올해는 대체로 4월 하순부터 예약을 시작해 11월 전후로 마감될 예정이다.(여름 혹서기 및 장마 기간 임시중단)
[코스] 강화 코스, 김포 코스, 고양 코스, 파주 코스, 연천 코스, 철원 코스, 화천 코스, 양구 코스, 인제 코스, 고성 A코스, 고성 B코스 *현재 고성B코스는 탐방객의 안전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중단됐다.
[Interview]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어두운 역사의 흔적에서 오늘의 교훈을 얻길”
최근 유행인 ‘다크 투어리즘’을 오래 전부터 주목하해온 이가 있다. 2017년 출간 도서 ‘다크투어’의 저자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다. 서울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그는 책을 쓴다는 핑계로 곳곳을 여행하다 다크 투어리즘에 눈을 떴다. 현재 그는 역사문화 여행 모임 ‘컬처클럽’을 7년째 운영 중이다. 모임을 통해 국내외를 누비며 직접 도보여행 길도 발굴한다. 저서에 소개된 '대한 제국의 길', '서대문의 길', '용산의 길' 등도 직접 개발한 다크 투어리즘 루트다. 그런 김 대표를 통해 다크 투어리즘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해봤다.
Q. 중장년들에게 다크 투어리즘을 권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A. 사람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역사가가 됩니다. 각자 역사의 증인이고, 역사평론가가 되며, 아마추어 역사가가 되지요. 어떤 의미에서든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역사관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관광을 하면 화려한 곳, 훌륭한 곳, 멋진 곳을 가기 쉽습니다. 이런 것을 그랜드투어(grand tour)라고 하죠. 하지만 다소 불편하더라도 과거의 어두운 곳을 찾아 역사의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dark tour)도 필요합니다. 이런 곳에서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이 현장에 없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기도 합니다. 또, 역사의 교훈을 얻어 앞으로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실패에서 얻는 교훈, 재발방지 다짐을 하게 되는 거죠.
Q. 다크 투어리즘 현장에서 유념해야 할 에티켓이 있을까요?
A.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모르면 자신의 단견으로 이해해버리거나 현지에서 가볍게 말하기 쉽니다. 즉 공부가 필요하죠. 사건과 관련된 주민들도 만날 수 있는데 역사를 모르면 섣부른 행동으로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이념에 치우치기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장에서 겸허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큰 목소리는 삼가는 게 좋습니다.
Q. 해외와 비교해 국내 다크 투어리즘이 지니는 특징이 있나요?
A. 예전에는 한국에서 다크 투어리즘 장소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현장에 가면 안내판이 없고, 유적, 유물이 제대로 보존돼 있지 않았지요. 근래에는 다크 투어리즘 관련 문화 유적을 많이 발굴하고, 기념관, 유적지, 친절한 안내판, 간단한 표지석 등을 두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현재는 외국과 수준이 비슷해졌습니다. 다만 몇몇 장소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어둡게 만들어져 있어 과도한 긴장감을 주기도 합니다.
Q. 다크 투어리즘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A. 다크 투어를 할 때에는 진정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열 군데, 스무 군데 리스트를 만들어 많이 다녀왔다한들 큰 의미는 없습니다. 현장을 제대로 알려는 호기심, 진정성이 바탕이지요. 다크 투어리즘이 좋다고 너무 연달아 가는 것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너무 몰입하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밝은 여행지와 섞어서 다니길 권합니다.
※ 자료 제공 및 도움말 한국관광공사, 서울관광재단, 서대문형무소역사관
3월 초, 봄이다. 아직 일러 꽃이야 보이는 게 없지만 저만치 있는 팔달산에 봄기운 아련하다. 대기에도 도로에도 봄볕 묻어 따사롭다. 돌아다니기 좋은 날이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더니 화성행궁 쪽으로 밀려간다. 행궁광장은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거니는 이들로 평화롭다. 수원시립미술관은 광장 북쪽에 있다. 유서 깊은 행궁과 예술의 그릇인 미술관이 공존하는 곳이다. 역사와 예술이, 전통과 현대가 어깨동무를 했다. 볼 것도, 느낄 것도, 담을 것도 많은 동네다.
2층 건물인 수원시립미술관의 외관은 좀 독특하다. 높이는 낮지만 좌우로 무척 길다. 입면의 길이가 75m나 된다. 그렇게 지은 정황이 있다. 행궁 일대에 적용되는 고도제한을 고려해 지었다. 높이 올릴 수 없어 폭을 넓혔다. 설계자는 ‘간삼건축’ 부사장 진교남. ‘건축의 본질과 정신을 시민 건축(Civic Architecture)으로 구현하는 건축가’라는 찬사를 듣는 인물이다. 역사 옆에 예술을 앉히기. 조선 최대의 행궁이자 정조의 족적이 서린 화성행궁 바로 옆에 미술관 짓기. 이게 쉬운 일인가? 곤혹스러웠겠다. 설계자로서 정색하고 궁리해야 할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을 테니까.
무엇보다 행궁의 품격과 위엄을 깎아내리는 결례를 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진교남은 꾸벅 머리 숙여 자세를 낮춘 건축으로 예를 다하고 싶었나? 행궁 쪽 높이를 반대쪽보다 낮추어 겸손을 표한 장면을 주목할 만하다. 겸손보다 유능한 조화의 기법이 드물다는 걸 통기하는 대목으로 읽어도 되겠다. 미술관 전면의 광장은 드넓어 휑하다. 때로 이벤트가 펼쳐지면 인파가 몰려들겠지. 따라서 광장의 모호하고 광활한 기세에 조응할 만한 미술관 형상이 요구됐을 터인데, 설계자는 무뚝뚝하고도 육중한 노출콘크리트 건물을 지어 기를 돋우었다. 광장에 눌리는 게 없다. 진교남은 이런 요지의 얘기를 했다.
‘전통적이냐, 현대적이냐, 디자인을 놓고 고민이 많았다. 결국 두 가지 선택지 중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다. 대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떠나 시대정신을 담는 일에 가장 큰 비중을 뒀다.’
건축의 기본을 조화에 두되 ‘시대정신’을 지향했다는 얘기다. 시대정신이란 사회 전반에서 공유되는 본질적 가치를 말하는 것일 텐데, 그는 대중과의 소통을 건축의 키워드로 삼았다. 따라서 열린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권위적인 디자인 요소를 배제했다. 뽐내거나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처럼 벽 없는 소통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미술관 하부 벽면에 통유리를 끼워 안팎 경관이 서로 자유롭게 드나들게 했다. 내부 동선을 통하지 않고 밖에서도 바로 건물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또 어떻고? 계산이 다 있다. 울타리 없이 대범하게 열린 미술관이라는 시그널이니까.
편안하다! 무엇이? 미술관 내부의 분위기를 말함이다. 입구를 통해 라운지로 들어서자 긴 병풍처럼 즐비한 유리창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외부로 확 트인 개방성으로 답답한 게 없다. 행궁과 광장과 행인의 풍경은 물론, 햇살마저 거침없이 솰솰 창으로 쏟아져 들어와 환하다. 조도(照度) 조절이 필요한 전시실을 제외하고 모든 실내 공간에 대형 창을 내 태양광을 끌어들인다.
반갑다, 나혜석의 ‘자화상’
출입문은 세 개다. 어느 문으로 들어오든 카페테리아 구역을 경유해 전시실로 들어갈 수 있다. 공간 구조물들은 선이 굵은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처럼 호연한 맛을 풍긴다. 치레와 장식과 군더더기를 깨알처럼 맵시 있게 집어넣어 시각적 쾌감을 주는 미술관이 많지만, 이 미술관은 별반 양념을 치지 않고 내부의 선과 면을 단장했다. 고로 편안하다. 미술관에 왔으니 전시실 작품에 주로 눈길을 꽂아달라는 청유가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악센트를 준 대목도 있다. 통로의 양쪽 벽을 사선(斜線)으로 슬쩍 기울여 세웠다. 회심의 한 획처럼 과감한 공법을 단행한 벽 구조다. 그렇다면 디자인 혁신? 아무려나, 통로를 지나는 사이에 통째 몸을 숙여 착하게 인사하는 벽면의 환대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을 야기한다. 벽엔 무늬가 박혀 있다. 송판으로 거푸집을 짜 만들어낸 문양으로, 노출콘크리트의 딱딱한 질감을 눅이는 자연미를 구현했다. 간과하기 쉽지만 설계자는 이 대목에 방점을 꾹 찍었다.
전시실로 들어선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세계에 이름을 날린 에르빈 부름(Erwin Wurm)의 개인전 ‘나만 없어 조각’전이 펼쳐지고 있다. 미술의 본령은 보이지 않는 걸 보게 한다는 데에 있다. 미술 작품이 재미있는 건 남들이 하지 않던 행위를 찾아 해내는 일에 이골 난 사람들의 산물이라는 데에 있다. 그들은 이상한 상상력과 놀라운 창의성으로 조형한 작품으로 지루하고도 멍청한 세속에 엔도르핀을 배송한다. 에르빈 부름 역시 창의로 세상을 비튼다. 웃어주거나 비꼰다. 국내엔 부름에 갈채를 보내는 마니아가 많다지. 아마도 부름의 전위성에 박수를 치는 것 같다. 그는 일찌감치 옷을 조각의 오브제로 끌어들였다. 나아가 변화하거나 증감하는 세상의 모든 현상 자체를 조각으로 보았다. 조각의 외연을 무진장하게 확장한 셈이다. 일반적인 의미의 조각 작품만이 아니라 그가 손을 댄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드로잉, 회화까지 모두 조각이라고 정의한다. 하기야 세상을 고성능 감관으로 바라보면 뭐 하나 예술 아닌 게 있으랴.
한국에서 펼쳐진 부름의 전시회 중 최대 규모인 이번 개인전은 작품 61점을 3개의 전시실에서 선보였다.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지고 뚱뚱한 자동차 형상을 한 작품 ‘팻 카’(Fat Car)는 가지면 가질수록 허기지는 소비사회의 탐욕을 꼬집는다. ‘UFO’는 실제 포르쉐 차를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납작하게 변형시킨 조각이다. 물신을 예배하는 세상의 허영과 가식을 풍자했다. 작가는 이렇게 욕망을 동력으로 해 급발진을 일삼는 자본주의 풍속에 옐로카드를 휘젓는다. 그의 메시지는 사실 범상하다. 재미있는 건 작풍(作風)이다. 쉽고 가볍고 익살맞다. 다른 전시실에서 다른 콘셉트로 진행되는 ‘1분 조각’전은 관객 참여형 전시회다. 부름이 설치한 조각에 관람자가 직접 1분여간 개입해 일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작품이 완성되도록 했다. 가히 기발하지 않은가? ‘1분 조각’전은 일찍이 부름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린 출세작이다.
2층 한편엔 나혜석홀이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불리는 나혜석의 유화 넉 점을 전시했다. 그의 대표작 ‘자화상’도 있어 반갑다.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때 그는 야수파 화가들과 어울리며 영향을 받았다. ‘자화상’에서 강렬한 색감과 대담한 묘사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야수파의 경향성이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 걸 느낄 수 있다. 자화상이지만 실물과 다른 전형적인 서구 여성상을 그린 건 왜일까. 나혜석은 못 말릴 투사형 페미니스트였다. 세상의 빙하를 데카당스로, 마그마 같은 열정으로 섭렵하며 냉대를 자청하기도 했다. 뒤틀린 시대를 고발하고 도발했으며, 성취에서든 방황에서든 그는 매우 독립적인 인간이었다.
박현주 수원시립미술관 홍보마케팅팀 주무관
“에르빈 부름 전시회에 자그마치 4만~5만 명 다녀가”
수원시립미술관은 화성행궁, 성곽길, 행리단길 등을 즐길 수 있는 관광 벨트 안에 있다. 특유의 장소성을 보유한 미술관이다. 그래서일까. 8년 전 개관 이래 관람 인원이 점차 늘더니 요즘엔 급증했다. 장소성 외에 차별화된 전시 클래스와 미술관의 편안한 분위기 역시 관람객 확산을 견인한다. 박현주 주무관은 수원시립미술관이 ‘전시회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미술관’이라는 촌평을 흔히 듣는다며 말을 이었다.
“위압감을 주는 대형 미술관이나 디자인에 복잡한 디테일을 가미한 미술관에선 관람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는 다르다. 편안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조성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에르빈 부름의 작품 전시장에 관람객이 많더라. 게다가 다들 작품에 몰입돼 뜨거운 분위기였다.
“3개월에 걸친 전시 기간 중 찾아온 관람객이 4만~5만 명에 달한다. 지역 미술관에서 이 정도로 성황을 이루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 부름의 인기도를 반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는 물질적 팽창을 가속하는 현대사회의 병증을 풍자한다. 심각하기보다 유쾌한 위트로 가볍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를 드러낸다.”
문제적 개성의 표본이라 할 만한 나혜석의 작품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가 그린 회화는 300점이 넘지만 작업실 화재로 대부분 소실됐다지?
“국내에 존재하는 나혜석 작품은 10여 점에 불과하다. 이 중 넉 점을 우리 미술관이 소장했다. 나혜석의 일생은 워낙 파란만장해 가십거리로 취급된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는 굉장히 유능한 여성 운동가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도발적인 어록을 보라. 당대는 물론 이 시대에도 의표를 찌르는 메시지가 실려 있는 게 아닌가.”
주로 어떤 작품들을 소장했나?
“페미니즘과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소장품 역시 나혜석 작품을 필두로 주로 여성 작가들의 것이다. 그게 수집 방향이다.”
미술관 개관 이래 실감한 관람객의 추세 변동이 있다면?
“젊은이들의 관람이 확연하게 늘었다. 미술관을 찾아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는 청년층에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미술의 저변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현대미술은 알고 보면 즐겁지만 무관심한 이들에겐 따분할 수 있다. 미술관을 알차게 향유할 수 있는 기법이 있다면?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일차로 작품을 감상한 뒤, 개별적 투어로 작품을 재차 감상하는 게 요긴하다. 그렇게 하면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을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반복하다 보면 서서히 안목이 생긴다. 안목이 열리면 드디어 미술을 즐길 수 있고.”
이 미술관엔 옥상정원이 있다. 화성행궁을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박현주 주무관은 미술 관람 뒤엔 꼭 옥상정원에 올라가길 ‘강추’한다. 조망은 물론 ‘시간이 멈춘 듯한 운치를 자아내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유니버설디자인은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에도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말한다.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은 이 유니버설디자인을 적용한 모두를 위한 집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를 짓고 임대주택으로 시장에 공급하는 일을 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는 서울 수유의 다세대주택(16세대)과 망우의 다세대 및 주거용 오피스텔(37세대)이 있으며, 현재 입주민이 살고 있다. 여기에 수락의 연립주택(33세대)을 필두로 창동(28세대)·장안(42세대)의 원룸형 아파트가 올해 완공될 예정이다.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는 노약자를 생각한 세심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휠체어의 이동이 편리하게 건물 내에 단차를 없앴으며, 세대부에는 미끄럼 방지 바닥재, 보조의자, 미닫이문 등을 설치했다.
일명 ‘유디 아재’로 불리는 이범재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 대표를 만나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를 짓게 된 배경, 그리고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의 주거 공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장애인 인권 향상 운동하다 집 짓기까지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는 장애인, 고령자 등 주거 약자도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집’을 표방한다. 이범재 대표는 “장애인만, 고령자만 살 수 있는 특수 계층을 위한 집이라기보다는 장애인이든 고령자든 누구나 살 수 있는 집이라고 생각한다. 주거 환경을 개선했다는 뜻이 더 강하게 담겨 있다”라고 말했다.
막연히 이범재 대표는 건축 분야 전공자 혹은 관련 일을 오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전혀 아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니 집도 짓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이범재 대표 역시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어 장애인이 겪는 불편함을 잘 알고 있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제가 1962년생인데, 과거 우리나라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굉장히 극성했다. 동년배 중에 저와 같은 소아마비 장애인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범재 대표는 장애인 인권에 관심이 많아 시민 운동을 펼쳤고, 장애인인권포럼 대표도 지냈다. 유니버설디자인은 약 20여 년 전, 일본에서 유니버설 디자인 국제 전시회를 방문하면서 알게 됐다. 일본은 한국보다 일찍 고령화됐고, 대응도 발 빠르게 마련했다. 그 일환으로 유니버설 디자인도 확산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유니버설디자인의 존재와 가치에 놀라움을 느꼈고, 국내에도 도입이 시급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 대학생을 대상으로 유니버설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다. 공모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유명한 디자인 공모전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범재 대표는 지난 2009년 설립된 IT 분야 최초 사회적기업 ‘웹와치’의 대표이기도 하다. 장애인 IT 전문가 및 비장애인 연구원들이 사용성을 진단하고, 웹접근성 인증마크 발급을 평가하는 곳이다. 이 대표는 장애인 시민 운동을 하다 ‘웹와치’를 차렸고, 또 ‘웹와치’를 통해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저희 회사 ‘웹와치’에 장애인 직원분들이 10여 명 근무하고 계세요.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사는 경우도 많아서 그분들을 위해 일종의 기숙사 같은 집을 지어볼까 생각했죠. 그런데 직원분들이 회사 일이 계속 이어지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기숙사 개념을 원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기숙사 건축은 무산됐는데, 장애인을 생각한 집이라는 아이템은 남아서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를 설계하게 된 거죠.”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은 2016년에 만들어졌다. 이범재 대표는 “장애인이나 노인들은 아파트보다는 비아파트(단독주택, 다세대 주택)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노후된 집이 대부분이고 환경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서울시의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사업에 참여했다. 서울시가 토지를 빌려주는 사업으로,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집을 공모해 선정됐다. 이 대표는 “총 6개의 사업이 선정돼 2017년부터 집을 지었다. 올해 3개가 더 준공되면 그 당시에 시작했던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가 완공된다”고 설명했다.
노인의 자립생활 가능케하는 거주 공간
이범재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수유 다세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중증 장애인 청년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어머니하고 같이 살던 청년은 자립생활을 하고 싶다면서 입주를 원했다. 처음에 인터뷰할 때 어머니도 같이 오셔서 청년 뒤에 앉아 계셨다. 걱정과 기대가 가득한 모습이셨는데, 저희 어머니 생각이 나서인지 그 모습이 뇌리에 남는다. 청년은 물론 지금도 하우스에 잘 살고 있다. 만족도도 높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중증 장애인 청년의 사례는 유니버설하우징협동조합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 유니버설디자인하우스는 ‘노약자를 비롯해 여러 계층이 섞여 사는 소셜 믹스’를 추구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노약자의 자립생활, 인디펜턴드 리빙(Independent Living)이 가능·유지되는 것이다. 이범재 대표는 노인의 자립생활이 유지되어야 개인의 행복이 증진되고, 사회적인 비용도 최소화된다고 생각한다.
“주거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자기 힘을 최대한 발휘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단 거죠. 그게 바로 자립생활인데 사회적 비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자립생활을 못 하게 되면 누군가의 서포트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고,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약자의 자립생활을 돕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비용을 최소로 줄이면서 안정성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는 거죠.”
이범재 대표는 노약자의 자립생활을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첫 번째는 자립생활을 하겠다는 본인의 의지이며, 두 번째는 주위 환경이다. 이 대표는 “노약자를 돕는 주거 환경은 공간의 구성, 편의성·접근성을 높인 인테리어 등을 통해 바뀔 수 있다. 지역사회, 서비스의 변화도 필요하다. 서비스란 거동이 불편한 사람한테 필요한 가사도우미의 도움 등을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해심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협업해 만든 어르신 맞춤형 공동체주택입니다. 만 65세 이상 저소득층과 취약계층 노인 25분이 살고 계신데, 그분들의 자립생활 가능·유지가 전제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해심당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병원을 가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하며, 일자리도 제공 받아 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모델이 많아질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만큼, 고령자를 위한 주거 공간이 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범재 대표는 고민이 많다. 이 대표는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는 새로운 유형의 노인 실버타운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유니버설디자인은 디자인적인 접근이고, 해심당은 운영적인 접근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을 녹여서 노인의 자립생활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전체 인구 중 가장 많은 비중(32%)을 차지하는 4050세대.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젊은 층과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언제, 어디에 지갑을 열까? 최초로 100세 시대를 맞는 이들이 스스로 전망하는 노후는 어떤 모습일까?
수명 120세 시대, 나의 심정은?(복수응답) 57.4% 걱정된다
나의 노후 전망 점수는? 57점
반면 스스로 평가내린 노후의 모습은 영 어둡기만 하다. 120세 시대에 대해 걱정되고, 겁이 나고, 우울하다는 감정을 드러냈다. 길어진 노후가 공포로 다가오는 듯한 모습이다.
“최근 경제 침체로 구조조정 등이 시행되면서 원치 않게 생업에서 물러난 사례가 많죠. 노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노후 빈곤 문제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김동철 심리학 박사
노후자산 얼마나 마련했나?
부부 기준 은퇴 후 30년간 필요한 노후자산은 7억 800만 원.* 실제로 원하는 노후자산 수준도 이와 비슷했으나(7억 원 내외 34.6%), 준비되지 않은 노후가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노후에 대한 여러 지표들이 부정적이지만, 그런 만큼 후기청년이라는 용어가 주는 긍정적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겠습니다. 청년의 입장에서 중년, 노년을 단계적으로 설계하고, 푸릇하고 활기찬 이미지를 고취함으로써 세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테니까요.”
- 김동철 심리학 박사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는 몇 세까지 청년일 수 있을까? 40대를 중장년으로 칭해도 되는 걸까? 기대수명 120세 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 전국 40~59세 500명에게 세대인식에 대해 물었다.
몇 세까지 청년으로 봐야할까?
응답자 2명 중 1명은 40세 이상도 청년으로 볼 수 있다고 응답했다. 만 35세 미만을 청년으로 구분하는 통상적 세대 구분 기준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내가 속한 세대는? (40~44세 남녀) 22.2% "나는 청년 세대다"
실제 나이와 체감 나이의 차이 65% "내 나이보다 젊다고 느껴"
조사 참여자의 과반수(65%)가 체감하는 나이를 실제 나이보다 적게 느끼고 있었다. 해당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자립하거나, 결혼하는 연령대가 점점 늦어지고 있어요. 또 기성세대가 과거 40대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회적 지위를 길게 누리면서, 지금의 40대는 정책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청년기 입지에 놓이게 됐죠.”
-김찬호 사회학 박사
사회적 세대 구분 기준 변화 필요
기준 변화에 대한 의견은 다양했지만, 응답자의 91%가 사회적 세대 구분 기준이 변화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었다. 본인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에 대한 의견은 어떨까?
4050세대 용어 중 가장 많이 들어본 용어는?
4050세대는 세대에 대한 용어로 중장년, X세대, 낀 세대 순으로 익숙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용어가 적합한지 묻는 질문에는 냉담한 반응이 돌아왔다. 절반(51.8%)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 것.
4050세대를 위한 새로운 용어, ‘후기청년’이 적합하다
이에 브라보마이라이프가 용어 ‘후기청년’을 새롭게 제안했다. 시기상으로 청년기의 후반을 뜻하며 ‘완성되고’, ‘완숙했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에 응답자의 과반수가 적절한 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50대 후반을 후기 ‘청년’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차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봅니다. 노인의 사회적 기준이 65세 이상이라지만 대중은 이미 60대를 노인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듯이 말이죠.”
- 김찬호 사회학 박사
“명사들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움직이며 우리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명성의 본질과 가치는 무엇이며, 우리는 명성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김정섭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지난 3년간 인간의 ‘명성’(名聲)과 각계의 ‘명사’(名士)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이 주제를 깊이 연구했다. 그는 관련 이론·데이터 분석, 수양·실천 컨설팅 전략의 발굴 제시는 물론, 각계 명사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학술적 통찰을 끌어냈다. 본지가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입수해 창간 특집으로 독점 게재한다. 연구 결과물은 ‘셀럽시대’(한울엠플러스)란 책으로 오는 5월 출간될 예정이다.
“사람들은 식당에서 사진을 보고 경탄하며 ‘칠리치즈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해요. 그런데 실제로 나오면 양념이 풍부하고 느끼한 그걸 다 먹어야 하냐는 부담감을 느껴요. 그때 ‘일반 감자튀김’을 시켰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후회하죠. 인간에게 명성이란 바로 이런 존재예요.”
‘그릿’(Grit, 2016)의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2021년 2월 28일 미국 팟캐스트 ‘프리코노믹스 라디오’에 나와서 한 얘기다. ‘명성’은 자아실현 욕구를 지닌 인간의 본능이자 인생의 성공 가도에서 간절하게 그리는 꿈이다. 동시에 앤절라 더크워스의 말처럼 ‘약’과 ‘독’이란 양면성을 지녔다. 명성은 인생 경험과 성과의 소산이자 자신을 웃고 울게 만든 가치이기에 깊은 통찰력과 혜안을 지닌 시니어들에게 더욱 친숙한 어휘다. 명성은 사회적으로 신뢰와 참여를 촉진하고, 정치적으로는 투표율과 지지를 견인하며, 경제적으로는 그 존재량이 희소해 ‘관심경제’는 물론 명성에 대한 선망, 추종, 숭배를 극소수에 집중시키는 ‘슈퍼스타 경제학’을 구성한다. 인터뷰에서 문인·철학자는 대체로 명성을 경계하고, 정치인·경제인·의료인은 능력과 신뢰에 바탕을 둔 적극 활용론을 강조했으며, 예술인·체육인은 조건부 활용론에 방점을 두었다.
명성은 ‘약’과 ‘독’ 양면성 지녀 경계해야
‘풀꽃 시인’ 나태주는 2015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꼽은 바 있는 ‘풀꽃(1)’을 썼다. 시구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인데, 그는 이 시에 대한 폭넓은 사랑으로 ‘국민시인’으로 떠올랐다. 나태주 시인은 ‘명성’에 대해 “전적으로 남이 알아주고 평가해주는 고귀한 가치”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명성을 위해 자신의 존엄성을 버리고 아첨하고, 반칙하며, 사술(詐術)을 부리며 아등바등하는 것은 거부했다. 심지어 신춘문예 당선이나 등단에 조급증을 갖거나 빨리 쓰려고 하는 문단 후배들까지 꾸짖었다.
그는 “명성은 유효기간이 매우 짧은 데다 그것에 집착하다 보면 영혼을 망가뜨리기 쉬우므로 존엄과 품위가 가미되어 더 가치가 있는 ‘명예’를 중시한다. 명성은 물로 씻으면 금방 지워져버리는 젊은이의 ‘화장’과 같고, 명예는 경륜 있는 노인들이 갖는 가슴속 숨겨진 ‘흉터’처럼 잘 드러나지도 않고 잘 지워지지 않아 영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철학자 강신주는 철학과 인문학을 인간의 삶에 투영해 저술과 강연을 통해 날이 선 언어로 소통을 확대해왔다. 그는 명성을 절대 추구해서는 안 될 ‘노예의 가치’로 보았다. 그는 “철학과 인문학의 견지에서 명성 추구는 주인인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삶을 따라가야 하는 ‘노예의 전략’”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명성을 추구하는 삶은 자기 목소리를 잃고, 자신의 삶도 없고, 허깨비 같은 것을 좇는 것이기에 결국은 꼭두각시의 삶을 사는 것”이라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초래하는 부작용에 초점을 두었다.
정치인 정세균(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국내 헌정사 최초로 여야의 정당 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모두 역임해 ‘대통령만 빼고 다 해본 정치인’으로 통한다. 국회의원(6선), 장관(산업자원부), 원내대표도 지냈다. 그는 “‘명성’은 국민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같은 일종의 세평(世評)이지만, 명예는 본인 성과에 대한 자신의 가치판단과 자부심의 척도다. 명성은 반드시 공적으로 좋은 의미를 지닌 일에 열정을 발휘해 얻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회 ‘한보청문회’(1997년)에서 한보의 로비 자금을 거절한 유일한 국회의원으로 밝혀져 일약 명사로 부상한 이후 지금껏 겪은 성찰을 집약한 것이다. 그는 “국민이 우러러보는 ‘정치인 명사’가 되려면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맡은 공직의 무게를 온전히 떠안으며 일하는 ‘책임의식’, 정성과 투명성을 기본으로 국민을 받드는 ‘신뢰성’, 매사 분별력을 발휘하며 신사 숙녀처럼 처신하는 ‘품격’이 몸에 배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종인, “정직해야 명성 쌓아”
‘카리스마 리더’ 김종인(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내로라하는 경세가다. 5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정·관·학의 풍부한 경험 축적은 물론 ‘차르’란 별칭, ‘직업이 비대위원장’이란 비유가 말해주듯 강한 소신과 뚝심으로 진보에서 보수를 망라하는 정당을 모두 이끌었다. 그는 “명성은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인에게 목숨과 같고, 국민 앞에 서서 정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갖고 이를 드높여 성공하려면 기본적으로 일을 잘하고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없으면 국민에게 피해만 준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의 명성 축적과 유지의 기본 요소는 정직성, 일관성, 신뢰성인데, 그중에서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정직”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정치적 경륜과 지략이 풍부해 ‘정치 9단’으로 불린다. 그는 “정치인은 오늘을 잘해서 내일을 사는 사람이다. 국민의 인정(認定)을 받아야 명성을 얻고, 그 명성을 기반으로 정치력을 발휘하고 정치생명을 이어가기 때문에, 명성은 정치인에게 존재 자체이자 전부”라고 정의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얻으려면 철두철미하게 지식을 쌓고, 국가 사회와 국민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미래 상황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등의 자기계발을 하고,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영향력, 기능, 효과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매개체인 언론을 하늘같이 알고 받들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나는 신혼여행 이후로는 아내와 여행 한번 같이 못 갔을 정도로 정치 행위 그 자체를 즐기며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를 아예 동일시(同一視)하며 살았다”라고 회고했다.
김세연 전 의원(청년정치학교 운영자, 3선 의원)은 ‘36살의 집권당 최연소 당선’이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정계에 입문해 개혁보수와 우파혁신을 주창한 ‘청년정치 리더’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명성은 오직 정치인 본인의 의도나 의사와 무관하게 공직에 대한 열정적·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 그 결과물로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은 외려 명성과 거리를 둘 때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위해 일하면 공적인 의사결정에 중대한 왜곡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지향하는 정치를 하면 안 되고, 그런 욕망이나 의도를 가진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한시적으로 위임된 권한과 권력을 사유물인 양 착각한 나머지 여의도 정가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명성 지향’, ‘명예 지향’의 정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거부한다”라고 덧붙였다.
“일관된 목표·방향성 갖고 혁신경영”
차석용 LG생활건강 전 대표이사 부회장은 평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조직, 제품, 서비스 혁신 분야에서 남다른 역량을 발휘해 2022년 말 은퇴하기 전까지 무려 18년간이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그는 “기업과 CEO의 명성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서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소비자들의 명민한 감각과 반응으로 시시각각 정확하게 측정되는, 영예롭고도 두려운 양면적 존재”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그는 “기업과 CEO는 소비자를 ‘진정한 보스’로 모시고 기업의 증진을 위해 분명하고 일관된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혁신경영에 몰두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CEO로서 LG생활건강에서 강조한 기업과 제품의 명성 증진 전략은 정직, 진정성, 신뢰, 디테일(세심함과 정확함)이었다.
이종천 ‘다나딸기농장’ 대표(충남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는 독보적인 반전의 귀농 성공신화를 쓴 ‘딸기왕’으로 농업계와 지역사회에서 명성이 높다. 이종천 대표는 “농민의 명성은 자신이 재배한 작물이 말해준다. 저에겐 풋풋하고 탐스러운 저 딸기가 그걸 상징한다. 온갖 정성, 노력, 풍상, 고초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농사의 묘미는 자연과 함께 인생을 즐기며 향긋한 결과물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딸기 특구’이자 딸기 수출 전진기지인 충남 논산의 성공한 농업인이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위촉한 농업 후계자를 교육하는 현장의 교수로 활동하며 농촌의 미래를 가꾸는 데 헌신하고 있다. 건설사 임원 출신인 그는 퇴직하고 시작한 통신 서비스 사업의 실패 후 무작정 귀농해 8년간 딸기 농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현재 비닐하우스 딸기 재배동 7개 동과 딸기 육묘장 2곳, 청년귀농장기교육장과 딸기현장실습교육장을 함께 운영하며 연 7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명성은 존재감 뚜렷한 불편함”
서울 용산의 ‘메이플라워/술술상점 용산’ 정미희 대표는 최근 SNS에서 매우 뜨거운 유명인사다. MZ세대 CEO로서 뛰어난 외적 매력을 바탕으로 최근 10년간 미식 탐방, 새벽시장 장보기, 술 시음과 술집 탐방, 여행과 골프 체험기 같은 일상적 콘텐츠를 페이스북에 게시해 인기를 끌면서 ‘SNS 셀럽’으로 떠올랐다. SNS를 한 시대의 문화로 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정 대표는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NYT, 2022년 1월 20일 자)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명성은 불편함도 크지만, ‘존재감 미약한 편안함’보다 ‘존재감 뚜렷한 불편함’이란 나의 취향을 충족시킨다. 사업보다 친교에 도움이 된다. 수상한 접근을 하는 ‘가짜 친구’도 많이 생기긴 하지만 일생을 함께할 친구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형석 미래본병원 대표 원장(신경외과 전문의, 서울 잠실)은 ‘경추·요추 부위 내시경 수술(수술 경력 9000건)의 명인’이다. 김 원장은 “의사의 명성은 환자를 사랑으로 극진히 돌봤는지에 대한 자화상 같은 척도다. 그것은 오직 환자와 직결되며, 환자를 떼놓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사는 신뢰와 사랑을 토대로 사력을 다해 환자를 보살펴야 한다. ‘좋은 의사’, ‘훌륭한 의사’, ‘명예로운 의사’의 출발점도 이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의사가 명의(名醫)란 명성을 얻으려면 환자의 아픔을 깊이 헤아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공감 능력’과 ‘좋은 인품’, 환자를 제때 제대로 치료하는 ‘뛰어난 실력’, 환자에 대한 ‘치료 의지와 자신감 표출’이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주대 의대 출신으로 군의관 시절 선구적인 내시경술 수련과 아프간 의무부대 참전, 척추 전문 병원인 우리들병원 수련원장과 의무원장, 우리들의료재단 부이사장을 거쳤다. 그는 “높은 명성을 지닌 의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은 자만과 오만, 그리고 그것의 연쇄반응으로 나타나는 게으름과 나태함”이라고 지적했다.
“배우에게 명성은 삶의 기적과 고귀”
‘대장금 한류’의 주역 양미경 배우는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한 상궁’ 역을 맡아 드라마가 국내는 물론 동남아·중동 지역까지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로 부상했다. 양미경 배우는 “‘명성’은 삶의 기적이며 고귀(高貴)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그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명성(名聲)은 이름이 소리가 나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 소리는 선(善)함을 바탕으로 인고의 노력과 울림을 통해 영롱한 새벽이슬처럼 만들어진 것이기에 ‘명성은 고귀’하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40년간 연기를 통해 맑고 선한 성정, 곱고 단아한 이미지를 각인하는 독보적인 페르소나를 구축해온 명성과 관록에서 나온 통찰이다. 라마단(Ramadan) 기간에도 ‘대장금’을 시청할 정도로 경이적인 시청률(90%)을 나타낸 이란에서 2009년 5월 그를 ‘국빈’(國賓)으로 공식 초대했다. ‘대장금’이 2015년 홍콩에서 방영되었을 때 시민의 약 절반인 328만 명이 시청(최종회 최고 시청점유율 50%)해 홍콩을 방문할 때마다 엄청난 팬들이 몰렸다. 그는 “‘대장금’ 출연 당시 홀연히 찾아온 에너지처럼 새로운 차원의 명성을 느꼈다. 그것은 매우 강한, 삶에서 흔히 만날 수는 없는 특별한 에너지였다”라고 술회했다.
‘골프 여신’ 최나연 프로는 우리나라 ‘여성 골퍼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그는 “세계적인 선수라는 명성을 안겨준 원동력은 전적으로 태생적 자질인 강력한 도전정신과 성취욕이다. 나는 일관성과 꾸준함을 가장 잘 보여준 프로 골퍼로 골프사에 기억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력·매력·저력’을 완비한 골퍼로 ‘롱 아이언 샷의 명수’이자 ‘골프계 최고 얼짱 스타’로 불렸다. 2004년 11월 데뷔 후 18년간 미국여자골프(LPGA) 최고의 대회인 ‘US여자오픈’ 우승(2012)은 물론 LPGA 대회에서만 우승 9회, 준우승 12회, 3위 7회의 저력을 보여준 뒤 2022년 말 전격 은퇴했다. 그는 “‘우승’과 ‘준우승’의 차이는 집중력, 경험, 실력, 운(運)이란 4가지 요소가 경기 당일 어떻게 최적의 조합을 이뤄 경기력으로 구현되느냐에 달려 있다. 골프를 잘하려면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4가지 요소를 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스타 골퍼’들이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겸손한 성품, 끊임없는 실력 증진 노력, 선수 자신에 대한 믿음이란 3가지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명성, 긴장시키고 겸손하게 만들어”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은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명성을 갖고 있다. 그는 “명성이란 사람을 끊임없이 긴장시키고 겸손하게 만드는 두려운 것이다. 내가 기자로서 유명해졌다는 것을 처음 느낀 순간은 이메일과 SNS를 통해 내가 쓴 기사에 대한 공감과 긍·부정의 평가가 쏟아지던 순간이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저널리스트로의 명성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려움이 앞서 균형감각 유지에 대한 강박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32년 차 기자로서 ‘AP통신’ 기자 시절인 1999년 9월 30일 영구적으로 묻힐 뻔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특종 보도해 2000년 한국인 기자로는 처음으로 서구 언론계에서 ‘언론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탐사보도 부문)을 받아 명사가 되었다. 그는 “오늘날 나를 만든 힘은 강한 성취욕과 성실성이다. 노근리 사건의 취재는 어떤 피해자가 쓴 논픽션 실록의 출판이 당시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담은 책 내용에 두려움을 느낀 출판사에 의해 거부되고, 한미 양국이 피해자들을 외면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밝혔다.
KBS 박지원 아나운서는 방송계에서 경쾌한 에너지와 톡톡 튀는 매력을 갖춘 ‘MZ세대 아이콘 뉴스앵커’로 통한다. 그는 “나에게 명성은 방송사에서 일을 더 열심히, 더 잘하게 하는 동기부여 요인이자 원동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9년 11월부터 공영방송 KBS의 ‘KBS 뉴스 9’(주말) 뉴스 진행을 맡고 있다. 박지원 아나운서는 “방송을 하는 사람에게는 누가 프로그램을 봐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나한테도 그것이 일할 때 항상 열정을 잃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명사로 인정받을 만한 유능한 앵커가 되려면 첫째 기사를 보고 핵심을 파악하고 한 걸음 더 들어가 깊게 질문하는 능력, 둘째 명쾌하고 유려한 전달력, 셋째 진행 능력과 같은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BTS, “기본적인 것, 결과에 따른 신뢰”
한편 세계 음악 시장을 석권한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을 한몸에 받은 피겨 스타 김연아는 언론 매체를 통해 명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방탄소년단은 2019년 11월 미국 패션 잡지 ‘페이퍼’(PAPER)와의 화보 인터뷰에서 글로벌 스타로 유명해지면서 점점 높아진 명성에 뒤따르는 부담감을 고백했다. ‘멤버들은 명성이 주는 부담감이 큰가?’란 질문에 대해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저는 요즘 사명감으로 살고 있어요. ‘완벽해야 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진짜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들, 결과에 따라오는 신뢰를 기억하며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죠”(제이홉), “완벽에 가까운 공연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지민), “압박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요”(슈가), “여전히 우리는 무대 위에서 정말 잘하고 싶어요”(리더 RM)라고 각각 답했다.
김연아는 명성의 유무에 대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경험을 털어놓음으로써 운동선수가 갖는 명성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19세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3년 전 (나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때는 혼자 외롭게 싸웠다”라고 울먹였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거둬 명사가 된 후에는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러다 보니까 좀 불편한 건 피해갈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하다가도, ‘그래도 행복한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라고 소회를 내비쳤다.
퇴직 후 재취업 과정은 녹록지 않다. 경력이 무색할 만큼 퇴짜 맞은 이력서가 쌓여가고, 면접 기회는 좀처럼 잡기 힘들다. 그마저도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 일쑤. 열심히 살아온 인생인데 뭐가 잘못된 걸까. 그 해답을 스스로 찾을 수 없다면,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단계다. 이에 재취업 상황별 전문 컨설턴트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장년 구직자의 행태를 짚어보고, 그 해결점을 모색해보려 한다. ‘시니어 잡:담회(Job:談會)’ 그 첫 순서는 ‘상담편’이다.
Episode_1 “대기업 출신인 나더러 중소기업을 가라고요?”
재취업은 전 직장과의 연장선이 아니다. 회사 규모는 물론, 그에 따른 직급이나 직무, 역할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전 직장의 명성에 얽매이는 구직자가 적지 않다는데.
진행자 상담하러 오는 구직자들의 과거 직군별 유형이 있나요?
권미경 커리어컨설팅 대표(이하 미경) 그럼요. 대기업 생산직 퇴직예정자 대상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는데요. 일단 번아웃을 많이 호소하시고, 1년 정도는 쉬고 싶다고들 하세요. 그러고 난 뒤에 뭐 할 거냐 물으면, 절대 중소기업은 가지 않겠다고 해요. 대기업에 대한 자부심도 크시고, 그 타이틀을 버리기 쉽지 않으신 거죠. 사실 공백기가 생기고 취업 시장에 나오면 중소기업도 어렵거든요. 열심히 인식 개선을 해드리려 했는데,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최성희 노사발전재단 중장년내일센터 책임컨설턴트(이하 성희) 아무래도 대기업은 교육이나 연수 기회가 많은 편이죠. 오히려 그만큼 (회사)안에서만 머무는 시간이 많아 바깥 상황은 잘 모르시더라고요.
황영희 노사발전재단 중장년내일센터 책임컨설턴트(이하 영희) 그래도 생산직에 계셨던 분들은 지게차운전기능사 같은 자격증이라도 따놓으시는 편이에요. 사무직은 학력도 높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차·부장급 출신이 많은데요.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 외에 개인이 주도적으로 경력 목표를 설정하거나 개발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이력서에 쓸 만한 내용은 있는데 실상 성장은 더딘 거죠.
황성철 상상우리 수석컨설턴트(이하 성철) 대기업이나 공무원 출신 분들의 특징은 일단 직장 백그라운드(배경)가 너무 좋았다는 거죠. 근데 회사의 명성을 자신의 전문성이라 오해하는 분이 많아요. 그 백그라운드 빼면 할 수 있는 게 없는데도 말이죠.
미경 엔지니어 직군은 전문성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컨설턴트 이야기를 잘 듣지 않더군요. 너희가 나보다 이 분야에 대해 더 잘 아냐 이거죠. 특수 분야에 계셨던 분들을 상담할 때는 사전 공부가 많이 필요해요.
성희 저는 작년에 대전에서 고경력 과학자분들을 만났는데요. 정말 희소한 인력이거든요. 결국 이분들의 기술이 사회로 나오기 위해서는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취업 시장에서 더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성철 안 그래도 제가 그동안 만나왔던 분들을 토대로 출신 직군별 구직자 특성을 적어봤어요. 맞는 말인지 들어보시고 아닌 건 말씀해주세요. ① 공무원이나 군인 출신, 부지런하고 학구적이지만 유연성 부족함 ② 대기업 출신, 기업 후광에 기대어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함 ③ 중소기업 출신, 다양한 경험을 보유했으나 추후 소기업 등으로 재취업되는 상황이 벌어지며 자신감이 하락함 ④ 금융기관 출신, 고임금자가 많아 눈높이가 높고 자신감도 높음 ⑤ 교사 출신, 컨설턴트를 가르치려 들고 자신을 과대 포장함 ⑥ 고기술 경력자, 자존심이 높고 전문성이 뛰어나지만 영역이 좁아 보편적인 재취업이 어려움, 그에 따라 자칫 우울해하기도 함. 자, 어떤가요?
미경 성희 영희 맞아요, 맞아요. 공감합니다!
Episode_2“실업급여 타고 좀 쉬다 보면 누가 연락하지 않겠어요?”
청년층 못지않게 퇴직자에게도 취업 공백이 생기는 것은 그리 좋지 않다. 퇴직 후 1~2년은 재취업을 위한 골든타임. 안일하게 스카우트 제의를 기다린다면 시간낭비일 뿐이다.
진행자 퇴직하고 리프레시할 겸 1~2년 쉬었다가 컨설턴트를 찾으면 늦은 걸까요?
미경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번아웃이 온 경우가 많거든요.
영희 마냥 쉰다고 리프레시가 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대개 퇴직하고 실업급여 받는 몇 개월 동안은 쉬겠다는 분이 많은데요. 그러다가 정말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어요. 꼭 전투적인 구직 활동을 하라는 건 아니에요. 운동을 한다거나, 요리를 배워본다거나, 기존에 결핍됐거나 못 해본 영역을 채워가는 거죠. 그러다 보면 떨어졌던 심리적 자원도 채워지고, 구직 활동에 긍정적 에너지로 쓰일 수 있습니다.
성희 당장 자기개발을 시작하기보다는 춤이든 낚시든 뭐라도 몰입하는 시간을 보내시는 걸로 충분하다고 봐요. 아무것도 안 하시고 단절해서 집에만 계시는 게 제일 위험합니다.
성철 공무원들은 퇴직하고 1년 동안 공로연수를 받아요. 그거 끝나고 나면 또 실업급여를 몇 개월 받고요. 그렇게 1~2년 동안 특별히 뭘 안 해요. 60세에 퇴직해서 결국 62세쯤에나 구직 활동을 하는데, 그땐 너무 늦죠. 근데 막상 그분들에게 교육받으시라 하면 신경질 내요. 그래서 저는 일단 ‘노시라’ 하고 대신 그 사이 생애설계도 받아보고, 여생이 기니까 뭐 하면 좋을지 검색도 좀 해보시라 해요. 막상 1년 놀잖아요. 그럼 미쳐요. 알아서들 나오십니다.
진행자 당장 전투적인 구직 활동은 미루더라도 바깥 활동은 좀 하시라는 거죠?
영희 네, 정보가 엄청 중요하거든요. 어디라도 가야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정보도 얻고 기회도 생기니까요. 아무리 스펙이 좋은 분이라도 1~2년 공백 거치면 재취업 연결은 쉽지 않아요.
성철 바깥으로 나와보면 딱 알게 되죠. 나만 놀고 있었구나. 다들 뭘 하고 있네? 근데 한편으론 이런 사람들도 많아요. 어디선가 연락이 오겠지. 같은 회사 다녔던 선배나 후배가 같이 일하자고 하겠지.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허송세월 보내는 경우도 상당해요.
영희 근데 연락이 안 오죠. 지혜로운 분들은 퇴직 전에 경력 목표를 설정하고 자격증이나 훈련을 미리 준비해요. 제가 만난 분 중에 재직자인데 구직자 대상 교육을 듣고 싶다고 사정해서 넣어드린 적이 있거든요. 건설업 종사자였는데, 드론 수업을 듣고는 관련 자격증 4종을 모두 따셨죠. 요즘은 건설업계에서도 안전관리 측면에서 높은 빌딩이나 댐 등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든 구조물에 드론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전망을 이해하신 거예요. 그렇게 해서 퇴직하고 한 달 만에 취업에 성공하셨답니다. 물론 이런 사례는 많지 않지만요.
성희 결국 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상담 과정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다음 단계로 행동을 옮기는데, 아무런 선택도 못 하시고 시간만 보내다 가는 경우도 많아요. 좀 전 사례자 역시 스스로 교육을 듣겠다, 자격증을 따겠다, 이런 의사결정이 빨랐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성철 맞습니다. 저는 이런 구직자도 봤어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시키는 건 잘하니까 나더러 뭘 할지 알려달라는 거예요. 근데 그건 고등학생 때나 가능한 얘기죠.
성희 유망 직종이나 괜찮은 자격증 하나만 찍어달라는 분도 계셨어요. 막상 그 하나를 말씀드려도 실행에 옮기진 않으시더군요.
성철 직장에 종속돼 눈치 보며 지낸 세월이 길어서일까. 주도적으로 하는 힘을 잃은 거 같기도 해요.
Episode_3“이력서요? 컨설턴트가 대신 써주는 거 아닌가요?”
마음이 급한지, 의지가 부족한지, 쉽게 취업 정보를 얻어가려는 이들도 있다. 게다가 무리한 요구에 성의 없는 태도까지 보인다면? 컨설팅의 가치는 떨어지고 재취업은 멀어지고 만다.
진행자 컨설팅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 가장 난처한가요?
성희 오시자마자 다짜고짜 뭐 해줄 수 있냐고, 내가 당장 갈 곳을 알려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안 해주시고 말이죠.
영희 마음을 여는 게 우선이고 참 중요한데, 라포(상호 신뢰관계) 형성이 쉽지 않아요.
미경 게다가 속으로 컨설턴트를 테스트하는 경우도 많죠.
성철 맞아요. 나한테 뭘 해주는지 봐서 나도 내 것을 보여주겠다, 이런 거예요.
성희 네, 확실히 경계하시는 분들이 있긴 해요. 때론 기 싸움도 벌어지죠.
미경 기관마다 다니면서 컨설턴트를 간 보는 분도 많아요.
성희 결국 가장 난처한 건, 구직자가 개방하지 않는 상황이에요. 가령 5회 진행하면 거의 끝나갈 때쯤 마음을 터놓는 분도 계세요. 그래도 그렇게라도 오시는 분들은 그만큼 얻어가는 부분이 있으리라 봐요.
진행자 그럼 컨설턴트를 찾아가기로 했다면, 효과적인 상담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요?
영희 저는 고객분들에게 사전에 이력서를 준비해 방문하시도록 공통적으로 요청 드려요. 그것이 그 고객분의 재취업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때도 있어요. 완벽한 이력서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컴퓨터로 프린트하여 방문하시든 문구점에서 이력서 양식을 구입해서 손으로 작성해서 오시든 어떤 형태로라도 작성해서 방문하는 고객분과 아닌 분은 큰 차이가 있어요. 빈손으로 오는 분들은 ‘취업까지 오래 걸리겠구나’ 생각해요. 그만큼 간절함이 덜하다는 건데, 어떻게 질 높은 상담이 이뤄질 수 있겠어요. 워크넷 잡케어 서비스나 테스트를 미리 해보셔도 좋아요. 그러면서 스스로 상태 파악도 되고, 진단 결과를 상담 자료로 쓰면 더 효율적인 컨설팅이 가능하죠.
진행자 무성의한 분들이 오면 컨설턴트들도 의욕이 떨어지죠?
성희 숙제 같은 거 안 해오시면, 아 저분은 다음엔 안 오시겠구나 싶죠.
성철 태도와 자세의 문제니까요.
영희 사실 중장년은 잠재력이 높은데, 그 안에 오래 쌓인 안 좋은 습관이나 행동도 섞여 있잖아요. 그래도 태도가 좋으면 취업 가능성을 높여갈 수 있죠.
성철 안 좋은 태도 중 하나는 ‘나이 탓’ 하는 거예요. 나이 때문에 떨어졌을 거야, 이 나이에 무슨 자격증? 그런 나이 탓은 안 하셨으면 해요. 또 남의 눈치 보는 것도 삼가야 해요. ‘이 일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주변 시선을 의식하느라 컨설팅해주는 직업을 탐탁지 않아 하기도 해요.
미경 그런 눈치는 보지 않되 네트워킹을 많이 하면 좋아요.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무조건 나가서 많이 만나라. 안에서 취업 사이트만 들여다보면 결국 찾을 수 있는 건 경비, 청소, 보험영업, 다단계 이런 것뿐이에요. 그런 상황에 놓이면 더 자존감이 떨어지죠.
성희 근데 참 안 나가려고들 하시잖아요. 특히 남자분들은 상대와의 스몰토크에도 부담을 많이 느끼시고요.
성철 저도 그렇지만 한국 중년 남성 특성상 그게 쉽지 않아요. 자기 외로움이나 어려움에 대해 얘기를 잘 못 해요. 그러다 한번 터지면 난리 나죠. 우리 컨설턴트 중에서도 중년 남성분들이 펑펑 우시는 걸 본 경우가 많아요. 어쩌면 그만큼 자기 얘기를 할 곳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영희 취업을 하는 게 목표이긴 하지만, 상담을 통한 건강한 자아 회복도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상담하면 가능한 한 그 분의 강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합니다. 컨설턴트가 그 사람 본연의 자존감을 살려주고 응원함으로써 내면에 에너지가 가득 차게끔 돕는 거죠. 그런 마음가짐이 재취업 과정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생각합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100번째 발행을 맞이해 귀중한 손님을 초대했다. 특별한 기념일 파티에 초대받은 스타는 트로트 가수 정다경(30). 이번 촬영으로 그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통해 소개된 수많은 스타 중 ‘최연소’ 타이틀을 가져가게 됐다. 국내 트로트 열풍의 기폭제가 된 2019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1’)의 막내에서, 이제는 청년층부터 노년층까지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어엿한 스타가 된 그의 매력을 만끽해보자.
정다경은 ‘미스트롯1’에서 최종 4위를 차지하며 이름과 얼굴을 알렸다. ‘미스트롯1’ TOP5 중 나이가 제일 어린 그는 당시 유일한 20대였다. 가창력을 겸비한 것은 물론 막내다운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해 중장년 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다경은 “팬들께서 딸, 손녀딸처럼 대해주신다. 저도 살갑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팬들이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현재 정다경은 지난해 발매한 디지털 싱글 ‘좋습니다’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긴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자르고 밝은 색으로 염색해 스타일 변신을 꾀했다. 통통했던 젖살도 빠져 미모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정다경은 “머리가 길었을 때는 차분하고 참한 느낌이 강했는데, 머리를 자르고 나니 발랄해 보여서 이전보다 친숙하게 느끼시는 것 같다. 많이 귀여워졌다고 칭찬해주신다”라고 말하면서 미소 지었다.
“제 팬들은 연령층이 다양해요. 30대가 제일 많고요.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80대 팬도 몇 분 계세요. 현장에서 어르신 팬이 ‘지난번에는 몸이 좀 안 좋아서 못 왔다’고 하시면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트로트 가수들은 팬들의 연령층이 높다 보니 ‘건강이 최고다’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팬들은 제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무시하는 법이 없어요. 반말도 절대 안 하시고요. 저한테 ‘다경 아씨’라고 존칭을 써주신답니다. 팬들께서 저를 많이 예뻐해주시고 존중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항상 감사해요.”
‘미스트롯1’과 트로트 가수
정다경은 “20대 초반만 해도 트로트 가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트로트 가수뿐 아니라 연예계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자신과는 관계없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다경은 한국무용 전공자로 한길을 파왔다. 계원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양대학교에서 무용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대학원 공연예술학과에 재학 중이다.
“무용만 하고 살다가 생을 마감할 줄 알았다”고 말하는 정다경. 예상하지 못했던 트로트 가수의 길은 우연히 열렸다. 대학교 4학년 때 댄스 스포츠 선생이 아는 기획사 대표에게 그를 연습생으로 추천했다. 정다경은 워낙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넘치는 끼를 선생이 알아본 것. 그렇게 들어간 기획사는 가수 남진과 전국 투어 콘서트를 10년 동안 한 공연 기획팀이었다. 정다경은 남진과 함께 공연하러 다니면서 무대에서 무용도 하고,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트로트의 매력을 깨달았다.
“원래는 트로트에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노래방에서 몇 곡 부르는 정도였죠. 기획사에 들어가서 트로트를 부를 일이 생기면서 노래 연습을 하게 된 거죠. 어떻게 부르는지도 몰라서 선배님들의 창법을 무작정 따라 했어요. 그러면서 트로트에서 필요한 보컬 테크닉을 습득하게 됐고, 스스로 성장해가는 게 느껴지니까 뿌듯했죠. 무엇보다 제가 느낀 트로트의 매력은,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장르여서 효도하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에요. 제 무대를 통해 그분들에게 잠시나마 위로가 되고 기쁨을 드릴 수 있어서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정다경은 트로트 가수로서 운이 좋았다고 자평한다. 그는 2017년 10월 디지털 싱글 앨범 ‘좋아요’를 발매하고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1년여의 세월이 흘렀을 때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1’이 열렸고, 경연에 참가했다. ‘미스트롯1’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대한민국의 트로트 열풍은 ‘미스트롯1’ 전과 후로 나뉘고, ‘트로트 가수 정다경’도 ‘미스트롯1’ 전과 후로 나뉜다. 그에게 ‘미스트롯1’의 의미를 묻자 “정다경을 만들어준 프로그램”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한 답이 돌아왔다.
“데뷔를 하고 1년 뒤 ‘미스트롯1’에 나갔는데 사실은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죠. 2019년 당시에는 젊은 트로트 가수가 많지 않았고, 트로트 오디션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어요. 이렇게 프로그램이 잘 될지 몰랐고, TOP5 안에 들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어요. ‘미스트롯1’ 덕분에 무명 시절도 1년으로 짧았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긴 점이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데뷔 6년 차인 트로트 가수 정다경. 트로트 가수로 전국 무대를 누비며 필요하다고 느낀 자질은 무엇일까. “가수이기 때문에 노래를 잘 불러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중장년 팬분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신선한 답을 들려줬다.
“트로트 가수는 너무 소심해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부모님 세대를 많이 상대하기 때문에 살갑게 대하거나 대화를 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느낌, 여유로움이 필요한 거죠. 저도 평소에는 조용한 편인데 일할 때는 텐션을 올리려고 많이 노력한답니다.”
‘외유내강’ MZ세대
벌써 4년이 흘렀지만 정다경의 ‘미스트롯1’ 결승전 무대는 아직도 회자된다. 당시 인생곡 미션에서 그는 송대관, 전영란의 ‘약손’을 불렀다. 정다경의 청아한 목소리는 노래의 감성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여기에는 정다경의 개인적인 스토리도 한몫했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남동생과 함께 자랐다.
정다경은 자신의 끼를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에어로빅 강사로 일했고, 그림도 잘 그리는 등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정다경은 “어머니께서 한국무용 입시 뒷바라지를 해주셨는데 많이 힘드셨을 것”이라면서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면서 저를 키워주셔서 늘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희생하신 만큼, 이제는 제가 어머니의 노후를 책임져드리고 싶어요. 손재주가 많은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매일 저보다 바쁘게 지내고 계세요. 최근에 바리스타 1급 자격증도 따셨고, 취미 생활로 제과·제빵도 하시고, 캘리그래피도 하시거든요. 나중에 카페를 하고 싶다고 하시면 제가 차려드릴 겁니다. 저는 제 스스로 가장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머니도 홀로 계시고, 남동생은 저보다 여덟 살이나 어리거든요. 가장으로서 어머니와 동생을 더 챙길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야죠!”
정다경과 얘기할수록 그가 ‘외유내강’ 캐릭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힘든 일이 있어도 꾹 참고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정다경. 장녀라는 책임감이 클 뿐 아니라 무용 입시를 치르면서 경쟁사회에서 살다 보니 성격이 단단해진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철이 일찍 들어버렸다. 그는 “이제는 스트레스나 힘듦을 잘 못 느끼는 무던한 성격이 됐다”고 말했다.
정다경은 트로트 가수로서 힘든 점은 없지만, 연예인이라는 신분으로 겪는 불편함은 있다고 털어놓았다. 크고 작은 소문이 늘 따르는 연예계이기 때문에 사람 만나기가 조심스러워진다고. 그는 “점점 사람을 믿기도 어려워졌다. 조금이라도 가식적으로 느껴지면 불편해진다”면서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집에만 있게 된다. 연예인들이 왜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접근해오는 사람들과 달리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어 행복하다고도 덧붙였다.
정다경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MZ세대’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MZ세대답게 똑소리 나고,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중장년 팬이 많은 만큼 그들과 소통도 잘되고 사랑받는 법도 안다. 젊은 트로트 가수답게 ‘세대 통합’이라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정다경의 목표는 자신이 사랑하는 한국무용과 트로트를 접목한 공연 예술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듯이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올라가고 싶어요. 올라가는 중에 뭔가가 잘 안 되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전공 분야나 일을 못하는 사람이 좋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트로트 가수로서, 한국무용가로서 누가 봐도 ‘잘한다’라는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경지에 오르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