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의절한 정 선생
지난 설날 고향 다니러 온 아들을 한밤중에 내쫓았다고 속상한 마음을 전한 정순일(가명) 씨. 올해 88세, 미수(米壽)가 되는 정 선생은 저녁상을 물리고 오십 넘은 아들과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 한판 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지지하는 사람과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이 달라서 그동안 선거를 치를 때마다 종종 부딪혔던 이력이 있었다는군요. 하지만 이번에는 첨예하게 맞붙어 서로 양보하지 못하고 으르렁대다 너무 화가 치밀어서 “내 집에서 당장 나가라! 다신 꼴도 보기 싫다!”고 덩치가 산만 한 아들 등을 밀어 기어이 쫓아내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것도 밖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통에 말입니다.
격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 신 여사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러 광화문 나들이에 나선 신연정(가명) 여사. 집구석에 갇혀 있다 콧바람 쐬니 기분이 좋아 발걸음마저 가벼웠습니다. 초코 와플과 시저 샐러드 그리고 거품 가득 카푸치노까지 완벽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요. 당시 쟁점 한가운데 있던 성추행 사건을 두고 팽팽하게 입장 차를 보이던 두 사람. “자기는 가난하게 자랐는데 어떻게 보수가 되었어요?” 지인이 내뱉은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어하던 신 여사는 “그런 오만한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요? 진보는 다 그래요?” 맞받아치고 말았습니다. 주고받는 말은 더 이상 대화가 아닌 평행선을 달리는 입씨름에 불과했습니다. 참다못한 신 여사는 마침내 카페 안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더 이상 당신이랑은 얘기 못 하겠어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는군요. 분이 안 풀려서 밖에 나와서도 씩씩거렸다고 합니다.
시비가 아니라 취향 차이
시비(是非). 옳음과 그름 혹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다툼을 뜻합니다. 해 일(日) 밑에 바를 정(正) 자를 옆으로 펼쳐놓은 게 옳을 시(是)라는 글자입니다. 며칠 전 천지가 상쾌하게 맑은 공기로 가득 찬다는, 청명(淸明)이었잖아요. 보통 4월 5~6일 즈음이라 성묘도 하고 나무도 심고 그래왔습니다. 1년이 24개 절기(節氣)로 나뉘어 있는데 그 절기를 구분하는 경계, 기준이 바로 태양의 움직임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일, 계절의 변화, 낮과 밤, 이런 게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는 데서 시(是)라는 글자는 ‘옳다, 바르다, 어긋남이 없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아닐 비(非)라는 글자는 새가 양 날개로 날아가는 모습, 두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두 날개가 등을 대고 반대편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르다, 틀리다, 아니다, 나아가서는 ‘비방(誹謗)하다’라는 뜻을 갖게 됩니다.
사람 사이 관계가 틀어지거나, 어떤 현상을 볼 때 논쟁을 넘어 언쟁이 되거나, 그래서 의절하거나 영영 안 보는 사이가 되는 경우가 바로 시비를 따질 때입니다. ‘나는 옳고 당신은 그르고, 내 말은 맞고 네 말은 틀리다.’ 한 걸음도 양보 없는 이런 고집, 아집 때문에 관계가 어긋나고 상처를 받기 십상입니다.
봄이 좋은 시어머니와 겨울 좋은 며느리
당신은 어떤 계절을 좋아하시나요? 필자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정말 단순한 이유입니다. 겨울에 태어난 겨울 아이여서 겨울을 좋아합니다. 물론 눈이 좋아서도 그렇습니다.
“얘야, 너는 무슨 계절을 가장 좋아하니?”
“어머니, 저는 겨울이 좋아요.”
“야, 겨울이 뭐가 좋냐? 춥고 다 얼어붙고, 미끄러질까 무서워 외출도 못 하고.”
이렇게 시비가 붙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필자가 겨울을 좋아하는 거랑 시어머니가 봄을 좋아하는 것은 시비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호불호(好不好), 취향(趣向)인 거죠. 필자가 정윤희라는 배우를 좋아하고 다른 배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잖아요? 또 ‘미스터 트롯 시즌1’에서 경연(競演) 참가자 101명 가운데 이찬원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역시 필자가 옳고, 다른 참가자를 좋아하는 분이 그른 것이 아니듯이 말이죠.
‘부먹’과 ‘찍먹’ 사이
며칠 전 후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저녁을 먹고 빙수 가게에 갔습니다. 주문한 빙수가 나왔을 때 숟가락을 들기 전 필자가 먼저 물었습니다.
“그쪽은 빙수를 다 섞어 먹어요? 아니면 인절미 따로, 팥 따로, 얼음 따로 먹어요?”
그랬더니 다행히 한 사람은 둘 다 괜찮고, 나머지 두 사람은 얼음은 얼음대로, 콩가루는 그 맛대로, 팥은 팥 맛대로 느끼며 따로 먹는다는 거예요.
탕수육 ‘찍먹’과 ‘부먹’, 그걸로 논쟁이 많이 붙곤 합니다. 튀긴 고기 전체에 소스를 부어 먹느냐, 고기마다 따로 소스를 찍어 먹느냐로 어느 편이 더 맛있는지 곧잘 시비나 승부를 가리려 합니다. 누가 맞나요?
호불호나 취향이 반대되거나 확실한 사람을 만나면, 그게 부부든 자식이든 아주 친한 사이든 직장 동료든 간에 마음이 상하고 기분이 언짢을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취향이 다를 뿐인데 말입니다.
한신과 유방
누구나 한 번쯤 ‘삼국지’나 ‘초한지’에 빠져 영웅호걸들을 손꼽으면서 친구들과 침을 튀며 열띤 토론을 펼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화려한 라인업 가운데 필자는 금기(禁忌)였던 배수진(背水陣)을 처음으로 전략에 역이용한 불세출의 명장이자 신출귀몰한 용병술로 패배를 몰랐던 병법(兵法)의 신, 한신(韓信)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비범한 능력으로 유방(劉邦)에게 천하 패권을 쥐어준 일등공신, 한신.
마침내 초패왕 항우(項羽)나 한고조 유방보다 유리한 입지에서 천하를 손에 넣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름 없는 자신을 중용했던 유방이 베푼 은혜를 잊지 못해 멈추고 말았던 인물입니다. 자신이 가진 뛰어난 능력과 사양하는 마음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반란을 도모한다는 유방의 의심에 결국 처형당하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역사적 인물인 한신과 유방을 놓고도 평가가 극과 극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밥을 얻어먹고 살 만큼 보잘것없던 자신에게 막중한 역할을 맡긴 은혜를 잊지 않았던 한신이 옳은가요? 아니면 출중한 부하에게 권력을 뺏길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모반하게끔 몰고 가 싹을 잘라버린 유방이 옳은가요? 평가가 엇갈리는 만큼 시비 가리기 참 어렵습니다.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인물도 시비보다는 취향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비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우리 삶에서 시비로 명확히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얼마나 있을까요. 태양의 움직임은 항상 일정하고 한결같지만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나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은 한결같을 수도 없고 쉽게 예측하기 힘듭니다. 동식물이나 물건도 좋아졌다 금방 싫증을 내기도 합니다. 나아가서는 정치적인 성향도 진보와 보수라는 스펙트럼 안에서 결이 무척 다양합니다. 한쪽에 실망해서 반대편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 상처받아서 그 반대편으로 옮겨가기도 하듯이 말입니다. 시비를 걸고 시비를 따지는 대신 취향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덜 고통스럽습니다.
취향이나 호불호에 시비 걸지 맙시다! 딱 시비 걸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필자가 앞서 들었던 예를 떠올리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하나를 누가 좋아하는 게 죄가 아니고 틀린 게 아니지. 어리석은 게 아니지. 또 탕수육, 팥빙수도 그렇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관계가 좀 더 부드러워지고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거라 믿습니다. 그 사람 나름대로의 생각과 의견과 취향을 존중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옳고 그름으로 정색해 따지지 말고 취향의 문제로 존중하고 이해하면 한결 따뜻한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정답 없는 인생, 모범답안이 있을 뿐
나와 당신을 옳고 그름이라는 시비하는 마음으로 볼 때는 갈등이 고조되고 관계를 망치기 쉽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그 사람에게 공연한 적개심을 품어 이성을 잃은 행동을 저지르고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생깁니다. 우리 인간은 해와 달이 일정한 주기로 움직이듯 한결같을 수 없습니다. 늦잠을 자는 해와 결근하는 달을 본 적이 있습니까. 봄이 지나가고 오뉴월에 겨울이 다시 온 적 있습니까. 정답이 하나인 수학 문제와 우리 인생은 다릅니다. 저마다 모범답안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답이 여러 개라고 틀린 삶이 아니고 그릇된 인생이 아니듯이요. 자신이 푼 답안을 존중받고 싶다면 남이 푼 답안도 존중해줘야 합니다.
잡초로 볼지 꽃으로 볼지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
나쁘다고 없애고자 하면 풀 아닌 것이 없고, 좋아하여 취하고자 들여다보면 모두가 꽃이라는 뜻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취향이 다르다고 상대를 미워할 때 그 사람은 세상 쓸모없는 잡초밖에 되지 못합니다. 백해무익하다 단정해 얼른 뽑아버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나와 다른 의견이 관계를 발전시키고 묵혀온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되는 경우도 많이 경험합니다. 듣기 불편하고 괴로운 이야기도 좋게 새기려는 마음을 먹는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숨겨진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는 일에 우리 도전해볼까요. 내가 소중하듯 나와 다른 그 사람도 소중하니까요. 내가 아름다운 존재이듯 그 사람 역시 아름다운 존재니까요. 모두가 꽃입니다.
“명사들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움직이며 우리 의식 세계를 지배하는가? 그들이 말하는 명성의 본질과 가치는 무엇이며, 우리는 명성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김정섭 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예술학과 교수는 지난 3년간 인간의 ‘명성’(名聲)과 각계의 ‘명사’(名士)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이 주제를 깊이 연구했다. 그는 관련 이론·데이터 분석, 수양·실천 컨설팅 전략의 발굴 제시는 물론, 각계 명사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함으로써 학술적 통찰을 끌어냈다. 본지가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입수해 창간 특집으로 독점 게재한다. 연구 결과물은 ‘셀럽시대’(한울엠플러스)란 책으로 오는 5월 출간될 예정이다.
“사람들은 식당에서 사진을 보고 경탄하며 ‘칠리치즈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해요. 그런데 실제로 나오면 양념이 풍부하고 느끼한 그걸 다 먹어야 하냐는 부담감을 느껴요. 그때 ‘일반 감자튀김’을 시켰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후회하죠. 인간에게 명성이란 바로 이런 존재예요.”
‘그릿’(Grit, 2016)의 저자이자 심리학자인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2021년 2월 28일 미국 팟캐스트 ‘프리코노믹스 라디오’에 나와서 한 얘기다. ‘명성’은 자아실현 욕구를 지닌 인간의 본능이자 인생의 성공 가도에서 간절하게 그리는 꿈이다. 동시에 앤절라 더크워스의 말처럼 ‘약’과 ‘독’이란 양면성을 지녔다. 명성은 인생 경험과 성과의 소산이자 자신을 웃고 울게 만든 가치이기에 깊은 통찰력과 혜안을 지닌 시니어들에게 더욱 친숙한 어휘다. 명성은 사회적으로 신뢰와 참여를 촉진하고, 정치적으로는 투표율과 지지를 견인하며, 경제적으로는 그 존재량이 희소해 ‘관심경제’는 물론 명성에 대한 선망, 추종, 숭배를 극소수에 집중시키는 ‘슈퍼스타 경제학’을 구성한다. 인터뷰에서 문인·철학자는 대체로 명성을 경계하고, 정치인·경제인·의료인은 능력과 신뢰에 바탕을 둔 적극 활용론을 강조했으며, 예술인·체육인은 조건부 활용론에 방점을 두었다.
명성은 ‘약’과 ‘독’ 양면성 지녀 경계해야
‘풀꽃 시인’ 나태주는 2015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꼽은 바 있는 ‘풀꽃(1)’을 썼다. 시구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인데, 그는 이 시에 대한 폭넓은 사랑으로 ‘국민시인’으로 떠올랐다. 나태주 시인은 ‘명성’에 대해 “전적으로 남이 알아주고 평가해주는 고귀한 가치”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명성을 위해 자신의 존엄성을 버리고 아첨하고, 반칙하며, 사술(詐術)을 부리며 아등바등하는 것은 거부했다. 심지어 신춘문예 당선이나 등단에 조급증을 갖거나 빨리 쓰려고 하는 문단 후배들까지 꾸짖었다.
그는 “명성은 유효기간이 매우 짧은 데다 그것에 집착하다 보면 영혼을 망가뜨리기 쉬우므로 존엄과 품위가 가미되어 더 가치가 있는 ‘명예’를 중시한다. 명성은 물로 씻으면 금방 지워져버리는 젊은이의 ‘화장’과 같고, 명예는 경륜 있는 노인들이 갖는 가슴속 숨겨진 ‘흉터’처럼 잘 드러나지도 않고 잘 지워지지 않아 영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철학자 강신주는 철학과 인문학을 인간의 삶에 투영해 저술과 강연을 통해 날이 선 언어로 소통을 확대해왔다. 그는 명성을 절대 추구해서는 안 될 ‘노예의 가치’로 보았다. 그는 “철학과 인문학의 견지에서 명성 추구는 주인인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방법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삶을 따라가야 하는 ‘노예의 전략’”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명성을 추구하는 삶은 자기 목소리를 잃고, 자신의 삶도 없고, 허깨비 같은 것을 좇는 것이기에 결국은 꼭두각시의 삶을 사는 것”이라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초래하는 부작용에 초점을 두었다.
정치인 정세균(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국내 헌정사 최초로 여야의 정당 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를 모두 역임해 ‘대통령만 빼고 다 해본 정치인’으로 통한다. 국회의원(6선), 장관(산업자원부), 원내대표도 지냈다. 그는 “‘명성’은 국민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같은 일종의 세평(世評)이지만, 명예는 본인 성과에 대한 자신의 가치판단과 자부심의 척도다. 명성은 반드시 공적으로 좋은 의미를 지닌 일에 열정을 발휘해 얻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회 ‘한보청문회’(1997년)에서 한보의 로비 자금을 거절한 유일한 국회의원으로 밝혀져 일약 명사로 부상한 이후 지금껏 겪은 성찰을 집약한 것이다. 그는 “국민이 우러러보는 ‘정치인 명사’가 되려면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맡은 공직의 무게를 온전히 떠안으며 일하는 ‘책임의식’, 정성과 투명성을 기본으로 국민을 받드는 ‘신뢰성’, 매사 분별력을 발휘하며 신사 숙녀처럼 처신하는 ‘품격’이 몸에 배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종인, “정직해야 명성 쌓아”
‘카리스마 리더’ 김종인(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내로라하는 경세가다. 5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정·관·학의 풍부한 경험 축적은 물론 ‘차르’란 별칭, ‘직업이 비대위원장’이란 비유가 말해주듯 강한 소신과 뚝심으로 진보에서 보수를 망라하는 정당을 모두 이끌었다. 그는 “명성은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인에게 목숨과 같고, 국민 앞에 서서 정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갖고 이를 드높여 성공하려면 기본적으로 일을 잘하고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없으면 국민에게 피해만 준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의 명성 축적과 유지의 기본 요소는 정직성, 일관성, 신뢰성인데, 그중에서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정직”이라고 강조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정치적 경륜과 지략이 풍부해 ‘정치 9단’으로 불린다. 그는 “정치인은 오늘을 잘해서 내일을 사는 사람이다. 국민의 인정(認定)을 받아야 명성을 얻고, 그 명성을 기반으로 정치력을 발휘하고 정치생명을 이어가기 때문에, 명성은 정치인에게 존재 자체이자 전부”라고 정의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얻으려면 철두철미하게 지식을 쌓고, 국가 사회와 국민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미래 상황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등의 자기계발을 하고, 하루에 만나는 사람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영향력, 기능, 효과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매개체인 언론을 하늘같이 알고 받들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나는 신혼여행 이후로는 아내와 여행 한번 같이 못 갔을 정도로 정치 행위 그 자체를 즐기며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를 아예 동일시(同一視)하며 살았다”라고 회고했다.
김세연 전 의원(청년정치학교 운영자, 3선 의원)은 ‘36살의 집권당 최연소 당선’이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정계에 입문해 개혁보수와 우파혁신을 주창한 ‘청년정치 리더’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명성은 오직 정치인 본인의 의도나 의사와 무관하게 공직에 대한 열정적·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 그 결과물로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치인은 외려 명성과 거리를 둘 때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 명성을 위해 일하면 공적인 의사결정에 중대한 왜곡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지향하는 정치를 하면 안 되고, 그런 욕망이나 의도를 가진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절대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한시적으로 위임된 권한과 권력을 사유물인 양 착각한 나머지 여의도 정가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명성 지향’, ‘명예 지향’의 정치를 단호히 배격하고 거부한다”라고 덧붙였다.
“일관된 목표·방향성 갖고 혁신경영”
차석용 LG생활건강 전 대표이사 부회장은 평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어 조직, 제품, 서비스 혁신 분야에서 남다른 역량을 발휘해 2022년 말 은퇴하기 전까지 무려 18년간이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그는 “기업과 CEO의 명성은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서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소비자들의 명민한 감각과 반응으로 시시각각 정확하게 측정되는, 영예롭고도 두려운 양면적 존재”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그는 “기업과 CEO는 소비자를 ‘진정한 보스’로 모시고 기업의 증진을 위해 분명하고 일관된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혁신경영에 몰두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CEO로서 LG생활건강에서 강조한 기업과 제품의 명성 증진 전략은 정직, 진정성, 신뢰, 디테일(세심함과 정확함)이었다.
이종천 ‘다나딸기농장’ 대표(충남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는 독보적인 반전의 귀농 성공신화를 쓴 ‘딸기왕’으로 농업계와 지역사회에서 명성이 높다. 이종천 대표는 “농민의 명성은 자신이 재배한 작물이 말해준다. 저에겐 풋풋하고 탐스러운 저 딸기가 그걸 상징한다. 온갖 정성, 노력, 풍상, 고초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농사의 묘미는 자연과 함께 인생을 즐기며 향긋한 결과물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딸기 특구’이자 딸기 수출 전진기지인 충남 논산의 성공한 농업인이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위촉한 농업 후계자를 교육하는 현장의 교수로 활동하며 농촌의 미래를 가꾸는 데 헌신하고 있다. 건설사 임원 출신인 그는 퇴직하고 시작한 통신 서비스 사업의 실패 후 무작정 귀농해 8년간 딸기 농사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현재 비닐하우스 딸기 재배동 7개 동과 딸기 육묘장 2곳, 청년귀농장기교육장과 딸기현장실습교육장을 함께 운영하며 연 7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명성은 존재감 뚜렷한 불편함”
서울 용산의 ‘메이플라워/술술상점 용산’ 정미희 대표는 최근 SNS에서 매우 뜨거운 유명인사다. MZ세대 CEO로서 뛰어난 외적 매력을 바탕으로 최근 10년간 미식 탐방, 새벽시장 장보기, 술 시음과 술집 탐방, 여행과 골프 체험기 같은 일상적 콘텐츠를 페이스북에 게시해 인기를 끌면서 ‘SNS 셀럽’으로 떠올랐다. SNS를 한 시대의 문화로 보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정 대표는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NYT, 2022년 1월 20일 자)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명성은 불편함도 크지만, ‘존재감 미약한 편안함’보다 ‘존재감 뚜렷한 불편함’이란 나의 취향을 충족시킨다. 사업보다 친교에 도움이 된다. 수상한 접근을 하는 ‘가짜 친구’도 많이 생기긴 하지만 일생을 함께할 친구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형석 미래본병원 대표 원장(신경외과 전문의, 서울 잠실)은 ‘경추·요추 부위 내시경 수술(수술 경력 9000건)의 명인’이다. 김 원장은 “의사의 명성은 환자를 사랑으로 극진히 돌봤는지에 대한 자화상 같은 척도다. 그것은 오직 환자와 직결되며, 환자를 떼놓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사는 신뢰와 사랑을 토대로 사력을 다해 환자를 보살펴야 한다. ‘좋은 의사’, ‘훌륭한 의사’, ‘명예로운 의사’의 출발점도 이와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의사가 명의(名醫)란 명성을 얻으려면 환자의 아픔을 깊이 헤아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는 ‘공감 능력’과 ‘좋은 인품’, 환자를 제때 제대로 치료하는 ‘뛰어난 실력’, 환자에 대한 ‘치료 의지와 자신감 표출’이 꼭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주대 의대 출신으로 군의관 시절 선구적인 내시경술 수련과 아프간 의무부대 참전, 척추 전문 병원인 우리들병원 수련원장과 의무원장, 우리들의료재단 부이사장을 거쳤다. 그는 “높은 명성을 지닌 의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은 자만과 오만, 그리고 그것의 연쇄반응으로 나타나는 게으름과 나태함”이라고 지적했다.
“배우에게 명성은 삶의 기적과 고귀”
‘대장금 한류’의 주역 양미경 배우는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한 상궁’ 역을 맡아 드라마가 국내는 물론 동남아·중동 지역까지 크게 히트하면서 스타로 부상했다. 양미경 배우는 “‘명성’은 삶의 기적이며 고귀(高貴)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그는 “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명성(名聲)은 이름이 소리가 나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 소리는 선(善)함을 바탕으로 인고의 노력과 울림을 통해 영롱한 새벽이슬처럼 만들어진 것이기에 ‘명성은 고귀’하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40년간 연기를 통해 맑고 선한 성정, 곱고 단아한 이미지를 각인하는 독보적인 페르소나를 구축해온 명성과 관록에서 나온 통찰이다. 라마단(Ramadan) 기간에도 ‘대장금’을 시청할 정도로 경이적인 시청률(90%)을 나타낸 이란에서 2009년 5월 그를 ‘국빈’(國賓)으로 공식 초대했다. ‘대장금’이 2015년 홍콩에서 방영되었을 때 시민의 약 절반인 328만 명이 시청(최종회 최고 시청점유율 50%)해 홍콩을 방문할 때마다 엄청난 팬들이 몰렸다. 그는 “‘대장금’ 출연 당시 홀연히 찾아온 에너지처럼 새로운 차원의 명성을 느꼈다. 그것은 매우 강한, 삶에서 흔히 만날 수는 없는 특별한 에너지였다”라고 술회했다.
‘골프 여신’ 최나연 프로는 우리나라 ‘여성 골퍼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그는 “세계적인 선수라는 명성을 안겨준 원동력은 전적으로 태생적 자질인 강력한 도전정신과 성취욕이다. 나는 일관성과 꾸준함을 가장 잘 보여준 프로 골퍼로 골프사에 기억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력·매력·저력’을 완비한 골퍼로 ‘롱 아이언 샷의 명수’이자 ‘골프계 최고 얼짱 스타’로 불렸다. 2004년 11월 데뷔 후 18년간 미국여자골프(LPGA) 최고의 대회인 ‘US여자오픈’ 우승(2012)은 물론 LPGA 대회에서만 우승 9회, 준우승 12회, 3위 7회의 저력을 보여준 뒤 2022년 말 전격 은퇴했다. 그는 “‘우승’과 ‘준우승’의 차이는 집중력, 경험, 실력, 운(運)이란 4가지 요소가 경기 당일 어떻게 최적의 조합을 이뤄 경기력으로 구현되느냐에 달려 있다. 골프를 잘하려면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4가지 요소를 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스타 골퍼’들이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겸손한 성품, 끊임없는 실력 증진 노력, 선수 자신에 대한 믿음이란 3가지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명성, 긴장시키고 겸손하게 만들어”
최상훈 ‘뉴욕타임스’ 서울지국장은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명성을 갖고 있다. 그는 “명성이란 사람을 끊임없이 긴장시키고 겸손하게 만드는 두려운 것이다. 내가 기자로서 유명해졌다는 것을 처음 느낀 순간은 이메일과 SNS를 통해 내가 쓴 기사에 대한 공감과 긍·부정의 평가가 쏟아지던 순간이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저널리스트로의 명성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두려움이 앞서 균형감각 유지에 대한 강박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32년 차 기자로서 ‘AP통신’ 기자 시절인 1999년 9월 30일 영구적으로 묻힐 뻔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특종 보도해 2000년 한국인 기자로는 처음으로 서구 언론계에서 ‘언론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탐사보도 부문)을 받아 명사가 되었다. 그는 “오늘날 나를 만든 힘은 강한 성취욕과 성실성이다. 노근리 사건의 취재는 어떤 피해자가 쓴 논픽션 실록의 출판이 당시의 참상을 구체적으로 담은 책 내용에 두려움을 느낀 출판사에 의해 거부되고, 한미 양국이 피해자들을 외면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라고 밝혔다.
KBS 박지원 아나운서는 방송계에서 경쾌한 에너지와 톡톡 튀는 매력을 갖춘 ‘MZ세대 아이콘 뉴스앵커’로 통한다. 그는 “나에게 명성은 방송사에서 일을 더 열심히, 더 잘하게 하는 동기부여 요인이자 원동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9년 11월부터 공영방송 KBS의 ‘KBS 뉴스 9’(주말) 뉴스 진행을 맡고 있다. 박지원 아나운서는 “방송을 하는 사람에게는 누가 프로그램을 봐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나한테도 그것이 일할 때 항상 열정을 잃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명사로 인정받을 만한 유능한 앵커가 되려면 첫째 기사를 보고 핵심을 파악하고 한 걸음 더 들어가 깊게 질문하는 능력, 둘째 명쾌하고 유려한 전달력, 셋째 진행 능력과 같은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BTS, “기본적인 것, 결과에 따른 신뢰”
한편 세계 음악 시장을 석권한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을 한몸에 받은 피겨 스타 김연아는 언론 매체를 통해 명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방탄소년단은 2019년 11월 미국 패션 잡지 ‘페이퍼’(PAPER)와의 화보 인터뷰에서 글로벌 스타로 유명해지면서 점점 높아진 명성에 뒤따르는 부담감을 고백했다. ‘멤버들은 명성이 주는 부담감이 큰가?’란 질문에 대해 “아니라곤 할 수 없지만, 저는 요즘 사명감으로 살고 있어요. ‘완벽해야 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진짜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들, 결과에 따라오는 신뢰를 기억하며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죠”(제이홉), “완벽에 가까운 공연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지민), “압박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또한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요”(슈가), “여전히 우리는 무대 위에서 정말 잘하고 싶어요”(리더 RM)라고 각각 답했다.
김연아는 명성의 유무에 대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경험을 털어놓음으로써 운동선수가 갖는 명성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19세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3년 전 (나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때는 혼자 외롭게 싸웠다”라고 울먹였다. 그러나 좋은 성적을 거둬 명사가 된 후에는 “유명해지고 사람들이 알아보고 그러다 보니까 좀 불편한 건 피해갈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것 때문에 고민하다가도, ‘그래도 행복한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라고 소회를 내비쳤다.
산업화 주역이었던 베이비붐 세대(1955~1960년대생)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이용자 13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은퇴 후 희망하는 주거 공간 형태는 ‘단독, 다가구, 전원주택, 타운하우스’가 38%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아파트’(35.4%), ‘한옥 등 전통가옥’(10.8%) 등이 뒤를 이었다. 응답자 중 60대 이상은 10명 중 약 5명이 ‘아파트(44.8)’를 선택했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엘리베이터와 같은 이동에 편리한 시설이 있고, 관리 부담이 적은 주거형태를 선호한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적으로 잘 알려진 아파트나 전원주택 외에도 주목할 만한 주거 형태가 몇몇 있다. 실버타운, 시니어타운은 식사ㆍ가사ㆍ의료 서비스 제공은 물론 일상에 필요한 생활 및 여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노후를 보낼 대비책 중 하나로 꼽힌다. 지리적 위치와 생활 환경에 따라 도심형, 도시근교형, 전원형 등으로 나뉘며 가격과 보증금, 입주 조건도 시설별로 상이하다. 최근 서울시 마곡지구 마이스 복합단지 내에 들어설 ‘VL르웨스트’는 좋지 않은 부동산 시장 상황에도 지난 3월 진행한 청약에서 최고 20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공유주택, 집합주택, 컬렉티브 하우스로도 불리는 코리빙 하우스는 197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한 코하우징(co-housing)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일본과 영국, 독일, 북유럽에서는 이미 주거 형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한집의 모든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셰어하우스와 달리 침실과 같이 개인 공간은 보장받으며 거실, 주방 등을 나눠 쓰는 식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시니어 공동체 주택 여백은 각자의 취향에 맞춘 주거 공간을 갖고 있으며, 공동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입주자들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관람한다. 여백에 거주하고 있는 김수동 터무늬제작소 소장은 공동체 주택이 이웃 있는 삶을 통해 사회적 고립을 막을 수 있어 노후 주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을 단위의 ‘은퇴촌’도 속속 형성되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는 ‘천년 건축 시범마을 조성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시기에 맞춰 주거, 문화, 사업, 교육 인프라를 마을 단위에 밀집할 계획이다. 시는 10만여㎡ 면적에 100가구 규모 주거시설과 의료, 휴양, 복지시설 등 인근 배후지역의 노인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복합용도 고령친화 시설을 겸비한 휴양형 은퇴촌을 조성한다. 부지에는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탄소 마이너스 제로 에너지 주택 △장수의학 클리닉 및 건강검진서비스 등의 고령 친화 시설 △다목적광장 및 스포츠시설을 비롯한 커뮤니티센터 등이 들어선다.
전라북도 순창군도 전북개발공사와 ‘순창형 전원마을 사업’을 적극 추진한다. 해당 사업은 농촌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소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도시민과 귀농·귀촌인, 은퇴자 등이 안정적으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공간을 마련하는 사업이다. 전북개발공사는 사업대상 후보지의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추후 대상지를 확정하고, 지역주민 의견수렴을 통해 전원주택단지 조성을 본격적으로 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후기청년기에 들어선 40·50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일자리다. 120세까지 산다는데, 남은 시간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나 막막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또래의 명예퇴직 소식이 들려오고, 50세가 되기 전 은퇴를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도 있는데, 연금 수령 시기를 더 늦춘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후기청년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김병숙(75) 한국직업상담협회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는 150세까지 살 테지만, 기자님은 170세까지 살 거예요. 지금부터 10년에 한 번씩 직업을 8번 바꿔도 5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남은 50년은 뭐 할 거예요?”
순간 멍해졌다. 100세 시대, 아니 120세 시대라고 하지만 내가 그때까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사실 ‘설마 그때까지 살겠나?’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 기자를 보며 “설마가 현실이 되는데, 다들 내 이야기가 아닌 줄 안다”는 김병숙 이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기청년기를 보내는 40·50세대의 이야기를 하러 왔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150세 시대 준비하려면
김병숙 이사장은 40여 년간 직업에 관한 연구를 해왔고, 경기대학교에 직업학과를 설치해 교수로 활동했다. 직업상담사 자격제도를 도입하고 한국직업상담협회를 설립했다. 책을 25권 집필했으며, 은퇴 후에는 4050을 위한 전직 지원 등 직업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0년 전, 65세의 나이로 교수직을 은퇴하면서 김병숙 이사장은 150세 인생 계획을 선언했다. 75세까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정시 근로를 하고, 95세까지는 시간제로 일하고, 100세까지는 봉사활동을 하고, 150세까지는 화가로 살겠노라고. 그리고 3년 뒤 계획을 바꾸었다. 95세까지 정시 근로를 하겠다고. 김 이사장은 2012년 ‘은퇴 후 8만 시간’이라는 책을 쓸 때부터 150세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이미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15~2019년 우리나라 최빈사망연령(한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실제로 사망하는 빈도가 가장 높은 연령)은 남성이 85.6년, 여성이 90년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기대수명은 평균 83.6세지만, 사고 등으로 조기 사망하지 않는다면 평균 85세 이상 산다는 말이다.
“90세 가까이 살다 간다면 지금 40·50세대는 앞으로 최소 40~50년을 더 살아야 합니다. 50년 뒤면 2073년이죠? 그런데 미래학자들은 20세기에 이미 ‘2050년이면 인간 수명은 150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30년이 지나면 2050년이네요.”
150세 시대를 산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60세, 80세, 100세를 각각 20세, 40세, 60세로 봐야 한단다. 40·50세대라면 한창 청년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생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프라임 시기에 일을 그만두는 평균 나이가 47세입니다. 2~3년 내에 43세까지 낮아질 거예요. 최근 은행권에서 명예퇴직한 사람 중에는 20대도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주된 일자리 은퇴 연령이 40대고, 노동시장에 굿바이를 외치는 시점은 73세입니다. 연금을 65세부터 받는다고 하면 47~65세까지 18년을 더 일해야 합니다. 이때 노동시장에 나가서 경제생활을 하려면 경쟁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150세 계획을 세우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나’를 잃어버린 낀 세대
2023년 현재 40·50세대를 사는 이들은 X세대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풍요를 동시에 누린 첫 번째 세대’라거나 ‘도무지 알 수 없는 세대이자 신(新)인류’라고 불리곤 했다. 이전 세대보다 개인의 취향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은 세대로 평가받지만, ‘낀 세대’인 이들은 정작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 안에서 40·50세대는 ‘낀 세대’죠. 최고의 생산량을 내는 시기에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맞이해요. 윗세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회사에서 일했지만, 그들처럼 회사에 오래 남을 수 없습니다. 아랫세대인 MZ세대는 어때요? 30대는 주어진 시간에만 충실히 일하고 20대는 월급만큼만 일합니다. 그 사이에서 인적 관리를 해야 하는 40·50세대는 위아래로 치여 참 어려워요.”
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지만, 사회와 조직의 문화는 그렇지 않았다. 자녀를 돌보거나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데다 자신의 노후까지 준비해야 하는 가장 힘든 시기에 직장에도 적응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없다.
“보통 60세까지는 사회, 가족을 위해 살다가 은퇴를 앞두고 혹은 은퇴하고 나를 위한 삶을 찾죠. 회사에서 나가라고 해서 나와 보니 퇴직금은 3년이면 사라져요. 앞으로 50년은 더 일해야겠는데, 직업 세계가 옛날처럼 단순하지 않으니 얼마나 기가 막혀요? 그런데 별안간 ‘너 뭐 좋아해? 좋아하는 거 해’ 하니까 방향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어느 세대든 나이를 먹으며 40대, 50대를 산다. 후기청년기는 누구나 거치는 시기다. X세대라고 불린 지금의 40·50세대는 120세 시대를 맞아 후기청년기를 보내는 첫 세대가 됐다. 김 이사장은 조직에 젖어들다 보면 누구든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직업을 8번 바꾸며 살 것을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기존의 조직을 벗어나는 것도 좋다는 조언이다.
“누구든 후기청년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해요. 어느 날 삼성전자 수석이라는 분이 찾아왔어요. 회사에서 그동안 인공지능(AI)을 공부하라고 했는데 하기 싫어서 안 했대요. 이제 모든 곳에 AI가 쓰이기 시작했잖아요. 그러니 회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는 거예요. 변화의 맨 앞에 서 있는 삼성전자 직원도 그럴진대, 우리는 어떻겠어요? 퓨처 타임 퍼스펙티브(Future Time Perspective). 미래 시간 전망을 길게 하세요. 미래 시간을 길게 보는 사람일수록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스스로 구해야 하는 시기
우리나라에는 7번의 진로 분기점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갈 때, 대학 졸업 후 취업할 때 등이다. 김병숙 이사장은 이 진로 분기점에 도달해서야 자신이 누구인지 들여다본다며 안타까워했다. 직장 3년 차에 이직하고 싶어질 때에야 닥쳐서 생각한다는 것. 40대 후반에는 또 한 번 분기점이 온다. 이때 어떻게든 버텨서 50대 초반에 회사를 나오면, 오히려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40대 후반에 승부를 봐야 한다.
“분기점에 섰을 때 고민하면 늦어요. 프라임 시기 이후에는 돈을 적게 벌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내가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급여 하락세가 달라질 거예요. 10년을 분기점으로 두고 3년은 새로운 역량을 키워내는 공부를 하고, 5년은 키운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해보는 식으로 다리를 놔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청년 지원 정책이나 노인 일자리 지원 정책 등 여러 정책을 쏟아놓지만, 정작 중장년을 위한 정책은 많지 않다. 50세에 은퇴하고 재취업을 하려고 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은퇴 후 퇴직금으로 창업하는 건 내 돈으로 내 직업을 사는 셈이다. 바야흐로 스스로 구해야 하는 시기다. 김병숙 이사장은 고령화 시대에는 기업들도 점차 50대 이상의 인력을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하죠. 인력이 없다는 뜻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이 든 사람을 써야 할 시기가 올 겁니다. 대신 나도 그만큼 실력이 있어야 해요. 요즘은 융합 시대입니다. 세 가지 영역을 알고 통합할 줄 알아야 해요. 배움을 축적하면 나의 자본이 되는데요. 40·50세대에는 여가가 중요한 자본이 됩니다.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등산이라고들 많이 말하는데, 그냥 산에 올라 정상에서 ‘야호’ 외치고 내려오는 여가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등산하면서 보는 주변 식물에 관심을 두다가 내가 직접 키운 차나무로 차를 내려주는 찻집을 구상한다든가 하는 식의 연결이 필요합니다.”
후기청년기는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시기다. 김 이사장은 이때 집에서 편하게 쉬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40·50세대의 재취업은 80% 이상이 지인 추천으로 이뤄진다. 매일 출근하듯이 차려입고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내가 이러이러한 기술이 있어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고 싶은데, 관련 일자리 정보를 알게 되면 나에게 말해달라’며 나를 홍보하라는 팁이다. 더해서 건강을 챙기는 건 필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이 타령을 너무 많이 해요. ‘이 나이에’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부디 호기심을 잃지 마세요. 인생 40년 살아보고 직장 20년 다녀보면 다 경험해봤다고 생각해 모두 안다고 여깁니다. 그러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요.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 건강, 재무, 여가, 사회망, 인간관계에 관해 150세 시대를 계획해보세요. 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입니다.”
[100호 기념] 젊어진 중년들, 후기청년을 말하다 '4059 라이프스타일 및 나이 관련 인식 조사'
수명 120세 시대가 예측되는 가운데 60세는 중년과 마찬가지다. 그런 흐름으로 본다면 4050세대는 청년에 가까운 나이다. 중년도 청년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세대를 말할 맞춤한 표현과 분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본지는 지령 100호를 맞아 이들 세대를 '후기청년'으로 정의하고 '4059 라이프스타일 및 나이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후기청년이란 시기상으로는 청년기의 후반을 뜻하는 동시에 '완성되고', '완숙한'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에 의뢰한 본 조사는 2023년 3월 3일부터 6일까지 전국 40~5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해당 결과를 통해 후기청년 세대의 삶과 인식을 재조명해본다.
이번엔 소비 성향을 들여다보자. 최근 MZ세대의 소비 행태를 드러내는 신조어로 ‘미코노미’(Me+Economy, 본인의 취향이나 만족을 다른 요소보다 우위에 두어 선택하는 소비)가 주목받는다. 이와 더불어 기업의 윤리나, ESG 등을 따지는 ‘가치소비’도 선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4050세대에게 브랜드·물건 구입 시 선택 기준을 묻는 복수 응답 항목에서 자기만족(76.8%), 가격(62.2%), 친환경(17%) 순으로 결과가 나왔다. 이는 MZ세대의 소비와도 일부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반면 기성세대를 타깃으로 한 실버 상품이나 산업에 대한 관심도는 높지 않았다(관심 없는 편 70.8%). 즉 소비 취향 면에서도 6070세대보다는 2030세대 쪽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중년들은 MZ세대처럼 자기만족, 가치소비를 중심에 두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이들이 느끼는 만족이나 가치는 ‘젊음’에 대한 부분이 많다. 늙어 보이는 이미지나, 노인층을 상징하는 브랜드 등을 기피하는 것이다. 한편으론 감성은 MZ세대이지만, 재력이나 소비규모는 기성세대에 가깝다. 때문에 대부분 업체가 이들 세대를 큰손으로 여기고, 그에 따른 홍보 전략을 세운다. 요즘 4050세대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에서는 ‘실버’ 등 노인 세대의 뉘앙스를 지닌 단어를 금기시하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1월 30일 월요일, 기대하던 박스를 받았다. 식물 똥손도 어엿한 ‘식집사’로 거듭나게 해준다는 신비한 화분, LG 틔운 미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LG 틔운 미니(Tiiun Mini)는 햇빛을 닮은 LED 조명으로 식물을 키우는 스마트 화분의 일종이다. 틔운 오브제 컬렉션에 비해 크기가 작아 책상에 올려두고 공간을 밝히는 스탠드로도 쓸 수 있다.
채소는 약 4주, 허브는 6주 후 수확할 수 있고, 꽃이 피기까지 8주 걸린다. 전용 씨앗 키트를 사야 하는데, LG전자 베스트샵 오프라인 매장과 LG전자 홈페이지, LG ThinQ 앱 내에서 구입 가능하다. 현재 틔운 미니용 씨앗 키트 패키지로는 메리골드(노랑, 불꽃노랑), 쌈추, 청경채, 청치마상추, 루콜라, 비타민, 청경채가 있다.
구매 페이지의 상세 설명을 보면 루콜라의 발아율은 70%, 성장 기간은 약 5주(온도 22℃, 상대습도 60% 조건 기준)다. 촉박하지만 우선 키워보기로 한다.
기계가 놓일 곳은 회사 탕비실 커피머신 옆 빈 공간. 벌레가 유입되지 않는 환경에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품의 포장 테이프를 모두 제거하고, 전원을 연결했다. 재배할 씨앗 키트로는 취향을 반영한 루콜라 당첨. 비닐 포장과 투명 플라스틱 커버를 제거한 후 키트를 제품에 넣고 물을 주면 끝이다.
물은 씨앗 키트를 끼워둔 채 물탱크 커버 경사면을 따라 흘리듯이 줘야 한다. 그래야 부표를 통해 물의 양을 확인할 수 있다. 탱크를 따로 분리해 물을 채워서 들고 왔다가 양을 한 번에 맞추지 못하면 난감할 수 있다. 참고로 적정량은 1L이며, 부표의 높이가 물탱크 커버 면과 같은 상태여야 한다. 부표가 더 낮으면 물이 부족한 상태, 높으면 물이 너무 많은 상태다.
꼴라루
품종: 루콜라(rucola), 생후 44일(3월 14일 화요일 기준)
장점
LG ThinQ 애플리케이션과의 연동 앱에 기기를 연결하면 기기 주변 온도가 재배에 적정한 수준인지 확인할 수 있다. 조명 밝기와 지속 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데, 재배에 적정한지 아닌지에 대한 안내 문구가 함께 있어 재배에 도움을 준다. 푸시 알림 메시지로 시기를 놓치지 않고 관리 할 수 있다는 점이 초보 식집사에게 특히 유용했던 부분. 3주 동안 물탱크 청소 주기 안내, 기계가 껐다 켜졌을 때 ‘조명 제공 시간이 초기화됐다’는 내용의 알림을 받았다. 또 날짜별로 사진과 함께 160자 분량의 식물 일기를 쓸 수 있다.
커뮤니티 앱을 통해 ‘LG 틔운 공식 카페’에서 다른 이용자들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개발 중이거나 출시 전인 씨앗이 담긴 비밀 키트를 키우는 ‘가틔’, 포토 리뷰 이벤트 등 카페 운영진이 진행하는 깜짝 이벤트에도 참여 가능.
단점
디지털 방식 농가나 화훼단지에서 화분을 사고 흙에 물을 주는 전통적 방식에 익숙하다면 처음에는 조금 헤맬지도 모른다. 7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주는 것 외에는 신경 쓸 부분이 없어서 되레 허전함을 느낄 정도다. 스마트폰 조작이 미숙하다면, 앱에 기기를 연동하기 위해 틔운 기기를 와이파이에 연결하는 단계부터 헷갈릴지도 모른다.
일회용 키트 한 번 쓴 씨앗 키트는 재활용이 안 돼 버려야 하는 점이 아쉽다.
오래 사는 시대를 넘어 건강하게 잘 늙어가며 살고자 하는 ‘웰 에이징’ 시대가 다가왔다.
이와 같은 트렌드는 노후의 삶에 대한 지향점을 조금씩 바꿔 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급화되어 가고 있는 ‘실버 타운’이 이 변화의 중심에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과거의 실버 타운은 간단한 일상 케어를 받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면 요즘의 실버 타운은 기본적인 보살핌 이상으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노후에도 오롯이 내 일상에 집중하며 삶의 질을 한 차원 더 높일 수 있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실버 타운은 주거의 개념을 넘어 식사, 건강, 여가, 문화, 사회활동 등 일상에서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더욱 세분화하고 전문적인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실버타운에서는 여생을 즐기며 만족스럽게 사는 것이 가능해지고 바로 ‘웰 에이징’을 실현시킬 수 있는 주거지인 셈이다.
국내의 한 논문 연구에 따르면, 한 지역 내에서 65세 이상 거주 노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일반 주거지에 거주하는 노인보다 노인복지주택의 거주 노인들의 생활만족도가 더욱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실제로도 실버타운에서의 주거만족도는 꽤 높다. 국내의 한 실버타운 입주민은 “실버타운에서 직접 생활해 보니 잘 짜여진 식단을 통해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입주민끼리 관계를 맺으며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프로그램 활동으로 즐겁게 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내가 가장 싫어했던 집안 일에서 해방되어 편안한 일상을 보낼 정도로 고급 호텔이나 마찬가지인 케어를 받고 있어 실버 타운에 늦게 들어오는 것은 낭비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에 맞춰 실버타운이 주목을 받으면서, 3월 중 서울 마곡지구 마이스 복합단지에 들어서는 프리미엄 시니어 레지던스 ‘VL르웨스트’가 시선을 끈다.
‘VL르웨스트’는 지하 6층~지상 15층, 4개동, 총 810실 규모로 조성되며 특히, 시니어 수요자 특성을 고려한 의료 케어, 입주민 서비스, 특화 설계와 다양한 커뮤니티 및 프로그램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단지는 차별화된 의료 서비스를 갖출 예정으로 시니어 입주민의 특성과 편의를 고려한 건강관리시스템을 제공한다. 먼저, ‘보바스기념병원’과의 업무 협약을 통한 세분화되고 체계적인 건강관리센터를 운영 지원한다. 개인별 맞춤 건강도 체크, 질환별 특별관리 등과 ‘실시간 생체 신호 모니터링’을 통해 국내 노인복지주택 최초로 ‘선제적 대응’이 가능한 긴급SOS 알람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대 서울병원’과의 협약을 통해서도 입주자 대상으로 전문의 진료 및 건강검진이 가능하다. 해당 병원 이용 시에는 입주민 전용 창구를 통해 장시간 대기 없이 신속한 의료 케어가 가능하고 할인 혜택도 마련될 예정이다.
특히, 단지는 ‘강서 미라클메디특구’에 해당돼 고품격 의료 인프라도 함께 누린다. 이 특구에는 서울 시내 2위에 달하는 병원급 이상 전문 의료 시설이 집적되어 있고 척추 및 불임에 특화된 고품질 의료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다.
단지 내 지하 보행 통로를 통해 보다 편리한 생활 인프라도 누릴 수 있다. 단지 인근에는 지하철 5호선 마곡역, 지하철 9호선 및 공항철도 마곡나루역까지 있어 트리플 역세권을 갖추고 있다. 특히, 단지 내 지하 보행통로와 지하철 역이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역세권 이상으로 더욱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다.
도심 속에서도 대규모 자연 환경을 이 단지 내 지하 보행통로를 통해 마음껏 편리하게 누릴 수 있다. 약 15만평 규모의 ‘서울식물원’과 약 50만㎡ 규모의 생태공원 ‘서울 보타닉 공원’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특히, 서울식물원은 공원과 연계한 다양한 산책 프로그램이 마련될 예정으로 다양한 여가 시간도 보낼 수 있다.
다채로운 문화, 쇼핑, 생활 인프라도 눈에 띈다. 롯데몰, 롯데시네마, 대규모 공연장 LG아트센터 서울 등 대형 쇼핑몰 및 문화 시설이 단지 가까이에 있어 쉽게 이용이 가능하고 다양한 사회 활동도 누릴 수 있다.
호텔급 입주민 서비스로 편리하고 여유로운 일상도 보낼 수 있다. 롯데호텔이 운영 지원하는 프리미엄 시니어 브랜드 ‘VL’을 통해 예약대행, 비즈니스 업무지원, 우편물관리 등 ‘호텔식 컨시어지 서비스’, 세대 내 각종 청소가 가능(주 2회 60분)한 ‘하우스키핑 서비스’, 호텔 레스토랑 운영 노하우가 담긴 ‘호텔 셰프 관리 식단’, 각종 문의 및 요청을 하나의 창구에서 운영하는 ‘원스탑 서비스’ 등을 누릴 수 있다.
시니어 맞춤형 특화 설계도 선보인다. 롯데건설이 개발한 시니어 주택 평면을 비롯해, 액티브 시니어의 독립성을 반영한 ‘원룸 원배쓰(방 하나당 화장실 하나)의 평면, 신체 및 안전을 고려한 전 세대 미닫이문 및 무단차 계획, 세대 내 순환형 동선 구조, 입주자별 취향을 고려한 ‘비스포크 발코니’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시니어 입주민들은 불필요한 동선과 이동 없이 편안하고 효율적인 일상을 누릴 수 있다.
이 외에도 세대 내에 비상콜 시스템, 동작 감시 센서, 냉방시스템, 헬스케어 시스템 등 스마트한일상을 위한 ‘IOT시스템’을 통해 편리하고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VL르웨스트가 갖춘 입지, 규모, 시설 등은 국내 실버타운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라며 “롯데건설과 롯데호텔이 함께 공을 들여 선보이는 만큼, 시니어 수요자들의 만족도가 높을 것이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견본을 보고 싶다면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전시관을 찾으면 된다. 청약 접수는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될 계획이다.
생뚱스레 허허벌판에 홀로 있는 음식점이라거나, 거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뜻밖의 공간을 만난 경험이 있는가? CICA(시카)미술관은 의외의 장소성으로 오히려 도드라진다. 거대한 산업단지 안에 외톨박이 이방인처럼 고독하게 박혀 있으니까. 김포시 양촌읍 학운산업단지 한구석에 있다. 하필 왜 여기에 미술관을? 이런 궁금증, 쉽게 터져 나올 입지다. 그러나 실은 어엿하다. 황무지에 솟은 꽃나무 한 그루에 견주면 과할까? 풍습과 관행을 흔들어 깨우는 게 예술이다. 장소 불문, 제 갈 길 야무지게 가면 된다. 그런데 이 미술관은 겉으로 소탈하지만 안으로 짱짱하다. 건성으로 풀이거니 해도, 알고 보면 꽃이다.
CICA미술관에서 맨 처음 만나는 건물 외벽엔 철판을 잘라 만든 조각 작품이 부착돼 있다. 산발한 머리칼이 불꽃처럼 너울거리는 앤디 워홀의 자화상을 그대로 조형한 철 조각이다. 미술관 설립자이자 조각가인 김종호의 작품이다. 앤디 워홀은 현대미술의 아이콘. 도발적인 주제와 발칙한 기법으로 미술의 새 물꼬를 텄다. 이 미술관은 현대미술의 동향과 경향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집중적으로 펼친다. 지향이 그렇다. 앤디 워홀의 자화상을 조각한 작품을 초입에 배치한 이유를 알 만하다.
김종호가 이곳에 자리 잡은 건 30여 년 전이다. 조각 작업의 특성상 너른 공간이 필요해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김포에 작업실을 마련했던 거다. 당시 이 지역의 풍광은 산업단지로 바뀐 지금과 사뭇 달랐다. 논밭이 지천이었고,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이 펼쳐져 감흥을 자아냈다. 화가의 작업실로 적격인 장소였다. 지평선 너머로 뜨고 지는 해와 달을 벗 삼아 작업에 매달렸을 테다. 이후 작업실을 개방하는 한편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다, 2015년에 미술관 등록을 하면서 CICA미술관을 출항시켰다.
건물을 볼까. 5개 동이 있다. 이채롭게도 모든 건축물이 나지막한 음성을 내는 버릇이 있는 사람처럼 소박하고 수굿하다. 티 내거나 뽐낸 기색이 없다. 치레와 꾸밈을 능사로 하는 여느 미술관 건축과 다른 형상이다. 전시실들이 있는 주 건물은 특히 눈길을 끈다. 김종호의 작업실을 증축한 건물인데 적당히 낡아 오히려 정겹다. 연푸른색을 입혔으나 시간의 횡포로 퇴색한 외벽이 야기하는 서정이라니. 처음엔 말짱했으리라. 말쑥했으리라. 그러나 비와 햇볕, 바람이 세월에 묻어 흐름에 따라 빈티지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저 낡아가는 빛깔과 내향적인 질감은 시간의 지문이다.
이 건물은 김종호가 디자인해 지었다. 손수 연장을 들고 짓거나 고치거나 다듬었다. 그러니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통째 그의 예술이라 할 만하다. 철 조각을 하는 작가라서 건축 오브제를 떡 주무르듯 다루는 솜씨는 이미 몸에 푹 익어 거침이 없었던 모양이다. 2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생각을 모으거나 일을 즐기며 천천히 건물을 증축했다. 덕분에 어쩌면 건축적 악곡의 주조음에 해당할 수굿함과 낡음의 미학을 잘 빚어냈다. 수굿함이란 모난 세상과 격하게 접촉할망정 안으로 문을 열어 선선히 수용하는 긍정의 기운이다. 낡음이란 흉한 추락이 아니다. 밀고 당겨온 세월과의 갈등과 투쟁과 서사를 웅변하는 아름다운 훈장이다. 설핏 보자면 허름한 건물이지만 사실은 뜯어보고 눈여겨볼 게 많다. 허심과 무심으로 사람을 데려간다.
전시실 구조에 서린 날것과 즉흥의 이미지
이 미술관은 알아주거나 알아보는 눈이 많은 뮤지엄은 아니다. 내로라하는 공립미술관이나 일부 대형 사립미술관의 당찬 행진에 비하면 그저 소탈한 행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시회를 우후죽순 격으로 빈번하게 펼친다. 홈페이지를 보니 2022년에 연 전시회가 자그마치 120여 개에 이르는 게 아닌가? 2023년 1월 현재에도 4개의 전시회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그림을 보러 갔으나 전시회 내용이 빈약해 허탈하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사립미술관이 흔하다. 전시회 하나 기획해서 막을 올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이 미술관의 기동성과 기획력은 민첩하고 강렬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명숙 관장의 얘기는 이렇다.
“언제든 작품과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을 추구하고 있다. 전시 작가들의 작품은 실험적이고 감각적이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 선정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해외 작가들의 작품전도 매우 활발하다. 사실 우리 미술관은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CICA미술관은 잦은 전시회로 외연을 확장해왔다. 한편 공모전을 통한 전시 작가 선정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 미술관이 지닌 대찬 자존감의 근거다. 인맥이나 섭외의 기술을 가동해 전람회를 가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한다. 적성과 철학에 맞지 않아서. 그런데 해외에 더 많이 알려졌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이 미술관은 초기부터 국내 작가보다 해외 작가 전시회에 치중했다. 지구 위에 범람하는 현대미술의 현상과 사조를 관객에게 여실히 보여주기 위해서다. 회화, 영상, 사진, 설치작업, 디지털아트는 물론, 첨단과학과 접목된 인터랙티브 아트까지 선보였다. 매년 국제행사도 세 차례 펼친다. 뉴욕과 워싱턴DC, 그리고 CICA미술관에서. ‘CICA 뉴미디어아트 국제 컨퍼런스’라는 타이틀을 걸고 국내외 작가와 교수 등이 참여하는 이 행사에선 미술전도 동시에 열린다. 한글과 영문으로 된 현대미술 관련 도서도 줄기차게 출간한다. 한마디로 콘텐츠의 작렬? 크지 않은 미술관의 작은 밥상 다리가 휘어지게 성찬을 차려내는 형국이다. 이 풍성하고 왕성한 활동력으로 해외에 이름을 알린 셈이다. 현재 이 미술관이 작동하는 네트워크엔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 5000여 명이 들어와 있다. 이래저래 심상찮다. 한 발짝 앞서간다.
전시실로 들어선다. 4개의 전시실에서 4개의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Portrait 2023’전은 초상(肖像)을 테마로 삼은 전시회다. 매년 동일한 테마로 펼쳐지는 기획전의 2023년분 행사다. ‘Youth #9’전은 17세부터 27세까지 국내외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로, 이 역시 매년 거듭된다. 미술관의 촉수가 신진 작가 발굴에도 뻗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관이라 하면 화이트 큐브를 연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곳 전시 공간의 구색은 썩 다르다. 외관이 낡음과 수굿함으로 정취를 자아낸다면, 내부의 분위기는 날것과 즉흥의 이미지가 물씬해 흥미롭다. 구조물들의 모습은 투박해서 오히려 편안하다. 천장과 벽과 자투리 틈새에 설치한 채광창에선 위트가 느껴지며, 전시실 상부를 강인한 한 획처럼 가로지른 철골은 자칫 허술해 보일 수 있는 구조물들에게 힘과 생동감을 공급한다. 모든 것은 김종호가 수공업 공정으로 만들었다. 세련미를 추구하는 추세에 맞추려 애쓰지 않았다. 뭐랄까, 마음 가는 대로 디자인했다. 제 장단대로 한바탕 놀았다. 그러니 보는 이도 흥이 날 수밖에.
김명숙 CICA미술관 관장
“왜들 유명 작가만을 좋아하지?”
CICA미술관의 규모는 크지 않고 건축물들은 낡아 보인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해외 작가들을 끌어들인 전시회를 수시로 펼쳐 현대미술의 세계적 동향을 알게 한다. 유명한 작가보다 젊은 작가 위주의 전시회를 추구하는 것도 이 미술관의 지향이자 개성이다. 김명숙 관장의 얘기는 이렇다.
“우리는 사립미술관으로서는 비교 사례가 드물 정도로 많은 전시회를 펼쳤다. 이를 두고 조언하는 이들도 있다. 다수의 전시회보다 소수의 비중 높은 작가의 전시회를 하는 게 미술관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과연 비중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비중을 누가 어떻게 측량하나? 그건 우리의 철학과 맞지 않는 얘기였다.”
이미 역량 있는 작가들의 전시회를 지속해왔다는 얘기로 들린다.
“모든 전시회를 100% 공모전을 통해 선정한 작가들로 치렀다. 능력이 충분한 작가들의 전시회를 도모해왔다.”
CICA미술관 보유 네트워크에 5000여 명의 해외 작가가 속해 있다지? 이 방대한 인적 구축이 어떻게 가능했나?
“미술관의 아트디렉터 김리진이 개척한 인적 자산이다. 그는 미국에서 뉴미디어를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수, 조소 작가로도 활동했다. 유능하고 진취적인 인재로 우리 미술관의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전담해왔다. 관장인 나는 사실 공식 잡부에 불과하다.(웃음)”
김리진 아트디렉터는 김명숙 관장의 딸. 그리고 김명숙 관장은 CICA미술관 설립자 김종호 조각가의 부인으로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미술에 인생을 실은 가족 3인이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의 어느 보고서를 보면, 미술관에 온 관람객들이 작품 한 점을 감상하는 데 쓰는 시간이 평균 17초에 불과하더라. 한국의 경우는 어떻다고 보나?
“아마 10초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쓰윽 스쳐가듯 대충 본다. 흔히 미술작품을 어려워한다. 그럴 거 없다. 너무 이해하려 애쓸 일이 아니다. 가령 옷을 살 때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디자인과 색감을 골라 사듯이, 본인 취향에 맞는 미술품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서서히 안목이 생기게 마련이다. 안목이 생긴 뒤엔 인문학이나 미술사 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하면 비로소 미술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미술품 투자가 대중화되고 있다. 미술 향유 풍토의 확산과 유관하다고 보나?
“미술을 즐기기 위한 투자라면 무방하겠지만 완전한 투자 목적은 곤란한 거 아닐까. 투자를 하더라도 우선 안목부터 길러야 한다. 남들이 유명 작가라 하는 걸 그냥 따라가는 행태는 안타깝다.”
과학과 융합된 작품까지 등장하는 게 현대미술이다. 여간한 안목이 아니고선 즐기기가 사실 쉽지 않다.
“미술에서 굳이 아름다움만을 찾을 일이 아니다.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충격, 공포, 지루함까지를 새로운 감정 경험으로 수용하다 보면 즐길 수 있다. 영상작품 같은 건 좀 오래 봐야 감흥이 올 테고. 흔히 후기인상파의 그림을 애호하지만, 난 현대미술에서 훨씬 더한 재미를 느낀다. 거기엔 뭔가 한 방이 있다. 자극 요소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현명한 금융 생활을 위해 ‘내 손안의 금융 비서’로 불리는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찾는 중장년이 늘고 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신한은행의 마이데이터 서비스 ‘머니버스’를 운영하는 신한은행 마이데이터 유닛(Mydata Unit) 측에 설명을 부탁했다.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는 개인의 금융 생활, 자산을 분석해 맞춤형 금융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은행·카드·보험‧증권 등 흩어져 있는 금융 정보를 한 회사가 관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금융 상품을 추천받거나 성향에 따른 투자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은행 ‘PB’(프라이빗 뱅커) 지점에서만 이용 가능하던 종합 상담 서비스를 누구나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접근할 수 있어 도입 초기에 인기를 끌었다.
고객이 마이데이터 앱을 통해 ‘개인신용정보전송요구권’을 행사하면, 금융사에서는 해당 고객의 신용 정보를 가명 처리해 암호화하고 이를 마이데이터 사업자(본인신용정보 관리업자)에게 전달한다. 그렇게 통합된 정보들을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통해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데이터를 수집할 때 ‘API 방식’을 이용하는데, 이전에 이용하던 ‘스크래핑 방식’보다 해킹에 대비할 수 있는 보안 기술이나 대책을 고안하기 용이해 보안 안전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마이데이터 서비스 사업자는 은행 10곳, 여신전문금융사 9곳, 증권사 7곳, 핀테크사 23곳 포함 총 66여 곳이다.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거래 중인 금융사의 앱이나 인터넷 홈페이지에 접속해 마이데이터 서비스에 동의하면 된다. 여러 금융사 마이데이터 서비스에 중복 가입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은행 마이데이터는 자산 관리에, 카드사 마이데이터는 소비 습관 관리에 강점이 있어 여러 곳을 함께 이용하기도 한다.
신한은행 머니버스의 경우 은행·카드·보험·‧증권 등 8개 업권 200개 금융기관을 연결해 통합 관리가 가능하다. 신한은행뿐 아니라 다른 회사 금융상품도 취향에 맞게 추천해준다. 자산·소비·절세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상담 기능 또한 제공하고 있다.
아직 제공하는 정보의 범위나 개수가 적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를 보완하면 ‘현재 가입된 A상품을 해지하고 B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00만 원 더 유리하다’고 추천할 수준의 정보 제공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마이데이터 정보 제공 항목은 492개인데, 금융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올 상반기까지 720개로 순차 확대될 예정이다.
신한은행 마이데이터 유닛 관계자는 “상품 추천을 해주는 머니버스 ‘데이터 Pick’ 서비스의 경우 사회 초년생보다 4050세대 고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을 불려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금융상품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게 되면서 정보 탐색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머니버스 역시 예·적금, 대출, 신용카드 등 중장년층 고객들이 금융상품 정보를 더 쉽게 확인하고 가입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숨 가쁘게 시간이 흘러간다. 어느덧 겨울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한겨울 차디찬 공기와 그 풍경 속으로 데려다주는 대청호의 새벽을 찾아간다. 자동차로 어두운 새벽길을 두 시간여 달려 쨍한 추위 속에 호수의 새벽 공기를 맞는 일, 신선하다.
엄동설한의 캄캄한 새벽길은 생각처럼 어렵진 않다. 달려갈수록 조금씩 걷혀가는 어둠을 확인하는 일도, 중간에 잠깐 들른 휴게소의 적막함도 어두운 길을 달리는 사람들만의 즐거움이다. 서울이나 수도권 기준으로 두 시간 정도 새벽길을 달리면 시골길 드문드문 몇 채의 농가와 들판이 내다보이고 대청호를 향한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청호 오백리길 제4구간 출발점인 윗말뫼 주차장은 한적하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총 21개 구간으로 이루어졌다. 이 구간 안에 대전, 청주, 충북 옥천군과 보은군이 경유한다. 그 속에 마을과 산과 들과 강과 호수가 오백리길을 이어준다. 원래는 대덕군과 청원군 사이에 있다고 하여 대청호라 이름 붙였다. 이 지역에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80년 대청댐 완공과 함께 지역 마을 담수화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인공 호수가 대청호다. 이때 수몰 지역은 86개 마을로 4000세대가 넘었고, 주민은 2만 6000여 명이나 되었다.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생긴 대청호로 인해 어릴 적 따뜻했던 추억 속 아름다운 시골 마을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대청호는 인공 저수지로는 저수량 기준으로 소양호와 충주호에 이어 국내 세 번째다. 스무 개가 넘는 대청호 오백리길 구간을 편안히 즐기는 방법은 호수 둘레길을 산책하듯 걷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4코스 호반 낭만길은 대청호수를 가까이에 두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습지공원과 자연생태관 등이 걷는 길마다 이어지며, 총길이는 약 12.5㎞이고 5~6시간 정도 걸린다.
물론 지금도 호반길을 걷기 위해 찾아드는 이들에게 큰 불편은 없는 편이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3년 열린관광지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대청호 일대는 장애인, 노약자 등 이동 약자들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무장애 관광 환경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제는 이동 약자의 문턱이 더욱 낮아진 대청호 오백리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정보취약계층이 불편 없이 관련 홈페이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웹 접근성도 개선한다.
취향에 따른 구간별 길을 걷다가 갈대숲이나 호숫가에 멈춰서 조용히 대청호를 즐길 수도 있고, 또는 드라이브만으로도 좋다. 굳이 걷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발걸음에 따라 또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일부를 걷거나 쉼을 택하면 된다. 걷는 속도나 그 길을 모두 걸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일인가. 단 한두 시간을 걸었어도 그저 자연 속에서 음미하는 시간이 의미 있다. 온몸의 세포를 깨우고 다독이는 그 순간만으로도 충만하다.
동이 트기 전 호수에 도착하는 이들에겐 새벽 물안개에 대한 기대가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날은 마냥 맑고 쾌청한 호수를 보게 된다. 일교차가 큰 봄과 가을에 주로 발생하는 물안개가 이날따라 피어오르지 않았다고 글렀구나 생각할 일은 아니다. 새벽의 거대한 호숫가에 서보았는가. 온몸이 떨리고 시리도록 쨍한 상쾌함으로 간단하게 마음의 평안을 던져준다. 이렇게 겨울과 마주한다.
호수 주변에 들면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공기 맛이 다르다. 건너편의 산과 능선이 호수 안으로 잠겨 흔들림 없는 반영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호반 둘레길에 깊숙하게 들어가면 질퍽한 습지 위로 풍성한 억새가 숲을 이루었다. 가끔 바스락거리며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곤 한다.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철새가 푸드덕 날고 먹잇감을 찾는 백로의 날갯짓을 보게 된다. 계절에 따라 개구리는 물론이고 메뚜기나 거북도 볼 수 있다. 자연환경이 청정해 구간 안에 자연생태관도 운영한다.
수변탐방로에서 한없이 호수에 취했다가 명상정원 방향으로 향하면 무엇이 기다릴까. 호수와 숲이 함께하는 곳이다 보니 발밑에는 여전히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10분여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숲길의 자연스러움에 젖어든다. 호수와 정원 사이 언덕처럼 완만한 등성이에 ‘대청호 오백리길’ 표지판이 보인다. 쉼을 제공하는 벤치와 정자가 호수를 앞두고 나무 아래 고즈넉하다. 이곳에서 호수를 빙 돌아보며 각자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명상정원은 물속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건네주는 공간인 듯싶다. 한 번쯤 들러서 간단하게라도 그리움을 풀어보도록 전통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옛 마을길의 한옥 담장, 장독대, 널찍한 평상 등으로 그들의 깊은 그리움이 해소될까마는 수몰민들을 위로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마을 어귀에서 자라던 나무였는지 여전히 우뚝 서 있는 나무는 사진가들의 피사체가 되어 언제까지나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이 애잔하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물속의 작은 섬들이 이루는 반영의 멋과 함께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상정원에는 드라마 ‘슬픈 연가’, 영화 ‘역린’, ‘창궐’, ‘7년의 밤’ 등의 촬영지였다는 안내가 줄을 잇는다. 이런 이유 말고도 이곳에 서면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아련한 마음이 생겨난다. 세상의 흐름 속에서 변화해가는 현장과 그들의 어제와 오늘, 그뿐 아니라 이 모습을 대하는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힐링의 장소로 이곳을 찾는다. 포토존에서 셔터를 누르고 나무 그네에 앉아 눈앞의 호수를 마냥 누리며 새벽의 호수를 만끽한다.
4구간 호반 낭만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명상공원에서 조붓한 길을 따라 1km쯤 거리에 자연생태공원과 추동 취수탑이 자리 잡고 있다. 상수원 취수구역이다. 가래울 마을과 황새바위와 연꽃마을에 이어진 오리골 제방이 시원하다. 철 지난 논과 밭을 끼고 걷는 길에 몇 가구 안 되는 작은 마을도 지나고, 데크로 연결되는 길도 나온다.
감나무에 넉넉히 남겨둔 까치밥의 푸근함을 올려다보면서 마을 옆 데크를 걷다가 예닐곱 단쯤 되어 보이는 알타리 무더기를 보았다. 필요하신 분은 가져가라는 인심이었다. 이런 인정 넘치는 구경은 여행의 덤이다. 도로 옆으로 나오니 자전거 부대들이 씽씽 달린다. 시골길을 달리는 라이딩족들의 활기찬 질주가 상쾌함을 듬뿍 얹어준다.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을 찾는 이들이 들르는 곳이 또 있다. 3구간 종착지인 윗말뫼의 더리스. 호수를 앞에 두고 탁 트인 풍경이 압도한다. 더리스&테라베오는 슈하스코 브라질 바비큐 전통요리 레스토랑이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진 대청호 오백리길 산책로와 호숫가의 전경을 보려고 찾아온다. 더리스 정원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면 프라이빗한 장소가 나타난다. 커플 의자에 앉아 마음껏 물멍에 빠져들면 된다. 때가 맞으면 거위 떼가 찾아와 물속에서 노니는 모습도 볼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이다. 혹시나 비가 많이 내린 후라면 벤치와 나무가 물속에 잠긴 그림 같은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추운 겨울날 그리움 속 마을을 찾아 떠난 여행지에서 문득 유년의 시간을 발견한다. 그 길 위에서 기억 저편의 할머니와 내 부모 형제들을 만난 듯 뭉클함도 얻는다. 소박한 자연 속에서 비로소 들여다보는 내면 깊숙이에 위로 한 줌 들여놓았다. 떠돌던 마음은 차분히 잦아들고 한없이 따뜻하다. 세상 소음 따윈 잊고 호숫가를 걷는 내 발밑에서 마른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전부였던 하루가 한동안 몇 알의 비타민이 되어줄 것이다.
여행 정보
자동차로 서울 기준 두 시간 정도 소요. 특히 청주에서 출발해 근교 문의문화재단지와 대청호를 함께 둘러보는 코스도 좋다. 전통문화와 호수의 멋을 제대로 느껴볼 만한 곳이다. 대청호 코스 대전역발 시티투어 순환버스가 토·일 주말에 있다.(2시간 반 정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