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은퇴를 앞둔 50대 남성들의 고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들과 함께 사는 50대 여성들의 심경은 어떨까 취재해봤다.
직장밖에 모르던 남편이 은퇴하면 둘이서 오붓하게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어 있을까? 현실은 거의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남편과 똑같이 자녀의 대학 등록금, 결혼자금 마련 등의 고민을 공유하는데 더해서 가사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부인으로서 또 다른 걱정이 있다.
은퇴자 10명 중 4명이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 발행 “머니in라이프” 52호). 당연히 가장 큰 걱정거리가 부모의 인지 저하나 치매다. 돌보는 일 자체가 힘들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특히 그런 부모를 돌보는 일의 대부분이 부인의 몫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노부모의 의료비 지출도 걱정거리다. 요즘엔 인지 저하나 치매를 앓으면 요양 시설로 모시는 풍속이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간병비 부담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노인 1인당 간병비는 월평균 180만 원(공동간병인 이용 75만 원)으로 나타났다. 수명 연장으로 시설 이용 기간도 늘고 있어 부담액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더하여 자녀들의 늦어진 취업과 결혼으로 자녀부양까지 떠맡는 샌드위치 처지인 셈이다.
국민연금 수령액도 만족할만한 수준이 못 된다. 통계청의 조사(2019년)에 따르면 55세에서 79세까지 사람들의 월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은 61만 원이다. 전업주부로 생활해온 여성은 국민연금에 대부분 가입하지 않아 남편의 연금에 의존함으로써 연금 수령액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들의 노후생활비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녀와 노부모 부양책임까지 떠맡으니 주부들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그렇다고 부모나 자녀들을 외면해버릴 수도 없고 은퇴한 남편을 창업이나 재취업 현장으로 내몰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자신들이 생업현장에 뛰어들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뒷짐만 지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부족한 노후준비 상황부터 다시 찬찬히 점검해보고 차선책을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자녀에게 ‘노후 무대책’의 유산을 물려줄 수야 없으니.
인터뷰 섭외는 쉽지 않았다. 기사가 나가면 문의 전화가 너무 많이 와 업무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아직 부족한 점이 있어 노력 중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아무래도 민낯이 불편한 기색이었다.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된 지는 만 11년째. 현재 요양시설은 5300여 곳이나 되고 약 16만 명의 고령자가 입소해 있다. 하지만 요양원에 대한 불신은 여전해 보인다. 이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5회 연속 최우수 등급을 받은 안산시립노인전문요양원 이성혁(李成赫·52) 원장이 흔쾌히 시간을 내줬다.
2027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치매 환자도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장기요양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실정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2008년. 그 사이 요양시설은 3배 이상 늘어났지만 관리·감독은 제대로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심지어 ‘현대판 고려장’으로 불리는 등 시설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다.
돌볼 상황이 안 돼 불가피하게 요양시설에 가족 또는 노부모를 맡겨야 하는 보호자들은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 않다. 그나마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시설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요양원을 찾아 문을 두드려보지만 입소가 쉽지 않다. 괜찮은 곳은 전체 시설의 10여 %밖에 안 돼 2~3년간은 대기자로 기다려야 한다.
요양시설 서비스의 질은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가까운 미래의 우리들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 몇십 년 뒤에도 노인 돌봄 환경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안산시립노인전문요양원 이성혁 원장은 무엇보다 성숙한 요양원 문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도 개선을 통한 효율화도 중요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위한 재정 확보도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르신 돌봄 서비스 질은 현장에서 일하는 요양사 선생님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분들에 대한 처우가 아직 열악해요. 과도한 격무는 물론 더러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등 인권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요. 제도적 지원이 부족할 때는 마음이라도 먼저 열어야 합니다. 상대로부터 존중받는 느낌이 들면 일이 아무리 고되어도 힘이 생깁니다. 옛날에는 가난했어도 아름답고 훈훈한 일이 많았잖아요. 서로를 존중하며 지냈기 때문이라고 봐요. 요양원은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닙니다. 요양보호사는 보호자의 마음을, 보호자는 요양보호사의 업무 스트레스를 헤아려줘야 합니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르신들을 오래 돌볼 수 없습니다. 금세 지쳐요.”
요양보호사의 인권도 중요하다
올해 개원 14주년을 맞이한 안산시립노인전문요양원은 2005년 사할린영주귀국동포들이 입소하면서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는 현재 81명의 고령자가 입소해 있고 34명의 요양보호사들이 상주해 있다. 이성혁 원장은 늘 출근시간보다 한두 시간 일찍 나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입소자들을 만나러 간다. 손도 잡고 눈도 마주치며 시시콜콜한 대화도 나눈다. 올해 초 제4대 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사회복지시설에서 20여 년간 활동하며 역량을 쌓아온 복지 전문가다. 3년마다 이루어지는 정기 평가에서 5회 연속 최고 등급을 받은 비결을 묻자 “규정을 잘 지키려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요양사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큰 도움이 됐다”며 모든 공을 요양보호사들에게 돌렸다. 이 원장은 인터뷰 내내 요양보호사들의 자존감에 대해 거듭 이야기하며 입장을 대변했다.
“어르신 돌봄 과정에서 요양보호사가 모든 짐을 질 수는 없습니다. 우선은 그분들의 자존감이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야 돌봄 서비스도 좋아질 것입니다.”
사실 현행 제도를 수정해야 할 만큼 요양보호사의 근무 환경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한 명이 입소자 2.5명을 돌봐야 하지만 주간과 야간 교대근무를 배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규정 때문에 실제로는 한 명이 8~9명의 노인을 보살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식사 수발과 기저귀 케어 등으로 한바탕 전쟁이 벌어질 때는 뛰어다녀도 시간이 부족해 패닉에 빠지곤 한다. 과중한 업무에 허리를 자주 다쳐 복대와 손목대 착용은 기본이고 진통제를 먹으며 일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속속들이 아는 보호자는 없다.
이 원장은 대부분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생활하는 시설이지만 요양원에서도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이 오가고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며, 제일선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 보호자의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분이 나쁘면 고함을 지르며 이년 저년 심한 욕을 하는 어르신도 있습니다. 인지 능력이 떨어져 그러시겠지 이해가 돼도 당장은 속상하고 기분도 안 좋겠죠. 요양보호사가 천사는 아닙니다. 간혹 육체노동보다 감정노동이 더 힘들다고 눈물을 보이는 분도 있습니다. 어느 날은 텃밭을 좋아하는 어르신에게 채소라도 다듬어보게 손에 쥐어드렸다가 ‘우리 엄마에게 왜 일을 시키냐’고 화를 내는 보호자 때문에 당황한 적도 있습니다. 저희도 더 세밀히 살피고 노력해야겠지만 보호자들도 믿고 어르신을 맡겨주시면 좋겠어요. ‘요양원은 믿을 수 없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보면 신뢰 형성이 안 됩니다.”
초고령사회가 되면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요양시설에서 보내는 고령자가 많아질 것이다. 이 원장은 10년 가까이 생활하고 있는 입소자들 중에는 요양보호사를 마치 딸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요양원에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휠체어에 태우고 다니면서 안부 여쭙고 이야기 들어주고…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에요. 사랑하는 가족도 매일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한 어르신은 자신이 좋아하는 요양사 선생님만 들어오면 좋아서 씩 웃으신대요. 잘해드려도 맘에 안 드는 요양사 선생님을 보면 눈 감고 모르는 척하시고요.(웃음)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 아닐까요. 비록 거동은 불편하시지만 마음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요양사 선생님들도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자신이 진짜 딸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대요. 절대로 인위적으로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진실, 이제는 드러내놔야
그러나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보호자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마음고생도 만만치 않다. 가족을 요양원에 맡긴 뒤 속앓이가 더 깊어진 사람도 있다. 세상이 변해 인식이 바뀌고 있다지만 부모를 직접 모시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불효자의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면회 갈 때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눈물 글썽글썽한 그 외침을 애써 외면한 채 견뎌야 하는 현실도 참혹하다. 요양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면 다른 시설은 좀 나을까 싶어 옮겨 다니다가 몸과 마음이 다 지쳐버리기도 한다. 약물 오남용, 낙상 등으로 인한 사고도 많지만 속 시원한 해명은 들을 수 없다.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는 형편. 자칫 부모님이 불이익이라도 받을까봐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부모님 모시는 일로 한 번쯤 고민해본 사람들은 감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이성혁 원장은 가족을 요양원에 보내는 입장도, 입소자를 받아들이는 입장도 초창기에는 예민해지기 마련이라서 알게 모르게 주고받는 상처가 많다고 말한다.
“요양원에 부모를 모시고 오는 보호자들은 죄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요구 사항이 많습니다. 잘 모셔줄까 불안해하고 작은 일에도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저희 요양원에서는 그러한 오해와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로 정기적으로 운영위원회를 열고 있습니다. 회의 과정이 오픈돼 있어 보호자들도 참석할 수 있지요. 다행히 이 과정을 통해 마음을 조금씩 열기도 합니다. 대화할 때 상식이 통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판단 기준이 다를 때는 무척 힘이 듭니다. 예를 들면 의사가 처방한 약물 복용에 대해 설명을 할 때 그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책임은 요양원이 져야 한다고 말하는 보호자들이 있어요. 어르신을 위해 고심해서 내린 처방인데 다짜고짜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보호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요.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고 상처들도 아뭅니다.”
이 원장은 노인 학대 문제에 대해서도 시설에서 폭력을 행사하면 요즘은 바로 폐쇄 조치에 들어가는 분위기라면서 특히 국공립 시설은 인권보호 기준이 더 엄격하다고 했다.
“저희는 침대에 누워 말씀 한마디 못하시는 어르신의 존엄도 잊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든 인격이 침해당하는 일은 없어져야 해요.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국공립 요양시설은 전체의 1%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는 다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죠. 민간시설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기도 하고 이익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도 있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도 합니다. 안 좋은 사례들을 대할 때는 오랫동안 복지 관련 일을 해온 사람으로서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앞으로 관리 감독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서로 배려하는 문화도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몸이 불편해져도, 요양시설에 들어가겠다는 마음을 선뜻 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마주해야 할 풍경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장기요양보험 기금이 급격히 고갈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대로 가다간 고령자 삶의 마지막이 극한 체험 속에서 끝날 수도 있다. 사회적 공감대 확산을 적극 기대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 서점가에서 책 ‘탈출노인(脱出老人)’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일본의 고령자들이 처해있는 상황 등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이 책은 다양한 목적을 갖고 필리핀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일본의 노인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 미즈타니 다케히데(水谷竹秀)는 논픽션 작가로 태국과 필리핀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의 삶을 주로 다뤄왔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돼 후지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제일교포 영화인으로 잘 알려진 최영일 감독이 참여했다.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은 충격적인 발표를 내놓았다. “60세에서 65세 사이의 직장이 없는 평범한 은퇴자 부부가 약 30년의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금 이외의 약 2000만 엔(한화 약 2억2000만 원)의 자산이 필요하다”라고 발표한 것. 연금에만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고령자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해외로 이주한 일본의 노인들을 다룬 책 ‘탈출노인’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높은 생활비로 악명높은 일본의 고령자들이 낮은 연금만으로 살아가기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탈출구로 해외 생활을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고령자의 해외이주 "만만치 않아"
이 책의 저자 미즈타니 다케히데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필리핀으로 이주한 고령자의 삶을 통해 바라본 행복론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제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필리핀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유행한 필리핀 술집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사람들이죠. 그들이 이주를 선택했던 것은 따뜻한 기후와 낮은 물가로 대변되는 살기 좋은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대부분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만족해하고 있었죠. 그리고 일본의 북쪽 지방에서 추위를 피해 오거나 치매 부모를 모시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죠.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을 걱정해 이주한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필리핀 여성과 결혼한 일본 남성이 많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의 거품경제가 급격히 꺼지면서 일본인의 해외여행 역시 함께 감소했고, 동시에 해외여행을 대체하는, 필리핀 여성을 고용한 ‘필리핀 술집(フィリピンパブ)’이 전국적으로 성행하게 된다. 이 유행이 가장 왕성했던 2004년에는 공연 등의 목적으로 입국을 허가하는 흥행(興行) 비자로 일본에 입국한 필리핀 여성이 8만 명에 달했다. 이런 술집은 젊은 여성이 부족한 지방에서도 성행했고, 자연스레 수많은 국제결혼으로 이어졌다.
연금에 의존한 생활, 희망 줄어
그렇다면 필리핀은 일본인에게 이상적인 노후 주거지였을까? 그는 “꼭 그렇지는 않다”라고 말한다.
“일부는 저렴한 가격으로 매일 골프를 즐기고, 친구들과 느긋하게 술을 마시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언어에 대한 장벽과 문화적인 격차, 생활시설의 부족 등을 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죠. 아내와 아내의 가족들로 인한 문제, 생활비 부족 등도 그들이 힘들어하는 주요 문제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본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필리핀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확률은 50대 5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미즈타니 다케히데는 “해외이주만이 노후 생활의 정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책을 쓴 목적도 해외의 삶을 권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고령화 사회입니다. 일부는 연금만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죠. 특히 일본 정부의 ‘2000만 엔 노후 자금 필요’ 발표 이후에 이들은 희망을 잃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것은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해외이주 역시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노후에 중요한 것은 '가족'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노후를 위한 이상적인 삶의 터전은 무엇일까? 그는 중요한 요소로 ‘가족’을 꼽았다.
“대부분 노후 준비의 요소로 돈을 꼽을 텐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죠. 가족 간의 유대가 긴밀하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겠죠. 고령화된 일본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가족의 유대감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고령자들의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만약 가족과 함께였다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노인을 위한 생활시설이나 요양시설의 문제점 중 하나도 그들이 느끼는 쓸쓸함을 어쩌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결국, 노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입니다.”
미끄럼틀, 그네, 모래밭, 뛰어노는 아이들. 우리 사회에서 놀이터는 어린이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통념을 깬 놀이터가 있다. 시니어도 편히 쉬고, 놀고, 배울 수 있는 ‘쌈지놀이터’를 소개한다.
서울 강동구는 경로당과 복지관 등 노인 여가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시니어를 위해 ‘쌈지놀이터’를 운영한다. 시니어가 주로 모이는 공터, 거리 벤치 등의 공간에 추가로 등받이 의자, 햇빛가리개 등을 설치해 편히 쉴 수 있도록 조성한 것이다. 쌈지놀이터는 야외 쉼터로 상시 열려 있지만, 동절기와 혹서기에는 운영하지 않거나 주변 유휴 공간을 활용해 유동적으로 운영한다. 2016년 6월 쌈지놀이터 1·2·3호를 먼저 시범 운영한 뒤 2019년 4월, 13호까지 개소했다.
놀면서 배우자!
쌈지놀이터는 단순히 쉼터 역할만 하는 공간은 아니다. 만 60세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열린프로그램’도 진행하는 등 시니어 배움터로도 활용한다. 열린프로그램은 관내 복지관과 연계해 월 1~2회, 주로 시니어가 많이 모이는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진행한다. 미술심리치료, 웃음건강체조, 치매예방, 노래교실, 건강·심리·복지·법률 상담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또 시니어가 직접 쌈지놀이터 관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어르신마을활동가’도 양성한다. 어르신마을활동가는 놀이터당 10명 내외로 쌈지놀이터의 환경 정화와 함께 노숙인, 비행 청소년의 상습 이용 방지를 위해 활동한다.
앞으로 쌈지놀이터는…
2019년에 개관한 쌈지놀이터 10·11·12·13호는 어린이 놀이터에 있는 정자를 재정비해 쉼터를 조성했다. 시니어와 어린이가 함께 시설을 이용함으로써 1·3세대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한 어울마당이다. 앞으로 열린프로그램도 시니어와 어린이, 모두의 눈높이에 맞는 활동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또 올해 조성된 신규 4개소와 2018년에 개소한 쌈지놀이터 6호는 ‘기억키움 쉼터’로도 활용된다. 기존 쌈지놀이터처럼 휴식 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어르신들의 치매예방을 위한 교육, 뇌기능 활성화 및 근력저하 예방운동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차량이 다니는 좁은 골목에 위치한 쌈지놀이터 1호와 4호는 사고 발생 우려가 있어 열린프로그램은 운영하지 않는다.
자격증에 관심을 두는 중장년이 늘어났다.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의 도구로 자격증을 취득하듯, 시니어 역시 재취업을 위한 발판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노소를 떠나 무분별한 자격증 취득은 시간, 돈 낭비에 그치기도 한다. 2019년 등록된 자격증 수는 3만2000여 개. 관심 있는 자격증 정보를 선별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고민인 중장년을 위해 자격증을 분야별로 나눠 알아보려 한다. 이번 호에는 ‘노인복지·돌봄’ 분야를 소개한다.
자료 제공 및 도움말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건강한 노인이 요양 단계의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老老-care) 또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자원봉사 등에 관심을 갖는 중장년이 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위해 준비할 만한 자격증으로는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이 대표적이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준비하는 자격증이기 때문에 취득 후 활동으로 이어졌을 때 얻는 보람이 큰 분야다. 실제 ‘2018년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만족도 및 인식도 조사결과’에서도 요양보호사 세부 직무 만족도에 대한 물음에 ‘사회발전 기여’(89.0%)와 ‘보람 및 자긍심’(87.7%) 항목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대체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인지장애 노인을 상대해야 하므로 체력은 물론 정신건강 관리도 중요하다.
PART1. 국가자격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는 국가자격증에 속하며, 관련 학점을 이수하거나 실습시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취득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단, 두 가지를 모두 따려면 ‘사회복지사’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공인된 교육기관에서 교육과정 이수 후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개인의 이력에 따라 교육시간이 상이하다. 관련 국가자격증(간호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간호조무사 등)이나 경력(재가노인복지시설, 간병요양기관 등 관련 종사 경험 1년 이상)이 없는 경우 이론, 실기, 실습과정을 합해 총 240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라면 이수과정이 총 50시간으로 대폭 줄어든다.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를 모두 준비할 때는 시간 절감 차원에서 사회복지사를 먼저 취득하는 것이 요령이다. 이러한 이점 때문에 사회복지사를 따고 난 뒤 요양보호사까지 도전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한 가지 염두에 둘 점은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다 자칫 둘 다 놓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즉 요양보호사 취득만을 원한다면 애써 사회복지사를 준비하기보다는 관련 경력을 쌓거나 수업을 모두 이수하는 편이 낫다.
사회복지사 자격 등급은 본래 1, 2, 3급으로 나뉘었으나 2017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는 3급 자격이 폐지됐다(기존 취득자는 사용 가능). 1급은 ‘사회복지사 1급 국가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2급은 대학원, 대학교, 전문대학 졸업자로 일정 과목을 이수한 경우 취득 가능하다. 관련 학위가 없다면 학점은행제를 통해 해당 과목을 이수하거나 양성교육과정 수료를 통해 대체할 수 있다. 2급에 해당하는 요건을 만족해야 1급 국가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주어진다. 따라서 사회복지 분야 전공자가 아니라면 학점이수 조건을 채우고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몇 년은 투자할 각오를 해야 한다. 지난해 사회복지사 시험 현황을 살펴보면 50대(24.3%)와 60대 이상(19.8%) 응시자의 합격률이 절대적으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30대(23.6%)와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낮지 않은 상황이다. 시험 자체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비해 요양보호사 시험은 합격이 수월한 편이다. 지난해 시험 응시자 수(9만8369명)와 합격자 수(8만6662명)가 가장 많은 50·60대의 합격률은 88.1%로 나타났다. 눈여겨볼 점은 70대 이상 응시자 현황이다. 젊은 세대는 주로 취업 준비 등을 목표로 자격증을 따지만, 중장년 세대는 부모, 배우자 등 환자인 가족을 돌보기 위해 취득하는 이가 많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가 장기요양보험 1~5등급에 해당하는 가족을 수발하고 있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요양보호사’의 경우 실제 돌봄 시간과 관계없이 하루 1시간, 월 20일을 인정해주며 직장 근로자가 아니라야 가능하다. 요양 대상자의 나이, 질환(치매) 정도 등에 따라 인정 시간 및 환산 금액이 다르다.
요양보호사 직무 만족도는?
‘2018년도 장기요양 제도 만족도 및 인식도 조사결과’(국민건강보험)에서 요양보호사의 직무 만족도 부분을 살펴보면 ‘불만족(매우 불만족)’을 드러내는 이는 10%가 채 되지 않았다. 만족도에 대한 세부 항목에서는 ‘사회발전 기여’(89%)가 가장 높았고, ‘임금 및 수당’(24.7%)이 가장 낮았다.
PART2. 민간자격
노인요양시설이나 데이케어센터 등에서는 노인들의 신체 활동을 돕는 일 외에도 인지기능과 체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촉감놀이나 체조 등의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다면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 외에 추가로 민간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노인두뇌훈련지도사, 실버레크리에이션지도사, 노인미술심리상담사, 실버건강지도사 등 관련 분야의 다양한 민간자격증이 있으며, 비교적 취득 과정도 어렵지 않다.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으로 집에서 생활하기가 어려워서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노인들 곁을 24시간 지켜주는 곳이 있다. 바로 요양원. 지난 3월 오픈한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를 방문해 시니어로서 노후를 어디서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하면서 꼼꼼히 살펴봤다.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는 서울시 송파구 장지동에 위치한 도심형 요양원이다. 지난 3월 8일 오픈한 이 요양원은 최신식 건물에 총 130개의 침상을 갖추고 있다. 오픈한 지 이제 불과 1개월 정도밖에 안 지난 시점에 벌써 60여 명이 입소해 있으며 꾸준하게 입소가 진행중이다.
KB골든라이프케어의 목표는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과 보호자에게 안심과 신뢰와 희망을 주는 데 있다. 요양원 건물 입구로 들어서자 통유리에서 들어오는 자연 채광으로 실내 공간이 밝고 넓고 쾌적해 보여 좋았다. 특히 새로 지은 건물이라서 새집 냄새가 나지는 않을까 염려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건축 자재는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고 실내 공기질 관리까지 염두에 두고 건물을 지었다는 설명을 들으니 더 신뢰가 갔다. 환한 미소로 맞이해준 곽혜련 원장의 안내에 따라 유닛을 돌아봤다. 입소자 어르신들은 민요강사의 프로그램 진행으로 간단한 부채 율동과 창을 따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들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유닛을 살펴볼 때 입소자들의 편의를 고려해 오밀조밀하게 잘 갖춰진 최신식 시설이 마음에 쏙 들었다. 곽혜련 원장은 제일 먼저 인간 중심 케어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다.
“인간 중심 케어 모델이란 첫째, 어르신이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답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함은 물론 자기결정권과 선택권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고 둘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을 구성해 ‘전문적인 케어’ 서비스를 하고 셋째, 입소자 한 분 한 분을 위한 ‘맞춤 케어’ 서비스를 하며 넷째, 최고의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안전하고, 편안하고, 깨끗한 환경을 항상 유지하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각자만의 라이프스타일이 있지만 시설에 입소하면 그곳에서 짜놓은 시간에 맞춰 생활해야 한다. 그러나 KB골든라이프케어는 요양원 시스템에 맞춰 어르신들을 케어하는 게 아니라 입소자 한 분 한 분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돌보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입소자가 늦은 아침시간까지 더 자고 싶을 때는 더 잘 수 있고,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대로 누워 있어도 된다. 또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꾀해 어르신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맞춤형 케어를 실천하고 있다.
내 집 같은 편안한 환경
시설 배치의 콘셉트는 내 집 같은 분위기다. 실내로 들어가자 거실이 눈에 들어왔고 그다음엔 침실이 보였다. 130개의 침상을 8개의 유닛으로 나눈 방에는 희망채, 행복채, 소망채 등 친근감이 드는 이름을 붙였다. 요양보호사는 근무지 변경 없이 유닛별 전담제로 일한다.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요양원은 복도형 침실배치로 병원형 구조로 운영을 하고 있으나 이곳은 소규모 유닛을 만들어 유닛이 집의 개념이 되는 집과 같은 환경을 만들었다. 또한 친환경 소재를 이용하고 베리어프리 설계를 도입했으며, 유니버셜디자인의 가구를 배치했다. 특히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공조시스템을 설치해 실내 공기의 질을 관리하는 것은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간호 및 의료 서비스의 질도 강화해, 간호 인력이 365일 24시간 대기하면서 케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는 3명의 전문가가 어르신의 기능회복 및 유지를 위한 재활치료를 제공하면서 입소자를 돌보고 있으며, 취미 활동 및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복지사가 프로그램 운영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는 구성을 가능한 한 다양하게 짜고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외부 강사를 초빙한다. KB골든라이프케어 빌리지에서는 입소자를 모두 한곳에 모아놓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유닛 별 운영을 함으로써 입소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식단도 어르신의 상태와 식성에 맞춰 짠다. 소위 맞춤형 식사를 제공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입소해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이 같은 식단에 대해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 특히 유닛 내에서 직접 밥을 지어 제공함으로써 마치 내 집에서 밥을 해서 먹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입소자들과의 대화
생활채를 돌아보던 중,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어르신을 만났다. 궁금한 사항들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셨다.
“어르신, 이곳에서의 생활이 어떠신지요?”
“사람들이 친절하고 음식도 정갈해 입맛에 맞는 것은 물론 잠자리도 편해요.”
“혹시 외롭지는 않으세요?”
“솔직히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가까운 곳에 딸이 살고 있어 거의 매일 찾아오니 그다지 외롭지는 않아요.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도 읽을 수 있고 신문도 읽을 수 있으니 이만하면 행복한 것 아닌가요?”
외롭거나 불편한 점이 그래도 한두 가지 있겠지 해서 여쭤봤는데 어르신은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당신 자서전에 사인까지 해서 기어코 한 권을 선물로 내어줘서 감사함을 느끼며 자리를 떴다.
다른 유닛에서는 아내와 함께 입소한 87세의 어르신을 만났다. 시설에서의 생활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또 여쭤봤다. 시설은 좋은데, 입소자들끼리 소통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어르신은 입소한 지 이제 1개월밖에 안 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각 유닛 거실에 마련된 케어 스테이션에는 어르신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요양보호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 한 요양보호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황선복(59세) 요양보호사는 요양원의 방침대로 맞춤형 1대 1 케어를 목표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분들의 근무 여건은 어떠신지요?”
“업무가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봉사정신과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근무 환경은 좋은 편이에요. KB골든라이프케어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타 요양원에 비해 근무 환경이 한결 좋습니다.”
지역 주민 위한 커뮤니티센터 운영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는 준공 과정에서 일어난 주민들과의 마찰을 풀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좀 더 활용도 높은 복지공간으로 쓰이길 바라는 주민들의 욕구와 충돌한 것이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지역 사회와 상생하기 위해 주민들과 협의했고, 그 결과로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 1층에 지역 사회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센터를 마련했다. 넓고 채광이 좋은 커뮤니티센터는 앞으로 지역 사회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모임, 프로그램 활동, 강의, 행사 공간 등 다양한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커뮤니티센터 옆으로는 데이케어센터가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데이케어센터는 4월 30일 개소를 한다는 소식이다. 데이케어센터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야간 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다.
안심하고 가족을 맡길 수 있는 곳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는다. 가족이 돌볼 상황이 안 되면 결국 시설로 들어가야 한다. KB 골든라이프케어 위례 빌리지는 도심형 요양시설이다. 요양원이 자신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외딴곳에 위치해 있으면, 가뜩이나 가족과 떨어져야 있어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 하는 입소자들이 더 고립감이 들 수밖에 없다. 도심형 요양시설의 장점은 입소자들이 마치 마을회관으로 마실 가듯 가까운 곳에서 지낼 수 있어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고, 가족들도 입소자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한걸음에 달려와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넓은 통유리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행복해하는 입소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자도 요양원으로 들어갈 시기를 짐작해봤다.
자전거를 타거나 혹은 트랙 위를 걷는 사람들. 작은 호수를 돌며 오순도순 얘기 나누는 모습이 정겨운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의 보라매공원. 이들 사이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 파고라가 보이는데 안에서는 큰 부대(?)를 이뤄 시니어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1년, 열두 달, 365일.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게 모이는 곳. 장기판이 그럴싸하게 탁자 위에 놓여있고 밤에 불도 켜지면서 장기 성지로써의 모습을 갖췄다. 유유자적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사)대한장기연맹 경기운영부위원장이자 보라매공원 장기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는 오만성 씨. 그를 만나 시니어의 아지트가 된 보라매공원에 대해서 들어봤다.
Q. 보라매공원에는 언제부터 장기를 두는 사람들이 많았나?
A. 공군사관학교가 충청북도 청원군으로 이사하고 1986년 봄, 그 자리에 보라매공원이 생겼다. 현재 장기 두는 장소가 입구에서 비교적 가깝고 외져서 사람들이 모인 것 같다. 공원이 들어서고 나서부터 장기판을 들고 한, 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벤치에서 매일 같이 장기를 두다보니 “여기에 오면 장기를 둘 수 있구나” 하면서 어쩌다가 형성됐다. 이곳에는 30년 전부터 나와서 장기 두는 고참이 10명 정도 있고 최하 10년 이상 된 분들이다.
Q. 언제부터 지금처럼 장기 두기 좋은 장소로 변모했는가?
A. 거의 30년 동안 파고라 안에 벤치 6개만 있었다. 그 자리가 좁으니 돗자리도 깔고 장기를 두는 처지였다. 나 혼자서 공원 관리사무실에 방문해 장기를 둘 수 있게 시설을 보강해 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처음에는 들어주지 않았다.(웃음) 그럼 의자가 너무 노후 됐으니 바꿔달라고 했다. 3년 전부터 조금씩 바꿔가기 시작해 작년 말, 완벽하게 파고라 안이 장기를 둘 수 있는 공간이 됐다. 탁자는 특수하게 기원처럼 높낮이를 맞춰서 설계하고 장기판을 고정했다.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을 위해 한 곳은 의자를 놓아두지 않았다. 장기동호회도 만들었다. 조금씩 회비를 모아서 장기판과 알도 넉넉하게 구비해 두었다. 커피도 마시고 친교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Q. 장기는 전통놀이인가, 아니면 스포츠인가?
A. 장기는 브레인 스포츠이다. 우리나라의 장기 역사가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데 시니어들이 즐기는 전통놀이로만 알지 스포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니어들과 장애인들이 즐기기 좋은 브레인 스포츠가 장기 아닌가. 우리는 육체적으로 땀 흘리는 운동을 못 한다. 머리를 계속 쓰는 스포츠를 통해서 정신을 맑게 하고 치매도 예방하는 좋은 점이 있다. 젊은 사람들은 장기를 노인들의 놀이로만 생각한다. 장기 대회가 열리면 젊은 기사도 많고 여자 기사도 있다. 편견이 심한 것이 아쉽다. 2년 전 장기와 체스 전문 채널인 브레인TV가 채널 이용 인구조사를 했는데 당시 한 1천만 명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장기에도 그만큼 팬이있다는 뜻이다.
Q. 바람이 있다면?
보라매공원 안에 브레인스포츠센터 건립을 했으면 한다. 공원 측에서 지금도 부분을 신경 써주신다. 겨울철에는 장기를 두는 시니어를 위해서 파고라에 비닐 천막도 씌워준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추운 겨울나기가 쉽지 않다. 멀리서 보면 양계장 같다는 사람도 있다.(웃음) 정말 매일 이곳에 사람들이 모인다. 갈 곳은 없고 취미가 장기인 시니어가 인천, 분당 등 멀리서도 온다. 천막을 치지 말고 접이식 창문으로 해달라며 관리사무실에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뚝딱하고 쉽게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냥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꾸준히 찾아가서 얘기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세대를 위해 공원이 존재한다. 그것이 공원의 기능이다. 장기를 두는 우리들도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이다. 반려견을 위한 공간을 포함해 체육시설이 12개 정도다. 30년 넘게 한자리에서 장기를 두는 시니어를 위해 시설을 좀 더 갖추면 좋지 않을까.
모든 분야에는 기존의 길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보통 이들을 우리는 개척자라고 부르는데 국내의 요양시설에도 이런 개척자는 존재한다. 너싱홈그린힐도 그중 하나. 국내에서 간호사가 설립한 노인의료복지시설 중 1세대다. 정책에 따라 움직여왔다기보다 제도를 이끌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게 느껴질 정도. 너싱홈그린힐을 찾아 노인요양시설의 덕목은 무엇이고, 소비자들이 요양원을 선택할 때 어떤 부분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소비자들에겐 너싱홈이란 단어가 생소할 수 있다. 너싱홈(nursing home)은 치매나 중풍 등의 만성질환을 앓아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노인을 돌보는 장기요양기관 중 간호사에 의해 설립되거나 운영되는 기관을 말한다. 국내에선 낯선 개념일 수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외에선 가정집을 개조해 ‘집에서 어른을 모시듯’ 운영되는 소규모 시설도 흔하다.
영국의 너싱홈에서 영감 얻어
너싱홈그린힐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요양원으로 건물을 둘러싼 정원이 인상적이다. 원래는 인근의 가정집을 개조한 작은 규모였지만 이곳으로 옮겨와 증축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65병상 규모가 됐다. 일하는 직원만 130여 명.
너싱홈그린힐의 조혜숙 원장은 1992년 영국 여행 중 현지의 너싱홈을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해보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고 말한다.
“1992년 영국으로 여행을 갔는데, 작고 아름다운 소도시 사이사이에 너싱홈들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생각도 못했던 시설이라 기웃거리기만 했는데, 정원에서 쉬고 계시는 어르신들 표정이 너무나 편안해 보이더라고요. 그 무렵 국내 요양시설은 ‘고려장’이라는 모욕까지 받고 있었으니 완전히 대비되는 광경이었죠. 간호사 입장에서 국내에도 내 부모님을 모실 만한 이런 시설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2년 말 노인의료복지시설장 자격에 대한 법률이 완화되면서 국내에서도 너싱홈 설립의 문호가 개방됐고, 이미 실무를 익히며 창업을 준비 중이었던 조 원장은 다음 해 너싱홈그린힐을 설립한다. 그리고 1세대로서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다른 시설과 함께 활약을 시작한다.
너싱홈그린힐이 국내 의료계에서 하나의 모델로 자리 잡은 데에는 조 원장의 논문이 단초가 됐다. 2000년 창업과 함께 진학한 고려대학교 간호대학 박사과정에서 발표한 논문 ‘한국 노인간호요양시설의 질 관리 지표 개발’이 그것.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제도 시행을 준비하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 논문을 주목하고 평가지표 도구개발 위원으로 조 원장을 위촉했다. 조 원장이 국내 요양시설의 모델 개발 과정에서 투영한 이상향이 너싱홈그린힐이라는 결과물로 완성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너싱홈그린힐은 장기요양시설 평가가 시작된 이래 5회 연속 A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너싱홈그린힐의 특징 중 하나는 시설 곳곳에 가득한 꽃과 나무다. 정원만
7가지 종류가 있다. 한 관계자는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 대부분이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 함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하면서 “소파나 식탁, 침대를 가능한 한 가정에서 많이 쓰는 목재 제품으로 구성하고, 화초를 많이 키우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배려와 애정 때문인지 이곳의 최장수 어르신은 104세이고, 18년 동안 이 시설을 떠나지 않고 지내는 있는 이도 있다.
용도에 따른 정원이 시설 곳곳에
시설의 내실이나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외형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자녀들이 부모를 시설에 모셨다는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 중 하나다. 물론 너싱홈그린힐의 공간 구성에는 외적인 요소만 고려된 것은 아니다. 입소자와 가족의 동선, 안전 등을 생각해 공간을 구성했다. 정원만 해도 면회를 위한 정원과 치료정원, 산책을 위한 정원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내부 시설은 이제는 표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유니트 케어 시스템이 도입되어 있다. 일정 공간 안에서 입소자의 생활이나 치료, 활동이 가능한 구조다. 정원이 65명인 너싱홈그린힐에는 다섯 곳의 거실과 식당이 침실 사이에 존재한다. 평범한 가정에서 식구들이 보통 생활하는 공간이 각자의 방보다 거실이 되는 것처럼, 일정 인원마다 거실과 식당이 마련되어 있어 침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
식사도 치료 과정의 일환
대규모 프로그램실 역시 입소자의 동적인 활동을 유도하는 공간으로 쓰인다. 학교 강당 같은 이곳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수업이나 놀이는 인지장애 개선 효과뿐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가는 재미까지 부여한다. 오전에 나와 오후 프로그램을 마칠 때까지 침실 밖에서 지내고, 하루 세끼를 침실 밖에서 먹는다. ‘눕혀놓는’ 열악한 시설들과는 삶의 질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너싱홈그린힐이 갖는 또 하나의 경쟁력에 대해서 직원들은 바로 자신들이라고 평가한다. 한 관계자는 “일했던 다른 시설에 비교하면 입소자당 근무자 수가 월등히 많아 어르신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큰 경쟁력”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런 환경이 어르신들의 다양한 요구에 모두 응대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주고 결국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너싱홈그린힐의 인력 구성에는 조 원장의 철학이 녹아 있다. “인력이 부족하면 식사도 침상에서 하게 하고, 제공하는 서비스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침상에서 내려와 거실에서 생활하는 것도 재활입니다. 경영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지만 어르신들의 재활과 서비스를 위해 인력을 충분히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력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노인전문간호사와 호스피스전문간호사 등 숙련된 인력들이 함께 움직인다. 요양보호사와 입소자들 사이에서 젊은 직원들도 눈에 띄는데, 바로 간호대학 실습생들. 너싱홈그린힐이 전국 주요 간호대학의 실습기관으로 지정돼 입소자들이 어떻게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실습생들이 직접 경험하면서 눈으로 확인한다.
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요양원에 비해 비용은 높은 편. 장기요양등급과 관계없이 부담하게 되는 자기부담비용이 4인실은 월 105만 원, 2인실은 135만 원 수준이다 .
플로렌스 너싱홈은 2014년 설립됐다. 2008년부터 운영되던 요양원을 이예선 원장이 인수하면서 지금의 플로렌스 너싱홈이 됐다. 단층 건물을 2015년 증축해 규모가 커졌다.
명칭을 너싱홈(Nursing Home)으로 부르는 이유는 이예선(李禮先·57) 원장이 간호사이기 때문이다. 이예선 원장은 한양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노인 및 치매 전공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김혜연 부원장은 중앙대학교 간호학과를 나와 노인전문 간호사 자격도 취득했다. 이 원장과는 모녀 사이다. 너싱홈은 미국을 중심으로 보편화한 노인보호시설의 형태로 간호사가 중심이 돼 재택간호를 한다는 개념이다. 국내에도 이러한 너싱홈은 전국에 200여 곳이 운영 중이다.
이 원장은 대학원 시절 보건복지부의 준 연구 용역에 참여해 전국의 치매 관련 시설 실태 조사에 나선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플로렌스 너싱홈을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이 원장은 말한다.
“좋은 시설, 큰 시설을 많이 다니다 보니, 어떤 것이 장점이고,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됐죠. 그러다 플로렌스 너싱홈의 전신이었던 요양원 원장님에게 상담 요청이 와서 이런저런 조언을 하다 아예 제가 인수하게 됐어요.”
그렇다고 학술활동을 멈춘 것은 아니다. 현재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시설 근무자나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치매전문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
“시아버지를 치매로 잃었는데요, 마지막에 여러 사정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아버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평생을 피부과 전문의로 당당히 사셨는데, 그 눈빛에 평소와 완전히 다른 애절함이 담겨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요양원을 운영해보자는 각오를 갖도록 한 것 같아요.”
이론적 지식이나 설립 전 경험은 고스란히 플로렌스 너싱홈에 녹아들었다. 산책 가능한 정원을 확보하고, 어르신의 안전을 위해 배회로를 어떻게 구성하는가 하는 것들이다. 충분한 환기가 어려울 때 공기청정기로 대신하는 현실적인 타협도 이론을 통해 정립됐다. 요양원을 운영하다 가장 속상할 때는 터무니없는 오해와 편견에 부딪혔을 때라고 이 원장은 말한다.
“어느 어르신 가족이 제게 그러더라고요. 여기는 몇 시에 약(수면제) 먹여 재우냐고 말이죠. 또 재울 때 묶느냐고 무심히 말하던 가족도 있어요. 요양원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수면관리를 위해 낮에 활동량을 높이고 라이트 테라피 같은 비약물 요법도 활용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폐렴 위험이 있어 콧줄(비위관)을 통해 영양공급을 해야 할 때 한 손 정도 구속할 때가 있는데 이때도 가족들 동의가 있어야 해요.”
요양원을 운영하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냐고 물으니 “늘 마지막인 듯 대해드린다”고 말한다.
“어르신의 영면을 접하는 일이 무뎌지지 않아요. 계속 마음 한쪽이 아려옵니다. 그래서 직원들과 늘 다짐해요. 할 수 있을 때 하자, 늘 마지막인 듯 최선을 다하자고 말이죠.”
노후를 어디서 보낼 것인가. 죽기 전까지 어디서 살 것인가는 시니어의 마음 한쪽을 무겁게 만드는,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주제다. 특히 치매나 중풍 같은 질환으로 몸을 가눌 수 없게 되면 더욱 문제다. 한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인보호)시설은 죽음을 기다리는 시설에 불과하다”고 단정 지을 정도다. 안타깝게도 일반 사회적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후를 맡길,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은 없는 것일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새 연재는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첫 번째 주자가 된 플로렌스 너싱홈의 문을 두드렸다.
자유로를 따라 파주시 탄현면을 찾아 달린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러 두 번이나 왕복한 길이다. 웬만해선 붐비지 않는 그 길을 따라 서울에서 30분 정도 달려가면 ‘대동리’라 쓰인 출구가 나온다. 달랑 대동리라고만 쓰인 표지판이 다소 생경하다. 거기서부터 중앙선도 없는 국도를 5분 정도 달리면 드디어 플로렌스 너싱홈이 나타난다.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설계된 구조
요양원을 둘러보니 구조가 독특하다. 병실과 식당, 공용시설 등 용도별로 구분되어 있는 병원과는 다르게 어느 곳을 봐도 거실 모양을 한 공간이 눈에 띈다. 사방이 비슷한 풍경이다. 이예선 원장은 유니트(Unit) 단위로 조성된 설계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해외 너싱홈도 이렇게 유니트 개념을 도입한 곳이 많아요. 1개 유니트에 11~12명 정도가 머무는데요, 어르신들의 침실과 함께 거실과 화장실, 목욕탕이 세트로 구성돼 있습니다. 작은 한 집에서 소수의 어르신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며 거주하게 되는 것이고, 이런 작은 집 여러 개를 합친 전체 시설을 운영하는 개념이죠.”
단일 유니트에는 전담 요양보호사들이 배치돼 함께 생활하고, 각 유니트는 성별이나 질환 종류, 개인별 성향 등이 고려돼 환자들이 배정된다. 혈관성 치매 환자들은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장기요양보험 4~5등급 정도의 가벼운 치매 환자들은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할 수 있을 만큼 일상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구성된 플로렌스 너싱홈의 정원은 총 49명. 2015년 증축 결과 설치 허가 면적 기준으로만 계산하면 56명까지 인가가 가능했지만, 동선이나 생활의 편의성 등을 위해 정원을 축소했다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삶의 끝이 아닌 연장으로
플로렌스 너싱홈이 지향하는 환자들의 생활은 ‘그동안 살아온 삶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정의된다. 각자 인생을 살면서 갖게 된 기호나 취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노력한다. 이를 위해 개개인에게 맞는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자녀에게도 숨겨온 ‘까막눈’을 고치고 싶어 하는 환자에게는 글쓰기나 산수 숙제를 내어주기도 하고, 마비된 모습을 남에게 숨기고 싶은 어르신에겐 태블릿 PC를 통해 침실에서 할 수 있는 전래동화 보기 같은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평생 가사를 해온 사람이 많기에 요리 재료를 다듬고 있으면 잔소리하는 어르신도 많다. “예전 기억이 되살아나 손질법을 알려주시기도 한다”고 전담 영양사는 웃으며 얘기한다. 매번 어르신들의 손을 빌리면 노동으로 비춰질 수 있어 계절별로 날짜를 잡아 실컷 만져보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김장 속을 버무리거나, 잔뜩 받아온 콩을 다 같이 둘러앉아 손질하는 식이다.
이외에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수시로 운영된다. 실버체조나 레크리에이션이 운영되기도 하고 분기별로는 가까운 관광지에 나들이를 가거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한다.
종교 역시 ‘살아온 삶’의 범주에 들어간다. 인근 종교 시설에서 찾아와 어르신들을 위한 예배나 미사를 시설 내에서 진행하기도 한다. 또 주변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찾아오는 봉사활동도 플로렌스 너싱홈의 주요 이벤트 중 하나다. 관계자는 “지나친 포교 목적이 아니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말한다.
환자 건강 위해 농장도 운영
음식은 환자들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변화가 많지 않은 생활이다 보니, 식사가 오락 중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플로렌스 너싱홈이 자랑하는 부분 중 하나가 여기 있다. 바로 식재료에 관한 것. 플로렌스 너싱홈은 신선한 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인근 지역에 자체 농장을 마련했다. 원하는 농작물을 직접 재배하고,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쓰는 식이다.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가 많다 보니, 주변 농가에서 농작물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있다. “필요하면 언제든 뽑아가라”는 농민들도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음식을 만들고 나서 대접하는 데도 원칙이 있다. 반드시 어떤 음식을 드시고 있는지 원형을 보여드리고 그 자리에서 먹기 좋게 요양보호사가 잘라주며 식사를 돕는다.
“예전에 어떤 곳에서 아예 음식을 모두 갈아 내오는 경우를 봤어요. 아무리 환자에게 유동식이 좋다지만 섭식이 가능한 어르신들에게는 어떤 음식을 드시고 계시는지, 무슨 맛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리한 그대로의 음식을을 식탁에 올립니다.”
환자의 건강을 위해 명지병원과 촉탁계약을 맺고, 물리치료실도 별도로 운영 중이다. 물리치료실 방문을 나들이 삼아 즐기는 어르신들에게는 단골 놀이 장소다. 몸이 불편한 환자에게는 물리치료사가 직접 찾아간다. 이러한 맞춤형 환자 관리는 운영 전반에 적용된다. 이곳에서 요양보호사들과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간호사 모두가 매일 아침 환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효과가 좋았던 방법들도 공유한다.
이런 운영 방식에 대해 이 원장은 “1000명의 어르신이 계시면 1000가지의 방법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불편함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일이나 여러 증상에 대한 대응은 환자마다의 특징이나 삶의 배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풀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배회를 하시거나 용변을 만지거나 소변 냄새가 심한 분은 모두 원인이 있어요. 배회와 용변을 만지는 원인을 찾아내야 해요. 소변 냄새로 수분섭취량을 감지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저희의 일입니다.”
이 원장은 환자 가족들을 위한 조언으로 “그래도 가족만 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가족과 떨어져 살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가능하면 자주 면회 오시는 것이 좋아요.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요. 대부분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서 견디다 오시잖아요. 어쩔 수 없이 맡기셨다 해도, 엄마 표정이 편해졌다, 건강해졌다는 말 해주실 때가 가장 보람 있어요.”
요양병원과 요양원 뭐가 다를까?
법적으로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완전히 다른 개념의 기관이다. 따르는 법도 다르다. 요양병원은 의료법을, 요양원은 노인복지법을 따른다. 적용보험도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구분돼 재원도 다르다. 요양병원은 의료인이 설립하고 상주해야 하는 반면, 요양원은 의료인이 아니어도 설립 가능하다. 요양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대상은 만성질환자 혹은 회복이 필요한 대상으로, 치매 등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요양원과 구분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이런 시설의 주요 수요자인 치매 환자의 경우 대부분 만성질환을 갖고 있어 조건을 모두 충족해, 양쪽 중 선택해 갈 수 있다. 현장에서 “결국 가족이 기관을 선택하는 조건은 가격과 입지”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요양병원은 보험으로 식비 지원이 되지만 간병비 부담이 큰 반면, 요양원은 요양비를 80~90% 보험으로 지원받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월 비용은 요양병원이 다소 높다. 요양원마다 가격 차이가 있는 것은 대부분 식비와 비급여 항목 때문이다.
이예선 원장의 요양원 선택법 "부모님 모실 때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치매실태조사를 위해 전국의 요양병원, 요양원을 다녀본 이예선 원장의 요양원 선택법은 두 가지.
1 직원의 표정을 살펴라 안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 직원을 살펴보면 그 기관의 분위기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너무 조용하거나 딱딱하면 사무적으로 대할 가능성이 높다.
2 냄새를 맡아보자 청결 기준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냄새로 확인하는 것이 확실하다. 악취가 나지 않으려면 청소도 자주 해야 하고 환기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역한 냄새 없이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청결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