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9월의 책
- 도서명: 진화한 마음
- 지은이: 전중환
- 출판사: 휴머니스트
왜 연인과 헤어진 후 남자는 ‘같이 못 잔 것’을 더 후회하고, 여자는 ‘같이 잔 것’을 더 후회할까? 가을이 되면 마음이 허전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인연 중에서 ‘친구’를 더 챙기는 이유는?
이 책은 위와 같이 인간이 행동할 때 선택의 기준이 되는 ‘마음’에 대해 분석한 심리학 이야기다.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고 여겼던 ‘마음’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게끔 설계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기 위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진화’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했다.
그렇다고 진화심리학에 대한 입문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토대와 최신 연구 동향에 대해 주로 우리 주변의 상황을 사례로 들어 소개하고 있다. 생존, 짝짓기, 혈연, 집단생활, 폭력, 문화, 학습, 성격, 도덕, 정치, 정신장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진화의 관점에서 쉬우면서도 색다르게 설명한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진화심리학이 학문으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이어서 윌슨의 ‘사회생물학’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한다. 이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 근원을 찾아간다. 모든 동물의 행동을 ‘유전자의 눈’ 관점에서 연구하는 사회생물학, 행동생태학 중에서 인간에 적용한 학문이 ‘진화 사회과학’이고, 이 ‘진화 사회과학’ 중 인간의 진화된 심리 기제를 강조하는 접근법이 ‘진화 심리학’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의 핵심을 “마음은 인류가 진화한 먼 과거의 환경에서 조상들이 직면했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심리 지제들의 묶음이다”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선택이 바로 유전자다. 마음의 복잡한 구조를 진화의 시각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다.
얼마 안 된 짧은 시간이지만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과학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과정에서 많은 오해가 있었다고 한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오해와 부정을 불식하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큰 노력을 기울인다.
이 책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에 대한 이해와 통제를 위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학문과의 접촉이라는 의미 외에 자신과 외부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길을 알게 해준다.
▶ 책 읽은 소감: 심리학은 왜 어려울까? 가장 큰 이유는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 옳고 그름의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새로운 관점에 대한 당위성과 주장을 반복적으로 한다.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례 언급은 많았으나 명쾌한 결론이 없어 아쉬웠다. 그런데도 융이나 프로이트가 중심인 기존 심리학의 범주를 깨트리는 새로운 발상이 흥미로웠다. 최근의 학문 트렌드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 평점: 3.8 (5점 만점)
▶ 생각해보기
- 작가는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며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반박했습니다. 유전학, 진화생물학, 행동생태학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론이 문학비평, 문화이론, 정신분석학 등에서는 핵심적인 이론으로 대접받고 있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했는데요. 이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p.177)
- 진화심리학자들은 마음을 공학처럼 연구해 마음이 어떻게 진화된 설계인지 가설을 세운 후, 마음이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한 설계상 특질에 대해 추론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새롭고 검증 가능한 예측을 끌어낸 후 그 예측을 실제로 검증하면서 새로운 발견에 이른다고 진화심리학은 이야기하는데요. 이런 진화심리학의 과학적 접근법이 과연 학문의 진보인지, 사이비 과학의 그럴듯한 주장인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p.48)
- 저자는 ‘혐오와 편견’에 대해 말하면서 전혀 전염병을 옮길 가능성이 없는 이들에 대해서도 편견이 쏟아지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화재경보기 원리’(smoke-detector principle)가 적용되는 경우라고 이야기합니다. 저자가 편견의 예로 든 노인, 장애인, 비만 외에 ‘화재경보기 원리’가 적용되는, 우리가 주의해야 할 편견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p.89)
- 샐러 팀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외부 자극을 주어 무의식적인 믿음을 심어주면 잠재적 혐오 유발 요인에 대한 혐오 반응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 경우 과잉 반응뿐만 아니라 외부 자극도 왜곡된 사실이었는데요. 현대사회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는 ‘가짜뉴스’ 와 편향적인 매스미디어의 콘텐츠라 할 수 있습니다. 혼돈의 시대에 가능한 한 객관적인 가치관과 의견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개인과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p.92)
- 저자는 책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보이는 인간행동들의 이유(진화한 마음)는 어쩌다 우연히 행동한 대응으로 번식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p.380). 진화심리학은 원래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는 주장으로 어떤 현상을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진화한 이유를 찾아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학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오는 “지구에서 오직 인간만이 이기적인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해석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진화적 시각은 인간 본성을 한 발 떨어져서 차분히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얼마든지 본성을 거역할 수 있다.” 이런 저자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시나요? (pp.382~383)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을 떠도는 여행만큼 즐거운 게 다시 있을까. 생활의 굴레에서 해방된 자유로움. 모처럼 내숭이 없는 마음으로 풍경과 풍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의 관대함. 도취할 수밖에 없는 우연한 이벤트들과의 만남. 다채로운 비일상적 낭만의 향유와 감성 충전이 가능한 게 여행이다. 그러기에 흔히들 지친 ‘나’를 위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여행을 즐긴다. ‘스리랑카주의자’ 고선정(48)은 좀 다르다. 그는 여행으로 삶을 통째 뒤집었다. 종전의 관습을 획기적으로 바꾸었으니 반전이자 반역(?)이다.
신간들을 살펴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 특이한 제목을 단 여행서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스리랑카주의자입니다”라는 책. 스리랑카라는 나라를 좋아하기를 참을 수 없는 사람이 쓴 책임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스리랑카에 관한 한 고수임을 알리고, 풀만 먹기로 작정한 채식주의자처럼 스리랑카를 메뉴로 섭취해 삶과 정신을 살찌우겠다는 의도를 덩달아 밝힌 셈이다. 평소 제목에서 갖는 호감만으로 책을 충동 구매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이 점에서도 이 책의 네이밍은 꽤 근사하다. 부실한 내용을 담은 채 오직 호객을 위한 기술적 작명에 그쳤을 경우엔 노련한 독자들의 한숨을 자아내겠지만 ‘조금 특별한 여행기’임을 자처하는 이 책의 내용은 비교적 충실하다.
저자 고선정은 3년여 간 스리랑카를 집중적으로 드나들며 체험한 명소와 유적, 그리고 사람들에 관한 추억을 기반으로 책을 써나갔다. 자료와 정보의 수집에도 공을 들인 기색이 완연하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책엔 스리랑카의 역사와 종교, 문화와 환경 등등에 관한 인문적 정보들이 빼곡하다. 재미있는 건 여행 중에 만난 스리랑카 사람들이 보여준 정겹고 미더운 모습을 담은 에피소드들. 이는 건조한 문체와 평면적 묘사로 일관해 다소 밋밋한 맛을 풍기는 이 책에 고소하게 뿌려진 양념에 속한다. 스리랑카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겐 요긴한 가이드북이 될 테다. 매체의 서평 담당자들이 딱히 이 책을 지목했다는 흔적은 별로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건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저자의 인생이 확 변했기 때문이다.
“책을 내고서 드디어 인생의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 뒤 나는 25년간 수능학원 강사로 살아왔다.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휴일이나 명절에도 쉬지 못한 채 정말 바쁘게 살았다. 벗어나야지, 달아나야지 하면서도 얽매인 세월이었다. 항상 경제적인 측면을 중시하며 기관차처럼 달려온 날들이었거든. 책 출간을 계기로 이 지루한 단순반복에서 탈출, 인생 2막을 새로 시작하게 됐다.”
학원 강사에서 여행 작가로 변신한 셈이구나.
“요즘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국문학을 전공한 나에게 글쓰기는 오랜 꿈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꾸깃꾸깃해진 꿈이었다. 그 낡아가는 꿈을 스리랑카 여행을 계기로 복원할 수 있었지. 이제부터라도 좋은 글,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고 있다. 돈이 안 되는 일일지라도 열정을 불태워보겠다는 생각이다.”
심각한 글쓰기는 방울방울 피를 뿜는 고행에 가깝다. 학원 강사보다 지겨울 수 있는 게 문학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실로 힘든 일이라는 걸 왜 모르겠나? 스리랑카 이야기를 쓰며 많이 울었다. 어떻게 글을 끌어내야 할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를 몰라 그지없이 막막하더군. 그러나 도전하고 싶었다. 내가 원래 좀 강한 캐릭터다. 몹시 힘든 상황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근성은 좀 있거든. ‘뭐 해보는 거지, 뭐든 하다하다 안 되더라도 죽기보다 더 하겠어?’ 이게 나의 방식이다. 어려운 일에 질겁하기보다 일단 세차게 부닥치고 보는 성향이라는 거.(웃음)”
시련을 기어이 이겨내는 타입?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기에? 당신은 25년간 강사 생활을 계속했다. 안심으로 안주한 날들이지 않았을까?
“사실 유난히 힘든 일을 겪지는 않았다. 게다가 완벽주의자라서 매사 엄청 노력했으며 덕분에 잘나가는 강사로 살았다. 경제적 기반도 다졌다. 그런데 중년에 접어들며 나를 돌아보자 허탈하더군. 긴긴 세월, 집과 학원만을 오가며 나를 너무도 조이고 누르며 살았다는 걸 깨닫고서였다.”
세상에 유쾌하기만 한 직업이 있겠나? 애환이 없는 인생이 가능하겠느냐는 얘기다.
“나는 일종의 패배감마저 느껴야 했다. 단조로운 생활을 계속한 결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숙한 인간, 미성숙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는 자괴감이 심했다. 한마디로 지나치게 경직된 삶이었지. 인간관계도 좁았고, 친구를 만나더라도 대화조차 풀려나가질 않더라고. 유치한 인생이었다.”
결국 빡빡하게 조여둔 나사를 여행으로 풀었나?
“마흔이 다 돼 처음 나선 해외여행으로 해방감이라는 걸 맛봤다. 여행이 나를 풀어놓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는 걸 알았다. 이후 남미나 유럽 등 20여 개 국가를 여행했고, 이 와중에서 강사 생활을 청산했다.”
이상과 본성을 되찾게 해준 나라
첫 번째 해외 여행길에서 고선정은 ‘눈물을 콸콸 흘렸다’고 한다. 낯선 거리를 아무런 목적 없이 쏘다니며 즐거워하는 자신의 모습에 북받쳐서. 그가 감옥과도 같은 직장생활을 하거나 얼토당토 없는 쇼를 하며 살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지나온 날들이 족쇄에 갇힌 허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회의감에 당황하고, 아울러 여행의 기쁨에 전율했던 모양이다. 진정으로 잘 산다는 게 어떤 것인가를 자문하며 여행이라는 신세계에다 자신을 방목하기로 결정했던 것 같다. 설명하기 어려운 추상화와도 같은 삶과 시간에 마침내 구체적 맥락이 잡혀나가는 계기였을지도. 이후 그는 자유로운 인간 유형의 한 가지 존재 방식인 여행자의 자격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세상의 많은 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만난 게 스리랑카였다.
“여행길의 비행기에서 우연히 본 잡지 속 스리랑카 풍경 사진 한 장. 그게 나를 스리랑카로 달려가게 했다. 다분히 충동적인 끌림이었지만 치명적인 매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충격이 느껴질 정도였다.”
스리랑카의 그 어떤 매력에?
“첫 여행에서 여덟 개 도시를 돌아다녔는데 묘하게도 도시마다 색깔이 다르더라. 바다 경관도 실로 절경이었다. 10회 이상의 여행으로 아예 살다시피 하며 체험한 스리랑카는 ‘아름다운 물의 나라’였다. 이마저 불충분한 설명에 불과하다. 뭐라 딱 집어 예찬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모든 게 좋았다.”
풍경은 물론 분위기까지 당신의 성향과 잘 맞았다?
“그렇다. 내면으로 스리랑카가 흘러들어 나의 모든 것을 흔들어놓았다. 여행을 통해 물처럼 흐르고 싶다는 것, 공기처럼 가볍게 떠돌고 싶다는 것, 이게 내가 원하는 목적이었는데 스리랑카는 적격이었다. 나의 이상과 본성을 되찾게 하는 여행지였으니까.”
스리랑카는 인도 남동부에 있는 작은 섬나라. 개발도상국이지만 사망률과 문맹률은 낮으며 명차 실론티의 산지이기도. 자연 풍광이 빼어나 ‘인도양의 진주’라 부른다. 세계적인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은 ‘2019년 세계 최고의 여행지’로 스리랑카를 선정, 논란을 야기했다. ‘론리 플래닉’은 고대로부터 상속된 불교와 힌두교 유적들,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 등을 근거로 스리랑카 여행을 권장했지만 종교분쟁이 지속되고 있어서였다. 2019년 4월엔 수도 콜롬보에서 테러사건이 터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위험 상황에 아랑곳없이 고선정은 스리랑카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막상 가보면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위험지구는 영리하게 미리 피해야 하고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신중한 인간이다. 어릴 적 별명이 ‘애늙은이’였다.(웃음)”
‘론리 플래닛’의 스리랑카 예찬에 영국 외무부는 우려를 표했더군. 관광지에서 성희롱이 난무하는 나라라며.
“나도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스리랑카식 택시) 기사에게 불편한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달리는 툭툭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그러나 극히 부분적인 것에 불과했으며, 불편한 상황을 용납하거나 당할 나도 아니다.”
인간의 바람기와 장난기는 모든 곳에 공기처럼 감돌지도. 이게 여행자의 피로감을 가중하기도 한다.
“여행이 오직 즐거울 수만은 없다. 단독 여행자에게 외롭고 두려운 상황은 언제 어디서든 불시에 찾아들지 않던가. 안전을 최우선으로 현명하게 움직여야 하겠지. ‘여행하다 비명횡사는 하지 말자!’ 이건 나의 수칙이다. 항상 서툰 방심이나 일탈을 극구 삼가며 여정을 추진했다.”
약간의 일탈과 모험은 여행의 풍미를 돋우지 않나? 서머싯 몸은 ‘경찰이 보지 않을 때 슬쩍 딴짓을 하는 데에 인생의 재미가 있다’고 했다. 규율에 속박돼 살지 말자는 얘기였다.
“성격상 일탈은 나와 멀다. 나를 속박한 건 나 자신이었던 것 같다.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기가 너무도 힘들었거든. 그러나 스리랑카에서 달라졌다. 비로소 꽤나 자유로워진 나를 발견했던 거다. 그러니 스리랑카를 좋아할 수밖에.”
어떤 에너지를 받았기에?
“선량한 사람들, 가난하지만 밝고 따뜻한 사람들! 내가 만난 스리랑카인들이 그렇게 대부분 순박하고 친절했다. 그런 그들의 선의가 나를 풀어놓게 한 에너지로 작용했던 것 같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지?
“돈을 중심에 두고 아웅다웅하는 자본주의에 덜 물든 덕분인 것 같다. 모두가 골고루 가난해 상대적 불행감이나 박탈감을 갖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나라다. 그들은 여행자를 가족처럼 진심으로 대했다. 가령, 하루 여정을 마치고 숙소로 귀환하는 저녁이면 미리 집 앞까지 나와 기다려주는 주인집 식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들 그런 식이었다. 내가 스리랑카에 심취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리랑카로 이주해 살기로 했다
스리랑카 여행 중에 사람들은 고선정에게 곧잘 묻곤 했단다. “아니, 당신은 왜 항상 웃는가?”라고. 고선정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늘 웃는 인간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무심하고 차가운 세상의 이면을 스리랑카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로 열심히 뛰었던 한국에선 맛보지 못한 깊은 만족감을 이국에서 비로소 만끽했다는 게 아닌가. 그러자 쪼그라들었던 자아가 돌연한 탄력을 받아 확장되었나? 그는 자신과의 불화 구조를 깨고 정체성을 찾았고 열린 감관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 같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평범한 여행 서사에 불과할 수 있겠다. 그런데 고선정의 행보는 한층 역동적이다. 한 권의 여행기로 스리랑카에 꽃을 바친 그는 자신을 위해서도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아예 스리랑카로 이주해 살기로 결심했다는 게 아닌가. 이미 스리랑카에 터를 사들여 살아갈 집을 짓기 시작했다.
“눈뜬 아침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스리랑카다. 나를 꿈꾸게 하고, 열정을 심어준 나라. 거기에서 군더더기는 다 내려놓고 즐겁게 살고 싶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건축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만 올 연말엔 스리랑카로 날아가 공사를 진척시킬 참이다.”
지구 저편으로 이주. 이는 그가 요번 생에 행한 가장 참신한 결단에 속하려나. 한 번뿐인 아까운 생을 나 살고 싶은 곳에서 살겠다는 의도에 무슨 결함이 있으랴. 그런데 스리랑카에서 산다 한들 삶의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행복으로 도배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할까. 어디서건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 하지 않던가. 여기에 대한 고선정의 생각은 이렇다.
“밝고 투명하게! 내가 살고 싶은 방향이 그렇다. 물론 스리랑카에 산다고 1급수처럼 해맑게 살 순 없겠지. 그저 2급수 정도만 돼도 좋겠다. 이마저 열정이 아니고선 얻기 어려운 차원일 거 같다. 하지만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으로 도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중에 고선정이 자주 동원한 단어가 ‘꿈’, ‘열정’, 그리고 ‘도전’이었다. 실천을 결여하면 허영에 불과할 단어들이다. 그러나 그에겐 필생의 지표일지도.
누구에게나 운전습관이 있다. 그 습관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차에 기름을 넣을 때, 거의 가득 넣는 습관이 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마치 창고에 식량을 쌓아둔 것처럼 든든하다. 계기판 바늘이 반 이하로 떨어진 듯하면 주유소에 들러 채우곤 한다. 이런 습관이 든 이유는 초보운전할 때의 사건 때문이었다.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차 한 대를 샀다. 운전이 숙달되면 새 차를 살 계획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한적한 집 주변을 돌며 조금씩 범위를 넓혀갔다.
운전대를 잡으니 평소 친절한 경찰 아저씨들이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호루라기를 ‘삐~익’ 불며 쫓아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조심조심 운전하던 어느 날, 갑자기 길을 잘못 들었다. 하필 차량이 쏟아져 나오는 대로 한복판으로 나와버린 것이다. 좌우 앞뒤에서 차량이 달려드는 것 같았다. 정신이 아찔했다. 그러나 어쩌랴! 어차피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진땀이 흘렀다. 순간 정신을 가다듬고 운전대를 꽉 잡았다. 결국 혼잡한 대로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야호!’ 해냈다는 자신감으로 뿌듯해졌다. 며칠 뒤, 출근길을 정복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를 했다.
차량이 적은 새벽, 회사까지 갔다 오는 연습이었다. 신루트를 개척하는 기분으로 출발했다. 가락동 집에서 서초동 회사까지는 약 40분 거리였다. 왕복 한 시간 반이면 충분히 연습을 마칠 수 있었다. ‘루비콘강’을 건너는 심정으로 주사위를 던졌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길 한가운데서 갑자기 차가 멈춰버린 것이다. 액셀을 밟아도 차는 꼼짝하지 않았다. 비상등을 켜고 내려 차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봐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시동이 걸리지도 않았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난감했다. 차 안팎을 살펴보니 그제야 보이는 게 있었다. 계기판 경고등이 빨갛게 켜져 있었다. 연습하는 재미에 기름이 바닥난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겨우 주위의 도움을 받아 차를 우선 갓길로 밀어 세웠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근처 주유소에 들러 잠자는 종업원을 깨웠다. 큰 페트병에 기름을 받아와 유류통에 붓고 시동을 거니 그제야 ‘부릉!’ 하며 시동이 걸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겨우 차를 몰아 집에 세워놓고 바삐 출근을 했다.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지금도 계기판이 반 이하로 내려오기 무섭게 기름을 넣는다.
반면 아내는 다르다. 기름을 항상 50%만 넣는다. TV 알뜰 정보를 보니 “차에 기름을 많이 넣고 다니면 기름을 많이 먹는다”고 했단다. 그래서 거의 눈금 하나 남을 때 반만 채운다. 그러다 두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평소에 나는 전철을 타고 다니는데 어느 날 경기도 동탄에서 강의할 일이 있어 불편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니 차를 가지고 나갔다. 기름 표시등을 보니 거의 한 눈금 정도 남아 있었다. 시간이 급해서 타고 가는 중에 넣자 하곤 출발을 했다. 그런데 동탄에 거의 다 갔을 때 빨간불이 들어왔다. 강의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주유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아파트 공사로 그 넓은 곳을 파헤쳐놓아 내비게이션도 길을 못 찾고 뺑뺑 돌기를 반복했다. 멀리 있는 주유소에 갔다 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대로 차를 버리고 싶었다. 수십 명의 교육생이 기다리고 있는 강의시간에 늦을 게 뻔했다. 할 수 없이 근처 공공시설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탔지만 기사가 아파트 공사로 길을 하도 많이 바꿔놓아 헛갈린다면서 회사에 수소문해 다른 기사를 소개해 겨우 강의 시작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두 사건으로 나는 기름이 부족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래서 계기판 바늘이 반 이하로 내려오면 항상 기름을 넣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운전습관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기름을 반만 넣는 사람 가득 채우는 사람, 진로 변경 시 방향지시등도 안 켜고 끼어들기 하는 사람. 빈틈만 있으면 차선을 변경해 끼어드는 사람. 습관적으로 정지선을 넘어 보행자 통행권을 침해하는 사람. 운전 중 음악을 음악다방처럼 크게 트는 사람, 피우던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지는 사람. 운전 중 휴대전화를 습관처럼 하는 사람. 순서도 안 지키고 끼어드는 얌체 운전자. 차량이 밀리든 말든 1차선만 고집하는 사람, 초보운전자 뒤에 바짝 붙어 겁주는 사람 등 다양하다. 이 중 당신의 운전습관은 어느 쪽인가요?
봄의 전령사 ‘매화’. 누군가는 치매를 일컬어 ‘매화에 이르는 길’[致梅]이라 비유한다. ‘맑은 마음’이라는 꽃말처럼 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병이라서, 또 인생의 겨울 지나 아픔 없이 새봄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아버지의 치매 발병 이후 의사로서, 자식으로서 오랜 세월 치매를 연구해온 최낙원(崔洛元·68) (사)대한통합암학회 이사장(성북성심병원장). 그 역시 더는 치매가 ‘어리석은 병’[癡呆]이라 불리지 않길 바라며 ‘나는 치매를 다스릴 수 있다’를 펴냈다.
뇌신경외과 전문의인 동시에 한의학을 전공한 최낙원 이사장.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의 융·통합 치료를 구상해온 그는 대한기능의학회 창립회장, 보건복지부 치매진단위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치매등급판정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그가 ‘치매’에 집중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제가 수련의였던 당시만 해도 신경과가 없었어요. 치매 환자 대부분을 신경외과에서 진료했죠. 덕분에 치매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았던 것 같아요. 사실 그보다 더 강력한 계기는 아버지의 치매였어요. 당뇨 합병증으로 치매에 걸리셨는데, 당뇨는 우리 집안 내력이었죠. 주변에서는 ‘네가 의사면서 아버지 병도 못 고치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치매는 진전되면 나아지기 어렵잖아요. 게다가 유전적인 요인을 생각하면 저 또한 안심할 수는 없었죠. 그렇게 의사로서도, 개인적으로도 치매라는 병을 제대로 알아야겠다 싶더군요.”
현장형 의사로 곳곳을 누비다
최 이사장은 자신이 연구해온 치매를 총망라하여 2018년 ‘치매의 모든 것’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 이듬해 세종도서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그만큼 훌륭한 양서로 평가받았지만, 아무래도 전문적인 용어와 내용이 많아 대중이 접근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이에 그는 최근 일반 독자도 쉽게 읽고 이해하게끔 ‘나는 치매를 다스릴 수 있다’를 선보이게 됐다. 치매 환자나 가족이 자주 하는 질문을 일러스트로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고, 270여 개의 항목을 질의응답식으로 친절하게 풀이했다. 의학용어 설명을 비롯해 직접 확인하는 체크리스트도 충실하게 담아 그때그때 궁금증을 해소하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였다.
“어떤 병도 제대로 알면 마냥 두렵지만은 않죠. 특히나 치매는 막연히 공포를 느끼는데, 그럴수록 적극적으로 공부해둘 필요가 있어요. 가령 뇌수두증, 만성경막하혈종 등 양성 종양으로 인한 치매는 뇌신경외과적 수술로 환원할 수 있습니다. 또, 우울증 및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발생하는 치매도 호르몬 요법을 쓰거나 우리 몸속 미세 금속의 균형을 잡아주면 얼마든지 개선 가능합니다. 이렇게 전체 치매의 15%는 초기에 잘 대응하면 완전히 기능을 회복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병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는 환자가 많은 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대중이 치매를 쉽게 이해하고 조기에 대응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이번 책 구성에 특별히 신경을 쓰게 됐죠.”
이번 책에는 의학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치매 진단 후 환자와 가족의 대처법, 요양시설의 선택, 치매 관련 제도와 지원책 등 치매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이렇듯 폭넓은 분야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 ‘현장형 의사’를 자처했기 때문이라고.
“치매등급판정위원회에서 12년 정도 지역에서 봉사하며 전국 요양기관을 직접 답사했습니다. 물론 대학에서 연구하는 의사도 있습니다만, 저는 전천후로 현장을 누비며 그 병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예전보다는 많이 발전했다 해도, 제가 겪어온 바로는 아직 국내 요양시설은 열악한 편입니다. 물론 업계 종사자에 대한 처우 개선 문제도 따르기에 마냥 비판할 수는 없죠. 가능하다면 치매에 걸리셔도 익숙한 공간에 모시길 권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요양기관에 보낼 수밖에 없는 심정도 이해합니다. 안타까운 건 그런 치매 환자를 보면 가족의 애정이 덜할수록 빨리 돌아가시더군요. 시설에 모시더라도 가급적 자주 찾아뵙고 스킨십도 많이 하시고, 환자가 애용하던 물건이나 추억거리를 가져가면 좋습니다. 기억은 사라져도 정서는 남아 있으니까요.”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최 이사장은 매일 시시때때로 ‘내가 치매인가?’라는 생각을 한단다. 무엇보다 예방과 조기 발견이 중요한 질환이기에, 특히나 가족력이 있기에 염려를 놓을 수는 없다고. 그런 그도 한때는 약물에 의존한 해결책을 찾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치매 치료를 위해 환자가 처방받는 약은 아세틸콜린분해효소 억제제와 염산메만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두 약물은 어느 정도 효과는 보일 수 있지만 한계가 있어, 완화제로 사용된다. 그는 약물치료와 함께 좀 더 복합적인 측면에서 증세를 파악하고 예방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주변에 내로라하는 전문의들이 있는데, 제게 주는 약들을 보면 소위 혈압 하강제와 아스피린류 등이에요. 무심코 먹다 보니 불현듯 공포가 생기더군요. 이거 내가 약만 먹어서 해결될까 싶었던 거죠. 발병 원인이라는 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스트레스나 음주, 흡연, 비만 등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다르죠. 그런 고민을 하다 결국 2007년에 한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왜냐, 현대의학은 증상 치료인 반면 한의학은 원인 치료니까요. 현재의 몸은 내가 그동안 살아온 결과물입니다. 제 나이쯤 되면 내가 뭐 때문에 건강이 안 좋다는 걸 다들 알고 계시죠. 그렇게 원인을 알면 치매나 다른 질병도 새롭게 접근하고 예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실제 프랑스나 독일 쪽에서도 두침(頭針), 이침(耳針) 등 침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무엇이 최선이라는 건 없지만, 증상의 원인이 복합적이듯 그 치료법 역시 다양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제 오랜 화두는 ‘의학은 하나다’라는 겁니다. 여러 학문이 합쳐져서 하나의 질병을 제대로 치료할 수 있다면 그것이 환자에게 최선이죠. 그러나 우리는 양방과 한방을 서로 나눠 분리 의학을 하고 있어요. 서로 견제하고, 등한시하기도 하죠. 환자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고, 우왕좌왕하다 자칫 적절한 치료를 놓치기도 합니다. 이제는 여러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가오는 9월 21일은 ‘치매극복의 날’입니다. 그렇게 우리만의 ‘K-의학’을 모색한다면, 치매를 극복할 날도 조금은 더 빨리 찾아오지 않을까요?”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의 저자 김원희 씨. 나이 듦을 받아들이면서도 어쩐지 그냥 ‘할머니’는 아쉬워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기로 결심했단다. 일흔을 넘긴 나이, 혹자는 지팡이를 들어야 때가 아니냐고 묻지만, 그녀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여행용 캐리어를 끈다. 모닝 펍에서 즐기는 생맥주 한잔, 영화 같은 풍경 속 자유로운 젊은이와의 만남, 그리고 ‘아직은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날 때’가 아니라는 확신, 김원희 씨가 오늘도 여행을 꿈꾸는 이유다. “육체가 허락하는 한 세상 전체를 다 돌아보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책 제목에 언급된 ‘진짜 멋진 할머니’는 어떤 모습을 의미하나요?
A. 스스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노년의 삶을 사는 것. 또 자신의 자리를 알고, 걸맞게 행동하며 받아들이는 삶이 ‘진짜 멋지다’고 생각해요.
Q. 노년에 접어들어 젊은 시절 꿈꿔왔던 해외여행을 떠나셨지요. ‘나이’라는 제한에 막상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꿈을 이룬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결단의 문제이겠지요. 저는 자녀가 자립하는 시점에 내 꿈을 실행에 옮기리라 마음먹고 있었으니까요. 아들이 짝을 찾고 정신적으로 완전 독립하고 안정되었다는 확신이 섰어요. 이제는 더 주저할 게 없다는 생각에 결심을 하게 된 거죠.
Q. 꿈을 이뤄 즐거웠겠지만, 아무래도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A. 믿으실지 모르겠으나, 그다지 고생스럽다거나 특별한 고충을 느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물론, 음식이나, 언어, 피로감 같은 것이야 있었지만, 그것은 미지의 땅으로 여행을 떠날 때 이미 각오하고 떠나는 것이니까요. 당연히 극복해야 해야 했죠. 오히려 어떤 어려움을 만나 극복하고 나면, 더 뿌듯하고, 삶에 감사하게 되더군요.
Q. 젊은 시절과 비교해 현재 즐기는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사실, 젊을 때는 사는 게 바빠서 해외여행을 가 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국내여행, 아니면 패키지로 짧게 며칠 다녀왔기 때문에, 친구들과 뭉쳐서 떠들고 즐기다 온 것뿐이라, 특별한 의미도, 기억도 사실 나지 않아요. 나이 들어 여행은, 그것도 자유 여행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 느낌은 참 경이롭습니다. 여행은 나이 들어 해야 제 맛이라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Q. 여행에서의 만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누구인가요?
A. 많아요. 그중에서 꼭 꼽으라면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에 소개된 프라하에서 만난 각국의 신학생이에요. 광장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사랑해’라는 노래를 목청껏 불러주었죠.
Q. 버킷리스트가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라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A. 다리 운동이 필요하겠죠. 이 나이에 과격한 등산은 하지 않아요. 하루에 두 시간 정도 걷기를 합니다. 집 주위도 좋고요. 성당이 집에서 멀어요.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걸으면 1시간 정도예요. 왕복 2시간입니다. 평일 미사 때도 그렇게 합니다. 이렇듯 그냥 생활 속에서 걷기 운동 정도예요. 산티아고 관련된 책도 많이 읽고요.
Q. 수많은 여행을 다니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동지애’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냥 그렇게 산다는 거예요. 우리처럼⋯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지인 거죠. 피부색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환경이 달라도 우리는 그냥 한 생을 살아가는 똑같은 인간인 거예요. 소매치기를 만나도, 친절한 사람을 만나도, 그들 모두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지라는 거죠.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Q.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해외여행이 어렵습니다. 본래 계획하셨던 일들을 잠정 미뤄두셨을 거 같은데요. 코로나19 기간은 어떤 즐거움으로 보내시는지, 또 사태가 진정되면 펼칠 꿈은 무엇인지요?
A. 독서입니다. 독서가 주는 즐거움은 최고예요. 지금처럼 외출을 자제해야 할 때, 독서만큼 좋은 취미가 없죠. 언제든 하늘 길이 열리면 세상 구경을 하러 나갈 거예요. 코로나19가 끝났다는 뉴스가 나오면, 아마 제가 제일 먼저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을 것 같은데요!
중년의 팬들과 함께 나누고픈 책들 by 주현미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김경민 저)
‘님의 침묵’, ‘그집 앞’ 등 한국 명시 중 독자들이 쉽게 공감할 50편의 작품을 통해 이별로 인한 상실과 상처를 다독이고 치유한다. 국어교사 출신인 저자는 내가 누구인지 헤맬 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며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정본 백석 소설·수필 (백석 저)
백석 연구의 권위자인 고형진 고려대 교수가 공들여 엮은 책이다. ‘해빈수첩’, ‘당나귀’, ‘닭을 채인 이야기’ 등 백석이 남긴 네 편의 소설과 열두 편의 수필을 정본으로 정리했다. 친절한 낱말 풀이와 해설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한국사 365 (심용환 저)
한국사의 주요 장면 365개를 매일 1페이지씩 읽으며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다. 연대기순으로 보는 일반 역사서와 달리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건, 인물, 장소, 유적·유물, 문화, 학문·철학, 명문장 등 7개 분야로 구성했다.
이기는 몸(이동환 저)
우리 몸의 시스템을 제대로 알고 바이러스와 질병, 노화로부터 ‘이기는 몸’을 만드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몸속 미시세계에서 출발해, 뇌, 심장, 폐, 간 등 주요 기관을 비롯해 먹고 자고 숨 쉬고 움직이는 섭생까지 폭넓게 다룬다.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untact)를 넘어 한발 더 나아간 ‘온택트'(ontact) 시대가 다가왔다.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등장한 새로운 사회 흐름이다. 온택트란 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을 뜻한다. 즉,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외부와 연결, 각종 활동을 전개하는 새로운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니어들도 온택트 환경으로 전환되는 일상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노노(老老) 배우기’가 필요하다.
믿을 건 가족밖에 없어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느라 학원에 다녔는데 20명의 수강생 중 내 나이가 가장 많았다. 처음에는 아들보다 어린 선생님을 받들어 모시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나를 모시느라 불편해했다. 게다가 수강생들이 컴퓨터 다루는 기초 지식들을 이미 갖추고 있어서인지 강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 “이렇게 꾸며야 스웨그(swag) 가득!”, “그런 배경 구성은 개쩐다” 등등 다양한 그들만의 속어도 난무했다. 강사는 내게 “못 따라가시는 것 같으니 따로 쉬는 시간에 질문을 받겠다”며 자존심을 긁었다. 특별한 꿀팁을 제공한다는 강사의 말에 속아 참석한 뒤풀이는 절대 낄 자리가 아니었다. 자기네들끼리의 네트워크 구성에 여념이 없는 그들에게 강의 내용을 질문할 여지는 없었다. 역시 학원은 이익집단이다.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 너희들마저…
그런데 아니었다. 일단 결혼한 아들과 만나는 게 만만치 않았다. 내가 필요해서 만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어렵사리 만나 궁금한 걸 물으니, 요점부터 정리해 빨리 질문하란다. 그러고는 “어~ 아직 이것도 모르세요? 허 참”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 내가 영어를 가르치며 하던 말이다. “또다시 너에게 부탁하지 않도록 노트에 좀 적어야 하니 천천히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한다. “적어봐야 소용없어요. 시스템 이해 못하고 그냥 필기만 하면 뭐해요!”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다. 아니꼽고 치사함을 넘어 부자지간의 연까지 끊어지는 거 아닌가 싶어 아들에게 배우기를 포기하고 사위가 좀 나을 것 같아 도움을 청했다. “다 가르쳐드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그러니까 노트북 두고 가시면 원하시는 것들 다 작동되도록 해드릴게요.” 예의 바른 말처럼 들리는데 더 아프다. 학원이 차라리 나았다. 가족이 더 아프게 한다.
젊은이들의 고충
코로나19 때문에 줌(Zoom)을 통한 화상회의를 주관했다. 구성원은 모두 50대 이상이었다. 나이대를 감안해, 사전에 줌 사용 방법 안내 후 휴대전화로 보내준 링크 주소를 누르기만 하면 가능하도록 조치를 했다. 그런데 회의가 시작돼도 회원들이 안 들어왔다. 전화를 했더니 “꾸욱~ 누르라는 설명은 도대체 몇 초를 누르라는 거냐?”고 묻는다. 젊은이들의 “허걱!”이라는 표현에 백번 공감했다. 또 영상은 뜨는데 음소거 해제 버튼을 못 찾는 회원들에게 전화를 거니 모두들 그렇지 않아도 문의하려고 했단다. 묻기가 쑥스러웠던 게다. 그렇게 회의 시작까지 30분이 더 걸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별로 다 살펴줘야 했다.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다. 시니어의 자존심, 부끄러움 등을 이해하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젊은이들은 오죽하랴 싶었다.
‘노노 배우기’로 극복
온택트 시대에는 시니어들이 피교육자가 되어 젊은이들이 얘기를 잘 들어야 하지만 경청은 엄청난 자제력이 필요하다. 앞서의 예처럼, 자녀들조차도 부모에게 인내심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러니 처음부터 날로 먹으려면 안 된다. 나도 뭔가 노력했다는 근거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일단 인터넷을 통해 ‘ㅇㅇ 하는 방법’을 치면 동영상까지 자세하게 나온다. 어느 정도 공부 후 “그중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답변을 잘해주면 학원 수강료라 생각하고 자식들에게 좀 써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노노 배우기’다. 다행히 주변에, 답답해서 물었다가 상처를 받고 극복한 친구들이 꽤 있다. 넷플릭스로 영화 보고 인스타그램으로 영상 올리고 줌으로 화상회의하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시니어들이 수십 명 이상 있는 밴드나 단톡방에 어려움을 올리면 금방 해결된다. 뭔가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싶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친구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막막함과 뭘 어려워하는지를 잘 안다. 그래서 천천히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 다만 뭘 물어보면 필요 없는 사항까지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는 단점도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자존심을 긁거나 상처 주는 일은 없다. 그러니 온택트 시대, ‘노노 배우기’로 극복해보자.
오늘따라 노트북으로 숙제하는 초등학교 6학년 손자가 나이보다 훌쩍 커 보인다. 온택트 시대가 맞는 것 같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장욱진(1917~1990)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미술관이다. 장욱진은 이렇게 썼다.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하는 단골말이다.” 심플! 그게 말 그대로 심플하게 거저 얻어지는 경지이겠는가? 인간사란 머리에 쥐나도록 복잡한 카오스이거늘. 명쾌한 삶의 실천과 창작의 순수한 열망을 지속하지 않고선 도달하기 어려운 차원이다. 그러나 장욱진은 자신이 지향한 가치를 정점까지 밀어붙였다. 그 무엇에 앞서 ‘심플한’ 작품으로 지지와 갈채를 받았다. 그런 장욱진의 유화, 벽화, 판화, 수묵 등 23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 존재하다니.
장욱진은 번잡한 도시를 피해 살았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 자체가 싫다”고 했다. 자연, 고요, 고독. 그에겐 이 셋이면 충분했다. 그러하니 장욱진미술관을 도심에 두랴. 산 아래, 냇물이 흐르는 곳에 터를 잡았으니 적격이다. 미술관 건물은 나무들의 초록이 술렁거리는 산들과 눈을 맞추며 들썩이나? 큼지막한 규모에 흰색 외벽을 두른 건물이 생동해 밝다. 애써 멋부린 치레 없이 산뜻하고 단순한 외관이다.
어떻게 보면 세련된 대형 창고 형태? 산을 은유적으로 축약한 미니어처? 수직 일색의 벽면과 삼각 지붕의 연쇄로 이루어진 다면체라 멀리서 언뜻 볼 적엔 정체가 집히지 않아 아리송하다. 외부 마감 자재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 가볍고 소박한 재료로 도배한 셈이라 묵직한 맛은 없지만 위압이 없어 편안하다. 화려하거나 기발하거나 심각할 게 없는 외관이다. 실용성과 단순미를 성실하게 구현해 어엿하다. 장욱진의 담박한 캐릭터를 고려한 설계자의 의도가 내비친다.
2014년 ‘세계 8대 신설 미술관’에 선정돼
이 미술관은 개관한 해인 2014년에 ‘김수근 건축상’을 받았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 의해 ‘2014년 세계 8대 신설 미술관’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명민한 건축가가 지은 기념물로서의 미술관은 재미있다. 화가라는 주체의 성향, 그가 지향하는 예술세계에서 모티브를 끌어내 건축을 하기 때문이다. 즉 건축가는 화가를 닮은 집을 짓는 걸로 실력을 입증한다. 장욱진미술관은 이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장욱진을 잘 담은 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람객은 장욱진을 표상하기 위해 설계자가 미술관의 내·외부에 매립해둔 유비(類比)와 알레고리를 찾아 즐길 만하다.
이 미술관의 외양은 사실 상당히 흥미롭다. 정원에 서서 바라보면 그저 좀 도드라지는 다각형 건물일 뿐이지만, 드론을 띄워 살펴보거나 뒷산 중턱에 올라 내려다볼 경우엔 다르다. 실을 꼬아 만든 노리개 매듭 형태라서 이색적인 건물의 전모가 비로소 부감되는 게 아닌가. 텅 빈 중정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각으로 뻗은 지붕마루의 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설계자는 ‘최-페레이라 건축’의 공동대표이자 부부 사이인 최성희와 벨기에 출신 로랑 페레이라. 이들은 설계에 나서기 전 장욱진의 작품들을 오랜 시간 바라보며 콘셉트의 맥락을 잡아나갔다. 숙고 뒤 얻은 결론은 화가의 작품에 숱하게 등장하는 집과 방의 개념을 건축에 도입하자는 것.
“가장 단순한 형태로 화가의 세계를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작고 단순한 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하나의 몸을 이루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겹겹의 공간이 아니라, 장욱진의 그림에 나오는 한옥 홑겹 방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공간을….”(최성희)
장욱진은 명리(名利)에 무심해 붓 한 자루 손에 움켜쥐면 그만이었다. 목으로 털어넣을 술 한 잔이면 만족했다. 언젠가 그의 작품이 최고가(最高價)로 거래된다는 소리를 듣고서 하는 말이 이랬다. “그림에 가격을 매기다니. 난 슬퍼!” 그의 그림만 자연을 닮은 게 아니었다. 장욱진의 생태계 역시 자연에 가까워 탈속(脫俗)으로 순박했다. 설계자는 이러한 화가의 성정 역시 고스란히 건축에 반영했다.
“거창한 기념비적 건축물을 만들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장욱진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급스런 자재 대신 가벼운 플라스틱 재료로 외벽을 마감한 이유가 이와 같다.”(로랑 페레이라)
‘단순하게, 그러나 조금은 복잡하게!’ 설계
미술관 내부 1층 전시실에선 기획전 ‘장욱진을 찾아라’가 펼쳐지고 있다. 국내외 화가들의 작품과 장욱진 그림을 비교 감상할 수 있는 전람회다. 피카소와 마티스의 소품도 두 점씩 걸려 한결 실속 있는 전시회다. 지하층에서부터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유심히 들여다볼 만한 경관이다. 단순미의 추구를 기조로 설계된 건물이지만 계단 부위만큼은 특별하다. 층계의 딱딱한 획일적 흐름을 배제, 폭과 커브의 각을 유연하게 구성해 리듬감을 부여했다. ‘주로 단순하게, 그러나 조금은 복잡하게!’ 설계자의 이와 같은 의도가 기교적으로 여실히 발현된 공간이다.
층계 공간은 벽면과 천장까지 온통 새하얀 색이다. 고로 2층 공간 전체가 지루한 화이트 큐브일 것 같은 예감을 하지만 전혀 아니다. 장욱진 상설전이 열리는 네 개의 전시장 모두 유별하니까. 모양새와 벽면의 색상, 조도(照度)까지 제각각이니까. 공통점이라면 모두 자그마한 방의 형태와 사랑방 같은 분위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오막살이 단칸 골방을 자주 그린 장욱진에게 바치는 오마주처럼. 덕분에 그림과 공간이 합을 이루었다. 작품 감상을 한결 실감나게 할 수 있는 정밀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장욱진의 작품은 커봐야 30호 미만이다. 손바닥 사이즈의 그림도 많다. 그러나 그림 안엔 장욱진의 우주가 들어 있다. 까치가 날고, 붉은 해가 뜨고, 나무 우듬지에 묻힌 아이가 낮잠을 때리고, 콧수염 달려 웃기는 호랑이가 어슬렁거리고, 옹기종기 모인 도토리들처럼 앙증맞은 일가족이 등장하고…. 장욱진이 관조한 자연과 인생의 다채로운 모습이 간결한 화풍으로 시각화됐다. 토속적인가 하면 모던하고, 관념과 직정(直情)이 교차하고, 문인화풍인가 하면 해학적 민화풍이다.
누가 뭐래도 장욱진의 그림은 정겹고 평화롭다. 우리가 놓치고 살지만, 실은 그리워 마음속에 도사린 삶의 근원적인 노스탤지어를 환기한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장욱진의 그림을 좋아한다. 작의를 짐작하기 어려워 득득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는 미술품들이 난무하지만, 그의 그림은 누워서 떡먹기처럼 쉽게 감상할 수 있으니 대승적이자 이타적이다. 그러나 쉽기만 하랴. 어린 것이 끼적인 낙서처럼 쉽게 다가오지만, 그림 안에 들어 있는 도(道)와 선(禪)까지 읽어내려면 숨이 차다. 어린애 시늉을 해 그린 그림과, 어린애로 돌아간 심상으로 그린 그림은 천양지차다.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알면 어렵고 복잡하던 것들이 쉬워진다 했다. 장욱진은 수행으로 그림을 놀고 싶었던 게 아닐까.
머리와 가슴을 쥐어짜도 찔끔 요실금처럼 새나오다 마는 게 예술이다. 장욱진도 괴로웠을 게다. 오죽하면 “나에겐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고 했겠는가. 그림이 죄? 그림 그리는 사람이랍시고 부린 객기가 없지 않았겠으나, 그에게 많았던 건 고독의 죄가 아니었을까. 예술의 핏줄인 고독이라는 놈. 장욱진은 고독해서 술 마시고, 고독해서 서울대 교수직을 헌신짝처럼 벗어버렸다. 그러고선 해탈? 그림으로 볼 적엔 그렇다. 강퍅한 세상을 가뿐하고 따뜻하게 읽는, 장욱진의 저 헐거운 그림들의 정신을 보라.
전시실엔 장욱진의 대표작 ‘자화상’이 걸려 있다. 일화가 많은 ‘진진묘’(眞眞妙)도 볼 수 있어 반갑다. 간략한 선묘로 된 이 작품은 부인 이순경(현재 101세) 여사를 불상의 모습으로 그린 초상화다. 생활에는 대책 없는 헐렁이였던 장욱진이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건 부인의 조력 덕분이었다. 그런 아내가 불경을 외는 모습을 보고 별안간 그려낸 게 이 작품이다. 먹거나 마시지도 않은 채 1주일에 걸쳐서. 그림을 완성한 뒤엔 여러 달을 앓았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불안했던 아내는 작품을 팔아 없앴고, ‘진진묘’를 자신의 대표작으로 여겼던 화가는 이를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무엇에 그리 아쉬웠을까? 대표작이 사라져서? 아내에게 그림으로 모처럼 바친 애련(哀憐)의 마음을 몰라줘서?
장욱진 화백의 큰딸 장경수 선생
“아버지는 차라리 스님이자 자유인이었다”
“아버지는 숫돌에 몸을 갈 듯이 그림 작업으로 몸을 혹사했다. 밥벌이에는 무관심했다. 그게 미안해서 가족들에게 늘 저자세였다. 얼굴엔 항상 고독이 묻어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내 눈엔 얼마나 가엽던지….”
장욱진 화백의 큰딸 장경수(75, 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 선생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긍심과 함께 아직껏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아버지에게서 겪은 화가로서의 고통과 고독이 얼마나 뼈저린 것인지 또렷이 봤기 때문이다. 장 선생은 그런 아버지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부녀간의 정이 아주 좋았다. 아버지가 말하길, ‘간이 맞는 딸’이라 했다. ‘경수가 화실에 다녀가면 냉수 한 사발 마신 것처럼 시원하다’고도 했다. 말이 많은 분은 아니었다. 차라리 지독히도 말이 없었지. 표현도 어눌했다. 술을 드시고 하는 얘기도 외마디 선문답 같은 것이었다.”
가령 어떤 식으로?
“‘너는 누구냐? 나는 또 누구냐?’ 뭐 그런.(웃음) 나도 그림에 생각이 있어 아버지에게 미대에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돌아온 답은 ‘응?’ 하는 한마디였다. 나는 그게 ‘안 돼!’라는 응답임을 알아차리고 바로 뜻을 접었다. 화가로 사는 일의 어려움을 딸에게까지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읽어서였다.”
장욱진 화백은 40대 때 6년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다 별안간 그만두고 나왔다. 왜 그랬다고 보나? 딸로서 불만을 터뜨리진 않았나?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성품이셨다. 사표를 낸 걸 알고 가장으로서 무책임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대뜸 하긴 했다. 그러나 금방 후회되더라. ‘누군들 아버지처럼 감히 직장을 팽개칠 수 있을까? 아버지 같은 자유인이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에 이르자 차라리 아버지가 대단해 보였다.”
장경수 선생은 최근 ‘내 아버지 장욱진’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비범한 한 예술가의 치열한 정신과 창작의 일상을, 가족과의 조용한 유대와 쓸쓸한 사랑을, 과도한 음주와 유랑하는 영혼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장욱진 화백이 한창 무르익은 작품을 하던 시기에 돌연 타계해 아쉬웠다.
“그림은 아버지의 내면이 표출된 한 부분일 뿐이다. 좋은 화가였으나, 더 정확하게는 스님이고 자유인이었다.”
가슴에 남은 아버지의 말씀이 있다면?
“세상과 사물을 데면데면하지 않고 친절하게 보라 하셨다. 친절하게 보면 거기에 모든 아름다움이 들어 있는 걸 알 수 있다며. 이 금언을 나는 좌우명으로 품고 산다.”
아버지 사후, 장경수 선생은 “한 1년쯤 울었던 것 같다”고 했다. 너무도 허탈해서. 그는 장욱진미술관이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다”고 한다. 영별(永別)은 슬프나 기억 속의 아버지는 영속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아내와 함께 워킹화를 사려고 동네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을 찾았다. 이것저것 고르다가 맘에 드는 신발을 찾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 발 사이즈에 딱 맞는 신발이 없었다. 그때 여자 종업원이 구석에 있던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남자에게 창고에서 신발을 가져다 달라고 했고 남자는 고분고분한 태도로 신발을 가지고 왔다. 나는 이 남자가 매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종업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점주인 사장이었다. 이 점포에선 뭔가 권력구조가 뒤바뀐 듯 보였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 매장을 다섯 개나 갖고 있는, 올해 환갑인 K사장은 나와 테니스 동호회원이다. 30대 초반부터 피복 장사를 해왔으니 이 방면에서는 알아주는 베테랑이다. 한때는 매출을 가장 많이 올려 본사에서 특별대우와 함께 표창장도 줬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장이어도 여러 개의 점포를 혼자 운영할 수는 없다. 각 점포마다 팀장이라는 직책의 책임자를 두고 그 밑에 알바를 고용해 장사를 한다. 알바들은 물건을 많이 팔아도 시간당 임금을 받아가는 것으로 끝이지만, 팀장은 급여 대신 매출액의 몇 %를 갖고 가는 소사장이다. K사장이나 팀장은 매출액에 따른 이익이 생긴다. 반면 장사가 안 되면 팀장은 수입이 줄어들고 사장은 가게 임대료와 관리비 등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매출을 담당하는 팀장 말을 그래서 사장은 무시할 수 없다.
K사장은 여러 점포를 돌아다니며 물건 정리도 해주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노하우를 직원들에게 알려주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도와줬다. 그런데 하루는 팀장이 “사장님이 가게에 있으면 손님이 들어오지 않으니 앞으로 나오지 마세요”라고 했단다. 나이 든 사람이 점포에 버티고 있으면 젊은 손님들이 들어오기 꺼린다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K사장은 언제부터인지 손님에게 물건을 직접 팔아본 기억이 없다. 손님들은 젊은 종업원하고만 대면하려고 하지, 물건 값을 깎아줄 수도 있는 늙은 사장에게는 말 건네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이제는 가게에 나가도 동태만 살피고 나온다. 어느 날은 자신의 신세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점포에서 겉돌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푸념한다.
내가 알고 있는 P는 과장급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한 후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해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고객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했는데 통 손님이 없다. 그때 누가 슬쩍 귀뜀을 하더란다. 늙은 남자 혼자 있는 부동산 점포에는 아무도 가지 않으니 참한 아줌마를 실장급으로 한 명 채용하라는 얘기였다. 결국 여성 실장을 채용했고 그때부터 손님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들 사례처럼 젊은 종업원에 참한 여성을 앞에 내세워야 고객과 대화가 트인다는 현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 이유가 꼭 나이 때문일까? 일단 나이를 앞세워 상대를 군림하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전면에 나서서 나이라는 굴레를 깨부숴야 한다. 100세 시대다. 70대는 장년 세대이고 액티브 시니어다. 젊은이들보다 더 친절하고 활기차게 말도 하고 행동을 하면 그게 젊음이다. 노인 냄새가 아니라 향기가 나도록 청결을 유지하면 된다. 무엇보다 나이 든 사람을 싫어할 거라는 선입견부터 없애야 한다.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고 당당히 말하고 행동하자.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은퇴한 남편들이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선 아내의 드라마를 잘 받아들이며 몸을 낮춰 조심할 필요가 있다.
아내의 법정
아내가 아침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은퇴한 남편의 언행에 대한 ‘아내의 법정’ 판결은 단호하다. “저 탤런트는 누구냐?”, “ 왜 저렇게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냐?” 등의 질문은 아내의 몰입을 저해하는 하는 범죄에 해당한다. “그렇게 궁금하면 방송국에 직접 전화하지 그래!”라는 빈정거림을 유발하기 쉽다. 그래도 드라마에 관심을 보이는 행위이기에 조금 봐줘서 유기징역이다. 하지만 몰입 정도가 아니라 시청 자체를 방해하면 중죄에 해당한다. 그래서 “과일 좀 깎아 달라”, “커피 타 달라”고 요구하면 안 된다. 당장 무기징역감이다. 마지막으로 “저걸 드라마라고~ 쯧쯧, 저런 건 나라도 쓰겠다”라고 드라마를 무시하는 언행은 시청자인 아내까지 한꺼번에 모욕하는 발언이므로 법정 최고형에 해당하는 사형!이다
은퇴하기 전 아침드라마를 전혀 볼 수 없었던 남편들은, 설거지도 미뤄둔 채 몰입하고 있는 아내와 드라마가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같이 몇 번 봤더니, 이건 너무 뻔한 내용이다. 재벌 집안과 독신인 이모나 고모가 등장하고 불륜과 삼각관계 속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기억상실증, 그리고 출생의 비밀은 기본에다가 최근에는 환생까지 첨가되었다. 모든 비밀은 열어놓은 문이나 복도에서의 엿듣기로 전달되고, 각종 증거들은 녹음과 동영상으로 통쾌하게 밝혀지며, 등장인물들의 심리는 배우들의 자세한 독백으로 친절하게 전한다.
아내들의 추리력과 집중력
아내들은 구역질하는 장면을 보면 임신했다고 하고, 부모가 뒷목을 잡으면 이제 자식들이 양보할 거라 하고, 악당이 회개하면 종영이 가까워졌다고 추리력을 발휘한다. 비밀이 밝혀지려는 순간 갑자기 전화가 오거나 다른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도, 아쉬워하거나 짜증내지 않는다.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사항은 모성애라는 단어로 다 해결이 된다. 방송작가와 완전히 한통속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여기부터가 중요하다. 그런 드라마를 왜 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은퇴생활이 괴로워진다. 아내와 수십 년을 함께한 드라마들을 절대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다. 여행을 가서도 아침드라마를 본 후에야 펜션을 나서는 아내에게 살빼기 운동이라도 같이하면서 드라마를 보라고 충고하는 건, 드라마에 대한 충성도와 집중력을 얕잡아보는 행위다.
논리적 분석이 아니라 공감
남자들은 드라마를 논리적으로 분석한 후 이해하려 든다. 여자들은 드라마의 상황에 공감할 줄 안다. 그러니 이해하지 못해도 아내의 분위기는 깨지 않는 게 좋다. 아내가 악당을 욕할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같이 분개해야 한다. 다음 장면 전개를 맞힐 때는 그저 감탄해야 한다. 작가를 이해하려는 자세도 갖춰야 한다. 설사 주인공을 죽이더라도 깊은 뜻에서 그랬을 거라고 믿어야 한다.
이런 드라마들에 공감하려면 ‘제작비를 많이 투입한’ 주말드라마에서 출발해, 수목드라마→ 일일 저녁드라마→일일 아침드라마로 단계를 높여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내와 같은 공감 능력이 점차 생긴다. 초기단계에선 다음 회차가 궁금해지고, 방송일이 다가오면 설레고, 예고편 장면도 기억하게 된다. 드라마가 종영되면 허탈해지고 살맛도 없어진다. 심해지면 다큐멘터리가 몹쓸 프로그램으로 느껴지고, VOD로 놓친 드라마까지 보게 된다. 차기 드라마 소개가 나와도 지금까지 봐왔던 드라마를 배신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다가 후속 드라마에 또 울고 웃는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똑같다.
이렇게 아내와 드라마로 공감하고 소통하면, 애완동물이 없어도 부부간 대화 소재가 샘솟는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 드라마 대사를 인용하면 설득력까지 얻을 수 있다. 또 여생은 권선징악과 사필귀정, 인과응보의 세계로 들어가, 단순하고 편안해진다. 아침드라마는 30분이지만 그 영향력은 결코 짧지 않음을 잊지 말자. 그러니 아직도 아내와 맞장구치기보다 논리적 분석으로 맞짱 뜨려는 남편들은 필자도 책임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