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폴 스미스(Paul Smith)는 “패션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명품 옷이든 구제 옷이든, 입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옷의 진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니어는 노화에 따른 심리적, 신체적 변화로 자꾸만 움츠리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옷들이 스타일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미적 요소가 결여된 의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더는 걱정하지 말라. 기능과 스타일까지 살린 세계의 패션 브랜드와 아이템을 소개한다.
시니어숍, 집 앞에서 편안한 쇼핑을
온라인 쇼핑몰은 집에서 간편하게 옷을 주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지 않거나 익숙지 않은 시니어에겐 곤욕이다.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날, 당신의 집 앞에 의류 매장이 직접 찾아온다면? 먼 곳에 있는 의류 매장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집 앞에서 옷을 고르고 입어보며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상상 속 이야기처럼 생각되겠지만 실제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스웨덴의 ‘시니어숍(Senior Shop)’이다.
시니어숍은 1996년, 스웨덴 헬싱보리 오픈을 시작으로 유럽 6개국에서 60개 이상의 이동식 매장 네트워크를 갖추고,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고품질의 편안하고 세련된 의류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방문 신청은 무료이며 방문 당일 바로 구매할 수 있는 1000여 가지 옷이 준비되어 있다. 사이즈도 S에서부터 3XL까지 다양하다. 20m 이상의 전시대와 거울, 직접 입어볼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어 여느 옷가게 못지않다. 요청에 따라 패션쇼를 기획하기도 한다. 편안한 쇼핑과 이색 이벤트로 시니어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 시니어숍은 현재 북유럽 국가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마담토모코, 굽은 허리도 우아하게
일본의 고령 여성복 브랜드 ‘마담토모코(マダムトモコ)’는 등이 굽은 여성 시니어가 편안함과 옷맵시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상체가 구부러진 사람이 입어도 등 쪽의 옷감이 당겨져 올라가지 않도록 주름을 넣어 조정한 상의와 하의를 개발한 것이다. 최숙희 교수(한양사이버대학교 시니어비지니스학과)가 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칼럼에 따르면, 이 제조법은 특허를 받은 공법으로 편안함은 물론, 굽은 등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자랑한다. 허리가 맞지 않는 옷 수선 서비스도 제공하는 마담토모코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통해 일본에서만 2만 명 가까이 되는 두터운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치코스, 중년 여성의 개성을 살리는 패션
치코스(Chico’s)는 미국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의류 및 패션 아이템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600개 이상의 매장과 121개의 아울렛 매장을 운영 중이다. 물론 온라인 쇼핑도 가능하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의류 가격을 한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치코스의 경영 철학은 여성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감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기계 세탁이 가능하고, 뒤집어 입을 수도 있고, 더 부드러운 착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옷의 기능에 대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치코스의 매력은 개인 스타일리스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데에도 있다. 비용은 무료이며 전화상담도 가능하고, 매장을 방문해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홈페이지에선 연중무휴 24시간 상담도 가능하다.
노화의 상징 NO, 패션 아이템 YES!
지팡이는 거동이 불편한 시니어에게 없어선 안 되는 도구다. 하지만 의료용 기구로 인식되고, 신체적 결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에 사용을 꺼리는 사람도 많다. ‘옴후(OMHU)’는 이런 시니어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기능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지팡이를 개발했다. 덴마크어로 ‘아주 조심스럽게’라는 뜻을 가진 이름에 걸맞게 디테일한 미적 감각을 자랑하는 패션 지팡이다. 이곳에서 만들어낸 제품은 견고하면서도 가벼운 소재로 충격에 강하고, 손잡이는 감촉이 부드러운 나무를 사용해 오래 쥐어도 불편함이 없다. 또한 손잡이 부분에 미끄럼 방지 처리를 해 벽에 세워둬도 넘어지지 않는다. 길이가 3가지 종류로 나눠져 있고 색상도 6가지나 돼 소비자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미국의 ‘엘더럭스(Elderluxe)’도 다양한 디자인의 지팡이를 판매하고 있다. 가죽 지팡이, 스와로브스키 보석이 박힌 지팡이, 접이식 여행 지팡이 등 252개의 지팡이를 만나볼 수 있다.
국내에도 시니어를 위한 특별한 패션 아이템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바로 주얼리 돋보기를 제작해 판매하는 ‘이플루비(efluvi)’다. ‘efluvi’라는 회사 이름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선사하고자 스페인어 ‘efluvio(자연의 향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돋보기는 굴절이 심해 오래 사용하면 어지럼증과 두통을 겪지만 이플루비의 돋보기 렌즈는 왜곡이 없는 독일 칼자이스 광학렌즈를 사용해 이러한 불편함을 없앴다. 또 목걸이형 손잡이형, 문진형 돋보기를 직접 디자인해 휴대성과 심미성을 높였다. 주얼리 돋보기 외에도 브로치, 안경줄 등 시니어를 겨냥한 세련된 패션 아이템도 많다.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독특한 전시가 열렸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패션 아이콘인 아이리스 아펠(Iris Apfel)의 옷장을 소재로 한 전시였다. 당시 아펠의 나이는 83세였다. 그녀의 옷장에는 1960년대의 파리 패션을 대표하는 주요 의상은 물론, 터키의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며 사 모은 다양한 색감의 의상과 티베트 지역의 보석이 가득했다. 세상을 향한 한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이 녹아 있는 저장고가 인간의 옷장임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그녀의 옷장(Wardrobe)은 이후 수많은 패션 브랜드의 컬렉션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6년 랄프 로렌의 홈 컬렉션은 아펠의 직물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고,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M·A·C은 2012년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컬러를 이용해 색조 제품을 내놓았다. 현재 아펠은 9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패션계를 매혹하고 있다. 최근 시니어 모델이 매체를 장악하는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 시니어 패션 블로거와 스타일리스트들이 연일 패션쇼의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노년의 백발이 성성한 모델들이 패션을 비롯한 트렌드에 민감한 산업의 핵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멋 내기 딱 좋은 나이
패션 역사에서 젊은 여성 모델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다. 그 이전만 해도 파리의 오트 쿠튀르의 디자이너들은 젊은 모델을 고집하지 않았다. 발렌시아가도 기혼의 중년 여성을 주로 기용했고, 이브 생 로랑도 다르지 않았다. 명품 브랜드일수록 ‘나이’라는 요소보다 영원한 여성성과 인간의 아름다움에 더 가치를 부여했다. 하지만 1960년대, 청년문화의 등장과 함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공격하며 자신의 미감을 자신 있게 드러냈다. 부모들에게 물려받은 풍족한 경제력도 원인이었다. 당시 소비의 주요 계층은 청년이었다. 이후 패션계는 젊음의 활력과 아름다움을 미의 원천으로 둔갑시켰고, 소비재 산업도 이에 호응했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법.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나이대의 예법과 문화, 가치관을 쉽게 접하면서 ‘자신의 나이’에 대해 생각하던 기존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 다양한 삶의 경험과 사회적 성숙을 이룬 세대가 패션시장 전면의 소비자로 등장하면서 노년 세대의 스타일, 시니어 시크(Senior Chic)에 대한 열망도 한층 커가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아이리스 아펠은 뉴스 인터뷰에서 “늙어간다는 거, 그게 확 드러나는 게 언제일까요? 그건 옷을 젊어 보이게 입으려고 혈안이 될 때예요”라고 말했다. 노년은 그 자체로 찬미의 대상이다. 노년을 상징하는 주름은 생의 훈장과 같은 것이라며 더 이상 생물학적 시계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이들이 늘고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노래 가사는 노년의 어르신들이 더 이상 아픈 몸을 구석구석 눌러가며 푸념조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미국의 패션 매거진 ‘얼루어(Allure)’는 더 이상 안티에이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독자들에게 약속했다. “안티에이징이란 단어가 노화(aging)를 무의식중에 우리가 싸워내야 하는 삶의 조건처럼 만든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노년을 다루는 언어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다. 언어부터 노년을 부끄럽게 만들면, 그 언어를 쓰며 우리는 자연스레 노년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갖게 된다. 노년은 우리 스스로 의미를 복원하고, 창조하는 시기여야 한다.
‘시니어 시크’를 위한 원칙
패션은 노년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있다. 옷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과 같은 우리의 외양을 창조하는 도구는 살아온 생의 서사를 쓰는 장치다. 노년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과정과 결과물을 숙성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시기다. 노년의 패션 스타일링은 젊은 날의 방식과 다른 신중함과 관점이 요구된다.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내적인 자신감이 밖으로 표출돼야 한다. 옷태라는 단어에서 태(態)란 한자가 ‘내 마음이 막힘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변화하는 신체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지나치게 넉넉한 실루엣의 옷을 입는 일도 피해야 한다. 시니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다. 패션은 노년의 몸을 ‘못나고 늘어진 어떤 상태’로 규정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자기검열을 통해 그 늪에 빠질 뿐이다. 패션의 매혹은 감춤이 아닌, 여전히 아름다운 신체의 부분으로 타인의 시선을 모으는 데서 나온다. 항상 피팅이 된 옷을 골라야 한다. 당신이 축적해온 선별력 있는 눈을 옷을 고르는 데 써야 한다. 우아함의 어원이 ‘심혈을 기울여서 선택한다’는 단어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 당장 옷장에서 오래된 옷들을 버리고, 가장 단순한 선과 중성색(화이트, 블랙, 베이지)으로 된 기본 품목으로만 채운다. 이러한 원칙부터 끈덕지게 지켜보자. 참조할 수 있는 모델이 있냐고 묻는 분이 많다. SNS를 켜고 ‘#AGELESS’라는 표제어를 넣어보라. 멋진 노년을 함께하자며 자신의 스타일을 공유하는 수많은 이가 당신을 기다린다. 그들을 보며 외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멋 내기 딱 좋은 나이!”라고.
뒷모습이 청년 같았다. 낡은 청바지에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중간 톤의 체크무늬 셔츠. 햄버거 주문을 하며 서 있는 남자의 옷차림이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문득 그의 앞모습도 궁금해졌다. 그 순간 그가 햄버거와 커피를 받아들고 뒤돌아섰다.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반전이었다. 그는 허리가 금방이라도 휘어질 것 같은 나이로 보였다.
굽은 나무는 멋스럽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옷매무새가 좋아 보이려면 일단 몸이 곧아야 한다. 그래야 당당하고 자신 있어 보인다. 패션쇼에 나오는 의상들을 일상에서 입는다면 소화 못할 옷이 많다. 그러나 그 옷을 걸치고 모델이 당당하게 자신감 넘치는 스텝으로 걸으면 그럴듯해 보인다.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지면 다리도 벌어지고 무릎도 구부러진다. 젊음을 포기하면 몸도 따라간다. 탄탄한 근육과 생동감 넘치는 표정은 싱싱하다.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처럼 반짝인다. 무얼 입어도 근사해 보인다. 늙는다고 멋까지 잃어버리면 안 된다. 우리에게는 중후함과 우아함이 있다. 이것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자신감이 생기고 행동도 달라진다. 잘 다듬은 세련미를 무기로 나이보다 젊게 옷을 입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에도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
패션 감각도 세대에 따라 많이 다르다. 우리 세대는 3가지 색 이상으로 옷을 코디하지 말라고 배웠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보색에다 튀는 색깔의, 좀 정신없어 보이는 패션을 하고 다닌다. 고정관념의 파괴를 일으키는 세대다. 자유롭고 과감한 패션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마치 물감을 갖고 노는 기분이랄까.
나이가 드니 어두운 색이 싫다. 얼굴이 컴컴해 보일 것 같아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밝은 색의 옷을 입는다. 어두운 색상의 옷을 입으면 스카프나 브로치 등으로 포인트를 준다. 옷 잘 입는 요령은 때와 장소에 맞게 갖춰 입는 것이다. 아무 때나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가끔은 특별한 사정도 있겠지만 마치 불감증에 걸린 사람처럼 보이고 성의도 없어 보인다. 나이가 지긋한 한국 남자들의 패션은 마치 군복 같다. 하나같이 우중충한 색깔에 신발도 거무튀튀한 색이 많다. 남자는 코트에 목도리만 잘 걸쳐도 멋이 있다. 이제 생존을 위해 옷을 입던 시절의 얘기는 꺼낼 필요가 없다. 다양한 패션 문화에 적응해보자. 비 내리면 레인코트, 가을엔 바바리코트, 눈 내리는 겨울엔 털 달린 파카, 늦겨울 봄 눈 트는 따스한 날엔 좀 화사한 재킷, 연말 모임이나 축하 파티에서의 화려한 옷차림이나 장신구는 보기에도 좋고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한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며 나이 든 당신들, 이제 허리 펴고 멋진 노년을 맞이하면 좋겠다. 마사지를 하고 화장하는 젊은이들을 나무라기보다는 그들의 패션 감각을 적극 배워볼 때다.
“당신이 조깅 바지를 입는다면, 삶의 통제를 완전히 잃은 것과 다름없다.”
올백 포니테일, 진한 선글라스 그리고 거침없는 발언까지. 존재만으로 브랜드가 되었던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향년 8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2010년 문화적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에겐 ‘패션계의 거장’, ‘패션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항상 뒤따랐다.
그가 패션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은 1954년 국제양모사무국(International Wool Association) 콘테스트에 출전해 코트 부문 1등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이후 피에르 발망, 장 바투를 거쳐 1964년 끌로에의 수석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았다.
무엇보다 ‘칼 라거펠트’ 하면 샤넬을 빼놓을 수 없다. 1982년 샤넬에 공식 영입된 그는 1983년 샤넬 오뜨꾸띄르(고급 맞춤옷)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당시 독일인, 기성복 디자이너라는 그의 경력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편견을 뒤집는 계기로 만들었다. 그는 한물간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았던 샤넬의 기존 아이템에 대중적인 문화 요소를 결합해 젊은 층의 팬을 확보하며 다시 한번 샤넬의 부흥을 이끌었다.
지난 1월 22일 파리에서 열린 샤넬 패션쇼 피날레에 그가 나타나지 않자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건강 악화설, 은퇴설 등 그가 샤넬을 맡은 35년 동안 피날레에 서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이슈가 됐다. 그로부터 4주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췌장암. 샤넬은 SNS를 통해 “1983년 이후 샤넬 패션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커펠트의 서거를 발표하게 된 것은 깊은 슬픔으로 다가온다”며 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이 소식을 접한 유명 패션계 인사들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왜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어차피 내가 죽을 때 모두 끝날 것을.”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샤넬(Chanel), 펜디(Fendi), 칼 라거펠트 등 유명 브랜드를 지휘했다. 건강이 악화된 최근까지도 오는 3월에 열릴 여성복 패션쇼를 준비할 만큼 일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많았다. 한평생 패션에 몸 받치며 트렌디한 패션을 보여준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열다섯 살 소녀는 키가 멀대같이 컸다. 친구들이 꺽다리라고 놀려댔다. 선생님은 운동을 권했지만 소녀의 눈에는 모델과 영화배우의 화려한 옷들만 아른거렸다. 아버지가 가끔 사오는 잡지를 들춰보며 무대에 오르는 꿈도 꿨다. 패션계를 주름잡던 모델 루비나를 흠모하고 카르멘 델로피체처럼 되고 싶었던 소녀는 자주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그리고 어느새 75세가 되어버린 은발의 소녀는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말았다.
발가락 다섯 개만 겨우 집어넣은 하이힐을 신고 그녀가 무대 위에 오르자 관객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숨이 막혀왔다. 등짝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조명 속에서 쾅쾅 울려대는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런웨이를 돌아 나오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캣워크를 무던히도 연습했건만 소용이 없었다. 등 뒤에서 누가 자꾸 쫓아오는 것만 같아 도망치듯 걸었다.
‘2018 F/W 헤라서울패션위크’에서 ‘키미제이’ 메인 모델로 런웨이에 오른 최화자 씨는 아직도 설레는지 두 볼이 발그레했다.
“너무 떨렸어요. 높은 구두를 신고 걸어가다 잘못해서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죠.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요. 시니어 모델이 국내 최대 패션쇼 메인 모델로 발탁된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키미제이 대표 김희진 디자이너가 함께 모델 공부를 하는 김칠두 선생이랑 저를 부르시더니 무대에서 선보일 옷을 입혀보고 워킹도 해보라 하셨어요. 부족한 게 많았을 거예요. 그래도 우리를 과감히 메인 모델로 세우셨어요. 김칠두 선생은 오프닝, 저는 피날레 무대를 장식했죠.”
20대 젊은이들을 위한 패션쇼에 “웬 시니어 모델?” 하며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었을 터. 그러나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카메라 감독들도 이 낯설고 도발적(?)인 무대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셔터를 눌러댔다.
“런웨이에 오르기 전, 실수만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걱정했던 것보다 무대 분위기가 괜찮았나봐요. ‘신선하다, 젊은 모델과 견줘도 손색없다, 멋지시다’ 하며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주시는 카메라 감독도 있었어요. 꿈만 같았죠.”
은발의 소녀는 수줍게 웃었다.
칠십 넘어 시작한 모델 공부
최화자 씨가 본격적으로 모델 공부를 시작한 것은 71세 때인 2014년. 강남에 모델 교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당장 달려가 등록을 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너무 늦은 출발이었다. 대부분은 허리가 굽고 다리가 휘어질 나이였다. 친구들은 봉사나 하러 다니면서 손주들이나 돌볼 일이지 그 나이에 유난스럽게 별 걸 다 배운다며 한마디씩 했다.
“우리 집 애들도 ‘운동 삼아 다니시겠지’ 했대요. 엄마 나이에 모델? 전혀 상상이 안 됐던 거죠. 지금은 ‘우리 엄마 점점 더 멋져지시네!’ 하면서 좋아해요. 손주들도 ‘우리 할머니 짱!’이라고 해주고요.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내 품에 손주들을 안겨줬을 때도 기뻤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말하라면 바로 지금이에요.”
그래도 칠십이 넘은 나이에 하는 공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허리를 똑바로 펴고 걷는 것부터 연습했어요. 기본 워킹에 표정 연기, 포즈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어요. 처음엔 일자로 걷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비뚤어진 체형 바로 잡는다 생각하고 틈날 때마다 거울 보며 연습했어요. 또 장 보러 갈 때도, 친구 만나러 갈 때도, 전철 타러 갈 때도 일자걸음으로 걸으려 애썼죠. 그러기를 벌써 5년이 됐네요. 그런데 왜 표정 연기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걸까요?(웃음)”
중학교 때 소녀의 키는 168cm나 됐다. 선생님은 키가 크니 운동선수를 해보라 권했다. 그러나 소녀는 운동이 싫었다. 온통 예쁜 옷에만 관심이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상상도 자주 했다. 하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잡지 속 여인들처럼 예쁜 얼굴이 아니라서 주눅이 들곤 했다.
“‘나는 못생겨서 모델을 할 수 없을 거야’ 하면서도 자꾸 그쪽을 돌아봤어요. 한동안은 패션계를 주름잡던 모델 ‘루비나’에 푹 빠져 지냈어요. 제 롤모델이었지요. 움푹 들어간 눈이 묘한 매력을 발산하던 그 여인, 카리스마가 대단했죠. 카르멘 델로피체는 또 어떻고요. 부러움과 질투심을 동시에 일으키게 하는 여인이잖아요. 올해 87세인데도 무대를 누비고 다닌답니다. 그녀의 표정과 몸매를 보셔요. 전율이 느껴지지 않나요?”
열다섯 살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꿈꾸는 소녀처럼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휴대폰에는 델로피체의 사진이 한가득이었다.
파도가 몰아치던 시절
한 됫박의 물음표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인생일까. 누구든 파도가 치는 시절을 겪는다. 40대 때 그녀의 삶도 물음투성이였다. 하루 종일 눈물이 흐르는 시간을 살던 어느 날 무작정 교회를 찾았다. 기도라도 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경제적 어려움과 인간에게서 받은 상처로 휘청일 때 종교는 위안이 됐다. 아직 먼 곳을 바라볼 힘은 없었지만 그날그날 이겨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조금씩 생겨났다.
“경제적으로 크게 무너지니까 회복이 잘 안 되더라고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어요. 그러나 주부로만 살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더군요. 하루는 막막한 심정으로 벼룩시장 광고지를 들여다보는데 간병인을 모집한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우리나라가 서독으로 간호사를 파견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1970년대 무렵이었을 거예요. 결혼 전 저도 독일에나 가볼까 하고 간호 보조 교육을 받았어요. 결국은 못 갔지만 간호 업무를 배워둔 덕에 한전 부속병원 소아과에 취직도 할 수 있었죠.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병원일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이 일 저 일 가릴 형편이 아니어서 용기가 났는지도 몰라요. 그렇게 17년 동안 간병일을 했어요. 아직도 함께 일했던 몇몇 동료들이 일하고 있는데 급한 상황이 생기면 가끔씩 도와 달라고 전화가 옵니다. 예전에는 돈 때문에 일했지만 지금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갑니다.”
간병일을 하면서 그녀는 인간의 모습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젊은 사람에게 병원은 나아서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곳이지만 노인에게 병원은 저 세상으로 가기 전 들르는 정거장 같은 곳이었다. 가진 게 많든 적든 떠나는 길은 다 똑같았다. 모두들 후회하고 아쉬워했다. 그래서 그녀는 더 건강을 챙기고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했다.
“모델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뒷방 노인네처럼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뒤늦게라도 시작한 공부가 삶의 원동력이 되었어요. 알게 모르게 건강에도 많은 도움을 받는지 대사증후군도 없고 당뇨, 고혈압도 없어요. 뱃살 하나 없이 몸무게도 일정해요. 의사 선생님도 깜짝 놀란답니다.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재미있고요. 10년, 20년 아래 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감각도 생각도 젊어지는 것 같아요.”
쇼호스트에도 도전
그녀는 현재 ‘더쇼프로젝트 모델컴퍼니’에서 공부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나가 워킹과 표정, 포즈를 연구하고 연습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정영주 대표는 청계천수상패션쇼, 광명동굴패션쇼 등 다양한 공연을 통해 시니어 모델 참여를 기획하고 도왔다. 정 대표 덕분에 그동안 10여 차례 패션쇼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최근 메인 모델로 무대에 오르는 데도 큰 힘이 되어줬다. 소중한 인연이다.
그녀의 첫 무대는 무사했을까.
“당연히 진땀 흘렸죠. 무대에 오를 때는 대본을 먼저 짜요. 어디까지 걷고 어떤 포즈를 하고 어떻게 들어와라 하는 내용이죠. 첫 무대에 올랐을 때 얼마나 떨렸겠어요. 잔뜩 긴장해서 걷고 있는데 한 분이 ‘그쪽으로 가면 안 돼’ 하고 지적을 해서 순간 아찔했어요. 지금 같으면 표 나지 않게 수습했겠지만 그때는 무대 경험이 전무했던 터라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그래서 ‘어머나! 어떡하지? 내가 실수했나봐’ 하고 뒤로 돌아선 거예요. 뒤따라오는 사람 얼굴과 떡 마주쳤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잘못 알고 지적을 했더라고요. 교수님은 누가 실수를 해도 지적하지 말라고 조언하셨어요. 당황해서 더 큰 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우왕좌왕 허둥댔던 그날이 어느새 추억이 됐네요.(웃음)”
최근에 쇼호스트 공부도 시작했다는 그녀. 건강할 때까지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단다. 시니어가 자신을 보며 ‘이 나이에 이런 사람도 있네’ 하면서 자극을 받아 자신의 삶을 한 번 더 불태우면 좋겠다는 바람도 슬쩍 귀띔한다.
영원히 박제될 뻔했던 꿈, 다시 꺼내어 펼쳤으니 그녀만의 무대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5월 5일 저녁 7시 삼성역 코엑스 D홀에서 2018 제13회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이 열렸다. 각종 미디어 업체의 촬영 팀들과 패션 업체의 관계자들, 일반 관객들로 인해 행사장은 열기로 넘쳤다.
'문명의 꽃' 최첨단 디지털 세상에서는 무대를 꾸미는데 엄청난 에너지와 재원이 필요하지 않았다. 컴퓨터만 있으면 해결되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처리한 배경화면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커다란 건물 어디에 내가 찾는 장소가 있을까? 코엑스 갈 때마다 헤맨다. 그러기에 코엑스에서 행사가 있을 때는 시간을 넉넉히 잡고 나가야만 한다.
D홀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큰 키에 킬 힐을 신고서 몸매가 젓가락 수준의 모델들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헤맬 일이 없었다. 그들만 쫓아가면 되니까. 유럽에서는 깡마른 모델들을 퇴출한다고 하는데 아시아는 아직 아닌가보다. 모델과 발레리나들은 옷맵시는 나는데 가까이서 보면 그녀들의 몸매는 볼륨감이 없이 밋밋하다. 불쌍해 보일 정도로 깡마른 그녀들은 거의 샐러드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엄격하게 절식을 한다고 하였다. 발레리나들은 무거우면 '파드데'를 출 때 파트너인 발레리노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고 모델들은 옷맵시에 목숨을 거니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60여 개 아시아 국가의 모델들이 각기 자기 나라의 민속 의상을 입고 패션쇼를 했다. 나라마다 고유의 색깔과 디자인이 아름다웠다. 다채로운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은 모델들이 한껏 옷맵시를 뽐내고 있었다. 연예인과 모델들은 끼를 타고나야만 한다.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그들의 끼는 관객들에게 훨씬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하기 마련이다.
인도 사람들은 의상에 엄청 신경을 쓰는 듯하다. 그들은 대체로 화려한 색상의 실크 의상을 즐겨 입는다. 색감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이태리인데 인도 사람들의 색감도 장난이 아니다. 인도 의상이 가장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보는 것도 배우는 것이다. 시니어 모델로서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눈여겨 보았다. 젊은 모델들은 몸매가 아름다워서 옷맵시가 훌륭했다. 모델 조건이 느슨한 아마추어 시니어 모델들과는 확실히 차별화가 되었다.
2018년 1월 2일 SBS 모닝 와이드 3부 '오늘의 별 * 그대'를 찍었다. 아침 10시부터 밤 9:30까지 하루 종일 촬영했다. 아침에 마테 차와 디톡스 쥬스 한잔만 마시고 거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쫄쫄 굶고 촬영을 해야만 했다. 피디님이 코트를 입으면 내 패션이 잘 드러나지 않으니 코트를 벗어야만 한단다. 겨울 날씨에 코트를 벗고 홑겹의 드레스 차림으로 찍어야만 했다.
"얼어 죽는 데 지장 없지!"
"감기 걸리는 데 지장 없지!"
혼잣말로 너스레를 떨며 촬영을 했다. 그런데도 촬영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배도 고프지 않고 추위도 견딜 만했다. 아무래도 방송 체질인 것 같다.
맨 처음에 '시인뉴스'에서 시인과 기자로 활동하는 친구와 플로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평택여고 제자가 우리 집에 방문하여 나의 촬영 활동을 도와주었다. 두 사람이 내 패션에 대해 각기 한마디씩 했는데 아주 자연스럽고 사진도 예쁘게 나와서 흡족했다. 바쁜 일정 중에도 내가 부르니 달려와 준 친구와 제자가 많이 고마웠다.
아침에 촬영 팀이 우리 집으로 왔다. 잠시 후 친구와 제자가 우리 집을 방문하여 내 옷을 입고 악세사리를 착용한 후 셋이서 패션 쇼 포즈를 취했다. 다음에는 인근에 있는 삼성동 시장에 가서 한참을 왔다 갔다 쇼핑을 하며 시장 상인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찍었다.
다음에는 동대문 시장으로 갔다. 내가 좋아하는 샤방샤방한 스타일의 라일락 색깔의 샤 스커트 구입하는 과정을 촬영하였다. 옷집 사장님이 내 옷차림에 대해서 한마디 하였다. 다시 우리 집으로 와서 이번에는 나 혼자서 패션쇼를 했다. 여러 종류의 드레스를 단 시간에 갈아입어야만 했다.
아들 같은 젊은 피디님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몰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촬영은 촬영대로 해야 했고 운전까지 하였다. 우리 집으로 왔다가 삼성시장으로 다음에는 동대문 시장까지 갔다가 다시 우리 집으로. 잠시도 쉴 틈 없이 촬영하고 운전하는 그가 너무 걱정이 됐다. 아무리 젊어도 그렇지 이 살인적인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하나! 몸이 버텨낼 수 있는 건지. 그의 건강이 심히 걱정됐다.
다음날인 1월 3일 아침 8:15분 모닝 와이드 3부에 어제 촬영한 것이 나왔다. '이건 완전 번갯불에 콩 궈 먹는 식이다' 피디는 어제 낮에 하루 종일 시달리고 밤새 잠 한 숨 못자고 편집하여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내 보낸 것이다. 피디도 객관적으로 보면 로망이지만 가까이서 지켜보니 너무 힘든 직업이었다. 나는 하루로 끝나지만 피디는 이게 일상이라면 정말 못 견딜 일이다.
"피디도 3D 업종이네요!"
그가 안쓰러운 내가 한마디 하자 그는
"4D 업종이예요"
내 말을 바로 정정하였다
이로써 지상파 세 개의 방송국 MBC, KBS, SBS까지 다 출연해 봤고 이밖에 MBN과 EBS 그리고 국회 방송까지 출연하였다.
내게 있어 방송 출연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다. 서둔야학 선생님들 얘기가 나갔으면 하는데 번번이 편집되었다. 방송은 내 입맛대로가 아니라 피디님의 각본대로 움직인다는 점이 아쉽고 또 아쉬웠다.
"교육은 마음 밭을 가꿔주는 것이다"
나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끄집어내어 황폐해진 사회에 커다란 울림을 주고 싶은 내 소망은 언제나 이루어지려나?
'천둥이 자주 치면 비는 내리게 되어있다'
모델!
시니어들에게 차별화된 자부심을 심어주는 명칭이 아닐까?
'나 이렇게 멋지다!'
패션쇼를 할 때 그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으로 빛난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열정으로 가득하다.
모델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대다수 여성들의 로망이다. 요즘은 남성들도 많은 관심이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는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 2026년에는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은퇴 후 재정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를 강력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은 없을까?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비용으로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2012년 퇴직하면서 무엇을 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놀까 고민했다. 필자가 하고 싶은 것은 패션모델과 패션디자이너, 왈츠와 탱고 배우기, 오페라와 발레 감상이었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곳은 서울이었다. 필자가 사는 평택은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있다. 그렇다면 서울로 가자! 그래서 집을 서울로 옮겼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했다.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운용되고 있는 곳은 강남시니어플라자와 서초문화원이었다. 서초문화원에서는 영어회화, 수필 쓰기, 시 낭송하기, 문화해설사, 왈츠 과목을 수강했다. 모델 워킹 수업은 서초문화원에 없어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받기로 했다.
강남시니어플라자 프로그램 중에서 상한가를 친 것은 단연 '모델 워킹'이다. 이 과목은 늘 대기자들로 넘친다. 나는 초창기부터 수강해 벌써 3년이 지났다. 모델 워킹은 경쾌한 음악에 맞춰서 바른 자세로 1시간 동안 워킹을 한다. 몸도 좋아지고 마음이 즐거워져 힐링도 된다. 이른바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훌륭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2018년부터는 강남구민만 강남시니어플라자 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게 됐다. 소비자의 강력한 니즈가 있는 곳에서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탄생하는 것이다. 수요가 있는데 공급자가 없다. 누가 과연 이 블루오션을 선점할 것인가? 결실은 재빨리 트렌드를 읽어내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상암에서 영등포 비콤 벗들과 송년 행사가 있던 날 언주역에 있는 삼정호텔로 갔다. 코리아시니어 모델 학원 김소영 원장님 초대로 패션쇼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모델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입기 때문에 세련됨이나 기품이 떨어지는 옷들이 간혹 눈에 띄어 아쉬웠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모두 통과! 사진에 담지 않았다. 4기 수료식과 패션쇼를 마친 후에는 '시니어 롤 모델'에 관련한 짧은 강의도 있었다.
뷔페로 마련된 식사시간에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성악가들의 공연이 있었다. 먼저 바리톤의 우렁찬 목소리로 비제의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를 불렀다. 다음은 소프라노 차례.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 중에 나오는 너무도 아름다운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가 곱게 흘러나왔다. 이어진 순서인 테너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에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렀다. 이어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화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아름다운 이중창 '투나잇 투나잇'을 테너와 소프라노 둘이서 불렀다.
"이번에 부를 곡은 뭘까요?"
테너가 참석자들에게 물었다.
"축배의 노래요."
필자가 대답했다.
그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아셨지요?"
당연한 것 아닌가? 즐거운 식사 자리에서 대미를 장식해야 하는 노래로 그 곡을 뛰어넘는 곡은 없으니까 말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는 젊음의 환희가 가득한 아름답고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다.
바로 이거다!
품격 높은 현역 성악가들을 초빙한 것은 감각 있는 원장님의 '신의 한 수'였다. 참석자들의 즐거운 저녁 만찬 시간이 단번에 럭셔리한 분위기가 되었다. 레퍼토리가 너무도 잘 알려진 곡들이라서 신선함은 떨어졌지만 익숙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클래식 음악 마니아인 필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행사였다. 새삼 김소영 원장님의 기획력에 깊은 신뢰가 간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머지않아 멋지고 아름다운 그녀의 꿈이 큰 결실을 맺을 것이다.
부르는 곳도, 갈 곳도, 챙겨야 할 날도 많은 한 해의 마지막 한 달. 어떤 자리에서도 당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을 연말 패션 전략을 준비해봤다.
‘옷장 파먹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음식문화가 있다. 특별한 날 고가의 화려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대신, 자신의 집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재료를 꺼내 근사한 음식을 완성한다. 일명 ‘냉장고 파먹기’라 불리는 이 식문화가 패션에도 전이되고 있다. 즉 이젠 무엇을 입는가보다는 어떻게 입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라는 얘기. 지금 줄줄이 소시지처럼 연이어 잡혀 있는 연말 모임을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쇼핑이 아니라 당신의 옷장을 탐색하는 일이다.
만일 여성들끼리의 모임이라면 좀 더 튀는 스타일로, 부부 동반이라면 커플 분위기를 맞춘 격식 있는 룩이 어울린다. 전자의 모임에는 옷장 속에서 가장 손이 덜 탄 옷을 골라보자. 평소에 잘 입지 못했던 옷을 이번 연말 모임에서 ‘데뷔’시키자. 분명 안 입은 이유는 화려하거나, 불편하거나(대부분 사이즈에 관한 문제일 터)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모임에서는 튀어도 좋고, 조금 타이트해도 좋다. 평소의 나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니. 이번 시즌 트렌드 중 하나인 ‘원 컬러’ 스타일링에 도전해봐도 좋고, 믹스 매치로 패션에 재미를 더해봐도 좋을 듯. 영국 여왕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톤의 컬러로 통일해서 입으면 별다른 액세서리 없이도 눈에 띈다. 이때 12색 크레파스 같은 원색보다는 파우더리 핑크, 다크 그레이, 스카이 블루같이 ‘중간 컬러’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믹스 매치의 경우에도 캐주얼한 원피스에 포멀한 재킷을 더한다든지, 반듯한 화이트 셔츠에 화려한 디테일의 스커트를 매치한다든지 아이템들 사이에 온도 차이를 두어 지루하지 않게 룩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포멀한 자리에는 스커트’라는 공식을 머리에서 지우고 팬츠에 눈을 돌려보자. 연말 시상식에 블랙 슈트 차림으로 등장한 김혜수를 기억하는가. 모두들 여성스럽게 입을 때, 오히려 매니시한 팬츠 슈트로 차이를 두는 것. 이것이 고수의 전략이다.
남자의 경우에는 터틀넥이나 컬러감 있는 스웨터를 이용하자. 나이 불문하고 터틀넥은 여자들을 설레게 한다. 머릿속에 콜린 퍼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의 시그니처 룩이기도 한 블랙 터틀넥과 속에 곰돌이 스웨터를 입은 모습이 자동으로 그려질 것이다. 그가 여자들이 꼽는 지구에서 가장 멋진 남자 중 한 명이란 사실에는 이 옷차림이 8할의 역할을 했다.
연말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임의 성격을 반영한 룩이다. 일찍이 파티 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파티 초대장에 드레스 코드를 표시한다. 예컨대, ‘블랙 타이’나 ‘포멀’이라고 적혀 있으면 턱시도에 보타이 차림이나, 정장 슈트를 입으라는 것이고, ‘화이트 타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면(하얀색 타이를 매라는 것이 아니라) 오후 5시 이후의 예복인 연미복을 입으라는 뜻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드레스 코드를 자주 지명한다. 만일 당신의 파티 초대장에 드레스 코드가 표시되어 있다면 그 의미를 잘 파악해서 입자.
너와 나의 연결고리, 커플 패션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는 모임(특히 회사 모임)에는 단정하고 우아한 커플 룩을 연출하자. 이때는 옷의 디자인만큼이나 소재도 중요하다. 겨울 옷, 특히 포멀한 룩에서 고급스러운 소재는 생명이나 다름없다. ‘조명발’ 제대로 받는 벨벳, 자카드, 실크 같은 소재를 활용하자. 그리고 부부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자. 대놓고 커플 룩을 연출하기보다는 남편의 양말 컬러와 아내의 스카프 컬러를 맞춘다든지, 같은 소재의 아우터를 입는다든지, 작지만 요란스럽지 않게 커플 룩을 보여주는 것이다.
패션의 꽃, 액세서리
앞서 얘기했듯이 연말 모임을 위해 새 옷을 살 필요는 없다. 모임 룩에서 중요한 건 옷보다는 액세서리 연출이다. 포멀한 옷차림에서 액세서리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진주로 된 액세서리는 언제나 평균 이상의 멋을 내고, 화려한 스톤이 박힌 브로치는 이때가 아니면 옷장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이슈가 되는 패션은 영국 전통 브랜드 버버리 프로섬의 패션쇼에서 선보인 브로치 스타일링 법이다. 가슴 한쪽을 가득 채운 빅 사이즈의 브로치(혹은 작은 브로치를 여러 개 레이어드한다)는 힘 없는 옷 혹은 주름진 얼굴로 갈 시선을 브로치로 집중하게 만든다. 평범한 니트에도 단번에 생생한 생명력을 선물하는 것이 브로치의 힘이다.
남자라면 보타이나 서스펜더, 모자 같은 액세서리에 눈을 돌려보자. 출근복과 파티 룩 사이에 쉼표를 찍어줄 아이템들이다.
연말 모임을 위한 메이크업
연말 모임 룩은 대부분 블랙을 바탕으로 하기 쉽다. 이때 메이크업은 평범한 룩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연말에는 뷰티 브랜드마다 ‘홀리데이 컬렉션’을 선보인다. 과거에는 컬러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질감’이 중요하다. 어깨나 목 혹은 눈 부위에 화려한 질감의 메이크업을 더해주면 컬러 없이도 화려하게 만들어준다. 립의 경우는 반대로 벨벳처럼 부드러운 질감의 제품이 트렌드다. 얼굴 위의 컬러를 줄였다면, 대신 손끝에 힘을 주자. 펄이 더해진 네일은 다이아몬드보다 당신의 손을 더 빛나게 해줄 것이다.
시니어를 위한 ‘액티브시니어&수면케어박람회 2017(Active Senior & Sleep Care 2017)’이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력 있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액티브시니어박람회’는 제2 인생 설계를 위한 국내외 유망 관련 산업을 소개한다. 이는 국내 최초로 개최되는 시니어 전문 박람회로 레저/여가, 힐링, 리빙, 뷰티, 취미/토이, 금육, 교육, 의료서비스, 스마트가전 등 관련 산업 전반의 다양한 참가업체를 만날 수 있다. 함께 진행되는 ‘수면케어박람회’에서는 수면보조침구 및 용품, 보조기기, 수면의료, 수면식품/약품, 숙면테라피/케어 등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현대인의 수면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와 방안을 제시하는 전시품이 출품된다.
다양한 부대 행사도 진행된다. 시니어가 펼치는 패션쇼 ‘서울시니어컬렉션’에서는 3가지 주제를 가지고 3일간 화려한 쇼를 펼칠 예정이다. 건강하고 활기찬 시니어를 위한 행사로 사단법인 한국액티브시니어스포츠협회가 ‘협회장배 액티브 시니어 뉴스포츠 최강전’을 개최한다. 3일에 걸쳐 스포츠스태킹최강전, 셔플보드최강전, 한국최강전이 열리며 대한민국 50대 이상 남, 여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요가 전문 업체 나디아요가는 건강한 삶을 위한 요가강좌, 시연회, 요가 관련 용품을 선보인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50년에는 노령인구의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노령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들 중 자산과 소득 수준이 높아 능동적인 소비 주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한 마케팅이 활발한 추세다. 이번 박람회에는 250여 개 국내외 기업이 참가 예정이며 관객참여 이벤트, 다양한 시현 행사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