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 있는 중장년층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골프가 ‘짝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에도 오히려 골프 인구가 늘자, 골프용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판국이다. 이에 ‘짝퉁’ 골프용품이 기승을 부리면서 시니어 골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국 501개 골프장 이용객은 4673만 명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4170만 명)보다 503만 명(12.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골프 인구는 2019년보다 9.8%(46만명) 증가한 515만명으로 추정된다. 탁 트인 필드에서 한정된 인원으로 즐길 수 있어 코로나19 이후 골프에 대한 수요가 오히려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자 골프용품 수요도 치솟고 있다.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1년 상반기 및 6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백화점 상품 중 아동·스포츠 용품 매출이 35.1% 늘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해외여행에 대한 제약이 지속되면서 유명 브랜드의 매출이 큰 폭으로 늘었고, 골프 관련 상품도 판매호조를 보였다”고 말했다.
골프용품 수요가 폭증하면서 중국산 짝퉁 제품도 기승을 부리는 모양새다. 미국 매체 USA투데이는 17일 “일부 업자들이 유명 브랜드를 모방한 중국산 가짜 용품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6월 있었던 세 차례 단속에서 중국 둥관시에서만 1만 개가 넘는 짝퉁 클럽이 압수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세관에서 적발한 골프용품 가품 건수는 PXG만 3657건에 달했다. 타이틀리스트, 마크앤로나, 캘러웨이, 스카티 카메론, 혼마 등 다른 골프용품 전문 브랜드까지 고려하면 1만 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청탁용 짝퉁 골프채를 받아 감봉 3개월에 그친 판사 사례도 보도된 바 있다. 수천만 원대에 달하는 골프채가 알고 보니 감정평가액 50만 원에 그치는 짝퉁 물건이었던 것이다. 골프클럽 말고도 골프공, 골프웨어나 클럽의 일부 부품이 짝퉁인 경우도 많다.
온라인 적발 건수는 줄고 있지만 중국 등 해외에서 유입되는 가품이 적발되는 건수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지난해 가품 적발 금액은 PXG만 20억 원이다. 이는 진품 소비자가로 환산하면 6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타이틀리스트와 PXG 등의 유명 골프용품 브랜드들은 전담팀을 꾸려 짝퉁 문제에 대응하고 있지만 적발이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가품 판매자들은 ‘병행제품’, ‘특별품’ 같은 단어를 기재해 시니어 구매자들을 속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바바나 쿠팡 등의 오픈마켓, 네이버 밴드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도 가품 판매자의 주된 판매처다. 타이틀리스트 관계자는 “정품과 가품은 재질에서부터 차이가 크다”며 “입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가품은 정품 대비 50~60% 싼 가격에 판매되며 SNS를 통해 판매되는 상품은 가품일 확률이 아주 높다”며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이 같은 분위기를 더 뜨겁게 만든 메달로 효도한 스포츠 선수들의 사연이 공개돼 화제다.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를 위해 도마와 골프장 필드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여서정(19·수원시청)과 1996 애틀랜타올림픽 도마 은메달리스트 여홍철(50) 경희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여서정은 1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3위를 기록했다. 이번 동메달은 선수 개인에게 첫 올림픽 메달이자 한국 여자 체조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이어서 더욱 값졌다.
부녀는 실수하는 모습마저 닮았다. 여서정은 결선 2차 시기에서 난도 5.4의 비교적 쉬운 기술을 시도했으나 착지 과정에서 탄력을 이기지 못하고 세 발짝 물러나는 실수를 했다. 이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여홍철이 2차 시기에서 착지할 때 뒤로 밀렸던 장면과 똑같았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낸 여홍철·여서정 부녀는 한국 첫 ‘부녀 올림픽 메달리스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여서정이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면서 여서정 가족이 11년 전 출연한 방송도 화제가 되고 있다. 2010년 9월 28일 KBS 교양프로그램 ‘여유만만’에 출연한 여홍철과 여서정의 발언이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당시 여홍철 교수는 “2020년 올림픽에서 딸이 메달리스트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조를 시작한지 3개월 차였던 9살의 여서정은 “6, 7세부터 체조선수가 꿈이었다”며 “훌륭한 국가대표가 돼서 메달을 많이 따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년 미뤄졌지만 대회 이름은 ‘2020 도쿄올림픽’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부녀는 결과적으로 그 꿈을 이룬 셈이다.
남자 골프 금메달리스트인 잰더 쇼플리(28·미국)의 올림픽 출전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잰더는 그의 아버지이자, 유일한 골프 스승인 스테판 쇼플리가 못다 이룬 꿈을 위해 올림픽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독일계 미국인인 스테판은 젊은 시절 독일 대표 육상선수로 올림픽 출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을 2년 앞 두고 발생한 불의의 사고로 출전이 좌절됐다. 스무살 때 훈련하러 가던 길 음주운전 차량과 추돌 사고가 나면서 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잰더가 목에 건 메달은 80여 년 전 할아버지인 리처드 쇼플리가 꿨던 꿈이기도 했다. 리처드 역시 국가대표급 육상선수로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준비했으나 부상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대만 출신이자 일본에서 생활한 어머니 덕분에 일본 문화에 익숙한 잰더에게 이번 메달은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 잰더 쇼플리는 “아버지는 나의 성공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셨다. 어머니의 고향도 여기여서 내겐 많은 것들이 (메달 획득의)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1일 2020 도쿄올림픽 골프 남자부 4라운드에서 4언더파를 쳐 최종합계 18언더파 266타를 기록했다. 이로서 미국은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골프 부문 금메달을 획득했다.
골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넓은 야외에서 적은 인원이 함께 즐길 수 있어 코로나19 ‘청정 지역’이라는 인식이 생겨서다. 광활한 야외 필드뿐만 아니라 지인들끼리 즐길 수 있는 룸 형식의 스크린골프도 인기다.
동시에 골프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급증했다. 일반적으로 골프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몸을 격하게 움직이지 않는 운동처럼 인식돼 부상을 경계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스윙을 장시간 반복하면 관절과 근육이 손상될 수 있다. 이를 무시하고 방치했다가는 만성 통증으로 진행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에 골프를 즐기는 중장년층에게 많이 나타날 수 있는 증상 4가지를 꼽아봤다.
1. 어깨 회전근개 파열
회전근개는 어깨와 팔을 연결하는 근육 4개(극상근, 극하근, 견갑하근, 소원근)와 힘줄을 말한다. 어깨 관절이 회전운동을 할 수 있게 하고 안정성을 유지한다. 회전근개 파열은 회전근개 근육이나 힘줄의 퇴행성변화, 어깨 관절과 회전근개 힘줄 사이의 활막 자극이나 염증, 외상이나 무리한 운동 등으로 발생한다. 스포츠 활동이나 외상으로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다.
회전근개 파열은 만성 통증을 유발한다. 대표 증상은 어깨 통증으로 주로 팔을 위로 들어 올리거나 아래로 내릴 때 특정 범위에서 통증이 심해진다. 보통 5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 주로 발생한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증상으로 발병하는 오십견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몸을 바로 세우면 통증이 감소하고 누운 자세에서는 통증이 심해져 통증이 있는 쪽으로 돌아누워 잠을 잘 수 없다. 수면장애를 호소하기도 한다. 이 외에 근력 약화와 어깨 결림, 어깨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 같은 증상도 있다. 의심되면 병원을 찾아 제대로 치료받아야 한다.
2. 팔꿈치 통증, 내측상과염
팔꿈치 안쪽 관절에서 발생하는 염증성 질병으로 ‘골프엘보’라고도 한다. 과도하게 운동하면 손과 손목, 팔에 무리를 주는데, 이게 팔꿈치 주변 힘줄에 미세한 파열을 만들어 발생한다. 주먹을 쥐거나 물건을 잡을 때 팔꿈치 안쪽에서 발생하는 통증과 저림이 주요 증상이다.
특히 골밀도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중장년층일수록 발생 위험도가 올라간다. 골프엘보를 단순한 근육통으로 여겨 일찍 치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면 만성 통증이나 퇴행성 관절염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골프 같은 운동 후나 일상생활에서 팔꿈치 안쪽으로 통증과 저림 증상이 느껴지면 빠르게 병원을 방문해 정확하게 진단을 받아야 한다.
3. 허리와 엉덩이 통증, 장요인대증후군
장요인대증후군은 허리와 엉덩이를 연결하는 장요인대에 염증과 손상이 생겨 동통성 하부요통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장요인대는 우리 몸에서 엉덩이뼈 장골과 허리뼈 요추, 골반을 구성하는 뼈 천추와 천골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골반이 비틀리는 것을 막고 요추 5번이 불안정하지 않게 잡아준다. 약간 구부러져 있는 모양이어서 손상되기 쉽다.
골프 동작으로 장요인대에 무리가 오고 장기간 긴장 상태가 유지되면 점차 탄력을 잃고 느슨해진다. 약해진 인대가 계속 손상되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주변 조직이 대신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요추하부와 골반과 고관절에 불안정을 초래한다.
허리띠를 착용하는 위치와 서혜부, 둔부, 사타구니, 회음부에 지속해서 통증이 발생한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을 쓸 때, 골프 스윙을 할 때 통증이 나타난다. 반대쪽으로 몸을 굽히면 통증이 더 심해진다. 방치할 경우 이상근증후군, 천장관절증후군, 퇴행성 허리디스크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 바로잡아야 한다.
4. 손가락마디 통증, 방아쇠수지증후군
손가락 관절은 우리가 하루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위다. 그만큼 잦은 사용으로 염증이나 질병이 생기기 쉽다. 특히 무거운 골프 클럽을 장시간 움켜쥐는 동작만으로도 손가락에 무리가 올 수 있다. 그립 강도와 방법에 차이가 있겠지만 주로 반복 자극에서 기인한다.
방아쇠수지는 손가락 힘줄에 생기는 염증 또는 부기로 손가락을 움직일 때 ‘딸각’하는 소리를 내며 통증을 유발한다. 중지와 약지에서 많이 나타나며, 엄지손가락에서 발병하기도 한다.
골프 선수나 라켓을 사용하는 운동선수에게도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이다. 손가락에서 손바닥으로 이어지는 골두 부분에 잦은 접촉, 마찰로 힘줄이 비대해져서 부종과 통증이 발생하는데 심할 경우 손가락을 펴기가 어려워진다. 아픈 손가락을 손등을 향해 재끼면 통증이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증상이 약할 때는 충분하게 휴식을 취하고,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 현상이 지속되면 약물이나 주사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그러겠는가? 그런데도 말릴 수밖에. 필드에서 비공인구를 쓰는 것 말이다. 체통은 체통대로 떨어지고 실속마저 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비공인구를 쓰는 것이 골프 규칙에 어긋나서 말리냐고? 그런 점도 있다. 하지만 매사에 엄격한 잣대만 갖다 댈 정도로 인정 없지는 않다. 친선 경기를 할 때는 조금 관대하게 규칙을 적용하면 어떤가? 물론 부담스러운 내기를 할 때라면 더 엄격해야 하겠지만. 그렇다면 뭐가 문제여서 쓰지 말라고 하냐고?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골프공은 ‘규격’이 있다. 세계 골프 규칙을 주관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정한 규격이다. 예전에는 두 단체가 정한 공인구 규격이 서로 달랐다. 조금씩 타협해가다가 1990년에야 비로소 규격을 통일했다.
두 협회가 정한 규격을 충족하기만 하면 모두 공인구냐고? 아니다. 규격을 충족하면 ‘규격을 충족하는 공’이다. 엥? 그럼 공인구는 뭐냐고? 공인구는 규격을 충족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공이다.
골프공 업체가 새 공을 출시하면 알아서 R&A나 USGA가 조사해 공인구 인증 마크를 달아주냐고? 천만에, 그렇지 않다. 공을 두 단체에 ‘각각’ 보내 공인구 인증을 받아야 한다. 비용도 든다. 처음 인증받을 때만 비용이 드는 것이 아니다. 일정 기간마다 얼마씩 공인구 유지비를 낸다. 이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두 단체로부터 각각 모델별로 공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색상이 다르면 따로 인증을 받는다. 물론 테스트 비용과 공인구 유지 비용도 모델별로 또 색상별로 각각 두 단체에 내야 하고.
일이 이렇다 보니 중소 업체는 모든 모델을 공인구 인증받고 유지하기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규격을 충족하는 공을 내놓고도 공인구 인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모델만 인증받고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공은 ‘미공인구’라고 부른다. 비공인구와는 구분 지어서 말이다. 공인구 규격은 충족하지만 아직 공인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미공인구는 아마추어 대회(대한골프협회가 주관하는)에서는 사용을 허가한다. 골프 규칙에도 ‘공인구 규격을 충족하는 공’을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공인구 인증 마크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그런데 프로 골프 대회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더 엄격하다. 공인구 규격을 충족하더라도 공인구 목록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쓸 수 없다. 쓰면? 바로 실격이다.
아이고 이런, 배경 설명이 너무 길었다. 웬만하면 비공인구는 쓰지 말자는 얘기를 한다고 하더니….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자.
공인구는 일정한 크기와 무게를 지켜야 한다. 굳이 설명하자면 크기는 42.67mm보다 커야 하고, 무게는 45.93g보다 가벼워야 한다. 작고 무거울수록 더 멀리 날아가기 때문에 제한을 둔 것이다. 다른 기준도 있지만 복잡하다. 크기와 무게 두 가지가 대표 기준이라고 알아두면 충분하다.
비공인구는 보통 공인 규격보다 크기를 1mm 정도 줄이거나 무게를 1g 정도 살짝 늘린다. 크기도 줄이고 무게도 늘리는 ‘대담한’ 업체도 있다. 규격을 지키지 않고서 ‘고반발구’라 더 멀리 날아간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이런 공으로 큰 내기가 걸린 경기를 하면 손해 볼 수도 있다. 아니 이 말대로라면 실제로 이득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항상 그렇다면 나도 말리지 않는다. 그런데 실속마저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말리는 것이다.
무슨 얘기냐고? 비공인구 가운데 상당수가 품질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비공인구를 만들 때 의도한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비거리가 덜 나가는 경우가 생긴다. 그게 말이 되냐고? 된다. 연구개발과 품질 개선에 온 힘을 쏟는 업체가 비공인구를 내놓고 싶겠는가? 땀 흘려 출시한 볼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데. 비공인구를 출시하는 업체 상당수는 연구개발보다 ‘꾀’를 내서 몇몇 골퍼의 사랑을 받으려 한다. 그렇다 보니 품질은 뒷전인 경우가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골프공 속에 들어가는 코어는 주 재질이 고무다. 고무 재료를 금형(틀)에 넣고 충분한 시간을 성형해야 중심이 잘 잡힌 좋은 코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장인 정신이 부족한 업체라면? 코어를 날림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그런 코어로 만든 공이라면? 크기가 작거나 무게가 무거워도 매끄럽게 비행하지 못한다. 당연히 비거리도 줄어들 테고. ‘맛 좀 봐라’라고 꺼내든 비밀병기 비공인구로 스타일만 구기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작정하고 비공인구를 생산하는 업체를 스포츠용품 업체로 보지 않는다. 스포츠는 규칙을 지키면서 결과를 얻어내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비공인구 업체는 뭐냐고? ‘완구 업체’로 볼 수밖에 없다. 물론 공인구 규격을 충족하는 볼을 내놓으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공인구 인증을 받지 못하는 업체는 여전히 ‘스포츠용품 업체’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는 한국 농구의 최전성기였다. 당시 뛰어난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유명했던 이상민, 문경은, 서장훈 등은 ‘오빠부대’로 불리는 팬덤을 구축했다. 이들이 소속된 연세대를 농구대잔치의 전설로 만든 이가 바로 감독 최희암(67)이다. 명감독으로 이름을 떨치던 그는 2009년 인천 전자랜드 감독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이후 경영인으로 변신하여 현재 고려용접봉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를 만나 농구인의 삶과 철학, 그리고 경영인으로서의 변신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①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스카우트와 면접의 차이
그의 말처럼 재목을 고르는 일, 즉 스카우트는 농구에서 중요하다. 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으므로. 스카우트할 때는 정성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줘야 한다.
“스카우트를 매번 성공하진 못해요. 사실 상민이도 우리 라이벌인 고려대로 갈 뻔했어요. 거기가 조건이 더 좋았거든요. 상민이 아버지도 고려대를 권했는데, 상민이가 고려대를 가면 농구를 그만둔다고 선언한 거예요. 그때 큰누나가 상민이 아버지에게 ‘돈은 아빠가 벌어야지. 왜 상민이한테 그래!’ 하면서 한 방 먹였다더군요. 나중에 상민이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이에요. 우린 포기했었는데, 큰누나 덕분에 상민이가 연세대에서 뛸 수 있었죠. 한마디로 운이 좋았어요.”
덧붙여 재목을 고르는 방법을 콘크리트에 비유했다.
“강한 콘크리트를 만들려면 큰 자갈뿐만 아니라 그 사이를 메우는 작은 자갈도 필요해요. 유망주가 아니더라도 성실하고 인성이 괜찮으면 일단 눈여겨봤어요. 10가지를 모두 잘할 수는 없지만, 2~3가지 정도 본인이 잘하는 게 있으면 데려와서 장점을 더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농구는 팀 단위 게임이기 때문에 단체 생활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친구라면 데려오려고 했죠. 실력이 좋아도 통제할 수 없으면 난감하거든요.”
그렇다면 경영인으로서 스카우트는 어떨까? 신입사원 면접 때 어떤 걸 주안점으로 두는지 물어봤는데 의외의 고충을 들었다.
“면접이 참 쉽지 않아요. 농구는 스카우트할 때 정말 오랫동안 살펴봐요. 초중고 시절부터 선수가 참여하는 훈련이나 연습경기를 자주 보고, 실제로 만나 대화도 하면서 오랫동안 검증해요. 일종의 데이터를 모으는 거죠. 반면 면접은 몇 분 만에 사람을 판단해야 하잖아요. 그 자리에 온 이들은 모두 일할 의욕도 있고, 스펙도 어느 정도 비슷해요. 다만 그 스펙이 모두 진짜 실력에서 비롯된 것인지, 우리 회사와 정말로 적합한 인재인지 면접장에서 파악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직원을 뽑을 때 신중을 많이 기하죠.”
분업 농구와 경영의 길
농구 감독 시절 그의 장기였던 ‘분업 농구’는 고스란히 경영에도 반영됐다.
“분업 농구의 핵심은 ‘네가 잘하는 것을 해라’였어요. 가드는 가드 역할을, 센터는 센터 역할을 하는 거죠. 다만 포지션과 상관없이 잘하는 게 있으면 하라고 했어요. 예를 들어 센터인데 3점 슛을 잘 쏜다고 하면 그걸 하라고 했어요. 반면 팀의 승리에 방해가 되는 자기만족을 위한 플레이는 금지했어요. 경영도 비슷해요. 저는 직원들한테 ‘유능한 감독이 돼라’고 해요. 이승엽, 양준혁이 있는데 감독이 필드에서 뛰는 건 웃기잖아요. 자신의 권한과 능력으로 힘들면 윗사람에게 보고하라고 해요. 잘할 수 있는 사람한테 일을 맡길 줄 아는 상황 판단력이 중요해요. 분업 농구의 경영 버전인 셈이죠.”
끝으로 좋은 리더십과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물었다.
“결국 경청과 소통이에요. 농구 감독 시절엔 팀이 이기는 데만 신경 쓰느라 다른 걸 못 보니 코치들이 내게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래야 시야가 넓어지거든요. 또한 코치들이 선수의 컨디션이나 심리 상태를 모두 알 수 있도록 하고, 다 같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어요. 경영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회의를 할 때 직원들부터 먼저 말하라고 해요. 제 의견은 나중에 말하죠. 제가 먼저 말하면 다양한 관점을 듣기 어려워요.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나 정보에 귀 기울이고, 애로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해결해주려고 해요. 언제든 스스럼없이 제게 말할 수 있도록 권위를 내려놓고 직원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죠. 앞으로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 회사가 확장성을 갖출 수 있도록 더 힘써야 할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한 팀이 되어 한마음 한뜻으로 지혜롭게 헤쳐나갔으면 좋겠어요.”
그가 농구에 빠진 이유는 ‘단계마다 맛보는 성취욕’ 때문이었다. 코트 청소부터 시작해, 드리블, 백보드 슛, 3점 슛까지 각 단계에서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농구에 입문했다. 특히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백보드 슛이 들어갈 때마다 통쾌했다고. 선수부터 시작해 감독, 그리고 경영인이 되기까지,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농구’였다. 그는 “농구는 나의 뿌리”라고 말했다. 뿌리 없는 열매가 없는 것처럼, 농구 시절부터 다져온 경험의 깊이가 그를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했다.
농구는 그에게 끈기를 가르쳤다. 그 끈기는 그에게 새로운 2막을 열게 했다. 선수로서는 빛나지 못했지만 감독으로서는 농구의 역사를 새로 썼고, 그 농구는 인생 2막을 경영인으로 시작하게 도와줬다. 이 모든 것은 돌처럼 단단한 끈기와 열정이 빛을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치 희암(熙岩)이란 이름의 뜻처럼. 나무는 타버리면 재가 되지만, 돌은 충격에 깨질 뿐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인생의 전반전은 백보드 슛으로 시작했지만, 인생의 후반전은 3점 슛을 쏘며 마무리하길 바라며 마친다.
내가 40대 중반에 프로 골퍼가 된 것은 애독자라면 다 아는 얘기다. 처음 듣는다고? 그렇다면 아직 애독자가 되기엔 멀었다. 지난 칼럼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30대 후반에 골프를 시작한 나는 2015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선발전에 합격했다.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자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턱걸이로 붙었다. 내가 속한 조에서 45명을 뽑는데 37등이었다. 그 정도면 준수한 것 아니냐고? 나는 공동 37위였다. 무려 여덟 명이나 나와 같은 점수를 기록했다. 37등부터 여덟 명을 손가락으로 꼽아보라. 44등까지 공동 순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두 명이 더 우리와 같은 타수를 기록했다면? 10명 중 한 명만 떨어지는 잔인한 연장 승부를 할 뻔했다. 춥고 강풍까지 겹친 늦가을 날씨에 이미 탈진한 나는 연장전 승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상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나는 프로 골퍼가 되고 난 다음 해 3부 투어에 도전했다. 내친걸음이었다. 지금은 3부 투어를 2부 투어에 통합했지만 그때는 3부 투어가 따로 있었다. 그때 속 모르는 이들은 나를 보고 “아직도 현역으로 뛰니 대단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면 “아직도 현역이 아니라 이제야 현역”이라고 쑥스럽게 답했다.
그런 내 늦깎이 현역 생활은 딱 2년밖에 가지 못했다. 왜냐고? 갑자기 골프가 싫어졌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도 골프 얘기가 들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겉으로 밝히는 이유는 내가 경기위원이 된 탓이다. KPGA 규정상 경기위원은 대회에 나갈 수 없다. 심판이 시합에 나가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판단에서 만든 규정이다.
그런데 속사정은 다르다. 현역으로 뛴 그 두 해 동안 나는 쉽지 않은 기록을 세웠다. 뭐냐고? 바로 ‘상금 0원’이라는 기록이다. 그랬다. 나는 2년간 스무 번 남짓 시합에 나가고도 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친다.
그렇게 골프를 못 치는데 어떻게 프로 골퍼가 됐냐고? 그러게 말이다. 바로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독자는 내가 얼마나 유명한 골프 지도자에게 골프를 배웠는지 아는가? 내 사부는 그동안 수많은 골퍼를 길러냈다. 그분이 누구냐 하면 바로 ‘독학 선생’이다. 맞다. 나는 순수 독학 골퍼다.
레크리에이션 골퍼인 선배 손에 끌려 클럽을 처음 잡았다. 그러곤 프로 골퍼가 될 때까지 누군가에게 골프를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다. 오로지 어깨너머로 보거나 주워들은 것만으로 골프를 연마했다. 독학으로 프로 골퍼가 됐으니 대단한 것 아니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TV로 중계하는 1부 투어가 아닌 2부나 3부 투어도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2부 투어 지역 예선은 경쟁률이 9대1쯤 된다. 카트 두 대에 선수들이 타고 나가면 그중 한 명만 본선에 올라가는 셈이다. 어렵사리 본선에 가도 첫날 60등 안에 들어야만 상금을 받는다.
빈손으로 필드를 떠나는 선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내가 경기위원이 되고 나니 가족들이 반가워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물론 경기위원으로 근무하러) 돈을 벌어오니 말이다. 맨날 비용만 들이고 상금은 한 푼도 벌어오지 못하다가.
2부 투어 지역 예선을 통과하려면 언더파를 쳐야 하는데 보통 언더파론 안 된다. 비바람이 부는 날이나 2~3언더파가 커트라인이다. 그림 같은 날씨면 4언더파를 치고도 탈락하는 선수가 나온다. 진짜다. 그 정도 못 치냐고? 바로 그게 문제였다. 잘 친 샷만 꼽으면 나도 정상급 선수 못지않다.
그런데 대회 때는 딱 한 번 쳐서 승부를 가리는 게 아니지 않은가? 잘나가다가 나쁜 버릇이 나오는 게 내 한계였다. 언더파를 쳐도 떨어지는 판에 확 깎여서 아웃오브바운드(OB)가 나거나 뒤땅이라도 나면 어찌되겠는가? 예선 통과는 물 건너간다.
샷을 다듬는다고 다듬었는데도 가끔 그런 실수를 한다. 그러니 재미로 나가는 것이 아니고서야 대회 참가를 주저할 수밖에. 그 나쁜 버릇은 바로 ‘독학 선생’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프로 선발전을 준비하면서 나는 골프가 많이 늘었다. 프로 골퍼가 되고 나서도 조금 더 늘었고. 그런데도 잔뜩 긴장하면 옛날 버릇이 나온다. 중년이 되고 나서도 힘들거나 급하면 ‘어머니’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골프를 시작한다면 절대 ‘독학 선생’에게 골프를 배우지 않을 것이다. 골프를 처음 시작한 2006년에 나는 왜 ‘독학 선생’을 택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니 내가 오만한 탓이다. 다른 일도 잘해 왔으니 골프도 얼마든지 혼자서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한 충고도 한 몫 보탰다. 바로 ‘독학으로도 잘 칠 수 있다’거나 ‘프로가 돈 벌려고 거짓으로 가르친다’는 조언 말이다. 그 충고를 한 사람들은 고수였냐고? 아니다. 처음 시작한 나보다 조금 나았을 뿐.
지금까지 샷을 연마하느라고 혼자 애쓴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아깝다. 제대로 배우면서 그 긴 시간을 보냈더라면 어땠을까? 혹시 늦깎이가 놀랄 만한 성적을 냈다는 신화를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독자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미 잔뼈가 굵은 골퍼라도 마찬가지다. 당장 독학 선생을 과감하게 내치고 골프 지도자를 찾기 바란다. 내 꼴 나지 말고. 가슴이 저린다.
고전의 매력은 같은 작품을 연극, 뮤지컬 등 여러 방식으로 접하며 다양한 갈래로 해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상상하며 읽어나가던 고전 소설의 주인공들을 생동감 넘치는 화면으로 만나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영화로 재탄생한 세기의 고전 명작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제인 에어 (Jane Eyre, 2011)
고전문학을 이야기할 때 문학계의 거장 샬롯 브론테가 쓴 ‘제인 에어’를 빼놓을 수 없다. 무성 영화 시절부터 현재까지 19세기에 쓰인 소설 중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품으로, 무려 20여 번이 넘게 재해석되었다. 조안 폰테인, 샬롯 갱스부르 등 당대 유명 여배우들이 ‘제인 에어’를 거쳐 갔으며, 그중에서도 2011년 개봉한 캐리 후쿠나 감독의 작품이 비평가들 사이 원작을 가장 잘 각색한 영화로 평가받는다. 내용은 언뜻 보면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와 비슷하다. 19세기 귀족 사회에서 고아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란 제인 에어가 손필드 저택의 가정교사로 부임하고, 저택의 주인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다만 제인 에어는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가 아닌 시대를 앞서가는 신여성의 모습에 가깝다. 불우한 환경을 탓하는 대신 자신의 힘으로 직업을 구해 자아실현을 하며, 사랑하는 남자에게 달려가 마음을 고백한다. 영화는 이 같은 제인 에어의 주체적인 삶을 한 폭의 유화처럼 서정적이고 잔잔하게 그려낸다. 몽환적인 영상미와 빅토리아 시대를 나타내는 소품, 의상 등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2.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 2012)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안나 카레니나’도 지금껏 여러 차례 영화화되며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았다. 1935년 그레타 가르보, 1948년 비비안 리, 1997년 소피 마르소 등의 버전이 대표적이다. 줄거리는 원작과 같다. 중년의 정치가 남편과 결혼한 안나 카레니나가 젊은 장교 브론스키와 눈이 맞아 금단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21세기에 재탄생한 안나 카레니나도 원작과 궤를 같이하고 있지만, 보다 과감한 연출로 차별화를 더했다. 오프닝 장면부터 한 편의 공연이 시작되는 것처럼 빨간 커튼을 들어 올린 뒤 그 안에서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 뒤에도 세트장을 활용해 장면을 부드럽게 전환한다. 그 덕에 보는 이들은 연극의 관객이 된 듯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집중하게 된다. 작품의 줄거리만 놓고 보면 그저 그런 치정극으로 느낄 수 있지만, 극히 보수적이었던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전통과 규범 대신 사랑과 욕망을 택한 안나 카레니나의 삶이 그 자체로 놀랍게 다가온다. 조 라이트 감독의 말 그대로 ‘극적인’ 연출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매혹적인 연기가 몰입도를 더한다.
3. 오만과 편견 (Pride & Prejudice, 2005)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읽은 이들은 다아시가 고전문학 사상 손꼽힐 정도로 매력적인 주인공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1995년과 2005년, 작품이 각각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후부터는 어떤 다아시가 더욱 매력적인 지에 대해 팽팽한 설전이 벌어진다. BBC 드라마 주인공이었던 콜린 퍼스와 영화에서 다아시를 맡은 매튜 맥퍼딘 모두 활자로 묘사된 다아시의 오만함을 완벽하게 재현해냈기 때문이다. 오만과 편견은 18세기 영국 사교 파티에서 만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첫눈에 반하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로 다가서지 못하고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는 내용이다. 재해석된 작품들은 모두 원작을 기반으로 하되 드라마는 인물들의 감정을 긴 호흡으로, 영화는 압축적이지만 강렬하게 그려낸다. 예컨대 영화에서는 남녀 간 사랑이 시작될 때의 감정을 무도회 장면으로 간결하게 담아내면서도, 성적인 긴장감은 증폭시킨다. 콜린 퍼스와 매튜 맥퍼딘 중 어떤 이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누구든 잠들어 있던 연애 세포를 깨워줄 것임은 분명하다. 콜린 퍼스 버전의 ‘오만과 편견’은 왓차에서 감상할 수 있다.
독자는 몇 살에 골프를 시작했는가?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하다가 뜻대로 안 돼서 지금은 손을 놓았다고? 그렇다면 지금부터 들려주는 얘기를 듣고 꼭 용기를 내면 좋겠다.
내 아버지 김정홍 옹은 2014년 늦가을에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진짜로 평생 처음. 그는 1940년생이다. 메이저 대회 세계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그런 그가 골프를 시작한 것은 만 74세 때. 갑자기 골프를 치기로 작정한 이유는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동년배 중에 골프를 치는 이가 몇 있어서 어울리기 위해서라고 짐작만 했을 뿐. 아버지는 이듬해 봄에 친구들과 필드에 나가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당시에 아마추어치곤 기량이 상당했던(실은 기량이 상당하다고 착각했던) 나는 아버지에게 그립부터 가르쳤다. 그리고 클럽 페이스가 상당히 많이 닫힌 드라이버를 구해서 선물했다. 초보 골퍼가 고통받기 마련인 슬라이스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스윙을 제대로 익히는 것만으로 슬라이스를 완전히 극복하기에는 몇 달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는 골프에 빠져들었고 입문 후 6개월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다. 진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한 시간 가까이 말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한꺼번에 너무 오래 연습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허리를 이따금 삐는 그가 무리할까봐 걱정이 됐던 것이다. 그는 틈이 나면 내게 샷을 배우고 또 혼자서 그것을 익혔다. 진짜 연습다운 연습을 한 것이다. 연습은 한자로 익힐 ‘연’, 배울 ‘습’ 아닌가?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드디어 아버지가 친구들과 필드에 나가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이삼 일 전 나는 시뮬레이션 골프 연습장(흔히 말하는 스크린 골프)에 그와 함께 갔다. 실전을 대비해서. 그리고 거기서 부자간 라운드를 했다. 결과는? 그는 109타를 쳤다. 정말이다. 파3인 13번 홀에서는 파도 하나 잡았고. 나는 몇 타나 쳤냐고? 버디 6개 보기 2개로 68타를 쳤다. 그것도 챔피언티에서 대회 모드로 놓고.
아차, 얘기가 딴 길로 샜다. 다시 내 아버지 얘기로 돌아가자. 며칠 뒤 그는 아침 느지막이 데리러 온 친구들과 경기도 용인에 있는 모 골프장으로 첫 필드 라운드에 나섰다. 나는 그날 오후 내내 결과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라운드가 끝났을 무렵부터 전화를 할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러다가 밤에 집에서 만났을 때야(그렇다 나는 아버지와 한집에 산다) 그에게 물었다. “오늘 재미있게 치셨어요?”라고. 혹시 속이 상했을지도 몰라 ‘몇 타나 쳤냐?’라는 질문은 꾹 참았다. 그런데 곧이어 나온 대답에 나는 눈이 커졌다. 아버지는 “친구들이 연습장 등록해야겠다고 하면서 가더라”고 말했다. 그날 아버지는 레드티에서 98타를 쳤다고 했다. 흔히 숙녀들이 주로 쓴다고 해서 레이디티라고 한다. 그러나 주니어도 쓰고 노신사도 쓰기도 하니 레드티가 더 멋진 표현이다.
98타!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독자는 처음 필드에 나간 날 몇 타를 쳤는가? 나는? 셀 수 없이 많이 쳤다. 볼도 무수히 잃어버렸고. 그런데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생애 첫 라운드에서 ‘파백’을 하다니. ‘파백’은 100타를 처음 깨는 것을 말한다. 게다가 친구들이 연습장에 등록하겠다며 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가 ‘내뿜은’ 장타가 부러워서였다고. 그제야 돌이켜보니 그랬다. 시뮬레이션 골프 연습장에서 아버지의 드라이버 티샷은 160m 가까이 나갔다. 그보다 100m 이상 더 멀리 보내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아버지의 친구들이 볼 때는 입이 떡 벌어지는 거리였던 것이다.
아들에게 골프를 배웠다고 하니 친구들이 더 부러워했다고 한다. 당시 싱글 핸디캡퍼(평균 핸디캡이 한 자릿수인)인 아들이 그해 10월에는 급기야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선발전을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된 것은 애독자라면 다 아는 얘기다. 첨 듣는다고? 그렇다면 아직 애독자 인증을 하기엔 멀었다. 이미 10회 남짓 나간 이 칼럼을 첫 회부터 찾아서 읽어보기 바란다.
내 아버지가 늦깎이로 화려하게 골프 월드에 입문한 것은 순전히 행운 덕분만은 아니다. 그는 첫 라운드를 준비하는 6개월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골프를 수련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이지만 마음을 열고 상수(上手)로부터 조언을 듣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어디 자식에게 조곤조곤 물어보기가 쉬운가?
내 아버지와 동갑인 잭 니클라우스는 지난 9월에 미국 미주리주에서 열린 페이슨밸리컵 때 이벤트 행사에 출전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아일랜드 홀인 파3에서 타이거 우즈 등과 니어리스트(티샷으로 볼을 홀에 가장 가까이 붙인 선수가 이기는 것)를 겨뤘다. 등이 약간 굽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니클라우스는 거뜬하게 볼을 그린에 올렸다. 그를 보며 6년 전 내 아버지가 골프채를 처음 잡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골프에 나이는 없다. 몇 살에 시작하든 의지만 있다면 실력이 향상된다.”
내가 한 말이 아니다. 벤 호건(Ben Hogan)이 한 말이다.
김용준
한마디로 소개하면 ‘골프에 미친놈’이다. 서른여섯 살에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독학으로 마흔네 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가 됐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KPGA 경기위원.
머리를 올린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첫 번째 정규 홀 라운드를 할 때 “머리를 올린다”는 표현을 흔히 쓴다. 이 말이 언제부터 쓰이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많은 이가 이런 표현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쓰인다.
머리를 올린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훈련받아온, 기생이 되려는 댕기머리 처녀가 한 남자에게 선택을 받아 밤을 보내고 쪽을 져 올리는 걸 의미한다. 머리를 올리고 나면 본격적으로 기녀생활을 하게 된다. 골프는 17~18세기 유럽 귀족 사회에서 즐기던 운동이다. ‘신사의 스포츠’라고도 불리는 운동인데 골프 첫 라운드를 하필이면 기녀의 첫날밤을 의미하는 말로 표현하다니 괴리감이 크다.
국내에 골프가 처음 소개된 건 1900년 고종 37년, 정부 세관관리였던 영국인들이 원산 바닷가에서 6홀의 코스를 만들어 하게 되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일반인들이 골프를 하게 된 건 이보다 한참 뒤인 1924년 경성골프구락부가 만들어지면서부터다. 우리나라 골프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자리는 원래 1929년에 개장한 골프장 서울컨트리클럽이었다. 골프는 지금도 여전히 부자들의 스포츠로 인식된다. 일제강점기에 골프를 칠 수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그려보면 “머리를 올린다”는 말이 어디서 나왔을까 유추가 되면서 씁쓸해진다.
“첫 라운드 가자”
머리를 올린다는 표현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된다. 좋게 생각하면 실전을 위한 준비가 그만큼 철저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골프 그린에 서기 전까지의 과정은 많은 노력을 요한다. 연습장에서 3~6개월 정도 기본기를 익히고 골프 매너도 따로 익혀야 한다. 요즘은 스크린 골프장에서 어느 정도 규칙을 습득한 후 필드에 나가는 사람이 많다.
곧바로 정규 홀에 가는 것보다는 실전 경험을 위해 9홀의 퍼블릭 골프장을 먼저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잔디의 감촉과 야외에서 골프를 칠 때의 감각 등 그린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공을 칠 때 서 있어야 할 위치 등 그린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알아야 서로 쾌적하게 공을 칠 수 있다. 골프는 단순히 채를 휘둘러 공을 홀컵에 넣는 운동이 아니다. 동반자를 배려하고 매너를 지키면서 즐기는 스포츠임을 인식해야 한다. 머리를 올린다는 표현으로 필드에 서기 위해 해온 노력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또 머리를 올려준다는 표현으로 우월감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담백하게 “첫 라운드에 가자”라고 표현하자.
최근 신중년의 로망으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모터사이클이다. 육중한 배기량의 고성능 엔진에서 나오는 무게감과 힘을 갖춘 바이크로 국도를 달리며 산하를 감상하는 경험은 남다른 중독성을 갖게 해 많은 이들을 모터사이클의 신세계로 뛰어들게 하고 있다. 윤수녕 강원모터사이클연맹(KMF) 회장 겸 모토쿼드 대표는 척박한 국내 모터스포츠계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며, 선진문화의 도입과 안전교육을 추구하는 모터스포츠 전문가 1.3세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모토피스타’ 강원도 인제 행사를 앞둔 그를 만나 꾸준한 성장을 이뤄나가고 있는 국내 모터사이클 세계를 슬라이딩해봤다.
최근 국내 모터사이클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는 곳은 강원도 인제군이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이곳에 모터스포츠 경주장인 인제스피디움이 있기 때문이다. 모토쿼드는 모터사이클과 스포츠카로 가능한 레저와 스포츠 활동 사업을 하는 회사로, 윤수녕 대표는 이곳 인제스피디움에서 이륜차 마니아를 위한 기초 리그인 로드레이스 모토피스타와 강원 인제 모토스피드페스타라는 이륜 라이더 축제 등 다양한 경기와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크를 탄 지 어언 30년째라는 그에게 바이크의 매력에 대해 묻자 단숨에 ‘도심 탈출’이라고 정의했다.
“현대인의 일상은 어딘가에 갇혀 있거나 카테고리가 정해진 반복된 삶이죠. 그런 삶에서 빠져나와 일탈이라든가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안전한 경로가 바로 모터사이클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현대인의 일탈이라고 하면 음주나 유흥이나 레저 등을 떠올리겠지만 그에 비해 훨씬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게 모터사이클이에요. 자신이 있는 위치를 이동시켜주니까요.”
윤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모터사이클은 확실하게 배우고 안전을 확보해 취미로 제대로 접하면 그 어느 것보다 빠른 도심 탈출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두세 시간이면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 파묻힐 수 있는 게 사실이니, 그의 말이 머릿속으로 훅 들어왔다.
모터사이클은 종합예술과 같다
윤 대표가 말하는 모터사이클의 또 하나의 강점은 개방감이다. 달리는 맛이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탈 때는 사각의 틀 안에 갇히지만 모터사이클은 바람을 맞는 맛이 있어요. 온몸이 그걸 인지하죠.”
그의 설명을 듣다 보니 우리가 흔히 모터사이클을 봤을 때 떠올리는 피지컬적인 면보다는 멘탈적인 면이 더 강하게 와 닿았다. 그 또한 국내 모터사이클 문화를 선도하면서 수많은 선수를 발굴했는데, 그 과정에서 체력 단련을 통한 피지컬의 증량보다는, 이 무생물과 교감하면서 마인드컨트롤을 잘 해서 사고 없이 경기를 헤쳐 나가는 게 더 중요 포인트라고 강조한다고.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하루 종일 정신교육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것도 바로 안전이다. 모터사이클의 특성상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단번에 세상을 떠날 수도 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유치원, 고등학생이 아니라 40대 전후 어른들이 주로 배우러 오시죠. 그 정도 나이의 사회적 포지션이면 남의 말 듣기가 쉽지 않지만, 모터사이클은 정말 배워야 하는 스포츠예요. 컨트롤하고 정비하고 좋은 컨디션 유지하게끔 계속 들여다봐야 합니다. 정성도 들여야 하고 비용도 드는 복합적인 스포츠죠. 예술로 치면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종합적인 스포츠예요. ‘야 빠르다’ 하는 건 일반적인 시선이고 들여다보면 혼연일체적인 게 있고, 정식 경기장에서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기기를 올려야 그 가치가 빛나는 것입니다.”
인제스피디움을 발판으로 모터스포츠 문화 정착 추구
윤 대표가 말하는 정식 경기장이란 당연히 인제스피디움이다. 그가 특히 애착을 갖고 있는 이벤트는 ‘모토피스타’. 국내 아마추어 선수가 로드레이스에 입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경기로 피스타는 이탈리어로 질주, 경주란 뜻이다. 시즌 포인트로 연간 챔피언을 뽑으며 강원모터사이클연맹 산하의 모토피스타는 매년 4라운드가 진행된다. 윤 대표가 인제스피디움을 배경으로 펼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 중 하나다.
“10년 전만 해도 경기장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일이지만 쉽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이 균형 감각이에요. 피지컬은 서양 사람만 못해도 훨씬 더 균형 감각이 있어 모터스포츠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처음엔 굉장히 희박하다가 이걸 스포츠로 받아들이고 아카데미에서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보고, 한국적 절차를 밟아야겠다고 결심한 게 10년 전이었습니다.”
사실 다수의 언론에서 이미 보도된 대로 인제스피디움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이해관계가 얽힌 기관과 단체들 사이의 갈등으로 몇 년간 잡음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일종의 컨설턴트 역할을 하는 외부인사로서 인제스피디움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되었고, 당사자들 간의 교섭을 이끌며 상황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했다.
모터스포츠 교육을 위한 라이딩 센터 착공
“사실 우리나라는 모터스포츠 문화의 단계로 보면 최종적으로 만들어져야 할 경기장이 먼저 우뚝 만들어진 상태였어요. 어떻게 보면 불안정한 거죠. 그래서 중간에 허브가 될 수 있는 아카데미나 R&D를 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됐어요. 일본만 봐도 큰 경기장들 중에 60년 된 곳이 있는데 그 경기장 하나만으로도 인제군만 한 도시가 먹고살 정도로 다양한 유관시설들과 인프라가 구성돼 있어요. 그래서 제 생각은 인제군을 모터스포츠 특화지역으로 만들자는 거예요.”
윤 대표는 인제스피디움을 중심으로 한 모터스포츠의 멀티플렉스화 계획을 들려줬다. 그 첫 발걸음이 내년에 착공되는, 라이더들의 교육을 위한 라이딩 센터다.
“이동수단이라는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스포츠 분야는 제대로 크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교육도 그렇고 스포츠와의 접목을 추구하기 위해 내년에는 교육 사업 분야에 집중하고자 해요. 교육받은 라이더들이 실력을 검증받을 수 있는 게 경기죠. 그래서 인제 하면 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경기가 정기적으로 열리는 곳으로 인식되도록 하고 싶어요.”
라이더들이 ‘시원하다’고 말하는 이유
레저용으로 쓰는 바이크는 250cc 이상이다. 우리나라에서 250cc 이상 되는 바이크의 등록 대수를 보면 10년 전만 해도 3만 대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15만 대 이상이 등록되어 있다. 통계만 봐도 레저로 바이크를 즐기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레저용 바이크는 고가의 상품이라 사회적 포지션이 높고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소유하고 있죠. 흔히 크고 시끄럽고 손 가는 게 많다고 생각해 배우기를 망설이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용기를 내시라, 도전하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확실하게 배우면 안 다치고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가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을 보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점이 있다. 보통 예민한 사람들이 바이크를 타고 오면 “시원하다”고 말한다는 거다. 그런데 온 신경을 써야 하는 게 모터스포츠다.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사고라도 날까봐 온갖 신경을 다 쓰는데 그러면서도 뭔가가 해소된다는 거죠. 집중이 집중을 치유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와서 스트레스를 푸시고 갑니다. CEO나 교수, 의사, 디자이너, 연구원, IT 분야 종사자들이 많아요.”
바람처럼 바이크를 타며 인생을 향유하다
바이크 타는 아버지를 보고 배우며 타다가 라이더가 된 윤 대표. 모터스포츠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그는 “의외의 대답일지 모르겠지만…” 하고 전제를 깔았다.
“지극히 개인적 얘기지만 명상 쪽에 몰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명상은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매인 삶이 모터사이클로 탈출하는 것과 비슷하죠.”
과연 일맥상통하는 얘기라 생각했다. 일찍이 미국의 대학교수이자 작가인 로버트 피어시그는 모터사이클과 선 체험 간의 교차점을 탐구한 소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집필해 명작의 반열에 올린 바 있다. 윤 대표는 모터사이클을 “보이는 바람의 영혼”이라고 표현했다. 정신적인 자유가 거기에 있고 그 사람의 정신세계 또한 거기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한 바이크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빠르고 강하게 타는 게 아니라 고독한 바람같이 타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 바람이 산들바람일 수 있고 강풍일 수도 있는데 자연과 동화된다는 의미죠. 뭔가 지나갔는데 아무렇지 않고 산등성이에서 새들이 날아가는 것처럼.”
대형 바이크를 타고 1·2차선을 넘나들며 굉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이런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문화를 알면 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이제는 강원도 인제 전역의 아름다운 곳, 산하 등 그런 곳들을 이동하는 도구로서의 바이크가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고 봐요.”
부자(父子)가 함께하는 모터사이클 투어 꿈꾼다
사실 윤 대표의 아버지도 아들처럼 모터사이클 마니아다. 스위스 알프스부터 터키, 스페인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라이딩을 하는 아버지를 둔 그가 모터스포츠 세계에 입문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아버지 건강이 허락되면 서울에서 출발해서 실크로드를 달리고 유럽까지 가는 대장정을 함께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못 가지만…. 9월에 강원도 전역에서 하는 평화 모터사이클 랠리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도 이제 50대에 이른 만큼 나이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한다. 몸의 변화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벌판 같은 경기장에서 일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드를 향한 그의 의지와 사명감은 쉬이 꺼질 것 같지 않다.
“필드 플레이어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긴 하죠. 하지만 건강관리를 하면서 되도록 오래할 생각이에요. 아버지도 내일모레 여든이신데 현역이신걸요.(웃음)”
바이크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쩌면 불행한 사람들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것을 모르고 인생을 살았구나 하고 깨달을 때쯤 사내 윤수녕 대표가 멋진 라이더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