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죽음을 공부했던 김이경(56) 작가는 가족과 지인들의 생사기를 목도하며 관념 속에 있던 죽음의 실체를 경험하게 된다. 평생의 스승과도 같았던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자기 생의 일부를 떠나보내는 슬픔과 성찰로 긴 애도기를 거친 그녀. 자신을 위무했던 죽음의 통찰을 담은 글귀를 모아 ‘애도의 문장들’(서해문집)을 펴내며, 애도의 시간을 보낼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Q. ‘애도의 문장들’을 펴내게 된 계기와 소감이 궁금합니다.
책을 내려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한 5년 전부터였어요. 중간에 몇 번 포기도 했고, 출판사랑 계약을 파기한 적도 있었죠. 그러다 20년가량 고민해온 죽음에 대한 문제나 그사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는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싶어 매듭짓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숙제를 한다는 생각으로 마친 거죠. 사실 책이 나오고 큰 만족감은 없었어요. 해냈다는 건 뿌듯하지만, 잘했다는 건 잘 모르겠더라고요. 죽음에 대한 공부는 끝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은 끝이 아닌 시작이고, 잠시 마침표를 찍은 거라 생각해요.
Q. 공부를 통해 관념적으로 알던 죽음과 실제 가족과의 이별을 통해 경험한 죽음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젊었을 때는 죽음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갖고 있었던 것도 같아요. 가령 천재들은 요절한다거나 이런 얘기를 들으면, 죽음이 두렵거나 무서운 게 아니라 ‘짧고 굵게 사는 거지 뭐’라는 식으로 쉽게 생각했던 거죠. 그러다가 가족이 병에 걸리고 생사를 달리하는 과정 등을 보면서 ‘아, 죽음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면 그 죽음은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삶까지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삶과 죽음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삶과 죽음은 늘 함께 있는 거였죠. 어쩌면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갖는 건 인생을 잘 모르기 때문일지 몰라요. 그래서 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Q. 제목처럼 책에는 애도에 관한 문장들이 나오는데, 그중 자신에게 가장 위안이 됐던 문장은 무엇이었나요?
책에 언급한 문장 하나하나 제게 위안이 된 셈이죠. 그래도 가장 마음에 남는 걸 꼽으라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발견한 문장이에요. 아버지의 묘비명에도 쓰였는데, 아마 일종의 인생 후반기 좌우명처럼 생각하신 것 같아요. ‘모든 상대는 흐르는 물과 같다’는 거죠. 그 상대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죽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감정이 될 수도 있어요. 어쨌든 이 모든 것은 계속 흘러간다는 거죠. 그러니 내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느끼는 이 슬픔이나 절망도 언젠가는 다 흘러간다는 거잖아요. 그 문장에 많이 기대고 위로받았습니다.
Q. 아버지는 인생의 멘토와도 같은 분이라고 하셨죠. 삶의 끝자락에서 아버지가 남긴 죽음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언젠가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죽음이 오면 저런 노을빛 같이 올까?’라고 하시더군요. 사실 아버지는 ‘죽음은 이런 거야’라는 식으로 단정 지어 말씀하신 적은 없어요. 사후세계나 이런 부분도 제가 여러 번 물어야 조금 이야기하신 정도였죠. 아마 그런 고민들에 대한 답은 ‘네 몫이다’라고 여기신 것 같아요. 다만 그건 확실히 말씀해주셨어요. ‘두려워할 건 없다’는 거죠. 제가 아버지께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겁이 난다고 하면, 그럴 필요 없다고 다독여주셨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착하게 살라’는 당부도 하셨습니다. 오히려 어려서는 그런 말씀을 안 하셨는데, 저도 나이 들고,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이야기하시니 남다르게 와 닿더라고요.
Q. 웰다잉이 곧 웰빙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20년 가까이 죽음을 공부하면서, 달라진 일상의 변화나 태도가 있다면요?
섣불리 죽고 싶다는 말을 안 하게 됐다는 것과 타인의 상황에 대해 쉽게 얘기하지 않게 된 거죠. 특히 누군가의 죽음이나 고통에 대해서는, 그게 당사자에겐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알기에 더욱 조심하려 해요. 혹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더라도 어쩌면 그에게 말 못 할 두려움이 있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요. 아, 파리나 모기도 잘 못 죽여요.(웃음) 그만큼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고 진지해진 것 같습니다.
Q.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죽음’과 ‘좋은 애도’는 무엇인가요?
당사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 나는 괜찮아. 잘 살아왔어’라며 본인 스스로 자연스럽게 여긴다면, 아마 주변 사람들도 그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겠죠. 물론 요즘은 의학기술이 발달해 애초에 ‘자연스러운 죽음’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진 편이긴 하지만요.
또 ‘좋은 애도’를 위해서는 충분히 슬퍼하고, 자신이 왜 슬퍼하는지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봐요. 가령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왜 그리 슬픈지 스스로 물어봤어요. 충분히 나이가 드셨고, 당신께서도 만족스러운 인생을 사셨는데, 결국 그분을 잃어 슬픈 건 내 문제잖아요. 애도기 동안 떠난 이가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 묻고, 내 삶에서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을 정리하며, 결국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를 보내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그런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이 잘 기다려줬으면 좋겠어요. ‘뭘 그리 오래 슬퍼해?’라는 식으로 무심코 던지는 말이나, 마음대로 단정 지어 내뱉는 조언은 애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Q. ‘좋은 죽음’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사실 지금도 많이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봐요. 갑자기 아프고 병이 든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확 줄어들잖아요. 소위 환자가 되면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는 거죠. 그렇다면 인생이 과연 내 의지대로 흘러갈 수 있을까요? 저는 자신에게 매일 물어봐요. 지금 죽어도 상관없을 만큼 잘살고 있나 하고요. 스스로 조금 두려운 순간이 찾아오면 ‘지금까지 잘하고 있었으니 괜찮아’라고 자신에게 얘기하고요.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제 혼(魂)이 혼비백산(魂飛魄散)하지 않도록 늘 그런 말들을 상기해두려 하죠.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공부하려 애쓰는 것도 그러한 노력 중 하나고요.
Q. 중장년 세대는 죽음과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아직 이에 대한 인식이나 준비가 덜 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독서회를 오래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가장 읽기 싫어하는 주제가 바로 ‘죽음’입니다. ‘나는 죽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이들조차 꺼리더군요. 저는 그럴수록 일부러 죽음에 대해 읽게 하고 대화를 나누자고 권해요.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겸손해지는 거라고 봐요. 내가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일깨워주니까요. 그런 겸손한 마음을 갖고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처음엔 관심 없던 분들도 아주 솔직하게 자기 인생관을 털어놓게 되죠. 그런 대화를 통해 관계는 깊어지고, 인생도 더욱 잘 살아낼 수 있어요. 사람은 살던 대로 죽는 거잖아요. 잘 사는 게 곧 잘 죽는 것이죠. 그러니 죽음을 너무 멀리 보고 막연히 두려워 말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이경 작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대학 강사를 하다 학계를 떠난 뒤 도서관에서 혼자 ‘죽음, 시간, 여성’ 등을 주제로 공부했다. 우연히 인연이 닿은 글두레 독서회에서 26년째 강사를 하고 있다. 뒤늦게 출판사에 취직해 다양한 책을 만들었으며, 책을 주제로 한 소설집 '살아 있는 도서관'을 내면서 작가로 전향했다. 이후 '마녀의 독서처방', '마녀의 연쇄 독서', '책 먹는 법', '시의 문장들', '시 읽는 법' 외 다수를 펴냈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형부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요.’ 인터넷에 떠 있는 어느 열여덟 살 여고생의 글 제목이다. ‘처제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내요’만큼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에게(사실은 남자들에게) 묘한 연상을 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나는 당연히 형부가 없고 처제도 없지만(ㅠㅠ), 왜 형부-처제 이야기만 나오면 얄궂고 야릇해지는지 잘 모르겠다. 그 글이 인기인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여고생은 재작년에 한가족이 된 형부 땜에 미칠 지경이라고 한다. 잘생긴 데다 엄마 몰래 용돈을 잘 주어 처음엔 형부를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든 입으로 소리를 내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소파에 앉으라고 하면 “포잉~” 하고 앉는다. 장모가 부르면 왜 이제 부르냐는 듯 “띠용” 하고 달려간다. 차에서 내릴 때는 “호잇, 히얏!” 하는 소리를 낸다.
밥 먹을 때 “푸욱” 하고 밥을 푸고, 무거운 거라도 드는 것처럼 깻잎을 “잇차 잇차” 하고 떼어 먹는다. 설거지할 때는 “달그락달그락”, 물을 따르면서 “쪼로록”, 냉장고 문 열 때 “추왕!”, 옷 벗을 때 “휘리릭”, 종이에 글씨를 쓰면서 “슥슥”….
의성어 의태어를 총동원해서 자기 행동을 일일이 예고하고 중계 방송해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만화를 너무 봤는지, 아니 지금도 만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래서 이 이상한 형부 때문에 학을 뗀 처제나 장모는 그가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는데, 정작 마누라는 귀여워 죽는다고 한다. 아마 연하의 남자 아닌가 싶다.
이상한 사람은 또 있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좌변기에서 응아 소리를 안 하면 일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집에서든 공중화장실에서든 “응아, 응아!” 하고 자기를 응원해야 응가가 나온다. 습관이라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설사를 할 때는 더하다(이건 잘 이해가 안 됨), 그는 SNS에 “내가 소리를 낼 때마다 자꾸 뭐 하는지 관심을 가지는데 옆 칸에서 제발 관심 끊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사람은 저마다 소리를 낸다.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하는 소리나 기색을 인기척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내는 소리가 아니라도 사람은 무슨 소리든 내기 마련이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지 아니면 습관인지 하루 종일 큼큼거리는 사람을 봤다. 어떤 여성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재채기를 크게 해 주위를 놀라게 한다. 어떤 남자는 웃음소리가 하도 커서 눈총을 받곤 한다.
이런 말을 하다 보니 나는 무슨 소리를 내고 있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남들이 기억하고 인식하는 나만의 소리가 있을 텐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녹음된 내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담배를 한창 피울 때는 아침에 일어나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는 게 첫 일과였지만, 지금 그런 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남들이 콕 집어 알려줄 때까지 내가 내는 소리는 접어두고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를 이야기해보자. 지금은 음력 10월, 이른바 소춘(小春)의 초입이다. 초동(初冬) 또는 맹동(孟冬)이라고 하는 음력 10월은 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해 ‘작은 봄’이라고 부른다. 그렇긴 해도 밤낮으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좀 늦었지만 가을엔 구양수(歐陽修, 1007~1072)의 ‘추성부’(秋聲賦)를 음미해야 한다. 밤중에 책을 읽고 있는데 서남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오싹해져서 동자에게 알아보라 하니 동자가 대답하기를, “별과 달은 밝고 깨끗하며 밝은 은하수가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라고 했다지? ‘추성부’는 이 나무 사이에서 나는 소리로부터 천지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일로 생각이 번져 스스로 탄식하는 고금의 명문이다.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독일 작가 안톤 슈나크(Anton Schnack, 1892~1973)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명문이 있다. 그가 쓴 비슷한 글 ‘내가 사랑하는 소음, 음향, 음성들’은 세상과 사람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아, 한 잎 가랑잎이 살그머니 떨어질 때, 가슴 아프도록 지친 소리. 아직도 나무에는 여름이 달려 있는데 어느덧 한 잎이 떨어지고 있다. (중략) 정적의 소리야말로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무위(無爲)로부터, 근원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심연의 흐름ㅡ바로 오르간의 음악 소리요, 조개껍데기의 소리이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 속을 흐르는 피의 음악이다.”
세상의 온갖 소리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과,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가령 피천득의 명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읽으면 “다른 사람 없는 방 안에서 내 귀에다 귓속말을 하는 서영이의 말소리” 등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소리가 많이 나온다. “봄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갈대에 부는 바람 소리, 바다의 파도 소리, 골목을 지나갈 때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서 있게 하는 피아노 소리, 젊은 웃음소리….”
한유(韓愈, 768~824)의 글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의하면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내게 된다. 초목에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어 소리를 내게 되며, 물은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움직여 소리를 내게 된다. 사람이 말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부득이한 일이 있은 뒤에야 말을 하게 된다. 노래를 하는 것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며 우는 것은 회포가 있기 때문이다. 무릇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불편한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우리가 자연의 소리보다 더 자주 듣는 것은 인간의 소리이며 생활의 소리지만 들어서 좋기보다는 귀 막고 싶은 소음이 더 많다. 군소리, 헛소리, 흰소리, 허튼소리, 허드렛소리, 오만소리, 볼멘소리, 갖은소리, 왼소리, 입에 발린 소리, 그리고 개소리! 이 중 왼소리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 험하거나 궂은소리이며 갖은소리는 쓸데없는 여러 소리,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걸 다 갖춘 듯 뻐기며 하는 말을 뜻한다.
소리가 참 많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고, 내 소리는 되도록 내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은 입동(11월 7일)을 지나 소설(11.22) 대설(12.7)로 치닫고 있다. 한유의 말대로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회든 되도록 평정을 얻어서 귀가 괴로운 소리가 적은 겨울을 맞았으면 좋겠다.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속 타고 안타까운 일이 있어야 시원하고 달콤한 맛도 느낄 수 있다. 고진감래라 인내의 열매는 달 것이니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다소의 난관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매진하라. 운기가 곧 길해질 것이다.
•84년생 : 당당히 밀고 나가면 막힌 건은 다 풀리나 사람의 마음은 못 얻는다.
•72년생 : 드디어 횡재수가 도래하니 던져봄이 가하리라.
•60년생 : 변동 수가 오니 오늘의 변동은 한 번 움직여 봄이 재수에 길하다.
•48년생 :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사는 것이니 다른 것은 생각 말고 지킴이 길하다.
◈ 소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세상과 인정은 수시로 변하는 것이니 너무 집착하지 마라.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말 것이니 다소 서운한 일이 발생하였다고 하나 애석해하지 말라. 다시 운기가 길해지니 마음이 한결 가벼울 것이다.
•85년생 :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으니 운에 잘 편승하면 빛이 나고 힘도 생긴다.
•73년생 : 과신하는 데서 막힘이 생기니 잘 조절하면 좋은 일이 기다린다.
•61년생 : 인간관계에 행운이 따르는 운이니 많이 만나는 것이 좋다.
•49년생 : 행운과 불행의 희비가 엇갈리는 날이니 마음 조율을 잘하라.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물질에 초연해야 마음속의 얽매임을 풀어버릴 수가 있으리라. 조급한 마음은 버릴 것이니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천천히 해결하는 것이 길 할 것이다. 성급히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86년생 : 이성을 가까이하면 구설수가 많으니 조심해야 면한다.
•74년생 : 시간이 흐르면 어려우니 속히 서두르는 것이 해결하기 쉽다.
•62년생 : 새로운 일이나 확장하는 문제는 불가하니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좋다.
•50년생 : 신수가 불길하여 기대하는 바가 힘들게 되니 바라지 마라.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비 갠 하늘에 환한 빛이 나타나듯이 밝은 희망이 보인다. 구름이 걷히고 밝은 태양을 보는 운기인 어려움은 곧 다 지나가고 새로운 희망이 엿보인다. 망동하지 말고 좋은 운기를 잘 받아라.
•87년생 : 마음에 둔 계획을 실천해야 하니 늦기 전에 서두는 것이 좋다.
•75년생 : 친구나 연인에게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줘야 일이 된다.
•63년생 : 조력자가 나타나니 힘든 일을 상의하면 도와준다.
•51년생 : 안과 밖의 조화가 문제이니 잘 풀어내면 어려운 일이 해결된다.
◈ 용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막연한 후일의 큰 기약은 버리고 목전의 작은 이익에 신경 써야 된다. 포부는 원대하더라도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으니 목전의 일들을 먼저 처리하라. 작은 이익은 얻게 될 것이다.
•76년생 : 주변의 의견을 잘 수렴하면 큰일에 이득이 되니 고집은 삼가라.
•64년생 : 사심 없고 진취적인 움직임을 가질 때 귀인이 나타나는 것이다.
•52년생 : 포부 야망대로 안 되는 운이니 손에 잡히는 만큼 처리하라.
•40년생 : 아랫사람의 잘못으로 문책당하는 일이 생기니 미리 조심하라.
◈ 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면 모든 일을 그르치니 본심을 보이지 마라. 입은 무겁게 하고 마음은 넓게 가질 것이니 다소 억울하고 분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인내하는 마음을 가지라. 그리하면 곧 길해질 것이다.
•77년생 : 말 잘못으로 우정 애정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하니 입을 조심하라.
•65년생 : 한 가지 일로 두 가지를 잡는 격이라 소득이 높고 재수도 길하다.
•53년생 : 새로운 자리가 마련되는 운이니 물리지 않는 것이 앞길을 여는 길이다.
•41년생 :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면 나중에 알아주니 재수를 더한다.
◈ 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믿음은 중요한 것이라 괴로움 속에서도 신뢰를 쌓아두면 길하리라. 현실이 딱하다고 신의를 저버리면 안 될 것이니 난관 속에서도 굳건한 마음이 필요한 시기이다. 자중하여 행하라.
•78년생 : 주위의 눈총을 받기 쉬운 때이니 감정 억제를 잘하면 면하리라.
•66년생 :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일이 잘 진척되니 상대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54년생 : 어렵게 늦게 일이 풀리는 길이 보일 것이니 애태우지 말고 기다리라.
•42년생 :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많은 생각을 해보고 결정하라.
◈ 양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큰 욕심은 마음이 불편하나 작은 바람은 진취를 만드니 조정을 잘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과욕을 버릴 것이니 작은 소원은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자신의 감정 정리를 잘해야 할 괘이다.
•79년생 :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해야 훗날 다른 일도 잘할 수 있는 법이다.
•67년생 : 열 가지를 다 안주 는 것이니 한가지라도 만족하면서 잘 지내라.
•55년생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정신만 차리면 귀인을 만난다.
•43년생 : 재수란 흐르는 물과 같으니 내 손에서 나가지 않으면 오지도 않는다.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라 내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는 길함이 와도 뜬구름과도 같을 것이니 과욕은 버리길 바란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게 될 괘다.
•80년생 : 하나를 알면 열을 알 수 있으니 처음 하나가 문제이다.
•68년생 : 일의 기초가 잘 되었는가를 돌아보면 해결책이 나온다.
•56년생 : 초심으로 돌아가야 마음도 편하고 재수가 좋음에 일도 잘 풀린다.
•44년생 : 건강이 좋아야 활력을 찾고 일에 임할 것이니 건강에 신경을 써라.
◈ 닭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변화무쌍한 하루이니 나아갈 때 한 번 더 생각함이 좋으리라. 협곡을 지나는 것과 같이 불안하기 이를 때 없을 것이니 일을 진행하면서 신중을 요해야 할 것이다. 망동은 금물이다.
•81년생 : 주위의 칭송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되니 떨어질 때를 조심하라.
•69년생 : 한 치 앞도 분간키 어려운 형국이라 돌다리도 두들기며 가야 할 것이다.
•57년생 : 움직여야 할 일이 많이 생기나 자제함이 덜 없애는 것이 된다.
•45년생 : 허망한 생각을 버리고 재충전하면 새로운 일이 기다린다.
◈ 개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길을 잃고 우왕좌왕 헤매는 일이 없도록 미리 머리를 정리하고 나가자.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먼저 철저한 계획이 필요할 것이니 두서없이 진행하지 말라. 후에 화를 당할까 두렵다.
•82년생 : 공부나 일이나 연애나 모든 것은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이다.
•70년생 : 중심이 안 잡히면 번뇌가 큰 법이라 일의 순서를 잘 풀면 열리리라.
•58년생 : 정신이 깜짝거리니 주머니 지갑을 조심하라 손재수가 들어있다.
•46년생 : 손톱 밑에 가시를 두고는 사사건건 걸리는 것이니 주위 단속을 잘하라.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가슴에 나침반을 제대로 세워두면 어떤 어려운 일도 두렵지 않다. 주관을 가지고 행할 것이니 허둥지둥 난관 앞에서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크다. 먼저 자신의 주관을 관철하라.
•83년생 : 여러 가지 중의 하나만 힘차게 밀어붙이면 성사된다.
•71년생 : 고요한 가운데 일이 손에 잡히니 손 가는 곳마다 성사된다.
•59년생 : 구름이 비를 만드는 것이다. 등 붙일 곳이 보이니 잘 찾아보아라.
•47년생 : 과음이 원인 되어 실수할 일이 생기니 삼감이 미리 처방하는 것이다.
아리수란 한강의 다른 이름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순수한 우리말 ‘아리’의 크다는 의미에 한자 ‘수’(水)가 결합한 말이다. 지금은 서울특별시가 수돗물 이름으로 상표 등록해 쓰고 있다. 아리수는 요즘 ‘테스 형!’을 불러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가수 나훈아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언젠가 양평 두물머리를 갔다가 돌에 새겨진 낡은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두물머리의 유래가 담겨 있었는데 기록된 내용은 이렇다.
“두물머리[兩水里]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所)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며 한자로는 兩水里로 쓰는데 이곳은 양수리에서도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 장소를 가리킨다.”
강원도 태백을 들렀다가 관광 안내도에 소개돼 있는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발원지에 대한 관심으로 찾아간 곳이기에 처음엔 별 기대가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가 보니 놀라웠다. 한참 차를 몰고 간 검룡소 입구에서는 커다란 돌 간판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길은 마치 가을 동화 속 같은 풍광이었다. 이른 단풍은 벌써 낙엽이 되어 쌓이고 있었다.
길옆 냇가에서는 다른 데서 보지 못한 광경이 나타났다. 물이 흐르다 갑자기 잠적하고 다시 솟아올라 흐르는 구간이 있었다. 특이했다. 이게 바로 검룡소 계곡의 비밀이라고 했다. 검룡소 계곡에 분포된 석회암이 물에 잘 녹아서 지하에 크고 작은 동굴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곡으로 흘러내리던 물이 바닥에 생긴 작은 동굴로 스며들면 물이 줄어들거나 없어졌다가, 동굴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솟아올라 흐르게 된다고 한다. 그 모습이 신기했다.
검룡소를 찾아가는 길은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어 계곡이 더 깊게 느껴졌다. 울창한 숲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가득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약 1.5km의 거리는 부담 없이 걷기에 딱 좋았다. 연인, 가족끼리 오면 안성맞춤인 길 같다. 가을 정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덧 검룡소 입구. 울창한 숲과 계곡, 언덕의 계단을 오르니 하루 2000t의 물이 솟아오른다는 발원지가 보였다. 샘물같이 둥글게 파인 연못에서는 쉼 없이 물이 솟아올랐고 이 물은 20m의 언덕을 따라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귀로 들려오는 물소리가 시원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물이 솟아오르는지 그저 신비롭기만 했다. 수원지 보호 때문에 손을 담가보진 못했지만 가까이에서 솟아오르는 물의 역동성은 충분히 만끽했다.
검룡소 물은 정선과 영월을 거쳐 경기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해 서해로 흘러간다. 무려 514km 길이의 한강 물줄기가 처음 시작되는 곳이다. 물의 온도는 사계절 9℃로 일정하다. 2010년 생태•지리자원의 보고로 대한민국 명승 제73호로 지정된 검룡소는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힘차게 솟아 민족의 젖줄이자 생명의 근원지로 여겨지며, 이러한 의미에서 매년 8월 한강 발원제도 지낸다고 한다.
지구촌에는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곳이 적지 않다. 물이 부족해 수십 m 샘을 파고, 흙탕물을 식수로 사용해 각종 질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루 2000t을 쏟아내는 검룡소 같은 샘물이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부디 마르지 않고 이 민족을 영원히 지켜주는 생명수가 되길 빌어본다.
검룡소를 나오니 멀리 풍력 발전기가 보인다. 또 다른 볼거리였다. 마치 비행접시가 내리는 듯 멋진 구름은 여행의 흥미를 더해줬다. 태백산 가는 기회에 반드시 들러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순성하던 일들이 조만간 어려워지니 빨리 끝냄이 상책이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시일을 다투니 이른 시일 내에 끝맺음을 하는 것이 길할 것이다. 어려움에 직면하기 이전에 바삐 움직이라.
•84년생 : 달콤한 유혹이 생기는 운이니 조심하여 뿌리치자.
•72년생 : 남의 말을 들으면 패가망신하는 일이 생긴다.
•60년생 : 재효가 왕기를 만나니 천금이 어렵지 않도다.
•48년생 : 곳곳에 영화가 있으니 의기남아로다.
◈ 소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화기가 만당하니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모든 일이 여의하니 만사가 화평할 것이다. 망동하면 운기를 그르칠 우려가 있으니 자중하여 운기를 맞이하라.
•85년생 : 무엇이든 자주하면 싫증 나니 좋은 일을 해보자.
•73년생 : 기분 따라 움직여보자. 못되어도 본전은 건진다.
•61년생 : 처자가 애를 먹이나 내 마음이 고요하니 근심이 끊긴다.
•49년생 : 자식들을 잘 돌봐야 일이 잘 풀린다.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하는 일이 둥글지 못하니 시비가 구름같이 일어난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운기가 불길하여 구설 시비가 따르게 된다. 매사 신중하길 바라니 망동은 금물이다.
•86년생 :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면 만사가 열린다.
•74년생 : 화마가 다가오니 급한 일이 발생한다. 구하지 말고 막아라.
•62년생 : 명예가 아니면 횡재수가 보인다.
•50년생 : 가정에 애로가 많으니 내 밑을 돌아보라.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친한 사람이 해를 끼치니 사람을 조심하라. 가까운 이로 인해 손재를 당할 우려가 있으니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게 된다. 매사 신중히 처리할 것이니 자중하여 행하라.
•87년생 : 정신을 엉뚱한 곳에 팔리어 기회를 놓치는구나.
•75년생 : 장마가 개였으니 속히 움직이라.
•63년생 : 누가 나를 엿보니 비밀스러운 일은 해가 따른다.
•51년생 : 밤길을 조심하라. 누가 나를 노리니 횡액을 조심하라.
◈ 용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허욕에 해가 있으니 남의 것을 탐내지 마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분수를 지키지 않고 과욕을 부리게 되면 화가 미칠 것이니 망동하지 말고 자중하여 행하라.
•76년생 : 사람들이 다 좋다 하는데 이익은 멀리 있다.
•64년생 : 이름은 사방에 날리나 실속이 없는 하루다.
•52년생 : 가뭄 중에 단비라 모든 일에 이로움이 있으리라.
•40년생 : 서쪽 사람을 가까이하지 마라. 해가 몸에 미친다.
◈ 뱀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출문 대길이라 이외의 재물을 얻을 운이다. 가내에 머무르는 것보다 출행하여 구하면 많은 것을 취할 것이니 역마가 발동하여 나아가 구하라 길할 것이다.
•77년생 : 좋은 움직임은 시운을 같이하니 재물이 따른다.
•65년생 : 서쪽에는 해로운 기운이 비치니 동쪽이 길하다.
•53년생 : 귀인이 나타나니 이제야 허리를 펴는구나.
•41년생 : 조용한 출입 속에 술밥이 생기니 움직임이 길하다.
◈ 말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경영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먼저 꾀하니 쳐다만 본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앞서 나가는 사람이 있으니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것이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먼저 분발하라.
•78년생 : 기회를 놓치는 일이 생기니 선수를 쳐라.
•66년생 : 일거리를 중간에서 가로챈다.
•54년생 : 밤도둑이 광 안을 뒤지는 형국이라 문단속을 잘하라.
•42년생 : 내 손이 내 딸이다. 모든 일은 내가 단속해야 길하다.
◈ 양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청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쉽게 귀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 정성을 다해 행하라.
•79년생 : 높은 사람에게 부탁하면 도와준다.
•67년생 : 바람이 불어오니 이동 변동 수라.
•55년생 : 긍지를 가지고 벌인 일들이 헛것이 되니 마음이 허탈하구나.
•43년생 : 호사다마라 매사를 조심하라.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자랑하지 마라. 밤새 안녕이다. 운기가 좋다고 과신하다 화를 당할 우려가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자중함이 길할 것이다. 은인자중이 길함을 유지하다.
•80년생 : 잘나가는 것 같으나 망동은 금물이다
•68년생 : 이성에 눈이 어두워 못 갈 길로 들어선다.
•56년생 : 많이 들어올 때 조심하라. 금방 사라진다.
•44년생 : 아래를 잘 돌아보자. 지나간 길이 어둡다.
◈ 닭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새로운 것을 바라보면 수심을 면치 못하리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고수하는 것이 길할 것이니 경험이 없는 일에는 쉽사리 행하지 말라. 화를 입을까 두렵다.
•81년생 :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안 들 때니 기다림이 상책이다.
•69년생 : 작은 것은 변동함이 길하나 큰 것은 불길하다.
•57년생 : 부자지간에 이름을 날리는 운이니 가정에 경사가 있다.
•45년생 : 관재를 만들지 마라. 오히려 내가 당한다.
◈ 개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구름은 연연히 떠도나 내 마음은 결정이 어렵도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순조로움을 얻지 못하니 심신이 딱함을 느끼게 된다. 마음의 결정이 더디니 이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리라.
•82년생 : 갈등을 지우고 차라리 도움을 얻자.
•70년생 : 문서가 발동하니 도장을 조심하라. 보증은 금물이다.
•58년생 : 하루 네 끼 먹는 사람 없다. 욕심을 버리면 재수가 길하다.
•46년생 : 자식에게는 투자함은 흐르는 물과 같다.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모든 일이 귀인이 나서서 풀어주고 합의되지 않던 일이 된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귀인의 도움으로 만사가 여의해지나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하라. 태만해지기 쉽다.
•83년생 : 상사나 선생님의 도움으로 억울함에서 벗어난다.
•71년생 : 때는 왔으나 같이 밀어줄 사람이 없으니 동방에서 찾아라.
•59년생 : 가정은 평탄하나 재수가 막힌다.
•47년생 : 막혔던 재수가 풀리니 이때를 놓치지 마라.
산이 높아 숲은 무성하고 마을은 밝다. 피고 지는 꽃이나 명멸하는 별, 그 덧없는 것들을 벗 삼아 지내기 좋은 곳이다. 마을 입구엔 ‘예술인 마을’이라 쓴 팻말이 있다. 아늑한 자연 환경에 이끌린 몇몇 예술인들이 들어와 사는 마을이다. 터줏대감은 서양화가 유휴열(71)이다. 그는 이곳에서 33년을 붙박이 장롱처럼 눌러 살며 그림을 그렸다. 다작(多作)을 하기로 소문난 화가다. 그가 올봄에 개인미술관을 개관했다. ‘유휴열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화가라면 다들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그림밖엔 난 몰라! 이렇게 속으로 외치며. 그들은 그림으로 존재의 가치를 돋우고, 그림으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길 바라며, 나아가 상상력을 무한 확장한 그림 작업으로 자신만의 심미적 제국을 구축하고 싶어 한다. 그러자면 일단 열심히 그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취약점이 많은 게 인간의 정신. 뜻대로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다. 이를테면 자만심, 혹은 매너리즘이 방문해 화가를 나태의 늪에 집어던지기 십상이지 않던가. 이 점에서 유휴열은 귀감으로 회자된다. 그는 그리지 않고서는 숨 쉴 수 없다는 양 치열한 창작을 하기를 평생토록 일관했다. 그렇게 해서 수장고가 미어터지도록 쌓인 작품이 자그마치 5000여 점.
“미술의 공익성, 공공성을 생각했다"
이 많은 작품을 다 어이하나? 노령에 접어든 유휴열은 숙고했던 것 같다. 머잖아 생을 다하는 시간이 찾아올 텐데, 그림들을 등짐지고 함께 떠날 방법은 없고, 다 불태워 없애는 광란(?)은 적성에 맞지 않고, 그는 다소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민했을 것이다. 이건 유휴열만의 문제가 아니다. 화가의 사후, 그의 분신에 해당할 작품들이 처할 운명에 관해 많은 화가들이 심각한 모색을 하고 대책을 찾는다. 이상적이기로는 작품을 공공미술관에 기증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받아주지 않을 공산이 크다. 공공미술관이라 하더라도 기증 작품을 수용하기 위한 물적 여건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휴열은 결국 개인미술관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개인미술관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화가가 대부분이라는 걸 고려하면 유휴열은 행운아다. 그리고 그 행운은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게 아니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불러들였다. 어쩌면 꽤 오래된 숙원이었을 미술관을 드디어 출항시킨 그는 이제 사후에도 행운과 동행하기를 염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혼까지 다했다고 자부해도 좋을 자신의 작품들이 시간을 초월해 후세까지 불멸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유휴열이 미술관을 만든 목적이 다만 작품의 보전을 위한 데에만 있지는 않다. 그가 보기에 전주권, 혹은 전북권의 미술계 토양은 척박하다. 남원시에 있는 김병종시립미술관 외에는 개인을 기리는 기념미술관이 전무했던 현실을 그 하나의 증거로 꼽는다. 따라서 그는 유휴열미술관이 지역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바라며 일을 추진했다. 유휴열을 알아보는 눈들은 서울에도 많지만, 전주권 문화예술계에선 단연 친숙하게 알려진 원로 화가다. “신기할 정도로 유휴열을 믿고 따르는 인사가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유휴열은 이처럼 그를 알아주는 지역의 애호가들에게 미술관으로 화답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지역에서 이만큼이나 화가 행세할 수 있었던 게 다만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가능했겠는가. 늘 남들의 도움을 받았다. 알고 보면 내가 도움 준 일이 드물었다. 이제야 철들어 미술의 공익성, 공공성이라는 걸 생각하며 미술관을 만들었다.”
모악산 치맛자락에 안긴 미술관
유휴열미술관은 유휴열이 33년간 살아온 거처를 다듬어 만든 공간이다. 원래 있었던 살림채와 작업실, 수장고는 그대로 둔 채 전시공간과 카페공간을 증축해 틀을 구축했다. 초목들이 길차게 자란 널찍한 정원도 섬세한 보완을 해 야외 조각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자력으로 조달한 불충분한 자금 사정에 맞춰 시설을 구비하느라 미처 완성을 보지 못한 대목도 있다. 너무 작은 규모의 전시실이 그렇다. 차후 넓혀나갈 예정이라지만 현재로서는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풍치와 구성은 아름답고 안정적이다. 목가적인 전원에 터를 둔 근본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전주 사람들이 즐겨 등산을 하며 서기가 아롱진 산이라 예찬하는 모악산의 치맛자락에 안긴 집이지 않은가. 33년간 이곳에 살며 그림을 그려온 유휴열은 33년간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어 주변의 자연과 동화를 이룬 정원 공간을 빚어냈다. 시인 김용택에 따르면 그는 “너부데데한 미륵을 닮은 사람”이다. 유휴열의 외적인 경관과 내면을 아울러 빗댄 표현이겠으나 일단 근골이 두루 짱짱한 외양부터가 돌미륵을 닮아 투박하다. 정원을 일부러 세심하게 가꾸는 버릇을 가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심심파적으로 수목들을 즐겼으리라. 초목들은 햇빛과 물을 끌어들여 저절로 자랐으리라. 저 태연한 풀과 나무들, 무엇이 아쉬워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랴.
신생 미술관이라고 얕잡지 말자. 있을 것 다 있고, 볼 만한 것 다 볼 수 있다.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노루꼬리처럼 짤막하지만 고즈넉해 마음을 풀어놓을 만하다. 키 큰 노송들, 붉은 꽃떨기 매단 배롱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커피가 식는 속도보다 빨리 식어버린 사랑의 달착지근한 허무를 반추하기에 적당한 정원이다. 산책로 끝에선 계류가 솰솰 흐른다. 흐르는 물은 무정하다. 떨어진 꽃잎과 누런 낙엽을 속절없이 흘려보내다니.
전시실에선 ‘유휴열-산·나무·꽃’전(展)이 펼쳐지고 있다. 화가의 심상에 포착된 자연 풍경을 거친 붓질로 그려낸 유화 작품들을 내건 전시회다.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예쁘장하게 그려진 형상이 하나 없다. 자연물의 외형보다 내적 생명감의 표출에 치중한 유휴열의 의도가 여실히 비친다. 유정한 마음과 관조의 눈길이 아니고선 끄집어내기 어려운 추상적 구상이다. 속사포처럼 빠른 터치로 물감을 짓이겨 두텁게 바른 질감에서는 자연의 기운생동을 가급적 강렬하고 질펀한 화풍으로 드러내려 한 작의가 읽힌다.
속 깊은 그림이다. 분방하나 심층적이다. 거칠지만 흥겹다. 유휴열의 미술세계를 잘 아는 이라면 사족 없이도 금시에 알아차릴 것이다. ‘아하, 보지 않고도 알겠다, 유 화백이 흥겨워 시원하게 물감을 갈겼구나!’ 그렇게. 흥이라는 것, 이건 유휴열 그림의 키워드다. 우리 민족의 토착 정서를 흔히 한(恨)으로 보지만 그는 흥에서 원형을 찾는다. 한이 무르익으면 역설적이게도 신명이 뻗고, 신명에 겨우면 흥이 돋아 어깨춤들을 추며 삽시에 놀이판을 짜는 사람들. 이게 유휴열이 보는 민족의 초상이다. 해서 진정으로 토속적인 것, 전통적인 것, 정신으로 유전된 원초적인 것을 형상화하기에 주력해온 그의 미술 작업의 뿌리는 흥이라는 대지를 탐닉하는 것이며, 오방색을 즐겨 사용하지만 기법은 다분히 모던하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의 촌평을 볼까.
“유휴열의 그림은 현대미술의 어법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우리 전통미술의 특성과 한국인의 기질 같은 것들이 마구 요동친다. 화면은 그 박동을 격렬하게 들려준다. 그것은 거의 색채와 붓질로 이루어진 춤이고 노래이고 판소리 사설이고 구음과도 같다.”
유휴열미술관에는 현기증이 나는 공간이 하나 있다. 바로 유휴열의 작업실이다. 이 미술관엘 왔다가 그 뜨거운 작업실을 구경하지 않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에 속한다. 다산성을 본분으로 여기며 무슨 광포한 충동에 휩싸인 사람처럼 작품 생산에만 매진하는 사람의 예술적 생태계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무진장한 작품들, 열정의 징후들, 또는 노화가의 미묘한 고독까지를 느낄 수 있는 일종의 명소가 아닐 수 없다.
< 2편에 계속 >
로하스 연천이라고도 불린다. DMZ가 인접한 청정지역답게 때묻지 않은 가을 햇살이 바삭하다. 그 햇살에 덮인 자연은 렌즈에 필터를 한 겹 더 씌운 듯 깊이 있다. 연천은 구석기부터 고구려시대까지의 성(城)을 비롯한 유적이 가장 많은 곳이다. 순수한 자연을 누리며 오랜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가능하다. 경기 북부 연천의 가을 들녘, 마음이 풍성해지는 외출이다.
연천 지역에서 고구려 문화유산 흔적은 일상의 풍경이다. 자동차를 타고 연천의 들길을 달리다 보면 나지막한 민둥산처럼 보이는 성이 나타난다.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이다. 연천을 대표하는 고구려 문화유적이다. 임진강변의 높은 절벽 위에 흙을 쌓아 다지고 돌을 높이 올려 성벽을 이룬 천혜의 요새로서 지금도 그 자취를 볼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은 주상절리, 적의 방어기지이자 물자 이동의 상업적 지역이었던 고랑포구, 한탄강과 장진천이 만나는 은대리성의 숲 등 연천은 민통선과 가까운 전방 도시이지만 역사도시이기도 하다.
해바라기가 함께하는 호로고루성
꽃철마다 붐비는 곳이 있듯이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물결을 이룬 해바라기를 보러 사람들이 몰려온다. 호로고루성은 독특한 이름만으로도 솔깃한데 언제부터인가 고구려 성벽 아래 펼쳐진 해바라기 밭으로 사람들이 찾아든다. 이제는 북새통의 절정기가 지나고 한가하다. 이미 노란 꽃잎을 떨구고 씨를 내민 해바라기 밭 건너편으로 우뚝 솟아오른 호로고루성, 그 주변으로 한가롭게 오가는 이들의 모습이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린다.
성 위에 올라서 보면 낮게 흐르는 임진강과 연천의 산천이 따스한 가을볕에 덮여 있다. 흙과 돌을 이용해 토성과 석성의 이점을 결합한 축성술이 돋보이는 호로고루는 그 옛날 개성과 서울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연천과 개성 간의 거리는 30km 정도. 강 건너편의 개성이 보일 듯 말 듯하다. 든든한 주상절리를 믿고 유유히 흘러가는 임진강은 물이 깊지 않아서 예로부터 육상통로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전해진다. 그 강을 옆에 둔 호로고루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해바라기 밭이 계절을 물씬 전한다. *사적 제467호
고랑포구의 추억
연천은 산을 돌아 들길과 강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호로고루성 들판을 건너 바로 근처의 고랑포구는 한국전쟁 이전엔 무역항으로 이름을 떨치던 곳이었다. 전쟁 이후 그 명성은 사라졌지만 지난해 '고랑포구 역사공원'을 개관하면서 다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역사관 실내엔 교역이 왕성했던 고랑포구의 옛 풍경을 재현해놓았고 체험실과 첨단의 콘텐츠를 설치 전시해서 찾아드는 여행객들을 맞고 있다. 특히 역사공원 앞마당에 들어서면 ‘레클리스’(Reckless)란 이름의 군마 동상이 눈길을 끈다. 그 앞으로 멀리 임진강변의 고랑포구를 바라보며 강물 따라 흘러간 역사를 그려본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무덤
고랑포구 역사관에 왔으니 바로 옆 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신라 마지막 왕의 무덤 경순왕릉에 들르지 않을 수 없다. 경주나 개성 어디쯤에 있을 듯한 신라의 왕 무덤이 연천에? 하면서 의아해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위탁하고 개성에서 여생을 마친 후 경주로 운구되는 중 고려 조정에서 “왕의 구(軀)는 백 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하여 이곳 고랑포리 언덕에 장례를 모셨다고 한다. 민란이 염려되어 임진강도 못 건너고 연천에 머물게 된 비운의 왕릉이다. 경순왕릉은 소박하고 석물의 배치나 종류도 간소하다. 조선시대의 여느 왕릉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병풍처럼 두른 산이 있어 제법 위엄 있다. 잠시 넓은 잔디밭과 숲 그늘을 거닐어본다. 역사 저편의 사연을 안고 연천 땅에 묻힌 경순왕의 고뇌를 경건하게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입구에 문화해설사가 상주해 있다.
고려 왕조의 역사가 깃든 숭의전(崇義殿)을 아시나요
고려 왕조의 위패가 봉안된 숭의전, 입구의 태조 왕건이 마셨다는 약수터 어수정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홍살문을 지나 5분쯤 천천히 길을 오른다. 마치 오래된 옛 길을 걷는 듯하다. 그 숲길에 간간이 밤이나 도토리가 툭툭 떨어져 떼구루루 구른다.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7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 고려의 부흥을 이끈 옛 고려 왕조를 향한 충절이 깃든 곳으로 태조 왕건의 위패와 초상화를 볼 수 있다. 입구의 담장과 기와에서 자라는 푸른 이끼가 오랜 세월을 말해준다. 고려 왕실을 지켜준 550년 수령의 느티나무 숲 절벽 아래로는 임진강이 흐르고 우거진 숲 사이로 캠핑하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역사 유적이 자리 잡고 있는 힐링 숲, 그 아래 고즈넉하게 흐르는 임진강, 온통 정적만 감도는 경내 한쪽에서는 보도자료 영상을 촬영하는 팀이 보이기도 한다. 고요한 태곳적 숲의 사적에 내려앉은 따사로운 가을볕에 마음이 여유롭다. *평화누리길 11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언덕 강벽 위의 옛 진루, 사적 제468호 당포성
숭의전을 내려와 5분쯤 달리면 삼각형 절벽의 땅 위에 쌓은 당포성이 가을바람 속에 있다. 마치 호로고루성과 쌍둥이 성인 듯 흡사하다. 성의 생김새나 임진강을 옆에 두고 있는 주변 지형도 비슷하다. 나루 위에는 동벽과 전망대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당개나루로 불렸다는 옛 포구는 교통상 중요한 위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구려시대의 성(城)이 연천에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주상절리에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 병풍처럼 이어진 주상절리라는 자연적 성벽 위로 흙과 돌로 쌓아 올려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삼은 것이다. 성 위로 단 한 그루의 나무가 오롯하게 서 있다. 역사의 한 장면인 듯 바라보았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아름다움, 주상절리
멀리서 바라만 봐도 주상절리를 품은 임진강의 잔잔한 물결이 평화롭기만 하다. 화산활동 후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아 생겨난 기하학적 형태의 현무암 주상절리, 그곳엔 긴 시간의 이야기가 켜켜이 스미어 있을 것이다. 천년 요새였던 그 강가에 강태공 한 명 세월을 낚으며 앉아 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은 마냥 다디달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듯 잡초와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는 주상절리 둑방길도 한적하다.
휴전선과 가까운 민통선 북방지역답게 연천은 철원, 포천 등과 함께 흔히들 말하는 군 전방지역이다. 그 들길과 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삼엄한 전방 군부대를 군데군데 지나치게 된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은 철조망 철책 따라 줄지어 걷는 군부대 장병들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이 땅 최북단의 군부대에서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씩씩한 아들들을 한참 바라봤다. 고마운 청춘들.
DMZ와 인접해 있는 연천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임진강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풍부한 수자원과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서 멸종위기종이나 희귀한 생물 자원이 서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구역이다. 또한 구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구석기인들의 생활 흔적이 발견된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세계 고고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인정하는 지역이다.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로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질공원, 한탄강 하류에 위치한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을 품고 있는 재인폭포(才人瀑布)의 장관도 빠뜨릴 수 없다.
연천의 하루, 심신이 편안하다. 그 옛날 우리의 오천년 시간 속에서 고구려가 써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어낸 시간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에 연천의 시골 인심 한 보따리를 차에 실었다. 민통선 청정지역답게 맑은 물, 비옥한 토지에서 자란 각종 채소와 과일 등 다양한 농산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그 들녘엔 지금 가을이 풍성하다.
◇영화처럼 맛보기
기왕 연천에 갔으면 북쪽으로 조금 더 달려 군부대 앞의 망향비빔국수를 맛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이 국숫집은 연천에서 군생활을 했던 병사들이라면 거의가 다녀간 집이다. 그런 추억 때문에 일부러 먼 길 달려가 먹는 국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영화 '강철비'에서 대한민국 외교안보수석과 북한 최정예 요원으로 분한 배우 곽도원과 정우성이 국수를 후루룩 맛있게 먹는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국수 위에 올린 상추 한 잎은 '망향의 시그니처'로 불린다.
‘두물머리 명반 감상실’ DJ 정상묵
음악을 들으며 밤을 지새운 후, 새벽 물안개 흐르는 강가를 거닌다.
‘인생은 비장한 것’이라며 창조주가 속삭이는 삶의 메시지를 밤새 들은 듯하다.
결국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 책임은 모두 나의 것이다. 멈출 수 없는 인생의 길이 외롭지 않기를…. 음악을 벗 삼아 평생 힘든 생태농업의 길을 걸어온 정상묵 씨를 만나 그가 사랑한 음악 이야기를 들어봤다.
몇 살인지도 모를 만큼 어린 시절이었다. 꼬마 정상묵은 전쟁이 끝난 후 혼란의 소용돌이 중 창궐하던 홍역에 걸려 앓아누웠다.
어른들이 방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해 몸에서는 불이 나는데 방 안에서 뒹굴뒹굴하기만 했다. 너무 답답해 손가락에 침을 묻혀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코를 킁킁거리고 있을 때였다. 마당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몸은 뜨겁고 온몸이 간지러워 미칠 것 같던 그때, 들려오는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 안에서 뜨겁게 내뿜던 열기와 간지러움도 잊고 잠시 넋을 잃고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음악 감상은 강렬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꼬마의 귀에 환상의 소리로 들려왔던 그 음악을 다시 듣게 된 건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였다. CBS 방송을 틀어놓고 일을 하다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마치 감전된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단다. 이 음악을 도대체 언제 들었지? 무슨 음악이었지? 며칠을 고민하다 어느 날 갑자기 어린 시절 창호지에 코를 박고 들었던 기억 속의 선율이 스쳐 지나갔다.
아! 맞다. 그 음악이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음악의 제목을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CBS 방송 주파수를 고정하고 좋은 음악이 나오면 무조건 귀를 쫑긋하며 들었다. 제목을 쓰고 외우길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 그리던 그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정상묵 씨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던 그 곡은 바로 베토벤의 ‘로망스 제2번 F장조 op. 50’.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협주곡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클래식 음악은 물론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을 들뜨게 했던 미국의 포크, 영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하던 비틀스 노래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선율에 귀를 맡겼다.
당시 즐겨 듣던 미국 포크 음악의 대부인 피트 시거의 대표곡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비틀스의 ‘Ob-La-Di, Ob-La-Da’와 ‘Hey Jude’와 ‘Let it Be’, 사이먼&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 Water’ 등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즐겨 듣는 노래 중 하나다.
“당시 비틀스 음반 한 장 가격이 160원이었어요. 넉넉지 않은 생활이라 음악에 대한 갈증은 라디오로 많이 풀었죠. 그러다 꼭 사고 싶은 음반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카세트테이프나 LP 음반으로 사서 듣곤 했습니다.”
정상묵 씨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악기 연주에 대한 꿈으로 이어졌다.
카세트테이프로 감상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는 너무 많이 틀어 중간중간 끊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겨우 이어 붙여 듣곤 했는데 늘어지고 해져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지경이 돼서야 그의 손을 떠날 수 있었다. 이때 들었던 기타 소리가 너무 좋아 이 곡을 연주하겠다는 목표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당시 기타를 연습할 때 쓰던 너덜너덜해진 교재는 아직도 갖고 있다. 오랫동안 몸에 익은 곡이라 가끔 연주해보곤 했는데 2년 전, 손가락 세 개의 신경을 다치는 바람에 더 이상 기타를 들지 못하게 됐다.
신의 독백 같았던 베토벤의 ‘합창’과 하이든의 ‘황제’
LP 음반을 사기 시작한 건 1970년대 후반부터였다. 당시에는 듣고 싶은 음반을 사는 게 즐거움이었다면, 2000년대부터는 동묘와 신설동 시장 사이에서 열리는 풍물시장, 명동 회현역 지하상가 등 귀한 음반을 판매하는 곳은 어디든 가봐야 직성이 풀렸다.
주말만 되면 LP를 사러 갈 생각에 설레어 잠을 설칠 정도였다. 장당 1000원에 보석 같은 원반을 발견할 때는 온몸에 엔도르핀이 솟구쳤다. 흥분된 마음으로 위대한 음악을 들으며 밤을 지새운 후, 새벽 물안개 낀 두물머리 강가를 거닐곤 했다는 정상묵 씨. 그에게 음악은 인생을 성찰하며 뚝심 있게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해주던 친구 중의 친구, ‘절친’이었던 셈이다.
동묘 풍물시장에서 찾아낸 가장 값비싼 보석은 유진 오르먼디가 지휘하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9곡 전곡을 7장으로 녹음한 세트 음반이다. 1966년 콜롬비아사에서 발매한 이 음반 세트가 포장도 뜯기지 않은 상태로 눈에 띄었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던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단다.
그날 그는 베토벤 교향곡 9곡 전곡이 담긴 LP 음반 세트를 지갑에 있던 돈 1만2000원과 바꿔 손에 넣고는 부리나케 두물머리로 돌아왔다. 음반을 들을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날 밤은 그렇게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고 홀딱 새웠다. 정상묵 씨가 그동안 모아놓은 음반은 1만여 장. 이 중 80%는 클래식 음반이고 베토벤 작품 LP는 300여 장에 달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이다. 10명의 지휘자들이 연주한 작품들을 수집해 각각의 연주 특색을 체크하면서 감상하고 있다. 연주자의 반음 미스 터치까지 들릴 정도라 하니 득음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상묵 씨는 작곡가의 의도를 재현하는 지휘자들의 다양한 표현을 캐치하는 게 클래식 음악을 듣는 즐거움 중 하나라 했다. 지휘자에 따라 연주시간이 10분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하는데 음악을 감상하는 데 이력이 생기면 지휘자들의 이러한 세밀한 표현법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초보자를 위한 클래식 길라잡이
‘두물머리 명반 감상실’은 지난 2009년 문을 열었다. 매월 셋째 주 수요일, 두물머리에 위치한 문화공간 두머리 2층 음악감상실에서 열리는 명반 감상회는 대구, 마산, 서울 등 각 지역에서 ‘두물머리 정상묵’의 명성을 듣고 올라온 음악 애호가들이 함께 음악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목 모임이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때는 음악감상실이 꽉 찰 만큼 참가자가 많았지만 지금은 20여 명의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정도다. 이 만남마저도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에는 힘들어 요즘은 개점휴업 상태다.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사는 삶을 꿈꾸는 은퇴자가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음악을 듣는 생활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야 한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어느 정도 귀가 열려야 감상할 수 있으므로 사전 정지 작업이 필요하다.
정상묵 씨가 추천하는 방법은 클래식 FM 라디오를 무조건 틀어놓고 생활하기다. 제목도, 연주자도, 지휘자도, 오케스트라 이름을 몰라도 그저 듣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클래식 음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한 첫 발자국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음악을 들으면서 내 안에 샘솟는 슬픈 감정 혹은 기쁜 감정을 유추해 그 감정에 깊게 빠져보는 것이다.
정상묵 씨는 음악이 주는 깊은 감정의 세례를 맛봐야 음악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서 음악과 감정을 하나로 만들 것을 조언했다.
정상묵 씨는 누구?
1952년생. 한국 유기농의 모태라 불리는 ‘정농회’(正農會)에서 생명농업의 중요성에 눈을 뜬 후 양평군 양서면 일대, 일명 두물머리 지역에서 1976년부터 유기농업을 시작한 농업인이다. 1975년 대도시 서울의 식수원인 한강 상류에 위치한 양평, 팔당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농약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농업인들과 함께 팔당 일대를 유기농 생태농업의 메카로 만들었다.
이후 ‘정농회’, 사단법인 ‘환경농업단체연합회’, ‘팔당친환경생산자연합회’, 영농조합법인 ‘팔당생명살림’을 이끌며 한국의 생태농업인으로서 결코 쉽지 않은 삶의 길을 걸어왔다. “힘든 길을 지치지 않고 꾸준히 걸을 수 있게 해준 건 순전히 음악의 힘이었다”고 말하는 자기고백 속에 그동안 그가 겪었을 온갖 어려움과 고난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정상묵 씨가 꼽는 내 인생의 음악
베토벤 교향곡 제9번 op.125 ‘합창’ | 베토벤은 자신을 천재로 자각했던 것 같다. 인류에게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평생을 힘들게 살았다. ‘합창’ 1악장을 듣다 보면 마치 하늘의 별들이 지구를 향해 쏟아지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천재적인 작곡가가 자신의 삶을 바쳐 작업한 음악들은 들어봐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op.73 ‘황제’ |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면 이 음악을 들으며 고민했다. 특히 1악장을 들을 때는 선택 후의 여러 갈래에 대해 고려해본다. 2악장은 비장함에 차 있다. 결국 삶의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을 비장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 아닐까? 베토벤이 내게 주는 의미를 멋대로 해석한 셈이다.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가 베토벤에게 읊조리는 것을 선율로 만든 것 같다고나 할까? 어느 날 일몰시간에 이 곡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은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울 때는 2악장만 따로 녹음해 계속 들었다.
베토벤 현악 4중주 0p.130 ‘카바티나’ | 1977년 태양계 탐사를 위해 쏴 올린 무인우주탐사선 보이저 1, 2호에 실린 지구의 메시지 음악이다. 당시 이 탐사선에는 외계인을 만났을 때 지구를 알릴 수 있도록 54가지 언어로 각종 메시지를 담은 레코드를 실은 바 있는데 외계인이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레코드 마지막 트랙에 1시간 30분짜리 분량의 음악을 선곡해 실었다. 그 곡이 바로 베토벤의 ‘카바티나’다. 지구를 대표해 외계인에게 보내는 음악이라니… 지금은 태양계를 벗어나 인터스텔라를 떠돌고 있을 보이저 1, 2호에서 계속 플레이되고 있을 이 음악을 감상해보라. 들어보면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피트 시거 ‘꽃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 피트 시거는 미국 포크계의 전설이다. 밥 딜런, 존 바에즈 등과 함께 반전평화운동을 벌이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다. 나이가 들면 세상과 타협하며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산다고들 하는데 피트 시거는 미국의 매카시 광풍도 이겨내고 정말 옹골차게 살았다. 92세였던 지난 2011년 ‘월가 점령 시위’를 응원하기 위해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공연에 참가했다는 뉴스를 보고 참 많은 것을 느꼈다.
월가 점령 시위대들이, 존 바에즈의 노래로 더 유명해진 시거의 노래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함께 부르며 나아가는 걸 뉴스 화면으로 봤는데 전율이 느껴지더라. ‘꽃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는 원작자 시거의 음반뿐 아니라 피터 폴&메리, 존 바에즈, 나나 무스꾸리, 시티(독일 밴드) 등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갖고 있는 뮤지션들의 다양한 버전을 소장하고 있다. 요즘은 유튜브로도 듣는 나의 ‘최애’ 노래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갓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짓는 것은 부모의 큰 즐거움이며 보람이다.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예전엔 부모들이 집안의 법도와 항렬을 지키면서 좋은 이름을 짓느라 정성을 들이며 많은 고심을 했다.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발음이 우스우면 놀림감이 된다. 받침을 뻴 경우 이상해지는 이름도 되도록 삼가야 한다. 지난주 ‘바서오 선생님은 어디에’라는 글을 썼더니 그걸 읽은 송장진, 정봉직, 임연봉 이런 사람들이 어려서 받침을 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시달렸다고 자수해왔다.
알고 보면 사연이 재미있는 이름이 많다. 하도 빚쟁이에 시달려 “200만 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한탄을 했는데(1950년대 후반의 일이다), 마침 아기가 태어나 이백만이라고 이름 지은 경우가 있다. 일제 때 길에서 300원을 주운 사람은 세 아들의 이름을 이진삼, 이진백, 이진원 이렇게 삼, 백, 원으로 지었다(미확인 보도임). 아들을 더 낳았으면 어쩔 뻔했나.
이름에 숫자를 넣는 경우는 많다. 일본인들은 이치로(一郞), 지로(次郞), 사부로(三郎) 식으로 우리보다 더 노골적인 것 같다. 중국인들도 숫자를 잘 넣어 이름을 보면 장남인지 몇째인지 금세 알 수 있다. 백 천 만 억, 이런 큰 숫자를 넣은 이름도 많다.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본관은 선산(善山),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해 명종 연간에 동부승지(同副承旨), 병조참지(兵曹參知), 강원도 관찰사 등을 역임한 분이다. 절조 있고 청렴결백하며 시와 초서에 능했다.
그런데 석천의 5형제 이름이 천으로 시작돼 아래로 갈수록 점점 더 커진다. 임천령, 임만령, 임억령 이렇게. 억 다음엔 당연히 조, 경이 나와야 할 텐데 석천의 아버지(또는 할아버지)는 마음이 약해졌는지 넷째와 다섯째의 이름을 백령, 구(九)령으로 지었다. 따지고 보면 9도 구만리장천까지 뻗치는 무척 큰 글자이지만, 어쨌든 막내 이름의 숫자가 가장 작다.
석천의 두 형은 조광조(趙光祖)의 문하생이라는 이유로 기묘사화(1519년) 당시 함경도 단천에 유배돼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살 아래 동생 임백령(1498~1546)은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 일파에 붙어 대윤(大尹) 윤임(尹任) 등을 제거한 을사사화(1545년)를 일으켰다. 석천은 동생이 그 공으로 위사공신 1등에 숭선부원군으로 책봉되자 벼슬을 버리고 서울을 떠나면서 “잘 있거라 한강수야/고이 흘러 물결 일으키지 마라”[好在漢江水 安流不起波]고 시로 타일렀다. 그 뒤 백령이 원종공신(原從功臣)의 녹권(錄券)을 보내오자 분격하여 불태우고 의절한 채 해남에 은거하다 동생이 죽은 뒤에야 서울에 출입했다. 막내 구령도 백령을 따라 시류에 편승해 출세의 길을 걸었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에게 시를 가르치기도 했던 석천은 강원도 관찰사일 때 관동팔경을 시로 읊은 일도 있고, 김성원(金成遠), 고경명(高敬命), 정철과 함께 ‘식영정 사선(四仙)’이라고 불렸던 인물이다. 담양의 식영정은 사위이자 제자인 김성원이 장인을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상촌(象村) 신흠(申欽)은 석천이 시속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이백을 배우려 노력했다며 자기 문집에 이런 시를 소개했다. “어떤 사람 물가에 기대어 서 있는데/ 해오라기도 여울가에 멈춰 섰네/ 머리가 흰 건 비슷하다만/ 나는 한가한데 해오라긴 여유가 없구나”[人方憑水檻 鷺亦立沙灘 白髮雖相似 吾閒鷺未閒].
허균(許筠)도 그를 찬탄하며 “마음은 흐르는 물과 함께 세상으로 나오고/ 꿈에는 백구 되어 강 위를 나네”[心同流水世間出 夢作白鷗江上飛]라는 시를 호평했다.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는 “긴 바람은 만리에 불고/ 조각달은 고금을 비추네”[長風一萬里 片月古今秋]라는 시구를 이백에 비기며 감탄하는 글을 남겼다.
석천의 시 중에서 널리 사랑을 받는 것은 ‘시자방’(示子芳), 친구 자방에게 보인 세 수 중 세 번째 시다. “옛 절 문 앞에서 또 봄을 전송하노라니/ 지는 꽃잎 비를 따라 옷에 붙는데/ 돌아와도 소매 가득 향기가 맑아/ 수많은 산벌들이 날 쫓아오네”[古寺門前又送春 殘花隨雨點衣頻 歸來滿袖淸香在 無數山蜂遠趁人].
형제의 스승이었던 청백리 박상(朴祥)은 형 억령에게 ‘장자’를 가르치며 “너는 반드시 문장가가 되리라”고 했고, 동생 백령에게 ‘논어’를 가르치며 “너는 정승이 되리라”고 했다 한다. 과연 그의 말대로 백령은 출세를 하긴 했지만 더러운 이름을 얻은 채 명나라에 다녀오다 객사했고, 형은 동생보다 22년을 더 살면서 맑은 이름을 후세에 드리웠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는 마흔 살이나 많은 임억령을 존경해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평생에 이 무릎 꿇지 않았다가/ 오늘날 공 앞에서 꿇는다오”[何幸同時出 生平不屈膝 今日爲公屈]라는 시를 썼다. 백령에 대해서는 선조에게 지어 올린 ‘동호문답’(東湖問答)에 “윤원형, 임백령 등 다섯 간흉은 그 죄가 하늘에 이르니 반드시 죽이고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자들”이라고 극언했다.
임억령 5형제의 이름엔 모두 장수의 기원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 단연 우뚝한 인물은 임억령이다. 이름 그대로 억 살을 살 것 같다. 그리 될 인물인 줄 알고 아버지가 가장 큰 숫자를 준 걸까, 아니면 가장 큰 숫자를 받아서 그에 걸맞게 자신을 수렴해가며 스스로 큰 인물이 된 걸까. 자꾸만 내 이름과 남들의 이름을 돌아보게 된다. 공(公)이 사(私)를 이기지 못하고 정(正)이 사(邪)에 쫓겨나는 세상이어서 맑은 인격이 더 그리워진다.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그냥 한마디 던진 말이 사람을 망치는 수도 있음이니 말조심을 해라. 설혹 수입이 발생한다고 하나 지출할 곳이 많으니 마음만 바쁘고 이루어짐이 적을 괘다. 사태를 잘 파악하여 중심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84년생 : 이상한 물건이 사람을 유혹하나 이겨내면 재수로 통한다.
•72년생 : 새로운 기운이 용솟음치니 힘이 나는 대로 움직여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
•60년생 : 말조심하고 투쟁을 삼가면 금전 운은 좋아지니 투자를 해봄이 좋다.
•48년생 : 덕담을 보내주면 아래로부터 큰 도움이 있어 일을 해결하리라.
◈ 소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일이 잘 안 되는 것은 팔자소관이나 일을 풀어나가는 것은 노력이라. 이는 평소에 실력을 갈고닦은 이에게는 천운이 닿은 것이지만 노력하지 않은 이에게는 길함을 보기 힘들다.
•85년생 :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니 재수를 멀리하는 일이 된다.
•73년생 : 힘 써보지도 않고 그만두는 것은 또 다른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61년생 : 양반 체면이 일을 방해하니 체면은 뒤로하고 능동적 동력이 필요하다.
•49년생 : 아직은 한몫할 때이니 생각을 큰 그릇에 담아보면 재수는 자연히 온다.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했으니 좋은 머리는 쓸수록 발전하는 것이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귀인의 도움도 받게 되고 실리도 많이 얻을 것이니 가히, 길한 운이 도래함을 의미한다.
•86년생 : 용돈이 많이 생기니 기분이 상승하고 친구와도 이야기가 잘된다.
•74년생 : 힘은 많이 생기고 금전 운도 좋으나 구설 시비를 삼가야 한다.
•62년생 : 몸 다치는 것만 조심하면 운세는 좋아 평온한 하루를 보내리라.
•50년생 : 운이 좋아 모든 것이 여의 하나 이성 문제가 사람을 잡는구나.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반대를 위한 반대는 재수를 막는 길이 되니 수긍하는 마음을 가져라.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적이 파놓은 함정을 알지 못해 일신이 딱해질 우려가 있으니 은인자중함이 길한 일진이다.
•87년생 : 친구의 의견에 따르면 안 되든 일도 잘되고 좋은 만남이 성사된다.
•75년생 : 어려움은 친구 덕분에 해결되나 연인과 언쟁하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
•63년생 : 금전 투자도 좋고 문서 문제도 풀리나 과한 욕심은 재수를 쫓는다.
•51년생 : 옛 벗을 찾아보면 좋은 일이 생기고 어려운 일을 해결하리라.
◈ 용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아무 연락 없음이 손재를 없애는 길이 된다. 늦가을 단풍 구르듯 하나 재충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경거망동할 시에는 그 화가 크니 면하기 어렵게 된다.
•76년생 : 건강에 무리하는 일은 삼가고 특히 지나친 과음은 실수를 만든다.
•64년생 :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며 어렵든 일들이 서서히 풀릴 조짐이 보인다.
•52년생 : 힘겨운 상대가 나타나니 사전에 상대의 정보를 읽어 실수하지 않게 조심하라.
•40년생 : 재수 좋은 운이니 남겨놓은 실력을 발휘할 때라 한번 움직여 보라.
◈ 뱀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풍요 속의 빈곤이라 있을 것 다 있어도 허전함은 허욕이니라. 급하게 먹은 떡은 체하기가 쉬우니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차근히 잘 파악하여 행하는 것이 길운을 불러들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77년생 : 고대하든 인연이 나타나니 즐거우나 재운은 어렵게 넘어간다.
•65년생 : 갑자기 분주한 일이 생기나 휩싸이면 손해만 나는 운이니 조심하라.
•53년생 : 마음대로 일이 안 되나 끝까지 전력을 다하면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41년생 :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든 운이니 투자는 금물이고 손 재를 조심하라.
◈ 말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운세는 바뀌는 것 나쁜 운만 오는 것이 아니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정신일도 하사 불성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는 것처럼 호운이 들어 올 때일수록 맑은 정신이 필요하다. 운기가 좋으니 잘 받으라.
•78년생 :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는 답답함이 있어 일의 진도가 많이 늦어진다.
•66년생 : 보이지 않는 귀인의 조력으로 어려운 일을 해결되니 금전 운도 좋다.
•54년생 : 백호가 침노하니 집안에 우환을 조심하고 가족을 잘 돌봐야 한다.
•42년생 : 물리적인 일을 피하고 정신적인 면을 돌아보면 좋은 일이 생기리라.
◈ 양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도량을 넓힘이 폭넓은 사회를 열고 나의 재수를 열어 가는 길이 된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구원의 손길은 다소 받을 수 있으나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히게 되니 타의 시기 질투가 두렵다. 잘 살펴 대처하라.
•79년생 : 애태우든 연인이 반가운 소식을 전하니 금전 운 또한 좋아진다.
•67년생 : 어설픈 일속에서 좋은 제의가 들어오니 기회를 잘 포착하라.
•55년생 : 좋은 이성의 만남이 주선되나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망신 수로 변한다.
•43년생 : 서운한 일이 많이 생기나 자신이 이겨내야 아래위로 융화가 잘된다.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살아가는 방법은 세상이 가르치는 것이니 열심히 삶이 배우는 길이다. 재리가 충족하니 손이 가는 것마다 이익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너무 자만하여 감당하기 힘든 일에는 손대지 말라. 손재가 두렵다.
•80년생 : 좋은 운이 손을 흔드니 이성 문제 해결되고 친구도 말문을 연다.
•68년생 : 근심 걱정이 태산이나 조금씩 풀어지는 운이니 한가지씩 열어 보라.
•56년생 : 문서 문제가 발생하나 서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결정을 유보하라.
•44년생 : 꿈자리가 시끄러운 상이니 두문불출하고 침체한 것을 다시 확인하라.
◈ 닭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남의 좋은 일에 시기 질투보다는 칭찬하는 버릇을 들여야 일이 풀린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먼저 처리함이 길하니 나의 일도 다 하지 못하고 다른 이에 일에 전념하다 보면 손실만 있게 되는 괘다.
•81년생 : 칭찬받을 일이 생기고 재수 좋아 많은 용돈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69년생 : 일은 경쟁 방해로 생각대로 안 되고 도리어 구멍이 생기니 조심하라.
•57년생 : 투자에 함정이 보이니 삼가고 돈의 흐름을 잘 읽어야 손 재를 피한다.
•45년생 : 좋은 소식을 전해 들어 힘은 되나 크게 지출할 일이 생긴다.
◈ 개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모든 일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챙김이 운을 여는 것이다. 매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니 곳곳에 흉함이 깃들여 있다. 속된 판단은 금물이니 오늘 하루는 편안히 지내는 것이 길하다.
•82년생 : 마음 결정이 재수를 열어 가는 중요한 길이니 잘하면 큰 것을 얻는다.
•70년생 : 탐욕은 재수를 쫓는 일이라 욕심대로 안 되니 투자 새 일은 불길하다.
•58년생 : 구슬을 담다 쏟아버리는 격이라 큰 투자와 문서 문제는 삼가라.
•46년생 : 금전 운은 약하고 바라든 일은 오후에 서서히 풀린다.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없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은 사람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이르는 곳마다 이익이 발생하고 투자한 것마다 나를 기쁘게 하니 운수가 대통한 것과 같다. 그러나, 경거망동은 삼갈 것이니 운기가 약해질까 두렵다.
•83년생 : 이성 운은 풀려 즐거우나 금전 운이 어두우니 절약이 필요하다.
•71년생 : 직장이나 단체에서 왕따 당하는 일이 생기니 두루 살펴보아라.
•59년생 : 금전 운이 불길하니 문서 문제는 다음에 처리하고 작은 투자도 어렵다.
•47년생 : 자식이나 아랫사람이 애를 먹이는 운세이니 미리 방침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