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난청 인구는 약 1400만 명, 이 가운데 보청기 착용자는 15%에 불과하다. 양쪽 보청기 착용 시 100만 엔이라는 가격, 정기 점검의 번거로움, 착용 후에도 잘 들리지 않는 문제, 노인 취급 받는 것에 대한 수치심 등이 이유다. ‘미라이 스피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제품이다.
2021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청각보고서’를 발표하며 전 세계 인구 중 약 16억 명이 청력이 손상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2050년에는 약 25억 명이 난청을 겪을 것으로 예상돼, 각국 정부가 전 국민에게 청력 보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일본도 난청 인구가 많다. 10명 중 1명이 해당되며, 65세 이상 3명 중 1명이 청각 장애를 앓고 있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난청을 자각하고 보청기를 착용하기까지 평균 2~3년, 길게는 6년 이상 걸린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벤처 기업 ‘사운드펀’(サウンドファン)은 난청 인구의 보청기 착용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앙증맞은 스피커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
볼륨 작아도 또렷한 스피커
“이 제품의 특징은 TV 볼륨을 높이지 않아도 말이 또렷하게 잘 들리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잘 들린다는 점입니다.” 사운드펀의 최고마케팅책임자인 가네코 가즈키(金子一貴) 씨가 시연하며 원리를 설명했다.
가네코 씨는 “제가 받침대를 펴고 오르골을 틀어드릴 테니 들어보세요. 소리가 작게 들리죠?”라고 말하더니 받침대를 다시 곡면으로 구부렸다. 신기하게도 오르골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가네코 씨가 걸어가며 점점 멀어져 보이지 않는데도 소리는 또렷했다.
볼륨을 키우지 않아도 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는 ‘미라이 스피커’가 탄생한 데는 사운드펀 창업자에 얽힌 사연이 있다. 창업자는 대학 졸업 후 IT 업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영업에 뛰어들었다. 후지제록스, 델(Dell) 등 여러 회사를 거치며 관리직도 경험했다. 50대가 되던 무렵 난청이 있는 아버지가 가족들과 TV 볼륨 문제로 갈등을 빚는 것을 보며 ‘아버지의 난청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그는 우연히 음악 치료 교수를 만나 ‘축음기의 곡면’에 소리가 잘 들리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원리를 응용해 스피커를 만들었고, 보청기를 사용하는 아버지에게 들려주었더니 ‘잘 들린다’고 했다. 그는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2013년 10월, 57세의 나이로 켄우드의 기술자와 함께 사운드펀을 창업하게 된 계기다.
그가 개발한 미라이 스피커는 공항에서 첫선을 보였다. 공항에는 비행기 도착 및 출발 정보, 승객 호출 등 많은 안내방송이 나온다. 당시 공항은 천장이 높고 넓은 공간에서 볼륨을 높이면 반향이 커져 오히려 잘 들리지 않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었다. 미라이 스피커는 볼륨을 높이지 않아도 소리를 또렷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공항의 고민 해결에 안성맞춤이었다. 첫 시도인 하네다공항의 스피커 도입은 성공적이었다. 단숨에 전국 공항으로 보급이 확대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신생 기업이었기에 소량 생산만 가능했고, 1대당 10만 엔이라는 높은 가격 때문에 판매량이 급감했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해 지쳐가던 창업자는 과로로 병을 앓게 되었고, 후배인 야마지 히로시(山地浩) 씨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제2의 사운드펀, 전환기를 맞다
야마지 씨는 창업자의 뜻을 이어받아 미라이 스피커의 가능성과 사회적 의의에 공감하며 제품을 판매할 방법을 고심했다. 그러던 중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가이야의 여명’(ガイヤの夜明け)에 제품이 소개되자 방송 다음 날부터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1000건 이상의 개인 고객 문의가 들어와 전 직원이 전화 응대를 해야 했다. ‘아버님이 TV 볼륨을 높여 가족들이 애를 먹는데 TV 시청에 이용할 수 있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미라이 스피커의 전환점이 된 계기다.
야마지 씨는 시장을 재검토하고 소비자를 대상으로 대전환을 꾀하며 온라인을 통한 판매 방식을 도입했다. 연구 끝에 소형화・경량화・저비용화가 가능한 새로운 곡면 사운드 스피커 개발에 성공했고, 가격도 3만 엔 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 그의 개혁은 사운드펀의 제2의 창업이나 다름없었다. 2020년 5월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한 결과 1년 동안 3000대 이상 판매됐으며, 현재까지 누적 판매 대수는 25만 대에 이른다.
특허를 획득한 미라이 스피커는 경쟁 상품이 없어 가격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며 수요도 많다고 확신한 야마지 씨는 가격과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디지털 마케팅 지식이 풍부했기에 공략에도 자신이 있었다. 가네코 씨는 디지털 마케팅으로 자녀들의 수요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유튜브, 구글, 야후를 통해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고령 친화 제품인데 왜 디지털 마케팅이 중요한지 궁금하실 텐데요. 부모님 생신이나 어버이날 선물로 미라이 스피커를 찾는 자녀들이 많답니다.”
미라이 스피커가 난청 있는 고령자의 불편함을 해결하기도 했지만, 아직 고령 친화 제품에 대한 고령자의 인식이 바뀌지 않은 부분도 있다. 가네코 씨는 자녀들의 선물에 “난 아직 귀 안 멀었다”고 화내며 반품하는 어르신들도 있다고 설명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젊은 감각의 디자인과 다양화
미라이 스피커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지만, 시크하고 모던한 디자인이 젊은 감각을 보여준다. 가네코 씨가 이유를 설명했다.
“요즘 60~70대는 마인드와 감성이 굉장히 젊어요. 오히려 노인을 연상시키는 색상이나 디자인을 싫어하죠. 그래서 일부러 고령자를 위한 제품이 아닌 것처럼 젊은 감각에 맞게 디자인했어요. 또 가족이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연령대가 보더라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 썼습니다.”
사운드펀은 코로나19 이후 넷플릭스를 시청하며 현장감 있는 사운드를 원하는 고객이 늘어나자 2023년 10월 ‘미라이 스피커 스테레오’를 출시했다. 우아한 곡면을 자랑하는 바 타입으로 TV 아래 받침대 등에 설치할 수 있는 제품이다. 지난 3월에는 ‘미라이 스피커 홈’을 개량해 신제품 ‘미라이 스피커 미니’를 출시했다. 심플한 디자인에 더 가볍고 세련된 제품이다. 사운드펀의 올해 주력 제품이기에 필자도 최근 TV에서 ‘미라이 스피커’ 광고를 자주 보고 있다. 판매점에 들러 직접 테스트해보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많아, 1800개 판매점에서의 스피커 판매량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세계로 도전하는 미라이 스피커
‘곡면판을 흔들어 소리를 낸다’는 미라이 스피커의 제품 특허는 한국을 포함해 9개 나라에 등록됐다. 가네코 씨는 “현재 해외 판매는 미국이 유일하다”면서 “향후 캐나다와 멕시코 진출 가능성이 높다. 아마존을 통한 온라인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부모님을 위한 자녀의 구매가 많은 반면, 미국은 고령자가 직접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50년 세계 난청자가 25억 명에 이를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미라이 스피커는 세계에서 사랑받는 제품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친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창업자의 정신과 그 뜻을 이어받은 야마지 씨의 소재·곡면 기술에 대한 오랜 연구가 활짝 꽃을 피우지 않을까.
사운드펀 사무실에는 젊은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2만 발의 폭죽이 터지는 불꽃놀이가 열리고 100만 명이 모이는 스미다강이 그 앞에 펼쳐져 있다. 창업자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젊은 개발자가 다음 세대에 필요한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바다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경제가 쇠락해가는 일본에서 유일한 성장 가능 분야로 꼽히는 ‘시니어 비즈니스’지만, 수익 창출로만 접근한다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될까 고민을 해봤다. 효심에서 출발한 가슴 따뜻한 스토리가 녹아든 혁신적인 제품이 세계의 난청자를 웃음 짓게 할 그날이 오길 마음으로 응원했다.